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12일(현지 시간) 영국 조기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압승을 거둔 주요 이유로 제1야당인 노동당의 텃밭이었던 ‘레드월’의 민심 이반이 꼽힌다. 중북부의 석탄, 철강, 제조업 밀집 지역으로 ‘영국판 러스트벨트(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로도 불린다. BBC에 따르면 보수당은 약 100석이 걸린 레드월에서 50석 이상을 확보했다. 비숍오클랜드, 워킹턴, 렉섬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곳에서도 승리했다. 레드월은 탄광 통폐합 등을 단행한 ‘보수의 거두’ 마거릿 대처 전 총리(1979∼1990년 집권) 때 몰락해 반(反)보수당 정서가 강했다. 이후 30여 년간 노동당 텃밭이었지만 최근 반이민 정서로 보수당 지지자가 늘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10월 말 총선 실시를 발표한 후 줄곧 이곳을 누볐다. 현지 언론은 ‘산토끼’ 공략에 나선 전략이 주효했다고 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2016년 대선에서 러스트벨트를 집중 공략해 백악관 주인이 됐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후 3년 반 넘게 이어진 브렉시트 혼란 정국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도 보수당의 승리 요인이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브렉시트에 모호한 태도로 일관해 ‘탈퇴’란 단순 명료한 메시지를 고수한 존슨 총리와 대비됐다. 노동당은 불과 154석을 얻었던 1935년 선거 이후 84년 만에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코빈 대표는 “다음 총선 땐 대표를 안 할 것”이라며 사퇴를 시사했다. 존슨 총리와의 불화로 보수당을 탈당한 데이비드 고크 전 법무장관, 조 스윈슨 자유민주당 대표 등 정계 거물도 줄줄이 낙선했다. 브렉시트 불확실성 해소로 12일 런던 외환시장의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전일보다 약 3% 올랐다. 다만 유럽연합(EU)과 영국은 내년 말까지 브렉시트 전환(이행) 기간을 두기로 했다. 그동안에는 영국이 EU 단일시장 및 관세동맹에 남을 수 있고 내년 7월 1일 전까지 전환 기간도 조율할 수 있다. 런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조유라 기자}
12일(현지 시간) 영국 조기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하원 650석의 과반(326석)보다 38석 많은 364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뒀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이끌던 1987년(376석) 이후 보수당의 최대 승리라고 BBC 등이 전했다. 650석 중 1석을 제외한 선거 결과가 모두 발표된 가운데 13일 오후 1시(한국 시간 13일 오후 10시) 현재 보수당은 364석을 얻었다. 현 연정 파트너인 북아일랜드민주연합당(DUP·10석)과 손잡지 않아도 단독 과반이 가능하다. 2016년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가결 후 3년 반 동안의 혼란과 노동당의 모호한 태도에 지친 유권자들이 “집권당에 표를 몰아주자”는 심리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제1야당인 노동당 텃밭이던 중북부 탄광지대의 민심 이반이 뚜렷해 노동당은 기존보다 59석이 감소한 203석만 얻었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과 자유민주당이 각각 48석과 11석을 확보했다. 선거 승리로 보리스 존슨 총리는 원하던 대로 내년 1월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할 수 있게 됐다. 보수당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새 브렉시트 합의안을 새 의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이날 존슨 총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접견해 새 정부 구성권도 허락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윗으로 “존슨의 위대한 승리를 축하한다”고 했다.런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상황1 “나 좀 인터뷰 해주십쇼. 할말 있어요.” 12일 오후 4시 영국 런던 중심 웨스트민스터 내 총선 투표장에서 취재 중인 기자를 본 런던시민 스테이시 씨(52)가 투표를 하고 나오면서 한 말이다. 그는 큰 소리로 “브렉시트가 되던, 유럽연합(EU)에 잔류하던, 무조건 이번 선거에서 과반을 넘기는 당이 나와서 이 답답한 상황이 끝나야 한다”고 외쳤다. #상황2: “여기는 런던이에요. 전체 민심은 다릅니다.” 이날 기자가 투표소 앞에서 인터뷰한 런던 시민 10명 중 7명이 ‘난 잔류파(Remainer)’라며 노동당 등 야당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런 인터뷰를 계속 하던 기자에게 지나가던 한 영국 시민이 “여긴 런던이란 점을 감안하라”고 조언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런던은 영국 내 다른 지역과는 민심이 다를 수 있다는 의미였다. 12일 조기 총선에서 보수당이 압승한 이유인 ‘브렉시트 피로감’과 ‘민심이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날 보수당은 영국 하원 총 650석 중 368석을 차지해 과반 의석(326석)을 훌쩍 넘겼다. 선거 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보수당이 제1야당인 노동당에 10% 이상 앞서고 있었지만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였다. 더구나 선거 운동 중 보리스 존슨 총리의 각종 기행이 BBC 가디언 등 영국 유력언론에 집중부각되면서 보수당 지지율이 하락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영국 유권자들은 보수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또 다시 브렉시트 결정이 미뤄지는 일이 브렉시트 시행보다 더 안 좋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결정된 후 여야 갈등 속에 3번이나 미뤄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커자 올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0%에 머무는 등 영국경제마저 침체됐기 때문이다, 이는 새 브렉시트 합의안을 만들어 제2국민 투표를 하자는 노동당에 대한 민심이반으로 이어졌다, 과거 노동자 계급, 즉 블루컬러가 많은 광산지역으로, 노동당의 강세 지역인 잉글랜드 북부와 미들랜즈, 웨일스 북부 지역 등 속칭 ’붉은 벽‘(red wall) 지역에서 76석 중 50석을 보수당으로 빼앗기며 노동당이 완패한 이유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수당의 푸른 물결이 붉은 벽을 부셔버렸다”고 전했다. 중산층, 상류층 이상의 화이트 컬러가 월등히 많은 런던 등 대도심,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영국 지식인과 주요 언론이 영국 전체의 여론과는 괴리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표장에서 만난 제이미 씨(45)는 “사실 EU에 묶여 EU를 따르고, 이민자가 많아져 일자리가 줄어도 상류층은 아무 상관없다”며 “피해를 보는 건 하류층”이라고 말했다. 선거 전 예측과 달리 보수당이 압승한 이유다. 이날 선거 결과로 내년 1월 말 EU 탈퇴가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1월 브렉시트가 시행돼도 당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EU와 영국은 내년 말까지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 기간에는 현재처럼 영국이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잔류 등이 유지된다. 전환 기간도 내년 7월 1일까지 양측이 다시 조율할 수 있다. 다만 EU와 영국이 브렉시트 시행 후 새로운 무역협정 등 미래관계 협상에 합의를 하지 못하고 내년 전환기간마저 연장되지 않으면 2020년 12월에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런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유럽연합(EU)을 떠나든 남든 이제는 불확실성을 끝내고 싶어요. 비가 오는데도 투표하러 나온 이유죠.” 12일 오전 10시 반 런던 시내 웨스트민스터 일대 투표소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30대 여성의 말이다.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운명을 가를 조기총선이 치러진 이날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줄을 섰다. 집권 보수당과 제1야당인 노동당이 치열한 지지율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보수당이 하원 650석의 과반을 차지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보수당이 과반 획득에 성공하면 보리스 존슨 총리가 주창하는 대로 내년 1월 31일 EU 탈퇴가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현지 언론은 이번 총선을 또 다른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 성격으로 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웨스트민스터 일대에 위치한 여야 청사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보수당 청사 앞에서 만난 관계자는 ‘과반을 자신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모르겠다. 불안하다”고 말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전체 국민의 52%가 EU 탈퇴에 찬성했다. 하지만 보수당이 마련한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에서 잇따라 부결되면서 3년 반 넘게 시행이 미뤄졌다. 올해 7월 말 취임한 존슨 총리도 자신의 합의안이 줄곧 부결되자 조기총선 카드를 빼들었다. 