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반복된 회담들은 ‘사진이나 찍을 기회’였다. 그 회담들은 어떤 양보도 얻어내지 못한 채 김정은 체제를 더 강화시켜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미국 외교협회(CFR)는 9월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트럼프와 김정은 간 회담은 성공하지 못했고 잠재적으로 역효과를 냈다. 오직 독재자를 정당화하는 데만 기여했다. 김정은과 직접적인 개인 간 외교를 계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미 정가의 대표적인 외교통으로 불려온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면서 북핵 해법 등 한반도 안보 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핵의 경우 북-미 정상 담판을 선호한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보다는 ‘보텀업’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중시하지만 실무급 협상을 통해 비핵화 여건이 구체적으로 마련됐다고 확신할 때에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담판을 짓는 식으로 북핵 프로세스를 ‘리셋’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종전선언 드라이브에 거리 둘 듯 정부 당국자는 8일 “구체적인 대북 전략이 없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답습하지 않겠지만 실무 협상팀에 권한을 부여하는 보텀업 방식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제재를 지렛대 삼아 대화를 이끌어내고 협상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겠다는 구상이어서 김 위원장과의 관계와 즉흥적 결정에 크게 기댔던 트럼프 대통령 방식과는 아주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물론 트럼프가 이미 세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하며 북-미 간 소통 채널은 만들어 놓은 만큼 바이든이 정상 간 담판에 유연성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바이든은 지난달 미 대선 TV토론에서 북-미 정상회담 조건으로 “(김정은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핵능력을 줄이겠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 부차관보는 “비핵화 발걸음을 뗄 준비가 됐다는 분명한 신호가 없으면 바이든은 북한 지도자와 직접 접촉하기를 주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오바마 시절 진행된 이란 핵 협상식 북핵 프로세스가 진행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 당국자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 핵 합의에 참여했던 인사가 다수 포진한 만큼 미국 중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관여해 북핵 합의의 불가역성을 보장하는 ‘이란 핵 합의’ 방식의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년을 임기 내 비핵화 협상 진전을 위한 마지막 기회로 보고 트럼프 집권 시기에 구상했던 종전선언 등을 밀어붙이려 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와 엇박자를 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 TV토론에서 김 위원장을 “불량배”로 표현했던 바이든 당선인에 대해 지난달 “미친 개”라는 논평까지 냈던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 교수는 “바이든 측 인사들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성공하려면 대화의 판 자체를 흔들 북한의 도발을 막는 게 우선순위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 방위비 협상 조만간 재개 “주한미군 협박 안 해” 주한미군 주둔 문제와 방위비 협상 등에는 비교적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바이든이 전통적인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만큼 트럼프 시절 교착 상태에 빠졌던 방위비분담금협정(SMA)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커진 것.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올해 3월 한미 협상단이 잠정 합의했던 ‘방위비 총액을 전년 대비 13% 인상한 뒤 2024년까지 연간 7∼8% 상승률을 적용한다’는 방안을 기초로 협상이 조만간 재개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방위비 협상은 한미 실무선에서는 대략 의견 접근을 이뤘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1년 계약의 13억 달러 인상을 들고나오면서 중단됐다. SMA 협상의 조기 타결이 이뤄지면 주한미군 주둔 이슈도 지금보다 안정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바이든은 최근 언론에 “미군 철수로 협박하며 한국을 갈취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며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한기재 기자}
“아직도 한국의 내 카운터파트(대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올해 1월 일본의 국가안보회의(NSC)인 국가안전보장국 주요 보직에 임명된 한 인사가 한 달 뒤인 2월 주변에 한 말이다. 최근 만난 한일 관계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이 전해준 얘기다. 일본이 지난해 7월 한국에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강행한 뒤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 측과 접촉하려 했으나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았다고 주변에 털어놓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해외 공관장으로 나가 있는 현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는 청와대 근무 시절 “국가안보실에서 논의하는 내용 50%는 북한, 미국이 30%, 중국이 20%다. 일본은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그만큼 우리 정부와 일본 사이에 의미 있는 소통 채널이 답답할 정도로 막혀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29일 한일 국장급 회의가 8개월 만에 열린다. 실무급 협의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한 깜짝 해결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의 마땅한 해법이 보이지 않자 외교부 일각에서는 차라리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 한일 관계에 ‘끝장’을 본 뒤 새로 시작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자조마저 나온다. 하지만 다음 달 미 대선 결과가 한일 관계 향방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되면 한일 관계 개선 압박이 지금보다 커질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도 위안부 문제로 평행선을 달린 한일 양국 정상에 관계 개선을 요구했다. 한일 관계를 결과적으로 방치하다시피 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반중(反中) 전선 결집을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을 주문하고 나설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보다는 차라리 일본을 구워삶아 끌어들이는 게 낫다”는 지론을 주변에 피력했다고 한다. 