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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품은 둥근 달항아리, 대장부 육각 달항아리, 계란 달항아리…. 공군 교육사령부 교육대대장(중령) 이종열 씨(52)는 자신이 수집한 달항아리에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 높이와 몸체 지름이 각각 53cm로 같은 달항아리에서 보름달을, 하단부가 살짝 찌그러진 육중한 달항아리에서는 ‘대장부’를 봤기 때문이다. 높이 40cm가 넘는 둥그런 백자인 백자대호(白磁大壺)는 흔히 달항아리로 불린다. 이 씨는 2014년부터 9년 동안 중국과 일본에서 유통되는 조선 백자대호 35점을 사들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달항아리, 하양꽃으로 피다’(궁편책)를 최근 펴냈다. 경남 진주에 사는 이 씨는 지난달 31일 전화 인터뷰에서 “군인 월급으로는 역부족이었지만 내 뜻에 공감해 마이너스 통장을 내주고 적금까지 깨서 보태준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수집이 가능했다”며 웃었다. 이 씨와 달항아리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실주를 담을 용기를 찾다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현대 작가가 만든 달항아리 1점을 처음 구입한 게 시작이었다. 이 씨는 “가져온 달항아리를 매일 들여다보다 사랑에 빠졌다. 이후 한국 도자 역사를 공부하며 조선백자의 설움을 알게 됐다”고 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수많은 백자대호가 파괴되거나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하게 남은 백자대호도 6·25전쟁 때 폭격 등으로 파괴됐다. 그나마 북한에 남은 백자대호 역시 중국 단둥 등을 통해 적잖게 팔려나가 해외를 떠도는 실정이다. “타지를 떠도는 조선백자를 고국으로 데려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부터 매달 100만 원씩 모으고 적금을 깨 2014년 단둥에 나온 조선 후기 백자대호 1점을 사들인 게 컬렉션의 시작이었죠.” 이 씨는 진주에 사는 큰누나 자택의 일부 공간을 빌려 수집한 백자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 씨는 달항아리의 매력으로 불완전성을 꼽았다. 그는 “완벽한 구형을 이루는 달항아리는 없다”며 “당대 기술적 한계로 인한 불완전성이 현대에 제작된 달항아리와는 다른 조선 달항아리의 매력”이라고 했다. 내년 전역을 앞둔 그는 “조선 백자대호가 지닌 아름다움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며 “달항아리 박물관을 짓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우리 박물관의 한국실을 새롭게 단장하는 과정에 동행할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를 채용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6월 국립중앙박물관에 e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조선 회화 등 한국 문화재 1842점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 세일럼시의 피보디에식스박물관. 한국실 확장 개편과 한국 문화재 특별전 기획을 주도할 전문가를 채용하는 데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중앙박물관은 2009년부터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 채용을 원하는 해외 박물관에 3∼5년간 급여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은 중앙박물관의 지원으로 지난달 한국 미술을 전공한 김지연 씨를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로 뽑았다. 이 박물관이 한국인을 채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최근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을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 독일의 박물관에서 그간 일본·중국 미술 전문가가 맡았던 한국실 큐레이터에 한국계 또는 한국인을 채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계 독일인 마리아 소보트카 씨가 독일 베를린 훔볼트포럼 큐레이터로 뽑혔고, 지난해 11월엔 한국계 캐나다인 권성연 씨가 캐나다 토론토 로열온타리오박물관 큐레이터로 채용됐다. 올해 1월엔 미국 덴버박물관 큐레이터로 박지영 씨가 뽑혔다.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자 해외 박물관들이 한국실 규모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소연 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그동안 중앙박물관의 한국실 지원 사업은 국내 유물 대여, 교육 프로그램 운영, 보존처리 지원 등이 주를 이뤘는데 최근엔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 채용 지원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고 말했다. 한인 큐레이터의 부상에 따라 해외 박물관이 선보이는 한국 문화재 전시의 흐름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우리 박물관에서 유물을 빌려가 소개하는 전시가 많았지만 최근엔 해당 박물관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를 재조명하는 연구와 전시가 늘고 있다. 독일 훔볼트포럼은 올해 10월 특별전 ‘아리아리랑: 베를린 속 한국’을 열 계획이다. 박물관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 50점을 통해 한국과 독일의 문화교류사를 조명하는 전시다. 미국 덴버박물관에선 올해 12월 분청사기 특별전 ‘무심한 듯 완벽한, 한국의 분청사기’를 연다. 신 연구관은 “한인 큐레이터의 부상으로 기획력이 돋보이는 특별전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해외 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한국 문화재들이 새롭게 조명받을 기회가 열렸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시원한 박물관으로 ‘박캉스(박물관+바캉스)’를 떠나 보면 어떨까. 주요 국립박물관장들로부터 올여름 볼만한 박물관 전시 3개를 추천받았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10월 29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아주 특별한 순간―그림으로 남기다’를 권했다. 윤 관장은 “가족, 연인과 함께 우리의 특별한 순간을 곱씹어볼 수 있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 강세황(1713∼1791)의 ‘피금정도(披襟亭圖)’는 회양부사로 부임하는 아들을 배웅하는 길에 함께한 추억을 그린 작품이다. 휴전선 이북 강원 금성에 있는 피금정 풍경을 그린 이 작품엔 애틋한 부성애가 깃들어 있다. 이 밖에도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사 채용신(1850∼1941)의 ‘평생도’ 등 삶의 뜻깊은 순간을 기록한 회화 83점을 볼 수 있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민속박물관 파주관에서 이달 20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하피첩: 아버지 정약용의 마음을 담은 글’을 추천했다.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810년 두 아들에게 전한 글을 엮은 ‘하피첩’(보물) 원본을 공개하는 전시다. 