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전속력 출항. 목적지는 남극 로스 해.”예정된 목표는 아니었다. 거액이 투자된 남극탐사가 큰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아라온호’는 인륜과 의리를 택했다.10월 4일 인천항을 떠나 16일 뉴질랜드에 기착해 남극 탐사를 준비하던 국내 최초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조난당한 러시아 어선을 구하기 위해 17일(현지 시간) 긴급 출항했다. 32명이 승선한 러시아 ‘스파르타호’가 뉴질랜드에서 약 2000해리(3704km) 떨어진 빙붕(氷棚·남극 주변 바다의 거대 얼음덩어리) 틈에서 좌초되며 긴급구조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스파르타호가 ‘조난 호출’을 보낸 것은 16일 오전 3시. 남극 로스 해로 고기잡이에 나섰다가 실수로 최대 두께가 900m에 이르는 ‘얼음 선반’에 부딪혔다. 배는 크게 기우뚱했고, 삽시간에 갑판까지 물이 차올랐다. 위기에 직면한 선원들은 고무보트로 탈출까지 시도했다. 다행히 스파르타호는 13도 정도 기운 채 멈췄다. 뉴질랜드 공군 남극수송기 ‘허큘리스’가 9시간 만에 조난선에 추가 펌프 1개와 비상물품을 떨어뜨려줘 최악의 상황은 막았다. 현재 선원들은 모두 무사하다.그러나 물을 퍼내느라 펌프를 모두 가동한 스파르타호는 여분 동력이 없어 자체 수리가 곤란하다. 육지로부터 워낙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기상도 급변해 수리를 위한 헬리콥터가 갈 수 없다. 결국 다른 배가 가지 않으면 구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주위에 연락된 노르웨이와 뉴질랜드 선박 3척은 접근할 장비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거리, 그리고 얼음을 뚫고 갈 능력을 가진 배는 오직 아라온호뿐이었다.아라온호는 사실 이번 출항에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다. 세종에 이은 두 번째 과학기지 ‘장보고’를 건설할 지역을 정밀 탐사해야 한다. 당초 19일 떠날 계획이었지만, 아라온호는 바로 출항을 감행했다. 현재 16노트(시속 약 30km)의 최고속력을 내고 있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8일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얼음을 깨고 가야 할 땐 시속 3노트로 속도가 떨어져 도착 일시를 예측할 수 없다. 임무 실패의 부담에도 아라온호가 곧장 구호에 나선 건 당연히 ‘인명이 우선’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김현율 선장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긴박한 상황에서 다른 걸 따질 순 없다”며 “아라온호가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아라온호로선 이번 구출은 러시아에 대한 보은의 의미도 있다. 지난해 1월 남극 탐사에 올랐던 초보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는 수십 차례 극지를 누볐던 러시아의 베테랑 쇄빙연구선 ‘아카데미크 페도로프호’가 앞에서 길안내를 맡아줘 고생을 많이 덜었다.무엇보다 아라온호는 고(故) 전재규 세종기지 연구원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선박이다. 2003년 12월 전 씨는 동료 2명과 고무보트를 타고 연구에 나섰다가 끝내 수만리 얼음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그의 희생은 정부의 쇄빙연구선 건조 계획을 앞당기는 불씨가 됐다. 함께 보트에 탔다 구조됐던 정웅식 연구원은 “고인의 희생으로 아라온호가 만들어졌다는 걸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연구원의 숭고한 희생이 빚어낸 아라온호가 이제 삶을 구하는 배가 되어 지금 달리고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만모한 싱 인도 총리(사진)에게 2011년은 삼재(三災)의 해였나?’ 경제학자 출신인 싱 총리는 2004년 취임 이래 인도 부흥을 이끌었다. 인도가 지난 10년간 평균 7%를 웃도는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조만간 중국도 따라잡을 기세”(블룸버그통신)란 평가를 받는 것도 그의 공이 컸다. 하지만 올해 초 측근들의 부패스캔들로 이미지를 구겼던 싱 총리에게 연말 정국은 ‘산 넘어 산’이다. 최근 과감하게 추진했던 3가지 정책이 모두 역풍을 맞고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 마치 불교에서 유래됐다는 인간의 세 가지 재앙, ‘삼재’라도 맞은 형국이다.① 질역(疾疫·전염병의 재앙)?→소매시장 개방 파문 가장 큰 논란은 소매시장 개방이다. 인도 정부는 지난달 24일 “해외 대형유통업체의 소매시장 진출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전까지 월마트나 테스코 등은 도매업만 허용됐다. 예상보다 반발이 거셌다. 소매상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고, 야당은 “섣부른 조치”라고 비난했다. 집권연정 최대 파트너인 ‘트리나물 콩그레스’의 마마타 바네르지 당수도 “외국자본이란 전염병에 대항하기엔 적절한 백신이 투여되지 않았다”며 반대했다. 결국 인도 재무부는 7일 “개방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글로벌사회에서 시장개방은 당연한 선택이지만, 대화를 통한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게 싱 총리의 패착”이라고 분석했다.② 도병(刀兵·무기를 비롯한 도구의 재앙)→SNS 통제 파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7일 “인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고 보도했다. 카필 시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전날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 인도의 풍속을 해치는 내용을 걸러낼 처방을 마련하지 않으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관련 업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유튜브는 “사이버 세상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한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페이스북은 일단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으나 수긍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더욱 거세다. ③ 기근(饑饉·배고픔의 재앙)→복지예산 삭감 파문 싱 총리의 복지예산 삭감 추진도 상황이 엇비슷하다. 인도 국무회의는 10월 “국고 손실을 막기 위해 빈곤층 보조수당을 줄이겠다”고 발표했으나 아직 국회에 상정조차 못했다. 4억 명이 넘는 빈곤층의 불만이 워낙 큰 데다 야당은 장외투쟁까지 선언했다. 심지어 총리가 속한 국민회의당의 소냐 간디 당수조차 “싱 총리가 폭주했다”며 우려를 표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공동 국가기구가 미국과 영국에 칼날을 세웠다.”(로이터통신) 미국과 캐나다, 유럽 지배령을 제외한 중남미의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 공동체(CELAC·셀락)’가 3일 공식 출범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33개 회원국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2, 3일 양일간 정상회의를 열고 ‘카라카스 선언’을 발표했다. 회의를 주재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셀락은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는 초국가적 기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셀락 이전 중남미 국가들이 참여한 국제기구는 여럿 있다. 미국 주도로 1951년 설립된 ‘미주기구(OAS·35개 회원국)’가 대표적인 기구다. 1986년 창설돼 23개국이 가입한 ‘리우그룹’과 1973년 발족한 카리브해 연안국 경제공동체 ‘카리콤’ 등도 있다. 