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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에 대해 시민 통제용 통행증을 발행해 외부 출입과 주민 이동을 금지하는 봉쇄 조치를 했다.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 전체를 인질로 잡아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항복하면 살려 준다’는 러시아의 최후통첩에도 우크라이나군 2500여 명은 마리우폴에서 끝까지 항전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CNN 등에 따르면 페트로 안드리우시첸코 마리우폴 시장 보좌관은 17일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군이 발행한 통행증이 없으면 시내 이동과 외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남아있는 남성들은 모두 조사 후 (다른 거처로) 재배치되고 18일부터 마리우폴 출입도 중단될 것”이라고 전했다. 마리우폴 시의회도 이날 “러시아군이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검열하고, 강제로 시민들을 러시아로 보내고 있다”며 “전쟁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군 2500여 명은 마리우폴 내에 있는 아조우스탈, 일리치 등 제철소 2곳에서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였다. 주축인 특수부대 ‘아조우 연대’는 2014년 동부 돈바스에서 친러시아 반군이 전쟁을 일으키자 이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민병대다. 그해 6월 마리우폴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워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입됐다. 당시 독일 나치즘을 신봉하는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탈(脫)나치화’라는 침공 명분을 내세우는 빌미가 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극단주의 성향이 희석됐다고 영국 더타임스는 전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에 “17일 오후 1시까지 항복하라”고 최후통첩을 했으며 현재 기한이 지나 언제든 무차별 공격이 자행될 수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해군의 상징인 모스크바함이 14일 격침돼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은 러시아는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는 “우크라이나 미사일 3발에 모스크바함이 침몰돼 40여 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미 CBS와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은 어떻게든 마리우폴을 완전히 파괴하기로 한 것 같다. 이는 ‘레드라인’이 될 수도 있다”며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CNN에 “휴전을 위해 돈바스 등 영토를 포기할 생각이 없으며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러시아군이 16일(현지 시간)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8개 거점도시를 맹폭했다. 흑해함대 기함(旗艦)이자 러시아 해군 상징인 미사일순양함 모스크바함이 침몰해 막대한 전력 손실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보복이라고 미국 CNN 등은 분석했다. 모스크바함 침몰 사유를 놓고 주장이 엇갈린다. 러시아 국방부는 모스크바함 탄약고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과 화재가 난 데다 폭풍까지 불자 균형을 잃고 가라앉았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넵튠’ 지대함미사일 2발로 격침시켰다고 반박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도 “우크라이나 미사일이 명중했다”고 말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 전했다. 침몰한 군함 한 척을 놓고 양측이 입씨름까지 벌인 것은 모스크바함이 러시아 해군의 상징적 존재여서다. 1983년 취역한 슬라바급 미사일순양함 모스크바함은 길이 187m, 폭 21m, 무게 1만2490t에 510명이 탑승 가능하다. 사거리 700km인 항공모함 타격 미사일 ‘불칸’, 해상 특화 지대공미사일 그럼블, 1분에 1만 발을 발사하는 함포 AK-630M과 핵미사일까지 탑재 가능해 ‘바다 위 요새’로 불린다. 침몰 당시 핵미사일을 싣고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군함 30여 척으로 구성된 흑해함대 지휘함이자 가장 강력한 장거리 방어 능력을 갖춰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반도 무력 병합, 2015년 시리아 내전에도 참전했다. 모스크바함 한 척으로 우크라이나 해군 전체를 무력화할 수 있을 정도라는 평가다. 군 전문가들은 모스크바함 침몰로 러시아군의 해안 상륙, 후방 방어, 보급로 확보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본다. 또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가 러시아 함대 사정권에서 벗어나 오데사 주둔 우크라이나 병력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모스크바함 침몰 후 러시아 함정들이 해안에서 150km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며 ‘남부 작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이런 규모의 침몰은 1982년 포클랜드전쟁에서 아르헨티나 순양함 벨그라노함이 영국 해군 어뢰에 격침된 후 처음”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해군 최대 손실로 전했다. “미 해군이 항공모함을 잃은 것과 유사한 사건”(CNN), “사고였다면 러시아군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뉴욕타임스)라는 평가도 있다. 모스크바함을 침몰시킨 것으로 알려진 ‘넵튠’ 미사일은 우크라이나군이 2015년 소련제 미사일을 개조해 첫선을 보인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16일 키이우, 북부 하르키우, 서부 르비우 등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러시아군은 특히 넵튠 미사일을 생산하는 키이우 남서부 외곽 비자르 공장을 집중 공습했다.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우크라이나군 2만3367명이 사망했다”며 승전이라도 한 듯 발표했다. 또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전체를 장악했다”며 “17일 오전 6시까지 항복하라”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마리우폴 내 우크라이나군을 없앤다면 러시아와의 협상을 즉각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전쟁에서도 규칙이 있다. 전쟁범죄는 이 최소한의 규칙마저 어긴 행위다.” 전쟁범죄(war crime)는 전쟁 중에 일어나는 각종 반인도적 행위를 뜻한다. 민간인 살해, 대량살상무기 사용, 강간, 고문, 부상병과 포로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처우 등이 대표적이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벌인 행위는 전쟁범죄의 교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차, 보로i카, 모티진 등에서 자행된 민간인 집단학살(제노사이드), 피란민 이동 경로 폭격, 산부인과와 학교 공습 등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잔인무도한 행위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오나 힐 전 미국 백악관 고문은 최근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장악’이 아니라 ‘절멸’”이라며 그가 우크라이나인 말살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고 단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 캄보디아, 옛 유고슬라비아, 시리아, 미얀마 등 세계 각국에서 전쟁범죄가 자행됐지만 러시아의 최근 행보는 수위와 강도 면에서 역대급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상당수 전쟁범죄가 특정 국가의 내전 과정에서 벌어져 같은 나라 국민이 피해를 입은 반면 러시아는 엄연한 주권 국가인 타국 국민을 상대로 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옛 유고슬라비아 내전 때 인종학살을 자행한 세르비아 지도자가 전범(war criminal)으로 법정에 선 것과 달리 폭주하는 푸틴 대통령을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전 세계서 전쟁범죄 잇따라유엔이 정한 전쟁범죄의 요건은 △무고한 사람에 대한 고의적 살인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의도적으로 지시 △민간인 인명 및 재산피해 △무방비 상태의 도시, 마을, 건물 등을 폭격 등 총 15가지다. 하나같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짓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이런 전쟁범죄가 수차례 벌어졌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남부 밀라이에서 미군의 손에 민간인 약 500명이 숨졌다. 이웃 캄보디아에서는 급진 공산정권 ‘크메르 루주’가 1975∼1979년 당시 전 인구의 약 4분의 1인 최대 200만 명의 민간인 학살을 자행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란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1988년 쿠르드족에 국제법이 금지한 화학무기 ‘사린가스’를 사용해 역시 5000명이 사망했다.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는 다수파 후투족이 100일간 소수파 투치족 및 온건 후투족 80만 명을 살해했다. 별도의 성폭행 피해 여성 또한 최대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유고 내전은 전 세계가 전쟁범죄의 참상에 눈뜬 계기로 평가받는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앞세워 보스니아, 코소보, 크로아티아 등의 독립 요구를 탄압하고 곳곳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해 냉전 붕괴 이후 최악의 전쟁범죄자 겸 학살자로 꼽힌다. 그를 따르는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무슬림 민간인 8000명을 학살했다. 