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달 새로운 추기경을 임명하면서 한국에서 네 번째 추기경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는 2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달에 한국을 포함해 가톨릭 교세가 커지는 비유럽, 비북미 지역 출신 추기경을 상당수 임명한다고 전망했다. 추기경 임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이후 두 번째다. 지난해 19명을 임명했으며 이번에 나이 제한으로 투표권을 잃는 추기경들의 후임자까지 고려하면 최대 12명까지 임명할 수 있다. 교황청 전문가들은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가톨릭 신자가 많지 않지만 성장세가 빨라 추기경 배출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한국에서 추기경이 배출되면 고(故)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 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역대 네 번째 추기경이 된다. 필리핀의 경우도 가톨릭 신자가 많아 세 번째 추기경이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전쟁과 기독교인 박해가 이어지는 이집트나 파키스탄, 이라크 등에서도 1~2명의 추기경 배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반해 신도수 대비 추기경이 많은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서는 추가 추기경 선출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가톨릭 전문매체인 ‘내셔널 가톨릭리포터’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추기경 임명이 자신의 개혁 작업이 일시적인 유행일지, 아니면 가톨릭 역사에 자취를 남기게 될지를 가리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추기경 임명은 교황의 핵심 권한이다. 80세 아래 추기경들은 교황을 선출할 권한이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추기경은 111명으로, 교황이 이번에 12명을 새로 임명하면 전체 추기경 가운데 4분의 1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뽑은 사람들로 채워진다. 만일 이번에 제3대륙 출신이나 개혁적인 추기경들이 대거 뽑힌다면 프란치스코 이후의 차기 교황도 개혁적인 교황이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존 로마 큐리아(교황청)를 장악해왔던 추기경들이 선임된다면 보수적인 교황이 선출돼 프란치스코의 개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교황 요한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해 가톨릭 교회를 대거 개혁했으나, 추기경 선출 때는 공의회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대거 뽑아 개혁을 이어가는데 실패했다. 그는 스스로도 “너무나 많은 적을 내 손으로 뽑았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전략적인’ 추기경 선임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메리카 가톨릭 대학의 채드 팩놀드 교수는 “추기경 선출은 교황의 권한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며 “축구로 치면 교황은 감독이고 추기경들은 실제로 공을 차며 게임을 하는 선수들”이라고 말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 정치가 답답할수록, 경제가 어려울수록 혜성처럼 나타나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를 갈구합니다. 올 한 해 뜨는 지구촌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 받을 차세대 리더를 선정해 그들의 정치철학과 개인적 면모를 알아보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주요국 국민들이 원하는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새해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은 단연 에마뉘엘 마크롱 경제장관(38·사진)이다. 일간 르파리지앵 여론조사에서 그는 ‘2014년 떠오른 정치인’ 1위로 꼽혔다. 마흔 살도 안 된 애송이(?) 장관에게 해외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크롱 장관은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현실주의 행보를 하고 있다”며 “프랑스 사회주의의 새 얼굴”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현재 집권 여당인 좌파 사회당 정부에서 우파 사르코지 정부 못지않은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가 국회에 제출한 107개 경제개혁안(‘마크롱 법안’)에는 그동안 사회당 정부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며 고수해 왔던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1906년부터 금지하고 있는 일요일 가게 영업을 허용하는 것에서부터 법조인 약사 등 고소득 전문직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하고 노사 분쟁을 3개월 안에 끝내도록 하는 노동 유연성 확대 법안까지 담겼다. 경쟁이 제한적이었던 버스 노선에도 경쟁을 도입한다. 심지어 유럽에서 가장 짧은 프랑스의 법정 주 35시간 근무시간까지 직원들의 합의를 전제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 35시간 근로제’는 15년 전인 2000년 사회당 정부가 도입한 정책이다. 자신들이 도입한 정책을 폐기하는 것까지 제안할 정도로 그의 행보는 그야말로 광폭(廣幅)이다. 그는 자신을 임명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내건 대선 공약까지 과감히 철회한 사람이다. 2012년 올랑드 대통령의 수석경제보좌관으로 임명되자마자 “상위 1%에게 75%의 고(高)세율을 부과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철회하고 고용을 늘리는 기업들에 400억 유로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책임 협약’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가 과감한 규제 철폐에 집중하는 이유는 규제에 따른 피해자가 중소기업, 서민, 청년들이라는 생각 때문. 그는 “대기업들은 수많은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의 복잡한 규제에도 잘 적응할 수 있다. 반면 새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중소기업, 청년들에겐 치명적인 제약”이라고 말한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 집권 여당 안에서조차 “좌파의 가치를 버리고 있다”는 비난에서부터 “금융 권력의 시녀” “양의 탈을 쓴 늑대” “출세에 눈먼 탐욕주의자”라는 원색적인 막말을 쏟아 붓고 있다. 하지만 마크롱 장관은 취임 후 각종 언론 등을 통해 이렇게 말할 정도로 단호한 입장이다. “프랑스는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만 채용되고 있다. 내가 좌파 정책을 버린다고 말하지만 소수만 혜택을 보는 독점을 해체하고 누구든지 노동시장에 자유롭고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좌파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사회주의자는 노동자나 실업자만 보호하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과 취업을 바라는 청년들도 보호해야 한다. 