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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처럼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선택과 판단 과정에서 오류를 줄이려는 인류의 노력은 철학, 과학, 문명의 발전을 낳았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 존재다. 그리고 실수를 되풀이한다. 두 책 역시 인간이 어떻게 하면 더 슬기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고민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우리가 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지 주목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보 활용 방식의 변화’를 주문했다. 45년간 정보요원으로 복무한 ‘CIA 심리학’의 저자는 그가 활용했던 기관의 내부 문건을 취합·편집해 책에 담았다. 그가 결론 내린 대다수 오류의 원인은 정보 부족보다는 ‘분석의 실패’다. 분석은 ‘인지편향’ ‘증거 평가의 편향’ ‘확률 추정의 편향’ 등 인간의 심리적, 인지적 문제로 고정관념에 갇혀버린다. 냉철한 판단만 내릴 것 같은 CIA 요원들이 스스로 내리는 판단의 취약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가 짚는 오류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선택의 오류부터 ‘대북 문제’ 등 국가 수뇌부들이 고민하는 정치·외교적 견해까지 엿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우리가 편향적 사고 안에서 얼마나 벗어나기 힘든지 여실히 보여준다. 책은 미국 공무원, CIA 정보원을 위한 교육서로도 활용할 만큼 저자의 통찰이 돋보인다, “지금 이 고민이 5년 후에도 중요할까?” ‘문제해결 대전’ 저자는 일상에서 겪는 숱한 선택의 순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레시피’를 제공하려 책을 썼다. ‘플로이드의 검산’ ‘추론의 사다리’ ‘현상 분석 트리’ 등 그가 내놓은 판단 방법만 37개에 이른다. 알고 있는 지식이라도 새로운 틀에 끼워 맞춰 분석하면 색다른 정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내가 자주 지각한다”는 사실도 “회사가 집이랑 멀어서” “차가 늦게 와서”라는 뻔한 이유를 넘어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나의 몸 상태, 가족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등 나의 지각을 ‘폭넓게’ 바라보면 심각한 문제마저도 유쾌하게 해결할 묘안이 떠오를지 모른다. 그는 성공적 판단을 위해 문헌 조사, 완전 검색 등 추가적 정보 습득도 적극 권유하는 편이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잡학 지식과 정보 분석틀을 통해 독자가 현재 고민 중인 문제를 쉽게 분석해볼 수 있게 돕는다. 학창시절 지나가며 배웠던 ‘브레인스토밍’이나 ‘마인드맵’도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일본 인기 블로거인 저자는 10년간 독서, 아이디어 발상법에 천착해 다양한 매체에 글을 남겼다. 전작 ‘아이디어 대전’은 현지에서 폭발적 호응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번 책 역시 훌륭한 ‘안내서’가 될 만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인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처음으로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MTV는 23일(현지 시간) BTS의 앨범 ‘영혼의 지도: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에 실린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가 베스트 컬래버레이션, 베스트 안무, 베스트 아트 디렉션, 베스트 K팝 부문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고 밝혔다. 미국 싱어송라이터 할시가 피처링한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현재 유튜브에서 조회수 4억 뷰를 넘겼다. 아트 디렉션 부문은 작업에 참여한 MU:E(박진실, 김보나)가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 신설된 K팝 부문에는 BTS, 블랙핑크, 엑소 등이 함께 후보로 올랐다. 시상식은 다음 달 26일 미국 뉴저지 프루덴셜센터에서 열린다. 하지만 일부 팬은 ‘올해의 곡’ ‘올해의 비디오’ 등 주요 부문 후보로 선정되지 않았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주최 측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한편 BTS가 지난달 서울과 부산에서 열었던 총 4차례의 팬미팅이 4000억 원이 넘는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편주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팀은 ‘방탄소년단(BTS) 이벤트의 경제적 효과: 부산, 서울 5기 팬미팅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에서 4813억 원의 직간접적인 경제 효과가 발생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는 기업수익, 대관료, 인건비, 참가자 숙박비 등 직접 효과와 지역 내 추가 소비 창출 등 간접 파급 효과를 추산한 결과다. 부산지역 팬미팅은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비교하면 하루 기준 약 5.5배 높은 경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봤다. 아울러 내수 활성화, 관광수요 창출, 지역균형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의 눈과 귀를 깨울 공연이 펼쳐진다. 국내 최대 규모 아동·청소년 공연 축제인 제27회 ‘2019 아시테지(ASSITEJ) 국제여름축제’가 24일부터 8월 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대학로 일대에서 펼쳐진다. 올해는 ‘스웨덴 주간’이 운영되며 벨기에,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 9개국 극단이 작품 14편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스웨덴 판토밈 시어터의 ‘희망의 빛’은 난민 이야기를 다룬 극이다. 이스라엘 네페시 시어터의 ‘이상한 이웃’은 층간소음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스페인 라룸베 무용단의 ‘3D 백조의 호수’는 원작을 21세기 청소년의 이야기로 재해석했다. 자세한 내용은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서울 예술의전당은 10일부터 8월 25일까지 자유소극장에서 ‘SAC CUBE 2019 예술의전당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캐나다 극단의 음악극 ‘아빠닭’, 서울발레시어터의 가족발레극 ‘댄싱뮤지엄’, 한국과 일본 극단이 공동 제작한 그림자인형극 ‘루루섬의 비밀’을 선보인다. 세종문화회관도 8월 3일부터 18일까지 ‘2019 세종어린이시리즈’에서 ‘베토벤의 비밀 노트’ 클래식 공연을 한다.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피콜로 등을 소개하고 어린이들이 노래 만들기 같은 놀이를 즐기며 참여할 수 있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의 ‘2019 썸머클래식’은 청소년을 위해 쉽고 재미있는 클래식 음악회를 선보인다. 애니메이션 원작 공연도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아이스 뮤지컬 버전인 ‘겨울왕국: 디즈니 온 아이스’가 31일부터 8월 11일까지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다. 고난도 스케이팅 연기와 ‘Let It Go’ 같은 유명 OST로 구성됐다. 뮤지컬 ‘점박이 공룡대모험: 뒤섞인 세계’는 EBS에서 방영된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퍼핏, 와이어를 활용해 공룡이 움직이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우리금융아트홀에서 13일 개막해 8월 25일까지 공연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현실 속 ‘설명충’ ‘투머치토커’(말이나 설명을 과도하게 많이 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가 유튜브에서 각광받고 있다. 이들은 본인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은 채 전문 분야 영상을 만들어 자막이나 내레이션을 덧붙인다. 