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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띠고 우리를 대하고 있으나 절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적이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탐욕에 눈 먼 거대한 용(龍)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 날, 지구의 종말이 시작된다”(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중국산 제품에는 징벌적인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USTR이 6일 340억 달러(약 38조원) 규모의 818개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언론이 콕 찍어 ‘무역 전쟁 도발의 원흉’이라고 지목한 3명이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신념들이다. 부동산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가(트럼프), 경제학과 교수(나바로), 통상 전문 변호사(라이트하이저) 등 배경은 다르지만 그들은 각 분야에서 중국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제 미 정부에서 핵심 지위를 차지한 이들은 자신들이 골수에 맺힐 만큼 강하고 오래 동안 품고 있었던 생각들을 현실에 옮기고 있다. 미국이 대중 무역 전쟁을 벌이는 등 국제 자유무역질서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데는 ‘대중(對中) 강경 3인방’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 ‘제2의 플라자 협정’ 꿈꾸는 라이트하이저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 후에 국무장관으로 발탁된 제임스 베이커와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5개국 재무장관이 모여 미국 달러의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에 대한 평가인상(평가 절하)를 추진하는 ‘플라자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 약발은 미국의 기대 이상으로 2년 만에 달러는 50% 이상 절하돼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했다. 달러화 약세는 1987년 2월 22일 5개국이 다시 모여 ‘루브르 협약’으로 하락을 멈추게 하자고 약속할 때까지 계속됐다. 일본은 엔화 가치 상승으로 뉴욕의 고층 빌딩을 사들이는 등 호황을 누렸지만 독배를 마신 것이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잃어버린 10년(1991~2001년)’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위협적인 2위 경제국 일본을 ‘한 방’에 보냈다. 당시 라이트하이저는 USTR 부대표로 플라자 협정의 주역 중 한 명이다. 33년 전 추격자 일본을 굴복시켰던 그에게 이제는 상대가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경제 2위국의 도전을 뿌리치는 역할을 맡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환율 한 가지 수단으로도 큰 성과를 달성했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3월 미 재무부의 평가에서도 중국이 ‘환율 조작국’에 지정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 ‘혐의’가 뚜렷치 않은데다 대중 적자 누적의 요인도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6일 340억 달러 고율 관세와는 별개로 10일 추가로 2000억 달러 규모의 관세 폭탄을 던지면서 라이트하이저는 “관세 부과 대상은 중국의 산업 정책과 강제적인 기술 이전 관행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제품들”이라고 했다. 환율만으로 일본 독일을 공격하던 때와는 상황이 다른 고민이 담겨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USTR 부대표를 마친 후 대형 로펌 ‘스캐든’의 파트너 변호사로 미국 기업들을 위한 징벌관세 부과 업무를 맡아 30여 년간 일해 왔다. 주요 대상이 중국 철강으로 이번 대중국 관세 폭탄의 대표 품목이다. ● ‘군복을 입고 벙커에서 무역 전쟁 지휘’ 말까지 듣는 나바로 “중국 공산당식 변칙적인 국가자본주의는 세계의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 원칙을 산산조각으로 파괴하고 있다. 정부의 후원을 받는 ‘국가 대표 기업’은 중상주의와 보호주의를 결합한 정책을 무기 삼아 휘두르면서 전 세계 산업계의 일자리를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백악관에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일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하고 초대 위원장에 임명한 ‘초강경 반중 학자’ 피터 나바로 어바인대 교수의 기본 생각이다. 그는 중국이 휘두르는 ‘일자리 파괴의 무기’로 △불법 수출 보조금 △지적 재산권의 무분별한 위조 △느슨한 환경 법규 △업계에 만연한 노예 노동력 사용 △미국 기업에 대한 높은 중국 진입 장벽 등을 들고 “가장 뻔뻔한 것으로 환율 조작도 있다”고 했다.(‘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2011년. 원명 ‘Death by China)’ “중국이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으로 정정당당하게 미국의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중국의 8가지 불공정 무역관행으로 창출되는 경쟁 우위가 50%가 넘는다”고 반박한다. 숫자를 동원한 논지 전개는 경제학자답지만 8가지 관행 표현에서는 뿌리깊은 대중 반감과 ‘전사의 결기’가 느껴진다. △미국의 심장을 겨누는 교묘하고 불법적인 수출 보조금 △약삭 빠른 환율 조작 △지적 재산 위조, 침해, 절도 △원가 절감을 위한 기업의 환경 파괴 정부 묵인 △국제 표준에 훨씬 못 미치는 근로자 안전 보건 기준 △핵심 원자재 수출 제한으로 관련 산업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 강화 △약탈적인 덤핑으로 경쟁국 밀어내기 △‘보호주의 만리장성’으로 중국 시장 진입 장벽 구축 등이다. 나바로는 “세계사에서 1500년 이후 중국 같은 신흥 세력이 미국과 같은 기존 강대국과 대치한 것은 15차례이고 이중 11차례에서 전쟁이 발생했다, 확률이 70%를 웃돈다.”(‘웅크린 호랑이’)며 미중 양국이 ‘투기디데스 함정’(신흥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이 전쟁 등 충돌하는 것)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경제적 이해를 넘어 패권 도전국 중국에 대한 견제 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포인트는 뒤에 있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트가 30년 전쟁 후유증으로 쇠잔의 길을 걸었다”며 양국이 함정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을 권고한다. ● “미국이 중국의 봉이라니 기가 찰 노릇” 외치는 트럼프 트럼프는 대중 무역 전쟁에서 현장 지휘관이다. 트럼프의 말과 정책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지만 대중 피해 의식과 보복 의지는 사업가로서 오랜 기간 쌓여진 것이다. “중국은 환율 조작으로 우리 주머니에서 매년 1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빼내가고 있다. 내가 중국을 우리의 적이라고 규정한 뒤 온갖 비난을 받았으나 왜 비판을 받아야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 트럼프는 중국을 △작정하고 미국을 파탄내려고 덤비는 사람들 △일자리를 앗아가는 사람들 △기술을 훔쳐가는 사람들 △기축통화 달러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람들인데 ‘적’말고 뭐라고 부르냐고 반문한다. 트럼프는 “우리는 중국 일본 멕시코 같은 나라로부터 일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미국 소비자들이 만든 세계 최고의 시장을 그냥 내주고 있다”며 “미국의 노동력이 최고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단지 그들이 경쟁하도록 해주기만 하면 된다”(‘불구가 된 미국’)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일자리를 잃은 것은 중국 등의 불공정 행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대응해 내놓은 것이 고율 관세 폭탄이다. ● 안팎에서 부는 ‘보호주의 3인방’에 대한 역풍 이들의 노골적인 미국 우선 및 보호주의 논리는 중국을 포함한 서방 각 국은 물론 미국내에서도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구축했던 자유무역질서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관세 폭탄에 대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통령들이 도입한 가장 비합리적”이라며 “멍청하고 미친 짓이자, 트럼프는 무솔리니처럼 독재자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국내 가져오는 방법으로 ‘온 쇼어링(본국으로 제조 시설을 옮기는 것)’을 들면서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지만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가 상하이(上海)에 연간 50만대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 일부 기업의 탈미(脫美)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러시아와 남북한을 잇는 가교가 되고 싶어요. 제자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심어주고 싶고요” 지난달 2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난 ‘러시아 고등경제대(HSE)’ 한국학과 나탈리아 김 교수(38)는 한반도에 긴장 완화와 교류 확대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는데 자신처럼 남북한 모두와 비교적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는 러시아 한반도 전문가의 역할이 커질 것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모스크바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열린 ‘한-러대화(KRD) 4차 포럼’을 참관하기 위해 찾아와 동아일보와 만난 나탈리아 교수는 “남북 간 교류가 늘어나면 러시아 한국학과 졸업생들이 갈 곳도 할 일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학과는 올해 4월 모스크바 주재 북한 관리들이 참가하는 행사를 갖는 등 지금까지 3차례 북한 인사들을 초청한 토론회 등을 열었다. 나탈리아 교수도 2014년 4월 평양을 방문해 1주일간 머물며 역사 및 여성 인권 분야 전문가들과 교류했다. 이 대학이 한국학과를 설립할 때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한국어 객원 교수 파견, 한국 자료와 도서를 제공하고 일부 직원 채용 비용도 지원하는 등 적극 도왔다고 재단 관계자는 설명했다. 구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 11월 설립된 HSE는 과거 소비에트 경제와는 다른 시장경제와 국제화 교육을 위해 설립돼 영국 명문 LSE와 유사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HSE는 지난해 학생 수가 석·박사 8100여 명을 포함해 3만1000여 명으로 일부 학과는 모스크바대보다 선호할 정도로 최고 명문 대학이다. 한국과 교류가 늘어나자 대학 측은 2011년 한국학과를 개설하면서 모스크바대 철학과를 나와 외교아카데미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은 나탈리아 교수를 학과장으로 영입했다. 현재 한국학과 학생 수는 117명이다. 나탈리아 교수는 2015년 광복 후부터 한국 정부 수립까지의 한국 근대사를 다룬 책 ‘1945∼1948년 한국 정치사’도 출간했다. 한편 나탈리아 교수 성이 ‘김(金)’인 것은 모스크바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 김원일 박사와 결혼해 남편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김 박사 부부의 결혼은 ‘한-러 순애보’로 일부 알려졌으며 3녀 1남을 두고 있다. 나탈리아 교수는 “모스크바대 기숙사 생활을 할 때 남편을 만나 반해 결혼했고 자상하지만 한국 남자라 보수적인 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모스크바 한인회장을 지냈으며 ‘모스크바 프레스’라는 교민 잡지를 운영하고 있다. 포럼에 참가한 한국언론재단 민병욱 이사장은 ‘모스크바 프레스’ ‘매일신보’ ‘고려인 신문’ 등 현지 언론 관계자들과 만나 양국 언론 교류 협력을 논의했다. 모스크바=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전북 주요 5개 대학 기획처장이 4일 전북대에 모여 대학 발전이 지역 발전을 선도하는 ‘대학주도 성장’을 주제로 한 첫 토론 모임을 가졌다. 참여 대학은 전북대 원광대 전주대 군산대 우석대. 전북은 군산 GM대우자동차 폐쇄와 현대중공업 잠정 폐쇄 등으로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지만 마땅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대학이 성장동력이 되어 보자고 나선 것이어서 주목된다. 미국 일본 유럽에서는 대학이 지역을 살리고 나아가 국가 발전을 이끄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한국에서 일부 대학은 지역 성장을 주도하기는커녕 자체 생존에 허덕이는 실정이라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북지역 주요 대학이 ‘새로운 대학상’을 세울지 주목된다. ‘대학주도 성장’은 이남호 전북대 총장이 수년 전부터 거론했던 것으로 ‘대학이 전북지역 발전의 핵심 요소’임을 강조한 것이다. 모임을 주관한 김학용 전북대 기획처장은 “‘대학주도 성장’은 앞으로 학령인구 감소 쓰나미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배종향 원광대 기획처장은 “대학이 역량을 모아 전북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발전시켜 대학의 역할을 새로이 하면서 지역 발전도 가져오는 바람직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대학 주도 성장을 구체화하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지역민과 지자체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전주=이종승 기자 bonhong@donga.com}
‘미국은 보다 확실하게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을 해주고 비핵화를 요구해야 한다’‘러시아는 대북 제재 해제를 먼저 할 것이 아니라 북한 변화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한러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경제 협력의 이행은 양국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공고히 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22일 크렘린 북쪽으로 멀지 않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 문 대통령 방러에 맞춰 열린 ‘한러대화 제4차 KRD 포럼’에서 만난 양국 학자와 전직 관료, 외교관 등 전문가들이 북한 비핵화의 전망과 한-러 협력 방안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 러시아 전문가는 “한국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면 북한에도 중국군을 진주시킬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도발적인 언급을 했지만 양국 전문가 모두로부터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양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동북아에 위기가 높아졌다거나 한-러 양국의 협력, 특히 극동에서 같이 할 프로젝트가 많다는 점은 공감했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 처방에 대해서는 날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동시에 진행된 6개 분과 회의 중 정치 국제관계 분과 소속 양국 전문가들은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4시 반 동안 시종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많은 러시아 고위 인사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표명으로 촉발된 한반도 격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 및 그 후 동북아 평화와 협력에 동반자가 되어야 할 러시아를 좀 더 알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 계기도 됐다. ● “동북아에 다층적이고 오랜 역사적 긴장 구조 있다” 공감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교수(한국학연구소 소장)는 “동북아 국가들간의 부정적인 역사적 기억이 이 지역 평화 안보 체제 구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빨리 이러한 기억을 털어버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쿠르바노프 교수는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한국 전쟁에서 비롯된 한국과 북한의 대립 △일제 강점기와 위안부 피해자 문제, 독도 영유권, 동해 일본해 표기 문제로 인한 한국과 일본의 대립 △분단과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미국의 적대 의식 등을 대표적인 부정적인 기억으로 꼽았다. 한국외대 홍완석 교수는 “동북아에는 강대국 간 패권경쟁, 역내 국가간 영토 역사분쟁 여기에 북한의 핵개발과 대량살상 무기 확산 등 크고 작은 안보 불안 요인이 많은 데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제도화된 다자 안보협력 기구가 없다”고 말했다. 