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서영아 본부장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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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100세 시대를 생각합니다.

sya@donga.com

취재분야

2024-10-29~202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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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년 영업맨의 성공신화…“이젠 ‘남아공 스토리’ 향해 강펀치”[서영아의 100세 카페]

    윤성혁 삼성전자 고문(60)은 32년간 삼성전자 글로벌 영업의 최전선을 누볐다. 도합 세 차례 16년간 미국에서 일하는 동안 삼성 TV는 사상 최초로 소니를 뛰어넘어 세계 1등이 됐고 미국에서 삼성폰이 아이폰의 아성을 뚫고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퇴직 4년 전부터는 삼성 아프리카 총괄 겸 남아프리카공화국 법인장을 맡아 저조하던 실적을 몰라보게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 모든 ‘흥분과 도전’의 시간들은 2020년 12월 어느 날, 본사에서 걸려온 국제전화 한 통으로 막을 내렸다.○‘현문현답―현장에 문제가 있고 현장에 답이 있다’ 그로부터 딱 1년 만인 지난해 말, 그는 책 한 권을 냈다. ‘위기인가? 삼성하라!’(봄빛서원)란 제목이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부터 물었다.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과정을 쓴 책은 많지만 해외 영업 현장 최전선의 기록들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제게 많은 가르침을 준 선배들의 얘기도 별로 알려진 게 없더군요. 이들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냈는지, 삼성, 나아가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세우기 위해 어떻게 헌신했고 그 과정에서 후배들을 어떻게 잘 이끌어줬는지 남기고 싶었습니다. 밖에 알려진 삼성의 모습 말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쓴 많은 노력들을 조명해보고 싶었지요. 제목을 직설적으로 붙인다면 ‘세계를 개척한 삼성의 영업비밀’쯤 됐을까요.” ―그 비밀이 뭔가요. “미국에서 협업했던 IBM 동료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신 회사는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달려들어 대책 수립에 집중하더라’고. 그게 삼성 영업의 힘입니다. 삼성 영업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현장 경영의 철학이 있습니다. ‘현문현답, 즉 현장에 문제가 있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조직이 잘되려면 아래와 위가 수레바퀴 돌아가듯 잘 연결돼 움직여야 합니다. 특히 조직에서는 뭔가 이상할 때 ‘워닝’(경고)해주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영업이 그 역할을 하죠. 다만 위에서 그 워닝을 알아채고 캐치하는 사람이 있어야 손바닥이 마주칠 수 있죠.”○복싱 도장 등록부터 시작한 인생 2막 2020년 말 귀국해 부인의 학교가 있는 세종시에 정착했다. 11년간의 임원 이력에 종지부를 찍고 2년간의 ‘고문’ 직함을 얻었다. 우선 귀국 다음 날(정확히는 2주간의 자가 격리를 마친 다음 날) 집 근처 복싱도장에 등록했다. 한 남아공 가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들처럼 그를 따르는 남아공의 인기 래퍼 ‘캐스퍼’가 셀리브리티 스포츠의 일환으로 라이벌과 복싱 경기를 할 예정인데, 그 사전 경기에서 은퇴한 남아공 챔피언을 상대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때를 대비해 최소한의 체면을 세우고자 복싱을 배우는 것. 스파링을 하며 복싱과 영업의 닮은 점을 생각한다. 뱃살이 빠지고 몸이 가벼워진 건 덤이다. 그리고 귀국 비행기에서 구상한 자신의 32년을 총괄하는 책 쓰기에 착수했다. 당시 삼성 아프리카 판매망은 만년 적자에서 벗어나 처음 이익을 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고 있었다. “남아공을 떠나던 날. 호텔까지 찾아온 직원들이 눈물 흘리며 ‘당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아프리카를,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책으로 써 달라’고 말해 왔어요. 술 마시면서 제가 말해준 일화를 반드시 넣으라는 조언도 있었지요.” 1년간 그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밥 짓고 커피 내리고 부인을 깨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인이 학교에 나가면 복싱 도장까지 1.6km를 뛰어간다. 1시간 반 동안 줄넘기와 섀도복싱, 스파링을 하며 땀을 흘리고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한 뒤 책 쓰기에 매달렸다.○끊겼던 인맥과 가족의 복원 “책을 쓴 건 너무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의 기억을 다 쏟아내고, 그걸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엮는 방법을 고민하고 읽기 쉽게 글을 다듬고…. 하다 보니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많더군요. 마음이 정리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미래 윤곽도 잡혔습니다. 처음엔 500쪽 분량을 썼고 다섯 번 다시 썼습니다. 첫 원고와 비교하면 제 글 쓰는 기술도 늘었죠.” 그렇게 1년간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사실 빨리 어디라도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초조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주변에선 중국 업체 입사를 권하기도 하고 삼성 관련 일을 찾아보라거나 대학 연구교수 자리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 약속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연말에 책이 나왔는데 반응은…. “선배들은 ‘너 필력 대단하다. 언제 이런 걸 준비했냐’고. 저를 그저 은퇴한 회사원으로만 알던 권투 도장 분들로부터도 인사를 많이 받았어요. ‘삼성에 대한 이미지가 180도 바뀌었다’는 얘기들을 하세요. 약간의 ‘갑’ 이미지도 있었는데 이렇게 열심히, 힘들게 ‘을’처럼 일했느냐고….” 페이스북에 한글과 영어로 책 발간 소식을 올렸더니 미국과 남아공의 옛 동료들이 200여 개의 댓글을 달았다. 특히 남아공에서는 영어로 번역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인세 수입은 전액 넬슨만델라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지난 1년은 ‘자유인’으로서 인간관계를 복원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평생 이렇게 많은 시간을 아내와 둘이 보낸 적이 없어요. 무척 행복합니다. 20년간 해외생활로 소원했던 친구들과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어색해도 20, 30년 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니 각계각층에서 중요한 일을 한 친구들이 무척 많아요. 원자력발전, 수소발전, 투자 자산운용 하는 친구까지 골고루 있어요. 이 점(點)들을 연결하면 뭔가 될지도 모르겠구나….”○마지막 근무지 남아공에 공헌할 길 찾아 ―앞으로의 계획은…. “4년간 열정을 쏟아부은 남아공에 공헌할 방법을 궁리 중입니다. 한국에는 남아공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특히 아프리카에 관계망을 가진 사람은 드물죠. 정부 고위층과 실무진과의 친분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굉장한 자산인데요. 중국이나 일본이라면 당장 모셔갈 텐데요. “남아공의 심각한 전력난을 좀 해결해 보려고요. 한국에는 원자력발전 기술이 있어요. 소형모듈원전(SMR)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남아공에서 일하면서 터득한 노하우인데, 제게는 그곳 정부를 설득하고 일이 되게끔 만들 길이 보입니다. 나아가 남아공은 그린수소를 만들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어요. 한국이 필요로 하는 신재생에너지를 값싸게 얻을 수 있죠. 남아공의 환경적 경쟁력과 한국의 원자력, 수소기술력을 조합해서 양국이 ‘윈윈’하는 길을 찾아보자는 구상입니다. 제 나머지 인생을 걸 만큼의 일이라고 봐요.” ―너무 원대해서 조금 걱정되는데요. “2018년 만델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킬리만자로 등반을 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고산병 탓에 많은 동료들이 중도 포기했지만 끝까지 남은 사람들도 있었죠. 최고봉에 오르려면 여럿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 오르기는 힘들어도 하산은 빠르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누구나 정상에 올라가면 언젠가 내려가야 한다는 것도요. 우후루피크에 올랐을 때 우린 해냈다는 기쁨으로 얼싸안았지만 때가 되어 내려왔지요.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해볼 만한 싸움에서 이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수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전 지금 또 다른 산을 바라보고 있어요. 구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생각만 해도 마구 가슴이 뜁니다.” 그는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라면서도 하루빨리 남아공에 돌아가 사업을 추진할 날을 꿈꾼다. 남아공을 배경으로 펼쳐질 ‘성 윤’의 인생 2막, 그 심장 박동 소리가 전해져올 듯하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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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직연금 적립 255조 ‘폭풍성장’… “디폴트옵션이 연금부자 주춧돌”

    “내 계좌, 이달에 50만 찍었다.” 미국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백만장자로 퇴직하기’ 붐이 일고 있다. 은퇴 전 퇴직연금 계좌에 100만 달러(약 11억8000만 원)를 찍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진행상황을 나누거나 더 빨리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실제로 꿈을 이룬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피델리티자산운용에 따르면 자사가 운용하는 계좌 중 지난해 2분기(4∼6월) 기준으로 401K 퇴직연금 계좌에 금융자산 100만 달러 이상을 확보한 근로자는 41만2000여 명에 이른다. 개인형 퇴직계좌(IRA) 잔액이 100만 달러 이상인 사람도 34만1600여 명이다. 한편 10년간 401K에 가입한 직장인들의 잔액 평균은 40만2700달러였다.○쏟아지는 ‘401K 백만장자’미국인들의 ‘빵빵한’ 퇴직연금 계좌를 논할 때 ‘401K’를 빼놓을 수 없다. 401K는 한국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유사하다. 근로자와 기업주가 일정한도 내에서 소득공제와 비과세 혜택을 누리면서 퇴직계좌에 연금을 적립하면 근로자 은퇴 후에 낮은 소득세율로 인출할 수 있다. 직원 적립금의 최대 100%를 회사가 매칭옵션으로 적립해준다는 점도 특징. 예컨대 근로자가 매달 500달러를 은퇴자금으로 적립하면 회사가 500달러를 추가로 적립해주는 식이다. 401K란 이름은 근로자 퇴직소득보장법 401조 K항 규정에서 유래했다. 401K의 자산규모는 2019년 현재 6조4000억 달러로 미국 전체 은퇴자산의 20%를 차지한다. 401K가 미국 근로자들의 대표적인 노후 보장수단으로 정착되기까지는 몇 가지 전기가 있었다.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으로 자동가입제도가, 2007년 계좌를 근로자 대신 금융사가 운용할 수 있게 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 옵션)’가 도입됐다. 이에 따라 은퇴시기에 맞춰 투자자산의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 시장도 급성장했다. 미국 401K 자산 중 TDF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30%를 넘어섰고 2025년 45%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덕에 미국의 막대한 연금자산이 증시로 흘러들어 자본시장이 성장하고 은퇴자 수익률도 높아지는 선순환이 이뤄졌다.○국내선 2015년에야 위험자산 비중 높여2019년 퇴직연금 통계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DC 계좌 평균 적립금은 약 2000만 원으로 미국 DC 평균 적립금 12만6083달러(약 1억4900만 원)에 비해 크게 적다. 이런 수치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제도적 차이에 있다. 한국은 퇴직연금 중도해지가 가능해 평균 근속연수가 5,6년에 불과하다. 미국 직장인은 회사를 옮기더라도 퇴직연금계좌를 유지해야 해 결과적으로 장기투자를 통한 자산형성 효과를 얻는다. 여기에 수익률 차이도 작용한다. 김근호 미래에셋자산운용 연금마케팅 1본부장은 첫째, 미국은 기업주의 매칭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는 점을 든다. 미국 직장인 본인과 기업이 내는 적립금을 합치면 연평균 13.9%에 이르지만 한국은 8.3%에 불과하다는 것. 둘째, 한국에서의 실적배당투자는 국내채권혼합형(국내주식 40%+국내채권 60%) 일변도로 TDF 펀드 활성화 이전에는 글로벌 분산투자가 되어 있지 않았다. 셋째, 미국은 2007년부터 디폴트 옵션이 도입돼 퇴직연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사실 한국의 퇴직연금은 2005년 12월 시행됐으니 출발부터 늦었다. 당시 ‘가입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 DC형 가입자라 해도 주식 비중 40%가 넘는 펀드는 투자할 수 없었다. 2012년에 DC 적립금의 40% 한도 내에서 위험자산 투자가 허용됐고 2015년에 70%로 확대됐다.○디폴트 옵션, 퇴직연금시장 지각변동 예고한국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20년 말 기준 255조5000억 원으로 해마다 ‘폭풍 성장’ 중이다(표 참조). 이르면 6월 도입되는 ‘디폴트 옵션’ 제도는 퇴직연금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윤영호 금융투자협회 정책지원본부장은 “(디폴트 옵션은) 퇴직연금제 도입 이후 가장 큰 제도 개선”이라며 “금융취약계층도 연금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다만 디폴트 옵션을 도입한 이유는 분산투자와 장기투자를 통한 수익률 제고인데, 원리금 보장상품이 주요 선택지에 들어 있는 등 아쉬운 측면이 있다”며 “향후 가입자 금융교육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글 싣는 순서1. 자율 주행하는 펀드2. 기지개 켜는 한국 퇴직연금 3. 자산-정기수입 TIF 시장도 시동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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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 떼도 알아서 굴러간다… 수익률도 고공비행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고용 불안과 고령화…. 직장인들의 미래는 그저 불안하다. 이런 가운데 퇴직연금, 그중에서도 타깃데이트펀드(TDF)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퇴직연금 자산운용 시장은 지난해 시중자금 6조 원을 빨아들였다. 이 중 58%인 3조5000억 원이 TDF에 들어왔다. 여기에 더해 이르면 6월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디폴트 옵션 도입이 불붙은 퇴직연금 자산운용 시장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전망한다. 3회에 걸쳐 한국 TDF 현황을 살펴본다.》○퇴직연금=쥐꼬리 수익률?직장인들의 소중한 노후를 지켜줄 퇴직연금(DB·DC·IRP) 적립액은 2020년 말 기준으로 255조5000억 원에 달한다. 2015년 말 126조3000억 원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문제는 쥐꼬리 같은 수익률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확정급여형(DB)의 최근 1년 평균수익률은 1.67%, 확정기여형(DC)도 2.18%에 그쳤다. 2021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2.5%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론 마이너스인 셈이다. 장기수익률도 미미하긴 마찬가지다. DB형과 DC형의 최근 10년 평균수익률은 각각 2.48%, 2.77%. ‘퇴직연금=쥐꼬리 수익률’이라는 얘기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보다 89.3%에 달하는 원리금 보장상품 편입비율 탓이다. 직장인들은 평소 퇴직연금 계좌에 쏟을 시간도, 관심도 부족하다. 여기다 “원금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절대 손해 볼 일 없다’는 예·적금형 상품을 택한다. 물가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하며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이런 퇴직연금 시장의 분위기를 바꿀 만한 상품으로 TDF가 관심을 끌고 있다. TDF는 투자자가 미리 정한 은퇴 시점(Target Date)에 맞춰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의 투자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산배분 펀드를 말한다. 자산배분과 생애주기별 운용을 통해 일상과 본업이 바빠 은퇴 자금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직장인을 대신해 연금 운용을 도와주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지난해 자산운용 시장에 새로 들어온 6조 원 중 절반이 넘는 3조5000억 원이 TDF에 투자됐다. ○TDF에 천군만마 ‘디폴트 옵션’올 6월부터는 TDF가 더욱 힘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9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퇴직연금에 대한 ‘디폴트 옵션’ 도입이 결정됐다. 시행 시점은 법률안 공포일로부터 6개월 후. 디폴트 옵션은 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가입자로부터 운용 지시가 없으면 사전에 미리 정한 방법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가입자의 무관심으로 연금계좌가 무작정 방치되는 사례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가장 수혜를 보는 상품으로 TDF가 꼽힌다. 미국에선 2006년 연금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디폴트 옵션이 도입됐다. 이후 TDF 시장은 연 25% 이상 성장했다. 이어 영국(2008년), 호주(2013년) 등도 디폴트 옵션을 도입했다. TDF는 투자자가 설정한 은퇴 목표 시점에 맞춰 생애주기 변화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게 된다. 마치 비행기의 자동항법 장치나 자율주행차처럼 투자자의 연금 운용을 편안하게 돕게 된다. TDF 상품명 뒤에 붙은 네 자리 숫자는 은퇴 목표 시점을 가리킨다. 일명 ‘빈티지’라 불린다. 통상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은 낮추고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은 높이게 된다.○복리로 늘어나는 펀드 수익률 자산운용업계가 지난 3, 4년 동안 쌓아온 TDF 상품의 성과는 고무적이다. 예컨대 지난해 ‘KB온국민TDF2055증권투자신탁’은 18.07%의 수익률을 냈다. 최근 3년 데이터가 있는 TDF 중 ‘미래에셋전략배분TDF2045’는 3년 누적수익률이 67.8%(2021년 12월 말 기준)로 안정적인 성과를 보여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TDF 순자산 점유율 1위는 미래에셋자산운용(3조5116억 원), 2위는 삼성자산운용(1조6867억 원), 이어 한국투자신탁운용(9862억 원) 순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19년 말에 수탁액 1위에 오른 뒤 2, 3위와 뚜렷한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한국형 ‘글라이드 패스’김근호 미래에셋자산운용 연금마케팅1본부장은 “2020년 코로나 사태 직후가 변곡점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해 3월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2월 고점 대비 30.7%, 코스피는 33.7% 떨어졌다. 모두 망연자실해 있었다. 그는 “시시각각 13개 해외법인의 공식 코멘트를 모아 하루 2번 이상 판매 회사에 제공하면서 미래에셋 TDF에 대한 신뢰를 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케팅 부서 바로 위층에 TDF와 해외펀드 운영 부서가 있어 시장 상황에 빠른 판단과 대처가 가능했다”고 귀띔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국내 TDF 운용사 중 유일하게 자체 개발한 글라이드 패스(자산배분곡선)를 사용해 독자 운영하고 있다. 연금 투자자들 특징은 리스크 회피 성향이 크면서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원한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퇴직 연령대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 외국인들의 생애 주기에 맞춘 자산배분 프로그램은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TDF 포트폴리오에 장기 투자에 적합한 부동산·인프라자산 등을 편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변화의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미래에셋, 급락장서 선방… 변동성 낮고 고수익 강점”작년 TDF 유입액 1조8000억 ‘국내 절반’류경식 미래에셋운용 연금마케팅부문대표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잇달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연금펀드 수탁액 10조 원을 달성했고, TDF 수탁액은 2019년 국내 1위로 올라선 이래 독주세가 뚜렷하다. 류경식 미래에셋자산운용 WM연금마케팅부문대표를 인터뷰했다. ―연금펀드 수탁액이 10조 원을 넘었습니다. 한국 시장 전체 수탁액 36조9000억 원의 4분의 1을 운용하는 거군요. “2010년 말 1조2000억 원 규모였던 것에 비하면 10년 남짓한 기간에 8배 이상으로 성장한 셈이죠. 성장을 이끈 상품은 ‘미래에셋 TDF시리즈’입니다. 지난해만 1조8000억 원이 유입됐습니다. 업계 전체 TDF에 3조8900억 원이 들어왔으니 근 절반이 미래에셋을 찾은 것이죠.” ―왜 미래에셋에 자금이 몰릴까요. “운용성과가 좋고 변동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미래에셋전략배분TDF2045’는 최근 3년 수익률이 67.8%(지난해 12월 말 기준)로 동일 유형 상품 중 가장 뛰어납니다. 반면 같은 기간 변동성은 가장 안정적입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초기 미국과 한국 증시가 모두 30% 넘게 하락했지만 이 상품은 21% 손실에 그쳤습니다. 또 원상회복되는 데 걸린 시간도 코스피가 195일, S&P500이 181일 걸린 데 비해 이 상품은 150일이었습니다.” ―TDF에 처음부터 국산 ‘글라이드 패스’를 도입하는 등 독자적으로 접근한 게 눈에 띕니다. 초기 시장에서는 고전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초기에 상품을 선보일 때는 기존 펀드와 다른 운용 방식을 택해 판매사나 투자자들이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닥치자 극심한 변동성 장세가 나타났는데 미래에셋이 성과를 실제로 보여주면서 판매사와 투자자들의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100세 시대 노후 준비의 중요성을 논한다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옛 은퇴연구소)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간 연금과 노후 준비, 투자 등에 대한 교육에 꾸준히 매진해온 점도 돋보입니다. “미래에셋은 설립 초기부터 연금과 자산 운용을 강조해왔습니다. 저성장과 고령화의 시대, 노후 준비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죠. 앞으로 TDF, 타깃인컴펀드(TIF) 등 글로벌 우량 자산에 분산 투자해 은퇴 자산의 적립에서 인출까지 관리할 수 있는 종합 연금 솔루션을 고객들에게 제공할 것입니다.”글 싣는 순서1. 자율 주행하는 펀드 2. 기지개 켜는 한국 퇴직연금 3. 자산-정기수입 TIF 시장도 시동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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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노동꾼 나락서 수십억 자산가로… “우연히 읽은 마케팅 책이 인생 바꿔”[서영아의 100세 카페]

