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이 23일 오전 1시(현지 시간) 타계했다. 향년 91세. 사우디 왕실은 국영TV를 통해 지난해 12월 31일 폐렴으로 입원했던 압둘라 국왕이 서거했다면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제(80)가 왕위를 이어받는다고 밝혔다. 23일 하루 종일 CNN 등 외신들은 일제히 주요 뉴스로 다뤘다. 세계 최대의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의 권력 지형 변동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사우드 왕가의 6번째 국왕으로 2005년 81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압둘라 국왕은 국내외에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사우디의 상징으로 인식돼왔다. 그는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이븐사우드 초대 국왕의 부인 22명 중 7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10번째 아들이다. 재임 중 대외적으로는 강력한 친미 정책을, 대내적으로는 파격적인 개혁 정책을 폈다. 여성의 운전과 운동이 금지될 정도로 성차별이 극심한 문화에서 2013년 1월 국회에 해당하는 슈라위원회 위원 150명 중 30명을 여성으로 채웠고 여성을 차관에 임명했다. 2012년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고 올림픽 출전도 허용했다. 하지만 즉위 직후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겠다’고 한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주식시장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개방했으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추진하는 등 개방정책을 폈다. 2011년 중동 전역에 민주화 바람이 불던 ‘아랍의 봄’ 때에는 과감한 사회복지 혜택으로 민심을 잠재웠다. 사우디 왕위는 초대 국왕의 유언에 따라 장자가 아닌 ‘형제’가 잇는다. 왕위를 이어받는 살만 왕세제는 압둘라 국왕의 이복동생으로 2011년부터 부총리 겸 국방장관을 맡아왔으며 50년 동안 수도 리야드 주지사직도 지냈다. 형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최근까지 사실상 국왕 대행 역할을 했다. 살만 왕세제는 이날 국영TV 연설에서 “선왕의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또 자신의 아들을 새 국방장관에 임명하고 외교, 석유, 재무 등 일부 장관은 유임시켰다. 그러나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국내외 난제들을 해결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뉴욕타임스는 “‘이슬람국가(IS)’의 위협과 이란의 세력 확장, 인접국가 예멘 쿠데타, 유가 하락 등 중동 지역의 불안 요인이 많은 상황에서 압둘라 국왕의 사망으로 불안 요소가 또 하나 늘었다”고 보도했다. 국제 유가가 어떻게 움직일지도 관심사다. 22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는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시간외 거래에서 3.1%까지 치솟는 등 깜짝 요동을 쳤다. 그러나 사우디가 원유 생산량을 유지해 점유율을 확대하는 기존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돼 향후 유가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를 잃게 된 사우디 국민의 슬픔을 위로한다”는 조전을 보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양국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압둘라 국왕의 확고하고 열정적인 믿음에 감사한다”며 조의를 전했다. 중국 일본 프랑스 인도 등도 성명을 내고 국왕의 타계에 조의를 표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중앙은행(ECB)이 디플레이션(통화량 축소에 물가 하락, 소비 침체)에 빠진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3월부터 내년 9월까지 1조1400억 유로(약 1435조 원) 규모의 양적완화(QE)를 단행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의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잇따라 발표했으나 ECB가 대규모 양적완화를 결정한 것은 출범 이후 처음이다. ECB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행 0.05%로 유지하기로 했다. ECB는 지난해 9월 기준금리를 0.15%에서 0.05%로 내린 이후 이번까지 4개월째 동결했다. 또 예금금리도 현행 ―0.20%로 유지하기로 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사진)는 이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2016년 9월까지 매달 600억 유로(약 75조5340억 원)어치의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ECB가 발표한 양적완화 규모는 경제 전문가들이 당초 예상했던 5500억 유로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번 조치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에 퍼지고 있는 디플레이션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스위스에서 열리고 있는 다보스포럼에 참가 중인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ECB 발표 하루 전인 21일 “드라기 총재가 원하는 만큼 양적완화를 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며 ECB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해 12월 유로존 물가상승률(―0.2%)은 5년여 만에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당초 ECB 목표치 2%를 크게 밑돈 것이다. 또 유로존의 지난해 11월 실업률은 11.5%를 기록해 경기침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유럽 경제를 살려내는 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유로존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양적완화 조치가 각국의 경제개혁을 오히려 늦출 것”이라며 양적완화에 반대해 왔다. 금융회사 ‘미즈호 인터내셔널’의 런던 소재 리카르도 바르비에리 에르미트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양적완화 규모는 예상보다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핵심은 위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드라기 총재가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ECB가 아닌 유로존 19개국 중앙은행이 해당국의 국채를 사들여 위험 부담을 분산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각국이) 위험 부담을 공유할수록 효과도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ECB의 양적완화 발표 이전인 22일 오전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ECB의 조치에 따라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질 것이라 예상한다”며 “올해 각국의 상반된 통화정책이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 (대응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의 말은 유로존이 대규모 양적완화를 시작하는 데 비해 미국은 지난해 양적완화를 종료한 데 이어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을 준비하고 있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이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의 탐사보도 전문 여기자 아나 에렐(가명·30) 씨가 인터넷을 통해 직접 ‘이슬람국가(IS)’의 신병 모집책과 접촉한 뒤 자신이 겪은 생생한 체험담을 책으로 펴냈다. 15일 발간된 이 책은 최근 시리아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김모 군을 비롯해 전 세계 평범한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IS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선전술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외톨이 청소년이라면 자신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는 IS 대원에게 마냥 빠져들 것”이라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에렐 씨가 인터넷을 통한 IS 잠입취재를 결심한 것은 지난해 4월. ‘왜 그토록 많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IS의 유혹에 넘어가는가’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먼저 페이스북에 ‘이슬람으로 막 개종한 20대 여성 멜라니’라는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테러리스트 그룹의 사진과 비디오를 공유해 이슬람 극단주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유럽 출신 IS 대원들이 ‘친구 맺기’를 요청해 왔다. 드디어 IS 신병모집 총책이라고 밝힌 프랑스 출신 IS 대원으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그는 자신을 IS 최고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측근이라고 소개했다. 