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법인세 외에 기업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주는 변수로 몇 가지를 꼽았다. 노동시장과 규제개혁, 정부 정책의 방향성 및 일관성 등이다. 법인세만 따지는 게 아니라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의미다. 한미 법인세율 역전으로 국내 기업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데 대한 답변이었다. 김 부총리는 법인세 환경에서 한국이 조금 불리해져도 다른 변수들로 상쇄할 수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요즘 느끼는 기업들 분위기는 ‘한국은 원래 기업 하기 좋은 나라인데 겨우 법인세 하나 오른다’는 게 아니다. ‘한국은 원래 기업 하기 나쁜 나라인데 이제 법인세율마저 더 높아진다’는 게 현실과 좀더 가깝다. 해외 기업을 유치하려 해도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규제개혁은 모든 정부의 핵심 과제였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처럼 정권의 간판 역할을 한 캐치프레이즈도 있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달라진 게 없다. 한 규제에 직간접으로 관여된 수많은 공무원 중 누구 하나만 브레이크를 걸어도 논의는 중단된다. 규제를 없애려고 만든 보고서는 누군가의 서랍 속에 처박혀 있다가 담당자가 바뀌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혀진다. 낙타(규제완화 법안)가 어렵게 바늘구멍(정부)을 통과해도 또 하나의 벽(국회)에 막히기 일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말 혁신성장 전략회의에서 김 부총리에게 “15년 이상을 각 정부가 규제개혁을 추진했는데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질문한 것은 당연하다. 경직된 노동시장은 한국 기업 환경의 아킬레스건이다. 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켰다. 매년 임협이나 임단협을 끝내면 평균 2000만 원 안팎의 목돈이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1300만 원 수준으로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해진다. 회사가 위기에 빠지면 모든 건 경영진의 잘못일 뿐 내가 챙길 돈은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억지가 느껴진다. 이런 노동시장에 매력을 느껴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은 세상에 없다. 이미 들어와 있는 기업 중에도 강성 노조의 끝없는 투쟁에 철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곳이 나오고 있다. 10월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한국은 137개 국가 중 26위였다. 2007년 11위에서 2014년 26위까지 미끄러진 뒤 4년 연속 제자리다. 노동시장 효율이 하위권인 73위에 머문 탓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관련 보고서를 낼 때마다 단골로 언급하는 주문이 노동개혁이다. 한국 정부가 국제기구 권고를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이런 보고서에 민감하다. 투자처를 결정하는 주요 잣대로 활용한다. 나라 경제의 사령탑인 김 부총리가 국내 기업 환경에 대한 지나친 ‘자기 비하’나 ‘비관론’을 경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 해도 오랜 기간 국내외에서 일관되게 지적돼 온 문제들은 냉철하게 되돌아보고 필요하다면 궤도도 수정해야 한다. 노동개혁은 오히려 이번 정권이 적기라는 의견도 있다. 반대편을 설득하기보다 자기편을 설득하는 게 성공 확률이 높다는 논리에서다. ‘하르츠 개혁’을 단행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중도좌파 성향이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도 노동개혁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롯데그룹 총수 일가에 대해 22일 내려진 1심 판결문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오너 경영’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적시해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균형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진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배임죄와 관련해서도 보다 강화된 기준이 적용돼 향후 ‘고무줄 잣대’ 논란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24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5)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롯데 총수 가족들에 대한 부당급여 지급과 개인회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기업 사유화의 단면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신 총괄회장의 사실혼 배우자 서미경 씨(58) 모녀에게 롯데면세점 매점 운영권과 공짜 급여를 넘긴 것에 대해서다. 