국민에게 권리를 무한하게 연장해 줄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사회당 노선이야말로 ‘오도(誤導)된 마르크시즘’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책이 향하는 목적이야말로 ‘진보’라고 강조한다. “내가 하는 개혁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 경제가 다시 돌아가고 프랑스 스스로 자신들의 조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진보(Progr‘es)’를 위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 매 순간 투쟁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한다. 새해 국회에서 ‘마크롱 법안’ 통과를 놓고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최근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새해를 맞는 각오’는 이렇다. “개혁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계곡’과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언제 이 계곡을 빠져나갈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머물러 있으면 떨어져 죽고 말기 때문이다.” 이런 그를 버티게 하는 최대 버팀목은 국민의 지지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그를 실업률이 5년 넘게 10%가 넘고 청년실업률이 25%에 이르며 파업으로 번번이 나라가 멈추는 ‘유럽의 병자(病者)’로 각인된 프랑스를 구원할 마지막 구원투수, 마지막 희망으로 인식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현재 올랑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국민의 90%가 부정적인 데 반해 그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법안에 대한 지지율은 60%가 넘는다. 마크롱의 인기는 과감하게 인재를 등용하고 각종 비난 여론에도 엄호해주는 올랑드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마크롱 장관은 프랑스 재무부의 금융조사관으로 일하다가 2009년부터 4년간 글로벌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에서 일했다. ‘사상적 멘토’는 좌우를 넘나들며 전직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해 온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로 알려져 있다. 올랑드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도 2007년 아탈리 교수의 집에서 열린 파티였다고 한다. 사생활도 거침이 없다. 고교 시절인 17세에 만난 무려 스무 살 연상인 자신의 프랑스어 선생님과 2007년 결혼해 세 자녀를 두고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 금융시장이 또다시 그리스발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그리스에서 ‘긴축정책’을 펼쳐왔던 집권연정이 대통령 선출에 실패하고, 내년에 실시되는 조기총선에서 ‘구제금융 재협상’ ‘유로존 탈퇴’를 내건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집권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리스 의회는 29일 대선 3차 투표에서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의 대선후보 스타브로스 디마스 전 외교장관(73)이 168표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가결 요건인 전체 300석 중 60%인 180표 획득에 실패한 것이다. 대통령 선출이 부결됨에 따라 사마라스 총리는 이날 국회 해산과 함께 내년 1월 25일에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그리스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디폴트(채무 불이행) 선언’에 대한 우려 탓에 9%대로 상승했고, 그리스 아테네 증시 ASE지수는 한때 11.3% 폭락했다. 유럽증시도 동반하락을 면치 못했고, 달러화 대비 유로화의 가치도 떨어져 2년 만에 최저치에 근접했다. 1월 총선에서는 총 2840억 유로의 구제금융 재협상과 국채탕감 등 포퓰리즘 정책을 주장해 온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의 집권 가능성이 높다. 시리자는 올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26.57%로 신민주당(22.72%)을 누르고 1위를 했다. ‘유럽의 우고 차베스’로 불리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당수(40)는 이날 “구제금융은 과거의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가 긴축정책을 거부하고 재협상을 요구하게 되면 그리스는 다시 부도의 수렁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경기 침체로 추운 겨울을 맞고 있는 유럽에서 노숙인에 대한 ‘톨레랑스(관용)’가 사라지고 있다. 프랑스 서남부의 앙굴렘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시내 공공장소 9곳에 있는 벤치에 높이 2m가량의 철조망이 뒤집어 씌워졌다. 벤치는 알코올의존증 환자와 노숙인, 마약거래범들의 본거지가 된다는 이유로 철조망이 씌워진 것. 자비에 보느퐁 앙굴렘 시장(중도우파 대중운동연합·UMP)은 “샹드마르스 쇼핑구역 상인들이 노숙인과 술 취한 사람들이 지역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민원 때문에 벤치를 폐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벤치를 본 시민들과 누리꾼들은 너무나 ‘비인간적인 조치’라며 분노를 표했다. 철조망에는 “이것이 우리의 크리스마스!” “앙굴렘은 전 세계의 조롱거리”라는 노란색 메모지가 잇달아 붙었다. 프랑스의 유명 만화인 ‘땡땡의 모험’의 주인공이 앙굴렘의 벤치 앞에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패러디 그림도 인터넷에서 퍼졌다. 일부 활동가는 벤치 철조망 안에 들어가 시위를 벌였다. 반면 극우정당 국민전선(FN) 앙굴렘지부 측은 “공공질서 확립을 환영한다”며 시장의 조치를 지지하고 나섰다. 영국 런던에서도 25일 켄트 주 캔터베리에 있는 윌킨슨스토어의 입구 앞에서 잠을 자던 노숙인에게 매장 직원이 호스로 차가운 물을 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런던의 사우스워크 지역의 한 호화 아파트는 1층 현관 주변에 노숙인 취침을 막기 위한 1인치 높이의 뾰족한 철제 핀을 수십 개 박았다. 런던 중심가인 리젠트거리의 테스코 매장 앞에 설치된 노숙인 방지용 철제 핀은 여론의 질타를 맞고 철거되기도 했다.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런던 시는 노숙인의 삶 개선에 3400만 파운드의 예산을 쓰고 있다. 철제 핀은 그 해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 세상의 경계선, 그 어딘가에 그때 그 아이의 떨리는 눈빛이 숨어 있다. 그 빛은 꺼지기를, 어둠과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기를 거부한다.” 한국작가가 프랑스어로 소설을 써서 자크 데리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등 프랑스의 대표적 철학자와 문학가의 작품을 내 온 유명 출판사 ‘갈릴레(Galil´ee)’에서 출간돼 화제다. ‘창조소설(Roman de la Cr´eation)’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주목받고 있는 재프랑스 작가 정림이 그 주인공이다. 정림의 ‘창조소설’은 올해 출간된 제1권 ‘울릉도’를 비롯해 총 5년간 매년 한 권씩 5권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2권은 ‘폭풍우 후’, 3권은 ‘피아노 공룡’, 4권은 ‘오르간을 위한 춤’, 5권은 ‘청소년 예수’다. 