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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이 왜 여기 서있지?” 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 라파예트광장 옆 도로. 지나가던 시민들이 높이 3.6m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된 장벽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30년 전 붕괴된 독일 베를린 장벽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궁금증과 함께 장벽에 써진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베를린 장벽에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독일 dpa통신 등에 따르면 비영리 시민단체 ‘열린사회’(Die Offene Gesellschaft)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기념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장벽 조각 일부를 선물로 보냈다. 이들은 모금을 자금을 모은 후 3일 베를린 장벽 조각을 구입했다. 이후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일인 9일에 맞춰 이 장벽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새겨 넣은 후 백악관으로 보냈다. 사실상 ‘베를린 장벽 편지’인 셈이다. 보낸 이는 ‘베를린 시민’으로 돼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이 장벽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헌신해온 사실을 당신께 일깨우려 이 조각을 보냅니다. 베를린 장벽은 이제 조각으로 남았습니다. 그 어떤 장벽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존 F. 케네디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까지 미국은 이 장벽을 허무는 데 수십 년 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이 단체는 베를린 장벽 30주년을 맞아 장벽 없는 세상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장벽에 맞서는 장벽’(The Wall Against Walls)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멕시코 접경 지역에 이민자를 막기 위한 장벽을 만들어 중남미 국가로부터 유입을 막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메시지가 적힌 베를린 장벽을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일방주의와 고립주의를 주창하며 세계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미국의 폐쇄성을 ‘벽’에 비유한 셈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장벽을 받길 거부했다. 이에 장벽은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광장 가장자리에 임시로 놓여졌다. 열린사회 측은 “백악관이 계속 조각을 거부하면 조각을 가지고 미국 전역을 투어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뿐만이 아니다. 베를린 장벽 30주년을 맞아 독일 정치권에서도 일방주의로 치닫는 미국의 변화를 촉구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3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1989년 11월 9일 장벽 붕괴 당시 소련의 봉쇄 정책에 맞서 서베를린을 지키며 독일 통일을 지원한 미국의 행보를 언급하며 “미국이 국가 이기주의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존중받는 동반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자, 각자 소개해보세요.” 10월 19일 오전 11시, 독일 베를린 글렘 거리에 위치한 장벽기념공원 인근 전시시설. 한 사람은 자신을 옛 동독 작센주 출신의 직장인이라고 밝혔다. 다른 사람은 출신지는 밝히지 않고 “학생”이라고만 소개했다. 서로 몇 마디 나누고 금세 친해진 이들은 도자기용 찰흙을 가운데 두고 악수했다. 두 사람의 손자국이 그대로 찍혀 나왔다. 전시시설의 한 직원이 말한다. “꼭 30년 전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고 동서 베를린 시민이 서로 손을 잡은 채 벽 위로 끌어올려줬답니다. 당시를 기억하고 서로 협력하자는 의미에서 이런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어요. 앞으로 총 1만957개(장벽 붕괴 후 30년간의 날짜 수)의 악수 조형을 모으는 게 목표입니다.” 전시시설 한쪽 벽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핸드 프린팅 조각 수백 개가 매달려 있었다. 현재 독일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11월 9일은 동서 냉전의 상징물인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 되는 날이다. 기자는 사흘간 베를린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이어진 독일 통일에 대한 독일인들의 기억을 추적했다. 통일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과 시행착오를 돌아보며 남북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찾기 위해서다. 10월 18~20일 만난 많은 통일 관련 관계자와 베를린 시민들은 당시를 “우연 같지만 필연”이라고 강조했다.“바로 지금부터입니다”시발은 1989년 11월 9일 오후 7시에 열린 동독 정부의 기자간담회였다. 동독 정부는 시민들의 개혁 요구가 계속되자 ‘민심 달래기’용으로 서베를린에 갈 수 있는 ‘여행 자유화’ 조치를 이날 발표했다. 당초 동독 정부는 비자 신청 후 허가를 받아야 자유화가 가능한 제한적 조치로서 10일부터 신청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정책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귄터 샤보브슈키 동베를린 공산당 대변인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언제부터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바로 지금부터”라고 되풀이해 답했다. TV로 이 소식을 접한 동베를린 시민들은 곧바로 장벽으로 달려갔고, 동서베를린을 가르는 43km의 장벽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까지도 베를린 도심 곳곳에 3.6m 높이의 장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벽 윗부분은 갈고리 줄을 던져 뭔가를 걸리게 한 다음 타고 넘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둥근 모양이었다. 군데군데 뜯겨져 나가 철골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구멍이 뚫린 곳도 많았다. 장벽이 붕괴된 후 베를린 시민들이 콘크리트를 떼어간 탓이다. 당시 상황을 좀 더 정확히 듣고 싶은 마음에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의 마지막 인민의회(국회)에서 사회민주당(SPD) 원내총무로 활동한 리하르트 슈뢰더(76) 훔볼트대 명예교수의 자택을 방문했다. 그는 독일 통일조약 협상에 동독 측 대표로 참석해 독일 통일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베를린시 외곽에 위치한 슈뢰더 명예교수의 서재는 당시 기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당시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과정을 한반도 상황과 비교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노트북컴퓨터를 꺼내 1989년부터 1990년 사이 자신이 활동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통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서독 주민들은 동독에 자주 갔습니다. 동독 사람들도 제한적이긴 해도 서독을 방문할 수 있었어요. 편지나 소포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서로에게 보낼 수 있었고, 전화통화도 가능했죠. 무엇보다 상대 지역의 TV 프로그램도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동독 주민의 80%가 전파를 잡아 서독 TV 프로그램을 시청했다고 한다. 장벽 붕괴 전인 1989년 초 동독 내 전체 TV 시청률이 약 35%였는데, 동독 주민의 서독 TV 시청률도 20%가 넘은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슈뢰더 교수는 “더구나 장벽 붕괴 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개혁정책으로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붕괴되고 있었다”며 “여기에 동독 경제가 파산에 이를 만큼 최악이 되면서 통일 외에는 돌파구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로 ‘내전(內戰)’을 꼽았다. “서독과 동독은 서로 장기간 교류하다 통일했습니다. 그럼에도 동독을 먼저 개혁하고 동서독 교류를 확대한 다음 마지막에 베를린 장벽을 없애는 점진적인 통일이 이뤄졌다면 지금 훨씬 더 좋았으리라는 의견이 많아요. 그런데 한국은 남북이 싸우는 전쟁이 일어났고…. 이후 제대로 된 교류 없이 단절된 상태로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눈물의 궁전’에 눈물은 없었다슈뢰더 교수와 헤어지고 기자는 당시 동서베를린 시민들의 교류 흔적을 찾아 나섰다. 10월 19일 오후 먼저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강 인근에 있는 ‘트레넨 팔라스트’(눈물의 궁전)를 방문했다. 동베를린에 위치했던 이곳은 독일 통일 전 동서독 주민이 상대 지역에 사는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검문소였지만 현재는 작은 박물관이 됐다. 짧은 만남 후 긴 이별을 앞둔 가족들은 이곳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곳의 명칭이 ‘눈물의 궁전’이 된 이유다. 안으로 들어가니 관람객 50여 명이 있었다. 