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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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4-10-01~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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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코 사라지지 않을 악플 방조도 범죄일 수 있다[광화문에서/정양환]

    “우린 앞으로도 악플(troll·악성댓글)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그래, 이젠 인정하자. 쳇바퀴처럼 돌고 돈다. 다 부질없어 보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열흘이 넘었다. 스물다섯 살의 안타까운 낙화(落花). 눈부신 스타가 아니라도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많이들 먹먹했고 시렸다. 서로가 이유를 목말라했다. 당연히 얽히고설켰겠지만…. 악플에 대한 비난이 가장 거셌다. 그럴 만했다. 고인은 무슨 사격표지판 같았다. 여성 아이돌답지 않다고, 좀 다르게 행동했다고. 온갖 해괴망측한 댓글이 쏟아졌다. 그가 받았을 내상은 감히 가늠조차 어렵다. 그러니 악플 비난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이참에 제대로 대처하자는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힘을 얻는다. 남미의 한 매체는 부고를 전하며 자극적이나 분명하게 짚었다. “얼마나 더 죽을 때까지 악플을 내버려둘 것인가.” 한데 착각이었다. 시궁창은 여전히 더러웠다. 악플은 유유히 흘러넘친다. 그의 연인이던 래퍼에겐 저주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었다. 같은 걸그룹 동료에겐 ‘추모의 글’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지 않았다 힐난했다. 내내 빈소를 지켰단 게 알려진 뒤 잦아들긴 했지만. 친구를 잃고 가슴이 찢어진 이 앞에서조차 악플러들은 그들의 감정이 중요했다. 이런데도 악플을 무찌르자고? 왜 서구에선 악플을 트롤이라 부를까. 북유럽 신화가 기원인 이 상상 속 괴물은 그리 강력하진 않다. 흉측한 외모지만 상위 몬스터는 아니다. 다만 악랄할 뿐. 근데 확실한 강점을 지녔다. 재생 능력이 탁월하다. 잡아도 없애도 또 나온다. 21세기 악플러가 트롤인 이유다. 그럼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개운하진 않지만 차선은 있다. 되도록 마주치지 않는 거다. 물론 여러 전문가들이 제안한 정화(淨化) 운동을 폄하할 맘은 없다. 근데 너무 오래 걸린다. 법 제정만 바라보기도 지친다. 몰라야 상처도 안 받는다. 중요한 건 개인에게 내맡겨선 안 된다. 온갖 경로로 뚫고 오는데, 홀로 귀를 닫아도 한계가 있다. 악플러만 욕할 거 없다.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먼저 자아비판부터. 어쭙잖게 언론사 녹을 먹고 있으니, 관련 없다 책임 회피할 생각 없다. 앞으로 댓글 가지고 기사화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 인터넷 반응을 방패 삼아 숨지 않겠다. 포털사이트에도 부탁드린다. 아마 댓글 자체를 없애는 건 어려울 터. 적어도 보고 싶은 사람만 로그인하고 보게 만들면 안 될까. 생채기는 막진 못해도 거기에 휩쓸리진 않게. SNS 업체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소통 공간이라지만. 언젠가부터 “생각을 독점하는 기업”(미 칼럼니스트 프랭클린 포어)으로 변질되고 있다. 편의라는 명분 아래 개인성(individuality)은 무시되고 의견은 일방향으로만 흘러간다. 악플은 그걸 자양분 삼아 배를 불린다. 이번 일 역시 공염불로 끝날지 모른다. 머지않아 또 다른 쓰라린 아픔을 목도할까 두렵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쳇바퀴에 갇힌 우리가 불쌍해서라도. 침묵한 다수는 그 악의에 동의하지 않기에. “익명은 결코 해방구가 돼선 안 된다. 악플은 강력 범죄다. 방조 역시 범법 행위로 인식해야 한다.”(2016년 영 정책연구센터) 정양환 문화부 차장 ray@donga.com}

    •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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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보이지 않는 폭력은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는가

    낯선 랩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이런 충격이었을까. ‘밀크맨’은 정말 놀랍다. 별로 두껍진 않지만 빽빽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소설은, 뭐라 덧붙이기가 머뭇거려진다. 원작 자체가 그런 건지 번역이 의도한 건지 모르겠는데, 극도로 쉼표를 자제한 만연체 문장은 숨이 가쁘다. 아니, 잘금잘금 읽는 이의 호흡을 앗아간다. 그러곤 작가만의 템포에 길들이더니 그대로 폭탄을 투척한다. 와우. 1970년대 북아일랜드가 배경인 ‘밀크맨’을 굳이 초창기 랩에 비교한 이유는 또 있다. 날이 제대로 섰기 때문이다. IRA(아일랜드공화국군)가 곧장 떠오르는 북아일랜드 독립운동이 첨예하던 시절. 그런데 막상 소설은 영국이니 뭐니 구체적 단어는 전혀 쓰지 않은 채, ‘우리’ ‘저들’ ‘길 이쪽’ ‘저 너머’ 등의 표현만으로 당시의 무지막지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이 소설이 억압과 차별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단 점이다. 18세 여성 주인공 주위를 언젠가부터 ‘밀크맨’으로 불리는 중년 남성이 맴돈다. 우유배달부라 불리지만, 그는 저항군에서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는 ‘이쪽’의 권력자. 게다가 때는 여성 인권에 무지하던 시절. 접촉만 없었을 뿐, 자신을 물건처럼 소유하려는 밀크맨과 그를 당연한 듯 용인하는 사회 앞에서 주인공은 피폐해져 간다. 실은 그래서인지 ‘밀크맨’은 정독이 꽤나 만만찮다. 화법 자체가 책 3분의 1쯤 지나서야 겨우 적응이 될랑 말랑한데,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을 온전히 따라잡기 쉽지 않았다.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져서 그런가 하는 자책감마저 생겼다. 먼저 소설을 읽은 여성 유명인사들은 극찬을 쏟아냈던데, 괜히 주눅도 들었다. 그런 몇몇 난관에도 ‘밀크맨’은 너무나 읽는 재미가 강력하다. 개인적으로 ‘언더그라운드’(1995년)를 연출한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의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착시가 일었다. 깊고 무거운 주제를 이토록 리듬감 있게 풀어낼 수 있다니. 지난해 ‘맨부커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놓치면 두고두고 아쉬울 ‘어쩌면-올해의 소설’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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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생충’ 美서도 호평… 아카데미상 기대 커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오스카를 거머쥘까. 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기생충’이 큰 호응을 얻으며 미국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영화는 1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영화관 1곳과 로스앤젤레스 2곳에서 개봉했다. 뉴욕에선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 사례였다. 미 매체 인디와이어는 “주말 표까지 모두 팔렸다. 영화를 보고 싶다면 로스앤젤레스로 가라”고 전했다. ‘기생충’은 공식 개봉 전 선보이는 ‘선 개봉일’부터 반응이 심상찮았다. 선 개봉일 하루에만 12만 달러(약 1억4232만 원)를 벌어들였다. 현지에서는 18일부터 상영 극장이 늘어날 계획이다.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도 열기가 뜨겁다. 로튼토마토에서는 신선도 99%(100%가 최고), 메타크리틱에서 평점 9.5점(10점 만점)을 받았다. LA타임스는 “유쾌함으로 시작해 파괴로 끝나는 ‘기생충’은 관객이 숨쉬기도 힘들 만큼 매순간 살아 있다”며 극찬했다. 현지 반응이 뜨거워지자 벌써부터 내년 2월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상 수상에 대한 기대도 올라가고 있다. 지난달 영화진흥위원회는 기생충을 내년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부문(외국어영화상)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했다. 현재 외국어영화상은 93개 작품이 출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후보작 5편은 내년 1월 중순경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봉 감독은 “한국영화가 20년 넘게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한 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른 적 없단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현지 언론의 질문에 “좀 이상하긴 해도 별일 아니다. 어차피 아카데미는 로컬(지역) 시상식이다”라고 가볍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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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 예수 형상에 절로 미소… 인골 장식엔 구원의 갈구 서려

