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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이후 5개월 만에 프랑스에서 또다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가 일어나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튀니지에서도 지중해 연안 휴양지 호텔에서 무장괴한의 공격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최소 27명이 숨지는 테러가 발생했다. 26일(현지 시간) 오전 10시경 프랑스 동남부 리옹 인근의 이제르 주 생캉탱 팔라비에에 있는 가스 공장에서 범인 2명이 차량을 몰고 정문을 전속력으로 들이받은 뒤 폭발물을 터뜨렸다. 사건 이후 공장 정문에는 참수된 시신 한 구가 발견됐으며 2명이 폭발로 부상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이날 참수된 사람은 운송 회사 간부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경찰은 “참수된 머리가 공장 정문에 걸려 있었으며, 머리를 제외한 시신은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참수된 머리에는 아랍어 문구가 적혀 있었으며, 시신 주변에서는 아랍어 글씨가 적힌 흰 깃발과 검은 깃발 2개가 발견됐다. 용의자 중 한 명은 프랑스 리옹에서 남동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서 붙잡혔다. 체포 당시 야심 살림(35)으로 이름이 알려진 범인은 폭발물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일간지인 ‘르 도피네 리베레’는 “범인이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소속이라고 자처했다”고 전했다. 사건 현장을 방문한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은 “범인은 2006년부터 이슬람 급진주의 단체와 연계된 것으로 의심돼 2년간 당국의 감시를 받아 왔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당국은 이날 살림과 함께 달아나던 범인 1명을 사살했다. 테러가 일어나자 벨기에에서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던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건 명백한 테러다. 우리는 절대 이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튀니지의 지중해 연안 휴양지인 수스의 호텔에서 26일 오후 무장괴한들의 공격으로 최소 27명이 사망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튀니지 내무부는 괴한 2명이 해안가와 접한 호텔 2곳에서 총을 난사했다고 밝혔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이설 기자}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2006년부터 2012년 사이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등 프랑스 전현직 대통령 3명의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는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외교 문제로 비화될 조짐이 나타나자 미국이 ‘프랑스 달래기’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폭로 보도 하루 뒤인 24일 올랑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키리크스의 폭로 내용을 시인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프랑스 엘리제 궁은 이날 성명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전화 통화에서 두 동맹 사이에 과거에 발생한 있을 수 없는 관행들을 중단시키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였다”고 밝혔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올랑드 대통령에게 ‘미국은 당신의 통화나 다른 통신 수단을 감청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올랑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통화하기 전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해 “프랑스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백악관 측의 해명이 불충분하다며 NSA가 다른 프랑스 외교 관계자들의 e메일이나 대화 내용을 여전히 감청하는지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미국이 ‘말장난’을 하고 있다며 프랑스가 미국의 감청에 법적으로 대응하라고 촉구했다. 어산지는 24일 프랑스 TF1에 출연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한 감청이 폭로된 이후에도 NSA가 프랑스 전현직 대통령들에 대한 도·감청을 계속했다”며 “프랑스가 독일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 의회는 감청 활동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고, 검찰총장은 내사를 거쳐 미국의 도·감청 활동에 대해 기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어산지는 “지금까지 공개한 것보다 더 강력한 폭로가 이어질 것”이라고 추가 폭로를 예고하기도 했다. 앞서 독일 검찰은 2013년 미국 NSA가 2002년부터 10년 이상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를 감청해 왔다는 사실이 에드워드 스노든 전 NSA 직원에 의해 폭로되자 수사를 시작했지만, 구체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단한 바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2006년부터 2012년 사이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등 프랑스 대통령 3명의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는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이 나타나자 미국이 ‘프랑스 달래기’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폭로 보도 하루 뒤인 24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키리크스의 폭로 내용을 시인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프랑스 엘리제궁은 이날 성명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전화 통화에서 두 동맹 사이에 과거에 발생한 있을 수 없는 관행들을 중단시키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밝혔다”고 밝혔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올랑드 대통령에게 ‘미국은 당신의 통화나 다른 통신수단을 감청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올랑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통화하기 전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해 “프랑스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백악관 측의 해명이 불충분하다며 NSA가 다른 프랑스 외교 관계자들의 이메일이나 대화 내용을 여전히 감청하는지 여부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는 미국이 ‘말장난’을 하고 있다며 프랑스가 미국의 감청에 법적으로 대응하라고 촉구했다. 어산지는 24일 프랑스 TF1에 출연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한 감청이 폭로된 이후에도 NSA가 프랑스 전현직 대통령들에 대한 도감청을 계속했다”며 “프랑스가 독일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 의회는 감청활동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고, 검찰총장은 내사를 거쳐 미국의 도감청 활동에 대해 기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어산지는 “지금까지 공개한 것보다 더 강력한 폭로가 이어질 것”이라고 추가 폭로를 예고하기도 했다. 앞서 독일 검찰은 2013년 미국 NSA가 2002년부터 10년 이상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감청해왔다는 사실이 에드워드 스노든 전 NSA 직원에 의해 폭로되자 수사를 시작했지만, 구체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단한 바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복지 의존하는 수십만명 일하게해低세금-低복지 구조로 바꿀 것”野-국민은 반발… 10만명 항의시위“많은 세금을 물려 복지 혜택을 늘리는 영국 사회를 반드시 개혁할 것이다.” 영국 보수당 정부를 이끄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복지 혜택 축소’ 전쟁에 나섰다. 캐머런 총리는 22일 연설에서 “저소득층에게서 세금을 받은 다음 그들에게 복지 혜택이라며 돈을 주는 터무니없는 ‘회전목마(merry-go-round)’를 끝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복지 혜택에 의존하는 수십만 명의 영국인을 일자리로 돌려보내겠다”고 덧붙였다. 캐머런 총리는 앞서 ‘1.4.7’을 언급하며 정부의 복지 축소 계획을 밝혔다. 영국의 인구와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에서 각각 1%와 4%인 데 비해 영국의 복지 지출은 세계 복지 지출의 7%를 차지해 ‘복지 과잉’ 상태라는 것이다. 영국의 복지 개혁은 우선 재정 건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수당 정부는 지난 총선에서 2017년까지 복지 지출에서 120억 파운드(약 21조 원)를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보수당은 당시 2018∼2019 회계연도에 재정흑자로 돌려놓겠다고 공약했다. 성공하면 18년 만의 재정흑자다. 캐머런 총리는 공약에서 “앞으로 5년간 증세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 때문에 재정 흑자에 도달하려면 ‘적게 걷고 적게 쓰는’ 방법밖에 없다. 