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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길진균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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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10-23~2024-11-22
칼럼100%
  • [횡설e설] 아버지 부시의 ‘Mission complete’(임무 완료)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지미 카터 후보가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 포드 행정부의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조지 H.W. 부시의 마지막 임무는 동갑내기인 새 대통령에게 안보 현안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한 정보국원이 1980년대 중반 미국에 닥칠 위협을 브리핑하자 카터는 미소를 지으며 제지했다. “그 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 때는 조지가 대통령이 될 것이고, 조지가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카터의 말처럼 부시 전 대통령은 1989년 미·소 정상회담, 1991년 전략무기 감축협정 등을 이끌어 냉전의 종식에 기여했다. 걸프전 승리도 이끌었다. 그의 국장(國葬)이 치러진 5일 워싱턴 국립대성당. 장례식을 집전한 성공회 러셀 레벤슨 신부는 이렇게 추도했다. “대통령 각하, 임무 완료(Mission complete). 잘 하셨습니다. 영원의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삶은 영원히 계속될 겁니다. 아멘.” ▷그의 장례식은 미국을 하나로 모았다. 관례대로 연방정부는 업무를 일시 정지했고 학교도 문을 닫았다. 뉴욕증시와 나스닥도 애도와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휴장했다.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아들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라이벌이었던 95세의 밥 돌 전 상원의원은 휠체어에서 일어나 거수경례로 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전직 대통령들을 멀리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만큼은 화합의 자리에 함께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살아있는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5명이 모인 건 역사상 5번 정도 밖에 없다”고 전했다. ▷세계 최강의 핵항공모함으로 꼽히는 조지 H.W. 부시함(CVN-77)은 그의 이름을 땄다. 미 해군의 상징인 니미츠급 최신예 항모에 미 해군 조종사 출신의 전쟁영웅의 이름이 주어진 것이다. ‘증세 반대’ 공약 번복과 그 유명한 클린턴의 선거구호 ‘문제는 경제다,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에 밀려 재선에 실패했지만 그는 늘 국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선택했다. 아버지 부시가 ’재선에 실패한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그래픽=채한솔 디지털뉴스팀 인턴}

    • 20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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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기로에 선 마크롱

    마리안은 자유 평등 박애가 표상하는 프랑스적 가치를 의인화한 여성이다. 화가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선 오른손에 삼색기, 왼손에 총을 든 모습으로 그려졌다. 파리의 상징인 개선문 벽면에 있는 마리안 상(像)이 ‘노란 조끼’ 시위대에 의해 1일 파괴된 사건은 그동안 프랑스인들의 사상적 기저로 통했던 톨레랑스(관용) 정신의 퇴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유류세 인상이 뇌관이 됐지만 ‘노란 조끼’ 시위는 개혁의 혜택을 아직까지 체감하지 못한 ‘잊혀진 중산층’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는 게 프랑스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비용 저효율로 상징되는 ‘프랑스병(病)’ 치유를 앞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후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정책을 추진했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는 부자와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부유세를 폐지하고, 법인세율을 인하했다.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노동법도 개정했다. 내년엔 연금 혜택을 축소하는 연금개혁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부분 정책이 그렇듯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1%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실업률은 9%대로 고공행진 중이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모든 유권자의 고른 지지를 받았던 마크롱은 어느새 ‘부자들의 대통령’으로 몰렸다.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는 4일 사설에서 “(마크롱의) 오만함과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이 위기를 고착화했다”고 했다. 유럽 언론들은 프랑스의 고질적인 복지 편중과 개혁 부재를 바꿔보려는 마크롱의 방향은 옳지만 소통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3일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80세 여성이 얼굴에 최루탄을 맞아 숨지는 등 ‘노란 조끼’ 시위로 인한 사망자는 4명에 이르렀다. 20%대로 떨어진 마크롱의 지지율은 바닥 없이 추락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유류세 인상을 6개월 유예하기로 했지만 마크롱은 국가의 미래를 보고 가겠다는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한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실패한 이상주의자로 남을까. 마크롱의 임기는 2022년 5월까지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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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8년 도망 다닌 前 교육감

