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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광복동 ‘고갈비 골목’. 1960~80년대 부산 청년들에게는 향수 어린 골목이다. 당시 흔한 생선이었던 고등어의 배를 갈라 연탄불에 노릇하게 구워내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여 먹었다. 허기는 채워졌고 취기는 올랐다. 육고기를 사 먹을 돈이 없어 고등어를 ‘뜯었’지만 그만의 낭만이 있었다. 고등어구이를 ‘고갈비’로, 소주는 ‘이순신 꼬냑’으로, 막걸리는 ‘야쿠르트’란 애칭으로 불렸다. 당시 ‘광복동 스타일’이었다. 고등어를 주제로 한 전시가 부산에서 지난달 25일 개막해 12월 1일까지 이어진다.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의 공동전시 ‘노릇노릇 부산’이다.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 마련된 전시는 광복동 고갈비 골목과 부산 자갈치 시장을 재현하는 등 고등어를 중심으로 부산의 해양수산문화를 보여줄 수 있도록 꾸며졌다. 여름 휴가차 부산을 찾은 가족 피서객들이 아이 손을 잡고 가볼 만한 실내 전시다. 부산의 ‘고등어의 도시’다. 현재 우리나라 고등어의 90%가 부산에서 생산, 유통된다. 이에 고등어는 2011년 부산의 시어(市魚)로 지정되기도 했다.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배효원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에서는 고등어의 생물학적 특징 뿐 아니라 ‘고갈비 문화’ 등 문화사적인 측면도 상세히 다뤘다”고 했다. 전시장 한편에는 광복동 고갈비 골목과 고갈비를 구워 먹는 모습을 재현했다. 자갈치 시장을 재현한 코너에는 명태, 고등어, 멸치 등 다양한 생선 모형을 설치했다. 실제 어시장에서 쓰이는 주황색 천막과 파라솔은 물론, 자갈치 시장의 사진을 곳곳에 배치해 더욱 실감나도록 했다. 지난달 30일 6살 아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은 변승민 씨(35)는 “요새 어시장이 흔하지 않은데 아들과 함께 체험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전시장 초입에는 일렁이는 물 영상과 배에서 어류를 유인하기 위해 켜는 집어등이 함께 전시돼 있었다.부산의 수산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전시품도 소개됐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제공받아 전시한 경매사의 옷과 갈고리, 녹음기 등이 대표적. 실제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기록원이 수기를 남기는 동시에 경매사의 육성을 녹음해 착오를 방지했단다. 고등어는 선조들의 식탁에도 자주 오른 대표 생선이었다. 1454년 지어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주로 청어, 고도어(고등어의 옛 말)가 난다”라고 해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고등어를 즐겨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산에서 유래한 ‘고갈비’는 이제 전국구 음식이 됐지만 ‘맛’이 다르다. 고등어 산지인 부산에서는 굽기 6시간 전 생고등어에 소금을 친다. 오래 염장된 고등어와 달리 담백하고 신선한 맛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어족 자원이 감소하고 먹거리가 다양해지면서 한때 12개 가게에 몰려있던 광복동 고갈비 거리는 이제 절반 이상이 폐업한 상태가 됐다. 대신 2017년 충무동 골목시장에 고갈비 특화 거리가 마련됐다. 고등어 전시를 보고, 고갈비 거리를 찾아가면 ‘세월의 맛’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2001년 보물로 지정된 ‘백자 청화소상팔경문 팔각연적(白磁 靑畵瀟湘八景文 八角硯適·사진)’의 옆면에는 중국 후난성 동정호(둥팅호)에 뜬 달이 그려져 있다. 동정호 주변 경관을 그려낸 8가지 그림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중 하나인 ‘동정추월(洞庭秋月)’이다. 도자기의 흰 면을 풍류의 공간으로 삼아 당대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던 산수를 형상화한 점이 눈에 띈다. 또 연적 윗면에는 음각과 양각 기법을 모두 활용해 구름 속에서 꿈틀거리는 용을 생동감 있게 조각했다. 국립광주박물관이 21일부터 열고 있는 특별전 ‘도자기, 풍류를 품다’는 팔각 연적을 포함한 도자기와 그림 등 196점을 선보이고 있다. 누각과 정자에서 풍류를 즐기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도자에 시를 쓰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흥취를 더하곤 했다. 전시에서는 이러한 공간 속 도자기의 쓰임을 폭넓게 다뤘다. 광주박물관 김희정 학예연구사는 “광주·전남 지역의 정자와 옛 도자기를 보며 조선시대 풍류 문화를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광주의 대표 누각 희경루(喜慶樓)를 그린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를 볼 수 있다. 1546년 증광시 문무과에 합격한 동기생 5명이 20여 년 만인 1567년 희경루에서 만나 친목 모임을 한 장면을 담은 그림으로, 2015년 보물로 지정됐다. 중층 누각에 기녀들이 연주와 무용 및 시중드는 모습이 다채롭게 그려져 있다. 1451년(문종 1년) 광주 목사로 부임한 안철석이 지었다고 알려진 희경루는 신숙주(1417∼1475)가 “넓고 훌륭한 것이 동방에서 제일”이라고 칭송할 정도로 위용이 대단했다. 이 외에도 ‘성과 요새 무늬 병’, ‘정자를 그린 산수 무늬 병’ 등 병에 건축물을 묘사해 조선시대 누각과 정자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전시품도 볼 수 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턴아웃 동작’은 고관절을 바깥으로 돌려 양발의 뒤꿈치를 서로 맞붙게 하는 발레의 기본 자세다. 발끝을 세워 몸을 곧추세우는 푸앵트 동작은 19세기에 발명된 후 발레리나라면 누구나 선보여야 하는 필수 동작이 됐다. 둘 다 두 발을 땅에 튼튼하게 지탱할 수 있는 신체여야 가능하다. 걸을 수 없어 기어다녀야 하고, 다리를 쓰지 못해 상체보다 한참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이라면 엄두를 낼 수 없다. 선천적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자는 ‘도덕규범 없이 장애인의 몸이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어렸을 적 그의 경험에 따르면 답은 ‘아니요’다. 어머니는 그에게 “손님이 있을 땐 기어다니지 말라”고 조심스레 말했고, 장애로 툭 튀어나온 손자의 가슴을 쓸어내린 할머니는 “(더 이상) 불거지지 말라”고 기도한다. 자라면서 차별의 경험을 켜켜이 쌓아온 저자의 눈에는 무력한 자신보다 민첩하게 달려와 휠체어를 들어주는 비장애인 친구의 몸이 더 아름답다. 신체 대신 언어에 의해 능력이 좌우되는 변호사를 직업으로 택한 것도 그래서다. 그는 전작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을 통해 글 잘 쓰는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2020년부터 무용수 겸 공연 창작자로 살아가고 있다. 말에 기대는 변호사 대신 순수한 몸의 아름다움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도전을 택한 것이다. 처음엔 신체의 한계에 부딪혔지만, 점차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며 ‘정상성’이란 사회의 논리에 저항하고 있다. 발레리노가 발레 동작은 더 잘하겠지만, 그가 공연한 ‘현실원칙’ 안무 중 기어다니는 동작은 쉽게 따라 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몸은 ‘능력’ 측면에서는 지극히 불평등하지만, 제각기의 ‘힘’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온전히 평등하다”고 말한다. 