일반인들의 ‘팟캐스트 전성시대’를 떠올리게 할 만큼 비전문가들의 재치 있는 입담과 설명에 눈길을 끄는 시각자료가 더해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설명충’ 채널은 최근 유명 평론가나 전문가의 유튜브 채널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주로 영상에 출연해 이야기를 주도하거나 다른 패널과 대담을 나누는 데 비해 이 채널들에는 운영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 대신 철저히 설명에 집중한다. 이들 채널은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전문가보다 쉽게 설명하는 것이 강점이다. 스포츠채널 ‘불양TV’는 2012년부터 과거 스포츠 중계나 자료 화면만으로 다양한 선수, 구단, 스포츠 역사에 대한 영상을 제작해 왔다. 주로 분야별 ‘Top 10’ 등 순위를 매긴 영상이나 한 인물의 생애를 설명하는 영상이 인기가 많다. 클래식, 영화, 역사, 예술 분야에서도 오로지 설명만 하는 채널이 급증하고 있다. 운영자들은 당장의 수익보다는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면서 시청자들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채널을 개설하는 경우가 많다. 두 달 전 스포츠 분야 채널을 시작한 한 유튜버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내가 알고 있는 분야의 내용을 실컷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며 “신분이나 본업을 드러낼 필요도 없이 간단한 영상만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들 채널은 구독자의 충성도도 높은 편이다. “다른 주제의 영상도 제작해 달라”며 금액을 후원하기도 하고, 댓글을 통해 토론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한 역사 설명채널의 구독자는 “유튜버의 신분이나 영상 외적 정보까지 아는 건 오히려 피로감을 주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만 전달하는 설명 채널을 선호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채널이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상이 창작보다는 기존 자료에 설명을 덧붙이는 ‘2차 창작물’로 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기존 자료화면과 영상을 짜깁기할 경우 저작권 침해로 제재를 받기도 한다. 유튜브는 각 채널을 심사해 문제점이 확인되면 수익 창출을 금지하는 ‘노란 딱지’ 제재를 가한다. 유튜브 측은 “저작권자와 크리에이터 사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부정확한 정보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는 구독자가 영상 속 오류를 발견해 내용 수정을 요청하고 제작자가 이를 수정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고의가 아니더라도 부정확한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가짜뉴스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며 “영상으로 인한 피해를 특정하거나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에 창작자의 윤리 의식을 강화하는 한편 별도 기관의 팩트체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대세 뮤지컬 배우요? 아직 10년도 안 된 ‘대리급’ 배우인데요.” 최근 몇 년간 대작 뮤지컬 라인업에는 늘 그의 이름이 있다. 뮤지컬계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하는 카이(38)는 뮤지컬 ‘엑스칼리버’의 마지막 공연을 마치자마자 30일 막을 올리는 뮤지컬 ‘벤허’의 주인공 ‘유다 벤허’가 되기 위해 변신 중이다. 칼을 들고 무대를 뛰어다니며, 원작 영화와 마찬가지로 귀족과 노예를 오가는 극적인 서사의 주인공이 됐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매일 연습실로 향하는 그를 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공연장에서 만났다. 연습을 막 마치고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에게 ‘다작 배우’로서의 고충을 묻자 대뜸 배우 하정우의 얘기를 꺼냈다. “한 인터뷰에서 ‘왜 이렇게 다작을 하느냐’는 질문에 하정우 선배가 ‘다작이 아니라 그저 배우로서 살고 있을 뿐’이라고 답한 걸 봤어요. 정말 공감이 가더라고요. 감정을 많이 소모해야 한다는 우려도 이해하지만 그저 배우로서 무대에서 충실히 살고 있을 뿐이거든요.” ‘늘 충실한 배우’로 불리길 원하는 그는 소망(?)과는 달리 일찍부터 실력과 스타성을 인정받았다.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해 가창력은 물론이고 뛰어난 연기력과 수려한 외모로 출연작마다 스타덤에 올랐다. 2년 전 출연한 뮤지컬 ‘벤허’에서도 유준상 박은태와 함께 탄탄한 실력을 선보였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한순간도 없을 정도로 매 순간에 충실했다”는 그는 다가올 무대에서도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 최선의 무대를 선보이고 싶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대학 시절 “노래로 성공해 언젠가는 삼성역에 붙어 있는 면세점 광고 모델이 되는 상상을 했다”는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글로벌 스타다. 노래로 성공해 그 꿈을 이뤘느냐는 질문에는 “아직은 그때가 아닌 것 같다”며 웃었다. 오히려 최근 스스로를 돌아보고 걱정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무대에 오를수록 외부에서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보다 스스로에게 더 집중하게 돼요. 무대에선 당당해 보여도 실은 매일 ‘어떻게 하면 좋지?’라고 끊임없이 걱정하거든요. 공연이 끝나고 매일 쓰는 일기도 ‘나는 오늘도 흔들린다’가 주제입니다. 하하.” 풋풋한 외모와 달리 그는 정신적으로는 성숙한 ‘아재미’를 지녔다. 뭐든 아날로그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해석하는 게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지금도 연출가의 지침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는 게 어색해요. 뭐든지 펜으로 적어야 이해도 빠르고 몰입도 잘되거든요. 아날로그적인 것에 편안함을 느껴요. 그게 제가 작품마다 몰입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면세점 광고 모델이 되고 싶다”는 농담 섞인 바람과는 달리 그의 진짜 소원은 따로 있었다. 문화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이 무료 티켓을 제공하는 것. 오래전부터 그는 사비를 들이고 팬들도 기금을 마련해 ‘뮤드림’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팬들에게 선물 ‘조공’ 대신 프로젝트 동참을 요청해요. 아이들이 자라면 뮤지컬 팬이자 제 팬이 될 테니까요. 하하.” 30일부터 10월 13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6만∼14만 원. 8세 이상.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나는 인종주의자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인종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없다. 피부색에 따라 인간을 규정할 수 없을뿐더러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인식이 통용되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명백한 반인륜적 범죄이며 ‘열등한’ 흑인을 노예로 삼았던 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인종 갈등으로 내홍을 겪은 국가는 제도적 불평등을 고쳐나가며 과오를 씻어내는 듯하다. 인종주의는 정말 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종주의는 건재하다. 저자는 인종주의가 자유, 평등같이 인류가 쟁취한 절대적 가치마저 무력하게 할 만큼 강력하며 시대상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할 뿐이라고 말한다. 일본 도쿄대에서 ‘영국의 우생학 운동과 모성주의’로 박사학위를 받고 10여 년간 인종주의 연구에 천착한 저자는 인종주의를 “낙인”이자 “배제” 그리고 “인종적 타자의 몸을 먹고 자란 ‘히드라’”라고 표현했다. 책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속성에 근거해 타자를 분류하고 가치를 매긴” 19세기 인종주의의 기원부터 그 이데올로기의 토대가 된 ‘몸 담론’을 짚는다. 백인우월주의를 비롯해 유대인, 아프리카인, 이슬람인이 겪었던 역사와 풍부한 통찰이 이해를 돕는다. 