북한 인사들과 꾸준히 접촉 중인 대북 소식통은 “정부가 강조하는 남북 협력을 위해서라도 일본과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야 일본이 미국에 남북 협력을 반대하지 않고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도쿄 올림픽 흥행을 위해 북-미 정상이 참석하게 하려면 일본 정부도 한국과 협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결국 정부는 일본이 싫어도 국익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일 관계를 풀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식통들은 지금 한일 관계를 풀어가려면 오히려 자민당보다 공명당과 적극적으로 접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스가 요시히데의 집권은 자민당보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지지가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스가 총리가 공명당의 얘기를 더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는 역학관계라는 얘기다. 한일 관계를 잘 아는 인사들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최근 미국을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일본을 찾았으면 스가 정권 초기 긴밀한 소통 체제를 다지는 좋은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스가 총리가 서 실장을 높게 평가하고 카운터파트인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과도 좋은 관계라 하지 않았던가.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북한이 최대 600kg급 핵탄두를 3개까지 싣고 워싱턴, 뉴욕 등 미국 동부 해안을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세계 최대 이동식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10일 전격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위적 핵억제력 보유’와 ‘보복 핵타격’을 시사해 미국에 대한 압박을 노골화했다. 2018년부터 3년간의 비핵화 협상 동안 시간을 벌면서 오히려 핵타격 능력을 증강시켜 왔음을 드러낸 것. 김 위원장이 북-미 싱가포르 회담에서 합의한 핵미사일 시험 중단(모라토리엄) 약속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이미 지난해 선언한 만큼 신형 ICBM 시험발사도 강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이날 0시부터 2시간여 진행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신형 ICBM을 공개했다. 신형 ICBM을 일반에 공개한 것은 2018년 2월 화성-15형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신형 ICBM은 화성-15형보다 길이가 2m 이상 늘어나 최대 24m에 달한다. 군 관계자는 “화성-15형의 바퀴 9축짜리 이동식발사차량(TEL)보다 바퀴 축이 2개 더 늘어난 11개(좌우 총 22개)짜리 TEL로 운반해야 할 만큼 세계 최대급의 ‘괴물 ICBM’을 만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형 ICBM은 화성-15형과 같은 액체연료 ICBM이지만 사거리와 탄두 중량이 크게 늘어났고 동시다발적 핵 타격이 가능한 다탄두를 장착한 것으로 분석된다. 군 소식통은 “페이로드(탑재중량)가 화성-15형(600kg 추정)보다 최대 3배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정보당국은 북한이 신형 ICBM을 ‘화성-16형’으로 명명한 뒤 시험발사 등 전력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열병식에선 기존 북극성-3형보다 사거리가 늘어나고 역시 다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4형도 공개됐다. 김 위원장은 열병식 연설에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겨냥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한다면 가장 강력한 공격적인 힘을 선제적으로 총동원해 응징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이날 대남 타격 무기인 초대형방사포, 북한판 이스칸데르 단거리미사일인 KN-23 등 신형 전술무기도 대거 공개했다. 미 행정부의 고위 관리는 북한 열병식과 관련한 동아일보의 질의에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계속 우선시하고 있는 것에 실망스럽다”고 밝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 뉴욕=유재동 특파원}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시작 전 연설에서 인민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열병식에서는 미국을 겨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무기가 등장할 때마다 수차례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 위원장이 2018년부터 3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비핵화 협상이라는 일종의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로 시간을 벌면서 뒤로는 핵타격 능력을 증강시켜 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적대세력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가중되는 핵위협을 포괄하는 모든 위험한 시도들과 위협적 행동들을 억제하고 통제 관리하기 위해 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으로 전쟁억제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우리의 군사력은 우리 식, 우리의 요구대로, 우리의 시간표대로 그 발전 속도와 질과 양이 변해가고 있다”며 “불과 5년 전 이 장소에서 진행된 당 창건 70돌 열병식과 대비해 보면 그 발전의 속도를 누구나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시간은 우리 편에 있다”고 강조했다. “전쟁 억제력이 남용되거나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지만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겨냥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든다면 가장 강력한 공격적인 힘을 선제적으로 총동원하여 응징할 것”이라도 했다. ‘자위적 핵억제력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는 핵무기 선제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것. 전문가들은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누가 당선되든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바꾸지 않는 이상 비핵화 없이 전략 무기 개발을 계속하겠다며 북핵 문제의 주도권 행사 뜻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핵무기를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 김정은식 ‘핵 독트린’을 강조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양보하지 않으면 이를 빌미로 북한이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핵미사일 발사 중지(모라토리엄)’ 약속을 깨고 ICBM 시험 발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2018년 3월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에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2019년 신년사에서 “그런 공약(모라토리엄 공약)에 일방적으로 매어 있을 근거가 없어졌다”며 태도를 바꿨다. 동시에 김 위원장은 10일 연설에서 한국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약 28분 연설 가운데 대남 관련 메시지는 이 한 대목뿐이었지만 표면상 유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일단 남북관계 개선 여지를 열어 놓는 것이 올해 말 내년 초 펼쳐질 한반도 안보 지형 개편 과정에서 이니셔티브를 쥐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재차 강조하면서 남북 대화에 적극적인 상황도 좋은 기회라고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여전한 상황에서 큰 반전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관측이 더 많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우리 국민 피살 사건 공동조사에 응하지 않으면서 코로나19 종식 이후를 언급한 것만 봐도 관계 개선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권오혁 hyuk@donga.com·윤완준 기자}