한 학부모는 자녀에게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는 동서독 주민의 표정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동서독의 교류는 지금 남북한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1949년 동독과 서독이 분단된 후 동독인의 서독 이동이 급격히 증가하자 동독 정부는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을 세웠다. 하지만 탈출자가 많고 불만이 커지자 양측은 1964년 11월 동서베를린 자유왕래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이산가족은 상대 지역에서 최대 30일간 지낼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전인 1980년대 말 동독은 연평균 100만 명 이상, 서독은 6배인 600만 명 이상이 상대 지역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 같은 교류가 결국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통일을 이루는 밑바탕이 됐다. 이 때문인지 시대의 아픔이기도 한 베를린 내 검문소는 지금 독일 젊은이와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대표적인 예가 베를린 도심 한가운데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다. 1961년부터 베를린 장벽 붕괴 전까지 동서베를린 왕래자의 검문소였던 이곳은 늘 인산인해를 이뤘다. 바로 옆에는 맥도날드 매장이 있었다. 햄버거를 사 먹고 주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에게 장벽 붕괴는 부모 세대에 있었던,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거기서 만난 베를린 시민 아나 양에게 장벽 붕괴에 대해 묻자 “나는 지금 15세고, 태어나기도 전 일이라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분위기는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강을 따라 1.3km 남아 있는 장벽에 화가 100여 명이 그림을 그려 유명해진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10월 20일 찾은 이곳 역시 젊은이들에겐 ‘문화공간’일 뿐이었다.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입을 맞댄 모습을 그린 벽화 ‘형제의 키스’ 앞에서 만난 카티야(19) 씨는 “친구들과 함께 바람을 쐬러 왔다”며 “나는 그저 통일 독일에서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오시’와 ‘베시’의 갈등은 여전“통일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며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장벽 붕괴 30주년 전 열린 독일 통일 29주년 기념식(10월 3일)에서 한 말이다. 장기간 동서독 교류를 통해 이룬 통일임에도 이후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다. 베를린에서 만난 많은 시민도 “여전히 정서적 장벽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게으른 ‘오시’(Ossi·동독놈)와 거만한 ‘베시’(Wessi·서독놈)의 갈등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 실체를 정확히 알고 싶어 베를린 카이저스베르테르 거리에 위치한 베를린자유대를 방문했다. 독일 국적자로, 독일 통일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온 김상국(47) 한국학과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조만간 연구차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힌 그는 한국이 통일 과정에서 얻어야 할 교훈으로 ‘기대 심리의 관리’를 언급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3월, 동독 첫 자유선거인 인민의회 선거가 있었다. 당시 선거는 ‘빨리 일해 서독처럼 잘살자’는 공약을 내건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과 ‘빠른 통일은 동독에게 좋지 않으니 점진적으로 이루자’는 사회민주당(사민당) 간 대결구도였다. 동독인의 선택은 전자였다. 이후 1990년 10월 통일이 됐다. 하지만 후폭풍이 컸다. 막상 통일이 됐는데도 당장 동독 주민이 서독 주민처럼 잘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통일 후 동서독 마르크화를 무리하게 통합하는 과정에서 직원 월급을 감당하기 힘들던 동독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 문을 닫고 말았다. 실업률이 급증했고, 동독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독으로 이동했다. 1989년 장벽 붕괴 당시 1700만 명이 넘던 동독 인구(베를린 제외)는 최근 1905년 수준인 1300만 명대로 감소했다. 독일 전체 인구 8200만 명의 15%에 불과한 수준이다. “현재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지역의 75%가량입니다. 동독지역 주민이 아주 못살까요? 폴란드, 체코, 헝가리보다 훨씬 잘삽니다. 경제나 인프라는 동독지역이 거의 90%까지 서독지역을 따라 왔고, 각종 복지제도는 서독이나 동독지역이나 다 같아요. 그럼에도 상대적 박탈감이 워낙 크다 보니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조차 ‘서독 정치인’으로 생각합니다. 통일 과정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요와 경제적 요소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통일 과정에서 상대의 문화와 정서를 존중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줄여가야 ‘정서적 장벽’이 생기지 않습니다.”“소통과 교류가 먼저, 통일은 그 결과”실제로 9월 발표된 ‘독일 통일 현황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동독지역 주민의 57%가 “나는 독일의 2등 시민”이라고 답했다. 이런 불만은 독일 내 극우세력이 다시 급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 10월 27일에 있었던 옛 동독지역 튀링겐주 지방선거에서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집권여당 기민당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AfD는 옛 동독지역인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 선거에서도 각각 2위에 올랐다. 2012년부터 이민정책을 확대하자 “왜 우리보다 이민자나 난민을 우대하느냐”며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서독지역 주민은 “동독보다 못사는 서독지역도 많은데 왜 동독 출신은 불평만 하느냐”고 반발한다. 독일 정부는 30년간 2조 유로(약 2570조 원)를 동독지역 경제와 인프라에 투입했다. 이는 소득의 5.5%에 달하는 ‘연대세’로 서독지역 주민들 주머니에서 고스란히 나간 돈이다. 그렇다고 서독과 동독 모두 손해를 본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통일 이후 독일은 유럽연합(EU)의 맹주가 됐다. 한때 경제적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세계 4위 경제대국이다. 동서 분단 당시 독일은 유럽에 탱크를 굴리는 위험한 국가로 취급받았지만, 통일이 곧 독일산 벤츠가 전 유럽에 굴러다니는 원동력이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고 베를린을 떠나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통일은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는 한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독일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한국 사람들 역시 통일을 이루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큰 성취감과 저력을 느끼게 될 겁니다.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독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통일보다 먼저 필요한 건 평화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교류를 넓히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과정은 이야기하지 않고 결과인 통일만 생각합니다. 앞뒤가 바뀌었습니다. 통일은 소통과 교류가 증대되고 양측의 교감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획득할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베를린=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이 기사는 에 실린 기사입니다]}
“나는 전체 유럽인을 위한 사절입니다.” 4∼6일 중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 말이다. 프랑스를 넘어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중국과 글로벌 파트너가 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셈이다. 이는 유럽이 일방주의로 갈등을 유발하는 미국 대신에 중국 비중을 크게 늘리려는 행보로 풀이된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AP통신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과 시 주석은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에어버스사 항공기 구매와 엔진 개발 협력, 농업 분야 협력 강화, 무역과 금융 확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국-프랑스 관계 행동계획’에 합의했다. 이날 양국이 체결한 경제협력 규모만 150억 달러(약 17조3900억 원)에 달한다. 두 정상은 무역전쟁, 이란 핵문제, 기후변화 등 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은 유엔을 비롯해 주요 20개국(G20) 등 다자주의 안에서 협력을 강화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마크롱 대통령도 “한 나라의 고립된 선택은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자국 이익만 좇으며 고립주의와 일방주의에 매진하는 미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4일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국제협약인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EU와 중국, 러시아는 협약을 잘 지키고 있다”며 미국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장악한 세계 금융의 균열도 예고됐다. 