아부 빌렐(38)이라고 실명을 밝힌 이 남자는 머리에 젤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의 향수를 사용하는 세련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척 봐도 전형적인 ‘메트로섹슈얼’(대도시에 거주하며 외모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젊은 남성)이었다. 그는 ‘멜라니’에게 “지금 바로 시리아로 오면 좋은 아파트에서 살게 해주고, 보육원에서 아이를 돌보는 착한 일을 하면서도 돈도 많이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유혹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인터넷 화상 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진행됐다. 에렐 씨는 히잡(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쓰고, 아랍어식 표현을 쓰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오던 남자는 에렐 씨가 잠시라도 화면에서 벗어나면 “어디에 있느냐”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영혼이 너무 맑아 보인다”며 달콤한 말로 끊임없이 속삭이던 남자는 어느 날 “결혼하자”고 청혼까지 했다. 에렐 씨와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착각한 이 남성은 서서히 극단주의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은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이며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 싸우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리비아 등에서 게릴라 전사로 활동해 왔다고 자랑했다. 그는 “포로들을 고문하고, 참수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자신이 직접 참수한 머리를 들고 있는 사진을 에렐 씨의 스마트폰에 전송하기도 했다. “IS 신병들은 오전 아랍어 수업, 오후 사격 훈련을 하며 2주 훈련이 끝나면 어떤 전선에서도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들은 미래의 영웅”이라며 IS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았다. 에렐 씨는 “시리아를 이상향으로 묘사하는 홍보 비디오는 너무나 잘 만들었다. 그들의 훈련 모습 영상을 보다 보면 마치 컴퓨터게임처럼 청소년들을 빠져들게 할 만한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한 달간의 인터넷 잠입취재를 마치고 에렐 씨는 남성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위험은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수많은 살해 위협이 가해지기 시작한 것. 유튜브에는 IS가 그녀에게 사형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리는 동영상도 떠돌았다. 또 화상 통화하는 장면도 공개됐다. 이 장면 아래에는 “이 여자를 강간하고 돌로 쳐서 고통스럽게 죽여라”라는 아랍어 자막이 붙기도 했다. 에렐 씨는 결국 전화번호와 이름을 바꾸고,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친척들 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17일 프랑스 ‘카날 플뤼스’ 방송에 얼굴을 가린 채 출연한 에렐 씨는 “살해 위협을 받고 있지만 IS의 실체를 증언하기 위한 내 선택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의 탐사보도 전문 여기자 안나 에렐 씨(30·가명)가 인터넷을 통해 직접 IS의 신병 모집책과 접촉한 뒤 자신이 겪은 생생한 체험담을 책으로 펴냈다. 15일 발간된 이 책은 최근 시리아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김 모군을 비롯해 전 세계 평범한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IS의 소셜네트워크서비(SNS) 선전술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외톨이 청소년이라면 자신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는 IS 대원에게 마냥 빠져들 것”이라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에렐이 인터넷을 통한 IS 잠입취재를 결심한 것은 지난해 4월. “왜 그토록 많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IS의 유혹에 넘어가는가”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먼저 페이스북에 ‘이슬람으로 막 개종한 20대 여성 멜라니’라는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테러리스트 그룹의 사진과 비디오를 공유해 이슬람 극단주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유럽 출신 IS 대원들이 ‘친구 맺기’를 요청해왔다. 드디어 IS 신병모집 총책이라고 밝힌 프랑스 출신 IS대원으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그는 자신을 IS 최고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측근이라고 소개했다. 아부 빌렐(38)이라고 실명을 밝힌 이 남자는 머리에 젤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의 향수를 사용하는 세련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척 봐도 전형적인 ‘메트로섹슈얼’(대도시에 거주하며 외모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젊은 남성)이었다. 그는 ‘멜라니’에게 “지금 바로 시리아로 오면 좋은 아파트에서 살게 해주고, 고아원에서 아이를 돌보는 착한 일을 하면서도 돈도 많이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유혹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인터넷 화상 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진행됐다. 에렐은 히잡(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쓰고, 아랍어식 표현을 쓰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오던 남자는 에렐이 잠시라도 화면에서 벗어나면 “어디에 있느냐”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보냈다. “영혼이 너무 맑아 보인다”며 달콤한 말로 끊임없이 속삭이던 남자는 어느날 “결혼하자”고 청혼까지 했다. 에렐과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착각한 이 남성은 서서히 극단주의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은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이며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 싸우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리비아 등에서 게릴라 전사로 활동해 왔다고 자랑했다. 그는 “포로들을 고문하고, 참수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자신이 직접 참수한 머리를 들고 있는 사진을 에렐의 스마트폰에 전송하기도 했다. “IS 신병들은 오전 아랍어 수업, 오후 사격훈련을 하며 2주 훈련이 끝나면 어떤 전선에서도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들은 미래의 영웅”이라며 IS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았다. 에렐은 “시리아를 이상향으로 묘사하는 홍보 비디오는 너무나 잘 만들었다. 그들의 훈련모습 영상을 보다보면 마치 컴퓨터게임처럼 청소년들을 빠져들게 할만한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한 달간의 인터넷 잠입취재를 마치고 에렐은 남성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위험은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수많은 살해위협이 가해지기 시작한 것. 유튜브에는 IS가 그녀에게 사형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리는 동영상도 떠돌았다. 또 화상 통화하는 장면도 공개됐다. 이 장면 아래에는 “이 여자를 강간하고 돌로 쳐서 고통스럽게 죽여라”는 아랍어 자막이 붙기도 했다. 아렐은 결국 전화번호와 이름을 바꾸고,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친척들 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17일 프랑스 ‘카날 플뤼스’ 방송에 얼굴을 가린 채 출연한 에렐은 “살해위협을 받고 있지만 IS의 실체를 증언하기 위한 내 선택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16일 오후 1시경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교외의 소도시 ‘젠빌리에’의 모스크(이슬람 사원). 이슬람교도의 낮기도 시간이 되자 사원 앞 거리 풍경은 이곳이 프랑스인지, 북아프리카의 한 아랍 도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머리에 흰색 터번을 쓰고 수염을 길게 기른 남성들과 검은색 니깝(얼굴 가리는 베일)을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은 여성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젠빌리에는 ‘샤를리 에브도’ 잡지사 테러범인 셰리프 쿠아시가 약 10년간 거주하며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을 키운 곳이다. 이날 모스크 앞에는 경찰관들이 대거 배치돼 있었다. 