이탈리아 로마에서 잠적했다가 지난해 7월 한국에 입국한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가 한국 정부에 수차례 자진해 한국행 의사를 밝혔다고 국회 정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7일 말했다. 하지만 조 전 대사대리와 함께 한국에 온 그의 아내는 북한에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정부가 1년 넘게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 사실을 밝히지 않은 이유를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 의원은 7일 기자들과 만나 “조 전 대사대리가 수차례 한국행 의사를 자발적으로 밝혔고 우리가 그 의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이 1년 이상 공개되지 않은 데 대해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본인이 한국에 온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했다. 현재도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한국행이 알려진 뒤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조 전 대사대리의 사정을 알고 있는 북한 출신 소식통도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 전 대사대리가 자신의 입국 사실이 공개된 데 대해 매우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관련 사정을 아는 다른 소식통은 이날 동아일보에 “조 전 대사대리의 아내는 평양에 있는 딸이 걱정된다며 북한에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주변에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 전 대사대리의 10대 딸은 2018년 11월 그가 잠적했을 때 북한으로 송환됐다. 조 전 대사대리의 아내는 잠적 뒤 유럽에 머물 때도 한국행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권이 이날 조 전 대사대리의 자진 망명 의사를 부쩍 강조하고 나선 것도 북한행을 원하는 아내가 논란이 되는 걸 차단하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 전 대사대리가 한국에 오는 과정에는 국가정보원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집단 탈북해 한국에 온 중국 류경식당 종업원 일부도 북한에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정부의 기획탈북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미국과 스위스 등에 망명을 타진했던 조 전 대사대리가 한국 당국에 망명 의사를 밝힌 데 대해 한 소식통은 “그가 한국을 좋아했다고 들었다”며 “다른 국가 망명을 시도하다 위험한 상황이 되니 한국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 전 대사대리는 한국에 온 이후 정보 당국의 관리하에 대북 관련 분야에서 비공개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대북 소식통은 “조 전 대사대리가 국정원 관리하에 대북 정보를 제공해 온 것으로 안다”며 “(그의 망명에 대해) 한미 간에 (정보) 공유가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요트, 와인, 바이올린 등 각종 사치품을 사들여 북한으로 보내온 만큼 조 전 대사대리가 이른바 ‘1호 물품’의 구매 루트와 목록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봤다. 하지만 조 전 대사대리가 1등 서기관으로 2017년 10월 문정남 당시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가 추방된 뒤 대사를 대행한 만큼 그를 고위급이라 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윤완준 zeitung@donga.com·권오혁·최지선 기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이달 초 방한이 무산된 데 이어 이달 중순으로 추진되던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사진)의 한국 방문도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왕 부장이 일본 방문을 늦추면서 방한 일정이 미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폼페이오 장관 방한 연기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5일 왕 부장의 방한 일정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도 “왕 부장이 (당초 예정대로) 다음 주에 한국을 찾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른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한중 양국은 왕 부장이 12, 13일경 방한하는 방안을 협의해 오면서 일정 조율을 상당히 진척시킨 단계였다. 왕 부장은 이달 초중순 일본을 방문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총리를 예방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와 조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왕 부장이 이달 하순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애초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쿼드(Quad)’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7, 8일 한국을 찾을 예정이었다. 쿼드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반중(反中) 전선의 성격이 강한 협의체다. 이 때문에 왕 부장이 폼페이오 장관의 한일 연쇄 방문을 견제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중국으로 끌어들이는 행보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미 국무부는 3일(현지 시간) 폼페이오 장관이 4∼6일 일본 방문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면서도 한국 방문은 연기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외교부는 사전에 미국 측이 방한 연기를 알려왔다고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대선 전 폼페이오 장관 방한을 계기로 종전선언 메시지를 내보려는 구상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일본을 방문해 중국 견제 회의는 참석하면서 한국을 건너뛰자 반중 전선 구축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이 쿼드 등 중국 견제 참여에 미온적인 한국과 거리를 두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왕 부장마저 방한을 미루자 전문가들은 일본 방문 일정에 따라 언제든 방한 계획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현 