최재근 전 주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는 “(판문점 및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냉전 체제의 실질적인 해체를 위한 서막이라는 열리고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며 “동북아 지역정세 변동의 순간을 역내 항구적 평화와 번영의 기반을 다지는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판문점과 싱가포르 회담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글레브 이바셴초프 전 주한 대사는 “북미 회담으로 당분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확인했다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한반도 평화에 얼마만큼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미국으로 운반하고 핵 전문가를 미국에 취업시키겠다는 등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지만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북한에게 핵은 안보의 방패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체제 보장을 위한 제도화 장치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회담을 가진 의도 중 하나가 11월 중간선거에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점이었다는 점도 실질적인 회담 성과를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에 대응해)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해 대사관을 설치하고 군사 활동 줄여나가고, 대북제재를 줄이는 등의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는 “싱가포르 회담은 한국전쟁 이후 70년 이상 지속되었던 북미 양국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첫걸음이라는 데 의미가 있으나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회담의 결과물인 선언문에 구체적인 비핵화 과정에 대한 합의가 언급되지 않아 이행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장 교수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승자는 중국과 북한으로 무엇보다 미국이 한국과의 군사훈련을 도발적이라고 언급하며 잠정 중단에 합의한 것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줴빈 극동연구소 한국학센터 소장은 “판문점 선언으로 한국과 북한의 평화적인 공존 기반을 마련했지만 평화 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러시아는 판문점 정상회담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환영했다”고 밝혔다. 게오르기 쿠나제 전 주한 대사는 “싱가포르 회담이 이틀간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하루 만에 끝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지금까지 미국의 어떤 대통령은 하지 못했던 한반도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랑하지만 실질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마련된 것은 아니며 미국은 북한을 위한 체제 보장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줴빈 극동연구소 한국학센터 소장(전 주러시아 공사)는 “러시아 고위 외교 관료들이 대북 제재 해제의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좀 더 신중하게 다뤄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창용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한-러가 좀 더 집중해야 한다”며 “러시아도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반도 등 동북아 평화체제에 러시아의 역할 필수” 줴빈 소장은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동맹 구조가 형성에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며 “7500만 인구를 가진 통일 한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이 마냥 좋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만약 통일 한국에 미군이 그대로 주둔한다면 러시아는 이를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체계(MD) 체제 구축 및 아시아판 NATO 구축 노력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바셴초프 전 대사는 “한반도 비핵화 등의 문제는 미국이 단독적으로 문제 해결하지 못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 참여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도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전쟁이 발생하고 있어 북핵 문제에서 러시아의 중재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한러 간 긴밀한 전략적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및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 구축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21일 러시아 하원 두마에서 가진 연설에서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 될 것이며, 러시아와의 3각 협력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완석 교수는 “러시아가 한국전쟁의 휴전협정 체결 당사자가 아니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렵다”며 “그럼에도 북핵 6자회담이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를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보장을 위한 다자안보 협력체 창설을 더욱 용이하게 할 뿐 아니라 북한의 개혁 개방과 통일 비용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쿠나제 전 대사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아주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해야 하는 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의 힘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북한 역시 중국의 원조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전쟁 종료 이후 한국은 북한에 대해서 공격적인 행위를 한 적이 없었으나, 북한은 한국에 수차례 군사적인 도발을 감행했다”며 “이러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어떠한 나라에 안전 보장이 필요한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치 북한의 핵무장 필요성을 용인하는 듯한 논리를 펴서 논란이 됐다. ●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 논란 엄구호 한양대 교수(국제학대학원장)는 “알고 지내는 러시아 전문가 8명에게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니 모두 ‘어렵다’고 말하고 북한이 형식적으로만 비핵화를 추진하며 시간을 끌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소개했다.이에 대해 일리야 디야츠코프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조교수는 “어떤 러시아 전문가가 그렇게 얘기했는지 모르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성에 동의한다”며 “하지만 존 볼튼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말하는 북한 비핵화 조건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맞받았다. 디야츠코프 교수는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원인을 중심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며 “북한이 안보 위협을 느끼는 것이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지속하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바셴초프 전 대사는 “미국의 변덕도 문제”라며 “미국이 언제든 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맺은 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에서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토론 후반부 보충 발언에서 “비핵화가 어렵다고 한 러시아 지인들의 말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단기간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어렵다는 뜻이었다”며 “장기적으로 비핵화는 되겠지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러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방점을 두었다”고 덧붙였다. 쿠나제 전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시간을 두고 봐야할 것”이라며 “제2차 북미정상 회담의 개최 여부도 아직 미지수”라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쿠나제 전 대사는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북한의 의중도 불확실하다”며 “판문점 선언문은 상당히 의미있는 문건이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생존이 문제여서 앞으로 어떠한 시나리오가 전개될지 생각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르게이 안드류신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 국무부는 북한에 비핵화 관련 45개의 요구 조항을 보낸 걸로 알고 있다”며 “북한이 단기간에 이를 해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미국에 화살을 돌렸다. ●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체 구성에 동의하지만 이견도’ 한반도 비핵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변국들이 두루 참여하는 다자 안보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했으나 ‘외부 세력’ 문제 등에서 이견을 나타냈다. 홍완석 교수는 “동북아에서 다자안보체제를 창설하는 문제에 대해 한국과 러시아는 이해가 전적으로 일치한다”며 “특히 역내에서 다자 협력틀이 필요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북핵 문제였고 6자 회담도 이런 분위기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바셴초프 전 대사는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남북한과 러시아 중국 일본 몽골 미국 등이 참여하는 다자협력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줴빈 소장은 다만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 통일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남북 주도 하에 이뤄져야 하며 외부 세력의 개입은 절대 반대한다”며 “한반도에서 어떠한 형태의 동맹 구조가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쿠나제 전 대사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에 복귀하고 재래식 무기를 휴전선에서 후퇴시켜야 하며 한미는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 쿠나제 전 대사는 “한국에 미군이 지속적으로 주둔한다면 북한에 중국군이 주둔하는 제한적 권리가 없느냐”고 말했다.이에 대해 변대호 전 주크로아티아 대사는 “중국군 주둔은 북한의 자주 외교 노선을 따져보더라도 불가능하며 오히려 한미 군사동맹의 공고화에 대한 명분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르바노프 교수도 “중국군 북한 주둔은 김정은도 반대할 것”이라며 “북한의 주체사상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고려인으로 구소련에서 고위직을 지낸 김영웅 러시아과학원 산하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은 “중국군 주둔에 대해서는 북한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하게 가능성을 부인했다. 백주현 전 카자흐스탄 대사는 “한국 정부의 북방 정책 모토는 머리 위의 안보 불안 해소를 위해 베이징(北京)을 거쳐 모스크바로 가는 것이었다”며 “이제 북중러와 한 덩어리가 되어 한미일과 대항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30년 전 생각”이라고 말했다. ● ‘한-러, 보다 긴밀한 협력으로 평화와 발전을 찾아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면서 극동과 북한을 아우르는 한-러 협력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한-러 관계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양측 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다. 고재남 국립외교원 교수는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28년 간 공식 및 비공식 정상회담이 30차례 이상이었고 장차관급 등 고위급 회담도 많았으나 아직도 낮은 수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동부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이 조기에 해결되기 어렵고 미-러 갈등도 한-러 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푸틴 대통령 집권 4기를 맞아 찾아온 한반도 비핵화 움직임은 매우 긍정적인 상황”이라며 “러시아가 한반도 평화 정책 프로세스에 어떻게 참여하도록 유도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극동 개발 등 경제적 협력을 적극 원하는 만큼 한국은 보다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미나예프 전 주북한 러시아대사관 참사관은 “러시아의 노력으로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UN 대북 제재에서 제외했는데 미국과 한국이 독자 제재에 넣었다”고 비판했다. 마나예프는 “역대 한국 정부는 정권 성향에 따라 대북 유화와 강경으로 오락가락 정책 기조를 바꿔왔다”고 비판했다. 엄구호 교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보수와 진보 정권 사이에 이견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영웅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을 보면 공산주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북한을 고립하는 것이 북방정책의 골자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신북방 정책도 방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중국을 제외한 모든 사회주의 국가는 중산층이 두터워지면 자본주의화되었다”며 “북한 주민도 상당히 부유해지면 스스로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북한에 대한 어떠한 제재도 북한은 견딜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 북한의 변화를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하는 것 같다”며 “북한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핵무기도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기 한양대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로 나온 이유 중에는 제재 효과도 거론되는데 10년 제재에도 끄덕 없다는 것은 무슨 근거가 있냐”고 반박했다.손성환 한국외대 초빙교수는 “북핵 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약간 다른데 미국은 글로벌 차원에서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인도-파키스탄 관계처럼 북핵을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겠지만 한국은 그러기 힘들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어설픈 개혁 개방이 전체주의 정권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가 있다”며 개혁 개방 과정에서 북한의 체제보장도 내부적으로 위협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신범식 서울대 교수는 “지정학적 단층선에 있는 한반도에서 과거에도 대륙과 네크워킹하려는 북방정책이 추진되어 왔었다”며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지금 바로 통일을 논의하는 것은 가장 반통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북-미 회담 후 동북아에 세력균형으로 평화공존을 이루고 남북 교류가 이뤄지는 것을 최대치 목표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난달 22일 열린 ‘한러대화(KRD) 제4차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하던 한국의 H 교수는 심사대 앞에서 ‘벌을 받듯’ 30분가량 멀뚱히 서 있어야 했다. H 교수는 “직원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뭔가를 찾는 시늉은 했지만 고의로 시간을 끄는 것이 분명했다”며 러시아 전직 관료와 외교관, 교수 등이 참석한 포럼에서 공개 항의했다. 