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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서 팔레스타인을 ‘국가(state)’로 인정하고 대사관을 설치하려는 나라가 늘고 있다. 중동전쟁이 끝난 후에도 가자지구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어떤 식으로든 관여할 뜻을 밝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구상에도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2일 노르웨이, 스페인, 아일랜드 3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143개국(약 74.1%)에 달한다. 다만 한국, 미국 등은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는 팔레스타인 주재 자국 대표부를 곧 대사관으로 승격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콜롬비아 또한 “팔레스타인의 행정수도 라말라에 대사관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전쟁이 하마스의 선제 공격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는 같은 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것은 테러에 대해 보상을 주는 격”이라며 “악의 세력에 나라를 줘서는 안 된다. 그 나라는 테러국가가 될 것이며 학살을 반복할 것”이라고 항의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이스라엘 비판 여론에 굴하지 않고 최정예 ‘나할’ 보병여단을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투입했다고 22일 밝혔다. 나할 보병여단은 팔레스타인의 대(對)이스라엘 봉기를 뜻하는 두 차례의 ‘인티파다’ 당시 진압에 투입됐고, 이번 전쟁 발발 후에도 가자지구 내에서 최전선 전투를 담당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줄곧 원했던 라파 일대에서의 전면 지상전을 용인할 뜻을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민간인 대피를 고려하면서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선한 (라파) 작전 계획을 이스라엘 관리와 전문가들로부터 브리핑 받았다”고 밝혔다. 찰스 브라운 미 합참의장 또한 “많은 민간인이 이미 라파에서 빠져나왔다”고 동조했다.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는 22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장례식에 등장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전쟁 발발 후 줄곧 하마스를 지원했다. 이에 하니야는 “라이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지지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며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장례 예배를 직접 집전했다. 테헤란 곳곳을 메운 시민들은 시신 운구 행렬을 뒤따르며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고 외쳤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찰이 20일 중동전쟁의 양측 지도부인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야흐야 신와르 군사지도자 등에 대해 동시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터무니없다(outrageous)”며 “양측은 같은 급이 아니다(no equivalence)”라고 반발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이날 “다수 민간인을 희생시킨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적용해 이스라엘 측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에 대한 영장을 청구했다. 하마스 측에도 신와르와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군사조직 ‘알깟삼 여단’을 이끄는 무함마드 데이프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다. 이스라엘 현지 매체 i24뉴스는 “ICC가 미 동맹 최고지도자를 표적으로 삼은 첫 번째 사례”라고 전했다. ICC는 이스라엘에는 가자지구 민간인들을 굶어죽게 만든 ‘반인도적 범죄’ 혐의에 무게를 뒀다. 하마스에 대해선 납치와 성범죄 등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칸 검사장은 성명에서 “국제법은 모두에게 적용되며, 아무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미 CNN방송 인터뷰에서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ICC 회원국들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혐의자면 외국 정부 수반일지라도 체포해서 ICC에 넘겨야 한다. 영장이 발부될 경우 네타냐후 총리는 124개 회원국을 방문했다가 체포될 수 있다. 게다가 지도자에게 전쟁 범죄 혐의가 적용되면 무기 수출입 등도 차질을 빚는다. AP통신은 “통상 영장 발부 또는 기각 결정은 2개월 정도 걸린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크게 반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도덕적인 이스라엘군을 하마스의 괴물들과 비교해선 안 된다”고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ICC 검찰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든,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같은 급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모든 위협으로부터 언제나 이스라엘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또 “휴전 협상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마스 지도부도 비난 성명을 내놓긴 했으나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신와르 등이 가자지구에서 은신 중이라 체포영장이 발부된다고 해도 실제 색출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파키스탄계 가정에서 태어난 칸 검사장은 30여 년 동안 국제 형법 및 인권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쟁 범죄를 이유로 지난해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발부된 체포영장도 그가 주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칸 검사장은 어떤 전쟁 범죄에 대해서도 두려움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평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찰이 20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양측 지도부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야히야 신와르 군사지도자 등에 대해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해 “터무니 없다(outrageous)”며 “양측은 같은 급이 아니다(no equivalence)”고 반발했다.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이날 “다수 민간인을 희생시킨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적용해 네타냐후 총리와 요하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에 대한 영장을 청구했다. 하마스 측도 신와르와 알카삼 여단을 이끄는 모함메드 데이프,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체포영장에 이름을 올렸다. 이스라엘 현지매체 i24뉴스는 “ICC가 미 동맹 최고지도자를 표적으로 삼은 첫 번째 사례”라고 전했다.동일 전쟁에 대한 범죄 혐의지만 세부 내용은 다소 다르다. 이스라엘은 가지지구 민간인들을 굶어 죽게 만든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무게를 뒀다. 이에 비해 하마스는 납치와 성범죄 등 ‘전쟁 범죄(war crimes)’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칸 검사장은 성명에서 “국제법은 모두에게 적용되며, 아무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며 “영장이 발부되면 체포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 CNN방송 인터뷰에서 “누구도 법 위에는 있지 않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하마스가 속한 팔레스타인은 2015년 ICC에 가입했지만, 이스라엘은 회원국이 아니다. 하지만 영장이 발부되면 네타냐후 총리 등은 회원국 124개국을 방문했다가 체포될 수 있다. 한국도 2003년 가입했다. 게다가 지도자에 전쟁 범죄 혐의가 적용되면 무기 수출입 등도 차질을 빚는다. AP통신은 “통상 영장 발부 또는 기각 결정은 2개월 정도 걸린다”고 전했다.이스라엘은 크게 반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도덕적인 이스라엘군을 하마스의 괴물들과 비교해선 안 된다”며 “현실 왜곡이며 반유대주의”라고 비난했다. 