    《“가톨릭 신자건 아니건 상관없습니다. 아주 잠깐 머물더라도 우리 교회를 나설 땐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게 종교가 세상에 끼치는 선함이 아닐까요.” 미소가 근사했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체코 프라하 ‘승리의 성모와 프라하 아기 예수 성당’에서 만난 파벨 폴라 신부는 말 한마디도 참 예쁘게 했다. 해마다 세계에서 45만여 명이 찾는다는 이곳의 명물 아기 예수처럼.》  체코와 오스트리아는 솔직히 순례자가 몸살 나기 십상이다. 그만큼 볼 게 지천이다. 주요 관광지만 돌아도 은총이 쏟아진다. 한데 뷔페처럼 뭘 먹었는지 헷갈린다. 오늘 마주한 성당이 어제 만난 성당이 아니라 자신하기 어렵다. 그래도 가다듬고 보면 각자에게 맞는 보석이 널려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돌아보고, 21세기 수도원의 흐름도 짚을 수 있다. 그 대신 딱 하나만. 시간이 빠듯하면 건너뛰어도 되니 찬찬히 걸으시길. 풀 냄새 돌담 냄새 스쳐 지나지 말고.○ 아이는 의구(依舊)한데 인골도 그 자리에 바로 무장해제다. 진중한 성당에서 입꼬리가 올라가다니. 겨우 45cm인 자그만 조각상이 이리도 따사로울 줄이야. ‘프라하의 아기 예수’는 실은 위치가 애매하다. 관광 핵심 구시가에서 트램(노면전차) 타고 네댓 구역은 간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필수코스라 꼽기 힘들다. 근데 마주하면 잘 왔다 싶다. 2층에 전시한 한복도 앙증맞다. 아기 예수는 바비인형처럼 때맞춰 옷을 갈아입는다. 왜 그리 두근거릴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하느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당신의 친밀함을 보여 준다”(2009년)고 했다. 폴라 신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과 희생도 숭고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그것만이 아니죠. 아가의 순수하고 인간적인 형상에 끌리는 게 아닐까요.” 하나 더. 성당을 관장하는 가르멜회는 1971년부터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유치원과 학교도 운영한다. 이렇게 깊은 뜻을 실천하니 후광이 살아있다. 아기 예수는 17세기 스페인에서 만들어졌단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미래를 비추기에 더 아름답다. 반면 쿠트나호라에 있는 ‘세들레츠 해골 성당’은 완벽하게 극단에 서 있다. 들어서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진다. 끝도 없는 인골. 피라미드처럼 쌓인 뼈 무덤은 그러려니 했다. 두개골로 문양을 꾸며놓은 건 뭔 악취미람. 하지만 잠깐 공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이 해골들은 주로 14세기 흑사병으로 숨진 3만여 시신에서 수습했다 한다. 고통 아래 마지막까지 구원을 갈구했을 터.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다. 인간을 위한 화장실도 마련치 않는다. 그곳에 빈부귀천 상관없이 의탁한다면 그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까. 성당에 새겨진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 그들은 생사를 뛰어넘어 영원의 안식처를 몸 바쳐 이뤄냈다.○ 위스키와 포도주,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들른 두 수도원은 다소 생경하다. 왕실에서 지은 건물답게 거창하고 화려하다. 묵상과 검박함을 기대했다간 실망스럽다. 빈에서 약 79km 떨어진 ‘성 베네딕토 멜크 수도원’은 특히 북적댄다.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소설 ‘장미의 이름’의 영감을 얻은 곳으로도 유명하니. 심지어 900여 명이 수학하는 명문 사립학교까지 운영한다. 학생과 관광객 물결에 수도자는 드문드문. 이 땅의 수호성인 레오폴드 3세가 지은 ‘아우구스티노회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도 엇비슷하다. 왕궁이나 대형 박물관 같다. 물론 둘 다 볼 것 많아 좋긴 한데…. 솔직히 수도원에서 담근 위스키나 와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렇지만 이런 ‘개방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미덕이다. 문 걸어 잠그고 자기들만 깨달으면 뭐하나. 클로스터노이부르크는 포도주 수입의 10% 이상을 사회사업에 쓴다. 젊은 미술가를 지원하는 ‘성 레오폴드 평화상’도 주관한다. 열린 종교는 갈수록 강해진다. 멜크 역시 시대와 발맞춰 간다. 문화관광담당인 마르틴 로테네더 신부는 “비(非)가톨릭 신자라도, 심지어 이슬람교도여도 수도원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학교도 신입생 선발 때 종교를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위스키가 켜켜이 꿀처럼 달달해졌다.프라하·빈=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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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크리스마스에 풀어놓은 기묘한 이야기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Just like the ones I used to know….” 참 ‘잔인한’ 성탄절 노래다. 하 소설가의 이 책 말이다. 소설에도 등장하는 빙 크로스비의 목소리가 머금은 푸근한 캐럴은 기대 마시길. 그런 낭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메마르고 건조하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짙은 물안개가 가득 차 축축할 정도. 실재일까 환영일까 분간이 안 갈 만큼. 얘기는 평범하게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은 세 자매 가족. 오랜만에 시간이 비어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마트에서 고기 사고 케이크 사고. 어느 집안에나 있을 적당한 투덕거림과 공명. 그렇게 나눈 와인 몇 잔 뒤, 막냇동생은 묘한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어느 벽촌 리조트에서 겪은 ‘기묘한’ 시간을. 이 체험이 정말 기묘한지도 애매모호하다. 스크루지가 만난 유령처럼 명확하다 단언하긴 힘들다. 진짜 유령인지, 창밖 나방인지, 옆방 꼬마인지도 불분명하다. 심지어 실제 겪은 일인지, 화자가 본인이 맞는지도 헷갈린다. 시스루(see-through)처럼 속 비치는 옷이 여러 벌 겹쳐지며 의외의 문양을 만든 형국. 그다지 튈 것 없는 현실의 조합이 다층적 판타지로 승화하는 광경을 목도한다. 실은 ‘크리스마스캐럴’은 좀 의외다. 작가가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데, 이전 작품들과 뭔가 결이 다르다. 담담한 문장과 독특한 시간 구성이 엮어내는 특유의 맛은 여전하나, 등장인물 혹은 삶을 바라보는 거리감이 살짝 달라졌다. 물론 굳이 판가름을 내릴 필요는 없지만, 이런 낯섦이 더 반갑긴 하다. 문득 궁금하다. 끝내 막냇동생이 찾지 못한 손목시계는 어디로 갔을까. 그 비싼 장신구는 손목을 감싸고 있긴 했나. 아니 그는 그걸 되찾고 싶긴 한가. 희멀건 흔적만을 남긴 채 떠난 게 물건인지 세월인지 자아인지. 성탄절 산타 할아버지는 그 답을 선물로 주실 순 없으려나. 우리의 굴뚝은 이미 사라졌건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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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곡진 역사의 고비마다, 신앙은 위안과 희망의 버팀목