러시아 측 인사는 “어느 나라나 태만한 공무원은 있다”고 얼버무렸지만 H 교수는 “얼마 전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던 기록을 여권에서 발견하고 터무니없는 보복을 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상호 무비자를 하는 등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무색하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한 뒤 나타난 신냉전의 찬 기운이 느껴지는 사례다. 한국이 서방과 러시아 간 안보 갈등 틈바구니에서 남북러 경제협력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제4차 KRD 포럼의 날선 공방에서도 확인됐다. 디야츠코프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조교수는 “북한은 안보 위협을 느껴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을 지속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글레프 이바셴초프 전 주한 러시아대사는 “미국의 변덕도 문제”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 6·12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이란 핵합의 파기에서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게오르기 쿠나제 전 주한 러시아대사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체제 보장 장치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창용 가톨릭관동대 교수(전 주러시아 공사)는 “최근 러시아 고위 외교 관료들이 잇따라 대북제재 해제의 가능성을 먼저 언급하는데 러시아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쿠나제 전 대사는 “한국전쟁 종료 이후 한국은 북한에 대해서 공격적인 행위를 한 적이 없었으나 북한은 한국에 수차례 군사적인 도발을 감행했다”면서도 “이러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어떠한 나라에 안전보장이 필요한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북한의 핵무장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쿠나제 전 대사는 특히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은 재래식 무기를 휴전선에서 후퇴시키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도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함께 북한에 중국군 주둔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권리가 왜 없겠느냐”고 도발적인 발언도 했다. 변대호 전 주크로아티아 대사는 “중국군 주둔은 북한의 자주 외교 노선을 따져보더라도 불가능하며 오히려 한미 군사동맹의 공고화 명분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르바노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교수도 “중국군의 북한 주둔은 김정은도 반대할 것”이라며 “북한의 주체사상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국 전문가들은 북한을 두둔하고 미국을 몰아붙이면서 ‘중국군 북한 주둔’까지 나오자 “러시아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에 참석한 러시아 측 인사들은 전직 주한 대사와 교수 등 지한파(知韓派) 인사들이다. 더욱이 이날은 양국 정상회담에 맞춰 ‘전략적 외교 협력’ 방안 등을 찾아보자고 모인 자리였다. 그럼에도 제빈 극동연구소 한국학센터 소장은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동맹 구조가 형성되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7500만 인구를 가진 통일 한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포럼이 열리고 있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크렘린 대궁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베리아와 한반도 철도 연결 등 32개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하루 앞서 문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하원 두마에서 연설하며 우호 분위기를 돋웠지만 러시아의 속내는 알기 쉽지 않다. 청와대는 지난달 25일 양국 대통령이 몸을 바짝 붙인 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공개하며 양국의 가까워진 거리를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여정에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러시아 모두 약간씩 다른 이유로 만만치 않음을 느낄 것 같다. ―모스크바에서 구자룡 이슈&피플팀장·전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한국보다 6시간 늦은 시차의 러시아 서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인천에서 비행기로 9시간 이상 걸린다.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 6월 20일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동상이 세워졌다. 전신 높이 135cm의 작은 동상 제막식에 소요된 시간은 30분 남짓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먼 곳까지 찾아와 동상 제막을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일까.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말하는 박경리 선생, 그리고 선생과의 인연을 들었다. 대학 본관 뒤 동양학부 건물 옆 현대조각공원에 세워진 동상 앞 면에는 선생의 시 ‘삶’의 마지막 구절인‘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가 새겨졌다. 2013년 11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앞 ‘푸슈킨 플라자’에 러시아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슈킨(1799~837)의 동상이 세워진 것에 대한 답례이자 한러 우호를 높이는 문화 교류의 하나로 추진됐다. 선생 동상이 왜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 세워졌는지에 대해 한러대화측은 베르비츠카야 대학 이사장(전 총장)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모교(법학 전공)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푸틴이 초기 정치인 생활을 시작한 정치적 고향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국내 작가의 동상이 해외에 세워지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더욱이 지난해 상반기 상트페테르부르크대 한국학과에 선생의 이름이 들어간 강좌가 개설됐다. 중앙대 김세일 교수는 “한국 작가의 이름이 들어간 대학 강좌가 개설되기는 전세계를 통틀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의 외동딸인 토지문화재단의 김영주 이사장. 그는 “토지를 완성하고 창작공간을 지원하는 작가의 소망이 담긴 원주와 고향 통영, 토지의 주요 배경인 최참판댁 하동에 이어 러시아 상트까지 네 곳에 같은 형상을 갖춘 동상을 세워져 하나의 문화적 벨트가 형성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선생은 1946년 1월 김행도 씨와 결혼한 뒤 그해 김영주 이사장을 낳았고 이듬해에는 아들(김철수)을 출산했다. 1950년 6·25 전쟁에 남편과 사별했고 1956년에는 10살에 채 안된 아들이 사망해 김 이사장은 홀로 어머니를 모셨다. 박경리 선생은 1990년 인촌상 등 생전에 다수의 상을 받았다. 김 이사장과 함께 제막식에 참석한 권오범 토지문화재단 사무국장은 “해외 작가 문인들을 초청하는 재단의 ‘해외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러시아인들도 10여년째 매년 한 명씩은 포함됐다”며 “동상 제막을 계기로 한-러 문학 및 문화교류에 재단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 같다”고 말했다. “원주캠퍼스 부총장으로 부임하면 두 분은 꼭 찾아가 신고식을 하는 데 연세대에 장학금을 기증한 사업가 청파 한승룡 선생과 원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는 박경리 선생이다. 학생 때부터 독자였지만 2004년 8월 부임해서 인사드리면서 처음 직접 뵈었다” 행사 기간 줄곧 밝은 색 중절모를 써 눈에 띈 한상완 전 연세대 원주캠퍼스 부총장(한국도서관협회 회장 역임)은 선생과의 인연의 시작을 이렇게 말했다. ‘토지’가 문예지 ‘현대문학’에 연재될 때부터 찾아 읽은 독자였던 한 전 부총장은 “처음 뵙는데 부드러운 표정이지만 눈빛이 예리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기(氣)가 느껴졌다”고 했다. 그 후 선생과 단 둘이 혹은 박완서 선생과 셋이서 이곳저곳 음식점을 찾아 다니기도 했다. “영덕에 모시고 가기도 했는데…”라고 얘기할 때는 벌써 눈시울이 불거졌다. 오이 김치를 새로 담그거나 통영에서 대구 등 생선을 보내오면 선생이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부총장 시절 바쁠 때도 오전 7시 불쑥 “한 총장 바뻐?”하면 급히 일정을 조정해 달려가 찾아뵙기도 했다. “선생의 손을 잡고 다닌 남자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과 둘이 손잡고 다니는 것을 보면 박완서 선생이 ‘꽃 미남 애인 두어 좋겠어요’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한 전 부총장은 “선생이 아들이나 조카처럼 여기셨다”며 “아무리 먼 곳에라도 동상이 세워진다니 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선생은 1926년, 한 전 부총장은 1941년생으로 15살 차이다. 한 전 총장은 “‘토지’에는 675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모든 계층 사람이 신분 지위 학식 등에 따라 다르게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에 반했다”며 “선생이 관상쟁이처럼 사람을 읽는 눈이 있으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06년 퇴임해 원주를 떠난 후에도 차가 막히면 2시간도 걸리는 거리를 5년 넘게 찾아갔다. “2008년 5월 5일 돌아가신 후 기일 마다 외지에서 통영까지 10번 모두 참석한 사람은 나와 마로니에북스 이상만 사장 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 소년’이던 그도 2009년 69세에 등단해 3권의 시집을 냈다. 호는 우강(友江). 부총장 퇴임 문집 ‘105가지 향기로운 이야기’에 실으려고 선생에게 글을 한편 부탁했는데 거절 당해 마음이 무지 아팠는데 1주일 후 ‘러시아 인형’이라는 시를 보내오셨다며 눈물나게 감사했다고 회고했다. 선생 하면 생각나는 것을 묻자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시 ‘일 잘하는 사내’)가 생각난다고 했다. “올해로 서거 10주기를 맞았지만 애정 그리움이 더욱 커진다. 뭔가 선생을 더욱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온 것도 그 때문이다.” 마로니에북스 이상만 사장은 “선생은 생전에 나 뿐 아니라 아내(강영애)도 가족처럼 가까이 지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부인과 아들까지 가족 3명이 함께 와서 제막식을 지켜봤다. 마로니에북스는 미술 인문 전문 출판사지만 소설책은 별로 출판하지 않았는데 출판계 지인의 소개로 김영주 이사장을 만나게 된 후 ‘토지’도 출판하고 선생과는 아들처럼 아끼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고 이 사장은 말했다. 현재 ‘현대문학’에서 나온 ‘녹지대’와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두 종을 빼고는 선생의 20여종 모든 작품을 출판하고 있다. 제막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나눠줬다. 이 사장은 책만 출판한 것이 아니라 원주 토지문화관의 작업창작실 설계 건축도 총괄했다. “2006년 ‘토지’ 만화책 버전을 발간했는데 교보문고에서 찾는 사람이 많아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선생께 팬 사인회 한 번 하시자고 했다가 바로 거절당하고 한 소리 들었습니다.” 선생은 “날 보고 싶으면 책을 보면 된다. 내가 굳이 얼굴을 내밀 필요가 없다. 작가는 글로 말하면 된다”고 얘기했다고 이 사장은 선생을 회고했다. 선생은 줄곧 원주에서 통원 치료를 받다 마지막 3개월 가량 서울중앙병원에서 입원 후 임종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거의 알리지 않았다. 이 사장 부부도 임종을 지켰고 올해 10주기까지 한 번도 빼지 않고 통영을 찾고 있다. 조계종 월정사 원행 스님은 승복을 입고 있어 인천 공항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는 일행이 모일 때부터 눈에 띄었다. “스님은 선생과 어떤 인연이 있으신지요?” “1995년 월정사 120여개 말사 중 하나인 구룡사 주지로 가게 됐습니다. 그 때 원주에 있는 선생을 찾아가 처음 뵈었는데 서재 서가에 꽂힌 빨간 표지의 화엄경 3권을 보고 놀랐습니다” 원행 스님은 선생 동상 제막식 행사를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박 2일 만나는 동안 여러 차례 선생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스님은 “‘빨간 화엄경’ 3권은 탄허(呑虛·1913~1983) 스님이 해제한 구 화엄경에서 중요 구절만을 뽑아놓은 것인데 이 책을 본다는 것은 누군가 고승과 교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선생이 서가에 가득 꽂힌 책을 다 보셨겠나 싶어 몇 권 꺼내 펼쳐보니 모두다 여기 저기 밑줄이 그어져 있어 놀랐다고 했다. 스님은 “구룡사 주지 8년과 그 후 여러 기회가 있을 때 뵈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탄허 스님이 정신적인 아버지라면, 선생은 마음의 어머니”라고 말했다. 원행 스님은 선생의 영결식에도 참석하고 월정사 주지로 있을 때 49제를 월정사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합장! ‘러시아 작가동맹’이 2012년 한러대화(KRD) 허승철 사무국장(고려대 교수)에게 서울에 푸슈킨 동상을 세우자고 제안한 뒤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 방한에 맞춰 실현됐다. 이를 계기로 한-러 양측이 2014년 상트페테프부르크대에 한국 문인의 동상을 세우기로 한 뒤 박경리 선생으로 최종 결정됐고 동상도 그해 제작됐다. 하지만 러시아 땅에 동상이 세워지기 까지는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박경리 선생의 작품이 러시아로 번역된 것이 없고 선생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러대화 문화예술분과 소속인 중앙대 김세일 교수는 “러시아는 영원히 구조물로 남는 동상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며 “선생의 작품이나 개인에 대한 자료가 너무 없다는 것이 조각상 건립에 걸림돌이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와 고려대 석영중 교수는 2014년부터 3년간 매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양측 전문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선생의 작품과 인생 등을 논의하는 세미나를 가졌다. 김 교수는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러시아어로 옮겨 온라인 도서관인 ‘옐친 도서관’ 자료실에 올렸다. 지금은 러시아로 번역된 토지 1권 등 러시아어로 된 자료가 상당히 검색된다”며 무사히 동상 제막식을 마치게 된 과정에서 겪었던 애로를 소개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나온 선생 관련 다큐 영상에 러시아어 자막을 넣은 영상 자료도 도서관 자료에 넣고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도서관과 ‘러시아 도서관’에 선생의 작품도 기증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는 김 교수가 1990~1995년 러시아 문학 석박사 과정을 다닌 곳. 자신이 다녔던 동양학부 교정에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느낌이 남다르다고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 선생 동상을 세운 공로로 고려대 허승철 석영중, 서울대 조소과 권대훈 교수가 감사패를 받았다. 이진현 전 상트페테프부르크총영사와 베르쉬닌 러시아측 한러 대화 문화예술분과 위원장도 감사패를 받았다. 석영중 교수는 김세일 교수 등과 함께 러시아에 박경리 선생을 알리는 작업을 해 온 것을 평가받았다. 석 교수는 선생과의 인연의 시작을 묻자 “대학시절 선생의 ‘시장과 전장’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로서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석 교수는 “해외 동상 제막식에도 왔지만 개인적으로 선생을 만난 적은 없다”며 “2000년대 초 ‘한국 러시아 문학회 학회’를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할 수 있게 해줘서 문화관에 가게 됐으나 그 때도 선생은 먼 발치에서만 뵈었다”고 말했다. 2011년 한러대화 문화예술 분과에서 김영주 이사장을 만난 뒤 선생 집안과 인연을 맺었다. 2012년 2회 ‘박경리 문학상’에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토지문화재단과 박경리 문학상 위원회, 동아일보사가 공동 주최하는 박경리 문학상은 2회부터 한국에서 수여되는 첫 세계 문학상으로 격상됐다. 올해 5월 원주에서 가진 선생 동상 제막식 때는 ‘박경리 선생과 러시아 문학’ 주제로 특강도 했다. 