제목에서 보듯이 조각과 그림, 음악과 춤, 글쓰기 등 다양한 예술장르가 연금술처럼 융합되며 창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국과 유럽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권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마치 사랑의 결실처럼 하나의 예술작품이 탄생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작가가 펼쳐내는 5권의 이야기 속에서 예술작품 창조의 영원한 화두는 ‘청소년’이다. 불가능에 대한 제어할 수 없는 욕망과 도전, 끊임없는 탐구, 언제나 실패로 귀착하고 마는 미완성의 존재…. 현실의 진부한 타성에 의해 낙인찍힌 존재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 예술가에게 청소년이란 이뤄질 수 없는 사랑과 관능, 영성으로 이끄는 매개체가 된다. 1권 ‘울릉도’의 여주인공은 교생실습을 나간 울릉도의 한 바닷가에서 석양 무렵 자석처럼 끌리는 열세 살 소년을 만난다.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울릉도라는 섬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의 경계선을 상징한다. “아직 채 가시도 돋지 않은 푸른 장미!” 소년과의 짧은 만남에서 여주인공은 어떤 사랑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성스러움과 신비스러움, 욕망과 치열한 감정, 초자연적인 잠재력을 느낀다. 금지된 사랑의 찢기는 고통은 작가의 내면에 상처를 입히고, 5권으로 이어지는 끊임없이 계속될 재창조(recr´eation)의 갈증을 부르게 된다. 마지막 권인 ‘청소년 예수’는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의 공생활(公生活) 이전 청소년기를 다루며 창조 이야기를 영적인 세계까지 확대하고 있다. 작가인 정림은 조각가이기도 하다. 그는 노르망디의 해변 마을에 자리 잡은 작업장에서 10년간 조각 작업을 하면서 5권의 책을 완성했다. 문학평론가 마리암 디아라는 “이 소설은 마치 언어재료를 오브제로 다뤄 조각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다”며 “이야기의 나열 대신 ‘창조성의 경험 그 자체로서의 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열어 보였다”고 평가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해마다 연말이면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선다. 수많은 관광객이 따뜻하게 덥힌 와인 ‘뱅쇼’를 마시며 쇼핑을 즐기는 명소다. 그런데 23일 밤부터 이곳에 총을 든 무장병력 수십 명이 순찰을 돌기 시작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20일부터 프랑스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의 ‘묻지 마 테러’가 세 차례 발생했다. 이슬람 이민자가 급증한 독일에서도 대규모 ‘반(反)이슬람 시위’가 벌어졌다. 성탄절을 앞두고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이슬람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슬람권에서 건너온 이주민들과 사회·문화적 충돌이 확대되고 있다.○ 공포에 휩싸인 ‘블루 크리스마스’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의 23일자 1면 제목은 ‘크리스마스의 공포’였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불특정 다수를 노린 테러를 전하는 기사였다. 프랑스 서부 낭트에서는 37세 백인 남성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고 도심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돌진해 1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또 디종에서도 40세 아랍계 남성이 차를 몰고 시내 5곳에서 군중을 향해 돌진해 11명이 다쳤고 투르의 한 경찰서에서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20세 남성이 경찰관 3명에게 칼을 휘두르다 현장에서 사살됐다. 특히 디종과 투르의 사건에서 범인들은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란 이슬람 신앙고백을 외쳐 이슬람 무장세력을 추종하는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의 테러라는 관측도 나왔다. 모방 범죄와 극우단체의 보복 공격도 잇따르고 있다. 23일 파리의 시나고그(유대인 회당)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고 프랑스 남부 칸의 거리에서도 총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던 남성이 체포됐다. 또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차량이 모스크(이슬람사원)의 정문을 들이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사건의 용의자는 “프랑스가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극우단체 회원으로 밝혀졌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패닉에 빠져선 안 된다”며 주요 공공장소에 중무장 경계 병력을 수백 명씩 배치했다.○ 유럽의 이슬람화 논란 독일에서는 최근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이란 단체가 주도하는 월요 시위가 번지고 있다. 이 시위는 올 10월 처음 등장한 이래 “독일의 유대 및 기독교·서방 문화의 보존을 원한다”는 주장을 앞세워 세를 불리고 있다. 22일 드레스덴 시내에서 열린 10번째 시위에는 역대 최다인 1만7500명이 참가했다. 내년에 독일에 정착하려는 난민 신청자는 20만 명으로 예상된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타 인종, 타 종교에 대해 지속돼 왔던 독일의 ‘톨레랑스’(관용)가 끝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에서도 기독교 전통을 포기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거세다. 프랑스 서부에 있는 낭트 지방법원은 최근 도의회 건물에 설치한 크리스마스 장식인 ‘예수 탄생 구유 모형’을 철거하라고 판결했다.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같은 이슬람 복장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종교적 상징도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브뤼노 르타요 대중운동연합(UMP) 상원의원은 성명에서 “종교적 중립성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과 문화적 뿌리를 단절해야 하는가. 공립학교의 크리스마스 방학도, 도심광장의 성당 종소리도 금지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세계 4위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밀 수출 제한조치를 내린다. 러시아발(發)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 곡물시장이 가격이 상승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22일 각료회의에서 “식량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곡물 수출에 행정적 제한을 고려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 부총리는 “곡물수출 관세가 24시간 내로 부과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미국 달러화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러시아 곡물 수출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러시아 곡물 수출업자 편에서는 내수물량을 수출로 돌리면 달러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사상 최대의 풍작이었는데도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 내 공급 우려로 밀 가격이 9월 이후 약 40% 상승해 물가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러시아 당국이 밥상물가를 안정시키려 관세를 부과해 밀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는 2004년에도 수출관세를 부과해 밀의 대외 판매를 엄격히 막았다. 