두개골, 피부색, 머리카락 등 외적 요소가 판단 기준이 된 19세기의 ‘생물학적 인종주의’는 21세기에 들어 젠더, 문화, 경제, 종교적 특징과 결합했다. 양상은 당연히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저자는 오늘날 인종주의가 문화와 정체성의 차이뿐인 것처럼 은폐되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하며 “신인종주의” “인종 없는 인종주의”라고 명명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한국 내의 인종주의를 다뤘다. ‘백인과 구별되는 아시아인’으로서 과거 인종주의의 피해자로만 여겨지던 한국인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며 인종주의의 주체가 됐다고 지적한다. 무심코 사용하는 ‘한국형 미인’ ‘그리스 조각 미남’ ‘혼혈인’ 같은 일상적 표현부터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이 겪는 아픔을 마주하면, 인종주의를 마냥 ‘몰상식한 자들의 오류’로만 치부하기 힘들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탐정소설 가튼 고녀(하녀) 교살사건, 남의 집 고녀를 밤새에 죽여…엽방에서 교살되엇고 얼굴과 기타에 타살된 곳도 잇섯다 한다.”(1931년 8월 4일 동아일보)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충격에 빠뜨렸던 살인사건이 특수음향, 그림자와 만나 무대에서 마법처럼 재현된다. 연극 ‘그때, 변홍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일본인이 되려 했던 한 한국인의 욕망을 그린 작품. 신파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당대 한국인의 처연한 자화상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초연 당시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뽑혔으며, 6월 스페인 마드리드 초청공연을 마친 뒤 다시 막을 올렸다. 부산의 한 일본인 가정 하녀 변홍례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일본인의 탈을 쓴 채 사는 인물. 언젠가 자신도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일본인들은 그를 이용하기에 바빴고, 치정사건에 엮여 살해당한다. 타살 정황과 흔적이 명확함에도 일본인 용의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진실도 그 자리에 멈췄다. 무거운 주제와 달리 극을 전개하는 방식은 놀이에 가까울 정도로 발랄하다. 배우의 희극적 몸동작에 다른 배우가 무성영화 후시녹음처럼 익살스러운 소리를 덧입힌다. 비닐, 배추, 나무, 구두 등 온갖 소품을 활용한 음향에 과장된 몸동작까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관객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발한 그림자, 조명 연출까지 더해져 80분 러닝타임 내내 보고 듣는 맛을 꽉 채웠다. 전개 방식이 유쾌하고 가벼우나, 극의 메시지 자체를 해치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다. 줄거리 전개에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 이따금씩 배우들이 ‘놀이의 차원’에서 불필요하게 객석으로 향하거나 과장된 웃음과 박수를 유도한다. 이런 군살을 조금만 덜어낸다면 평단을 넘어 관객에게도 최고의 ‘레트로 극’이 될 만하다.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전석 3만 원. 만 15세 이상.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그래서 지금 당신이 죄 없는 소녀의 목을 매달겠다고?” “증거만 보면 소녀는 유죄가 맞아요. 당신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자꾸 덧붙여 말하고 있어요.” 10일 서울 대학로 한 극장 무대. 한참 연극이 진행 중이지만, 이 설전은 배우의 대사가 아니다. 한 관객과 배우가 서로의 논리를 지적하며 토론을 벌인다. 연극 ‘시비노자’는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관객과 배우가 모두 배심원으로 참여해 ‘무죄’ ‘유죄’ 평결을 내린다. 최근 국내 공연계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관객 참여형’ 작품이 늘고 있다. 영국에서 처음 선보였다고 알려진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의 일종으로, 국내 제작진도 관객과의 소통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시비노자’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연극의 3요소’ 가운데 하나인 관객이 기존의 통념을 깨고 전면에 나선다. 배우들은 객석을 향해 자연스레 “소녀가 무죄(혹은 유죄)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고 물었다. ‘반응이 없으면 어쩌지’란 기우는 찰나였다. 웅성웅성하던 관객들이 하나둘씩 손을 들곤 본인의 생각을 꺼내놓았다. 관계자는 “관객 의견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어 무대마다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며 “토론과 객석 투표에 따라 매번 결론이 달라지는 게 묘미”라고 설명했다. 최신 기술을 이용해 관객과 소통하는 작품도 있다. 연극 ‘#나만빼고’는 사전에 관객들에게 “꼭 휴대전화를 켠 채 공연 관람하라”고 공지한다.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서다. 관객은 오픈 채팅방에서 배우의 친구가 돼 공연 도중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메시지는 무대에 설치한 대형 화면으로 다른 관객과 공유된다. 박상협 연출은 “관객 참여가 줄거리까진 바꾸진 않는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하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관객이 소품을 통해 개입한다. 배우가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손전등을 켜주거나, 사전에 준비한 빵을 무대 위로 던져주기도 한다. 연극 ‘머더 미스터리’나 ‘포스트 아파트’도 즉흥적인 관객 참여를 유도해 경계를 허문다. 관객 참여형 작품은 변수가 많은 만큼 배우들의 순발력이 무척 중요하다. 반응이 저조할 경우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시비노자’의 강봉훈 연출은 “참여를 유도하려고 배우들이 특정 관객을 지목해 의견을 되묻거나 반박하며 도발하는 등 반응을 유도한다. 결말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버전의 결말을 숙지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관객 참여형 공연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영미에서 9년째 흥행 가도를 달리는 중인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가 대표작. 호텔 5개 층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은 관객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본다. 어느 장소에 있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경험을 하는 셈이다. 박병성 공연평론가는 “공연 자체를 해체하고 관객을 개입시키는 건 세계적 흐름”이라며 “관객이 친밀감과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참여형 공연이 국내에서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한결 평론가도 “아직 국내에선 익숙지 않는 공연인 게 사실이지만, 최근 ‘푸에르자 부르타’ 같은 공연이 반복적으로 대중과 만나며 흥행했다. 이런 실험적 공연은 꾸준히 관객과 만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피아노 한 곡쯤은 하루 만에 완성한다?” “수영은 잘 못해도 하루 만에 서핑한다?” 짧은 시간을 투자해 효율적으로 새로운 취미를 배우는 ‘원데이 클래스’(하루 만에 특정 분야를 배우는 수업)가 뜨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5∼6시간 동안 자기계발을 하는 동시에 소소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데이 클래스의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 잡은 2030 직장인들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정기휴가를 이용하기보다는 평일 반차나 주말 시간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KTX, 저비용항공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원데이 클래스 생활권은 전국 단위로 확장하는 추세를 보인다.》 