과반을 확보해 안정적인 정국 운영 동력을 확보한 후 브렉시트를 추진하겠다는 의도에서다. BBC 등에 따르면 보수당은 당초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을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존슨 총리의 잇따른 기행 등으로 그의 지도력에 의문을 나타내는 시선이 적지 않다. 그는 11일 중부 리즈의 한 우유 배달 업체를 찾아 선거 유세를 펼쳤지만 취재진을 피하기 위해 우유 보관 대형 냉장고에 숨어 구설에 올랐다. 브렉시트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선거 외적인 요인 때문에 존슨 총리가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보수당은 이번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하면 25일 크리스마스 이전에 브렉시트 합의안을 새 의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 내년 1월 EU 탈퇴가 가능하다. 반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 브렉시트는 기약 없이 미로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 노동당은 보수당이 과반 획득에 실패하면 야당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브렉시트 안을 만들거나 국민투표를 또다시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드러냈다. 쌀쌀한 날씨와 오후 4시면 해가 지는 시기적 특성도 변수다. 크리스마스를 2주도 남겨놓지 않은 데다 방학이 시작돼 대학생 유권자들이 빠져나가면서 2017년 6월 조기총선(68.7%)보다 투표율이 낮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출구조사 결과 등 대략적인 선거 결과는 투표가 끝나는 12일 오후 10시(한국시간 13일 오전 5시) 이후에 나온다.런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국내총생산(GDP)보다는 기후 변화, 불평등 해소, 복지, 건강 등 다른 지표를 국가 예산을 짜는 데 우선시하겠습니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의 최근 발언이다. 유럽 사회는 북유럽 끝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이런 색다른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나라마다 예산안 등 내년 살림을 고민하는 연말에 아이슬란드 정부가 2020년 경제성장 목표와 예산안 편성에서 GDP 비중을 39분의 1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아이슬란드 총리실은 대기 질, 노동시간, 직업만족도, 교육 등 39개 지표를 새로 설정했다. GDP는 전체 39개 중 하나의 지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국가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생산활동의 총합을 뜻하는 GDP는 수십 년간 한 나라의 성장을 나타내는 절대적 지표로 통했다. GDP가 도입된 건 1930년대. 당시 단편적 통계보다는 한 국가 경제의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했다. 대공황이 발생한 상황에서 경제가 얼마나 위기인지를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적절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출신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GDP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게 된 배경이다. 이후 ‘GDP 증가율이 몇 퍼센트냐’에 따라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가 웃고 울었다. 아이슬란드가 그런 절대적인 GDP를 퇴물처럼 취급하는 셈이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도 친환경 에너지, 의료체계 등 삶의 질과 관련된 지표를 합친 ‘GDP+알파’ 개념을 통한 경제발전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5월 GDP보다는 다른 지표에 초점을 맞춘 ‘웰빙예산(Wellbeing Budget)’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GDP 개념으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 무료로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를 비롯해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변화된 공유경제 등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환경 훼손이 심한 개발사업도 당장은 생산적 경제활동으로 여겨져 GDP에 담기는 반면 ‘기후변화’ 문제에는 전혀 대응하지 못한다. 실험 초기이다 보니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여주기식 포퓰리즘’ 혹은 ‘뜬구름 잡기식 정책’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다. GDP가 증가해야 일자리가 늘고 성장동력이 유지되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출산·고령화, 이민자 문제,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GDP 중심의 성장 기준’을 바꿈으로써, 진정한 경제 성과와 사회 발전이 무엇인지를 재고해야 한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GDP뿐만 아니라 주거, 직업, 공동체, 교육, 시민 참여, 안전 등을 반영한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LI·Better Life Index)’를 매년 발표하고 있다. “사람들의 삶과 열망을 반영할 수 있는 더 나은 지표는 필요하다. 그래야 ‘더 나은 삶을 위한, 더 나은 정책’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이런 변화의 움직임이 경제성장률 달성에만 목표를 두는 접근법에 변화를 촉구하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5년째 분쟁을 이어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갈등 해소를 위해 9일 처음으로 직접 만났다. 두 정상은 올해 말까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親)러시아 반군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전면 휴전을 하기로 했다. BBC는 이번 결정이 9일 푸틴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개최한 4자 정상회담에서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번 회담은 5월 취임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제안을 토대로 마크롱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면서 성사됐다. 4개국 정상은 4자 회담, 양자 회담 등 8시간 이상의 마라톤 회의를 한 후 공동성명을 통해 “올해 말까지 돈바스에서 완전하고 전면적인 휴전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내년 3월까지 돈바스 내 3개 지점에서 양측 군대를 철수시키고 교전으로 발생한 포로들도 교환하기로 했다. 이번 회담에서 크림반도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 및 루간스크주(州)를 일컫는다. 2014년 4월 러시아를 등에 업은 친러 분리주의 반군 세력이 독립을 선언한 곳이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 간 내전이 생기면서 1만3000명가량이 사망하고, 100만 명 이상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 해소 및 우크라이나 동부의 무력 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대가로 영토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드시 크림반도를 되찾겠다는 뜻을 밝혔다. 러시아 역시 “크림반도는 러시아 땅”이라는 기존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러시아는 “돈바스에서 먼저 지방선거를 실시한 후 자치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지방선거 전 국경 통제권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맞선다. 이 밖에도 군사력 감축 등 양측이 조율해야 할 세부안에 대한 의견 차도 상당하다. 르피가로는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의 정상화에는 관심이 적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를 해제해 주기만을 원한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이번 회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무엇보다 이번 회담에서 크림반도 문제는 아예 의제에서 배제됐다는 점에 분노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8일 수도 키예프의 대통령궁 앞에서는 “코미디언 출신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에 휘둘리고 있다”며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12일 조기 총선을 앞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9일 병실 부족으로 병원 바닥에 누운 4세 아동의 사진을 외면한 채 의료서비스 확대 공약만 강조해 구설에 올랐다. 총리의 공감능력 부족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이번 사건이 총선 변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BBC 등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이날 선거 유세차 북동부 선덜랜드의 한 공장을 찾았다. 이때 ITV 소속 조 파이크 기자는 공공의료 서비스인 ‘국민건강서비스(NHS)’를 주제로 총리와 인터뷰를 시도하며 스마트폰 속에 있는 리즈 지역의 4세 남아 잭 윌리먼트 바 군의 사진을 보여줬다. 