하마스 지도부도 비난 성명을 내놓긴 했으나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신와르 등이 가자지구를 거의 떠나지 않아 크게 상황이 바뀔 게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ICC 검찰이 시시하는 바가 무엇이든,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같은 급이 아니다”며 “미국은 모든 위협으로부터 언제나 이스라엘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ICC 회원국이 아닌 미국은 앞서 “휴전 협상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영장 청구 연기를 요청해왔다.스코틀랜드 파키스탄계 가정에서 태어난 칸 검사장은 30여 년 동안 국제 형법 및 인권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지난해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발부됐던 체포영장도 그가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확고한 신념을 가진 칸 검사장은 어떤 전쟁 범죄에 대해서도 두려움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평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란 2인자’이자 대미(對美) 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64)이 19일(현지 시간)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州) 산악 지대에서 헬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 이슬람 보수 성직자 출신으로 2021년 8월 집권한 라이시 대통령은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의 사후(死後)에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런 만큼 그의 사망이 이란 핵합의 복원에 나선 미국과, 전쟁 중인 중동 정세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모흐센 만수리 부통령은 20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고 밝혔다. 해당 헬기에 동승했던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장관 등 나머지 8명도 모두 사망했다. 구조에 나섰던 이란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는 헬기 추락 지점이 동아제르바이잔주의 주도 타브리즈에서 약 100km 떨어진 타빌이라고 밝혔다. 라이시 대통령 일행은 노후 헬기를 타고 험준한 산악 지대를 비행하던 중 폭우와 안개 등 악천후를 만나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메네이는 이날 성명을 통해 라이시 대통령의 죽음을 ‘순교’로 칭하며 “이란은 성실하고 귀중한 종을 잃었다”라고 애도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이 올 4월 최초로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지원하는 일을 주도했다. 이란 내에선 정치범 처형 등을 주도하고 히잡 의문사 반대 시위를 잔혹하게 탄압해 ‘테헤란의 도살자’로도 불렸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19일(현지 시간) 헬기 추락으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64)은 2021년 8월 집권한 뒤 이란의 초(超)강경·보수 노선을 주도해 왔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를 통해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루홀라 호메이니와 현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를 잇는 보수파 적자(嫡子)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하메네이 사후(死後) 최고지도자에 오를 유력 후보로 줄곧 거론된 이유다. 하메네이는 20일 성명을 통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부통령이 50일 이내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를 진행하도록 입법부, 사법부 수장과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의 사망으로 하메네이의 뒤를 이를 후계자 자리를 놓고 이란 내부가 권력투쟁에 빠져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치범 처형 주도 ‘테헤란의 도살자’ 1960년 시아파 성지 마슈하드에서 태어난 라이시 대통령은 10대 시절 하메네이로부터 신학을 배웠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1979년 이슬람혁명에도 참여했다. 혁명이 성공한 뒤 검사로 활동했던 그는 1988년에 정치범 5000여 명의 사형 집행을 주도해 ‘테헤란의 도살자’란 별명이 붙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친이라크 성향을 보였다는 죄목이었다. 2019년 미국은 이를 근거로 라이시 대통령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2017년 대선부터 대권에 도전했지만 당시엔 서방에 유화적인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후 2021년 대선에서 권좌에 올랐다. 이후 대외적으로는 로하니 정권의 친서방 정책을 모두 폐기하고, 내부적으로는 신정일치 노선에 반대하는 세력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특히 2022년 히잡 의문사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을 때 앞장서서 관련자들을 탄압했다.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은 올 3월 총선 투표율이 역대 최저치인 41%를 기록하며 여실히 드러났다. 이 때문에 그의 사망이 이란 국민들의 불만을 수면 위로 불거지게 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 CNN 방송은 “라이시는 손에 피를 많이 묻혀 많은 이란 국민들은 (그의 사망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악천후-헬기 노후 등이 추락 원인인 듯” 이란 정부는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이 확인된 뒤 20∼24일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그의 사망 원인은 19일 기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다. 국영 IRNA통신 등에 따르면 그가 탔던 헬기는 이날 수도 테헤란에서 약 600km 떨어진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州) 디즈마르 산악 지대에 추락했다.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이 공동으로 건설한 아제르바이잔 내 기즈갈라시댐 준공식에 참석한 뒤 귀국하던 길이었다. 라이시 대통령을 비롯한 이란 정부 요인들은 헬기 3대에 나눠 타고 있었는데, 그를 태운 헬기만 추락했다. 해당 헬기에는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장관과 말레크 라마티 동아제르바이잔 주지사, 조종사, 경호원, 보안책임자 등 9명이 탑승했다. 현지 언론은 사고 당시 거센 비와 짙은 안개 등 악천후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나머지 2대의 탑승자들도 “탑승 당시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고를 당한 헬기는 미국산 ‘벨 212’ 기종이다. 1968년 첫 비행을 했고 이란엔 1976년경 도입됐다. 수십 년이나 된 낡은 헬기인 데다 오랜 경제 제재로 제대로 된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초강경 노선을 고수하며 미 주도의 국제질서에 반대하는 중국, 러시아와 밀착했던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64)이 19일(현지 시간) 헬기 추락 사고로 갑자기 숨졌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의 사후(死後)에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그의 부재가 이란의 미래에 소용돌이를 일으켜 중동을 넘어 국제 정세에까지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라이시 대통령은 2021년 8월 취임한 뒤 미국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복원하는 데 매우 부정적이었다. 2015년 이란과 미국 등 서방 5개국이 체결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2018년 일방적으로 파기한 합의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발발 이후에는 줄곧 하마스 후원자를 자처했고, 올 4월에는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사상 첫 직접 공격도 단행할 만큼 전쟁에 깊숙이 관여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라이시의 사망으로 이란이 (서방을 향해) 강경한 방향으로 치닫고, 중동을 지역 전쟁 직전까지 몰고 가던 변혁의 시대는 일단 일단락을 짓게 됐다”면서 이란과 국제사회에 ‘불확실성’을 안겼다고 평했다. 다만 라이시 대통령의 강경 노선이 여전히 건재한 하메네이의 승인으로 이뤄졌고, 보수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는 만큼 이란의 대외 노선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 美 상원의원 “라이시 없는 세상, 더 안전” 라이시 대통령의 전임자로 ‘유화파’로 꼽히는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은 2015년 미국 등 서방 5개국과 핵합의를 맺었다. 