회사원 이희찬 씨(32)는 최근 ‘피아노 1곡 완성’ 원데이 클래스에 등록했다. “살면서 한 곡쯤은 피아노로 자신 있게 연주하고 싶다”는 그만의 버킷리스트 때문. 평소 그가 좋아하는 이루마의 ‘Kiss the Rain’을 2시간 동안 배운 그는 연습을 거쳐, 편곡된 1분 분량의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어렸을 때 잠시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라 한 곡을 연주하는 게 가능할지 걱정했는데, 쉬운 버전의 곡을 연주하면서 소박한 꿈을 이뤘다”고 했다. 자신감을 찾은 그는 다음 단계의 클래스에 등록해 다른 곡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음악에 대한 기초가 없는 사람도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 시간에 따라 2만 원에서 5만 원까지 가격 부담도 적은 편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피아노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최보경 씨(28)는 “처음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도 손가락마다 번호를 기입해 양손 연주가 가능하도록 가르친다”며 “보통 3분이 넘는 곡을 1분 내외로 쉽게 편곡하면 누구든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수강생의 90% 이상인 20, 30대 직장인들이 주로 평일에 찾아온다. 갑자기 연주해야 하는 사람보다는 연주하고 싶은 곡을 들고 오는 사람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서핑 붐을 타고 강원 강릉과 양양, 울산, 제주의 당일치기 서핑 클래스를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양양 ‘서프 오션스’에서 서핑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곽성태 씨(42)는 “수영을 못 하는 사람도 안전한 지역에서 이론, 지상, 실전 교육을 통해 2시간이면 서핑보드에 서도록 가르친다”고 했다. 수도권에서 KTX를 타고 오는 수강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울에서 서핑을 배우기 위해 양양을 찾은 이정호 씨(33)는 “완벽하진 않지만 평생 꿈꿔 왔던 서핑에 도전한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지방에 위치한 사찰도 쉽게 갈 수 있게 되면서 당일 체험형 템플스테이도 확대되는 추세다. 사찰 탐방을 비롯해 사찰음식, 108배 교육 등 당일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인 통도사(경남 양산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코스의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통도사 관계자는 “경북, 경남권의 젊은층을 비롯해 수도권에서도 직장인들이 하루 동안 사찰을 탐방하고 불교를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다”고 설명했다. 원데이 클래스의 종류는 세분되고 있다. 플라워 케이크 만들기, 캔들 만들기, 캘리그래피 등 기초 지식이 없어도 도전할 수 있는 분야부터 작곡, 디제잉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수업도 많다. ‘원데이 클래스 중독자’라고 밝힌 한 직장인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매주 ‘도장 깨기’ 하듯 새로운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회사에서보다 더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현재 취미 애플리케이션 ‘프립(Frip)’과 ‘탈잉(Taling)’에서는 수십 개의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효율적으로 성취감과 재미를 찾으려는 2030세대의 특징과 맞닿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는 긴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필요한 분야만 취사선택해서 배우려는 세대의 특징이 녹아 있다”며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와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원데이 클래스 등 자기계발 열풍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에서 여가 사용을 장려하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소소한 성취감을 찾으려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유럽, 미국에서는 ‘퇴근 후 1시간 그림 그리기’처럼 일반인이 참여하는 예술, 스포츠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김기윤 pep@donga.com·조종엽 기자}
서울국제문화교류회가 19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제16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SIDC)를 개최한다. 2004년 시작된 SIDC는 김기민(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상은(독일 드레스덴 발레단 수석무용수), 한서혜(미국 보스턴 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재우(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지수(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단원) 등 스타 무용수들을 발굴했다. 올해 SIDC에는 10개국에서 500여 명의 신인 무용수가 참여한다. 외국인 무용수 비율은 33%(169명)다. 경연은 발레, 컨템포러리, 민족무용, 안무 부문으로 나뉜다. 수상자에게는 캘리포니아예술학교 등 세계 유명 무용기관에서 유학 및 연수할 기회를 제공한다. 경연 이외 부문별 페스티벌 등을 통해 관객에게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인다. SIDC의 마지막을 장식할 월드갈라에는 김천웅(바체바 무용단), 최영규(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게라시첸코 에고르(볼쇼이 발레단), 툇마루 무용단이 참여한다. 3만∼7만 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피아노 한 곡쯤은 하루 만에 완성한다?” “수영은 잘 못해도 하루 만에 서핑한다?” 짧은 시간을 투자해 효율적으로 새로운 취미를 배우는 ‘원데이 클래스(하루만에 특정 분야를 배우는 수업)’가 뜨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5~6시간 동안 자기계발을 하는 동시에 소소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데이 클래스의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 잡은 2030 직장인들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정기휴가를 이용하기보다는 평일 반차나 주말 시간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KTX, 저가항공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원데이 클래스 생활권은 전국 단위로 확장하는 추세다. 회사원 이희찬 씨(32)는 최근 ‘피아노 1곡 완성’ 원데이 클래스에 등록했다. “살면서 한 곡쯤은 피아노로 자신 있게 연주하고 싶다”는 그만의 버킷리스트 때문. 평소 그가 좋아하는 이루마의 ‘Kiss the Rain’을 2시간 동안 배운 그는 연습을 거쳐, 편곡된 1분 분량의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어렸을 때 잠시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라 한 곡을 연주하는 게 가능할지 걱정했는데, 쉬운 버전의 곡을 연주하면서 소박한 꿈을 이뤘다”고 했다. 자신감을 찾은 그는 다음 단계의 클래스에 등록해 다른 곡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음악에 대한 기초가 없는 사람도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 시간에 따라 2만 원에서 5만 원까지 가격 부담도 적은 편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피아노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 중인 최보경 씨(28)는 “처음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도 손가락마다 번호를 기입해 양손연주가 가능하도록 가르친다”며 “보통 3분이 넘는 곡을 1분 내외로 쉽게 편곡하면 누구든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수강생의 90% 이상인 20, 30대 직장인들이 주로 평일에 찾아온다. 