판결문은 이어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범행은 성실하게 일한 임직원들에게 자괴감과 상실감을 안겨주고 기업집단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멀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등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판결문은 “(신 총괄회장은) 창업주로서 그룹에 일생을 기여한 공로가 있고 그릇된 구식 경영사고가 본건 범행의 원인이 됐다”면서도 “사재로 계열사 손실을 보전하고 배당을 받는 대신 새롭게 투자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소유와 경영 일체의 경영원칙이 현재 그룹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는 양면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태도는 롯데 총수 일가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단죄하면서도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과 책임감에 의한 한국형 대기업 성장 방식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읽힌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 모두 장단점이 있어 일괄적으로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를 논할 수 없다. 특히 한국의 전자·반도체 산업이 일본을 제치고 도약한 것은 오너들의 신속한 의사 결정으로 가능했던 ‘스피드 경영’에 힘입은 바 크다”고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2)과 황각규 롯데지주 사장(62) 등의 계열사 부당 지원 관련 배임혐의가 모두 무죄로 판단된 것은 향후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롯데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업에 계열사인 롯데기공을 끼워 넣고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에 그룹 계열사들을 동원한 것 모두를 배임이라고 봤다. 그러나 법원은 신 회장과 황 사장 등이 이런 경영적 판단을 내릴 때 손해를 입히려는 고의성이 없었고 재산상 손해도 특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배임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엄격히 본 것이다. 신 총괄회장이 비상장주식을 그룹 계열사에 고가 매도한 것을 배임으로 본 검찰 주장 역시 무죄로 판결이 났다. 검찰은 롯데정보통신 등 그룹 5개 비상장계열사 주식을 호텔롯데, 롯데제과, 롯데케미칼에 고가에 팔았다는 이유로 신 총괄회장을 기소했다. 법원은 이 역시 고의성 입증이 어렵고 재산상 손해 발생을 특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봤다. 과거에는 배임에 대해 너무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 기업인들의 정상적인 경영적 판단조차 수사 대상으로 몰아간다는 비판이 많았다.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배임죄 처벌을 우려해 경영적 판단을 해야 할 시기를 놓치는 사례도 많다는 불만이 제기되곤 했다. 이번 판결로 기업들의 배임 혐의에 대한 판단이 보다 신중해지는 추세가 뚜렷해졌다. 지난달에는 대법원이 이낙영 전 SPP그룹 회장에 대해 공동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판단이라면 손해가 났다고 배임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나왔던 원심을 깨고 일부 무죄 취지로 부산고등법원에 파기 환송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미국, 일본에 이은 세계 3번째 64K D램 개발 성공!’ 1983년 12월 6일 동아일보 1면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개발 광고가 실렸다. 앞서 1976년 1월 27일엔 현대자동차가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광고를 냈다. ‘우리 힘으로 만든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차 포니 탄생.’ 다음 달 지령 3만 호 발행을 맞는 동아일보 광고지면은 한국을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기업들의 성장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1980년대 주요 기업이 성장하면서 신문지면을 통한 광고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삼성전자와 금성사(현 LG전자)가 가전시장을 놓고 벌인 자존심 싸움은 세계 1위 전자업체를 키워낸 자양분이 됐다. 금성사는 1959년 ‘금성 라듸오’(이하 당시 표기) 개발에 이어 1966년 국내 첫 TV를 생산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샛별 텔레비전’이 인기를 끈 금성이 ‘기술의 상징, 금성’ 광고를 내자 삼성전자는 ‘첨단’ 두 글자를 더해 ‘첨단 기술의 상징’ 카피로 맞불을 놨다. 