부인이 보낸 치마를 잘라 만든 서첩엔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당부가 가득하다. 김 관장은 “가족에게 평소 못 한 말이 있다면 전시를 보며 나누길 바란다”고 했다. 윤태정 국립고궁박물관장 직무대리는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 내 과학문화 상설전시실에서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각석’을 만나 보길 권했다. 1467개 별과 295개 별자리를 새긴 유물 위에 설치된 원형 모양의 디지털 스크린에 밤하늘 별들이 빼곡히 떠오르게 한 연출이 돋보인다. 윤 관장 직무대리는 “조선의 밤하늘에 떠오른 별자리를 재현한 실감 전시를 보며 무더위를 식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세 전시는 모두 무료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원래 있던 강원 원주를 떠나 서울 명동, 일본 오사카, 경복궁, 대전을 떠돌았던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5년간의 보존 처리를 마치고 1일 고향인 강원 원주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으로 돌아온다. 일제강점기였던 1911년 일본인에게 팔린 뒤 10여 차례 해체와 재조립을 겪으며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1975km가량을 떠돌던 이 유물이 112년 만에 귀향하는 것이다.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 승려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984∼1070)의 사리와 유골이 봉안됐던 승탑이다. 31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해린이 입적한 11세기 말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사적)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화려한 조각이 장식돼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개성 있고 화려한 승탑으로 꼽힌다. 하지만 1911년 일본인에게 팔린 뒤 서울 명동으로 옮겨졌고, 이듬해 오사카로 반출되는 아픈 역사를 지녔다. 조선총독부 명령으로 반환돼 1915년 이전에 경복궁 경내에 자리 잡았으나, 6·25전쟁 때 옥개석(석탑이나 석등의 위를 덮는 돌) 등 유물 상단부가 폭격 피해로 파손됐다.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16년 3월 지광국사탑의 부재(部材·석탑을 구성하는 다양한 석재) 33점을 해체한 뒤 대전 센터로 옮겨와 2020년까지 보존 처리 및 복원 작업을 벌였다. 이태종 국립문화재연구원 연구사는 “없어진 부재는 탑이 조성될 당시와 가장 유사한 석재를 구해 새로 제작했으며, 파손된 부재들을 접착해 잃어버렸던 본래 모습을 최대한 되찾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부재 가운데 추가 점검이 필요한 옥개석과 탑신석(석탑의 몸을 이루는 돌) 등 2점을 제외한 31점을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으로 옮겨 상설 전시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해체된 부재들을 원래 모습대로 쌓아 올리는 최종 복원은 원주시와 협의해 결정할 방침”이라고 했다. 원래 자리는 부론면 법천사지 내 승탑원이지만 보존 환경 등을 고려해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 복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시관은 원래 자리와 약 280m 떨어져 있으며, 법천사지 내에 있다. 10일 오후 2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서 탑의 귀향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우리가 사랑한 한국의 문화재를 한국에 돌려주고 싶습니다.” 한국 문화재를 소장해 온 미국인 게리 민티어(77), 메리 앤 민티어(77) 부부가 근현대 한국의 서화·전적 150점과 1970년대 한국 풍경 사진 1366점 등 총 1516점을 지난해 1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기증하며 한 말이다. 31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부부는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1969년부터 6년간 서울과 부산에 머물며 한국 문화재를 수집하고 당대 풍경 사진을 남겼다. 재단은 2019년 이들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를 조사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부부는 지난해 재단에 “우리가 세상을 떠난 뒤 컬렉션이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것보다는 우리보다 유물들을 더 사랑해줄 한국에 기증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1970년대 부산 풍경 사진 1366점은 올해 2월 부산박물관에, 서화·전적 유물 150점은 올해 5월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됐다. 대표적인 기증 작품은 조선 후기 화가 송수면(1847∼1916)의 ‘매화도(사진)’와 ‘묵죽도’다. 송수면은 소치 허련(1808∼1893)의 뒤를 이어 호남 문인화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 중기 학자 이유창(1625∼1701)이 유교 경전 ‘춘추(春秋)’에서 일부를 모아 편집한 ‘춘추집주 권2’의 목판도 희소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부산박물관은 4일부터 9월 3일까지 열리는 ‘1970년 부산, 평범한 일상 특별한 시선’ 전시에서 민티어 부부가 기증한 사진을 선보일 예정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동아일보사와 인제군문화재단, 여초서예관이 공동 주최하는 ‘2023 여초서예대전’이 다음 달 18일까지 참가자를 모집한다. 여초서예대전은 한국 서예 대가인 여초(如初) 김응현(1927∼2007)의 서법 정신을 기리고, 서예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열리는 대회다. 동아일보사와 서예 연구단체 동방연서회가 1961년 ‘전국 남녀 초중고등학교 학생휘호대회’를 개최한 게 시초다. 2000년 40회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가 2015년 ‘여초선생 추모 전국휘호대회’를 신설한 여초서예관이 2018년부터 전국학생휘호대회를 부활시켜 해마다 열고 있다. 강원 인제군 인제다목적체육관에서 9월 2일 오전 10시 개최되는 올해 대회는 제9회 여초전국휘호대회(성인부, 기로부)와 제46회 전국학생휘호대회(초등부, 중고등부)로 나뉜다. 성인부는 20세 이상, 기로부는 70세 이상(성인부로도 지원 가능)이 참가할 수 있다. 학생부에서 초등부 참가 대상은 8∼13세, 중고등부는 14∼19세다. 올해부터 성인부와 기로부에선 최근 서예계 트렌드를 반영해 ‘순수 캘리’ 부문이 신설된다. 학생부는 자유 주제로 사전 온라인 예선을 거쳐 본선을 진행한다. 성인부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만 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기로부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만 원을 각각 수여한다. 중고등부 대상 상금은 100만 원, 초등부 대상 상금은 50만 원이다. 참가 신청은 다음 달 18일까지 대회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기로부는 우편 신청도 가능하다. 참가비는 1만 원. 자세한 내용은 이메일(yeocho-donga@naver.com) 또는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자학과 부정의 역사관, (역대) 대통령 약점 찾기 위주의 문화를 바꾸는 전환점이 마련됐네요. 