갑자기 연주해야 하는 사람보다는 연주하고 싶은 곡을 들고 오는 사람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서핑 붐을 타고 강원 강릉과 양양, 울산, 제주에 당일치기 서핑 클래스를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강원 양양에서 서핑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곽성태 씨(42)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안전한 지역에서 이론, 지상, 실전 교육을 통해 2시간이면 서핑보드에 서도록 가르친다”고 했다. 수도권에서 KTX를 타고 오는 수강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울에서 서핑을 배우기 위해 양양을 찾은 이정호 씨(33)는 “완벽하진 않지만 평생 꿈꿔왔던 서핑에 도전한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지방에 위치한 사찰도 쉽게 갈 수 있게 되면서 당일 체험형 템플스테이를 확대하는 추세다. 사찰 탐방을 비롯해 사찰음식, 108배 교육 등 당일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인 통도사(경남 양산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코스의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통도사 관계자는 “경북, 경남권의 젊은층을 비롯해 수도권에서도 직장인들이 하루 동안 사찰을 탐방하고 불교를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원데이 클래스의 종류는 세분화되고 있다. 플라워 케이크 만들기, 캔들 만들기, 캘리그라피 등 기초 지식이 없어도 도전할 수 있는 분야부터 작곡, 디제잉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수업도 많다. ‘원데이 클래스 중독자’라고 밝힌 한 직장인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매주 ‘도장 깨기’ 하듯 새로운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회사에서보다 더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현재 취미 애플리케이션 ‘프립(Frip)’과 ‘탈잉(Taling)’에서는 수십 개의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효율적으로 성취감과 재미를 찾으려는 2030 세대의 특징과 맞닿아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는 긴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필요한 분야만 취사선택해 배우려는 세대의 특징이 녹아 있다”며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와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원데이 클래스 등 자기계발 열풍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영향으로 평일 중 반차와 자기계발 시간을 장려하는 직장 문화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에서 여가 사용을 장려하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직장 밖에서 소소한 성취감을 찾으려는 풍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제프(Jeff), 장난질 좀 그만해요.” “(그 사람의 계획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그저 환상일 뿐이죠.” 다소 유치해 보이는 듯한 이 설전은 최근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사이에서 벌어졌다. 두 사람은 각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기자회견에서 상대를 겨냥해 뼈 있는 농담을 건네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업 수장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경쟁 기업의 정책에 몇 마디씩 던지는 건 미국에선 어찌 보면 흔한 일. 그런데 이들의 설전을 유치한 신경전으로만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이들은 감히 ‘우주’를 놓고 대화했기 때문이다. ‘타이탄’은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인 저자가 두 사람을 비롯한 억만장자들의 우주 사업 도전기를 그렸다. 머스크와 베이조스를 중심으로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지금은 고인이 된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이자 스트라토론치의 폴 앨런 등이 왜 우주에 끊임없이 매달리는지 취재했다. 인터뷰는 물론 기업 관계자, 주변 인물로부터 얻은 취재 과정의 뒷이야기까지 생생하게 담았다. 잘 조명되지 않던 억만장자들의 유년기를 보는 맛도 쏠쏠하다. 엉뚱한 상상으로 유명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괴짜’로 통한다. 민간기업 자격으로 우주 개발을 논할 때 누군가는 “공상일 뿐”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이들은 공상을 사업 비전으로 일궈냈다. 이들을 일컫는 다른 별명이 ‘혁신가’인 이유다. 약 10년 전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의 작은 사무실에서 모인 몇몇 기업가들이 “NASA가 중단한 곳에서부터 길을 찾아야 한다”며 ‘PSF(Personal Spaceflight Federation·개인 우주비행 연합)’를 설립한 일화는 무모함보다는 담대함을 느끼게 한다. 원가를 절감하려 꼼꼼하게 설비 가격을 논하는 모습은 그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남들이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듯 우주 산업의 단가를 구상하는 장면은 노는 물이 다른 저 세상 얘기 같아 웃음이 날 정도다. 민간기업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돈을 들여서 우주를 개발하려 한다면 정부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아쉽게도 정부, 특히 NASA는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았다. 저자는 정부 규제에 맞서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로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예를 들어 인맥에 의해 많은 게 좌우되던 NASA는 2000년대에 들어 무능력과 무의지의 상징이었다. NASA가 계속 수의계약으로 파트너를 선정하자, 머스크가 NASA와 소송전에 돌입해 승소한 뒤 경쟁 입찰에 참여한 일화는 그의 의지를 가늠케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위험부담을 무릅쓰고도 이들은 왜 우주에 골몰하는가. 책에 비추어 보자면 머스크, 베이조스 등이 우주에서 귀신같이 돈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년기에 품어온 사명감, 도전정신을 우주라는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우주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이 됐다. 훗날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믿을 만한 놈인가, 미친놈인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타이탄크리스천 데이븐포트 지음·한정훈 옮김504쪽·1만8000원·리더스북 “제프(Jeff), 장난질 좀 그만해요.” “(그 사람의 계획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그저 환상일 뿐이죠.” 다소 유치해 보이는 듯한 이 설전은 최근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사이에서 벌어졌다. 두 사람은 각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기자회견에서 상대를 겨냥해 뼈 있는 농담을 건네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업 수장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경쟁기업의 정책에 몇 마디씩 던지는 건 미국에선 어찌 보면 흔한 일. 그런데 이들의 설전을 유치한 신경전으로만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이들은 감히 ‘우주’를 놓고 대화했기 때문이다. ‘타이탄’은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인 저자가 두 사람을 비롯한 억만장자들의 우주 사업 도전기를 그렸다. 머스크와 베이조스를 중심으로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지금은 고인이 된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이자 스트라토론치의 폴 앨런 등이 왜 우주에 끊임없이 매달리는지 취재했다. 