이 사건은 유고 내전의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특별 설립된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유일한 ‘인종학살’로 인정한 사건이다. 세르비아계는 이슬람계가 많은 코소보가 1998년 독립을 요구하자 역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해 현재 약 8600명이 사망 또는 실종 상태다. 당시 코소보의 난민만 100만 명에 달했다. 2001년 권력남용 등으로 체포된 밀로셰비치는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재판을 받았다. 최종 결론이 나기 전인 2006년 헤이그 교도소에서 숨졌다. 지난해 2월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에서도 군부가 소수민족과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미얀마군은 지난해 7월 중부 사가잉에서 민간인 40명을 살해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부차 집단학살의 희생자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손과 발이 묶인 시체가 여럿 발견됐다. 5개월 후에는 동부 카야주에서 불에 탄 40명의 주검이 발견됐다. 주민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일부 희생자는 산 채로 불탔다”는 끔찍한 증언을 내놓았다. 유엔은 쿠데타 발발 후 1년간 최소 1600명이 사망했으며 미얀마군이 인구 밀집지역에 중화기를 사용한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고 규탄했다.○ 러, 체첸-시리아 때부터 민간인 학살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학살이 푸틴 대통령의 전형적인 전쟁 방식이며 과거 체첸, 시리아 때도 널리 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의 민간인 대상 범죄가 본격화한 것은 제2차 체첸 전쟁 때부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군이 최근 부차 등에서 자행한 집단학살에 대해 “2000년 체첸에서 벌인 ‘자치스트카(Zachistka·청소)’의 완벽한 재현”이라고 평했다. 1999년 당시 러시아는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장악하려 했지만 함락이 쉽지 않았다. 그러자 도시를 포위하고 이듬해 초 일대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했고, 그로즈니는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됐다. 82명의 민간인은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됐다. 지난달 초부터 러시아군이 포위해 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 봉쇄의 모델이 그로즈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는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특히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화학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공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사드 정권은 2013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사린가스를 사용해 민간인 1400명을 숨지게 했다. 2017, 2018년에도 각각 사린가스와 염소가스를 투하해 최소 87명, 100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러시아군은 정부군을 동원해 반군에 국제법이 금지한 ‘진공폭탄’ 등 각종 대량살상무기도 사용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푸틴은) 과거에도 군사 작전을 벌일 때마다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더럽혔다”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금지된 무기를 사용하며 고의적으로 민간인과 민간물자를 겨냥한 것은 전형적인 전쟁범죄라고 규탄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시리아 전쟁의 유산이 푸틴 대통령에게 폭력을 적절히 사용하고, 이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도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준 셈이라고 진단했다.○ 상대국 공포 극대화 및 분열 노려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러시아를 규탄하고 초강력 제재를 가하고 있음에도 푸틴 대통령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유는 전쟁범죄가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입힌다는 점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NYT에 따르면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군사 전략가 알렉세이 아르바토프는 “러시아는 민간인의 사망을 용인하는 전략을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나면 상대국의 저항 의지를 손쉽게 꺾고 공포와 두려움을 확산시킬 수 있다. 상대국의 분열도 부추길 수 있다. 민간인 피해가 커질수록 여론 또한 ‘전쟁을 빨리 끝내고 협상하자’는 쪽과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는 쪽으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주변국에도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국경을 넘으려는 피란민들이 증가해 주변국 또한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는 탓이다. 폭력을 부추기는 러시아 군대 특유의 ‘데도브시나(dedovshchina)’ 문화 또한 러시아 병사로 하여금 죄책감 없이 전쟁범죄를 자행하도록 만든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데도브시나는 신병의 정신과 신체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자행되며 구타, 집단 폭행, 성폭력 등이 빈번하게 자행된다. 미 CNN은 우크라이나 침공 훨씬 이전부터 러시아 군대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문화로 유명했다고 지적했다. ○ 러 국민이 나서야 단죄 가능하나 난망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4일 푸틴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12일에는 러시아의 침공 후 처음으로 러시아군의 행위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줄곧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군 전 지휘관은 물론 민간인 공격 명령을 내린 모든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푸틴 대통령을 단죄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를 ICC에 세우는 것이다. ICC는 지난달부터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위반 수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ICC가 공권력을 동원할 수 없어 전범 용의자를 체포하려면 해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미 2016년 “ICC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탈퇴했다. 특히 ICC는 결석 재판을 열지 않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자국에서 체포되지 않는 한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 유고 내전, 르완다 대학살 당시 국제사회는 전범을 기소하기 위해 특별 ICC를 일회성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특별 법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설립된다. 역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쓰면 불가능하다.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ICC 법정에 선 이유도 그가 민중 봉기로 실각했기 때문이다. 즉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단죄하려면 러시아 국민이 현실을 깨닫고 푸틴 대통령을 몰아내야 가능하다. 가디언은 “전쟁범죄와 잔학 행위를 가장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는 것은 해당 국가의 국민”이라며 수만 명의 러시아인이 거리에서 전쟁 반대를 외치는 것이 잔혹한 행위를 막는 최선의 도구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는 굳건하다. 모스크바의 여론조사회사 ‘레바다센터’가 침공 후 최초인 지난달 31일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3%는 ‘푸틴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직전 조사인 1월(69%)보다 14%포인트 올랐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을 때도 지지율 급상승을 경험한 바 있다. 2000년 집권 후 22년간 강력한 언론 통제를 통해 서방을 악마화하고 전쟁범죄를 ‘가짜뉴스’ 혹은 ‘우크라이나 내 나치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감옥에 갇힌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제외하면 푸틴에 대항할 만한 정치인도 전혀 안 보인다. 제성훈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는 “체첸전쟁 때는 체첸군 또한 러시아에 테러를 저질렀고, 시리아에는 직접 지상군을 파병한 것이 아니어서 일반 러시아인은 두 사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현재는 대다수 러시아 국민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러시아계를 탄압하고 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선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푸틴 정권의 주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푸틴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분석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파리=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파리=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을 명분으로 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립 노선을 유지하던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으로 이어지는 역설로 나타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 동진(東進)이 러시아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북유럽을 자극해 ‘나토 확장’이라는 “자충수를 맞았다”고 미 뉴욕타임스(NYT) 등은 지적했다. 