기자가 “평소에도 이렇게 경비를 서느냐”고 묻자 경찰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뜸 “기자 신분증을 보여 달라”며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프랑스는 어떤 주의와 주장도 모두 포용하는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도 프랑스에서 원시공산주의를 배웠고 마오쩌둥(毛澤東) 밑에서 중국 문화혁명을 주도한 저우언라이(周恩來)도 프랑스 유학파였다. 이처럼 타 문화에 대해 관용적인 프랑스가 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의 표적이 됐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프랑스에서 ‘방리외’(Banlieue·교외)라고 불리는 변두리 이민자 집단거주지역을 찾았다. 쿠아시 형제가 테러 직후 차량을 훔쳐 도주 행각을 벌인 지역이 바로 포르트드팡탱, 센생드니에서 샤를드골 공항까지 이어지는 ‘방리외’ 지역이다. 프랑스 경찰은 잡지사 테러 이틀 뒤인 9일 센생드니의 한 아파트를 급습해 거물급 마약 거래상을 체포했다. 그의 창고에서는 코카인 300g, 대마초 640kg, 칼라시니코프 소총 7자루, 권총, 3만 유로의 현금이 발견됐다. 프랑스 정부가 대도시 외곽 지역에 건설한 약 100만 채의 공공임대 주택은 세월이 흐르면서 가난한 이민자, 불법 체류자, 실업자들의 집단 거주지로 변했다. 이곳은 경찰은 물론이고 소방서 구급차량도 맘껏 다닐 수 없어 ‘치외법권 지역’으로 불린다. 2005년 프랑스 북부 폭동의 중심지였던 센생드니를 찾아가니 사방에서 쏟아지는 적대적인 눈길에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곤두서는 것 같았다. 거리 곳곳에는 깨진 술병이 나뒹굴었고 소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자는 센생드니의 낡은 아파트 단지 가운데 위치한 들라퐁텐 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8월 열 살짜리 흑인 소년 제카리아의 억울한 죽음으로 프랑스 언론이 대서특필한 병원이다. 소년의 부모는 오후 11시 반경 갑작스러운 복통에 시달리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소방서와 병원 구급대, 택시 회사에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이들은 모두 “이 시간엔 너무 위험해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걸어서 오전 3시경 병원에 도착했는데 ‘급성 맹장염’ 진단을 받은 아이는 수술이 너무 늦어져 결국 숨졌다. 들라퐁텐 병원 주차장에서 만난 구급대원은 “지난달에도 구급차가 복면을 쓴 청년들에게 공격당해 유리창이 깨지고 의료진이 휴대전화와 소지품을 털리는 사건이 두 차례나 발생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무슬림 인구는 약 500만 명.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73년까지 프랑스의 경제 붐을 타고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세네갈 시리아 레바논 등 프랑스의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식민지 출신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일자리가 줄어들고 아랍계 이민자 2, 3세들이 프랑스 사회로부터 배제당하자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1995년 알제리무장이슬람그룹(GIA)의 생미셸 지하철역 테러사건, 2005년과 2007년 파리 북부 폭동사건으로 이어졌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은 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국민들이 일으킨 자생적 테러라는 점에서 “이슬람의 실패가 아니라 프랑스 이민정책의 실패”(뉴욕타임스)라는 지적이 나온다. 존 보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파리 외곽의 변두리는 이민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의 상징적 공간”이라며 “절망에 빠진 이민자 젊은이들이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가 선동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젠빌리에·센생드니(프랑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서방의 전직 대통령과 총리 중 상당수는 퇴임 후에도 자신의 전공 분야를 살려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현직 때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 인사들도 있다. 현직 시절 쌓은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퇴임 이후 사장(死藏)하는 것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손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퇴임 후 오히려 주목받은 지미 카터 미국 전직 대통령 중 퇴임 후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은 단연 지미 카터 전 대통령(1977∼1981년 재임). 워싱턴 정가에는 “처음부터 전직 대통령으로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다. 21년 전인 1994년 북한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을 성사시키며 1차 북핵 위기를 풀어 낸 주역이다. ‘인권 외교’를 전면에 내세웠던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잇따라 ‘외교 참패’를 맛보면서 단임 대통령에 머물렀다. 하지만 퇴임 후 고향인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카터 센터’를 세운 그는 중동 북한 등 세계 분쟁 지역에서 해결사 노릇을 자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세계 각 지역의 분쟁 종식, 민주주의 실천, 인권 보호, 질병 및 기아 퇴치 등을 목적으로 각계의 후원과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카터 센터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비정부기구(NGO)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각국의 인권 상황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국보법을 적용한 것은 유감”이라는 성명을 내 ‘내정간섭’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절친 클린턴과 부시, 대통령 리더십 연구 나서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을 대표하는 1946년생 동갑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9월엔 ‘대통령 리더십 연구(Presidential Leadership Scholars·PLS)’ 프로그램을 직접 발족시켰다. PLS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이 주관하는 본격적인 대통령 리더십 연구 프로그램. 부시 전 대통령은 PLS 프로그램에 대해 지난해 9월 발족식에서 “대통령 리더십이라는 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리더십을 의미한다. 이 프로그램에 정치학 연구자는 물론이고 군인 사업가 등 다양한 사람이 관심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PLS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는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2016년 민주당 후보로 대선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만큼 클린턴 가문의 정치 기반 조직의 성격도 강하다.각종 재단과 협회 세우는 유럽 전직 정상들 유럽의 전직 대통령과 총리들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국제 봉사 활동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1995∼2007년 재임)은 퇴임 후 2008년 6월에 ‘시라크 재단’을 만들어 △국제분쟁 예방 △보건의료 지원 △문화 다양성 보전 등에 매진하고 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1974∼1981년 재임)은 퇴임 후 한동안 국내외 문제에 관여하지 않다가 2002∼2003년 ‘유럽 미래 대표자회의’ 의장을 맡아 유럽연합(EU) 헌법 초안 작성을 주도했다. 여러 명의 전직 대통령이 모이는 경우도 있다. 전 세계 원로 정치인들의 모임인 ‘디 엘더스’가 대표적. 카터 전 대통령,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 그로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 등이 중심이 돼 2007년 결성됐다. 지중해의 섬나라인 키프로스 분쟁 중재가 대표적 업적이다.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파리=전승훈 특파원 }