시점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미중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왕 부장으로서는 폼페이오 장관이 왔다면 한국에 설명했을 쿼드 구상 등 중국 견제 전략에 대해 한국과 논의해 볼 수 있었겠지만, 폼페이오 방한이 연기되자 당장 한국에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택한 한국을 한미동맹의 약한 고리로 보고 있다”며 “왕 부장의 방문이 결과적으로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에 맞대응하는 성격도 있었던 만큼 중국 입장에서 무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부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에 지나치게 매달릴수록 중국에 대한 외교 지렛대가 사라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가치가 (일본의) 종속변수로 하향 조정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한기재·최지선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3월부터 내려진 정부의 해외여행 자제 권고를 무시한 채 미국에 호화 요트 구입 여행을 떠나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비판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강 장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강 장관의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는 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으로 출국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는 앞서 블로그에 미국 뉴욕에서 억대의 요트를 구입해 미 동부 해안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2월 코로나19가 발생한 베트남 호찌민을 여행하기도 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4일 기자들과 만나 강 장관 남편의 출국에 대해 “국민의 눈으로 볼 때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태년 원내대표도 “고위 공직자, 그것도 여행 자제 권고를 내린 장관의 가족이 한 행위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행위”라고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강 장관의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청와대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강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송구스럽다”면서도 “(남편이) 미루고 미루다가 간 것이라 귀국하라고 얘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최지선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여파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이달 초 한국 방문이 무산됐다. 폼페이오 장관 방한을 계기로 북한에 종전선언 메시지를 보내면서 다음달 3일 미 대선 전 깜짝 북-미 회담 같은 ‘옥토버 서프라이즈’의 불씨를 살려보려던 정부 구상도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 국무부는 3일(현지 시간) “폼페이오 장관이 4~6일 일본 도쿄를 방문해 인도 태평양 지역의 시급한 현안에 초점을 맞춘 쿼드(Quad)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할 것”이라면서도 “이달 아시아를 다시 방문할 것으로 기대된다. 몇 주 뒤로 방문 일정을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4~6일 일본, 7일 몽골, 7~8일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한국 몽골 방문 계획은 연기한 것. 외교부는 4일 “불가피한 사정으로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이 연기돼 아쉽다”며 “조속한 시일 안에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이 다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쿼드는 중국 견제 목적의 미국 일본 호주 인도 간 협의체다. 정부는 문 대통령이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 필요성을 강조한 뒤 북한군의 우리 국민 피살 사건 파장 속에서도 지난달 27일 우리 측 북핵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종전선언 논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등 종전선언 추진에 적극적이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북한이 해상에서 표류하던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47)를 사살한 데 대해 사과한 지 이틀 만인 27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에서 이 씨의 시신을 수색 중인 한국 정부에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케 한다”며 “영해 침범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25일 청와대에 보낸 통지문에서 우리 군의 조사 결과 발표 중 상당 대목을 부정한 데 이어 또다시 사건의 책임을 한국에 돌리면서 무력 도발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이날 오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 당국에 경고한다’는 보도문을 내고 “남측에서 25일부터 숱한 함정, 기타 선박들을 수색 작전으로 추정되는 행동에 동원시키면서 우리 측 수역을 침범하고 있다”며 “이 같은 남측의 행동은 우리의 경각심을 유발시키고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케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 측 영해 침범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엄중히 경고한다”며 “우리는 남측이 새로운 긴장을 유발시킬 수 있는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무단 침범 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1999년부터 NLL을 부정하면서 주장한 이른바 ‘조선 서해 해상분계선’을 다시 내세워 우리의 이 씨 수색 작전을 비난하고 나선 것. 이 분계선은 NLL보다 아래에 걸쳐 있어 북한에 유리하게 설정돼 있다. 군 안팎에선 북한이 이날 언급한 ‘불미스러운 사건’과 관련해 서해 NLL 근처에 여러 척의 경비정을 내려보내거나 등산곶 및 인근 도서에 배치된 해안포를 NLL 인근으로 쏠 개연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남측에 사건의 전말을 조사 통보했다”며 “북과 남의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훼손되는 일이 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안전대책을 보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신을 습득하는 경우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줄 절차와 방법까지도 생각해 두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는 25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연 뒤 “북측에 추가 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필요하면 북측과 공동조사를 요청하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하지만 하루 만에 북한은 청와대의 공동조사 요청 계획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자체적으로 시신을 수색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군 당국은 이날 북한의 주장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발표하지 않은 채 익명의 관계자를 내세워 “(북한의 주장과 달리 우리 군은) 해상 수색 활동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윤완준 zeitung@donga.com·신규진 기자}
