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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당초 21일로 예상됐던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늦출 것으로 보인다. 대국민 설득 및 홍보 기간을 거친 뒤 국회에 개헌안을 발의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6월 개헌을 위한 ‘데드라인’이 임박하면서 개헌을 둘러싼 힘겨루기와 여론전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8일 “개헌안 발의가 21일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대통령 개헌안을 확정짓는 과정인 상황이다. 그 후 ‘우리의 개헌안은 이겁니다’ 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2일부터 베트남과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뒤 27일 귀국할 예정이다. 순방 출발 전인 20일 또는 21일 대통령 개헌안을 확정해 발표한 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논의를 거쳐 개헌안을 국회에 발의하려는 계획이다. 당초 청와대에선 6·13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해 21일까지는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대통령 개헌안 발의로 국회를 압박하면서 4월 28일인 국회 개헌안 발의 시한까지 한 달간 여야 개헌안 합의를 유도한다는 구상에서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6월 개헌 합의, 10월 국민투표’ 방안을 들고 나오는 등 개헌 시기와 총리 선출권을 놓고 여야 간 논란이 확산되면서 우선 개헌안에 대한 공론화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발의는 최대한 넉넉하게 잡았던 일정”이라며 “대통령 개헌안 발의 시기를 늦추는 대신 국회 숙의 기간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이 개헌안을 내면 20일 이상 기간을 공고하고, 국회는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도록 돼 있다. 대통령 개헌안은 쟁점 4, 5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대통령 개헌안이 확정되면 이를 발표한 뒤 국회를 방문해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헌안 발의를 26일로 늦춰달라고 청와대에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우 원내대표는 “(개헌 절차를 감안할 때 무리 없는)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위한 마지막 데드라인은 26일”이라며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를 야당이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지만 마지막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당은 개헌에 대해 아무런 말씀이 없다가 느닷없이 6월까지 개헌안을 합의하자고 하는데, 이는 국민의 요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로 대단히 실망”이라며 “지금 한국당이나 다른 야당들이 이야기하는 총리 선출 방식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야권은 “청와대는 개헌에서 손을 떼라”며 공세를 이어갔다. 한국당 정태옥 대변인은 18일 논평을 내고 청와대가 국민 여론을 근거로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선호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여론은 신기루와 같다. 질문 방식이나 뉘앙스에 따라 얼마든지 조사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대통령이 국방과 외교는 물론이고 공기업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의 대통령제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 또한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 역시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에서 나온 개헌안은 국민이 바라는 권력 축소형이 아니라 임기 연장형 개헌”이라며 “청개구리식 반응”이라고 비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박성진·홍정수 기자}
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던 이석연 전 법제처장(사진)이 18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 전 처장 영입 의사를 밝힌 지 3일 만이다. 이 전 처장은 이날 홍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불출마 의사를 밝히고 양해를 구했다. 이 전 처장은 통화를 마치고 “대표님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한 점 애석하게 생각한다. 매천 황현 선생의 외침이 뇌리를 스치고 있다. ‘난작인간식자인’(難作人間識字人·지식인으로서 사람 노릇하기 참으로 어렵구나)”이라는 문자메시지를 홍 대표에게 보냈다. 이 전 처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서울시장 선거의 승산을 계산해 내린 결정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홍 대표는 이 전 처장에게 “당이 어렵다. 후보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의 서울시장 출마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이 전 처장의 불출마로 한국당은 초반 서울시장 선거구도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앞서 홍 대표가 영입하려던 홍정욱 전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아직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병준 국민대 명예 교수 등의 서울시장 영입 카드가 살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안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홍 대표가 최근 “안철수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오면 한참 떨어지는 3등일 것”이라고 한 데 대해 “제가 출마할까 봐 무섭다는 발언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을 묻자 “당분간 인재영입에 집중해 결과를 보여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당에서는 첫 여성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이날 서울 영등포구 꿈이룸학교에서 서울시장 출마선언식을 갖고 박원순 시장을 겨냥해 “서울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성추행 의혹으로 민주당 복당 여부가 불투명해진 정봉주 전 의원도 이날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정 전 의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전진한다. 회군할 일 없다. 정봉주는 대의와 명분이 있다면 감옥이 아니라 지옥이라도 쫓아간다”며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내비쳤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박성진·홍정수 기자}
“아니다.” “모른다.” “조작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77)은 14일 오전 9시 50분부터 15일 오전 6시경까지 약 20시간 동안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세 마디를 주로 반복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측근들의 진술은 “허위 진술”이라며 피해 갔고, 보고서 등 자료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16일 한동훈 3차장검사 등 수사팀과 함께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이 전 대통령의 조사 내용을 포함한 종합 수사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문 총장은 19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사전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문 총장은 15일 퇴근길에 기자들에게 “충실히 살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 300억 원+차명재산 α 통합 관리 정황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부장검사 송경호)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이 전 대통령의 처남인 고 김재정 씨와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 이영배 금강 대표 등 이 전 대통령의 자금관리인들이 다스 비자금 300억 원 외에 각종 차명재산을 통합 관리해온 정황을 파악했다. 이들은 영포빌딩 사무실에서 차명재산을 관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차명재산 중 일부가 2007년 대선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자금, 서울 논현동 사저 조경비용 등으로 사용된 정황도 확인했다. 검찰이 파악한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에는 공시지가 100억 원대의 경기 부천 공장을 포함해 충북 옥천의 토지,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상가 등 수백억 원에 달한다. 