    유튜브 추천으로 그의 영상을 접한 건 꽤 오래전이다. 은퇴를 앞둔 40, 50대를 대상으로 부동산 관련 재테크, 건강, 1인 지식창업 등의 소재를 열심히 다루는 유튜버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집 한 채 가진 부부가 노후 주거와 현금 흐름을 동시에 확보할 방안을 케이스별로 제시하거나 자신이 소규모 원룸빌딩을 짓고 분양하는 과정을 수개월에 걸쳐 공개하는가 하면, 단식으로 두 달 만에 18kg 감량한 뒤 신체나이가 27세로 돌아간 비결을 공유하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 ‘단희TV’를 운영하는 이의상 단희캠퍼스 대표(55) 얘기다. 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관심은 다른 계기로 커졌다. 그가 40대에 겪은 개인사를 털어놓은 글들이 유튜브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2015년 무렵부터 블로그를 통해 공개했던 내용인데, 이런 식이다.○국밥값 3500원 아껴야 했던 서럽던 40대 유난히도 추웠던 12월 어느 날 저녁, 40대 초반이던 그는 서울 영등포시장 부근의 국밥집 앞에 20분이나 서 있었다. 막노동을 끝내고 1평짜리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3500원짜리 국밥이 끓는 구수한 냄새. 마음속 두 목소리가 싸우고 있었다. “그냥 먹을까, 어떻게든 되겠지.” vs “지금 국밥은 사치야. 다음 달 대출이자 낼 돈도 없어.” 결국 유혹을 이겨낸 그는 지친 발길을 고시원으로 옮겼다. 고시원에선 저녁에 밥과 김치가 제공됐고 그는 매일 저녁을 그렇게 해결했다. 그날 밥솥엔 밥이 딱 한 공기 분량, 김치는 국물만 남아 있었다. 냉장고 구석에서 거의 빈 참기름 병을 발견한 그는 방에 있던 고추장에 밥을 비비고 참기름 병을 거꾸로 들었다. 한참 기다려 몇 방울. 손으로 기름병을 녹여 몇 방울 더. 고소한 향기에 눈물이 났다. 밥이 허기를 채우기엔 부족해 조금씩 떠서 씹어 먹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다. ○30대 후반, 재산과 가족, 희망을 모두 잃다 30대 후반, 11년 재직한 한국전력공사에서 나와 도전한 사업이 실패했다. 동료들의 사기에 넘어갔다. 10억 원대 빚을 짊어졌고 부인과도 이혼했다. 이 시기 아버지가 혈액암 판정을 받았는데 사채업자를 피해 찜질방을 전전하느라 제대로 치료도 못 하고 보내드려야 했다. “재산도, 가족도, 희망도 없는 가운데 두 차례 극단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죠. 그 뒤 조금씩 기어올라온 셈입니다. 노숙 생활 6개월을 거친 뒤 하루 2500원 쪽방 생활, 월세 24만 원의 고시원 생활 2년, 4평짜리 반지하 원룸 생활 2년….” 55세가 된 지금 그는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 소형 건축 시행 전문가, 마케팅 전문가, 1인 지식 창업 전문가, 유튜브 전문가에 수십억 자산가가 돼 있다. 여기저기 강연에 불려 다니고 상담 스케줄에 쫓긴다. 40대에서 50대 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케팅의 소중함, 자기계발 인생을 바꾼 건 우연히 집어든 책 한 권이었다.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던 2007년 무렵, 쪽방집 화장실에 누군가가 휴지 대용으로 가져다 놓은 듯한, 표지도 없는 책. “5일째 비가 와서 막노동을 나갈 수가 없었어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제본된 낡은 책을 발견했습니다. 일본의 어느 성공한 마케팅 전문가의 이야기였어요. 책을 들고 제 방으로 돌아와 첫 장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에는 매출을 올리기 위한 방법과 간단한 실례가 적혀 있었다. 예컨대 ‘카피 문장 한 줄만으로 매출을 10배 이상 올릴 수 있다’며 그 사례를 들어주는 식이다. 밤새도록 그 책을 읽었다. “희망이, 목표가, 나아갈 길이 생겼어요.” 그날 이후로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매일 막노동판에 나가 열심히 돈을 벌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저자가 알려준 꼭 필요한 지식들을 공부했다. 포지셔닝, 브랜딩 전략, 온라인 마케팅, 카피라이팅, 스토리텔링, 비즈니스 모델 구축전략 등. 막노동 수입 중 쪽방 생활비와 하루 한 끼 식비를 제외하고 모두 공부하는 데 투자했다. 스리잡, 포잡을 뛰면서 인터넷 블로그를 이용한 마케팅 작업을 병행했다. 강연 요청이 늘고 수익형 부동산 개발 등으로 사업 영역이 확대됐다. 점차 빚을 갚고 49세에 30평대 아파트를 장만해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게 됐다. “8년 이상 걸렸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어서 행복했죠. 이사하던 그날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습니다.”○“제가 했다면 당신도 할 수 있어요”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전의 자신처럼 삶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경제적 독립의 길을 공유하며 돕고 싶어 한다.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한때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분들도 있었는데 뭔가 잘 안 풀린 거죠. 저는 처절한 40대를 헤쳐 나가면서 알게 된 것들이 많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그분들에게 정보나 손길을 줬다면 좀 더 쉽게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놀라운 것은 부동산 재테크나 신축 리모델링, 마케팅, 유튜버 등 현재 전문가라 불리는 직업들을 모두 마흔 이후에 시작했다는 점이다. “열심히 한다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서 ‘마흔의 돈 공부’도 그 일환인지…. “직장인 평균 은퇴 나이가 49세 정도라고 하죠.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준비가 안 돼 있어요. 이런 직장인들에게 바깥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그러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줘야죠. 40대 중후반엔 은퇴에 대비해 현금 흐름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부동산 재테크건, 1인 지식창업이건 방법은 다양하죠. 준비하지 않으면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4050 위한 인생 2막 온라인 강의 플랫폼 구축 그는 요즘 지난해 8월 구축한 온라인 강의 플랫폼 ‘인클(incle.co.kr)’에 푹 빠져 있다. 은퇴를 앞둔 중년을 대상으로 은퇴 재테크 설계, 부를 위한 마인드셋, 1인 지식창업 등을 다루는데 지금까지 300여 명의 강사가 만든 3000여 개의 강의 콘텐츠가 쌓였다. 월 회비 9500원에 전체 강의를 들을 수 있는데, 아직 회원은 2500명 수준이다. ―수익사업과 공익사업 사이, 어느 지점인가요. “당장은 무조건 적자예요. 하지만 성장하면 여러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봐요. 이 일은 일종의 벤처입니다. 슬슬 콘텐츠 상차림도 됐고 투자 유치도 받을 계획입니다.” 유튜브 채널 단희TV는 현재 구독자가 62만7000명이다. 그는 2018년부터 4050세대에게 1인 지식창업 사례로 유튜버가 돼 볼 것을 권하며 자신의 채널이 구독자 수에 따라 광고 수입이 어떻게 변하는지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구독자 5000명일 때 월 30만 원 선, 10만 명을 넘긴 시점에는 28일간 7453달러(약 897만 원)가 통장에 찍혔다. 영상에는 ‘계단을 하나씩 오르며 그 과정을 보여줘 좋다’거나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요즘 단희TV는 월 1000만 원대 수입을 올린다. 간접광고(PPL)나 협찬광고 등을 받으면 월 수억 원대 수입을 얻을 수 있지만 자체광고는 하지 않는다. “1인 기업가로서 10년 넘게 살아오면서 제 소명을 깨달았습니다. 저처럼 1인 기업을 꿈꾸는 분들에게 삶의 희망과 꿈과 목표와 열정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이 일을 할 때 정말 행복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이걸 꼭 전하고 싶습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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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건강하고 부유해진 젊은 노인들, 소비패권 쥐게 된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고령화는 전세계적 현상이다. 급격하게 늘어난 수명과 출산율 저하, 베이비붐 세대의 증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노인들로 북적거린다.미국 통계국에 따르면 2015년 6억 17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8.5%에 달했던 세계 노인 인구 비율은 2050년에는 17%인 16억 명으로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메사추세츠 공대(MIT) 에이지랩의 창시자 조지프 F 코글린 박사는 이를 “마치 대륙 하나가 바닷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장수경제학 2017, 한국판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부키)○ “노인은 무능하고 궁핍하며 이기적이다?”인구구조 변화는 세계 질서를 다르게 기능하도록 한다. 소비자 요구도 하루아침에 변해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소비가 급격하게 나타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 전국 최대 안경체인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은 돋보기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성인용 기저귀가 아기용보다 많이 팔린다.나이가 든다는 것은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여졌다. 나이가 들면 무능하고 쇠약해지며 궁핍하고 이기적이 된다는 이미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코글린 박사는 연령차별로 이어지는 이런 편견에 찬 시각을 ’노령담론(narrative of aging)‘이라고 불렀다. 노인학계에서는 노령담론이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지구를 지배해왔다고 본다.노화를 보는 사고방식이 틀에 갇혀 있어 실패를 부른 사례로는 통조림기업 하인즈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하인즈의 노인 영양식이 처참하게 실패한 이유’거버 유아식을 자신이 먹기 위해 사가는 틀니 노인이 늘고 있다‘. 하인즈사는 1955년 이런 보고가 이어지자 노인을 위해 미리 으깨놓은 영양식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타임지는 ’노인을 위한 음식제품군이 없다‘며 ’하인즈가 60세 이상 노인을 위한 맛있고 싸고 영양가 좋은 57가지 통조림식품을 새롭게 선보인다‘고 알렸다. 당시 산업계도 늘어가는 고령인구를 노다지라고 여겼다. 타임지 기사는 “미국에는 60세 이상이 2300만 명에 이른다”며 “아기는 대략 2년 동안 이유식을 먹지만 노인은 15년 이상 이 제품을 소비할 것”이라고까지 전망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하인즈는 신상품 출시와 함께 대대적인 선전에 나섰지만 매대에 쌓인 통조림에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골적으로 치아없는 노인들을 위한 저렴한 통조림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거버의 유아식을 사는 노인들은 “손주 먹일 것’이라고 둘러댈 수 있지만 슈퍼마켓 매대에 전시된 이 통조림을 바구니에 담는 순간 ”나는 가난하고 이빨도 성치 않은 불쌍한 노인네‘라고 주변에 외치는 것과 같다. 이런 실패의 원인은 고령자에 대한 편견에 휩싸여 이들의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령자들은 자신이 노인이라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시장에서 자신들의 욕구에 맞는 대접을 받고 싶기는 하다. 어찌보면 모순된 이들의 욕구를 읽지 못한다면 아무리 공을 들인 상품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젊은 노인의 전성시대가 왔다”시대는 바뀌었다. 세계의 석학과 언론이 나서 시니어세대를 주목하라고 외치고 있다. 일찌감치 미국 시카고대 노화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1916~2001)은 1975년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55세부터 70대 중반까지를 ’젊은 노인‘(young old)으로 구분했다. 저서 ’나이 듦의 의미‘(The Meanings of Age, 1996)에서는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이 젊은 노인들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한때 영 올드를 줄여 ’욜드(YOLD)세대‘라 불렀고 이는 곧 세계적인 용어가 됐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0 세계경제 대전망‘에서 “젊은 노인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The decade of the ’young old‘ begins)”며 더 건강하고 부유해진 시니어세대가 앞으로 소비재, 서비스, 금융시장을 휘두를 것으로 전망했다. 주거 생활 건강 일자리 취미 인간관계 모두에서 고령 친화적 기업만이 성공한다고 단언했다.미국 와튼 스쿨의 마우로 기옌 교수는 2020년 저서 ’2030 축의 전환‘에서 60세 이상이 전세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며 ”향후 10년간 세계의 중심축이 고령자와 여성,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수경제학에서 코글린 박사도 노령담론이 지배하는 기업현실에 문제제기하며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고 주장한다.이들이 공통되게 지적하는 것은 수많은 기업과 언론이 젊고 역동적인 MZ세대를 공략하려 노력하지만 실제로 돈이 있고 소비력이 크며 인구가 많고 보유자산도 많은 세대는 욜드세대라는 것이다.○ 뉴 시니어 트렌드는 ’에이지 프렌들리‘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센터는 최근 발간한 책 ’2022 대한민국이 열광할 시니어 트렌드(비즈니스북스)‘에서 ’에이지 프렌들리‘(Age Friendly)’를 새로운 트렌드로 꼽았다. 에이지 프렌들리란 고령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며 그들이 원하는 바에 맞춰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과 사회의 철학을 말한다. 이동우 고령사회연구센터장은 ”앞으로 에이지 프렌들리 기업이나 브랜드, 도시와 지자체만이 성장하는 시니어 시장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며 ”이제 고령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기업과 사회가 절대 성장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5070세대를 새로운 소비권력으로 보고 이들의 취향과 욕망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찬스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책은 시니어 세대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주거환경, 문화생활, 자산 관리와 재테크, 건강과 취미, 삶과 죽음 등에 대해 융합 학문적 시각에서 분석했다○ 빨리 늙어가는 한국, 급속도로 달라진 시니어들‘젊은 노인 전성시대’는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중이고 은퇴세대의 상대적 빈곤율도 세계 1위(43.4%)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우선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자. 2021년 3월말 기준으로 가구당 평균자산은 5억 253만원으로 전년대비 12.8% 증가했다. 이중 부채 8801만원을 제하면 순자산은 4억 1452만원이 된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5억 6741원으로 가장 높고 다음이 40대(5억 55370만 원), 60대 이상(4억 8914원) 순이다.복지부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20노인실태조사’ 결과도 희망적이다(그래픽 참조). 2008년부터 3년마다 이뤄진 조사에서 첫해인 2008년과 2020년의 고령자는 확연히 달랐다. 예컨대 개인소득은 연간 700만 원에서 1558만 원으로 늘었는데,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자산소득 비중이 늘어난 반면 가족의 보조를 뜻하는 ‘사적이전소득’은 46.5%에서 13.9%로 줄었다. 근로나 사업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버는 비중이 확연히 늘어난 것이다. 이밖에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낀다는 답변이 급격히 늘었고 학력 수준도 확연하게 높아졌다. 정보화기기 사용능력을 가늠케하는 스마트폰 사용자는 2011년 0.4%에서 56.4%로 급증했다. 2020년부터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생)가 순차적으로 고령자인구에 편입되면서 고령자들의 변모는 더욱 확연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기업의 사활, 시니어 시장 변화 읽어내는 데 달렸다시니어의 영향력이 가장 실감나는 분야는 문화 쪽이다. 7080 가요붐, 트로트 열풍에서 이들의 존재감이 확인된다. 시니어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광고하는 상품을 사들이고 좋아하는 스타에게 선물, 즉 ‘조공’을 바치기도 한다. 유튜브 시장에서도 50대 이상은 가장 많은 이용자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사들은 5060세대의 자산을 유치하기 위해 이미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통계청 장래가구추계는 현재 167만인 고령자 1인가구가 2047년 405만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주거와 식재료, 각종 서비스 등에서 관련시장이 커질 것이다. 인터넷 쇼핑과 검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실버 서퍼’가 늘고 로봇과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 정보화 기술의 최우선 수혜자도 고령층이 될 것이다. 앞으로 기업의 사활은 이같은 시니어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읽고 공략 전략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달렸다. 이미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따라 교육과 치안, 국방, 의료 등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아닌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 초고령 사회, 어떤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인가 소비자로서의 고령자만 논하다보면 다른 걱정들도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2025년이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어떤 생태계를 조성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고령화는 시장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인사철, 너도나도 ‘젊은 조직’을 강조하며 사람을 잘라내는 풍조가 만연하는 현실이다. 인적자원이 한정된 나라에서 언제까지 지속가능한 방식인지 의문이다. 인구의 5분의 1이 뒷방 늙은이 취급받는 사회에서 과연 활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고령자들의 역량과 에너지를 조화롭게 살리며 공존할 길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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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자 배제한 성장은 없다”… 건강하고 부유해진 ‘욜드세대’ 성큼[서영아의 100세 카페]

    고령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노인들로 북적거린다. 미국 통계국은 2015년 전체인구의 8.5%인 6억1700만 명에 달하던 고령자(65세이상)가 2050년경에는 전체인구의 17%인 16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에이지랩의 창시자 조지프 F 코글린 박사는 이를 “마치 대륙 하나가 바닷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장수경제학 2017, 한국판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부키) 인구구조 변화로 소비자 요구도 하루아침에 변해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소비가 급격하게 나타나게 된다. 세계 최고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 전국 최대 안경체인점에서 판매 1위 상품은 돋보기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성인용 기저귀가 아기용보다 많이 팔린다.○“노인은 무능하며 궁핍하며 이기적이다?”나이가 든다는 것은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여졌다. 나이가 들면 무능하고 쇠약해지며 궁핍하고 이기적이 된다는 이미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코글린 박사는 연령 차별로 이어지는 이런 편견에 찬 시각을 ‘노령담론(Narrative of aging)’이라고 부른다. 노인학계에서는 노령담론이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지구를 지배해왔다고 본다. 거대 식품기업 하인즈의 노인 영양식은 노인에 대한 편견이 부른 실패 사례로 유명하다. ‘거버 유아식을 자신이 먹기 위해 사가는 틀니 노인이 늘고 있다.’ 하인즈사는 1955년 이런 보고가 이어지자 노인을 위해 미리 으깨어놓은 영양식을 개발하기로 했다. 당시 타임지 기사는 “미국에는 60세 이상이 2300만 명에 이른다”며 “아기는 대략 2년 동안 이유식을 먹지만 노인은 15년 이상 이 제품을 소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하인즈는 신상품 출시와 함께 대대적인 선전에 나섰지만 판매대에 쌓인 통조림에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버의 유아식을 사는 노인들은 “손주 먹일 것’이라고 둘러댈 수 있지만 슈퍼마켓에서 이 통조림을 바구니에 담는 순간 “나는 가난하고 이빨도 성치 않은 불쌍한 노인네”라고 주변에 외치는 것과 같다. 결국 실패의 원인은 고령자에 대한 편견에 휩싸여 이들의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령자들은 자신이 노인이라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시장에서 자신들의 욕구에 맞는 대접을 받고 싶기는 하다. 어찌 보면 모순된 이들의 욕구를 읽지 못한다면 아무리 공을 들인 상품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젊은 노인의 전성시대가 왔다”시대는 바뀌었다. 세계의 석학과 언론이 나서 시니어세대를 주목하라고 외치고 있다. 일찌감치 미국 시카고대 노화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턴(1916∼2001)은 1975년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55세부터 70대 중반까지를 ‘젊은 노인(Young Old)’으로 구분했다. 저서 ‘나이 듦의 의미’(The Meanings of Age·1996년)에서는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이 젊은 노인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한때 영 올드를 줄여 ‘욜드(YOLD)세대’라 불렀고 이는 곧 세계적인 용어가 됐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0 세계경제 대전망’에서 “젊은 노인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며 더 건강하고 부유해진 시니어세대가 앞으로 소비재, 서비스, 금융시장을 휘두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와튼스쿨의 마우로 기옌 교수는 2020년 저서 ‘2030 축의 전환’에서 “60세 이상이 전 세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며 “향후 10년간 세계의 중심축이 고령자와 여성,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수경제학에서 코글린 박사도 노령담론이 지배하는 기업 현실에 문제 제기를 하며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공통되게 지적하는 것은 수많은 기업과 언론이 젊고 역동적인 MZ세대를 공략하려 노력하지만 실제로 돈이 있고 소비력이 크며 인구가 많고 보유자산도 많은 세대는 욜드세대라는 것이다.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센터는 최근 발간한 책 ‘2022 대한민국이 열광할 시니어 트렌드’(비즈니스북스)에서 ‘에이지 프렌들리(Age Friendly)’를 새로운 트렌드로 꼽았다. 에이지 프렌들리란 고령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며 그들이 원하는 바에 맞춰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과 사회의 철학을 말한다. 이동우 고령사회연구센터장은 “앞으로 에이지 프렌들리 기업이나 브랜드, 도시와 지자체만이 성장하는 시니어 시장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이제 고령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기업과 사회가 절대 성장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5070세대를 새로운 소비권력으로 보고 이들의 취향과 욕망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찬스를 찾아야 한다는 것. 책은 시니어 세대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주거환경, 문화생활, 자산 관리와 재테크, 건강과 취미, 삶과 죽음 등에 대해 융합 학문적 시각에서 분석했다.○빨리 늙어가는 한국, 급속도로 달라진 시니어들‘젊은 노인 전성시대’는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중이고 은퇴세대의 상대적 빈곤율도 세계 1위(43.4%)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자. 2021년 3월 말 기준으로 가구당 평균 자산은 5억253만 원으로 전년 대비 12.8% 증가했다. 이 중 부채 8801만 원을 제하면 순자산은 4억1452만 원이 된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5억6741만 원으로 가장 높고 다음이 40대(5억5370만 원), 60대 이상(4억8914만 원) 순이다. 복지부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20 노인실태조사’ 결과도 희망적이다. 조사 첫해인 2008년과 2020년의 고령자는 확연히 달랐다. 소득이 700만 원에서 1558만 원으로 늘었는데,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자산소득 비중이 늘어난 반면 가족의 보조를 뜻하는 ‘사적이전소득’은 46.5%에서 13.9%로 줄었다. 스스로 돈을 번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건강하다는 답변이 늘었고 학력 수준도 높아졌다. 정보화기기 사용능력을 가늠케 하는 스마트폰 사용자는 2011년 0.4%에서 56.4%로 급증했다(그래픽 참조). 시니어의 영향력이 가장 실감나는 분야는 문화 쪽이다. 7080 가요붐에서 트로트 열풍까지 이들의 존재감이 확인된다. 유튜브 이용자도 50대 이상이 가장 많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사들은 5060세대의 자산을 유치하기 위해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통계청 장래가구추계는 현재 167만 명인 고령자 1인 가구가 2047년 405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주거와 식재료, 각종 서비스 등에서 관련 시장이 커질 것이다. 인터넷 쇼핑과 검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실버 서퍼’가 늘고 로봇과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 정보화 기술의 최우선 수혜자도 고령층이 될 것이다. 다만 소비자로서의 고령자만 논하다 보면 다른 걱정들도 떠오른다. 2025년이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어떤 생태계를 조성할지 고민해 봐야 한다. 고령화는 시장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인사철, 너도나도 ‘젊은 조직’을 강조하며 사람을 잘라내는 풍조가 만연하는 현실이다. 인적자원이 한정된 나라에서 언제까지 지속가능한 방식인지 의문이다. 인구의 5분의 1이 뒷방 늙은이 취급받는 사회에서 과연 활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고령자들의 역량과 에너지를 조화롭게 살리며 공존할 길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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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에 연연 않고 내려놓는 삶 모색… 인생의 의미 찾는 노력 계속[서영아의 100세 카페]