러시아는 14일(현지 시간)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발트해에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나토 확장’ 역풍 맞은 푸틴영국 BBC 등에 따르면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13일 열린 핀란드-스웨덴 정상회담에서 “몇 주 안에 나토 가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외교안보정책 장관회의에서 안보 환경과 대책을 분석한 안보보고서를 최종 확정한 핀란드는 내부적으로 가입 결정을 내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웨덴 언론도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가 나토 가입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양국은 6월 29, 30일 스페인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 때 가입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NYT는 “푸틴 대통령은 나토 팽창과 서방에 맞서려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립주의를 유지하던 북유럽의 나토 가입을 촉진하는 ‘역효과’만 냈다”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30개 회원국이 약 350만 병력을 보유한 나토에 스웨덴과 핀란드가 가입하면 러시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서부 국경에 인접한 발트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헝가리에 스웨덴 핀란드까지 더해지면 러시아 서북부 국경은 나토 회원국으로 포위된다. 나토와 러시아 병력 차도 줄어든다. 국가 군사력 비교 지표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지난해 분석을 보면 러시아군은 군인 135만 명(예비군 포함), 전투기 772대, 탱크 1만2420대, 잠수함 70척 등으로 세계 2위다. 나토는 최전선 투입 가능 병력 33만 명, 전투기 353대, 탱크 1515대, 공격용 헬기 136대, 항공모함 3척 등이다. 하지만 군사력 25위 스웨덴, 58위 핀란드가 가세하면 전력이 보강된다. 군사기술 강국인 스웨덴은 전투기 71대, 장갑차 3371대, 탱크 121대, 잠수함 5척 등을 보유했다. 병력(예비군 포함) 93만 명과 장갑차 2090대의 핀란드는 지상전에 강하다. ○ 러 “발트해에 핵 배치” 위협이에 러시아가 핵무기 배치를 위협하면서 유럽에 신(新)냉전 구조가 가속화되는 안보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14일 “더 많은 적대국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지상군과 방공망을 강화하고 핀란드만에 상당한 해군력을 배치해야 할 것”이라며 발트해에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러시아가 나토 확장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이후 군사행동을 가한다면 발트3국이 유력하다고 본다. 옛 소련에서 독립해 2004년 나토에 가입한 발트3국은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우크라이나처럼 러시아와 역사, 문화를 공유했지만 서방 편을 든 ‘배신자’이자 되찾아야 할 영토다. 다만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단기적으로는 긴장이 고조되지만 나토가 강화돼 장기적으로는 유럽 안보가 안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프랑스 대선 결과가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24일 결선투표를 앞둔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후보는 13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을 반대하며, 프랑스는 나토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나토와 러시아는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야당 정치인 빅토르 메드벳추크(68)가 도주 중 체포됐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친러 괴뢰 정부를 세우면 그 수장으로 유력시됐던 인물이다. 메드벳추크의 딸 다리나의 대부(代父)가 푸틴 대통령일 정도로 푸틴과 친밀한 사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일 텔레그램에 헝클어진 머리와 초췌한 얼굴로 수갑을 찬 메드벳추크의 사진을 공개하며 그를 러시아 측에 잡힌 우크라이나 포로와 교환하자고 요구했다. 메드벳추크는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전부터 반역 혐의로 젤렌스키 정권에 체포된 상태였고 최근 도주를 시도하다가 붙잡혔다. 메드벳추크는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러시아와 석유 사업을 벌이며 큰 부를 축적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을 때도 러시아를 후방에서 지원해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메드벳추크의 체포 소식에 ‘정치적 박해’라며 화를 냈다고 가디언 등이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10일(현지 시간) 열린 프랑스 대통령 1차 선거에서 중도 진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극우 성향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가 각각 1, 2위를 차지해 5년 만에 재격돌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24일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면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르펜 후보가 이기면 프랑스 첫 극우 및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마크롱-르펜, 5년 만에 재격돌11일 개표 결과 마크롱 대통령은 27.8%, 르펜 후보는 23.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극좌 성향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후보가 21.9%, 극우 언론인 출신 에리크 제무르 르콩케트 후보가 7.0%로 뒤를 이었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득표자가 2주 후 결선투표를 벌인다. 2017년 대선에서 마크롱과 르펜은 1차에서 1, 2위를 차지한 뒤 2차에서 마크롱(66.1%)이 르펜(33.9%)에게 압승했다. 넉넉한 우세가 점쳐지던 마크롱 대통령은 1차 선거 직전 민간 기업에 과도한 자문료를 안긴 ‘맥킨지 게이트’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르펜 후보는 고속도로 통행료,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 같은 생활밀착형 공약을 앞세워 8일 여론조사에서 격차를 2%포인트까지 좁혔다. 그러나 이날 1차 선거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의 격차(4.7%포인트)는 2017년 대선 1차 선거 격차(2.7%포인트)보다 크다. 일간 르피가로는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집중 부각한 마크롱의 선거 막판 캠페인이 일부 통했다”고 분석했다.○ 친(親)세계화 중도주의 vs 반(反)이민 민족주의마크롱 대통령이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관측이 많다. 8일 엘라브(Elabe) 등 여론조사기관은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 51∼54%, 르펜 후보 46∼49%로 접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마크롱과 르펜의 격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정치구조를 지배한 전통적 좌우 대결이 끝나고 마크롱으로 대변되는 친세계화, 친유럽연합(EU) 중도주의와 르펜이 상징하는 반이민·반EU 민족주의 대결로 바뀌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실제 프랑스 전통적 좌우 거대 정당인 우파 공화당(LR)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는 4.7%, 좌파 사회당(PS)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1.7% 득표로, 선거 비용 보전 기준(5%)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선투표 역시 ‘극우 대통령’ 집권을 막아온 좌·우·중도 정치 연대 ‘공화국 전선’과 “무슬림에게 프랑스를 빼앗길 수 없다”는 반이민전선이 얼마나 화력을 집중하느냐에 달렸다고 일간 르몽드는 분석했다. 마크롱은 10일 1차 투표 승리연설에서 “극우에 맞서 달라”고 밝혔고 르펜은 “프랑스를 제자리로 돌려놓자”며 이민 관련 개헌을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2차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관건은 1차 선거에서 탈락한 후보자들 표가 어디로 쏠릴지이다. 일간 르피가로는 1차 선거에서 3위로 급부상한 멜랑숑 후보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전했다. 멜랑숑 후보는 1차 선거 탈락 직후 지지자들에게 “르펜한테는 단 한 표도 주지 말라”고 했다. 멜랑숑을 비롯해 결선투표에 나서지 못하는 후보 10명 중 현재 6명이 마크롱 대통령 지지 의사를 밝혔다. 