이 전 대통령의 조카인 김동혁 씨 명의로 돼 있는 상가 등에 대해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측이 “명의를 넘기라고 요구했다”는 진술도 받았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차명재산을 사적으로 쓴 정황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도 확보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차명재산은 없다”며 차명재산과 관련한 10여 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 혐의는 부인, 사실관계 일부만 인정 이 전 대통령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몇 가지 혐의와 관련된 사실관계는 일부 인정했다. 2011년 10월 미국 순방을 앞두고 김희중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50)으로부터 전달받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10만 달러(약 1억 원)를 받은 사실에 대해선 “나랏일에 썼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도 사용처는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큰형인 다스 이상은 회장 명의의 도곡동 땅 매각대금 150억 원 중 67억 원을 논현동 사저 건축대금 등으로 사용한 사실도 인정했다. 다만 그는 “형으로부터 빌린 돈이고 차용증이나 이자를 지급한 적은 없다”고 답변했다. 삼성의 미국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은 “‘에이킨검프’가 무료로 다스 소송을 도와주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소유인 영포빌딩 지하 2층에서 발견된 소송비 대납 관련 청와대 문건에 대해선 “보고받은 사실이 없고, 조작된 문서로 보인다”는 주장을 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뇌물수수 혐의에 연루된 김백준 전 대통령총무기획관(78·구속 기소), 김 전 실장, 김주성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71) 등 측근과 관련자들의 진술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처벌을 경감하기 위한 허위 진술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 190쪽 분량 조서 2, 3회 검토 이 전 대통령은 14일 오전 9시 50분부터 오후 11시 55분경까지 검사와 질의응답식의 조사를 받은 뒤 190쪽에 달하는 피의자 신문조서 열람에 들어갔다. 이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과 함께 신문조서를 꼼꼼하게 검토했고 일부 진술 내용은 이 전 대통령의 요청대로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대한 조서를 2, 3회 검토한 뒤 이 전 대통령은 15일 오전 6시 25분경 검찰 청사를 빠져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은 지난해 3월 120쪽의 조서를 검토했다. 오전 6시 33분경 논현동 자택에 도착한 이 전 대통령은 측근들과 30분 정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잘 받았다. 잘 대처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김효재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66)이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검찰이) 정중히 예우를 갖춰 잘 대했다. 변호인들도 고생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김윤수·홍정수 기자}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12일 개헌 자문안을 확정하고 1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문 대통령은 국회 상황을 보면서 20일 전까지는 자문안을 토대로 개헌안을 확정해 발의할 예정이다. 자문안에는 기본권, 지방분권 등 핵심 이슈가 담겼지만 이 중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권력 구조다. 정해구 자문특위 위원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중점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야의 시각차는 여전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7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열린 ‘개헌을 말하다’ 포럼에서도 그랬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은 “국회에서의 총리 선출은 명백한 내각제여서 반대한다”고 했고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이번 개헌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하자는 것”이라고 맞섰다. 과거 개헌 과정에서 집권세력이 권력 구조를 바꿔 장기 집권을 도모한 적이 있어서 권력 구조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과 의심은 그만큼 깊다. 가령 여당의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해 한국당 윤재옥 원내수석부대표는 “장기 집권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놓고 민주당은 “한국당이 의회 권력을 잡아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속내”라고 의심한다.○ 총리 임명 주체 놓고 대립 여당은 대통령 직선에 대한 국민들의 애착이 크기 때문에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게 옳다고 본다.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 소속의 한 민주당 의원은 “여권 입장에서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과 대통령제는 타협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실질적인 권력 분점이 이뤄지지 않는 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을 수 없다고 반박한다. 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4년 중임제는 절대 반지를 쌍으로 만들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한국당은 외치(外治)는 대통령, 내치는 총리가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6일 국회 헌정특위 전체회의에서 “국회가 총리를 임명해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회의 국무총리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내각책임제로 보고 있다. 특히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내치와 외치의 개념이 애매하고, 대통령과 총리 간 권한이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최인호 의원은 “자유무역협정(FTA) 이슈가 내치인지 외치인지,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국방 혹은 경제 문제인지 구분이 잘 안 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은 국무총리의 내각 통할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거나 국회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상대적으로 한국당의 분권형 대통령제에 가까운 주장. 민주평화당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기반으로 총리 해임 시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야 3당 중 여당 개헌안에 가장 근접한 방안이다.○ 국회 권한 강화는 여야 모두 공감 대통령제를 둘러싼 이견에도 대통령의 힘을 빼고 국회로 권한을 이양하는 데는 여야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국회의 국정 주도권에 점차 무게가 실린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1987년 9차 개헌 당시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 폐지와 국정감사 부활을 놓고 여야가 한 달간 대치한 끝에 결국 야당의 요구가 관철됐다.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은 국회가 행정부의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1987년 개헌에 참여한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대통령 5년 단임제 합의를 제외하고 웬만한 쟁점은 비교적 수월하게 풀었는데 국회 해산권 폐지와 국정감사 부활은 여야 합의가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에게 쏠린 과도한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인사와 예산, 감사, 법률안 제출에서 국회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가령 총리는 물론이고 장관 임명 시에도 국회 동의권을 부여하겠다는 것. 정부 제출 예산안에 대해 국회가 삭감과 증액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된다. 