바 군은 급성 폐렴 증세로 한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지만 침대가 부족해 병원 바닥에서 팔에 수액을 꽂은 채 잠들어 있었다. 존슨 총리는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있나”는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 “NHS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집권 보수당 공약만 언급했다. 파이크 기자가 굴하지 않고 질문을 시도하자 존슨 총리는 그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파이크 기자가 강하게 항의하자 그제야 휴대전화를 돌려줬다. 파이크 기자는 이런 실랑이가 담긴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 순식간에 조회수 100만 건을 돌파했고 대부분 총리를 비난했다. 제1야당 노동당은 “총리가 유럽연합(EU)을 탈퇴한 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NHS를 미국 거대 의약기업에 팔아넘기려 한다”고 주장해왔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총리는 원래 국민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12일 조기총선을 앞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9일 병실 부족으로 병원 바닥에 누운 4세 아동의 사진을 외면한 채 의료서비스 확대 공약만 강조해 구설수에 올랐다. 총리의 공감능력 부족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이번 사건이 총선 변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BBC 등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이날 선거 유세차 북동부 선덜랜드의 한 공장을 찾았다. 이 때 ITV 소속 조 파이크 기자는 공공의료 서비스인 ‘국민건강서비스’(NHS)를 주제로 총리와 인터뷰를 시도하며 스마트폰 속에 있는 리즈 지역의 4세 남아 잭 윌리먼트 바 군의 사진을 보여줬다. 바 군은 급성 폐렴 증세로 한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지만 침대가 부족해 병원 바닥에서 팔에 수액을 꽂은 채 잠들어 있었다. 존슨 총리는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있나”는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 답을 했다. “NHS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집권 보수당 공약만 언급했다. 파이크 기자가 굴하지 않고 질문을 시도하자 존슨 총리는 그의 스마트폰을 뺏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파이크 기자가 강하게 항의하자 겨우 휴대전화를 돌려줬다. 파이크 기자는 이런 실랑이가 담긴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 순식간에 100만 조회수를 돌파했고 대부분이 총리를 비난했다. 제1야당 노동당은 “총리가 유럽연합(EU)을 탈퇴한 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해 NHS를 미국 거대 의약기업에 팔아넘기려 한다”고 주장해왔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총리는 원래 국민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핀란드에서 역대 최연소인 34세 총리가 탄생한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중도 좌파 성향의 제1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이 8일(현지 시간) 신임 총리 후보를 두고 투표한 결과 32표를 받은 산나 마린 의원(34·사진)이 안티 린트만 사민당 교섭단체 대표(37)를 3표 차로 눌렀다. 마린 후보자는 10일 취임 선서를 하고 총리에 공식 취임한다. 2017년 37세에 총리가 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기록을 깨고 전 세계 최연소 정부 수반이 될 것이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대통령제 국가의 총리까지 포함해도 그는 현재 최연소 총리인 알렉세이 곤차루크 우크라이나 총리(35)보다 한 살 어리다. 핀란드의 여성 총리는 세 번째다. 마린 후보자는 이날 “나이와 젠더(사회문화적 성)에 대해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소감도 밝혔다. 그 외에도 리 안데르손 교육장관, 마리아 오히살로 내무장관, 카트리 쿨무니 경제장관, 안나마야 헨리크손 법무장관 등 내각의 주요 장관이 모두 여성이다. 그는 1985년 수도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동성 부모 밑에서 자랐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10대 시절 빵 가게에서 일했다. 이런 배경으로 소수자 인권, 사회 불평등 등에 관심을 가졌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30, 40대 지도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0세,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38세에 최고 권좌에 올랐다. 청년 실업, 이민, 양극화, 부정부패 등의 문제를 기성 정치권의 낡은 해법으론 풀 수 없다는 인식이 젊은 리더십의 급부상을 이끈 요인으로 풀이된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브렉시트 담판 선거’인 12일 영국 조기총선을 앞두고 집권 보수당 지지 성향이 강한 ‘샤이 보수’ 유권자와 제1야당인 노동당 지지 기류가 강한 젊은 유권자의 향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중 ‘어느 층이 더 집결하느냐’에 따라 총선 결과는 물론이고 내년 1월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 시행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BBC 등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의회의 과반을 확보할지는 미지수다. 이달 초부터 7일까지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지지율이 노동당보다 최대 15%포인트 앞섰지만 일부 조사에서는 6%포인트 격차에 불과하다. 선거 당일 80∼90개 지역구에서 접전이 예상된다. 영국 하원 전체 의석수는 650석. 이 중 보수당 298석, 노동당 243석, 스코틀랜드국민당(SNP) 35석, 자유민주당 20석 등이다. 보수당은 이번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해 EU와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킨 뒤 내년 1월 말 브렉시트를 단행할 계획이다. 두 정당 간 격차가 크지 않아 선거 당일 어떤 유권자 층이 더 힘을 발휘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실제 2015∼2017년 영국 내 선거에서 18∼25세 유권자의 투표율은 40∼50%에 불과했다. 반면 장년층 이상은 70%가 넘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 젊은층의 관심이 높다. 지난달 26일 유권자 등록 마지막 날 등록한 65만9000명 중 34세 이하가 70%에 달했다. 젊은층 투표율 증가는 노동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자신들의 해외 취업, 유학, 해외여행 등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반면 2016년 이후 3년 이상 지속된 브렉시트 혼란을 막기 위해 보수당을 찍을 소위 ‘샤이 보수’층의 행보도 주목된다. 유권자 찰리 코벳 씨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EU 잔류를 원하지만 계속 원 안에서 빙빙 도는 것보다 떠나는 게 낫다고 봐서 보수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두 정당의 극단적 대립과 당파 정치에 신물이 난 중도층의 선택도 관건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도층은 신뢰할 수 없는 강경 브렉시트파 존슨 총리나 사회주의로 영국 경제를 다시 구축하려는 좌파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 모두를 불안해한다”며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에 투표하는 ‘전술적 투표(tactical voting)’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핀란드에서 역대 최연소인 34세 총리가 탄생한다. AP통신과 가디언 등에 따르면 중도 좌파 성향의 핀란드 제1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이 8일(현지시간) 신임 총리후보를 두고 투표한 결과 32표를 받은 산나 마린 의원(34)이 또 다른 30대 후보 안티 린트만 사민당 교섭단체 대표(37)를 3표차로 누르고 총리 후보자로 선출됐다. 마린 후보자는 10일 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통해 공식 총리로 취임한다. 그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젊은 총리인 우크라이나의 알렉세이 곤차룩(35)보다 한살 더 어리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도 최연소 현역 총리가 된다. 핀란드에서 여성 총리는 세 번째다. 마린 후보자는 선거 결과 후 나이를 의식한 듯 “나는 내 나이와 젠더(gender·성)에 대해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내가 정치에 입문한 이유와 우리가 유권자의 신뢰를 얻었던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985년 11월 수도 헬싱키에서 태어난 마린 후보자는 유년시절 남서부 도시 탐페레로 이주해 이 지역 탐페레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보인 그는 2012년 탐페레 시의원에 도전했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시의회 의장까지 맡았다. 2015년 핀란드 의회 입성 후 젊은 피를 찾는 사민당에 의해 올해 6월 교통·커뮤니케이션 장관에 발탁됐다. 