이란이 핵개발을 자제하는 대신 서방은 이란에 각종 제재를 해제하고 경제 지원을 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란에 적대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이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2021년 1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에 이어 7개월 뒤 집권한 라이시 대통령은 그해 11월 핵합의 복원을 위한 대화 재개에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라이시 대통령이 이끄는 이란은 물밑 접촉 과정에서 합의 복원에 부정적이었다. 일각에선 이란이 이스라엘 등에 대리 공격을 강화하기 전 서방에 긴장 완화 ‘눈속임’을 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미 인터넷매체 액시오스에 따르면 라이시 대통령 사망 직전인 이달 14일에도 브렛 맥거크 백악관 중동 고문과 아브람 페일리 이란 특사는 중재국인 오만에서 회담을 나눴다. 양측 대표단이 직접 얼굴을 맞대지는 않고 오만 당국자가 양측을 오가며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미국은 회담에서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이란 당국자는 최근 몇 주간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그의 사망이 어떤 식으로든 미국과 이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 일각에서는 그가 ‘핵합의 복원의 장애물’로 작용했다면서 그의 사망을 반겼다. 야당 공화당의 대(對)이란 강경파 릭 스콧 상원의원은 19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라이시 없는 세상이 더 안전하고 더 나아졌다”고 썼다.● 하마스 “순교자” vs 이스라엘 “우리와 무관” 라이시 대통령은 중동전쟁 발발 후 하마스를 비롯해 이른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으로 불리는 친이란 무장단체 후원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스리랑카 방문 중 성명에서 “이스라엘 정권이 75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을 탄압하고 영토를 강탈해 왔다”며 “찬탈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 등은 이런 이란의 지원 속에 각각 이스라엘과 서구 민간 선박을 공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사망이 확인되자 하마스는 그를 ‘순교자’로 칭하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모범적 지도자였다”라고 애도했다. AP통신은 “라이시 대통령은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며 초강경 이미지를 구축해 왔고, 중동에서 이스라엘 견제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면서 “그의 사망으로 중동 긴장이 불가피해졌다”라고 논평했다. 그간 종종 이란 고위 인사 암살에 관여했던 이스라엘은 서둘러 선을 그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한 이스라엘 관리는 “이번 사고는 우리가 관여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현지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이스라엘 배후설’ 같은 음모론을 의식한 반응으로, 자칫 사고 원인을 둘러싼 음모론이 친이란 무장단체의 활개에 불을 붙일까 우려하는 것이다. 이란과 밀착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맞섰던 중국과 러시아는 20일 그의 사망을 애도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중국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회동한 뒤 한 달 뒤 중국의 중재로 중동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국교를 재개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라이시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 이란 국민에게는 엄청난 상실”이라며 “중국은 좋은 친구를 잃었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그를 ‘뛰어난 지도자’로 칭하며 애도 성명을 냈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에 미 정부 기밀문서 등을 게재해 간첩 혐의로 기소됐던 위키리크스 공동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52)가 미국으로 즉시 송환되는 걸 피하고 영국에 남아 항소할 수 있게 됐다. 20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런던 고등법원은 어산지가 미국 송환을 결정한 영국 정부를 상대로 항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어산지가 영국 법정에서 이의를 제기할 근거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간 어산지 측 변호사는 어산지가 호주 국적의 외국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미국에 송환될 경우 재판 등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차별받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미국 측은 “어산지의 처우를 보호하겠다”는 보장안을 법원에 제시했으나, 영국 법원은 이 내용이 충분치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에 어산지에게 영국에서의 항소권을 허용했다. 이로써 어산지는 미국 송환을 미루고 영국 내에서 추가 법정 공방을 이어갈 수 있다. 앞서 올 3월 영국 고등법원은 “미국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고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히지 않는 한 어산지를 송환할 수 없다”며 판결을 연기했다.영 BBC방송은 이날 “법정 밖에 모였던 어산지의 지지자들은 판결 소식을 듣고 크게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다”고 전했다. 어산지 법무팀에 따르면 그가 이번 소송에서 패했다면 24시간 이내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해야 했다.어산지는 2010, 2011년 미 육군 정보분석가인 첼시 매닝 일병이 빼낸 미군 기밀 문서 수십만 건을 위키리크스에 게시했다. 이에 ‘1917 스파이방지법(Espionage Act of 1917)’ 위반과 간첩 활동 등 18개 혐의로 기소됐다. 공개된 해당 문서엔 이라크전·아프가니스탄전 당시 미군 전쟁범죄, 관타나모수용소 내 인권 침해 등 미 정부의 부도덕한 민낯이 드러난 게시물이 많았다. 이후 매닝 일병에겐 징역 35년형이 선고됐다.어산지는 2012년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대사관으로 피신해 7년 동안 머물렀다. 이후 2019년 망명 허가가 취소되며 영국 경찰에 체포돼 영국 교도소에서 약 5년을 보내며 법정 투쟁을 이어왔다.영국 법원은 2021년에도 미국의 송환 요청을 거부했다. 당시 웨스트민스터 치안판사법원은 “미 교정시설의 열악한 조건에서 수감생활을 하면 정신건강이 악화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며 “어산지의 상태를 고려할 때 그를 미국으로 보내는 건 가혹하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19일(현지 시간) 헬기 추락으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64)은 2021년 8월 집권한 뒤 이란의 초(超)강경·보수 노선을 주도해왔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를 통해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루홀라 호메이니와 현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를 잇는 보수파 적자(嫡子)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하메네이 사후(死後) 최고지도자에 오를 유력 후보로 줄곧 거론되는 이유다.하메네이는 20일 성명을 통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부통령이 50일 이내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를 진행하도록 입법부, 사법부 수장과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의 사망으로 하메네이의 뒤를 이를 후계자 자리를 놓고 이란 내부가 권력투쟁에 빠져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치범 처형 주도 ‘테헤란의 도살자’1960년 시아파 성지 마슈하드에서 태어난 라이시 대통령은 10대 시절 하메네이로부터 신학을 배웠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1979년 이슬람혁명에도 참여했다. 혁명이 성공한 뒤 검사로 활동했던 그는 1988년에 정치범 5000여 명의 사형 집행을 주도해 ‘테헤란의 도살자’란 별명이 붙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전쟁 당시 친이라크 성향을 보였다는 죄목이었다. 