영국 정부의 현재 사회보장 예산은 2200억 파운드로 전체 예산의 약 30%를 차지한다. 보수당은 우선 근로 연령층 가구에 대한 연간 복지혜택 한도를 2만6000파운드(약 4500만 원)에서 2만3000파운드(약 4000만 원)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근로자 세액 공제를 포함한 모든 세금 감면 제도를 전면 손질할 계획이다. 복지 혜택 삭감의 불똥이 근로자들에게 튈 것이 우려되자 영국 정부는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겠다고 약속했다. 복지 지출 120억 파운드 삭감 외에 정부부처별 지출도 130억 파운드(약 23조 원) 줄이겠다고 밝힌 상태다. 또 탈세 억제를 통해 50억 파운드(약 8조 원)를 확보하는 등 모두 300억 파운드(약 51조 원)의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복지 축소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달 20일 전국에서 약 10만 명의 반(反)긴축 시위자들이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런던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대 7만여 명이 피켓을 들고 행진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글래스고와 리버풀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시위에는 노동당 당수 도전에 나선 제러미 코빈 의원 등 야당 의원들도 참여했다. 시위를 주도한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의 스티븐 터너 대표는 “보수당이 건강보험과 보건복지정책, 교육과 공공서비스 등에서 끔찍하고도 파괴적인 긴축을 추진하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과 이언 덩컨스미스 고용연금부 장관은 21일 선데이타임스에 공동기고문을 실어 ‘복지축소론’을 옹호했다. 두 장관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해로운 복지 의존 문화’를 개혁하는 것이 영국의 미래에 대비하는 우리 임무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장관은 “전체 복지 지출 대비 근로계층의 복지 비중이 1980년대 복지 지출 전체의 8%, 1990년 10% 미만이었지만 2010년 거의 13%로 올라섰고 최근 5년간의 긴축에도 2019년에는 12.7%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공방이 가열되자 현지 언론들은 “영국의 복지 축소 실험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에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 섬나 씨가 1년 1개월 만에 석방됐다. 프랑스 베르사유 항소법원 재판부는 23일 섬나 씨에 대해 보석을 허가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도록 결정했다. 재판부는 다만 섬나 씨가 프랑스에서 출국하지 말 것과 1주일에 3번씩 파리 관할 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것을 지시했다. 이날 변호인 측은 “섬나 씨가 지난해 5월 체포된 이후로 혼자 살고 있는 18세 아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졌다”며 “구속 상태가 1년 넘게 됐으므로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검찰은 섬나 씨가 석방될 경우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맞섰지만 재판부는 보석을 허가했다. 베르사유 항소법원은 올 9월 15일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섬나 씨의 범죄인 인도 재판을 열겠다고 밝혔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 정상회의를 열고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와 유로존 탈퇴의 운명을 가를 막판 담판을 벌였다. 이날 유로존 정상회의는 5개월째 교착 상태인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의 마지막 기회라고 외신들이 풀이했다. 72억 유로(약 9조 원) 규모의 구제금융 협상 마감 시한(6월 30일)이 도래하기 전에 유럽연합(EU) 28개국 정상회의(25, 26일)가 한 차례 더 열리지만 일부 정상은 이날 담판에서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추가 협상은 없다며 그리스를 압박하고 있다. 그리스는 시한 내에 부채 협상을 타결짓지 못할 경우 30일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 진 부채 15억4000만 유로(약 1조9300억 원)를 갚을 수 없게 돼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의 가능성이 커진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에 앞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국제통화기금(IMF), 유로그룹 등 국제채권단과 가진 회동에서 채권단의 연금개혁과 노동개혁 요구를 거부해 정상회의에서의 협상 타결 전망을 어둡게 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회담 후 “연금 삭감과 전기요금의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거부하고, 노동관계의 정상화를 통한 공정한 구조개혁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해 연금개혁과 노동개혁 요구를 거부했다. 융커 위원장은 “지난 며칠간 진전이 이뤄졌지만 아직 합의까지 가진 않았다. 오늘 합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도 이날 정상회의에 앞서 2시간 동안 그리스 협상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아무런 결론 없이 2시간 만에 끝났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그리스의 협상안이 너무 늦게 도착해 오늘 최종 평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협상안을 두고 며칠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마이클 누난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이번 주에 또 한 차례의 재무장관회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날 정상회의도 협상 전망이 어두워 25, 26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협상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회의에 앞서 EU 관리들은 그리스 정부가 전날 제출한 새로운 협상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그리스의 새 협상안은 △고소득층(8만 명 이내)의 연금 삭감 △조기 퇴직수당 삭감 △연간 매출 50만 유로 이상인 기업에 대한 추가 과세, 소득 3만 유로 이상의 개인에 대한 ‘연대세’(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부유층에게 물리는 세금) 인상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재정긴축 방침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날 ‘뱅크런’ 위기에 빠진 그리스 은행에 제공하는 긴급유동성지원(ELA) 프로그램 한도를 또다시 증액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ECB의 긴급유동성지원 확대는 최근 엿새간 세 번째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그리스로 여행할 때는 현금을 두둑하게 준비하라.”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로 그리스 은행에서 시민들이 예금을 찾아가는 ‘뱅크런’(대량 예금인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영국 여행사협회(ABTA)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돈이 마를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 여행객은 되도록 많은 현금을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그리스 은행에서 18일에만 10억 유로(약 1조2500억 원)가 인출됐고 19일에는 15억 유로가 빠져나갔다. 급진 좌파연합 시리자 정부가 들어선 올 1월 이후 최대 규모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주에만 그리스 시중은행들에서 빠져나간 돈은 50억 유로(약 6조3000억 원)에 이르렀다. 올해에 유출된 예금은 400억 유로로, 전체 예금의 25%에 육박한다고 CNBC는 전했다. “그리스 은행이 폐쇄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자 유럽중앙은행(ECB)은 19일 ‘긴급유동성지원(ELA)’ 금액을 늘려 급한 불을 껐다. ECB는 이달 17일 그리스에 대한 ELA 금액 한도를 11억 유로 늘린 데 이어 이틀 만에 18억 유로를 더 증액했다.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을 위한 긴급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개최를 하루 앞둔 21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긴급내각회의를 소집해 최후 협상안 마련에 나섰다. 새 협상안은 그리스 내부의 반발이 큰 ‘연금 감축’보다는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에 대한 조세 감면 폐지, 연료와 소매 판매에 대한 과세로 재정수입을 늘리는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하지만 독일은 그리스 재정 안정을 위해 연금 지출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씩 줄여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채권단이 새 협상안을 수용할지는 불분명하다고 WSJ가 예상했다. 그리스는 협상 시한인 이달 말까지 채권단으로부터 구제 금융 72억 유로(약 9조 원)를 받지 못하면 디폴트를 선언할 수밖에 없다. 