셀락이 출범부터 주목을 받는 것은 OAS에서 미국과 캐나다를 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과 서구 세력의 미주대륙 영향력에 대한 반감이 셀락을 이끈 원동력”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미국이 OAS의 회원국 자격을 잠정 정지시킨 온두라스와 쿠바가 셀락에서는 정회원이다. 현지신문 ‘라틴아메리카 헤럴드 트리뷴’은 “다소 좌익 주도로 흘러간 이번 회합에 중남미 우익 국가들이 참여한 것은 ‘정치 경제적 자주’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셀락의 반(反)서구 성향은 카라카스 선언 22개조에서 두드러진다. 대부분은 경기회복이나 핵무기 반대와 같이 무난한 조항이지만, 2개 조항은 미국과 영국이 가장 불편해하는 이슈를 담았다. ‘영국은 포클랜드 섬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합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협상에 나서라’와 ‘미국은 쿠바 경제봉쇄를 해제하라는 유엔 결의를 무조건 이행하라’가 그것.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다양한 국제기구 창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은 평상시대로 ‘출중한 조직’인 OAS와 함께 사안에 대처할 것”이라는 의례적인 논평만 했다. 이 같은 강경 행보가 셀락에 독이 될 위험은 있다. 로이터통신은 첫 번째 불안요소로 ‘좌우익 성향 국가들 간의 괴리’를 꼽았다. 이번 회의는 너무 정치적 이상에 몰두해 베네수엘라와 쿠바, 니카라과 등 좌익 정권 국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정상회의 폐막 뒤 우익인 콜롬비아와 칠레, 멕시코는 “셀락이 모든 걸 대변하지는 않는다”며 수위를 낮췄다. 두 번째 불안요소는 ‘차베스 대통령’이다. 그는 2007년 셀락 창설 논의 때부터 백방으로 뛴 사실상의 창업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올가을로 예정됐던 정상회의가 12월로 연기된 것도 암 투병 중인 차베스를 배려한 조치”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것은 차베스의 건강이 셀락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약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차베스 대통령이 내년 4선 성공을 위해 셀락의 창설에 매달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베네수엘라 야권 대권후보인 파블로 메디나는 “회원국들은 차베스의 정치적 계략에 이용당했다”고 성토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셀락이 성공하려면 이데올로기보다는 마약 퇴치나 빈민 구체 등 구체적 지역현안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개인정보 노출을 방치하는 위험한 줄타기를 했다.”(영국 이코노미스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대표 격인 페이스북이 고객정보를 다루는 과정에서 ‘불공정하고 기만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며 지난달 29일 개선안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즉각 시행을 약속했다. FTC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2009년 12월 시스템을 변환하면서 개인정보가 외부로 공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자들에게 경고하지 않았다. 또 페이스북 이용자가 화면에 뜬 광고에 접속하면 광고회사가 자동으로 이용자의 신상정보를 수집하도록 내버려뒀다. 심지어 이용자가 페이스북 계정을 없애도 사진과 동영상은 그대로 데이터에 남겨둬 유출 위험에 놓이게 했다. 저커버그 CEO는 FTC의 발표 직후 페이스북 블로그를 통해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FTC의 권고안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밝혔다. FTC 안에 따르면 앞으로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관련 설정을 바꿀 때는 무조건 이용자 동의를 얻어야 한다. 또 앞으로 20년 동안 FTC의 정기 감사도 받아야 한다. 권고를 따르지 않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용자 계정 하나당 개선될 때까지 매일 1만6000달러(약 18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번 FTC의 권고는 페이스북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 뉴욕타임스는 “내년 기업공개(IPO)가 예상되는 페이스북에 이번 조치는 투자자의 불안을 누그러뜨리는 기회가 됐다”며 “현재 1000억 달러(약 114조6500억 원) 정도로 평가받는 페이스북의 가치가 급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일을 계기로 SNS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더 강력한 장벽(higher bar)’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현재 미국엔 SNS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적절한 연방법이 없다”며 “SNS 회사의 로비력이 커지면서 관련 법안이 의회 내에서 발목이 잡힌 상태”라고 전했다. 에릭 골드먼 샌타클래라대 법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 관련 회사들이 이용자의 사적인 영역을 얼마나 허술하게 다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과 중국의 다음 라운드는 ‘태양의 전쟁(Solar War)’이다.”(미 시사주간지 타임)미국과 중국이 태양열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사업 분야의 주도권을 놓고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21세기 최대 유망사업’으로 꼽히는 태양열 산업에서 수위를 다퉈온 양국 정부가 최근 상대국의 관련기업들에 제동을 걸면서 무역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먼저 공세를 편 건 미국 쪽이다. 미 상무부는 9일 “중국의 태양광전지 관련 수입품에 대한 덤핑 및 보조금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상무부에 따르면 2010년 중국이 미국에 수출한 태양광전지의 완제품 및 관련 부품의 가격은 미국 제품보다 30% 이상 싸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금지하는 정부보조금이나 덤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미국의 시각이다. 미국은 내년 5월 중순까지 중국 제품에 대한 전면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중국이 반격에 나서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 2주가 지난 25일 중국 상무부도 “미국의 재생에너지 지원 및 보조금 정책에 대한 무역장벽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상무부 측은 중국공사업연합회의 신고에 따른 일상적인 조치라고 밝혔으나, 타임은 “명백한 보복조치”라고 지적했다. 또 상무부가 조사 기한을 미국의 조사결과 발표 예정시기 직후인 내년 5월 25일로 잡은 것은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해석했다.중국과 미국이 태양열 산업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재생에너지 산업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최근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는 1870억 달러(약 214조3000억 원)로 화석에너지 1570억 달러를 앞질렀다”며 “재생에너지의 역전은 사상 처음”이라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특히 태양광전지 시장은 올해 463억 달러에서 2014년 960억 달러(약 110조 원)로 3년 안에 2배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일단 미 언론들은 중국의 대응에 내심 불편해하면서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분위기다. 