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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북서쪽 바게가 마을에 사는 네 살배기 우마르 (가명)군은 지난여름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 부모는 아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실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양실조로 돌리기에는 실명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졌다. 주민들은 ‘신의 저주’인 전염병 창궐을 의심했다. 그러나 진찰 결과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건 ‘납중독’이었다.나이지리아 정부는 28일 “바게가 마을이 있는 잠파라 주에서 어린이 2000여 명이 심각한 납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발표된 수치는 5세 이하 유아에 한정된 것이다. 10대나 성인을 포함하면 납중독 환자는 몇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에 따르면 올해 들어 나이지리아 어린이 400여 명이 이미 납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AFP통신은 “전염병을 무색하게 하는 대규모 납중독은 이 지역에서 활개치고 있는 불법 채굴 때문”이라고 전했다. 잠파라 주는 지하광물 매장량이 많은 곳으로, 특히 금과 화학공업용으로 가치 높은 탄탈룸이 풍부하다. 최근 몇 년 새 세계적으로 금값이 치솟자 허가를 받지 않은 금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서방 세계의 금값 폭등이 아프리카 시골 어린이들의 시력을 앗아가는 비극을 빚은 것이다.불법 채굴업자들의 마구잡이식 환경 파괴는 주민들의 생명과 직결된다. 현지 언론 ‘나이지리아 트리뷴’에 따르면 채굴업자들은 금 등을 추출한 뒤 남은 광석을 불법으로 인근 산하에 내다버렸다. 버려진 광석엔 납이 대량으로 함유돼 있었고, 이는 대부분 식수나 농업용수로 쓰이는 강물로 흘러들어갔다. 납중독은 물이나 음식을 통해 신체로 들어갈 경우 소화기관이나 뇌 등에 이상을 일으키는 피해가 훨씬 크다.특히 안타까운 것은 납중독이 면역체계가 덜 형성된 아이들에게 더 치명적이고 피해도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인보다 어린이 피해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납중독은 한번 발생하면 치료가 쉽지 않다. 최근 잠파라를 방문한 HRW의 제인 코언 연구원은 “회복되더라도 다시 오염지역으로 돌아가면 아무 소용도 없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한 업체가 ‘국경없는 의사회’와 함께 잠파라 지역 정화사업을 벌였지만, 현재는 자금난으로 이마저도 중단된 상태다. 현지 일간지 ‘데일리타임스 나이지리아’는 “납중독에 대한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조사를 발표한 나시루 트사페 정부 긴급사태대응팀장은 “예산이 빠듯해 서방세계의 도움이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데일리타임스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정부는 불법 채굴업자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 불법 금광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지금까지 기소된 사례가 단 1건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경찰은 “산이란 산은 모두 파헤쳐 놓았는데 붙잡을 증거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노했다.어린이 납중독은 최근 중국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됐다. 지난달 상하이(上海)에서 납 생산 및 가공기업 인근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이 집단 납중독에 걸렸다. 상하이 환경보호국이 9월 푸둥(浦東) 캉차오(康橋) 진에 사는 어린이 1115명을 대상으로 혈액을 검사한 결과 32명에게서 혈중 납 농도가 허용 기준치를 초과했다. 납중독 어린이 가운데 15명이 입원치료를 받았고 17명은 통원치료를 받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가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망을 공식 발표한 뒤 수도 트리폴리 시내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앞서 카다피 체포 소식이 리비아 국영방송을 통해 알려졌을 때부터 시내에선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고 시민들이 공중에 총을 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신은 위대하다”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미국 CNN방송은 “카다피의 사망이 공식 발표된 뒤 계속해서 시내로 몰려나오는 인파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NTC 공식 깃발을 휘두르면서 함성과 노래를 이어갔고, 곳곳에선 카다피가 통치하던 시절 리비아 국기를 찢거나 불태우는 퍼포먼스도 벌였다.반군이 첫 거점으로 삼았던 동부도시 벵가지나 수르트, 바니왈리드 등도 몰려나온 시민들이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차량에 올라타 공중으로 축포를 쏘아대고, 환호성을 터뜨리는 소리가 도시 가득 울려 퍼졌다.자유 리비아TV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위원장이 곧 대국민 연설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카다피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수르트와 바니왈리드, 트리폴리 등에서는 축포와 함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리비아인들은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한편 수르트에서는 NTC가 공식 함락을 선포한 뒤에도 산발적인 친카다피 세력의 반격이 이어졌다. 이날 새벽 100여 명의 병사가 차량 40대에 나눠 타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내 곳곳에선 NTC의 삼색 깃발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반군과 시민이 훨씬 많았다. 한 NTC 병사는 “리비아는 동쪽부터 서쪽까지 전국이 자유로워졌다”고 기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생포 또는 체포작전 도중 다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리비아 내전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올해 초만 해도 리비아를 42년간 통치한 절대 권력자 카다피가 초라한 신세로 권력을 잃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1969년 27세에 친(親)서방 성향의 왕정을 무혈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권좌에 오른 육군 대위 카다피는 당시엔 혁명가의 면모가 강했다. 전 세계에서 최장수 국가원수 자리를 지켜온 카다피는 아랍민족주의자였던 전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를 ‘롤 모델’로 삼아 자유장교단을 결성했다. 권력을 잡은 카다피는 1977년에는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하고 독특한 형태의 ‘인민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며 의회제도와 헌법을 폐기하고 전제 권력을 휘둘렀다. 