현행 헌법은 제57조에서 정부 동의 없이 국회가 예산을 증액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는 표를 의식한 ‘지역구 예산’ 남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양원제 도입 등도 논의 민주당과 한국당 일각에서는 국회 상·하 양원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일 국민개헌 대토론회에서 “단원제를 제정하니까 중재하는 기관이 없다. (미국처럼) 상·하 양원제를 도입해 충돌을 조화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드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양당제 폐해를 강조하는 바른미래당은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제도는 전국을 인구비례에 따라 몇 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의석수(지역+비례)를 배정한 뒤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다당제를 구현하는 데 유리한 선거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상운 sukim@donga.com·홍정수·최고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깜짝 초청을, 단박 수락으로 받아쳤다. 지난해 북한의 도발 국면에서 서로 인신공격성 비난을 주고받았던 두 지도자가 올해는 삽시간에 정반대의 대화 기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트럼프, 김정은의 정치적 기질과 각자가 처한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과거와 다른 길 걷겠다”는 의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 개최합의는 19년 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추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미국이 1999년 10월 ‘페리 프로세스(북 도발중지와 대북제재 해제→북 핵미사일 개발 중지→북-미 관계 정상화)’를 내놓은 뒤에도 북-미대화는 ‘달팽이 걸음’을 걸었다. 서로 평양과 워싱턴에 특사를 보내며 이견을 좁혀갔지만 1년 넘게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하다가 2011년 11월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정상회담은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이번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뒤 67일 만에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여태껏 공개적인 북-미 접촉조차 한 번 없는 상황에서 “일단 봅시다”라고 합의한 것. 과거와 전혀 다른 대화의 판이 벌어지게 된 것은 결국 두 사람의 스타일이 반영된 결과다. 둘은 외교무대에서는 신인이다. 2011년 12월 집권한 김정은은 그동안 7차례 외교사절을 맞았을 뿐이고, 5일 대북 특사단을 맞으면서 북핵 외교 무대에 직접 등판했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또한 지난해 1월 취임 후에 외교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외교신인들’이 새롭게 협상의 틀을 짠 것은 과거 실패한 북-미대화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트럼프는 “지난 25년 동안 북한에 수십억 달러를 주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북한은 합의 다음 날부터 핵 연구를 시작했다”며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강조한 바 있다. 화끈하다 못해 종종 예측이 불가능한 면모의 지도자들이 ‘링’에 오른 만큼 협상은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군사종합대 포병과를 나온 포병 지휘관 출신인 김정은은 반대파 숙청을 주저하지 않는 저돌적인 스타일이다. 트럼프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대세론이 갖는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역전시켰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 화끈하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걸 좋아한다. 정상회담에서 파격적인 타결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두 정상 모두 변화 절실 두 정상이 처한 환경적 요인도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었다. 북한은 지난해 탄도미사일 20발을 발사하고, 6차 핵실험을 진행해 세 차례의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았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장기화하면서 달러가 마르고, 평양 시내 주유소 기름통이 바닥나면서 어떤 식으로든 상황 변화가 필요했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 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만큼 이제 도발에서 대화로 국면을 전환시켜도 김정은이 손해 볼 것은 없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에서 “북한 파괴”를 외쳤던 트럼프 대통령 또한 어떤 식으로든 국면 전환이 절실하다. 7일(현지 시간)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38%에 그쳤다. 지난해 8월 최저치인 35% 이후 고작 3%포인트 반등하는 데 그쳤다. 올해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러시아 스캔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김정은과의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은 최고의 카드 중 하나다. 특히 미국인들이 김정은 집권 후 북핵을 실질적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만큼 북핵의 평화적 해결은 트럼프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여론의 찬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슈다. 실제로 트럼프 비판에 앞장섰던 미 주류 언론들조차 회담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루크 메서 미 공화당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에 성공하면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평생 협상을 벌였고 스스로 ‘거래의 달인’으로 칭하는 트럼프인 만큼 김정은과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이끌어내려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황인찬 hic@donga.com·홍정수 기자}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초대형 이벤트’가 전격 결정되면서 이에 앞서 4월 말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이 하나의 ‘징검다리’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강조했던 ‘중매 역할’이 벌써 마무리된 것 아니냐는 것.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제 단순 중재자 역할을 넘어 비핵화와 관련된 구체적인 의제들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북-미 견인하는 세밀한 조정자 돼야”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북-미 대화를 여는 불쏘시개로 쓰려고 했지만 이미 북-미 대화에 불이 붙었다. 이에 남북 회담이 실질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은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고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 같은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정도의 원칙적인 대화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연결될 수 있는 구체적인 고리들을 의제로 꺼내면 북-미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띄운다는 차원에서 더 고무적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북-미 양국이 각자가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를 이용하려 할 것이란 전망에는 의견이 모아진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이 한국을 통해 미국을 움직이거나 대북제재를 완화시키는 쪽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미가 원하는 것이 서로 실현되지 않을 경우 둘 중 한쪽이 (회담을) 철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돌발변수 관리가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 교수는 “어려운 일이 갑자기 성사된 만큼, 현재까지 나온 일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 자체가 낮다”며 “우리 정부는 이 일정을 지키는 것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6월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급물살 탈까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구상하는 ‘한반도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낙관론이 다소 우세하다. 홍 실장은 “북한 입장에서는 꼼꼼하게 따지는 과거의 미국 대통령들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오히려 수월하게 타결을 볼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화끈하게’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에 전향적 태도를 보인다면 북한이 비핵화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핵무기를 끝까지 마지막 수단으로 간수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아직 북-미 간의 불신이 큰 만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6월부터 중국, 러시아, 일본과 정상회담을 연속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원으로 주변국들과 수교를 이루게 되면 국제사회에 전면적으로 편입되고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김 교수는 “김정은이 일국양제(一國兩制) 연방제 통일을 추진해 30∼40년을 더 통치할 기반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자본을 지원받아 개성공단 같은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말라붙은 경제에 피를 돌게 하고, 북-미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 할 것이란 우려다. 홍정수 hong@donga.com·신나리 기자}