페크레스, 이달고 후보와 녹색당(EELV) 후보 야니크 자도 대표는 “극단주의를 거부해 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제무르 후보와 민족주의 성향 니콜라 뒤퐁에냥 ‘약진하는 프랑스’ 후보는 “200만 명 이민자를 그냥 놔두는 자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르펜 지지를 선언했다. 20일 예정된 생중계 TV토론이 마지막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간 레제코는 “2017년 르펜은 TV토론에서 극우적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내 지지율이 하락했다”며 “이번 TV토론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이민, 연금 등을 두고 첨예하게 격돌할 것”이라고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10일(현지 시간) 열린 프랑스 대통령 1차 선거에서 중도 진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극우 성향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가 각각 1, 2위를 차지해 5년 만에 재격돌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24일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면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르펜 후보가 이기면 프랑스 첫 극우 및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마크롱-르펜, 5년 만에 재격돌 11일 개표 결과 마크롱 대통령은 27.6%, 르펜 후보는 23.4% 득표율을 기록했다. 극좌 성향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당(LFI) 후보 21.9%, 극우 언론인 출신 에리크 제무르 르콩케트 후보 7.1%로 뒤를 이었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득표자가 2주 후 결선 투표를 벌인다. 2017년 대선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은 1차에서 1, 2위를 차지한 뒤 2차에서 마크롱(66.1%)이 르펜(33.9%)에게 압승했다. 넉넉한 우세가 점쳐지던 마크롱 대통령은 1차 선거 직전 민간 기업에 과도한 자문료를 안긴 ‘맥킨지 게이트’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르펜 후보는 고속도로 통행료,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 같은 생활밀착형 공약을 앞세워 8일 여론조사에서 격차를 2%포인트까지 좁혔다. 그러나 이날 1차 선거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의 격차 4.2%포인트는 2017년 대선 1차 선거 격차(2.7%포인트)보다 크다. 일간 르피가로는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집중 부각한 마크롱의 선거 막판 캠페인이 일부 통했다”고 분석했다.● 친(親)세계화 진보주의 VS 반(反)이민 민족주의 마크롱 대통령이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관측이 많다. 8일 엘라브(Elabe) 등 여론조사기관 조사는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 51~54%, 르펜 후보 46~49%로 접전을 펼칠 것을 예상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마크롱과 르펜의 격돌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정치구조를 지배한 전통적 좌우 대결이 끝나고 마크롱으로 대변되는 친세계화, 친유럽연합(EU) 중도주의와 르펜이 상징하는 반이민·반EU 민족주의 대결로 바뀌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실제 프랑스 전통적 좌우 거대 정당인 우파 공화당(LR)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는 4.8%, 좌파 사회당(PS)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1.7% 득표에 그쳤다. 결선투표 역시 ‘극우 대통령’ 집권을 막아온 좌·우·중도 정치 연대 ‘공화국 전선’과 “무슬림에게 프랑스를 빼앗길 수 없다”는 반이민전선이 얼마나 화력을 집중하느냐에 달렸다고 일간 르몽드는 분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0일 1차 투표 승리연설에서 “극우에 반대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이 2차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관건은 1차 선거에서 탈락한 후보자들 표가 어디로 쏠릴지에 있다. 일간 르피가로는 1차 선거에서 3위로 급부상한 멜랑숑 LFI 후보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전했다. 멜랑숑 LFI 후보는 1차 선거 탈락 직후 지지자들에게 “르펜한테는 단 한 표도 주지 말라”고 했다. 멜랑숑을 비롯해 결선투표에 나서지 못하는 후보 10명 중 현재 6명이 마크롱 대통령 지지 의사를 밝혔다. 페크레스, 이달고 후보와 녹색당(EELV) 후보 야니크 자도 대표는 “극단주의를 거부해 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제무르 후보와 민족주의 성향 니콜라 뒤퐁에냥 ‘약진하는 프랑스’당 후보는 “200만 명 이민자를 그냥 놔두는 자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르펜 지지를 선언했다. 20일 예정된 생중계 TV토론이 마지막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간 레제코는 “2017년 르펜은 TV토론에서 극우적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내 지지율이 하락했다”며 “이번 TV토론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이민, 연금 등을 두고 첨예하게 격돌할 것”이라고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그의 저항시를 새기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러시아가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역사에서 그런 인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좋겠어요.” 기자는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후에는 외교부로부터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체르니우치, 비지니차 등 우크라이나 서남부 일대에서 지난달 말 취재했다. 가는 곳마다 국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 동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셰우첸코는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던 러시아 제국에 맞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저항시를 쓴 인물이다. 러시아 당국에 체포된 후 병이 생겨 47세에 요절했다. 이 때문에 그의 시는 외세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되새겨진다. 전국에 1000개가 넘는 동상이 건립됐다. 우리로 치면 윤동주 시인인 셈이다. 동상 앞에서는 러시아를 규탄하며 그의 시 ‘떨치고 일어나 그대들의 자유를 굳게 지키라. 자유의 새 나라에서 나를 기억해다오’(‘유언’)를 외치는 시민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셰우첸코의 시를 외치는 자신들의 모습이 ‘왜 되풀이되냐’고 호소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침공의 역사가 매번 반복되지만 이를 사전에 막아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분노, 후회, 연민 등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우크라이나는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직후 독립을 선포했지만 5년 후인 1922년 소비에트연방에 다시 편입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과 소련에 휘말려 700만 명이 사망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친러시아 혹은 친서방 정권이 수시로 교체되면서 불안정한 내부 정치가 이어졌고, 전쟁 발발의 주요 원인이 됐다. 이 때문일까. 남부 마리우폴에서 피란 온 소피아 씨는 기자에게 “죽은 사람들을 되살릴 수 없듯이, 이미 일어난 전쟁 참상은 되돌리기 힘들다”며 “러시아를 증오하면서도 ‘전쟁이 발생할 상황을 왜 우리가 막지 못했을까’란 생각도 자주 든다”고 했다. 민병대 AK 소총 훈련에 참가한 마리나 씨도 “자유를 위해 싸우려 하지만 후세대는 더 이상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길 바란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추진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자주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9년 나토 가입 계획을 담은 개헌을 단행했다. 나토 가입 추진은 러시아가 “안보를 위협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핵심 명분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는 10∼20년 내로 가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나토 내부의 판단이다. 최근 러시아와의 양국 간 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 측은 ‘나토 가입 포기 및 중립화’를 정전 협상 카드로 내건 상태다. ‘집단 학살’이 발견된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에 이어 9일에도 수도권 마카리우 지역에서 민간인 수백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평범한 국민들이다. 전쟁이 난 국가의 현장을 오가다 보니 많은 침략을 겪어온 우리의 역사가 자주 생각났다. 지금 이 순간도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고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국가의 외교, 나아가 미래를 멀리 보면서 스스로 정교하게 다져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전쟁 공포에 빠져 있는 가운데 10일 프랑스에서 대선 1차 투표가 치러졌다. 당초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선거 막판 극우 국민연합을 이끄는 마린 르펜 대표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강력한 반(反)유럽연합(EU), 반난민 정책을 주창하는 르펜 후보가 승리하거나 마크롱 대통령과 접전을 벌이면 유럽이 2016년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폴리티코 등이 보도했다. 이번 투표는 10일 오후 8시(한국 시간 11일 오전 3시)에 끝났다.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으면 1, 2위 후보가 24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는 2017년 대선 때도 결선투표에서 맞붙어 각각 66%, 34%를 얻었다.○ 마크롱-르펜 격차, 한 달여 만에 크게 줄어마크롱 대통령은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직후 러시아 모스크바로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는 등 사태 해결에 깊숙이 관여했다. 