시 주석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중국은 최근 프랑스에서 유로화 표시 채권 40억 유로(약 5조1154억 원)를 발행했다”며 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이번 정상 회담은 ‘프랑스와 중국’을 넘어 ‘EU와 중국’ 차원의 의제들도 다룬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도 자국뿐만 아니라 아냐 칼릭제크 독일 교육부 장관, 필 호건 EU 무역위원, 에어버스 등 유럽 주요 기업 대표 30여 명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역시 마크롱 대통령을 ‘유럽의 대표’ 차원에서 황제급 의전을 펼쳤다. 시 주석은 5일 수입박람회 개막식 연설 직후 프랑스 전시관부터 방문해 마크롱 대통령과 와인을 마셨다. 이날 저녁에는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함께 상하이의 전통정원 위위안(豫園·예원)에서 마크롱 대통령 부부와 산책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 역시 6일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중국 지도부 서열 1, 2위 인사들이 동시에 외국 지도자를 만나 협력 강화를 외친 건 최고의 의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코넬대 경제학자 출신 에스와르 프라사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중국본부장은 AP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제 다른 나라들에 신뢰받지 못하는 파트너”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다자주의에 대한 반감, 국제협정 거부, 오랜 동맹에 대한 적대감이 미국의 영향력을 잠식했다”고 말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프랑스가 내년부터 유럽연합(EU) 이외 나라 출신 이민자에 대해 지역별 수요에 맞춰 직종별로 가려서 받기로 했다. AFP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뮈리엘 페니코 프랑스 노동장관은 5일 이 같은 내용의 ‘이민 쿼터제’를 내년 여름부터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역별로 특정 직종이나 자격증 등 기술력을 가진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쿼터 상한이 적용될 전문 직업군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통계 자료를 수집할 방침이라고 페니코 장관은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지역별로 요구되는 기술을 갖춘 이민자의 쿼터가 정해지면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비자를 내줄 계획이다. 고용주, 노동조합, 지방자치단체는 이민 노동자가 상한선을 넘지 않도록 매년 검토해야 한다. 다만 구체적으로 승인 규모가 얼마나 될지, 이민자의 국적을 고려할 것인지 등은 이날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조치는 2022년 대선을 겨냥한 것이다. 자국 노동자를 보호하고 8%대에 달하는 실업률을 낮추는 한편 ‘정부가 이민에 너무 관대하다’는 보수층 유권자를 잡기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프랑스로 망명을 신청한 사람은 12만2743명으로 전년보다 22% 증가했다. 보수층에서는 프랑스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하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건서비스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번 쿼터제 도입이 프랑스 내 실업률과 인력구조에 당장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이주자 25만5956명 중 ‘이민비자’를 받아 프랑스에 들어온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다만 프랑스의 이민정책이 유럽 내 다른 국가들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현재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등 일부 유럽 국가를 비롯해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특정 직종이나 직업에 대한 이민 쿼터제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 역시 인구 약 8243만 명 중 20%에 달하는 1600만여 명이 터키, 폴란드 등에서 온 이민자로, 이민자 제한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지난주 사퇴한 존 버커우 영국 하원의장(보수당)의 후임으로 노동당의 린지 호일 경(62·사진)이 선출됐다. 4일 BBC 등에 따르면 이날 호일 경은 후보 7명과 경합을 벌여 제158대 하원의장에 선출됐다. 그는 “중립적이고 투명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의회를 이끌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하원은 이번 주 해산한 후 다음 달 12일 조기 총선을 치른다. 이를 감안할 때 그는 총선이 끝난 다음 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의장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총선 후 구성될 새 의회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크게 내세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 당시에도 유럽연합(EU) 잔류 또는 탈퇴에 대한 뚜렷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브렉시트를 추진하는 집권 보수당 소속이면서도 EU 잔류 의사가 강했던 전임 버커우 의장과의 차이점이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영국 하원에서 “정숙(Order)”을 외치는 소리가 달라지게 됐다. 최근 자리에서 물러난 존 버커우 영국 하원의장의 후임으로 노동당 출신 린지 호일 경(62)이 4일 선출됐기 때문이다. 영국 BBC와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4차 투표에서 호일 경은 후보로 나선 7명의 의원들과 경합을 벌여 제158대 하원의장에 선출됐다. 그는 총 325표를 얻어 2위인 같은 당의 크리스 브라이언트 의원(213표)보다 114표나 많은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린지 신임 의장은 12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영국 하원이 이번 주 해산한 후 다음달 12일 총선을 치르기 때문이다. 그는 전임자인 버커우 의장이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에 대한 표결 과정에서 중립성 벌어진 점을 의식한 듯 선출 직후 “나는 중립적이고 투명할 것이며, 의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총선 후 구성될 새 의회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크게 내세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EU 잔류냐, 아니냐’를 두고 의사를 밝히지 않은 극소수의 하원의원 중 한명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새 의장 선출 후 보리스 존슨 총리는 “호일 신임의장은 합리성과 친절함으로 평의원들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새 의장이 사안을 꿰뚫어 보는 시각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애들링턴 출생인 호일 신임의장은 1997년 처음 하원의원에 선출됐다. 전 노동당 하원의원 더그 호일의 아들인 탓에 ‘부자(父子) 의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는 2004년 당시 같은 당 출신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대학등록금 인상법안을 두고 극렬한 대결을 벌이면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블레어 총리가 등록금을 최대 3배 가까이 올리려 하자 당시 노동당 의원이던 호일 신임의장은 “가난한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막는다”며 이를 막으려 했다. 그는 2010년부터 하원 부의장직도 맡아왔다. 이를 인정받아 지난해 기사 작위를 받았다. 평소 말수가 적고 신중해 동료들로부터 신뢰가 높다. 2017년 딸이 자살한 아픔도 겪었던 그는 의장에 선출되자 “딸 나탈리가 여기 있었으면 했다. 언제나 그리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원 의장은 650명인 하원의 대변인으로, 각종 의회의 진행을 맡는다. 중립적 진행을 위해 의장은 의결권이 없다. 한번 의장이 되면 하원 총선에서 신분이 유지되는 한 본인이 사임하거나 큰 반대가 없으면 계속 의장직이 유지된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만약 당신이 ‘애플’을 사용하면, 워싱턴에서 당신의 전화를 (몰래) 들을 수 있다. ‘화웨이’를 이용하면 베이징에서 당신 전화를 들을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더 낫겠나?” 최근 러시아 정부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야기다. 러시아의 선택은 ‘후자’다. 러시아와 중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화웨이 간 협력관계가 나날이 강화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니다. 미국이 유럽 국가들과 손을 잡고 화웨이를 견제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화웨이 간 밀월관계가 구축되면서 과거 동서 냉전시대처럼 ‘기술 냉전’(Tech Cold War) 시대가 본격화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 보도했다. 화웨이는 미국의 견제로 시장이 위축되자 러시아와 급속히 가까운 관계를 만들고 있다. 화웨이는 러시아 최대 통신업체 ‘모바일텔레시스템즈’(MTS)와 협력해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를 내년까지 러시아 전역에 설치할 계획이다. 두 회사는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첫 5G 테스트 작업을 시작했다. 