석 교수는 “선생은 여고시절 ‘죄와 벌’을 한 숨에 읽느라 밤을 새우고, 학교에도 빼먹을 정도로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다”며 “도스토예프스키를 특히 높이 평가하셨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한-러간에 정신세계가 비슷한 것이 많은데 일례로 어머니에 대한 감수성이 높고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사랑하는 정서가 한국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고려인 4세인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동양학부 한국학과 최인나 교수가 지난해 상반기 학부 3,4학년이 수강하는 ‘박경리의 생애와 문학’ 강좌를 개설한 주인공이다. 2014년 한국에서 제작을 마친 박경리 선생 동상은 지난해 8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운반되어 왔다. 러시아 땅에 온 뒤에도 주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 총영사관에 보관했다가 12월에야 대학 교정으로 옮겨 진 뒤 제막식을 기다리며 천으로 싸여 있었다. “선생의 동상도 세우기로 했는데 학생들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측에서도 흔쾌히 선생 강좌 개설을 승인했습니다.” 박경리 선생 동상 제막식에 참석하는 한국 방문단이 탄 비행기가 19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할 때는 밤 10시가 넘었다. 러시아는 여름철 백야(白夜) 시기로 날은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지만 밤늦은 시간에 대표단을 맞아 안내를 맡는 등 궂은 일을 하면서도 시종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최 교수는 “증조부 시절 극동에서 중앙아시아로 넘어왔고 아버지는 카자흐스탄, 어머니는 우즈베키스탄”이라며 “대학 92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 한국어를 처음 배웠다”고 말했다. 고려인이냐고 묻지 않았다면 러시아어 잘하는 한국 교민으로 착각할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했다. 이규형 한러대화 한국측 운영위원장(전 주러 대사)은 2013년 푸슈킨 동상이 세워질 때 한러대화 위원장을 맡아 선생 동상 러시아 안착을 주관했다. 제작을 마친 동상이 러시아에 가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다음에는 한국 대통령의 방러 혹은 다른 고위층 인사의 방문 때를 기다리다 늦어지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다음에 대통령이 상트페테프부르크에 들를 수 있을 때 제막하자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문재인 대통령 방러 기간 중 도종환 장관이 참석할 수 있으면 하자고 했다”며 “천으로 감싸 놓은 조각상이 이제 그만 숨을 쉬게 해드리자”고 했다고 이번에 제막식 ‘D-데이’를 잡은 배경을 설명했다. 선생 조각상 건립 공로로 감사패를 받은 허승철 고려대 교수(한러대화 한국측 사무국장)는 퓨슈킨 동상 제막부터 시작해 한-러 동상 교류의 최일선에서 실무적인 일을 맡았다. 서울 푸슈킨 동상에도 ‘도움 주신 분들’ 중 한 명으로 이름이 새겨졌다. 박경리 선생의 동상은 2015년 고향 통영과 ‘토지’의 최참판댁이 복원된 경남 하동에 세워진데 이어 올해 5월 원주 단구동 박경리 문학공원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대를 합쳐 모두 4개다. 모두 서울대 조소과 권대훈 교수가 제작했다. 선생 조각상 제작자는 김영주 이사장이 직접 골랐다. 김 이사장은 “갤러리 관계자 등 주위에서 3,4명을 추천받아 프로필과 작가의 작품 사진들을 보고 정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박경리 선생의 작가로서의 내면까지 잘 표현할 조각가를 찾았다”며 “권 교수를 직접 만난 적은 없어 약간 모험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도 이번 조각상 제막식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소설가 이세기 씨는 일간지 문학 담당 기자로 만나 소설가 선배이자 스승으로 모셨고 후에는 선생이 딸처럼 여기는 지인이 됐다. ‘접시꽃 당신’의 시인이자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도종환 장관은 제막식 축사에서 “박경리 동상 제막은 선생 개인뿐 아니라 한국 문학에 대한 평가가 있어 이뤄진 것”이라며 “러시아에서 한국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선생 제막식이 열리는 다음날인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2박4일 일정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정상회담 준비로 바쁜 가운데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가 참석했고 권동석 주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도 총영사관에 보관중이던 선생 조각상이 무사히 제막식까지 마치는 것을 지켜봤다. 언론진흥재단 민병욱 이사장과 천원주 미디어진흥실장은 앞으로 한-러 언론 교류 등에서 박경리 선생 작품 등 한국의 문학적 성과도 적극 소개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조각상 제막식에 참석한 롯데지주 오성엽 부사장 겸 커뮤니케이션실장은 “롯데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부지에 ‘푸슈킨 플라자’ 부지를 제공했으며 2013년부터 ‘푸슈킨 하우스’에서 매년 주최하는 시 낭송회와 ‘푸슈킨 문학상’을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막식 이틀 뒤인 22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러 대화 제4차 KRD 포럼’ 준비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오지 못했지만 한러대화 한국측 운영위 이형숙 팀장(문학 박사)은 동상 제막식 자료 등 실무 준비를 도왔다. 대한항공은 선생 조각상을 무료로 러시아로 운송해 줬다. 한편 선생 조각상 제막식에 러시아 측에서는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문화부 장관, 니콜라이 크로파체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총장(한러대화 러시아측 조정위원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크로파체프 총장은 “빠르면 올해 중 ‘토지’ 2권 러시아어판 완역을 추진중”이라며 “박경리 선생 뿐 아니라 한국 문학이 러시아에 널리 알려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러시아의 10개가 넘는 대학에서 박경리 선생에 대한 강의가 필수 과목으로 다뤄지고 있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칼리닌 블라디보스토크 4개 도시의 연구기관에서 연구하고 있다”며 “상트페테르부르크대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대한 강의를 시작한 대학”이라고 말했다. 크로파체프 총장은 “박경리 선생에 대한 영화가 나오면 러시아로 방영하고 그런 영화가 없으면 러시아와 함께 만들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22일 찾아간 러시아 모스크바 시 서남쪽 ‘트로예쿠롭스코예’ 국립공동묘지에 있는 북한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의 묘. 묘지 13구역에 위치한 묘의 봉분에는 붉은 색 조화(造花)가 꽂혀 있어 묘비 앞에 누군가가 오래 전 놓아 둔 바짝 마른 야생화 한 웅큼과 대조를 이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 형이자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이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살당한 뒤 성혜림의 묘도 이장되거나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남 사망 1년 여가 지났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주변 대부분의 묘와 달리 묘비가 묘지 진입로 반대쪽을 바라보게 한 점이 특징이었다. 따라서 입구 쪽에서 찾아 갈 때 묘비 뒤에 새긴 ‘묘주 김정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묘비 앞에는 한글로만 ‘성혜림의 묘’라고 쓰여 있고 출생과 사망 날짜(1937.1.24~2002.5.18)를 적었다. 정문 관리실 관계자에게 성혜림 묘 위치를 물었으나 그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과거 김정남은 관리실에 들러 달러를 쥐여주며 묘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는 말도 전하지만 지금은 잊혀져 가는 인물이 됐다는 느낌이었다. 모스크바 시 중심에서 서남쪽으로 30분 가량의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옛 소련과 러시아의 고위 정치인, 고급 장성, 유명 작가와 배우 등이 주로 묻힌 곳으로 원칙적으로는 외국인은 매장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성혜림이 사망한 뒤 북한 당국이 “시신을 본국으로 송환할 수 없으니 북한 국모(國母) 수준으로 안치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의 북한 공관에서 묘지를 찾아 관리를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언제부턴가 방치되고 있다는 관측도 많다. 묘비는 모친 사망후 3년 뒤 김정남이 직접 찾아와 세웠으며 김정남이 마지막으로 묘를 찾은 것은 2009년 10월로 알려졌다. 김정남이 사망한 뒤에는 먼 이국 땅에서 더욱 쓸쓸한 처지가 됐다고 현지의 한 소식통은 말했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 풍문여중을 다니다 한국 전쟁 때 어머니를 따라 북으로 간 성혜림은 평양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영화배우가 됐다. 성혜림은 결혼해 딸까지 낳았으나 김정일의 눈에 들어 남편과 이혼하고 1969년부터 동거했다. 1971년 김정남을 낳았으나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뜻에 따라 김영숙과 결혼하면서 모스크바로 ‘망명’을 떠났고 심장병 등을 앓다 2002년 2월 유선암으로 숨졌다.모스크바=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시 ‘삶’의 마지막 구절이다. 러시아어와 한국어로 이 문구가 새겨진 박경리 선생의 동상 제막식이 20일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렸다. 동상은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본관 뒤 현대조각공원에 세워졌다. 2013년 11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앞 ‘푸시킨 플라자’에 러시아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의 동상이 세워진 것에 대한 답례이자 한-러 우호를 높이는 문화 교류의 하나로 추진됐다고 한러대화 이규형 운영위원장(전 주러시아 대사)은 설명했다. 동상 건립은 2014년 초 한러대화와 토지문화재단 주도로 추진됐으며 서울대 조소과 권대훈 교수가 제작했다. 동상(전신 높이 135cm)은 4년 전 완성됐다. 다만 푸틴 대통령이 방한 중 직접 참석해 푸시킨 동상을 서울에 세운 것에 맞춰 문재인 대통령의 방러 기간(21∼23일)에 맞춰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에는 한국 측에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우윤근 주러시아 한국대사, 이규형 위원장,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권대훈 교수,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러시아 측에서는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문화장관, 니콜라이 크로파체프 상트대 총장(한러대화 러시아 측 조정위원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도 장관은 축사에서 “박경리 동상 제막은 선생 개인뿐 아니라 한국 문학에 대한 평가가 있어 이뤄진 것”이라며 “러시아에서 한국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메딘스키 장관은 “박경리 동상 제막은 문화뿐 아니라 한-러 관계가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로파체프 총장은 “러시아의 주요 10개 대학에서 박경리 작가 작품이 강의되고 모스크바 등 4개 도시의 연구기관에서 작품을 연구하고 있다”며 “‘토지’ 2권도 올해 내로 번역되고 앞으로 관련 영화가 있으면 러시아인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과 러시아의 인연은 여러 가지로 이어지고 있다. 한러대화 문화예술분과는 박경리 선생의 문학 세계를 조망하는 연례 학술 세미나를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한러대화와 토지문화재단은 ‘토지’ 제1권을 완역해(번역자 박미하일 선생) 2016년 11월 모스크바에서 출판했다. 앞서 2012년엔 모스크바대 출신의 여류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가 국내 유일한 세계 문학상인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인구 고령화와 보건의료 수요 증가로 의사 약사 등 의료 전문인력 수요가 크게 늘고 있으나 공급은 많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지방 거점 국립대의 약사 양성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거점 국립대의 역량 강화가 지역 발전을 견인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현 정부가 중점 추진 중인 지역균형 발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지적이다. 또 수도권과 일부 지방에만 집적된 바이오산업 및 보건의료산업 기반을 다핵화해 지역 실정에 맞도록 성장 동력화한다면 수도권 쏠림을 막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 전문인력 공급난 속 정원 동결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민주평화당 유성엽 의원실에 보낸 ‘입법조사 회답’에 따르면 2030년 간호사는 15만8000명, 의사 7600명, 약사는 1만742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조사처는 보건복지부의 중장기 보건의료인력 수급동향조사 등을 인용해 이같이 밝히고 약사의 경우 2020년 7139명, 2025년 8950명 등 점차 부족 인원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전했다. 여기에는 바이오 제약시장 성장에 따른 제약 연구약사는 포함되지 않아 산업체의 수요까지 포함하면 약사 전문인력 부족은 더욱 심해질 상황이다. 약사 인력은 2020년부터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입학 정원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1700명으로 동결되어 있다. 현재 전국 35개 대학 약학대학 편입학 정원은 1693명(2016년)이다. 입법조사처는 2020년부터 신약 개발과 보건의료 현장에서 필요한 약사의 양성을 위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약사 전문인력 ‘동네 약국’ 편중 문제 약학 전문인력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인력 편중 현상도 개선되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2011년 정부는 연구 및 임상약사 양성을 목표로 약대를 6년제로 개편하고 15개 대학에 약대를 신설하는 등 490명을 늘렸다. 하지만 졸업생 대부분이 지역 및 병원 약국으로 진출하고 연구 및 제약 관련 연구 분야 진출은 미흡하다. 한국약학교육협의회(2015년)에 따르면 6년제 약대 졸업생 취업은 약국 개업 32.6%, 병원 약국 취업 29.6%, 대학원 12.6%, 제약회사 연구직 취업 8.9% 등이었다. 세계 바이오 의약품 시장은 2013년 1626억 달러에서 2020년 1조3000억 달러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제약사가 뽑는 인력 중 약학 의학 화학 생물학 등 신약 개발에 필요한 전공자는 10% 미만에 불과하다. 미국 일본 등 제약산업 선진국의 경우 연구 및 관련 업무의 약사 비율이 50%인 것과 대비된다. 앞으로 △의약품과 임상 자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임상시험 디자인 설계 △빅 데이터와 인공 지능을 활용한 의료 시스템의 구축과 신약 개발 등에서 약사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지방 공공의료기관은 기본 약무(藥務) 수행에 필요한 약사 인력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보건소에 필요한 약사 수는 352명이지만 실제 근무 인원은 169명(48.1%)으로 법으로 정한 최소 배치인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실정을 반영하듯 5월 대한약사회 약사미래발전연구원이 주최한 ‘병원 조직에서 약제부 조직의 미래 운영전략 세미나’에서 한균희 연세대 약학대학 학장은 “부족한 약사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방 국립대 약대 졸업생들에 한해 일정 기간 지자체장이 지정하는 의료기관에서 의무복무를 하게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 공감을 얻기도 했다. ○ ‘약대 계약학과 입학 정원 전환’ 논란 약학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한 상황에서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약대 계약학과’ 정원을 신설 약대 인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약대 계약학과는 제약 관련 기업이 직원을 4년간 대학에 입학시켜 약사 면허를 취득하도록 하는 재교육 프로그램으로 2011년 ‘산업교육 진흥 및 산학연 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만들어졌다. 현재 전국 14개 대학에서 77명 정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원래 교육부가 배정한 인원은 100명이었다. 23명이 미배정 상태로 남아 있는 것. 