전쟁 상황에서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유권자의 심리와 맞아떨어져 2월 28일 조사에서 그는 르펜 대표를 12%포인트 차로 앞섰다. 지난달 초 상원이 마크롱 정권이 연금 개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등에서 맥킨지 등 민간 기업에 과도한 자문료를 줬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그의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해에만 8억9390만 유로(약 1조2000억 원)를 자문료로 지불해 2018년(3억7910만 유로)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돈을 썼다. 맥킨지가 2020년에만 3억29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렸음에도 최소 10년간 법인세를 한 차례도 납부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1차 투표 이틀 전인 8일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대표 간 격차는 2%포인트로 좁혀졌다. 소셜미디어에는 ‘#맥킨지게이트’ 해시태그가 증가하고 르펜 대표 또한 “국가적 스캔들”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임기 내내 감세, 규제 완화 등 기업 친화적 정책으로 ‘부자들의 권력자’ 이미지를 쌓은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젊은층의 결집이 르펜 후보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외교안보, 연금 개혁 등 거시적 사안에 치중한 마크롱 대통령과 달리 그가 30세 이하의 소득세 폐지, 기초연금 인상, 물가 상승 비판 등 생활 밀착형 의제에 집중한 것이 유효했다는 의미다. 18∼24세 유권자의 56%는 “24일 결선투표에서도 르펜을 찍을 것”이라고 했다. 2016년 미 대선 때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가 투표장에서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소위 ‘샤이 르펜’이 상당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신 “르펜 선전은 EU 전체 위기”마크롱 대통령이 10여 명의 후보가 난립하는 1차 투표에서는 예상보다 부진하더라도 양자 대결인 결선투표에서는 5년 전과 마찬가지로 르펜 후보에게 낙승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합이 대선은 물론이고 6월 지방선거에서도 호성적을 거두면 러시아 제재 등 EU 차원의 단합 행동이 어려워져 유럽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르펜 후보가 과거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공감하는 발언을 해왔고, 국민전선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비판적 태도를 보여 왔다며 그가 승리할 경우 브렉시트 후 EU의 최대 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노무라홀딩스는 르펜이 승리하면 미 달러 대비 유로 가치가 브렉시트 당시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 참상이 드러나면서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외교 무대에서도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 7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긴급 특별 회의에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 결의안이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로 통과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엔 산하기구에서 ‘쫓겨난’ 것은 러시아가 처음이다. 이번 결의안을 공동 제안한 58개국에 이름을 올린 한국을 비롯해 미국 등 주요 7개국(G7) 등이 찬성표를 던졌다. 러시아를 비롯해 북한 중국 쿠바 이란 벨라루스 시리아 등 주로 인권 유린 의혹을 받는 국가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은 ‘러시아 고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권이사회에 이어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퇴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 상원은 이날 조 바이든 행정부가 WTO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제재 법안을 통과시켰다. 러시아의 최혜국 대우를 박탈해 고율의 관세를 매기도록 하는 내용도 담은 이 법안은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뒀다. 앞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6일 러시아가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한다면 미국은 보이콧하겠다고 밝히며 개최국인 인도네시아와 러시아를 압박했다. 유럽연합(EU)은 7일 러시아 석탄 수입 금지에 최종 합의했다. 전체 석탄 수입의 45%를 러시아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동안 꺼리던 에너지 제재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앞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더 나아가 “조만간 러시아 석유와 천연가스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국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도 잇따른다. 일본이 8일 러시아 외교관 8명을 추방한다고 밝히는 등 이날까지 미국과 독일 영국 등 EU 회원국은 러시아 외교관 400명 이상을 추방했다. 민간 차원의 ‘러시아 보이콧’ 역시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는 해외 기업을 집계하는 미 예일대 경영대학원은 이날 ‘600개 넘는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파리=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로 7일(현지 시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퇴출된 러시아는 외교 무대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러시아는 올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유엔 총회 규탄 대상이 된 적은 있지만 산하 기구 퇴출은 처음이다. 인권이사회 퇴출은 2011년 반정부 시위를 무력 진압한 리비아 이후 두 번째다. 그만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드러낸 인권 유린과 잔학성에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친러 국가 반대에도 압도적 표차 퇴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자격 정지 결의안은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 학살 증거가 드러난 것을 계기로 추진됐다. 이날 결의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인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 사례를 열거했다. 세르히 키슬리차 주유엔 우크라이나대사는 표결 전 연설을 통해 “우리 배는 안개속에서 치명적인 빙산을 향해 나가고 있다. 이 배를 인권이사회가 아닌 타이태닉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며 “인권이사회를 침몰에서 구하려면 행동해야 한다”고 결의안 찬성을 호소했다. 반면 겐나디 쿠지민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는 “오늘 결의안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인권 상황과 관련이 없다”며 민간인 집단 학살을 거듭 부인했다. 장쥔 중국대사는 “양쪽으로 갈라 선택을 강요하는 이런 성급한 행동은 유엔 분열을 심화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김성 북한대사도 결의안을 “정치적 책략”이라고 비난하는 등 친러시아 성향 회원국들은 반대했다. 하지만 결의안은 찬성 93표, 반대 24표라는 넉넉한 표차로 가결됐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지속적이고 극심한 인권 침해국은 유엔 인권기구를 이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140개국 이상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 2건에 비해 후퇴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美, WTO-G20서도 러 ‘배제’ 압박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러시아의 유엔 상임이사국 지위 박탈을 요구했다. 하지만 유엔 규정상 러시아가 스스로 제명하지 않는 한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은 다른 주요 국제기구에서 러시아 고립을 시도하고 있다. 7일 미 상원을 통과한 러시아 제재 법안은 미 정부가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퇴출을 추진하도록 규정했다. WTO는 회원국 4분의 3인 148개국 이상이 찬성하면 회원국을 퇴출시킬 수 있다. 현재 WTO 회원이 아닌 국가는 북한과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등에 불과하다. 퇴출된다면 러시아로서는 치욕적이다. 미국은 7월과 11월 의장국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러시아가 참석하면 보이콧하겠다고도 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6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질서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러시아의 국제통화기금(IMF) 퇴출도 요구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때가 되면 (입장을) 대중에게 알리겠다”며 고심 중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8일 러시아 외교관 8명 추방을 밝힌 일본을 포함해 프랑스 독일 유럽연합(EU) 등 세계 36개국에서 약 400명이 추방됐다. 루이비통 샤넬 프라다 구찌 등 명품 브랜드, 맥도널드 코카콜라 같은 식음료업체, 폭스바겐 벤츠를 비롯한 자동차업체 등 수십 개 업종의 세계적 기업 600곳 이상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거나 생산을 중단했다.○ EU, 첫 러시아 에너지 제재전체 석탄 수입의 45%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EU가 7일 합의한 석탄 금수(禁輸) 조치는 유럽의 첫 번째 러시아 에너지 제재다. 