    《‘100세 카페’는 1월 24일 동아닷컴의 온라인 기사로 시작됐다. 100세 시대라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시니어세대, 이들이 조명받는 코너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매주 일요일 아침 기사를 올렸다. 시니어 문제는 인구 문제나 사회복지, 실생활과 연결돼 있고 결국에는 정치 경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8월 21일자부터 동아일보 토요일자 지면에 기사가 실리면서 일요일 온라인에는 같은 소재를 좀 더 길고 상세하게 쓴다. 원고지 18장, 사진 2컷으로 한정된 종이신문 분량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근 1년간 많은 분이 100세 카페의 내용을 풍요롭게 해주셨다. 2021년을 마감하며 그분들의 근황을 전해본다.》 ○2막에도 멈추지 않는 ‘인생의 의미 찾기’ 8월 1일 100세 카페에 ‘이런 인생2막’ 코너를 시작했는데 그 첫 회는 온라인판에만 나갔다. 공교롭게도 기사가 나간 후에 100세 카페의 지면 게재 방침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JW중외제약, 한국콜마 대표이사를 거친 뒤 예순 넘어 바이오벤처기업을 창업한 최학배 하플사이언스 대표가 주인공이었다. 평생 제약맨이던 그가 ‘사서 고생한다’는 소리 들으며 창업에 나선 이유는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였다. 인터뷰 뒤에도 간간이 이 회사가 개발한 피부노화개선제가 미국에서 특허를 취득했다는 소식(9월)이나 유명 제약회사에서 최고의료책임자를 영입했다는 소식(11월)이 들려온다. 최 대표는 100세 카페 애독자로 카톡으로 의견도 보내온다. 직원 출신으로 조직의 최상부에까지 올라갔던 분들에게서 느껴지는 공통된 정서가 있다. 평생 몸 바쳐 일했던 회사 일이 현역에서 물러난 순간 내 것이 아니더라는 자각에서 오는 허망함이다. 이런 깨달음의 과정은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과 유사해 보인다. 임종전문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사실 ‘언젠가는 떠날 것을, 왜 몰랐느냐’ 말하면 그뿐인데,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본에서는 ‘정년 소설’이 하나의 장르가 되다시피 했다. 1980년대에 나온 ‘겨울의 불꽃’이나 2016년 나온 ‘끝난 사람’은 모두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다 어디선가 삐끗해 나락으로 떨어진 엘리트 샐러리맨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끝까지 업무에서의 실적과 성과에 집착하고, 실적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잘려버린 현실을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큰 그림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큰 조직은 리더 한두 사람의 성과로 이뤄지지 않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가도 유사한 성과를 얻어낼 수도 있다. 비슷한 얘기를 한진해운 임원에서 퇴직해 몇 년간의 방황 끝에 택배회사에 취업한 강찬영 씨(60), 롯데마트 임원 퇴임 후 충격에 빠졌지만 서둘러 작가의 길로 들어선 정선용 씨(54)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임원이란 게 ‘임시직원’의 준말이라지만 이처럼 본의 아니게 그만둔 케이스는 훨씬 많고, 이런 분들은 마음에 맺힌 얘기를 어디에 내놓기도 어렵고 이해해줄 사람도 많지 않아 더욱 외로울 것이다. 기억할 것은 높이 올라갔을수록 추락의 충격은 크다는 점이다. 경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음의 하산을 미리미리 시작하라고 충고해준다. 반면 기업 오너인 한 지인은 기사가 나간 뒤 “그래도 수십 년간 함께 성장하며 가정을 일궈낸 것에 대해서는 회사에 고마운 마음도 있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이런 관점을 포함해 새해에는 고용주의 인생 2막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도 소개해보고 싶다.○저마다의, 작지만 씩씩한 인생2막 전직 고위공무원 박수천 시니어서포터 회장(71)은 여전히 과천에서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마침 11일 그간 제작해온 유튜브 방송 ‘손잘(손주 잘 키우자)TV’ 시리즈 25회분을 책으로 묶어 출판기념회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어른의 일생을 스토리텔링하며 삶 자체를 양육의 관점에서 녹여낸 테마형 자서전이 됐다고 한다. 대기업 임원에서 택배회사 노동자가 된 남편을 지켜보며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를 써낸 작가 박경옥 씨(57)도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박 씨는 지역 도서관이나 평생교육관에서 요청이 있으면 은퇴교육이나 동의보감에 대한 강의를 하고 프리랜서 마켓 ‘크몽’ 판매대에 자신이 쓴 전자책을 올리기도 한다. 두 아들이 결혼과 취업으로 집을 떠난 뒤 둘만 남은 부부는, 서로에게 친구이자 엄마이자 교사 역할을 해주며 행복하다고 한다. ‘상속세는 더 이상 부자만의 세금이 아니다’라며 50대부터 절세대책을 세울 것을 권고해 큰 반향을 얻은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57)는 유튜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세금과 인생’이라는 다소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임에도 구독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5년간 국세청 법무과장으로 일한 특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세법률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우리 세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열심이다. 법이란 민에 대해 ‘규제’가 아니라 ‘구제’의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국 은퇴 및 투자교육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74)는 유튜브와 강연을 오가며 100세 시대를 맞이한 시니어들의 노후설계를 돕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2020년 정계은퇴한 뒤 웰다잉문화운동에 전념해온 원혜영 전 의원(70)은 11월 중순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여당 외연 확장에 나섰다. 지난해 8월 위례에서 새로 인생학교를 연 백만기 위례인생학교 교장(69)은 학교의 기초 다지기에 여념이 없다. 7년간 키워온 분당아름다운인생학교는 다른 분에게 넘겼다. 한국에 인생학교가 100개쯤 생겼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거리 위의 의사’라 불리는 최영아 서울시립 서북병원 진료과장(51)은 지난달 25일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수여하는 아산상 의료봉사상을 받았다. 20여 년 동안 노숙인들의 질병 치료에 힘쓰고 주거와 재활 지원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한 공로다. 상금 2억 원으로 취약계층의 재활과 회복을 돕는 활동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또 하나, 기사에도 소개한 ‘빼빼유니짜장’의 스마트스토어 사업이 5일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취약계층 직원을 직고용해 운영하는 스마일박스에서 만든 짜장소스를 즉석 냉동해 판매하는데, 많이 팔리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할 수 있고 그들에게 성공 경험을 안겨줄 수 있다며 의욕을 다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퇴직 1년도 안 돼 작가로 변신한 정선용 씨는 저술활동과 강연, 유튜브 방송 준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인생 2막 1년 차로 모든 게 낯설지만 트라우마를 빠르게 극복하는 중이다. 그의 기사가 나간 뒤 하도 부정적인 댓글이 많아 걱정스러웠다. 공연히 기사를 써서 열심히 살려는 분 상처만 받게 한 건 아닌가…. 다행히도 정 씨는 “댓글들을 모두 읽었다”며 “상처보다는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채찍이 됐다”고, 무관심보다는 악플이라도 관심이 더 좋다는 ‘쿨’한 생각을 보내왔다.○“낙엽, 떨어진 게 아니라 내려놓은 거예요” 평균연령 62.3세. 100세 카페를 통해 만나온 시니어들의 공통점은 무언가 많이 내려놓은 가운데서도 작은 역할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살아온 분야도, 앞으로 갈 길도 제각각이지만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에 겸손하게 발 딛고 서서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떨어진 게 아니라 내려놓은 거예요. 그게 인생이에요. 낙엽이 씀.’ 얼마 전 서울시청에 붙어있던 시구를 되새겨보며, 새해에는 더 다채로운 인생 2막 주인공들을 소개하고자 한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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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작스러운 퇴직은 사회적 죽음 같았다, 하지만…”[서영아의 100세 카페]

    대기업 임원이던 정선용 씨(54)에게 인생 2막은 느닷없이 닥쳐왔다. 지난해 9월 마지막 금요일, 25년간 일한 회사에서 퇴직을 통보받았다. 20대 후반부터 인생의 모든 것을 올인하다시피 한 회사였지만, 무언가에 얻어맞은 느낌이 드는 퇴직이었다. “임원 퇴직 통보는 금요일에 합니다. 아무도 없는 주말에 짐을 빼도록 해주는 일종의 배려죠. 주말에 짐을 챙겨 나오는데 종이박스 3개 분량이 전부더군요. 25년 세월이 이게 다구나. 하루아침에 사회에서 필요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습니다.” 바로 다음주가 추석이었다. 부인에게 ‘올해는 본가도 처가도 가지 말자. 회사 그만뒀다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당당한 나훈아, 문화자본가였다”그를 나락에서 구해준 것은 추석전날 TV에서 방영된 나훈아 쇼였다. “근 3시간의 콘서트를 쥐락펴락하는 나훈아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지요. 출연료도 받지 않는다는데, 저렇게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 올까. 아하…. 그에겐 자본소득이 있구나.” 나훈아가 저작권료만으로 연간 6억원의 수입이 있고 출연료 같은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근로소득이 끊어지게 된 자신이 왜 힘들고 불안한지 실마리가 잡혔다. 경제구조를 좀더 공부해야겠다, 하루 한편씩 경제에 관련한 글을 쓰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 마침 오랜 기간 자신의 블로그(정스토리)에 시간날 때마다 글을 써왔던 차였다. 이번에는 이렇게 쓴 글을 150만 회원을 거느린 네이버 카페 ‘부동산스터디’에 ‘아들아 경제 공부해야 한다’ 시리즈로 연재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나훈아를 자본소득, 남진을 근로 소득에 비유해 그 차이를 밝힌 ‘소득편’은 댓글이 600개가 넘을 정도였다. 직접 만든 곡이 많아 저작권 수입이 큰 나훈아는 문화자본가인 셈이니 직접 노래를 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다. 반면 동년배인 남진은 저작권 수입이 없으니 공연과 CF촬영 등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해석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소득의 세가지 유형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삶에 빗대 설명했다. 이주노는 춤이라는 육체노동에 의존해 근로소득을 얻고 양현석은 연예기획사를 차려 사업소득을 얻고 있다. 서태지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서 저작권료를 받으니 자본소득을 얻고 있다는 식이다. 소득유형을 경제용어로만 생각했던 독자에게 명쾌하게 다가가는 설명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났다. “20편쯤 썼을 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50편쯤을 모아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RHK코리아)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었지요. 교정작업을 하면서 ‘아, 잘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월에 책이 나왔는데 현재까지 6만권 이상 팔렸습니다.” 인세로 9000여 만 원, 책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강연수입도 생겼다. 1년만에 자신의 콘텐츠로 1억 원이 넘는 소득을 확보한 것. 인생 1막을 닫고 2막을 연 순간, 월급받는 근로자였던 그가 자본가, 그것도 문화자본을 밑천삼아 돈을 버는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 ‘직원으로 시작하되 직원으로 살지 마라’정선용 씨를 인터뷰하기로 한 지난달 25일, 아침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오늘 만남이 있음을 상기시키고 약속 장소를 안내하는 내용이다. 그 이틀 전에는 인터뷰에 대비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내주기도 했다. 천상 ‘일 잘하는 직원’의 빠릿빠릿함이 몸에 배어 있다. 이런 그는 글쓰기를 통해 퇴직 이후 흔들리던 자신의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는 것을 가장 큰 수확으로 꼽는다. “직장인들은 퇴직하는 순간 ‘사회적 죽음’을 경험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 타인이나 환경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시작되죠. 모든 인연을 끊고 외톨이로 지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가 나에 대한 원망을 걷어낸 건 글을 쓴 덕분입니다. 제 상황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게 됐어요. ‘내 잘못이 아니다. 이건 과정이다. 어차피 끝이 있는 게임이었다. 내년이건 내후년이건 지금 끝나건, 언젠가는 끝날 일이었다. 왜 내가 스스로를 괴롭히나’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경제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런 상황에 빠진 거다. 경제구조를 공부하자.”. 책을 낸 뒤 큰아들(24세)과의 대화가 늘었다는 점도 그가 꼽는 소득이다. ‘응’ ‘아니’ 식의 단답형 대화에서 경제와 사회에 대한 제법 진지한 대화까지 하게 됐다. 며칠 전에는 진로를 고민하는 아들이 근로소득은 어차피 한계가 있으니 사업소득으로 시작하는 건 어떨지를 물어왔다. 그는 “회사는 돈 받고 다니면서 사회를 배우는 학교”라며 “시궁창이건 어디건 일단 발을 담가보라”고 권했다. ○ 월급과 명함, 인맥은 본래 회사 거였다그의 책 띠지에는 ‘직원으로 시작하라. 그러나 직원으로 살지 마라’고 쓰여 있다. 달리 표현하면 ‘회사를 사랑하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저는 월급의 달콤함에 젖어 계속 일만 했지 자본소득을 확보할 생각을 못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근로소득으로 시작하되, 늦지 않게 자본가, 사업가로 거듭날 준비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국가와 기업은 여러분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로 살기만 원하지요. 스스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돈과 경제의 원리를 알 수가 없어요.” 같은 맥락에서 그는 직장인들이 월급과 명함, 인맥이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한다. 월급이 언제까지나 나올 것이고 명함이 내 사회적 지위라고 생각하며 회사 인맥이 내 사회적 네트워크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모든 것은 퇴직하는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이다. “월급이 아닌 고정 소득을 만들고 회사 명함이 아닌 내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 인맥이 아닌 자기만의 좁고 깊은 인적 네트워크를 다시 구축해야 하죠.” ○ 퇴직임원 70여 명, 40%는 갈 길 못 찾아그가 다니던 회사는 퇴직임원들을 위해 송파구 문정동에 공동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임원 출신들의 퇴직 이후 새 삶이란 녹록치 않다고 그는 전한다. 대부분 50대인 퇴직자가 70여 명인데 자리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40%는 된다는 것. “30% 정도는 창업이나 취업 등 완전 다른 길을 갔고 30% 정도는 회사와 연결된 일을 합니다. 납품업체를 창업해 회사에 납품하거나 회사 일을 대행하는 일을 하거나. 나머지 40%는 뚜렷한 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돈이 없어 불안한 게 아니고 사회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이죠. 100세 시대에 퇴직 이후 40년이 더 남아있는데 뭔가 할 일이 없다는 점,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힘든 거죠. 퇴직해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아요. 매일 등산 갈 수도 없고….”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어 과거의 노하우 지식이 불필요해지는 상황이긴 합니다. “맞아요. 회사 있을 때는 우리가 하는 게 엄청 훌륭한 일이고 사회 어디가서도 써먹을 일 이라고 생각했죠. 상품을 개발하고 마케팅을 하는 게 얼마나 쓸모있는 일인가. 그런데 명색이 회사에서 수 조 단위를 움직이던 사람들인데 막상 사회에 나오면 풀빵장수보다 못하다는 말을 저희들끼리 해요. 회사에서의 일은 분야가 나뉘어 있고 분절적입니다. 풀빵장사 하나 하려 해도 완전체적인 일을 익혀야 하지요. 축구선수가 야구하면 몸살난다고 하잖아요.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하니까. 회사하고 밖에서 쓰는 근육이 너무 달라요. 저는 그 근육 쓰는 법 배우는 게 돈공부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에서의 규칙은 경제와 돈이 기본 뼈대다. 이걸 배워놓으면 어디서나 쓰인다고. 스스로 정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됐어요.” ○ 온실밖에 내쳐진 충격그는 25년간 유통업계에 종사하며 롯데마트 가정간편식 부문장(상무) 등을 거쳤다. 유통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미국산 소고기 최초 판매나 숱한 화제를 모은 ‘통큰치킨’의 현장 판매, 가정간편식 ‘요리하다’ 브랜드를 기획한 주인공이다.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내 사회적 가치는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나중에 보니 그건 모두 회사 것이었습니다. 회사원들이 자기 존재가치를 찾으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그래서 직원으로 시작하되 직원으로 끝까지 살지는 말라고 권하는 겁니다. 생각보다 이 사회는 경제, 즉 돈에 기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퇴직 후 자산상황을 점검해 보니 제 경우는 운이 좋았어요. 아내가 부동산 투자를 잘 해서 순자산이 50억은 되더라구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더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 퇴직을 하고 나서도 집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입니다.”-직장생활 당시 사진을 요청했더니 ‘다 지워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직장은 온실과 같습니다. 밖에 나가면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맞아야 합니다. 저도 지금 맞고 있어요. 즐겁게 맞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온실 밖으로 내쳐진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아직도 악몽을 꿉니다. 직장 때로 다시 돌아가서 그 절박했던 심정, 힘든 것을 되풀이하는 거죠.” -언제 다 벗어날까요. “죽을 때까지 못 벗어날 것같아요. 짊어져야 할 짐은 그냥 지고 가야죠. 지금 제가 편안해진 건 굳이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아서예요. 제가 직장시절 사진들 다 지웠다고 했잖아요. 끊으면 끊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굳이 끝내려 하지 말자.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내년엔 3권 출간할 계획”-너무 밝은 표정이셔서 이런 얘기 의외인데요. “끊임없이 두려움을 향해 부딪히는 중인 거예요. 다른 분 얘기 들으면서도 상처받아요. 함께 퇴직한 동료가 와서 중소기업에 원서 냈는데 안됐다고 하더군요. 연봉을 절반으로 깎아서 지원했는데 거절당하면 얼마나 참담하겠어요. 아마 집에는 얘기도 안했을 거예요. 제 아내도 마찬가지지만, ‘당신처럼 능력있는 사람을 못 알아보면 그 회사 손해지 뭐’ 이렇게 말하는 가족에게 나 취직하려 했는데 떨어졌다고 말 못하죠. 책을 안 썼으면 저야말로 은둔했을 것 같아요.” 그는 내년에 책을 3권 더 내려 한다. 이미 출판사들과 계약을 마쳤다고 한다. 부인과 함께 부동산 투자 스토리를 정리한 책(아들아, 부동산 공부해야 한다)을 낼 예정이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돈공부 책도 만들 생각이다. 12월부터는 유튜브도 시작할 계획인데 여기서 다룬 콘텐츠를 엮어 ‘부자의 경제공부법’을 출판할 계획이기도 하다. “무명 연극배우들이 거친 마룻바닥에서 자고 포스터 붙여가며 막막한 가운데 열심히 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5시에 일어나서 4시간은 글을 써요. 잘 안 써져도 무조건 씁니다. 그 시간만큼은 반드시 지키자고 스스로와 약속했어요. 이제는 작가로서 제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야, 정선용. 너 잘 하고 있어’라고 말이죠.”아래는 정선용 씨가 보내온 ‘퇴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퇴직 후 100세 인생 생활 설계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퇴직 이후에 정리했던 내용들입니다. 퇴직 후 꼭 챙겨야할 다섯 가지는 돈, 건강, 사람, 시간, 즐거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돈입니다. 돈은 개인의 재무설계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저는 기업과 가계의 재무적 차이를 발견하는 것에서 돈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개인 재무설계의 핵심의 소득과 소비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소득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득은 세 가지, 근로소득, 사업소득, 자본 소득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퇴직자는 근로소득으로 생활해왔던 소득자입니다. 그러나 퇴직 후엔 근로소득이 사라지고, 다른 소득을 찾아야 합니다. 즉 사업소득을 버는 사업가 또는 자본소득을 버는 자본가로 환골탈태하셔야 합니다. 돈 관리에선 소득보다 소비가 중요합니다. 어쩌면 퇴직 후엔 소득 계획보다 소비 설계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득은 퇴직 후엔 종속 변수로서 개인이 어찌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소비는 독립 변수로서, 개인이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서 크게 변동되는 영역입니다. 소비도 세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투자 소비, 필요 소비, 욕망 소비입니다. 투자 소비는 미래의 가치를 위해서 돈을 쓰는 것으로, 자본소득 계획과 연결해서 돈의 지출 계획을 수립하시면 됩니다. 필요 소비는 의식주에 관련된 소비로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마지막 ‘욕망 소비’는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퇴직자에게 고정수입이 있던 시기를 기준으로 짜인 ‘욕망 소비’는 과한 부분이 많습니다. 사회적 품위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현실적인 잣대로 잘라낼 건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건강입니다. 건강은 몸과 마음의 건강입니다. 몸의 건강은 주로 생활의 규칙성에 달려있으니 하루의 생활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퇴직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마음의 건강입니다. 마음의 건강은 첫째는 과거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과거 속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의도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꾸 과거 속에 있다 보면, 현재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생깁니다. 고위직에 있었을수록 빨리 과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셋째, 사람, 대인관계입니다. 대인관계는 앞으론 ‘넓게’가 아니라 ‘깊게’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되도록 술자리나 소모성 만남은 줄이고, 마음을 나누는 사람과 친밀도를 높이는 시간을 늘여야 합니다. 특히 가족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집니다. 저는 요리를 배워 가족의 식사를 준비합니다. 식사하면서 가족과 대화를 가지면서 가족과의 친밀도가 높아졌습니다. 넷째, 퇴직 후엔 혼자 지내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악기 배우기 등 예술적 활동을 권장합니다. 다섯째는 즐거움입니다. 그동안 퇴직자는 직장에서 거의 일 중독 수준으로 오직 직장에서만 즐거움을 찾았지만 앞으로는 다른 삶의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대개 퇴직 후엔 피로감, 세상에 대한 냉소, 매사에 무기력에 빠져듭니다. 그 중심에는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자신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섭섭함과 서운함이 자리잡고 있지요. 섭섭함과 서운함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유발하면서, 자신이 그렇게까지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다는 자괴감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이때 사회적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커지고, 이 사회에서 자신이 무용지물의 존재라는 허탈감에 짓눌려 지내게 됩니다. 점차 세상과 동떨어진 집과 방에 은둔하는 외톨이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죽음 같은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했습니다. 글쓰기는 내 마음을 정리하는 기회를 주었고, 점차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줬지요. 글쓰기는 의외로 존재감을 키워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또한, 삶의 지식을 나누어주는 일에서도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저는 강연 등으로 지식을 나누는 일이 너무도 즐겁습니다. 그래서 강연하는 즐거움을 넓혀가고 있습니다.지금까지 제가 퇴직 후엔 경험했던 생활수칙 다섯 가지를 두서없이 적었습니다.돈, 건강, 사람, 시간, 즐거움이라는 다섯 항목으로, 퇴직 이후 삶을 정리했습니다.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저도 누군가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불쾌하고 우울하고 때로는 섭섭하기도 했던 퇴직이라는 절망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돌이켜보니, 퇴직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근로자로서 인생 1막은 끝내고, 작가로서, 강연자로서 인생2막을 시작했습니다. 인생 2막엔, ‘명함이라는 허상’이 아니라 사람 본연의 모습으로, 제가 가득 담기길 바라고 있습니다. ※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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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급만 믿고 살면 나락… “직장인도 사업-자본가로 거듭날 준비를”[서영아의 100세 카페]