15일(현지 시간) 벨기에에서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지령을 받은 테러조직이 적발돼 파리발(發) 테러 공포가 서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테러범들은 수도 브뤼셀을 포함해 벨기에 전역의 경찰서를 공격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IS가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유럽의 심장부’를 겨냥한 것으로 추정돼 충격을 주고 있다. 15, 16일 벨기에 프랑스 독일에선 테러 관련 용의자가 25명 이상 체포됐다. 이 와중에 16일 파리 근교에선 인질극 소동이 벌어지고 파리 기차역에선 폭발물 해프닝이 발생해 유럽 각국은 이날 하루 내내 촉각을 잔뜩 곤두세워야 했다. 16일 오후 프랑스 파리 서북부 콜롱브의 한 우체국에서 무장 괴한 1명이 “나는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있다”며 시민 2명을 잡고 인질극을 벌였다. 헬리콥터까지 출동시키며 프랑스 전역이 긴장했지만 1시간여 만에 종료됐다. 현지 언론은 실연으로 인한 우발 범행으로 보고 있다. 이날 오전엔 폭발물이 든 것으로 의심되는 빈 가방이 발견된 프랑스 파리 동역(Gare de l‘Est)이 폐쇄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아 1시간 만에 운행이 재개됐다. 이에 앞서 벨기에 경찰은 15일 오전 독일과 인접한 동부 도시 베르비에에서 테러 조직의 은신처인 건물을 급습해 총격전 끝에 용의자 2명을 사살하고 부상한 1명을 붙잡았다고 발표했다. 3명의 용의자는 모두 벨기에 국적으로 일주일 전 시리아에서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전을 지휘한 에리크 판 더르 시프트 검사는 “(용의자들은) 자동화기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으며 벨기에 전역의 경찰서를 대상으로 테러 공격을 감행하기 몇 시간 전이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EU 본부가 있는 수도 브뤼셀 등 10여 곳에 대한 압수수색도 벌여 테러와 관련된 인물 1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브뤼셀과 안트베르펜의 유대인 학교들은 ‘잠재적 테러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휴교에 들어가거나 문을 닫았다고 영국의 가디언이 보도했다. CNN은 벨기에 고위 정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테러범들이 IS의 지령을 받고 공격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몇 주일 동안 IS가 유럽 국적 조직원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가 테러 공격을 감행하라는 지시를 내린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또 서방 정보기관의 말을 인용해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내에 20개 잠복조직 소속 120∼180명이 관련된 테러 위협이 드러났다. EU와 중동의 정보기관들이 벨기에 또는 네덜란드에 ‘임박한 위협’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경찰은 이날 파리 교외에서 파리 연쇄 테러와 연관됐다고 의심되는 남자 9명, 여자 3명을 체포했다. 독일 경찰은 이날 베를린에서 IS 전사를 모집하고 활동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2명의 남자를 체포했다. 유럽 전역에 테러 공포가 번지면서 최근 시리아 내전에 참여하고 돌아온 유럽의 젊은 무슬림들이 당국으로부터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CNN은 “최근 시리아 내전에 참여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유럽 국적자가 500여 명인데 이 중 영국인이 250명, 프랑스인은 200명, 벨기에인은 70명가량 된다”고 보도했다. 한편 파리 테러범들이 사용한 무기의 대부분은 테러범 중 한 명인 아메디 쿨리발리가 브뤼셀의 암시장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벨기에 일간 ‘헷 라츠터 니우스’가 이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범인 쿠아시 형제가 사용한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로켓발사기는 쿨리발리가 브뤼셀의 미디 역 인근 암시장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전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권재현 기자}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사건 이후 파리 당국이 최고 수준의 경계를 펴는 가운데 파리 교외 우체국서 인질극이 또 발생했다. AFP 통신은 16일 오후 1시경(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교외 콜롱브의 한 우체국에 칼라쉬니코프와 권총을 든 무장 괴한이 침입해 인질 두 명을 붙잡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괴한의 인질극은 지난 주 일어났던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의 언론사 테러 등 연쇄 테러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장 주변에는 헬리콥터가 비행하고 있으며 우체국 주변은 출입이 통제됐다. 현지 언론은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범인이 과거에도 강도 범죄를 범한 전력이 있다”며 “현지 경찰이 이 괴한과 인질 석방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과 석학들이 이번 테러에 대해 성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잇달아 내놓았다. 현지 일간지와 방송 인터뷰, 기고로 종합해 본 이들의 생각을 정리해본다.○ 자크 아탈리(72) “세계화, 비극도 함께 가져와” 테러범들은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인들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인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게서는 근대적 이성주의, 형제애, 톨레랑스(관용), 정교분리 원칙 같은 프랑스 공화국이 내세워 온 가치를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시민이 왜 이런 짓을 하게 됐는지 우리는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사회 통합에 성공하지 못했다. 우선 ‘침묵’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 순간 프랑스인들은 모두들 종교와 신앙에 관계없이 함께 애도하고, 서로 웃겨주고, 풍자해야 한다. ‘조롱’과 ‘풍자’야말로 야만적 행위에 대한 최고의 대응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지난 50∼60년간 평화 속에서만 살아와 비극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세상에서 비극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화는 ‘비극’도 함께 가져왔다. 우리는 이제 비극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대로 ‘복종’하는 것은 결코 답이 아니다. 용기를 갖고 비극을 이겨나가야 한다. 테러리즘과 맞서는 우리의 선택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시정권’ 때의 비굴한 모습을 반복할지, 런던에 있던 ‘자유 프랑스’ 정부의 모습이어야 할지를 보여주어야 한다.(프랑스 ‘쉬드라디오’ 인터뷰)○ 에드가르 모랭(94) “다른 종교에 귀 기울여야” 이번 사건은 프랑스 공화국의 심장을 강타했다. 공화국의 이상인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이 침범당했다. 하지만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이 이슬람 신자들의 신앙에 모욕을 줄 수 있고, 예언자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이는 자제심도 필요하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 공항은 지하드(이슬람 세계를 확대하기 위한 성전·聖戰)를 위해 떠나는, 지하드에서 돌아오는 프랑스 무슬림 청년들로 분주하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향연이 프랑스 내부로 옮겨지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분쟁이 이제 프랑스에서 진행 중이다. ‘공포’가 기독교를 믿는 프랑스인, 아랍계 프랑스인, 유대계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을 느끼면서 사회적 결속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독일, 스웨덴까지도 이슬람 혐오증이 번져가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즘과 비시정권하에서 행해졌던 ‘반(反)유대주의’ 폭력이 재연될까 우려된다. 이번에 전 세계 지도자들과 프랑스 국민들이 하나가 돼 나섰던 ‘공화국 행진’은 이러한 두려움에 질 수 없다는 문명인들의 응답이었다.(프랑스 일간 르몽드 기고)○ 움베르토 에코(83) “2차대전과 같은 공포 엄습” 모든 이슬람교도를 ‘극단주의자’로 정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나치즘’이다. 세계 정복이라는 종말론적 욕망을 위해 인종 말살의 전술을 택한 사람들이다. 세계는 이미 새로운 양상의 전쟁을 시작했다. 파리 테러로 인한 공포는 2차 대전과 비슷하다. 나는 당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폭탄과 함께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나는 이미 30년 전에 기고한 글에서 앞으로 이민은 단지 공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나들어 전방위로 확대된 ‘글로벌 이동’의 물결에 직면할 것이라고 썼다. 이민자들과 본토인들 간에 새로운 균형이 이뤄질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할 것이라고 이미 경고했던 것이다. 책을 놓고 무기를 드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보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지금은 기독교 성서와 꾸란(이슬람 경전)을 놓고 서로 학살을 하고 있다.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詩)’를 통해 이란의 최고 권력자로부터 사형을 선고(파트와)받지 않았는가. 현대사회는 책을 놓고 벌이는 일신교들의 거대한 전쟁을 맞고 있다. (총이 아니라) 책의 텍스트에 담긴 자신들의 사상을 상대에게 강요하려고 일으키는 전쟁 말이다.