2019년 미국은 이를 근거로 라이시 대통령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2017년 대선부터 대권에 도전했지만 당시엔 서방에 유화적인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후 2021년 대선에서 권좌에 올랐다. 이후 대외적으로는 로하니 정권의 친서방 정책을 모두 폐기하고, 내부적으로는 신정일치 노선에 반대하는 세력을 잔혹하게 탄압했다.라이시 대통령은 특히 2022년 히잡 의문사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을 때 앞장서서 관련자들을 탄압했다.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은 올 3월 총선 투표율이 역대 최저치인 41%을 기록하며 여실히 드러났다. 때문에 그의 사망이 이란 국민들의 불만을 수면 위로 불거지게 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 CNN방송은 “라이시는 손에 피를 많이 묻혀 많은 이란 국민들은 (그의 사망에) 눈물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악천후-헬기 노후 등이 추락 원인인 듯” 이란 정부는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이 확인된 뒤 20~24일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그의 사망 원인은 19일 기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다.국영 IRNA통신 등에 따르면 그가 탔던 헬기는 이날 수도 테헤란에서 약 600km 떨어진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州) 디즈마르 산악 지대에 추락했다.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이 공동으로 건설한 아제르바이잔 내 기즈갈라시댐 준공식에 참석한 뒤 귀국하던 길이었다.라이시 대통령를 비롯한 이란 정부요인들은 헬기 3대에 나눠 타고 있었는데, 그를 태운 헬기만 추락했다. 해당 헬기에는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장관과 말렉 라마티 동아제르바이잔 주지사, 조종사, 경호원, 보안책임자 등 9명이 탑승했다.현지 언론은 사고 당시 거센 비와 짙은 안개 등 악천후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나머지 2대의 탑승자들도 “탑승 당시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고를 당한 헬기는 미국산 ‘벨-212’ 기종이다. 1968년 첫 비행을 했고 이란엔 1976년경 도입됐다. 수십 년이나 된 낡은 헬기인데다, 오랜 경제 제재로 제대로 된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란 2인자’이자 대미(對美) 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64)이 19일(현지 시간)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州) 산악 지대에서 헬기 추락으로 숨졌다. 이슬람 보수 성직자 출신으로 2021년 8월 집권한 라이시 대통령은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의 사후(死後)에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럼 만큼 그의 사망이 이란 핵합의 복원에 나선 미국과 전쟁 중인 중동 정세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모흐센 만수리 부통령은 20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해당 헬기에 동승했던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장관 등 나머지 8명도 모두 사망했다. 구조에 나섰던 이란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는 헬기 추락 지점이 동아제르바이잔주의 주도 타브리즈에서 약 100㎞ 떨어진 타빌이라고 밝혔다. 라이시 대통령 일행은 노후 헬기를 타고 험준한 산악 지대를 비행하던 중 폭우와 안개 등 악천후를 만나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IRNA통신, 메흐르통신 등 이란 관영언론은 사망 소식을 전하며 라이시 대통령을 ‘순교자’로 칭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이 올 4월 최초로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지원하는 일을 주도했다. 이란 내에선 정치범 처형 등을 주도하고 히잡 의문사 반대 시위를 잔혹하게 탄압해 ‘테헤란의 도살자’로도 불렸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라이시는 3년간의 집권 동안 대리세력을 통한 서방 공격을 강화하며 이란을 더욱 명백한 미국의 적으로 만들었다”면서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중동 안팎에 불확실성을 부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긴급 구성된 이스라엘 전시 내각이 붕괴 위기를 맞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과 함께 전시 내각 투표권자 3명 중 한 명인 중도성향 국가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는 18일 “네타냐후 총리가 뚜렷한 목표 없이 강경 일변도의 정책만 고수한다면 전시 내각과 연정을 모두 탈퇴하겠다”는 취지로 일종의 ‘최후통첩’을 날렸다. 네타냐후 총리의 실각 시 차기 총리로도 거론되는 간츠 대표는 18일 TV 생중계 기자회견에서 “전시 내각이 다음 달 8일까지 6개 항목의 가자지구 통치 전후(戰後)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6개 항목은 가자지구를 통치할 미국·아랍권·팔레스타인의 공동 행정부 수립,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인정, 하마스가 억류 중인 인질의 조속한 귀환, 가자지구의 비(非)무장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국교 수립이다.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제외하면 나머지 5개 항목은 모두 네타냐후 총리가 강하게 반대하는 사안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 발발 후 줄곧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사실상 직접 통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도 부정적이다. 앞서 15일 갈란트 장관도 “가자지구를 직접 통치해야 한다는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즉 전시 내각의 투표권자 3명 중 2명이 “가자지구를 직접 통치하겠다는 총리의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이스라엘군이 17, 18일 하마스에 끌려갔던 인질 중 4구의 시신을 찾아낸 것 또한 하마스와의 협상에 미온적인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을 고조시키고 있다. 시신 중에는 지난해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당일 하마스 대원들에게 반(半)나체로 끌려가는 영상이 공개됐던 20대 여성 샤니 루크의 시신도 포함됐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극우 연정은 요지부동이다. 현지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간츠 대표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 총리가 수용하면 극우 연정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내다봤다. 네타냐후 총리보다 더 강경 노선을 고수하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 등 연정의 주요 인사는 ‘하마스 궤멸, 가자지구 직접 통치’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이스라엘군은 18일 “최근 24시간 동안 가자 전역에서 70개 목표물을 폭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17일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관할하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도 표적 공습을 감행해 무장단체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의 주요 간부를 사살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2021년 8월부터 집권 중인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64)이 탑승한 헬기가 19일(현지 시간) 아제르바이잔 국경 인근에서 경착륙(hard landing)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현장으로 구조대가 급파됐지만 자욱한 안개 등 기상 악화로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관영언론들은 사고 경위, 라이시 대통령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즉각적인 설명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매체는 헬리콥터가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강경 보수 이슬람 성직자 출신인 라이시 대통령은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가 사망할 시 후계자로 유력한 인물이다. 이란 관영 타스님통신, ISNA 등에 따르면 이날 라이시 대통령이 탄 헬기를 포함해 모두 3대의 헬기가 아제르바이잔으로 이동했다. 해당 헬기에는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장관, 말릭 라흐마티 동아제르바이잔 주지사 등 여러 정부 고위관계자 등이 탑승했다.