자유한국당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폭로를 ‘좌파 운동권의 그릇된 성(性)인식’에서 비롯된 사태라고 주장하며 진보진영 전반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7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잘못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가져왔던 과거 운동권 문화를 완전히 배제하겠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구현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가 속했던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진영을 향해서는 “미투를 사회적인 시련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운동권 문화를 자기 고백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남 홍성-예산이 지역구인 홍문표 사무총장은 “안 전 지사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던 문재인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충남에서 도지사를 비롯한 모든 지방선거 후보를 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당 여성성폭력근절대책 특별위원회를 가동했다. 한국당 내부부터 미투 관련 관행은 없는지 되돌아보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한국당도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한국당은 미투 운동을 일종의 빨갱이 장사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행 폭로를 계기로 ‘미투(#MeToo·성폭력 고발 운동)’가 6·13지방선거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성추문 의혹을 받는 후보들의 지방선거 포기가 잇따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수도권과 충청·호남권을 기반으로 총 17곳의 광역지방자치단체 가운데 ‘9+α(알파)’ 확보를 기대했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100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터진 미투 후폭풍으로 낙관했던 충청권뿐 아니라 지방선거 전체 판세에 끼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다급해진 민주당은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5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안 전 지사에 대한 제명과 출당을 전격 결정한 데 이어 6일 ‘젠더폭력대책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었다. TF는 안 전 지사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고, 국회 내 성폭력 범죄 신고상담센터를 설치해 성폭력 문제에 강력 대처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같은 날 오후 윤리심판원을 열어 안 전 지사에 대한 제명·출당 조치를 확정했다. ‘포스트 안희정’을 꿈꾸는 충청권 예비후보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안 전 지사의 최측근으로 충남도지사 선거에 뛰어든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은 “안 지사의 친구이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안타까움이다”란 입장문을 발표하고 선거운동 중단을 선언했다. 안 전 지사의 3농 혁신(농어민·농어촌·농어업) 정책 계승을 내세웠던 복기왕 전 아산시장도 이날 예정된 선거운동을 취소했다. 야권은 진보 진영의 이중성이 드러났다며 총공세를 펼쳤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6일 중앙당 전국여성대회에서 “난 나와 우리 당 의원에게 덮어씌우려고 (미투 운동을) 시작했다고 느꼈는데 전개 과정을 보니 죄다 걸린 사람은 좌파 진영”이라며 “미투 운동을 좀 더 가열차게 해서 좌파 정권이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홍지만 대변인은 “앞으로 정치는 미투 정권과 순수 보수세력의 대결”이라고 했고,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진심으로 민주당이 ‘성폭력당’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충남도지사 후보를 공천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김상운 sukim@donga.com·홍정수 기자}
여야 정치권은 헌법에 노동계의 요구를 어디까지 반영할지를 두고도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특히 헌법 32조, 34조 등에 등장하는 ‘근로자’라는 표현을 ‘노동자’로 바꾸는 문제를 놓고도 기 싸움이 상당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초 개헌 당론을 채택하면서 ‘근로자’라는 표현을 ‘노동자’로 바꾸기로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 ‘근로자’라는 용어가 ‘의무’에 방점을 찍고 있어 ‘권리’를 강조하는 ‘노동자’라는 적극적 개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헌법에서 용어가 바뀌게 되면 근로기준법, 근로복지기준법 등 관련 하위 법령도 용어가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동자 개념을 헌법에 넣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적극 확장하겠다는 국제사회의 규범과 맥을 같이하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수 야당은 여당이 개헌을 경제 분야 이념 투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반박했다.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이 신설하려는 헌법 조항들이 ‘사회주의적 경제조항’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 정태옥 대변인은 “민주당 개헌안은 자유시장 경제 원리를 훼손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표현을 헌법에 삽입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격차, 남녀 노동 격차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동일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방향으로 헌법 조항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불평등이 단순한 격차를 넘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동일노동 동일가치’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노동의 가치를 획일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등 다양한 직종의 변화 속에서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당 관계자는 “여당은 이념 논란과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정작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실익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의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보장 문제도 논란거리다. 민주당은 공무원의 노동 3권을 헌법으로 보장하되, 경찰과 군인은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해 법률로 제한하는 내용을 개헌 당론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보수 야당은 “공무원들은 국민에 대한 봉사를 해야 하는데, 과도한 노동운동을 허용하면 국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경남도지사 시절 강성 노조의 횡포를 비판하며 진주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폐쇄한 바 있다. 한국당은 이달 안에 자체 개헌안을 마련해 여권의 공세에 대응할 방침이다.유근형 noel@donga.com·홍정수 기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7일 청와대 여야 대표 오찬회담에 참석하겠다고 5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홍 대표가 청와대의 여야 대표 회동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 대표는 앞서 청와대가 제의한 두 차례의 여야 대표 회담을 번번이 거절했다. 