하지만 지원자 수가 2017년 4명, 올해는 0명 등으로 유명무실하다. 대학은 ‘입학 조건에 맞는 직원이 없다’, 기업은 ‘차라리 약사를 채용하겠다’, 직원은 ‘약사 취득 후 3∼5년간 의무 근무하는 것이 싫다’ 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다. 활용되지도 못하는 ‘계약학과’ 배정 인원을 약대가 없는 대학에 신설해 전환하자는 논란이 일고 있는 배경이다. 일부 약대 교수는 계약학과가 약사 인력 증가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낭비라고까지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는 약사 인력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필요성이 있지만 전환 여부는 교육부 소관 사항이라는 입장이고, 교육부는 복지부가 약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통보하면 약대 신설 신청 및 심사를 거쳐 이뤄질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입법조사처는 밝혔다.○ 지방 거점 국립대 약대 육성으로 패키지 해결 모색 문재인 정부가 지역균형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국립대 발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지방 거점 국립대 약학대학 역할 강화는 다목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거점 국립대 약대에 천연물 의약품 연구 등 미래성장 전망이 높은 바이오산업 관련 연구 인프라를 확충하면 △대학 경쟁력 강화 △지역 일자리 증가 △바이오 스타트업 환경 조성에도 도움을 주는 등 지역산업 및 경제에 파급효과가 기대된다는 것. 다만 배출되는 약사가 개업으로 편중되지 않고 지역보건 공공성 강화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거점 국립대 약대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사 인력 공급이 부족하고 지역 거점 국립대 약대의 비중과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전국 9개 거점 국립대 중 전북대와 제주대는 약대도 없는 상황이다. 두 대학은 약대를 활용할 충분한 인프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대가 없어 대학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의견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특히 전북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조업을 중단하고 GM대우 자동차 공장은 폐쇄되는 등 지역경제 기반이 더욱 취약해진 상황이라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이 절실하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가진 12일 중국 산시(陝西) 성 시안(西安)의 시베이(西北)대에서는 ‘한국-중국 독립운동 협력 역사교류 세미나’가 열렸다. 시베이대와 주시안 한국총영사관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세미나는 항일 운동 시기 시안에서 한중이 어떻게 손을 잡고 항일 독립 운동을 벌였는지 양국에서 2명씩 4명의 전문가가 주제 발표를 했다. 독립 운동 과정에서 시안이 중요한 장소 중의 한 곳이라는 점은 이미 알려졌고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2차 대전 후반기인 1940년 충칭(重慶)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이 2년간 시안에 옮겨와 있었다는 점을 알려졌지만 미국 전략첩보부대(OSS)와 공동으로 추진한 한반도 진공 계획 ‘독수리 작전’을 준비했던 훈련 장소는 올해 처음 확인됐다.(동아일보 2월 28일 단독 보도) 이날 세미나에서 눈길을 끈 것은 중국 학자들이 공산당과 독립군과의 관계를 강조한 점이다. 시베이대 실크로드연구원 리강(李剛) 교수는 “오늘 한반도와 관련해 지구촌에서 중요한 회의가 두 개가 열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두 아시다시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입니다. 또 하나는 무얼까요. 바로 여기서 열리고 있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 교류 세미나입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날 소규모 세미나를 북미 정상회담과 나란히 비교한 것은 분명 과장된 표현이지만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앙금’으로 소원해진 한-중 관계를 개선하려는 중국 내부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의미가 적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통해 정상 국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김 위원장이나 북한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리 교수의 발언은 중국의 한국에 대한 태도도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강국 주시안 총영사는 “사드 갈등이 한창 일 때 중국측이 한중 일반 학술대회도 갑자기 취소하던 때와는 천지차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행보에 나선 뒤 북-중, 북-미, 남-북 관계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한-중 관계에도 훈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날 세미나는 시안에서 한국과 중국이 어떻게 손을 잡고 항일 독립 운동을 벌였는지가 주제였지만 광복군과 공산당의 협력 관계를 강조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중국 내 임시 정부가 상하이(上海)에서 창사(長沙) 항저우(杭州) 충칭(重慶) 등으로 옮겨 다닐 때 주로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의 도움을 받았으나 마오쩌둥(毛澤東) 휘하의 공산당과도 적지 않은 인연이 있었다는 점도 강조됐다. 바이건싱(拜根興) 산시사범대 역사문화학원 교수는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광복군이 창설될 때 공산당 지도자인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창당 멤버인 둥비우(董必武) 등도 참가해 서명했다”며 “시안 인근 공산당 성지 옌안(延安)과 독립군 성지 시안은 산시 성의 한 곳에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 교수는 “이범석 장군을 모신 중국인 근무병 류(劉)모 노인을 면담한 내용이 2005년 8월 ‘시안만보’에 실렸고, 2014년 6월 ‘화상(華商)보’에는 항전 시기 시안은 광복 활동에 참여하려는 한국 청년들의 성지였다는 내용이 대서특필됐다”고 말했다. 시베이대 리웨이(李偉) 교수는 “김구 주석이 이끄는 임정 등 독립운동 지원은 주로 국민당이 한 것은 맞지만 항일 투쟁이라는 목표에서는 공산당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중국 공산당은 ‘6·25 전쟁에 참전해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아무리 한일 관계가 좋아져도 ‘일제시대와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주범’이라는 역사 적 각인을 지울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싱가포르 회담으로 6·25 때 전쟁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양국 정상이 전쟁 후 처음 만나 지구촌에 남아있는 마지막 냉전 구조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이런 즈음에 중국이 6·25 전쟁 전에는 공산당이 한민족과 ‘공동 항일의 역사’가 있다며 우의를 강조하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반도 비핵화 무드’가 주는 또 다른 긍정적 효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지방에서 열린 세미나 규모는 작아도 의미는 작지 않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했다. 단국대 사학과 한시준 교수(동양학연구원장)는 중국 학자들이 언급한 ‘시안과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상세한 발표에서 “시안에는 임시정부가 군사특사단을 파견해 한인 청년 등을 모집했고, 한국청년전지공작대라는 군사조직이 시안에서 활동했다”며 “행사가 열린 시베이대에도 한국 청년(군사)훈련반이 설치돼 3기까지 배출됐다”고 소개했다. 다만 한 교수는 “임정 청사가 옮겨 다닌 곳을 다니면 피난살이 얘기만 듣지만 시안은 광복군이 한반도에 진입하기 위해 준비하며 희망을 품었던 생명력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청산리 봉오동 전투 현장은 산 계곡 뿐인데 반해 시안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항일 무장투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시안이 가진 의미를 강조했다. 광복군이 국내에 진입하기 전 일본이 항복했으며 시안에서 일제의 항복 소식을 들은 김구 주석은 기뻐하기보다 국내 진공으로 무장 투쟁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이성환 주시안 부총영사는 “시안 시내의 광복군 사령부가 있었던 ‘얼푸제(二府街) 4호’는 현재 일반 상가가 빼곡히 들어서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사학과 염인호 교수는 현지에서 발간된 ‘지우왕(救亡)일보’, ‘제팡(解放)일보’ 등의 보도를 중심으로 ‘조선의용군의 항일 투쟁과 한중 연대’를 소개했다. 지우왕일보 1947년 9월 8일자는 “조선이 병탄되지 않았다면 동북이 병탄되지 않았을 것이고 동북이 병탄되지 않았다면 적들이 감히 중국 전국을 침략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고 한중 양국이 일본 제국주의 앞에서 공동 운명이었음을 강조했다. 이 신문은 “조선 민족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며 1919년의 3·1 만세 운동을 소개했다. 제팡일보 1942년 9월 20일자는 홍군의 주더(朱德)가 항일 투쟁에서 희생된 한인들에 대해 “숭고한 국제주의 정신을 발휘해 중국의 민족해방 전쟁을 지원하다 희생됐다”고 전했다. 조선의용대의 투쟁이 중국의 해방전쟁과 같은 항일 투쟁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강국 주시안 총영사는 “시안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빈번한 교류가 이어진 곳이자 1940년대에는 다양한 항일 활동이 전개된 곳”이라며 “2014년 중국 정부의 협조로 광복군 주력부대인 제 2지대가 주둔했던 시안 창안(長安) 구 두취(杜曲) 진에 표지석 기념공원도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 이 총영사는 “다만 충칭 사령부를 복원하기로 한 가운데 시안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곳에도 옛터를 기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오늘 한반도와 관련해 지구촌에서 중요한 회의가 두 개 열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두 아시다시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무얼까요. 바로 여기서 열리고 있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 교류 세미나입니다.” 12일 오후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시베이(西北)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시베이대 실크로드연구원 리강(李剛) 교수는 이날 세미나가 한중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시베이대와 주시안 한국총영사관 주최로 양국 전문가 2명씩 4명이 주제 발표를 한 소규모 세미나를 북-미 정상회담과 나란히 비교한 것은 분명 과장된 표현이다. 하지만 많은 의미를 함축한 말이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나선 뒤 북-중, 북-미, 남북 관계가 요동치는 가운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앙금’으로 소원해진 한중 관계를 개선하려는 중국 내부의 분위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통해 정상 국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김 위원장이나 북한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리 교수의 발언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도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강국 주시안 총영사는 “사드 갈등이 한창일 때 중국 측이 한중 일반 학술대회도 갑자기 취소하던 때와는 천지 차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날 세미나는 시안에서 한국과 중국이 어떻게 손잡고 항일독립운동을 벌였는지가 주제였지만 광복군과 공산당의 협력 관계를 강조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중국 내 임시정부가 상하이(上海)에서 창사(長沙) 항저우(杭州) 충칭(重慶) 등으로 옮겨 다닐 때 주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 도움을 받았으나 마오쩌둥(毛澤東) 휘하의 공산당과도 적지 않은 인연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이건싱(拜根興) 산시사범대 역사문화학원 교수는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광복군이 창설될 때 공산당 지도자인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창당 멤버인 둥비우(董必武) 등도 참가해 서명했다”며 “시안 인근 공산당 성지 옌안(延安)과 독립군 성지 시안은 산시성의 한 곳에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 교수는 “2014년 6월 ‘화상(華商)보’에는 항전 시기 시안이 광복 활동에 참여하려는 한국 청년들의 성지였다는 내용이 대서특필됐다”고 말했다. 단국대 사학과 한시준 교수(동양학연구원장)는 “시안에는 임시정부가 군사특사단을 파견해 한인 청년 등을 모집했고, 한국청년전지공작대라는 군사조직이 시안에서 활동했다”고 발표했다. 한 교수는 “행사가 열린 시베이대에 한국청년(군사)훈련반이 설치돼 3기까지 배출됐고 무엇보다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이 초기 2년간 시안으로 옮겨와 있었다”고 소개했다. 미군 특수부대인 OSS와 광복군이 함께 한반도 침공 계획인 ‘독수리 작전’을 준비한 훈련 장소가 올해 처음 확인되기도 했다(본보 2월 28일 단독 보도). 서울시립대 사학과 염인호 교수는 ‘조선의용군의 항일 투쟁과 한중 연대’에 대해 발표했다. 시베이대 리웨이(李偉) 교수는 “김구 주석이 이끄는 임정 등 독립운동 지원은 주로 국민당이 한 것은 맞지만 항일 투쟁이란 목표에서는 공산당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중국 공산당은 ‘6·25전쟁에 참전해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아무리 한일 관계가 좋아져도 ‘일제강점기와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주범’이란 역사적 각인을 지울 수 없는 것과 같다. 싱가포르 회담으로 6·25 때 전쟁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양국 정상이 전쟁 후 처음 만나 지구촌에 남아있는 마지막 냉전 구조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이런 즈음에 중국이 6·25전쟁 전에는 공산당이 한민족과 ‘공동 항일의 역사’가 있다며 우의를 강조하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반도 비핵화 무드’가 주는 또 다른 긍정적 효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지방에서 열린 세미나 규모는 작아도 의미는 작지 않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했다. ―시안에서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기의 담판을 하면서 ‘거래의 기술’ 등 자신이 쓴 책에서 강조했던 거래 원칙이나 협상 노하우를 얼마나 발휘했을까. ‘거래의 기술’에서 제시한 11가지 사업 원칙 중 첫 번째가 ‘크게 생각하라’다. ‘빅싱크’에서도 “무엇을 하더라도 크게 생각하라”는 것이 핵심 충고다. 그가 역대 정권에서 이루지 못한 큰 목표를 세우고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을 하는 등 일단 ‘빅싱크’를 하고 있음은 보여주고 있다. ‘CEO 트럼프 성공을 품다’의 11장(章) ‘승리하는 협상’ 요령에서는 “기대 때문에 스스로를 구속하지 말라”며 유연한 협상을 하라고 충고한다. “가끔씩은 최선의 협상을 위해 기어를 바꾸기도 하고 카멜레온같이 되어 보라”고 한다. ‘거래의 기술’에서 ‘선택의 폭을 넓히라’고 했던 것을 보완했다. 회담을 돌연 취소했다 하루도 안 지나 다시 하겠다고 하거나, 회담 하루 이틀 전까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없는 회담은 안 된다’고 했다가 공동성명에서 빠진 게 유연한 협상의 기술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거래의 기술’에서 ‘발로 뛰면서 시장을 조사하라’는 원칙은 부동산 거래에서 중개인, 자문회사, 비평가를 믿지 말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단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간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북-미 직거래’에 직접 나섰다. 저서 ‘어떻게 결정하는가’에서 제시한 ‘승자의 협상 원칙’ 첫 번째는 “상대방이 어느 정도 평정을 잃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지난달 24일 돌연 회담을 취소한다며 서한을 보내고 언론에 공개하거나 회담 후 김 위원장이 매우 똑똑하다며 폭풍 칭찬을 한 게 이런 심리전의 일환인지,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그는 ‘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에서 “대통령도 국가를 위해 큰 거래가 성사되도록 만드는 유능한 협상가일 뿐”이라고 밝혀 대통령도 비즈니스 협상가가 계약을 하듯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회담 후 비핵화 비용을 한국과 일본에 돌리고 미국의 부담을 줄이려 한 작전이 반영됐다. 