일부 매체는 그가 탄 헬기가 추락했다고 보도했지만 메르스통신은 짙은 안개 탓에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가 비상착륙했으며 그가 자동차로 갈아타고 육로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하는 등 신병에 대한 보도가 혼선을 빚고 있다.이란 국영방송은 “대통령이 탄 헬기가 사고에 휘말려 구조대가 급히 파견됐다”고 보도했을 뿐 자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았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의 무기를 이스라엘에 지원하는 안을 미 의회에 제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14일 보도했다. 앞서 8일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전면 지상전을 실시한다면 미국의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한 것과 상반된 행보다. 이에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집권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이자 자금력이 막강한 유대계 유권자를 의식해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이스라엘 정책이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WSJ는 익명의 의회 관계자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탱크 탄약, 전술 차량, 박격 포탄 등 10억 달러의 무기를 지원하는 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라파에서의 전면 지상전을 고집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갈등이 커지는 것을 꺼리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이스라엘군은 6일 라파에 탱크를 진입시키고 이집트와 가자지구를 잇는 라파 검문소도 장악했다. 민간인 희생이 커질 것을 우려한 미국은 거세게 반발했고,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또한 8일 “이스라엘에 보낼 일부 무기의 선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다시 이스라엘 지원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유대계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13일 뉴욕타임스-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시에나대가 애리조나, 조지아, 미시간, 네바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주 등 6개 경합주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위스콘신 1곳에서만 앞섰다. 나머지 5개 주에서는 모두 바이든 대통령이 밀렸다. 특히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인 젊은 층, 무슬림 등이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지원 정책에 반발하며 지지를 철회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13일 라파에서는 인도 국적의 유엔 직원 한 명이 차량 이동 중 피격돼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15일 유엔 산하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와 하마스의 유착 의혹을 거론하며 “유엔이 하마스의 협력자”라고 주장했다. 15일 ‘나크바(대재앙)’ 76주년을 앞두고 반(反)이스라엘 여론 또한 고조되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7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지를 잃고 난민으로 전락한 사태를 뜻한다.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의 라파 전면 지상전 시도로 이미 45만 명의 주민이 라파 일대를 떠났다며 현 상황을 ‘제2 나크바’로 규정하고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14일 제76주년 건국기념일을 맞은 이스라엘이 안팎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이 장기화한 가운데 국내에서는 하마스에 강경책만 고집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아랍국 중 이스라엘에 가장 우호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집트는 이스라엘군의 라파 지상전 개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 급증 등을 이유로 외교관계 격하를 고려하고 있다. 라파 지상전을 거듭 반대해 온 미국과의 균열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건국기념일 전날인 13일 ‘현충일’(전몰장병 추모일)을 맞아 최대 도시 텔아비브 등에서는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하마스에 억류된 이스라엘 인질의 가족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사퇴와 조속한 인질 석방을 거듭 촉구했다. 일부 시위대는 네타냐후 내각의 최고 극우 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을 “쓰레기”라고 비판하며 정부에 반감을 드러냈다. 당국은 통상 현충일부터 불꽃놀이 등 다양한 축하 행사를 개최했지만 올해 대부분의 행사를 취소했다. 예루살렘 국립묘지에서 열리는 횃불 채화식도 원래 생중계했지만 올해는 녹화방송으로 대체됐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랍권에서 이스라엘에 우호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집트조차 1979년 평화조약을 맺은 지 45년 만에 외교관계 격하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을 중재해 온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는 같은 날 “라파 공격 탓에 휴전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아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완전한 승리(total victory)’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13일 단언했다. 특히 전면 지상전을 강행하다 보면 이스라엘이 2001년 9·11테러 직후 대혼란에 빠졌던 미국과 비슷한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직격탄을 날렸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또한 라파 공격 반대 의사를 거듭 밝혔다. 다만 라파에서 전면 지상전을 벌여 하마스를 궤멸시키겠다는 네타냐후 정권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중동전쟁 전과 비교하면 손님이 4분의 1 이하로 줄었어요.” 9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 도심의 맥도널드 매장. 직원 마흐무드 씨(24)는 휑한 내부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손님으로 붐빌 평일 점심때인데도 매장 안에는 단 2명의 고객만 있었다. 밖에서 보면 드나드는 사람이 없고 일부 조명도 꺼져 있어 마치 휴점 중인 듯했다.》 매장 밖에는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문구도 붙어 있었지만 들어오려는 손님을 찾아볼 수 없없다. 마흐무드 씨는 “식당 안에서 식사하려는 고객이 특히 많이 줄었다. 매장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포장을 원한다”고 털어놨다. 인근의 또 다른 미국계 패스트푸드 KFC 매장 상황도 비슷했다. 역시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에 직원들은 폐장 직전처럼 테이블 위에 의자를 올려둔 채 물걸레로 바닥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종업원 히샴 씨는 “인근의 단골 고객들도 매장을 찾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보이콧-투자철회-제재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7개월을 넘겼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이 커지면서 이처럼 중동 곳곳에서 미국 브랜드에 대한 강한 반대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까지 전차를 진입시키며 전면 지상전 가능성을 높이자 미국산 브랜드에 대한 중동 고객의 외면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 이스라엘 브랜드에 대한 거부 등을 ‘BDS(Boycott, Divest, Sanction)’라고 한다. 각각 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의 영어 단어의 머리글자다. 불매운동이 비교적 쉬운 미국산 식품, 의류, 화장품 브랜드 등의 명단은 온라인에서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공유되고 있다. 불매운동에 직면한 서구 유명 기업 및 브랜드의 광고를 찍은 유명 연예인 등이 공개 사과하거나 이들이 “나는 팔레스타인 지지자”라고 해명하는 일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 4년째 머무는 한 미국 기업 관계자는 “중동은 원래 반미(反美), 반이스라엘 여론이 강한 곳이지만 이 정도로 강하고 오래 이어지는 현상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최근 이집트 유명 축구단 ‘알아흘리’도 홍역을 치렀다. 