홍 대표 비서실장인 강효상 의원은 이날 오전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7일 회담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지난달 28일 청와대의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홍 대표는 2일 회담에 참석하기 위한 세 가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의제를 안보에만 국한하고, 실질적인 논의를 보장하며, 참석자를 5당 전체가 아닌 원내 교섭단체 대표로만 제한하면 참석하겠다고 ‘역제안’한 것. 청와대는 홍 대표의 3대 조건 중, 소수 정당을 제외하기는 곤란하다는 뜻을 3일 홍 대표 측에 전달했다. 홍 대표는 전날인 4일까지만 해도 참석에 부정적이었지만 이날 오전에 마음을 바꿨다. 한 중진 의원은 “당내 여러 중진이 홍 대표에게 이번 회동에는 조건 없이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특사단의 귀국 다음 날 열리는 데다 수석특사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배석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홍 대표가 불참할 명분이 별로 없던 것도 배경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홍준표 패싱’이 이뤄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안보 이슈의 주도권을 청와대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회동에도 불참하면 앞으로 관련 논의에서 한국당이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6·13지방선거에 적용될 기초·광역의원 선거구 획정이 선거일을 정확히 100일 앞둔 5일에야 겨우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구청장 선거와 시·도의원, 구·시의원 선거의 예비후보등록일인 2일을 앞두고 여야 협상이 무산됐기 때문. 여야는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28일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를 열었지만 밤 12시를 넘긴 직후에야 광역의원 정수를 현행 663명에서 690명으로 27명 늘리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회기가 끝나 본회의가 산회한 뒤였다. 이 개정안은 여야 원내대표 합의로 28일 오후 헌정특위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같은 날 밤 특위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인천 중-동-강화-옹진이 지역구인 안상수 의원은 “인천 남동과 부평은 한 명씩 늘어 6명이 됐지만 인구가 비슷한 서구는 4명 그대로”라고 했다. 인천 남동은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윤관석 의원의 지역구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반발은 당 지도부의 소통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위 위원인 나경원 의원은 “쟁점 사안에 대해 여야 지도부가 원칙 없이 야합하듯 흥정하다 보니 선거구 획정이 늦어졌다”고 주장했다. 여야는 5일 이 법안 처리를 위해 ‘원포인트’ 본회의를 또 연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나에게 개헌은 가능성이자 희망이고 변화다.” 1987년 9차 헌법 개정 당시 태어나 올해 31세가 될 때까지 하나의 헌법 아래 산 대한민국의 첫 번째 세대. 동아일보가 정치권의 개헌 논의와 관련해 두 번의 올림픽, 외환위기와 대통령 탄핵, 세 번의 정권교체를 경험한 이들 청년 31명(남자 16명, 여자 15명)에게 ‘내 삶에서 개헌의 의미’를 묻자 20명(65%)이 긍정적인 변화의 동력으로 삼고자 했다. 부정적(7명·22%), 중립적(4명·13%) 답변보다 훨씬 많았다.응답자의 90%인 28명이 “현 시점에서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하면서 이들은 새 헌법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스스로의 삶에서 찾았다. 회사원 김가연(가명·여) 씨는 입학한 지 13년이 넘도록 대출금을 갚지 못한 현실을 털어놨다. 김 씨는 “결혼을 하고도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는데 남편한테 참 미안하더라. 내가 바라는 개헌은 소득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최근 ‘미투(#MeToo·성폭력 고발 운동)’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양성 평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회사원 양수진 씨는 “우리 나이대 여성들은 남녀 차별을 경험으로 안다. 여성의 노동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민주화 헌법의 세례를 받고 태어나 한국 사회를 주도할 시기에 10차 개헌 논의에 참여하는 1987년생들의 개헌 기대감이 높은 건 현실의 벽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에 대한 기억을 묻자 △빈부격차(10명·중복 답변 허용) △기회 불균등(8명) △남녀 차별(7명) △과도한 경쟁(4명) △과중한 업무(2명) 등을 꼽았다. 이들은 새 헌법에서 빈부격차 완화나 기회 균등, 양성 평등 조항이 강화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번에 논의되고 있는 개헌은 1987년 이후 31년에 걸쳐 일어난 대한민국의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반영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전 개헌이나 다른 정치적 어젠다보다 시민들의 삶에 끼치는 파급력의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20대 국회는 아직 개헌을 위한 대국민 설문조사도 진행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더 이상 개헌을 미룰 수 없다며 이달 20일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예고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권은 청와대 주도의 개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치 전선만 형성하고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위한 개헌 동력은 아직 시동도 못 걸고 있는 셈이다. ▼ 공정경쟁권, 여성노동권, 휴식권… ‘평등과 행복’ 목마르다 ▼“우리 나이에 3억 원짜리 전세 얻을 돈이 어디 있어요.” “자는 딸 얼굴만 보는 게 무슨 아빠입니까.” “여자라서 채용 안 한다기에 교사 꿈 접었죠.” 올해 서른한 살, 1987년생의 삶은 불만족스러운 것이 많았다. 헌법에 어떤 가치를 반영해야 하는지에 머뭇거렸던 그들은 “살면서 뭐가 힘들었느냐”고 바꿔 묻자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쏟아냈다. 빈부 격차, 남녀 차별, 기회 불균등, 과도한 노동 등 다양했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내 가족이 더 행복하고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헌법에 실어 달라는 목소리였다.○ “금수저의 ‘반칙’을 불허해 달라” 직장인 하지훈 씨(31)는 몇 해 전 취업한 자신을 가리켜 “운이 좋았다”고 했다. 취업을 못 해 결혼도 미루고 혼자 사는 친구들이 주변에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하 씨는 “서울에 전셋집을 얻으려면 최소 3억 원이 필요하다. 성인이 돼서도 부모님한테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헌법에서는 어떤 형태의 사회적 특수계급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상 빈부에 의해 계층이 나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금수저는 사실상 ‘반칙’이 용인되는 공정하지 못한 경쟁 시스템도 문제다. 특히 최근 공공기관, 금융기관 취업 비리 등이 청년들에게 박탈감을 안겼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사회의 가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계층·세대 간 격차 해소를 위해 국가의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우승현 씨(31)는 “부모님이 1995년 2억8000만 원에 산 아파트는 현재 18억 원으로 크게 올랐다. 반면 우리는 부모 세대에 비해 결혼, 내 집 마련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며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대통령,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사회 불평등 문제 해결을 방기한 만큼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인들을 견제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회사원 유승오 씨(31)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 덕에 동네가 뭔가 개선됐다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제대로 일을 못 하면 국민소환제를 통해 혼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특권을 제한하고,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다수 나왔다.○ ‘87년생 김지영’의 절규 ‘교사 모집 공고 남 0명·여 0명’ 학원 강사 윤아라(가명·31·여) 씨는 대학 졸업 후 수년간 사립 교사 정규직 채용에 응시했지만 남녀 차별의 높은 벽 앞에서 꿈을 접었다. 지원했던 학교마다 최종 합격자에 여성은 없었다. 