화웨이는 향후 6년간 러시아에 연구개발(R&D) 인력을 3배로 증원하고, 러시아에 신규 연구개발센터를 3개 건립하기로 약속했다. 나아가 러시아 대학, 연구기관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연구비 지원은 물론 정보기술(IT) 교류도 확대 중이다. 러시아도 화웨이의 이 같은 행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미국은 5월 “화웨이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수출규제 명단에 올렸다. 화웨이 장비에 기밀을 빼돌릴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탓이다. 폴란드가 9월 미국에 협력 의사를 밝히는 등 화웨이의 5G 서비스 제외에 동참하는 국가들도 늘고 있다. 러시아는 화웨이 편에 섰다. 양측 간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러시아는 경제가 악화되면서 외국인 투자를 늘리는 한편 자국 내 IT기술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화웨이 기술 이전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안보 차원에서도 러시아 정부는 통신기술 교류시 미국 기업보다는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의 기업이 자국 내 주요 데이터에 접근하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 총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 때문에 전 세계는 끊임없는 갈등에 내몰고 있다. 러시아는 민주적 경제관계를 지지한다”며 중국을 옹호하고 나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우리는 러시아를 이웃이자 포괄적 협력파트너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을 위한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본다”고 화답했다 화웨이 역시 미국 견제로 위축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러시아가 필요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화웨이의 올해 3분기 시장 점유율은 18.2%로, 삼성전자(21%)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미국 제재 논란으로 북미와 서유럽 시장에서 성장이 멈춘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또 구글이 자사 운영체계(OS) 안드로이드를 화웨이폰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향후 새로운 OS개발 등을 위해 더 많은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가 필요한 상황이다. FT는 “화웨이는 현지에서 우수한 러시아 IT인재를 적극 고용하고 있다”며 “화웨이가 러시아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계속하면서 러시아에 있는 미국 IT기업은 사라져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지난달 23일 냉동 컨테이너에 몸을 싣고 영국에 밀입국하려다 동사한 39명이 전원 베트남인으로 추정되면서 베트남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BBC 등에 따르면 에식스 경찰은 1일 “희생자 39명 모두 베트남 국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31명은 남성, 8명은 여성으로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 컨테이너 안에서 동사 혹은 질식사했다. 경찰은 현재 희생자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베트남 당국과 시신 운구 등 대책을 논의 중이다. 경찰은 사건 당일 컨테이너를 운반한 트럭운전사 모리스 로빈슨(25), 에이먼 해리슨 씨(23)를 살인, 인신매매, 밀입국 혐의로 기소한 데 이어 컨테이너를 대여업체에서 빌린 로넌 휴스(40), 크리스토퍼 휴스 씨(34)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형제인 이들은 물류회사를 함께 운영 중이며 사고가 난 냉동 컨테이너 임대 계약서에 서명한 인물이다. 베트남 경찰도 하띤성에서 밀입국을 알선해 온 2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베트남에서는 영국에 가려는 사람들을 겨냥한 밀입국 조직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 3만 파운드(약 4500만 원)를 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BBC는 “이 금액은 베트남 농촌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30년 치 연봉에 해당한다”고 전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냉동 컨테이너에 몸을 싣고 밀입국하려다 동사한 숨진 39명이 전원 베트남으로 추정되면서 베트남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희생자 가족들이 영국 경찰로부터 신원 확인 전화를 받으면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영국 BBC와 AP통신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영국 에식스 경찰은 1일(현지 시간)부터 39명 희생자들의 신분을 모두 베트남 국적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23일(현지시간) 에식스 주 그레이스에서는 대형 트럭 컨테이너 안에서 동사한 39명이 발견됐다. 31명은 남성, 8명은 여성으로,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 컨테이너 안에서 동사했거나 질식사했다. 사건 직후 영국 경찰은 이들은 희생자들이 중국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영국 경찰은 현재 희생자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베트남 당국과 시신 운구 등 대책 마련에 대해 논의 중이다. 사건 담당 경찰 관계자는 베트남 중북부 하띤성에 거주 중인 응우옌 딘 지아 씨에게 1일 밤 전화를 해 “당신 아들 르엉이 사망자 같다”고 밝혔다고 현지 온라인 매체 VN익스프레스는 전했다. 깐 록 지역 응엔 마을에 사는 팜 반 틴 씨도 딸인 미가 씨가 39명의 사망자 중 한 명인 것 같다는 경찰 전화를 받았다. 담당 경찰은 통역사를 통해 가족들에게 각종 인적사항을 확인한 후 신원이 확인되면 해당 시신이 영국에 안치돼 있다고 알려줬다고 한다. 이번 참사의 범인에 대한 수사도 확대되고 있다. 경찰은 살인, 인신매매, 밀입국 혐의로 사건 당일 콘테이너를 나르는 역할을 한 트럭운전사 모리스 로빈슨 씨(25), 에머스 해리슨 씨(23)를 기소한데 이어 컨테이너를 대여업체에서 빌린 로넌 휴스 씨(40), 크리스토퍼 휴스 씨(34)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형제인 이들은 물류회사를 함께 운영 중이며 사고가 난 냉동 컨테이너 임대 계약서에 서명한 인물이다. 베트남 경찰도 하띤성에서 수년간 밀입국을 알선해온 2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베트남에서는 영국에 가려는 사람들을 이용해 각종 밀입국 조직이 성행 중이다. 약 3만 파운드(약 4500만원)를 이들 조직에 내야 밀입국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1일(현지시간) 유럽 최초 한인회를 구성했던 프랑스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식이 프랑스 북동쪽에 위치한 쉬프 시에서 열렸다. 1919년 당시 한인 노동자 37명은 일제의 압제를 피해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영국을 거쳐 독일과 프랑스의 1차대전 격전지였던 베르덩(Verdun) 인근의 소도시 쉬프에 정착했다. 당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일제 침략 이후 이미 소멸한 국가 취급을 받아, 한인 노동자들이 한국 국적으로 프랑스 체류허가를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들은 파리에서 200㎞ 떨어진 쉬프 시에서 철도 복구, 묘지 조성 등 힘든 노동일을 하며 기반을 잡았다. 자신들의 번 돈을 상해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와 연계해 한국에서 활동 중인 독립 운동가들에게 보냈다. 지금도 쉬프 시 관할인 마른 도청에는 당시 이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프랑스 도착날짜, 체류증 신청일 등 인적사항이 남아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반쪽 짜리 날개 모양의 100주년 기념비도 제작돼 쉬프 시에 설치됐다. 나상원 프랑스 한인회 회장은 “머나먼 이국에서 조국을 향한 그리움과 날개가 반쪽 밖에 없어 조국에 오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국립합창단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축하공연을 열었다. 합창단은 8일까지 프랑스 각지에서 총 4번의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최근 취재차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 Zurich)를 방문했다. 세계적 명문 공대라면 흔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탠퍼드대 등 미국 학교를 떠올리겠지만 취리히 공대도 화려하다.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노벨상을 탄 이 학교 졸업생만 21명에 달한다. 매년 신입생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명물’이 있다. 1896년 입학생인 아인슈타인의 학창 시절 사물함이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사물함이니 박물관의 유명 소장품처럼 유리 시설 안에 넣어 소중히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물함은 그야말로 소박했다. 높이 195cm, 폭 45cm가량의 나무 사물함이 그냥 복도에 있었다. 재학생들이 쓰는 수십 개 사물함 사이에서 한참을 찾아야 검은 콧수염을 단 젊은 아인슈타인의 작은 얼굴 그림이 붙은 사물함이 보였다. 아인슈타인의 ‘성적표’도 있었다. 천재 과학자의 성적은 평범했다. 