이후 2007, 2008년에도 밀에 보호관세를 부과했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전인 2010년에는 밀 수출을 아예 금지한 바 있다. 러시아의 관세 부과 조치가 알려지면서 국제 밀 가격은 오름세를 타고 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3월 인도분 밀 선물은 전날보다 1.4% 상승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의 이번 밀 수출 제한조치가 서방의 제재 강화에 대한 맞불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FT는 러시아 밀의 주요 수입국이자 러시아의 우방인 터키와 이집트가 밀 수출 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지도 주목된다고 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우리는 영적 치매와 실존적 정신분열, 신비주의, 은둔주의 등 중병과 마주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22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클레먼타인홀에서 바티칸에서 일하는 추기경 주교 등 고위 성직자와의 연례모임에서 연설을 시작하자 ‘성탄 덕담’을 기대했던 참석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교황이 작심한 듯 쿠리아(교황청) 관료주의가 앓고 있는 15가지 질병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혹독한 쓴소리를 던졌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곪아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에도 대대적인 교황청 개혁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들렸다. 교황은 먼저 “자기비판과 혁신이 없는 교황청은 병든 육체”라며 “쿠리아는 자기가 영원히 살 거라 믿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다”고 경고했다. 이어 “성직자 일부는 정신적, 영적 동맥경화에 걸렸으며 그 과정에서 내적 평온과 생기와 용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또 바티칸에 만연한 ‘가십 테러’와 ‘파벌주의’에 대해 “뒤에서 남을 헐뜯는 것은 조직의 화합을 해치고 구성원을 노예로 만드는 일”이라며 “사탄이나 하는 짓”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특히 교황은 “구원의 역사와 신을 영접한 개인의 역사, 첫사랑의 경험 등을 잊어가고 있다”며 이를 “영적 치매나 건망증”이라고 이름 붙였다. 바티칸 관리들의 위선적인 이중생활과 권력에 대한 탐욕은 “실존적인 정신분열증”이라고 했다. 바티칸의 엄숙주의를 상징하는 듯한 어두운 얼굴 표정을 가리켜 “장례식에서나 보일 듯할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언젠가 사제들은 비행기와 같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추락할 때만 뉴스거리가 된다는 점에서다. 푸른 창공을 훨훨 나는 사람도 많지만 추락하는 한 명의 사제가 교회 전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했다. BBC는 “교황이 로마로 집중된 교황청의 권력 일부를 전 세계 가톨릭 주교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교황이 연설을 마치자 참석자들의 어색한 박수소리만 들렸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레이먼드 플린 전 교황청 주재 미국대사는 “교황청 내부의 병폐를 인정하는 교황의 솔직함이 젊은 신도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며 “때론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도발적이어야 할 필요도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교황의 연설에 대해 마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고위임원에게 그가 잘못한 일을 지적하는 목록을 보인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러시아에서 조국을 탈출해 영국으로 이민가는 부자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올 들어 9월까지 영국 투자비자를 발급받은 러시아인이 162명에 이른다고 21일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96명)에 비하면 69%가량 급증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서방 제재와 국제유가 하락으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러시아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설까지 나돌자 러시아 부호들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해 영국 투자비자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은 100만∼1000만 파운드 규모의 국채 매입에 나서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투자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인과 중국인이 몰려오면서 영국 정부가 최소 투자금액을 200만 파운드(약 34억 원)로 올렸지만 인기는 더 높아지고 있다. 영국 내무부는 올해 투자이민 외국인들이 매입할 채권 규모가 5억 파운드(약 8572억 원)에 이를 것이라며 이는 영국 정부의 이틀분 예산과 맞먹는 규모라고 산출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011년 ‘아랍의 봄’ 발원지인 튀니지에서 반(反)이슬람 세속주의 성향 원로 정치인인 베지 카이드 에셉시 후보(88·사진)가 첫 민선 대통령에 사실상 당선됐다. 튀니지 여론조사회사인 시그마콩세이는 21일 대선 결선투표 출구조사에서 에셉시 후보가 55.5%의 득표율로 44.5%의 문시프 마르주끼 후보(67)를 누르고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은 1956년 튀니지가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자유 경선으로 치러졌다. 에셉시 후보는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진 엘아비딘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된 뒤 약 4년 만에 첫 민선 대통령에 취임할 예정이다. 에셉시 후보는 이날 오후 6시 대선 결선 투표를 마친 직후 승리를 선언하고 “대선 승리를 튀니지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바친다”며 “마르주끼에게 감사하며 이제 우리는 누구를 배척하지 말고 함께 일을 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마르주끼 측은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다”며 “개표 전에 승리 선언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에셉시 후보는 튀니지의 첫 대통령 하비브 부르기바가 30여 년간 장기 집권할 당시에는 내무장관과 외교장관 등 고위 공무원직을 맡았으며, 벤 알리 전 대통령 시절에는 국회의장을 지냈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인권운동을 하다가 벤 알리 정권 시절 망명했던 마르주끼 후보는 “에셉시가 당선되면 독재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튀니지 유권자들은 에셉시 후보의 ‘경험과 안정’을 택했다. 또 지난 3년간 온건 이슬람주의 성향의 엔나흐다당의 지원을 받은 마주르끼 과도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 에셉시 후보가 창당한 니다투니스(튀니지당)는 10월 총선에서 전체 217개 의석 가운데 정당별 최다인 85석을 얻었다. 