인터뷰는 물론 기업관계자, 주변인물로부터 얻은 취재과정의 뒷이야기까지 생생하게 담았다. 잘 조명되지 않던 억만장자들의 유년기를 보는 맛도 쏠쏠하다. 엉뚱한 상상으로 유명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괴짜’로 통한다. 민간기업 자격으로 우주 개발을 논할 때 누군가는 “공상일 뿐”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이들은 공상을 사업 비전으로 일궈냈다. 이들을 일컫는 다른 별명이 ‘혁신가’인 이유다. 약 10년 전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의 작은 사무실에서 모인 몇몇 기업가들이 “NASA가 중단한 곳에서부터 길을 찾아야 한다”며 ‘PSF(Personal Spaceflight Federation·개인 우주비행 연합)’을 설립한 일화는 무모함보다는 담대함을 느끼게 한다. 원가를 절감하려 꼼꼼하게 설비 가격을 논하는 모습은 그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남들이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듯 우주 산업의 단가를 구상하는 장면은 노는 물이 다른 저 세상 얘기 같아 웃음이 날 정도다. 민간기업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돈을 들여서 우주를 개발하려 한다면 정부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아쉽게도 정부, 특히 NASA는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았다. 저자는 정부 규제에 맞서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로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예를 들어 인맥에 의해 많은 게 좌우되던 NASA는 2000년대에 들어 무능력과 무의지의 상징이었다. NASA가 계속 수의계약으로 파트너를 선정하자, 머스크는 NASA와 소송 전에 돌입해 승소한 뒤 경쟁 입찰에 참여한 일화는 그의 의지를 가늠케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위험부담을 무릅쓰고도 이들은 왜 우주에 골몰하는가. 책에 비추어보자면 머스크, 베이조스 등이 우주에서 귀신같이 돈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년기에 품어온 사명감, 도전정신을 우주라는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우주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이 됐다. 훗날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믿을 만한 놈인가, 미친놈인가?” 김기윤기자 pep@donga.com}
“안무하다가 방탄이들 다치면 어쩌죠?” “아이돌 안무가 아니라 한 편의 뮤지컬이나 현대무용 작품 같아요.” 예술적이면서도 격한 안무로 방탄소년단(BTS) 팬들 사이에서 ‘애증의 존재’가 된 곡이 있다. BTS의 앨범 ‘MAP OF THE SOUL: PERSONA(페르소나)’의 마지막 트랙 ‘디오니소스(Dionysus)’는 힘이 넘치는 동작과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군무의 짜임새가 빼어난 곡으로 평가받는다. 팬들은 “탈(脫)아이돌급 안무가 나왔다”고 환호하면서도 서 있는 상태에서 앞으로 넘어지는 ‘낙하 동작’이 위험해 보인다며 우려 섞인 시선도 드러냈다. 일부는 “멤버가 다칠 수도 있으니 안무 수정은 안 되나”라며 온라인에서 성토했다. 이에 5월 BTS 공연에서 해당 동작이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로 바뀌기도 했다. 곡의 파워풀한 안무를 맡은 건 미국 하와이 출신의 천재 안무가 시에나 랄라우(19)다. “열혈 케이팝 팬”을 자처한 그는 엑소(EXO)의 ‘러브 샷(Love Shot)’ 안무도 공동으로 창작했다. 5월 BTS의 미국 콘서트는 물론이고 팝가수 제니퍼 로페즈, 시에라 등 공연에도 출연했다. 세계를 누비며 활동 중인 그를 최근 e메일로 만났다. 어려서부터 ‘소녀시대’ 노래를 즐겨 듣고 케이팝 안무를 따라 하던 꼬마 아이가 직접 아이돌 그룹의 안무를 맡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중학교 때 처음 소녀시대를 알게 됐고 이후로 케이팝을 즐겨 들었어요. 그런 제가 BTS의 안무를 맡고 한 무대에 오른 순간은 아직도 잘 실감나지 않죠.” 요즘도 그는 케이팝에 관심이 많다. BTS를 비롯해 엑소,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스트레이키즈의 춤을 좋아한다는 그는 “아이돌 그룹이 항상 큰 감명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는 춤만 추지만 가수들은 춤추는 동시에 노래도 하고 관중과 소통하는 게 정말 대단해요.” 네 살 때부터 힙합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는 그는 이른바 ‘춤 신동’으로 불렸다. 하지만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말하는 게 싫다”며 자세를 낮췄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안무가로 성공한 비결에 대해 묻자 “춤에 대한 사랑은 네 살 이후로 한 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춤추는 순간에 가장 자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안무는 다양한 장르를 복합해 녹여내는 특징이 있다. “모든 예술 장르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그의 안무에서 팬들이 현대무용, 뮤지컬, 발레를 떠올린 건 당연하다. “요즘엔 2000년대 힙합, R&B 장르를 연습하는데 그 밖에도 재즈, 파핀, 발레, 현대무용, 뮤지컬 등 모든 장르를 봅니다. 어떤 예술이든 배울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그는 안무를 만들 때 “무엇보다 노래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 대신 누구보다 집요하게 노래를 파헤친다. “안무를 창작하기 전 가사, 멜로디, 애드리브, 박자의 느낌을 충실히 파악하는 편입니다. 안무는 몸을 통해 말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음악이야말로 몸을 움직여 말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거든요.” 안무가로 활동하는 그녀는 소속 댄스 그룹 ‘더랩(The Lab)’의 춤꾼이기도 하다. 완벽에 가까운 ‘칼군무’로 유명한 더랩은 케이팝 그룹 이상으로 혹독하게 연습 과정을 거친다. “칼군무를 완성하는 과정을 우리는 ‘클리닝(Cleaning)’이라고 불러요. 공연을 앞두고 매일 최소 8시간의 리허설을 합니다. 디테일, 동작, 라인이 모두 맞아떨어질 때까지 연습하면 몸도 지치고 부상도 잦아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깨끗하고 ‘바삭바삭하게 맛있는’ 안무가 탄생하죠.” 아티스트로서 확고한 철학을 말하던 그도 한국 문화 얘기를 꺼내자 잠시 무장을 해제했다. “쉬는 시간에 한국 드라마 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며 숨겨왔던 팬심을 드러냈다. 이어 올해 3월 한국을 처음 방문해 ‘댄스 클래스’에 참석한 일화를 들려줬다. “한국 댄서들이 저를 존중하면서 많은 걸 배우려는 자세를 보여줬어요. 근데 춤을 추기 시작하니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돌변하더라고요. 춤을 배우려는 의지, 열정에 감명 받았습니다.” 이미 안무가로 많은 것을 이룬 그에게 꿈과 목표를 물었다. 그는 “춤이 없는 제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다”며 “앞으로도 BTS 같은 유명 가수와 안무 작업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댄서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춤을 사랑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비쳤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안무하다 방탄이들 다치면 어쩌죠?” “아이돌 안무가 아니라 한 편의 뮤지컬이나 현대무용 작품 같아요.” 예술적이면서도 격한 안무로 BTS(방탄소년단) 팬들 사이에서 ‘애증의 존재’가 된 곡이 있다. BTS의 앨범 ‘MAP OF THE SOUL: PERSONA(페르소나)’의 마지막 트랙 ‘디오니소스(Dionysus)’는 힘이 넘치는 동작과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군무의 짜임새가 빼어난 곡으로 평가받는다. 팬들은 “탈(脫) 아이돌급 안무가 나왔다”고 환호하면서도 서있는 상태에서 앞으로 넘어지는 ‘낙하동작’이 위험해 보인다며 우려 섞인 시선도 드러냈다. 일부는 “멤버가 다칠 수도 있으니 안무 수정은 안 되나”라며 온라인에서 성토했다. 이에 5월 BTS 공연에서 해당 동작이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로 바뀌기도 했다. 