몇 년 전 윤 씨가 기간제로 일했던 사립고는 젊은 여교사를 전부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윤 씨는 “남녀 교사 성비가 99 대 1 수준이었다. 결혼과 출산 문제 때문에 여성 정규직 채용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헌법은 성별이나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은 물론 여성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87년생 김지영’들에게는 예외가 많다. 실력이 문제가 될 때도 있겠지만 여자라서, 엄마라서, 아내라서가 이유일 때도 많다. 윤 씨는 “결혼, 출산을 앞둔 여성은 채용 기피 대상이다. 여성의 평등한 노동권을 헌법에서 더 강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 개정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변호사 유선아(가명·31·여) 씨는 “조직에서 성별 하나로 취업과 승진을 결정하는 경우도 여전하다.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포괄한 기본권 항목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로사회는 이제 그만…휴식권 명시해야” 일 못지않게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세대인 만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의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펀드매니저 이우진 씨(31)는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 그런데 이 씨는 요즘 아버지와 점점 닮아가는 자신을 걱정한다. 그는 “퇴근하면 딸과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는 내가 무슨 아버지인가.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윤지민 씨(31)는 쫓기며 사는 삶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윤 씨는 “대학 땐 성적을 잘 받아야 했고, 대외활동으로 스펙을 쌓아야 했다. 취직해서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며 “쉬는 게 죄악시되는 게 아니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헌법에 강제해 달라”고 말했다. 31년 전보다 사회가 크게 변한 만큼 새 요구 사항도 생겼다.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권리’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권리’를 요구하며 환경권 강화 목소리가 커진 게 대표적이다. ‘나홀로 가구’와 비혼주의자 등이 늘어난 상황에서 가정 공동체의 법적 테두리를 확대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뤄진 경우만 법적 ‘보호자’로 인정할 게 아니라,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보호자의 범위를 늘려달라는 것. 이 밖에 소수자 차별 금지, 생활 안전권 강화, ‘동물권(權)’ 보장 등도 제시됐다.▼ 민주화 누리고 양극화 시달린 ‘촛불 세대’… ‘현행 헌법과 동갑’ 1987년생의 31년 ▼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사망한 1월부터, 16년 만에 직접투표로 대통령이 선출된 12월까지. 1987년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혁명적 변화를 불러온 기점이 됐다. 올해 31세인 ‘87년생’들은 같은 해 태어난 현행 ‘87년 헌법’과 나이가 같다. 6·10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정치적 민주화’ 이후 세대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아래 국가의 조직적인 폭력을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87년 헌법’ 아래 지난 31년간 격변해온 한국사회의 변화상이 이들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87년생의 유년기는 전후(前後) 어떤 세대들보다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시기다. 이듬해 열린 88올림픽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선진화를 급속히 진전시켰다. 이어진 ‘3저(低) 호황’과 국가 주도의 고성장 전략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이들은 해를 더해갈수록 윤택해지는 희망적인 삶을 누렸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30대 후반∼40대 중반이었던 이들의 부모세대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태풍 한가운데에 있었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얼어붙은 고용시장의 삭풍을 버티는 부모를 보며 ‘평생직장’에 대한 신뢰를 잃고 ‘철밥통’으로 상징되는 안정적인 직장을 갈구하게 됐다. 또래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2002년 효순·미선 양 사건에 공분한 이들은 첫 대규모 촛불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21세 때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광우병 파동, 29, 30세 때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재현된 촛불집회에도 나가봤다. 문화적으로는 H.O.T.와 god 등이 이끈 1990년대 대중문화 황금기를 누리며 사춘기를 보냈다. 2006년 성인이 된 이들의 생애 첫 투표는 이듬해 17대 대통령 선거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두 번째 정권교체를 겪은 뒤, 다양한 정치적 혼란상이 빚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서거했고 2010년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또래 군인들이 희생당했다. 이들이 대학 졸업 후 가까스로 첫 직장에 들어간 나이는 남녀 각각 평균 25.7세, 23.9세(통계청, 2013년)다. 하지만 취직이 곧바로 결혼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비혼(非婚)’개념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젠더 감수성’에 민감한 1987년생은 어느 세대보다 격차 해소와 성평등,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추구하며 다음 개헌에 목소리를 얹으려 하고 있다.김상운 sukim@donga.com·최우열 기자·최고야 best@donga.com·홍정수·박성진 기자}
탈북민 출신인 현인애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이 북한의 교육에 대해 “교육혁명을 통해 국가 발전을 이루려는 방향적 목표는 4차 산업시대의 요구에 맞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 김한표 의원은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3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주최한 ‘제4차 미래인재포럼’에서 현 위원이 발표한 ‘김정은식 교육혁명, 인재강국 정책 실태와 평가’가 북한 교육을 옹호하는 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통일연구원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각각 통일부와 국무총리 산하의 국책연구기관이다. 현 위원은 당시 발제에서 “(북한 교육개혁의) 방향은 바람직하다”며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교육혁명’ 내용과 목표을 소개하며 북한의 과학·기술자 우대정책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어떻게 정부가 주최하는 포럼에서 김정은식 교육혁명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발표할 수 있느냐”며 당국의 사죄를 요구했다. 나영선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은 “(처음 검토 당시에는) 북한 체제 하에서 구조적 개혁 없이 이런 교육혁명을 아무리 해봐야 소용없다는 비판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했다”며 “김정은식 교육혁명이라는 용어를 쓰고 이런 토론을 연 것 자체를 사죄하겠다”고 말했다. 홍정수기자 hong@donga.com}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6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방한을 수용한 문재인 대통령을 “국군 뒤통수권자”라고 표현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홍 대표는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국당의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 방한 규탄대회에 참석해 “헌법에는 대통령을 국군통수권자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군의 뒤통수를 치는 대통령이다. 지금 그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대유행”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에 거센 통상압박을 가하는 것에 대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유독 당사국인 대한민국만 어깃장을 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 대한민국도 북한에 버금가게 제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당의 규탄대회는 김영철 방한 결정 후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규탄대회에는 경찰 추산 1만 여명이 참석했다. 24일 청계광장에서의 천막 의원총회를 시작으로 김영철이 방한한 25일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에서 밤샘농성을 했다. 