치프라스 총리는 1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3개월 만에 또다시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차관 지원’ 선물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그리스로 여행할 때는 현금을 두둑하게 준비하라.”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로 그리스 은행에서 시민들이 예금을 찾아가는 ‘뱅크런’(대량 예금인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영국 여행사협회(ABTA)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돈이 마를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 여행객은 되도록 많은 현금을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그리스 은행에서 18일에만 10억 유로(1조2500억원)가 인출됐고 19일에는 15억 유로가 빠져나갔다. 급진 좌파연합 시리자 정부가 들어선 올 1월 이후 최대 규모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주에만 그리스 시중 은행들에서 빠져나간 돈은 약 50억 유로(6조3000억원)에 이르렀다. 올해에 유출된 예금은 400억 유로로, 전체 예금의 25%에 육박한다고 CNBC는 전했다. “그리스 은행이 폐쇄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자 유럽중앙은행(ECB)은 19일 ‘긴급유동성지원’(ELA) 금액을 늘려 급한 불을 껐다. ECB는 이달 17일 그리스에 대한 ELA 금액 한도를 11억 유로 늘린 데 이어 이틀 만에 18억 유로를 더 증액했다.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을 위한 긴급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개최를 하루 앞둔 21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긴급내각회의를 소집해 최후 협상안 마련에 나섰다. 새 협상안은 그리스 내부의 반발이 큰 ‘연금 감축’보다는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에 대한 조세 감면 폐지, 연료와 소매 판매에 대한 과세로 재정수입을 늘리는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하지만 독일은 그리스 재정안정을 위해 연금지출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씩 줄여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채권단이 새 협상안을 수용할지는 불분명하다고 WSJ가 예상했다. 그리스는 협상 시한인 이달 말까지 채권단으로부터 구제 금융 72억 유로(약 9조원)를 받지 못하면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할 수밖에 없다. 치프라스 총리는 1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3개월 만에 또다시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차관 지원’ 선물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늑장 대응으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보다는 과잉 대응으로 욕먹는 게 낫다. 지금 즉시 국방부에 군 병력 투입을 요청해 달라.” 신종 바이러스 발생을 보고받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센터장의 행보엔 거침이 없다. 매뉴얼에 따라 군사작전에 버금갈 정도로 신속하게 역학조사관을 투입한다. 이때부터 모든 바이러스와 환자 정보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CDC 상황실로 모인다. 국방부 재무부 환경부 연방재난청 등 정부 각 부처는 협력 인원을 즉시 파견한다. 센터장은 전권을 가지고 방역작전을 진두지휘한다. 9·11테러 당시 뉴욕지역 소방대장이 작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과 흡사하다. 감염병 위기 단계를 격상하거나 군대 파견 및 지역 통제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센터장의 몫이다. 센터장이 대통령 또는 보건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상황실을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방장관이 펜타곤에서 전쟁을 지휘하듯 말이다. 상부 보고는 대개 ‘선(先)조치 후(後)보고’로 이뤄지고, 그것도 대면보고가 아니라 서면보고가 대부분이다. ‘특수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미국 사회의 인식이 고스란히 시스템에 녹아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정확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수차례 언론 브리핑에 나서는 것도 센터장의 몫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질병관리본부는 이번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초라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첫 환자 발생 후 수일간은 의사 출신 질병관리본부장 주도로 방역작전이 진행됐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23일 이후에는 비전문가인 행정관료들을 이해시키고, 지원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상황실보다는 서울 충정로의 장관 집무실, 세종시 복지부 청사, 국회에 머문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다. 급기야 환자가 급증한 이후에는 본부장이 주요 의사결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들과 대면하는 일일 브리핑에서도 본부장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전문가가 껍데기 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CDC에서 6년 동안 근무했던 탁상우 미 국방부 수석역학조사관은 “톰 프리든 미국 CDC 센터장은 지난해 에볼라 환자가 늘면서 비난 여론에 시달렸지만, 미국 정부는 그에게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며 “하지만 한국 정부는 질병관리본부장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지도 않았다. 국민들이 정부를 불신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됐다”고 지적했다. ▼ 지휘-인사권-예산-전문성 ‘4無 본부’… 수술없인 또 당한다 ▼“메르스가 종식되더라도, 현 조직 체계로는 다른 신종 감염병에 또 당할 수밖에 없다.” 메르스 사태는 한국 보건 시스템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국내 1% 수재집단인 의료인들이 여러 벽에 막혀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문가를 중심으로 즉각대응팀을 만들어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메르스대책본부, 청와대 내 메르스긴급대책반, 국민안전처 산하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등 이미 행정관료 중심의 태스크포스(TF)가 양산돼 전문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감염병 통제의 중심이 돼야 할 질병관리본부의 역할이 유명무실했다는 것이다.본부장 차관급 격상 없이는 문제 계속 현재 질병관리본부장은 1급(실장급)이다. 그 위치로는 각 부처의 역할을 조정하고 적재적소에 자원을 투입하면서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질병관리본부장이 병원 봉쇄, 강제 격리 등 선제적 격리 조치에 나서야겠다는 판단을 해도 경찰, 지방자치단체의 협조 없이는 이행이 어렵다. 군의관, 간호장교 등 군 인력 차출이 필요할 때도 마찬가지다. 선제적 조치보다는 기존 매뉴얼을 수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보건당국이 ‘환자와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접촉해야 감염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침을 무비판적으로 따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탁상우 미 국방부 수석역학조사관은 “신종 바이러스는 위험도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대응을 준비해야 하는데,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장은 책임지지 못할 수준의 선제적 조치에 절대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가 메르스 통제의 중심에 서지 못한 것이 초기 역학조사 부실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종 감염병은 살인사건처럼 초기 역학조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장은 현장에 전념하기 어려웠다는 게 중론이다. 연금 전문가로 보건 분야가 생소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주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했던 장옥주 차관을 보좌하기 위해 대책반에 불려 들어오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대책반을 지휘하는 장차관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대응지침을 받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상황이 지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불려가서 보고를 하는데도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는 지적도 나온다. 살인현장을 누비고 연구실에서 퍼즐을 맞추는 데 시간을 보내야 할 사람들이 현장보다는 과외 업무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국내 시스템이 근본적인 문제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해 청으로 독립시키거나, 보건복지부 내 보건2차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보건 요직 행시 출신 장악 질병관리본부에 우수한 보건행정 인력이 모이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감염병 발생 초기 데이터를 수집하고 조직해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유능한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장은 사실상 본부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인사과장을 지낸 한 고위 관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사를 하고, 남은 인원을 산하로 보낸다. 