    법조계엔 ‘1도 2부 3빽’ 또는 ‘1도(逃) 2부(否) 3배(背)’라는 말이 있다. 수사기관이 부르면 우선 달아나고, 잡히면 부인하고, 그래도 안 되면 ‘빽’을 쓰라는, 권위주의 시대부터 유행한 말이다. 그래도 국회의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일반 형사범처럼 ‘1도’를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도주는 의외였다. 검찰에서 “그렇게 많이 가진 사람이 잡범들이나 하는 수법을 택할 줄 몰랐다”며 허탈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피 생활도 70여 일 만에 막을 내렸지만. ▷최규호 전 전북도교육감(71)도 특이한 경우다. 골프장 사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3억 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던 그는 검찰에 출석하기로 한 2010년 9월 12일 종적을 감췄다. 전날 변호인을 통해 “내일 아침 자진 출두하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친동생이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최규성 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인 데다 최 전 교육감도 각계각층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워서다. 해외도피설에 사망설까지 돌았다. ▷전국의 기소중지자(속칭 수배자)는 모두 13만7000여 명. 고소 고발을 당했거나 범죄 혐의가 있지만 소재 불명으로 사실상 수사가 중지된 사람을 말한다. 큰 범죄가 아닌 이상 이들을 계속 추적하진 않지만 경찰은 “해외로 나가지 않은 이상 전담팀을 꾸려 추적하면 대부분 잡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먹고 자려면 돈이 필요하다. 본인 명의의 전화나 카드를 쓰면 즉각 위치가 들통나기 때문이다. ▷최 전 교육감은 인천 연수구에 있는 24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제3자 명의로 된 휴대전화와 체크카드를 사용했다. 조력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친인척과 교육계 인사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거주지 근처 식당에서 붙잡힌 최 전 교육감은 수사관들이 “최규호 씨 맞느냐”고 묻자 순순히 “네”라고 시인하고 체포에 응했다. 오래 도망 다닌 수배자들은 검거 후 “차라리 속이 후련하다”며 죄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최 전 교육감도 혐의를 대부분 시인했다고 한다. 죄 짓고 살기는 힘들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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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e설] 고문국가 중국

    “병원에 옮겨졌을 때 그의 생식기 기능은 완전히 쇠퇴됐고, 시신은 온통 멍이었다. 발톱 사이에 대나무 꼬챙이로 치른 흔적이 남아있었다.” 미 국무부가 5월 발표한 ‘국제종교자유보고서(2017)’에 담은 중국 내 구치소에서 숨진 파룬궁 수련자 양위융 씨 사례다. 2012년 3월 중국에서 구금됐다 추방 형식으로 귀국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는 “전기고문과 일주일간 ‘잠 안재우기’ 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했다(동영상 참조). 그는 한달 여 동안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의자에서 잠을 잤다. ▷1988년 중국 인민대표대회는 ‘유엔고문방지협약’을 비준했다.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이 정식명칭이다. 대외적으로 중국에서도 고문이 금지됐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에선 고문이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미 국무부의 ‘국가별 인권보고서(2017)’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구타와 강간, 강제 약물복용, 전기충격 등의 방법으로 반체제 인사 등을 지속적으로 고문한다.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고문 보고 사례는 더욱 빈번하다. ▷홍콩 킴벌리호텔을 소유한 홍콩 부호이자 관영 중국중앙TV의 유명 사회자 류팡페이의 남편인 라우헤이윙(중국명 류시융)이 지난해 3월 중국에서 고문을 받고 숨진 사실이 1년 반 만에 드러났다. 홍콩 싱다오(星島)일보에 따르면 부검 결과 당시 60세이던 라우헤이윙은 질식사했으며 갈비뼈 등 7곳에 골절상도 입은 상태였다. 9월 톈진시 법원에서 고문을 한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면서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라우헤이윙이가 왜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중국과 북한 같은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에선 고문이 보편적이다. 중국은 공안 검찰 법원을 모두 공산당 산하 중앙정치법률위원회가 지휘한다. 우리로 치면 경찰 검찰 법원이 한 부에 같이 있는 것이다. 서로 견제 또는 감시할 일이 없다. 사법체계는 공산당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되곤 한다. 유엔 고문금지위윈회는 30년 동안 중국의 약속 이행 상황을 5차례 심의했지만 중국공산당은 조사단의 질문에 답변을 회피했다. 국제 인권기구의 호소도 묵살하고 있다. 중국의 고문은 세계의 아픔이 됐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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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北의 무례한 언사