회담 후 1시간 5분간 기자회견을 하며 성과를 과시한 것은 사업 원칙의 ‘언론을 이용하라’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세계 경제에서 자유무역주의가 퇴조하고 보호무역주의 추세가 높아지는 것은 중국 경제의 부상과 관련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과 중국 세계 주요 2개국(G2) 간 무역 분쟁이 격화하고 양국 모두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이들 양국을 교역 1,2위국으로 두고 있는 한국경제는 ‘쌍코피 터지는’ 이중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경제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생산한 값싼 제품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세계 각 국에서 안정적인 소비 생활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중국 경제는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견제를 불러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세계 경제에 보호주의 파고(波高)를 불러일으키는 형국이다. 서강대 지암남덕우경제연구원(원장 이인실)과 서강경제포럼(회장 이철순) 공동 주관으로 1일 서강대에서 열린 ‘글로벌 무역 갈등 확산, 한국 경제의 활로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국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가 높아가는 미국과 국가자본주의 전략으로 사실상 장벽이 높은 중국이었다.송의영 서강대 경제학부 학장은 ‘트럼프 정부와 글로벌 무역 갈등’ 발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 선거(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를 선출하는 것으로 대통령 집권 2년차에 치러저 중간 평가 선거로 불림)를 앞두고 세계무역질서(WTO) 질서에 도전하는 강한 보호무역주의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미중간 무역협상이 타협안은 도출했으나 보다 강력한 성과를 내야 할 상황이오면 언제든 무역전쟁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는 대선 시즌이 되면 다시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차별로 벌어지는 보호주의 파고 속에 미국은 동맹국의 신뢰도 추락이라는 장기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송 교수는 다만 트럼프가 반(反) 세계주의, 반 엘리트주의로 가는 배경에는 중국 경제가 미국의 제조업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것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는 트럼프는 미국의 무역 적자가 중국 등 외국의 무역에서의 반칙 결과이고, 무역적자가 미국 제조업 일자리 파괴의 주요 요인이라고 주장해 경제학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트럼프의 보호주의로 일자리를 보전하는 사람은 수만 명이지만 이 사람들이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러스트 벨트’에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쉽게 보호주의를 내려놓기 어려운 이유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최고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리는 등 대기업을 포함한 전통 보수를 껴안으면서도 WTO 질서에 도전하는 강한 보호무역주의를 필두로 한 신우익적 정책을 펴는 양면성을 펴는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중국의 불공정 행위로 미국의 제조업이 죽어간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대중 강경론자인 피터 나바로 교수를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송 교수는 트럼프가 전시 등 비상 상황에서나 발동하는 ‘무역확장법 232조’(안보를 이유로한 관세나 수입 제한)에 따른 행정명령으로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했으나 제 1의 대미 무역 흑자국인 중국은 철강 수출이 거의 없어 캐나다 한국 브라질 멕시코 등 주로 우방국들만 피해를 보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미국이 1980년대에는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국 일본을 환율(플라자 합의)로 굴복시킨 적이 있으나 집권 2기를 맞아 더욱 권력이 공고해지고 경제력이 높아진 시진핑(習近平) 2기의 중국은 일본과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미중간 통상 분쟁이 쉽게 판가름 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정인교 인하대 부총장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중국 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가장 큰 피해를 주고 있다”며 “중국은 국가주도 경제 체제와 전략적 산업정책을 추진하면서 빠른 성장이 가능했으며 점차 보호무역주의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국은 1,2위 교역대상국인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트럼프의 보호주의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중국의 보호주의도 점차 높아져 ‘중화인민공화국’을 ‘중화보호공화국’이라고 비꼬기도 한다고 정 부총장은 소개했다. 중국의 보호주의는 트럼프의 관세 폭탄 같은 형태가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주요 산업을 국영 기업이 운영하면서 전략적 산업화하는 국가자본주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정 부총장의 분석이다. 중국에는 현재 15만5000개의 국유 기업에 3700만 명 가량이 근무하고 있으며 매출액 기준으로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83%나 된다고 정 부총장은 소개했다. 정 부총장은 ”미국에 대해서는 글로벌 연대에 참여하고 일부 업종은 대미 투자 확대를 통해 대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부총장은 ”중국은 중국식 국가주의 산업통상정책, 당 지도하의 국유기업 경제체제, 중국 내 영업 애로 증가 등 리스크가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리스크 관리는 놀랄 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대중국 수출 구조가 10년 전 중간재 70%, 소비재 3%였는데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을 들었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서 15%로 줄어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과 대비된다고 정 부총장은 지적했다. 김시중 서강대 국제대학원 원장은 ”국제 자유무역체제가 위험에 처하고 양자주의로 흐른데는 중국 경제의 부상이라는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막대한 대미 흑자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보호주의 보호주의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하지만 트럼프가 대외 교역에서 불공장 등을 지적하며 보호 장벽을 쌓고 있지만 중국의 신산업 부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신산업 성장이 중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고 결국은 대외 경쟁력 제고에도 밑바탕이 됐음을 지적한 것이다. 김 교수는 중국 경제가 신용카드를 건너뛰고 휴대전화 기반의 QR코드 경제로 도약(leap-frogging)한 것이나 화석 연료 자동차에서 전기자동차 등 차세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중국의 수출의존도가 10여년 전 35%로 정점에 오른 뒤 최근 20% 이하로 내려가는 등 내수 경제가 탄탄해 지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인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안보를 이유로 관세부과와 수입량 제한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유럽연합(EU)도 지난해 말 관련 규정 개정해 맞대응하는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EU가 지난해 10월 합의한 반덤핑 관련 규정은 반덤핑 조사에서 대상 역외국을 ‘시장 경제국’과 ‘비시장 경제국’으로 구분하지 않고 모든 역외국에 대해 ‘시장 왜곡’을 기준으로 정했다. 이에 따라 ‘비시장 경제국’인 중국이 ‘시장 경제국’ 지위를 얻어도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맞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 현재 시장경제국인 국가에도 반덤핑 관세가 적용될 수 있다. 덤핑의 기준은 수출국 내 판매가격이 아니라 ‘벤치 마크 가격’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비슷한 경제 수준에서 수출하는 제 3국 내 생산가 및 판매가를 벤치 마크 가격으로 정하는데 참고한다. 이는 기준 가격 산정에서 자의적 판단이 들어갈 여지가 많다. 한편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 경제에서 보호 무역주의가 확대되어 가는 상황에서 비핵화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북한도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 내부 경제로의 확장은 물론 중국 동북 3성과 러시아 연해주, 북한을 잇는 개발이나 북한을 통과해 신의주 베이징까지 이어지는 고속철도 건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교수도 ”비핵화 진전에 따라서는 남북한 경제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며 ”한반도 비핵화에 나섰던 6자 회담 참여국이 한반도 긴장 완화로 인한 국방비 감축 비의 일부만이라도 북한 개발에 사용한다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실 교수는 ”한국 경제는 에너지 위기, 외채 위기, 아시아 금융위기 등 많은 파고를 겪으며 성장했다“며 ”G2 보호무역 도전의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북-미 정상회담 준비 협상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가던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베이징(北京)에서 3번이나 비행기 시간을 바꾸며 1박 2일간 머무른 것은 큰 변화의 물줄기 앞에서 요동치는 북-중 관계를 읽게 한다. 김정은이 터뜨린 ‘한반도 비핵화’ 뇌관은 남북, 북-미뿐 아니라 북-중 관계도 흔들어 놓고 있다. 김정일과 김일성대를 다녔던 한 전직 베이징대 교수는 수년 전 특파원 시절 기자에게 “북한의 핵실험에도 중국이 소극적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미국에 의탁, 투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미국의 안전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 때문인데 북한이 미국과 ‘직거래’하면 안보 전략적 중요성이 없어져 버리는, 중국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하며 핵무력을 완성해 갈 때 중국은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만큼의 제재에 나서기보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미가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안보 위협 때문에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있으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미국이 풀어야 한다는 논리도 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나서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2년 집권 이후 외면해 온 김 위원장을 한 달여 만에 두 번이나 만났다. 중국은 북핵 저지를 위한 ‘중국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북-미 해결론’을 폈으나 ‘차이나 패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차이나 패싱’ 트라우마는 북-중 양국이 혈맹의 뿌리로 삼는 6·25전쟁 시절까지 올라간다. 김일성은 전쟁 개시 사흘이 지난 후에야 무관 한 명을 보내 남침 사실을 통보해 마오쩌둥(毛澤東)을 화나게 했다. 김일성은 개전 후에도 중국의 참전을 꺼렸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허가 찔려 38선이 돌파당해 패전의 궁지에 몰리자 다급히 지원을 요청했다. 김일성의 주체 노선도 중국의 영향력 배제가 주요 목적 중 하나다.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다 중국으로 달려간 것도 트럼프 정부가 ‘무장 해제’ 수준의 비핵화를 요구하자 안보 보험용으로 손을 내민 형국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보험이다. 시 주석이 지난달 7일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김정은을 두 번째 만났을 때 “조중(북-중) 두 나라는 운명공동체, 변함없는 순치(脣齒·입술과 이)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6·25 때 긴급 구원에 나선 것을 떠올리게 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중 간 ‘혈맹’이나 ‘순치’ 관계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 등 주로 중국 지도자들이 북-중 관계에서 튕겨 나가려는 북한을 잡을 때 썼다. 1980년대 후반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동구의 사회주의 형제 국가들이 잇따라 친서방 국가로 회귀해 북한은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갔다. 1990년 러시아에 이어 1992년 중국마저 한국과 수교하자 북한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이때 북-중 순치 관계는 사실상 끝났다는 분석이 많다. 더욱이 핵과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중국이 점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대국의 책임을 명분으로 제재 강도를 높이자 북-중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중국 내에서 ‘핵개발하는 북한과 중국은 더 이상 동맹이 아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이어졌다. 1962년 북-중 상호원조조약에서 전쟁 발생 시 ‘자동 개입’ 의무도 핵을 개발하는 북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논리도 제시됐다. 북한이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이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내걸고 미국으로부터 ‘안보와 경제 발전’이라는 두 가지를 얻는 빅딜에 나섰다.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북한과의 동맹’은 거추장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이제 북한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자 중국과의 ‘혈맹’ ‘순치’ 관계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두 번째로 시 주석을 만나고 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쌍심지를 켜고 ‘시 주석을 만나고 오더니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중국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이제는 중국이 북한의 배신을 우려하고 있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차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판문점 북측 통일각으로 넘어간 2시간 동안 군 통수권 공백이 생겼다는 지적과 관련해 ‘일시적 권한 이양’ 규정 필요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통일각 회담이나 평양에 가서 회담을 하는 것은 헌법(71조)상 명시된 ‘궐위’ ‘사고’ 등 유고 상황이 아니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이양해야 하는 상황인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떤 장치가 필요한 지가 논란의 초점이다. 문 대통령도 2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앞으로 북측 지역에서 전격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에 대비해 유사시 군통수권 이양 방안 등 직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수정 헌법 25조에서 대통령이 ‘평상시 스스로 임시적으로’ 권한을 이양하도록 한 규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의 직무수행 불능과 승계’에 관한 수정 헌법 25조 3절은 “대통령이 (스스로) 상원 임시 의장과 하원의장에게 대통령의 권한과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공한을 보내면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그 권한과 임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했다. 