사민당은 올해 4월 총선에서 득표율 17.7%로 16년 만에 제1당 자리를 되찾았다. 핀란드에서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국민투표로 뽑고 행정부 수반인 총리는 원내 과반을 차지한 정당 혹은 연립정당 대표가 맡는다. 앞서 6월 총리로 취임한 안티 린네 사민당 대표는 최근 다른 당들의 총리 지지철회로 이달 3일 사임했다. 그는 지난달 국영 우편과 항공 파업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마린 후보자 외에도 30대 지도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39세, 아일랜드 버라드 커 총리는 38세,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는 37세에 각각 자국의 정상으로 당선됐다. 젊은 리더십이 급부상하는 것은 청년 취업난, 이민자 문제, 사회 양극화, 부정부패 등 고질적 사회 문제들을 기성 정치권의 낡은 해법으론 풀 수 없다는 인식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5일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연금 개혁 반대 파업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 내고 덜 받는’ 퇴직연금 개편을 거부하는 각종 노동단체의 파업에 노란조끼 시위대가 가세하면서 전국 곳곳이 대대적인 혼란을 겪고 있다. 7일 수천 명에 달하는 노란 조끼 시위대가 파리 시내를 행진하면서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5일부터 시작된 철도노조의 연금 개편 반대 총파업으로 파리 시내 지하철을 비롯해 각종 철도노선의 운행이 마비된 상태라 혼란이 더욱 컸다. 낭트, 리옹, 몽펠리에 등 다른 도시에서도 노란조끼 시위와 경찰의 대치가 이어졌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유럽운수노조(OTRE)도 정부의 디젤세 인상안에 반대해 트럭을 고의로 천천히 운행하는 시위를 벌여 주요 고속도로가 혼잡을 빚었다. 이런 혼란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요 노동단체는 6일 “정부가 연금 개혁을 강행하면 10일에도 총파업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지하철은 물론, 고속철(TGV), 에어프랑스 항공 등 교통 뿐 아니라 병원, 학교, 경찰 등도 파업에 동참하면서 프랑스 전역이 마비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도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맞섰다. 총리실은 12일 연금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안도 발표한다. 프랑스 퇴직연금은 공기업이나 민간기업, 혹은 어떤 직종인지에 따라 수령 시기와 액수가 다르다. 연금 체계가 42개로 나눠진 탓이다. 국영인 철도 근무자는 52세에 은퇴해 연금을 받는다. 반면 민간기업 종사자는 정년인 62세까지 일을 하고 은퇴해야 연금이 지급된다. ‘덜 내고 더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연간 100억 유로(약 13조2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연금 체계를 2025년까지 하나로 통일하고 수령 시기를 2년 늦추는 것이 프랑스 정부의 목표다. 이 과정에서 ‘더 내고 덜 받게’ 될 공공부문 노조들이 대규모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12일 개편안의 수위가 높을 경우 파업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입지는 물론이고 2022년 대선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2010년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은퇴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시켰지만 결국 2012년 대선에서 재임에 실패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도 연금 개편을 추진하다 2005년 총선에서 대패했다. 이를 의식한 마크롱 대통령은 8일 저녁에도 장관들을 엘리제궁에 소집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사진 속 여성 ○○는 배우자나 애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지난달 23일 프랑스 파리 중심가 오페라극장 앞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약 5만 명의 시민이 보라색 깃발과 플래카드를 들고 모였다. 참가자 대부분은 일반인으로 보이는 몇몇 여성의 얼굴 사진을 들었다. 일부는 이 여성들의 이름을 외치면서 절규했다. 이 여성들은 페미사이드(femicide), 즉 여성을 상대로 자행된 강력 살인의 희생자들이다. 파리 시민들은 “여자를 깨부수지 말고 침묵을 부숴라” “여성폭력이 심각하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일부는 희생자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물감을 옷에 묻힌 채 도로에 드러누웠다. 집회를 주최한 단체 ‘우리 모두(NousToutes)’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 30여 개 주요 도시에서 총 15만 명이 행진에 참여했다. 젠더 폭력을 규탄하는 시위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페미사이드로 인한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다. 피해자 일부는 지속적 폭력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페미사이드 범죄를 예방하지도 못하고,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일에도 소홀해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희생자 페미사이드는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의 합성어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소재 밀스 칼리지의 다이애나 러셀 교수가 1976년 여성 대상 범죄 국제재판소에서 처음 사용했다. 러셀 교수는 1992년 출간한 동명의 저서에서도 “페미사이드는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남녀의 권력관계에서 기원했다. 여성에 대한 증오, 경멸, 쾌락, 소유욕 등이 동기가 되어 남성이 자행한 여성혐오적 살해”라고 정의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페미사이드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애 상대, 동거인, 배우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물리적 폭행과 살인을 넘어 여성에 대한 심리적 학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관습으로 개인이 피해를 입는 사례를 포함할 정도로 그 개념이 확대됐다. 가디언 등 언론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의 페미사이드 희생자는 116명에 이른다. 사흘에 1명꼴이다. 파리 집회 이틀 후인 지난달 25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를 거론하며 “프랑스의 수치”라고 개탄했을 정도다. 이탈리아에서도 지난해 142명, 올해 100명의 여성이 각각 숨졌다. 독일에서도 올해 119명이 희생됐다. 유럽연합(EU) 통계당국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가정폭력 등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의 수는 루마니아 0.43명, 핀란드 0.36명, 독일 0.23명, 프랑스 0.18명, 스페인 0.12명, 이탈리아 0.11명에 달한다. 서유럽에 비해 경제가 낙후되고 여성 인권 개념이 약한 동유럽에서 이 수치가 특히 높다. 중남미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멕시코에선 지난해 3750명, 하루에 약 10명꼴로 페미사이드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달 25일 49세 여성 아브릴 페레스는 14, 16세 두 자녀가 보는 앞에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 괴한들은 가정폭력 혐의로 감옥에 갔다가 가석방된 남편이 고용한 청부업자로 알려져 전국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세계로 번진 ‘페미사이드’ 규탄 피해자 급증으로 11월 한 달간 유럽 각국에서는 잇따라 페미사이드 규탄 집회가 열렸다. 파리 시위가 벌어졌던 날과 같은 날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비슷한 집회가 개최됐다. 수천 명의 로마 시민이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자”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행진했다. 하루 뒤 벨기에 브뤼셀 도심 곳곳에는 ‘빨간색 구두’가 놓였다. 붉은 신발은 가정, 데이트폭력으로 흘린 여성들의 피를 의미한다. 브뤼셀 시민 1만여 명도 “그녀가 그를 떠나자, 그가 그녀를 죽였다”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틀 후 독일 베를린에서도 남성 가해자의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개최됐다. 지난달 2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집회는 단순한 페미사이드 반대, 가해자 처벌 강화가 아니라 극우정당 ‘복스’를 겨냥한 행사였다. 지난달 스페인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 제1 야당 국민당에 이어 일약 제3당으로 부상한 복스는 극단적인 반(反)페미니즘, 반난민, 반무슬림을 외친다. 이들은 가정폭력을 저지른 남성들에 대한 처벌에도 반대한다. 지난달에는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각 정당이 동참한 선언문 서명도 거부할 정도로 여성혐오 성향이 짙다. 하비에르 오르테가 복스 사무총장은 당시 “세상에는 여자에게 맞는 남자들도 있고, 아내에게 죽임을 당하는 남편들도 있다”고 주장해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이날 복스 규탄 집회에 참가한 수천 명의 시민들은 “얼마나 많은 여성이 죽어야 하느냐”고 일갈했다. 