동해의 공식 명칭을 ‘일본해’로 써 오던 국제수로기구(IHO)의 공식 책자가 앞으로는 일본해 대신 숫자로만 동해를 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IHO는 최근 바다 이름의 국제 공식 표준을 결정해 각종 해도 제작의 지침이 되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개정판에 동해를 ‘식별 번호’로 표기하는 방안을 한일 양국에 제안했다. IHO는 11월 열리는 2차 총회에서 이런 논의 결과를 공개하고 표기 방식을 의결할 예정이다. 일본은 IHO 책자를 근거로 각종 지도에서 ‘일본해’를 단독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일본 논리의 정당성이 사라지는 만큼 정부의 동해 표기 외교전에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장 시절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묶인 북한 비자금 2500만 달러를 국책은행을 거쳐 북한에 보내주자는 방안에 대한 반대가 나오자 크게 화를 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북핵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였던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사진)은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07년 봄경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현직으로 있는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 동결된 북한의 BDA 계좌 자금을 우리 수출입은행을 통해 북한의 해외 계좌로 넘겨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 서별관에서 BDA 자금 송금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고 김성호 당시 법무부 장관, 윤증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등이 참석했다고 천 전 수석은 전했다. 현재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인 박선원 당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2012년 자신의 회고록에서 수출입은행 등을 통한 BDA 자금 송금 방안에 관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핵 6자회담이 진행되던 2005년 미국 재무부가 BDA를 불법자금 돈세탁 우려 은행으로 지목한 뒤 김정일의 비자금 2500만 달러 계좌가 동결됐다. 2007년 초 다시 마주 앉은 6자회담 테이블에서 관련국들은 BDA 자금을 북한에 돌려주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송금 방식을 협상했다. 제3국 은행을 거치는 방안들이 거론됐지만 미국 제재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중국 내 은행들까지 손사래를 치는 상황이었다. 천 전 수석은 “비서관의 아이디어에 수출입은행장 등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며 “김성호 당시 법무부 장관이 ‘수출입은행이 북한 비자금 문제에 개입하면 국제신용도가 떨어지고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긴다. 수출입은행장이 배임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지적했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그러자 문 대통령이 ‘우리가 무슨 나쁜 짓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지혜를 모아 북핵 문제 걸림돌을 해결해 보자는 것’이라고 했다”며 “문 대통령이 평소답지 않게 큰 목소리로 화를 냈다.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고 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에서는 “법무부 장관을 박살냈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후로는 이런 아이디어가 청와대 내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BDA 자금은 2007년 러시아 은행을 통해 북한에 송금됐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저는 오래가야 합니다.” ‘실세 차관’으로 불리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지난달 취임 뒤 외교부 간부들과 만나 한 얘기라고 한다. 그는 남북관계의 독자노선을 중시하는 ‘자주파’로 불려왔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이던 그가 차관에 임명됐을 때 외교부는 출렁였다. 청와대가 집권 후반기에 최 차관을 보내 군기를 잡으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기자들을 만나서는 “정권 후반기로 가면 동력이 약해지니 그 부분에서 일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오래가겠다고 한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 반 남은 상황에서 차관을 끝까지 해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46세)라 차관 임기를 마친 뒤에도 시간이 많아 남아 있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외교관들과 척지지 않겠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지금 그는 외교 사안 전반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히면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강조하면서 간부들과 이견을 나타낼 때도 있다고 한다. 미국과 ‘동맹대화’라는 새로운 협의체를 만들려는 것도 정부 임기 내에 성과를 남기도록 속도를 내려는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북핵 문제는 청와대 등 현 정부 외교안보 핵심 라인의 마음을 타게 만들고 있다. 11월 미 대선 전까지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남북대화를 거부한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비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을 시도했으나 정통한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남측 것은 받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북-미 간 대화의 창이 다시 열릴 수 있다. 북한이 내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까지 내부를 다진 뒤 어떤 대외전략 기조로 나올지도 변수다. 문제는 시간이다. 내년이면 한국은 차기 대선 국면으로 들어간다. ‘케미스트리’에 기댔다가 하노이에서 실패한 북-미 정상회담의 재판은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도 정권 인사들은 북핵, 한반도 문제에서 어떤 식으로든 문재인 정부의 유산을 남겨야 한다는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외교통일안보 부처들에서는 “집권 세력이 북한 문제 해결의 시간표를 1년 반으로 보는 것 아니냐.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인식의 차이들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제는 “대화는 필요하지만 대화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에 양보해도 정교하게 양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처럼 가치가 높은 협상 칩을 헐값에 북한에 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즉흥적 방식에 다시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도 중요하지만 북핵 해결의 계기를 다시 잡으려면 전문성 있는 관료들과 공통분모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그런 호흡은 더 중요하다. 