이는 부족 간 알력이 극심했던 리비아를 하나로 묶는 데 적절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아랍의 나폴레옹’(카다피 평전)을 꿈꿨던 그의 야심은 극심한 중앙집권적 철권통치로 처음부터 삐걱댔다. 석유를 비롯한 주요 산업의 국유화는 자신의 수족만 배불리는 부패로 이어졌다. 인근 이집트 튀니지 등과 ‘대이슬람 연맹’ 구축을 꾀했지만 미국 등과 사이만 나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카다피가 통치한 지난 40여 년간 리비아는 각종 테러는 물론이고 반미(反美) 무장단체 지원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악명이 높았다. 1985년 이탈리아 로마와 오스트리아 빈의 동시 테러와 1986년 독일 베를린 나이트클럽 폭발을 주도했다. 특히 1988년에는 영국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270명이 탑승한 미국 팬암기를 폭파시켜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중동의 미친 개”라는 비난까지 듣기도 했다.2003년에는 팬암기 사건 유족에게 보상을 약속하는가 하면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하며 서방과의 ‘화해 무드’에 돌입했으나 리비아와 국제사회 사이의 갈등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또 2009년에는 스코틀랜드 자치정부가 리비아 유전 개발과 관련한 영국 기업의 로비설에 휩싸인 채 팬암기 폭파 사건 피의자를 석방해 미국이 이에 반발하기도 했다. 아랍권마저 부담스러워했던 냉혈한 독재자는 기이한 사생활이 드러나며 점점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각인돼 갔다. 피격을 겁내 1층 숙소만 고집했으며, 해외에선 건물이 무너질까 봐 텐트를 치고 생활했다.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만났을 땐 계속 파리채를 휘둘러 댔는가 하면, 2009년 유엔에서는 할당된 연설시간 15분을 넘기고 1시간 반 동안 “나는 왕 중의 왕” 같은 황당 발언을 하기도 했다. 미모의 미혼여성으로 구성된 ‘아마조네스 경호대’를 항상 동반했으며, 여성 편력도 꽤 심했다.카다피가 두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7남 1녀 역시 아버지의 비호 아래 달콤한 권력을 맛봤다.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39)은 카다피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국가적 주요 대외업무를 담당했다. 지난해 10월 리비아 구치소에 억류됐던 한국인 선교사의 석방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그는 아버지와 달리 ‘협상 가능한’ 이미지를 구축하며 차기 지도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축구선수였던 삼남 알사디(38)는 국가축구협회를 이끌며 리비아를 대표하는 스포츠 외교관으로 행세했다.리비아 올림픽위원장인 장남 무함마드(41)는 전면에 나서진 않았으나 우편 및 통신위원회 등 굵직한 이권을 장악해왔다. 국가안보보좌관이던 4남 무타심(37)과 정보기관에서 활동했던 5남 한니발(36), ‘카미스 여단’을 이끌던 막내 카미스(29) 모두 막강한 실세였다. 5월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6남 사이프 알아랍은 외국에서 주로 생활했고, 딸 아예샤(33)는 병원 등을 운영해 비교적 권력과 거리를 뒀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재스민 혁명의 열풍 속에 동토(凍土)의 나라 리비아에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지 8개월 5일 만이다.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는 20일 “NTC가 카다피의 최후 거점인 수르트(카다피의 고향)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카다피가 목숨을 잃었다”며 “혁명의 물결 속에 그가 운명적인 최후를 맞이했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다”고 밝혔다. 압델 하페즈 고가 NTC 대변인은 “리비아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며 “독재자의 전제정치가 드디어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고가 대변인은 “교전 상황에서 심각하게 다친 카다피를 생포했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며 “현장 지휘관이 NTC에 그의 사망을 공식 보고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카다피 시신은 NTC군에 의해 수르트에서 인근 미스라타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AFP통신은 “카다피가 생포된 뒤 이송되는 상황에서 사망한 건지 현장에서 사살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전했다. NTC는 공식 발표에 앞서 “카다피군 최후 거점인 수르트를 점령했으며, 양 다리를 심각하게 다친 카다피도 생포했다”고 발표했다. AFP통신은 “NTC 측이 찍은 동영상과 휴대전화 사진을 보면 카다피를 둘러싸고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카다피가 미동이 없어 당시 살아있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카다피는 체포 당시 카키색 군복과 터번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양 다리를 다쳐 피범벅 상태였다. 카다피는 공습과 교전을 피해 커다란 콘크리트파이프 속에 홀로 숨어있었으며, NTC 병사들이 “누구냐”고 묻자 처음엔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병사들이 발포하려고 하자 “쏘지 마, 쏘지 마”라며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고 AP통신은 전했다.리비아 국영방송이 카다피 체포 소식을 보도한 직후 트리폴리와 벵가지 시내에는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고 시민들이 공중에 총을 쏘며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미 CNN방송은 “카다피의 사망이 공식 발표된 뒤엔 더 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자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친카다피 성향의 알리비아TV는 “카다피가 생포됐다는 보도는 근거가 없으며 그는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NTC가 수르트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카다피의 최측근이던 압둘 파타 유니스 전 국방장관도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가 생산하는 차량에는 앞으로 운전자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이 장착된다. 미 CNN방송은 18일 “포드가 차량에 내장된 음성 활성화 기술 ‘싱크’에 문자메시지 음성변환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포드는 조만간 내놓을 2012년 신형모델 가운데 ‘레인저’를 제외한 모든 차량에 이 기능을 내장할 계획이다. 이전 모델이라도 싱크가 깔려있는 차량은 업그레이드만 받으면 이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이 기능을 켜두면 운전할 때 휴대전화로 문자가 오면 자동차 스피커를 통해 자동으로 문자가 읽힌다. 또 몇 가지 기본문장은 답신으로 보낼 수 있다. 