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단풍국’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퀘벡까지 이어지는 800km의 메이플 로드는 세계적인 가을 단풍 명소다. 퀘벡에서 만난 단풍나무의 잎은 크기가 엄청났다. 손바닥보다 커 플라타너스 잎처럼 보일 정도. 그런데 빨갛게 떨어진 잎을 보니 캐나다 국기에 있는 바로 그 단풍잎 모양 그대로였다.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친숙해진 퀘벡주에는 로맨틱한 한류 드라마의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었다.●‘단풍국’ 캐나다의 가을캐나다 단풍에서 놀라운 점은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광활함이었다. 퀘벡주 로렌시아산맥을 가득 뒤덮은 단풍나무 잎의 물결이 차창 밖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설악산이나 내장산 단풍처럼 화려하게 불타오르진 않았지만, 은은하고도 부드럽게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캐나다의 단풍은 원래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1536년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북미 동부 해안 세인트로렌스만을 발견한 이후 퀘벡 지역은 프랑스 식민지인 ‘누벨 프랑스’로 불렸다. 그런데 18세기 영국령이 된 이후로 다른 영연방 국가들처럼 유니언잭이 그려진 국기를 써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돼 왔다. 결국 1964년에 공모해서 만들어진 국기가 흰 바탕에 빨간색 단풍잎이 그려진 ‘메이플 리프 플래그(Maple Leaf Flag)’다. 퀘벡주는 메이플 시럽의 최대 생산지다. 단풍잎은 프랑스 문화와 언어를 간직해온 퀘벡의 가장 큰 관광자원인 셈이다. 퀘벡에서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단풍 명소는 어딜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계곡과 폭포가 어우러진 단풍 계곡이다. 캐나다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캐니언 생트안’은 12억 년 전에 형성된 지질의 협곡이다. 울창한 숲과 함께 74m 높이의 바위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비경을 이루고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3곳의 출렁다리와 전망대를 오가며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단풍과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생트안협곡의 출렁다리를 건너던 중 가을비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다가 거짓말처럼 쨍하고 개었다. 옆에 있던 캐나다 청년이 계곡 위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더블 레인보(Double Rainbow)!” 청년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 보니 행운의 쌍무지개가 떠 있었다. 재빠르게 소원을 빌었다. 무지개 하나에는 가족의 건강을 빌고, 또 다른 무지개에는 전쟁 중인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하루빨리 평화가 오기를 기원했다. 두 번째 단풍 명소는 퀘벡시 올드타운 중심부에서 약 13km 떨어진 몽모랑시 폭포다. 몽모랑시강이 세인트로렌스강으로 흘러드는 하구에 있는 높이 84m, 폭 46m의 폭포다. 나이아가라보다 높이가 30m 정도 높은 거대한 규모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폭포 윗부분에는 현수교가 있다. 현수교에 올라서니 한쪽에선 거울처럼 맑은 몽모랑시 강물이 흐르고, 다른 쪽으로는 낭떠러지로 폭포가 흘러내리는 아찔한 장관이 발밑에 펼쳐진다. 폭포 물줄기 위를 집라인을 타고 날아가거나, 안전장치를 하고 암벽을 타거나, 폭포 아래까지 비옷을 입고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등 다양하게 폭포의 짜릿함을 즐길 수 있다. 세 번째로는 단풍이 바다처럼 펼쳐지는 로렌시아산맥을 전망하는 코스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1시간 반 정도 달리면 숲속 마을 몽트랑블랑이 나타난다. 스키와 골프, 하이킹, 카약, 단풍과 별 보기 등 다양한 액티비티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북미의 알프스’로 불리는 곳이다. 정상(875m)까지 곤돌라를 타면 약 15분 걸린다. 정상에 올라가면 거울처럼 맑은 트랑블랑 호수와 로렌시아산맥의 광활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근 숲속에는 단풍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로렌시아 고원의 오솔길’도 있다. 자작나무와 단풍나무가 우거진 숲속 20m 상공에 놓여 있는 덱길을 걷는다. 길의 끝에 있는 40m 높이의 타워는 6도의 경사도로 완만하게 올라갈 수 있는데, 경사로를 따라 11번 빙글빙글 돌다 보면 로렌시아산맥의 단풍 숲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퀘벡의 특산품은 바로 ‘메이플 시럽’이다. 단풍나무에서 채취하는 우리나라 고로쇠 수액처럼 메이플 나무 수액을 끓여서 만든다. 메이플 나무는 수액에 단맛이 많이 나서 ‘사탕단풍’ ‘설탕단풍’으로 불린다. 캐나다에서 디저트를 만들 때 사용되는 메이플 시럽은 100g당 260Cal로 설탕보다 칼로리가 낮고 자연스러운 단맛을 만들어낸다. 몽트랑블랑 마을에서는 캐나다인들의 겨울 간식인 ‘메이플 태피(Maple Tappy)’를 맛볼 수 있었다. 메이플 시럽을 끓여서 흰 눈 위에 뿌린 후 식으면 막대기를 꽂아 돌돌 말아서 빨아 먹는 것이다. 우리나라 달고나와 비슷한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길거리 간식이다.● 찬란하고 쓸쓸한 도깨비 언덕 퀘벡의 가을 단풍이 한국인들에게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tvN 드라마 ‘도깨비’ 덕분이다. 퀘벡 옛 시가지에 있는 프티샹플랭 거리에서는 ‘도깨비 신부’ 김고은처럼 빨간색 목도리를 두른 여성들이 인증샷을 찍는다. 공유와 김고은이 함께 걷던 ‘목 부러지는 계단’,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파는 ‘부티크 드 노엘’, 하늘에 우산이 펼쳐진 골목 등이 주요 장소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공유가 문을 열고 시공간 이동을 하던 ‘빨간 문’이다. 이 문은 원래 ‘프티샹플랭 극장’ 벽에 달린 비상구다. 빨간문을 통해 막 나온 듯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적의 한류 드라마 팬들이다. 이 거리에서 유럽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해설하던 캐나다인 가이드는 기자를 보고 “한국에서 오지 않았느냐”고 말을 걸어 왔다. “한국 드라마 ‘Goblin’(도깨비)은 퀘벡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여행객들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옵니다. 캐나다인들은 예전엔 동양 사람 구별을 어려워했는데, 저도 한류 드라마를 많이 보다 보니 한국인은 확실하게 구별할 줄 알게 됐지요.” 프티샹플랭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노을이 질 즈음 도깨비 언덕에 올랐다. 언덕 위 잔디밭에는 연인끼리 앉아 세인트로렌스 강변 언덕 위에 고성처럼 우뚝 솟은 페어몬트 르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 속에서 ‘도깨비’ 공유가 경영하는 것으로 나오는 이 호텔은 퀘벡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비밀 군사회담 ‘퀘벡회담’이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기둥에 설치된 황금빛 우체통도 드라마 팬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김고은이 편지를 보내던 로열메일 우체통은 지금도 매일 오후 1시 반에 편지를 수거해 간다고.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 앞 테라스 뒤프랑 산책길에서는 색소폰 연주자가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퀘벡 옛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성벽길은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전쟁을 벌였던 에이브러햄 평전으로 이어진다. ● 가볼 만한 곳=퀘벡시 세인트로렌스강에 있는 오를레앙섬은 단풍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프랑스의 전원마을처럼 아기자하고 예쁜 농가와 포도밭, 사과 농장, 초콜릿 가게들이 있다. 퀘벡주 남부 소도시 셔브룩에 있는 ‘OMZ레스토랑’은 오래된 성당을 개조해 만든 레스토랑이다. 이곳엔 ‘코리안 푸틴 요리’(사진)가 있다. 푸틴은 감자튀김에 치즈, 다양한 소스를 뿌려서 먹는 퀘벡의 음식. 코리안 푸틴에는 감자튀김과 치즈에 고추장, 삼겹살, 김치가 들어간다. 한류 열풍이 분 퀘벡엔 ‘일본식 푸틴’ ‘중국식 푸틴’은 없어도 ‘한국식 푸틴’은 있다.퀘벡=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남산 자락에 있었던 한양도성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신궁이 세워지고, 1960∼70년대 남산식물원 등이 만들어지면서 오랜 세월 잊혀졌다. 복원된 남산 한양성곽길은 단풍에 물든 서울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가을에 걷기 좋은 길이다. 한양도성의 평균 높이는 약 5∼8m, 전체 길이는 약 18.6km에 이른다. 조선시대에도 ‘순성(巡城)놀이’가 유행했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도성 안팎의 풍경을 감상하는 놀이였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미국 북동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캐나다 남동부 퀘벡까지 이어지는 800km의 ‘메이플 로드’는 세계적인 단풍 명소다. 캐나다의 단풍나무 잎은 손바닥보다 크다. 우리나라에서 가을에 붉게 타오르는 아기단풍과는 다르다. 캐나다 국기에 있는 단풍잎과 똑같이 생겼는데 플라타너스 잎만큼 큼직하다. 우리나라 단풍나무 고로쇠 수액처럼 메이플 나무 수액을 받아서 끓이면 메이플 시럽이 된다. 메이플은 수액에서 단맛이 많이 나서 ‘사탕단풍’ ‘설탕단풍’으로 불린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일 경북 울릉군 서면 남양리 통구미 해안에 있는 거북바위에서 머리 부분이 균열이 가면서 400여 t의 낙석이 무너져 내렸다. 새끼를 업고 있는 거북이 형상의 거북바위는 화산 활동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 낸 자연의 걸작품이다. 거북바위는 울릉도 최초의 다이빙숍이 들어설 정도로 다이빙포인트로 유명한 곳. 2년 전 거북바위 아래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했을 때 천혜의 수중 동굴과 방파제 사이로 헤엄치는 수천 마리 전갱이 떼의 환상적인 모습을 잊을 수 없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 때 번성했던 동네가 쇠락한 후 사람들이 떠나 버린 마을은 고민이 크다. 우리나라에도 강원 태백, 정선 등 한때 탄광촌으로 북적였던 도시가 폐광이 된 후 사람들이 떠나버린 도시가 많다. 일본 히로시마와 오카야마의 소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의 전통주택과 창고를 개조하고, 애니메이션과 고양이길을 활용해 명소로 다시 태어난 마을도 있었다. 우리에게도 화두인 ‘지속가능성’ ‘도시재생’의 아이디어를 만나볼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았다. 버려진 염전마을, 애니메이션과 마을 분산식 호텔 일본 히로시마의 다케하라(竹原)는 에도 시대에 소금과 사케 주조업, 대나무 죽세공품으로 번성한 세토 내해의 항구마을이다. ‘히로시마의 작은 교토’로 불릴 정도로 전통가옥이 잘 보존돼 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염전이 사라지고, 소금생산량이 대폭 줄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게 됐다. 다케하라는 에도~메이지 시대의 옛 건축물들을 잘 보존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지로 꾸몄다. ‘다케하라 미치나미 보존지구’는 식당과 커피숍, 기념품 가게, 서예 강습교실, 도예공방, 양조장 등으로 활용되는 시골 주택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고즈넉한 마을이다. 다케하라(竹原)는 대나무 숲이 유명해 전남 담양하고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다. 거리 곳곳에 대나무 공예품이 눈에 띈다. 공중전화 박스는 대나무로 장식돼 있고, 마을 수로 위에는 아치형 대나무 공예로 장식해놓아 안전과 멋스러움을 한번에 잡았다. 19세기에 개업한 사케 주조장에 있는 사카쿠라 교류관(酒蔵交流館)에서는 전통 주조장 견학과 시음, 술잔과 도자기, 수저 등 공예품 쇼핑도 즐길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타케하라가 젊은이들의 발길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TV애니메이션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영화보다는 TV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더 인기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타마유라(たまゆら)’는 바로 다케하라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 클럽 여고생들의 우정을 그린 드라마다. 다케하라 곳곳에는 이 애니메이션의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다케하라의 명소와 건물들을 그대로 실사처럼 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다케하라 거리의 끝자락에는 조그마한 사당도 나오는데,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다케하라에서 또다른 주목할만한 아이디어는 마을 분산형 숙박업소 ‘니포니아(Nipponia) 호텔’이었다. 시골의 비어 있는 고민가(古民家)를 숙소로 활용해 조성한 마을 호텔이다. 체크인과 ‘호텔 리셉션’라고 쓰여 있는 집에서 하고, 객실 A동은 이 골목에 있고, 객실 B동이나 레스토랑은 저 골목에 있는 식이다. 