최고 점수는 6점인데 4점도 꽤 많았다. 6점이 A학점, 5점이 B학점, 4점이 C학점에 해당할 수 있는데 ‘C’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학교 관계자는 “그는 종종 친구의 노트를 빌리고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를 했으며 싫어하는 과목의 수업을 듣지 않는 ‘게으른 학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가설, 상대성 이론, 질량과 에너지의 변환식(E=MC2) 논문을 연달아 발표해 세계를 뒤흔들었다. ‘아인슈타인이야 천재니까 그랬겠지’란 생각은 이 학교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대부분 국내 최상위권 공대 졸업자인 이들은 취리히 공대가 우수한 과학자를 계속 배출한 이유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꼽았다. 이 학교 석·박사 과정의 40%는 외국인이지만 자국 학생과 학비 등에서 차별이 없다. 박사 과정은 7만 프랑(약 8200만 원)가량의 연봉도 받는다. 연구를 토대로 스타트업을 차리면 학교 공간을 사무실로 빌려준다. 무엇보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국내에 부족한 ‘자율성’과 ‘장기적 안목’을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한국 박사 과정을 ‘노예’ 생활이라고 하잖아요. 교수와 학생은 철저한 상하관계죠. 여기선 학생이 주체적으로 연구를 이끌고, 지도교수는 막히는 부분만 풀어줍니다.” “국내는 산학협력을 해야 연구비가 생기는데 기업들은 당장 쓸 수 있는 연구 결과만 원해서 힘들어요. 세계를 선도할 기술을 개발하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더라도 실험적인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데도 말이죠.” 선진국들은 인공지능(AI) 로봇공학과 같은 미래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세계인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인재 경쟁력 지수’는 62.32점으로 조사 대상 63개국 중 33위다. 취리히 공대를 나설 때 다시 아인슈타인이 떠올랐다. 수업에 빠지고, 학점도 높지 않던 그였지만 자율성을 중시하는 환경 속에서 과학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했고 이것이 위대한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치 상태나 다름없던 ‘아인슈타인의 사물함’마저 자율을 중시하는 학풍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취리히에서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그는 회색빛 벽을 본 뒤 잠시 눈을 감았다. 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보였다. 3.6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은 군데군데 뜯겨져 나가 생선가시 같은 철골구조물이 드러났다. 벽 반대편이 훤히 보이는 곳도 많았다. 다음 달 9일이면 동서 냉전의 상징물인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된다. 기자는 18일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의 마지막 인민의회(국회)에서 사회민주당(SPD) 원내총무로 활동한 리하르트 슈뢰더 훔볼트대 명예교수(76)와 함께 베를린 장벽을 찾았다. 그는 독일 통일조약 협상에 동독 측 대표로 참석해 독일 통일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콘크리트에 담긴 장벽 붕괴 30년의 기억들 30년 전 베를린을 동서로 가른 베를린 장벽의 길이는 총 160km에 달했다. 현재는 그 일부만이 남아 당시 베를린 시민들이 겪은 회한, 분노, 기쁨 같은 역사적 순간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벽을 보던 슈뢰더 교수는 “동서로 나뉘었던 베를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고 운을 뗀 뒤 당시의 기억을 그림 그리듯 설명했다. “1989년 11월 9일 오후 11시경이었을 겁니다. 거실에서 글을 쓰다가 TV를 켰는데 여행 자유화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바로 현장에 가려 했죠. 그런데 가족들이 못 가게 만류했어요. 장벽이 다시 막혀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고 걱정한 거죠.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운 후 아이들을 데리고 붕괴된 장벽을 넘어 베를린으로 갔습니다.” 장벽 앞에는 웅덩이가 파인 흔적이 있었다. 1961년 동독 공산당은 급히 장벽을 만들고, 벽 앞에 구덩이를 파서 차가 돌진하더라도 벽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했다. 장벽은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다. 슈뢰더 교수는 “너무 빠른 과정이었다”고 회상했다. 30년 전 11월 9일 동독 정부는 시민들의 개혁요구가 계속되자 ‘민심 달래기’용으로 서베를린에 갈 수 있는 ‘여행 자유화’ 조치를 준비했다. 원래는 비자를 신청한 뒤 허가를 받도록 한 제한적 조치였다. 그러나 동베를린 공산당 귄터 샤보브스키 대변인이 이날 저녁 기자간담회에서 “언제부터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바로 지금부터”라고 잘못 발표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제한 조치임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채 말했던 것이 변화를 촉발시킨 것이다. 이 장면을 TV로 지켜본 동베를린 주민들은 곧바로 장벽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28년간 장벽을 넘으려다 총에 맞은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두 명 용기를 내 장벽에 다가서는 과정에서 경비병이 총을 쏘지 않자 환호가 터졌다. 폭이 50cm도 안 되는 벽 윗부분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장벽이 무너진 순간이다. “다음 날부터 매일 3000명씩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에 갔습니다. 거대한 행렬이 강물 같았죠. 사람들은 베를린 장벽을 망치나 돌, 심지어 맨손으로 뜯어냈습니다.” 이듬해 3월 동독 내 첫 자유선거로 이뤄진 인민회의가 소집됐고 10월에 통일이 이뤄졌다. 분단 45년 만이었다. 슈뢰더 교수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 “동독을 먼저 개혁하고, 동서독 교류를 확대하고, 마지막에 장벽을 없애야 더 좋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번에 장벽이 무너졌으니…. 장벽이 무너진 건 필연 같습니다. 단순히 독일이란 나라가 통일한 것을 넘어서 독재를 무너뜨리고 시민들이 지유와 인권을 회복한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개혁 정책, 동구권 공산 국가들의 붕괴, 동독 경제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결국 자유를 원하는 동독인의 힘이 결정적이었다는 의미다. ○ 독일 청년 “부모 세대 일이지만 기쁜 축제” 19, 20일 베를린 장벽 기념공원을 비롯해 장벽을 넘으려다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화해의 교회’ 등 장벽 관련 전시 시설에는 관광객은 물론 많은 독일인들이 몰렸다. 장벽에 대한 기억을 자녀와 나누려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30주년 행사도 도심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장벽 기념시설에서는 30년 전 벽을 넘으려고 동서 베를린 시민들이 서로 손을 잡고 끌어올려준 모습을 기리기 위해 시민들이 도자기용 찰흙에 핸드프린팅을 한 뒤 벽에 매다는 식의 참여형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장벽이 사라진 장소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비추면 30년 전 장벽이 보이는 증강현실(AR) 애플리케이션 시연도 펼쳐졌다. 베를린 장벽을 경험하지 못한 독일 청년들에게 30주년은 축제처럼 여겨졌다. 이런 분위기는 화가 100여 명이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강을 따라 1.3km 남겨진 장벽에 그림을 그려 유명해진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두드러졌다.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입을 맞댄 모습을 그린 벽화 ‘형제의 키스’ 앞에서 만난 카티야 씨(19)는 “동독과 서독은 과거 이야기고 지금은 그냥 하나의 독일”이라고 말했다.○ 정서적 통일은 여전히 멀다는 시민들 기자가 만난 베를린 시민 중 상당수는 “마음 속 장벽은 남아 있다”고 했다. 동독 출신이라고 밝힌 한스 씨(51)는 “동독이 흡수되는 식으로 통일이 되다 보니 동독 사람들의 정체성이 흔들렸던 것 같다”며 “서독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거리감이 있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독일 통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동독 지역의 경제력은 서독 지역의 75% 수준(2018년 기준)에 그친다. 평균 임금도 서독의 84%다. 동독 지역 주민의 절반이 넘는 57%가 “난 독일의 2등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격차를 바라보는 시각은 갈린다. 서독 출신들은 “동독보다 못사는 서독 지역도 많다”며 “왜 동독만 챙겨야 하나”라고 항변한다. 독일 정부는 30년간 2조 유로(약 2597조 원)를 동독 지역 경제와 인프라에 투입했다. 소득의 5.5%에 달하는 ‘연대세’로 충당했다. 반면 동독 출신들은 “통일로 동서독 마르크화를 무리하게 통합하면서 동독 기업은 경쟁력을 잃게 돼 실업률이 급증했다” “성장 동력의 한계에 다다른 서독이 동독 시장으로 돌파구를 찾았다”고 주장한다. 경제 격차와 별개로 동독 경제력이 다른 동유럽 국가보다 앞서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동독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 지역의 75% 정도지만 이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보다 훨씬 높다. 김상국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교수는 “경제나 인프라 등은 거의 90%까지 동독 지역이 서독 지역을 따라왔다”며 “통일 과정에서 동독이 존중 받지 못했다는 생각, 상대적 박탈감, 동독 지역 인구 감소로 정서적 장벽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 향후 30년은 마음의 통일 추진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계기로 향후 30년은 정서적 통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 통일 29주년을 맞은 이달 3일 북부 항구도시 킬에서 열린 통일기념식에서 “통일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경제에너지부는 동독 지역 발전 상황 모니터링으로 동서 균형 발전을 조율하는 부서도 운영한다. 