    대기업 임원이던 정선용 씨(54)에게 인생 2막은 느닷없이 닥쳐왔다. 지난해 9월 마지막 금요일, 25년간 일한 회사에서 퇴직을 통고받았다. 20대 후반부터 인생의 모든 것을 올인하다시피 한 회사였다. 무언가에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임원 퇴직 통보는 금요일에 합니다. 아무도 없는 주말에 짐을 빼도록, 일종의 배려죠. 주말에 짐을 챙겨 나오는데 종이박스 3개 분량이 전부더군요. 25년 세월이 이게 다구나. 하루아침에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습니다.” 바로 다음 주가 추석이었다. 부인에게 ‘올해는 본가도 처가도 가지 말자. 회사 그만뒀다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나훈아는 문화자본가였다” 그를 나락에서 구해 준 건 추석 전날 TV에서 방영된 나훈아쇼였다. “근 3시간 콘서트를 쥐락펴락하는 나훈아를 보며 생각했죠. 출연료도 받지 않는다는데, 저렇게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 올까. 아하…. 그에겐 자본소득이 있구나.” 나훈아의 저작권 수입이 연간 6억 원대로 출연료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근로소득이 끊어지게 된 자신이 왜 힘들고 불안한지 실마리가 잡혔다. 경제구조를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하루 한 편씩 경제와 관련한 글을 쓰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 이렇게 쓰던 글을 150만 회원의 네이버 카페 ‘부동산스터디’에 연재하자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나훈아를 자본소득, 남진을 근로소득에 비유해 그 차이를 밝힌 ‘소득편’은 댓글이 600개가 넘었다. 직접 만든 곡이 많아 저작권 수입이 큰 나훈아는 문화자본가인 셈이니 노래를 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다. 반면 남진은 저작권 수입이 없으니 공연과 CF 촬영 등 근로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해석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소득의 세 가지 유형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삶에 빗대 설명했다. 이주노는 춤이라는 육체노동에 의존해 근로소득을 얻고 양현석은 연예기획사를 차려 사업소득을 얻고 있다. 서태지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서 저작권료를 받으니 자본소득을 얻고 있다는 식이다. 그로부터 6개월 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났다. “20편쯤 썼을 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50편쯤을 모아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RHK코리아)라는 책으로 묶었죠. 3월에 책이 나왔는데 현재까지 6만 권 이상 팔렸습니다.” 인세로 9000여만 원, 책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강연 수입도 따라왔다. 1년 만에 자신의 콘텐츠로 1억 원이 넘는 소득을 확보한 것. 인생 1막을 닫고 2막을 연 순간, 월급 받는 근로자였던 그는 자본가, 그것도 문화자본을 밑천 삼아 돈을 버는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직원으로 시작하되 직원으로 살지 마라’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직장인들은 퇴직하는 순간 사회적 죽음을 경험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 타인이나 환경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시작되죠. 모든 인연을 끊고 외톨이로 지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가 그런 원망을 걷어낸 건 글을 쓴 덕분입니다. 제 상황을 객관화해 볼 수 있게 됐어요. ‘내 잘못이 아니다. 어차피 끝이 있는 게임이었다. 왜 내가 스스로를 괴롭히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책을 낸 뒤 큰아들(24세)과의 대화가 늘었다. 며칠 전에는 진로를 고민하는 아들이 근로소득은 어차피 한계가 있으니 사업소득으로 시작하는 건 어떨지를 물어왔다. 그는 “회사는 돈 받으면서 다니는 학교”라며 “시궁창이건 어디건 일단 발을 담가 보라”고 권했다. 그의 책 띠지에는 ‘직원으로 시작하라. 그러나 직원으로 살지 마라’고 쓰여 있다. 달리 표현하면 ‘회사를 사랑하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저는 월급의 달콤함에 젖어 계속 일만 했지 자본소득을 확보할 생각을 못 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근로소득으로 시작하되, 늦지 않게 자본가, 사업가로 거듭날 준비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국가와 기업은 여러분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로 살기만 원하지요. 스스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돈과 경제의 원리를 알 수가 없어요.” 같은 맥락에서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주는 월급과 명함, 인맥이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한다. 모든 건 퇴직하는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 “월급이 아닌 고정 소득을 만들고 회사 명함이 아닌 내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 인맥이 아닌 나만의 좁고 깊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죠.”○동료 퇴직 임원 70여 명, 40%는 갈 길 못 찾아 회사는 퇴직 임원들을 위해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공동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임원 출신들의 퇴직 이후 새 삶이란 녹록지 않다고 그는 전한다. 대부분 50대인 퇴직자가 70여 명인데 자리 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30% 정도는 창업 등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다른 30%는 회사와 연결된 일을 합니다. 나머지 40%는 뚜렷한 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돈이 없어 불안한 게 아니고 사회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이죠. 100세 시대에 앞으로도 40여 년이 남았는데 할 일이 없다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힘든 거죠. 매일 등산 갈 수도 없고….”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어 과거의 노하우나 지식이 불필요해지는 상황이다. “회사에 있을 때는 우리가 하는 일들은 어디 가서도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명색이 몇 조 단위 장사하던 사람들인데 막상 사회에 나오면 동네 풀빵가게보다 못하다는 말을 저희끼리 해요. 회사 일은 분야가 나뉘어 있어 분절된 지식만을 갖게 되는데 현실에서는 풀빵가게 하나 하려 해도 전체를 다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축구선수가 야구 하면 몸살 난다고 하잖아요.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하니까. 저는 그 근육 쓰는 법을 배우는 게 돈공부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에서의 규칙은 경제와 돈이 기본 뼈대이고, 이걸 배워놓으면 어디서나 쓰인다고.” 그는 25년간 유통업계에 종사하며 롯데마트 가정간편식 부문장(상무) 등을 거쳤다. 유통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미국산 쇠고기 최초 판매나 숱한 화제를 모은 ‘통큰치킨’의 현장 판매, 가정간편식 ‘요리하다’ 브랜드를 기획한 주인공이다.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내 사회적 가치는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나중에 보니 그건 모두 회사 것이었습니다. 회사원들이 자기 존재가치를 찾으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래서 직원으로 시작하되 직원으로 끝까지 살지는 말라고 권하는 겁니다. 생각보다 이 사회는 경제, 즉 돈에 기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퇴직 후 자산 상황을 점검해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내가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순자산이 50억 원은 되더라고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더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사람들에게 강의하고 책 쓰는 일이 무척 즐겁습니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온실 밖으로 내쳐진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아직도 악몽을 꿉니다.” 내년에는 책을 3권 더 내기로 했다. 부인과 함께 부동산 투자에 관한 책을 낼 예정이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돈공부 책도 쓸 생각이다. 12월부터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여기서 다룬 콘텐츠를 엮어 책으로 만들 계획이기도 하다. “무명 연극배우들이 거친 마룻바닥에서 자고 포스터 붙여 가며 막막한 가운데 열심히 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퇴직 이후 반드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4시간은 글을 씁니다. 그 시간만큼은 반드시 지키자고 스스로 약속했어요. 이제는 작가로서 저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야, 정선용.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이죠.”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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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과 유대 맺는 ‘관계인구’ 창출… ‘고향납세’로 재정파탄 예방[서영아의 100세 카페]

    ‘2040년이면 일본 지방자치단체 절반이 사라진다’는 2014년 마스다 보고서 이후, 일본에서는 인구감소와 관련한 저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중 2017년 출간된 ‘미래연표’(가와이 마사시·河合雅司 저)는 책표지에 적힌 내용만 봐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현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일본에서 벌어질 일을 연도별로 특정해 예측했는데, 이런 식이다. ‘2020년, 일본 여성의 절반이 50세를 넘는다/2024년, 전 국민의 3분의 1이 65세 이상이 된다/2027년, 수혈할 혈액이 부족해진다/2033년, 세 집 중 한 집이 빈 집이 된다/2039년, 화장시설이 부족해진다/2040년, 지방자치단체 절반이 소멸한다/2042년, 고령자 인구가 정점을 찍는다….’ 큰 전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인류의 근현대사에서 인구는 불어나고 경제는 성장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처럼 당연했던 전제가 흔들리면서 펼쳐질 ‘디스토피아’ 앞에서 인간의 상상력은 무기력해진다. 문제는 아무리 ‘강 건너 불’처럼 여기고 싶어도, 인구구조가 가져다줄 미래는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일본 지방소멸의 상징 홋카이도 유바리시 이런 때 일본 ‘지방소멸’의 상징이 돼 버린 유바리(夕張)시 사례를 들여다보면 도움이 된다. 홋카이도 중부에 위치한 유바리시는 2006년 파산선언 이후 지방소멸 과정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바리시는 한때 일본 굴지의 탄광도시였고 이후 관광도시로 변모를 도모했지만 지금은 유령도시처럼 남아 있다. 넓은 도시(763km²) 곳곳엔 녹슨 대형 놀이시설, 버려진 상가와 주택, 문 닫은 학교들이 널브러져 있다. 관광산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적자가 누적되자 일본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파산을 신청했고, 재정재생계획이 실시되면서 2027년까지 부채 353억 엔(약 3675억 원)을 갚는 대장정에 들어섰다. 지자체 파산은 주민 삶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줬다. 행정 서비스는 줄었는데 세금은 급등했다. 학교, 병원, 시립도서관, 미술관, 공중화장실 등 공공시설이 폐쇄됐고 철도 노선 등 공공 인프라가 축소됐다. 주민세 고정자산세 자동차세가 무섭게 올랐고 상하수도 요금은 전국에서 가장 비싸졌다. 공무원은 4분의 1로 줄었고 그들의 임금도 40% 삭감됐다. 생활이 불편해지자 많은 시민이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파산 직전 1만4000명이던 인구는 7120명(10월 31일 현재)으로 쪼그라들었다. 한창 때인 1960년대 11만여 명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렇게 남은 주민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말 그대로 재정파탄이 인구감소를, 인구감소가 다시 재정파탄을 부르는 악순환이다. 현재 유바리시 홈페이지에는 부채 상황을 알리는 ‘부채시계’ 코너가 있다. 2027년 3월까지 남은 부채와 지금까지 상환한 액수가 시시각각 표시된다. 11월 말 현재 부채는 130억6000만 엔, 갚은 액수는 222억7000만 엔 정도 된다.○지역과 유대하는 제3의 인구 만들기 인구감소가 진행되는 지역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일본 정부가 2015년 시작한 지방창생전략에서는 관광 진흥에 의한 ‘교류인구’ 확대로 경기를 활성화하고, 생활환경 정비로 지역에 정착하는 이주자들을 획득한다는 개념이 중심이 됐다. 일본 언론에는 U턴(지방→대도시→지방), I턴(도시 토박이의 농촌 이주), J턴(지방→대도시→중소 지방도시에 취직)에 이어 ‘손주턴’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젊은 인구가 지방으로 발길을 돌리는 움직임이 적극 소개됐다. 손주턴은 도시에서 태어난 손주가 조부모가 사는 고향으로 귀향하는 경우를 말한다. 지역마다 인구유치를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이 펼쳐졌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자기 지역으로 인구를 더 유치한다면 그만큼 다른 지역 인구는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 아닌가. 지역끼리의 인구 빼앗기 전쟁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새로 주목받는 것이 ‘관계인구’라는 개념이다. 타지에서 이주해온 ‘정착인구’도 아니고 관광 등 ‘교류인구’도 아닌, 단기 체류나 자원봉사 활동, 정기적인 방문 등 다양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특정 지역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인구를 말한다. 이들의 힘을 빌려 지속가능한 지역 만들기의 외연을 넓히고 고향의 관점을 바꿀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제2기 지방창생전략(2020∼2024년)의 하나로 ‘관계인구의 창조와 확대를 추진한다’는 새 인구정책을 2019년 도입했고 이후 지자체마다 관계인구 창출 사업에 나서고 있다. 2008년 도입된 ‘후루사토(고향)납세’도 관계인구 확대에 도움을 준다. 고향납세는 납세자가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지자체(꼭 고향이 아니어도 된다)에 기부하면 2000엔을 뺀 나머지 액수를 공제해주는 제도다. 기부를 받은 지자체는 지역특산물을 답례품으로 보내준다. 2008년 81억 엔이었던 고향납세액은 2019년에는 4875억 엔으로, 60배나 증가했다. 고향납세는 재난이나 소멸위기 지역들에 큰 힘이 된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는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현에 2개월 만에 기부금 400억 엔이 몰려 복구 작업에 도움을 줬다. 유바리시도 고향납세로 재원을 마련해 유바리고교 매력화 프로젝트라는 교육 프로그램과 노인복지 프로그램에 투자하고 있다. 유바리시는 고향납세를 해준 사람들에게 특산품인 유바리 멜론을 답례품으로 보내면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고향납세자와 전직 근무자, 유바리 연구자 등을 ‘유바리 라이커스’로 등록해 지역유대형 제3의 인구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 관계인구는 때가 되면 귀향해올 수 있는 이주 예비군이기도 하다. 관계인구를 중시하는 움직임은 도시민 입장에서도 매력이 있다. 추억이 있고 언제라도 가볼 수 있으며 언젠가 돌아갈 곳이 되기도 하는 ‘제2의 고향’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나 친지가 있는 고향은 물론이고, 한때의 근무지, 한 달 살기를 했던 고장, 주말농장 등 다양한 형태로 응원할 지역을 만들 수 있다.○ 텃세와 규제 여전한 한국의 지역사회 주민을 유치하기 위한 일본 지역사회의 사투를 보다가 한국사회로 눈을 돌리면 한숨이 나온다. 지난달 20일자로 지방소멸上 기사가 나간 뒤 독자 몇 분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일껏 지방으로 거주지를 옮겼거나 욺기려 했는데 지역의 텃세나 규제에 묶여 어렵다는 하소연이었다. 자기 고장에 살기 위해 오는 외지인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아직 지역사회가 실감을 못 하는 듯하다. 예컨대 지방에서 민박업을 하려던 독자는 약 2년 전 개정된 농어촌민박업법에 부닥쳤다. 외지인이 지방으로 옮겨 민박업을 하려면 주택 구입 시에는 6개월, 임대일 경우 3년간 현지에서 살아야 사업자등록이 나오도록 법이 바뀌었다는 것. 그는 이런 법은 지방에 젊은이 유입을 차단해 농어촌 및 지방도시 소멸을 가속화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0월 행정안전부가 전국 89곳을 인구감소 지역으로 선정하고 각 지자체에 인구감소를 막을 방안을 스스로 마련해 보고해 달라고 주문했다. 지자체들 쪽에서는 한국의 지자체 실정상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관계인구를 늘리기 위해,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의 빈집을 도시민들의 거점으로 활용케 하는 등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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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도시는 폭발, 지방은 소멸…당신의 고향이 사라진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지난달 18일 행정안전부가 전국 시군구 228곳 중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들 지역에 앞으로 10년간 매년 1조 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애써 ‘인구감소지역’이라 완화해 표현했지만 신문방송들은 ‘지방소멸’에 방점을 찍어 보도했다. 자기 고장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지역 미디어들이 더 적극적으로 이 소식을 전하는 분위기다. 아이들이 줄어 학교가 문을 닫고 노인들만이 남아 적막강산이 된 지방의 모습은 ‘지속가능성’이란 면에서 이미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2014년 일본열도 강타한 ‘지방소멸론’‘지방소멸’이란 말은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총무상이 2014년 5월 일명 ‘마스다보고서’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보고서는 ‘이대로라면 2040년 일본의 기초자치단체 1727곳 중 절반인 896곳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방의 쇠락은 누구나 피부로 느끼고 있었지만 ‘소멸’이란 단어가 주는 섬뜩함이 일본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마스다 보고서는 지방소멸 가능성을 추정하는 잣대로 가임연령인 20~39세 여성인구에 주목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장래인구추계에서 2010년~2040년의 30년간 이 연령대 여성인구가 5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 지자체를 소멸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의 도쿄 집중을 막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일본 인구는 2008년 1억 2808만 명을 정점으로 이미 감소로 전환했다. 인구문제로 인한 쇠퇴와 소멸 공포가 본격 공론화됐다.○지방창생을 정책기조로 삼은 아베 정권 이같은 흐름에 올라탄 아베 신조 당시 정권은 같은 해 ‘지방창생(創生)’을 최우선과제로 내걸고 대대적인 지역활성화에 나섰다.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마을-사람-일자리창생본부를 설치하고, 지자체들에게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전략수립을 독려했다. 지방창생을 담당하는 부처를 신설하고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에게 장관을 맡겼다. 지자체들은 너도나도 ‘마을 사람 일자리’를 앞세운 지방창생 5개년 계획을 만들었다. 아베 정부는 이듬해부터는 ‘1억 총활약사회’ 캠페인을 시작했다. 일본 인구는 2060년 8600만 선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으나 1억 명 선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한 ‘희망출산율’로 1.8을 제시했다. 청년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도록 워크 라이프 밸런스 보장, 임금인상, 보육서비스 확충 등을 정부가 나서 주창했다. 아베 총리가 나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니 ‘더이상 일본에 맹렬사원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인지 2015년 출산율은 1.45로 반짝 상승하기도 했다. 지난해 출산율은 1.37이다. ○ ‘미래는 지방으로부터 온다’지방창생 캠페인이 아니더라도 내 고향, 내 고장을 지키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은 이미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몇군데 직접 다녀온 지방을 중심으로 소개해보자. 도쿠시마(德島)현 가미카쓰(上勝)정은 인구 53%가 고령자인 작은 산간마을.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사회공동체 유지가 곤란해진 마을의 전형이라 할 곳이다.하지만 직접 가본 마을에는 활기가 넘쳤다. 정보화기기를 활용한 ‘잎사귀 비즈니스’의 성공으로 고령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고 있었다. 억대수입을 올리는 농가도 있었다.잎사귀 비즈니스란 일본 요리를 장식하는 제철 잎사귀, 꽃 등 ‘장식용 야채’를 고령자들이 재배부터 출하, 판매까지 맡아서 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눈으로 먹는다’는 일본 요리에 쓰이는 잎사귀 종류는 320종 이상으로 사시사철 다양한 잎사귀를 출하한다. 마을에서 약 150가구, 300여 명이 이 일에 종사한다. 일손의 중심은 70대 고령자로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일하느라 바빠진 덕분에 공공 요양시설은 이용자가 없어 폐쇄했다고 했다. 지난 3월 1일 현재 이 마을의 인구구성을 보면 1511명 중 797명(52.7%)이 고령자, 이중 에서도 406명이 80대 이상이다. 과거에는 타지로 빠져나가는 전출자가 늘면서 인구가 줄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사망자가 많아 인구가 줄고 있다.가미카쓰 정의 제 2기(2020~2024) 지역창생계획을 살펴보면 외지인 유치가 어렵다면 탐방, 연구, 관광 등으로 마을을 찾는 인구라도 늘리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가 그득했다. 젊은 외지인이 들어오면 온 마을이 나서 생활을 보살펴주고 일거리를 만들어주고 농사를 가르친다. 출산과 양육 지원을 위해 아이들의 보육지원 학원지원은 물론이고 단기 해외유학지원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몇 명 안되는 학령기 아동에 대해 세세하고 꼼꼼하게 지원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어 마치 두부 한모로 12가지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를 보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마을의 인구전략은 2040년 인구 1000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창조적’ 인구감소 추구인접한 산간마을 가미야마(神山)정은 인구 5400여 명 규모에 고령화율 50%에 달한다. 하지만 지역 비영리법인(NPO) ‘그린밸리’가 주도한 이주자 유치 사업이 성공하면서 낡은 민가가 속속 사무실이나 점포로 변신 중이었다. ‘공공사업의 실수’라는 빠른 와이파이 속도가 위성사무실로 도시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데 힘을 발휘한다. NPO는 마을의 장래에 필요한 각종 인재들을 핀포인트식으로 유치하고 정착을 지원해왔다. 마을 곳곳에 있는 빈집을 활용하는데 예컨대 마을에 빵집이 필요하다면 “이 빈집은 빵집을 낼 사람에게 빌려준다”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최근 연평균 24명 정도의 신규입주자가 유입되고 있다. 가미야마 정이 추구하는 것은 2060년을 내다보는 ‘창조적 인구감소’다. 인구를 늘린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 대신 인구구성의 질을 좋게 해서 마을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2060년 마을 인구는 1100명으로 줄어들지만 지금처럼 연 24명 선의 신규입주가 지속된다면 1900명대가 된다. 이들의 목표는 2060년까지 마을인구 3000명 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매년 44명 정도로 신규입주자를 늘려야 한다.○외지인의 눈으로 해법찾기일본 서남단 규슈와 쓰시마 사이에 자리한 인구 2만 7000명의 이키(壹岐)섬에서는 30대 여성 후지모토 아야코 씨가 해녀수업을 받는다. 섬 연안에는 성게 전복 소라 등이 풍부하지만 고령의 해녀들을 이을 후계자가 없자 이키시가 2014년부터 전국에 해녀 후계자 모집에 나섰다. 대도시 요코하마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는 ‘색다른 삶을 동경해’ 손을 들었다. 당장은 어부지망생에게 나오는 보조금 월 13만 엔이 주수입이지만 매일 60대 선배들과 나서는 물질이 즐겁고 주거도 생활도 이웃들이 돌봐줘 걱정이 없다고.다른 한편으로는 외지인의 눈으로 지역살리기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었다. 폐쇄적인 섬에서는 발전을 위한 자극도 없고 자신들의 장점도 깨닫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이키시는 섬 내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을 위해 산업지원센터 센터장을 전국 단위로 공모했다. 시장 월급보다 많은 ‘월 100만 엔’을 조건으로 내걸자 MBA 보유자, 상징기업 임원, 경영자, 공인회계사 등 391명이 지원했다. 경쟁을 뚫고 낙점된 사람은 도쿄에서 벤처창업가로 화제를 모은 33세 사업가 모리 슌스케 씨였다. 섬으로 이사온 그는 현지 기업인들의 상담에 응하며 신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판로와 마케팅 전략을 짜주고 있다.예컨대 그에게 지역업자가 들고온 동백기름의 경우. 품질은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데 포장이나 가격은 수십년 간 그대로이고 판로도 섬 일대와 규슈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모리 센터장은 이 경우는 패키지 디자인을 개선하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홍보방법을 연구하겠다고 했다. 타인의 평가는 자신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는 지름길이다.일본의 지방창생을 논할 때 흔히 “열쇠는 ‘외지인, 젊은이, 바보(무모한 자)’가 쥐고 있다”는 말이 있다. 젊은이는 지역의 미래를 그려내는 에너지원이 되고, 외지인은 지역민과 다른 발상법을 제공해 주며, 무모한 자는 용감하게 일을 실천에 옮긴다. 이키섬에서 바로 그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었다. 인구가 줄고 쇠락해가는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자세다. ○한국, 지방은 소멸하는데 수도권은 폭발인구구조는 많은 것을 바꾼다. 한국의 인구구성에서 변곡점이라 할 일들이 2020년에 거의 동시에 벌어졌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처음 나타났다. 합계특수출산율은 충격적인 0.84를 기록했다. 지방소멸의 원인인 저출산과 인구의 대도시 유출이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출산율을 지역별로 보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광역자치단체는 세종시(1.28), 낮은 곳은 서울(0.64)이다. 시군구별 상위 10개소는 모두 군 단위였다. 전남 영광군의 2.46이 1위였고 10개중 8곳을 전남북이 차지했다. 출산율이 가장 낮은 곳은 부산 동구(0.45)였고 하위 10개소는 서울(6곳), 대구(2곳), 부산(2곳) 등 모두 도시권이다. 인구, 특히 청년인구는 대도시로 쏠린다. 그런데 대도시에서는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탓에 아이를 가질 엄두를 못 낸다. 현실에서는 말그대로 수도권 인구는 폭발하고 지방은 소멸하고 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 걸까.※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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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유학 지원” “빈집을 빵집으로 대여”… 젊은이-외지인 유치 손짓[서영아의 100세 카페]