이때도 손은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2009년 버지니아공대 교통연구소는 운전 도중 문자를 주고받으면 사고 확률이 23배 이상 증가한다고 밝혔다. CNN은 “블랙베리폰과 일부 안드로이드폰은 바로 이 기능을 쓸 수 있지만 아이폰은 불가능하다”며 “앞으로 다른 자동차회사와 휴대전화 업체들도 이 기능의 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샬리트 병장 돌아온 이스라엘이스라엘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 길라드 샬리트 병장(25)이 드디어 자유를 되찾았다. 2006년 6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인근 군 초소에서 근무하다가 무장정파 하마스 대원들에게 납치돼 많은 이스라엘 국민을 애타게 만들었던 샬리트 병장은 18일 그리던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포로로 붙잡힌 이스라엘 군인이 살아서 돌아온 것은 26년 만의 일이다.5년 4개월 동안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던 샬리트 병장의 귀환은 복잡한 절차를 통해 이뤄졌다. 이날 오전 일찍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라파 검문소를 통해 이집트 당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샬리트 병장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 사이에 있는 케렘 살롬 검문소를 넘어 이스라엘 땅을 밟았다. 그는 국경을 넘기 전 이집트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맞교환 소식을 일주일 전에 들었으나 혹시 막판에 문제라도 생기면 수년을 더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마스가 제공한 검은색 야구모자와 헐렁한 회색 셔츠를 걸친 샬리트 병장은 야위고 창백한 모습이었으나 미소를 띠었다. 그는 “이번 맞교환이 평화 증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샬리트 병장은 이후 헬기를 타고 텔아비브 남쪽에 위치한 텔노프 공군기지로 이동해 이스라엘 군복으로 갈아입고 가족 상봉을 했다. 총리 관저 앞 천막시위와 국토종단행진 등을 통해 아들의 송환을 애타게 촉구해온 아버지 노엄 샬리트 씨와 어머니 아비바 샬리트 씨는 아들을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피랍 병사 한 명을 살리기 위해 테러혐의 유죄 선고자를 다수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1027명을 풀어주는 이스라엘 정부의 ‘정치적 모험’에 대해 국민은 기쁨과 우려가 뒤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대 일간지 예디오트 아하로노트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포로 맞교환에 79%가 찬성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 석방이 이스라엘 안보를 위협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와 ‘아니다’가 각각 50%와 48%로 팽팽했다. 네타냐후 정부도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해 절제된 환영행사를 준비했다.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1차 477명 석방된 팔레스타인길라드 샬리트 병장과 맞교환돼 풀려난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이 18일 경유지인 이집트를 거쳐 가자지구로 들어오자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수감자들이 버스를 타고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라파 검문소를 통과할 즈음 검문소 옆 임시 텐트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은 환호성과 울음을 터뜨렸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하마스가 무장병력 1000여 명을 배치해 도착 직전까지 삼엄한 분위기였지만 가족들의 만남은 뜨거웠다”고 전했다. 이들과 함께 석방자들을 맞이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위대한 자유와 희생을 보여준 영웅들이 돌아왔다”고 반겼다.이날 1차로 돌아온 수감자는 약속한 석방 인원 1027명 가운데 여성 27명을 포함해 477명. 나머지도 두 달 내로 돌아올 예정이다. 여성 석방자 2명이 한때 이집트행을 요구해 일정이 약간 늦춰진 것 외에는 석방 과정은 별 탈 없이 끝났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향후 이들에게 직장 및 주택을 제공하는 등 극진한 대우를 약속했다.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지구엔 약 20만 명이 몰려나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수감자를 태운 버스가 시내로 들어오자 환영인파가 몰려들어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가자지구의 브리가데 공원엔 대형 무대가 마련돼 공식 환영행사도 열렸다. 귀환자 대표로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동창설 멤버였던 예흐야 신와르가 감사인사를 전하자 군중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는 “남몰래 눈물 흘리는 팔레스타인 어머니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번 석방자 명단에 10대 소년 병사들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청소년보호단체 DCI에 따르면 현재 이스라엘엔 12∼17세 청소년 164명이 수감돼 있다. 하산 유세프 하마스 최고지도자는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테러 혐의로 종신형 등을 받고 복역 중이던 장기복역수들을 우선 석방 리스트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슐로모 진 씨는 올해 초 큰 고민에 빠졌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포경수술을 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1000년 넘게 이어온 중국계 유대 후손으로 살아온 그가 갑작스레 이런 문제를 떠안은 까닭은 뭘까. 그건 그 수술이 진 씨가 이스라엘 정통 유대교로부터 ‘진짜 유대인’으로 공식 인정받는 마지막 관문인 할례였기 때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16일 “존재 여부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계 유대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과 유대교란 어울리지 않는 문화의 틈바구니에서 명맥만 유지해 왔던 이들의 자아 찾기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계 유대인의 기원은 9세기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크로드를 타고 건너와 당시 교역의 본산이던 허난(河南) 성 카이펑(開封)에 정착한 페르시아 유대인들이 시조다. 화교와 유대인은 ‘세상 어디서도 똘똘 뭉쳐 정착한다’는 평을 듣는 민족. 그 화교의 땅에서 유대인들도 한때는 번영을 이뤘다. 송나라 땐 높은 관직까지 배출하며 5000명이 넘는 세력을 이루고 살았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이들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너무 적응을 잘하다 보니 점점 유대 전통을 잃어간 게 화근이었다. 1809년 마지막 랍비가 세상을 떠나며 정신적 지주도 사라졌다. 20세기 공산정권의 도래는 더 큰 파도였다. 정부가 공인하는 5대 종교로도, 55개 소수민족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현재 카이펑에는 유대인 후손이 겨우 몇백 명만 남은 상태다. 이런 그들에게 손을 내민 건 시민단체 ‘샤베이(Shavei) 이스라엘’이었다.