(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우리는 모두 샤를리(테러 당한 잡지사)다.” “모든 인종주의에 반대한다.” “단결하자.” 11일 오후 프랑스 파리가 거대한 함성으로 뒤덮였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파리 시민 1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프랑스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은 끔찍한 테러 사건에도 불구하고 파리 시민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이날 오전 일찍부터 집회가 예정된 레퓌블리크 광장과 나시옹 광장으로 인파가 몰려들었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국민들에게 “테러 희생자들과의 연대감을 표출하고, 테러를 막는 가장 강력한 방어벽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점을 보여주자”며 동참을 호소했다. 발스 총리는 전날 연설을 통해 ‘이슬람 극단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테러 피해를 입은 잡지사 샤를리 에브도 직원들도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다음 주 ‘생존자 특집’호 100만 부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날 행진에 참가한 100만 인파는 전날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 열린 집회에서 기록한 70만 명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평화 시위행진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전 세계 60여 명의 국가지도자가 참석해 ‘상처 입은’ 프랑스를 위로했다. 또한 이슬람국가인 터키 아흐메트 다부토을루 총리와 팔레스타인 마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도 참석해 테러 행위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프랑스 대테러 당국은 이날 행진에 참가한 세계 지도자들과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경찰 2000명과 군인 1350명을 동원한 데 이어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베르나르 카즈뇌브 프랑스 내무장관은 이날 오전 에릭 홀더 미국 법무장관을 비롯해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미국 유럽 내무장관들과 함께 ‘반테러 국제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 장관들은 테러 방지를 위해 유럽 국경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무기 밀매와 인터넷에 대한 감시 정보를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홀더 장관은 이 자리에서 “다음 달 18일 워싱턴에서 반테러 정상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테러범 3명이 사살되면서 파리 테러는 일단락됐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 이번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국제테러단체 알카에다와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프랑스에 대한 추가 테러를 예고한 상태다. 프랑스 당국은 잠복 중인 테러 조직원들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정보에 따라 이날 모든 경찰과 군인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 기록을 지우고 항상 총기를 휴대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유대인 공동체는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테러가 발생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10일 오후 6시경 기자가 찾은 파리 동부의 인질극 현장 유대인 식료품 가게에는 수천 명의 추모객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찰이 쳐놓은 저지선 주위에서 침묵 속에 헌화하고, 촛불을 켰다. 평범한 동네 이웃이 참변을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흐느끼는 아주머니들도 많았다. 유대계 주민인 조엘 왈리드 씨(46)는 “이제 집 앞에 장보러 나갈 때까지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라며 공포에 떨었다. 한편 11일 새벽 샤를리 에브도의 이슬람 풍자만화를 게재한 독일 신문사에 화염병이 날아들어 사무실과 서류 일부가 불에 탔다. 독일 경찰은 방화 용의자 두 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지금 프랑스는 국가 전체가 상중(喪中)이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일어난 이틀째인 8일 오후 8시 평소 오렌지색 불빛과 하얀 서치라이트로 파리의 밤하늘을 수놓았던 에펠탑 조명이 꺼졌다. 11일까지로 정해진 애도 기간 중 매일 낮 12시가 되면 전 국민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추모의 종소리를 신호로 직장에 있건, 학교에 있건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한다. 지하철과 버스에 탄 승객들도 1분간 침묵 속에 고개를 숙인다. 의사들도 ‘내가 샤를리다’(Je suis Charlie)라는 배지를 달고 일하고 있으며 고속도로 전자 전광판에도 이 문구가 등장했다. 뿌리 깊은 정치적 대립과 만성적인 사회적 분열에 시달려 온 프랑스가 이번 테러 사건 이후 ‘국민 통합’을 화두로 내걸었다. 가장 먼저 화합 행보를 보인 건 정치인들이다. 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을 이끄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초청으로 8일 엘리제궁을 찾아 회담했다. 반(反)이민을 기치로 내걸고 최근 국민 지지도를 높여 온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도 9일 대통령의 초청으로 엘리제궁을 찾았다. 외신들은 “서로 잡아먹을 듯이 정쟁이 치열한 프랑스 정계에서 전에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뉴스”라고 전했다. 언론의 차분한 태도도 눈길을 끈다. 사회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불필요한 ‘마녀사냥’은 최대한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범인을 놓친 경찰 간부를 문책해야 한다는 식의 여론도, 샤를리 에브도 건물에서 범인들의 위협에 비밀번호를 눌러 편집국 문을 열어 준 여성 만화가를 비난하는 여론도 없다. 여론의 초점은 오로지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극단주의 테러 세력에 대한 응징에 집중되고 있다.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 TF1, 공영방송 프랑스텔레비전을 비롯해 ‘France24’와 같은 뉴스 전문 채널의 메인 뉴스에서는 테러 세력에 대한 비판을 집중 보도하는 한편 이슬람 종교 지도자 초청 토론 등 특집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해 “프랑스가 잃어버린 ‘자유, 평등, 박애’와 톨레랑스(관용)를 되살려 공화국의 가치를 되찾자”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 일이 반이슬람 정서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슬람 인사와 단체들도 한목소리로 국민 통합을 외치고 있다. 프랑스무슬림위원회(FMC) 전직 지도자인 무함마드 무사위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메시지는 프랑스가 단결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테러범 쿠아시 형제 중 형 사이드(35)는 2011년 예멘으로 가서 수개월 머무르며 아라비아반도알카에다(AQAP)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예멘알카에다는 알카에다 분파 중 가장 위험한 조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파리에선 미국 유럽 내무장관들이 참석하는 반테러 국제회의가 열린다. 베르나르 카즈뇌브 프랑스 내무장관은 “각국이 프랑스와 연대를 보여 주는 한편 공동의 문제인 테러리즘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가 잇따른 테러와 인질극 공포로 얼어붙었다. 7일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저지른 쿠아시 형제가 9일 오전 파리 북동부 다마르탱앙고엘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날 오후 1시경 파리 시내 포르트드뱅센의 한 유대인 식료품 가게에서 무장괴한들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인질 5, 6명을 붙잡고 경찰과 대치해 최소 2명이 숨졌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사망 사실을 부인했다. AFP통신은 이번 사건의 용의자들이 전날 파리 몽루주에서 발생한 여성 경찰관 총격 살해범과 동일하며 이들의 신원이 흑인 남성 아메디 쿨리발리(32)와 여성 하예 붐디엔(26)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한 경찰 소식통은 “몽루주 총격사건 용의자는 쿠아시 형제가 가입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뷔트 쇼몽 네트워크’의 일원이며 이들이 서로 알고 지냈다”고 말했다. 이를 감안할 때 7일부터 사흘간 벌어진 일련의 테러와 인질극이 사전에 기획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언론사 테러 형제 “순교자로 죽겠다” 외쳐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자행한 사이드 쿠아시(35)와 셰리프 쿠아시(33) 형제는 이날 오전 9시경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35km 떨어진 다마르탱앙고엘의 한 인쇄공장에 침입해 최소 한 명의 인질을 붙잡았다. 이텔레 방송은 “쿠아시 형제가 경찰을 향해 ‘순교자로 죽겠다’고 외쳤다”고 전했다. 이 인쇄공장은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약 12km 떨어져 있다. 