화합과 긍정의 문화 구축에 힘을 쏟겠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가족 6명이 함께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를 29일 관람했다. 이들은 타자기, 운동화, 독서대 등 역대 대통령들의 흔적이 담긴 소품을 살펴본 뒤 “(대통령 가족들의) 이런 만남은 우리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자유와 통합, 연대의 시대정신을 확장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이날 자리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81)와 윤보선 전 대통령의 아들 윤상구 동서코포레이션 대표(74),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73),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대표이사 회장(65),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64),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58)이 참석했다. 역대 대통령의 가족들은 통합에 뜻을 모았다. 조 여사는 “외교 인프라가 부족하던 그 시절 아버님은 직접 외교 문서를 쓰셨고 한미동맹 관련 문서를 작성하셨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구축과 한미동맹이 한국 발전과 국민 통합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윤 대표는 “여기 전시실에는 여당도, 야당도 없다”며 “나라 발전의 집념, 국민 사랑과 통합의 대한민국만이 살아서 숨 쉬고 있다”고 말했다. 김홍업 이사장은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를 청와대에 초청한 기념사진을 본 뒤 “아버지는 회고록에서 이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아버지가 가난 극복과 조국 근대화에 나선 건 진정한 국민 통합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김현철 이사장은 부친의 낡은 조깅화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유훈처럼 강조하신 말이 통합과 화합이었다. 이는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권에 던지는 주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노 이사장 역시 “아버지 재임 중 개최된 88 서울 올림픽과 북방외교에 대한 집념은 국민 통합의 지평을 뚜렷이 확장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역대 대통령 가족들이 현대사의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통합과 전진을 위한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만들자고 다짐했다는 점에서 이번 만남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개방 1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1일 개막한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전시는 다음 달 28일까지 열린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노루였어? 아니면 고라니?” 2013년 어느 날 산길을 운전하던 저자는 도로 위에 뛰어든 한 동물과 맞닥뜨렸다. 그땐 철석같이 사슴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뒤 그가 본 동물이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묻는 지인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이 동물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사진작가인 저자는 그날 이후 10년간 충남 서천군 국립생태원과 전남 순천시의 전남야생동물구조센터, 비무장지대(DMZ)를 다니며 고라니를 찍었다. 그리고 고라니 200여 마리를 만난 순간을 50여 마리의 사진과 함께 책에 담았다. 저자와 눈을 맞출 때까지 오래 기다려 포착한 고라니의 얼굴들은 ‘고라니’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뭉뚱그리기 어려울 정도로 각양각색이다. 긴장을 푼 고라니의 얼굴은 너무나 예쁘다. 저자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슷하지만 똑같은 얼굴은 없다”고 했다. 코끝에 땅콩 같은 작은 혹이 붙은 ‘땅콩이’, 눈매가 삼각형을 닮은 ‘세모’, 한쪽 눈 없이 태어난 ‘자주’ 등 이름도 지어줬다. 도로 위에 툭 튀어나와 운전을 방해하고, 작물을 먹어치워 농가에 피해를 주는 동물로 여겨져 온 고라니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책이다. 저자는 고라니의 얼굴을 기록하는 ‘널 사랑하지 않아’ 프로젝트 등으로 올해 제13회 일우사진상(다큐멘터리 부문)을 받았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중국 역사상 가장 단명한 수나라(581∼618년)의 역사를 기록한 ‘수서(隋書)’가 국내 처음으로 완역됐다. 지식을만드는지식(대표 박영률)은 총 85권에 이르는 수서를 전체 5944쪽 분량 13권(사진)으로 완역해 25일 펴냈다. 수서는 ‘사기(史記)’와 함께 중국 정사인 24사(史) 중 하나로 꼽힌다. 제왕에 대해 기록한 ‘제기(帝紀)’ 5권, 음악지·지리지·천문지 등을 다룬 ‘지(志)’ 30권, 황제의 일가친척 등 당대 인물의 행적을 기록한 ‘열전(列傳)’ 50권으로 구성됐다. 당나라 정치가 위징(580∼643)과 사학자 영호덕분(583∼666) 등이 공동 집필했다. 특히 수서에는 598년부터 614년까지 4차에 걸쳐 일어난 고구려-수나라 전쟁과 관련된 생생한 자료가 담겨 있다. 2018년부터 5년간 수서를 완역한 권용호 한동대 객원교수는 “수나라 통치자들의 고구려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전쟁 양상, 전쟁 전후 민란 등 사료가 풍부하다”며 “여수(麗隋)전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천 자료”라고 설명했다. 위진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는 건국 37년 만인 618년 멸망했다. 멸망의 가장 큰 원인으로 2대 황제인 양제(煬帝·569∼618)의 무리한 고구려 원정이 꼽힌다. 612년 2차 여수전쟁 때 113만여 명의 병력을 이끈 양제는 을지문덕이 이끄는 고구려군에 참패했다. 권 교수는 수서에 기록된 여수전쟁 관련 사료를 모아 ‘고구려와 수의 전쟁’(지식을만드는지식)을 25일 함께 펴냈다. 책의 부제는 ‘수서를 통해 보는 동북아 최대의 전쟁 이야기’.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장남이 돼서 어머니 한 번 업어드리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었는데…. 이렇게 그림 속에서나마… 어머니를 업어드립니다.” 그림 속 76년 전 헤어진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심구섭 씨(89)의 손 끝이 떨렸다. 눈시울은 붉어졌다. 열세 살 소년은 백발이 됐지만 그림 속 어머니는 주름 하나 없이 고운 얼굴이다. “학교 잘 다녀오라.” 북에 두고 온 심 씨의 남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어머니가 다시 월북하던 날 남긴 마지막 말이다. 심 씨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교복을 다려 입혀주시고는 대문 밖에서 배웅해주시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이틀 앞둔 25일 경기 파주시 한반도생태평화 종합관광센터. ‘그리운 얼굴’ 전시가 17일 개막한 가운데 1세대 이산가족 심 씨는 어머니를 등에 업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 ‘침묵의 강’ 앞에 서서 70년 넘게 쌓인 그리움을 곰삭였다. 