    《‘시간이 흘러가도, 영원(eternity)은 존재한다.’ 지난달 22일 오전(현지 시간). 폴란드 바도비체는 꽤나 쌀쌀했다. 광장엔 패딩 차림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일까. 성(聖)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 생가로 스며든 햇볕은 유난히 따스했다. 그 유혹에 굴복해 다가선 2층 창가. 골목 너머 성모마리아대성전(basilica) 벽엔 해시계와 위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어쩌면 어린 카롤(교황의 속명)은 진작부터 그 불멸의 계시에 이끌린 게 아닐까.》 ○ “나는 행복합니다. 당신들도 행복하십시오.” 바웬사 전 대통령, 로만 폴란스키 감독, 축구선수 레반도프스키…. 폴란드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많다. 한데 순례길에서 만난 ‘원톱’은, 2014년 시성(諡聖)된 요한 바오로 2세였다. 성당이나 박물관, 수도원은 당연지사. 소금광산이나 아우슈비츠수용소에도 흔적이 빼곡하다. 살짝 과식한 기분까지 들었다. 물론 굴곡진 이 땅의 역사를 마주하면 웬만큼 수긍이 간다. 몽골 침략, 종교전쟁, 제2차 세계대전.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고 공산체제에 억눌렸던 아픔. 신앙은 버팀목이자 지렛대였다. 현재도 인구의 97.6%가 가톨릭신자일 정도니. 변곡점마다 고국을 찾아 “우리는 다르지 않다”고 설파한 교황은 그들에게 위안과 희망의 화신이었다. 쳉스토호바에 있는 야스나구라 성 바오로 은수자회 수도원의 성화 ‘검은 성모(Black Madonna)’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쭙잖은 잣대로, 제작 시기도 불분명한(5∼8세기 추정) 가로세로 81.3×121.8cm의 이 작은 그림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스토리가 더해지며 아우라가 폭발한다. 목발을 짚고 들어왔다 치유를 맛봤다는 기적의 데자뷔는 접어두자. 체코 신학자 얀 후스(1369∼1415) 추종자들이 흠집 냈단 마리아의 오른뺨 칼자국이 백미다. 수도회 소속인 시몬 수사는 “여러 전문가가 시도했지만 지워지질 않았다”고 했다. 용서하되 잊지 말아야 할 민족에게 이만큼 구심점이 될 아이콘이 또 있겠나. 지금도 이 단아한 수도원을 해마다 500만여 명이 찾는 이유다. 다시 ‘상처’를 떠올려본다. 교황 생가 박물관엔 1981년 바티칸에서 저격당했을 당시 권총이 전시돼 있다. 굳이 왜. 그는 병상에서 일어선 뒤 터키 저격범을 찾아가 용서를 베풀고 선처를 호소했다. 2005년 선종 때 남긴 한마디.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 몸소 자비를 실천한 지행합일(知行合一) 앞에 고개를 조아릴 뿐이다.○ 아픔을 함께 버텨낸 이웃이자 눈물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21세기에 모든 국민이 하나의 종교라니. 교황이나 성화가 훌륭한 구심점이라 해도, 이런 단일대오는 범상치 않다. 어쨌든 ‘선택’은 결국 기층민중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비엘리치카에서 만난 소금광산은 의미심장했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뽑힌 이곳은 지하로 327m까지 파고 내려간 대형 광산. 13세기부터 채굴을 시작했는데, 약 200km에 이르는 통로를 따라 2000여 개의 방이 있단다. 흥미로운 건 곳곳에 세워진 성당이다. 17세기 ‘성 안토니오 성당’ 등 아름다운 경전이 어두컴컴한 지하로 빛을 인도한다. 뭣보다 101m 깊이에 있는 ‘성녀 킹가 성당’은 눈이 동그래졌다. 가로세로 54×17m에 높이가 약 11m. 이걸 광부들이 일일이 파내고 다듬었다니. 어떤 예술작품보다 아름답지만, 그들의 피땀 눈물 역시 암염에 깊이 배어 있다. 발걸음마다 가슴이 뻐근해졌던 오시비엥침(독일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마찬가지다. 후대에 심은 가로수 가득한 마당은,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이다. 한데 섬뜩한 전기철조망을 피해 건물에 들어서면 냉기가 뒷목을 파고든다. 특히 어린 희생자의 꼬까옷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여행가는 줄 알았던 부모는 아마 아이에게 가장 예쁜 옷을 꺼내 입혔으리라. 이 나라 백성들이 신앙을 저버릴 수 없던 까닭이 여기 있지 않을까. 높다란 첨탑도, 끝 모를 땅굴도, 그리고 가스실도…. 어디 하나 서글픈 넋의 흔적이 지워지질 않았기에. 그리고 그 절망의 고통 곁엔, 동료 수감자를 대신해 죽은 콜베 신부(1894∼1941) 같은 존재가 있었기에. 폴란드에서 천주교는 높이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권능이 아니었다. “따뜻한 밥 한 끼”(시에파크 수녀)처럼 일상을 함께 숨 쉬는 공기였다.바도비체·쳉스토호바·비엘리치카·오시비엥침=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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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세군중앙회관 ‘정동1928아트센터’로 4일 재개관