수입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국내에서 제조하는 태양광전지의 부품 80% 이상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중국 기업으로선 미 정부가 관세라도 부과하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중국 재생에너지 내수시장은 자국기업이 대부분 점유하고 있어 미국을 비롯한 해외기업의 시장점유율이 10%도 채 안 된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미 기업이 받을 타격은 미미하다”고 평가했다.미국의 불안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FT는 “태양열제품 핵심재료인 실리콘의 시장가격이 올해 들어 갈수록 떨어졌는데 이는 인건비 비중이 낮은 중국에 큰 호재”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유럽과 중남미 시장 공략에 나선다면 미국으로선 경쟁이 쉽지 않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이회창 대표(당시 신한국당)의 장남 정연 씨는 179cm의 키에도 불구하고 원래 깡마른 체격으로 친구 사이에서 ‘비아프라’란 별명이 따라다닐 정도였다.” (1997년 7월 26일자 동아일보 A1면) 》비아프라(Biafra). 당시 정확한 뜻도 모른 채 무심코 넘겼던 이 단어에 담긴 아픈 역사가 26일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비아프라는 아프리카에서 ‘잠시’ 존재했던 국가다. 이곳을 이끌던 한 노(老)정객이 26일 숨을 거뒀다. 만 3년(1967년 5월∼1970년 1월)도 못 돼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라를 세상은 왜 아직도 기억할까. 뉴욕타임스는 “세월이 지나도 씻기지 않는 핏빛 비극, ‘비아프라의 눈물’이 화인(火印)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영국 런던에서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오두메구 오주쿠는 말 그대로 ‘은스푼을 물고’ 태어났다. 나이지리아 최고 거부였던 아버지를 둔 덕에 사치의 극을 맛봤다. 영국 유학 시절 옥스퍼드대 친구들은 그를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며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린 바람둥이”로 기억했다. 졸업 뒤 고국에 돌아온 오주쿠는 180도 변한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에 투신해 복무하며 동족 ‘이보(Ibo)족’의 현실을 깨닫게 됐다.당시 나이지리아는 주류인 하우사와 요루바, 이보 등 세 부족으로 구성된 나라였다. 인구 5700만 명 가운데 800만 정도였던 이보족은 정치적 종교적 불평등에 시달렸다. 특히 1960년대 이보족 지도자의 석연치 않은 암살이 잇따르자 불만은 더욱 커졌다. 타고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던 오주쿠는 자연스레 이보족의 중심에 섰다.결국 오주쿠가 이끈 이보족은 1967년 5월 30일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비아프라 공화국의 탄생이었다. 하우사족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막을 명분이 없었다. 게다가 남부 원유산업을 장악한 탄탄한 경제력은 외교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탄자니아와 잠비아, 가봉 등 주위 국가와 국교를 맺으며 국제사회의 승인도 얻어 나갔다.그러나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겨우 한 달 남짓 만에 하우사족이 침공을 결행했다. 전쟁 초기 대등했던 무게추는 ‘소련’이 개입하며 하우사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비아프라의 원유를 탐냈던 소련이 막대한 무기와 군비를 나이지리아에 지원한 것. 프랑스의 외교적 지지뿐이었던 비아프라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이후 1970년까지 비아프라는 지옥이었다. 사망 군인은 양측 합쳐 약 10만 명. 그런데 하우사족의 ‘봉쇄 궤멸 작전’ 아래 비아프라 국민은 극한의 배고픔에 허덕였다. 1년 사이 200만 명 이상이 아사(餓死)했다. 전체 민족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사라진 것이다. 이 가운데 50만 명은 7세 이하 어린이들. 심할 땐 하루 6000여 명이 죽어 나갔다. 당시 팔다리가 앙상한 채 배만 볼록 나온 비아프라 아이들의 사진은 ‘아프리카 가난’의 상징이 됐다. 비아프라는 결국 항복을 선언했고 1970년 1월 15일 나이지리아에 다시 흡수됐다.패전 뒤 강제 추방된 오주쿠는 영국 등을 떠돌며 세월을 보냈다. 가는 곳마다 이보족을 구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1990년대 수십 년 만에 나이지리아 정부의 해제로 귀국한 뒤엔 평생 이보족 빈민구제에 온몸을 투신했다. 아버지의 재산 역시 모두 쏟아 부었다. 오주쿠는 생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보족은 아프리카의 ‘이스라엘 민족’이다”라며 “고통과 억압의 길고 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 기적을 마주하리란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그곳엔 언제나 장이 섰다. 그것도 수백 년째. 동틀 무렵 몇 시간을 맨발로 걸어온 여인네들이 여명(黎明)을 등지고 모여든다. 온갖 야채와 먹거리를 한숨으로 머리에 짊어진 채. 평생 저잣거리에서 가족을 먹여 살려온 인생. 그곳 사람들은 그들을 ‘마마 마마(mama-mama·우리 엄마)’라 부른다. 영국 시사월간지 뉴인터내셔널리스트는 이달 호에서 척박한 삶의 끝자락에서 흔들리는 생존권을 놓고 싸우는 한 여성단체 ‘마마 마마’를 소개했다. 원래 마마 마마는 오세아니아 뉴기니 섬 서부의 원주민 여성 노점상들을 일컫는 말. 정부의 탄압과 사회의 무신경에 맞선 수백 명의 여성은 자신들이 줄곧 불리던 이름 그대로 조직을 만들었다. 사실 이곳 원주민 ‘파푸안’은 오랜 세월 갖은 억압에 시달려왔다. 식민지 시절 영국의 지배를 받던 섬 동부는 1975년 파푸아뉴기니로 독립한 반면, 네덜란드가 점유하던 서부는 1945년 네덜란드가 물러나며 인도네시아 땅(웨스트파푸아 주 자야푸라 시)이 됐다. 원주민의 처지에선 지배 세력의 피부 색깔만 바뀐 셈. 당시 고착된 사회구조 탓에 원주민 대다수는 여전히 극빈층에서 허덕인다. 특히 원주민 여성들은 질긴 악습의 사슬에 시달린다. 극단적 남성 우월주의 아래 남편이 놀고먹는 동안 아내 홀로 가사와 생계를 책임진다. 가정폭력도 다반사고, 딸들은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다. 마마 마마가 자리 잡은 자야푸라 중앙시장도 날품팔이로 푼돈이나마 벌어야 했던 원주민 여성들이 세대를 거쳐 모여든 ‘눈물의 터전’이다. 평생 희생밖에 몰랐던 삶. 그러나 주정부의 시행령 하나가 마지막 인내심을 끊어 놓았다. 올해 초 도시개발을 이유로 수백 년 이어진 노점시장을 도시 바깥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것. 인적도 드문 외곽으로의 이동은 마마 마마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결국 그들은 ‘저항’을 선택했다. 조직을 꾸렸다지만 마마 마마의 싸움은 별다른 게 없다. 장사하던 자리에서 그저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주정부는 급수를 끊고 화장실을 없앴다.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고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공무방해죄로 벌써 100명이 넘는 여성이 끌려갔다. 돌파구는 쉽게 열리지 않고 있다. 가족을 위해 싸우는데 원주민 남성들은 딱히 도우려 하질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 장사 밑천을 사채로 마련해 시장이 막힌 동안 불어난 빚도 족쇄가 됐다. 마마 마마의 일원인 마그다라 씨는 “마지막까지 버티자 다짐했지만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며 “세상에 우리 처지를 알려 도움을 얻는 데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33년간 예멘을 통치해온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23일 권력 이양 합의문에 서명함에 따라 올해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에 이어 ‘재스민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네 번째 독재자가 물러나게 됐다. 