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 후손을 모아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활동을 벌이는 이 단체가 2005년 중국계 유대인과 접촉했다. 중국 정부의 등쌀 탓에 어렵사리 14명만 이스라엘로 넘어왔다. 진 씨는 바로 그때 건너온 후손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게 아니었다. 유대교 법정이 이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하질 않았다. 사실 말도 통하지 않는 데다 돼지고기를 즐기고 유월절도 지키지 않는 그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오랜 논란 끝에 법정은 “몇 년간의 교육과 회개 과정을 이수한 뒤 최후 문답에서 합격하면 인정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6년의 시간. 다행히 14명은 모두 관문을 통과했다. 그중 한명인 왕 야게 씨(31)는 곧 랍비(율법교사)로 임명받는다. 202년 만에 중국계 유대인 랍비가 부활하는 셈이다. 진 씨는 곧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할례까지 치렀건만 복잡한 절차 탓에 결국 이스라엘 시민권 획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진 씨는 “그 옛날 중국에 건너간 조상님은 유대교를 세상에 전파할 의무가 있었다”며 “어쩌면 내게도 다시 중국 유대교를 부흥시킬 사명이 부여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성난 새’가 스마트폰 게임의 전설로 등극하며 핀란드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다.”(로이터통신) ‘성난 새’란 모바일 게임인 ‘앵그리 버드(angry bird·사진)’다. 연두색 돼지들이 몰래 새들의 알을 훔쳐가자 잔뜩 화가 난 새가 나무와 벽돌 등에 숨은 돼지를 마구 공격해 복수를 한다. 이 간단한 내용이 전부인 게임을 개발한 ‘로비오 모바일’이 이르면 내년 기업공개(IPO)에 나서겠다고 16일 밝히자 AP통신 등 세계 언론이 앞다퉈 톱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회사의 시장가치에 대해서는 최소 10억 달러(약 1조1560억 원)가 넘을 것이란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2009년 12월 출시된 앵그리 버드는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폰 신드롬이 낳은 시대의 총아’다. 스마트폰의 매력은 이용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내려받아 설치하는 애플리케이션(앱)에 있다. 앵그리 버드 앱이 ‘대박’을 터뜨린 데에는 어린아이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게임 방법과 1달러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 주효했다. 로비오는 홈페이지에서 “지금까지 내려받기 횟수가 4억 건을 넘었으며,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56개국에서 앱 유료판매 누적 순위 1위에 올라 있다”고 밝혔다. 앵그리 버드의 출발은 차고에서 시작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성공 신화와 무척 닮았다. 2003년 핀란드 헬싱키기술대 재학생 3명은 10만 달러(약 1억1560만 원) 남짓한 돈을 겨우 마련해 게임프로그램 회사를 창업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고, 자금 압박에 하청업을 하기도 했다. 때를 기다리던 로비오에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였다. 특히 앵그리 버드 개발 초기, 정보기술(IT)엔 관심도 없던 한 경영진의 모친이 게임에 금방 빠져드는 걸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한마디로 ‘편하고 단순함’을 승부처로 삼은 게 성공의 비결이 됐다. 이제 앵그리 버드는 하나의 게임 앱을 넘어 새로운 문화산업으로 커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세계에서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시간을 합하면 매일 3억 분이 넘는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까지 팬을 자처하고 나섰다. 공식 티셔츠는 한 달에 100만 장씩 팔리고 있으며, 조만간 할리우드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중국엔 로비오의 허락도 없이 ‘앵그리 버드 테마파크’까지 세워졌을 정도다. 무엇보다 로비오의 성공에 기뻐하는 건 핀란드 국민들이다. 로이터통신은 “20여 년간 휴대전화 업계 1위 자리를 지켰던 노키아의 몰락으로 ‘유럽의 실리콘밸리’라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은 핀란드인들은 로비오가 그 자리를 대신해 주리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핀란드 국적 항공사 핀에어가 모든 항공기에 앵그리 버드를 그려 넣은 것도 이런 기대를 담은 것이다. 홈페이지에 앵그리 버드 소개란을 따로 만들기도 한 핀란드 정부는 “로비오의 사업 확장을 적극 돕는 한편 또 다른 유망 벤처사업 육성을 위해 총 6000만 유로(약 960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호주에서 국제 인신매매조직에 붙잡혀 성매매업소에서 일하게 된 한국인 여성을 구하려다 20대 현지 남성이 2년 8개월 전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호주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 등에 따르면 유대계 호주인 에이브러햄 파포 씨(당시 27세·사진)는 2009년 2월 멜버른의 한 아시아 여성 전문 성매매업소 인근에서 첸이라는 중국계 범죄조직원에게 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경찰은 “파포 씨가 갑자기 업소를 습격해 금품을 훔치려 했다”는 첸의 주장을 받아들여 그를 정당방위로 불기소 처분했다.이대로 묻힐 뻔했던 파포 씨의 사건은 그의 가족들이 무혐의를 주장하고 시드니모닝헤럴드와 호주 ABC방송 등이 사건추적 프로그램을 통해 심층 취재해 보도하면서 새롭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파포 씨 가족은 “당시 에이브러햄은 자신과 사귀던 여성이 위험에 처한 사실을 알고 구하기 위해서 업소를 찾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포 씨와 사귄 여성은 ‘케이티’라는 영어 이름을 쓰는 한국계 20대로 알려졌다. 파포 씨의 형 데이비드 씨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호주로 온 유학생인 것으로 안다”며 “에이브러햄이 집으로 데리고 와 몇 개월간 함께 지냈다”고 말했다.가족들의 진정으로 재조사에 착수한 경찰은 사건 당일 파포 씨가 케이티라는 여성과 통화하던 중 누군가 케이티의 전화를 가로챘고 케이티가 비명을 지르며 울었으며 어떤 남성이 파포 씨에게 “접근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현재까지 경찰이 밝혀낸 사실은 당시 애인의 신변이 걱정됐던 파포 씨가 통화 뒤 곧바로 업소로 달려갔고 이후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아직 정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나 여성을 구하려는 파포 씨를 성매매 조직에서 살해했을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재수사하고 있다”며 “케이티라는 여성의 신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신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파포 씨 가족은 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내는 데 힘을 기울이면서도 케이티의 생사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다. 