개인의 경험에서 확장해 춤의 역사를 다룬 점도 인상적이다. 예컨대 비유럽계 이민자나 장애인 등을 전시품으로 등장시킨 유럽과 미국의 ‘프릭쇼’, 한국 전통무용 중 장애인을 호출한 ‘병신춤’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타자화된 몸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복잡하다. 프릭쇼가 장애 차별적인 착취임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 직업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비정상의 몸이 이른바 ‘정상’의 시선과 제약에만 묶여 있던 건 아니다.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전통 무용수 김만리는 중증 장애인의 몸으로 신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 레오타드만 입은 채 무대 전면에 등장하는 파격을 시도한다. 장애인의 신체적 특징을 활용한 영국 캔두코 무용단, 자기 의도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몸의 움직임을 그대로 드러낸 배우 백우람의 사례도 나온다. 독자들은 서로 다른 몸이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운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멜로디가 귀에 착 감기잖아요. 데뷔하자마자 일본에 와 줘서 너무 고마워요.” 27일 오후 일본 도쿄돔 앞. 그룹 뉴진스 팬미팅 ‘버니즈 캠프 2024 도쿄돔’을 보러 온 대학생 마이 씨(22)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특히 세련된 사운드가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도쿄돔 앞은 발걸음을 떼기 힘들 만큼 인파가 몰렸다. 21일 일본 첫 싱글 ‘슈퍼내추럴(Supernatural)’ 발표 일주일도 안 돼 개최한 팬미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26, 27일 이틀간 열린 팬미팅은 평일인데도 티켓 9만1200장이 일찌감치 매진돼 시야제한석까지 열었다. 데뷔 1년 11개월 만의 도쿄돔 공연에 현지 언론은 “해외 아티스트 역사상 데뷔 후 가장 빨리 도쿄돔에 입성한 것”이라며 대서특필했다. 도쿄돔은 한 번에 최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본 최대 공연장으로, 세계적 아티스트가 아니면 서기 어려운 무대다. 조명이 켜지며 멤버 5명이 등장하자 관객들은 약속한 듯 응원봉을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도쿄돔 지붕이 찢어질 듯 함성을 질렀다. 첫 곡 ‘어텐션’이 시작되자마자 팬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기가 절정으로 끓어올랐다. 일본 아이돌 전설 마쓰다 세이코의 1980년 히트곡 ‘푸른 산호초’를 하니가 리메이크해 열창하자 함성이 더욱 커졌다. 뉴진스 이름을 세계에 알린 ‘디토’로 끝난 팬미팅은 깜짝 앙코르 곡 ‘ASAP’로 팬들을 열광시키며 일본 첫 공연의 막을 내렸다. 멤버 민지는 “버니즈(뉴진스 팬) 여러분이 가득찬 도쿄돔에 오니 마음이 행복해진다”며 인사를 건넸다. 발등 부상을 당해 휴식 중이다 이번 팬미팅에 등장한 혜인은 “꿈의 무대에 선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감격했다. 다섯 멤버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섞어가며 인사를 건네고 장난을 치며 매력을 뽐냈다. 뉴진스는 데뷔에 맞춰 후지TV, TV아사히, TBS 등 일본 지상파 민방에 일제히 출연하며 일본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스포니치, 스포츠호치, 산케이스포츠 등 스포츠신문 등은 뉴진스 특별판을 제작하고 1면에 소식을 전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멜로디가 귀에 착 감기잖아요. 데뷔하자마자 일본에 와 줘서 너무 고마워요.”27일 오후 일본 도쿄돔 앞. 그룹 뉴진스 팬미팅 ‘버니즈 캠프 2024 도쿄돔’을 보러 온 대학생 마이 씨(22)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특히 세련된 사운드가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도쿄돔 앞은 발걸음을 떼기 힘들 만큼 인파가 몰렸다. 21일 일본 첫 싱글 ‘슈퍼내추럴(Supernatural)’ 발표 일주일도 안 돼 개최한 팬미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26, 27일 이틀간 열린 팬미팅은 평일인데도 티켓 9만1200장이 일찌감치 매진돼 시야제한석까지 열었다. 데뷔 1년 11개월 만의 도쿄돔 공연에 현지 언론은 “해외 아티스트 역사상 데뷔 후 가장 빨리 도쿄돔에 입성한 것”이라며 대서특필했다. 도쿄돔은 한 번에 최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본 최대 공연장으로, 세계적 아티스트가 아니면 서기 어려운 무대다.조명이 켜지며 멤버 5명이 등장하자 관객들은 약속한 듯 응원봉을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도쿄돔 지붕이 찢어질 듯 함성을 질렀다. 첫 곡 ‘어텐션’이 시작되자마자 팬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랐다. 일본 아이돌 전설 마쓰다 세이코의 1980년 히트곡 ‘푸른 산호초’를 하니가 리메이크해 열창하자 함성이 더욱 커졌다. 뉴진스 이름을 세계에 알린 ‘디토’로 끝난 팬미팅은 깜짝 앙코르 곡 ‘ASAP’로 팬들을 열광시키며 일본 첫 공연의 막을 내렸다.멤버 민지는 “버니즈(뉴진스 팬) 여러분이 가득찬 도쿄돔에 오니 마음이 행복해 진다”며 인사를 건넸다. 발등 부상을 당해 휴식 중이다 이번 팬미팅에 등장한 혜인은 “꿈의 무대에 선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감격했다. 다섯 멤버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섞어가며 인사를 건네고 장난을 치며 매력을 뽐냈다. 뉴진스는 데뷔에 맞춰 후지TV, TV아사히, TBS 등 일본 지상파 민방에 일제히 출연하며 일본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스포니치, 스포츠호치, 산케이스포츠 등 스포츠신문 등은 뉴진스 특별판을 제작하고 1면에 소식을 전했다.도쿄돔을 찾은 유명인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공연장을 찾은 홍콩 유명배우 양조위와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화제가 됐다. 양조위는 지난해 7월 발매된 뉴진스의 미니 2집 타이틀곡 중 하나인 ‘쿨 위드 유’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26일 오전 11시 29분 전북 군산시 선유도 해역. 바다 위 바지선에 올라탄 연구소 관계자들이 분주해졌다. 잠수사가 수심 4m 깊이의 바닷속에서 “목재 발견”이라고 외치는 음성이 바다 위 정박된 바지선의 수중 영상 컨트롤러를 통해 들려왔기 때문. 컨트롤러를 조작하던 학예연구사는 곧바로 “인양하세요”라고 답했다. 잠수사 머리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컨트롤러로 전송된 영상에선 갯벌에 잠긴 목재 일부가 선명하게 보였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의 고군산군도 해역 수중발굴조사 현장을 26일 찾았다. 올해 4월 재개된 현장 발굴은 10월까지 진행되는데, 이날 현장은 한낮 뙤약볕만큼 조사 열기가 뜨거웠다. 