금성사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광고로 되받았다. 두 회사의 기술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미래를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1986년 금성사는 ‘기술이 생활을 편리하게 즐겁게 한다’며 ‘테크노피아’ 광고 시리즈를 시작했다. 컴퓨터를 하는 사람들 모습을 광고에 실었는데 개량한복을 입은 농부가 컴퓨터로 날씨를 예측하는 장면이 이채롭다. 같은 시기 삼성전자는 ‘인간과 호흡하는 기술, 휴먼테크’로 대응했다. 당시로선 새로웠던 컴퓨터그래픽 기법의 광고는 인간과 기술이 공존하는 세상을 그렸는데, 말로 가전제품을 움직이는 음성인식 기술도 당시 광고에 등장한다. 두 회사의 광고전쟁은 1990년대 기술력 경쟁에서 이미지 경쟁으로 옮겨갔다. 삼성전자의 ‘또 하나의 가족’과 LG전자의 ‘사랑해요 LG’가 맞붙었다. 금융업 성장사도 광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紙幣機(지폐기)로 세인 돈이 電線(전선)타고 送金(송금) 된다.’ 1959년 6월 2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광고다. 사람이 직접 세어 돈을 관리하던 것에서 기계화, 전산화로 막 접어들던 때의 광고다. 1970년 4월 28일자에 실린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의 ‘편리 새 생활 예금’ 광고에선 지금 금리와 비교하기 어려운 연 9.6%의 높은 금리가 눈에 띈다. 자본과 기술이 축적되며 자신감이 붙은 기업들은 차차 해외로 눈길을 돌린다. ‘수출입국’의 꿈이 광고에 묻어난다. 1976년 첫 국산차 포니를 내놓은 현대자동차는 ‘경제적이고 아름다운 포니’라고 포니 세단을 소개한 뒤 ‘강력한 성능의 포니P엎’ ‘디젤엔진 1톤 트럭 포터’ 광고를 잇달아 냈다. 2년 만인 1978년엔 생산 대수 10만 대 돌파, 40개국에 수출 2만5000대 돌파 광고가 실렸다. 성장을 거듭한 현대차는 엘란트라가 독일 고속도로 아우토반에서 독일 명차를 추월하는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을 달린다’ 광고(1991년 12월 2일자)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선경(현 SK)이 동아일보에 게재한 ‘세계 곳곳을 우리의 장터로’ 시리즈 중 하나인 ‘거대한 시장 미국’ 광고가 있다. 미국 인디언 얼굴을 크게 담은 이 광고는 미국의 역사, 사고방식, 시장을 소개한다. 당시 시카고지사장 얼굴도 실렸다. 1978년 선경이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받으면서 섬유회사 이미지를 탈피해 세계화를 지향하는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낸 광고였다. 1990년대엔 이미지 광고 시대로 접어들었다. 2000년 민영화 이후 본격 광고 캠페인을 시작한 포스코는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시리즈를 했고 현대중공업은 정주영 창업주가 생전에 즐겨 쓰던 표현인 ‘(도전) 해봤어?’ 시리즈로 기업가정신을 앞세웠다. 이순동 한국광고총연합회장은 “가전시장에 경쟁사보다 늦게 진입한 삼성전자가 국내 1위에 이어 세계 1위까지 올라선 것은 기술의 힘도 있지만 오랜 기간 꾸준히 쌓아온 기업 이미지가 밑바탕이 됐다”며 “인터넷 광고가 마케팅의 주류가 된 지금도 이런 이미지의 힘은 여전히 통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누적된 이미지의 힘은 롯데껌, 초코파이, 박카스 같은 ‘국민 기호’를 낳았다. 1967년 5월 11일자엔 ‘약진하는 롯데’라는 기업 광고가 실린다. 주로 제품 광고에 치중하던 시기 이례적인 기업 광고였다. 1946년 일본 연구소에서 껌을 만들어 성공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이 광고로 한국 진출을 알렸다. 1972년 롯데는 당시로선 기술력을 상징하는 ‘대형 껌 탄생’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를 내놓으며 껌 시장을 장악했다. 1962년 4월 박카스 광고는 ‘젊음과 활력을!’이란 슬로건을 썼다. 6·25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남았고 국민 상당수가 영양실조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에 ‘피로회복’이라는 키워드를 일찌감치 선점했다. 1973년 6월 21일자 3면의 야쿠르트 광고 슬로건은 ‘온 가족 다같이 건강을…’이었다. 동양제과(현 오리온)의 ‘초코파이’는 1974년 탄생했다. 1980년대는 ‘라면의 시대’였다. 1986년 10월 출시된 농심 ‘신라면’은 ‘사나이 대장부가 울긴 왜 울어’란 첫 광고문구가 강한 인상을 남기며 부동의 1위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이명천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신문광고의 흐름은 1950년대 제약 광고, 70년대 가전 광고, 2000년대 자동차와 통신 광고로 이어져 왔다”며 “국내 기업과 산업이 발전하면서 그 사회의 발전상과 사회 문화를 반영하는 광고가 시대에 따라 변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용석 yong@donga.com·송충현·김창덕 기자}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호에는 한국에서가장 오래된 기업 중 하나인 ‘박승직상점’의 창간 축하광고가 실렸다. 