고객은 체크인 후에 방을 찾아가고, 식사를 하기 위해 작은 골목길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호텔 내부는 오래된 빈집을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개조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니포니아 호텔은 인구감소로 쇠락해가는 농촌마을 전체를 하나의 부티크 호텔의 세계관으로 만들어버리는 로컬 브랜딩 기업인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안동, 경주 등에서 한옥스테이, 고택스테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종갓집처럼 크고 멋진 한옥 건물에서 잠을 잘 수 있지만,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은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반면 니포니아 호텔은 한국의 고택스테이보다 겉으로 보기엔 볼 품 없는 목조주택이지만, 기업이 운영하다보니 전문적인 호텔교육을 받은 직원들의 서비스 질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니포니아 호텔은 일본 전역에서 이러한 전통 민가를 활용한 호텔 10여 곳과 함께 성, 신사, 절 등의 문화재 등을 활용한 숙박시설도 13곳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에도시대의 풍경을 담은 마을일본 오카야마현의 쿠라시키는 일본 최초의 방직공장이 있던 작은 소도시다. 시내 중심에는 청계천만한 작은 개울이 흐른다. 개울가에는 수양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고, 강물 속에는 백조가 한가롭게 놀고, 물 위에는 작은 배들이 떠다닌다. 에도 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작은 도시다. 쿠라시키 미관지구는 우리나라의 익선동 골목길처럼 2~3층으로 된 일본 전통 목조가옥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길이 이어진다. 골목길에는 바퀴 2개가 달려 있는 인력거가 다닌다. 골목길을 걸으며 헌책방과 민예품 판매장, 옷가게 등에 들어가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쿠라시키 여행의 참맛이다. 강변을 걷다보면 오하라(大原) 미술관이 보인다. 전통가옥 사이에 그리스 신전처럼 이오니아 양식으로 지어진 석조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1930년에 문을 연 일본 최초의 근대미술관이자 사립미술관이다.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를 비롯해 고갱, 마네, 모네, 마티스, 르누아르, 피카소, 칸딘스키를 비롯해 세계미술사를 관통하는 작가들의 걸작이 이 작은 미술관에 모여 있다. 미술관의 소장품만도 3500여점이 넘는다고 한다. 오하라미술관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두 친구의 깊은 우정이 있었다고 한다. 구라시키 방적(구라보·倉紡) 창업자인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1881~1943)와 그의 동갑내기 친구인 화가 고지마 토라지로(兒島虎次郞, 1881~1929). 오하라는 고지마를 5년 동안 세 번씩이나 유럽에 유학시켜 주었고, 고지마는 오하라를 위해 유럽에서 명작들을 컬렉션했다고 한다. 오하라미술관에는 고지마가 1911년 그린 ‘기모노를 입은 벨기에 여인’도 전시돼 있다. 안타깝게도 고지마는 48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인 1930년. 오하라는 친구를 기리는 마음에서 친구가 수집해온 컬렉션을 위주로 오하라 미술관을 설립했다고 한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빨간 벽돌로 된 창고건물을 만나게 된다. 1889년에 지어진 일본 최초의 방직공장이다. 현재는 ‘아이비 스퀘어(Ivy Square)’라고 불리는 서양식 호텔과 전시장, 식당가로 구성된 복합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방직공장이 있었기 때문인인지 쿠라시키에는 푸른색 질긴 면직물인 ‘데님(denim)으로 만든 패션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 있다. ’청바지 골목‘ ’데님 천국‘으로 불리는 골목이다. 일본의 상점에서는 ‘영업중’임을 표시하는 노렌을 문 앞에 걸어놓는 데, 이 곳에는 데님 소재의 푸른색 천으로 만든 노렌을 걸어놓은 곳이 많았다. 방직공장 창고 바로 앞에 있는 ‘데님 연구소’에는 실제로 미싱이 놓여 있는 작업대가 놓여 있다. 여기에서 미니어처 청바지 모양의 열쇠고리를 기념품으로 샀다. 실제 청바지처럼 스크래치, 패치워크 등의 작업이 된 모양이 무척이나 귀여웠다.현재 아이비스퀘어 전시장 별관에서는 쿠라시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마스킹테이프로 유명한 ‘카모이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쿠라시키는 요즘 ‘다이어리 꾸미기’용으로 인기가 높은 문구용품인 마스킹테이프의 발상지로도 알려진 도시다. 마스킹 테이프는 100년 전 차량에 페인트를 도색할 때 페인트가 묻지 않아야 하는 부위에 붙이는 공업용 도구로 개발됐다고 한다. 그런데 마스킹 테이프를 예쁜 인테리어 도구로 사용하고 있던 고객을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카모이 가공지는 공업용 마스킹 테이프를 문구용으로 업그레드한 브랜드를 개발하게 됐다는 스토리다. 쿠라시키의 모든 기념품 샵이나 화장품, 비누가게, 옷가게의 쇼윈도에는 ‘카모이 mt 100주년’을 알리는 깃발이 달려 있어 마스킹테이프 열렬 애호가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었다. 자전거 족과 고양이 집사의 성지일본에는 사이클 성지로 불리는 장소가 있다. 바로 ‘시마나미카이도’. 세토나이카이를 가로지르며 혼슈의 오노미치에서 시코쿠의 이마바리를 잇는 약 70km 거리의 자전거 코스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시마나미 카이도는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자전거 코스 중 하나다. 해안도로와 다리를 가로지르는 자전거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세토내해의 수천 개의 작은 섬들과 아름다운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사이클링 숙련자들은 3~4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어 전세계 자전거 족이 몰려드는 코스다. 시마나미카이도의 출발점에 있는 오노미치(尾道)의 해변창고를 개조해 만든 U2는 ‘자전거족을 위한 호텔’을 표방한다. 오노미치는 한때 해운물류의 집산지로 번성했지만, 1960년대부터 주변의 공업지역으로 사람과 회사가 빠져나가면서 도시의 매력을 잃어갔다. 약 2000㎡ 크기의 콘크리트 해운창고를 개조해 만든 U2는 호텔과 함께 레스토랑, 카페, 바, 기념품숍, 자전거 브랜드 자이언트(Giant) 판매점까지 들어와 있는 ‘사이클족을 위한 호텔 복합시설’이다.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아침먹고, 쇼핑하고, 커피와 빵과 와인, 위스키를 마시고, 자전거 수리도 할 수 있다. 오노미치에서는 센코지산 정상의 전망대까지 로프웨이가 설치돼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세토내해의 섬들과 바다,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내려올 때는 ‘문학의 길’로 꾸며진 산길로 걸어내려오는 것이 좋다. 산길을 걷다보면 텐네이지 삼중탑과 우시토라 신사까지 약 200m 구간에 ‘고양이 오솔길(猫の細道)’가 나온다. 오솔길에는 차돌 위에 고양이 얼굴이 그려넣은 ‘복돌 고양이(福石猫)’가 계단과 담장, 풀숲 곳곳에 숨어 있다. 실제 고양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 없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예술가 소노야마 슌지(園山春二)가 1998년부터 돌을 색칠해 만든 고양이 오브제다. 예술가는 담벼락이나 길바닥의 시멘트가 갈라진 틈의 모양을 그대로 이용해 고양이의 몸통이나 얼굴, 발바닥을 그려넣었습니다. 이 길에서는 실제 고양이들도 만나볼 수 있다. 한낮의 고양이들은 관광객도 아는 체 하지 않고 늘어져 잠을 자기에 바쁘다. 예쁜 복돌 고양이가 놓여 있는 ‘고양이 오솔길’은 고양이 집사들에게 꼭 한번 와보고 싶은 성지가 됐다. 사람들이 떠났던 도심의 산동네에 활기가 생겼고, 빈집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나 카페, 공방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오노미치의 고양이 길은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 CF에도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다. 오노미치 시내 카페거리에도 고양이 캐릭터를 활용한 카페와 기념품 숍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은다. 히로시마·오카야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 때 번성했던 동네가 쇠락한 후 사람들이 떠나 버린 마을은 고민이 크다. 우리나라에도 강원 태백, 정선 등 한때 탄광촌으로 북적였던 도시가 폐광이 된 후 사람들이 떠나버린 도시가 많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이 추천한 주고쿠 지방의 히로시마와 오카야마의 소도시 명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의 전통주택과 창고를 개조하고, 애니메이션과 고양이길을 활용해 명소로 다시 태어난 마을도 있었다. 우리에게도 화두인 ‘지속가능성’ ‘도시재생’의 아이디어를 만나볼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았다.버려진 염전마을, 애니메이션과 마을 분산식 호텔 일본 히로시마의 다케하라(竹原)는 에도 시대에 소금과 사케 주조업, 대나무 죽세공품으로 번성한 세토 내해의 항구마을이다. ‘히로시마의 작은 교토’로 불릴 정도로 전통가옥이 잘 보존돼 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염전이 사라지고, 소금생산량이 대폭 줄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게 됐다.다케하라는 에도~메이지 시대의 옛 건축물들을 잘 보존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지로 꾸몄다. ‘다케하라 미치나미 보존지구’는 식당과 커피숍, 기념품 가게, 서예 강습교실, 도예공방, 양조장 등으로 활용되는 시골 주택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고즈넉한 마을이다.다케하라(竹原)는 대나무 숲이 유명해 전남 담양하고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다. 거리 곳곳에 대나무 공예품이 눈에 띈다. 공중전화 박스는 대나무로 장식돼 있고, 마을 수로 위에는 아치형 대나무 공예로 장식해놓아 안전과 멋스러움을 한번에 잡았다.19세기에 개업한 사케 주조장에 있는 사카쿠라 교류관(酒蔵交流館)에서는 전통 주조장 견학과 시음, 술잔과 도자기, 수저 등 공예품 쇼핑도 즐길 수 있다.흥미로운 점은 타케하라가 젊은이들의 발길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TV애니메이션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영화보다는 TV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더 인기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타마유라(たまゆら)’는 바로 다케하라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 클럽 여고생들의 우정을 그린 드라마다.다케하라 곳곳에는 이 애니메이션의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다케하라의 명소와 건물들을 그대로 실사처럼 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다케하라 거리의 끝자락에는 조그마한 사당도 나오는데,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다케하라에서 또다른 주목할만한 아이디어는 마을 분산형 숙박업소 ‘니포니아(Nipponia) 호텔’이었다. 시골의 비어 있는 고민가(古民家)를 숙소로 활용해 조성한 마을 호텔이다. 체크인과 ‘호텔 리셉션’라고 쓰여 있는 집에서 하고, 객실 A동은 이 골목에 있고, 객실 B동이나 레스토랑은 저 골목에 있는 식이다.고객은 체크인 후에 방을 찾아가고, 식사를 하기 위해 작은 골목길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호텔 내부는 오래된 빈집을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개조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니포니아 호텔은 인구감소로 쇠락해가는 농촌마을 전체를 하나의 부티크 호텔의 세계관으로 만들어버리는 로컬 브랜딩 기업인 셈이다.우리나라에도 안동, 경주 등에서 한옥스테이, 고택스테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종갓집처럼 크고 멋진 한옥 건물에서 잠을 잘 수 있지만,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은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반면 니포니아 호텔은 한국의 고택스테이보다 겉으로 보기엔 볼 품 없는 목조주택이지만, 기업이 운영하다보니 전문적인 호텔교육을 받은 직원들의 서비스 질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니포니아 호텔은 일본 전역에서 이러한 전통 민가를 활용한 호텔 10여 곳과 함께 성, 신사, 절 등의 문화재 등을 활용한 숙박시설도 13곳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에도시대의 풍경을 담은 마을일본 오카야마현의 쿠라시키는 일본 최초의 방직공장이 있던 작은 소도시다. 시내 중심에는 청계천만한 작은 개울이 흐른다. 개울가에는 수양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고, 강물 속에는 백조가 한가롭게 놀고, 물 위에는 작은 배들이 떠다닌다. 에도 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작은 도시다.쿠라시키 미관지구는 우리나라의 익선동 골목길처럼 2~3층으로 된 일본 전통 목조가옥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길이 이어진다. 골목길에는 바퀴 2개가 달려 있는 인력거가 다닌다. 골목길을 걸으며 헌책방과 민예품 판매장, 옷가게 등에 들어가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쿠라시키 여행의 참맛이다.강변을 걷다보면 오하라(大原) 미술관이 보인다. 전통가옥 사이에 그리스 신전처럼 이오니아 양식으로 지어진 석조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1930년에 문을 연 일본 최초의 근대미술관이자 사립미술관이다.엘 그레코의 ‘수태고지’를 비롯해 고갱, 마네, 모네, 마티스, 르누아르, 피카소, 칸딘스키를 비롯해 세계미술사를 관통하는 작가들의 걸작이 이 작은 미술관에 모여 있다. 