그래서 잘나가는 보건복지부 관료는 질병관리본부로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를 지휘하는 보건복지부의 보건 분야 요직을 비전문가가 수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 보건복지부의 실장급(1급) 4명 중 의사 출신은 단 1명도 없다. 보건의료정책실 소속 국장(2급) 3명 중 보건 전문가는 공공보건정책관 1명뿐. 심지어 건강증진기금을 운영하는 건강정책국장도 비보건 전문가다. 질병정책과, 응급의료과 등 전문 분야도 비의료인 출신이 맡고 있다. 보건 없는 보건복지부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질병관리본부의 요직을 지낸 한 보건 전문가는 “의약분업 이후 이해당사자가 업무를 맡으면 안 된다는 논리로 의사 출신들을 전문 업무에서 배제시켰는데, 지금은 그 부작용이 심하다”며 “행시 출신 보건복지부 관료들은 병원에 대한 영향력, 보건소에 대한 예산권이 있는 보건 분야를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고 말했다.연구 역량, 비정규직에 의존 질병관리본부의 보건행정 능력뿐만 아니라 연구인력의 역량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우수한 정규 인원을 충원해주지 않다 보니 질병관리본부는 연구비, 사업비로 비정규 연구원을 채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 결과 비정규 직원이 269명으로 정규직(156명)보다 많다.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이 석·박사 학위를 가진 경우가 많아 정규직보다 능력과 스펙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다는 것. 이종구 서울대 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소장은 “석·박사 출신 비정규직들이 자신보다 스펙은 떨어지는데 권한은 더 많은 정규직 직원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조직이 불안정하다”며 “게다가 질병관리본부가 서울에서 충북 청주시 오송으로 이전하면서 우수한 정규직 확보가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의사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특수 수당 등 유인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병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KAIST를 만들 때 선제적으로 외국 박사들을 스카우트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역량을 키워 미래 감염병에 대처하려면 우수한 의사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 파견인력이 부족해 세계적 감염병 추세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병원 내 감염 관리 조직 없어 질병관리본부에 ‘병원 내 감염’을 관리하는 전담 조직이 없는 것도 문제다. 2003년까지는 세균질환부 산하에 병원감염과가 있었지만 2004년 질병관리본부 출범 이후 사라졌다. 이종구 소장은 “당시 병원감염과의 명칭을 약제내성과로 바꿨다. 병원감염 관리를 하지 않고 항생제 내성만 관리하는 과로 축소시킨 것이다”며 “인력이 부족해도 의지를 가지고 해당 과를 발전시켰다면 메르스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감염병관리과가 존재하지만 급성전염병 관리, 곤충매개 전염병 관리에 치우쳐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감염병관리과장은 홍보 업무도 겸하고 있어 ‘병원 내 감염 관리’ 업무까지 집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메르스 확진환자의 대부분은 병원 안에서 나온 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아닐 수 없다. 200병상 이상 병원은 감염관리실을 운영하게 돼 있지만 이 제도는 메르스 앞에서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보건당국의 병원 감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실제로 전국병원감염감시체계(KONIS)에 따르면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400병상 이상의 94개 병원 166개 중환자실에서 총 2843건의 병원감염이 발생하기도 했다. 감염병 발생 후에야 뒷북 예비비 투입 땜질식 예산 처방도 신종 감염병을 막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보건복지부의 감염병 관련 예산은 총 4024억 원이지만 고정비 비중이 높아 신규 사업을 펼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신종 전염병 대응체계 강화 사업 예산은 2007년 153억 원에서 올해 34억 원으로 급감했다. 국가격리시설 운영사업비도 2013년 11억2900만 원에서 올해 9억1200만 원으로 줄었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정부는 16일 505억 원을 예비비로 긴급 지원해야 했다. 큰 문제가 터지고 국가적인 이슈로 부상한 이후 부랴부랴 ‘예비비’ 등으로 뒷수습을 하는 행태가 재연된 것이다. 예산 부족은 신종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과감한 선제적 조치를 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강제 격리조치를 할 경우 생계비 등 피해보상 청구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으로선 향후 예산 마련의 어려움 때문에 강력한 격리 조치를 머뭇거리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재해를 대비해서 농산물 매입과 농가 보전 비용을 예산에 포함시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질병관리본부 어떤 일 하나‘질병 예보관.’ 질병관리본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질병 현황을 수집하고 분석해 위험도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마치 기상청이 매일 날씨 정보를 수집해 발표하는 것과 흡사한 역할이다. 뇌염모기 주의보 등을 발령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질병 예보는 예방접종 확대 등 후속 조치로 이어진다. 해외에서 발생하는 신종 감염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국내 유입에 대비하는 것도 질병관리본부 역할이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세계 각국의 보건당국과 직접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업무는 전 세계에서 발생한 질병이 국내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국 13개 공항과 항구의 국립검역소에 330명의 검역관이 일하고 있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도 질병관리본부의 레이더망에 걸려 있었지만 끝내 국내 유입을 막지는 못했다. 이 밖에도 질병관리본부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에서는 다양한 생명 관련 연구개발(R&D)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에서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백신 개발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 美 센터장 아래 4각 편대… 부처 지휘-軍동원 요청권까지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프랑스의 국립보건통제센터(INvS), 일본의 국립감염증연구소 등 외국의 기관들은 한국의 메르스 사태에 초긴장 상태다. 전염병이 돌 때 이 기관들은 탄탄한 조직력을 기반으로 신속한 의사 결정과 강력한 초동 대처를 해왔다.세계의 전염병 경찰, 미국의 CDC 미국 CDC는 2013년 7월부터 메르스가 미국에 상륙할 것에 대비해 의심환자를 처리하는 절차와 점검 사항을 매뉴얼로 만들어 미국 각지의 병원에 보냈다. 이 매뉴얼은 미국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던 지난해 5월 위력을 발휘했다. 첫 메르스 의심환자가 들렀던 인디애나 주 먼스터의 한 지방 병원은 응급실이 아닌 격리 진료실에서 초동 진료를 하는 등 매뉴얼대로 처리했다. 확진 판정이 나온 즉시 의료진 50여 명도 격리됐다. 그 결과 2차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기민한 병원의 대응은 CDC가 선도했다. 캐서린 대니얼 CDC 커뮤니케이션실장은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만일 메르스가 미국에서 또 발생한다면 ‘호흡기 질환 센터’를 축으로 신속대응팀을 구성하고 연방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CDC의 신속대응팀은 전염병 대책본부를 주축으로 유관 조직들을 동원하는 태스크포스(TF)다. CDC는 전염병 대책본부를 포함해 보건위생본부, 비전염성 질병 대책본부, 보건대책 지원본부 등 크게 4개의 본부로 구성되어 있다. 4개 본부는 토머스 프리든 CDC 소장이 직접 지휘한다. 대니얼 실장은 “국가적 수준의 보건 위험 요소에 대응하도록 조직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에볼라에 이어 메르스를 조기에 수습하기까지 CDC 인력은 중추 역할을 해왔다. 1946년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해 처음 설립된 CDC는 세계보건기구(WHO)보다도 2년 먼저 설립됐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전염병 퇴치 기구인 셈이다. 계약직까지 합쳐 1만5000여 명이 근무하는 CDC에서 3000명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검증받은 의사 출신이다. 