    5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단 협의에서 남측 대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예정된 시간보다 2, 3분 늦게 나타났다. 북측 대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대뜸 “단장부터 앞장서야지 말이야”라며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고장 난 시계 때문”이라는 조 장관의 해명에 리 위원장은 “자동차라는 게 자기 운전수를 닮는 것처럼 시계도 관념이 없으면 주인을 닮아서…”라며 대놓고 면박을 줬다.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외교 현장에서 북측 인사들이 툭툭 던지는 도발적이고 무례한 언어는 서방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5월 ‘리비아식 핵 포기’를 언급한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 대해 ‘얼뜨기’라고 비난했다. CNN 등 외신들은 이를 전해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보도했다. 리 위원장은 지난달 19일 평양정상회담에 동행한 우리 측 기업 총수들과 함께 식사하면서도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핀잔을 줬다고 한다. 남북 경협 속도가 기대보다 느린 데 대한 불만 표출이라는 해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리선권이 평소 농담을 즐기는 사람이다. 발언이 무례해 보여도 정황상 기분 나쁘게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냉면 소화가 잘 됐을지 궁금하다. 유명한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 때도 북측 박영수 단장은 남측 송영대 대표에게 “여기서 서울은 멀지 않다. 전쟁이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송 선생 당신도 살아남지 못해!”라고 협상 상대의 목숨까지 운운했다. 협박과 공갈을 협상 전술로 쓰는 북한의 행태는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북한 사회과학출판사가 내놓은 ‘우리 당의 언어정책’에 따르면 “말과 글은 사람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 수단이며 혁명과 건설의 힘 있는 무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니 “문재인 대통령의 혓바닥을 응징하겠다” “늙다리 미치광이 트럼프를 지옥의 기름 가마에 처넣어야 한다” 등 노동신문이 쓰는 언어는 욕만 섞지 않았을 따름이지 선동을 넘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대개는 궁지에 몰릴수록 과격해지고 말을 함부로 한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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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南北 정상 첫 오픈카 퍼레이드

    2000년 6월 3일.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흘 앞두고 극비리에 방북한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은 평북 신의주 특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을) 과거 장쩌민 중국 총서기나 어떤 외국 정상보다 더 성대하게 최고로 모시겠다”고 했다. 북측은 무개차(오픈카) 퍼레이드까지 제안했다. 하지만 남측은 경호 문제로 거부했다. ‘적지(敵地)’의 심장부에 대통령이 처음 가는 행사였다.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컸다. 경호실은 “대통령이 위험에 처하면 한 명도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정신 교육을 실시했다. ▷김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 김정일이 예고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 전 원장은 “그 순간, 그(김정일)가 말한 것처럼 ‘최고의 환영 행사’가 거행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오픈카는 아니었지만, 캐딜락 리무진을 함께 탄 두 정상은 수십만 평양시민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백화원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 등의 방북 때도 김정일은 공항 영접에 나섰지만 승용차에 동승한 적은 없었다. 김정일은 “이렇게 환영 인파가 많은데 무개차를 타고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방북 때 드디어 오픈카 퍼레이드가 열렸다. 북한은 1960∼1980년대 메르세데스벤츠사가 생산한 ‘풀만 리무진 랜돌렛’을 제공했다. 정부 수반 등을 위해 제작됐다는 최고급 승용차였다. 하지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동승했다. 2001년 9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때 이뤄진 카퍼레이드도 그랬다. ▷남북한 정상이 함께한 첫 번째 평양 오픈카 퍼레이드가 어제 성사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은둔형’으로 불렸던 아버지보다 한층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는 부인과 함께 공항에 나타나 문 대통령에게 서양식으로 뺨을 세 번 맞추는 인사를 했다. 차량도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로 바뀌었다. 북한은 이 장면을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김정은의 개방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터다. 하지만 세계가 보고 싶은 것은 김정은의 깜짝 이벤트가 아닌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행동이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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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박원순의 ‘아니면 말고’ 개발 계획

    박원순 서울시장은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아이디어를 무기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의 많은 아이디어는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의 설립과 활동으로 이어졌다. 시장이 된 이후에도 그는 틈틈이 수첩에 쓴 아이디어를 회의 때 거론하며 정책화를 주문했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같은 정책도 이런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박 시장의 스타일은 서울시 공무원들에게는 부담이었다. 재래시장을 둘러본 뒤엔 태양광 설치, 전선 지중화, 야시장 운영 등을 주문했다. 박 시장의 말 한마디로 관련 부서는 초주검이 됐다고 한다. 시 공무원들은 수첩을 펴고 깨알 지시를 하는 박 시장을 ‘박 주사’ ‘박 계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박 시장도 유난히 대규모 건설계획에 대해서만은 부정적이었다. 이명박 오세훈 전 시장의 청계천 사업과 ‘한강 르네상스’ 등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자신의 브랜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장’을 내세웠다. 대규모 개발 계획을 추진하는 사람을 ‘토건족’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3선을 전후해서 변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더 이상 ‘수첩’은 없다”며 깨알 행정의 변화를 다짐하더니 웬걸, 여의도·용산 통합 개발 계획과 경전철 4개 노선 신설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들고나왔다. 갑자기 안 하던 ‘토건족’ 행보를 보이니, 정가에서 2022년을 겨냥한 대선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 것도 당연하다. ▷박 시장은 여의도·용산 개발 계획을 내놓은 지 7주 만인 26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계획을 전면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아니면 말고’식 행보지만, 그 사이 서울 부동산 시장은 춤을 췄다. 아이디어를 즉흥적으로 정책화하려는 박 시장의 스타일은 시민운동가 때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1000만 메가시티 서울의 수장으로선 부적합하다. 서울역∼용산역 철도 지하화와 2조8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경전철 건설 등은 중앙정부와의 사전 협의와 조율 없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 시장의 즉흥 행정이 낳은 대형 사고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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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그들이 집으로 올 때까지’