미국 코카콜라와 후원 계약을 체결했는데 적지 않은 팬들이 “코카콜라와의 계약을 해지하지 않으면 경기를 보지 않겠다”고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단은 계약을 해지하진 않았지만 구단 홍보물에 있는 코카콜라 광고 흔적을 지웠다. 카이로의 유명 사립대 아메리칸대 역시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HP, 프랑스 보험사 악사 등과의 산학 협력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생들이 유명 서구 대기업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기금을 대는 것이나 마찬가지 행위를 보였다며 “산학 협력 중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 다른 나라의 상황도 비슷하다. 중동 전문매체 ‘미들이스트모니터’ 등에 따르면 모로코에서도 미국 스타벅스, 스페인 자라, 스웨덴 H&M 등 서구 유명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오만에서는 최고 종교지도자가 직접 “서구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은 적(適)을 정복하는 성공적 무기”라며 독려하고 있다. 친미 국가로 꼽히는 요르단에서도 이스라엘과 단교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중동 브랜드는 반사이익 이런 상황을 내심 반기는 기업들도 있다. 9일 카이로 도심의 토종 프랜차이즈 식당 겸 카페 ‘실란트로’를 방문하자 맥도널드, KFC 매장과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약 60석 매장에는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손님들이 북적였다. 줄을 서서 음식을 포장해 가려는 고객도 많았다. 이곳에서 빈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직장인 하난 씨(26)는 “중동전쟁 전이었다면 맥도널드 등으로 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근처의 다른 토종 브랜드 카페에 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산 브랜드 매장에 갔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큰일이라고 했다. 일부 기업은 손님들의 이런 심리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집트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바주카’는 지난해 10월 이후 코카콜라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곳에서 콜라를 주문하면 이집트에서 만든 ‘시나콜라’를 준다. 대부분의 손님 또한 “안 그래도 코카콜라를 마시기 싫었는데 잘됐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피자 프랜차이즈 브랜드 ‘프리모스’는 전쟁 발발 후 포장 용기 겉면에 팔레스타인 지도를 그려 넣으며 재빠르게 기회를 잡고 있다. “(요르단)강부터 (지중해)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울 것”이라는 문구도 담았다. 이 문구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전 세계 곳곳의 친팔레스타인 시위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마구잡이’ 보이콧 우려 미국 브랜드에 대한 중동의 BDS는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세운 분리 장벽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통치 세력이 되고,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중동 주요 국가에서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전쟁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다만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BDS 대상 기업의 목록, 즉 블랙리스트 게시물의 낮은 신뢰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부정확한 정보가 퍼지면서 마구잡이식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집트에서는 맥도널드 이스라엘 지사가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군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맥도널드 본사가 아닌 맥도널드와 계약을 체결한 이스라엘 현지 법인 ‘알로냘’의 결정이었다. 이에 크리스 켐프친스키 맥도널드 최고경영자(CEO)는 올 1월 “이스라엘 지사의 결정은 본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랍권의 불매운동은 잘못된 정보에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맥도널드 이집트지사 또한 “우리는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는, 이집트 국민이 운영하는 회사”라고 가세했다. 하지만 돌아선 고객들의 마음을 잡는 데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마구잡이식 불매운동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서구 브랜드라 해도 직원 대부분은 현지인이며 이들이 중동 주요국에 적지 않은 세금을 낸다는 점을 들어 “어설픈 불매운동의 피해는 중동 각국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중동 매체 ‘더뉴아랍’ 역시 “대규모 보이콧으로 중동 각국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아버지가 다국적 기업에서 재직 중이라는 대학생 하이삼 씨(21)는 “100% 이스라엘 제품, 100% 이집트 제품은 없다. 사람들이 국산으로 알고 애용하는 제품도 미국, 이스라엘 자본이 연계됐을 수 있다”며 “불매운동 과열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9일(현지 시간) “25년마다 돌아오는 가톨릭 정기 희년(禧年)이 내년에 열린다”고 공식 선포했다. 희년이란 가톨릭교회에서 신자에게 특별한 영적 은혜를 베푸는 성스러운 해를 뜻한다. 25년마다 돌아오는 정기 희년과 비정기적으로 선포되는 특별 희년이 있다. 이번 희년은 올해 12월 24일부터 시작해 2026년 1월 6일에 끝난다.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저녁 기도회를 주례하고 칙서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10쪽 분량의 칙서에서 세계 ‘빈곤의 스캔들’과 전쟁 공포를 비난하고 이주민의 권리와 많은 국가의 출산율을 높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사형제도 종식을 촉구하며 각국 정부에 수감자 사면을 요청했으며, 가난한 국가에 대한 부채 탕감도 요구했다. 교황은 “우리가 세계 평화를 위한 길을 열고자 한다면 불의의 원인을 해결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는 데 헌신해야 한다”고 밝혔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현지 시간) “25년마다 돌아오는 가톨릭 정기 희년(禧年)이 내년에 열린다”고 공식 선포했다. 희년이란 가톨릭교회에서 신자에게 특별한 영적 은혜를 베푸는 성스러운 해를 뜻한다. 25년마다 돌아오는 정기 희년과 비정기적으로 선포되는 특별 희년이 있다. 이번 희년은 올해 12월 24일부터 시작해 2026년 1월 6일에 끝난다.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베드로대성전에서 저녁 기도회를 주례하고 칙서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10쪽 분량의 칙서에서 세계 ‘빈곤의 스캔들’과 전쟁 공포를 비난하고 이주민의 권리와 많은 국가의 출산율을 높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사형제도 종식을 촉구하며 각국 정부에 수감자 사면을 요청했으며, 가난한 국가에 대한 부채 탕감도 요구했다.교황은 “우리가 세계 평화를 위한 길을 열고자 한다면 불의의 원인을 해결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는 데 헌신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톨릭교회는 1300년 보니파시오 8세 교황 때부터 희년을 시작했으며, 1475년부터 모든 세대가 최소한 한 번씩 희년을 맞을 수 있도록 25년마다 지내왔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를 전면 공격할 경우 “미국의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며 일종의 ‘최후통첩’을 날렸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후 바이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 중단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개전 후 공식·비공식적으로 100차례 이상 군사 지원을 받으며 미국에 상당히 의존해 온 이스라엘은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미국에 “무기 선적을 보류하면 하마스와의 인질 협상을 거부하겠다”며 맞섰다고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전했다. 