이들은 미국을 넘어 세계의 전염병 경찰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서 전염병 환자가 발생하면 CDC는 24시간 안에 역학조사팀을 파견한다. 역학조사팀은 다른 나라에도 나간다. 메르스, 조류인플루엔자, 원숭이천연두 같은 새로운 질병이 발생하는 곳이면 당사국의 요청을 받아 24시간 내에 역학조사관을 보낸다.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게 대기하고 있는 역학조사팀의 인력만 300명이 넘는다. 2004년 사스가 발병했을 때도 CDC는 사스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진단법을 완성해 세계의 병원에 배포하기도 했다. CDC는 전염병이 돌지 않는 평상시에도 24시간 가동하는 비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는 메르스 의심환자를 진료하는 병원들로부터 비상 연락을 받는다. 또 메르스 같은 전염병 의심환자의 경우 CDC가 마련한 ‘감염 기준표’를 참고해 감염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당부를 수시로 병원에 전파한다. 한국의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CDC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각종 방역 대책과 매우 구체적인 대응 프로그램 및 매뉴얼을 공개하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이 같은 활동에는 보건 기구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다. 올해 CDC 예산은 66억700만 달러(약 7조3300억 원)다. CDC 산하 기구인 독성물질·질병등록(ATSDR) 프로그램까지 합치면 전체 예산은 113억 달러(약 12조5000억 원) 선이다. 이는 WHO의 연간 예산(40억 달러)의 3배에 가깝다. 예산은 펀드 형식으로 모으기도 한다. 올해 예산 중 ‘질병예방 공중보건 펀드’로 8억1000만 달러를, ‘공중보건 서비스 평가 펀드’로 3억9700만 달러를 조성했다. 이런 예산을 쓰는 CDC에 미국은 질병 컨트롤타워의 임무를 계속 맡겨왔다. 지난해 10월 15일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던 간호사 2명이 양성 판정을 받자 프리든 소장은 “지금까지 주 정부와 보건기관에 일임했던 방역 대책을 이 순간부터 CDC 주도하에 국가 차원으로 격상시키겠다”고 밝혔다. CDC가 컨트롤타워가 되면서 미국은 에볼라 사태 발발 후 43일 만에 에볼라 사태 종료를 선언했다. 에볼라 감염 환자 11명 중 2명이 사망했지만 9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살아 나갈 수 있었다. 세계 주요국은 새로운 전염병 창궐에 대비해 CDC를 벤치마킹한 조직을 창설해왔다. 중국의 경우 2002년 CDC를 본떠 중국질병통제센터(CCDC)를 만들었다. CCDC에는 현재 4000여 명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CDC는 2004년 CCDC와 공동으로 에이즈 발병률이 높은 허난, 안후이, 헤이룽장 성 등 중국 10개 지방에서 에이즈 감시와 환자치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신속 소통, 결정을 모토로 삼는 INvS 프랑스는 1998년 광우병 위기 이후에 INvS를 창설했다. 메르스, 광우병, 에볼라, 식품 오염, 열대성 질병에 대한 경보를 내리고 비상사태에 질병을 통제하며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역할을 하는 정부기관이다. INvS의 상황실은 공무원이 아닌 전문 의료진이 모든 통제의 책임을 진다. 또한 전국 각지의 병원 의사들 및 감염 전문가들과 신속히 정보 교류를 하며, 응급구조대(SAMU)에서 올라오는 각종 정보도 즉각 전달된다. 상황실 근무자가 메르스 의심사례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면 상황실의 전문가들은 짧은 토론을 거쳐 격리조치 같은 즉각적인 결정을 내린다. INvS는 지역의 감염예방 전문가 및 현장 의사들과 끊임없이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13년 5월에 첫 메르스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체류하다가 귀국한 65세의 환자가 북부 도시 릴의 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도중 한 달 만에 숨졌다. 확진 판정을 받기 전에 병실을 같이 썼던 다른 50대 환자도 감염됐다. INvS는 즉시 확진환자를 격리하고, 이 병원에서 접촉했던 모든 사람을 추적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까지 메르스 의심환자들을 추적하고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여 결국 확진환자는 2명에 그쳤다. 첫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하자마자 INvS에는 위기대책상황실이 설치됐다. 24시간 가동되는 상황실에는 모든 포스트에 팀원을 2배로 늘렸다. 또한 수십 명의 감염 질병 관련 전문가가 소집돼 컴퓨터와 전화기를 앞에 두고 새로운 발생경로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기 위한 합동 작전을 벌였다. 당시 소집된 전문가들에는 호흡기 감염뿐만 아니라 열대질병, 광우병 등을 연구해온 전문가들도 포함됐다. 전국적 비상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당시 상황실의 현장을 생생하게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INvS의 감염예방 책임자 브뤼노 쿠아냐르 박사는 당시 “상황실에서 전문가들이 의심 사례 분류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교환하고 의사 결정은 빠르게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 아롤드 노엘 박사는 “전국의 병원과 투명하고 신속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질병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상황실 근무자들은 “열나는 아이를 집에서 돌봐도 되느냐”는 등 사소한 질문에도 응답했다.대책 수립 기관인 일본의 국립감염증연구소 일본에서 메르스 같은 질병이 발생하면 후생노동성이 국립감염증연구소와 함께 전면에 나선다. 후생노동성 산하 연구소인 국립감염증연구소는 1947년 설립된 국립예방위생연구소를 전신으로 하며 직원은 300명가량이다. 이 연구소는 결핵 장티푸스 일본뇌염 인플루엔자 등 각종 감염증 질환을 연구하고 항생제와 백신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곳이다. 또 해당 질병이 일본 내에 들어오는지를 감시하고 후생노동성과 함께 예방 대책을 수립하기도 한다. 메르스의 경우에도 연구소는 약 2년 전부터 감염 사례를 분석해 어느 정도 위험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10여 차례에 걸쳐 자료를 공개하고 수정해왔다. 또 WHO와 같은 외국의 질병 정보를 제공하고 지방 위생연구소 등이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연구소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에서 발표한 메르스 대책에 따르면 의심환자 사례가 지역 보건소에 접수될 경우 즉시 지정 의료기관에 옮기고 채취한 검체를 지방 위생연구소에 보내도록 했다. 검체는 이후 국립감염증연구소 바이러스 제3부로 옮겨지고 연구소는 양성 여부를 후생노동성에 보고해야 한다. 오이시 가즈노리(大石和德) 국립감염증연구소 감염증역학센터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염병 정보를 수집해 위험도를 평가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연구소의 역할”이라며 “메르스의 경우 국민들에게 어떤 상태이며 한국 여행을 해도 되는지 등의 정보를 적극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유근형 noel@donga.com·이샘물 / 이진한 기자·의사 / 워싱턴=이승헌 / 파리=전승훈 / 도쿄=장원재 특파원}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18일 “기후변화가 전쟁이나 분쟁을 촉발할 수 있다”며 지구가 파괴되지 않도록 화석 연료 이용을 과감하게 줄일 것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181쪽 분량의 새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에서 이같이 밝혔다. 회칙은 모두 6장 246항에 걸쳐 오늘날 지구와 인간이 겪고 있는 환경 문제를 성찰하고 회개와 행동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교황은 지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 인식하면서 △지구 온난화 △식수 오염 △생물다양성 감소 △삶의 질 저하 △세계적인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지도력 부족 등을 두루 언급하고 있다. 교황은 회칙에서 “대부분의 지구 온난화는 인간의 활동 때문에 발생했다”며 “온난화를 막고 지구를 구하기 위한 행동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회칙은 환경 문제를 다룬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교황 회칙이라는 점에서 발표 전부터 전 세계 정치·경제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교황은 정치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비판한 것을 비롯해 에너지 업계, 달라이라마까지 논쟁에 가세했다. 교황은 “교회가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정치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환경 문제는 인간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으로 기술만능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올바른 발전을 위한 다양한 대화와 생태 교육을 촉구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서 열린 파리 에어쇼에서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1)의 경영 일선 복귀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조 회장은 이날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자녀들의 역할 변화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덮어놓고 (기업을) 넘기지 않겠다. 