상원 임시 의장은 집권당 상원의원 중 가장 오래 재임한 의원이 맡는다. 이는 제1절 “대통령이 면직, 사망 또는 사임하는 경우에는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는 항목이나 제4절의 “부통령과 내각 각료 과반수가 상원 임시 의장과 하원 의장에게 대통령이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서면을 보내면 부통령이 즉각 대통령 권한 대행한다”는 이른바 ‘비 자발적 권한 이양’과도 구별된다. 대통령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임시적으로 권한을 이양하는 조치를 취했다가 다시 찾아오는 조항이다. 이 규정에 따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5년 대장암 수술을 받을 때 8일 동안 권한을 조지 H W 부시 부통령에 위임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과 2007년 대장 내시경 수술을 받으면서 각각 2시간 미만 동안 리처드 체니 부통령에게 권한을 이양했다. 수정 헌법 25조 3절은 지금까지 이처럼 의료 필요에 따라 세 번 사용된 것이 전부다. 경희대 서정건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대통령은 긴급 시 ‘핵 버튼’을 눌러야 하는 중책을 맡은 자리”라며 “수술을 위해 마취 상태에 있는 등 잠시라도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이같은 규정을 두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수정헌법 25조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1963년 11월 22일) 사건을 계기로 논의되기 시작해 1967년 2월 통과됐다. 서 교수는 “대통령 권한 이양에 관한 규정은 매우 중대한 내용이어서 논의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수정 헌법에 포함할 만큼 큰 결정(big decision)으로 다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술이나 통신두절 등 한반도에서 어떤 상황을 ‘평상시 일시적인 권한 행사 불능 상황’으로 볼 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임시 권한 이양’ 조치 등도 마련될 것이라고 지적한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차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판문점 북측 통일각으로 넘어간 2시간 동안 군통수권 공백이 생겼다는 지적과 관련해 ‘일시적 권한 이양’ 규정의 필요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통일각 회담이나 평양에 가서 회담을 하는 것은 헌법(71조)상 명시된 ‘궐위’ ‘사고’ 등 유고 상황이 아니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이양해야 하는 상황인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떤 장치가 필요한지가 논란의 초점이다. 문 대통령도 2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앞으로 북측 지역에서 전격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에 대비해 유사시 군통수권 이양 방안 등 직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수정헌법 25조에서 대통령이 ‘평상시 스스로 임시적으로’ 권한을 이양하도록 한 규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의 직무수행 불능과 승계’에 관한 수정헌법 25조 3절은 “대통령이 (스스로) 상원 임시 의장과 하원의장에게 대통령의 권한과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공한을 보내면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그 권한과 임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했다. 상원 임시 의장은 집권당 상원의원 중 가장 오래 재임한 의원이 맡는다. 이는 제1절 “대통령이 면직, 사망 또는 사임하는 경우에는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는 항목이나 제4절의 “부통령과 내각 각료 과반수가 상원 임시 의장과 하원의장에게 대통령이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서면을 보내면 부통령이 즉각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는 이른바 ‘비자발적 권한 이양’과도 구별된다. 대통령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임시적으로 권한을 이양하는 조치를 취했다가 다시 찾아오는 조항이다. 이 규정에 따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5년 대장암 수술을 받을 때 8일 동안 권한을 조지 부시 부통령에게 위임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과 2007년 대장내시경 수술을 받으면서 각각 2시간 미만 동안 딕 체니 부통령에게 권한을 이양했다. 수정헌법 25조 3절은 지금까지 이처럼 의료상 필요에 따라 세 번 사용된 것이 전부다. 전문가들은 수술이나 통신 두절 등 한반도에서 어떤 상황을 ‘평상시 일시적인 권한 행사 불능 상황’으로 볼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임시 권한 이양’ 조치 등도 마련될 것이라고 지적했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우크라이나는 국토 면적(60만3600km²)이 한반도의 3배가량인 데다 60%가 경작지여서 유럽 국가 중 가장 넓은 농경지를 가진 곡창지대다. 하지만 산과 강 같은 자연방어선이 없어 어느 한 민족이 터전을 잡고 방어하기가 쉽지 않아 주인이 자주 바뀌었다(허승철 ‘우크라이나 현대사’). 몽골도 이곳을 점령해 킵차크한국(汗國)을 세웠다 물러갔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크림 전쟁(1853∼1856년)도 러시아와 오스만튀르크, 영국, 프랑스 등이 중간에 낀 크림반도를 무대로 싸운 것이다. 러시아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미국과 서유럽이 제재를 가한 이후 우크라이나는 서유럽 신냉전의 진원지가 됐다. 강대국 세력이 ‘전략적 단층선(strategic fault line)’에서 맞부딪치는 ‘섀터 벨트(shatter belt·분쟁 지대라는 뜻의 지리학 용어)’의 한 곳이 됐다. 미중 기 싸움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진통을 겪는 한반도와 종종 비견되는 이유다. 최근 한-러대화(조정위원장 이규형 전 주러시아 대사) 등 주최로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신범식 서울대 교수는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단층선상에서 중견국 외교를 펼쳐야 하는 ‘동류 국가(like-mined country)’”라며 “우군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크림반도 흑해 연안 휴양지 얄타의 리바디아 궁전에서는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 3국 정상이 한반도 분할을 결정하는 얄타 회담을 가져 한반도와는 가슴 아픈 인연도 있다. 일제강점기 극동에서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 후손도 2만∼3만 명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5일 크림반도 케르치와 러시아의 타만을 잇는 ‘크림대교’ 개통식에 참석해 크림반도 영유권을 강조하는 ‘트럭 퍼포먼스’를 벌였다. 오렌지색 러시아제 트럭 ‘카마스’를 모는 장면을 트럭 안에 설치된 카메라로 러시아 전역에 생중계했다. 크림대교(길이 19km)는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 대교’(17.3km)를 제치고 유럽 최장 다리가 됐다. 러시아는 크림반도가 오랜 역사 동안 자국 영토였고 스탈린이 1954년 양도한 것을 되찾아 왔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물론이고 서유럽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들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 크림반도 병합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약속했던 안전보장 약속을 묵살한 것이다. 소련 해체 후 물려받은 핵무기로 세계 3위 핵 강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핵과 핵물질을 러시아로 보내고 연구소 해체, 과학자 해산 등 영구적인 핵 폐기 조치를 취했다. 20세기 최악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를 경험한 ‘핵 트라우마’도 있었다. 핵 폐기 조치 전 우크라이나 의회와 군부 등이 “핵을 포기하면 소련으로부터 정치적 군사적인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반발하자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안전보장 협약을 맺었다. 뒤에는 중국도 보증국으로 참가했다. 조약에는 ‘국경 변경은 평화적인 방법과 합의된 수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다’고 명문화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지역 의회 결의와 주민 투표 등을 명분으로 자국 영토에 병합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의지를 밝힌 뒤 미국과 기 싸움을 벌이는 핵심도 체제 안전 보장일 것이다. ‘강대국이 약속을 안 지키면 방법이 없다’는 우려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푸틴이 트럭을 몰고 크림반도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북한 급변사태가 났을 때 중국 인민해방군이 압록강대교를 건너오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비약일까. 중국은 북한 정권이 붕괴되거나 최고지도자 신변에 급한 일이 생기는 등 혼란이 발생하면 전략적 완충지대를 확보하고 핵무기 안전을 지키는 등의 명분으로 군을 투입하고 심지어 북한 일부를 분할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사태처럼 한국과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평양의 부동산업자로부터 하루에도 몇 통씩 단둥(丹東)의 땅값을 물어보는 전화가 걸려온다.” 한 달에도 몇 차례 북한을 드나드는 정지융(鄭繼永) 중국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 한국조선연구중심 주임은 이달 초 한국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4·27 남북 정상회담 후 평양과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최근 부동산 투자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거꾸로 중국 투자자의 북한 투자 움직임이 빨라지고 북한 내 부동산 투자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는 소식도 잇따르고 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타임스는 최근 “중국의 투기꾼들이 북한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외국 부동산 중개 전문 웹사이트 유루(有路·)는 아예 북한 부동산의 비공식적인 매입 방법 등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북한 부동산 시장 투자는 가능할까. 형식적으로는 외국인이 차익을 목적으로 직접 북한에서 부동산 사업을 벌이거나 매매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암암리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북한이 2009년 제정한 ‘살림집법’에 따르면 모든 주민은 각 시도 도시인민위원회가 발급한 ‘국가 살림집 리용허용증(입사증)’을 받은 뒤 위원회가 지정한 아파트에서 살아야만 한다. 북한에서 모든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국가 소유다. 결국 북한에서의 부동산 거래는 살림집(아파트) 이용권을 사고파는 셈이다. 하지만 국가가 주택 공급을 독점하는 것은 옛말이고 한국에서처럼 일반인의 재테크 용도로 주택이 지어지고 거래도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통일연구원 정은이 박사는 “북한도 정부가 필요하거나 계획한 주택을 짓기도 하지만 오래전부터 돈주(돈 있는 개인)가 수익성 높은 토지를 물색한 뒤 아파트를 지어 판매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대부분의 주택 공급이 민간 주도로 진행된다”고 소개했다. 아파트를 다 짓기 전에 선분양하고 재개발지역 주민이 보유한 입사증이 거래된다. 또 주택 거래를 중개하는 ‘데꼬’(거간꾼)도 활개치고 있다.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지도 오래다. 평양에서도 ‘1만 달러 아파트’와 ‘10만 달러 아파트’가 존재한다. 정 박사는 “이미 2015년에 한 채에 20만 달러 아파트가 등장했다”며 “지금은 더 오른 곳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양은 대동강을 중심으로 동평양과 서평양으로 나뉘는데 국가보위부 등 권력기관이 모여 있는 서평양 ‘중구역’의 아파트 가격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말했다. 이는 ‘와크(대외 무역 할당량)’를 챙기거나 장마당 거래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사람이 적잖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평양에 트럼프 타워를 건립하는 날이 올 거라는 일부 전문가의 기대 섞인 관측도 있었지만 우리 기업들의 북한 부동산 시장 진입은 요원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다만 개방이 확대되면 지난해 말까지 지정된 5개 경제특구와 19개 지방 경제개발구 등을 중심으로 점차 외국인 투자 유치도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경제개발구 등 북한 부동산 투자를 겨냥한 ‘북한 펀드’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이 언급될 때 중국에게는 ‘초조함’을 주었지만 러시아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과 관련한 러시아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5월 11일 국립외교원에서 한러대화 국립외교원 북방경제협력위원회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공동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부의 신 북방정책 전략과 과제’ 학술 대회에서는 ‘러시아 패싱’을 넘어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됐다. 홍 교수는 “러시아는 북한 정권의 성립과 발전의 결정적 후원자였고 전통적으로 한반도 문제의 핵심 이해당사자라고 자부를 해왔는데 최근 비핵화 논의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1997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남북미중)에서 배제됐을 때는 크렘린 지도자들은 큰 충격 받았고 대국적 자존심에 큰 손상을 가한 일종의 외교 참사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크렘린은 구소련이 붕괴할 때 보리스 옐친 정부가 성급하게 대북 관계를 멀리하고 친서울 일변도 노선을 달려온 것이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인 데 대한 후회와 반성이 있었다. 러시아가 주러 한국 대사관 외교관을 악기 밀반출 혐의로 추방하고 북한 공작원 소행으로 확신이 되는 블라디보스톡 한국 총영사 피살 사건도 부실하게 처리한 것도 일종의 외교 보복이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과거의 경험으로 보나 지정학적 가치로 보나 한반도 평화구도 논의 과정에서 러시아를 패싱하면 적지 않은 외교적 후유증과 손실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 해양과 대륙을 잇는 한반도, 러시아와의 협력 지금도 이르지 않다 성원용 인천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국민의 정부 ‘철의 실크로드’, 참여 정부의 ‘동북아 시대 구상’을 진전시킨 것이지만 북한과 불화해 실행할 수 없었다”며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할 지렛대이자 통로로서 러시아와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는 강대국간 강대강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선택지가 없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네트워크 다변화와 복합화를 위해 주변 4강 중 상대적으로 소원했던 러시아를 상대로 한 경제 문화 외교 등 다방면의 노력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극동 지역 개발도 촉진될 가능성이 크지만 극동 지역 개발에 따른 기회가 한국까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극동 경협이 러시아 극동 → 북한 접경지역 → 북한 특구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북으로 가는 문이 열려도 한국이 극동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서성이다 사업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신범식 서울대 교수는 “한반도는 해양과 대륙 세력 사이의 ‘지정학적 단층선(geopolitical fault line)’에 위치해 ‘중간 국가’로서의 한계가 있어 이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 ‘북방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1988년 올림픽 이후 한 차례 물결이 일어난 이후 평창 올림픽 이후 북한 비핵화 진전 기대감 속에 다시금 ‘신북방 정책’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보장 및 평화체제를 교환하는 빅딜이 성사되어도 구체적인 실현은 긴 과정이 될 전망이며 무엇보다 북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북방 정책이 좌절되는 ‘북한 환원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북한 환원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앙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처럼 지정학적 단층선 상에 있으면서 중견국 외교를 펼치는 ‘동류 국가들(like-mined countries)’을 국제 무대에서 우군으로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반도 지리적 이점의 명암 김태환 국립외교원 교수는 “대륙과 해양 사이의 지리적 위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어 게이트웨이도 되지만 강대국 각축 사이에 끼인 ‘섀터 벨트(shatter belt·분쟁 지대란 뜻의 지리학 용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공간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네트워크가 중요하고 스페이스보다 플로우가 강조된다”며 “네트워크는 교통 통신 물류 연결만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는냐가 더 중요하고, 무역만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대 유라시아 정책을 펴며 진출할 때 상품과 서비스 등을 넘는 공통의 ‘아이덴터티’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제 교류만이 아닌 ‘주제 외교(themed diplomacy)’가 중요하다는 것. 