그러나 다양한 정치적 변수가 도사린 예멘의 미래는 ‘햄릿의 중동 버전’(미국 CNN방송)이라 부를 만큼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예멘발(發) 햄릿은 어떤 결과를 맞을까. 》① 튀니지 방식?(완전한 정권교체)걸프협력이사회(GCC)의 합의문이 효력을 발휘한다면 권력을 위임받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부통령이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해 90일 만에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민주적 절차에 따른 새 정권을 맞이할 수 있다. 이미 1500여 명이나 목숨을 잃었지만 그래도 대규모 내전 없이 권력의 완전한 교체가 가능한 것이다.현재 이 시나리오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GCC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외부 세계다. 유엔 역시 반기문 사무총장이 합의 직전 살레 대통령과 통화하며 교감을 나눈 사실을 알리면서 적극 후원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신병 치료를 내세웠지만 살레 대통령이 사실상 ‘망명’에 가까운 미국 뉴욕행을 선택해 미국 역시 살레 일가 처벌을 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그러나 이번 합의문이 예멘 국민의 정서와 큰 격차를 보인다는 데 불씨가 남아있다. 합의문이 발표된 직후 수도 사나의 ‘변화의 광장’에선 환호성이나 축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② 이집트 방식?(기존 권력이 온존한 상태에서 점진적 민주화)영국 BBC방송은 “합의 이후 사나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시위대 수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독재시절부터 이번 시위 과정에 이르기까지 숨진 이들의 가족과 동료들이 희생자의 사진을 들고 나와 ‘살레 처단’을 외치고 있다. 살레 대통령이 물러나도 기득권 세력이 권력의 핵심에 그대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 이집트와 엇비슷하다.CNN방송은 ‘살레 대통령이 합의 당시 왜 흐뭇한 미소를 지었는가’를 분석했다. 1978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는 초등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중동의 여우’란 별명답게 교묘한 정치적 술수를 갖춘 인물이다. 1994년 내전을 비롯해 남부 분리 독립운동 등 끊임없는 위기에 시달리면서도 포섭과 회유로 권력을 유지해왔다. 올해 시위사태도 내내 숱한 말 바꾸기로 전세를 뒤집으려 시도했다. 이 때문에 이번 합의에서 면책특권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 숨겨 놓은 막대한 자금까지 유지하게 된 그로선 현 상황만 잦아들면 내심 권력 회복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암울한 경제 상황이 향후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예멘은 2300만 명이 넘는 인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하루 2달러도 벌지 못하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살레 정권을 지원한 사우디의 지원마저 끊기면 경제적 회복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1994년 내전 이래 분규가 끊이지 않는 땅에서 ‘배고픔’은 소요의 또 다른 기름이 될 수 있다.③ 리비아 방식?(내전 충돌)이번 합의의 가장 큰 불안요소는 정부군과 첩보국을 장악하고 있는 살레 대통령의 아들과 조카의 지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특히 장남 아메드 알리 압둘라 살레가 이끄는 정예부대 공화국수비대는 반정부군을 이끄는 최대 야권세력인 알아마르 가문의 알리 모흐신 알아마르 소장이 지휘하는 제1기갑사단과 시위 기간 내내 여러 차례 충돌했다.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합의문 발표가 있던 당일에도 두 세력은 예멘 북쪽에서 교전을 벌였다. 알아마르 가문은 합의에 대한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이번 합의 과정에서 배제된 것에 내심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위기그룹(ICG)의 롱리 앨리 중동전문 수석연구원은 “예멘 군부 내 살레 대통령의 영향력이 여전한 데다 알아마르 가문이 야심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며 내전 가능성을 시사했다.명목상 정권을 승계한 하디 부통령도 불안요소다. 군인 출신으로 국방장관 등을 지내며 군사적 공로는 상당하나 정치적 수완은 검증된 적이 없다. 게다가 AP통신은 “남아 있는 정치권 세력으로선 선택의 폭이 좁아 대선에서 하디 부통령을 새로운 임기 2년 대통령으로 밀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경우 친(親)살레 성향의 그를 야권이나 시민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대로 개혁 의지를 내비치면 자신의 정치기반인 살레 대통령 측과 등을 지게 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24일 사나에서는 살레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해 최소 5명이 숨지고 34명이 부상당했다. 이를 계기로 시위대가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무장 세력까지 수도 전역에 출현하고 있다고 현지인들은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집트 반(反)군부 시위가 갈수록 격렬해지자 군 최고위원회(SCAF)가 대통령 선거를 앞당겨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군 최고위는 또 야권조직 무슬림형제단과 만난 자리에서 신임 총리로 무슬림형제단과 가까운 관계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엘바라데이 전 사무총장이 최근 사태를 ‘학살’이라고 비난하며 시위대를 지지하고 있어 총리직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SCAF 사령관인 무함마드 탄타위 전 국방장관은 23일 현지 TV를 통해 “대선을 내년 7월 이전에 실시하겠다”며 “총선도 예정대로 28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군부는 당초 2013년 대선을 치른 뒤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밝혔으나 반발이 커지자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즉각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카이로의 시민들은 “탄타위 사령관은 믿을 수 없으니 당장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22일 타흐리르 광장에 수십만 명이 모인 데 이어 23일에는 알렉산드리아 등 전국으로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시위현장 근처에서 9개월 된 아기가 최루가스에 질식사하는 등 인명피해가 늘어나 최소 30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은 이제 세계를 이끄는 ‘우월 국가’가 아니다.” 미국이 오랫동안 자긍심처럼 여겨왔던 ‘예외주의’를 미국인조차 믿지 않게 됐다고 뉴욕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예외주의란 19세기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언젠가 세계의 운명을 떠안을 ‘예외적 위치’에 있다”고 설파한 데서 유래됐다. 이후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국가’의 위치에 있음을 나타내는 용어로 통용돼 왔다. 