잠시 뒤 발굴된 목재가 인양판 위에 올라왔고 밧줄로 고정됐다. 1.5m 길이의 목재는 바닷속에 오래 있었던 탓인지 군데군데 개흙과 따개비가 붙어 있었고, 곳곳에 벌레 먹은 구멍이 나 있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이규훈 수중발굴과장은 “목재는 선박 부속구인 노 아니면 닻으로 추정된다”며 “연구소로 가져가 보존 처리를 한 뒤 정밀 조사를 하면 형성 연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조사에서는 목재와 그릇 밑받침, 사슴뿔 등이 함께 발견됐다. 2020년 12월 선유도가 포함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도자기와 선체편 등을 발견했다는 신고가 처음 접수됐다. 이듬해인 2021년부터 진행된 수중발굴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간돌검과 삼국시대 토기, 고려시대 청자와 조선시대 분청사기 등 유물 929점이 발견됐다. 특히 선유도 동쪽에서는 청자다발 81점이 포개진 선적 화물 형태로 발견돼 고려시대 고선박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선유도 일대는 고려시대 왕의 임시 거주지인 숭산행궁(崧山行宮), 사신이 묵었던 객관(客館), 조선시대 수군 진영인 군산진(群山鎭), 조운선이 정박한 포구 등 다양한 해양시설이 있었던 곳이다. 고려와 송나라 사이의 중요 기항지 역할을 했다. 1123년(고려 인종 원년)에 송나라 사신으로 온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따르면 사신을 접대하는 건물과 바다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묘지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과장은 “선유도가 과거부터 국제 무역에서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사실을 실증하는 유물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며 “조사를 계속하면 난파된 옛 선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수중 발굴 작업은 쉽지 않다. 한 달에 두 번 오는 조금(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때) 전후로 하루 이틀이 물살이 약해 조사하기 가장 좋지만, 바람이 불어 물살이 강해지면 조사가 중단된다. 잠수 시에는 10kg 공기통과 20kg에 달하는 무게추를 달고 들어가야 한다. 현재 연구소에는 학예연구사 등 공무원 6명과 민간 잠수사 6명이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태연 잠수사는 “고될 때가 많지만 중요 유물을 찾아서 역사를 바꾼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조사가 완료된 면적은 2780㎡로 조사 대상 면적인 23만5000㎡의 1.2%에 불과하다. 연구소는 유물 발굴 가능성이 높은 지역부터 집중적으로 발굴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확인된 청동기시대 간돌검은 선유도 해역의 해상 활동이 선사시대부터 이뤄졌음을 알려주는 단서지만, 아직 하나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또 남송대에 만들어진 백자비문접시 등 중국 도자들도 출토된 바 있어 이 해역에 난파된 중국 고선박이 매몰되어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정헌 학예연구사는 “차후 고선박 등이 발견되면 국제 교역의 실체 등 옛 역사에 한 발짝 더 접근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군산 선유도 해역=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주인공 파랑이는 씩씩하고 예의 바르고, 질서를 지키는 반장 스타일이에요.” 21일 오전 부산 중구 동영로 글마루작은도서관의 한 강의실. 매달 첫째 셋째 주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동화 작가와 함께 동화 쓰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수강생 정연심 씨(67)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자신이 쓴 동화 ‘파랑이 꿈’에 대해 설명했다. 정 씨의 발표가 끝나자 이번엔 강사인 동화 작가 안덕자 씨가 나섰다. 그는 “캐릭터 이름을 생동감 있게 잘 지었다”며 정 씨를 한껏 칭찬하면서도 “주인공의 성격이 너무 많아 (내용이) 복잡해졌다”는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이날 정 씨를 비롯한 수강생 11명은 각자 써온 동화를 분석하고 감상평을 교환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2021년 은퇴한 정 씨는 “동화 구연 자원봉사를 하다 동화 창작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수업을 통해 늦은 나이지만 동화를 직접 쓰면서 자신감을 얻게 됐다. 내성적이던 성격도 밝게 변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강생 안진희 씨(47)는 열세 살 아들을 위해 동화 ‘별을 먹는 아이’를 지었다고 했다. 주인공 승우는 처음에 숫기 없는 성격 탓에 친구들에게 할 말을 제대로 못 하지만, 달 옆의 반짝이는 별을 먹으면서 용기를 얻는다. 안 씨는 “숫기 없는 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지어 본 동화”라며 “아들에게 읽어주면서 대화도 늘고 즐거운 일이 많아졌다”며 웃었다. 누구나 ‘동화 작가’가 될 수 있는 이 수업은 2010년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의 후원으로 지은 22번째 도서관 ‘글마루작은도서관’의 인기 강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당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이용객이 줄었던 도서관에 2022년부터 ‘활기’를 불어넣어 준 효자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도서관의 이지원 간사는 “독서랑 상관없는 모임이 도서관에서 진행됐을 때와 달리 동화 쓰기 수업은 수강생들이 다양한 동화, 글쓰기 관련 도서 등을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경우가 많아지며 대출이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올해 말 동화 쓰기 수강생들이 쓴 작품을 모아서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발급받은 정식 책으로 출간한다는 계획이다. 연면적 198.85㎡ 규모로 1만2300여 권의 책을 보유 중인 글마루작은도서관은 인구가 1만여 명에 불과한 ‘영주동’에 위치해 있다. 노년층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보니 어린이, 청소년 등의 문화공간이 다소 부족했다. 하지만 글마루작은도서관이 들어서면서 동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도서관을 위탁 운영하는 부산어린이어깨동무의 임윤지 사서는 “학생들을 비롯해 아이를 둔 어머니, 젊은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며 “어느새 도서관이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부산=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독일의 유명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929년 4월 10일 헬레네 바이겔과 결혼했다. 결혼 전 둘 사이에는 이미 어린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브레히트가 샤를로텐부르크의 호적 사무소에서 혼인 서약에 ‘네’라고 대답한 직후 한 일은 다른 연인 카롤라 네어를 마중하러 기차역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브레히트는 그녀에게 결혼식 때 썼던 시든 수선화 꽃다발을 건넨 뒤 “30분 전 바이겔과 결혼했으며, 그것은 불가피하고 무의미한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네어는 꽃다발을 내동댕이치고 가버렸다. 