    지난달 18일 행정안전부가 전국 시군구 228곳 중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들 지역에 앞으로 10년간 매년 1조 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애써 ‘인구감소지역’이라 완화해 표현했지만 신문 방송들은 ‘지방소멸’에 방점을 찍어 보도했다. ○2014년 일본 강타한 ‘지방소멸론’ ‘지방소멸’이란 말은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총무상이 2014년 5월 일명 ‘마스다보고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보고서는 ‘이대로라면 2040년 일본의 기초자치단체 1727곳 중 절반인 896곳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마스다보고서는 지방소멸 가능성을 추정하는 잣대로 가임연령인 20∼39세 여성 인구에 주목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장래인구추계에서 2010∼2040년의 30년간 이 연령대 여성 인구가 5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 지자체를 소멸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의 도쿄 집중을 막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일본 인구는 2008년 1억2808만 명을 정점으로 이미 감소로 전환했다. ○지방창생을 정책기조로 삼은 아베 정권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탄 아베 신조 당시 정권은 같은 해 ‘지방 창생(創生)’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대대적인 지역활성화에 나섰다.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마을-사람-일자리창생본부를 설치하고, 지자체들에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전략 수립을 독려했다.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마을 사람 일자리’를 앞세운 지방창생 5개년 계획을 만들었다. 아베 정부는 이듬해부터는 ‘1억 총활약사회’ 캠페인을 시작했다. 일본 인구는 2060년 8600만 명 선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으나 1억 명 선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한 ‘희망출산율’로 1.8을 제시했다. 청년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도록 워크 라이프 밸런스 보장, 임금 인상, 보육서비스 확충 등을 정부가 나서 주창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인지 수년간 1.3∼1.4를 오르내리던 출산율은 2015년 1.45로 반짝 상승하기도 했다. 지난해 출산율은 1.37이다. ○‘미래는 지방으로부터 온다’ 내 고향, 내 고장을 지키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은 이미 여러 곳에서 시작돼 있었다. 몇 군데 직접 다녀온 지방의 사례들을 보자. 도쿠시마(德島)현 가미카쓰(上勝)정은 인구 1511명 중 53%가 고령자인 산간마을(2021년 3월 1일 기준).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사회공동체 유지가 곤란해진 마을이다. 하지만 직접 가본 마을에는 활기가 넘쳤다. 정보화 기기를 활용한 ‘잎사귀 비즈니스’의 성공으로 고령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고 있었다. 억대 수입을 올리는 농가도 있었다. 잎사귀 비즈니스란 일본 요리를 장식하는 제철 잎사귀, 꽃 등 ‘장식용 야채’를 고령자들이 재배부터 출하, 판매까지 맡아서 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눈으로 먹는다’는 일본 요리에 쓰이는 잎사귀 종류는 320종 이상이다. 300여 명이 종사하는데 일손의 중심은 70대 이상이고,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가미카쓰정의 제2기(2020∼2024년) 지역창생계획을 살펴보면 외지인 유치가 어렵다면 탐방, 연구, 관광 등으로 마을을 찾는 인구라도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가 그득했다. 출산 양육 지원을 위해 자녀들의 보육지원 학습지원은 물론이고 단기 해외유학 지원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몇 명 안 되는 학령기 아동에 대해 세세하고 꼼꼼하게 지원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어 마치 두부 한 모로 12가지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마을의 인구전략은 2040년 인구 1000명을 유지하는 것이다.○‘창조적’ 인구감소 추구 인접한 산간마을 가미야마(神山)정은 인구 5400여 명 규모에 고령화율이 50%에 달한다. 하지만 지역 비영리법인(NPO) ‘그린밸리’가 주도한 이주자 유치 사업이 성공하면서 낡은 민가가 속속 사무실이나 점포로 변신 중이었다. NPO는 마을의 장래에 필요한 인재들을 핀포인트식으로 유치하고 정착을 지원해왔다. 마을 곳곳에 있는 빈집을 활용해 마을에 빵집이 필요하다면 “이 빈집은 빵집을 낼 사람에게 빌려준다”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최근 연평균 24명 정도의 신규 입주자가 유입되고 있다. 가미야마정이 추구하는 것은 2060년을 내다보는 ‘창조적 인구감소’다. 인구를 늘린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 그 대신 인구 구성의 질을 좋게 해서 마을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2060년 마을 인구는 1100명으로 줄어들지만 지금처럼 연 24명 선의 신규 입주가 지속된다면 1900명대가 된다. 이들의 목표는 2060년까지 마을 인구 3000명 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매년 44명 정도로 신규 입주자를 늘려야 한다.○“열쇠는 외지인, 젊은이, 바보(무모한 자)” 일본 서남단 규슈와 쓰시마 사이에 자리한 인구 2만7000명의 이키(壹岐)섬에서는 30대 여성 후지모토 아야코 씨가 해녀 수업을 받고 있다. 연안에는 성게 전복 소라 등이 풍부하지만 해녀들도 고령화돼 후계자가 없자 이키시가 나서 전국에 해녀 후계자 모집공고를 냈다. 요코하마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다른 삶을 동경해’ 손을 들었다. 당장은 어부 지망생에게 나오는 보조금 월 13만 엔이 주 수입이지만 매일 60대 선배들과 나서는 물질이 즐겁고 주거도 생활도 이웃들이 돌봐줘 걱정이 없다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지인의 눈으로 지역 살리기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었다. 폐쇄적인 섬에서는 발전을 위한 자극도 없고 자신들의 장점도 깨닫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이키시는 섬 내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을 위해 산업지원센터 센터장을 전국 단위로 공모했다. 시장 월급보다 많은 ‘월 100만 엔’을 조건으로 내걸자 MBA 보유자, 상장기업 임원, 경영자, 공인회계사 등 391명이 지원했다. 경쟁을 뚫고 낙점된 사람은 도쿄에서 벤처창업가로 화제를 모은 33세 사업가. 섬으로 이사 온 그는 현지 기업인들의 상담에 응하며 신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판로와 마케팅 전략을 짜주고 있다. 일본의 지방창생에 대해 흔히 “열쇠는 ‘외지인, 젊은이, 바보(무모한 자)’가 쥐고 있다”는 말이 있다. 젊은이는 지역의 미래를 그려내는 에너지원이 되고, 외지인은 지역민과 다른 발상법을 제공해 주며, 무모한 자는 용감하게 일을 실천에 옮긴다. 이키섬에서 바로 그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었다.○한국, 지방은 소멸하는데 수도권은 폭발 2020년, 한국의 인구구조에서 변곡점이라 할 일들이 거의 동시에 벌어졌다. 수도권 인구가 전국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합계특수출산율은 0.84를 기록했다. 지방소멸의 원인인 저출산과 인구의 대도시 유출이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출산율을 지역별로 보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광역자치단체는 세종시(1.28), 낮은 곳은 서울(0.64)이다. 시군구별 상위 10곳은 모두 군 단위였다. 전남 영광군의 2.46이 1위였고 10곳 중 8곳을 전남북이 차지했다. 출산율이 가장 낮은 곳은 부산 동구(0.45)였고 하위 10곳은 서울(6곳), 대구(2곳), 부산(2곳) 등 모두 도시권이다. 대도시권일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데 인구는 갈수록 대도시로 쏠리는 현실이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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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홈리스는 ‘집’ 아닌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길 위의 의사’와 단짝들의 동행 [서영아의 100세 카페]

    ‘길위의 의사’, ‘노숙인의 슈바이처’. 내과전문의 최영아(51) 씨는 지난 20년간 이렇게 불려왔다.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딴 2001년, 첫 일터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병원 ‘다일천사병원’을 택했다. 이후로도 영등포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등을 거치며 노숙인들을 보살펴왔다. 현재는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으로 일하는 그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서북병원은 과거 ‘행려병자’들의 병원이라 여겨졌고 요즘도 노숙인 장애인 등의 치료를 맡는 공공병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코로나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존 환자들 상당수가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의사소통이 잘 되고 치료 효과가 뚜렷한 환자들을 오랜만에 대하니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돼 노숙인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홈리스는 인간관계 회복돼야 사회 복귀 가능 -쪽방이나 쉼터가 있는데도 굳이 길에서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사람이 그리워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음주문제도 있고요. 노숙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뿌리는 인간관계가 안 되는 거예요. 같이 살 사람, 돌아갈 가족이 없는 거죠. 영어로 ‘하우스리스’가 아니고 ‘홈리스(homeless)’인 이유죠. 노숙인들은 인간관계가 회복돼야 사회 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어요.” 애써 치료해서 내보내면 다시 똑같은 상태가 돼 돌아오는 ‘회전문’ 환자가 적지 않아 ‘밑빠진 독에 물붓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환자를 12번째 입원시키게 됐을 때 멘토였던 선우경식 영등포 요셉의원 원장(1945~2008)에게 조언을 구했다. 자신은 한 환자를 60번도 입원시켜봤는데 그 환자는 결국 술을 끊었다는 말을 들었다. 최씨는 요즘 평생 최고의 급여를 받고 있다. 다일천사병원이나 요셉의원에서는 월 100만 원이 고작이었고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에서의 월급도 선교단체에서 의사들끼리 후원금 모아 지급해주는 돈이니 많을 수가 없다. 대장항문암 전문 외과의였던 남편도 지금은 영등포구 ‘보현의 집’이라는 노숙인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대학 3학년, 중학교 3학년인 아들딸은 노숙인들 속에서 키웠다. 다일천사병원 시절에는 병원 옆 사택에서 살았다. 매일 진료소에 놀러다니던 아들은 노숙인 아저씨들에게서 귀여움을 받았다. 8년 터울인 딸은 마더하우스에 데리고 다녀 ‘아는 언니, 아는 이모’가 무척 많다. 그가 노숙인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의대 2학년 시절 자원봉사 나간 청량리역에서 비를 맞으며 밥먹는 사람들을 본 충격이었다. “빗물과 국물이 뒤섞인 밥을 먹는 분들을 보면서, 이 분들은 병이 많을 것같다. 여기저기 다치고 찢어지고 의사소통도 잘 안되는 저 분들. 저런 분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노숙인 956명의 주요 질병을 분석한 보고서는 2015년 ‘질병과 가난한 삶(청년의사)’으로 정리돼 출간됐다. 책은 노숙인들의 재활, 사회복귀를 위한 지원정책도 함께 제시했다. ○“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노숙인을 돌보다보니 의료만으로는 부족했다. 재활과 주거, 자립지원까지 일의 영역이 넓어졌다. “병이 나아도 노숙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일자리와 새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가족까진 아니더라도 기댈 수 있는 인간관계도 중요하죠.” 2009년 성공회와 함께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을 열면서 여성노숙인들의 쉼터인 ‘마더하우스’를 만들었다. 그 뒤 재활과 회복을 돕는 비영리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도 만들었다. 우선은 길에서 살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태는 훨씬 좋아진다. “그런데 집안에 틀어박혀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나오라고 일자리 만들어주면 한동안 잘 하다가 우울해져서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은둔에 들어가거나….” 말을 이어가던 그는 “늘 우울한 사람들 옆에 있다보니 자꾸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견뎌요? “그냥 같이 있는 친구들과 수다 떨고 하다보면 기운이 나요. 친구들과 오랫동안 많은 삶을 나눠왔고, 그렇게 붙들고 같이 가는 거죠.” 이런 가까운 친구 2명. 사단법인 회복나눔 네크워크 김진희(50) 사무국장은 대학시절 이래 30년 이상을 함께 일해온 ‘영혼의 단짝’같은 존재다. 최 씨가 벌여온 모든 활동의 업무적 뒷받침을 해왔다고 한다. 10년지기인 김지영(50) 트리니티패밀리협동조합 이사장은 회복이 필요한 젊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한 식당 ‘스마일박스’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50세를 넘기면서, 요즘 부쩍 애들을 돌봐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다른 형태, 다른 이유로 길에 나오는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는 것. “노숙인이 어설픈 가정을 만들면서 그 자녀들까지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부 다문화 가정도 비슷하지요. 그런 10대 아이들이 밖을 떠도는 거죠.” ○함께 고민하고 수다 떠는 동행들이 붙잡아주는 삶 최 씨를 지탱하게 해주는 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대문구 북가좌동 불광천변에 자리한 스마일박스에 함께 갔다. 본래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로 쓰던 장소를 지난해 10월 배달음식 전문식당으로 만들었다.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손님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배달전문 식당을 택했다고 한다. 화제는 담박에 전날 찾아온 가출소녀 얘기로 쏠렸다. 지난주부터 이들이 알게된 소녀의 친구의 친구라고 했다. 처음에 경찰이 엄마같은 멘토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며 이들에게 소개했다. 아이는 조금 친해지고 나니 자기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친구 얘기, 친구의 친구 얘기도 줄줄이 따라나왔다. 다음은 김지영 이사장의 얘기다. “말도 안되는 사연들이 많아요. 가정폭력 성폭력 근친성폭력. 아버지가 감옥에서 집에 돌아온 경우,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도망쳐서 거리를 헤내는 아이들, 성범죄에 노출되고 임신도 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이 다 있는 거죠.” -그 아이들이 마음 열고 얘기할 때 뭘 기대하는 걸까요. “얘들은 얘기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자살을 시도해요. 내가 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막막해하는 거죠.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카톡에 대답해주는 것. 아이 하소연 들어주고 ‘힘들겠다’‘며 공감해주고 지지해주고. 잠시 만나서 다독이고 응급 필요한 경우 치료받게 하고 하룻밤 피할 수 있는 곳 수배해주고 그런 도움이죠.”○제대로 된 어른과의 관계를 맺은 적 없는 아이들 “이런 일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해요.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보호자가 있는 미성년자를 집 나오라고 해서 우리가 데리고 있을 수는 없죠. 또 아이들은 미래가 있잖아요. 기대도 많지만 필요한 것도 많아요. 예컨대 이런 아이들일수록 일자리도 원해요. 의식주를 위한 돈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 없이는 취업이 안 되죠. 무작정 아무 일이나 시킬 수 없고 와중에 또 ’넌 사실 지금 공부해야 할 때‘라고 말해줘야 하기도 해요.” -엄마세대와 대화를 해본 경험 자체가 처음인 아이들도 많겠어요. “정작 제 자식은 저랑 그렇게 얘기 안 해요. 며칠 전 대학생 아들이 제가 열심히 카톡하는 거 보더니 ’엄마 이제 중학생이랑 카톡도 해?‘라며 기가 막혀 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너한테나 인기 없지. 밖에 나가면 인기 많아‘라고 쏘아줬죠(웃음).” 그는 얘기를 이어간다. “이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면 챙겨서 학교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제가 ’너 학교 매일 가야 한다. 학교 가면 인증샷 보내라‘고 하니 정말 아침마다 인증샷을 보내요. 그러면 ”아이고 우리 oo이 잘 일어났네, 학교 가네’ 이런 답장을 보내는데 그게 그 아이에겐 기쁜 일인가봐요.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죠.“○일자리 창출 위한 배달음식 전문식당 세 사람은 당장 시급한 일로 스마일박스 사업이 잘되길 바란다고 입 모아 말한다. ”아이들과 관계를 시작하려면 일거리가 있어야 해요. 양파라도 썰면서 ‘넌 왜 칼을 무서워하니?’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거죠. 상처받은 사람의 회복을 위해 비즈니스라는 명분을 이용하는 거예요.“ 지난해 10월 일단 해보자며 시작한 일이지만 월 600만원씩 적자가 났다. 6개월 만에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하려는 순간 최 씨에게 라이나 재단에서 주는 사회공헌상 상금이 들어오게 됐다. 기사를 찾아보니 상금 1억 원이다. 11월에는 아산재단이 주는 의료봉사상을 수상하게 된다. 상금 2억 원이다. ”신기하죠. 더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한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듯 상금이 들어오네요. 그래도 우린 사업으로 자력갱생 해야 해요. 직원들에게 성공의 경험이 필요하거든요.“ 현재 고용 직원은 4명이다. 주 4일, 주 2일 등 각자 편한 근무체계로 일하게 한다.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주는 게 원칙이다. 한국어를 못하는 난민에게는 마감시간에 청소를 돕게 하는 식으로 일거리를 준다. 지금 가장 열심히 하려는 일은 스마일박스에서 직접 만든 ‘빼빼 유니짜장’을 급속냉동해 온라인 판매하는 것. 설탕과 조미료를 빼고 칼로리를 낮춘 건강 레시피라 벌써부터 평판이 좋다고 한다. 11월 중에 온라인 스토어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이 팔려야 아이들 일거리도 많아지고 더 많은 아이들을 고용할 수 있어요. 이 아이들이 일하는 재미를 알아야 회복돼 돌아갈 때 ‘나도 하니까 되더라’는 자신감을 갖고 어떤 삶이건 시작할 수 있지요.“ 최영아 씨와 그 친구들의 인생 2막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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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인은 인간관계 회복돼야 일상 복귀… 가출 청소년에겐 공감의 울타리 절실”[서영아의 100세 카페]