파포 씨의 어머니 디나 씨는 “케이티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평소엔 단정하고 착한 여성일 뿐이었다”며 “지금 추측하건대 곤란에 빠졌던 그를 에이브러햄이 돌봐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현지에서는 파포 씨의 죽음 이면에 드리워진 호주의 암흑세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이 사건을 계기로 호주 내 한국인이나 중국인 유학생 등에게 사채를 빌려준 뒤 이를 볼모로 성매매업소로 팔아넘기는 범죄조직의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란이 미국 내 갱단을 이용해 주미 사우디아라비아대사를 살해하려 한 계획이 발각돼 가뜩이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로 치닫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11일 “주미 사우디아라비아대사를 살해하려는 이란 정부의 테러 음모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지난달 29일 용의자인 이란계 미국인 만수르 아르바브시아르(56)를 체포해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며 “함께 테러를 꾸민 이란 혁명수비대 내 특수부대인 ‘쿠드스’ 소속 골람 샤쿠리를 뒤쫓고 있다”고 말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텍사스 주에서 중고차 판매상으로 일하던 아르바브시아르는 5월부터 샤쿠리와 결탁해 테러를 추진했다. 멕시코 마약갱단 ‘로스 제타스’에게 150만 달러를 주고 주미 사우디대사의 암살을 청부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갱단에 잠입해있던 마약단속국(DEA) 요원에게 꼬리가 밟혔다. ‘쉐보레’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테러는 주미 사우디대사의 암살을 시작으로 주미 이스라엘대사관과 주아르헨티나 사우디대사관을 잇달아 공격하는 시나리오로 짜여 있었다. 미 행정부는 즉각 이란 정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총력 조사를 지시한 뒤 사우디 대사에게 위로전화를 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란의 행위가 도를 넘었다”며 해외 자국민에게 이란 테러 경계령을 발동했다. 미 재무부는 사건에 관련된 이란인 5명에 대해 재산 동결 등의 제재 조치를 내렸다. 미국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이번 사건을 정식 회부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반면 무함마드 카자이 유엔 주재 이란대사는 “미국의 억지 주장에 분노를 느낀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이란 정부는 유엔에 “이번 조작은 전쟁 도발과 맞먹는 비열한 행위”라는 내용의 공식서한을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요인 암살을 갱단 손에 맡기는 수법은 기존 중동 스타일과 다르다”며 “테러 기도는 확실하나 이란 연계설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에서 20대 여성이 만삭의 몸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뛴 뒤 곧바로 아이를 출산해 화제다. 미 ABC방송은 10일 “임신 39주차였던 앰버 밀러 씨(27)가 10일 세계 5대 마라톤대회로 꼽히는 시카고마라톤에 참가해 6시간 반 만에 완주했다”고 보도했다. 달리기 도중 산기(産氣)를 느낀 그는 마라톤을 마친 뒤 인근 센트럴뒤파제 병원으로 이동해 둘째 딸을 낳았다. 병원 측은 “아이와 산모 모두 건강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의 ‘임신부 마라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평생 여덟 차례 완주 가운데 세 번을 임신 상태로 달렸다. 밀러 씨는 “담당의사도 무리하지만 않으면 적당한 달리기는 괜찮다고 말했다”며 “남편이 옆에 있어서 반 정도만 달리고 이후엔 가볍게 걸었다”고 말했다. 밀러 씨의 평소 완주 기록은 3시간 반 안팎이다. 하지만 병원 측은 임신부에게 마라톤 같은 강도 높은 운동이 적절한 건 아니라고 경고했다. 자크 모리츠 박사는 “밀러 씨를 체크해본 결과 심폐기능이 일반인보다 엄청나게 뛰어난 특별한 케이스”라며 “그렇다 해도 산모가 숨이 차서 헐떡이면 배 속 아이도 산소가 모자라 힘들어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0일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를 마지막으로 올해 노벨상 선정도 끝났다. 그러나 올해도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공동 수상자 중 한 명이 이미 세상을 떠난 사실을 모른 채 발표한 생리의학상, 잘못된 전화번호를 갖고 있어서 수상 소식을 제때 통보하지 못한 물리학상 등 행정력의 엉성함을 드러냈다. 수상자 사전 유출설도 나왔다. 시사주간지 타임 모바일판은 9일 “노벨상 논란은 해마다 반복되는 문제로 올해도 별다를 게 없었을 뿐”이라며 ‘가장 반발이 컸던 역대 노벨상 수상자 10명’을 선정했다. 가장 비난이 컸던 분야는 평화상이다. 논란 ‘톱 10’ 가운데 7명이 평화상 수상자다. 미국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은 정부의 무기 개발에 참여한 전력과 옛 소련 정부와 친밀했던 행보에도 불구하고 화학상(1954년)과 평화상(1962년)을 받았다. 세계 각지의 전쟁과 요인 암살에 개입했던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1973년), 1994년 공동 수상한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수상도 두고두고 논란거리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케냐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2004년)는 “에이즈는 서구 과학자들이 아프리카를 말살시키려 개발했다”라고 주장한 이력이 있다. 1945년 유엔 창설에 기여한 공로로 평화상을 받은 코델 헐 전 미 국무장관은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950명을 나치에 돌려보내 숨지게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존인물로 유명한 존 내시 박사(1994년 경제학상)는 공공연한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자궁경부암 발병 원인을 발견해 2008년 생리의학상을 받은 독일의 하랄트 추어하우젠 박사는 함께 관련 백신을 개발하던 제약회사가 노벨상 스폰서로 드러나 문제가 됐다. 1945년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알렉산더 플레밍은 19세기에 이미 존재 사실이 밝혀졌던 페니실린을 그가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놓고 지금도 말이 많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마피아들은 의적(義賊)이라 자처한다. 하지만 그들의 허상을 파헤치는 우리의 임무야말로 진실로 의로운 일이다.’ ‘마피아의 본산지’인 이탈리아 남서쪽의 시칠리아 섬에 있는 파르티니코시의 한 방송사 벽에 걸려 있는 문구다. ‘텔레자토’란 이 방송사는 자그마한 ‘동네 방송국’이지만 마피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지역에서 당당히 마피아의 범죄와 맞서는 용기로 감동을 주고 있다. 영국 BBC방송이 8일 소개한 텔레자토는 변변한 간판도 없고 스튜디오에는 카메라 한 대만 달랑 있다. 설립자인 피노 마니아치 씨와 가족, 자원봉사자를 합쳐 전체 직원은 10명이 채 안 된다. 하지만 1999년 첫 방송을 시작한 텔레자토는 개국 12년 만에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언론이 됐다. 