동서독 주민 간 정서적 괴리감 때문에 극우세력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달 27일 열린 옛 동독 지역 튀링겐주 지방선거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집권여당 기독민주당(CDU)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AfD는 지난달 옛 동독 지역인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 선거에서도 각각 2위에 올랐다. 동독 출신자들의 소외감을 자양분 삼아 급성장했다는 평가다. 2012년부터 이민정책을 확대하면서 일자리를 이민자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낙후된 동독 지역 주민들이 늘어난 점이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로 부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 전 충분한 준비에 대한 걱정이 교차했다. 그런 점에서 슈뢰더 교수의 말은 계속 여운을 남긴다. “장벽 붕괴 전에도 동서독 간엔 전화와 편지로 서로 연락하고 상호 방문도 많았다. 그런 동서독도 30년이 지나도록 정서적 격차가 남아 있다는 점을 한국도 고려해야 한다.” ― 베를린에서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영국에서 96년 만에 ‘12월 조기총선’이 실시된다. 여당과 야당 중 누가 의회의 과반 의석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의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하원은 29일 ‘12월 12일 조기총선 개최’를 골자로 한 단축 법안을 표결해 찬성 438표, 반대 20표로 가결했다. 앞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사진)는 이달 28일까지 총 세 차례 조기총선안을 하원에 상정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모두 부결됐다. 하지만 28일 EU가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 31일로 연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영국이 아무 조건 없이 탈퇴하는 ‘노딜’ 위험성이 사라지자 제1야당 노동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조기총선 ‘동의’로 기조를 바꿨다. 이번에 통과된 조기총선안은 상원 승인을 거쳐 다음 달 2, 3일경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가를 받으면 발효된다. 의회는 다음 달 6일 해산돼 12월 12일 총선을 향해 5주간 선거운동이 펼쳐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인 12월 총선은 1923년 이후 처음. 차기 총선은 2022년 열릴 예정이었다. 조기총선을 준비하는 여당과 야당 모두 셈법이 다르다. 존슨 총리와 집권 보수당은 하원 과반을 확보해 브렉시트 합의안 비준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싶어한다. 현재 총 650석인 하원 의석 중 보수당 의석은 288석에 불과하다. 브렉시트 추진이 의회에서 번번이 좌절된 이유다. 존슨 총리는 이날 “브렉시트를 완수하기 위해 의회를 다시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인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은 조기총선을 통해 브렉시트 시행 자체를 다시 판단토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노동당은 관세동맹 유지를, 자유민주당은 EU 잔류를 당론으로 내세웠다.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면 제2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시행될 수 있다. 조 스윈슨 자유민주당 대표는 이날 “브렉시트를 중단시킬 정부를 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어느 당이 과반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브렉시트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번 총선은 사실상 ‘브렉시트 담판 총선’이라고 일간 가디언 등은 전했다. 현재로서는 집권 여당이 유리하다. BBC가 25일 보도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보수당(36%)이 노동당(24%), 자유민주당(18%), 브렉시트당(11%)을 앞서고 있다. 다만 안심하긴 이르다. 2017년 총선에서도 보수당은 노동당보다 지지율이 20%포인트 높았지만 과반에 못 미치는 318석 확보에 그쳤다. 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투표율이 지난 총선(68.7%) 때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큰 것도 변수다. 여당이나 야당 모두 조기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현재와 같은 교착상태가 계속될 수 있다. 이 경우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내년 1월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영국 싱크탱크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영국이 EU와 합의한 새 브렉시트 안을 이행하면 2029년까지 매년 700억 파운드(약 105조 원)의 손실이 발생하며 10년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3.5% 낮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과 EU는 앞서 영국령 북아일랜드가 법적으로 영국의 관세체계 적용을 받되 실질적으로 EU 관세 및 단일 시장에 남겨 두는 안에 합의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지부진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놓은 조기 총선 동의안이 28일 하원에서 또 부결됐다. 벌써 세 번째 퇴짜다. 존슨 총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조기 총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브렉시트를 둘러싼 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BBC 등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이날 ‘12월 12일 총선을 실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기 총선 동의안을 상정했다. 이날 오전 EU 27개국 회원국이 브렉시트를 이달 31일에서 내년 1월 31일로 3개월 연기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내부 조치다. 표결 결과 찬성 299표, 반대 70표로 동의안은 부결됐다. 조기 총선 동의안은 하원 전체 의석(650석)의 3분의 2 이상인 434표 이상을 얻어야 가결된다. 전체 650석 중 244석을 보유한 제1야당 노동당이 기권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존슨 총리는 지난달 4, 10일 각각 조기 총선 동의안을 내놨지만 모두 부결됐다. 존슨 총리는 세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조기 총선을 꼭 이뤄내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그는 하원 표결 직후 의사진행 발언에서 “더 이상 (의회가) 나라를 인질로 잡아서는 안 된다. 12월 12일 조기 총선 개최를 담은 ‘단축법안(short bill)’을 다시 상정하겠다”고 선언했다. 고정 임기의회법에 의거한 조기 총선 동의안과 달리 간략한 내용만 담는 단축법안은 하원 과반의 지지만 얻어도 통과될 수 있는 점을 노린 것이다. 존슨 총리의 조기총선안은 제1야당인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가 29일 지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른 야당인 자유민주당(LD)과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이미 EU가 브렉시트 3개월 연기를 승인하면 12월 9일 총선을 치르자는 주장을 해왔다. 젊은 층의 지지를 기대하는 LD는 대학들의 방학을 염두에 두고 총선 날짜를 12월 12일 대신, 방학 전인 같은 달 9일에 실시하자고 밝혔다. 다만 조기 총선안이 통과돼 의회가 해산되면 영국 내 정치적 혼란은 한층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조기 총선을 바라는 각각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는 의회를 다시 구성해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브렉시트를 최대한 빨리 강행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반영하듯 그는 조기 총선 추진과 함께 “내년 1월 31일 이후로 추가 브렉시트 연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EU 회원국이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하기로 했다. 이런 혼란 때문에 브렉시트가 내년 1월 31일 이후에도 추가 연기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EU는 ‘브렉시트를 하느냐, 마느냐’ 즉 시행 여부의 문제가 아닌, ‘어떤 브렉시트를 하느냐’의 문제가 영국 내에서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12월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고 하더라도 영국 정치권 내에서 브렉시트 시행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추가로 시한 연장이 가능하다는 의미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이달 31일로 예정됐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한 번 더 뒤로 미뤄졌다. 2016년 6월 국민투표 이후 3번째 연기됐다. 28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을 제외한 EU의 27개 회원국은 브렉시트를 이달 31일에서 내년 1월 31일로 3개월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같이 밝히며 “이번 연기 조치에 유연한 연장(flextension)을 부여한다”고 덧붙였다. 