    《‘길 위의 의사’, ‘노숙인의 슈바이처’.내과전문의 최영아 씨(51)는 지난 20년간 이렇게 불려 왔다.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딴 2001년, 첫 일터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병원 ‘다일천사병원’을 택했다. 이후로도 영등포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등을 거치며 노숙인들을 보살펴 왔다. 현재는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으로 일하는 그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서북병원은 과거 ‘행려병자’들의 병원이라 여겨졌고 요즘도 노숙인 장애인 등의 치료를 맡는 공공병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존 환자 상당수가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의사소통이 잘되고 치료 효과가 뚜렷한 환자들을 오랜만에 대하니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돼 노숙인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돌아갈 가족이 없어 거리로 나와―쪽방이나 쉼터가 있는데도 굳이 길에서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사람이 그리워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음주 문제도 있고요. 노숙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뿌리는 인간관계가 안 되는 거예요. 같이 살 사람, 돌아갈 가족이 없는 거죠. 영어로 ‘하우스리스’가 아니고 ‘홈리스(homeless)’인 이유죠. 노숙인들은 인간관계가 회복돼야 사회 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어요.” 애써 치료해서 내보내면 다시 똑같은 상태가 돼 돌아오는 ‘회전문’ 환자가 적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환자를 12번째 입원시키게 됐을 때 멘토였던 선우경식 영등포 요셉의원 원장(1945∼2008)에게 조언을 구했다. 자신은 한 환자를 60번도 입원시켜 봤는데 그 환자는 결국 술을 끊었다는 말을 들었다. 대장항문암 전문 외과의였던 남편도 지금은 영등포구 ‘보현의 집’이라는 노숙인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대학 3학년, 중학교 3학년인 아들딸은 노숙인들 속에서 키웠다. 다일천사병원 시절에는 병원 옆 사택에서 살았다. 그가 노숙인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는 의대 2학년 시절 자원봉사 나간 청량리역에서 비를 맞으며 밥 먹는 사람들을 보고 받은 충격이었다. “빗물과 국물이 뒤섞인 밥을 먹는 분들을 보면서, 이분들은 병이 많을 것 같다. 여기저기 다치고 찢어지고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저분들. 저런 분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노숙인 956명의 주요 질병을 분석한 보고서는 2015년 ‘질병과 가난한 삶’(청년의사)으로 정리돼 출간됐다. 책은 노숙인들의 재활,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 정책도 함께 제시했다. ○“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노숙인을 돌보다 보니 의료만으로는 부족했다. 재활과 주거, 자립 지원까지 일의 영역이 넓어졌다. “병이 나아도 노숙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일자리와 새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기댈 수 있는 인간관계도 중요하죠.” 2009년 성공회와 함께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을 열면서 여성 노숙인들의 쉼터인 ‘마더하우스’를 만들었다. 그 뒤 재활과 회복을 돕는 비영리 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도 만들었다. “노숙인들은 우선 길에서 살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태는 훨씬 좋아져요. 그런데 집 안에 틀어박혀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나오라고 일자리 만들어주면 한동안 잘하다가 우울해져서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은둔에 들어가거나….” 말을 이어가던 그는 “늘 우울한 사람들 옆에 있다 보니 자꾸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견뎌요. “그냥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수다 떨고 하다 보면 기운이 나요. 친구들과 오랫동안 많은 삶을 나눠 왔고, 그렇게 붙들고 같이 가는 거죠.” 그는 또 “50세를 넘기면서, 요즘 부쩍 ‘애들을 돌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다른 형태, 다른 이유로 길에 나오는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는 것.○ 함께 수다 떠는 동행들이 붙잡아주는 삶 최 씨를 지탱하게 해주는 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대문구 북가좌동 불광천변에 자리한 스마일박스에 함께 갔다. 사단법인 회복나눔 네크워크 김진희 사무국장(50)은 대학 시절 이래 30년 이상을 함께 일해 온 ‘영혼의 단짝’ 같은 존재다. 최 씨가 벌여 온 모든 활동의 업무적 뒷받침을 해 왔다고 한다. 10년 지기인 김지영 트리니티패밀리협동조합 이사장(50)은 회복이 필요한 젊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한 식당 ‘스마일박스’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화제는 전날 찾아온 가출소녀 얘기부터 시작됐다. 지난주부터 이들이 알게 된 아이의 친구의 친구라 했다. 경찰이 엄마 같은 멘토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며 소개했다. 아이는 조금 친해지고 나니 자기 얘기, 친구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음은 김지영 이사장의 얘기다. “말도 안 되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아요. 가정 폭력, 성폭력, 근친 성폭력. 아버지가 감옥에서 집에 돌아온 경우,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도망쳐서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 성범죄에 노출되고 임신도 하고…. ” ―그 아이들이 마음 열고 얘기할 때 뭘 기대하는 걸까요. “얘들은 얘기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자살을 시도해요.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카톡에 대답해주는 것. 아이 하소연 들어주고 ‘힘들겠다’며 공감해주고 지지해주고. 잠시 만나서 다독이고 응급처치 필요한 경우 치료받게 하고 하룻밤 피할 수 있는 곳 수배해주고 그런 도움이죠.”○어른과의 관계 제대로 맺은 적 없는 아이들 “이런 일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해요.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보호자가 있는 미성년자를 집 나오라고 해서 우리가 데리고 있을 수는 없죠. 또 아이들은 기대도 많지만 필요한 것도 많아요. 예컨대 이런 아이들일수록 일자리도 원해요. 의식주를 위한 돈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 없이는 취업이 안 되죠. 그 와중에 또 ‘넌 사실 지금 공부해야 할 때’라고 말해줘야 하기도 해요.” ―엄마 세대와 대화를 해본 경험 자체가 처음인 아이들도 많겠어요. “이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면 챙겨서 학교 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제가 ‘너 학교 매일 가야 한다. 학교 가면 인증샷 보내라’고 하니 정말 아침마다 인증샷을 보내요. 그러면 ‘아이고 우리 ○○이 잘 일어났네, 학교 가네’ 이런 답장을 보내는데 그게 그 아이에겐 기쁜 일인가 봐요.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죠.”○일자리 창출 위한 배달음식 전문 식당 세 사람은 당장 시급한 일로 스마일박스 사업이 잘되길 바란다고 입 모아 말한다. “아이들과 관계를 시작하려면 일거리가 있어야 해요. 양파라도 썰면서 ‘넌 왜 칼을 무서워하니?’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거죠. ” 지난해 10월 일단 해보자며 시작한 일이지만 월 600만 원씩 적자가 났다. 6개월 만에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하려는 순간 최 씨에게 라이나 재단에서 주는 사회공헌상 상금이 들어오게 됐다. 기사를 찾아보니 상금 1억 원이다. 11월에는 아산재단이 주는 의료봉사상을 수상하게 된다. 상금 2억 원이다. “신기하죠. 더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한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듯 상금이 들어오네요.” 현재 고용 직원은 4명이다. 주 4일, 주 2일 등 각자 편한 근무 체계로 일하게 한다.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주는 게 원칙이다. 한국어를 못하는 난민에게는 마감 시간에 청소를 돕게 하는 식으로 일거리를 준다. 지금 가장 몰두하는 것은 직접 만든 ‘빼빼 유니짜장’을 온라인 판매하는 것. 설탕과 조미료를 빼고 칼로리를 낮춘 건강 레시피라 벌써부터 평판이 좋다고 한다. “많이 팔려야 아이들 일거리도 많아지고 더 많은 아이들을 고용할 수 있어요. 이 아이들이 일하는 재미를 알아야 회복돼 돌아갈 때 ‘나도 하니까 되더라’는 자신감을 갖고 어떤 삶이건 시작할 수 있지요.” 최영아 씨와 그 친구들의 인생 2막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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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에게 기대던 시대에서 셀프 부양의 시대로[서영아의 100세 카페]

    “노후설계의 발목을 잡는 세가지 착각이 뭔지 아십니까. 첫째 자신에게 80세 이후 삶은 없다고 생각하는 착각, 둘째 죽음이 어느날 갑자기 조용히 온다는 착각, 셋째 자녀가 내 노후를 보장할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74)가 요즘 많이 하고 다니는 얘기다. 좀더 설명을 들어보자. “우선 자신에게 80세 이후는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누구나 100세까지 산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절약하고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할 생각을 해야 해요. 둘째로 죽음까지의 마지막 몇 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아프고 힘듭니다. 이때 돈과 외로움 등으로 고생하게 되지요. 셋째 자녀는 당신의 노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세대처럼 자식에게 마구 쏟아부으면 내 노후가 보장될 것이라는 막연한 착각을 버려야 하지요.” 조금은 안이하게 노후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가차없는 ‘팩트 폭격’이 아닐 수 없다. 14일 찾은 그의 개인사무실은 수십년간 모아놓은 은퇴 관련 서적과 자료들로 가득했다. 책상 아래에는 필요한 기사를 오려낸 뒤 버려진 신문더미가 수북하다.○자산운용사 대표에서 투자교육연구소장으로 ‘재취업’ 그는 말 그대로 한국의 은퇴 및 투자교육의 개척자라 할 수 있다. 자산운용사의 대표를 2차례 역임한 뒤인 2002년, 갑작스레 ‘금융교육’ 분야로의 전업을 선언하고 투자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종의 ‘재취업’이죠. 자산운용이 성공하려면 운용만 잘 해서는 소용이 없겠더라구요. 투자자들이 단기시항에 이끌려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는 상황에서 장기분산투자를 하라고 설득하려면 교육이 필요했어요.” 금융투자는 ‘재테크’로만 인식되던 당시 상황에서 그가 생애설계를 위한 자산운용과 장기투자, 적립식 투자, 분산투자 등을 설파하면서 자산운용업계 전반에 투자자 교육 열풍이 일어났다. 마침 저금리와 고령화시대가 오고 있었다. 전국에서 강연요청이 쇄도했다. 그때 시작한 이 일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그는 은퇴와 생애설계 관련한 현실을 강연과 저서, 방송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돈 없이 오래 살 위험에 대비하라’‘돈 없이 오래 살 위험에 대비하라’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젊어서부터 준비하라’는 그의 주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약 구실을 한다. “제가 처음 ‘오래 사는 위험’이라는 말을 본 것은 한 자산운용사의 CEO를 맡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그 회사 고문으로 있던 티모시 메카시라는 미국인이 ‘일본인이여 돈에 눈을 떠라’는 제목의 책을 줬는데 목차에 ‘장수 리스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병이 나서 일찍 죽을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생명보험에 드는 것처럼 너무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일리가 있었어요. 80세까지 살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돈을 다 써버렸는데 100세까지 산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겠지요.” 그가 일찌감치 장수 고령화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릴 수 있었던 비결은 일본의 고령사회를 미리 볼 수 있었던 데 있다. 그는 45년 전 일본에서 연수할 때 머리 희끗한 노인들이 젊은이들은 안 할 것같은 허드렛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많이 봤다고 한다. 대기업 중역이나 관료로 한자리씩 했던 노인들이 체면을 버리고 자기 할 일 하는 모습을 보며 높은 자리, 많은 수입보다 오래 일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이게 우리의 미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평생 현역이 최고의 노후대책”그는 ‘평생 현역’이 최고의 노후대책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몸소 실천해보이고 있다. 74세인 요즘도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사무실과 여의도 자택 근처의 개인법인 사무실을 오가며 강연을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다만 웃으며 얼버무리는 그를 상대로 캐묻다 보니 이런 일들이 거의 재능기부 차원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았다.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누군가가 제 얘기를 들으려 하고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말이죠.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덤입니다.” 그가 꼽는 노후를 괴롭히는 세가지 난적(難敵)은 돈 건강 외로움인데, 여기서 벗어나는 특효약이 바로 일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노후에는 멋진 일, 폼나는 일은 젊은이들에게 양보하고 허름한 일이라도 즐겁게,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권한다. 최근에 낸 저서 ‘오십부터는 노후 걱정없이 살아야 한다’(포레스트 북스)는 젊은 세대가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책 표지에 적혀있듯 노후 준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어떻게 살아남을까. 아주 장밋빛은 아니지만 준비만 잘 한다면 마냥 잿빛도 아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가난한 시대가 왔다’그가 권하는 노후설계와 자산운용에 대한 논의는 이미 고전이 돼 버렸을 정도로 이 분야 사람들에게는 침투해 있다. 코로나 사태가 오기 직전까지 연간 최대 400회 강연을 뛰었다. 코로나 사태로 발이 묶인 뒤, 유튜브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유튜브 경제방송인 삼프로TV에 지난해 강 대표가 출연한 ‘노후파산’ 관련 동영상은 조회수 247만을 기록했다. 여기서 그는 위에 소개한 ‘노후를 망치는 3가지 착각’에 대해 얘기했다. 이밖에도 그는 ‘젊은 세대는 재테크보다는 당장 자신의 직업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남는 투자’라고 강조한다. 저금리시대에 자신이 받는 노동소득을 월 100만원 올리는 것은 자산 10억을 갖는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 은퇴를 위해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중 연금으로 안전망을 구축하라고 강조한다. “직장인은 특히 퇴직연금 관리에 따라 노후가 달라집니다. 미국에서는 ‘백만장자 퇴직자’가 늘고 있어요. 미국의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인 ‘401K’와 미국 주식시장의 활황 덕분인데, 퇴직연금을 적립식으로 20~30년 투자하면 복리로 불어나 퇴직할 때쯤 100만 달러, 우리돈 약 10억 원 정도는 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거죠.” ○라이프워크 만들어 ‘창직’ 그로서는 금융교육에 매진해온 지난 20년간은 ‘창직(創職· 기존에 없던 직업 직종을 만들어내는 것) 과정이었다고 한다. 대우증권 현대투신운용 등 증권사와 투신사를 오가며 일해온 그는 55세이던 2002년 굿모닝투자신탁운용(현 PCA투자신탁운용)에 투자교육연구소를 만들고 소장으로 취임했다. 사회공헌이란 단어가 생소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2004년부터는 미래에셋으로 자리를 옮겨 부회장 겸 투자교육연구소장으로 일했다. 이 또한 그가 사측에 제안해 이뤄진 일이었다. 그로부터 9년간, 그의 소속은 퇴직연금연구소, 은퇴연구소 등으로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꾸준했다. 2012년 12월 말 65세로 미래에셋에서 은퇴했다. ’미래와 금융연구포럼‘ 대표로 취임한 그에게 2014년 ’사회공헌‘ 사업을 찾던 자산운용회사가 연락을 해왔다. 현재까지 7년째 일하고 있는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직이 주어졌다. 근 20년을 금융교육에 종사했지만 당장 돈버는 일과는 늘 거리가 있었다. “당장의 매출을 요구하지 않는 좋은 경영진과 함께 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죠.” 대신 그가 속한 조직의 명예와 영향력이 커졌고 대중이 느끼는 친숙도가 커졌을 것이다. ○자녀에 대한 투자를 줄여라이런 그가 늘 강조하는 것이 ’자녀리스크‘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노후를 생각지 않고 자녀에게 올인 했다가 비참한 노후를 맞게 된다는 지적이다. 사교육비, 결혼비용에 사업비용까지 대주고는 쪽방에서 노후를 맞는 노인들도 부지기수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성장한 자녀들이 취업도 못하고 있으면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걸 그는 ’자녀 리스크‘라 부른다. “생활비는 자녀의 도움에 의존한다는 고령자가 10년 전만 해도 40%였지만 최근엔 23%로 줄었습니다. 이 비중은 더욱 줄어들 겁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노후 수입 대부분이 연금에서 나오고 자녀에게서 오는 수입은 0.4~1% 선에 그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무원 교사 군인을 제외한다면 공적연금 만으로 노후 기본 생활을 영위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월 100만 원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가 6.6%에 불과한 현실이다. 국민연금 외에도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3층 연금구조를 마련해 노후 고정수입을 최대한 확보해놓아야 하는 이유다. ○자녀에게 자립과 결핍을 가르쳐라강대표가 자녀에 대한 투자를 줄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저성장과 결핍의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늘어나는 시대에는 경제도 성장한다. 한국의 인구구조를 보면 1950년대부터 28년간 매년 100만명 안팎의 인구가 태어났다. 이들이 성장해 현역으로 일하던 시기는 인구보너스를 누리는 행복한 시대였다. 하지만 고령화와 0대로 내려간 초저출산율이 동시에 진행되는 인구오너스의 시대다. “연간 30만 명도 태어나지 않는 아이들이 매년 100만 명씩 늘어나는 노인세대를 먹여 살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죠. 여기에 저성장 시대를 맞은 세계적 추세도 자녀세대가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시대가 왔다는 점입니다.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함께 쓰러질 수밖에 없어요.” 살아남는 길은 절약. 우선 본인들부터 낭비요인을 줄이고 자녀들에게도 결핍을 가르쳐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100세는 확실히 넘게 삽니다. 부모세대보다 가난한데 무지막지한 장수가 보장된 세대예요. 부모가 100세에 타계하면 자녀들은 70~80세. 그때 재산을 물려준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세상을 달리 살아갈 지혜를 물려주는 게 맞죠.” 같은 이유로 자녀에게 의지할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부모들이 자신의 노후를 뒷전에 두고 자녀에게 ’올인‘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80~90세가 되어 자신도 살기 힘든 환갑넘은 자식에게 ’너 해외유학 보내주고 결혼 때 집 해줬잖아. 그거 갚아라‘고 할 겁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수명은 늘어나는데 정년은 빨라지는 게 요즘 세태. 취업포털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들의 체감 정년은 51.7세다. 대개의 경우 한번 직장을 그만둔 뒤 다음번 직장에서는 전 직장 급여의 절반 정도 받으면 성공적이라고 한다. ○노후 준비, 한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준비하라그의 요즘 가장 큰 바람은 이런 자신의 얘기를 젊은 사람들이, 그것도 부부가 함께 들어줬으면 하는 것이다. “은퇴준비 노후준비라는 게 사실은 생애 주기를 기획하는 거예요. 평생의 꿈과 성취목표, 생명을 마무리할 때까지의 사이클을 미리 생각해보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미리 시작할수록 선택지가 많고 덜 힘들죠. 인생에는 복리의 마법이 작동하니까요.” -최근 출연하신 유튜브 방송에는 30, 40대 시청자들이 “지금 이걸 보게 돼 다행”이라는 식의 코멘트들이 많던데요. “가장 보람을 느끼는 대목입니다. 최소한 40대에는 자신의 인생 2막에 대해 생각해보고 50부터는 노후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보다 나이가 많은 중장년들도 각자의 단계에서 준비할 것들이 많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입니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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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직으로 평생현역 실천… “돈 없이 오래 살 위험 대비해야”[서영아의 100세 카페]