대형 방송사도 꺼리는 마피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2시간 방송하는 프로그램은 마피아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내보낸다. 마피아 정보원들의 이름도 실명으로 내보낸다. 보복이 두려워 마피아 정보원 이름을 이니셜로만 처리해 오던 이탈리아 언론 관행을 깬 것이다. 평범한 동네주민이던 마니아치 씨가 목숨을 건 진실 알리기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칠리아 섬에서 마피아는 수십 년째 신처럼 군림해 왔다”며 “어린아이마저 그들을 의적처럼 받드는 현실이 안타까워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개국 초기만 해도 방송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취재를 요청해도 경찰이 콧방귀도 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텔레자토는 조그만 사건 현장도 직접 찾아다니며 마피아의 실상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그래 봤자”라며 등 돌리던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다. 이젠 경찰보다 먼저 정보를 얻을 때도 있다. 리포터로 일하는 마니아치 씨의 딸 레티치아 씨는 “CNN방송도 마피아 관련 화면이나 소식은 우리에게 요청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크다. 처음엔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마피아도 점차 보복 위협의 강도를 높여 가고 있다. 방송차량 타이어가 찢기거나 협박편지가 날아드는 일이 잦아지더니 최근엔 마니아치 씨의 승용차가 폭발하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마니아치 씨는 “스태프 전원이 가족들에 대한 마피아의 공격을 걱정하고 있지만, 모두가 여기서 멈출 순 없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며 “우리는 여전히 작고 영세한 방송이지만 시칠리아는 마피아의 땅일 뿐이란 세상의 선입견을 없애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이새드(iSad), 아이헤븐(iHeaven).’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디지털 혁명의 아이콘’을 추모하는 디지털 애도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애플이 출시한 아이패드(iPad)나 아이폰(iPhone)에 빗대 슬픔을 나타낸 ‘아이새드’와 천국에서 편히 쉬길 기원하는 ‘아이헤븐’ 등의 신조어도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추모 글이나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메시지가 폭주하며 접속 차단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트위터에선 사용자 폭주로 글을 올릴 수 없을 때 화면에 뜨는 그림인 ‘실패 고래(Fail Whale)’를 두고 “새들에 둘러싸여 하늘로 올라가는 거대한 고래가 마치 잡스를 보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잡스가 6월 애플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공개한 클라우드서비스(인터넷에 연결해 콘텐츠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서비스)인 ‘아이클라우드(iCloud)’를 두고 “구름(cloud) 위로 떠나간 잡스의 미래를 예언한 듯하다”는 글도 올라왔다. 25일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될 예정으로 알려진 잡스 전기도 인터넷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잡스가 생전 자신의 유일한 공식 전기로 인정한 데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헨리 키신저, 벤저민 프랭클린 등의 전기를 집필했던 월터 아이잭슨 전 타임 편집장이 2년 넘게 잡스와 주위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공을 들였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오프라인 추모도 잡스에게 어울리는 독특함이 묻어났다.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샌프란시스코의 돌로레스 공원 풍경이 대표적이다. SNS에서 누군가 플래시몹을 제안하자 순식간에 20∼30명의 시민이 모여들었다. 손엔 꽃이나 촛불 대신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들려 있었다. 화면엔 애플 홈페이지에 실린 잡스의 사진이나 디지털 촛불이 띄워져 있었으며, 잔잔한 배경음악을 틀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애도의 물결이 넘실대는 것에 비해 막상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본사 앞에 별도의 추모공간은 마련되지 않았으며, 대형 방송차량은 수십 대가 몰려들었지만 정작 추모객은 50여 명만 모여 명복을 빌고 있다. 회사를 나서는 애플 직원들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으나 추모 장소에는 동참하지 않았으며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주 팰러앨토 시에 있는 잡스의 집 역시 조용했다. 잡스의 유작(遺作)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그는 와병 중에도 회의에 참석하면서 수많은 프로젝트에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가 끝내 이루지 못한 프로젝트는 ‘아이폰5’ ‘아이패드3’ 등 업그레이드 제품과 애플TV, 게임콘솔 등 업계에서 소문처럼 돌고 있는 비공개 프로젝트다. 잡스의 유작 가운데 가장 먼저 선보일 것으로 보이는 아이폰5는 잡스가 직접 개발 작업에 참여했다. 최근 아마존이 199달러짜리 저가 태블릿PC인 킨들파이어를 내놓으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태블릿PC시장에서 아이패드3가 잡스의 명성을 이어갈지도 관심이다. 잡스는 애플TV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했다. 2007년 비슷한 제품을 내놓았다가 실패를 봤던 잡스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쿠퍼티노=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소말리아 해적들이 국제사회의 해양감시가 강화되자 선박 납치 대신 아프리카 동부 해변 리조트를 급습해 관광객을 납치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케냐의 유명 휴양지에서 영국인 여성을 납치했던 소말리아 해적이 1일 새벽 또다시 프랑스 여성 1명을 납치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상선 경계가 갈수록 삼엄해지자 해적들이 다소 손쉬운 부유층 관광객들로 납치 목표를 바꾸고 있다”고 경고했다. 사건이 일어난 건 이날 오전 3시경 소말리아 국경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케냐의 만다 섬. 7∼10명이 탄 쾌속정 한 대가 방갈로를 습격한 뒤 마리 드디외 씨(66)를 납치해 달아났다. 케냐 해군이 추격에 나서 해상 총격전이 벌였으나 해적들은 도주했다. 만다 섬은 9월 11일 소말리아 해적이 영국인 데이비드 테버트 씨(57)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 주디스 씨를 납치한 라무 섬 바로 옆에 있다. 두 섬은 영화배우 주드 로와 시에나 밀러, 캐롤라인 모나코 공주의 별장이 있을 정도로 인기 높은 휴양지다. 영국 가디언은 “부유한 관광객이 많은 데다 상대적으로 안전엔 소홀한 지역이라 해적들에겐 더없는 먹잇감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해적들은 특별한 제재 없이 섬까지 왔고, 도망갈 때도 소말리아 해역에 거의 다다라서야 잠깐 제재를 받은 게 전부다. 