세 자녀 각자 역할의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주는 경영훈련을 거친 후 능력을 보여줘야 물려주겠다”고 대답했다. 간담회가 시작될 때에는 장남인 조원태 부사장도 보였으나 곤란한 질문이 나올 것으로 생각해선지 곧 사라졌다. 조 회장이 ‘세 자녀’라고 분명하게 언급한 것은 장남과 차녀(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뿐만 아니라 장녀(조현아 전 부사장)에게도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반년 만에 큰딸의 복귀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2일 집행유예로 석방된 조 전 부사장은 ‘땅콩 회항’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된 지난해 12월 모든 보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세계보건기구(WHO)는 17일 한국의 메르스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한국에 대한 여행·교역 금지를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WHO는 제9차 메르스 긴급위원회 이후 발표한 성명서에서 “한국의 메르스 발병이 경종을 울리는 계기(Wake-up call)가 돼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한국의 메르스 사태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세계 보건규정상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는 질병이 범세계적으로 확산돼 국제사회 차원에서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할 때 발동된다. WHO는 한국에서 메르스가 확산된 주요 원인으로 △의료 종사자와 대중의 메르스에 대한 인식 부족 △병원에서 전염 예방 조치 미흡 △혼잡한 응급실과 다인용 입원실에서 메르스 환자와 밀접한 접촉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는 환자의 행동(의료 쇼핑) △환자에 대한 가족의 직접 간호와 2차 감염이 많았던 점 등을 꼽았다. 또 한국에서 지역사회 감염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중동의 메르스 바이러스와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검출된 바이러스에 주요한 차이점이 없었다고 재확인했다. WHO는 “한국의 보건 수준이 높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여행이나 교역 금지 조처는 권고하지 않으며 체열감지기를 통한 입국 검사도 현재로서는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다만 “앞으로 몇 주간 추가 발병 사례가 있을 수 있으며 이동이 활발한 사회에서 모든 국가는 예기치 않은 전염병 발발에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며 “여행객들에게 메르스 예방법을 알리고 보건·항공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와 소통 절차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WHO는 그동안 2013년에 네 차례, 2014년에 세 차례, 올해 들어 2월 등 모두 8차례에 걸쳐 메르스 긴급위원회를 소집했다. 후쿠다 게이지 WHO 사무차장은 “한국의 메르스 발병 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메르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WHO는 필요에 따라 긴급위원회를 재소집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대한항공이 13조 원을 들여 2025년까지 100대의 새 항공기를 들여오기로 했다. 이번 도입 결정은 국내 항공업계 사상 최대 규모로, 중·단거리 노선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프랑스 파리에어쇼에 참가하고 있는 대한항공은 16일(현지 시간) 에어쇼 현장에서 보잉 및 에어버스와 차세대 항공기 100대를 도입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잇달아 체결했다. 총 구매 금액은 122억3000만 달러(약 13조6854억 원). 지금까지 최대 발주는 2006년 11월 대한항공이 보잉과 25대, 55억 달러(약 6조1545억 원) 계약을 한 것으로 이번 계약은 그 2배를 넘는 규모다. 계약식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아들인 조원태 한진칼 대표이사 부사장이 참석했다. 대한항공이 구매하는 기종은 보잉사의 ‘B737MAX-8’ 기종 50대와 에어버스사의 ‘A321NEO’ 기종 50대다. 둘 다 중·단거리용 여객기로,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도입된다. 대한항공이 에어버스사의 중·단거리용 여객기를 도입하는 것은 처음이다. 대한항공이 중·단거리용 여객기를 대거 도입하는 것은 현재 보유 중인 ‘B737NG’ 기종이 노후화된 데다 국내외에서 저비용 항공사의 공격적 마케팅으로 중·단거리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제까지 장거리 항공기 확충에 전력해 왔는데 앞으로 중·단거리 항공 노선의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구매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중·단거리 노선 비행기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높은 연료효율을 통해 비용 절감이 가능한 데다 승객들에게는 차별화된 최첨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차세대 신형 기종의 투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도입하기로 한 기종은 기존 항공기보다 연료를 15∼20% 이상 절감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중·단거리 노선이 대한항공의 강점인 장거리 노선과 연계되면 환승객을 유치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최근 항공기 사고가 잇따르면서 좀 더 안전한 최신형 기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번 도입을 결정하게 된 배경 중 하나다. 이날 파리 에어쇼에 참석한 조양호 회장은 “구매 계약한 비행기가 도입되는 시점이 대한항공의 창사 50주년을 맞는 2019년이라는 점에서 ‘제2의 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자금 조달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순차적 도입인 데다 미국 및 유럽 수출입은행의 보증을 받아 장기·저리 할부로 들여오는 만큼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여객기 124대, 화물기 27대 등 총 151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송능력 기준으로 세계 14위다.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 파리=전승훈 특파원}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이 14일 구제금융 협상이 또다시 실패해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위원장은 이날 그리스 채무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한 최종 협상을 시도했다. 그리스 대표단은 채권단과 연금, 세제, 기초재정수지 흑자 목표 등 주요 이슈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기 위한 새 제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EC는 “재정조치에 대한 그리스의 제안과 채권단의 요구가 대략 연간 20억유로 정도 차이가 난다”며 45분 만에 협상이 실패로 끝났다. 당초 채권단은 그리스가 모든 채무를 상환하려면 막대한 기초재정수지 흑자가 필요하다며 2016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4.5%의 흑자 달성을 요구했고 그리스는 이를 1%로 낮춰야 한다고 맞섰다. 그리스는 이달 30일까지 추가 구제금융 지원을 위한 협상을 타결짓지 못할 경우 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는 동시에 유로존에서 퇴출될 우려가 커졌다. 이로써 18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회의가 그리스의 디폴트 여부를 좌우하는 최종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정책연구센터의 다니엘 그로스 소장은 15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4¤6주 이내에 그리스 정부가 자본통제를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아르헨티나, 키프로스의 사례처럼 대규모 인출사태(뱅크런)를 막기위해 은행 영업을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FT는 “그리스가 국제채권단의 협상에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더 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이라며 “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그리스에 빌려준 1600억 유로를 떼이게 되면서 가장 큰 정치적 경제적 패배자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지구야, 안녕. 내 말 들리니?” 지난해 11월 13일 태양계와 생명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혜성에 착륙했다 60시간 만에 작동을 멈춘 유럽우주기구(ESA)의 탐사로봇 ‘필레’가 동면 7개월 만에 극적으로 깨어났다. 지금까지 필레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우주과학계는 환호를 터뜨렸다고 14일 BBC가 보도했다. ESA는 “필레가 이날 2분가량 신호를 보내왔고, 이 중 40초 분량은 가치 있는 데이터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BBC는 이를 두고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 중 하나다”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ESA는 필레의 이름으로 된 트위터 계정에 “지구야, 안녕. 내 말 들리니”라는 짧은 문장을 올려 로봇이 깨어난 소식을 극적으로 알렸다. 