    “노후 설계의 발목을 잡는 세 가지 착각이 뭔지 아세요. 첫째 자신에게 80세 이후 삶은 없다고 생각하는 착각, 둘째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온다는 착각, 셋째 자녀가 내 노후를 보장할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74)가 요즘 많이 하고 다니는 얘기다. 좀 더 설명을 들어보자. “우선 자신에게 80세 이후는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누구나 100세까지 산다고 각오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절약하고,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할 생각을 해야 해요. 둘째로 죽음까지의 마지막 몇 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아프고 힘듭니다. 이때 돈 문제와 외로움 등으로 고생하게 되지요. 셋째, 자녀는 당신의 노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마구 투자하면 내 노후가 보장될 것이라는 막연한 착각을 버려야 하지요.” 노후를 조금은 안이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는 ‘팩트 폭격’이 아닐 수 없다. 14일 찾은 그의 개인 사무실은 수십 년간 모아놓은 은퇴 관련 서적과 자료들로 가득했다.○ 금융교육으로 투자자 교육 열풍 일으켜 강창희 대표는 말 그대로 한국의 은퇴 및 투자 교육의 개척자다. 자산운용사의 대표를 2차례 역임한 뒤인 2002년, 갑작스레 ‘금융 교육’ 분야로 전업을 선언하고 투자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종의 ‘재취업’이죠.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자산운용 전에 투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절감했어요. 투자자들에게 장기 분산 투자를 설득할 길이 없었거든요.” 금융투자는 ‘재테크’로만 인식되던 상황에서, 그가 생애 설계를 위한 자산 운용과 장기 투자, 적립식 투자, 분산 투자를 설파하면서 업계 전반에 투자자 교육 열풍이 일어났다. 마침 저금리와 고령화 시대가 오고 있었다.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돈 없이 오래 살 위험에 대비하라’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젊어서부터 준비하라’는 그의 노후에 대한 충고는 이 분야 사람들에게는 고전이라고 할 정도로 침투해 있다. “처음 ‘오래 사는 위험’이라는 말을 본 것은 한 자산운용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고문으로 있던 티머시 매카시라는 미국인이 ‘일본인이여 돈에 눈을 떠라’는 제목의 책을 제게 줬는데 목차에 ‘장수 리스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고나 질병으로 일찍 죽을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생명보험에 드는 것처럼 너무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였죠. 80세까지 산다고 생각하고 가진 돈을 다 써버렸는데 100세까지 산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겠죠.”○평생 현역이 최고의 노후 대책 그는 ‘평생 현역이 최고의 노후 대책’이란 자신의 지론을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다. 74세인 요즘도 트러스톤자산운용 사무실과 서울 여의도 개인법인 사무실을 오가며 강연을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다만 웃으며 얼버무리는 그를 상대로 캐묻다 보니 거의 재능기부 차원으로 이뤄지는 일들이 많았다.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누군가 제 얘기를 들으려 하고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말이죠.” 그가 꼽는 노후를 괴롭히는 세 가지 난적(難敵)은 돈 건강 외로움인데, 여기서 벗어나는 특효약이 바로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노후에는 멋진 일, 폼 나는 일은 젊은이들에게 양보하고 허드렛일이라도 즐겁게,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권한다. 최근에 낸 저서 ‘오십부터는 노후 걱정 없이 살아야 한다’(포레스트북스)에는 젊은 세대가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노후 준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어떻게 살아남을까. 장밋빛은 아니지만 준비만 잘한다면 마냥 잿빛도 아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가난한 시대가 왔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연간 최대 320회 강연을 뛰었다. 코로나 사태로 발이 묶인 뒤에는 유튜브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유튜브 경제방송인 삼프로TV에 지난해 10월 강 대표가 출연한 ‘노후 파산’ 관련 동영상은 조회수 247만 회를 기록했다. 여기서 그는 위에 소개한 ‘노후를 망치는 3가지 착각’에 대해 얘기했다. 이 밖에도 그는 ‘젊은 세대는 재테크보다는 당장 자신의 직업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남는 투자’라고 강조한다. 저금리 시대에 자신이 받는 노동소득을 월 100만 원 올리는 것은 자산 10억 원을 갖는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 또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중 연금으로 안전망을 구축하라고 말한다. “직장인은 특히 퇴직연금 관리에 따라 노후가 달라집니다. 미국에서는 ‘백만장자 퇴직자’가 늘고 있어요. 미국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제도인 401K와 미국 주식시장의 활황 덕분인데, 20∼30년 퇴직연금을 적립식으로 부으면 복리로 불어나 퇴직할 때쯤 100만 달러, 우리 돈 10억 원 정도는 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거죠.”○라이프워크 만들어 창직 그로서는 금융 교육에 매진해온 지난 20년간은 ‘창직(創職·기존에 없던 직업 직종을 만들어내는 것)’ 과정이었다고 한다. 대우증권 현대투신운용 등 증권사와 투신사를 오가며 일해 온 그는 55세이던 2002년 굿모닝투자신탁운용(현 PCA투자신탁운용)에 투자교육연구소를 만들고 소장으로 취임했다. 사회공헌이란 단어가 생소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2004년부터는 미래에셋으로 자리를 옮겨 부회장 겸 투자교육연구소장으로 일했다. 이 또한 그가 사측에 제안해 이뤄진 일이었다. 미래에셋에서 9년간 일한 뒤 2012년 12월 말 65세로 은퇴했다. 2014년부터는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로 일하고 있다. 금융교육은 눈앞의 성과나 돈 버는 일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의미는 남다르다. “당장의 매출을 요구하지 않는 좋은 경영자와 함께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죠.” 대신 그가 속한 조직의 명예와 영향력, 대중이 느끼는 친숙도가 커졌을 것이다. ○자녀에게 자립과 결핍을 가르쳐라 이런 그가 늘 강조하는 것이 ‘자녀 리스크’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노후를 생각지 않고 자녀에게 올인했다가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는 지적이다. 사교육비, 결혼 비용에 사업 비용까지 대주고는 쪽방에서 노후를 맞는 노인들도 부지기수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성장한 자녀들이 취업도 못 하고 있으면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걸 그는 ‘자녀 리스크’라 부른다. “자녀의 도움을 받는 고령자는 현재 통계로 23% 정도지만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겁니다. 10년 전만 해도 이 비율은 40%에 육박했지요. 선진국에서는 노후 수입 대부분은 연금에서 나오고 자녀에게서 오는 수입은 0.4∼1% 선에 그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무원 교사 군인을 제외한다면 공적연금만으로 노후 기본 생활을 영위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3층 연금구조를 마련해 노후 고정수입을 최대한 확보해 놓아야 하는 이유다. 그가 자녀에 대한 투자를 줄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저성장과 결핍의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30만 명도 태어나지 않는 아이들이 매년 100만 명씩 늘어나는 노인세대를 먹여 살릴 수는 없죠. 여기에 저성장을 맞은 세계적 현상으로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시대가 왔습니다.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함께 쓰러질 수밖에 없어요.”○노후 준비, 한 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시작하라 그는 은퇴 준비, 노후 준비에 대해 “생애 주기를 기획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생의 꿈과 성취 목표, 생명을 마무리할 때까지의 사이클을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하는 것이며, 일찍 시작할수록 선택지가 많고 덜 힘들다는 얘기였다. 그는 “최소한 40대에는 자신의 인생 2막에 대해 생각해 보고 50부터는 노후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물론 그보다 나이가 많은 중장년들도 각자의 단계에서 준비할 것들이 많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라고 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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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2막 17년차, 위례 인생학교 교장 백만기[서영아의 100세 카페]

    “장외투자, 모두 관심 많으시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창업하는 회사의 5년 뒤 살아남는 비율이 20%에 불과하다는 거 아세요? 장래성을 따지지 않고 투자한다면 리스크가 무척 크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처럼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사람들이 투자하는 이유는 뭘까요….”12일 오후 2시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스토리박스. 쨍한 노란색을 기조로 한 콘테이너박스 건물군속 한 교실에 두툼한 책을 든 사람들이 모여든다. 대부분 50대인 학생 4명이 발제와 토론을 하면 이를 지켜보던 백만기(69) 교장이 가끔 끼어들어 진행을 돕고 전문적인 설명을 해준다. 교재는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알려진 벤자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 위례인생학교 ‘금융투자’ 수업현장이다.“수업은 참여자 모두가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강사가 학생이 되고, 학생이 다시 선생이 되기도 하는 수평적인 시스템이죠.”실제로 이 수업에 학생으로 참여한 오정선 씨는 앞 시간 생활영어 수업에서는 강사였다. 오랜 해외생활 뒤 귀국해 도서관과 문화센터 등에서 영어교육 자원봉사를 많이 한단다. ○‘어른들을 위한’ 두번째 인생학교가 출범하다백 교장은 사실 분당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영국 평생교육기구인 U3A(University of the 3rd Age)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민이 운영하는 자율학교 개념을 도입해 ‘아름다운 인생학교’를 2013년 분당에 열었다. 지난해 8월 개교한 위례학교는 두 번째 인생학교가 된다.“분당 학교는 이제 궤도에 올랐으니 다른 분께 넘겼습니다. 제 꿈이 인생학교를 100개 만드는 것인데 이제 겨우 두 번째 학교를 시작한 겁니다. ‘어른들을 위한 학교’인 인생학교가 인생 2막을 맞은 이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합니다.”월 1만 원 운영회비만 내면 3과목까지 수강할 수 있다. 가을학기에는 생활영어 금융투자 심리학 포토에세이 우쿨레레 등 10개 강좌가 개설됐고 문화답사 등 야외강좌도 있다. “내 지식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하고, 다른 사람의 지식은 내게 필요합니다. 사회에서 받은 것이 많아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지혜를 옆 사람과도 나눠야겠다는 생각인 분들이 인생학교에 찾아오십니다.”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는 퇴직자, 젊은 시절 로망인 악기 배우기를 이곳에서 시작한다는 60대 등 각자의 사연은 다양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눈다는 자세는 모두가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인생 2막”백 교장은 50대 초반 ‘자발적’으로 은퇴한 뒤 인생 1막에서 막연하게 꿈꾸던 많은 일에 도전했다. 고전음악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분당FM방송 진행자로 일했다. 성당교우들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 콘서트를 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낭독봉사를 했고 호스피스 전문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종착지가 인생학교인 듯하다.“은퇴 직후 성남아트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굉장한 경력을 가진 분들이 자원했다가 단순 역할에 실망하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 무렵 영국 U3A를 알게 됐어요. 은퇴를 앞뒀거나 이미 은퇴한 시니어들의 대학입니다. 정부 보조 없이 회비만으로 다양한 강좌가 이뤄지는데, 학교 운영위원과 강사가 모두 자원봉사자였습니다. 2012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가 개최한 ‘은퇴 후 8만시간’ 에세이 공모전에 영국 U3A처럼 어른들을 위한 학교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주제로 응모해 대상을 받았습니다.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2013년 분당 수내동에 오피스텔 하나를 빌려 개교했죠.”U3A는 인생주기를 크게 만 24세 이하, 25세~49세, 50세~74세, 75세 이상의 4시기로 구분한다. 제1기는 학령기, 제2기는 사회활동기, 제3기는 은퇴 후, 제4기는 임종기인데, U3A는 보다 풍요로운 제 3기를 위한 대학인 셈이다. 가족 친지 모두가 ‘영국에서나 가능한 얘기지, 우리나라에선 안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그의 생각엔 사회에 꼭 필요한 커뮤니티였다. 성남아트센터 때 인연을 맺은 봉사자들도 강사로 초빙할 수 있었다. 그 뒤 분당인생학교에서 교장 역할뿐 아니라 우쿨렐레 강사, 웰다잉 강사, 금융교육 강사 등으로도 맹활약했다. 분당학교는 2018년 사회공헌 차원에서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해온 한 백화점내로 자리를 옮겼다. ○“전국에 인생학교 100개쯤 생긴다면…”그의 요즘 꿈은 한국 전역에 시민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인생학교를 100개쯤 세우는 것이다. 영국의 U3A는 전국에 1000개, 소속 회원만 40만 명이 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오로지 은퇴자들이 자율적으로 서로를 가르치고 교류하는 지역 대학이 이렇게 많다는 얘기다.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급증하는 시니어들의 인생2막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이 크다. 말 나온 김에, 그는 한국 현실에서 인생학교 등 시민의 자율활동을 가장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공간문제를 들었다. 사회에 공간은 남아도는데 지역이기주의나 부처이기주의 탓에 활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일전에 판교의 초등학교 교사가 학령아동이 줄어 남는 공간에서 인생학교 같은 수업을 진행하면 어떻겠느냐며 저를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 뒤 알아보니 정년을 얼마 앞둔 교장이 반대해 못했다고 합니다. 지자체나 공공기관, 구청, 도서관 등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면, 예산 없이도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데 안타깝습니다.”일본에서는 인구감소로 빈 교실을 활용해 보육원이나 지역 문화교실 등을 개설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전국에 지자체별로 산재한 경로당 공간을 세대융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없을지도 생각해봄직 하다.○‘은퇴는 기획하는 것’-50세 은퇴를 목표로 한 이유는 뭔가요.“제가 1970년대 학번인데 당시 한국남성의 평균수명이 60세가 되지 않았습니다. 금융회사에서 자산운용 업무를 했는데 40이 됐을 때 ‘이렇게 일만 하다가 생을 마칠 수는 없다, 50에 은퇴하자’고 목표를 세웠지요. 은퇴 뒤에는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생각이었죠. 50세 은퇴를 목표로 하니 할 일이 눈에 보였습니다. 우선 경제적 자립을 해야겠다, 둘째 은퇴 후 할 일을 찾자.”-‘준비된 은퇴’ 이후 삶에 대한 자평하신다면?“제가 좋아하는 19세기 폴란드의 시인 치프리안 노르비트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먹고사는 일, 재미있는 일, 의미있는 일의 세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셋 중 하나가 부족하면 삶은 드라마가 되고 두가지가 부족하면 비극이 된다고요. 먹고사는 일로는 은퇴 무렵 친구 3명과 주식투자클럽을 결성하여 16년째 매달 두 번씩 만나 주식 운용을 협의 중입니다. 재미있는 일로는 동네 이웃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 하우스 콘서트를 열어왔고 글쓰기도 짬짬이 하고 있습니다(저서 2권을 냈다). 의미있는 일로는 성남아트센터 자원봉사, 시각장애인 도서낭독 봉사, 인생학교 설립을 들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는 그런대로 살아왔으나 우리 사회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낍니다.”그는 슬기로운 은퇴생활의 비결은 ‘미리 준비하고 기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은퇴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하냐고 묻기에 고1 때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것과 고3 때부터 하는 것과 어느 것이 유리하냐고 반문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은퇴 준비를 일찍 할수록 좋은 이유는 복리의 마술을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 금융교육과 죽음교육”인생 2막 17년차. 오랜 은퇴생활을 통해 그는 요즘 한국인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두 가지 교육이 결여돼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금융교육과 죽음교육이다. “모두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할 뿐, 돈을 모으고 지키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금융사에서 20년 이상 자금 운용을 담당했는데 학교를 운영하며 회원들을 보니 금융에 대해 너무 몰라요. 다른 분야는 전문가 수준인 분들도 그렇더군요. 전 미연준위원장 앨런 그린스펀은 ‘문자 문맹은 생활이 불편할 따름이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은퇴자가 평생 모은 돈을 금융사 직원 권유로 사모펀드에 넣었다가 큰 손실을 봤다는 뉴스가 흔하죠. 그래서 인생학교에서라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6개월 과정 교육을 6회 정도 진행했죠.”이런 그는 한국인의 금융이해도가 낮은 근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유태인의 비결은 조기금융교육이예요. 그들은 만 13세가 되면 ‘바르미츠바(Bar Mitzvah)’라는 성인식을 거행하는데, 이때 친인척들이 금일봉을 선물합니다. 중산층의 경우 4만~5만 달러(4700~5900만 원) 정도 된다는데, 대신 아이는 친인척들 앞에서 그 돈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발표해야 합니다. 미리 부모로부터 자금 운용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을 받지요.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그 돈이 작은 회사 하나 창업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됩니다. 만약 그 학생이 세계적인 금융회사에 입사했다고 칩시다. 한국학생도 공부를 잘해 그 회사에 들어갔고요. 누가 자금 운용을 잘하겠습니까.”은퇴자들은 금융을 알면 금융회사의 공포마케팅에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노후 필요한 자금으로 7억, 10억 운운하는데 듣지 마세요. 자산을 금융사에 맡겨 알아서 운용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금융사 직원들은 고객보다 회사 이익을 우선시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금흐름’입니다. 요즘 직장 은퇴자 대부분은 국민연금 월 100만 원 정도는 확보하고 있죠. 여기에 주택연금을 활용하면 월 200만 원 정도 현금 흐름은 마련할 수 있어요. 자산운운용은 스스로 공부부터 하세요. 또하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도 돈버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옵니다.”○인생2막 ‘죽음’에 대한 공부 필요해 -죽음교육은 무슨 말씀인지요.“2009년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 전문과정을 이수했는데, 제가 평생 받은 교육 중 가장 유익했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가치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자연스레 인생관이 변하게 됐어요. 죽음 공부야말로 인생 2막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부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선 별로 공감하지 않더군요. 친구들 모임에서 꺼내면 ‘왜 재수 없게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타박하죠. ‘(죽음이) 닥치면 의사에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면서요.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죽음을 통고받으면 어쩔 줄 몰라하며 황망하게 떠나는 분이 많습니다. 죽음은 해외여행보다 중요한 일 아닌가요.”-인생학교에 ‘웰다잉’ 교육을 개설했는데 별로 인기가 없었다고요. 왜일까요.“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견해가 팽배해서 그렇다고 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란 세익스피어의 연극도 있고 ‘유종의 미’라는 우리 속담도 있듯 삶도 마무리가 중요합니다.”백만기 씨 프로필1952년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대한투자금융 등 금융회사에서 26년간 일하다가 50대 초반 자발적 은퇴. 그 후 분당에서 고전음악카페 운영. 분당FM방송 진행자 활동, 성남아트센터 자원봉사. 성당교우들과 밴드 결성해 정기 콘서트.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낭독봉사. 분당인생학교 교장, 현재 위례인생학교 교장 ※‘100세 시대’,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을까요. ‘서영아의 100세 카페’에서 그 답을 찾아봅니다. 풍요로운 인생 후반전을 위해 준비할 것, 생각해볼 것, 알아둘 것 등 다양한 메뉴로 찾아뵙겠습니다. 격주로 실리는 ‘이런 인생 2막’ 코너에서는 멋진 인생 2막을 만들었거나 준비하는 독자 사례를 소개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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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준비 미리 해야 행복한 노후… 금융-죽음공부는 필수”[서영아의 100세 카페]