그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 근처 신상. 1947년 9월 부모와 함께 월남했지만 어머니는 심 씨가 강릉사범중학교에 첫 등교하던 날 남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이 작품은 이만수 성신여대 동양화과 교수(62)가 2017년 심 씨에게서 사연을 듣고 석 달간 그린 것이다. 이 교수는 “그림 하나로 이산가족의 한을 위로할 순 없지만 그림을 통해 엇갈린 두 모자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있는 순간을 염원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 20일까지 무료로 열리는 이 전시는 조각, 회화, 사진 등 여러 분야 예술가들이 심 씨와 같은 1세대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기는 ‘그리운 얼굴 프로젝트’의 결과물 60여 점으로 구성됐다. 2017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와 1세대 이산가족은 현재까지 각각 56명. 팬데믹으로 2년 반 넘게 멈췄던 프로젝트는 이달 재개됐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단법인 ‘우리의 소원’의 하종구 상임이사는 “분단국가의 예술가로서 역할을 고민하다가 뜻이 맞는 이들과 힘을 합쳤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북청군이 고향인 김명철 씨(87)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고향에 두고 온 어린 시절 추억을 찾았다. 21일 전화로 만난 김 씨는 고향 집을 떠나던 1950년 12월 7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열네 살이던 그는 사이렌이 울린 뒤 대문 앞에서 어머니와 형에게 “일주일 뒤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쌀 주머니에 가족사진을 넣어뒀는데 설상가상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흥남부두에서 주머니를 도둑맞았다. 김 씨는 “도둑맞은 추억에 미련 갖지 않으려 일부러 속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다”며 “차라리 남은 추억이 없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김 씨를 만난 이익태 작가(76)는 고향에서 학교 다닐 때 소고를 배웠다고 말하는 김 씨의 얼굴에서 천진난만한 미소를 포착했다. 그리고 손에 소고를 든 김 씨의 모습을 그렸다(작품 ‘심장의 북소리’). 김 씨는 그림을 보고 “고향의 기억을 모두 잊고 살아왔는데, 이제 이 작품 하나가 내게 남았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실향민 윤일영 씨(87)도 22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김서경 조각가를 만났다. 작품은 1년 뒤 완성될 예정이다. 윤 씨의 고향은 경기 장단군 장도면 오음리(미수복지구). 경기 연천군 경순왕릉 언덕 위 전망대에 서면 휴전선 너머 고향이 보인다. 그는 “고향 뒷산 지척에서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의 소원’은 이산가족과 실향민 250여 명의 사연을 작품으로 계속 만들어 전시를 열겠다고 밝혔다.파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상처 난 것도 버리지 마라. 참외는 어떤 것은 상처도 나고 어떤 것은 곱게 자란다. 맛은 같다.” 제주 제주시 조천읍 선흘마을에 사는 조수용 할머니(93)가 지난해 6월 참외 그림을 그리며 지은 글이다. 그림 속 참외 표면엔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나 있다. 병상에 오래 누워 지냈던 남편을 최근 떠나보낸 조 씨는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린다. 못생기고 흠집 난 과일도 그에겐 그림이 된다. “저는 할머니들에게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가르치지 않아요. 그리고 싶은 것들을 이미 마음속에 품고 계시니까요.” 조 씨 등 선흘마을에 사는 여덟 명의 할머니에게 그림을 가르쳐온 전시 기획자 최소연 씨(55)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 씨는 그림 수업을 담은 에세이 ‘할머니의 그림 수업’(김영사·사진)을 11일 펴냈다. 그는 “일상 속 사물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화폭에 담으려는 할머니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라고 했다. 그림 수업은 2021년 시작돼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최 씨는 낮엔 할머니들과 모여 그림을 그리고, 밤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그림 옆에 쓸 글을 짓는 일대일 수업을 연다. 그는 “할머니들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달력 뒷면에 글자 연습을 한다. 글을 배우지 못해 다른 이들 앞에선 글쓰기를 머뭇거리는 할머니들을 위해 밤 수업을 열게 됐다”고 했다. 수업이 계속되자 할머니들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그림이 되느냐”며 그리기를 주저하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마당에서 자란 작물은 물론이고 신발과 자신의 속옷까지 꺼내 자유롭게 그리게 된 것. 최 씨가 지난해 6월 늦은 밤 강희선 씨(86) 댁에서 수업을 하던 때였다. 허리춤이 늘어난 낡은 팬티를 그리던 강 씨는 그림 오른편에 이렇게 써내려갔다. “세상 오래 살아보니 이런 것도 해보고 꿈에도 생각 안 했어. 그림 그리는 것.”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음속 말이 그림으로 나오니 이게 해방이주.”(강 씨) 최 씨는 “저는 늘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왔는데, 할머니들을 보며 삶의 태도를 다시 배웠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내일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아세요. 그래서 오늘 그리고 싶은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죠.”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나는 이제 백발노인이 됐는데 우리 어머니는 여전히 곱지요.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학교 다녀오겠다’며 인사했던 1947년 9월 23일 그날과 똑같습니다.”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이틀 앞둔 25일 경기 파주시 한반도생태평화 종합관광센터. 이곳에서 이달 17일 개막한 ‘그리운 얼굴’ 전시를 둘러보던 ‘1세대 이산가족’ 심구섭 씨(89)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향인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등에 업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 ‘침묵의 강’ 앞에 선 그가 손을 뻗어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동양화가인 이만수 성신여대 동양화과 교수(62)가 2017년 심 씨와 대화를 나눈 뒤 3개월간 그린 이 작품 속 심 씨의 어머니는 주름 하나 없이 고운 얼굴이었다. 심 씨는 76년 전 그날의 어린 아들이 된 듯 울먹이며 말했다. “장남이 돼서 어머니 한 번 업어드리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었는데…. 