미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 결과 ‘미국은 완벽하진 않지만 타국보다 문화적 우위에 있다’란 논제에 응답자의 49%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46%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문화적 우월감을 묻는 이 질문에 대한 미국인들의 동의율은 이 여론조사가 처음 실시된 2002년 약 60%에서 2007년 55%로 낮아졌고, 올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문화적 우월주의에 대한 반감은 젊은 세대에서 더 두드러졌다. ‘미국 최고’에 찬성한 응답자는 50대 이상에서는 여전히 약 60%였지만, 18세 이상∼30세 이하에선 37%였다. 젊은층만 놓고 보면 “우리 문화가 최고다”고 응답한 비율이 독일(45%)이나 스페인(44%)보다 낮다. 뉴욕타임스는 “예외주의에 대한 회의론은 줄곧 징후를 보여 왔다”고 전했다. 지난달 시사주간 타임의 설문에선 약 71%가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지위는 갈수록 격하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달 초 NBC뉴스 조사에서도 ‘미국이 더는 세계를 이끄는 국가가 아닌 시대에 들어섰다’는 문항에 대다수가 찬성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간만에 집에서 점심을 차린 A 씨는 식탁 모니터에 뜬 화면을 보고 싱긋이 웃었다. 완성된 요리 사진이 그새 자동으로 페이스북에 올라가 친구들이 ‘맛있겠다’며 줄줄이 댓글을 달았기 때문. 마침 슈퍼마켓에서 배달이 왔다. 아침에 다 마셔 버린 우유를 냉장고가 알아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이다. 식사를 마치니 자기 대신 출근시킨 로봇으로부터 일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연락도 왔다. 느긋해진 A 씨는 대기권에서 우주를 감상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나 타볼까 싶어 애인에게 영상전화를 걸었다. 가격이나 위치를 모르지만 자동차가 스스로 검색해 찾아줄 것이므로 걱정 없이 차에 올랐다. 황당하게 들리지만 SF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요즘 지구촌에서 가장 ‘핫(hot)’한 최고급 두뇌들이 실현 가능성을 믿고 연구에 매진하는 아이템들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3일 “구글의 비밀연구소 ‘구글X’가 꿈의 프로젝트를 은밀히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구글X는 단순히 ‘재미 삼아’ 운영하는 연구소가 아니다.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깊이 관여하고 있고, 또 다른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올해 4월까지 출퇴근을 여기로 했다. 세계적인 인공지능 전문가 세바스천 스런 스탠퍼드대 교수, 휴먼컴퓨터 권위자인 조니 청 리 박사 등 관련 분야 거물도 즐비하다. 이들의 연구는 구글 임원들도 자세히 모를 정도로 극비에 속한다.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 소재 구글 본사 인근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연구소의 연간 예산 및 인력 규모도 베일에 가려 있다. 연구소가 세워진 지 꽤 됐고 ‘상상을 뛰어넘는 아이디어 100’을 뽑아 연구 중이라는 정도만 외부로 공개됐다. 대부분 초기 기획 단계지만 몇몇은 성사 직전이며, 그중 하나는 올해 안에 완성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다. 스런 교수가 지휘하는 이 프로젝트는 이미 시험운전도 마쳤다는 소문이 나온다. 구글이 협력업체를 선정해 자동차를 직접 양산하는 방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주들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라고 한다. 황당무계한 짓에 헛돈 쓰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뉴욕 채권거래회사 BGC파트너스 콜린 길스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은 ‘매우 구글답다’고 반응하면서도 구글이 역점 사업을 등한시할까 걱정한다”고 전했다. 질 헤이젤베이커 구글 대변인은 “미래사업 투자는 구글 DNA의 본질이지만 비용은 전체 사업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으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존 에드거 후버(1895∼1972·사진)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1924년 FBI 전신인 수사국 시절부터 48년간 FBI 국장을 지낸 막강한 권력자였다. 하지만 그의 이름 뒤엔 항상 ‘5가지 소문’이 따라다녔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가 내년 사망 40주기를 맞는 그에 대한 소문의 진위를 추적해 14일 소개했다.○ 후버는 동성애자다맞을 가능성이 높다. 1993년 한 영국 작가의 “자주 게이 섹스파티를 즐겼다”는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클라이드 톨슨 FBI 부국장과의 ‘묘한’ 관계는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평생 독신이던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둘이서 점심을 먹었고, 휴가도 함께 갔다. 심지어 자주 똑같은 옷을 입었다. 후버는 유산도 톨슨에게 남겼다. 다만 후버와 절친했던 여배우 도로시 래머는 그와의 육체관계에 대해 “부정하진 않겠다”고 말해 양성애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후버의 기밀파일이 대통령들을 옥죄었다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후버가 모신 6명의 대통령 가운데 프랭클린 루스벨트, 린든 존슨 대통령은 그와 막역한 친구였다. 그러나 나머지 4명은 공공연히 후버의 ‘기밀파일’을 두려워했다. 그 파일엔 미국인만 43만2000명이 포함됐다고 알려진다. 거부 록펠러 가문을 비롯해 앨버트 아인슈타인, 메릴린 먼로 등 전 분야의 인물을 망라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줄곧 그를 내쫓을 궁리를 했지만, 시카고 마피아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도청해 증거로 잡고 있던 후버를 끝내 손대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후버는 징집도 회피한 겁쟁이였다아니다. 그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법무부에서 대체복무를 한 건 맞다. 정신병에 걸린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돌볼 사람이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버는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군에 가고 싶어 장교교육을 받기도 했다. 또 법무부에서 전장만큼 위험했던 마피아나 테러리스트 소탕작전에 자주 참여했다.○ 후버는 사실 흑인이다흑인의 피가 섞였을 개연성이 크다. 흑인 여성작가 밀리 맥기 씨는 2000년 에세이에서 “나와 후버의 증조부는 버지니아 출신 흑인 사촌”이라고 밝혔다. 후버 측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후버는 국장 재직 시절, 자주 반(反)유색인종적 태도로 문제가 됐다. 차별이 존재하던 시절 출신 이력이 더욱 그를 몰아세웠을 수도 있다.○ 후버는 FBI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물론 그렇다. 막강 권력을 휘두르며 공직자를 협박하고 시민권을 억누른 과오는 절대 씻길 수 없다. 그러나 FBI를 비롯한 미 정보수사력의 성장은 그로 인해 가능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이는 생후 13개월 때 원인 모를 병을 앓고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부모는 아들이 일반인처럼 용기 있고 독립적인 인생을 살길 원했다. 소년으로 성장한 아이는 그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원망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대신 예민해진 청각을 더욱 갈고닦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리를 통해 주위를 감지하는 법을 터득했다. 