에셉시 후보는 앞으로 각종 테러 위협과 경제 개혁, 높은 실업률 등의 해결 과제를 안게 됐다. 튀니지 정부는 이슬람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의 공격에 대비해 무장단체의 교전으로 혼란스러운 리비아와의 국경을 24일까지 폐쇄했다. 외신들은 튀니지가 선거를 통해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아랍의 봄’의 유일한 승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튀니지는 올해 2월 아랍권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헌법을 채택한 데 이어 10∼12월에 총선과 대선을 무난히 치러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튀니지는 ‘아랍의 봄’의 마지막 남은 한 줄기 빛”이라며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고,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전통 덕분에 유혈충돌 없이 민주화 이행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라크 쿠르드군이 19일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한 이라크 북부 신자르 산 일대를 탈환했다. BBC 등에 따르면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 군사조직 페슈메르가는 이날 미군의 공습 지원을 받으며 시리아 접경의 이라크 북부 전략지인 신자르 산 주변 7개 마을과 주마르 시를 손에 넣었다. 신자르 지역 탈환은 IS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대한 6월 이후 이라크 북부에서 페슈메르가가 거둔 가장 큰 성과다. IS는 올해 8월 초 소수종교 부족인 야지디족이 사는 신자르 지역을 손에 넣었고 이들에게 이슬람교 개종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면 대량 학살했다. IS는 야지디족 여성 수백 명을 인신매매하거나 조직원과 강제로 결혼시켜 ‘성노예’로 만들기도 했다. 쿠르드군의 사령관 마스루르 바르자니는 “8000명의 페슈메르가 요원들이 IS의 봉쇄망을 뚫고 산 정상에 고립돼 있던 야지디족 주민 수천 명의 탈출로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한편 IS가 전사자 급증 등으로 사기 저하와 조직 이탈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 보도했다. IS는 8월부터 미국이 주도한 공습 등으로 최근 점령지역을 하나둘 빼앗기고 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집계한 결과 7일까지 코바니에서 IS 조직원 1400여 명이 사망했다. 시리아 최대 유전지대인 동부 데이르에즈조르에서 활동하는 IS 조직원은 FT에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쳤다”며 “모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외국 조직원들은 이제 지쳤다”고 전했다. FT는 현지의 활동가를 인용해 IS가 근거지인 시리아의 락까를 이탈해 고국으로 돌아가려던 외국 국적의 대원들 100명을 처형했다고 전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하늘의 별까지 닿고 싶은 인간은/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돌 위엔 돌들이 쌓이고, 백년이 지나 또 한 세기가 흐르고….” 빅토르 위고 원작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대성당들의 시대’란 노래로 시작한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루이 7세 시절인 1163년부터 짓기 시작해 1345년에 완성됐다. 짓는 데 182년이나 걸린 셈이다. 하늘에 가까이 닿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대성당은 이후 850년이 넘도록 보존되면서 파리 한복판에서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냈다. 외신에서 꼽은 올해의 ‘10대 뉴스’ 중 하나는 유럽우주기구(ESA)가 발사한 로제타호의 로봇탐사선 필레가 최초로 혜성 착륙에 성공한 것이었다. 로제타호는 2004년 3월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발사돼 10년 8개월 동안 65억 km를 날아갔다. 로제타호의 여정은 영화 ‘인터스텔라’ 열풍과 함께 온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 우주선이 블랙홀의 중력을 역이용했듯이 로제타호도 지구와 화성의 중력을 모두 4차례 역이용했고 영화에서 우주인들이 산소와 식량을 아끼기 위해 동면에 들어간 것처럼 로제타호도 전원을 끄고 운항하다가 3년 만에 깨어나 혜성에 안착했다. 20년 넘게 준비해 온 로제타 프로젝트의 성공에 대해 유럽 언론들은 “대성당 정신(Cathedral Spirit)의 복귀”라며 환영했다. 대성당 짓기처럼 우주 탐사도 내 생애에 목표를 이루기보다는 세대를 이어서 실현해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로제타 프로젝트에 들어간 돈은 약 14억 유로(약 1조9000억 원).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 아니었다. 정책적 의지가 관건이다.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 간의 인공위성 발사와 달 착륙 경쟁을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봤던 유럽의 과학자들은 1975년 ESA를 설립했다. 본부는 파리에 있지만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 수많은 연구시설이 분산돼 있다. 유럽의 기술이 총집결된 에어버스 항공기가 동체는 프랑스에서, 날개는 영국에서, 수평꼬리는 스페인에서, 도색은 독일에서 맡아 생산되는 것과 비슷하다. 언뜻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유럽의 힘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의 기구들은 수차례 토론을 통해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내지만 일단 합의만 하면 각국의 정치 변동과 관계없이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창조경제’ ‘디자인 서울’ ‘정보기술(IT) 생명공학 벤처 육성’ 같은 구호가 등장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쉽게 잊혀지는 한국과는 다르다. 경제위기로 우울한 한 해를 보낸 프랑스인들에게 올해는 몇 가지 자존심을 세울 일이 있었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문학상), 장 티롤 교수(경제학상) 등 노벨상 수상자 두 명을 배출했고 로제타호의 혜성 항해를 지휘한 인물도 프랑스 천체물리학자 장피에르 비브링이었다. 프랑스 일간 레제코는 “전 세계에서 ‘프랑스 때리기’가 유행이지만 프랑스인들은 기초학문 분야에서 묵묵히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도 올해는 참담한 비극적 사건이 줄을 이어 전 국민이 집단 우울증 증세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에 ‘대성당의 정신’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석굴암 불국사 같은 ‘천년사찰의 정신’이 왜 없겠는가. 내년엔 우리도 자기비하보다는 미래를 향한 큰 꿈을 준비하는 해가 되면 좋겠다. 꼴찌 팀을 맡아 가을야구에 성공한 LG 트윈스의 양상문 감독의 말을 되새기고 싶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루블화 폭락 사태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인 러시아에 대해 미국과 캐나다가 추가 제재 조치를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루블화 폭락으로 인한 위기는 옛 소련권의 형제국가에도 급속히 번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1일 행정명령을 통해 올 3월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 지역에 대한 미국인의 투자, 금융 지원, 무역을 금지하는 추가 경제 제재를 내놓았다. 