    서울 중구에 있는 구세군중앙회관이 복합문화공간 ‘정동1928아트센터’(사진)로 재탄생한다. 구세군한국군국(사령관 김필수)은 1일 “중앙회관을 역사와 문화, 예술을 위한 복합공간인 ‘정동1928…’로 새롭게 단장해 4일 개관행사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트센터는 전시갤러리를 비롯해 공연홀, 콘퍼런스룸, 이벤트홀 등이 갖춰진다. 건물 앞마당은 시민들을 위한 열린 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 개관을 앞두고 사전 기획행사로 연극 ‘대한제국의 꿈’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시기념물 제20호인 구세군중앙회관은 1928년 구세군사관학교로 건립돼 그간 구세군 선교와 교육, 사회봉사 등에 이용돼 왔다. 구세군은 개관에 맞춰 4일 오후 2시부터 학술강좌 ‘삼일운동과 구세군독립운동가’를 연다. 오후 6시에는 개관식 및 미술전시회 ‘필의산수 근대를 만나다’를 개최할 예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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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 통도사’ 산문 열린 지 1374년… 佛心모아 축제 열다

    “남쪽 축서산(영축산의 옛 이름) 기슭 신지(神池)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며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天龍)이 그곳을 옹호하게 되리라.” 자장율사(590∼658)가 중국 당나라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았다는 가르침의 일부다. 현대인에겐 설화나 다름없는 얘기지만, 여기엔 상당한 의미가 있다. 7일 창건 1374년을 맞은 경남 양산시 통도사가 주창하는 ‘대중과 함께 열어가는 불교’라는 창건이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는 선덕여왕 15년(646년) 음력 9월 9일에 자장 스님이 영축산에 금강계단을 세우고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며 산문을 열었다. 바로 이 창건일을 맞아 여는 큰 법회가 개산대재(開山大齋)다. 지금이야 양산도 작지 않은 도시지만 당시엔 도읍인 경주에 비하면 한참 변방이었다. 신라에서 손꼽히던 고승인 자장율사가 굳이 이곳을 선택해 불교의 으뜸 보물을 모신 이유가 뭘까. 통도사 주지인 현문 스님은 “이곳이 부처님이 직접 불법을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닮았기 때문이란 말도 있지만, 서민들과 함께 숨쉬는 ‘민중불교’로 나아가려는 목적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런 정신을 받들어 지난달 13일 한가위 때부터 다양한 행사를 펼쳐온 개산대재는 5일부터 한층 볼거리가 풍성해진다. 5일 오전에 열리는 ‘영축삼보이운’이 그 시작이다. 법당이나 다른 곳에 모셔져 있던 괘불을 법회 장소로 옮겨오는 이 행사는 주위에 늘어선 불자들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이후 스님들의 바라춤과 더불어 모셔온 괘불에 공양을 올리는 ‘괘불헌공’도 중요한 행사다. 개산일인 7일은 더욱 장엄한 행사들이 통도사를 수놓는다. 자장율사를 추모하는 ‘영고재’와 개산대재 ‘법요식’, 역대 고승의 부도를 모신 부도원에 차를 올리는 ‘부도헌다례’가 오전 10시부터 이어진다. 현문 스님은 “통도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것도 이런 ‘현재성의 가치’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며 “개산대재는 통도사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자리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문화유산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서민 속에 숨쉬고 있다는 건 부대행사만 봐도 느낄 수 있다. 5일 대규모 의례로 바쁜 와중에도 지역 어르신을 위한 ‘만발공양’과 젊은 세대를 위한 ‘청소년 댄스경연대회’가 열린다. 6일에는 최근 인기가 급상승한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공연도 있다. “대중과 함께”라는 창건이념을 제대로 반영한 셈이다. 통도(通度)에는 ‘모든 진리에 회통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편을 동원해 모두를 행복하게 하려 했던 자비사상의 본질적 표현이다. 통도사 개산대재가 한 사찰을 넘어 한국 불교 전체의 소중한 행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문 스님은 “좋은 전통을 새롭게 드러내고 더욱 발전시켜 현재에 머물지 않는 통도사로 거듭나는 기회로 삼겠다”고 다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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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송가 1000곡 봉헌, 필생의 작업 매진 합니다”