이렇게 그림 속에서나마 어머니를 업어드립니다.” 전시를 주관한 사단법인 ‘우리의 소원’은 심 씨와 같은 1세대 이산가족과 예술가를 일대 일로 연결해 그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기는 ‘그리운 얼굴 프로젝트’를 2017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조각, 회화, 사진 등 여러 분야 예술가들이 프로젝트에 참여 신청한 1세대 이산가족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작품으로 남긴다. 현재까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와 1세대 이산가족은 각각 56명. 완성작은 ‘그리운 얼굴’이라는 특별전을 통해 무료로 선보이고 있다. 작품 56건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열린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하종구 ‘우리의 소원’ 상임이사는 “분단국가의 예술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다 뜻이 맞는 예술가들과 함께 분단의 역사를 살아온 1세대 이산가족의 얼굴을 기록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산의 한 기록하는 ‘그리운 얼굴 프로젝트’ 심 씨는 ‘그리운 얼굴 프로젝트’의 1호 신청자다. 그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약 20㎞ 떨어진 신상. 1947년 9월 17일 13세였던 심 씨는 이념대립을 피해 먼저 월남한 아버지를 따라 고향을 떠나 강원도로 향했다. 온 가족이 다같이 떠나면 삼엄한 북측 감시망을 피할 수 없어 고향 집에 열 살 남동생을 두고 왔다. 어머니는 심 씨가 강릉사범중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날 네 살 난 여동생을 등에 업고 둘째 아들이 남아 있는 북으로 향했다. 심 씨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제 교복을 다려 입혀주시고는 대문 밖에서 ‘학교 잘 다녀오라’시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저는 그 순간이 마지막인 줄도 몰랐지만 어머니는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음을 직감하셨나 봅니다. 고향을 떠나기 2주 전 제 생일날 가족사진 한 장을 찍었어요.” 심 씨의 이야기로 그림을 그린 이 교수는 “그림 하나로 분단으로 이별한 이들의 한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느냐”면서도 “다만 나는 예술가로서 이 그림을 통해 엇갈린 두 모자가 영영 헤어지지 않고 함께 있는 순간을 염원했다”고 했다. 심 씨는 “1947년 마지막으로 찍은 가족사진 속 어머니의 눈매와 그림 속 어머니의 선한 눈매가 똑같다”며 미소 지었다.●“그림 덕에 고향에 두고 온 추억 찾아” 함경남도 북청군이 고향인 김명철 씨(87)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린 시절 고향에 두고 온 추억을 찾았다”고 했다. 21일 전화로 만난 김 씨는 고향 집을 홀로 떠나던 1950년 12월 7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열네 살이던 그는 그날 사이렌이 울리자 대문 앞에서 어머니에게 “일주일 뒤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집안의 막내였던 그가 노인이 될 때까지 지켜지지 못했다. 설상가상 쌀자루에 한가득 담아온 가족사진마저 흥남철수작전 때 흥남부두 앞에 다다라 도둑맞고 말았다.“사진을 쌀자루에 넣어 왔으니, 쌀이 든 줄 알고 누가 훔쳐가 버린 겁니다. 도둑맞은 추억에 미련 갖지 않으려 일부러 자식들과 아내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살았습니다. 차라리 내게 남은 추억이 아무것도 없다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으니까요.” 그런 김 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그린 이익태 작가(76)는 고향에서 학교를 다닐 때 소고를 배웠다고 말하는 김 씨의 얼굴에서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미소를 포착했다. 이 작가가 군용 담요 위에 그린 작품 ‘심장의 북소리’ 속 김 씨는 손에 소고를 들고 있다. 희미했던 김 씨의 옛 추억이 그림 속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난 것. 김 씨는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그림을 본 뒤 “고향의 기억을 모두 잊고 살아왔는데, 이제 이 작품 하나가 내게 남았다”는 말을 남겼다. ●“단 1명이 생존할 때까지 그릴 것”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3675명 중 생존자는 4만2624명(31.9%)이다. 생존자 비율은 꾸준히 줄어 2025년 30%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평균 연령은 83.2세. 2년 뒤 80대 이상 비율은 68%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고 양철영 씨를 비롯해 ‘그리운 얼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산가족 2명이 작품을 보지 못한 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기간 세상을 떠났다. 하 이사는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했다. 코로나19 탓에 2년 반 넘게 멈춰 있던 프로젝트가 이달부터 다시 시작된 이유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실향민 윤일영 씨(87) 자택에 22일 김서경 조각가가 찾아왔다. 윤 씨의 고향은 경기 연천군 경순왕릉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장단군 장도면 오음리(미수복지구). 그는 휴전선에서 약 3㎞ 떨어진 고향 풍경이 눈앞에 보이는 듯 이렇게 말했다. “고향 뒷산을 이렇게 지척에 두고 나는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에 따르면 250명이 넘는 이산가족과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작품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하 이사는 “단 1명의 이산가족이 생존해 있을 때까지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파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사진)이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에서 개봉한 디즈니·픽사 작품 중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24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개봉한 ‘엘리멘탈’은 개봉 40일째인 23일 누적 관객 수 503만1799명을 기록했다. 2015년 ‘인사이드 아웃’이 기록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최다 관객 수 497만여 명을 넘어선 수치다. 올해 국내 개봉작 중에선 ‘범죄도시3’(1067만여 명),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554만여 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관객을 모았다. 종전 올해 국내 흥행작 3위에 오르며 열풍을 일으켰던 ‘더 퍼스트 슬램덩크’(469만 명)를 넘어선 기록이다. ‘엘리멘탈’은 디즈니·픽사의 첫 한국계 감독인 피터 손(46)이 연출을 맡았다. 물, 불, 흙, 나무라는 4원소를 의인화한 캐릭터들이 서로 섞이지 않고 배척하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국을 떠나 미국 뉴욕에 정착한 이민자 2세대로서 손 감독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녹여냈다. 