올해 6월부터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여성혐오 범죄에 항의하는 시위가 수시로 펼쳐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6월부터 경찰들이 배우자의 위협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정당방위를 행사할 수 있도록 뭉툭한 부엌칼을 배부하고 나섰다.○ 원인은 솜방망이 처벌 유엔에 따르면 세계 여성 8만7000명 중 17%가 최근 1년간 현재 혹은 이전의 배우자나 애인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했다. WHO 조사에서도 전 세계 여성의 35%, 3명 중 1명이 배우자의 폭력에 노출되고 있었다. 과거보다 인권과 여성의 지위가 전반적으로 향상됐음에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특히 독일, 프랑스 등 세계 최고 선진국에서조차 페미사이드가 빈번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공권력의 허술한 법 집행과 솜방망이 처벌이다. 미 뉴욕타임스(NYT)가 소개한 프랑스 여성 쥘리 두이브 씨(34)의 사연을 보자. 두 자녀를 둔 그는 지난해 10월 가정폭력을 이유로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다. 남편은 양육권을 포기하라며 집요하게 위협했다. 두려움을 느낀 두이브 씨는 10번 이상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특히 총기 면허증을 가진 남편이 종종 총을 겨누자 당국에 ‘남편의 총기 허가를 취소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집안 문제는 사적인 해결이 우선이라며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올해 3월 남편이 쏜 총에 가슴과 팔을 맞고 숨졌다. 이처럼 폭력을 당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해도 상당수는 ‘가정을 지켜라’ ‘남녀 문제는 각자 알아서 하라’며 대처하지 않았다. 설사 재판에 넘겨진다 해도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가해자의 해명, 초범이라는 이유 등으로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이 선고된다. 사실상 처벌이 없으니 가해자는 더 큰 폭력을 휘두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피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되고 살인이라는 끔찍한 결말로 귀결되기도 한다. 페미사이드를 ‘묻지 마 살인’ ‘무차별 살인’ 등으로 명명하는 행위 또한 사안의 중대성을 의도적으로 낮춰 평가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자들은 무작위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여성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올해 9월 한 프랑스 여성은 경찰의 긴급 콜센터에 “남편이 나를 죽이려 한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이 전화를 받은 경찰관이 도와 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극우 득세 + 미투 반발 등도 영향 난민 증가, 미국의 일방주의 등으로 세계 곳곳에서 극우주의 성향이 강화되고 소위 권위주의 지도자 ‘스트롱맨’이 득세하는 현상 또한 페미사이드 확산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스페인뿐 아니라 최근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는 극우 민족주의를 앞세운 지도자와 스트롱맨이 득세하면서 성평등 지수가 하락하고 여성혐오 범죄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9년간 집권 중인 러시아에서는 2017년부터 가정폭력 처벌이 오히려 완화됐다. 당국은 “부부 다툼을 폭력으로 몰아붙이는 건 급진적 페미니즘의 폐해”라고 주장하며 이런 조치를 단행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16년간 집권하고 있는 터키의 사정도 비슷하다. 터키 정부는 2016년 이혼율 급증을 막기 위해 가족보호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해당 정책에는 배우자에게 폭력을 당한 여성을 다른 장소가 아닌 가정으로 복귀시키는 내용이 포함됐다. 페미사이드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장소가 ‘피해자의 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최근 2, 3년간 급격히 확산된 여성들의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에 따른 남성들의 집단 반발 심리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오히려 더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폭력을 당해도 쉬쉬하던 피해자가 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공개함에 따라 페미사이드 피해자의 사례가 더 많이, 더 널리 주목받고 있다는 의미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미투 운동에 반감을 가지고 이를 여성혐오로 연결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고 이를 상품화하는 경향이 강화된 것도 여성폭력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아직은 미흡한 대책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말 페미사이드 종합 대책을 내놨다. 이 대책에는 아내, 여자친구, 동거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에게 접근금지용 전자발찌를 착용하도록 하고, 의사가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 피해 징후가 보이는 여성을 환자로 만났을 때 곧바로 당국에 신고할 수 있도록 현행 의료법을 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간 개인정보 유출, 가해자인 남편의 반발 등을 이유로 폭력 신고를 꺼리던 의사들이 적지 않았음을 반영한 처사다. 욕설이나 언어폭력 등도 심리적 학대로 보고 처벌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정부도 페미사이드 희생자 가족을 위해 1200만 유로(약 156억 원)를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자에 대한 강력 처벌, 사회 전체의 피해자 보호 노력, 여성 인권 강화, 조기 교육 등이 선행되지 않으면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2016년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의 기억이 생생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 한국에는 젠더 폭력과 페미사이드에 관한 기본 통계조차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진국이라고 여성 대상 폭력이 적은 것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고학력 부유층이라고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남성 중심 문화에서는 어느 사회, 어느 계층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적 영역에 남녀 동수 비율 적용을 확대하는 등 여성 입장과 관점에서 폭력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사진 속 여성 OO는 배우자나 애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지난달 23일 프랑스 파리 중심가 오페라극장 앞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약 5만 명의 시민이 보라색 깃발과 플래카드를 들고 모였다. 참가자 대부분은 일반인으로 보이는 몇몇 여성의 얼굴 사진을 들었다. 일부는 이 여성들의 이름을 외치면서 절규했다. 이 여성들은 페미사이드(femicide), 즉 여성을 상대로 자행된 강력 살인의 희생자들이다. 파리 시민들은 “여자를 깨부수지 말고 침묵을 부숴라” “여성 폭력이 심각하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일부는 희생자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 물감을 옷에 묻힌 채 도로에 드러누웠다. 집회를 주최한 단체 ‘우리 모두’(NousToutes)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 30여 개 주요 도시에서 총 15만 명이 행진에 참여했다. 젠더 폭력을 규탄하는 시위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페미사이드로 인한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다. 피해자 일부는 지속적 폭력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페미사이드 범죄를 예방하지도,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일에도 소홀해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희생자 페미사이드는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의 합성어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소재 밀스 칼리지의 다이애나 러셀 교수가 1976년 여성대상범죄 국제재판소에서 처음 사용했다. 러셀 교수는 1992년 출간한 동명의 저서에서도 “페미사이드는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남녀의 권력관계에서 기원했다. 여성에 대한 증오, 경멸, 쾌락, 소유욕 등이 동기가 되어 남성이 자행한 여성에 대한 여성혐오적 살해”라고 정의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페미사이드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애 상대, 동거인, 배우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물리적 폭행과 살인을 넘어 여성에 대한 심리적 학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관습으로 개인이 피해를 입는 사례를 포함할 정도로 그 개념이 확대됐다. 