이 트윗이 주목을 끌자 “내가 얼마나 잠을 잔 거야” “일하러 갈 시간이군. 조금 피곤하긴 해. 나중에 말하자”라는 문장을 순차적으로 올려 필레와 연계가 이뤄졌음을 세계에 알렸다. 인류 최초의 혜성 탐사로봇인 필레는 2004년 3월 2일 무인 우주선 ‘로제타’호에 실려 발사된 뒤 10년 동안 8억 km를 넘게 날아가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를 따라잡았다. 이 혜성은 지름 4km, 중력이 지구의 수십만 분의 1에 불과하며 초속 38km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하지만 혜성 23km 상공에서 로제타호와 분리된 필레가 혜성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생겼다. 혜성 표면에 필레를 고정할 작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두 번 튕겨 나온 뒤 햇빛이 닿지 않는 그늘 지역에 불시착한 것. 이곳의 온도는 영하 160도로 알려졌다. 크기가 세탁기 정도고 무게가 100kg 정도인 필레가 관측 장비들을 다시 작동하기 위해서는 내부 온도가 영하 45도까지는 올라가야 하지만 전망은 불투명했다. 유일한 희망은 혜성이 태양과 가까워질 때 태양에너지를 공급받아 잠에서 깨어나는 것. 하지만 고정 작살이 그때까지 견디지 못해 필레가 다시 우주로 튕겨 나갈 가능성도 제기됐다. 간절한 희망이 전해진 것일까. 필레는 7개월 뒤 드디어 태양에너지를 스스로 충전해 작동을 시작했다. 현재 필레의 내부 온도는 영하 35도로 양호하다. 지구와 연계가 이뤄지면 스스로 그늘 지역을 벗어나 햇볕이 비치는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당신들은 내게 천사였습니다. 음악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지난 15년은 특별했습니다.” 12일 저녁(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라디오프랑스 콘서트홀. 지휘자 정명훈이 15년간 음악감독을 맡아온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고별무대를 마치고 관객들 앞에 섰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지휘를 마친 그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인간관계와 음악, 그리고 한국”이라며 프랑스와 한국의 음악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마티외 갈레 라디오프랑스 사장은 이날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 올라와 “정 감독이 라디오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높였다”며 라디오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명예 음악감독(Directeur Musical Honore)’에 추대한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15일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음악비평가협회상인 ‘프랑코 아비아티 최고 음악평론가상’을 생애 두 번째로 받는다. 정 감독은 공연 전에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단원 140명으로 구성된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은 100% 국가 예산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음악감독이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관계는 친구들과의 우정,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서울시향의 단원들은 내가 보살펴야 할 자식들처럼 여겨진다”며 “한국의 악단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 베네치아의 라페니체 극장에서 객원지휘자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또 11월 독일 최고(最古·1548년 창단) 역사를 가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평양에서 공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2년부터 이 악단의 수석 객원지휘자를 맡고 있는 정 감독은 “슈타츠카펠레가 11월 18, 19일 서울 공연을 마치고 평양에 갈 예정”이라며 “분단을 경험한 독일과 한국이 비슷한 점이 있으니 성사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남북한 음악 교류에 대해 “서울시향과 유럽에서의 모든 활동을 못 하는 한이 있더라도 남북 합동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겠다는 꿈만은 이루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 감독은 2012년 파리에서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북한 은하수 관현악단의 합동 공연을 펼친 바 있다. 정 감독은 서울시향 박현정 전 대표의 사퇴 소동과 자신의 고액 연봉 논란에 대해 “서울시향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하고 있느냐 하는 음악적 가치 평가에만 집중해 달라”고 했다. “서울시향 사태가 터진 후에 프랑스 독일 영국 기자들은 물론이고 뉴욕타임스에서도 내게 인터뷰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참 재밌는 현상이더군요. 10년 전만 해도 서울시향에서 무슨 사태가 벌어져도 세계 음악계에서 아무런 관심이 없었을 텐데요. 그만큼 우리가 큰 발전을 이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감독은 “악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우는 데는 10년이 걸리지만 망치는 것은 한순간”이라며 “특히 정치가 개입되면 끝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향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우는 데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고맙다’ 하며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국가 부채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수준이다. 햇살이 날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 영국 보수당 정부의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이 10일 런던에서 열린 연례연설에서 재정흑자를 법으로 강제하는 ‘균형예산법’ 도입 방침을 밝혔다. 복지지출로 인한 재정압박을 더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오즈번 장관은 “앞으로는 좌파든 우파든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시기’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재정흑자를 유지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보수당은 올가을 의회에 이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 총선 결과는 더이상 돈을 더 많이 빌려서 더 많이 지출하는 정부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뜻”이라며 “예산 편성에 대한 원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즈번 장관은 이를 위해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운영됐던 ‘국가부채축소 감독위원회’를 150년 만에 부활시키기로 했다. 이 위원회는 1786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처음 구성됐으며 1860년까지 운영됐다. 오즈번 장관이 새로 구성하는 재정편성에 대한 독립적 감시기구는 예산책임청(OBR)이다.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시기(normal times)’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독립 기구에 맡겨 정부의 자의적인 해석을 막는다는 복안이다. 지난달 총선 승리로 출범한 보수당 2기 내각은 현재 873억 파운드(약 148조 원)인 재정적자를 계속 줄여 2018년엔 흑자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복지지출을 120억 파운드(약 20조 원) 이상 줄이고, 정부 지출도 130억 파운드(약 23조 원) 감축하는 등 강력한 재정긴축을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에 집권했던 노동당 정부가 흑자예산에 실패한 것이 심각한 재정적자와 경기후퇴의 원인이 됐으며, 두 번의 총선에서 노동당 연패로 이어졌다”며 “재정흑자 강제화 법안은 노동당의 향후 노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2010년부터 이끌었던 보수당 1기 내각은 재정적자 축소에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출범 당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11.6%(1634억 파운드)였지만 지금은 4.3%로 떨어졌다. 하지만 영국은 금융위기 당시 재정 확대로 경기를 떠받치면서 나랏빚이 크게 늘었다. 영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08년 42%에서 올 4월 말 80.4%로 불어났다. 현재 영국의 나랏빚 규모는 1조4800억 파운드(약 2535조원)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잊어라! 빌더버그가 온다.”(영국 가디언) 전 세계 정·재계 실력자들의 비밀 모임인 ‘빌더버그 회의’가 11일 오스트리아 텔프스부헨의 5성급 호텔 인터알펜 리조트에서 개막한다. ‘세계에서 가장 센 나라들’의 모임인 G7 회의가 8일 독일 바이에른 주 크륀에서 폐막한 지 사흘 만에 열리는 이번 회의에 미국·유럽 등의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다. 특히 개막을 앞두고 참가자들의 면면이 공개되면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올해 G7 회의가 열린 크륀의 호텔과 이로부터 불과 27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올해 빌더버그 회의 장소의 공통점은 모두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다는 것. G7 회의와 빌더버그 회의가 전 세계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이다 보니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의 단골 공격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빌더버그라는 회의 명칭은 첫 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빌더버그 호텔에서 유래됐다. 