다보스에서 죽어가는 남편인 작가 클라분트를 돌보다 베를린까지 달려왔는데, 애인의 결혼 사실을 알고 분노에 찬 것이다. 신간은 제목대로 ‘광기’ 넘치는 사랑 이야기다. 독일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는 ‘베를린 황금기’의 끝자락인 192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39년까지 격동의 10년을 문화계 거장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무질의 “세계의 역사는 적어도 그 절반은 사랑의 역사”라는 말처럼, 개인사인 사랑 이야기들 속에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읽어낸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 예술가들의 모더니즘을 그려낸 전작 ‘1913년 세기의 여름’의 등장인물이 300명이 넘는데, 신간에선 두 배인 600여 명을 다룬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394권의 저서를 읽고 일기, 편지, 잡지, 신문 등 다방면의 자료를 조사했다. 신간은 리얼리즘 소설 같은 문체로 독자가 주인공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를 처음 식사 자리에 초대했을 때 그녀를 부른 애칭은 프랑스어로 비버를 뜻하는 ‘카스토르’였다. 둘은 상대방의 연애를 간섭하지 않겠다는 계약 결혼을 했지만,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끝없는 바람기에 남몰래 괴로워한다. 동성애, 근친애, 이기적 사랑, 불같은 사랑…. 지고지순함과는 거리가 먼 ‘막장 드라마’ 같지만 열정 넘치는 이들의 사랑은 짜릿하고 자극적이다. 드라마가 아니라 실화라는 점에서 읽을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다.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가 동성 연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알코올 의존증 상태가 됐다. 파블로 피카소는 젊은 연인 마리테레즈에게 빠진 후에 아내 올가를 그릴 때 더없이 냉담해졌다. 올가는 이를 두고 “피카소의 그림 속에는 여인이 아니라 괴물이 있었다”고 말했다. 복잡한 치정 이야기 속에서 간혹 눈에 띄는 낭만적인 대목이 눈길을 끈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어느 여름날 호숫가에서 아내에게 이렇게 전보를 친다. “글로 쓰는 것은 바보 같아, 일요일에 당신에게 키스하러 갈게.” 저자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빌려 표현한 ‘일요일은 키스와 시간의 제곱’이라는 문구가 재치 있게 들린다. 1929년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대공황과 파시즘의 부상까지, 불안과 증오가 범람하던 시대, 사람들은 그저 현재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그들의 사랑이 쉽사리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뜨거운 열정이 전간기(1918∼1939년·1, 2차 세계대전 사이) 예술의 황금시대를 낳은 원동력이 된 게 아닐까.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전남 해남군에서 대형 사각형 제단으로 이뤄진 5, 6세기 고대 마한의 제사 공간(사진)이 발견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마한의 제사 유적 중 최대 규모다. 국가유산청은 “해남군의 거칠마 토성 발굴조사에서 고대 마한이 제사 의례용으로 쓴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발견됐다”고 20일 밝혔다. 발굴팀에 따르면 토성 정상에서 최대 28m 길이의 사각형 제단이 나왔다. 가운데 ‘긴 장대(입대목)’를 꽂은 흔적의 환구(環溝·둥그런 형태의 도랑) 등 마한 제사 유적이 발견된 적은 있지만, 온전한 제단 형태가 발굴된 것은 처음이다. 유적 내에선 입대목을 세운 구멍(지름 110cm, 깊이 90cm)과 철제 방울도 나와 이곳이 제의가 이뤄진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제단이 위치한 거칠마 토성이 서해와 남해를 잇는 해양 항로의 거점으로, 고대 한중일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라는 사실이 주목된다. 주요 해안가에는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제사 유적들이 적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제단 근처에선 길이 8m, 깊이 2.9m의 대형 집수정을 비롯해 무덤 1기, 집터 흔적들, 먹고 버린 조개껍질 무더기 등이 나와 당시 제단 인근에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미술관에서 일하는 북미 원주민의 후손으로서 제가 할 일은 원주민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들리도록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다코타 호스카 미국 덴버박물관 원주민미술부 큐레이터(59·사진)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원주민 자치구역인 오글랄라라코타네이션 출신으로, 덴버박물관과 중앙박물관이 공동 주최해 전날 개막한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특별전을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는 공예, 회화 등 북미 원주민의 예술품과 사진 등 덴버박물관 소장품 151점을 선보인다. 북미 원주민을 조명한 전시가 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건 처음이다. 호스카 큐레이터는 “북미 원주민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다양성(variety)’이라고 할 수 있다”며 “원주민들은 물개 내장이나 고슴도치의 가시로 예술품을 만드는 등 모든 시기에 있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에만 570여 개의 원주민 부족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다양한 문화를 가꿔 왔다는 것. 호스카 큐레이터는 유럽 문명 중심의 시각 탓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북미 원주민의 예술세계를 관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는 원주민 예술이 이들 사이에서만 아름답다고 인식됐지만, 점차 현대 예술가들이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확산하면서 미국 밖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우리가 알던 인디언들’을 다루지만 인디언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1492년 콜럼버스가 북미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데서 붙여진 유럽 중심의 편견이 낳은 용어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륙에 사는 570여 개 원주민 부족 중 30여 개 부족의 과거와 현재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크리스토프 하인리히 덴버박물관장(64)은 “원주민들이 자연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선물로 감사하게 여기는 모습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고 말했다. 과거 원주민이 사용한 원뿔 모양의 이동식 집 ‘티피’는 자연의 순환구조를 엿볼 수 있다. 티피의 둥근 바닥은 대지를 의미하고, 가운데 기둥은 땅과 하늘을 이어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존경받는 이들이 착용하던 네즈퍼스족의 ‘독수리 깃털 머리 장식’, 원주민 최고의 교역품으로 꼽혔던 나바호족의 ‘덮개’ 등도 눈길을 끈다. 