    문성모 강남제일교회 담임목사(65·사진)가 최근 새롭게 작곡한 찬송가 6곡을 발표하는 등 ‘한국 찬송가 1000곡 봉헌’에 매진하고 있다. 서울대 국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한 문 목사는 지금까지 한국 고유의 찬송가를 300곡 이상 작곡했다. 2011년 ‘우리가락찬송가와 시편교독송’이란 찬송집도 출판했다. 특히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에서 소개한 찬송가 ‘혼자 소리로는 할 수 없겠네’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독일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의 찬송집이나 기도집에도 실렸다. 문 목사는 최근 ‘독생자를 보내주신’ ‘나의 생명 주인 되신’ ‘애굽에서 해방된 날’ 등 신곡 6곡을 발표했다. 다음 달 12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강남제일교회 예음홀에서 ‘제3회 문성모 신작 찬송가 봉헌예배’가 있을 예정이다. 문 목사는 “올해 초 평생 찬송가 1000곡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한 뒤 작곡에 몰두하고 있다”며 “앞으로 700곡 정도를 써야 하는데 일주일에 1곡씩 써도 15년이 걸리는 대작업”이라고 했다. 문 목사는 대전신학대학 총장과 서울장신대학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기독교학회장과 한국실천신학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 이사장, 베아오페라예술원 이사장,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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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사 한 명에 신도 100명이 딱… 그래야 제대로 소통하지요”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에서) 17일 오전. 아주 잠깐, 서울 강남구 A빌딩 앞에서 멈칫했다. 요즘 세상에 교회는 금방 찾았다. 스마트폰이 재깍 알려준다. 근데 너무 ‘교회’스럽지 않다. 창문에 붙은 커다란 글씨는커녕 십자가도 안 보였다. 손바닥만 한 팻말 하나가 전부. 내부 역시, 50평 남짓. 정갈하되 단출하고, 소담하며 따뜻하다. 하긴, 그래서 더 김수연 목사(71)답다. 서울 강남구 ‘한길교회’ 담임목사인 그는 세간에선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로 더 낯익다. 전국에 학교마을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을 330여 개나 세웠다. 매주 방방곡곡을 누비다 보면 목회자 업무는 다소 느슨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김 목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무리 빡빡해도 주일엔 반드시 돌아온다. 교회에서 모든 피로를 잊고 평화와 안식을 찾는다”고 못 박았다. ―교회가 아담합니다. 너무 바깥 활동에 치중한 거 아닙니까. “허허, 그럴 리 있나요. 1987년 교회 창립한 뒤 허투루 운영한 적이 한시도 없습니다. 조그만 물품 하나도 제가 챙깁니다. 쓸고 닦는 것도 가족이 다 하죠. 30년 넘게 일부러 이 정도 규모로 유지했습니다. 수백 명씩 몰려와도 다른 교회 추천하며 신도 수를 조절했어요.” ―교세를 확장해도 모자랄 판에 줄이다니요. “그게 제 지론이에요. ‘Twenty families are enough(스무 가정이면 족하다).’ 4인 가정이면 80명, 조부모 합쳐도 120명. 목사 1명에겐 신도 100명 안팎이 딱 맞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라 하죠. 그 ‘말씀’이란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요. 목회자와 신도가 제대로 소통하려면 그 정도가 좋습니다. 괜히 덩치만 키워 위세를 떨치는 이익집단이 되면 안 돼요.” 실제로 한길교회는 예배 뒤 꼭 치르는 행사가 있다. 간이의자를 치운 뒤 식탁을 차린다. 그리고 다 함께 ‘점심 한 끼’를 먹는다. 시시콜콜 정담과 세상사는 얘기를 나눈다. 그 옛날, 대소사마다 모두가 모여들던 시골 마을처럼. ―미국 개척시대에 서부의 한 마을을 이끌던 목사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고생스럽진 않습니다, 하하. 양을 돌보는 목자가 더 맞겠네요. 한 마리마다 애정을 갖고 제대로 돌보는 겁니다. 목동은 쉴 만한 물가와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는 게 사명이죠. 목사도 마찬가지예요. 교회는 이웃과 지역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신앙공동체여야 합니다. ‘한길’이란 함께 신을 향해 걸어가는 하나의 큰길을 일컫는 거죠.” ―설교문도 하나하나 직접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하죠. 진솔하게 속내를 털어놓아야 신도들도 수긍합니다. 바빠서 밤을 새워도 단 한 자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습니다. 물론 매주 새로운 글을 쓰는 게 정말 어려워요. 똑같은 말만 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도 뭐든 목사가 본을 보여야죠.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래라 저래라 훈수만 두는 종교인은 세상에 필요 없습니다.” ―목회자들은 자주 인용하는 성경 구절이 있던데요.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입니다. 이웃과 나누면 언젠가 그 복이 돌아옵니다. 산간벽지를 찾아가 책을 나누는 ‘작은도서관…’ 운동도 그런 믿음이 바탕이 된 겁니다. 저 보세요. 사재고 뭐고 다 털어 ‘작은도서관…’에 쏟아부었습니다. 처음엔 주위에서 그러다 굶어죽는다고 걱정했어요. 하지만 지금껏 삼시 세 끼 챙겨먹고 마음도 풍족합니다.” ―요즘 특별히 자주 전하는 말씀도 있으세요. “음…. 아무래도 시국 얘기를 안 할 수 없겠죠. 안타깝게도 진영논리가 일반인들까지 물들였어요. 다 좋은데, 제발 상대를 존중하라고 당부합니다. 남의 말은 경청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 얘기는 들어주길 바랍니까. 그건 가족이라도 불가능해요. 아, 곁다리로 하나 더 덧붙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싹 다 지워버리라고. 함부로 말 퍼 나르고 타인 맘 아프게 하는 것만큼 헛된 일이 없습니다.” 문을 나설 즈음, 김 목사는 함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들려줬다. “뭐든 이웃과 나누는 맘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며. 그가 작은도서관 보급 활동을 통해 세상과 나눈 책 수백만 권이, 밥 한 끼가 머금은 온기 역시 그러할 터. 문득 한길교회 안 작은 십자가가 세상 어느 첨탑의 그것보다 커 보였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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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일 문여는 소태산기념관에 ‘평화 화두’ 담아”

    “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화두는 ‘평화’라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사회지도층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에서 알 수 있듯, 평화를 이루려면 ‘평등’이 전제가 돼야 합니다. 새롭게 건립한 원불교소태산기념관에는 그런 정신개벽의 이념이 깃들어 있습니다.” 원불교가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10년간 추진해온 서울 동작구 원불교소태산기념관이 21일 개관한다. 오도철 교정원장(사진)은 18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대종사께서 펼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소태산(少太山)은 원불교 교조인 박중빈 대종사(1891∼1943)의 호다. 기존 서울회관을 허물고 재건축한 소태산기념관은 10층 규모인 비즈니스센터와 원불교 서울교구청·한강교당으로 이뤄져 있다. 서울교구청·한강교당은 위에서 보면 원불교 상징인 일원상(一圓相), 측면에서 보면 솥을 형상화했다. 오 원장은 “정사각형 형태로 사람을 표현한 비즈니스센터와 함께 사람과 우주를 태극 띠로 묶은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소태산기념관은 2016년 열린 원불교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선포한 ‘정신개벽 서울선언문’을 실현하는 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을 선용하고 환경을 존중하는 상생의 세계, 강약이 진화하는 평화의 세계, 서로 감사하고 보은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기념관을 베이스캠프 삼아 교업을 세계화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원불교는 21일 개관식과 함께 서울교구청·한강교당 봉불식을 거행한다. 20일에는 소태산홀에서 원앙상블이 연주하는 봉불음악회도 개최한다. 이 밖에 원불교 선묵화 전시 ‘깨달음의 얼굴’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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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 통도사, 내달 창건일 앞두고 ‘괘불헌공’ 등 행사 다채

    올해 창건 1374년을 맞는 경남 양산시 통도사가 다음 달 7일 개산대재(開山大齋)를 앞두고 한가위부터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였다. 개산대재란 산문(山門)을 연 창건일을 맞아 여는 법회를 일컫는다. 선덕여왕 15년(646년) 자장율사가 영축산에 금강계단을 쌓아 부처 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음력 9월 9일이다. 이날 자장율사를 기리는 영고재와 법요식 등이 성대하게 열린다. 통도사에서는 추석부터 다양한 관련 행사가 펼쳐졌다. 13일 합동 차례를 시작으로 ‘괘불 조성 체험’ ‘가족과 함께하는 공연마당’ 등을 통해 사찰을 찾은 이들과 뜻싶은 시간을 가졌다. 16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는 사진 및 도자기 작품 특별전시, 경내를 가득 채운 국화로 꽃 공양을 올리는 국화장엄도 관람할 수 있다. 다음 달 5, 6일에는 대형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산문에서 괘불을 모시는 행사인 ‘영축삼보 이운’과 공양을 올리는 ‘괘불헌공’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6일 오후 1시엔 최근 가장 ‘핫’한 가수 송가인을 초청해 공연도 펼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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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낯선 땅에서 삶의 소용돌이를 마주하다