가족애를 중시하는 내용을 비롯해 한국인이 공감할 만한 메시지를 담은 점 등이 국내 흥행 비결로 꼽힌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엘리멘탈’의 국내 수익은 약 497억 원으로 북미(약 1765억 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느껴져요. 이건 확신의 미소예요.”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1층 전시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인 서울 맹학교 교사 이진석 씨(44)가 한 손으로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호) 모형의 입가를, 다른 손으로 오른발 끝을 만졌다. 손끝으로 불상의 발가락을 하나하나 만지던 이 씨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발가락 끝이 하늘을 향해 서 있어요. 옆에 있는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호)이 발끝에 힘을 빼고 있다면, 이 불상은 힘을 꽉 주고 있어요. 마음속으로 어떤 결단을 내린 듯해요. 두 불상이 같은 미소를 지은 것 같지만, 미소의 의미는 서로 다르네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9월 개관을 목표로 157.54㎡ 규모의 ‘오감’ 전시실을 만들고 있다.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배치해 2021년 11월 개관 이후 현재까지 약 100만 명이 찾은 ‘사유의 방’을 시각장애인이 체험할 수 있도록 따로 만들고 있는 것. 이 전시실에는 ‘유물에 손대지 말라’는 금기가 없다. 진짜 국보 대신 원래 크기와 재질 그대로 재현한 반가사유상 2점과 미니어처 16점 등 불상 모형 총 30점을 배치해 시각장애인들이 마음껏 손끝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게 했다. 전시장에는 자연 속에 있는 듯한 효과를 주기 위해 특별 제작한 향이 비치됐다. 국립 박물관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상설전시실을 마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씨 등 시각장애인 30여 명을 자문위원과 사전체험단으로 선정해 공간을 함께 디자인하고 있다. 이날 이 씨도 예리한 평가를 했다. 그는 “큐레이터나 안내자가 일일이 동선을 알려 주며 체험을 돕는 것도 좋지만 사유는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라며 “시각장애인이 홀로 감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이 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시각장애인이 안내자의 도움 없이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실 내 동선과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함께 담은 오디오 가이드를 준비하기로 했다. 오감 전시실을 기획한 장은정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시각장애 학생들이 기피하는 현장학습 장소 1위가 박물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전시실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맹학교 학생들 사이에선 박물관이 미술관, 수족관과 함께 3대 기피 공간으로 꼽힌다는 것. ‘사유의 방’ 전시 역시 시각장애인에게는 무의미한 공간이었다는 자성도 이 전시실을 마련하는 동기가 됐다. 이 씨는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비(非)장애인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이 손끝으로 느낀 유물과 비장애인이 두 눈으로 본 유물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어쩌면 마음속에 그린 유물의 모습은 생각보다 서로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요(웃음).” 최근 미술관과 고궁도 장애인의 체험을 가로막는 문턱을 낮추고 있다.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은 9월 10일까지 열리는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에서 ‘색각 이상 보정용 안경’을 무료로 대여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시각장애인 전문 해설사와 함께 경복궁과 창덕궁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사전 신청자를 대상으로 운영 중이다. 궁궐 축소 모형을 손으로 만져 보는 체험도 포함됐다. 지난해 처음 도입한 이 프로그램은 올해는 이달 18일부터 재개됐고,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에 운영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430년경 어느 날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한 성당에 장인들이 모여드는 장면으로 책은 시작된다. 로마 황제의 여동생인 갈라 플라키디아(388∼450)의 명령으로 예배당 천장을 장식하기 위해 이곳에 도착한 장인들은 예배당 천장에 불후의 걸작을 남긴다. 청금석 타일로 채운 푸른 바탕에 금빛 유리 조각들을 덧붙인 천장은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빛난다. 이 빛은 900년가량 흐른 14세기 초 피렌체의 파벌 싸움으로 라벤나에 망명해온 시인 단테(1265∼1321)에게 닿는다. 책은 라벤나의 한 성당 천장 아래서 ‘신곡’을 써내려가는 단테의 모습으로 끝난다. 이 책이 규정하는 중세의 시작과 끝엔 모두 빛이 있다. 저자인 미국 버지니아공대 중세학과 교수 매슈 게이브리얼과 미네소타대 역사학과 수석 지도교수 데이비드 M 페리는 서구의 중세를 암흑기로 보는 시각에 도전한다. 유럽 대륙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이르는 폭넓은 시공간을 아우르며 문화와 종교, 사상, 그리고 사람들이 부딪히고 격동하는 중세의 복잡성을 조명했다. 그 바탕엔 서구 사학계가 그동안 중세를 획일화된 시선으로 잘못 바라봤다는 자성이 깔려 있다. 고대부터 이어진 철학학교였던 아테네 학당의 지식은 중세에도 이어졌다. 두 저자는 현대 역사가들이 ‘암흑기의 도래’라고 평해 왔던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483∼565)의 아테네 학당 폐쇄 사건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학당 폐쇄 이후에도 지식은 단절되지 않고 활용돼 왔다는 것.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로마법 체계를 받아들인 ‘로마법 대전’을 완성시켰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이자 발명가 안테미오스와 이시도루스를 발탁해 콘스탄티노플에 성 소피아 성당을 지었다. 그리스어로 ‘지혜’란 뜻을 가진 이 성당의 거대한 돔은 약 1000년 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재건될 때까지 가장 컸다. 기독교를 획일적인 종교로 바라보는 시선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일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는 중세 동로마 제국 전역에 분포한 기독교 종파 중 하나였다. 로마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597년 브리타니아 섬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파견하는 한 수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신교 신전을 파괴하지 말고 성수로 정화하고, 원래 주민들이 행하던 종교 의식을 없애지 말라고 당부했다. 