유럽인들이 북미 대륙에 정착한 후 벌어진 학살의 역사와 원주민 예술가들의 사진 작품도 볼 수 있다. 호스카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통해 원주민들이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987년 이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가장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제는 민주주의가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한 대토론회’에서는 이런 ‘경고음’이 켜졌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1987년 6·10항쟁 37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자리. 이 이사장과 성 전 총장의 민주주의 현주소에 대한 양자 대담 및 언론, 노동, 학계 인사들의 이견이 오갔다. 대담에서는 야당의 상임위 독주, 대통령의 거듭된 거부권 행사 등 협치는커녕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 이사장은 “야당은 우리가 다수니까 뭐든지 밀어붙이고, 정부는 야당이 혼자 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피곤한 건 국민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바로 개헌이 어려운 지금 여야 지도자들이 자신이 손해를 볼 각오를 하고 타협과 협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나눌 필요성도 다시 제기됐다. 이 이사장은 “(현 정부가) ‘내치는 내각에 맡길 테니 총리는 국회에서 뽑아라’처럼 획기적인 무언가를 제시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협상해야 한다”며 “특히 임기 말에는 다음 정권부터는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는 분권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성 전 총장은 “4·10총선 이후 처음으로 현실 정치에서 대통령과 적대적인 의회 다수파가 형성됐다”며 “앞으로 여야 간 갈등은 생각했던 것보다 과격한 방향성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 도어스테핑을 진행했지만 말썽이 생기자 이후 2년간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예는 거의 없었다”며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은 1987년 이후 평화적 정권 교체가 네 번 이뤄진,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에 성공한 나라 같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여기고 있다”며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여야 정치 지도자들이 새겼으면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토론에서는 정현백 성균관대 명예교수, 최응식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상임부위원장 등 각계 인사들이 의견을 나눴다. 정 명예교수는 “2000년대에 들어와 시민사회가 이념적으로 분화됐기 때문에 과거처럼 시민운동이 (정치의) 중재자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다”며 “양극화를 확산시킨 장본인인 정권과 정당들의 화해와 통합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상임부위원장은 “저출생 고령화와 기후 위기 등 복합 위기인 상황에서 노사정의 더 긴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약 200년 만에 일본에서 국내로 돌아온 혜원 신윤복(1758∼?)의 그림이 도난당했다는 신고가 최근 접수됐다. 17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신윤복의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사진)’를 소장하고 있던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가 2019년 12월∼2020년 1월경 그림이 사라졌다며 서울 종로구에 최근 신고했다. 2020년 1월 사무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해온 그림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는 것. 연구소 측은 지난달 17일 국가유산청 출범식에서 관계자에게 관련 사실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윤복의 고사인물도는 제갈량이 남만국의 왕 맹획을 7번 잡았다 놓아준 뒤 심복으로 만들었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 고사를 다뤘다. 우측 상단에는 ‘조선국 혜원이 그리다’라는 묵서가 남아 있다. 1811년 외가 친척이던 피종정이 신윤복에게 부탁해 그리게 한 뒤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찾았을 때 그림을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개인이 일본 수집가에게 구입해 국내로 들여왔다고 한다. 2015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그림으로 본 조선통신사’ 전시에서 이 그림이 소개됐었다. 국가유산청은 고미술계 등을 통해 그림의 소재를 추적할 방침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국군포로를 기리는 별도의 전시 공간이 처음으로 마련된다. 전쟁기념관을 운영하는 전쟁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기념관의 6·25전쟁실 내부에 ‘국군포로존(Zone·공간)’이 새로 조성돼 20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그동안 기념관의 기존 전시 중에 일부 자료가 소개된 적은 있었지만 국군포로 자료만 따로 모은 전시 공간이 마련되는 것은 처음이다. ‘국군포로존’은 총 210㎡ 면적에 관련 유물 10여 점을 우선 선보인다. 특히 국방부가 2011∼2012년 진행한 ‘귀환 국군포로 구술기록 사업’의 결과 일부가 공개된다. 귀환 국군포로의 심층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해 타이포그래픽(글꼴 디자인)으로 제작한 영상으로, 관련 기록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전쟁 중 1951년 정선지구에서 전사한 김수영 육군 하사의 유족에게 발송된 전사 통지서처럼 국군포로 가족들의 슬픔을 엿볼 수 있는 유물도 전시된다. 이 외 유엔군 포로들이 수용소에서 가을운동회를 마친 뒤 소감을 적어 중국군에게 증정한 비망록과 영국군 포로수기도 공개된다. 주한 유엔군사령부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국군포로는 8만2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1953년 정전협정으로 남북한 간 포로 송환이 이뤄졌지만, 북한은 국군포로 8726명만 돌려보냈다. 지금도 국군 포로 100여 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기념관 관계자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미귀환 국군포로 문제를 다시 조명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가장자리에 있는 것들과 호흡하려는 박수근 선생님의 면모가 저와 좀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일찍이 개척하신 ‘까끌까끌’하고 개성적인 자신만의 스타일을 제가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14일 열린 제9회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 홍이현숙 작가(66)가 말했다. 