미술관의 소장품만도 3500여점이 넘는다고 한다.오하라미술관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두 친구의 깊은 우정이 있었다고 한다. 구라시키 방적(구라보·倉紡) 창업자인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1881~1943)와 그의 동갑내기 친구인 화가 고지마 토라지로(兒島虎次郞, 1881~1929). 오하라는 고지마를 5년 동안 세 번씩이나 유럽에 유학시켜 주었고, 고지마는 오하라를 위해 유럽에서 명작들을 컬렉션했다고 한다. 오하라미술관에는 고지마가 1911년 그린 ‘기모노를 입은 벨기에 여인’도 전시돼 있다. 안타깝게도 고지마는 48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인 1930년. 오하라는 친구를 기리는 마음에서 친구가 수집해온 컬렉션을 위주로 오하라 미술관을 설립했다고 한다.골목길을 걷다보면 빨간 벽돌로 된 창고건물을 만나게 된다. 1889년에 지어진 일본 최초의 방직공장이다. 현재는 ‘아이비 스퀘어(Ivy Square)’라고 불리는 서양식 호텔과 전시장, 식당가로 구성된 복합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방직공장이 있었기 때문인인지 쿠라시키에는 푸른색 질긴 면직물인 ‘데님(denim)으로 만든 패션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 있다. ’청바지 골목‘ ’데님 천국‘으로 불리는 골목이다. 일본의 상점에서는 ‘영업중’임을 표시하는 노렌을 문 앞에 걸어놓는 데, 이 곳에는 데님 소재의 푸른색 천으로 만든 노렌을 걸어놓은 곳이 많았다.방직공장 창고 바로 앞에 있는 ‘데님 연구소’에는 실제로 미싱이 놓여 있는 작업대가 놓여 있다. 여기에서 미니어처 청바지 모양의 열쇠고리를 기념품으로 샀다. 실제 청바지처럼 스크래치, 패치워크 등의 작업이 된 모양이 무척이나 귀여웠다.현재 아이비스퀘어 전시장 별관에서는 쿠라시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마스킹테이프로 유명한 ‘카모이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쿠라시키는 요즘 ‘다이어리 꾸미기’용으로 인기가 높은 문구용품인 마스킹테이프의 발상지로도 알려진 도시다. 마스킹 테이프는 100년 전 차량에 페인트를 도색할 때 페인트가 묻지 않아야 하는 부위에 붙이는 공업용 도구로 개발됐다고 한다.그런데 마스킹 테이프를 예쁜 인테리어 도구로 사용하고 있던 고객을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카모이 가공지는 공업용 마스킹 테이프를 문구용으로 업그레드한 브랜드를 개발하게 됐다는 스토리다. 쿠라시키의 모든 기념품 샵이나 화장품, 비누가게, 옷가게의 쇼윈도에는 ‘카모이 mt 100주년’을 알리는 깃발이 달려 있어 마스킹테이프 열렬 애호가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었다.자전거 족과 고양이 집사의 성지일본에는 사이클 성지로 불리는 장소가 있다. 바로 ‘시마나미카이도’. 세토나이카이를 가로지르며 혼슈의 오노미치에서 시코쿠의 이마바리를 잇는 약 70km 거리의 자전거 코스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시마나미 카이도는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자전거 코스 중 하나다. 해안도로와 다리를 가로지르는 자전거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세토내해의 수천 개의 작은 섬들과 아름다운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사이클링 숙련자들은 3~4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어 전세계 자전거 족이 몰려드는 코스다.시마나미카이도의 출발점에 있는 오노미치(尾道)의 해변창고를 개조해 만든 U2는 ‘자전거족을 위한 호텔’을 표방한다. 오노미치는 한때 해운물류의 집산지로 번성했지만, 1960년대부터 주변의 공업지역으로 사람과 회사가 빠져나가면서 도시의 매력을 잃어갔다.약 2000㎡ 크기의 콘크리트 해운창고를 개조해 만든 U2는 호텔과 함께 레스토랑, 카페, 바, 기념품숍, 자전거 브랜드 자이언트(Giant) 판매점까지 들어와 있는 ‘사이클족을 위한 호텔 복합시설’이다.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아침먹고, 쇼핑하고, 커피와 빵과 와인, 위스키를 마시고, 자전거 수리도 할 수 있다.오노미치에서는 센코지산 정상의 전망대까지 로프웨이가 설치돼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세토내해의 섬들과 바다,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내려올 때는 ‘문학의 길’로 꾸며진 산길로 걸어내려오는 것이 좋다. 산길을 걷다보면 텐네이지 삼중탑과 우시토라 신사까지 약 200m 구간에 ‘고양이 오솔길(猫の細道)’가 나온다. 오솔길에는 차돌 위에 고양이 얼굴이 그려넣은 ‘복돌 고양이(福石猫)’가 계단과 담장, 풀숲 곳곳에 숨어 있다. 실제 고양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 없다.이 지역에 살고 있는 예술가 소노야마 슌지(園山春二)가 1998년부터 돌을 색칠해 만든 고양이 오브제다. 예술가는 담벼락이나 길바닥의 시멘트가 갈라진 틈의 모양을 그대로 이용해 고양이의 몸통이나 얼굴, 발바닥을 그려넣었습니다. 이 길에서는 실제 고양이들도 만나볼 수 있다. 한낮의 고양이들은 관광객도 아는 체 하지 않고 늘어져 잠을 자기에 바쁘다.예쁜 복돌 고양이가 놓여 있는 ‘고양이 오솔길’은 고양이 집사들에게 꼭 한번 와보고 싶은 성지가 됐다. 사람들이 떠났던 도심의 산동네에 활기가 생겼고, 빈집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나 카페, 공방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오노미치의 고양이 길은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 CF에도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다. 오노미치 시내 카페거리에도 고양이 캐릭터를 활용한 카페와 기념품 숍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은다. 히로시마·오카야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때 번성했던 동네가 쇠락한 후 사람들이 떠나 버린 마을은 고민이 크다. 강원 태백, 정선 등 한때 탄광촌으로 북적였다가 폐광이 된 후 인구 감소를 겪었던 도시가 대표적. 일본정부관광국(JNTO)이 추천한 주고쿠 지방의 히로시마와 오카야마의 소도시 명소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전거길과 고양이길,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이어가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는 여행이었다. ● 에도시대의 풍경을 담은 마을일본 오카야마현의 구라시키는 일본 최초의 방직공장이 있던 작은 소도시다. 시내 중심에는 청계천만 한 작은 개울이 흐른다. 백조가 노니는 개울가에는 수양버들 나뭇가지가 늘어져 있고, 관광객을 태운 작은 배들이 떠다닌다. 그림에서만 보던 에도(江戶)시대의 풍경이 그대로 살아난 듯하다.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우리나라의 익선동 골목길처럼 일본 전통 목조가옥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길이 이어진다. 골목길에는 바퀴 2개가 달린 인력거가 다닌다. 강변을 걷다 보면 전통가옥 사이에 그리스 신전처럼 이오니아 양식으로 지어진 석조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1930년에 문을 연 일본 최초의 근대미술관이자 사립미술관인 오하라(大原) 미술관이다.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를 비롯해 고갱, 마네, 모네, 마티스, 르누아르, 피카소, 칸딘스키 등의 서양미술사 걸작들이 이 작은 미술관에 모여 있다. 오하라미술관을 세운 사람은 구라시키 방적 창업자인 오하라 마고사부로다. 그는 동갑내기 친구인 화가 고지마 도라지로를 5년 동안 유럽에 유학시켜주었는데, 두 친구가 유럽에서 서양미술의 명작들을 사들였던 이야기는 일본의 미술 컬렉션 역사에서 전설로 내려온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빨간 벽돌로 된 창고 건물도 만나게 된다. ‘아이비 스퀘어(Ivy Square)’라고 불리는 서양식 호텔과 전시장, 식당가로 구성된 복합공간이다. 원래는 1889년에 지어진 일본 최초의 방직공장이었다. 덕분에 구라시키에는 푸른색 질긴 면직물인 ‘데님’으로 만든 패션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 있어 ‘청바지 골목’ ‘데님 천국’으로 불린다. 현재 아이비스퀘어 전시장 별관에서는 마스킹테이프로 유명한 ‘가모이 mt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마스킹테이프는 젊은층 사이에서 ‘다이어리 꾸미기’용으로 인기가 높은 문구용품. 구라시키에 본사를 두고 있는 가모이는 100년 전 차량에 페인트를 도색할 때 페인트가 묻지 않아야 하는 부위에 붙이는 공업용 도구로 마스킹테이프를 개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객들이 마스킹테이프를 예쁜 인테리어 도구로 사용하고 것을 보고 문구용으로 업그레드한 4000여 종의 마스킹테이프를 개발했다는 스토리다. 구라시키의 대부분의 옷가게, 기념품숍의 쇼윈도에는 ‘가모이 mt 100주년’을 알리는 깃발이 달려 있어 마스킹테이프 열렬 애호가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었다. ● 버려진 염전마을, 마을 분산식 호텔 일본 히로시마의 다케하라(竹原)는 소금과 사케 주조업, 대나무 죽세공품으로 번성했다. ‘히로시마의 작은 교토’로 불릴 정도로 번성한 세토내해의 항구마을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염전이 사라지고, 소금 생산량이 대폭 줄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게 됐다. 다케하라의 미치나미 보존지구에는 지금도 전통가옥과 쇼렌지 절과 신사 등이 남아 있다. 대나무가 유명한 마을이라서 그런지 공중전화 박스는 대나무로 장식돼 있고, 수로 위에는 아치형 대나무 공예가 장식돼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소도시 마을이다. 꽃 모양의 바람개비가 돌고 있는 골목길에서는 전통 주조장에서 시음하고, 술잔과 수저 인형 등 민속 공예품 쇼핑도 즐길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다케하라가 젊은이들의 발길을 불러오기 위해 TV애니메이션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일본 젊은층에겐 영화보다 TV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더 인기이기 때문이다. 다케하라에는 여고생 사진부원들의 우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다마유라(たまゆら)’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는데, 이 마을의 명소와 건물들이 실사처럼 담겨 있다. 보존지구 끝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사당은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다케하라에서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아이디어는 마을 분산형 숙박업소 ‘니포니아(Nipponia) 호텔’이다. 시골의 비어 있는 고민가(古民家)를 숙소로 활용해 조성한 마을 호텔이다. 체크인은 ‘호텔 리셉션’으로 쓰이는 집에서 하고, 객실 A동은 이 골목에 있고, 객실 B동이나 레스토랑은 저 골목에 있는 식이다. 고객은 체크인 후에 방을 찾아가고, 식사를 하기 위해 작은 골목길을 찾아다니며 독특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호텔 내부는 오래된 민가를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개조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니포니아 호텔은 인구 감소로 쇠락해가는 농촌마을 전체를 하나의 부티크 호텔의 세계관으로 만들어버리는 로컬 브랜딩 기업인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경북 안동, 경주 등에서 한옥스테이, 고택스테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종갓집처럼 크고 멋진 한옥 건물에서 잠을 잘 수 있지만,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반면 니포니아 호텔은 기업이 운영하다 보니 전문적인 호텔 교육을 받은 직원들의 리셉션이나 레스토랑의 고객 서비스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니포니아 호텔은 일본 전역에서 오래된 민가를 활용한 호텔 10여 곳과 함께 성, 신사, 절 등의 문화재 등을 활용한 숙박시설도 13곳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 자전거족과 고양이 집사의 성지일본에는 사이클 성지로 불리는 장소가 있다. 바로 세토내해의 8개 다리를 가로질러 달릴 수 있는 ‘시마나미카이도(しまなみ海道)’다. 혼슈의 오노미치에서 시코쿠의 이마바리까지 약 70km 거리의 자전거 코스다. 세토내해의 수천 개의 작은 섬과 아름다운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자전거 코스 중 하나로, 사이클링 숙련자들은 3∼4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어 전 세계 사이클 마니아들이 찾아온다. 시마나미카이도의 출발점에 있는 오노미치(尾道)에는 해변 창고를 개조해 만든 자전거족 전용 호텔 U2가 있다. 오노미치도 한때 해운 물류의 집산지로 번성했지만, 1960년대부터 주변 공업지역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도시의 매력을 잃어갔다. 약 2000㎡ 크기의 콘크리트 해운창고를 이용해 만든 U2에는 호텔과 함께 레스토랑, 카페, 바, 기념품숍 등이 있다. 호텔 방에 자전거를 걸어놓고 잠을 자고, 아침 먹고, 쇼핑하고, 와인과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복합공간이다. 자전거 브랜드 자이언트(Giant) 판매점도 있어 자전거 부품 수리도 할 수 있다. 오노미치에 들렀다면 로프웨이를 타고 센코지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세토내해의 섬들과 바다, 도시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내려올 때는 ‘문학의 길’로 꾸며진 산길로 걸어 내려오는 것이 좋다. 하산길 막바지에 사진 명소인 덴네이지 삼중탑이 나오는데, 이곳부터 우시토라 신사까지 약 200m 구간이 유명한 ‘고양이 오솔길(猫の細道)’이다. 이 길에는 예술가 소노야마 슌지(園山春二)가 1998년부터 돌을 색칠해 만든 ‘복돌 고양이(福石猫)’가 계단과 담장, 풀숲 곳곳에 숨어 있다. 실제 고양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예술가는 담벼락 시멘트가 갈라진 틈의 모양을 그대로 이용해 고양이의 몸통이나 얼굴, 발바닥도 그려 넣었다. 예쁜 복돌 고양이가 놓여 있는 ‘고양이 오솔길’은 고양이 집사들에게 꼭 한번 와보고 싶은 성지가 됐다. 