곡의 파워풀한 안무를 맡은 건 미국 하와이 출신의 천재 안무가 시에나 라라우(Sienna Lalau·19)다. “열혈 케이팝 팬”을 자처한 그는 엑소(EXO)의 ‘Love Shot(러브 샷)’의 안무도 공동으로 창작했다. 5월 BTS의 미국 콘서트는 물론 팝가수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시아라(Ciara) 등 공연에도 출연했다. 세계를 누비며 활동 중인 그를 최근 e메일로 만났다. 어려서부터 ‘소녀시대’ 노래를 즐겨 듣고 케이팝 안무를 따라하던 꼬마 아이가 직접 아이돌 그룹의 안무를 맡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중학교 때 처음 소녀시대를 알게 됐고 이후로 케이팝을 즐겨들었어요. 그런 제가 BTS의 안무를 맡고 한 무대에 오른 순간은 아직도 잘 실감나지 않죠.” 요즘도 그는 케이팝에 관심이 많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엑소(EXO),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스트레이키즈의 춤을 좋아한다는 그는 “아이돌 그룹이 항상 큰 감명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는 춤만 추지만 가수들이 춤추는 동시에 노래도 하고 관중과 소통하는 게 정말 대단해요.” 네 살 때부터 힙합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는 그는 이른바 ‘춤 신동’으로 불렸다. 하지만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말하는 게 싫다”며 자세를 낮췄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안무가로 성공한 비결에 대해 묻자 “춤에 대한 사랑은 네 살 이후로 한 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춤추는 순간에 가장 자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안무는 다양한 장르를 복합해 녹여내는 특징이 있다. “모든 예술 장르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그의 안무에서 팬들이 현대무용, 뮤지컬, 발레를 떠올린 건 당연하다. “요즘엔 2000년대 힙합, R&B 장르를 연습하는데 그밖에도 재즈, 팝핀, 발레, 현대무용, 뮤지컬 등 모든 장르를 봅니다. 어떤 예술이든 배울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그는 안무를 만들 때 “무엇보다 노래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대신 누구보다 집요하게 노래를 파헤친다. “안무를 창작하기 전 가사, 멜로디, 애드립, 박자의 느낌을 충실히 파악하는 편입니다. 안무는 몸을 통해 말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음악이야말로 몸을 움직여 말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거든요.” 안무가로 활동하는 그녀는 소속 댄스 그룹 ‘The Lab(더랩)’의 춤꾼이기도 하다. 완벽에 가까운 ‘칼군무’로 유명한 더랩은 케이팝 그룹 이상으로 혹독하게 연습 과정을 거친다. “칼군무를 완성하는 과정을 우리는 ‘클리닝(Cleaning)’이라고 불러요. 공연을 앞두고 매일 최소 8시간의 리허설을 합니다. 디테일, 동작, 라인이 모두 맞아 떨어질 때까지 연습하면 몸도 지치고 부상도 잦아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깨끗하고 ‘바삭바삭하게 맛있는’ 안무가 탄생하죠.” 아티스트로서 확고한 철학을 말하던 그도 한국 문화 얘기를 꺼내자 잠시 무장을 해제했다. “쉬는 시간에 한국 드라마 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며 숨겨왔던 팬심을 드러냈다. 이어 올해 3월 한국을 처음 방문해 ‘댄스 클래스’에 참석한 일화를 들려줬다. “한국 댄서들이 저를 존중하면서 많은 걸 배우려는 자세를 보여줬어요. 근데 춤을 추기 시작하니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돌변하더라고요. 춤을 배우려는 의지, 열정에 감명 받았습니다.” 이미 안무가로 많은 것을 이룬 그에게 꿈과 목표를 물었다. 그는 “춤이 없는 제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다”며 “앞으로도 BTS 같은 유명가수와 안무 작업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댄서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춤을 사랑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
귀를 찢을 듯한 락의 에너지가 그야말로 무대를 ‘찢었다.’ 관객을 자동기립하게 만드는 흥과 힘을 갖춘 수작이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은 동명의 원작 영화를 각색해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를 만든 뮤지컬계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신작으로 제작단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작품은 명문 사립학교에 대리교사로 출근한 주인공 ‘듀이’가 아이들과 락 밴드를 만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고상한 클래식 음악만을 배우던 아이들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락에 눈을 뜨면서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줄거리는 이처럼 원작의 문법을 따르되 영화 사운드트랙 3곡 외에 14개 넘버를 추가해 음악적으로 재탄생했다. ‘로큰롤’과 ‘팝’의 요소가 녹아든 넘버 덕분에 헤비메탈 등 강한 락 장르에 거부감을 가진 관객이라도 친숙하게 느낄 만하다. 작품의 메시지는 선명하다. “네 자신의 꿈을 찾아라.” 명문사립학교→명문대의 성공가도를 성공가도를 강요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노래와 밴드 공연을 통해 진정한 꿈을 말한다. 상투적인 전개지만, 사교육과 대입에 얽매인 씁쓸한 한국의 학생들을 떠올리게 해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 덕분에 오리지널 뮤지컬 특유의 겉도는 ‘외국감성’ 없이 관객을 쉽게 몰입시킨다. 스토리를 충실히 보완하는 건 배우들의 재능과 열정이다. 제작진이 “주인공 ‘듀이’ 발굴이 제작단계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했을 만큼 배우 코너 존 글룰리의 존재감은 160분 내내 폭발한다. 디테일한 동작, 연주, 노래에서도 결코 몸과 목을 사리지 않는다. 어린 뮤지션들의 환상적 연주와 열창이 보태지면서 원작 이상의 감동을 자아낸다. 단점을 굳이 하나만 꼽자면 이렇다. “저렇게 미친 듯 무대를 휘젓고 다니면 다음 공연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모든 배역은 원캐스트다. 8월 25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6만~16만 원. 8세 관람가. ★★★★☆(★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어머!(Mamma Mia!) 우리 셋이 함께 노래한 게 벌써 20년 전이라고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뮤지컬 ‘맘마미아’ 연습실. 폭염 속에서도 유독 이곳 근처에서 습하고 더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연습실 밖으로는 아바(ABBA)의 익숙한 음악과 함께 배우들의 열창, 구호 소리 그리고 웃음이 흘러 나왔다. 연습 중 잠시 짬을 낸 최정원(50) 김영주(45) 박준면(43) 맘마미아 3총사를 5일 만났다. 이른 아침부터 격한 안무와 노래로 땀을 흘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환하게 미소 짓던 이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샐러드, 빵같이 먹을 것만 보면 금세 힘이 난다”며 웃었다. 최정원은 “연습 때부터 배우들이 스스로 행복해야 공연도 잘 나오고 관객도 즐거운데 연습이 즐거운 걸 보니 무대에서 흥이 폭발할 것 같다. 사소한 호흡, 감정, 연기 변화에 왜 그렇게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20년 전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케미’가 연습실에서 톡톡히 발휘되는 것 같다”고 했다. 레전드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만난 레전드 배우 3총사는 2000년 뮤지컬 ‘렌트’에서 함께 무대에 선 적이 있다. 당시를 떠올리던 박준면은 “정원 언니는 이미 막강한 팬덤을 거느린 대스타였기 때문에 먼발치에서 옷 갈아입는 모습을 훔쳐봤어요. 막내 앙상블이던 제가 언니와 친구 사이로 출연하는 느낌이 신기하다”고 했다. 김영주는 “지금이나 그때나 언니는 톱의 위치”라며 “출산 직후 몸매가 드러나는 ‘탱크톱’을 입는 역할을 맡는 걸 보고 많이 놀랐다”고 했다. 최정원은 “진흙 속에 묻힌 진주 같았던 두 후배와 같이 무대에 올라 뿌듯하다”고 털어놨다. 올해는 뮤지컬 ‘맘마미아’ 자체로도 뜻깊은 해다. 