    ‘고급지다.’ 틀린 표현인 거 아는데, 굳이 이렇게 부르고 싶다. 이 소설, ‘…스럽다’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정희승 작가의 사진을 품은 외피도 근사하지만, ‘캉탕’은 작품 자체가 기품 있다. 저자로선 듣기 거북할 수 있겠으나, 살짝 지적 허영을 충족시켜 준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난해할 거란 선입견은 가지지 말자. 오히려 플롯은 꽤나 단출하다. 마음의 병 비슷한 게 생긴 주인공 한중수.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J의 조언을 듣고 여행을 떠난다. J의 외삼촌 핍이 사는, 대서양 어딘가 이름 모를 항구 캉탕으로. 그 낯선 땅에서 한중수는 생경한 사람과 풍경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 밋밋한 여정은 심연에 폭풍을 감추고 있다. 외지인에겐 당황스러운 제주 날씨를 닮았다. 특유의 습기를 머금은 채 부산스레 변하는 하늘처럼. 맑다가 흐리고, 거칠다가 여릿한 삶의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발목까지 차오른다. 스스로 물속으로 뛰어드는, 혹은 주저하는 갈림길에 서서. “미로와 같은 복잡한 행로, 근원을 알 수 없는, 예기치 않은, 대비할 수 없는 덮침. 나는 그런 것을 경계한다. 그런데 경계한다는 것은 예감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캉탕’의 또 다른 매력. 괜한 처연함에 빠져들지 않는다. 굵디굵은 문장이 낯간지러운 하소연에 그칠 수 있었던 자기고백을 묵직한 울림으로 바꿔 놓는다. 게다가 ‘모비 딕’과 ‘오디세이아’와 ‘성경’, 그리고 살짝 양념으로 뿌린 ‘그리스인 조르바’. 소설 속에서 어지러이 뒤섞인 텍스트가 어느새 한껏 버무려진 향연으로 흥을 돋운다. 의외로 끝자락엔 반전(?)도 숨어있는데, 별것 아닌 양 툭 튀어나오는 맛이 꽤나 야무지다. 책을 덮은 뒤 인터넷에서 ‘캉탕’을 뒤져봤다. 혹시 ‘깡땅’은 아닐까, 프랑스 어디쯤이 아닐까. 잠깐 범인을 쫓는 탐정 기분을 내며. 영 실마리를 찾지 못하다, 문득 다시 책을 손에 들어 본다. 뭔가 변했다. 처음부터 이리 무거웠던가. 얼마큼인진 모르겠지만, 마음 몇 그램쯤 뺏어갔을지도. 그럼 떠날 때가 돌아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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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성인영화계에서 벌어진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들[광화문에서/정양환]

    미아 칼리파. 26세 미국 여성. 생소하겠지만 서구에선 꽤 알려진 ‘셀럽’(명사)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약 1700만 명. 한 성인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라크에서 발생한 시위에도 그 이름이 등장했다. ‘칼리파가 정치인보다 낫다’는 피켓이 거리에 나섰다. “무능한 그들과 달리, 최소한 위안과 안식을 줬다”나. 그는, 포르노배우다. 칼리파는 2014년 데뷔(?)부터 화제였다. 하긴 스타 탄생이 시간에 구애받던가. 곧장 미 성인사이트에서 인기 순위 정상을 찍었다. 레바논 출신인 그는 특히 중동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몇 달 동안 10여 편을 찍은 뒤 돌연 은퇴했다. 텍사스대를 나온 그는 스포츠캐스터를 준비한단다.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끈 건 지난달. 수많은 언론이 그를 다뤘다.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 인디펜던트…. BBC 라디오는 주요 대담 프로에도 초대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미아 칼리파는 성산업(sex industry)에서 가장 성공한 배우다. 지금까지 그의 영상은 수십억 명이 시청했다. 그런데 받은 돈은 고작 1만2000달러(약 1460만 원)였다.” 누가 봐도 문제긴 하다. 젊은 여성이 그런 일을 감수하고 편당 140만 원쯤이라니. 안타깝고 속상하다. 반면 제작사는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사회적 비난이 폭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지지와 격려의 물결이 거대한 파도로 번졌다. 칼리파는 여기에 마지막 눈깔을 그려 넣는다. “다시는 저처럼 힘없는 여성 희생자가 나오지 않길 바랍니다.” 과연 그럴까. 실은 이후 분위기는 다소 묘하다. 일단 칼리파가 피해자가 맞느냔 반론이 나왔다. 몇 년 전 직접 계약서를 썼고 강제성도 없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지우고 싶은 과거”라더니, 지금도 유명세를 십분 활용한다. 개인 SNS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게재물이 넘쳐난다. 그 덕에 SNS로 버는 수익만 1년에 200만 달러가 넘는다. 그가 단박에 인기를 얻은 과정도 짚어보자. 중동계였던 칼리파는 포르노에 ‘히잡’을 쓰고 나온 최초의 배우였다. 또 그걸 저질농담 소재로 삼았다. 자신은 가톨릭 신자면서. 이 노이즈마케팅이 성공의 핵심 비결이었다. 당연히 이슬람 사회는 난리가 났다. 하지만 그는 타인의 종교를 모독한 전력을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SNS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사진을 띄웠다. 완벽한 ‘내로남불’이다. 물론 이런 정황이 구질구질한 성산업을 옹호해줄 이유가 되진 않는다. 굳이 따진다면 그쪽이 훨씬 거대 악이니까. 하지만 때론 위선(僞善)에 받는 상처가 더 크다. ‘을 코스프레’에 속아 응원했는데, 속살은 갑이라면 배신감은 그지없다. 게다가 이 소란, 서로에겐 수지맞는 장사였다. 출연 영상은 다시 조회수가 치솟았다. 칼리파는 1400만 명이던 팔로어가 보름 만에 300만 명 남짓 늘었다. 광고 제의도 쏟아졌다. 그동안 진짜 보통사람은? 열심히 쌈짓돈 쓰고 구독자도 올려줬다. 이쪽저쪽 편 가르고 혈압만 올려댔다. 그렇게 을과 을이 피 터질 때 갑과 갑은 짭짤했다. 제정신 차리지 않는 한, 세상은 언제나 이 모양이다. 정양환 문화부 차장 ray@donga.com}

    • 20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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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으로 건강한 미래세대 계승할 것”