사람들이 떠났던 도심의 산동네에 활기가 생겼고, 빈집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나 카페, 공방들에는 고양이 캐릭터를 활용한 기념품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은다.일본 히로시마·오카야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본 히로시마현 남동부 오노미치시는 일본 세토내해의 오랜 역사를 가진 관광도시입니다.일본에는 토끼섬, 고양이섬처럼 특정 동물이 많이 살고 있는 섬을 동물캐릭터로 꾸며 관광지로 만든 곳이 많은데요. 오노미치의 명물 중의 하나는 바로 고양이입니다. 오노미치의 ‘고양이 길’은 한 예술가의 노력으로 쇠락한 산동네 마을이 일약 전국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사례입니다. 센코지산 텐네이지(天寧寺) 삼중탑(三重塔)에서 우시토라 신사(艮神社)까지 200m 정도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은 ‘네코노호소미치(猫の細道·고양이 오솔길)’로 불립니다. 차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고 돌계단이 많은 급경사 골목길에 가장 자유롭게 활보하는 주인공은 바로 고양이입니다. 고양이 오솔길(Cat Alley) 입구에는 둥그런 차돌 위에 고양이 얼굴이 그려진 자그마한 신사가 있습니다. 오코미치에 살고 있는 예술가 소노야마 슌지(園山春二)가 둥근 차돌에 고양이의 얼굴을 그려넣은 ‘후쿠이시네코(福石猫·복돌 고양이)’입니다.빨간색 노란색으로 그려진 복돌 고양이는 계단과 담장, 풀숲 곳곳에 숨어 있는데요. 실제 고양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 없습니다. 특히 예술가는 담벼락이나 길바닥의 시멘트가 갈라진 틈의 모양을 그대로 이용해 고양이의 몸통이나 얼굴, 발바닥을 그려넣었습니다. 통영의 동피랑이나 동해 묵호 마을 등에 그려진 우리나라 동네 벽화는 담장을 가득히 페인트를 칠해놓고 빈틈없이 그림을 그립니다. 때로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취까지 해칠 정도로 가득 그려 있는 벽화는 공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노미치의 고양이 오솔길에 그려진 복돌 고양이는 지붕 밑, 나무 밑, 우물가에 조그맣게 숨겨진 고양이를 찾는 재미가 여행객을 웃음짓게 합니다. “카와이(귀여워)~”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는데요. 이 길에서는 실제로 고양이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더 많았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숫자가 줄었다네요. 이 곳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있어도 전혀 위축되거나 피하지 않고 느긋하게 관심을 즐깁니다. 한낮의 고양이들은 관광객도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잠을 자기에 바쁩니다. 길 한복판에서, 담장 위에서 세상 귀찮다는 듯 늘어져 있습니다. 고양이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저렇게 아무런 걱정없이 게으름과 여유를 만끽하는 고양이가 부럽기 때문이 아닐까요. 복돌 고양이를 그린 소노야마 슌지는 오노미치시에 살고 있는 고양이 그림 전문 작가라고 합니다. 그는 원래 ‘손 흔드는 고양이’, ‘복 고양이’로 불리는 ‘마네키네코’ 그림 작가입니다. 1998년부터 돌을 색칠해 만든 고양이 오브제인 ‘후쿠이시네코(福石猫, 복을 주는 돌 고양이)’를 만들어 놓기 시작하면서 이 좁은 골목은 ‘고양이 길’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고, 예쁜 복돌 고양이가 놓여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양이 집사들에겐 꼭 한번 와보고 싶어하는 성지가 되었죠. 사람들이 떠났던 도심의 산동네에 활기가 생겼습니다. 빈집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나 카페, 공방들도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텅비었던 동네를 고양이들이 살린 셈입니다. 오노미치 기찻길 옆에는 고양이 캐릭터가 있는 카페와 기념품숖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노미치의 고양이 길은 일본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 CF에도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노미치의 고양이 골목길은 우시토라(艮) 신사의 동쪽에서 텐네지(天寧寺) 삼중탑까지 이어지는 약 200미터의 좁은 골목길입니다. 우시토라 신사 입구에서 철길을 건너서 텐네지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만, 시간이 있다면먼저 로프웨이를 타고 센코지산 정상 전망대에 오른 뒤 걸어서 산책삼아 내려오면서 고양이들을 만나는 것을 추천합니다. 오노미치=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역 바로 앞에는 기하학적 모양의 컬러풀한 도형으로 꾸며진 건물이 있다. 동그라미와 수많은 빗금, 네모, 세모 등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져 삼성동 코엑스 앞 대로에 단연 눈에 띄는 건축물인데요. 바로 현대산업개발의 지주회사 HDC 본사가 있는 아이파크타워다.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어울릴 것 같은 이 건물 1층으로 들어가면 뜻밖에도 음악홀이 자리잡고 있다. 2008년 개관한 ‘포니정홀(Pony Chung Hall)’이다. 로비에는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국내에서 생산한 포니자동차의 역사를 담은 상설전시물도 있다. 포니정홀이라는 이름은 포니자동차의 신화를 일궈낸 현대산업개발(HDC)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영문이름인 ‘포니정’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대기업 본사 건물 로비에 있는 음악홀 중에서는 단연 서울 광화문 새문안로에 있던 ‘금호아트홀’이 유명했다. 클래식 애호가로 유명했던 고 박성용 전 금호그룹 회장의 지원아래 2000년 개관한 이래 19년 동안 손열음, 김선욱, 조성진, 선우예권 등 수많은 스타 연주자들을 배출해낸 실내악 음악홀이었다. 그러나 금호그룹이 본사건물을 매각하면서 2019년 4월 폐관돼 클래식팬들에게 아쉬움을 전했다. 포니정홀을 개관한 주인공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HDC) 회장이다. 정 회장은 2019년부터 포니정홀의 운영을 클래식 음악 전문가에게 맡겨왔다. 대전과 제주 등에서 클래식 전문 음악살롱을 운영해온 사단법인 클라라하우스의 유혁준 대표(음악칼럼니스트)다. 교통이 편리한 대기업 로비에 있는 포니정홀이 기존의 콘서트홀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하이엔드 오디오를 감상할 수 있는 첨단 오디오/영상(AV)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60석 규모의 홀에서 평소에는 클래식 음악과 영화, 미술 등 인문학 강연이 열리고, 정기적으로 스타 연주자들을 초청해 하우스 콘서트도 개최한다. 포니정홀 입구에 있는 육중한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대 위에 올려진 대형 스피커와 앰프, 영상시스템이 눈에 띈다. 아날로그 LP에서 4K 블루레이로 공연실황을 감상할 수 있는 5만 여장의 음반과 블루레이 등 다양한 소스를 갖추고 있다. 우선 무대 위에 놓여진 프랑스의 하이엔드 앰프와 스피커가 주목을 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스피커브린대 ‘포칼’의 플래그십 스피커 ‘그랜드 유토피아’(Focal Grand Utopia 3EM)와 프랑스 드비알레(Devialet)의 플래그십 앰프 ‘1000Pro Dual’의 조합은 대형 공간도 충분히 울리면서도 우아한 사운드를 재생한다. 특히 공연장르에 따라 잔향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개폐식 잔향가변장치가 벽면에 설치돼 울림과 반향을 자동조절할 수 있다. 이렇듯 첨단 음향홀에 설치된 AV시스템이기 때문에 현장의 연주를 듣는 것처럼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음악을 재생해낸다. 정면에는 220인치 스튜어트 스크린이 걸려 있고, 레이저 프로젝터(벤큐 LK970)를 통해 4K화질의 영상이 재현된다. 영화관 만큼 세밀하고 고품질의 화면이다.이 영상과 스피커를 통해 오페라와 콘서트 실황을 보면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다. 또한 음악영화를 볼 경우에도 생생화 화면과 고품질의 음향효과 때문에 영화관에서 보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혼자 집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함께 모여 음악을 들으면 마치 공연장에서 실연을 보는 것처럼 집중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공연장과 같은 완벽한 음향으로 스피커에서, 스크린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악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여기에 간단한 해설만 곁들여주면 클래식 초보자라 해도 몰입이 가능합니다.” (유혁준 클라라하우스 대표)유 대표는 매주 수요일 오전과 저녁에 두차례에 걸쳐 포니정홀에서 ‘유혁준의 음악이야기’를 강의한다. 해마다 직접 방문한 ‘잘츠부르크 축제’ ‘루체른 페스티벌’ 등 유럽의 여러 클래식 공연장과 축제 이야기도 펼쳐낸다. 평소 일간지와 음악전문잡지 등에 진지한 음악 평을 쓰는 칼럼니스트지만, 포니정홀에서 만큼은 말보다는 좋은 곡을 우수한 음향으로 들려주는 클래식 음악 디제이 역할에 충실한다. 구수한 경북 사투리를 섞어서 진행하는 그의 클래식 음악이야기는 한순간도 지루하거나 졸립지가 않다. 평생 모아온 클래식 음반 뿐 아니라 팝, 재즈, 록음악, 가요 LP를 활용해 장르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음악을 비교 감상하기 때문에 해 누구든 즐길 수 있는 강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가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해설하는 장면은 이렇다. 우선 1막에서 비올레타가 부르는 ‘아, 그이였던가… 언제나 자유롭게’를 에디타 그루베로바가 부르는 LP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영상에 가사를 띄워 함께 감상한다. 그리고는 호주 출신의 팝가수 시아(Sia)의 ‘샹들리에(Chandelier)’를 LP와 뮤직비디오로 이어 듣고 보는 순서다. 유 대표는 “약물과 알콜중독, 우울증과 자살시도를 겪었던 시아의 ‘샹들리에’의 노래는 비올렛타의 아리아와 가사도 너무도 비슷하고, 음악적 흐름이 같다”고 말한다. 대중음악도 강력한 비트의 반주만 다를 뿐, 클래식 음악과 동일한 예술적 감흥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한 그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의 2악장을 들려주고, 이 선율을 노래하는 루이스 터커의 ‘Midnight Blue’를 1985년 당시의 LP음반으로 틀어주기도 한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을 감상하고,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LP음반으로 듣는다. 아델의 ‘Rolling in the Deep’의 가사를 해석하고, 로열 앨버트홀에서의 라이브실황을 함께 감상한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1991년 오리지널 LP음반으로 강의를 시작하고, 케빈컨의 ‘Through the Arbor’을 강의 마지막곡으로 선곡한다. 경인방송 라디오에서 클래식 전문 PD와 작가로 일했던 그는 강연에서도 하나의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스토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음악의 선곡을 중요시한다. 매년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체코 등 유럽 음악여행을 떠나는 유 대표는 특히 러시아는 30여 차례 방문했으며, KBS FM을 통해 8시간 러시아음악 특집방송을 한 러시아 음악 전문가이기도 하다. 특히 아날로그 LP 사운드는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1950년대 60년대 모노로 녹음된 초반을 감상하면 요즘 고음질 디지털 사운드와는 다른 해상력이 좋고, 부드럽고, 실연에 근접한 사운드가 재생된다. 2016년부터 매월 둘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아날로그 LP음반 감상회는 전국에서 LP사운드 애호가들이 찾아올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쉬었음에도 다음달 14일이면 65회 LP음반 감상회가 열릴 예정이다. 도심 속 살롱문화강남 한 복판에 있는 포니정홀은 도심 속 ‘살롱 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르네상스기에 생겨나 20세기까지 이어졌던 유럽의 살롱은 유럽의 정신을 상징하고, 여성 해방의 시험무대였습니다. 특히 19세기에는 ‘문학살롱’의 범주를 벗어나 음악이 결합해 숱한 살롱에서 음악회와 토론회, 세미나가 이뤄졌습니다. ‘살로니에르’라 불리는 당시 살롱 여성들에 의해 예술의 소비가 진행되고 발전해갔음을 알 수 있죠. 쇼팽이 조르주 상드와 살롱 ‘살 플레옐’에서 사랑과 연주를 함께 했고, 푸시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문학카페’에서 예술을 나눴습니다. 클라라하우스와 포니정홀은 19세기 유럽의 살롱의 긍정적인 면을 이어받아 우리나라에 맞게 적용하려고 합니다.” 포니정홀은 정상급 연주자를 초청하는 기획공연을 펼쳐왔다. 큰 공연장과 달리 60석 규모의 살롱에서 연주자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실연은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유혁준 대표의 해설을 곁들인 살롱 음악회는 19세기 유럽의 살롱을 연상케 한다. 올해는 10월5일 아벨 콰르텟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10회에 걸쳐 ‘2023~2024 클래식 시리즈’를 자체 기획공연으로 펼친다. 소프라노 임선혜, 테너 김세일, 피아니스트 손민수, 임주희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연주자들을 초청했다.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은 현악4중주단 ‘아벨콰르텟’은 9월8일 첫 음반을 소니클래시컬에서 출시했다. 아벨 콰르텟은 10월5일 하이든 프로그램으로 포니정홀 클래식 시리즈 문을 연다. 