이 상점은 두산의 모태(母胎)다. 신문 기사들이 지난 세기 동안 일어난 일을 기록한 ‘대한민국 실록’이라면 지면 광고는 기업 성장사와 시대의 변화상을 담은 스냅 사진과 같다. 특히 광고를 통해 성장한 기업들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일등 공신이었다. 1953년 66달러(약 7만2000원)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이제 3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광고에 담긴 한국의 사회, 경제, 문화 성장사를 3회 시리즈로 보도한다. 》 ‘文化人(문화인)은 年二回(연 2회) 寄生(충,훼)(기생충)을 驅除(구제)합니다.’ 1960년 10월 13일 동아일보 2면에 실린 광고 문구다. 유한양행의 구충제 ‘유피라진 시렆’(당시 표기) 광고다. 구충제는 당시 국민들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약이었다. 그해 4월과 5월 실린 서울약품의 ‘디게시나’ 광고는 ‘전 국민의 90% 이상이 기생충병 환자!’라고 적었다. 기생충약 광고는 1990년대 중반에 와서야 자취를 감춘다. 1930∼1950년대 의약품 광고의 주류를 이뤘던 성병약은 1970년대 이후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 건강 수준이 높아지면서 기생충·성병약 광고 자리는 피로해소제 광고와 같은 헬스케어 광고가 대체했다. 광고가 시대별 한국인의 생활상을 대변하는 셈이다. 식품 광고는 한국인의 삶에 밀착해 있다. 1960년대에는 추석 선물이나 결혼식 답례품으로 하얀 설탕이 인기가 있었다.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은 백설표 설탕 6kg짜리 상자를 330원에, 설탕 3kg과 조미료 ‘미풍’ 200g을 묶어 560원에 각각 선물용으로 팔았다. 이른바 ‘명절 선물세트’의 효시다. 조미료 광고는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오랫동안 신문 광고지면을 차지했다. 동아일보 1926∼1938년 지면에는 일본 ‘아지노모도사’ 광고가 78건이나 실렸다. 조미료를 쓰지 않은 집의 가장이 밥상을 뒤집어엎는 장면을 만화로 그린 광고가 이채롭다. 1955년 조미료 국산화가 이뤄지면서 대중화에 속도가 붙었다. 고 임대홍 대상그룹 명예회장이 1955년 일본 오사카에서 ‘글루탐산나트륨(MSG)’ 제조법을 배워와 이듬해 1월 미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1963년 ‘여인표 미풍’을 인수한 제일제당이 도전장을 내며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순금반지 대 스웨터’ 전쟁이 유명했다. 1970년 2월 미원과 미풍은 빈 봉지 5개를 보내면 각각 순금반지와 스웨터를 준다는 광고를 내며 격돌했다. 두 회사가 나란히 2차 행사까지 준비하자 과열 양상을 우려한 상공부와 치안국까지 나서 경품행사 중지를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처럼 조미료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지, 두 회사는 1969년 11월 8일 조미료가 건강에 나쁘지 않다는 광고를 함께 싣기도 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조미료를 통한 입맛의 근대화 이후 각 지역마다 다른 맛이 비슷해지는 표준화가 이뤄졌다”고 평했다. 애경산업의 ‘트리오’ 광고는 또 다른 측면에서 한국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989년 5월 27일 ‘애경트리오 해외여행 사은대잔치’ 광고는 애경산업의 창립 35주년 기념 이벤트였다. 이 행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해 1월 1일 시행된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조치가 있었다. 상품 광고는 국민들의 소비력과 직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만9730달러다. 지난해 세계은행이 물가를 반영해 발표한 한국 구매력평가지수 기준(PPP) 1인당 GDP는 3만4985달러였다. 동아일보가 창간된 1920년 1인당 GDP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가장 오래된 통계는 1953년으로 1인당 명목 GDP가 66달러였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450배로 늘어난 셈이다. 1960∼1980년대 국내 가전, 자동차 기업이 고속 성장하면서 신문광고는 컬러TV와 세탁기, 냉장고, 자동차 광고로 넘쳐난다. 먹고살 만한 시대가 오면서 광고에 등장한 제품도 첨단화됐다. 매일같이 가전제품 광고가 앞다퉈 실렸다. 1980년 12월 10일 동아일보 2면엔 당시의 열풍을 엿볼 수 있는 광고가 실렸다. 금성, 대한전선, 삼성전자(당시 시장점유율 순위) 3사는 ‘칼라TV’의 급격한 수요 증가로 물건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사과 광고까지 실었다. 1976년 1월 ‘우리 힘으로 만든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차, 포니 탄생’ 광고가 실린 뒤 현대차의 스텔라, 프레스토, 쏘나타, 대우자동차의 맵시나, 로얄, 프린스, 르망, 에스페로 광고가 잇달아 실렸다. 