한국당은 김무성 김영철방한저지투쟁위원장을 중심으로 ‘북핵폐기추진특별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대여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반면 여당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 폐막식에 참석한 황병서와 최룡해, 김양건을 환영하는 논평을 낸 것을 근거로 들며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천안함의 김영철과 북한이 저지른 모든 도발의 배후이며 최종결정권자인 황병서, 최룡해 중 책임의 무게가 어디가 더할 것인지는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여야 대치가 이어지면서 국회는 상임위원회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 등 공전과 파행을 거듭했다. 2월 임시국회는 28일 끝난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자유한국당 의원 70여 명은 25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을 막는 ‘육탄 저지’에 나섰다. 한국당 의원들은 전날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뒤 곧바로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으로 이동했다. 당초 김성태 원내대표는 김영철 방한 시간에 맞춰 25일 오전 9시 의원들을 집결시키는 것으로 작전을 짰다. 그러나 ‘당의 계획이 알려져 정부가 통일대교를 봉쇄할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가 입수된 뒤 작전을 바꾼 것이다. 김 원내대표와 ‘김영철방한저지투쟁위원회’ 위원장인 김무성 의원 등 약 20명은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 방한 철회하라’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들고 2개 차로에 앉아 24일 오후 7시부터 밤샘 농성을 했다. 25일 오전엔 홍준표 대표와 의원 70여 명이 합류해 12m 길이의 대형 태극기를 도로에 펼치고 “태극기를 밟고 지나가라”고 외쳤다. 홍 대표는 “김영철이 정찰총국장 자리에 있으며 천안함 폭침에 관여 안 했다고 한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진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도 믿어줘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김영철 일행이 통일대교를 피해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6시간 만에 농성을 풀었다. 홍 대표는 현장에서 “통일대교를 지킨 덕분에 김영철이 개구멍으로 빠져 나갔다. 대한민국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체류 기간 동안 김영철을 체포해서 척살(刺殺·칼로 사람을 찔러 죽임)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촉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의 농성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작태이며 국제적 망신이다. 문재인 정부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된 작태는 자기부정이고 모순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파주=홍정수 hong@donga.com / 박성진 기자}
경찰이 국가정보원이 갖고 있는 대공수사권을 가져오기 위해 경찰청 산하 보안국을 안보수사본부로 확대 개편하고, 수사본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본부장은 개방직으로 선발하기로 했다. 경찰은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비공개로 보고했다. 또 경찰청은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에 따른 안보 공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국정원의 전문수사관의 경찰 이동 문제를 국정원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여야 정치권은 대공수사권 이관을 위해선 먼저 “경찰이 실력과 중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정보위원인 신경민 의원은 회의 후 “경찰이 실력과 경험, 정치적 중립성을 갖춰야 한다는 질의가 (여야 의원들로부터) 나왔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또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 조작 의혹도 지적했다고 밝혔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예상대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진두지휘하는 평창 공세의 마지막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초청이었다. 김정은의 특사이자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부터 ‘평양 초청장’을 받은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며 사실상 수락 의사를 밝혔다. 다만 문 대통령이 “여건을 만들어”라는 전제를 단 것은 북한의 페이스대로 급하게 끌려가지만은 않겠다는 뜻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한 한국과 미국, 북한 3자 간의 어느 때보다 복잡한 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거듭 “평양 오시라” 권유한 김여정 전날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나 공개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김여정은 11일에도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한 만찬에서 “평양에서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했던 김여정은 문 대통령 내외를 마지막으로 만나는 자리에서도 “꼭 평양을 찾아오시라”고 했다. 전날 접견과 오찬을 포함하면 2박 3일간의 방한 일정 중 최소 세 번 방북을 요청한 셈이다. “준비된 발언만 하는 편이었다”는 우리 측 관계자들의 김여정에 대한 공통된 평가를 고려하면 거듭된 초청 역시 의도된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문 대통령에게 “다시 만날 희망을 안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김씨 일가를 한국에 내려보낸 김정은이 3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는 뜻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에서조차 “물밑 조율 없이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도, 수차례 정상회담 의지를 밝힌 것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전례 없이 강력한 제재에 직면한 김정은이 3차 정상회담을 통한 국면 전환을 위해 사실상 ‘다걸기’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 설명자료’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의 의지가 매우 강하며 필요한 경우 전례 없는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文, 확답 없이 “미국과의 대화 적극 나서 달라” 방북 초청에 대해 10일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김 대변인은 “미국과의 대화에 북쪽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당부했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대화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을 북한에 전달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 접촉 수준의 움직임이라도 있어야 그 다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신중한 태도는 2000,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도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어느 정도 성과가 담보돼야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북측 인사 영접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등 2007년 정상회담 실무진을 총출동시켰다. 초청장에 확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정상회담을 위한 긍정적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통일부는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와 비핵화 과정의 선순환을 추진하되 상황에 따라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미 대화를 견인하겠다”며 “비핵화 과정에서 일정한 진전이 이뤄지는 등 여건이 조성된다면 남북관계에서 본격적인 진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3차 남북 정상회담 첫 고비는 4월 한미 연합훈련 북-미 대화와 함께 문 대통령의 평양행 여부를 결정할 또 다른 열쇠는 올림픽 직후인 4월부터 열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의 완전한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미 양국은 연합훈련을 4월 1일 시작하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 여기에는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북 지휘부 제거 작전이 포함된 키리졸브 훈련 일정도 있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우리 측에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참가 병력이나 전력을 줄이는 식으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북 압박 기조를 이어가는 미국은 훈련 강행을 요구할 게 확실시되고 있어 한미 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한상준 alwaysj@donga.com·손효주·홍정수 기자}