    미국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의 모토는 ‘그들이 집으로 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다. 미군은 단 한 명의 실종자 또는 전사자를 찾기 위해 세계 어느 곳이든 찾아간다. 2008년 5월 JPAC(DPAA의 전신) 수중탐사팀이 1950년 추락한 전투기 조종사의 유해를 찾으려 당산철교 일대 한강 바닥을 샅샅이 훑던 모습은 한국사회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적진에 포로로 잡혔던 미군의 “언젠가는 조국이 나를 찾으러 올 것으로 믿었다”는 신뢰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유해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과정도 존엄, 그 자체다. 관이 비행기에 들고 날 때마다 공항 하역 직원은 손을, 조종사는 모자를 가슴에 얹는다. 2009년 10월 29일 오전 4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 활주로에 서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장병 18구의 운구가 모두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거수경례 자세를 유지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일 하와이로 날아가 북한이 인도한 6·25전쟁 참전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를 맞이했다. 펜스 부통령은 참전 미군들을 영웅으로 부르면서 “어떤 이들은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들이 절대 잊혀진 적이 없음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C-17 수송기가 미군 유해를 싣고 원산을 이륙한 직후 백악관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5300명의 미군을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이 재개되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한 대목이다. 시인은 1950년 피란 중 야산에서 국군 전사자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시를 지었다. 납북 국군포로와 실종자 7만3985명 중 전사자 유해 발굴이 시작된 2000년부터 수습된 시신은 1만2000여 구(북한군 등 포함)다. 여전히 수만 명의 국군이 이 땅 어딘가에 비목(碑木) 하나 없이 65년 넘게 묻혀 있을 것이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영웅’에 대한 미국의 예우에서 배워야 한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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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노회찬의 비극

    “삼겹살도 50년 동안 같은 불판에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까맣게 타 버린다. 이제는 판을 갈아야 한다.” 정치판의 기득권을 깨야 한다는 메시지를 불판 교체에 빗댔다. 2004년 17대 총선 정국,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의 이 말은 최고 히트작이었다. 민노당은 비례대표 득표율 13%라는 돌풍을 일으켰다. 지역구 2석과 비례 8석을 확보했다. 당선 예상권 밖인 비례대표 8번 후보였던 노 사무총장도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그는 여의도에서 진보정치의 대중화를 이끄는 기수가 됐다. ▷학창 시절 그는 첼리스트를 꿈꿨다. 경기고 시절,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들 앞에서 종종 첼로를 연주했다. 유신 시절 ‘박정희 타도’ 유인물을 제작하고 시위를 벌이던 그는 경찰의 감시를 받는 고등학생이 됐다. 고려대 진학 후엔 용접 자격증을 따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 의원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살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그는 민노당 내에서 줄곧 당내 친북주의 청산을 주장해 주사파 계열과 결별했다. ▷노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드루킹 진영으로부터 받은 금품이 원인이 됐다. 그는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며 “죄송하다”고 유서에 적었다. 지지자들에게 줄 충격과 당이 입을 피해 등에 대한 압박과 절망감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 등 여의도의 특권·기득권 폐지를 주창해온 그의 죽음은 깨끗한 정치를 열망해온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노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한 특검 수사는 어제 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종료됐다. 노 의원 사건은 특검 수사의 본류도 아니었다. 훨씬 크고 무거운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게 버티는 여의도 정치인이 수두룩한데,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는지 안타깝다. 노 의원 사건은 비극적이지만 그렇다고 드루킹 수사가 흔들려서도 안 될 것이다. 그의 죽음이 비리와 부정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정치권 풍토에 경종을 울린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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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한국당의 名醫 찾기