    “옥한흠 목사를 생각하며 복음으로 건강한 미래를 세우는 세대 계승을 이뤄 나갈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청렴한 목회자였던 고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1938∼2010)를 기리는 기념예배가 2일 경기 안성시 사랑의교회 수양관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 사랑의교회(담임목사 오정현)가 주최한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 9주기 기념예배’는 옥 목사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고인의 철학과 비전을 나누는 자리였다. 주관은 국제제자훈련원과 은보옥한흠목사기념사업회, 제자훈련목회자네트워크(전국대표 이기혁 목사)가 맡았다. 4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예배는 이기혁 대전새중앙교회 목사가 사회를, 박정식 은혜의교회 목사가 대표 기도를 담당했다. 고인이 생전에 함께했던 사랑의교회 포에버찬양대가 특별 찬양을 했다. 오정현 목사는 이날 “평생의 스승으로 사랑받고 사랑했던 옥 목사의 9주기 기념예배에 마음을 모아줘 감사드린다”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 사는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착한 양이 되고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착한 목자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인의 부인인 김영순 여사도 인사말을 통해 고인이 떠난 지 9년이나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함께 예배한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1938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옥 목사는 1978년 서울 서초구에서 사랑의교회를 개척해 크게 성장시켰다. 2003년 오 목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정년을 5년이나 앞당겨 은퇴했다. 당시도 대형 교회의 세습이 사회적 논란이었던 시기라 이 결정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고인은 생전에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지도자로 평신도 신앙 훈련에 열정적인 목회자였다. 균형 잡힌 성경 해석과 기품 있는 설교로 ‘설교의 모범답안’이라고도 불렸다. 2005년 CBS가 한국기독교선교 120주년을 맞아 시행한 조사에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 부문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오 목사는 “옥 목사가 주창해 1978년부터 지금까지 제자 훈련 1만3000여 명, 사역 훈련 1만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며 “고인의 사랑과 기도를 지렛대 삼아 일사각오로 유지를 더욱 굳건히 하겠다”고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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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괜찮아, 성장통이야’… 열세 살의 뜨거운 여름

    실은, 별일이 일어난 건 아니다. 그해 그 여름방학. 열세 살 비나는 심기가 불편했다. 단짝 오스틴은 한 달이나 축구캠프로 떠나 버리고. 딱히 할 일이 없던 비나는 외롭고 쓸쓸하다. 하지만 친구의 부재가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줄이야. 그리고 돌아온 친구. 하지만 왠지 서먹한 기분을 감출 수 없는데…. ‘올 썸머 롱’은 정말 사건이랄 게 없다. 주변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일뿐이다. 심심해서 단짝의 누나랑 시간을 보내고, 언제나 자신을 위로하던 음악을 듣는다. 하지만 우린 알지 않나. 겉으론 아무 일 없어도 10대의 하루는 천변만화한다. 그리고 ‘어느새 벌써’ 아이들은 한 뼘씩 쑥쑥 자라난다. 이 그래픽노블은 참 정겹다. 오랜만에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처음 읽었던 기분을 떠올렸다. 행간에 숨은 아이들의 맑은 감정이 당차고 보드랍다.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아이스너상 수상자라더니 역시 작가의 내공이 만만찮다. 이 여름이 끝나고 나면 비나와 오스틴은 또 어떤 청춘으로 커 나갈까. 부제인 ‘나의 완벽한 여름’이 세상의 모든 청소년에게 허락되는 세상이 됐으면. 문득 비나의 기타 연주가 들어보고 싶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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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상은 과학이자 철학… 종교를 떠나 이 시대에 꼭 필요하죠”

    “명상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과학이자 철학이에요. 한 사람이라도 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시작해야 합니다. 이 좋은 걸, 종교가 걸림돌이 돼 못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어요?”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세계명상센터 참불선원. 가본 적은 없어도 들어는 봤다는 은마아파트 인근에 있는 선원은 아파트만큼 낡은 건물인데도 왠지 쾌적했다. 살짝 과장하자면, 깊은 산중 사찰에 들어선 기분이랄까. 선방(禪房)에서 만난 참불선원장 각산 스님(59)의 “빈객(賓客) 덕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서”란 농도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실은 스님이 7월 한국명상총협회를 창립하고 회장까지 맡았다는 소식은 다소 의아했다. 한국 불교 명상의 보급에 앞장서 온 그는 이미 국내외에서 세계적인 명상 수행자로 입지가 탄탄하다. 그런데 굳이 종교를 내세우지 않고 명상 모임을 만든 이유가 뭘까. 그걸 또 스님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속세에서 치를 마지막 책무”라고까지 했다. ―거두절미하고 협회는 왜 만든 겁니까. “경북 영주에 있는 한국문화테마파크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의뢰한 적이 있어요. 뜻이 좋아서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중간에 무산돼 버렸습니다. 참여 기업 중 하나가 ‘종교적 색채’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다는 겁니다. 서양에선 세계적 기업들이 명상 코스를 채택 못 해서 안달인데, 이게 뭔가 싶습디다. 그럼 좋다, 종교 신앙 상관없이 명상을 제대로 보급할 기구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죠.” ―참가 인사들이 무척 다채롭습니다. “한국자연의학연구원장 이시형 박사, 정신건강 전문의 전현수 박사 등 분야가 다양합니다. 손진익 엘베스트그룹 회장과 김선오 경남자동차산업협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도 다수 참여했죠. 다들 종교는 물론 명상을 접한 출발점도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이 박사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예요. ‘이 좋은 걸 모두와 나누자’란 마음이 딱 하나의 공통분모입니다. 앞으로 목사님 신부님도 적극 영입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되나요. “일단 이달 29∼31일 ‘대한민국 명상포럼’을 개최합니다. 명상도 종교나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전통을 지니고 있어요. 세계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았습니다. 이에 발맞춰 함께 연구하고 모색하는 포럼을 통해 올바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취지지요. 다양한 방식을 소개하는 ‘명상 뷔페’라고나 할까요. 이후엔 저변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겠죠. 명상 지도자 양성, 한국명상수련원 건립 등이 핵심 과제입니다. 뭣보다 청년과 10대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제도 마련에 집중하려 합니다.”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에 관심이 커 보입니다. “당연하죠. 나라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청소년이나 20대는 너무 스트레스가 극심합니다. 외부 요인도 크지만 심적인 여유가 없어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명상은 일종의 놀이교육도 될 수 있어요. 또한 학습능력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되죠. 영주에 세울 한국명상수련원도 비슷한 취지입니다. 프랑스 테제공동체 같은 수행공동체를 통해 힐링을 전하고 싶습니다. 종교와 관련 없이 열린 수행 공간을 제공하는 거죠.” ―협회가 명상을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지혜입니다. 명상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잠깐씩 호흡에 집중하면 됩니다. 생각을 멈출 순 없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자기만의 언어로 좋은 생각을 하는 거죠. 5분, 10분만 하면 고요하고 시원해집니다. 자연스레 안목과 통찰이 깊어집니다. 상대방을 바라보고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어요. 그럼 삶의 지혜가 늘어나는 거죠.” ―앞으로도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벌여 놓은 게 많긴 합니다, 허허. 하지만 제 목표는 얼른 ‘흔적’을 지우는 겁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출가자의 본분으로 돌아가야죠. 너무 속세에서 포교 활동을 오래 했어요. 총협회도 몇 년 내로 안정되면 당장 직함을 벗어던질 겁니다. 덕망과 인품을 갖춘 분들이 많아요. 20여 년 달려왔더니 저도 ‘번 아웃 증후군’이 생겼어요. 공익을 위해 나서긴 했지만, 이제 잘 마무리하고 싶을 뿐입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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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무미건조한 리듬으로 읊조리는 실험적 문장들