현장에는 프랑스 대테러 부대인 헌병특수부대(GIGN)가 투입됐고 장갑차와 헬기 수십 대, 구급차 등이 배치됐다. 테러범 검거 작전으로 드골 공항의 도착 활주로 두 면이 폐쇄됐고 최소 2대의 에어프랑스 비행기가 착륙을 포기하고 인근 공항으로 회항했다. 이에 앞서 테러범들은 푸조 206 차량을 탈취해 2번 국도를 따라 도주하던 중 경찰의 추격을 받고 총격전을 벌였다. 로이터는 추격 과정에서 1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고 보도했으나 경찰은 사망자 및 부상자 발생에 대해 부인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흘러 넘쳐야 할 것은 잉크지, 피가 아니다.’ ‘샤를리 당신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지켜주세요. 극단주의와 증오로부터.’ 8일 오전 1시경 프랑스 파리11구에 위치한 시사비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본사 건물 앞 도로는 삼엄한 통제 속에 긴장감이 흘렀다. 깨진 유리창 파편과 백미러, 범퍼 조각 등 전날의 끔찍한 테러 흔적이 도로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도주하던 테러범이 부상으로 넘어진 경찰관 아흐메드 메라베트(42)가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데도 머리를 조준해 총을 쏴 잔인하게 살해한 지점에는 여전히 붉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건현장인 건물에는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주변으로 몰려든 수많은 시민들은 도로 한편에 프랑스를 상징하는 삼색기와 함께 추모의 꽃다발과 촛불을 수북이 쌓아 놓았다. 외신기자들이 ‘연대’의 뜻으로 두고 간 명함과 기자증도 보였다. 영국 스카이TV 기자 장피에르 씨는 테러로 희생된 스테판 샤르보니에 편집장이 남긴 ‘무릎 꿇고 사느니, 선 채로 죽겠다’는 메모를 촛불 옆에 놓고 있었다. 그는 “이번 사건은 표현의 자유의 심장인 언론사 편집국에서 벌어진 야만적 테러라는 점에서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치를 떨었다. ‘표현의 자유’를 생명처럼 여겨 온 프랑스인들에게 이번 사건은 충격과 분노, 공포 그 자체이다. 프랑스가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지켜 온 ‘톨레랑스(관용)’의 전통을 뿌리째 뒤흔드는 참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범인들이 보인 냉혹하고 무자비한 ‘야만성’은 프랑스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시민들은 ‘두려움에 질 수 없다’며 샤를리 에브도 건물 인근의 레퓌블리크(공화국) 광장에 모여들었다.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상징하는 유서 깊은 광장인 이곳은 1968년 ‘나는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5월 혁명’의 정신이 불타오른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8일 10만여 명이 거리로 나와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오전 11시를 기해 전국에서 일제히 1분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했다. 이날 오전 2시가 넘은 시간까지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 한 사람 큰 소리를 내거나 싸우는 사람은 없었다. 40대 백인 여성이 “프랑스 공화국은 기독교든 무슬림이든 불교든 어떤 증오나 차별도 없이 공화국의 가치로 살아가는 나라”라고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옆에 있던 북아프리카 출신 아랍인 무함마드 씨(35)는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 역시도 오늘 밤 울고 있을 것”이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전날 밤에 열린 집회에서도 광장은 묘한 긴장감과 분노가 지배했고, “증오를 버리고 하나가 돼야 한다”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가득 찼다. 광장에서 만난 베로니크 씨(52·여)는 “풍자만화는 TV 뉴스의 ‘기뇰(인형극)’처럼 프랑스인들이 오랫동안 즐겨 온 표현의 무기”라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런 자유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의 상징인 ‘마리안’ 동상 아래에는 볼펜 수천 자루가 수북하게 쌓였다.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응원하는 뜻으로 놓고 간 것이다. 그 옆에는 ‘언론의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이제 그만!’ 등 영어 아랍어 중국어 등 세계 각국 언어로 된 메시지와 추모 만평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수많은 메시지 속에 ‘나는 샤를리입니다’라는 한국어로 쓴 메시지도 보였다. 한편 프랑스판 구글은 애도의 의미로 검은 리본을 첫 화면에 내걸었다. 프랑스 AFP통신도 편집국 기자들이 단체로 ‘내가 샤를리다’ 슬로건을 들고 있는 사진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에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겁먹지 마(Pas Peur/Not Afraid)’라는 슬로건도 퍼지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정부부터 시민들까지 힘을 합쳐 “테러에 결코 질 수 없다”고 나섰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8일 엘리제궁에서 보수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 대표인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전격 회동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비상각의에서 테러에 맞서기 위해 국민적 통합 방안을 논의하고, 정적까지 포함해 정치계, 종교계, 사회지도층 인사와 광범위하게 만나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나자트 발로벨카셈 교육부 장관은 이번 테러사건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공문을 전국의 교사들에게 보냈다. 특정 종교에 대한 증오보다는 ‘표현의 자유’ ‘관용’ 등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화국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긍정적으로 교육해 달라는 당부였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8일 레퓌블리크 광장을 찾아 “두려워하지 말자”며 시민들을 격려했다. 마린 상송 씨(58)는 “종교와 피부색을 떠나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모인 이 광장의 메시지는 분명하다”며 “테러는 단합된 사람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프랑스에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고 있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사망)의 장녀 유섬나 씨(48)에 대해 한국 송환 결정이 내려졌다. 프랑스 파리 항소법원은 7일(현지 시간) 오후에 열린 공판에서 한국과 프랑스 양국 사이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492억 원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유 씨를 한국으로 송환하라고 선고했다. 이에 대해 유 씨의 변호인은 규정에 따라 5일 내로 프랑스 대법원에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 씨 측은 대법원에서도 한국 송환 결정이 나면 유럽사법재판소까지 항소할 계획이어서 유 씨의 송환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경악과 공포, 분노…. 최근 20여 년간 프랑스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 공격으로 프랑스가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파리 시내 한복판이 무방비로 뚫렸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의 시사만화 잡지 ‘샤를리 엡도’가 무장 괴한들의 테러 공격을 받자 프랑스 정부는 전국에 최고 수준의 테러경보를 내렸다. 특히 추가 테러를 막기 위해 종교시설과 주요 쇼핑가, 언론기관, 교통시설 등을 집중 감시 중이다. ○ 한낮의 파리 중심부 테러 이날 오전 11시 30분경 파리 11구에 있는 ‘샤를리 엡도’ 본사 건물에 최소 4명의 무장 괴한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검은색 옷과 마스크에, 카키색 탄약 자루를 착용하고 있었고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로켓포, 펌프연사식 산탄총 등으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BBC는 “전형적인 이슬람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들의 복장이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건물에 침입하기 전부터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사격하기 시작했고 잡지사 편집국에 침입한 뒤 5분 만에 수십 발의 총탄을 발사해 총 12명의 기자와 만화가, 직원, 경찰관들이 숨졌고 20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날 공격으로 ‘샤를리 엡도’의 발행인 겸 만화가인 샤르브를 비롯해 월링스키, 카부, 티그누 등 이 잡지사의 대표적인 만화가가 모두 사망했다고 경찰 관계자가 확인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테러범들은 잡지사에 진입하자마자 2층으로 올라가 뉴스 작성실에 있는 기자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이날 총격으로 잡지사에 있던 일부 직원은 옥상으로 피신해 목숨을 건졌다. 