원유 25%, 천연가스 40%도 러시아에 의존하는 EU는 에너지 제재를 꺼리다 7일 우크라이나 보로s카에서 민간인 시신 26구가 발견되는 등 참상이 더 드러나자 석탄 수입을 금지했다. 이번 조치는 회원국이 대체 공급처를 찾도록 120일 유예기간을 둔 뒤 8월 발효된다. 러시아 석유, 천연가스 수입 금지는 회원국 간 이견으로 합의가 불발됐지만 관련 제재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7개국(G7)도 7일 성명을 내고 “러시아 주요 경제 부문에 대한 신규 투자를 금지하고 러시아에 대한 수출 금지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8일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단계적으로 줄여 최종적으로 금지하는 제재 조치 등을 다음 주 시행한다. 지난달 비축유 442만 배럴 방출에 동의한 한국 정부도 723만 배럴을 추가 방출한다고 밝혔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미국 상원이 6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에 무기 등 군수 물자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지원할 수 있는 ‘무기대여법(Lend-Lease Act)’ 일명 ‘렌드리스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 미국이 연합군에 대규모 군수 물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법을 81년 만에 다시 발동한 것이다. 이날 상원은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전쟁 물자를 지원할 때 필요한 각종 제약을 한시적으로 완전 면제한다고 밝혔다. 집권 민주당과 야당 공화당이 초당적으로 합의한 만큼 남은 하원 통과 및 대통령 서명 절차 또한 신속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침공 후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물자를 지원해 왔지만 주로 대전차 미사일 등 ‘방어용’ 무기가 주류였다. 이에 전세를 뒤집기 위해 ‘공격용’ 무기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 법안은 핵무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 지원을 허용하고 있다. 사이버전 물자, 식량 및 의료 기기, 경공업 및 중공업 장비 등도 포함돼 우크라이나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은 “민주주의의 무기고가 되겠다”며 영국, 소련 등 연합군에 전투기, 폭격기, 수송기, 탱크, 장갑차, 구축함 등을 전폭 지원했다. 당시 소련이 지원받은 미 항공기만 1만 대가 넘어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절대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 또한 바이든 행정부의 무기 무제한 지원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승리할 수 있다고 서방이 판단했다는 신호’라고 평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또한 이날 하원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하면 보이콧하겠다”며 러시아의 국제통화기금(IMF) 퇴출을 촉구했다. 올해 G20 의장국인 인도네시아가 7월 장관급 회의, 11월 정상회의에 러시아를 초청할 뜻을 밝히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 스베르은행과 최대 민간은행 알파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했다. 이 제재로 자산 규모 1조4000억 달러(약 1708조 원)에 이르는 러시아 은행의 3분의 2 이상이 SWIFT에서 전면 차단됐다고 밝혔다. 영국도 이날 스베르은행과 모스크바신용은행의 해외 자산을 동결하고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 수입을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가운데 지난달 2일부터 한 달 넘게 러시아군이 봉쇄 중인 남부 요충지 마리우폴에서만 최소 5000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우크라이나 측이 밝혔다. 러시아가 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트럭들에 이동식 화장 장비를 싣고 급히 시체를 소각했으며 시신에도 폭발물을 설치해 시신을 수습하려는 이들까지 노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수도 키이우에서 퇴각한 러시아군이 친러 세력이 많은 동부 돈바스 장악에 집중하면서 돈바스 주민 또한 민간인 학살 위험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즉각 돈바스를 떠나라”며 대피령을 내렸다. 유엔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7일 미 뉴욕 유엔본부에서 긴급 특별회의를 열고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퇴출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표결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표결에 앞서 주유엔 러시아 대표부는 다른 회원국에 “결의안 찬성뿐 아니라 기권 및 불참도 비우호적 태도로 간주할 것”이라며 반대표를 던지라고 협박했다. 이전까지 인권이사회 이사국에서 퇴출된 국가는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던 2011년의 리비아가 유일했다.○ 마리우폴 시장 “새로운 아우슈비츠” BBC에 따르면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6일(현지 시간) “수주간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어린이 210명을 포함해 최소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다. 도시 전체가 ‘죽음의 수용소’가 됐다”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이후 마리우폴 정도의 비극을 본 적이 없다며 “마리우폴이 새로운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라고 규탄했다. 러시아군이 대규모 학살을 숨기기 위해 이동식 화장장비를 통해 시신을 소각했으며 폭격을 맞은 한 병원에서만 50명이 숨졌다고도 했다. 마리우폴은 인구 45만 명 중 12만 명이 러시아군의 봉쇄로 수도, 전기, 식량 보급이 끊어진 상황이다. 이날 우크라이나 의회 역시 키이우 인근 소도시 호스토멜에서도 러시아군 점령 기간에 400명 이상의 주민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포로로 잡힌 우크라이나 여성 군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더타임스 등은 러시아가 키이우 인근에서 퇴각하면서 사망자 시신에도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이날 수도 키이우, 북부 체르니히우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했다. 해당 병력은 러시아 본토와 침공 조력자 노릇을 하고 있는 벨라루스에서의 보급을 거쳐 돈바스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바이든 “전쟁 나가야 하면 함께 갈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일 북미건설노동조합 행사에서 “미국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함께 (러시아에) 맞설 것”이라며 “내가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면 여러분과 함께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에 선을 그어온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논란이 되자 백악관은 “대통령은 미 지상군을 우크라이나에 투입하거나 미군이 러시아와 맞서 싸우도록 할 의도가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저지른 민간인 집단 학살을 계기로 러시아를 단순히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나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 러시아의 전쟁 패배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전쟁이 생각보다 장기화할 것이며 미국이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함께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러시아가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하면 보이콧하겠다.” ‘부차 민간인 학살’ 이후 미국 영국 등 서방 대(對)러시아 제재가 한층 강화된 가운데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6일(현지 시간) 미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옐런 장관은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질서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라며 “(G20 회의를 개최하는) 인도네시아 측에 러시아가 나오면 참석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국제통화기금(IMF) 퇴출도 요구한 그는 “미국과 동맹국에 경제적 피해가 없는 범위에서 (러시아에) 최대한 고통을 주겠다”고 했다. 다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옐런 장관의 언급은 장관 및 실무 회의로 정상회의는 아니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은 “러시아가 G20에서 퇴출돼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올해 G20 의장국 인도네시아는 7월 장관급 회의, 11월 정상회의에 러시아를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이라고 비판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유럽연합(EU) 정상들이 G20 정상회의에 불참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 스베르방크와 최대 민간은행 알파뱅크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추가 금융제재로 총 자산규모 1조4000억 달러(약 1708조 원)에 이르는 러시아 은행의 3분의 2 이상이 SWIFT에서 전면 차단됐다고 설명했다. 영국도 이날 스베르방크와 모스크바신용은행의 해외 자산을 동결하고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 수입을 모두 중단한다는 제재안을 발표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은 “강력한 제재로 푸틴의 군수(軍需)를 박살내겠다”고 밝혔다. 전체 석탄, 천연가스 공급의 각각 50%,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연합(EU)은 에너지 수입 금지를 망설이고 있다. EU는 이날 연간 40억 유로(약 5조3000억 원) 규모 러시아 석탄 수입 금지를 논의했지만 기간 등 이견이 있어 결정은 미뤄졌다. 