조지 세이토티 케냐 내무장관은 “소말리아의 친 알카에다 이슬람 무장세력인 ‘샤바브’가 사건의 배후”라고 지목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영향력을 지닌 샤바브가 테러자금 조달을 위해 관광객 납치를 지시했다는 설명이다. 케냐의 해변 휴양지 주변 해역의 경비실태가 부실한 것과 관련해 영국 텔레그래프는 “케냐 군부와 경찰엔 해적과 내통한 부패 세력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9월 25일 미국 일리노이 주 블루밍턴 시에서 한 30대 여성이 살인미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공중화장실에서 아기를 출산한 뒤 홀로 도망치던 중이었다. 사소해 보이는 이 사건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신생아 유기는 미국 대도시에서 걸핏하면 발생하는데 왜 미국 사회가 유독 이번 일에 주목하는 걸까.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특별한’ 이유는 일리노이 주에선 신생아 유기가 지난 1년여간 아예 없었기 때문”이라며 “일리노이가 신생아 유기가 거의 사라진 지역이 되기까지는 한 평범한 여성의 10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시카고 시에 사는 던 게라스 씨는 11년 전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발견한 조그만 기사 하나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앨라배마의 10대 소녀가 출산 직후 버린 신생아가 목숨이 위태롭다는 기사였다. 친구들과 자선모임을 꾸리고 있던 게라스 씨는 곧바로 이 아기를 돕는 기금 모금에 나섰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에서 버려지는 신생아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신생아 유기는 언론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 흔한 사건이었어요. 길거리와 공중화장실, 심지어 환경미화원이 쓰레기통에서 아기를 발견하기도 했죠. 그렇게 버려지는 애들은 사망률도 높았습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몇 달간의 조사 끝에 게라스 씨는 유기 신생아 관리 시스템이 문제란 걸 발견했다. 당시 일리노이 주법은 10대 출산이 아니면 주정부에서 아기를 맡아주지 않았다. 10대라 해도 아기를 위탁시설에 맡기려면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게라스 씨는 “신생아를 유기하는 가장 큰 원인은 산모가 자신의 출산을 숨기고 싶은 심리”라며 “주위 시선과 복잡한 절차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면 아기들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주정부와 경찰, 시민단체를 돌며 법개정 운동에 나섰다. 처음에는 대다수 관계자들이 난색을 표명했다. ‘아기를 버리는 부모에게 면죄부를 쥐여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게라스 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책임을 따지기 전에 아기를 살리는 게 먼저다. 사건이 일어나면 당신들 집 앞에 아기의 관을 짜 갖다놓겠다”며 밀어붙였다. 결국 1년여의 노력 끝에 일리노이 주는 2001년 ‘유기 신생아 보호법’을 신설했다. 주 산하 경찰서와 소방서, 병원은 30세 이하 여성이 생후 60일 이전 아기를 맡기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야 한다. 산모의 신원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아기의 미래를 위해 위탁기구를 거치지 않고 곧장 입양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추가 조치도 마련했다. 게라스 씨는 한발 더 나아갔다. ‘유기아동 보호재단’을 창설해 주정부가 맡은 유기아동들을 돌보고 입양된 아이가 잘 크는지도 지속적으로 점검했다. 켄들 말로위 주 아동국 대변인은 “우리 주에서 10년간 발생한 신생아 유기 사건은 63건으로 미국에서 가장 적다”며 “한 시민의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게라스 씨는 “아직도 멀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63건만 발생한 게 아니라 63건이나 일어난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63명 중 30명의 아기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지지 않았다면 예쁘게 자라났을 생명들이 말이죠. 결국 이렇게 1년 만에 버려진 아기가 또 나왔고요. 일리노이만이 아니라 전국이 유기 신생아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 때까지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음악 산업의 상징이던 깁슨 기타가 새롭게 ‘정치’란 코드를 연주했다.”(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밥 딜런, 존 레넌 등이 애용하던 미국의 유명 기타 브랜드 ‘깁슨’이 미국 정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경기침체 해법과 기업에 대한 규제 등을 놓고 오랜 공방을 벌여왔던 민주당과 공화당의 싸움에 깁슨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것.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7일 “지난달 24일 연방정부의 깁슨 본사 수색이 사건의 발단”이라고 전했다. 당시 테네시 주 내슈빌 제조공장을 급습한 법무부 요원들은 나무로 만든 기타 부품을 대량 압수했다. 인도와 마다가스카르에서 수입한 목재들이 ‘레이시법(Lacey Act)’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1900년 제정된 레이시법은 해외에서 들여오는 목재나 어류, 야생생물 등은 미국은 물론 수입국의 적합한 환경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법무부는 “이 목재들이 비정상적 방법으로 벌목됐다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평범한 수입품 수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회에서 일자리창출법안을 발표하던 8일 정치 이슈로 비화됐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이 자리에 헨리 저스키위츠 깁슨 최고경영자(CEO)를 대동하고 나타난 것. 베이너 의장은 “깁슨은 종업원 수천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존경받는 기업”이라며 “이번 수사는 과도한 기업규제가 미 경제를 어떻게 망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역설했다. 공화당 보수 유권자 단체 티파티는 다음 달 내슈빌에서 대규모 깁슨 지지 모임을 갖겠다며 지원에 나섰다. 의회 내 상업 및 제조·무역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메리 보노 맥 의원(공화)은 “정부가 건실한 기업을 돕는 쪽으로 법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무리한 적용만 일삼는다”고 비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진보적 성향의 팝스타들이 즐겨 쓰던 깁슨이 보수 세력이 펼치는 정치 공세의 상징이 됐다”고 평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환경론자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얼 블루메나워 의원(민주)은 “레이시법은 2008년 양당 합의로 현실에 맞게 손본 훌륭한 법”이라며 “수입품의 환경기준 준수가 국내 경제에도 이익이란 건 공화당도 아는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환경단체인 EIA의 앤드리아 존슨 대표도 “문제의 핵심은 불법 벌목된 목재가 국내로 수입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비이성적인 정치 쟁점화는 필요치 않다”고 지적했다. 