현재 영국에서 영국 작곡가에 흠뻑 빠져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은 11월21일 엘가와 본 윌리엄스, 브리튼의 걸작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소프라노 임선혜는 12월27일 번스타인 앙상블과 함께 송년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달콤한 노래와 영화, 뮤지컬까지 아우른다.목관 오중주단 ‘뷔에르 앙상블’은 내년 1월23일 목관악기의 수수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2024년을 시작한다. 내년 3월19일에는 젊고 패기 있는 아레테 사중주단이 봄을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슈만과 클라라를 위해 작곡한 ‘시인의 사랑’은 박유신이 첼로로 노래한다(5월21일). 피아니스트 임주희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쇼팽의 피아노 작품으로만 무대를 꾸민다(7월16일). 2024년 가을은 김홍박의 호른 음반 발매 기념 리사이틀(9월30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스승이기도 한 음악가 손민수의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전곡 연주(11월12일), 테너 김세일의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전곡(12월17일)도 예정돼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창립자인 로이 파렐과 시드니 칸쵸는 1946년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중국에 항공화물을 운송했습니다. 사명인 ‘캐세이 퍼시픽’은 언젠가는 태평양을 건너 중국에서 미국까지 사람과 화물을 싣고 날아가겠다는 원대한 꿈에 나온 이름입니다. ” (도널드 모리스 캐세이퍼시픽항공 한국지사장)1960년 한국에 취항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Cathay Pacific) 항공이 올해 창립 77주년을 맞았다. 캐세이는 홍콩을 거점으로 하는 영국계 항공사다. 캐세이라는 이름은 ‘동방견문록’의 저자인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지칭하면서 사용한 명칭이다. 거란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중국의 명칭인 카타이를 영문으로 표기한 이름으로, 특히 영국에서 중국을 지칭할 때 많이 사용돼 왔다.미국인 로이 파렐(Roy Farrell)과 호주인 시드니 칸쵸는 1946년 9월24일 홍콩에서 ‘벳시’(Betsy)라는 별명을 가진 더글라스 DC-3 항공기 한 대로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창립했다. 1949년 중국에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돼자 많은 난민들이 홍콩으로 몰려왔다. 당시 로이 파렐의 고향인 미국까지 승객과 화물을 운송하겠다는 포부를 담아 ‘퍼시픽(태평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1950년대 초반에 영국이 중공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홍콩의 지위가 중국 대륙의 창구가 되어 캐세이퍼시픽항공의 사업은 급속히 확대하게 된다. 승객수의 급격한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대형 더글러스 DC-4와 더글러스 DC-6를 도입했고, 스와이어 그룹의 자본을 받아 전 세계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홍콩국제공항을 허브공항으로 하면서 코드 셰어를 포함해 전세계 250여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는 프리미엄 항공사로 발전했다.캐세이퍼시픽항공은 26일 오후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열린 창립 77주년 기념식에서 여행과 항공, 화물과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마스터 브랜드’ 캐세이(Cathay)로 거듭난다는 비전을 발표했다.지난 8월30일 새로 한국지사장에 부임한 도널드 모리스 지사장은 이날 기념식에서 “‘마스터 브랜드’ 캐세이 브랜드를 전 세계로 확대하고, 최고 수준의 항공과 화물 서비스를 포함해 저비용항공사(LCC)와 라이프스타일까지 포함한 고품격 종합 여행 서비스로 거듭나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이에 따라 앞으로 기존의 캐세이퍼시픽항공은 마스터 브랜드 캐세이 내부의 항공 브랜드로 유지되며, 캐세이의 라이프스타일 서비스에는 호텔, 쇼핑, 다이닝, 제휴카드까지 포함된다. 그는 또 캐세이의 새로운 브랜드 캠페인인 ‘Feels Good to Move’와 내년 2분기부터 론칭할 새로운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인 ‘아리아’를 소개했다.“제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20년 전인 2002년 월드컵 때였습니다. 시청앞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함께 외쳤지요. 제 고향인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 덕분에 한국과 네덜란드가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지던 순간이었습니다.”네덜란드 국적의 도널드 모리스 신임 한국 지사장은 여행 및 관광산업에서 약 15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전문가이다. 2015년부터 캐세이퍼시픽에 합류해 홍콩 본사에서 기내 서비스 및 항공 운항 전반을 담당했던 그는 2021년부터는 캐세이퍼시픽 필리핀 지사장으로 취임해 홍콩과 필리핀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도널드 모리스 지사장은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여행 회복이 빠른 국가 중 하나로 특히 홍콩 여행객이 많고 홍콩을 거점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수요도 커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장” 이라며 “캐세이퍼시픽을 이용하는 모든 한국 여행객들에게 차별화된 고객 중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캐세이는 창립 77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자사 홈페이지에서 특별 프로모션을 10월 6일까지 실시한다. 프로모션 기간동안 인천 출발 왕복 항공권을 구매한 캐세이 회원 중 선착순 100명에게 7만7000원 즉시 할인을 제공한다. 캐세이퍼시픽항공 홈페이지에서 캐세이 회원으로 로그인 후 항공권 검색 시 ‘CATHAY77’를 할인 코드에 입력하면 선착순으로 특별 할인을 적용받을 수 있다.또한 캐세이는 자사 카카오톡 채널에서 캐세이 회원뿐 아니라 일반 고객도 참여할 수 있는 경품 이벤트를 9월 25일부터 진행한다. 이벤트 참여 방법은 ‘캐세이퍼시픽항공’ 카카오톡 채널을 신규 추가하고 채널 내 창립 77주년 소식에서 ‘쿠폰받기’를 누르면 된다. 이벤트 당첨자 총 777명에게는 네이버페이 3000원 포인트 쿠폰을 제공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강원 오대산 월정사 입구에는 전나무 숲길이 있다. 계곡물 소리와 바람 소리, 새소리가 청명한 가을을 느끼게 하는 숲길을 걷다 보면 귀여운 다람쥐가 나타난다. 손에 잣이나 호두, 땅콩 부스러기를 올려놓으면 쪼르르 달려오는 다람쥐. 입안에 먹이를 가득 채워 넣은 볼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산사를 찾아온 관광객은 모두 야생동물의 생명을 사랑하는 불자(佛子)라고 생각해서일까. 월정사 다람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조선시대에는 민가(民家)에서도 정원을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민가는 궁궐, 관아, 사찰, 향교와 같은 공공건축물이 아닌 사적인 건축물입니다. 상류층 양반집의 정원이 있는가 하면, 의원이나 역관과 같은 중인층의 주택도 있고, 일반 서민들의 주택에서도 조그만 마당이나 뒤뜰이라도 있으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집을 지을 때는 뒷산이 아늑하게 감싸 안은 곳에 터를 잡고, 담장을 둘러 내외부의 공간을 구분합니다. 집은 건물이 지어진 채와 마당으로 이루어지죠. 마당은 될 수 있으면 밝게 비워두어 다양한 생활공간으로 활용하고, 담장 밑으로는 아름다운 나무와 꽃을 심고 돌과 연못 등의 점경물을 두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국립수목원은 9월18일부터 10월3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청에서 한국 민가정원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총망라한 전시회를 연다고 합니다. ‘삶이 깃든 자리, 민가정원을 만나다’는 전시회입니다. 선조들이 민가정원을 가꾸고 삶에서 어떻게 즐겨왔는지를 북촌에서 직접 감상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국립수목원은 총 122곳의 민가 정원을 조사해 식물과 건축물의 현황을 도면화해 아카이브를 만들고, 주제별 민가정원의 식물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정원플랫폼도 시연할 예정입니다. 또한 민가 소유주 인터뷰를 통해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식물과 가옥에 얽힌 옛이야기를 공개합니다.일상이 된 정원과 식물 가꾸기민가정원에서 가꾼 식물은 대부분 유실수가 많았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꽃과 나무를 벗삼아 일상속에서 운치를 즐기기도 했지만, 다양한 유실수와 약용식물을 심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했지요. 여인들이 주로 생활한 안채 후원에는 꽃을 피우는 계단, 즉 ‘화계(花階)’를 조성했습니다. 아름다운 관상용 꽃이 피어나는 철쭉, 모란, 작약 등을 경사지에 심었고, 매화나무, 앵도나무, 석류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와 같은 과실수를 심어 열매를 얻기도 했습니다. 전라북도 남원의 죽산 박 씨 종가에는 조선 헌종기에 사당을 지은 기념으로 심은 오래된 동백나무가 있는데요. 마을에서는 혼례를 치를 때마다 이 집 정원의 동백꽃으로 혼례상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전통혼례 초례상 좌우에 사철나무, 대나무, 동백나무 등을 꽂아 장식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자연의 멋과 아름다움을 존중한 민가정원우리 선조들은 정원을 조성할 때 인위적으로 꾸미거나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연 본연의 멋과 사람에 대한 배려를 담아내려 했습니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뒷산의 소나무숲과 대나무숲이 아늑하게 집을 감싸 안고 있는 집들이 많습니다. 또한 경사지에 자리한 크고 작은 바위와 자연에서 자라난 소나무의 자태를 그대로 정원으로 끌어들인 풍경을 보면 선조들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충청남도 아산 용궁댁은 정원에 정금나무, 가침박달, 매자, 매발톱꽃 등 자생종 위주로 심었습니다. 충북 청주 고은리 고택의 경우에는 집 주변에 피어나는 야생화를 위주로 심어 자연스러운 느낌의 정원을 조성했습니다. 전라남도 장흥 죽헌고택의 경우에 안채 후원 뒤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백나무숲과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삼아서 정원을 조성했습니다. 강원도 강릉 임경당은 가옥 뒤쪽 경사면의 바위와 소나무 숲을 자연 상태 그대로 살려서 풍경으로 취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깃든 정원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살린 우리의 민가 정원에는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깃들어 있습니다. 조선 시대 건축물인 전라북도 남원 몽심재 고택의 요요정(樂樂亭)이 대표적입니다. 이곳은 하인들이 기거하던 대문채 동쪽 끝 칸에 자리한 정자와 같은 공간입니다. 그 앞에는 연꽃 향이 그윽한 지당(池塘)이 펼쳐져 있는데요. 당시 정자는 양반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신분이 낮은 하인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누리며 휴식을 취할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경상남도 밀양 청운리 안 씨 고가, 충청남도 논산 백일헌 종택, 전라남도 나주 계은 고택은 굴뚝을 낮게 만들었습니다.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지 않게 함으로써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인근 일반 백성들을 배려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전라남도 나주 홍기창 가옥은 집의 규모를 축소해 화려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구한말 일제강점기 등 수많은 외세침입으로 인해 수많은 민가들에 대한 기록이 소실됐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민가정원에 대한 연구와 기록이 시급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이에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2019년부터 정원산업기반구축 연구개발(R&D)을 통해 조선후기와 근대의 알려지지 않은 민가정원을 기록해왔습니다. 국립수목원은 일반인들에게도 정원문화 확산을 위해 연구 결과 간행물 ‘가보고 싶은 정원 100‘ 등 43종을 발간해 배포했습니다. 국립수목원 최영태 원장은 “국립수목원은 정원 관련 정책과 연구를 통해 다양한 정원 모델 조성을 위한 기초자료 구축에 힘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중국과 포르투갈의 문화가 섞인 마카오는 ‘아시아의 작은 유럽’으로 불린다. 세나도 광장의 좁은 골목을 따라 걸어가면 마카오의 랜드마크인 성바오로 성당이 나온다.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들이 설계해 35년의 오랜 공사 기간을 거쳐 1637년에 완공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35년 화재가 발생하면서 건물의 정면과 계단, 벽의 일부만을 남긴 채 모든 것이 소실됐다. 마카오에 유학했던 성 김대건 신부의 흔적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기도 북부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연천은 용암이 만들어낸 주상절리와 폭포가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또한 삼국시대부터 치열했던 세력다툼의 각축장이 됐던 곳이다. 