두 저자는 이를 통해 중세 기독교가 다양성을 배척하는 고립된 종교가 아니었으며, 당대 기독교는 ‘복수형’으로 존재했음을 조명한다. 중세사 서술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던 여성의 이야기도 담았다. 독일 중서부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힐데가르트(1098∼1179)가 대표적이다. 1113년 수녀가 된 힐데가르트는 꿈에서 체험한 신의 계시를 글과 그림으로 남겼을 뿐 아니라 당대 황제와 교황, 각계각층의 저명인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정치적 조언도 했다. 두 저자는 “단순한 간언이 아닌 왕국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강력한 조언이었다”고 평했다. ‘맹신’ 혹은 ‘암흑’이란 단어로 수식돼 온 중세에 대한 편견에 균열을 내는 책이다. 두 저자는 중세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시각을 바꾸면 다른 이야기들에선 소외되던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고, 다른 어딘가에서 시작하면 또 다른 세계들을 엿볼 수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430년경 어느 날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한 성당에 장인들이 모여드는 장면으로 책은 시작된다. 로마 황제의 여동생인 갈라 플라키디아(388~450)의 명령으로 예배당 천장을 장식하기 위해 이곳에 도착한 장인들은 예배당 천장에 불후의 걸작을 남긴다. 청금석 타일로 채운 푸른 바탕에 금빛 유리 조각들을 덧붙인 천장은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빛난다. 이 빛은 900년 가량 흐른 14세기 초 피렌체의 파벌 싸움으로 라벤나에 망명해온 시인 단테(1265~1321)에게 닿는다. 책은 라벤나의 한 성당 천장 아래서 ‘신곡’을 써내려가는 단테의 모습으로 끝난다. 신간 ‘빛의 시대, 중세’(까치)가 규정하는 중세의 시작과 끝엔 모두 빛이 있다. 저자인 미국 버지니아공과대 중세학과 교수 매슈 게이브리얼과 미네소타대 역사학과 수석 지도교수 데이비드 M. 페리는 서구의 중세를 암흑기로 보는 시각에 도전한다. 유럽 대륙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이르는 폭넓은 시공간을 아우르며 문화와 종교, 사상, 그리고 사람들이 부딪히고 격동하는 중세의 복잡성을 조명했다. 그 바탕엔 서구 사학계가 그동안 중세를 획일화된 시선으로 잘못 바라봤다는 자성이 깔려 있다. 고대부터 이어진 철학학교였던 아테네 학당의 지식은 중세에도 이어졌다. 두 저자는 현대 역사가들이 ‘암흑기의 도래’라고 평해왔던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483~565)의 아테네 학당 폐쇄 사건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학당 폐쇄 이후에도 지식은 단절되지 않고 활용돼왔다는 것.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로마법 체계를 받아들인 ‘로마법 대전’을 완성시켰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이자 발명가 안테미오스와 이시도루스를 발탁해 콘스탄티노플에 성 소피아 성당을 지었다. 그리스어로 ‘지혜’란 뜻을 가진 이 성당의 거대한 돔은 약 1000년 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재건될 때까지 가장 컸다. 기독교를 획일적인 종교로 바라보는 시선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일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는 중세 동로마 제국 전역에 분포한 기독교 종파 중 하나였다. 로마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597년 브리타니아 섬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파견하는 한 수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신교 신전을 파괴하지 말고 성수로 정화하고, 원래 주민들이 행하던 종교 의식을 없애지 말라고 당부했다. 두 저자는 이를 통해 중세 기독교가 다양성을 배척하는 고립된 종교가 아니었으며, 당대 기독교는 ‘복수형’으로 존재했음을 조명한다. 중세사 서술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던 여성의 이야기도 담았다. 독일 중서부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힐데가르트(1098∼1179)가 대표적이다. 1113년 수녀가 된 힐데가르트는 꿈에서 체험한 신의 계시를 글과 그림으로 남겼을 뿐 아니라 당대 황제와 교황, 각계각층의 저명인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정치적 조언도 했다. 두 저자는 “단순한 간언이 아닌 왕국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강력한 조언이었다”고 평했다. ‘맹신’ 혹은 ‘암흑’이란 단어로 수식돼 온 중세에 대한 편견에 균열을 내는 책이다. 두 저자는 중세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시각을 바꾸면 다른 이야기들에선 소외되던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고, 다른 어딘가에서 시작하면 또 다른 세계들을 엿볼 수 있다.”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마미군(馬尾裙·말총으로 만든 속치마)은 조선에서 시작돼 경사(京師·수도)로 유입됐다. 처음에는 부유한 상인과 귀공자, 기생들이 입었는데 이후 귀천을 막론하고 마미군을 입는 사람이 날로 많아져 정부 고위 관료들까지 입었다.” 명나라 관료 육용(1436∼1497)의 문집 ‘숙원잡기(菽園雜記)’의 한 대목이다. 겉치마를 우산처럼 펼쳐지게 만드는 조선의 속치마 마미군이 당대 명나라에서 대유행했음은 여러 사료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이 마미군이 전통적 한중관계의 외곽에 놓였던 제주와 중국 강남 지역의 직접적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귀한 사례라는 분석이 나왔다. 구도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명나라의 조선 드레스 열풍과 조선 전기 여성 한복’이라는 발표문에서 “제주의 마미군이 중국의 ‘강남 스타일’이 됐다”고 분석했다. 구 연구위원은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21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공동주최하는 학술회의 ‘한국복식문화사: 한국의 옷과 멋’에서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마미군은 15세기 말 명나라 황제 홍치제가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유행했다. 구 연구위원이 분석한 결과 육용을 비롯해 마미군을 언급한 문집 등 사료의 필자들은 거의 소주(蘇州) 및 그와 인접한 강남 지역 출신이었다. 마미군이 궁중에서까지 유행했음을 보여주는 15세기 회화 ‘명헌종원소행락도(明憲宗元宵行樂圖)’ 역시 소주에서 발견됐고, 강남 지역과의 관련성이 확인됐다. 이에 비해 북경을 수없이 오간 조선 사행단에 중국인이 마미군을 언급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구 연구위원은 마미군이 유행했던 ‘경사’는 북경이 아니라 명나라 초기 수도이자 ‘패션의 도시’였던 남경(현 장쑤성 난징시)이었다고 봤다. 조선인이 합법적으로 갈 수도 없던 소주에서 마미군이 유행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1488년 경차관으로 제주에서 배를 탔다가 표류해 중국 강남 지역에 도착한 최부에게 한 중국인은 “종의(鬃衣·말총으로 만든 옷)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보다 앞서 1482년 같은 지역에 표류해 왔던 제주의 수령 이섬은 마미군을 팔았다는 것이었다. 