그는 “내가 ‘혼자’라고 느끼고 있을 때 수상 소식이 큰 격려가 됐다”며 “작품 촬영을 많이 도와준 남편에게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1988년 활동을 시작한 홍이현숙 작가는 낙후되거나 사라지는 터전과 지역민의 삶을 고민하는 등 여성, 생태, 환경에 대한 공공미술 등을 선보여 왔다. 고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박수근미술상은 동아일보와 양구군, 강원일보, 박수근미술관이 공동 주최한다. 임근혜 박수근미술상 심사위원장은 “주변부의 존재들을 예민하게 인지하는 홍이현숙 작가의 작업이 박 화백의 예술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화백의 손자인 박진흥 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은 “기쁨, 슬픔, 분노, 희망을 담아 소시민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온 홍이현숙, 노원희 작가(전년도 수상자)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꿋꿋이 한 길을 이어온 작가님들의 작업에 이 상이 든든한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흥원 양구군수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성을 지켜온 (홍이현숙 작가의) 고결함이 박 화백의 삶의 태도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홍이현숙 작가는 이날 박 화백의 작품 ‘아기 업은 소녀’(1963년)를 조각으로 만든 상패와 창작지원금 3000만 원을 받았다. 제8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인 노원희 작가(76)의 개인전도 이날 개막했다. 노 작가는 박수근미술관 내 현대미술관과 파빌리온에서 ‘출몰무대’를 주제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품위를 고찰할 수 있는 회화 등 작품 80여 점을 올 11월 3일까지 전시한다. 노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내 작품이 세상의 불안을 조금씩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다소 심난하더라도 재미있게 봐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양구=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책이자 영화인 ‘해리 포터’의 주인공 해리 포터와 숙적 볼드모트의 악연은 조금 특별하다. 볼드모트는 훗날 자신에게 위협이 될 해리를 죽이려 하지만 어머니 릴리의 희생으로 해리는 살아남는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볼드모트의 영혼 일부가 해리에게로 붙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후 해리는 볼드모트가 사용하던 뱀의 언어를 쓸 수 있게 되고, 볼드모트는 육체를 부활시키기 위해 해리의 피를 사용한다. 주인공이 적과 한 몸이 되는 일종의 ‘일체화 현상’이다. 일본 와코대 교수인 신화학자가 쓴 신간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이야기들’의 근원을 신화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인도, 일본,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등 동서양을 막론한 신화 텍스트가 풍부하게 포함돼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저자는 신화에서도 ‘해리 포터’ 속에서와 같은 일체화 현상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 전쟁의 신 아테나는 영웅 페르세우스를 앞세워 뱀 형상의 괴물 메두사를 물리쳤지만 사실 아테나를 표현한 작품에서 그녀의 옷소매가 전부 뱀으로 장식될 만큼 뱀과 연관이 깊다. 인도 신화 마하라바타 속 영웅 아르주나도 숙적이자 형 카르나처럼 활 솜씨가 뛰어나다는 동질성을 갖는다. 증오하는 존재를 오래도록 바라보게 되는 모순이 인간의 무의식 속에 오래도록 자리 잡아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신화를 알면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을 보면서도 인간의 본질을 곱씹을 수 있다. ‘귀멸의 칼날’은 목을 베어야만 죽는 ‘혈귀’와 이에 맞서는 인간의 싸움을 그린다. 그런데 둘의 대립은 바나나 나무와 돌이 인간의 조건에 대해 입씨름을 벌이는 내용의 인도네시아 신화를 연상시킨다. 몸이 부드러운 바나나는 금방 썩는 대신에 자손을 번식시킬 수 있지만, 돌은 영생을 누리는 대신에 가족을 만들 수 없다. ‘귀멸의 칼날’에서 불멸하지만 따뜻한 유대를 느낄 수 없는 혈귀를 보다 보면 인간 주인공들의 끈끈한 사랑에 대한 감흥이 더욱 커진다. 또 저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유명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는 메소포타미아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신화에서는 폭풍의 신 엔릴 등이 세상에 거대한 홍수를 내리지만, 지혜의 신 에아에게서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인간 우트나피쉬팀은 배를 만들어 6일 밤낮으로 쏟아지는 폭우를 피한다. 반면 ‘날씨의 아이’에서는 기도하면 비를 멈출 수 있는 무녀 히나가 제물로 희생돼 홍수가 잦아들지만 소년 호다카가 그녀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오면서 저지대가 물에 잠기게 된다. 폭우가 그친 ‘길가메시 서사시’와 정반대의 결말로 신화를 비튼 것이다. 원전 텍스트 외에도 신화 구조나 체계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신화학에 대한 기본 지식도 넓힐 수 있다. 가령 신화의 ‘3기능 체계’에 따라 각종 사건과 인물들은 1기능(신성), 2기능(전투력), 3기능(풍요)에 따라 구조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트로이 전쟁을 촉발시킨 파리스에게 여신 헤라는 권력을, 아테나는 전쟁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선물하겠다고 모습을 드러낸 게 대표적인 예다. 신화는 죽은 이야기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는 ‘살아 숨쉬는 이야기’다. 신화란 프리즘을 통해 지금의 콘텐츠들을 더욱 깊이 있게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일본이 1800년대 후반 이후 유산이 대부분인 핵심 근대유산 구역을 제외하기로 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 권고를 수용해 7월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등재 결정을 이끌어내려는 취지다. 하지만 사도광산 주요 지역을 제외해 ‘반쪽’ 등재를 감수하더라도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는 어떻게든 감추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단 겉으로는 권고를 이행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받은 뒤 지역 안내, 관광 상품에 슬쩍 끼워 넣는 식으로 일본 정부가 ‘꼼수’를 부리면 국제사회가 별달리 손을 쓰기 어렵다는 점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13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올 7월 세계유산위 등재를 실현하기 위해 이코모스 지적을 받은 기타자와 지구를 제외하고 완충지대로 하는 방침으로 대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코모스는 이달 6일 사도광산에 대해 등재 ‘보류(refer)’를 권고했다. 