    중국에서 신의(神醫)로 전해지는 화타(華陀)는 팔에 독화살을 맞은 관우를 살펴보고 “독이 뼈까지 침투했으니 오염된 살을 도려내고 독이 침투해 있는 뼈를 긁어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화타가 상처를 째고 뼈를 긁어내는 동안 관우는 바둑을 두며 고통을 견뎌냈다. 수술이 성공리에 끝나 큰 상을 내리려 하자 화타는 “명환자가 있기에 명의가 있는 것”이라며 길을 떠났다. ▷자유한국당이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에게 비대위원장직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애국심과 투철한 직업·윤리의식의 상징인 이 교수가 국민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국당 병’을 과감히 수술해 주길 기대했을 것이다. 이 교수 외에도 한국당 안팎에서 비대위원장감으로 거론된 인사는 40명가량이나 되지만 “예의가 없다”(이회창)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이정미) “소나 키우겠다”(전원책) “그 사람들 말하는 건 자유”(최장집) 등 대부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8일 마감한 비대위원장 ‘인터넷 공모’에는 101명이 자천타천 추천됐다. 한국당은 이들을 포함해 130명을 심사해 금주 후보를 확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당 모습이라면 누가 비대위원장이 된다 해도 국민을 감동시킬 수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많다. 뼈를 깎는 자기반성 없이 명망가 영입에만 힘을 쏟는 행태가 분칠만으로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안이한 태도로 비치기 때문이다. ▷한국당 의원들도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병’의 뿌리는 여전히 편을 가른 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자신들이라는 것을. 총선 불출마 등 통렬한 반성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도. 내려놓고 반성하고 희생하는 것이 민심을 되찾기 위한 첫 번째 활로다. 나이 들어 두통을 심하게 앓던 위나라의 왕 조조에게 화타는 “머리를 가르고 머릿속의 문제되는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화타는 미움을 샀고 결국 옥에 갇혀 숨을 거뒀다. 환자에게 뼈와 살을 가르는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그 어떤 명의도 병을 치유할 수 없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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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부엉이로 바뀐 담쟁이

    ‘저것은 벽…’으로 시작하는 시 ‘담쟁이’.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맡고 있는 도종환 시인의 작품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돕기 위해 발족한 경선캠프 이름인 ‘담쟁이 포럼’은 이 시에서 따왔다. 문 대통령은 주요 모임에서 담쟁이의 소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한 이 시를 곧잘 낭송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주류인 친문(친문재인) 의원들의 ‘부엉이 모임’이 화제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에도 ‘담쟁이’란 이름 아래 모이곤 했던 친문 인사들이 2016년 총선 이후 ‘부엉이’로 이름을 바꾸고 이제는 달(moon·문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은밀히 만나고 있다. ‘부엉이’를 작명한 사람 역시 도 장관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친위조직’을 연상케 하는 자기들끼리 모임을 만든 모습은 불과 2년 전 친박(親朴) 원박(原朴) 신박(新朴) 하며 열을 올리다 ‘진박(眞朴) 감별사’까지 등장한 옛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정치는 ‘우상과 팬덤’의 시대가 됐다. 노빠, 문빠, 박빠…. 정치적 팬덤은 자신들의 리더에 대한 과잉 숭배와 경쟁자에 대한 무한 적개심으로 표출되곤 한다. 숭배와 증오는 동전의 양면이다. 가뜩이나 친문 진영의 폐쇄성과 독단에 대한 우려가 정치권에 팽배하다. 부엉이 모임 멤버들은 ‘친목 모임’이라고 항변하지만 특정 계파의 인사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폐쇄적인 모임으로 비칠 뿐이다. ▷6·13지방선거에서 PK(부산경남)를 휩쓴 친문 진영의 기세가 드높다. 다음 총선의 공천권 확보를 위해 당권을 노리고 있다. 성사된다면 말 그대로 ‘친문 시대’가 열리게 된다. 담쟁이 캠프는 “아무리 높은 벽이라도 함께 오르자”는 시심(詩心)을 담았다. 소박한 담쟁이가 어느덧 큰 눈을 부릅뜨고 밤에 먹이를 찾는 부엉이로 바뀌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여권 일각에서도 부엉이 명칭을 부정적으로 본다. 친문 전성시대가 도를 넘으면 완장 찬 실세들의 전횡으로 갈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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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탁현민의 ‘사라질 자유’

    2016년 여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일종의 출정식이었을 터다. 그때 동행한 사람이 양정철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과 탁현민 현 대통령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도중에 합류한 김정숙 여사는 탁 행정관과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했다. 그래선지 두 사람은 대통령 내외와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로 꼽힌다. ▷최고경영자 등 리더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을 PI(President Identity)라고 한다. 한국에서 PI가 정부로 확산된 것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인 2005년이다. 노 전 대통령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자산으로 삼은 문 대통령과 참모진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문 대통령을 이야기가 있는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책 ‘운명’의 2012년 북 콘서트 중심에 탁 행정관이 있었다. 2년 차 대통령이 7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이어가는 배경에는 PI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이다. ▷탁 행정관은 대통령 PI팀의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리더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장점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PI의 요체라고 말한다. 리더의 성품은 물론 발성과 언어 습관까지 파악해야 가능하다. 대통령과의 거리가 그래서 중요하다. 이명박 박근혜 청와대 역시 PI팀을 가동했지만 성공적이진 못했다. 그러나 탁 행정관은 “처음 성관계한 여중생을 친구들과 공유했다” 등 왜곡된 성 인식을 드러낸 저서 내용이 알려지면서 사퇴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탁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과 관련해 “제주에 피신(?)까지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그에게, ‘당선만 시켰다고 끝이 아니다’라며 잡았다”고 했다. 그렇게 매달린 탁 행정관이 지난달 29일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잊혀질 영광’ ‘사라질 자유’를 거론하면서. 하지만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며 간곡히 만류했다고 한다.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일찌감치 문재인 정부의 약점으로 거론된 탁 행정관, 청와대는 아직까지 그를 놓을 준비가 돼 있지 않나 보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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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원자력학과 0명