    “한 문장도 쓸 수가 없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문장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능력만큼은 상실하지 않은 것 같다. 한 문장도 쓸 수가 없다는 문장만큼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러니 앞의 문장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견딜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것은 한 문장도 쓸 수가 없다는 문장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단편 ‘한탄’에서) 점점 늪에 빠져드는 착각이 든다. 한 작가의 소설집 ‘연대기’는 문장마다 부비트랩이 설치돼 있다. 딱히 폭발하진 않는다. 피 흘리는 외상은 없다. 근데 피해가기 힘들다. 겨우 몇 줄 읽다가 허우적거린다. 또 몇 페이지 넘기다 고꾸라진다. 어떤 단편은 도대체 뭘 읽은 건지 몽롱해진다. 이게 작가의 의도라면 참으로 얄궂다. 물 한 통 없이 사막을 마주했다고나 할까. 해갈이 급선무인데 피부가 먼저 타들어간다. 소설 8편이 아니라, 기나긴 서사시 8마디를 읽은 기분. 그렇게 시집(?) ‘연대기’는 모래가 돼 스르륵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무미건조한 리듬의 촉감만을 남긴 채. “아무도 나의 행복을 염탐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의 불행을 염탐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도 나를 염탐하지 않았다.”(단편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에서) 그래서인가. 시로 펄떡거리던 소설은 문득문득 에세이로도 폐부를 찌른다. 상처와 적의를 함께 드러내고, 봉합과 방치를 구분하지 않는다. 딱히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속박을 불편해한다. 그저 퍼덕거리다가 웅크리다가. 이런 비릿한 생경함을 만나는 건 언제나 반갑고 고맙다. 다만 한 작가로 특정할 수 없는 아쉬움도 입가에 맴돈다. 이 정서, 그리 낯설지 않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연장선이랄까. 그들은 부정하겠지만, 출구 없는 지식인의 침잠은 이제 좀 식상하다. 기껏 내러티브를 지웠다지만 그 역시 벌써 정형화한 종착역이 아닐는지. 언제까지 우리는 ‘하수구’만 들여다봐야 할까. 이제 좀 청명한 바람에 땀도 식히고 싶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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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종정 “한일 정치인 대립 벗어나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인 진제 스님(사진)이 13일 “한일 양국 정치인은 대립을 벗어나 중도를 지켜 달라”는 내용의 교시를 발표했다. 조계종 종정이 외교 현안에 대한 교시를 내린 건 매우 이례적이다. 진제 스님은 이날 ‘국난극복을 위한 교시’에서 “한일 양국 정치인은 상대적 대립의 양변을 여의고 원융무애(두루 통하여 융합하는 불교의 이상적 경지)한 중도의 사상으로 자성(自性)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스님은 또 “불교는 국가와 민족의 구분 없이 자비를 실현하고 생명평화를 보존하는 마지막 보루”라며 “한중일 삼국 불교는 한일 양국의 존엄한 안보와 경제를 위해 부처님께 정성으로 축원하자”고 덧붙였다. 조계종은 이와 함께 전국 사찰에 ‘한반도 평화와 국난극복을 위한 불교도 축원’의 현수막을 부착할 방침이다. 10월 열리는 한중일 불교대회에서 평화결의문 채택에 힘쓸 계획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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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진짜 교훈은 빈틈없는 대비… 북핵, 이상주의 버리고 냉엄하게 봐야”

    “이순신 장군은 전쟁 중에도 백성의 생업을 챙기셨습니다. ‘갑질’을 하는 우방이라도 배려를 아끼지 않으며 승리를 위해 힘을 결집했습니다. 지금 정치지도자들은 장군의 말은 본받자고 얘기하면서 정작 뭘 보고 배운 걸까요?”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77·사진)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 그레이스홀에서 11일 열린 주일예배에서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8·15 광복절 74주년을 앞두고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이란 재앙이 온다’는 심정에서 이번 설교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동학혁명과 임진왜란을 자주 언급합니다. 두 역사에서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점은 철저하게 전투를 준비하고 적을 명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심각한 위협은 ‘북한의 핵 위협’입니다. 냉엄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대처해야 합니다.” 홍 목사의 이번 설교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는 지구촌교회 원로인 이동원 목사, 작고한 옥한흠 하용조 목사와 함께 ‘복음주의의 네 수레바퀴’로 불리는 개신교 원로다. 게다가 1993년 북한을 돕기 위해 최초로 설립한 민간단체인 남북나눔 이사장으로 활동해왔다. 1500억여 원 상당의 분유 및 의약품 등을 지원했고 방북 횟수만 60회가 넘는다. 때문에 ‘종북 좌파’란 오해까지 받기도 했다. “6·25전쟁을 겪었고 군사독재도 겪었지만 지금 상황 역시 매우 심각합니다. 정치권도 사회도 원로의 지혜는 사라지고 이상주의만 넘쳐나요. 특히 현 정부는 전문가는 보이지 않고 ‘전공자’만 목소리를 높입니다. 전공자는 현실을 모르고 실험할 뿐이에요. 진짜 책임을 지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홍 목사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며 두 달 가까이 고민했다고 한다.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공부도 새로이 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대한민국을 ‘불행의 역사’만 점철됐다고 보는 편협한 시각”이라며 “광복 뒤 70여 년 만에 이만큼 나라를 다진 ‘기적의 역사’를 부정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치의 요체는 ‘국태민안(國泰民安)’입니다. 위정자라면 국민이 평안하게 사는 걸 목표로 해야 합니다.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자꾸만 드러내는 정치는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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