미 대선, 당 대회 뒤 북한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움직일 것이다. 그때 청와대가 길게 보고 진짜 해결을 위한 대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최 차관 같은 개인이 오래가는 것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훨씬 중요할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홍콩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 겁니까?” 미중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둘러싸고 한창 대립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답답했는지 먼저 참모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대통령에게 어떤 상황인지, 한국이 어떤 원칙과 입장을 취해야 할지 제때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게 외교가의 반응이다. 지난달 물러난 정의용 실장 때 국가안보실은 미중 갈등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고 정책실이 이 문제를 다루면 된다는 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안보실이 미중 갈등 문제를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였다”는 말까지 들렸다. 경제학자 출신의 김상조 실장이 있는 정책실에 복잡하게 얽힌 미중 갈등 사안에 대처할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서 한국 외교와 한반도 문제의 큰 비전으로 대통령의 판단을 도울 전략가가 없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미중이 첨예하게 싸울수록 한쪽으로부터 불만을 듣더라도 이슈별로 한국의 분명한 원칙과 입장을 만드는 게 최선이다. 미국과 중국이 어떤 이슈를 가장 민감해하고 한국의 선택을 요구하는지 우선순위를 만들고 이념에서 자유로운 최적의 명세표를 짤 수밖에 없다. 그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곳이 국가안보실이다. 국민들은 외교안보 현안을 관련 부처가 청와대에 보고하면 안보실이 일사천리로 공유해 협업하는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보고조차 제대로 손발이 맞지 않았다는 게 소식통들의 증언이다. 주요 현안에 대해 국가안보실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공유가 안 되다 보니 당연히 알아야 할 위치에 있는 인사가 모르는 일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과 산하 최종건 평화기획비서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현안 공유마저 제대로 안 됐다면 국민의 녹을 먹고 사는 공직자들의 책임의식 문제다. 특정 분야의 보고만 받던 김 차장이 모든 보고를 받겠다고 하자 지금은 외교부 1차관이 된 최종건 비서관과 외교부 출신 다른 비서관이 보고를 거부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팀워크로 똘똘 뭉쳐도 성과가 나기 어려운데 불협화음까지 곳곳에서 터졌던 셈이다. 생존 문제인 미중 갈등에 직면한 청와대치고는 너무 한가롭다. 지난달 임명된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취임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체제가 덜 갖춰져 안보실 비서관 인사까지 마무리된 시점에야 서 실장이 힘 있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념을 떠나 엄중한 국제 정세를 보는 밝은 눈과 전략적 마인드가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쓸지에 달렸다. 하지만 소식통에 따르면 서 실장은 국정원장 시절 능력 있는 인물을 기용하겠다며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의 비서실장 출신 등을 실·국장에 임명하는 탕평책을 쓰려다 청와대의 반발에 부딪혔다. 자주파로 알려진 ‘실세’ 최종건 차관이 외교부 간부들과 상견례에서 “자주와 동맹의 이분법을 벗어나자”고 했다던데 청와대와 외교안보 라인 스스로 정말 그런 정신을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싱하이밍(邢海明·사진) 주한 중국대사가 중국 관영매체에 “중한(한중)이 상호 핵심 이익과 중대한 우려를 존중하면서 계속 지역 평화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는 글을 기고했다. 양제츠(楊潔篪) 중국 정치국 위원 방한에 이어 “미국의 반중(反中) 전선에 동참하지 말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싱 대사는 24일 관영 차이나데일리에 중문과 영문으로 기고한 글에서 “점차 고개를 드는 강권 정치와 고립주의에 직면해 중국과 한국은 계속 유엔 등 다자 기제 속에서 협력을 전개해야 한다”며 “중한은 계속 단결과 협력을 강화해 굳건히 다자주의와 자유 무역을 결연히 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싱 대사는 “한중은 ‘어떤 풍랑에도 낚싯배에 끄떡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는 굳건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며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한국의 신남방·신북방 정책의 연계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의 경제 협력을 넘어 미국이 민감해하는 안보, 가치 협력까지 요구한 것이다. 싱 대사는 이어 “중한 우호는 양국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올 뿐 아니라 지역과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라며 “중국은 한국과 계속해서 중한 이익 공동체와 책임 공동체, 운명 공동체를 만들어 새로운 시대 중한 우호의 화려한 장을 함께 열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국가정보원은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국정 전반에서 위임 통치하고 있다”는 내용을 구두가 아니라 문서로 밝혔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이날 “김 위원장이 아직 후계자를 결정한 것이 아니고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김 위원장이 절대 권력이지만 과거에 비해 권한을 이양하고 있다고 국정원이 보고했다”고 전했다.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도 “김 제1부부장이 2인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김 위원장에게 중대한 건강 이상이 생긴 유고 상태나 수렴청정은 아니지만 ‘백두혈통’인 김 제1부부장이 국정을 중간에서 총괄하면서 명실상부한 문고리 권력이 됐다는 것이다. 2인자를 용납하지 않았던 1인 지배의 북한 체제에서 이는 드문 변화다. 4월 건강 이상설이 나온 김 위원장에게 언제든지 다시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 제1부부장이 만약을 대비한 미래 후계자로서 김 위원장과 남매 간 공동 통치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북한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백두혈통 김여정이 권한 가장 많이 이양받았다” 국정원은 “군사 분야는 최부일 군정지도부장, 전략무기 개발을 전담하는 이병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에게 김 위원장의 권한이 부분적으로 이양됐다”고 보고했다. 경제는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 총리가 권한을 위임받았다. 