사태가 예상외로 확산되자 깁슨 측은 당황하는 눈치다. 저스키위츠 CEO는 “깁슨은 공화 민주 어느 편도 아니고, 법 개정을 주장한 적도 없다”며 “단지 우리는 성실히 법을 지켰단 사실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수사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치판이 먼저 결론짓고 앞서 나가는 건 적절치 않다”고 충고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중세 영국에는 ‘스타 체임버(Star Chamber)’라는 사법기관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특별형사재판소쯤 되는데, 근사한 이름과 달리 피고인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변호인이나 배심원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권력을 휘두른 탓이다. 서구에선 요즘도 불공정한 결정을 내리는 법원이나 정부위원회 등을 조롱할 때 이 말을 쓰곤 한다. 최근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스타 체임버’ 논란에 휩싸였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알려진 문건 때문이다. FBI의 감시대상자 명단에 오른 용의자에 대한 대응요령을 담은 이 문서엔 ‘정부당국의 조사에서 테러 혐의를 벗은 인물일지라도 FBI는 감시대상자 명단에 올려둘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FBI 자체 판단에 따라 ‘잠재적 용의자’로 간주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문서에 따르면 감시대상자가 되면 상당한 불편이 뒤따른다. 공항이나 항구에서 ‘특별 수색’을 받고, 경찰의 불심검문 대상에도 오른다. 치안당국은 이들의 행보를 주기적으로 체크해 FBI에 보고한다. 문서에는 “용의자가 이런 대우를 받는 이유가 감시대상자 명단에 올랐기 때문인 걸 알지 못하게 주의하라”라는 지침도 있다. 자신도 모르게 감시받는 이 같은 ‘비밀주의’에 인권단체들은 특히 분노하고 있다. FBI는 과민 반응이란 입장이다. 티머시 힐리 테러감시센터장은 “당장 법망은 피했더라도 이후 테러와 연관된 인물이었던 사례가 여러 차례 있다”며 “감시대상자는 정교한 확인을 통해 거르고 걸러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당국이 모두의 안전을 위해 지켜보는 정도도 못하느냐는 찬성론도 있다. 9·11테러 이래 미국은 끊임없이 테러 위협에 시달려왔다. 정보당국이 국가 안보를 우선시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 명단의 맹점은 분명히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법치국가는 무죄추정주의가 원칙이다. 인권은 둘째 치고 정부기관이 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건 국가 이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특히 미국은 인권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나라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탄생한 배경 중에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인권과 법치주의 원칙을 일부 희생시킬 수 있다는 강경 철학을 밀어붙인 조지 W 부시 정권에 지친 미국인들의 선택도 작용했다. 민주주의와 스타 체임버는 양립하기 어렵다.정양환 국제부 ray@donga.com}
“현 정부의 긴축정책 이후, 은행 빚에 허덕이던 우리 가족은 끝내 집을 빼앗겼습니다. 태어나 줄곧 살았던 보금자리를 말이죠. 서민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나라가 과연 복지국가일까요? 영국이 꿈꾸던 복지는 보수당 정권 아래 무너지고 있습니다.” 연단에 올라선 소년은 연거푸 침을 삼켰다. 빌린 게 분명한 큰 양복 탓에 체구도 왜소해 보였다. 하지만 수줍던 떨림은 거기서 끝이었다. 연설이 시작되자 그의 힘찬 말투는 막힘이 없었다. 눈은 반짝였고, 그의 손짓 하나에 청중은 탄성을 쏟아냈다. 겨우 3분 남짓. 영국 정치계의 새로운 스타, ‘레이버 보이(Labour boy·노동당 소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6일 리버풀에서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펼친 16세 고교생 로리 윌 군의 연설에 영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BBC뉴스는 “10대 소년이 에드 밀리밴드 당수를 제치고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전했다. 벌써부터 베팅업체들은 긴급 설문조사를 한 뒤 “윌 군이 2040년 노동당 당수에 이어 총리가 될 확률이 50분의 1”이란 전망까지 내놓았다. 일개 10대 소년에 이토록 열광하는 건 그가 영국의 현실을 정확히 꼬집었기 때문이다. 긴축정책과 대학수업료 인상 등으로 폭동까지 일어났지만 여전히 미온적인 정부의 대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윌 군은 “현 정부의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됐다면 난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가 올린 과도한 수업료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나 같은 학생에게 총리는 뭐라고 조언할 것이냐”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긴축정책이 눈앞의 재정 안정은 가져올진 몰라도 결국 계층 및 세대 간 통합을 저해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가디언은 “평범한 행색의 소년이 서민의 울분을 속 시원히 대변했다”고 분석했다. 영국 정계의 독특한 전례 또한 한몫했다. ‘토리 보이(Tory boy·보수당 소년)의 21세기 버전’이 등장했다는 기대다. 1977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도 16세 소년이 연설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바 있다. 평당원이나 평범한 시민에게 전당대회 연설의 기회를 주는 것이 영국 정치의 전통이다. 당시 마거릿 대처 총리 앞에서 당당히 반전을 외쳤던 그는 ‘토리 보이’라 불리며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다. 바로 보수당 당수까지 지냈던 윌리엄 헤이그 현 외교장관이다. 영국 정치평론 웹진 폴리틱스는 “부잣집 도련님 티가 났던 토리 보이가 추상적 포부를 펼쳤다면, 레이버 보이는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며 뜨거운 정열을 쏟아냈다”고 비교했다. 윌 군은 남동부의 소도시 메이드스톤에서 청소원으로 일하는 홀어머니, 8세 여동생과 함께 산다. 사교육을 받을 처지가 아니지만 성적은 상위권이다. 그는 연설을 끝낸 뒤 인터뷰에서 “지난해 처음 정치에 관심이 생겨 노동당에 입당했다”며 “또래들이 현 정부에 얼마나 실망하고 화가 나 있는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작은 거인’ 10명을 미국 CNN방송이 22일 ‘올해의 인물 10’으로 선정해 발표했다. CNN이 소개한 인물들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원망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인생을 바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올해로 5년째 ‘소리 없는 영웅’을 소개하고 있는 CNN은 이날 홈페이지에 공개한 10명 가운데 누리꾼 투표를 거쳐 12월 11일 올해의 인물 최종 1인을 뽑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