내년 1월 31일을 시한으로 하되 그 전에라도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 수정안을 입법하면 탈퇴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다. 각국 정부가 24시간 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연기 결정은 즉시 발효된다. 앞서 19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EU와의 새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하원 승인이 무산되자 유럽연합(탈퇴)법에 따라 브렉시트를 내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기해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EU에 보냈다. EU는 지난 주말에 브렉시트를 연기하는 방안을 담은 합의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EU 합의안에는 EU와 영국이 17일 합의한 내용을 바꾸기 위해 또다시 협상을 할 수 없다고 명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EU와 영국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의 안전장치인 ‘백스톱’ 대안으로 북아일랜드가 법적으로 영국의 관세체계 적용을 받되 실질적으로 EU 관세 및 단일 시장에 남는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브렉시트가 다시 연기됨에 따라 EU는 영국에 집행위원 후보 지명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를 이끄는 집행위원단은 각국의 국무위원에 해당하며 회원국별로 1명의 집행위원이 참여한다. 당초 31일 EU를 탈퇴할 예정이던 영국은 12월 출범하는 새 집행위원회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남은 변수는 영국의 조기 총선 시행 여부다. 존슨 총리는 “EU가 브렉시트를 내년 1월 31일까지 석 달 연기하는 데 합의할 경우 12월 12일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존슨 총리는 조기 총선안을 곧 하원에 상정할 방침이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이달 31일로 예정됐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사실상 한 번 더 뒤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을 제외한 EU 27개국 회원국은 브렉시트를 3개월 뒤로 연장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확정했다. 브렉시트은 이미 두 차례나 시한이 연기된 바 잇다. EU는 26일부터 주말 동안 내부적으로 내년 1월 31일로 브렉시트를 연기하는 방안을 담은 합의 초안을 작성했다. 이 안에 따르면 올해 11월, 12월, 내년 1월에 영국과 EU과 각각 비준 절차를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면 그 다음달 1일에 탈퇴가 이뤄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연기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를 바탕으로 브렉시트는 최대 2020년 1월 31일까지 연기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초안에는 EU와 영국이 17일 합의한 내용을 바꾸기 위해 또 다시 협상을 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날 EU와 영국은 EU 회원국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의 안전장치인 ‘백스톱’ 대안으로 북아일랜드가 법적으로 영국의 관세체계 적용을 받되 실질적으로 EU 관세 및 단일 시장에 남겨두는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EU는 각국 대표들은 28일 오전 브뤼셀에 모아 이 안을 검토하고 최종확정할 예정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브렉시트 3개월 연장을 반대해온 가운데 초안이 나온 만큼 EU 내부에서 사실상 3개월 연장 결정을 끝낸 것으로 보인다. EU 회원국들이 28일 ‘브렉시트 3개월 연장안 동의’를 최종 발표할 경우 영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앞선 19일 보리스 존슨 총리는EU와의 새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하원 승인이 무산되자, 유럽연합(탈퇴)법에 따라 브렉시트를 내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EU에 보낸 바 있다. 남은 변수는 영국 내 조기 총선 시행 여부다. 존슨 총리는 “EU가 브렉시트를 내년 1월 31일까지 석 달 연기하는데 합의할 경우 12월 12일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혀왔다. 존슨 총리는 28일(현지시간) 조기 총선안을 하원에 상정할 방침이다. 하원이 이를 통과시켜 12월 조기 총선이 확정되면 브렉시트 연장 시기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가디언 등 현지 언론들은 예측했다. 조기 총선안이 부결되면 영국 총리실은 제1야당인 노동당과의 브렉시트 공동 제안서 마련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26일 영국 경찰이 3일 전 냉동 컨테이너에서 39명이 집단 동사(凍死)한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북아일랜드 출신 트럭 운전사 모리스 로빈슨(25)을 살인 및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했다고 BBC 등이 전했다. 그는 자신이 몰고 온 대형 트럭에 시신들이 발견된 냉동 컨테이너를 연결해 실었다가 사건 당일 체포됐다. 경찰은 그가 대형 밀수조직의 본거지로 유명한 북아일랜드 크레이개번 출신인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 국립범죄청(NCA)도 이번 참사를 대형 범죄조직이 연계된 사건으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NCA는 로빈슨이 운전한 트럭을 불가리아에서 판매한 토머스 마허, 조애나 마허 부부도 체포했다. 이 냉동 컨테이너를 15일 임대한 북아일랜드 출신 40대 남성, 범죄조직 연루가 의심되는 북아일랜드 출신 20대 남성 등도 추가로 체포해 신문하고 있다. 현재 시신 39구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고 있다. 39명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7명가량은 베트남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최소 10명 이상의 베트남인의 실종이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베트남 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쩐응옥안 런던 주재 베트남 대사는 에식스 경찰과 주 의회를 찾아 대책 마련을 논의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영국에서 냉동 컨테이너 안에 있던 중국인 밀입국자 39명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중국 언론은 이번 사건을 ‘최악의 중국인 집단 사망’으로 규정하는 한편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책임을 지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사망자들의 경유지가 된 벨기에를 비롯해 난민캠프를 폐쇄한 프랑스 등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영국 BBC와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영국 남서부에 시신으로 발견된 중국 출신 밀입국자 39명은 영하 25도 냉동 컨테이너에서 10시간 이상 고통을 받다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컨테이너 위치정보(GPS) 조사결과 해당 컨테이너는 이달 15일 아일랜드 더블린을 출발했다. 이후 영국 워윅셔와 켄트를 거쳐 영불해협을 건넜다. 컨테이너는 프랑스 칼레 항구와 됭케르크 항구에도 잠시 들렸다. 이후 이달 22일 오후 2시 50분 경 벨기에 제브뤼헤 항구에 진입했다. 당시 컨테이너는 밀봉돼 있었다. 동사한 밀입국자들이 컨테이너에 이미 들어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이들은 칼레와 제브뤼헤로 이동하는 어느 시점에서 탑승한 것으로 보인다. 칼레와 됭케르크는 불법 이민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경로로 유명하다. 이후 컨테이너는 제브뤼헤항구를 출발해 23일 0시 30분(현지시간)에 영국 남서부 그레이스에 있는 퍼플리트 페리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날 오전 1시경 문이 열렸고, 39명 시신이 발견돼 경찰에 신고됐다. 밀봉된 냉동 컨테이너 내부는 당시 영하 25도 극저온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10시간 이상 살이 떨어져나가는 고통 속에서 동사한 것으로 영국 경찰은 추정했다. 대랑 사망을 야기한 불법 밀입국 주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 중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3일 문제의 컨테이너를 수령한 북아일랜드 아마 카운티 출신의 25세 운전기사 모 로빈슨을 비롯해 용의자 3명을 경찰이 수사 중”이라며 “아마 카운티 남부에서 활동하는 아일랜드 밀수조직, 그리고 이와 연계된 북아일랜드 반정부 민병대가 의심된다”고 전했다. 밀입국자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책임공방’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중국은 “영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 관영매체 환추시보는 25일 “이번 사건은 2000년 영국 도버에서 중국인 밀입국자 58명이 숨진 후 일어난 최악의 중국인 집단 사망”이라며 “중국인이 영국에 밀입국한 것은 정당하지 않지만, 영국과 관련 유럽 국가들은 이들을 비명횡사하지 않게 보호하지 못했다”며 비판했다. 실제 2000년 영국 남서부 도버에서 중국인 58명이 컨테이너 안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불법 이민자들이었다. 같은 참사가 반복된 것에 대해 중국 언론들은 “왜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지 영국과 유럽사회가 자문하고 구체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망자들이 중국인이라고 밝히지는 않은 상태다. 