하지만 러시아 에너지 제재에 반대하던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날 연방하원에서 “러시아 석유와 가스에 예속되지 않게 하겠다”고 밝히는 등 EU 차원의 전면적 에너지 제재가 이뤄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조셉 보렐 EU 외교정책 대표는 성명을 통해 “EU 27개국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연료 수입에 쓴 돈은 350억 유로(46조 원)인 반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10억 유로(1조3000억 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7일 화상연설을 통해 “서방 제재는 화려해 보이지만 충분하지 않다. 러시아산 석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가운데 지난달 2일부터 한 달 넘게 러시아군이 봉쇄중인 남부 요충지 마리우폴에서만 최소 5000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우크라이나 측이 밝혔다. 러시아가 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이동식 화장터에서 급히 시체를 소각했으며 시신에도 폭발물을 설치해 사체를 수습하려는 이들까지 노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수도 키이우에서 퇴각한 러시아군이 친러 세력이 많은 동부 돈바스 장악에 집중하면서 돈바스 주민 또한 민간인 학살 위험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즉각 돈바스를 떠나라”며 대피령을 내렸다. ●마리우폴 시장 “새로운 아우슈비츠” BBC에 따르면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6일(현지 시간) “수주간 러시아군 공격으로 어린이 210명을 포함해 최소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다. 도시 전체가 ‘죽음의 수용소’가 됐다”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이후 마리우폴 정도의 비극을 본 적이 없다며 “마리우폴이 새로운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라고 규탄했다. 러시아군이 대규모 학살을 숨기기 위해 이동식 화장터를 통해 시신을 소각했으며 폭격을 맞은 한 병원에서만 50명이 숨졌다고도 했다. 마리우폴은 인구 45만 명 중 12만 명이 러시아군의 봉쇄로 수도, 전기, 식량 보급이 끊어진 상황이다. 이날 우크라이나 의회 역시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호스트멜에서도 러시아군 점령기간 동안 400명 이상의 주민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포로로 잡힌 우크라이나 여성 군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더타임스 등은 러시아가 키이우 인근에서 퇴각하면서 사망자 시신에도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이날 수도 키이우, 북부 체르니히우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했다. 해당 병력은 러시아 본토와 침공 조력자 노릇을 하고 있는 벨라루스에서의 보급을 거쳐 돈바스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러시아가 돈바스 장악 과정에서 돈바스 민간에 대해 학살을 자행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텔레그램을 통해 “당장 대피하라”고 촉구했다. ● 바이든 “학살 가해자에 책임 물어야” 러시아의 침공 후 줄곧 미군 투입 가능성을 부인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6일 북미건설노동조합 행사에서 “내가 전쟁에 나가게 된다면 여러분과 함께 나갈 것”이라며 개입 가능성 시사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전쟁이 생각보다 장기화할 것이며 미국이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함께 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특히 그는 민간인 학살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런 중대 전쟁범죄보다 더한 일은 없다. 책임 있는 국가가 모여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 이후 백악관이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기존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진화에 나선 만큼 당장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파병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러시아를 규탄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이 대폭 증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 후 동유럽 주둔 미군을 대폭 늘렸고 현재 유럽에 10만 명이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미국은 러시아와 모두 국경을 접한 폴란드 외에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발트 3국에 미군을 상시 배치할 계획이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인 부차에서 수백 명이 학살당한 데 이어 또 다른 위성도시인 보로댠카에서 더욱 끔찍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고문 후 살해된 시신이 거리 곳곳에서 발견됐고, 아파트가 포격되면서 200명 이상이 건물 잔해에 깔린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6일(현지 시간) 보로댠카 거리에는 고문당한 흔적과 함께 관자놀이에 구멍이 나거나 심장을 관통당한 민간인 시신이 다수 발견됐다. 주민 페트로 티텐코 씨(45)는 일간 가디언에 “러시아군이 통행금지를 어겼다며 체포한 뒤 옷을 벗기고 3일 내내 고문했다”며 “러시아군이 ‘너는 나치다. 네 몸에서 우크라이나군 문신이 나오면 가죽과 함께 잘라내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인구 1만3000여 명의 보로댠카는 키이우에서 40km 떨어진 위성도시다. 러시아군은 2월 27일 이 지역을 점령한 후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민간 건물도 수시로 폭격했다. 게오르기 예르코 보로댠카 시장대행은 “도심 아파트 4동이 포격되면서 무너진 건물에 깔려 200명 이상이 사망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도시인 트로스탸네츠시 당국도 이날 “러시아군의 고문, 처형으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죽었는지 추정조차 어려울 정도”라고 밝혔다. 부차에서도 10대 소녀를 포함해 고문, 살해된 후 불태워진 민간인 시신 6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국제시민단체인 인폼네이팜은 “부차 학살 책임자는 제64소총여단의 아자트베크 오무르베코프 중령”이라며 그의 얼굴 사진과 주소 등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현재 조사된 전쟁범죄는 총 4468건이며 하루 수백 건씩 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받은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도시의 90% 이상이 파괴되고 시민 12만 명이 고립됐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인 부차에서 수백 명이 학살당한데 이어 또 다른 위성도시인 보로ㅤ댠카에서 더욱 끔찍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고문 후 살해된 시신이 거리 곳곳에서 발견됐고, 아파트가 포격되면서 200명 이상이 건물 잔해에 깔린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6일(현지 시간) 보로ㅤ댠카 거리에는 고문 당한 흔적과 함께 관자놀이에 구멍이 나거나 심장이 관통당한 민간인 시신들이 다수 발견됐다. 주민 페트로 티텐코 씨(45)는 일간 가디언에 “러시아군이 통행금지를 어겼다며 체포한 뒤 옷을 벗기고 3일 내내 고문했다”며 “러시아군이 ‘너는 나치다. 네 몸에서 우크라이나군 문신이 나오면 가죽과 함께 잘라내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인구 1만3000여명의 보로ㅤ댠카는 키이우에서 40㎞ 떨어진 위성도시다. 러시아군은 2월 27일 이 지역을 점령한 후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민간 건물도 수시로 폭격했다. 게오르기 예르코 보로디안카 시장대행은 “도심 아파트 4동이 포격되면서 무너진 건물에 깔려 200명 이상이 사망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도시인 트로스티아네츠 시당국도 이날 “러시아군의 고문, 처형으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죽었는지 추정조차 어려울 정도”라고 밝혔다. 부차에서도 10대 소녀를 포함해 고문 ·살해된 후 불태워진 민간인 시신 6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국제시민단체인 인폼네이팜은 “부차 학살 책임자는 제64 소총여단의 아자베크 오무르베코프 중령”이라며 그의 얼굴 사진과 주소 등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현재 조사된 전쟁범죄는 총 4468건이며 하루 수백 건씩 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받은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도시의 90% 이상이 파괴돼 시민 12만 명이 고립됐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 민간인을 집단 학살해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에서도 러시아가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전쟁범죄 재판에 세우거나 별도의 특별법정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증거 수집에 나섰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4일(현지 시간) 키이우 서쪽에서 45km 떨어진 모티진에서 마을 지도자와 일가족이 숨진 채 모래에 덮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민들은 러시아군이 이 가족에게 “우크라이나군의 포대 위치를 말하라”며 고문한 후 살해했다고 전했다. 