    12일 오후 2시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스토리박스. 쨍한 노란색을 기조로 한 건물들 속 한 교실에 두툼한 책을 든 사람들이 모여든다. 대부분 50대인 학생 4명이 발제와 토론을 하면 이를 지켜보던 백만기 교장(69)이 가끔 끼어들어 진행을 돕고 설명을 해준다. 교재는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알려진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 위례인생학교 ‘금융투자’ 수업 현장이다. “수업은 참여자 모두가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강사가 학생이 되고, 학생이 다시 선생이 되기도 하는 수평적인 시스템이죠.” 실제로 이 수업에 학생으로 참여한 오정선 씨는 앞 시간 생활영어 수업에서는 강사였다. 오랜 해외생활 뒤 귀국해 영어교육 자원봉사를 많이 한단다. ○‘어른들을 위한’ 두 번째 인생학교가 출범하다 사실 그는 분당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영국 평생교육기구인 U3A(University of the 3rd Age)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민이 운영하는 자율학교 개념을 도입한 ‘아름다운인생학교’를 2013년 분당에 열었다. 위례학교는 지난해 8월 개교했다. “분당 학교는 이제 궤도에 올랐으니 다른 분께 넘겼습니다. 제 꿈이 인생학교를 100개 만드는 것인데 이제 겨우 두 번째 학교를 시작한 겁니다.” 가을학기에는 생활영어 금융투자 심리학 우쿨렐레 등 10개 강좌가 개설됐고 문화답사 등 야외강좌도 있다. 월 1만 원 운영회비만 내면 3과목까지 수강할 수 있다. 자신이 정말 하고픈 게 뭔지를 찾는 퇴직자, 젊은 시절 로망인 악기 배우기를 이곳에서 시작한다는 60대 등 사연은 다양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눈다는 자세는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인생 2막” 백만기 씨는 50대 초반 ‘자발적’으로 은퇴한 뒤 인생 1막에서 막연하게 꿈꾸던 많은 일에 도전했다. 고전음악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분당FM방송 진행자로도 일했다. 성당 교우들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 콘서트를 열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낭독봉사에 참여했다. 호스피스 전문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종착지가 인생학교였다. “은퇴 직후 성남아트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굉장한 경력을 가진 분들이 모였다가 단순 역할에 실망하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 무렵 영국 U3A를 알게 됐어요.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한 시니어들의 대학입니다. 회비만으로 다양한 강좌가 이뤄지는데, 운영위원과 강사가 모두 자원봉사자였습니다. 2012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개최한 ‘은퇴 후 8만 시간’ 에세이 공모전에 영국 U3A와 같은 학교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주제로 응모해 대상을 받았습니다. 2013년 분당 수내동에 오피스텔 하나를 빌려 개교했죠.” 가족 친지들은 ‘우리나라에선 안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그의 생각엔 사회에 꼭 필요한 커뮤니티였다. 분당학교는 2018년 사회공헌 차원에서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해온 한 백화점 내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인생학교 등 시민 자율 활동의 가장 큰 고민으로 공간 문제를 든다. “사회에 공간은 남아도는데 지역이기주의나 부처이기주의 탓에 활용이 쉽지 않아요. 지자체나 공공기관, 구청, 도서관 등에서 공간을 제공해 주면 예산 없이도 시민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어요.”○‘은퇴는 기획하는 것’ ―50세 은퇴를 목표로 한 이유는 뭔가요. “제가 1970년대 학번인데 당시 한국 남성 평균수명이 60세가 되지 않았습니다. 금융회사에서 자산운용 업무를 하다가 40이 됐을 때 ‘이렇게 일만 하다가 생을 마칠 수는 없다, 50에 은퇴하자’고 목표를 세웠지요. 은퇴 뒤에는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생각이었죠. 50세 은퇴를 목표로 하니 할 일이 눈에 보였습니다. 우선 경제적 자립을 해야겠다, 둘째 은퇴 후 할 일을 찾자.” ―‘준비된 은퇴’ 이후 삶에 대해 자평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19세기 폴란드의 시인 치프리안 노르비트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먹고사는 일, 재미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셋 중 하나가 부족하면 삶은 드라마가 되고, 두 가지가 부족하면 비극이 된다고요. 먹고사는 일로는 은퇴 무렵 친구 3명과 주식투자클럽을 결성해 16년째 매달 두 번씩 만나 주식 운용을 협의 중입니다. 재미있는 일로는 동네 이웃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고 글쓰기도 짬짬이 하고 있습니다(저서 2권을 냈다). 의미 있는 일로는 성남아트센터 자원봉사, 시각장애인 도서낭독 봉사, 인생학교 설립이 있죠.” 그는 슬기로운 은퇴 생활의 비결은 ‘미리 준비하고 기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은퇴 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하냐고 묻기에 고1 때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것과 고3 때부터 하는 것과 어느 것이 유리하냐고 반문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은퇴 준비를 일찍 할수록 좋은 이유는 복리의 마술을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인에겐 금융교육과 죽음교육 필요” 인생 2막만 17년 차. 오랜 은퇴 생활을 통해 그는 요즘 한국인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두 가지 교육이 결여돼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금융교육과 죽음교육이다. “모두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할 뿐, 돈을 모으고 지키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학교를 운영하며 회원들을 보니 금융에 대해 너무 몰라요. 다른 분야는 전문가 수준인 분들도 그렇더군요.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문자 문맹은 생활이 불편할 따름이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은퇴자가 평생 모은 돈을 금융사 직원 권유로 사모펀드에 넣었다가 큰 손실을 봤다는 뉴스가 흔하죠. 그래서 인생학교에서라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6개월 과정 교육을 6회 정도 진행했죠.” 이런 그는 한국인의 금융 이해도가 낮은 근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의 비결은 조기 금융교육이에요. 그들은 만 13세가 되면 ‘바르미츠바(Bar Mitzvah)’라는 성인식을 거행하는데, 이때 친인척들이 금일봉을 선물합니다. 중산층의 경우 4만∼5만 달러(약 4700만∼5900만 원) 정도 된다는데, 대신 아이는 친인척들 앞에서 그 돈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발표해야 합니다. 미리 부모로부터 자금 운용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을 받지요.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작은 회사 하나 창업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됩니다. 만약 그 학생이 세계적인 금융회사에 입사했다고 칩시다. 한국 학생도 공부를 잘해 그 회사에 들어갔고요. 누가 자금 운용을 잘하겠습니까.” 은퇴자들은 금융을 알면 금융회사의 공포 마케팅에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노후에 필요한 자금으로 7억, 10억 운운하는데 듣지 마세요. 자산을 금융사에 맡겨 알아서 운용해 달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금융사 직원들은 고객보다 회사 이익을 우선시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현금 흐름’입니다. 요즘 직장 은퇴자 대부분은 국민연금 월 100만 원 정도는 확보하고 있죠. 여기에 주택연금을 활용하면 월 200만 원 정도 현금 흐름은 마련할 수 있어요. 자산운용은 스스로 공부부터 하세요. 또 하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도 돈 버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옵니다.”○인생 2막, ‘죽음’에 대한 공부 필요해 ―죽음교육은 무슨 말씀인지요. “2009년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 전문 과정을 이수했는데, 제가 평생 받은 교육 중 가장 유익했습니다. 죽음 공부야말로 인생 2막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부입니다. 친구들 모임에서 화제를 꺼내면 ‘왜 재수 없게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타박하죠. ‘닥치면 의사에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면서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통고받으면 어쩔 줄 몰라 하며 황망하게 떠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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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우세요?” ‘고독’ 해결에 영국 일본 정부가 나선 이유는 [서영아의 100세 카페]

    장수는 인류에게 축복이지만 생각지 못한 여러 부작용도 가져다줬다. 그 중 하나가 노후에 길게 이어지는 고독의 시간들 아닐까. 물론 고독은 고령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가족해체와 정보화가 진행된 현대사회에서 어느 세대건 고독과 고립을 느끼는 경우는 갈수록 늘고 있다. 육체적이건 경제적이건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2018년 1월 영국 정부는 ‘고독은 국가가 나서서 대처해야 할 사회문제’라며 내각에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해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고독은 주관적인 감정의 영역이자 개인 내면의 문제 아니던가. 여기에 정부가 끼어들 수 있다는 건가. 이같은 질문에 대해 ‘고독은 타자와의 관계성이 결핍된 사회적 고립이며 사회적 대응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비명에 숨진 초선의원 유지 받들어 세계 첫 고독부 탄생의 숨은 공로자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극우주의자의 총격에 사망한 노동당 조 콕스 의원(당시 41세)이다. 2015년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이민자와 노동자가 많은 지역구 가정들을 방문하면서 이들이 안은 사회적 고독 해결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그 자신도 객지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의 경험과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고독을 절감한 적이 있었다. 2017년 말,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원회’가 보고서를 냈다. 여기 따르면 영국에서 고독은 고령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인구 6600만 중 약 900만 명의 성인이 고독을 느끼고 있지만 그 3분의 2는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의 24%가 고독을 느끼고 10대 아이들의 62%가 ‘때로’ 고독을 느낀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 10명 중 8명이 ‘고립돼 있다’고 느끼고 75세 이상은 3명 중 1명, 장애인은 절반이 고독감정을 갖고 있었다. 65세 이상 360만 명이 ‘TV가 유일한 친구’라고 답했다. 보고서는 ‘고독상태가 만성화하면 건강에 해를 끼치고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질 정도까지에 이른다. 고독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해악을 건강에 미친다. 고독으로 인한 결근이나 생산성 저하로 고용주에게는 연간 25억 파운드(약 4조 500억 원), 경제전체에는 320억 파운드(약 51조 8000억원)의 손실을 준다’고 추산했다. ○영국인 900만 명이 “늘 고독 느낀다”영국 정부는 2018년 10월 ‘대(對)고독전략’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고 고독퇴치 예산으로 2000만 파운드(약 325억 원)을 책정했다. ‘고독’이 실제로 의료비나 경제를 압박할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런던정경대 2017년 발표에 따르면 ‘고독’이 가져다주는 의료비용은 10년간 1인당 6000파운드(약 970만 원)로 추계됐다. 공공의료가 무료인 영국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진료 중 20%는 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고독해서 찾아오는 환자들이라는 보고도 있었다.영국 정부는 2023년까지 전국 건강의료시스템에 ‘사회적 처방’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의사가 ‘의료’가 아니라 ‘사회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활동가에게 연락해 상황에 따라 지역활동에 참가하도록 돕거나 케어를 받게 해준다는 것이다.조사에서 16~24세 젊은이가 가장 빈번하고 강하게 고독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오자 2020년도부터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커리큘럼에 고독 학습을 넣기로 했다. ○고독한 환자에게 의사가 ‘사회적 처방’ 가능하게영국 정부가 주도하는 ‘고독에 대해 말하자’ 캠페인도 시작됐다. 정부보고서는 ‘고독은 오명(stigma)’이라는 생각이 고독 극복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하다고 인정하면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거나 ‘남을 귀찮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고독을 끝내는 캠페인(www.campaigntoendloneliness.org)’ 웹사이트에는 고독 대처법이 실려 있다. 그 첫 걸음은 ‘고독에서 벗어나려면 고독하다고 느끼는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가 생각해본다’, 예컨대 친구 혹은 가족이 와줬으면 하는가. 자신을 위한 일을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간단한 운동을 한다, 무언가 활동에 종사한다, 지역 소식을 알아본다, 지역 복지서비스 담당자와 상담해본다. 자원봉사 등 가진 기술을 타인과 공유한다 등 구체적인 행동을 권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시도로는 연금생활자와 집이 없는 젊은이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쉐어드 라이브즈’, 퇴직자와 실업한 남성들이 목공이나 전기제품 수리 등의 작업을 함께 하는 ‘멘즈 쉐드’, 난민들이 인근 주민들과 교류하는 ‘호스트 네이션’ 등의 서비스가 소개된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고독한 사람을 사회에 끌고나와 머물 곳을 제공한다는 것이다.이밖에 고독한 고령자에 대해서는 ‘말을 걸어본다’ ‘대신 물건을 사러 간다’ ‘우편물을 보내준다’ ‘자선조직 자원봉사가가 된다’ 등을, 고독한 젊은이에 대해서는 ‘이쪽에서 만날 기회를 만든다’ ‘고독에 대해 말할 장소를 지역에서 찾도록 돕는다’ ‘듣는 역할을 해준다’ ‘바쁜 듯한 사람이 고독할 수도 있음을 의식하며 접촉한다’ 등의 대응을 권한다. ○코로나 이후 자살 증가 일본도 고독부 장관 임명세계 최고의 고령화율을 가진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고독사 방지를 위한 노력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수십만에 달한다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문제도 일본사회가 떠안은 숙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여성과 청소년 자살마저 늘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1월 22일 경찰청이 발표한 2020년 연간 자살자수는 2만 919명으로 11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2월 일본 정부는 영국을 벤치마킹해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설치하고 이 업무를 사카모토 데쓰시(坂本哲志) 지방창생 담당상에게 맡겼다. 세계 두 번째 고독담당 장관이다. 6월에는 영국과 일본의 고독담당 장관이 온라인 회담을 갖고 “팬데믹이 고독 문제를 심각화했다”며 “가족과 친구, 이웃 등과의 ‘유대’가 고독을 극복하는 첫걸음이고 양국은 정책으로 이를 강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합의하기도 했다.일본에서는 고립을 측정하는 지표로 타인과의 대화 빈도, 의지할 사람 유무, 자신이 돕는 상대 유무, 사회활동에 대한 참가상황 등을 사용해왔다. 2017년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에서는 대화빈도가 ‘2주일에 한번 이하’라고 답한 사람의 15%를 65세 이상 독신남성이 차지했다. 이어 65세 이하 독신남성이 8.4%였다. 현역세대에서도 독신남성, 저소득층일수록 고립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후지모리 가쓰히코(藤森克彦) 일본복지대 교수는 “1인가구가 늘어가는 대도시권에서 고립을 예방하려면 주민이 즐겁게 교류할 수 있는 장소와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은 수입을 얻을 뿐 아니라 일터에서 인간관계가 이뤄져 고립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4일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에서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지방창생상이 고독고립 담당상을 겸직한다. 벌써부터 “코로나 사태로 원치않는 고독이 늘고 있다. 즉각 예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망이 쏟아지고 있다.○급속한 고령화 한국, 1인가구 증가로 경고등영국은 2016년 현재 고령화율 18%, 2040년 25%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기준 28.7%으로 고령화가 더욱 진척돼 있다. 한국은 현재 고령화율은 16.5%지만 진행속도는 세계 최고수준으로 빠르다. 여기에 급격한 가족구조의 변화로 현재 고령자의 3명중 1명인 1인가구 비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하버드대에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75년간 종단연구(동일한 연구대상을 오랜 기간 계속 추적하면서 관찰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정신과 교수인 로버트 왈딩거(Robert J. Waldinger) 박사에 따르면 그 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친밀하고 좋은 인간관계’다. 고독의 정반대 상태다. 고독을 벗어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손쉬운 길은 고독한 이웃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 될 듯하다. 인생 100년 시대. 긴 ‘고독’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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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움 인정하는 데서 고독탈출 시작”… 英, 봉사 등 구체 활동 권유[서영아의 100세 카페]

    2018년 1월 영국 정부는 ‘고독은 국가가 나서서 대처해야 할 사회문제’라며 내각에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해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고독은 주관적인 감정의 영역이자 개인 내면의 문제 아니던가. 여기에 정부가 끼어들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고독이 타자와의 관계성이 결핍된 ‘사회적 고립’을 뜻한다면 사회적 대응은 가능한 영역일 수 있다.○ 비명에 숨진 초선 의원 유지 받들어 세계 첫 고독부 탄생의 숨은 공로자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극우주의자의 총격에 사망한 노동당 조 콕스 의원(당시 41세)이다. 2015년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이민자와 노동자가 많은 지역구 가정들을 방문하면서 이들이 안은 사회적 고독 해결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2017년 말,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원회’가 보고서를 냈다. 여기에 따르면 영국에서 고독은 고령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인구 6600만 명 중 약 900만 명의 성인이 고독을 느끼고 있지만 그 3분의 2는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의 24%가 고독을 느끼고 10대 아이들의 62%가 ‘때로’ 고독을 느낀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 10명 중 8명이 ‘고립돼 있다’고 느끼고 75세 이상은 3명 중 1명, 장애인은 절반이 고독 감정을 갖고 있었다. 65세 이상 360만 명이 ‘TV가 유일한 친구’라고 답했다. 보고서는 ‘고독 상태가 만성화하면 건강에 해를 끼치고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질 정도까지에 이른다. 고독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해악을 건강에 미친다. 고독으로 인한 결근이나 생산성 저하로 고용주에게는 연간 25억 파운드(약 4조500억 원), 경제 전체에는 320억 파운드(약 51조8000억 원)의 손실을 준다’고 추산했다.○영국인 900만 명이 “늘 고독 느낀다” 영국 정부는 2018년 10월 ‘대(對)고독 전략’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고 고독 퇴치 예산으로 2000만 파운드(약 325억 원)를 책정했다. ‘고독’이 실제로 의료비나 경제를 압박할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런던정경대 2017년 발표에 따르면 ‘고독’이 유발하는 의료 비용은 10년간 1인당 6000파운드(약 970만 원)로 추계됐다. 공공의료가 무료인 영국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진료 중 20%는 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고독해서 찾아오는 환자들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영국 정부는 2023년까지 전국 건강의료시스템에 ‘사회적 처방’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의사가 ‘의료’가 아니라 ‘사회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활동가에게 연락해 상황에 따라 지역 활동에 참가하도록 돕거나 케어를 받게 해준다는 것이다. 조사에서 16∼24세 젊은이가 가장 빈번하고 강하게 고독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오자 2020년도부터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커리큘럼에 고독 학습을 넣기로 했다.○고독한 환자에게 의사가 ‘사회적 처방’ 가능하게 영국 정부가 주도하는 ‘고독에 대해 말하자’ 캠페인도 시작됐다. 정부 보고서는 ‘고독은 오명(stigma)’이라는 생각이 고독 극복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하다고 인정하면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거나 ‘남을 귀찮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고독을 끝내는 캠페인’ 웹사이트에는 고독 대처법이 실려 있다. 그 첫걸음은 ‘고독에서 벗어나려면 고독하다고 느끼는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가 생각해 본다’, 예컨대 친구 혹은 가족이 와줬으면 하는지. 이 외에 자신을 위한 일을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간단한 운동을 한다, 무언가 활동에 종사한다, 지역 소식을 알아본다, 지역 복지서비스 담당자와 상담해 본다, 자원봉사 등 가진 기술을 타인과 공유한다 등 구체적인 행동을 권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시도로는 연금생활자와 집이 없는 젊은이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셰어드 라이브스(Shared Lives)’, 퇴직자와 실업한 남성들이 목공이나 전기제품 수리 등의 작업을 함께하는 ‘멘스 셰드(Men‘s Shed)’, 난민들이 인근 주민들과 교류하는 ‘호스트 네이션(HostNation)’ 등의 서비스가 소개된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고독한 사람을 사회에 끌고 나와 머물 곳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고독한 고령자에 대해서는 ‘말을 걸어본다’ ‘대신 물건을 사러 간다’ ‘우편물을 보내준다’ ‘자선조직 자원봉사가가 된다’ 등을, 고독한 젊은이에 대해서는 ‘이쪽에서 만날 기회를 만든다’ ‘고독에 대해 말할 장소를 지역에서 찾도록 돕는다’ ‘듣는 역할을 해준다’ ‘바쁜 듯한 사람이 고독할 수도 있음을 의식하며 접촉한다’ 등의 대응을 권한다.○코로나 이후 자살 증가 일본도 고독부 장관 임명 세계 최고의 고령화율을 가진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고독사 방지를 위한 노력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수십만 명에 달한다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문제도 일본 사회가 떠안은 숙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여성과 청소년 자살마저 늘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1월 22일 경찰청이 발표한 2020년 연간 자살자 수는 2만919명으로 1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2월 일본 정부는 영국을 벤치마킹해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설치하고 이 업무를 사카모토 데쓰시(坂本哲志) 지방창생 담당상에게 맡겼다. 세계 두 번째 고독담당 장관이다. 6월에는 영국과 일본의 고독담당 장관이 온라인 회담을 갖고 “팬데믹이 고독 문제를 심각화했다”며 “가족과 친구, 이웃 등과의 ‘유대’가 고독을 극복하는 첫걸음이고 양국은 정책으로 이를 강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합의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고립을 측정하는 지표로 타인과의 대화 빈도, 의지할 사람 유무, 자신이 돕는 상대 유무, 사회활동에 대한 참가 상황 등을 사용해 왔다. 2017년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에서는 대화 빈도가 ‘2주일에 한 번 이하’라고 답한 사람의 15%를 65세 이상 독신 남성이 차지했다. 이어 65세 이하 독신 남성이 8.4%였다. 현역 세대에서도 독신 남성, 저소득층일수록 고립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후지모리 가쓰히코(藤森克彦) 일본복지대 교수는 “1인가구가 늘어가는 대도시권에서 고립을 예방하려면 주민이 즐겁게 교류할 수 있는 장소와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은 수입을 얻을 뿐 아니라 일터에서 인간관계가 이뤄져 고립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4일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에서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지방창생상이 고독고립 담당상을 겸직한다. 벌써부터 “코로나 사태로 원치 않는 고독이 늘고 있다. 즉각 예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망이 쏟아지고 있다.○급속한 고령화 한국, 1인가구 증가로 경고등 영국은 2016년 현재 고령화율 18%, 2040년 25%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기준 28.7%로 고령화가 더욱 진척돼 있다. 한국은 현재 고령화율은 16.5%지만 진행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빠르다. 여기에 급격한 가족 구조의 변화로 현재 고령자의 3명 중 1명인 1인가구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하버드대에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75년간 종단연구(동일한 연구 대상을 오랜 기간 계속 추적하면서 관찰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정신과 교수인 로버트 월딩어 박사에 따르면 그 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친밀하고 좋은 인간관계’다. 고독의 정반대 상태다. 고독을 벗어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손쉬운 길은 고독한 이웃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 될 듯하다. 인생 100년 시대. 긴 ‘고독’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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