가디언 등 언론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의 페미사이드 희생자는 116명에 이른다. 사흘에 1명꼴이다. 파리 집회 이틀 후인 지난달 25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를 거론하며 “프랑스의 수치”라고 개탄했을 정도다. 이탈리아에서도 지난해와 142명, 올해 100명의 여성이 각각 숨졌다. 독일의 올해 희생자도 119명이다. 유럽연합(EU) 통계당국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 당 가정폭력 등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의 수는 루마니아 0.43명, 핀란드 0.36명, 독일 0.23명, 프랑스 0.18명, 스페인 0.12명, 이탈리아 0.11명에 달한다. 서유럽에 비해 경제가 낙후되고 여성 인권 개념이 약한 동유럽에서 이 수치가 특히 높다. 중남미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멕시코에선 지난해 3750명, 하루에 약 10명 꼴로 페미사이드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달 25일 49세 여성 아브릴 페레스는 14, 16세 두 자녀가 보는 앞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 괴한이 가정폭력 혐의로 감옥에 갔다가 가석방된 남편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전국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세계로 번진 ’페미사이드‘ 규탄 피해자 급증으로 11월 한 달간 유럽 각국에서는 잇따라 페미사이드 규탄 집회가 열렸다. 파리 시위가 벌어졌던 날과 같은 날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비슷한 집회가 개최됐다. 수 천 명의 로마 시민이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자”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행진했다. 하루 뒤 벨기에 브뤼셀 도심 곳곳에는 ’빨간색 구두‘가 놓였다. 붉은 신발은 가정, 데이트폭력으로 흘린 여성들의 피를 의미한다. 브뤼셀 시민 1만 여명도 “그녀가 그를 떠나자, 그가 그녀를 죽였다”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틀 후 독일 베를린에서도 남성 가해자의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개최됐다. 지난달 2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집회는 단순한 페미사이드 반대, 가해자 처벌 강화가 아니라 극우정당 ’복스‘를 겨냥한 행사였다. 지난달 스페인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 제1 야당 국민당에 이어 일약 제 3당으로 부상한 복스는 극단적인 반(反)페미니즘, 반난민, 반무슬림을 외친다. 이들은 가정폭력을 저지른 남성들에 대한 처벌에도 반대한다. 지난달에는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각 정당이 동참한 선언문 서명에도 거부할 정도로 여성혐오 성향이 짙다. 하비에르 오르테가 복스 사무총장은 당시 “세상에는 여자에게 맞는 남자들도 있고, 아내에게 죽임을 당하는 남편들도 있다”고 주장해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이날 복스 규탄 집회에 참가한 수천 명의 시민들은 “얼마나 많은 여성이 죽어야 하느냐”고 일갈했다. 올해 6월부터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여성 혐오 범죄에 항의하는 시위가 수시로 펼쳐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6월부터 경찰들이 배우자의 위협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정당방위를 행사할 수 있도록 뭉툭한 부엌칼을 배부하고 나섰다.● 원인은 솜방망이 처벌 유엔에 따르면 세계여성 8만7000명 중 17%가 최근 1년 간 현재 혹은 이전의 배우자나 애인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했다. WHO 조사에서도 전 세계 여성의 35%, 3명 중 1명이 배우자의 폭력에 노출되고 있었다. 과거보다 인권과 여성의 지위가 전반적으로 향상됐음에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특히 독일, 프랑스 등 세계 최고 선진국에서조차 페미사이드가 빈번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공권력의 허술한 법 집행과 솜방망이 식 처벌이다. 미 뉴욕타임스(NYT)가 소개한 프랑스 여성 줄리 두이브 씨(34)의 사연을 보자. 두 자녀를 둔 그는 지난해 10월 가정 폭력을 이유로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다. 남편은 양육권을 포기하라며 집요하게 위협했다. 두려움을 느낀 두이브 씨는 10번 이상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특히 총기 면허증을 가진 남편이 종종 총을 겨누자 당국에 ’남편의 총기 허가를 취소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집안 문제는 사적인 해결이 우선이라며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올해 3월 남편의 총에 가슴과 팔을 맞고 숨졌다. 이처럼 폭력을 당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해도 상당수는 ’가정을 지켜라‘ ’남녀 문제는 각자 알아서 해라‘ 등을 이유로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설사 재판에 넘겨진다 해도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가해자의 해명, 초범이라는 이유 등으로 강력 범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이 선고된다. 사실상 처벌이 없으니 가해자는 더 큰 폭력을 휘두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피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되고 살인이라는 끔찍한 결말로 귀결되기도 한다. 페미사이드를 ’묻지마 살인‘ ’무차별 살인‘ 등으로 명명하는 행위 또한 가해자들의 범행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자들은 무작위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여성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올해 9월 한 프랑스 여성은 경찰의 긴급 콜센터에 “남편이 나를 죽이려 한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이 전화를 받은 경찰관이 도와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극우 득세 + 미투 반발 등도 영향 반난민, 미국의 일방주의 등으로 세계 곳곳에서 극우주의 성향이 강화되고 소위 권위주의 지도자 ’스트롱맨‘이 득세하는 현상 또한 페미사이드 확산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스페인 뿐 아니라 최근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는 극우 민족주의를 앞세운 지도자와 스트롱맨이 득세하면서 성평등 지수가 하락하고 여성 혐오 범죄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9년간 집권 중인 러시아에서는 2017년부터 가정폭력 처벌이 오히려 완화됐다. 당국은 “부부 다툼을 폭력으로 몰아붙이는 건 급진적 페미니즘의 폐해”라고 주장하며 이런 조치를 단행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16년간 집권하고 있는 터키의 사정도 비슷하다. 터키 정부는 2016년 이혼율 급증을 막기 위해 가족보호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해당 정책에는 배우자에게 폭력을 당한 여성을 다른 장소가 아닌 가정으로 복귀시키는 내용이 포함됐다. 페미사이드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장소가 ’피해자의 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최근 2, 3년간 급격히 확산된 여성들의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나도 당했다)‘에 따른 남성들의 집단 반발 심리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오히려 더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폭력을 당해도 쉬쉬하던 피해자가 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공개함에 따라 페미사이드 피해자의 사례가 더 많이, 더 널리 주목받고 있다는 의미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미투 운동에 반감을 가지고 이를 여성 혐오로 연결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고 이를 상품화하는 경향이 강화된 것도 여성폭력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아직은 미흡한 대책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말 페미사이드 종합 대책을 내놨다. 이 대책에는 아내, 여자친구, 동거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에게 접근금지용 전자발찌를 착용하도록 하고, 의사가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 피해 징후가 보이는 여성을 환자로 만났을 때 곧바로 당국에 신고할 수 있도록 현행 의료법도 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간 개인정보 유출, 가해자인 남편의 반발 등을 이유로 폭력 신고를 꺼리던 의사들이 적지 않았음을 반영한 처사다. 