김여정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9일 타고 오는 김정은 전용기는 우크라이나의 안토노프사가 만든 AN-148 기종의 P-672일 가능성이 일단 높다. 대당 가격이 300억 원 수준이다. 김정은이 타기도 하고 직접 시범 조종하는 모습을 공개했을 정도로 애용한다. 항공운항정보 사이트 ‘플레인파인더’ 등에 따르면 이 비행기는 고려항공이 2015년 인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체의 겉에도 ‘고려항공’이라는 글자와 인공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고려항공은 우리 정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 대상이다. 고위급 대표단이 김정은의 공식 전용기인 ‘참매 1호’를 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옛 소련 일류신사가 제작한 일류신(IL-62) 기종을 개조한 것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때도 최룡해 등 ‘실세 3인방’이 타고 왔던 비행기다. 북한은 이 기종을 1986년 이전에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전 문제 때문에 참매 1호를 이용할 가능성은 반반이다. 2014년 11월 최룡해가 특사 자격으로 이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던 중 기체가 고장 나 회항한 전력이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참매 1호에 대해 “(제재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고려항공 소속 항공기를 타고 오더라도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이 일지 않도록 미국 등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북한이 7일 밝힌 고위급 대표단에는 김여정 외에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사진)과 지난달 남북 고위급회담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석했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포함됐다. 북한 체육 분야의 총책임자인 최휘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의 대표적인 복심(腹心)으로 꼽힌다. 김정은 집권 초부터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서 우상화 작업을 총괄해왔다. 2015년 중국 베이징에서 예정됐던 모란봉악단 공연을 갑자기 취소하고 귀국한 뒤 잠시 좌천됐지만 곧 중앙 정치 무대로 복귀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대상이기 때문에 이번 고위급 대표단에 포함된 것이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리선권은 2004년 이후 30차례 가까이 남북 회담에 대표로 참석한 ‘베테랑’ 대남 협상가다. 2011년 남북 군사실무회담 당시 남측을 맹비난하며 퇴장하는 등 다혈질로 잘 알려졌다. 천안함 폭침 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오른팔이다.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장과 리택건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중앙위원 등 16명의 보장성원(지원인력), 기자 3명이 대표단에 포함됐다. 김성혜는 2013년 남북 장관급회담 실무접촉에 수석대표로 참석하는 등 대표적인 ‘여성 대남 일꾼’으로 통한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7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체제 선전전의 양대 축인 응원단과 예술단이 동시에 포문을 열었다. 오전 8시 20분경 전날 강원 묵호항에 정박했으나 굳게 닫혀 있던 만경봉92호의 문이 열리고 현송월 등 114명의 삼지연관현악단 본진이 하선했다. 오전 10시 13분경엔 200명이 넘는 미모의 여성 응원단과 북한 기자단, 태권도시범단, 김일국 체육상 및 북한 민족올림픽위원회(NOC) 위원들이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로 입경했다. 이날 남한 땅을 밟은 북한 인사만 총 402명이었다.○ 응원단 “지금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지 않습네까?” 응원단 여성 단원들이 출입사무소에 들어서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키 165cm 내외로 또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이게 화장을 곱게 한 20대 여성들이 대열을 맞춰 지나갔다. 북한 여성들의 평균 신장이 159cm라는 2014년 통계에 비춰 보면 북한이 경제난이나 기근에서 벗어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엄선된 재원들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단장 격으로 보이는 한 20대 여성에게 소감을 묻자 “반갑습네다” 하며 활짝 웃었다. 응원 준비를 많이 했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답을 고르더니 “보시면 압네다. 지금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지 않습네까?”라고 받아쳤다. 자신을 25세라고 밝힌 한 단원은 “다들 평양지역에서 온 20대다. 나이는 각양각색”이라고 했다. 관리자로 보이는 40대 여성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왔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응원하도록 준비했다”면서 적극 대답했지만 대다수 단원은 사전교육을 받은 듯 무수한 질문에도 로봇처럼 “반갑습네다”를 반복했다. “평양에서 2∼3시간 걸려 왔다”는 응원단은 출입사무소에 도착해 짐을 내리거나 수속을 마치자마자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41인승 버스 9대에 나눠 타 숙소인 인제스피디움으로 향하던 이들은 고속도로 중간 가평휴게소에서 내려 또다시 열을 맞춰 화장실로 들어간 뒤 단장을 마쳤다. 영문을 모르던 시민들은 뒤늦게 북한 응원단임을 알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 취주악까지 준비 응원단은 이날 “이웃 팀도 응원하겠다”고 수줍게 말했다. 북한 선수들의 경기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뿐 아니라 남한 선수들의 일부 경기에서도 응원전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김일국 체육상은 “취주악을 준비했다. 체육 경기마다 늘 하고 있는 응원이다”라며 “다 같이 이번에 힘을 합쳐 이번 경기대회 잘합시다”라고 말했다. 꽹과리와 징, 소고와 대고 같은 민속악기는 물론이고 ‘떰떰이’로 불리는 악기에 클라리넷, 베이스, 호른과 같은 관현악기도 대거 짐칸에 실렸다. 일제 ‘야마하’ 로고가 새겨진 하얀 소고받침을 착용한 채 걸어가는 단원들도 눈에 띄었다. 합숙훈련을 했느냐, 준비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며칠 못 했습니다”라며 눈을 피하기도 했다. 만경봉92호에서 내린 예술단원들도 온종일 강릉아트센터에 머물면서 막바지 공연 준비에 집중했다. ○ 남남갈등 드라이브 거는 북한의 체제 선전 시선 끌기에 성공한 북한은 당분간 전방위적인 선전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8일과 11일 예술단 공연을 마치고 올림픽 기간 내내 응원을 펼칠 응원단과 태권도시범단 공연 등을 통해 북한 열병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북한 대표단의 일부 행동이 남남갈등을 촉발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는 이 같은 우려보다 북한 손님들을 위한 준비에 분주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만경봉호 입항 후 협의 과정에서 북한 측의 유류 지원 요청이 있었다”며 정부가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 백 대변인은 “북한에 편의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미국 등 유관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제재에 저촉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사회 제재 위반보다 ‘퍼주기’ 논란이 재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날 인제스피디움에서 천해성 통일부 차관 주재로 북한 응원단과 체육 관계자 등 100여 명을 초대해 환영 만찬도 가졌다. 오영철 북한 응원단장은 “북과 남이 손을 잡고 함께하는 이곳 제23차 올림픽 경기대회는 민족 위상을 과시하고 동결되었던 북남관계를 개선해 제2의 6·15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충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이 “평창”이라고 선창하자 일동은 “평화”로 화답하며 잔을 부딪쳤다. 파주=공동취재단·신나리 journari@donga.com / 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