사망자들의 경유지인 벨기에와 프랑스도 “예견된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영국으로 가길 원하는 불법 이주자와 난민, 또 이들을 이용하려는 불법 이민 알선 조직들이 벨기에로 집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해안에서 100㎞ 정도 떨어진 벨기에는 영국행 난민들의 주요 이동 경로다. 벨기에가 주요 경로가 된 배경에는 2016년 프랑스 정부가 북부 지방 칼레 난민 캠프를 폐쇄한 것과 연관이 있다. 당시 영국으로 향하는 길목인 칼레 캠프를 프랑스 정부가 폐쇄하면서 이곳에 있던 8000여명은 궁중에 뜨게 됐다. 이때부터 불법 밀입국은 물론 관련 브로커, 범죄조직들이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벨기에에 모여들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사망자들에 대한 추모는 물론 철저한 진상 규명, 재발 방지, 난민정책 보완 등을 촉구하는 글들이 중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내 소셜네트워크(SNS)에 확산되고 있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이거, 할리우드 영화 아닙니다.” 22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 Zurich) 본관 대강당. 400여 명의 학생이 황창규 KT 회장(66)의 농담에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가 “5세대(5G)로 가능한 현실”이라며 기술적 부분을 설명하자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변했다. 강당 스크린에서는 대형 화재가 난 도심에 무인비행선이 출동해 현장 일대를 스캔한 뒤 관련 정보를 증강현실(AR) 고글을 착용한 구조대원에게 보내는 모습, 5G 원격진료 장면 등이 나왔다. 황 회장은 이날 ‘5G, 번영을 위한 혁신’을 주제로 강연했다. 취리히 연방공대는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2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곳이다. 이 학교는 2014년부터 세계적 명사를 초빙해 특강을 해왔다. 황 회장 강연은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였다. 황 회장은 이날 “10년을 좌우할 테크놀로지가 무엇이냐”고 물으며 “미래 트렌드를 파악해 기술 차별화에 성공했을 때 가장 큰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삼성전자 시절 ‘반도체의 메모리 용량이 1년에 2배씩 증가한다’고 제시한 ‘황의 법칙’부터 반도체 개발과정, ‘애플’ 스티브 잡스와의 인연 등 자신의 30년 경험을 설명했다. 강연 주제인 5G 역시 기술적 장점을 단순 나열하기보다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적용,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와의 연계 등 다양한 적용 사례를 동영상과 함께 설명했다. 학생들의 질문도 쏟아졌다. 한 학생이 “5G 전파의 유해성이 우려된다”고 하자, 황 회장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자파의 유해성을 연구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이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분쟁을 비롯해 각국의 5G 경쟁 상황에 대해 묻자 황 회장은 “경쟁을 통해 기술이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끼리 ‘미스터 5G’라는 그의 별명을 말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별명은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생긴 것. WEF 국제비즈니스위원회 정기 모임 당시 참가자 대부분이 5G를 미중의 대결 구도로 이야기하자, 그는 손을 번쩍 든 후 “한국은 이미 상용화 준비가 됐다”며 국내의 5G 경쟁력을 설명했다. 당시 클라우드컴퓨팅 업체 세일즈포스닷컴의 마크 베니오프 대표가 “당신 말이 맞다”며 호응했고, 이후 ‘미스터 5G’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한국은 4월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했다. 현재 가입자는 400만 명. 한국은 국가별 5G 표준필수특허 수에서도 1위(2019년 3월 기준)다. 황 회장은 도전정신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가 “여러분은 머지않아 내 파트너나 경쟁자가 될 것”이라며 “과학기술을 통해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란다. 미래는 예언할 수는 없지만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하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학교 학생 루카 씨(20)는 “기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내년 3월 KT 주주총회를 끝으로 회장에서 은퇴한다. 이날 강연은 그가 KT 회장으로서 하는 마지막 공개 강연인 셈이다.취리히=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재미있나요? 이거, 할리우드 영화 아닙니다.” 400여 명의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학생들이 황창규 KT 회장(66)의 농담에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가 “5G로 가능한 현실”이라며 기술적 부분을 설명하자 이내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변했다. 강당 앞에 설치된 화면에는 대형화재가 난 도심이 보였다. 무인비행선이 출동해 현장 일대를 스캔한 후 증강현실(AR) 안경을 착용한 구조대원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했다. 5G를 활용한 원격진료로 부상당한 시민들을 신속히 치료하는 장면도 나왔다. 22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 본관 대강당. 황 회장은 이곳에서 ‘5G, 번영을 위한 혁신’을 주제로 강연했다. 취리히연방공대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X레이를 발견한 빌헬름 뢴트겐등 21개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적 명문 학교다. 2014년부터 공대생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기 위해 세계적 명사를 초빙해 특강을 해왔다. 황 회장의 이날 단독 강연은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였다. 황 회장은 “앞으로 10년을 좌우할 테크놀로지가 무엇이냐”는 화두부터 던졌다. 학생들이 머뭇거리자 그는 “미래 트렌드를 미리 파악해 기술 차별화에 성공했을 때 가장 큰 기회가 찾아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의 메모리 용량이 1년에 2배씩 증가한다’고 제시한 ‘황의 법칙’부터 삼성전자의 기술 총괄 사장 당시의 반도체 개발, ‘애플’ 스티브 잡스와의 인연 등 자신의 30년 경험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강연 주제인 5G 역시 기술적 장점을 단순히 나열하기보다는 현대중공업 등 실제 산업현장에서의 B2B 적용, 인공 지능(AI)·자율주행차와의 연계, 감염병 환자 확산방지 활용 등 다양한 적용 사례를 동영상과 함께 설명해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제리 씨(20)는 “로봇공학같은 응용과학에 관심이 많다”며 “5G의 다양한 적용을 보여줘 큰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황 회장에게 날카로운 질문도 쏟아냈다. 한 학생은 “5G전파의 유해성이 우려된다”고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자 황 회장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자파의 유해성을 연구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KT는 지난 수년간 인체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 관련 연구를 지원해왔다”고 답했다. 또 다른 학생이 미국과 중국 간 화웨이 분쟁을 비롯한 각국의 치열한 5G경쟁에 대해 묻자 황 회장은 “경쟁을 통해 기술이 발전한다”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학생들끼리 ‘미스터5G’라는 그의 별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비즈니스위원회(IBC) 정기 모임 당시 참가자 대부분이 5G를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로 이야기했다. 황 회장은 답단한 마음에 손을 번쩍 든 후 “한국은 5G 상용화 준비를 거의 다 마쳤다”며 국내 5G경쟁력을 설명했다. 그러자 미국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업체인 세일즈포스닷컴의 마크 베니오프 CEO는 “당신 말이 맞다”며 호응을 보냈다. 이후 황 회장은 국제적으로 ‘미스터 5G’란 별명을 얻게 됐다. 실제 올해 4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5G가 상용화됐다. 현재 가입자가 400만에 달한다. 한국은 국가별 5G 표준필수특허 수에서도 1위(2019년 3월 기준)다. 황 회장은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는 “오늘 강연에 참석한 여러분은 머지않아 내 파트너나 경쟁자가 될 것”이라며 “과학기술을 통해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란다. 미래는 예언할 수는 없지만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연 후 루카 씨(20)는 “공학을 넘어 기술의 사회적 가치 등 다양한 관점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내년 3월 KT 주주총회를 끝으로 회장에서 은퇴한다. 그는 삼성전자 재직시절부터 영국 케임브리지(2002년), 미국 스탠포드(2003년) MIT(2004년), 하버드(2016년) 등 세계 주요 명문대에서 강연을 해왔다. 이날 강연은 그가 KT 회장으로서 하는 마지막 공개 강연인 셈이다. 강연 후 황 회장은 “회장 임기가 끝나면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이 제대로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필요하면 어디든 가서 청년들을 위해 무료로 강연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취리히=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