고구려는 임진강 변에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등 10여 개의 성을 쌓았고,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릉도 연천에 있다. 임진강변 주상절리 절벽 위에 세워진 고구려성 주변엔 가을에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만발했다. 가족과 함께 서울 근교 나들이에 맞춤이다.●현무암 주상절리 협곡 재인폭포한탄강(漢灘江)은 한반도의 중서부 화산지대를 관류하는 강이다.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해 철원을 거쳐 경기 연천군 전곡읍과 미산면 사이에서 임진강을 만난다. 과거 이 지역에 화산활동이 일어나 용암이 흘러 한탄강 일대에는 수많은 협곡과 절벽이 형성됐다.한탄강 하류인 연천읍 고문리에 있는 재인폭포는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한탄강 지질공원 내에 있는 대표적인 폭포다. 제주 천지연 폭포처럼 높은 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물이 그야말로 장쾌하다. 검은빛 현무암으로 둘러싸인 깊은 소(沼)와 에머랄드빛 폭포수가 어우러져 아늑하고 신비한 느낌을 준다. 포천에 있는 비둘기낭 폭포가 비둘기 둥지처럼 아늑하다면, 연천 재인폭포는 18.5m 높이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절벽의 주상절 리가 그야말로 쭉쭉빵빵이다.재인폭포를 구경하는 방법은 세가지가 있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전망대다. 약간 비스듬한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앵글로 폭포를 둘러싼 절벽에 울리고 나오는 굉음까지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곳이다.두번째 포인트는 폭포에서 약간 떨어진 길이 80m의 출렁다리에서 감상하는 것이다. 폭포의 정면에서 공중에 떠서 보는 시각이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약간의 출렁거림을 참으면서 카메라를 쥔 손이 흔들리지 않도록 폭포를 촬영할 수 있다.출렁다리 위에서 ‘재인폭포(才人瀑布)’라는 이름의 유래를 생각해본다. 옛날에 줄타기를 잘하는 재인이 있었는데, 고을의 원님이 그의 부인을 탐했다. 원님은 재인에게 이 폭포 위에서 줄을 타는 재주를 보이게 하던 중 줄을 끊어 재인이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후 원님은 재인의 부인에게 수청을 들게 했으나, 부인은 원님의 코를 물어 뜯은 뒤 혀를 깨물고 자결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불렀고, 마을의 이름도 절개 굳은 코문이(재인의 부인)가 살았다 해서 코문리로 부르다가 후일 고문리가 되었다고 한다. 재인은 폭포를 가로지르는 외줄 위에 올랐지만, 현재의 나는 튼튼한 강철 케이블로 만들어진 다리 위에서 그의 안타까운 심정을 되새겨본다.세번째 포인트는 출렁다리를 건너서 데크길을 따라 약 300m 정도 걸어 폭포 아랫쪽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데크길 끝에서 재인폭포의 위용을 감상하고, 머리 위를 지나가는 출렁다리와 계곡 절벽을 장식하는 현무암 주상절리를 감상한다.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고, 쪼개짐이 발생해 만들어지는데 보통 5~6각형 기둥형태를 이룬다. 데크길 계단을 다시 올라오면 폭포 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약 160m 길이의 선녀탕 산책코스가 있다. 폭포의 물이 어디서 내려오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개울물이 흐르다가 폭포 직전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바로 선녀탕이다.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곳에는 ‘미래의 재인폭포, 선녀탕’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선녀탕은 재인폭포 상부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약한 곳이 먼저 침식돼 생겨진 ‘폭포호’다. 선녀탕은 현재는 작지만 지금의 재인폭포 주상절리가 오랜세월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침식되어 붕괴되면 미래의 재인폭포가 형성될 곳이다. 그 때가 되면 또다른 선녀탕이 새로운 재인폭포의 상류에 생겨날 것이다. 한탄강과 인접한 지류에 있는 재인폭포는 일반적인 폭포와 달리 평지가 움푹 내려 앉으면서 생긴 협곡에 있는 폭포다. 재인폭포는 원래 한탄강 인근에 있었는데, 점점 현무암 주상절리가 얼고 녹고를 반복하면서 침식작용으로 지반이 움푹 꺼지면서 현재 폭포의 위치는 한탄강에서 약 300m 이상 거슬러 올라간 것으로 분석된다.● 고구려성에 피어난 해바라기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한탄강과 임진강을 따라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와 폭포 등이 웅장하게 펼쳐진 현무암 협곡지역이다. 대부분의 현무암 주상절리는 바닷가에 나타나지만 이 곳의 현무암 주상절리는 강 주변에서 볼 수 있어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이다.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있는 ‘임진강 주상절리’는 임진강 최대의 주상절리다. 높이 25m, 길이 2km에 걸쳐 병풍처럼 펼쳐진 ‘임진적벽(臨津赤壁)’이 장관을 이룬다. ‘적벽’은 해 질 무렵 붉은 저녁노을이 임진강에 반사돼 수직절벽을 붉은빛으로 물들인다고도 하고, 가을이면 돌단풍이 주상절리 절벽을 붉게 물들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은 임진적벽의 아름다운 풍광을 진경산수화로 그리기도 했다.고구려는 임진강의 적벽 위에 성을 쌓기도 했다. 그 중에 임진강이 크게 굽어 흐르면서 강물의 흐름이 느려져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을 수비하는 고구려성이다. 높이 20여m 절벽 위 삼각형 모양의 땅에 지어진 성이다. 당포성이 강에 접해 있는 두 면은 자연성벽 역할을 하는 주상절리 절벽이기 때문에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았다. 평지로 연결된 동쪽에만 현무암을 이용해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았다.성벽 위에는 ‘당포성 나홀로 나무’로 불리는 팽나무 한 그루가 그림처럼 예쁘게 심어져 있다. 당포성은 요즘 서울 근교에서 가장 쉽게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명소로도 유명한데, 이 팽나무를 중심으로 은하수를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 곳에서 10월6~7일에는 제2회 당포성 별빛축제가 열린다. 목화솜체험, 별보기체험, 캠핑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질 예정이다.경기 연천 장남면을 흐르는 임진강은 5~7세기 삼국시대 세력다툼의 각축장이었다.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임진강을 방어선으로 삼았다. 고구려 남하에 대비한 백제와 신라로서는 한강이북 국경이었다. 그만큼 군사전략적 요충지였다. 지금도 굽이치는 임진강은 남북간 경계선을 치달린다.삼국사기에 임진강은 ‘호로하(瓠蘆河)’로 기록돼 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에는 고구려 시대의 성곽인 호로고루가 있다. 호로고루 일대에는 이맘 때 해바라기가 가득 피어난다. 17일까지 열리는 장남면 ‘통일바라기 축제’는 3만3000㎡부지에 약 5만 송이의 해바라기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지난 주말에는 아직 해바라기가 덜 피었던데, 이번 주말에는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노을이 지는 호로고루를 배경으로 해바라기 꽃밭에서 인생샷을 건질 수도 있는 포토존으로 인기다.연천은 치열했던 삼국의 역사를 생각하며 여행할 수 있는 곳이이다. 연천군 아미산 자락에 있는 숭의전은 고려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시던 곳이다. 또한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성거산 중턱에 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릉이다. 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이자 마지막 왕으로 후삼국시대에 전쟁으로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위해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화적으로 고려 왕건에 나라를 넘겼다. 귀부 후에는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고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경순왕릉은 신라 마지막 왕의 무덤이자, 경주 지역이 아니라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신라 왕릉이다.●연천 가볼만한 곳=연천군 중면 삼곶리에 있는 ‘임진강 댑싸리 공원‘이 오는 9월 1일 개장했다. 8월 중순부터 연초록빛으로 물든 댑싸리리는 가을이 깊어갈수록 붉게 물들어가고, 백일홍, 코스모스 등 다양한 꽃들이 어우러져 있다. 신안 퍼플섬에 많이 심어져 있는 보랏빛 버들마편초도 푸른 하늘과 대비를 이룬다.연천회관은 2020년 8월 시골마을의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감성적인 베이커리 카페로 개조한 곳이다. 연천 지역의 특산품인 연천 율무를 넣은 ‘연천 커피’가 시그니처 메뉴다. 고소한 율무와 달콤한 크림, 진한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맛이 일품이다. ‘재인폭포 카스테라’ 등 직접 만든 빵과 함께 인절미와 절편 등 전통 디저트도 판다.전곡리 유적지에는 고려 인삼축제(10월7~9일), 국화전시회(10월 14~29일), 연천 율무축제(11월 10~12일)가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밤에 재인폭포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조명쇼를 하는 ‘오르빛 미디어파사드’ 공연은 9월 22일부터 10월 22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진행된다. 연천=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경기도 북부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연천은 용암이 만들어낸 주상절리와 폭포가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또한 삼국시대부터 치열했던 세력 다툼의 각축장이 됐던 곳이다. 고구려는 임진강 변에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등 10여 개의 성을 쌓았고,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릉도 연천에 있다. 임진강 변 주상절리 절벽 위에 세워진 고구려성 주변엔 가을에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만발했다. 가족과 함께 서울 근교 나들이에 맞춤이다. ● 현무암 주상절리 협곡 재인폭포한탄강(漢灘江)은 한반도의 중서부 화산지대를 관류하는 강이다. 강원 평강군에서 발원해 철원을 거쳐 경기 연천군 전곡읍과 미산면 사이에서 임진강을 만난다. 과거 이 지역에 화산활동이 일어나 용암이 흘러 한탄강 일대에는 수많은 협곡과 절벽이 형성됐다. 한탄강 하류인 연천읍 고문리에 있는 재인폭포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한탄강지질공원 내에 있는 대표적인 폭포다. 제주 천지연 폭포처럼 높은 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물이 그야말로 장쾌하다. 검은빛 현무암으로 둘러싸인 깊은 소(沼)와 에메랄드빛 폭포수가 어우러져 아늑하고 신비한 느낌을 준다. 포천에 있는 비둘기낭 폭포가 비둘기 둥지처럼 아늑하다면, 연천 재인폭포는 18.5m 높이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절벽의 주상절리가 그야말로 ‘쭉쭉빵빵’이다. 재인폭포를 구경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전망대다. 약간 비스듬한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앵글로 폭포를 둘러싼 절벽에 울리고 나오는 굉음까지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두 번째 포인트는 폭포에서 약간 떨어진 길이 80m의 출렁다리에서 감상하는 것이다. 폭포의 정면에서 공중에 떠서 보는 시각이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약간의 출렁거림을 참으면서 카메라를 쥔 손이 흔들리지 않도록 폭포를 촬영할 수 있다. 출렁다리 위에서 ‘재인폭포(才人瀑布)’라는 이름의 유래를 생각해 본다. 옛날에 줄타기를 잘하는 재인이 있었는데, 고을의 원님이 그의 부인을 탐했다. 원님은 재인에게 이 폭포 위에서 줄을 타는 재주를 보이게 하던 중 줄을 끊어 재인이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후 원님은 재인의 부인에게 수청을 들게 했으나, 부인은 원님의 코를 물어뜯은 뒤 혀를 깨물고 자결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불렀고, 마을의 이름도 절개 굳은 코문이(재인의 부인)가 살았다 해서 코문리로 부르다가 후일 고문리가 되었다고 한다. 재인은 폭포를 가로지르는 외줄 위에 올랐지만, 현재의 나는 튼튼한 강철 케이블로 만들어진 다리 위에서 그의 안타까운 심정을 되새겨 본다. 세 번째 포인트는 출렁다리를 건너서 데크길을 따라 300m 정도 걸어 폭포 아래쪽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데크길 끝에서 재인폭포의 위용을 감상하고, 머리 위를 지나가는 출렁다리와 계곡 절벽을 장식하는 현무암 주상절리를 감상한다.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고, 쪼개짐이 발생해 만들어지는데 보통 5∼6각형 기둥 형태를 이룬다. 재인폭포 뒤편에는 약 160m 길이의 선녀탕 산책코스가 있다. 폭포의 물이 어디서 내려오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갔다는 전설이 있는 ‘폭포호’의 맑은 물빛과 소리가 청명한 느낌을 주는 산책길이다. ● 고구려성에 피어난 해바라기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한탄강과 임진강을 따라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와 폭포 등이 웅장하게 펼쳐진 현무암 협곡 지역이다. 대부분의 현무암 주상절리는 바닷가에 나타나지만 이곳의 현무암 주상절리는 강 주변에서 볼 수 있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이다.