    1948년 5월 14일. 북한이 수력발전 시설에서 남한으로 보내던 전기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거리를 달리던 전차가 멈춰 섰고 얼마 되지 않던 산업시설마저 순식간에 마비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67달러였을 때다. 정부는 이듬해 준공된 목포 중유발전소와 미국이 지원해준 일렉트라호를 비롯한 2대의 발전선으로 전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자원이 없는 한국은 원자력발전에 승부를 걸었다. 원자력이 ‘두뇌에서 캐는 에너지’로 불리는 이유다. 1956년 문교부에 원자력과를 만들고 연구생들을 미국 아르곤연구소에 파견했다. 1958년 한양대, 1959년엔 서울대에 원자력공학과를 신설하고 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1978년 4월 첫 원전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4번째로 ‘제3의 불’을 점화한 나라가 됐다. 선진국들이 핵실험을 할 때 원자력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한국이 세계 4대 원전 수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에는 ‘두뇌’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KAIST에서 올해 2학기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 희망 학생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991년 학부 과정 개설 이후 27년 만에 처음이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역시 2017년 후기 대학원생 모집 때 정원 5명의 박사과정에 1명, 37명의 석·박사 통합과정 모집에 11명이 지원해 미달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돌입한 세계는 원자력을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인정하는 추세인데도 유독 한국에선 미래가 없는 학문으로 전락하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50년 동안 쌓아온 기술과 연구력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떨고 있다. ▷원유가 많은 것도, 중국처럼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닌 한국에선 인적·지적 자원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다. 원자력은 종합과학이다. 원전 종사자 중 관련 전공은 10% 정도지만 기계 화학 재료 물리 제어 컴퓨터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공학도들이 필요하다. 정부의 탈원전 드라이브가 어렵게 쌓아 올린 귀중한 자원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져선 안 된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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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세계 최고 ‘연결사회’

    ‘초연결사회(Hyper Connected Society)’가 화두다. 사람 사물 공간 등 세상 만물이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고, 모든 것들로부터 생성되고 수집된 각종 정보가 공유 및 활용되는 사회시스템을 뜻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기술의 발전은 사람-사물-데이터를 연결하는 ‘연결의 영역 초월’을 조금씩 현실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연결된 사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37개국 4만448명을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을 보유한 성인 비율에서 한국은 94%로 2위 이스라엘(83%)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주기적으로 인터넷을 쓰거나 스마트폰을 소유한 성인 비율을 의미하는 인터넷 침투율에서도 96%, 단연 세계 최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률은 미국, 호주와 공동 3위였다. 이를 두고 퓨리서치센터는 “한국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사회(most heavily connected society)”라고 분석했다. ▷기계화에 따른 1차 산업혁명, 전기 에너지에 의한 2차 산업혁명, 컴퓨터·인터넷에 기반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연결’이다. 한국에선 지하철 카페 공공장소 등 어디서든지 무료 와이파이 등을 통해 인터넷에 손쉽게 연결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지하철,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몸이 쏠리는 가운데서도 묘기하듯 손에 쥔 스마트폰을 응시한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간다고 할 순 없지만 스마트폰을 통한 ‘연결’로만 보자면 최첨단이다. ▷연결사회로의 진입은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만든다. 공유되는 지식과 정보의 양이나 속도가 엄청나게 증가한다. 누구와도 거리와 시간에 관계없이 24시간 연결돼 있을 수 있다. 수천 km 밖에 있는 친구나 동료와 근황과 고민을 나누고 협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동서양의 옛말은 말 그대로 옛말이 됐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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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 동영상 칼럼] 6·13 PK목장의 결투…정초선거를 아시나요?