이코모스는 보고서에서 기타자와 지구를 유산 범위에서 제외하고 광산 채굴의 모든 기간에 걸친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해설·전시 전략을 개발해 현장에 설치하라고 명시했다. 기타자와 지구는 사도광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20세기 중반에 발전소, 광산 시설 등으로 쓰인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 흔적이 남아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기타자와 지구는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조성된 곳인 만큼 16∼19세기 중반(에도시대)으로 세계유산 대상 시기를 한정한 일본 정부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게 이코모스의 해석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코모스가 권고한 ‘모든 기간에 걸친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룰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일본은 애초 에도시대로 세계유산 대상 시기를 한정해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를 감추려 했다. ‘16∼19세기 유산 신청에 왜 20세기 유산이 있는가’라는 취지의 이코모스 지적에 일본은 해당 구역을 세계유산에서 빼는 방식으로 끝내 강제노역 역사를 숨기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학계에서는 강제동원 역사를 감추고 등재를 현실화하기 위한 ‘꼼수’라고 반발했다.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부위원장인 강동진 경성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훗날 이코모스의 권고를 일부 수용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조건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일본이 등재를 신청하면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했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음 달 열릴 세계유산위에서 한국이 논리적으로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이코모스 심사 결과가 공개되기 전부터 “사도광산 전체 역사가 충실히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일 양국 간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전체 역사가 충실히 반영돼야 한다는 우리 입장엔 변화가 없다”고 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동아일보에 “시기와 지역을 한정해도 어차피 사람들은 광산 전체를 보게 된다”며 “후대에 사죄 부담을 지울 수 없다는 (일본 보수 강경파의) 흐름이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맏형 진(32·본명 김석진)이 1년 6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12일 육군 병장 만기 전역했다. BTS 멤버 7명 가운데 첫 전역이다. 이날 ‘특급 전사’ 마크가 박힌 전투복 차림의 진은 경기 연천군 5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동료 장병들의 박수를 받은 뒤 위병소를 나왔고, 팬과 취재진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슈가를 제외한 BTS 멤버 RM, 제이홉, 뷔, 정국, 지민도 이날 현장을 찾아 진의 전역을 축하했다. 이들은 휴가를 내고 현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군악대에서 복무 중인 RM은 색소폰으로 자신들의 히트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연주하기도 했다. 진은 취재진과 팬들을 향해 “아미 안녕”이라고 외친 뒤 현장을 떠났다. 이후 진은 위버스 라이브를 통해 “군 생활을 되게 잘했다”며 “원래 울지 않으려 했는데 너무 기쁘고 눈물이 나서 두 번 울었다”고 밝혔다. 진은 전역 다음 날인 13일 ‘2024 BTS 페스타’에 참석해 1000여 명의 팬들과 허그회를 가질 예정이다. 제이홉이 올 10월 전역하는 데 이어 내년 6월이면 BTS 멤버 전원이 병역 의무를 마치게 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느닷없이 (땅이) 잡아 흔드는디,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어.” 12일 오전 규모 4.8 지진이 발생한 전북 부안군 행안면에서 5km 떨어진 계화면 창북3마을에서 만난 정천생 씨(73)는 당시 상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정 씨는 “밭에서 풀을 매고 있는데, 우르릉 소리가 나더니 (땅이) 덜덜덜 떨려서, 이거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며 “바다에서 (지진이) 났으면 해일이 왔을 텐데 육지라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마을에 있는 계화중 김미경 교장(58)은 “맑았던 하늘이 깜깜해지고 나무들이 흔들려 비가 오려나 보다 했는데, 굉음이 들려 폭발이 일어난 줄 알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담장이 일부 파손됐는데 교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며 “등교 시간대여서 학생들이 드나드는 교문 근처 담이 파손됐다면 아찔한 상황이 발생할 뻔했다”고 덧붙였다. 진앙에서 7km 떨어진 부안읍 한 아파트에서 만난 김모 씨(45)도 굉음과 흔들림에 황급히 1층으로 대피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폭발 소리가 나길래 아파트가 무너지는 건 아닌지 놀라서 13층에서 황급히 1층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오후 1시 55분경 규모 3.1의 여진이 발생하고, 이를 알리는 재난 문자가 발송되면서 또다시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날 부안군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종일 안부를 묻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날 지진으로 인해 국가유산 피해 6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보물 등 국가지정유산 피해 3건, 시도 지정유산 피해 3건이다. 보물로 지정된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은 지진으로 서까래 사이에 바른 흙이 떨어졌고, 공포(처마 끝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춰 댄 나무)와 서까래의 위치도 바뀌었다. 이날 오후 5시 기준 전북도재난안전대책본부에는 140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시설 피해 129건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부안군 부안읍 경로당 화장실 타일이 깨졌고, 보안면 한 창고 벽면에는 금이 갔다. 변산면에선 한 게스트하우스 지하 주차장의 바닥면이 들떴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진앙에서 수십 km 떨어진 정읍시 덕천면의 한 마을에서도 담장이 무너졌고, 연지동의 한 단독주택에서는 방바닥 꺼짐과 보일러관 파손 및 누수 피해가 났다. 