캐나다도 러시아의 원유 개발에 관련된 제품의 판매·수출을 금지하겠다며 동참했다. 유럽연합(EU)도 20일부터 크림반도 내 투자나 관광 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추가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일 “서방이 러시아를 장악하기 위해 국제법을 무시하고 협박, 도발, 경제 제재 등 불법 수단을 쓰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백악관이 쿠바 제재가 정치적 성과가 없고 무익했다는 점을 인정하기까지 50년이 걸렸다”며 경멸 투의 성명을 내보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한편 러시아 루블화 추락으로 금융위기가 옛 소련권인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벨라루스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몰도바 아르메니아는 무역 거래에 주로 루블화를 쓰면서 고정 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 이들 국가의 재정수입은 러시아로 노동 이민을 떠난 이들이 보낸 송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루블화 가치 폭락에 금융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벨라루스의 루블화 가치는 이달 19일 러시아 루블화 폭락과 맞물려 달러 대비 가치가 하루에 5.5% 떨어져 1998년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이 나라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50%로 두 배 이상 높이며 통화가치 추락에 맞섰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중앙은행은 급기야 달러 수요를 줄이기 위해 30%의 외화 구매세를 도입하고 장외 외환거래시장도 일시 폐쇄키로 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러시아와 거래는 루블화가 아닌 달러와 유로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키르기스스탄 중앙은행은 루블화 폭락으로 고정 환율제도가 사실상 붕괴하자 당장 사설 외환거래소를 폐쇄했다. 아르메니아 화폐 드람화도 지난달 중순부터 현재까지 달러 대비 가치가 17%까지 떨어졌다. FT는 “루블화가 계속 추락하면 러시아와 옛 소련권 국가들이 자국 통화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본 통제를 본격 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루블화 폭락 원인을 서방으로 돌리면서 우크라이나의 평화협상을 지지할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날 연례 기자회견에서 최근 루블화 폭락에 대해 “국제유가 급락과 서방의 제재 같은 외부 요인 탓”이라며 “러시아 경제는 향후 2년간 최악의 상황을 맞겠지만 결국 다시 반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에 1000명이 넘는 내외신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TV로 생중계된 회견에서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특별한 루블화 안정대책을 내놓지 못해 기자회견 직후 루블화의 달러화 대비 환율이 3%포인트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1998년 이후 다시 국가부도 사태 위기에 몰린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를 풀기 위한 적극적인 유화 제스처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그는 “미국과 유럽은 자유롭게 숲 속에서 딸기와 꿀을 먹고 있는 곰(러시아)을 항상 쇠사슬로 묶어두고 싶어한다”며 서방이 ‘신(新)냉전’의 벽을 세우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단일 정치체제로 남길 바란다”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크리스마스 이전에 반군과 정부군 간의 평화협상을 마무리할 뜻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서방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부에 알리면서 우크라이나에서 한발 물러서겠다는 신호를 서방에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도 “우크라이나의 연방화를 원하지 않는다”며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반군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크림 반도 병합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독립된 주권 방어에 대한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에 손을 벌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는 중국이 ‘구원투수’로 나선다면 러시아의 금융혼란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러시아가 중국에 1500억 위안(약 26조6000억 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발동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18일 보도했다. 롄핑(連平) 자오퉁(交通)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유동성 지원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는 러시아로선 통화스와프가 이상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10월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러시아 방문 때 러시아연방중앙은행과 1500억 위안 한도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러시아가 요청해오면 양국은 미국 달러화로 교환하지 않고 위안화와 루블화를 직접 맞바꾸게 된다. 러시아의 대외 채무는 약 7000억 달러로 이 중 1250억 달러는 내년 말까지 갚아야 한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과 러시아의 통화스와프 체결에 대해 “서방 대 중-러 간 대결이라는 신냉전 구도가 더 명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이 꿈꾸던 21세기의 ‘차르’가 될 것인가. 국가 부도를 맞는 ‘제2의 옐친’이 될 것인가. 푸틴 대통령이 벼랑 끝 위기에 몰렸다. 》 국제 유가 급락과 루블화 폭락 사태가 이어지면서 러시아 금융시장이 ‘퍼펙트 스톰’(총체적 난국)에 빠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사진)이 서방의 제재를 풀기 위해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관계에서 항복 선언을 할지 주목하고 있다.○ 떠나는 민심과 내부의 적 루블화 가치 폭락을 견디다 못한 러시아 정부는 17일 직접 시장 개입에 나섰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날 “현재 우리의 외환보유액 가운데 시장 안정을 위해 언제든 처분할 수 있도록 쌓아둔 70억 달러(약 7조6700억 원) 중 일부를 매각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날 러시아 외환시장은 개장 직후 또다시 5% 하락했다가 정부의 달러 처분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시 4.56% 상승하는 등 널뛰기 장세를 보였다. 전날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올렸지만 루블화 폭락을 막지 못했다. 16일 루블화는 장중 한때 사상 최저 수준인 달러당 80루블, 유로화 대비 100루블 선을 넘어섰다. 