작품은 1999년 영국 초연 이후 20주년을 맞으며, 웨스트엔드 역사상 다섯 번째 롱런한 작품이 됐다. ‘댄싱퀸’ ‘아이 해브 어 드림’ 등 아바의 노래가 친숙하고 중년 배우들의 열연으로 중장년층을 대거 공연장으로 끌어들였다. 국내에서는 2004년 초연 이후 1500회가 넘는 공연으로 약 195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올해 200만 관객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12년째 주인공 ‘도나’ 역할을 맡고 있는 최정원과 2016년부터 ‘타냐’를 소화한 김영주와 달리 작품에 처음 합류한 ‘로지’ 배역의 박준면의 소회는 남다르다. “아무도 못 알아보지만 연습하면서 몸무게가 3kg이 빠졌어요. 캐릭터를 만들고 호흡을 맞추는 이 과정이 힘들지만 너무 행복해요. 기념비적인 순간에 무대에 서는 게 부담되지만 배우로서 영광이죠.”(박준면) 올해 영국 제작진은 동선, 안무, 연기 지침에 변화를 주문했다. 최근 감성에 맞게 과하지 않도록 연기해 달라는 디렉팅이 내려졌다. 박준면은 “새롭게 많은 게 바뀌니 따라가는 것조차 급급한 ‘멘붕’ 상태인데 이를 지켜보는 언니들이 그래서 저를 보면 웃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영주에게도 쉽지 않은 변화다. “사랑, 인생, 가족 얘기를 하는 세 친구의 연기에는 드라마적, 연극적 요소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이를 덜어내고 ‘한 번에 툭’ 내뱉듯 연기해야 해요. 관객 앞에서 흥이 넘쳐 과장스럽게 연기하던 부분을 절제하는 게 어려워요.”(김영주) 세 배우의 수다는 공개 오디션 이야기로 이어졌다. ‘공개 오디션을 해도 이미 배역은 다 정해져 있겠지’라는 세간의 시선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최정원은 “그 시선이 제일 힘든데 저희도 미칠 듯 오디션에 최선을 다하고 캐스팅 확정 전화를 받을 때는 신인 때처럼 짜릿하다”고 했다. 오디션 현장에서 영국 제작진이 “타냐! 타냐!”라고 소리치며 극찬한 김영주는 “지금도 의상, 메이크업, 마음가짐까지 완벽히 배역으로 변신한 뒤에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서로의 배역이나 이름보다 “언니, 동생” 호칭이 편한 3총사는 연습하는 과정과 ‘맘마미아’ 자체가 ‘힐링’이라고 했다. “몸이 힘들어도 함께 노래하며 울고 웃는 연습 자체가 힐링입니다. 뭣보다 정원 언니가 꼰대가 아니라 고충을 잘 들어주는 게 가장 큰 힐링이죠.”(박준면) 14일부터 9월 14일까지 서울 강남 LG아트센터. 6만∼14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관객이 예측하기 힘든 무용 작품을 늘 고민합니다.” 눈이 즐거운 무용을 선보이는 스페인의 현대무용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37)가 2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13년 이후 세 번째 방한. 이번엔 국립현대무용단과 협업한 신작 ‘쌍쌍(Ssang Ssang)’을 19일부터 21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감각적인 안무, 파격적 무대 연출에 시선을 사로잡는 의상·소품을 곁들이며 ‘안무가 이상의 연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평을 듣는 그를 4일 서울 강남구 플랫폼엘에서 만났다. 그는 대뜸 최근 자기가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뭔지 아느냐며 말문을 열었다. “모라우 씨, 지금 어디 있어요?”였단다. 북미와 유럽을 오가며 수많은 무용단의 안무를 지도하는 핫한 안무가니 당연한 일 아닐까. 하지만 그는 “영감을 얻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한 달 정도 머물면서도 정말 곳곳을 누비고 다녔어요. 한국, 특히 서울이란 도시의 일부가 되어 발견한 영감을 작품에 반영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꽤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데, 여전히 한국은 알고 싶은 게 더 많은 나라입니다.” 2005년 ‘라 베로날’ 무용단을 창단한 그는 37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무용이 기존에 보여주지 못한 다양한 시도가 높게 평가받았다. “스튜디오 안에서 만드는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갇히면 안 돼요. 무용은 미술, 연극, 문학 등 스튜디오 밖 현실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을 때 의미가 있거든요.” 모라우는 인터뷰 도중 유독 ‘비논리’라는 단어를 많이 언급했다. 그는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자신의 예술관과 맞닿아 있다”며 “인생은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무용도 비논리적 움직임으로 예측하기 힘든 동작, 작품을 표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생이든, 무용이든 누군가 정한 논리를 따라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이 원래 계획대로 안 되잖아요?(웃음)”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가수 A 씨 “악플러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B 씨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검찰 조사, 불륜설 유포 40대 남성 벌금형…. 수많은 매체와 표현수단의 등장과 함께 끝없이 말이 말을 낳는 오늘날. 우리는 ‘명예훼손’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시대에 산다. 하지만 ‘누군가의 명예, 인격권을 훼손했다’는 법원의 판단은 세계적으로 명확히 정립된 개념이라기보다 계속 다듬고 조화시켜야 할 개념에 가깝다. 저자는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 보호 중 어느 가치를 강조하고 중점을 두는가는 각국이 갖는 역사적·문화적 가치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이에 명예훼손법제 관련 국가별 비교법적 고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영미권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명예훼손법제가 영국에서 가장 먼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국에 영향을 끼친 미국 법제의 근간을 영국 보통법이 이루고 있는 데다 타국과 달리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특징을 갖는다. 때문에 한국에도 명예훼손과 관련해 일종의 해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통찰력 있는 법리 해석을 비롯해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뉴욕타임스 중립보도 사건, 프라이버시권, 징벌적 손해, 정신적 고통의 가해 행위 등 풍부한 판례를 담았다. 공인, 중립성 같은 개념에 대한 영미권 법정에서의 견해도 엿볼 수 있다. 변호사인 저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3년간 언론중재위원장을 맡아 관련 이론은 물론이고 현장경험도 두루 갖췄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920년대 경매를 거쳐 일본인 손에 넘어갔던 석조유물 8점이 한 세기 만에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은 2일 오후 환수 기념식을 열고 일본인 오자와 데루유키(尾澤輝行) 씨 부부로부터 기증받은 장군석, 장명등(長明燈), 비석받침, 수병(水甁) 등 각 2점씩 8점의 유물을 공개했다. 오자와 씨 외조부인 자산가 요시이에 게이조(佶家敬造)는 1927년 열린 경매에서 유물 소유권을 얻었다. 그는 당시 게이오(慶應)대 근처에 조성한 대규모 정원에 설치했다가, 도쿄 인근의 별장 내 정원으로 유물들을 이전했다. 별장을 물려받은 오자와 씨는 최근 고심 끝에 한국으로의 기증을 결심했다. 그는 “장군석과 장명등은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기증한다면 일본이 아닌 한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오자와 씨는 우리옛돌문화재단 측과 2년간 접촉해 유물을 한국으로 보내기로 합의했다. 유물들은 지난달 14일 박물관 정원에 설치했다. 이 박물관은 2001년에도 일본에서 석조유물 약 70점을 되찾아왔다. 장군석은 무덤 앞에 세우는 조각상으로, 조선 중기 능묘를 지키는 장군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장명등은 무덤이나 절 앞에 세우는 등으로 사대부가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2일 기념식에서 오자와 씨 부부에게 감사패를 수여했으며, 박물관과 오자와 씨 사이에서 기증을 중재한 장선경 제이넷컴 부사장에게 공로패를 건넸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