키이우 일대의 또 다른 소도시인 보로단카, 노바바산 등에서도 집단 학살로 숨진 민간인들의 시신이 잇따라 발견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북동부 수미, 체르니히우 등에서는 더 많은 집단 학살이 있었다는 정보가 있다. 80년 전 나치독일의 점령 기간에도 보지 못한 집단 학살”이라고 러시아를 규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전쟁 범죄를 조사하는 특별 사법기구를 만들고 ICC, 유럽연합(EU)과 전쟁범죄에 대한 공동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구체적인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주 안에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가 있을 것”이라며 “유럽 동맹국과 에너지 제재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 곳곳서 부차보다 더한 학살”… 시신 불에 그슬리고 묶인 흔적모티진 마을선 이장 일가족 몰살…우크라 정부 “협력 거부하자 처형”테이프로 눈가리고 총 쏘며 위협…젤렌스키, 유엔서 조사 필요성 강조러 “학살, 우크라 자작극” 계속 주장…시신 위성사진 등 통해 거짓말 들통 4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약 45km 떨어진 모티진 마을. 지난달 이곳을 점령한 러시아군이 숙소로 쓴 주택 뒷마당 모래를 걷어내자 마을 이장 올가 수헨코와 남편, 아들 등 일가족을 포함한 5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수헨코는 양손이 뒤로 묶여 있었고 검은 비닐봉지로 눈을 가린 자국이 드러났다. 다른 시신들에서도 고문과 근접사살 흔적이 보였다. 다른 농가에서는 우물에 묶이고 불에 그슬리거나 테이프로 머리를 감아놓은 시신들이 발견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모티진 주민들이 협력을 거부하자 러시아군이 고문,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일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러시아군의 집단학살 조사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 “다른 지역, 부차보다 집단학살 더 많을 것” 전날 키이우 북서부 소도시 부차에서 학살된 것으로 보이는 민간인 시신 410구가 발견된 데 이어 다른 러시아군 퇴각 지역에서도 고문당하거나 처형된 것으로 보이는 민간인 시신이 속속 발견됐다. 부차의 한 가옥 지하실에서도 손이 뒤로 묶인 민간인 5명의 시신이 새로 발견됐다.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노바바산에서도 러시아군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러시아군 포로로 잡혔다는 남성은 “테이프로 눈을 가리더니 우크라이나군 탄약고 위치를 물으며 머리 위로 계속 총을 쏴댔다”며 “이런 ‘가짜 처형’을 15차례나 당했다”고 말했다. 올렉시 브리즈갈린 씨는 “다리 사이에 수류탄을 낀 채 의자에 30시간 묶여 있었다”고 증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부차를 방문해 “부차에서만 적어도 민간인 300명이 고문당하고 살해됐다”며 “키이우 외곽 지역뿐 아니라 수미, 체르니히우 등 러시아군 퇴각 지역에서 민간인 사망자는 부차보다 더 많이 발견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이날 키이우 북서쪽 70km 지점의 소도시 보로s카에서 부차보다 더 많은 민간인 피해자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날 웹사이트에 부차에 상주했던 러시아군 2000명의 이름, 생년월일, 여권번호 등 개인정보를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 전범 조사 특별사법기구를 창설해 국제형사재판소(ICC), 유럽연합(EU)과 함께 집단학살 공동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휴전을 위한 양국 정상회담 개최를 촉구해왔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5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은 없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위성사진으로 들통 난 ‘거짓말’ 러시아는 자국군이 부차에서 철수한 지난달 30일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가 민간인 시신들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대사도 이날 미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살해하지 않았고 부차에서 벌어진 사건에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안보리에 제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NYT, 영국 BBC 등이 부차 주민들이 찍은 동영상과 사진, 인공위성 영상을 분석한 결과 약 3주 전인 지난달 9∼11일 부차 시내 거리 곳곳에 검은 비닐포대에 담긴 시신 수십 구가 있는 것이 확인됐다. 미국 상업위성업체 맥사가 공개한 위성 동영상에도 11일 적어도 시신 11구가 포착됐고 20, 21일 영상에서도 다수의 시신이 발견됐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BBC에 “집단학살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탱크, 전투기 등 무기를 추가 제공하는 게임 체인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 민간인을 집단 학살해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에서도 러시아가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기 위한 증거 수집에 나섰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4일(현지 시간) 키이우 서쪽에서 45㎞ 떨어진 모티진에서 마을 지도자와 일가족이 숨진 채 모래에 덮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민들은 러시아군이 이 가족에게 “우크라이나군의 포대 위치를 말하라”며 고문한 후 살해했다고 전했다. 모티진 외곽의 파괴된 농장에서도 모래에 덮인 시신이 발견됐고 이중 한 구는 머리에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또 다른 농장에서는 묶인 채 우물에 버려진 시신이 발견됐다. 키이우 일대의 또 다른 소도시인 보로ㅤ댠카, 노바바산 등에서도 집단학살로 숨진 민간인이 속속 발견됐다. 4일 부차의 한 가옥 지하실에서도 손이 뒤로 묶인 민간인 5명의 시신이 새롭게 발견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북동부 수미, 체르니히우 등에서는 더 많은 집단학살이 있었다는 정보가 있다. 80년 전 나치독일의 점령 기간에도 보지 못한 집단학살”이라고 러시아를 규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전쟁범죄를 조사하는 특별 사법기구를 만들고 유럽연합(EU)과도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동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구체적인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푸틴 대통령을 전쟁 범죄를 처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우거나 특별법정을 만드는 일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주 안에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가 있을 것”이라며 “유럽 동맹국과 에너지 제재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헝가리와 발칸반도에 있는 세르비아에서 친(親)러시아 성향의 우파 집권여당이 나란히 총선, 대선에서 승리했다. 대선을 앞둔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5)이 극우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54)와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어 재임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EU가 골치 아픈 상황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3일 치러진 헝가리 총선에서 집권여당 피데스가 53%의 득표율을 기록해 6개 정당이 연대한 야당연합(35%)을 크게 앞질렀다. 이에 따라 4연임에 성공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59)는 2026년까지 집권을 이어가게 됐다. 그는 1998년 35세에 유럽 내 최연소 총리가 된 이후 난민 유입을 거부하는 등 ‘반(反)EU’ 정책을 펼쳐 왔다. 오르반 총리는 승리 연설에서 헝가리 좌파와 EU 관료들, 국제언론과 함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적”이라고 불렀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오르반 총리의 친러 성향이 EU 내에서 러시아 제재 움직임에 균열을 낼 수 있다”고 전했다. 오르반 총리는 2월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 후 “러시아의 안보를 위한 요구는 합리적”이라며 지지했다. 또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가 헝가리를 통과해 이송되는 것을 거부했고, 러시아 에너지 수입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세르비아에서도 이날 치러진 대선에서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52)이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부치치 대통령과 집권여당인 우파 성향 ‘세르비아진보당’ 또한 친러 노선을 유지해 왔다. 부치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대러 제재에 동참해 달라는 EU의 요청에 “국익에 어긋난다”며 거부했다. 10일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에서는 재선에 도전하는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54)와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2일 IFOP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지지율은 27%로 2주 전보다 2.5%포인트 낮아진 반면 르펜은 22%로 3.5%포인트 상승했다. 결선투표를 상정한 조사에선 마크롱이 53%, 르펜은 47%의 지지를 얻어 2주 전과 비교해 격차가 16%포인트에서 6%포인트로 감소했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1, 2위 후보 간 결선투표(24일)가 열린다. 마크롱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수차례 통화하는 등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나서며 지지율을 높여 왔지만 연금개혁 등 자문 비용으로 미국 컨설팅사 맥킨지 등에 지난해 8억9330만 유로(약 1조2000억 원)의 세금을 쓴 사실이 드러나면서 흔들리고 있다고 일간 르몽드는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