또 욕설이나 언어폭력 등도 심리적 학대로 보고 처벌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정부도 페미사이드 희생자 가족을 위해 1200만 유로(약 156억 원)를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자에 대한 강력 처벌, 사회 전체의 피해자 보호 노력, 여성 인권 강화, 조기교육 등이 선행되지 않으면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근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의 기억이 생생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 한국에는 젠더 폭력과 페미사이드에 관한 기본 통계조차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진국이라고 여성 대상 폭력이 적은 것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고학력 부유층이라고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남성 중심 문화에서는 어는 사회, 어느 계층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적 영역에 남녀 동수 비율 적용을 확대하는 등 여성 입장과 관점에서 폭력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최고의 혼란 유발자(disruptor-in-chief).’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첫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행보를 이렇게 빗대며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 선거를 망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 대신 다른 모든 것을 망쳤다”고 전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의 첫 일정이었던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뒤 예정에 없던 52분간의 기자회견 동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나토를 비판한 것을 두고 “미국 대통령이 또 한 번 세계 정상과의 무대에서 ‘센터’를 차지하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입증하듯 이날 행사장에 모인 다른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저녁 버킹엄궁에서 열린 만찬장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마크롱 대통령은 ‘그(He)’를 지칭하며 농담을 이어갔다. 존슨 총리가 마크롱 총리에게 “그가 ‘그것’ 때문에 늦었느냐”고 묻자 트뤼도 총리가 끼어들어 “즉석 기자회견이 40분(실제 52분)이나 걸려 늦었다”고 대답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격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가디언은 “정상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 대화는 예정에 없이 기자회견을 한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됐을 수 있다”고 전했다. 트뤼도 총리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스태프들 턱이 바닥까지 떨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거침없는 기자회견에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조차 놀랐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 영상은 러시아 인터넷 매체인 스푸트니크 뉴스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후 정상들의 대화만 편집된 영상을 4일 캐나다 매체 CBC가 올렸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뒤여서 더 큰 파장을 낳았다. 마크롱 대통령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나토는 뇌사 상태”라고 말한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부터 “아주, 아주 못된(nasty)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프랑스는 경제 측면에서 좋지 못하다”고 지적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내 발언이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지만 철회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뇌사 상태’ 발언이 나온 배경 자체가 나토 동맹국의 반대에도 시리아 철군을 강행한 미국의 일방주의 때문임을 강조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드러낸 것. 외신들은 이를 두고 “브로맨스가 악연으로 변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4일 공식 회의 후 자신을 험담한 트뤼도 총리에 대해 “위선적(two-faced)”이라고 비판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공동 선언문에 군사 강대국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옛 소련을 겨냥했던 나토가 1949년 창설 이후 ‘중국의 굴기’를 우려한 내용을 정상회의 선언문에 넣는 것은 처음이다. CNN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군사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이 모든 (나토) 동맹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중국의 군사력 확대는 나토가 이 문제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군사력 증강뿐만 아니라 5세대(5G) 통신망 등 유럽의 각종 사회기반시설에 중국이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을 비롯해 아프리카와 북극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점도 우려했다. 전 세계에서 중국의 힘이 너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는 “5년 동안에만 중국은 80척의 군함과 잠수함을 해군에 추가했는데 이는 영국 해군 전체와 맞먹는다”며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금지된 장거리 미사일 수백 기, 신형 초음속 순항미사일, 신형 드론, 초음속 글라이더 등 다양한 무기를 중국은 증강했다”고 밝혔다고 CNN은 전했다.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3위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나토 29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나토가 중국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담은 보고서를 승인할 예정이다. 4일 런던 정상회의를 마무리하면서 발표하는 공동선언문에 ‘우리는 중국의 커지는 영향력과 국제 정책이 우리가 동맹으로서 함께 대처할 필요가 있는 기회이자 도전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을 의식해 ‘적’으로 규정짓는 단어나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새로운 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가하는 도전을 분석하고 이해하며 균형 잡힌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나토가 구심점을 찾기 위해 공공의 적을 찾으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9년 소비에트연방에 맞서기 위해 창립됐지만 1991년 옛 소련은 붕괴됐다. 30년 가까이 창설 목적에 맞지 않는 상황 속에 동맹을 지속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생기고 있다. 특히 70주년인 올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증액 요구와 일방주의로 내부 갈등이 극에 달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스톨텐베르그 총장과의 회동 후 “나토 회원국은 방위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까지 증액해야 한다”며 “이를 지키지 않는 나라는 통상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고 밝혔다. CNN은 “나토가 그 어느 때보다 체계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중국의 도전은 나토를 다시 하나로 묶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최고의 혼란유발자(disruptor-in-chief)’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첫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이렇게 빗대며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 선거를 망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 대신 다른 모든 것을 망쳤다”고 전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 상대였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나토와 함께 비판했고, 예정에 없던 52분간의 기자회견을 한 것을 두고 “미국 대통령이 또 한번 세계 정상과의 무대에서 ‘센터’를 차지하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입증하듯 이날 행사장에 모인 다른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저녁 버킹엄궁에서 열린 만찬장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마크롱 대통령은 ‘그(He)’를 지칭하며 농담을 이어갔다. 존슨 총리가 마크롱 총리에게 “‘그것’ 때문에 늦었냐”고 묻자 트뤼도 총리가 끼어들어 “즉석 기자회견이 40분(실제 50여 분)이나 걸려 늦었다”고 대답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격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가디언은 “정상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 대화는 예정에 없이 기자회견을 한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됐을 수 있다”고 전했다. 