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있는 ‘임진강 주상절리’는 임진강 최대의 주상절리다. 높이 25m, 길이 2km에 걸쳐 병풍처럼 펼쳐진 ‘임진적벽(臨津赤壁)’이 장관을 이룬다. ‘적벽’은 해 질 무렵 붉은 저녁노을이 임진강에 반사돼 수직 절벽을 붉은빛으로 물들인다고도 하고, 가을이면 돌단풍이 주상절리 절벽을 붉게 물들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은 임진적벽의 아름다운 풍광을 진경산수화로 그리기도 했다. 고구려는 임진강의 적벽 위에 성을 쌓기도 했다. 그중에 임진강이 크게 굽어 흐르면서 강물의 흐름이 느려져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을 수비하는 고구려성이다. 높이 20여 m 절벽 위 삼각형 모양의 땅에 지어진 성이다. 당포성이 강에 접해 있는 두 면은 자연 성벽 역할을 하는 주상절리 절벽이기 때문에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았다. 평지로 연결된 동쪽에만 현무암을 이용해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았다. 성벽 위에는 ‘당포성 나 홀로 나무’로 불리는 팽나무 한 그루가 그림처럼 예쁘게 심어져 있다. 당포성은 요즘 서울 근교에서 가장 쉽게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명소로도 유명한데, 이 팽나무를 중심으로 은하수를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10월 6∼7일에는 제2회 당포성 별빛축제가 열린다. 목화솜 체험, 별 보기 체험, 캠핑 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질 예정이다. 경기 연천군 장남면을 흐르는 임진강은 5∼7세기 삼국시대 세력 다툼의 각축장이었다.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임진강을 방어선으로 삼았다. 고구려 남하에 대비한 백제와 신라로서는 한강 이북 국경이었다. 그만큼 군사전략적 요충지였다. 지금도 굽이치는 임진강은 남북 간 경계선을 치달린다. 삼국사기에 임진강은 ‘호로하(瓠蘆河)’로 기록돼 있다. 경기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에는 고구려 시대의 성곽인 호로고루가 있다. 호로고루 일대에는 이맘때 해바라기가 가득 피어난다. 17일까지 열리는 장남면 ‘통일바라기 축제’는 3만3000㎡ 부지에 약 5만 송이의 해바라기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지난 주말에는 아직 해바라기가 덜 피었던데, 이번 주말에는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노을이 지는 호로고루를 배경으로 해바라기 꽃밭에서 인생샷을 건질 수도 있는 포토존으로 인기다. 연천은 치열했던 삼국의 역사를 생각하며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연천군 아미산 자락에 있는 숭의전은 고려 시대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또한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성거산 중턱에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왕릉이 있다. 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이자 마지막 왕으로 후삼국 시대에 전쟁으로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위해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화적으로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넘겼다. 귀부 후에는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고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경순왕릉은 신라 마지막 왕의 무덤이자, 경주 지역이 아니라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신라 왕릉이다.연천 가볼 만한 곳연천군 중면 삼곶리에 임진강 댑싸리 정원이 9월 1일 개장했다. 8월 중순부터 연초록빛으로 물든 댑싸리는 가을이 깊어갈수록 붉게 물들어가고, 백일홍과 코스모스 등 다양한 꽃이 어우러져 피어 있다. 연천회관은 2020년 8월 시골 마을의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감성적인 베이커리 카페로 개조한 곳이다. 연천 지역의 특산품인 연천 율무를 넣은 ‘연천 커피’가 시그니처 메뉴다. ‘재인폭포 카스텔라’ 등 직접 만든 빵과 함께 인절미와 절편 등 전통 디저트도 판다. 전곡리 유적지에서는 고려 인삼축제(10월 7∼9일), 국화전시회(10월 14∼29일), 연천 율무축제(11월 10∼12일)가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밤에 재인폭포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조명쇼를 하는 ‘오르빛 미디어파사드’ 공연은 22일부터 10월 22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진행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가 주최하는 제10회 석정시문학상에 김남곤 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제10회 석정촛불시문학상에 오창렬 시인의 시 ‘침묵을 몰고 오다’가 뽑혔다.석정시문학상은 한국문학사의 중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신석정(1907~1974) 시인의 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 상은 신석정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부안군, 석정문학회, 부안군 문화재단, 전북예총, 한국신석정시낭송협회가 후원한다. 올해 심사위원장은 문효치 시인이 맡았고 문두근, 소재호, 정군수, 김영 시인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석정시문학상 수상자인 김남곤 시인은 전북 완주군 출신으로 1979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회장과 전북예총연합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북문인협회·한국문인협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김 시인은 삼남, 전북매일을 거쳐 전북일보 문화부장, 편집국장과 수석논설위원, 대표이사 사장, 우석대학 이사장을 역임했다. 전북문학상, 한국문예상, 전북문화상, 목정문화상, 진을주문학상, 바다문학상, 중산문학상,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석정시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3000만원 및 상패가 수여된다.김남곤 시인은 “신석정 시인의 시혼은 이 시대의 갈등과 불협을 순화시키고 있다고 믿는다”며 “제게 주신 석정시문학상의 궁극적인 목적도 그 역할에 십분의 일이라도 다가서서 사유하라는 엄중한 통고라고 여겨진다”며 수상소감을 밝혔다. 석정촛불시문학상 수상자인 오창렬 시인은 전북 남원 출생으로 1999년 계간 시 전문지 ‘시안’ 신인상, 2018년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오 시인은 “중학생 시절에 ‘네 눈망울에서는’을 통해 신석정 시인을 처음 알게 된 이후 늘 마음 속으로 시인을 만나왔다”며 “서정의 문맥 속에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의식을 공그르고 감치는 선생님의 시를 다시 배우며 저의 시도 조금 더 성장할 것을 믿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석정촛불시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만원 및 상패가 주어진다.제10회 석정시문학상과 석정촛불시문학상 시상식은 10월 14일 오후 3시 전북 부안 석정문학관 특설무대에서 열릴 예정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종로2가의 탑골공원은 어르신들이 온종일 바둑과 장기를 두며 시간을 때우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낮에는 무료급식 줄이 서고, 뒷골목엔 값싸게 소주나 막걸리 한잔할 수 있는 허름한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저녁에는 음습한 분위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찾지 않는 공간이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했던 탑골공원이 도성 안에서 차지했던 위상은 현재의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종로의 한복판에 있는 탑골공원은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항상 사람들이 몰려드는 민의(民意)의 중심지였다.또한 탑골공원 인근 인사동에는 종루가 있어서 한양도성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때를 알려주는 ‘시간의 중심’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 시계탑이 설치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우리는 탑골공원이라고 하면 ‘3.1운동의 발상지’로 기억한다. 식민지 시대 민중들의 항쟁이 시작돼 들불처럼 번져나간 곳이 바로 탑골공원이다.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 음식점에서 기미독립선언문을 읽고 경찰에 잡혀갔지만, 학생대표를 비롯한 백성들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읽고 투쟁을 시작했다.그러나 탑골공원은 3.1운동 이전에도 길고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탑골공원은 고려시대 흥복사(興福寺)가 있었다. 고려는 개경에 도읍을 두었지만, 서울도 남경이라고 해서 매우 중요한 행정중심지로 여겼다. 불교를 숭상했던 고려는 서울의 주산인 북한산과 남산을 중심으로 잡는 남북자오선의 중간지점인 탑골공원 자리에 흥복사를 세운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태종은 서울 남북자오선의 중심축이자 사방이 트인 흥복사지 뒤편에 창덕궁을 세웠다. 이렇게 태종이 터를 잡으면서 그의 손자인 세조 때 흥복사지에 원각사를 세웠다. 불교에 심취했던 세조는 ‘석보상절’을 짓기도 했다. 탑골공원에는 국보 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원래는 13층)을 세웠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탑은 고려시대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비슷한 모양인데, 정교한 조각과 문양을 새겨넣은 걸작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오랜 세월에 풍화로 인한 표면 훼손이 심각한 상태여서 2000년에 유리 보호장치를 해놓은 상태다.세조는 원각사 앞에 조선의 중심거리인 운종가(종로)를 닦았다. 이 운종가는 동쪽의 시작은 흥인문이고, 종점은 서쪽의 돈의문이었는데 이 선은 춘분, 추분을 알 수 있는 표식이 된 것이다. 이런 조선의 도시계획은 이 탑골공원에서 조선 사람들은 누구라도 1년 365일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의 삶의 중심지는 동대문과 서대문으로 이어지는 종로의 한 복판인, 탑골공원과 종각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이 자리는 고려시대 흥복사였다가, 조선시대 원각사로 바뀌었고, 연산군 때는 이 절이 해체되었다. 연산군은 이 절터에 자신의 기쁨조로 활약하는 기생들과 악사들이 활동을 하는 ‘연방원(聯芳院)’을 세웠다. 탑골공원 뒤편에 악기를 파는 낙원상가가 들어선 것도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 것이다. 또한 탑골공원 뒤편 창덕궁 앞길과 익선동에는 일제시대에 일자리를 잃었던 왕실의 악사들과 명창들이 자리잡고 조선의 예술을 보존하기 위해 명맥을 이어오기도 했다. 18세기 조선 후기 영조 때 실학운동과 조선학 연구 붐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많은 젊은 양인들이 조선의 미래를 토론하고 방향을 제시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평생에 최치원과 조헌을 스승으로 생각했던 박제가, 열하일기로 유명한 박지원, 유득공, 이덕무 등이었다.이들은 모여서 새로운 조선의 방향을 논의했는데, 이들이 모여서 토론한 곳이 바로 이 탑골이었다. 이들을 흔히 ‘백탑파’ 라고 불렀다. 이들은 1737년생인 박지원을 좌장이자 정신적 지주로 여긴 지식인 모임이다. 지금의 종로2가 탑골공원에 모여 살았다고 해서 ‘백탑파(白塔派)’라고도 하고, 청나라의 선진 문명과 제도를 배워 조선을 부국강병하게 하자는 주장을 펴 ‘북학파(北學派)’라고도 불렸다.조선 후기 정치가 혼란해지고 고종 때에 경복궁이 재건되면서 정치의 중심지는 잠시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경복궁 건청궁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정치의 중심지는 덕수궁 일대의 정동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때에도 계속해서 민의의 정치는 모든 상권이 모여 있었던 종로에 있었고, 종로에서 가장 넓은 터를 가지고 있었던 탑골광장을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이런 환경은 많은 기독교인들의 포교 활동을 통한 대한인의 정체성 제고, 만민공동회로 불타오른 민의를 수렴하는 광장으로 역할을 했다. 1897년(광무 1년) 고종 때 영국인 브라운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을 지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있어 동양의 불탑이라는 뜻의 ‘파고다 공원’이라 이름을 붙였다. 공원 내에는 팔각정도 함께 새롭게 지어졌는데, 1902년 고종 즉위 40년 기념 군악대 연주가 열렸다. 1913년부터는 황실 관현악단의 연주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 황실 음악회가 열리던 팔각정 탓일까. 이후 공원 주변에 들어선 파고다 아케이드와 낙원상가는 악기 판매점으로 유명세를 떨쳐왔다.1919년 3월 1일에는 탑골공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민족대표 33인들과 함께 일본에 항쟁을 선언하기로 준비했었다. 그러나 민족대표는 태화관에서 점심을 먹고 종로경찰서로 들어갔다. 이곳에 모인 학생들은 3.1독립선언서를 읽으며 일본에 항쟁을 선언했다. 이들의 선언과 항쟁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3.1운동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정신은 일제강점기 종로의 상권 지키기로도 이어졌다. 당시 을지로는 중국 사람들의 상권이었고, 충무로는 일본 사람들의 상권이었지만, 종로의 상권은 대한인들이 굳건히 지켜냈다.