익산시 남중동의 한 담벼락이 기울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와 소방 당국이 출동하기도 했다. 학교 시설 피해도 이어졌다. 전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이날 18개 학교에서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부안군 하서초 건물 모서리 일부가 파손됐고, 백산초 교실과 화장실 벽 일부에 금이 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충남에선 학교 2곳이 단축 수업을 실시했다. 수도권 등에서도 진동을 느꼈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에 사는 배모 씨(61)는 “재난 문자를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흔들림을 느꼈다”고 했다. 세종시에 사는 김모 씨(35)는 “정차 중인 버스가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왔고, 놀라서 소리를 치는 이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부안=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대가야 최고 지배층의 무덤인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5호분이 85년 만에 재발굴된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고령군은 지산동 5호분 발굴조사를 위한 업무협약을 12일 체결했다. 지산동 고분군은 전북 남원 유곡리 고분 등과 함께 지난해 9월 ‘가야 고분군’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지산동 고분군은 5∼6세기경 가야 북부 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대가야의 위상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지름 45m, 높이 11.9m에 이르는 5호분은 영호남 지역의 가야 무덤들 가운데 최대 규모다. 조선시대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5호분을 ‘금림왕릉(錦林王陵)’으로 표현했다. 앞서 일제강점기인 1939년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 등 일본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간략한 조사 내용과 사진 몇 장만 남아 있어 재발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올 9월부터 2026년까지 흙을 쌓아올린 봉토(封土)와 매장 주체부, 무덤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된다. 2028년에는 조사 내용과 출토 유물을 수록한 발굴 조사 보고서를 발간한다. 연구소 관계자는 “발굴 조사를 계기로 베일에 싸여 있던 대가야의 매장 의례와 고분 축조 기술 등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공포, 질투심, 자부심…. 지금도 보편적으로 느끼는 인간의 감정이 이집트 고대 문헌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어요. 문명 최초의 얼굴이 드러나 있다고 할까요.” 10일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고대 이집트 문헌학자 유성환 박사(54·서울대 인문학연구소 선임연구원)는 이렇게 말했다. 유 박사는 지난달 고대 이집트어로 쓰인 인류 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를 한국어로 번역한 책 ‘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휴머니스트)를 펴냈다. 번역본은 ‘베를린 파피루스 3022’ 등 원전 필사본을 저본으로 삼되 영미권의 다른 번역본도 두루 참조해 만들어졌다. 그동안 ‘시누헤 이야기’의 다른 외국어 번역본이 한국어로 옮겨진 적은 있었지만, 고대 이집트어 원전을 한국어로 완역해 한 권으로 엮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인문학을 깊이 있게 탐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전이 중요하다”며 “책 출간을 계기로 학계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하던 텍스트를 쉽게 인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시누헤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 중왕국 초기 제12왕조(기원전 1985년∼기원전 1773년)를 연 아멘엠하트 1세의 서거가 배경이다. 당시 왕자를 수행하기 위해 외국에 머무르던 궁정 관리인 시누헤는 국왕의 서거에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레체누(오늘날의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로 도망간다. 그는 고초 끝에 외국에 정착하는 데 성공하지만, 오매불망 고국으로 돌아가길 기도하던 끝에 후대 왕의 사면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전형적인 이집트식 ‘해피엔딩’이죠.” 유 박사는 “내세를 중시하던 당시 이집트인들은 외국에서 죽으면 신 ‘오시리스’에게 심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이를 무척 두려워했다”면서 “‘비문명(외국)’에서 ‘문명(이집트)’으로 돌아온다는 이집트 상류층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서사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부산대 영문과를 나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1학년생이었던 그는 1997년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이자 소설가인 크리스티앙 자크의 책 ‘이집트 상형문자 이야기’로 상형문자를 처음 접했다. “물고기, 여자, 올빼미…. 다 그림이잖아요. 그런데 음가도 있고, 읽을 수도 있고 문자의 기능을 한다는 게 신기했어요.” 상형문자의 매력에 빠진 그는 처음에는 아마존에서 구입한 문법책으로 혼자 이집트어를 탐독했지만, 제대로 원전을 읽는 단계에 들어서자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막막함을 느꼈다. 대학원 졸업 후 계약직 통번역사(영어)로 일하면서 정체되는 느낌도 받았다. 결국 그는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직접 외국으로 건너가는 길을 선택했다. 서른다섯 살이던 2005년 미국 브라운대 이집트학과에 진학했고, 2012년 박사학위까지 딴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집트 문헌학 전공자는 드물었다. 교수에게 일대일로 원전 독해 수업을 들은 적도 있을 만큼 연구는 외길 같았지만, 묵묵히 그 길을 걸었다. 국내로 돌아와 2013년부터는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학생들에게 이집트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인문 고전의 매력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고대부터 휘황찬란한 문명을 이룬 우리가 과거의 사람들과 얼마나 달라졌는가, 얼마나 변하지 않는가를 동시에 고찰할 수 있는 게 인문학”이라며 “이번 번역이 인간에 대한 희미한 그림을 그려보는 인문학에 (퍼즐 조각) 한두 피스 정도 기여하지 않았을까”라며 그는 웃었다. 신간에는 원전 번역과 풍부한 주해는 물론이고 이집트 문명의 인·지명, 풍습, 종교관 등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잘 녹아 있다. 그는 “이번 출간을 계기로 ‘난파당한 선원’ 등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이집트 원전들을 순차적으로 번역해 대중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