파리 경찰청 대변인 로코 콩탕토는 “테러범들이 모든 사람에게 총을 쐈다. 이것은 대량학살”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뒷문을 빠져나와 차량으로 탈출하기 직전에 골목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BFTM TV가 입수한 현장 비디오에서는 괴한들이 경찰과 교전을 벌이면서 “예언자(무함마드)의 복수가 행해졌다!” “샤를리 엡도는 죽었다” “알라후 아끄바르(신은 위대하다)!”라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전문 테러집단의 치밀한 범행 테러범들은 잡지사에서 나온 뒤 리샤르 루누아르 대로에서 차량 운전자를 위협해 차량을 탈취한 후 파리 외곽의 ‘포트팡틴’ 방향으로 도주했다. 무장 괴한들의 무기와 복장은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소속 테러주의자들이 이라크 모술 등지에서 사용하던 것과 유사하다. 프랑스 테러 전문가 장샤를 브리자드 씨는 BBC와 인터뷰에서 “이번 공격은 매우 잘 준비된 시나리오에 의한 공격”이라고 평했다. 테러리스트들이 방탄조끼와 군용 무기로 중무장했고, 짧은 시간에 대량 학살을 하고 도주한 점이 치밀한 시나리오에 의한 범행이라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들루아 ‘국경 없는 기자회(RSF)’ 회장은 “파키스탄이나 소말리아에서나 볼 수 있는 야만적인 공격이 어떻게 프랑스 한복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가”라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며, 이러한 폭력이 반복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파리 19구에서 첫 번째 차량을 버린 후 두 번째 차량을 탈취해 파리 동북부로 달아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경찰은 대테러 전담 경찰 특수부대를 동원해 사상 최대의 검거작전을 벌이고 있다. ○ 프랑스 정부 최고 테러경보 이번 테러사건은 프랑스에서는 1995년 7월 25일 파리 생미셸 광장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이슬람무장그룹(GIA) 소행의 테러공격 이후 가장 규모가 크다. 1995년 당시 테러에서는 8명이 사망하고 117명이 부상했다. AP통신은 “최근 20년간 프랑스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사건”이라고 전했다. 이날 사고 직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 플뢰르 펠르랭 문화장관, 안 이달고 파리시장과 함께 테러사건이 발생한 샤를리 엡도를 방문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현재 테러범들을 쫓고 있으며 이들을 반드시 검거해 프랑스 사법제도의 심판대에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긴급 내각회의를 주재하고 파리 인근 수도권 일대의 종교시설과 쇼핑몰, 언론기관, 교통시설 등에 최고 수준의 경계경보를 내렸다. 이날 테러가 발생하기 전 IS는 샤를리 엡도가 자신의 지도자인 알 바그다디의 신년사 모습을 풍자한 만화를 트위터에 올리자 몇 분 뒤 “프랑스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총기 난사에 파리의 중심부가 뚫렸다. 7일 오전(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11구에 있는 주간지 ‘샤를리 엡도’ 사무실에 무장 괴한 4명이 들어와 총기를 난사해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일간 르피가로와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사망자 중에는 경찰관 2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부상자 중 6명이 중태에 빠져 희생자는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에는 주간 편집회의가 있어 사무실에 대부분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검은색 옷을 입고 복면을 한 괴한들이 이날 오전 11시 30분경 러시아제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로켓포로 무장하고 잡지사에 난입해 소총을 난사했다. 이들은 약 5분간 50여 발을 난사한 뒤에 뒷문으로 빠져나가 파리 동북부 외곽으로 도주했다. 현지 방송인 BFM TV가 입수한 현장 비디오에 따르면 이들은 총기를 난사하며 “예언자의 복수를 하러 왔다”고 외쳤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괴한 중 한 명이 서툰 프랑스어로 “언론에 우리가 예멘에서 온 알카에다라고 전하라”고 소리쳤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날 파리를 비롯해 수도권 일대에 최고 수준의 테러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사건 발생 직후 현장에 도착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야만적인 테러 공격에 맞서 프랑스 국민은 단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비상각료회의를 소집했다. 프랑스 경찰은 이날 총격 사건이 발생하기 한 시간 전에 샤를리 엡도가 트위터를 통해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를 풍자한 만화를 올린 점을 고려할 때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추정하고 무장 괴한들을 추적하고 있다. 샤를리 엡도는 2011년 9월 무함마드(마호메트)를 풍자한 만화를 실었다가 폭탄공격을 받았고, 2012년에는 무함마드 누드를 묘사한 만평을 게재했다가 이슬람 단체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제소되기도 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프랑스에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고 있는 유병언(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 섬나 씨(48)에 대해 한국 송환 결정이 내려졌다. 프랑스 파리 항소법원은 7일 오후(현지 시간)에 열린 공판에서 한국과 프랑스 양국 사이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492억 원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유 씨를 한국으로 송환하라는 선고를 내렸다. 이날 바르톨랭 판사는 재판이 시작된 지 10분 만에 “프랑스에 있는 한국인 범죄 혐의자가 한국으로 인도돼 재판받은 사례도 있고, 한국 법원이 공정하게 재판할 것으로 믿는다”며 송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유 씨의 변호인인 에르베 테밈 변호사는 “만일 유 씨가 한국으로 송환된다면 세월호 참사의 희생양을 찾는 분위기에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며 “프랑스로서는 수치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변호인 측은 규정에 따라 5일 내로 프랑스 대법원에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 씨 측은 대법원에서도 한국 송환결정이 나면 유럽사법재판소까지 항소할 계획이어서 유 씨의 송환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총기난사에 파리의 중심부가 뚫렸다. 7일 오전(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11구에 있는 주간지 ‘샤를리 엡도’ 사무실에 무장한 괴한 4명이 들어가 총기를 난사해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일간 르피가로와 BBC가 보도했다. 사망자 중에는 경찰과 2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부상자 중에 6명이 중태에 빠져 희생자는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에는 주간 편집회의가 있어 사무실에 대부분이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검은색 옷과 복면을 쓴 괴한들이 이날 오전 11시 30분경 러시아제 칼라쉬니코프 소총과 로켓포로 무장하고 잡지사에 난입해 소총을 난사했다. 이들은 약 5분간 50여 발의 총기를 난사한 뒤에 뒷문을 통해 빠져나가 파리 북동부 외곽으로 도주했다. 현지 방송인 BFM TV가 입수한 현장 비디오에 따르면 이들은 총기를 난사하며 “예언자(마호메트)의 복수를 하러 왔다”고 외쳤다. 파리 정부는 이날 파리를 비롯해 수도권 일대에 최고 수준의 테러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사고 발생 직후 현장에 도착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이번 공격은 의심할 여지없는 테러공격”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막는 야만적인 테러 공격에 맞서 프랑스 국민이 단결해야한다”고 호소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비상각료회의를 소집했다. 프랑스 경찰은 이날 총격 사건이 발생하기 한 시간 전에 트위터를 통해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 지도자 아부 바카르 알 바그다디를 풍자한 만화를 올린 점, 무장 괴한들의 무기와 범행 수법이 IS의 지령을 받은 기존 테러 조직의 총기난사테러와 유사한 점을 들어 이들의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추정하고 무장 괴한들을 추적하고 있다. 