트뤼도 총리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스태프들 턱이 바닥까지 떨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거침없는 기자회견에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조차 놀랐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 영상은 러시아 인터넷 매체인 스푸트니크 뉴스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후 정상들의 대화만 편집된 영상을 4일 캐나다매체 CBC가 올렸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뒤여서 더 큰 파장을 낳았다. 마크롱 대통령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나토는 뇌사 상태”라고 말한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부터 “아주, 아주 못된(nasty)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프랑스는 경제 측면에서 좋지 못하다”고 지적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내 발언이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지만 철회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뇌사 상태’ 발언이 나온 배경 자체가 나토 동맹국의 반대에도 시리아 철군을 강행한 미국의 일방주의 때문임을 강조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드러낸 것. 외신들은 이를 두고 “브로맨스가 악연으로 변했다”고 평가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브로맨스가 악연으로 변했다.” 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끝나자 외신들의 두 정상의 갈등에 집중했다. 8월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서로 치켜세우며 ‘친구’라고 운운하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과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정상회담은 시작부터 딱딱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발단은 마크롱 대통령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나토는 뇌사 상태”라고 말한 것을 두고 회담 전 트럼프 대통령이 “아주, 아주 못된(nasty) 발언”이라고 했던 대목.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모욕적이라고 생각한다. (나토 회원) 국가에 아주, 아주 못된 발언”이라며 “프랑스보다 나토를 필요로 하는 국가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경제 개혁에 반발하는 시위를 언급하며 “프랑스는 경제 측면에서 좋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회담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트럼트 대통령에게 “내 발언이 약간의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지만 이를 견지한다”고 밝혔다. ‘뇌사 상태’ 발언이 나온 배경 자체가 나토 동맹국의 반대에도 시리아 철군을 강행한 미국의 일방주의 때문임을 강조한 셈이다. 이들은 날선 공방을 이어갔다. 마크롱 대통령이 시리아 내 터키군의 독단적 군사 활동과 러시아 군사 방공시스템 구매 등 나토 회원국 간 문제를 언급하자 트럼트 대통령은 “그래도 나는 터키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는 터키와 관계를 끊었다”고 날카롭게 반응했다. 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즘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IS에 가담했던 각국 사람들을 언급하며 “몇몇 괜찮은 IS 전투원들을 받겠느냐”고 농담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진지하게 임하자”고 답했다. 가장 큰 시각차를 드러낸 건 미국이 프랑스의 디지털세 도입을 문제 삼아 24억 달러(약 2조8668억 원) 규모의 프랑스산 수입품에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점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프랑스와 유럽의 이익을 보호할 각오가 돼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다만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미 대선에서 재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마크롱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독일 드레스덴 박물관에서 18세기 작센왕국의 보물들이 도난당한 지 6일 만에 다시 유명 박물관 도난 사고가 발생했다. 2일 도이체벨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베를린에 위치한 슈타지 박물관에 도둑이 잠입해 각종 소장품을 훔쳐갔다. 이 중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애국 훈장을 비롯해 레닌 훈장, 옛 동독 시절에 만들어진 카를 마르크스 훈장 등 각종 귀중품이 포함됐다. 고가의 반지와 통일 전 동독 비밀경찰이 민간인들로부터 뺏은 고급 시계 등도 도난당했다. 최근 슈타지 박물관에서는 동독 시절을 기록한 각종 자료를 전시 중이었다. 역사자료가 많다 보니 보석으로 이뤄진 예술품에 비해 보안이 취약했다. 도둑은 이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외르크 드리젤만 관장은 “역사박물관이라 도난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드레스덴주에 위치한 그뤼네스 게뵐베 박물관에서도 10억 유로(약 1조5000억 원) 상당의 보석 공예품 3세트가 사라졌다.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박물관 도난이 발생하자 ‘박물관 관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또 다른 유명 박물관인 베를린 보데 박물관에서도 2017년 100kg 무게의 초대형 금화를 도난당하는 등 최근 2, 3년간 박물관 도난 사고가 잦아지고 있다. 독일, 나아가 유럽 내 주요 박물관과 전시 유물들이 워낙 오래된 건축물에 장기 전시되다 보니 첨단경비장치 등 현대적 도난예방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부실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1949년 4월 출범한 세계 최대 집단 방위조약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창설 70주년을 맞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논란 등이 원인이다. 3, 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도 양측이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회의에는 트럼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 29개 회원국 정상이 모두 참석한다. 핵심 의제는 방위비 분담금. 회원국들은 2024년까지 분담금을 포함한 국방 예산을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2.0%로 늘리고 내년 말까지 1000억 달러(약 118조6500억 원)의 추가 방위비를 내기로 했다. 2021년부터 미국의 운영비 분담률도 현 22%에서 16%로 낮추기로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만족할 수 없다”며 추가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런던으로 떠나기 전 “미국이 너무 많은 돈을 내서 공정하지 않다. 미국이 보호해 주는데도 돈을 내지 않는 나라로부터 돈을 받을 책임이 내게 있다”고 했다. 비행기 이륙 후 트윗에도 “이 나라를 대변하고 미국인을 위해 열심히 싸우러 유럽으로 간다”고 썼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증액 규모가 1300억 달러에 이른다. 3, 4년 내 수천억 달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은 나토의 강한 반대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한 것이 못마땅하다. 지난달 마크롱 대통령은 이를 비판하며 “나토는 뇌사 상태”라고 주장했다. 3일 런던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뇌사 발언은 모욕적이고 지저분하다. 나토를 두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나는 터키를 좋아하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도 마음이 잘 맞는다”며 “터키가 러시아 ‘S-400’ 미사일을 구매한 것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 판매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터키를 옹호했다.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재선에 성공하면 나토에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며 미국의 탈퇴 가능성을 거론했다.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존슨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 중 별도의 양국 정상회담을 열지 않기로 했다. 그는 메르켈 총리 및 마크롱 대통령과는 양자 회담을 갖는다. 12일 조기 총선 승리가 예정된 상황에서 굳이 ‘반트럼프’ 정서가 높은 민심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행보로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집권 보수당은 제1야당 노동당을 1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국빈방문 당시 보수당 대표 경선을 앞둔 존슨 후보를 공개 지지해 내정간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이날도 “보리스는 매우 유능하고 잘할 것”이라며 존슨 총리를 두둔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