빌더버그 회의는 유대계 부호 로스차일드와 록펠러 가문의 재정적 후원 아래 1954년 시작돼 올해로 63회째를 맞았다. 해마다 전 세계 실력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논의를 하고도 아무런 발표문을 내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되, 참석자가 누구이고 또 어떤 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등을 절대 밝히지 않는 자유토론 방식인 채텀하우스(Chatham house) 룰을 따르기 때문이다. 비판론자들은 빌더버그 회의를 ‘세계의 그림자 정부’라고 부르며 음모론을 제기한다. 힘센 유력 인사들끼리 모여서 가진 비밀 논의 결과가 향후 국제정치 및 국제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14일까지 열리는 올해 회의에는 22개국 133명의 정치 지도자, 재계·학계·언론계 거물들이 참석해 다양한 글로벌 이슈를 논의한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 하인츠 피셔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비롯해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브누아 쾨레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 등이 참석한다. 이들은 세계경제의 ‘뜨거운 감자’인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영국의 EU 탈퇴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또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존 앨런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국제연합전선’ 미국 대통령 특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 토마스 아렌킬 덴마크 비밀정보국(DDIS) 국장,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등 각국의 외교안보 지도자들도 한자리에 모인다. 러시아에 대한 NATO와 유럽의 전략을 비롯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 대처 등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에릭 슈밋 구글 회장, 존 엘칸 엑소르 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 더글러스 플린트 HSBC 회장, 조 케저 지멘스 CEO, 벤 판뵈르던 로열더치셸 CEO, 재니 민턴 베도스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존 미클스웨이트 블룸버그 편집장 등 기업인과 언론인도 대거 참석한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루저(loser)는 늘 승자보다 많은 지식을 추구한다. 만일 이기고 싶다면 하나만 알아야지 모든 것을 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박학다식(博學多識)의 기쁨은 루저를 위한 것이다.”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83)의 일곱 번째 소설이 최근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로 유명한 에코 특유의 역사적 사건의 복잡한 음모론과 창의적인 해석, 신랄한 풍자가 번뜩이는 작품이다. 소설의 제목은 ‘누메로 체로(Numero Zero)’(사진). 신문의 창간호를 ‘넘버 1’이라고 한다면, 창간을 준비하면서 내는 시험판이라는 뜻이다. 에코는 이탈리아의 거대한 미디어 재벌과 부패한 정치, 경제권력 간의 암투를 스릴러와 풍자소극을 적절하게 뒤섞어 그려낸다. 소설의 배경은 1990년대 중반 이탈리아 밀라노. 호텔부터 프로축구단, TV 채널, 타블로이드 신문까지 소유하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탈리아의 정치가이자 미디어 거물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염두에 둔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 남자는 6명의 기자를 고용해 ‘도마니’(Domani·내일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신문 창간을 1년 동안 준비할 것을 지시한다. 창간에 앞서 명망 있는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스캔들이 담긴 ‘시험판’(Numero Zero) 수십 개를 만들어 내라는 요구가 더해진다. 그러나 이곳이 가짜 편집국이며 신문이 절대로 창간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편집장과 주인공인 대필작가 콜로나만 알고 있다. 돈을 대고 있는 미디어 거물은 이 신문을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거래를 위한 ‘협박용’으로만 활용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뚱하게 흘러간다. 기자들이 시험판을 준비하다가 거대한 역사의 음모론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 간다. 그 음모론은 1945년 처형당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죽음이 조작된 것이며 진짜 무솔리니는 아르헨티나로 망명해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음모론은 냉전시대의 강대국 간의 경쟁,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정치인, 성직자, 테러리스트, 마피아, 프리메이슨, 교황까지 종횡무진 얽혀든다. 에코는 이 소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이탈리아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진부하고 상투적인 용어가 난무하는 편집회의에 대한 세밀한 묘사도 잊지 않는다. 그는 소설에서 “음모론은 과잉된 미디어가 상식을 전복시키는 현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병”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북 사인회에서 왜 이렇게 ‘종말론적인 미디어관’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에코는 “문학의 역할은 항상 되돌아보고, 생각하는 염세적인 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한국에서 퍼지고 있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행했던 바이러스와 89.6% 일치한다. 특별한 변종이나 진화형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통제 조치를 취한다면 몇 주 내로 사그라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산하 ‘국립인플루엔자바이러스표준연구소(CNR)’의 뱅상 에누프 부소장(사진)은 10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메르스는 전염성이 낮은 질병이기 때문에 과도한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메르스는 환자의 기침 등으로 침이 다른 사람의 호흡기에 들어갔을 때 전염된다”며 “바이러스의 농도가 높고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이 메르스 환자와 같은 방을 쓰는 상황이 아니라면, 일상생활이나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감염이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에누프 부소장은 “한국이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메르스가 전파되는 나라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놀랐다”며 “현대 의학시설을 겸비한 한국 병원들이 초동 대응에 실패한 이유는 부주의로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에누프 부소장은 초동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2년 전 프랑스에서 발생한 메르스 사태를 예로 들었다. 2013년 5월 프랑스에서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사망했지만 추가 감염 방지에 최선을 다한 결과 확진환자는 단 2명에 그쳤다는 것. 그는 “메르스는 전염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4∼15일에 이르는 바이러스의 잠복기 때문에 쉽지 않다”며 “프랑스는 2013년도 첫 환자가 발생하자마자 같은 방을 썼던 다른 환자와 의료진을 신속하게 격리시키고 전국 의료기관과 합동으로 바이러스 추적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에누프 부소장은 서울 강남지역 등에서 장기 휴교 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현재 한국의 메르스는 병원 내에서만 전염되고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없는 상황”이라며 “학교가 문을 닫을 필요까지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휴교를 하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 출입을 삼가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병원을 벗어나 지역사회로 전염이 확산될 때 취해도 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에누프 부소장은 “메르스가 전염성이 낮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등 예방 조치만 잘하면 충분히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메르스가 그냥 지나가는 병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만 만성질환이 있거나 고령자는 메르스 바이러스로부터 적극 보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