해방 후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 전쟁 때에도 탑골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 중심부는 고스란히 보존됐다. 당시 한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서울수복을 할 때 연합군사령부에서는 서울 전체를 폭격하려 했으나, 당시 주일미국대리공사가 맥아더 사령관을 찾아가 청계천 이북은 폭격하지 말라고 부탁해 이곳이 온전히 남아 있게 됐다고 한다. 탑골공원은 전쟁 후에도 민의의 중심이었다. 4·19혁명 때나 국민들의 의견이 모일 때마다 그 터의 역할을 다했다. 또한 1968년 처음으로 세운상가에 국회의원회관이 개원하면서 당시 번화가였던 이 지역은 민의의 토론장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탑골공원은 귀족들이나 지배층들이 점유한 곳이 아니었다. 전체 백성들이 모여서 그들의 안녕을 빌었고, 어려움을 토로했으며 그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곳이다. 또한 외세와 싸울 때는 이곳에서 과감하게 싸울 수 있는 민의를 모아주던 곳이다. 이곳에서 근대가 일어났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광장 민주주의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구청은 탑골공원의 위상을 정상화하고, 어린이와 젊은이들부터 노년층까지 모두 함께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재정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른바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탑골공원의 담장 허물기가 하나의 방책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 도심에 조성된 첫 근대식 공원인 파고다(탑골)공원은 국보 원각사지 10층 석탑, 보물 원각사비가 있고, 3.1운동의 성지인데도 불구하고, 주위를 둘러싼 담장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섬처럼 갇힌 공간이 돼버렸다. 탑골공원의 담장은 언제 생겼을까? 1967년에는 현대화 차원에서 공원 주변으로 상가 건물인 ‘파고다 아케이드’가 건설됐을 때 생겨났다. 그러나 이 상가가 문화재 경관을 망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1983년 철거됐다. 하지만 공원의 경계에 담장은 그대로 남게 됐고, 주변으로 무허가 좌판 등이 설치되면서 무질서하게 됐다. 특히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한 끼 식사를 해결하려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찾는 이들이 급증한 이후 고령층의 공간이 됐다.그러나 탑골공원 주변의 담장을 허물어 시민들의 공원으로 개방된다면, 조명도 훨씬 밝아지고 젊은 층이나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도심의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탑골공원의 역사와 새롭게 공원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학술회의가 14~15일 이틀간 열린다. 서울 YMCA회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14일에는 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사회로 △탑골공원의 지정학과 역사(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위원, 장경호 강원대학교 교수) △3.1운동 정신과 독립정신(장우순 성균관대 교수, 나행주 건국대 교수) △3.1운동의 세계사적 위상(김지영 숭실대 교수, 김권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연구사) △탑골공원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신운용 교수, 이종국 동국대 교수)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15일에는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의 사회로 △흥복사지와 원각사의 역사적 의미 (최건업 교수-한국불교학회이사)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한 조선 실학 시기의 백탑파의 활동 (최철호 서울성곽연구소장) △대한제국기의 탑골공원 (이민원 동아시아역사연구원장)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한 조선 후기 선교사들과 조선 청년들 (김명구 월남이상재연구소장) △천도교는 어떻게 탑골공원을 지켰나? (정갑천 천도교 교무부장) △국외와 국내 대일항쟁의 상징- 간도의 대일항쟁과 관계 고찰(김동환 국학연구원 원장) △건축에서 탑골의 의미를 어떻게 투영할 것인가?(김개천 국민대학교 교수) 등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의 팔각정은 1919년 3·1운동 당시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고종 때 영국인 브라운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파고다공원을 조성할 때 세운 누정이다. 1902년 고종 즉위 40년 기념 군악대 연주가 열렸고, 1913년부터는 황실 관현악단의 연주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 황실 음악회가 열리던 팔각정 탓일까. 공원 주변의 파고다 아케이드와 낙원상가는 악기 판매점으로 명성을 떨쳤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강원 동해에 있는 ‘천곡황금박쥐동굴’은 1991년 6월 천곡동 신시가지 기반 조성과 아파트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됐다. 황금박쥐가 발견되기도 한 이 동굴 안에는 수만 개의 종유석과 석순이 신비로운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 그중에 ‘수백 년의 기다림’이란 이름의 종유석과 석순은 수만 년 동안 자라서 하나의 기둥(석주)이 되기까지 현재 5cm 정도를 남겨두고 있다. 안내문에는 석주가 되려면 앞으로 200∼300년이 더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고 쓰여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홍해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바다다. 바닷속에 있는 해조류 때문에 가끔 물빛이 붉은빛을 띠는 일이 있기 때문에 ‘홍해(Red Sea)’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가 보면 투명한 물빛은 그야말로 에메랄드 보석 같다. 홍해 연안은 고대 문명과 종교의 발상지가 몰려 있다. 이집트 룩소르 신전과 요르단 페트라 유적,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시나이산,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관문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를 한 번에 둘러보는 데는 ‘홍해 크루즈’ 여행이 제격이다.● 고대 문명과 종교의 발상지홍해 크루즈는 겨울 시즌에 출발한다. 중동 지역의 여름은 너무나 덥기 때문이다. 11월에 출발하는 홍해 크루즈는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3개국을 10일간 여행한다. 항공편으로 이집트 카이로로 이동한 후 수에즈만 인근의 수크나항에서 크루즈선이 출발한다. 여행은 이집트 고대 문명 탐방으로 시작한다. 기자지구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대표적인 관광지이지만, 기독교의 주요 성지순례지이기도 하다. 먼저 올드카이로에서는 모세가 건져진 나일강 물이 있던 곳에 세워진 모세기념 교회, 예수님을 임신한 성모마리아와 요셉이 피난했던 성가정피난 성당도 순례할 수 있다. 사파가 항구에서는 고대 이집트 왕조의 종교적 수도였던 룩소르를 찾아갈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 핫셉수트 장제전 등 고대의 무덤과 사원이 장엄한 사막과 나일강의 풍경과 어우러져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박물관’이다.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단에 위치한 샤름엘셰이크 항구는 이집트의 ‘리틀 라스베이거스’로 불리는 최고의 휴양지다. 이곳에서는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 걸었던 시나이반도를 체험할 수 있다.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시나이산 기슭에는 성카타리나 수도원이 있다. 성서에 나오는 ‘불타는 떨기나무’가 있던 곳으로 소문이 났던 장소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다. 수도원 박물관에는 화려한 성상과 그리스어, 아랍어, 히브리어, 콥트어, 그루지야어로 작성된 채색 필사본 성서가 보관돼 있다. 홍해의 시나이반도와 아라비아반도 사이에 길게 들어가 있는 만에 위치한 아카바는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다. 요르단은 1965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영토 교환으로 아카바 항구를 확보했다. 요르단은 석유가 나오는 사막지대를 사우디아라비아에 내어주고, 아카바만의 바다에 접해 있는 연안 16km를 얻어냈다. 요르단은 산유국이 되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내륙국 신세를 겨우 면한 것이다. 이 작은 항구를 통해 요르단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치는 홍해 크루즈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명함을 내밀게 됐다. 요르단 아카바 항구에서 차로 2시간 정도 와디룸 사막을 지나 달리다 보면 거대한 암벽으로 둘러싸인 페트라가 나온다. ‘사막의 붉은 장미’로 불리는 경이로운 고대 문명 도시다. 기원전 1세기경부터 사막의 대상(隊商) 무역을 하던 나바테아인들이 세웠던 고대 왕국의 수도다. 1.2km 길이의 바위 협곡인 알시끄가 끝날 즈음 거짓말처럼 ‘알카즈네흐’가 등장한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에 나왔던 신비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느낌이다. 25m 높이의 코린트식 기둥이 정면을 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1세기경 나바테아 왕의 무덤으로 건축됐다고 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등과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잘 알려진 페트라는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과 왕궁, 신전,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까지 정교한 건축물이 가득하다. 특히 빗물을 저장하는 댐과 저수지, 수로 등 치수시설에 높은 기술을 갖고 있었던 덕분에 사막에서도 1년 내내 물 부족 없이 살 수 있어 여행자와 상인들을 위한 도시로 융성할 수 있었다. 물 관리를 잘했던 나바테아 사람들은 요르단 페트라뿐 아니라 와디룸 사막(붉은 모래사막)을 건너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울라에도 고대 문명도시 ‘헤그라’를 세웠다. 또한 페트라에는 약 2000년 전에 지어진 로마 시대의 유산도 많이 남아 있다. 계곡의 남쪽 끝에 바위를 파내어 만든 서기 1세기의 원형 극장이다. 바위를 깎아 만든 이 극장은 무려 8500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마이크 없이도 무대에서 말하는 소리가 객석 끝까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최고의 음향효과를 자랑한다. 넓은 페트라 유적지를 걸으며 돌아볼 수도 있지만, 낙타와 마차, 당나귀를 타고 여유롭게 다니는 경험도 추억이 된다.● 홍해의 보석 같은 바다 풍경 여행홍해는 세계적인 해변과 문화유산, 건축물, 자연경관 등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해변과 사막 지역이라 이동 교통편이 쉽지 않다. 그러나 크루즈 여행은 먹고, 쉬고, 자는 동안 선박이 도시 간을 이용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올해 11월 24일, 12월 8일과 22일, 내년 1월 26일 등 4차례 출발하는 MSC오케스트라호에는 승객 2600명, 승무원 900명이 승선한다(크루즈여행닷컴 1599-1659). 9만2000t 규모에 길이가 90m에 이르는 이 선박에서는 다채로운 공연과 파티가 열리며 레스토랑, 바, 스파,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홍해 지역의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인 식사에 술을 곁들이거나 여흥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런데 크루즈 선박은 항구에서 떠나 공해상으로 나가면 선박 내에서는 음주와 여흥이 자유롭기 때문에 크루즈 여행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홍해 크루즈는 사우디 최대 항구도시 제다에도 기항한다. 제다는 7세기부터 이슬람 최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로 오는 순례객과 무역상들의 관문이었다. 중세시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들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향신료와 보석, 몰약, 포목 등 각종 특산품을 배에 싣고 왔다고 한다. 순례객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팔아 돈을 마련해 메카로 떠났다. 제다 항구에 있는 메카 게이트에서 낙타를 타면 1주일 만에 메카에 도착했다고 한다. 제다 항구의 시장에는 지금도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몰려든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순례객 덕분에 제다는 다양한 음식 문화가 살아 있는 글로벌 도시가 됐다. 항구 주변의 구시가지인 알발리드 구역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헤자즈’ 양식의 집들이 밀집돼 있다. 집집마다 창문이 화려하게 장식한 나무 베란다인 ‘로샨’으로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은 세월 탓에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고 삐뚤빼뚤하지만 신기하게도 잘 버티고 있다. 이 밖에도 제다에는 호안 미로 등의 작품이 있는 해변 조각공원, 해상 모스크와 아쿠아리움, F1 경기가 벌어지는 해변 도로, 바다 뷰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세계 최대의 쇼핑센터까지 볼거리가 많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