군정지도부는 군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최근 신설됐다. 군정지도부장은 군을 지도해 온 총정치국장보다 서열이 높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권한을 가장 많이 이양받은 것은 김 제1부부장”이라고 국정원은 보고했다. 한 정보위원은 “김 제1부부장이 국정 업무 전반에 걸쳐 관여하고 있으며 대남 대미 업무는 더 특별하게 총괄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 의원은 “과거에는 김 위원장이 만기친람형이었지만 지금은 김 제1부부장이 중간에서 각 기관의 보고를 취합한 뒤 김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김 위원장이 김 제1부부장에게 지시를 내리면 김 제1부부장이 각 기관에 다시 지시를 전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국정원은 “북한 주민들이 김 제1부부장의 최근 담화를 외울 정도로 학습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김 제1부부장의 위상이 다른 간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 다른 정보위원은 “중요한 업무는 최종 결정 권한이 있는 김 위원장이 직접 관장한다지만 이런 위임 통치는 북한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제1부부장은 6월 대북 전단을 문제 삼아 대남 군사 행동을 위협할 때 “김 위원장에게서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한다”며 대남 강공 드라이브를 주도했다. 같은 달 대미 담화도 김 제1부부장이 발표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실장은 “김 제1부부장에 대한 권한 위임은 기존 통치 방식과 다르다”며 “큰 자율적 권한을 가지고 북한을 김 위원장과 같이 이끌어 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36세 김정은의 통치 스트레스 때문”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여동생에게 국정 전반을 위임해 통치하는 이유에 대해 “9년간의 통치 스트레스를 경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 의원은 “정책 실패에 대한 총알, 즉 책임이 오면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위임한 대상에게 책임을 돌리는 책임 회피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올해 36세인 김 위원장은 2011년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27세에 권좌에 올랐다. 고모부 장성택 등에 대한 숙청을 반복하며 빠른 시간 동안 권력을 공고히 했다. 2018년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미 비핵화 협상, 남북 대화에 나섰음에도 2년 동안 별다른 성과물을 얻지 못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대북제재로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을 혼자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19일 당 전원회의에서 경제정책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도 자신의 책임보다 경제 관료들의 잘못을 부각했다는 것이다. 윤완준 zeitung@donga.com·한상준·한기재 기자}
미군 폭격기 6대가 17일 동시에 한반도 근해를 비행했다. 1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미 연합훈련 직전에 6대가 한꺼번에 출격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이 북한과 중국에 군사적 경고를 보냈다는 관측이 나왔다.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는 B-1B 전략폭격기 4대와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2대가 미국 본토와 괌, 인도양 기지에서 출발해 17일 하루 동안 대한해협과 일본 인근 상공을 비행했다고 19일 밝혔다. B-1B 2대는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F-15J 전투기와 연합 훈련을 진행했다.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미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F-15C, F-35B 전투기,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의 F/A 18 수퍼호넷 전투기 등도 훈련에 참가했다. 미국 공군은 “이번 임무는 언제 어디서든 전 지구에서 전투사령부 지휘관들에게 치명적이고 준비된, 장거리 공격 옵션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미중 갈등이 무역 기술 경제 갈등을 넘어 민주주의, 인권 같은 이념·가치 전쟁으로 성격이 급변하면서 정부가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워진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미중 갈등 속 한국이 선택을 강요당하는 문제는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안보 사안뿐 아니라 반중(反中) 경제 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등 경제 사안, 남중국해 미중 군사 충돌 등 군사 현안, 홍콩 국가보안법, 신장위구르 등 인권 민주주의 문제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현안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빠르게 내지 못하고 모호한 입장으로 시간을 끌어오는 일이 반복됐지만 미중 갈등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만큼 주요 2개국의 갈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중 사이 선택, 전 분야로 확산 미국은 최근 자국이 주도하는 반중 경제 블록인 EPN 참여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EPN의 일환으로 미국이 동맹들과 협력해 투자와 교역을 늘리기 위한 방안인 ‘블루 닷 네트워크’에 대한 한국의 참여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화웨이 5세대(5G) 네트워크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던 영국이 최근 화웨이 배제를 결정하면서 한국도 화웨이 배제 압박에 다시 직면했다.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21일(현지 시간) “우리는 (화웨이를 도입한) LG유플러스 같은 기업들에 믿을 수 없는 공급 업체에서 믿을 수 있는 업체로 옮기라고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국에 배치된 사드를 둘러싸고도 미국과 중국이 각각 한국에 장비 업그레이드나 추가 배치, 철수 등을 요구하면서 한국이 또다시 선택을 강요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한 미국이 추진하는 중거리 미사일 배치 계획에 한국이 얼마든지 포함될 수도 있다. 여기에 남중국해에서 미중 군사 충돌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낼 수밖에 없다.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동맹들이 참가하는 연합 군사훈련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에 이 훈련 참여를 요구해 오면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둘러싼 미국의 대중국 공세는 홍콩뿐 아니라 신장위구르, 티베트까지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홍콩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자국과 한국의 여러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에 지지를 요청했다. 