푸틴 대통령의 ‘친구’로 불리는 에너지 관련 재벌들의 재산도 반 토막 나면서 푸틴의 권력 기반도 위태로워지고 있다. CNN머니에 따르면 푸틴의 최측근인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15명이 올해 경제위기로 500억 달러(약 54조3350억 원)의 자산을 잃었으며 최악의 경우 푸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업체 노바테크의 레오니트 미헬손 회장은 주가 폭락으로 87억 달러(약 9조4542억 원)를 잃었으며 푸틴 대통령의 ‘사냥 친구’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리신 노볼리페츠크철강 회장도 재산의 50%를 날렸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루블화 가치 하락은 정부의 경제조치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아나스타시야 네스베타일로바 영국 런던시티대 교수(국제경제학)는 “푸틴과 재벌 친구들이 시장의 통제를 상실한다면 군부 쿠데타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크림 반도 합병 이후 푸틴 대통령에게 높은 지지를 보내던 국민의 민심도 떠나고 있다. 1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반크 지점에는 예금과 연금을 찾으려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 가치가 더 내리기 전에 루블화를 찾아 달러나 유로화로 환전하거나 수입 공산품이나 가구 보석 명품 등으로 바꿔 놓으려는 움직임이다. 18일부터 가격 인상을 예고한 이케아 가구매장에는 오전 2시에도 줄을 서는 광경이 목격됐다. 루블화 가치가 연일 하락하자 애플은 러시아에서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온라인 판매를 중단했다.○ 서방의 추가 제재와 러시아의 대응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압박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6일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러시아 경제 제재 및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강화하는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을 추가로 압박해 영토 확장 야욕을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최근 의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이 법안은 러시아 국영기업들에 서방의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또 동부지역에서 러시아와 교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전술정찰 무인기(드론) 등 3억5000만 달러(약 3780억 원)어치의 군사 지원을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푸틴 대통령은 18일 모스크바에서 연례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서방 전문가들은 현재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백기를 들고 투항해 서방의 제재에서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안데르스 오슬룬드 선임펠로는 “푸틴 대통령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철수함으로써 서방의 금융제재를 멈추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앤드루 커친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위원은 “푸틴이 오히려 우크라이나 등에서 과격 행동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CNBC는 “상처 입은 곰, 푸틴의 돌발행동을 조심하라”고 서방 지도자들에게 경고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국제유가의 잇따른 추락으로 러시아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6일부터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대폭 인상했다. 이 같은 인상은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선언) 사태 이후 최대폭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의 통화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 발생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 루블화는 백약이 무효인 듯 연일 급락세다. 15일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64.44루블로 9.7% 하락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환율 방어를 위해 올해 모두 800억 달러를 쏟아부었으나 루블화 가치는 연초에 비해 49% 떨어졌다. 러시아 정부는 외국 자본 이탈이 올해 1340억 달러, 내년 12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달러화를 은행에 맡기면 지점장이 차를 내주는 등 특별 대접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드물다는 게 큰 문제다. 많은 돈을 지닌 이들은 이미 키프로스 등 조세회피 지역으로 떠나 환투기에 열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리 아이컨그린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경제학)도 “금리를 인상한다고 해서 국제유가 하락, 서방의 제재, 광범위한 부패 등 러시아 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달 11일 러시아 무기와 석유산업 투자자에 대한 추가 제재를 담고 있는 ‘우크라이나 자유지원법’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되자 러시아 외환시장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의 내년 경제 전망이 더 어둡다는 점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에 계속 머물면 내년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이 4.5∼4.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월가의 투자정보지인 ‘가트먼 레터’의 데니스 가트먼 대표는 “조만간 환율이 달러당 100루블까지 폭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무역업을 하는 드미트리 바키모프 씨는 “서민들은 루블화 약세 때문에 해외여행이나 가족 여행을 취소하고 달러화를 집 안에 묻어두고 ‘비 오는 날’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의 대외채무는 약 7000억 달러로 이 중 1250억 달러를 당장 내년까지 갚아야 한다. 그러나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은행과 기업이 해외에서 돈을 빌릴 수 없어 러시아가 제2의 국가부도 사태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준비하지 못한 것들을 걱정하지만 삶이 선물한 좋은 일들을 떠올려라.”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은 14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5만여 명의 신자와 순례객에게 크리스마스를 좀 더 즐겁고 기쁘게 보내길 기원했다. 교황은 이날 삼종기도를 올리기 전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으로 기쁨을 갈망한다. 모든 가족과 사람은 행복을 열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의 평화를 잃고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고 찡그리는 많은 신자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며 “그러나 ‘슬퍼하는 성인(聖人)’은 들어본 적이 없다. 