최후통첩이 이스라엘의 강경 행보를 저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끄는 극우 연정의 주요 인사는 “지상전을 강행하지 않으면 연정을 탈퇴하겠다”며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 대학가의 중동전쟁 반대 시위로 곤혹스러운 바이든 대통령은 대규모 인명 피해가 예상되는 라파 지상전을 용납하기 어렵다. 뉴욕타임스(NYT)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76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긴밀한 안보 동맹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기로에 섰다고 평했다.● 미국산 전투기-MD로 전쟁 치르는 이 바이든 대통령은 8일 CNN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민간인이 죽어가고 있다. 그들(이스라엘군)이 라파로 진격하면 지금까지 라파와 가자 내 다른 도시를 공습하는 데 사용했던 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같은 날 상원 청문회에서 “폭발성 탄약 1회분 수송을 일시 중단했다”고 공개했다. 이스라엘은 1946∼2023년 미국으로부터 총 2160억 달러(약 280조8000억 원)어치의 군사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 기준 군수물자 수입의 7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F-35’ 스텔스 전투기를 세계 최초로 들여왔고 실제 전투에서도 처음 썼다. 또 ‘아이언돔’ ‘애로’ 등 주요 미사일방어체계(MD)도 미국과 공동 개발했다. 중동전쟁 발발 직후 미국이 1980년대부터 이스라엘에 보관해온 전략비축물자를 신속히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탄약, 포탄 제조용 부품 등을 지원받고 최근 F-15 전투기 50대 구매 계약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무기 지원이 중단되면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정치컨설팅그룹 유라시아그룹은 NYT에 “중동전쟁이 대선 캠페인과 미국의 위상에 대한 방해물인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례 없는 불만의 표시”, 영국 BBC도 “역대 가장 강력한 경고”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하마스 편드는 바이든”, 美 분열 이스라엘은 반발했다.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대사는 8일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종류의 압력은 우리 적들인 이란과 하마스, 헤즈볼라 등에 희망을 주는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에 표를 던진 미 유대인이 많은데 지금 그들은 주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1월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겨루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9일 트루스소셜에 “대학 캠퍼스를 점령한 폭도들의 편을 들었던 바이든이 정치 후원금 때문에 이제는 테러범들의 편을 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바이든은 나약하고 부패했으며 세계를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경고가 바이든 행정부에 ‘양날의 검’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BBC는 이스라엘이 미국의 경고를 거듭 무시한다면 패권국인 미국의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감소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8일 라파 검문소로부터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쪽으로 약 1.6km 이상 침투하며 지상 작전 지역을 확대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스라엘이 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탱크 등 지상군 병력을 투입하면서 줄곧 이를 만류해 온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이스라엘의 균열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정밀 폭탄의 일종인 ‘합동정밀직격탄(JDAM)’을 이스라엘에 판매하는 건에 대한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가 7일 보도했다. 이 폭탄이 라파 일대의 민간인 공격에 쓰일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폭탄은 공습 시 반경 800m 내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지녔다. 폴리티코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를 지연시킨 것은 처음이라며 “미국이 대규모 군사 원조에 대한 극적인 중단 없이 이스라엘을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개적으로 군사 지원을 끊겠다고 선언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스라엘을 압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지속할지에 대한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이 미국 무기를 사용하면서 국제법을 준수하는지를 평가한 보고서를 8일까지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에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준수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의 현 단계 탱크 진입에 대해 미국이 용납할 수 없는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7일 “검문소가 작전 대상이었지 민간인 지역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이 이스라엘을 향해 ‘레드라인’을 언급한 것 자체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에 대한 메시지를 준 것일 수 있다. 중동전쟁을 반대하는 주요 대학가의 시위로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날 워싱턴 의회에서 열린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기념 연설에서 “75년도 아니고 7개월 반이 지났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미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끔찍한 테러를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있다”고 이스라엘을 두둔했다. 이어 “물리적 공격과 기물을 파손하는 행위는 법을 어기는 일이고, 우리는 법을 수호할 것”이라며 폭력시위에 대한 경고를 보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7개월을 맞은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6일(현지 시간) ‘최후의 피란처’로 불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최남단 도시 라파에 탱크를 진입시켰다. 하루 뒤인 7일 이스라엘군은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라파 검문소의 팔레스타인 구역을 장악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은 같은 날 텔레그램으로 “라파에서 하마스 테러범을 제거하기 위한 대테러 작전을 시작했다”며 지상전 개시를 공식화했다. 이스라엘이 피란민 약 140만 명이 집결한 라파에서 대규모 공격에 나서면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대규모 인명 피해가 불가피하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6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통화에서 “라파 지상전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핵심 지지층인 극우 세력을 의식한 네타냐후 총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상군을 투입했다. 전쟁 발발 후 목표로 삼은 ‘하마스 궤멸’을 달성해 총리직 연장을 노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향후 휴전 협상에서 하마스 지도부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삼으려는 의도도 있다.● 이 “라파는 하마스의 마지막 거점” 7일 현지매체 하아레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육군 162사단, 401기갑여단, 특수부대 등은 가자지구 남부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검문소의 팔레스타인 방향 영토를 장악했다.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영상에는 이스라엘 국기를 건 탱크가 포신을 낮추면서 팔레스타인 깃발이 걸린 검문소 시설로 돌진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스라엘은 5, 6일 양일간 라파 일대에 대대적인 공습도 가했다. 이번 공격으로 최소 20명의 하마스 대원이 사망했으며 하마스 땅굴 일부도 파괴됐다고 하아레츠는 전했다. 