일대일로 참여를 재차 압박하면서 미국의 반중 전선 참여는 중국 국익 침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중국은 한국을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정부는 전략 수립 위한 회의만 1년 정부는 미중 갈등 속 ‘전략적 모호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외교전략조정회의’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달 출범 1년을 맞았지만 아직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8일 제3차 회의가 열릴 예정이지만 외교부 내부에서조차 “이번에도 명확한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회의에 대해 한 전문가는 “정부가 (미중 갈등 대응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는 “현 국면은 미국이 중국 체제와 이념, 가치에 문제가 있다며 공산당의 발전 전략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라며 “한국의 전체 입장을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하기보다는 현안마다 하나하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섬세하게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은 “EPN은 미국이 대선 때문에 신속한 답변을 요구하는 사안”이라며 “이런 문제는 서두르면 곤란해진다. 사안별로 판단해 전략적 모호성을 줄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한기재 기자}
미중 양국이 영사관 철수 조치를 주고받고 상대국 정상과 체제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 등 주요 2개국(G2) 이념·체제 갈등이 역대 최고 수준에 달하면서 이제 그 후폭풍이 한국을 본격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은 미국의 반중(反中) 전선에 동참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연내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방한에 합의한 중국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경제 군사 외교 정치 등 사실상 전 분야에서 미중 사이 선택의 기로에 선 만큼 정부가 흐름을 직시하고 생존 전략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8∼9월로 예상되는 주요 7개국(G7) 확대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한 데 이어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경제 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를 연일 요구하고 있다. 한미, 미중 관계 전문가들은 미국이 대선이 다가올수록 한국에 반중 전선 합류를 독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중거리 미사일 배치, 남중국해, 인권·민주주의 이슈까지 다양하다. 중국이 불쾌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현안들이다. 미중이 뒤얽힌 이슈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대부분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달 G7 참여 초청을 받은 뒤 “중국이 반발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이 G11 또는 G12라는 새로운 국제 체제의 정식 멤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26일 “회의 개최국이 G7 외 국가들을 초청하는 관례는 이전부터 있었다”며 “(처음 기대와 달리) G11 또는 G12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미중 갈등 대책을 세우겠다며 외교전략 조정회의를 만들었지만 이달 28일에야 겨우 세 번째 회의를 연다. 외교전략 조정회의에 참여한 적 있는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6일 통화에서 “한미동맹이 약화되거나 한중관계가 회복 불가능해질 수 있는 현안들이 잇따르는데도 정부 입장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미중을 다 만족시킬 수 없는 만큼 지금이라도 이슈별로 분명하고 세밀한 외교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중 갈등 현안마다 내부적 원칙을 세워 일관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황형준·한기재 기자}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 중국대사가 만나 미중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논의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리 해리스 미국대사와 싱하이밍 중국대사는 22일 미대사관저에서 회동했다. 해리스 대사는 트위터에 싱 대사와 함께 활짝 웃은 셀카를 공개하면서 “싱 대사와 좋은 만남을 갖고 중요한 미중관계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두 대사가 외부 행사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회동한 것은 처음이다. 주한 미국대사관 대변인은 “미중 간 중요한 관계에 대한 논의를 나눴다. 해리스 대사는 싱 대사와 다양한 외교 현안에 대해 생산적인 논의할 수 있어 좋았다고 밝혔다”고 했다. 중국대사관 측은 “(해리스보다 늦게 취임한) 싱하이밍 대사가 인사차 해리스 대사를 방문했다”며 “중미관계에 대해 공통 관심사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중국 대사관 측은 늦게 부임한 대사가 먼저 온 대사에게 상견례 차 방문하는 관례에 따랐다는 설명이다. 싱 대사는 2월에, 해리스 대사는 2018년 7월에 부임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통일부가 17일 박상학 씨가 운영해 온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대북전단을 살포한 탈북민 단체 두 곳의 법인 자격을 취소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에 문제를 제기한 지 43일 만이다.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청문회까지 개최해 법인 허가 취소 결정을 내린 것은 처음이다. 박 씨 등은 통일부의 조치는 “위헌적 처분”이라며 행정 소송을 예고했다. 통일부는 이날 박 씨가 대표로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과 박 씨의 동생이 대표인 ‘큰샘’의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해당 단체들이 정부의 통일 정책과 통일 추진 노력을 심대하게 저해하는 등 설립 허가 조건을 위배했다”고 설명했다. 또 “남북 접경 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 위험을 초래하고 한반도에 긴장 상황을 조성하는 등 공익을 해쳤다”고 덧붙였다. 허가가 취소되면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 자격도 취소돼 기부금 모금이 어려워지고 관련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김여정은 지난달 4일 발표한 담화에서 “탈북자라는 것들이 기어 나와 수십만 장의 반(反)공화국 삐라를 우리 측 지역으로 날려보내는 망나니짓을 벌였다”며 “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정부를 위협했다. 이날 담화 발표 4시간여 만에 통일부가 ‘대북전단 금지법’ 추진을 공식화했으나 북한은 지난달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박 씨 측은 통일부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행정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법률대리인 이헌 변호사는 “이번 처분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위헌적 처분이자 북한에 굴종한 공권력 행사”라고 주장했다. 미래통합당 김기현 의원실은 입장문에서 “대한민국 통일부인지 북한의 ‘김정은·김여정 심기관리부인지 헷갈린다”며 “대북 전단을 포기하는 건 북한 주민의 인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