샤를리 엡도는 2011년 9월 마호메트를 풍자한 만화를 실었다가 폭탄 공격을 받았고, 2012년에는 마호메트 누드를 묘사한 만평을 게재했다가 이슬람 단체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제소되기도 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단일 통화인 ‘유로화’가 현재와 같은 국제적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올해 영국,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덴마크, 핀란드, 에스토니아, 폴란드 등 유럽 8개국이 일제히 총선을 치르게 되면서 유로화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유럽 각국에서 유로화와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극우 극좌파 신생 정당들이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다 유로존 유지 및 유럽연합(EU) 탈퇴 여부가 핵심 이슈로 등장해 유럽의 경제와 정치 지형도가 크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로존에 속하지 않는 영국에서도 EU 탈퇴 여부가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새해 벽두부터 유로화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5일 국제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가치가 달러화 대비 9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심리적 저항선인 유로당 1.2달러가 무너진 것. CNN은 이날 유로화 가치 하락이 △달러화 강세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GREXIT·Greece와 Exit의 합성어) 우려 △유럽중앙은행(ECB)의 미국식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 등 세 가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유로화의 추락은 1월 25일 그리스 총선에서 현재의 긴축정책 종식을 공언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승리해 재정 개혁 정책을 포기한다면 독일 정부가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사실상 용인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최근 보도로 촉발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나서 “그리스는 구제금융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국채 매입을 통한 전면적인 양적완화 가능성을 밝힌 것도 유로화 약세에 불을 지폈다. 독일 정부는 파문이 확산되자 “독일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반대한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안그룹 회장은 5일 “유로존이 2015년에 심각한 ‘정치적 리스크’를 맞고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유럽 총선이 ‘EU와 유로존’의 운명뿐 아니라 20세기를 지배해 왔던 각국의 전통적인 중도 우파-중도 좌파 정당들의 몰락을 불러와 정치 지형도를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유럽 8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지지만 최대 관심은 영국 총선(5월)이다. 집권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재집권에 성공하면 2017년까지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EU,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파 영국 독립당(UKIP)이 1위를 차지했던 충격 때문이다. 캐머런 총리는 4일 BBC에 출연해 “총선 결과에 따라 UKIP와 연정 협상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리스에서 총선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급진 좌파 시리자는 긴축정책 포기와 유로존 탈퇴, 국가 부채 탕감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카스텐 브르제스키 IN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가 재정 개혁을 거부하고 유로존을 탈퇴하는 사태가 현실화하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로 전염돼 유로존 붕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에서도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27%)에 올랐다. 포데모스가 승리하면 장기 독재를 해 온 프랑코 총통 사후 40여 년간 스페인을 지배해 온 중도 우파 국민당(PP)과 제1야당인 사회노동당의 양당 체제가 무너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와 핀란드에서는 극우 정당들의 돌풍이 거세다. 덴마크 인민당(DPP)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21%를 차지해 1위에 올랐다. 로버트 페스턴 BBC 경제 담당 에디터는 “2015년 유럽의 정치 지형도는 그리스 재정 위기가 촉발된 2010년보다 더 위험하다”며 “각국의 극우-극좌 정당뿐 아니라 전통적 주류 정당들까지 고통스러운 개혁보다는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 가장 큰 위기”라고 지적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한 외신 반응이 한마디로 뜨겁다. 가장 관심을 보이는 나라는 일본. 신문들은 지난 한 달간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복수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까지 자신들의 국내 주요 뉴스를 다루듯 세세하게 속보를 전하고 있다. 민영방송들은 낮 시간대에 특집을 편성하기도 했다. 도쿄(東京) 국립병원에 입원 중인 한 교민은 “일본인 환자들 중에는 ‘조현아’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다니기가 민망할 정도”라고 했다.○ 가장 열 올리는 일본 언론 이런 관심은 일본 내 혐한(嫌韓) 분위기와도 무관치는 않아 보인다. 한 교민은 “세월호 때에도 그랬지만 한국에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좀 과다하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30대 여성이 오너의 딸이라는 이유로 경영을 맡는 경우는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했다. 기업이미지(CI) 컨설팅 회사인 ‘라이로’의 다나베 신이치(田邊眞一) 회장은 1일 본보 기자에게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한국 재벌의 세습 경영을 북한 세습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시각까지 있다.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했지만 시민의식이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평생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의 서울∼아키타(秋田) 노선 존속을 위해 보조금을 집행하고 있는 사타케 노리히사(佐竹敬久) 아키타 현 지사는 지난달 25일 출입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이번 일로 안전운항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대한항공은 반성하길 바란다”면서 “재력과 권력이 있는 자는 사람을 아래로 보기 쉽다. 특히 젊은 국회의원 등이 그렇다”며 일본 정치인들을 겨냥하기도 했다. 유럽도 다르지 않다. 주재원 아빠를 따라 2년 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의 한 국제학교에 다니는 중학생 C 양(15)은 최근 ‘홈룸(HR)’ 수업시간에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교생 3개 반이 팀별로 겨루는 토론 경쟁 시간에 한국의 ‘땅콩 회항’ 사건이 주제로 다뤄졌기 때문이다. 지도교사는 관련 뉴스 기사를 읽어 주더니 토론 주제로 ‘대한항공이 왜 사과해야 하는가’를 잡았다. 학년 내 유일한 한국 학생인 C 양은 “모두 나를 쳐다보는데 ‘한국에서 생긴 일이니 네가 답해 봐’라고 묻는 것 같았다.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일은 한-프랑스 외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16년 한-프랑스 외교수립 130주년을 기념하는 ‘2015∼2016 상호교류의 해’ 한국 측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 파리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이번 일로 조 회장의 운신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상호 교류 행사가 차질을 빚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재벌 비판 가세하는 외신들 미국 영국 등 주요국 언론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재벌 경영의 폐해가 드러났다고 너도나도 논평을 내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한국 사회의 속살을 파고든 가장 고통스러운 염증을 드러낸 일”이라며 이렇게 평했다. “기장은 비행기가 게이트를 떠나 주행을 시작하면 회사 임원진으로부터 어떤 항로 변경도 지시받지 않는 게 원칙인데 한국의 재벌 시스템은 승무원과 기장이 보여준 무릎 꿇기와 노예적 복종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런 상황이라면 종업원들은 어떤 도전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일을 두고 한국 내 커지는 양극화가 분노를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미 CNN은 “경제적 격차가 커지면서 재벌의 일탈에 대한 분노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CNN의 대표 앵커 앤더슨 쿠퍼는 “여객기를 회항시킨 이유가 너츠(땅콩)를 접시에 담지 않고 봉지째 갖다 줘서였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조 전 부사장에 대해 “바보 같다”는 막말까지 했다.일본 프랑스 미국 특파원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