귀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미국 CNN방송은 귀로 눈을 대신하는 사물 인식 방법을 개발한 시각장애인 대니얼 키시 씨의 삶을 10일 소개했다. 그는 소리가 인근 사물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음파를 감지해 사물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박쥐가 초음파를 발산해 주변을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키시 씨는 이를 ‘인간 반향 위치측정(human echolocation)’이라고 불렀다.키시 씨는 이를 카메라 앞에서 직접 시연했다. CNN 취재진을 따라 항구에 나간 그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입 속 혀를 튕겨 ‘딱딱’ 소리를 냈다. 그런 후 마법처럼 부둣가 기둥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느 쪽에 배가 정박했는지를 알아냈다. 심지어 50피트(약 15.24m)나 떨어진 보트도 정확히 맞혔다. 그는 “사실 부딪혀 나오는 소리로 정확한 거리나 상태를 맞히긴 어렵다”며 “여기가 바닷가이고 소리에서 딱딱한 금속성 반응이 느껴져 배가 아닐까 짐작했다”고 말했다. 반향되는 소리를 통해 대략적인 거리나 재질, 크기 등을 파악한 뒤 경험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입체적인 사물을 그려낸다는 설명이다.키시 씨는 이 능력이 자신만 가진 독특한 재주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는 “인간의 뇌도 박쥐와 같은 능력을 가졌으나 눈이 발달하며 퇴화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훈련만 거듭하면 어떤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실제로 그는 2000년부터 ‘시각장애인의 세상과 접촉하기(World Access for the Blind·WAB)’란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시각장애 아동 500여 명에게 반향 위치측정을 가르쳤다. WAB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성과를 얻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시각장애인과 관련된 1300여 개 단체와 접촉했으나 그의 주장에 관심을 보인 곳은 10곳뿐이었다. 과학자들 역시 인간이 소리를 통해 사물을 감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관심을 끌고 싶어 쇼를 벌이는 괴짜라고 폄하하는 시각도 있었다.하지만 키시 씨는 결코 주저앉을 맘이 없다. 지난달 팝테크 콘퍼런스에서 자신의 반향 위치측정을 소개할 기회를 얻은 게 그에겐 큰 힘이 됐다. 팝테크는 존 스컬리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 등이 모여 만든 비영리 연구단체. 해마다 10월 ‘세상을 바꾸리라 기대되는 아이디어’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갖는데, 키시 씨는 올해 초대됐다. 그는 “내 방식이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하지만 세상과 소통하고픈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개선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애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에는 한계가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다짐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동영상=소리로 앞을 보는 美 시각장애인}
멕시코 갱단, 비판 글 올린 30대 살해보복범행 피해 4명으로 늘어재스민 혁명을 촉발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정부마저 조롱하던 해커 단체도 그들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멕시코에선 마약갱단이 SNS보다 강하다. 미국 지역신문 ‘휴스턴 크로니클’은 10일 “멕시코 동북부 국경도시 누에보라레도에서 갱단의 활동을 SNS에 폭로해온 35세 남성이 참수된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9월 같은 도시의 보행자 다리에서 시신 2구가 발견된 이후 벌써 3번째다. 9월 25일 39세 여성까지 포함하면 SNS 관련 희생자는 4명으로 늘었다. 세 사건은 모두 마약 카르텔 ‘세타스’의 소행으로 이번에도 ‘SNS에 글을 올리지 말란 뜻을 이해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실명과 신분을 감추고 활동했지만 갱단은 이들을 찾아내 보복을 자행한 것이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해킹해 유명해진 해커단체 ‘어나니머스’도 갱단엔 백기를 들었다. 2주 전쯤 멕시코 SNS에서 어나니머스 멤버를 자처한 한 이용자가 “세타스의 컴퓨터를 해킹했다”며 “SNS 이용자들을 괴롭히는 그들의 신상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갱단이 “공개 즉시 시민들을 무차별 처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자 며칠 뒤 어나니머스는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포기하겠다”며 물러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中정부 “직접 취재한 글만 올려라” ▼‘기자 영구추방’ 규정 신설중국이 내년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대대적 여론 통제에 나섰다. 첫 번째 목표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의 숨통을 죄는 것이다. 알리바바와 바이두(百度) 등 39개 주요 인터넷 사업자 대표들은 인터넷 관리를 위해 올해 설립한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3일에서 5일까지 연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 시책에 맞춰 인터넷상의 유해정보를 차단하기로 했다.인터넷판공실은 사업자들에게 인터넷을 ‘긍정적인 공간’으로 가꾸기 위해 루머나 음란물, 사이버 사기, 유해정보의 유통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유해정보’의 구체적인 범위와 성격이 명확하지 않아 정부나 사회에 비판적인 내용을 각 사업자들이 알아서 걸러달라는 압박으로 풀이됐다. 특히 웨이보에서는 최고 지도부와 관련한 부정적 의견까지 여과 없이 나오고 있어 이번 조치를 통해 사실상 웨이보를 제한하려는 게 아니냐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부는 일반 언론매체에 대해서도 압박에 나서고 있다. 국무원 산하 신문출판총서는 10일 취재 및 보도 방법, 오보에 대한 책임 등을 담은 ‘허위보도 방지를 위한 규정’을 내놓았다.규정에 따르면 기자들은 비판적인 기사를 쓸 때 최소 2곳 이상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또 무조건 기사 관련 당사자를 직접 취재해 기사를 써야 한다. 사실이 아니거나 부정확한 기사를 쓰면 회사가 정정보도 및 사과를 해야 한다. 또 보도로 인한 결과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기자증을 5년간 회수하거나 언론계에서 영구히 추방하기로 했다. 해당 언론사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폐업 조치를 내릴 수 있다.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미국 10대들은 성인보다 SNS에서 불쾌한 경험을 더 많이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기존 통념과 달리 ‘SNS 세대’라고 불리는 청소년들이 성인보다 SNS의 부정적 측면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알려준다. 