북유럽 국가들의 ‘주제가 있는 개도국 지원(ODA)’을 한 예로 들었다. 북유럽 국가는 환경 인권 사회복지 등 주제에 중점을 둔 ‘주제 ODA’를 한다고 김 교수는 소개했다. 공유하는 주제가 결정되면 공동의 비전이 나온다며 요즘은 정체성이 언어 문화가 아닌 ‘구성적인 정체성’ ‘롤의 정체성’ 즉 함께 무엇을 해 나갈 것인가가 강조된다고 말했다. 이성우 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은 신북방 정책 추진에서 감성적인 접근도 일부 나타나고 있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인천에서 북한 남포까지 1 TEU(20피트 컨테이너)당 철도 요금은 200달러, 배는 800달러라고 하며 철도 연결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비용은 맞지만 실제로 이 구간은 철도도 배도 아닌 화물차로 갈 거리라고 말했다. 부산~베를린 구간 철도 요금이 1TEU 당 180만원이라며 선박 운송 요금보다 월등히 싸다고 하는 논리에도 숨은 요소가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한국은 철도가 표준궤여서 러시아의 광궤로 환승해야 한다. 국경을 통과하는 절차 비용도 적지 않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을 안쓰는 이유 중에는 철로의 용량이 제한된 것도 있다. 쓰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요율 적용이 양이 많으면 요율을 올린다. 무조건 대륙 철도를 이용하자고만 해서는 안된다고 이 본부장은 말했다. 러시아의 행정 절차가 복잡하고 정책 변경도 잦은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이 본부장은 “농업과 수산업이 러시아로 그대로 진출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며 “‘6차(1차 + 2차 + 3차 = 6차)산업’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원천기술, 중국의 일대일로, 북한의 SOC 북방 협력 가능성 무궁 한국기술벤처재단 김상환 창업센터 센터장은 “한-러 협력에서 창업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위기를 극복한 데는 러시아에서 들여온 많은 원천 기술이 도움이 됐는데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금도 러시아의 원천 기술이 같이 손잡고 세계로 나가는 파트너를 찾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이런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김 센터장은 강조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스크바는 어느 면에서 실리콘밸리보다 창업하기 쉬운 도시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러시아 원천 기술과 한국의 상용화된 기술이 손잡고 가는 것과 관련 이스라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가장 빠른 시간내에 ‘스타트업 국가’로 변신한 것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초반 소연방 붕괴 과정에서 유태인 자치구의 100만 명에 이르는 유태인을 이스라엘로 이민온 것이 바탕이 됐다는 것. 이스라엘에는 러시아어만 쓰는 마을도 여럿 있는데 이스라엘에서 창업센터와 테크노파크가 여기 저기 생겨나 창업 국가가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고 김 센터장은 소개했다. 원동욱 동아대 교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주제로 한 발표에서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중간 일대일로 심포지엄에서 중국은 이미 한반도를 일대일로의 공간적 범위로 고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2013년 처음 나올 때는 주로 서진(西進) 전략이었으나 지금은 남미 아프리카 등 전 지구를 포함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소개했다. 원 교수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 신흥공업화전략으로 다른 지역보다 성장률이 2% 이상 높았던 중국 동북 지역이 침체되어 있는 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로 이어지는 축의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소장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북한 인프라에 대해 3가지 개념으로 요약했다. ’불편 불비 민망‘이다. 북한 철도의 평균 속도가 평양~베이징 45km, 일반적으로 20km 이하인데 김여정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남한에 와서 탑승했던 서울~평창은 250km였다”고 말했다. 북한은 천리마 만리마 마식령 속도를 내세우는 등 속도를 중시하는데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안 소장은 북한 투자 환경에 최근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고 전했다. 평양~원산간 고속도로에 8유로의 통행료를 받는 유료화를 처음 시작한 것도 한 예다. 평양~나진 하산 구간 에 별도 합작회사를 만들어 외부 자본으로 건설하려는 말도 나오는 것처럼 북한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북한 인프라 투자에 중국과 러시아와 손잡고 들어가는 것이 ’금강산 관광구‘처럼 북한이 일방적으로 봉쇄 몰수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라는 말도 나온다. ● “러시아 협력, 잠재성 아닌 현실화할 때” 조병제 국립외교원장은 “3년전에만 해도 러시아 지인들을 만나면 한러 협력 잠재력이 크다고 말하곤 했지만 지금은 잠재성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할 시점”이라며 “4·27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 비핵화의 물꼬를 틀 뿐 아니라 신북방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재남 국립외교원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4번째 임기를 시작해 러시아의 경제침체 극복을 위한 새로운 6년이 시작됐다”며 “신동방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될 여건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4·27 남북정상회담이 신북방 정책 추진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규형 한러대화 조정위원장(전 주러시아 대사)은 “러시아는 북한 핵 위기 초기부터 6자 회담 참여 등으로 많은 역할을 해 왔고 동북아에서 러시아가 주요국인 것이 비하면 최근 한반도 상황 전개에서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는 자국을 지지하지 않은 한국에 섭섭할 수도 있지만 각 국은 사안별로 국익에 따라 이합집산할 수 밖에 없다”며 “한러 관계를 내실화하기 위한 최고 지도자간 소통을 넓히고 깊게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현재 처한 국제 분위기를 볼 때 항공모함을 띄워 (중국의 기세를) 고무해야 할 상황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인 신랑왕(新浪網)은 지난달 30일 ‘자국산 첫 항공모함’인 001A ‘산둥(山東)함’ 시험 항해 날짜를 ‘엄선’해야 한다며 군사평론가 천광원(陳光文)의 견해를 실었다. 그로부터 여드레가 지난 8일 산둥함은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첫 시험 항해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4월 진수식을 가진 뒤 꼭 1년 만이다. 흥미로운 건 산둥함 시험 항해가 시작되기 하루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롄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2차 정상회담을 갖는 등 1박 2일간 머물다 돌아갔다는 점이다. 중국 언론은 아무런 관련 보도를 내놓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산둥함 시험 항해를 함께 지켜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앞서 지난달 12일 하이난(海南)성 싼야(三亞) 일대 남중국해에서 열린 중국 해상 열병식. 시 주석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격으로 군함에 올랐다. 열병식엔 2012년 9월 진수된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함도 모습을 드러냈다. “신시대의 노정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의 분투 가운데서 강대한 인민해군을 건설하는 임무가 오늘날처럼 긴박한 적이 없었다. 인민해군이 세계 일류 해군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 주석이 이렇게 ‘해양대국’을 역설한 지 8일 뒤 랴오닝함은 군함 6척과 함께 태평양 해상에 나타나 첫 함재기 발진 훈련을 벌였다. 미국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항모 굴기’를 향한 중국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① 산둥함은 랴오닝함 업그레이드 버전 지난해 4월 26일 중국선박중공(重工)집단의 다롄 조선소에서 진수식을 가진 산둥함은 빠르면 내년에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남해 함대에 배속돼 함대 본부가 있는 하이난성 싼야를 모항으로 삼는다. 싼야는 필리핀 베트남 등 주변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랴오닝함이 함재기 이착륙 훈련 등 항모 운용을 위한 실험용 성격이 강한 반면 산둥함은 실전 배치용으로 알려져 있다. 남중국해를 놓고 칼빈슨함 등 미국 항모와 기세 싸움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시험 항해에 앞서 산둥함은 5일 항모 운영에 필요한 물자와 병력을 수송하는 데 쓰이는 수송용 헬기인 즈(直·Z)-18 이착륙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산둥함은 랴오닝함의 업그레이드 버전이기도 하다. 랴오닝함은 옛 소련에서 제작하다 중단된 바랴크함을 구입 개조해 만들었다. 산둥함은 랴오닝함을 모방했지만 중국이 자체 제작했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세계 7번째로 항모를 독자 제작한 나라가 된 셈이다. 산둥함은 랴오닝함을 본떠 만들어 외관이 비슷하다. 함재기 발진 방식이 스키 점프식으로 항모 갑판 앞부분이 경사지게 올라가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랴오닝함이 ‘001’, 산둥함이 ‘001A’로 번호가 붙여진 것도 그 때문이다. 산둥함(7만 t)은 랴오닝함을 개조하며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재 배수량이 더 커졌다. 대형 안테나 4개와 주변을 360도 감지해 해상 또는 공중 목표물 수십 개를 포착할 수 있는 S밴드 레이더가 탑재됐으며 수십 기의 중국산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이 실려 있다. 함재기도 랴오닝함은 24대에 불과하지만 산둥함은 40대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② 中 ‘2020년대 6척 항모 보유 계획’ 중국은 산둥함에 이은 항모 제작도 진행 중이다. 먼저 ‘중국산 2호 항모’이면서 ‘순수 중국산’이라고 부르는 3호 항모가 2015년 3월부터 상하이(上海) 장난(江南)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다. 이는 랴오닝함 등 다른 항모를 본뜬 것이 아니라 자체 기술과 디자인으로 제작하고 있다. 엔진은 여전히 1, 2호 항모와 같은 디젤이지만 함재기 이륙은 스키 점프식이 아닌 ‘증기 사출식’으로 바꾼다. 스키 점프식은 전자식에 비해 함재기 이륙에 거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 또 비행기 무게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무기를 탑재하기 어려워 작전 능력이 제약된다. 3호 항모는 배수량 8만 t, 함재기는 72대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빠르면 2025년 혹은 2030년까지 핵 추진 항모 2척을 포함해 동해 북해 남해 함대에 각각 2척, 총 6척의 항모를 보유할 계획이다. 6척 항모의 함재기 이륙 방식은 스키 점프식 2척, 증기 사출식 2척, 전자 사출식 2척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은 11척 모두 최첨단의 전자 사출식이다.③ 2척 대 11척, 그 이상의 격차 중국의 항모 굴기 의지는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뒤 주요 무역 루트의 안전 확보 측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는 미국과의 태평양 패권 경쟁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항모의 역량 면에서 중국은 미국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된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미국 중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10개국에서 22척의 항모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핵 항모는 미국(11척)과 프랑스(1척)만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올해 5월 현재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에만 4개의 항모 전단을 운용하고 있다. 미 항모는 모두 배수량이 10만 t 이상이며 함재기 수도 80대 이상이다. 올 3월 남중국해 북부 해역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연합훈련을 진행한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CVN-70)함은 최첨단 F-35C ‘라이트닝2’ 스텔스 전투기 등 함재기 90여 대를 갖췄다. ‘떠다니는 군사기지’다. 중국이 운용하는 젠(殲)-15 함재기의 전투 능력을 압도한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또 칼빈슨 항모전단은 이지스 유도미사일 구축함 ‘웨인 E 마이어’(DDG 108) 외에도 유도미사일 순양함 ‘레이크 챔플레인’(CG 57) 등 전투함과 제2항모항공단 소속 9개 비행전대 등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중국 항모는 미 항모와 달리 핵추진 항모가 아니기 때문에 며칠에 한 번씩 급유를 받아야 한다는 것부터 약점으로 꼽힌다. 대양 작전을 벌이려면 방어능력이 취약한 여러 대의 대형 급유선을 함께 거느리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3월 중국 국영 조선사인 중국선박중공집단이 홈페이지에 “핵 항모, 최신형 핵 추진 잠수함, 잠수함 인공지능(AI) 전투 시스템, 통합 전자정보시스템 등을 개발할 것”이라며 핵 항모 개발에 대한 의지를 공개 천명한 이유다.④ 일본도 항모 추진, 동북아도 항모 경쟁 시대로? 중국에 맞서 일본도 최대 호위함인 이즈모(1만9500t)의 갑판을 개조해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항모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헬기 14대를 탑재할 수 있어 ‘헬기 항모’로도 불리는 이즈모의 갑판에 스키 점프대를 설치해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B 10대를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2015년 취역한 이즈모는 갑판 길이 248m, 폭 38m로 건조비만 1200억 엔(약 1조1400억 원)이 들어간 자위대의 핵심 전력이다. 외관도 항모와 유사해 진수할 때부터 ‘사실상 항공모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바야흐로 동북아에 항모 경쟁 시대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옛 소련 시절 북해 지중해 등에 수 척의 항모를 운영했던 러시아는 현재 북해 함대 소속의 ‘아드미랄 쿠즈네초프’ 한 척만 운영하고 있다. 1985년 진수돼 1990년 배치됐으나 2016년 11월 시리아 공습에서 처음 실전에 투입됐다. 올해 소모품 교체 등 수리에 들어가 이르면 2021년 재배치될 예정이라고 타스통신은 전했다. 배수량 5만9000t에 스키 점프식으로 30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다. 다만 러시아는 2030년까지 함재기 90대의 10만 t급 신형 항모 건조 계획을 추진하다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