구 연구위원은 “15세기 제주와 명나라 사이 해상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마미군은 조선 치마의 고유한 특징을 보여주는 의복이다. 중국 치마가 볼륨감이 없는 ‘H라인’ 중심이었던 데 비해 조선은 풍성한 ‘A라인’ 치마가 유행했다. 내륙에선 겹겹의 속치마를 껴입었지만 말총이 흔했던 제주에선 마미군을 만들어 받쳐 입는 게 훨씬 경제적이었다. 구 연구위원은 “19세기 유럽에서도 치마를 풍성하게 연출하기 위해 말총을 활용해 페티코트(속치마)를 만들었는데, 동아시아의 말총 페티코트는 조선에서 탄생했던 것”이라며 “중국은 주변국에 문화를 전파하기만 한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마미군을 통해 문화는 상호 교류하는 것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술회의에서는 우리 고대 복식이 북방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스키타이계 문화권에 포함돼 있었다고 본 ‘한국 복식의 원류와 삼국시대 복식’(김문자 수원여대 명예교수), 복잡한 외교 관계 속 고려의 복식문화를 조명한 ‘고려시대 복식과 고려양(高麗樣)’(김윤정 서울역사편찬원 전임연구원), ‘동아시아 문화의 공유와 변용, 조선의 단령’(이은주 안동대 교수), ‘조선 후기 여성 패션과 아름다움’(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갓과 모자의 나라, 조선’(이주영 동명대 교수) 등이 발표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역공동체가 유적의 보존가치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함께 지켜나가는 문화유산이 됩니다. 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은 고고학자들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사적) 일대를 19일 둘러본 웨버 은도로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ICCROM) 사무총장(사진)이 말했다. 풍납토성은 풍납동 일대에 있는 길이 2.1km 규모 타원형 토성으로, 학계에서는 백제 초기 왕성인 위례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존과 개발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경당지구에선 2000년 아파트 재건축 조합원들이 굴착기로 발굴조사지 일부를 훼손했다. 올해 3월 송파구는 문화재청의 ‘풍납토성 보존구역 및 관리구역 지정’ 고시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재개발·재건축 규제가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날 은도로 사무총장과 피키리 쿨라코올루 튀르키예 앙카라대 고고학 교수를 초청해 조언을 들었다. 은도로 사무총장은 “발굴 단계부터 지역공동체를 참여시키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쿨라코올루 교수는 “사전 발굴을 한 뒤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발을 허가하는 것은 유물과 지역개발 모두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연예계에서도 폭우 피해를 입은 이웃에게 기부금을 전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18일 가수 이효리가 호우 피해 지원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배우 고민시가 5000만 원, 김은숙 작가와 윤하림 화앤담픽쳐스 대표가 공동으로 4000만 원, 방송인 이승윤이 1000만 원을 기부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쉴 만한 공적 공간이 부족하니 사람들이 카페로만 몰리죠. 그만큼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겁니다. 도서관이 시민들이 잘 쉴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실내외 공공도서관 내부를 설계하는 메이트아키텍츠의 이병욱(42), 김홍철(38), 김성진(38) 소장이 11일 서울 광진구 아차산숲속도서관에서 말했다. 이들은 “광장이나 공원만큼 중요한 건축물이 도서관”이라며 “도서관의 경쟁자는 독서실이 아니라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이나 놀이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2020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전북 전주 청소년도서관 ‘우주로1216’(공동 설계)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전국 공공도서관 8곳을 디자인했다. 지난해 8월 개관한 아차산숲속도서관은 이들이 내부를 디자인한 ‘카페 같은 도서관’ 중 하나다. 원래 쓰레기 집하장이었던 자리에 지상 2층 388.92㎡ 규모로 새로 들어선 이 도서관은 층고가 8.3m에 이르고, 한쪽 면에 전면 유리창이 있다. 그 너머로 아차산어울림정원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테라스에서는 사람들이 대화하며 쉴 수 있도록 설계했다. 김홍철 소장은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책장으로 가리고 싶지 않아 정원을 마주 바라보는 책상을 뒀다”며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창밖의 풍경을 누릴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60석 규모의 이 도서관은 개관 당일부터 올해 6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11만7098명이 다녀가며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인스타그램에도 이 도서관에서 인증샷을 남긴 이가 적지 않다. 김성진 소장은 “카페로 향했던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도서관으로 이끌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 1월 새로 문을 연 광진구 자양4동도서관도 이들이 리모델링했다. 2008년 동주민센터 1층 231㎡ 공간에 문을 연 이 도서관은 원래 책장이 천장 가까이 빽빽하게 들어차 불을 켜도 그늘이 졌다. 내부가 어둡게 느껴질 정도였다. 책장이 공간을 점령하며 상대적으로 열람 공간은 부족했다. 이들은 공간을 전시장처럼 새로 디자인해 이용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책장을 한쪽으로 몰아서 탁 트인 열람 공간을 만들었고, 책장 길이를 다르게 배치해 동적으로 느껴지도록 했다. 천장뿐 아니라 책장 자체에도 은은한 조명을 설치해 책장 자체가 전시물처럼 여겨지도록 바꿨다. 도서관은 리모델링 후 신규등록회원이 이전보다 43% 늘었다. 이들의 다음 프로젝트는 서대문구 홍제1동자치회관 2층에 딸려 있는 49㎡(약 14.8평) 규모의 어린이작은도서관을 리모델링하는 것. 크지 않은 이 도서관을 이번에는 놀이터처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김홍철 소장은 “이곳을 누릴 아이들에게 49㎡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커다란 놀이터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들은 “1990년대 이후 대폭 늘어난 공공도서관을 질적으로 가다듬고 가꿔 나가야 할 때가 됐다”며 “앞으로 ‘카페에서 만나자’는 말 대신 ‘도서관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게 흔한 일상이 될 때까지 공공도서관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 나가고 싶다”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