    6·13 지방선거가 8일 앞으로 다가왔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의 낙승이 예상됐던 경남지사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가 무섭게 추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각 당이 내부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김경수 후보와 김태호 후보 간 격차가 크게 좁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초반 10%p, 많게는 20%p 이상 격차가 벌어졌던 각 언론사 여론조사와 사뭇 다른 결과다. 김태호 후보가 도지사 경력 등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바닥민심을 흔들고 있어서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경남지사 선거에 말 그대로 사활을 걸고 있다. 양당에게 경남지사 선거는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한 자리가 아니다. 훨씬 큰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경남지사를 두고 치열한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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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화제의 저커버그 청문회

    “페이스북을 무료로 서비스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죠?” 10일 미 의회 증인석에 앉은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예 의원님, 광고로 돈을 법니다”고 답했다. 이용자 870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 파문으로 인해 미 의회에서 이틀 동안 열린 청문회에서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나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한 상원의원의 돌출 질문이었다. ▷44명의 상원의원이 참석한 첫날 청문회를 두고 CNN은 ‘디지털 문맹’에 가까운 의원들이 저커버그를 살렸다고 지적했다. 청문회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11일 하원 청문회는 사뭇 달랐다. 100명에 가까운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고, 저커버그의 답변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저커버그는 자주 물을 마시며 초조함을 드러냈다. 그는 “전적으로 내 책임” “큰 실수”라고 거듭 사과하며 진땀을 흘렸다. 미 언론은 “그에게 두 번째 라운드는 좀 더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정보기술(IT) 업계의 고정관념과 관습에 대한 거부를 상징하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늘 입던 저커버그는 이틀 동안 양복과 넥타이를 갖춰 입었다. 뉴욕타임스는 저커버그의 정장을 ‘아임 소리 슈트(I‘m Sorry Suit·반성 정장)’라고 표현했다. 사회의 규범을 존중하는 기업인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선택이다. 저커버그가 10cm가 넘는 높이의 검은색 쿠션을 깔고 앉은 모습도 화제였다. 의회에서 기죽지 않으려는 저커버그의 힘겨운 노력을 보여준 장면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미 상원(100명) 의원들의 평균 연령은 61세, 하원(435명)은 57세다. 34세의 저커버그는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호통과 질책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차분히 그의 말을 들었다. 증인을 향한 고함과 윽박지르기, 망신 주기 등으로 파행하기 일쑤인 우리 국회 청문회와는 달랐다. 그러고 보니 청문회의 영어 표현은 ‘hearing(듣기)’이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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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10년이 지난 뒤

    우리나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이 2년 연속 세계 2위를 기록했다. 미국육류수출협회가 9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총 12억2000만 달러(약 1조3047억 원)로 일본의 18억9000만 달러 다음이었다. 인구 기준으로 한국은 1인당 3.5kg으로 일본(2.4kg)보다 많았다. ▷시장점유율에서도 미국산은 지난해 호주산을 제치고 14년 만에 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1년 쇠고기 수입 자유화 이후 1위를 달렸으나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된 이후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가 2008년에 조건부로 수입이 재개됐다. 당시 시장점유율이 6.4%에 불과했다. ▷2008년 온 사회가 광우병 괴담에 휩싸였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MBC PD수첩을 계기로 그해 5월부터 100일 넘는 기간 동안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한국인은 광우병에 잘 걸리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청산가리 먹는 것이 낫겠다’ ‘미국인들도 미국산 쇠고기는 먹지 않는다’ 등 괴담이 쏟아졌다. 대법원은 PD수첩의 핵심 내용들을 과장·왜곡보도로 판결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례는 그 후 전 세계에서 보고된 게 없다. ▷광우병 괴담을 주도한 단체, 정치인들 가운데 지금까지 진심 어린 사죄를 한 이는 없다.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핵심 간부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량 1위를 차지한 데 대해 “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 검역 체계가 강화돼 걱정을 덜면서 미국산 쇠고기를 찾는 분들이 늘어나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간부는 “인간광우병은 사후에 뇌를 열어야 확인된다. 위험이 과장됐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했다.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 참 황당하고 기가 막힌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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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실리콘밸리의 수난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 2016년 미국 벤처캐피털회사 퍼스트라운드캐피털이 미국의 창업가 700명을 조사해 선정한 ‘가장 존경하는 정보기술(IT)업계 리더’ 1∼3위다. 이들이 이끄는 테슬라와 아마존, 페이스북의 주가는 최근 10년 가까이 끝이 없는 듯 상승세를 탔다. 승승장구했던 이들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들이 최근 미증유의 고난을 겪고 있다.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등 소위 ‘FAANG(팡)’으로 불리는 미국 IT 대표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최근 3주 동안 3970억 달러(약 420조 원) 증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일 보도했다. 페이스북은 ‘정보 유출 파문’의 직격타를 맞았고, 테슬라는 ‘자율주행차 사고’ 악재에 휩싸였다. 아마존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주가가 하락세다. ▷미 대선이 치러졌던 2016년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이슈는 기술 진보가 아닌 트럼프 당선이었다. 당시 리버럴 엘리트는 ‘클린턴 올인’이었다.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IT 대표기업들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60배나 많은 선거후원금을 몰아줬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IT 및 미디어산업을, 공화당이 집권하면 에너지 및 유통 산업을 수혜주로 선정하는 것이 월가의 전통이다. ▷포퓰리즘이 반(反)엘리트의 물결과 트럼프의 당선을 몰고 왔듯, 민주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쟁을 위협해온 FAANG이 유럽연합(EU)에 이어 미국에서도 칼날을 맞을 조짐이다. EU는 IT 기업의 정보사용 권한을 제한한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5월부터 시행한다.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셔먼 독점금지법’으로 독점기업을 해체시킨 것처럼 2018년은 실리콘밸리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0년 이상 세계 경제를 이끈 미국의 첨단 IT 기업들이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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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우주 쓰레기