성인들은 늘 기쁨에 차 있는 표정을 짓는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날 저녁 로마 교외의 노동자 계층이 많이 사는 지역의 성당에서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준비하는 주일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오늘은 가톨릭교회에서 ‘환희의 주일’로 부르는 날”이라며 “기쁨의 선교사가 되는 것은 주변에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돕는 생활태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회 앞에서 일부 신자들은 17일 생일(78세)을 맞는 교황을 위해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팻말을 흔들었다. 교황은 성당을 떠나며 신자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여러분, 기쁨을 잊지 마십시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여성의 축구장 입장이 법으로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남장을 하고 축구장에 입장한 여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14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지다의 알자우하라 축구장에서 열린 홈팀 알이티하드와 방문팀 알샤밥의 경기장에서 10대로 보이는 여성 팬이 남자 옷을 입고 경기를 관전하다 보안요원에게 발각돼 경찰에 넘겨졌다. 당시 이 여성은 한산한 방문팀 응원석에 홀로 앉아 선글라스와 커다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검은색과 흰색으로 꾸며진 알샤밥 응원용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수도 리야드를 연고로 하고 있는 알샤밥은 축구선수 박주영이 뛰고 있는 팀이다. 사우디 경찰청 대변인 아티 알 쿠라시는 성명에서 “이 여성은 온라인으로 티켓을 사고 입장했으며 축구 관람과 관련된 당국의 규정은 엄격히 준수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슬람의 보수주의 ‘살라피즘’의 전통이 강한 사우디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남녀 구별이 매우 엄격하다. 축구경기장에서는 여성의 입장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여성은 운전도 할 수 없다. 또 외출할 때는 반드시 남성 보호자인 ‘마흐람’이 동반해야 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사우디에서 열린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한국인 여성 팬들이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최근에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외국 여성 기자들에 한해 예외적으로 축구장 문호가 개방될 정도다. 한편 경찰에 체포된 사우디 10대 여성이 축구장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려지면서 중동지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누리꾼들은 “사우디 축구장에서 여성 팬이 레드카드(퇴장 명령)를 받았다”라고 조롱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낮에는 대기업 임원, 밤에는 테러 선동가.’ 서방의 젊은이들에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가입을 선동해 온 유명 트위터 계정의 운영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뜻밖에도 인도의 한 대기업 임원으로 밝혀졌다. 인도 경찰은 13일 IS를 지지하는 트위터 계정의 운영자인 메흐디 비스와스(24·사진)를 체포했다. 그가 관리한 ‘@ShamiWitness’ 트위터 계정은 팔로어가 1만7700여 명이고 매월 200만 번 조회될 만큼 IS를 지지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사이버 계정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인도 카르나타카 벵갈루루에 있는 식품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업 임원과 테러 선동가의 ‘이중생활’은 11일 영국 방송 채널4에 비스와스의 인터뷰가 방영되면서 탄로 났다. 그는 수십만 건에 이르는 트위터 글을 통해 서방 인질의 참수 살해를 칭송하는가 하면 아시아 국가에 대한 테러 전쟁이 필요하다고 선동하기도 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010년 유럽 재정위기의 근원지였던 그리스가 또다시 국제금융 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그리스 정부가 내년 2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출을 연내로 두 달 앞당기기로 결정한 가운데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급진좌파가 집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9일 대통령 선출을 이달 17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 채권단의 반대로 연내 구제금융 졸업이 무산되자 연정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내던진 승부수다. 사마라스 총리는 스타브로스 디마스 전 외교장관(73)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그리스에서 대통령은 실권이 없는 상징적 자리이지만 정권의 ‘신임투표’ 성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민이 아닌 의회에서 선출한다. 의회 정원(300명)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당선된다. 17일로 예정된 1차 투표에서 당선에 필요한 의석수를 얻지 못하면 23일 2차 투표가 실시된다. 여기에서도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29일 3차 투표에서 승부가 가려진다. 3차 투표에서는 당선에 필요한 의석수가 정원의 5분의 3 이상, 즉 180석 이상으로 다소 낮아진다. 신민주당, 사회당으로 구성된 집권 연정은 현재 155석을 갖고 있다. 사마라스 총리가 무소속 의원 24명을 설득한다 해도 179석에 불과하다. 3차까지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으면 그리스 연정은 해체되고 내년 2월 1일에 총선이 치러지게 된다. 사마라스 총리가 ‘정치 도박’에 나선 것은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국제금융 시장에 충격을 줌으로써 유럽연합(EU)과 국민들에게 긴축에 반대하는 제1야당 시리자의 집권 위험성을 경고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리자가 현 연정을 물리치고 제1당으로서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리자는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집권 신민당을 5%포인트 앞서고 있다. 시리자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아진 이유는 현 정부가 단행한 긴축정책으로 실업률이 치솟은 데다 서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됐기 때문이다.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당수는 그리스 정부가 EU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조건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며 자신이 집권하면 채무의 50% 탕감을 관철할 것이라고 언급해왔다. 한편 긴축에 반대하는 시리자가 총선에 승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그리스 아테네증시 ASE지수는 9일 전일 대비 13%나 폭락해 1987년 이후 27년 만에 일일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