이스라엘은 라파를 가자지구 내 하마스의 마지막 거점이라고 보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가 군사력을 재건할 수 없도록 하려면 라파 공격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A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내 다른 지역을 공격해 하마스 24개 대대 중 18개 대대가 해체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하마스가 라파 내 4개 대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재건해 공격을 이어갈 뿐만 아니라 일부 고위 지도부도 이 지역에 숨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이 라파 검문소를 하마스의 자금줄로 여겨 이곳부터 장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비롯한 상당수 하마스 간부는 이집트에서 가자로 들여오는 상품에 20%가 넘는 고율 세금을 물리고 암시장에서 밀수 수수료까지 거둬 큰돈을 벌었다. 자금줄을 끊어 하마스 지도부를 옥죄려 한다는 것이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이스라엘은 라파 검문소 장악으로 하마스가 여전히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다는 믿음을 사라지게 하려고 한다”고 진단했다. ● 장대비 속 당나귀 타고 필사의 탈출 전쟁 발발 후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남부 칸유니스 등을 거쳐 라파까지 내려와 천막을 치고 살던 140만 명은 또다시 고통스러운 피란길에 올랐다. 6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공격에 앞서 최소 10마일(약 16㎞) 밖으로 이동하라고 경고했다. 피란민이 한꺼번에 몰리며 현재 라파 외곽으로 이동하려면 택시는 최소 260달러(약 35만 원), 소형 트럭은 130달러를 줘야 하는 상황이다. 당나귀가 끄는 수레는 13달러(약 1만7000원)에 이용할 수 있지만 피란민들은 이 돈마저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특히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대부분의 도로가 가재도구 등 짐이 잔뜩 실린 트럭과 승용차 등으로 뒤엉켜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고 NYT는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라파의 알나자르병원이 가자지구에서 유일하게 암, 투석, 소아과 및 응급 치료를 제공하는 병원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병원이 정상 운영되지 않으면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6일 미 워싱턴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라파 지상전을 ‘새로운 대학살(another massacre)’로 규정하며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했다.● 美 반대에도 네타냐후 ‘마이웨이’ 바이든 행정부의 거듭된 만류에도 네타냐후 총리가 지상전을 결정한 것은 라파 공격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현직 총리 최초로 부패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 휴전 협정에 동의하는 것을 ‘하마스에 백기를 드는 것’이라고 보는 극우 연정 내 강경파의 압박을 받고 있다. AP통신은 “공격을 감행하지 않으면 극우 연정이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연정이 붕괴되면 총리직을 상실할 수 있다. 하마스가 6일 휴전 협상안을 수용하겠다고 한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네타냐후 총리가 “우리 조건에 맞지 않다”면서 라파에 탱크를 투입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번 지상군 투입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극한까지 몰아붙여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도 깔렸다. 이스라엘 소식통은 미 CNN방송에 “이번은 제한된 작전”이라면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최근 일말의 휴전 기대가 피어났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협상이 결국 ‘노 딜(No Deal·결렬)’로 끝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라파 지상전 개시가 코앞에 닥친 모양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6일 라파 지역 민간인들에게 대피를 공식 명령했으며, 이스라엘 국방부는 미국 측에 “라파 작전은 불가피하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휴전 협상이 벽에 부딪히자 곧장 지상작전 태세에 돌입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뒤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탄약 수송을 보류하며 라파전 제지에 나섰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5일 “이스라엘은 홀로 설 수 있다”며 ‘마이웨이’를 고집했다.● “라파 민간인 10만 명 우선 대피령” IDF는 6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정부 승인에 따라 라파 동부에 있는 알마와시 일대 ‘인도주의 구역’을 확대했다”며 “주민들의 해당 지역 대피를 단계적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 IDF는 이어 “이번 이동 요구는 소규모 제한적인 영역만 해당되며, 약 10만 명의 주민이 이동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라파전 지상전 돌입을 앞두고 본격적인 주민 이동에 들어간 것으로, 실제 이날 주민 수천 명이 대피를 시작했다. 요하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이날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하마스가 협상 제안을 거부하고 로켓포 등으로 공격해 우리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는 라파에서 이스라엘의 작전이 개시된다는 최후통첩”이라고 설명했다. IDF는 지상작전 돌입에 앞서 ‘인도주의 구역’으로 설정한 지역에 야전병원과 텐트, 식량, 물, 의약품 등을 대량으로 구비해 놨다. 미국이 요구한 ‘민간인 안전’을 위한 것들을 갖췄다고 보여주려는 취지다. 그럼에도 민간인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란 미국과 국제사회의 우려가 크다. 현재 라파 주변으로는 피란민이 140만 명 이상 몰려 있다. 이스라엘은 이번 휴전 협상의 결렬을 지상전 개시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4, 5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진행됐던 협상은 최대 관건인 종전 여부를 놓고 서로 대치하며 중단됐다. 하마스는 파견 대표단을 카타르 도하로 이미 철수시킨 상태다. 미국은 서둘러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카타르로 보냈지만 추가 협상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이스라엘이 5일 중동·아랍권 최대 뉴스네트워크인 알자지라방송의 자국 사무소 퇴출을 결정한 것도 협상엔 악재였다. 협상 중재국인 카타르의 지원을 받는 알자지라는 가자지구 참상을 보도해 이스라엘 정부가 줄곧 눈엣가시로 여겼다. 알자지라는 이스라엘의 결정에 “민주주의 탄압이자 범죄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5일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사이 카렘 아부 살렘 국경 출입로를 겨냥한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 협상이 결렬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군 4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당했다. ● 美, 이스라엘에 탄약 수송 보류 미 정치전문매체 액시오스는 5일 “미 당국이 지난주 이스라엘로 보낼 예정이던 미국산 탄약 수송을 보류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일시적으로라도 중단한 건 처음이다. 구체적인 중단 사유나 무기 규모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액시오스에 따르면 이번 무기 이송 보류는 라파전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이 지상전 강행을 만류하는데도 이스라엘이 개시 의사를 굽히지 않는 것에 대한 압박으로 풀이된다. 다만 미 CNN방송은 미 당국자를 인용해 “해당 선적 보류는 이스라엘의 라파 작전과 관련 없으며, 다른 선적 진행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5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 추모일 연설에서 “과거 세계 지도자들은 홀로코스트를 멍하니 방관했다. 그건 누구도 우릴 지켜줄 수 없다는 뜻”이라며 “홀로 서야 한다면 홀로 서야 한다. 우리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은 1월 27일이나, 이스라엘은 히브리력에 따라 해마다 이맘때 ‘욤 하쇼아’라는 자체 추모의 날을 가진다. 통상 이날은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 게 관례였으나,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몇 년간 강력한 정치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