    2013년 개봉한 영화 ‘그래비티(Gravity·중력)’는 인공위성 잔해와 우주왕복선이 부딪치면서 우주공간으로 내던져진 승무원들이 겪는 재난을 그렸다. 우주 쓰레기는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지구 주변을 돌고 있다.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 버려진 로켓 등과 그 잔해물이다. 지름 10cm가 넘는 것만 2만9000여 개, 1cm 미만은 1억6600만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우주 쓰레기가 지구로 떨어질 때 추락지점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주에서 떨어지는 물체의 움직임은 중력뿐 아니라 대기의 저항력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대기밀도는 공기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이를 실시간으로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높은 건물 옥상에서 종이뭉치를 던졌을 때 떨어지는 장소가 제각각인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 국적의 우주 쓰레기, 톈궁 1호가 2일 오전 9시 16분(한국 시간) 남태평양 칠레 앞바다에 추락했다. 당초 남대서양에 추락할 것으로 추정됐었다. 길이 10.5m, 무게 8500kg의 톈궁 1호는 대기권에서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된 이후 최근까지 7900여 개의 인공위성이 발사됐고, 지구로 떨어진 파편은 약 5400t에 달한다.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때 생기는 마찰열을 이겨낸 스테인리스나 티타늄 등이 지표면에 닿았지만 다행스럽게 인명피해는 없었다. ▷지구처럼 우주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주파편은 빠른 속도로 인해 지름이 10cm만 돼도 인공위성을 파괴할 수 있다. 낡은 인공위성 등이 충돌해 더 많은 파편이 생기고, 파편들 사이에 연쇄 충돌이 이어지는 것을 ‘케슬러 증후군(Kessler Syndrome)’이라고 한다. 그 경우 지구 밖으로 아무것도 쏘아 올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영화 그래비티와 같은 참사가 아직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주 쓰레기를 이대로 방치하면 곧 다가올 현실이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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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대학생 월세난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은 남의 나라”로 시작하는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는 시인이 25세 때 일본 릿쿄대 유학 중 썼다. 일제강점기 무기력한 삶에 대한 식민지 대학생의 고뇌와 극복 의지가 드러난 시다. 육첩방(六疊房)은 다다미가 여섯 장 깔린, 요즘 기준으로 말하면 9.9m²(3평)도 안 되는 작은 방이다. 지금도 많은 대학생들이 육첩 크기의 월세방에서 고달픈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새 학기마다 대학가는 방 구하기 대란이다. 서울 주요 대학 주변 원룸은 보증금 1000만 원에 50만 원 안팎의 월세로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시 통계를 보면 서울 소재 대학 재학생 가운데 지방 출신이 10명 중 3명꼴이다. 그러나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세운 기숙사에서 합리적 가격에 마음 편히 지내는 지방 출신 대학생은 10.9%에 불과했다. ▷기숙사를 더 짓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교육부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전국 186개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21%에 그쳤다. 특히 수도권 70개교(재학생 66만9280명)의 수용률은 16%(10만8023명)에 불과했다. 대학이 기숙사를 새로 지으려 해도 주민의 반발을 의식한 주무 관청의 ‘승인 보류’와 맞닥뜨리기 일쑤다. 한양대는 2015년 2000명 규모의 기숙사 신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다. 임대 수입 감소와 그로 인한 부동산 가격 하락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고려대와 총신대, 홍익대 등 서울 시내에서만 6곳에서 기숙사 신축이 난항을 겪고 있다. ▷저소득층 사이에서 회자되던 ‘월세난민’이라는 신조어가 어느새 대학가까지 퍼졌다. 부모가 여유가 있거나 서울에 집이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삶의 질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당장 주거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리다 보면 학업에 충실할 수 없고, 졸업과 사회 진출에도 영향을 끼친다. 멀어져 가는 듯한 현실 극복의 희망 속에서 “살수록 적자”라고 체념하는 청춘들의 한숨 소리를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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