미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9일 청소년 799명과 성인 226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SNS를 즐기는 청소년 가운데 88%는 ‘비열하거나 잔혹한 행위’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이 중 29%는 “이런 기분 나쁜 경험이 자주 일어난다”고 대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18세 이상 성인들은 69%만이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SNS를 이용하는 동료들의 ‘친절과 예의’에 대해서도 10대들이 더 부정적이었다. 성인들의 약 85%가 “대체로 이용자들이 친절하다”고 답했고, 단지 5%만이 “예의가 없다”고 답했다. 반면 10대들은 69%만 “대체로 정중한 편”이라고 반응했다. ‘SNS에서 왕따(따돌림)를 당한 경험이 있는가’란 질문에도 성인(13%)보다 청소년(15%)의 경험이 더 많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네타냐후, 난 그를 참을 수가 없소. 그는 거짓말쟁이예요.”(니콜라 사르코지) “당신은 그가 넌더리나겠죠. 하지만 난 매일 그를 상대해야 한다고요.”(버락 오바마)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두고 벌인 ‘뒷담화’가 공개됐다. 8일 AP통신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3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 기자회견 뒤 따로 마련된 방에서 통역자만을 대동한 채 단독 면담을 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위해 차고 있던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르고 허심탄회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 이 마이크는 정상들의 발언을 자동 통역해 언론에 전달하는 장치여서 현장에 있던 일부 기자에게 그대로 흘러들어갔다. 약 3분간 공개된 대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 언질도 없이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에 찬성할 수 있느냐”고 원망하자, 사르코지 대통령이 응대하다가 네타냐후를 비난하고 나선 것. 프랑스 엘리제궁 측은 당시 기자들에게 ‘사고’에 대한 비공개를 요청했지만 한 프랑스 기자가 이를 인터넷매체에 귀띔하며 세간에 알려졌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김일성’ 등을 출간하며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연구의 권위자로 손꼽혔던 로버트 스칼라피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사진)가 1일(현지 시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19년 캔자스 주에서 출생한 그는 1948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49년부터 50여 년간 버클리대 교수로 재직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연구하기 시작한 1세대 학자로 손꼽힌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인도 등 아시아의 정치 및 사회 변화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지켜본 것을 계기로 아시아의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43년부터 3년간 해군 장교로 복무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한 그는 지난해 출간한 회고록 ‘신동방견문록’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후 아시아는 내 인생이었다”고 밝혔다.그는 1978년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를 세운 뒤 1990년까지 소장을 맡으며 동아시아 전반에 대한 폭넓은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저서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와 ‘김일성’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심도 있게 다뤄 왔으며, ‘현대 일본정당과 정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미국과 아시아’ 등 아시아 문제를 파헤친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중국 베이징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한 경험도 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그의 대학원 제자였던 이정식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경희대 석좌교수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고려대 명예교수인 한승주 전 외무장관 등 많은 한국인 제자를 길러냈다. 특히 1959년 스칼라피노 교수가 미국 상원에 제출한 한국 관련 보고서는 학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당시 그는 보고서를 통해 군사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내다봤는데 불과 2년 만에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나중에 “가능성을 예측하긴 했지만 그렇게 빨리 일어날 줄 몰랐다”고 회고했다. 또 이 교수와 함께 쓴 1973년 작 ‘한국 공산주의운동사’는 한때 금기시됐던 김일성의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회고록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던 일화도 소개돼 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단순하고 전통적인 정치관을 지녔다는 첫인상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1973년 일본에서 망명 중인 김 전 대통령을 만났고, 이후 그의 구명활동을 위해 노력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1989년 첫 방문 뒤 모두 6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던 그는 “외부 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된 기이한 사회란 인상을 받았다”며 “통일이 이뤄지려면 반드시 북한 내부에서 대대적인 정치 경제적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1990년 정년퇴임한 뒤에도 버클리대 종신 명예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지난해 9월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버클리대는 2일 교수 일동 명의로 “그의 별세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조의를 표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국가 위해 무엇을…” 명연설 케네디에 영감 준 노트 발견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1961년 대통령 취임연설을 통해 남긴 명언이 그가 다녔던 고교 교장의 훈화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모교에서 발견됐다고 AP통신이 4일 보도했다. 코네티컷 주에 있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모교 초트 로즈메리홀은 그의 취임연설 중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는 유명한 문구에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이는 전 교장의 훈화 공책을 찾았다고 3일 밝혔다. 케네디 전 대통령이 학교를 다녔던 1930년대에 교장을 지낸 조지 세인트존 교장은 자신이 졸업한 하버드대 학장의 발언을 자주 인용해 훈화에 활용했다. 이 중 하나가 ‘모교를 사랑하는 젊은이라면 학교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가 아니라 내가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항상 물어볼 것이다’라는 문구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모교는 취임연설 수년 뒤 “케네디의 명언이 세인트존 교장의 훈화를 상기시킨다”는 한 졸업생의 주장이 나온 이후 40여 년간 학교 자료실을 뒤졌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었다.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 ‘위스키 고향’ 스코틀랜드서 무알코올 위스키 전세계 시판‘위스키의 고향’ 스코틀랜드에서 무알코올 위스키가 개발됐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4일 “위스키 제조회사 ‘스코티시 스피릿’이 다음 달 1일부터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위스키 ‘아케이(ArKay·사진)’를 전 세계에서 시판한다”고 전했다. 아케이는 영국 기준으로 병당 10파운드(약 1만8000원), 캔은 4파운드(약 7000원)에 판매된다. 제조사는 “아케이는 영미 주류 규정에 맞춰 만들었으며 향료 등을 이용해 위스키와 똑같은 맛을 냈다”며 “종교나 건강, 운전 등을 이유로 음주가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특히 아케이의 재료는 이슬람 율법이 금하는 것은 전혀 넣지 않은 ‘할랄(이슬람 법도에 맞는) 위스키’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위스키협회는 “위스키는 물과 맥아를 주 성분으로 해 자연친화적으로 만드는 술”이라며 “화학약품으로 맛을 조작한 아케이는 진정한 위스키라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협회 측은 아케이에 위스키란 이름을 달지 못하도록 할 법적 방안을 고려 중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러시아에서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소녀들이 병원 실수로 부모가 바뀌는 바람에 전혀 다른 종교를 가진 가정에서 자랐다. 뒤늦게 딸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은 아이를 맞바꾸는 대신 마당이 붙은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1일 미국 뉴욕타임스가 전한 기구한 스토리는 1999년 러시아의 소도시 코페이스크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시작됐다. 벨야예바와 이스칸데로바 씨 가족은 15분 간격으로 딸을 출산했다. 이후 12년 동안 각 가정에서 별 탈 없이 자란 두 소녀의 운명에 혼란이 찾아온 것은 올해 초. 벨야예바 씨 부부가 이혼하며 딸의 유전자 검사까지 실시하게 된 것이다. 평소 딸이 자신을 닮지 않았다며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온 남편이 양육비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친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경찰 수사 결과 12년 전 출생 직후 병원의 실수로 아기가 바뀐 사실이 밝혀졌다.진실을 알았지만 난관은 그때부터였다. 벨야예바 씨의 친딸은 이미 이슬람교도인 이스칸데로바 씨 집에서 무슬림으로 커버렸다. 실제론 이슬람 혈통인 아이는 러시아정교회의 독실한 신자로 자랐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에서 두 종교는 서로를 배척한다”며 “부모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정체성에 큰 상처를 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이들은 처음 사실을 접했을 당시엔 친부모와의 만남을 거부했다.꼬여버린 운명의 실타래를 푼 건 두 소녀였다. 어렵사리 성사된 만남에서 ‘동병상련’인 그들은 종교를 뛰어넘었다. 소녀들은 “보는 순간 상대의 눈에서 나와 같은 아픔을 봤어요. 그리고 우린 자매보다 소중한 친구가 됐죠”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태도에 감동한 부모들은 그들의 뜻을 반영해 바꾸지 않고 그대로 키우기로 결정했다.때마침 낭보도 날아왔다. 법원에서 병원 측 부주의를 인정하고 각 가정에 보상금 300만 루블(약 1억1000만 원)씩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것. 양가 부모들은 심사숙고 끝에 그 돈으로 마당이 붙은 집 두 채를 샀다. 두 소녀를 함께 키우자는 생각에서였다. 키운 자식과 낳은 자식을 둘 다 언제든 보려는 마음도 있었다.이교도 집안의 기묘한 동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소녀들은 친해졌지만 여전히 생부모에겐 거리를 두고 있다. 게다가 부모들도 내심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딸들이 ‘불합리한’ 종교의 신도로 크길 바라지 않는다. 이리나의 어머니 율리야 씨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종교) 선택권을 주자고 합의하긴 했지만 더 큰 혼란을 겪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사상 최악의 기근에 허덕이는 소말리아 난민촌에 전쟁의 화마까지 덮쳤다. 케냐군은 소말리아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반군과 해적들이 케냐 해안까지 넘어와 피해를 끼치자 최근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본격 군사작전에 나섰다. 그런데 반군의 근거지가 난민촌들과 지척이어서 폭격 와중에 난민촌에서까지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기근으로 인한 배고픔과 우기(雨期)까지 겹친 난민들로선 ‘지옥의 끝’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AFP통신은 10월 31일 “2주 전부터 케냐 전투기들의 공격이 반군단체 알샤바브의 핵심 거점인 소말리아 남부 질립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케냐 정부는 “우기여서 지상군의 진격이 어려워 공습 위주로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지금까지 반군 1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발표했다. 케냐의 소말리아 내 반군 공격은 지난달 중순 셰이크 샤리프 아흐마드 소말리아 과도정부 대통령이 라일라 오딩가 케냐 총리의 공습 승인 요구를 받아들이며 시작됐다. 시사주간 타임은 “폭격으로 애꿎은 난민 사상자가 발생하는 역효과가 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경 없는 의사회(MSF)’에 따르면 31일 하루에만 질립 지역 난민촌에서 5명이 숨지고 45명이 다쳤으며 이들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케냐 측은 무고한 소말리아 난민 피해에 대해 ‘반군의 거짓 선전’이라고 부정했지만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민간인 피해가 우려돼 왔다. 질립 반군 거점이기도 하지만, 난민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인근에만 소말리아 난민 약 320만 명이 산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31일 케냐가 공격했다는 반군기지는 난민촌과 500m도 떨어지지 않은 지척에 있다. 뉴욕타임스는 “케냐군이 해외에서 작전을 벌이는 게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클 것이란 지적이 많았다”며 “나쁜 날씨 속에서 정교하게 공습하는 건 첨단 무기를 갖춘 군대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우기로 인해 노숙이나 면하기 위해 지었던 움막이 비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과탐 샤테르지 MSF 현지팀장은 “움막을 손볼 여력도 없거니와 공습을 피해 난민촌을 옮기려 해도 비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무력 충돌이 본격화되면서 서방세계의 난민 구호활동도 난관에 봉착했다. 이번 전쟁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케냐는 지난달 초 알샤바브가 조종하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케냐 해안에 침입해 서구 관광객을 납치 살해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자 반군 소탕을 선포했다. 반군 규모는 최소 2500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케냐는 지금까지 약 3000명의 병력을 투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