현대차는 1985년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동아일보와 함께 당시로는 드물게 ‘어린이는 움직이는 빨간 신호등’이란 캐치프레이즈로 교통안전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명천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민족 언론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1920년대엔 지방 유지나 민족자본이 후원광고 형태로 동아일보 등 신문사를 돕는 광고를 실었다”며 “이후 소비재 광고가 늘어나면서 신문물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던 광고는 기업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이미지 광고로 차츰 변화해 왔다”고 분석했다.김창덕 drake007@donga.com / 세종=김준일 기자}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전국 점포 수는 61개. 대형마트인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전국 점포 수는 모두 408개다. 유통기업들은 해마다 경쟁적으로 점포 수를 늘려왔는데 내년은 유통업계의 ‘큰형’ ‘둘째 형’인 백화점과 대형마트 신규 점포가 한 곳도 늘어나지 않는 특이한 해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1993년 11월 국내 첫 대형마트인 이마트 창동점이 문을 연 지 25년 만의 일이다. 백화점은 3개 회사 모두 계획 자체가 아예 없다. 대형마트의 경우 신세계그룹이 내년 말까지 이마트 2개 점포를 추가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긴 했었다. 하지만 그룹 내부에서 이미 “목표일 뿐 사실상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출점 제로’의 이유는 간단하다. 점포를 내는 데 드는 돈보다 기대 수익이 크지 않아서다. 명제는 간단하지만 그 뒤에 있는 배경은 꽤나 복잡하다. 우선 비용부터 살펴보자. 예전처럼 좋은 상권에 땅을 산 뒤 건물만 지으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전통시장이나 상가의 경계로부터 1km 이내에는 대규모점포를 낼 수 없다(유통산업발전법 제13조 3). 이를 충족해도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주변 상권영향 분석을 하고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유통산업발전법 제8조)해야 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절차다. 롯데 상암몰이 여기에 걸려 4년째 표류하고 있고 신세계백화점 부천점 계획도 결국 백지화됐다. 주변 상인들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한 결과다. 건축 허가, 준공 허가 등의 단계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얼마나 빨리 행정절차를 처리해 주는지도 관건이다. 돈을 빌려 건물을 짓고도 문을 못 열면 이자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예전에는 대형마트 인허가부터 점포 오픈까지 평균 14개월 정도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이 기간이 2, 3년 정도로 늘어났다. 작년 6월 문을 연 이마트 김해점은 무려 4년 넘게 소요됐다. 다음은 줄어든 기대 수익이다. 어렵사리 점포를 낸다 한들 수많은 규제가 수익성을 떨어뜨린다. 대규모점포는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이 제한되고 매월 공휴일 이틀을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 2). 게다가 20대 국회에 계류돼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들은 이름만 ‘발전법’이지 대부분 규제를 더 강화하는 법안들이다. 복합쇼핑몰도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시키거나 월 2회 휴업을 월 4회로 늘려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대규모점포로 등록하면 지역상권 발전 기여금을 내야 한다는 법안도 있다.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새로 점포를 내면 투자액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성장’을 생존의 첫째 조건으로 꼽는 기업들이 스스로 출점을 멈춘 까닭이다. 대형마트 하나를 지으면 3000m² 규모 점포를 기준으로 보통 500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큰 점포의 경우 한 번에 1000명 이상을 필요로 한다. 규제로 묶어두기엔 아까운 기회다. 여당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연내에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런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는 관심조차 없다. 정부와 여당의 최우선 과제라는 ‘일자리 창출’이 말잔치에 그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재화나 서비스 10억 원어치를 생산할 때 필요한 직간접 취업자 수, 즉 취업유발계수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지난해 기준 각각 10.5명, 23.0명(현대경제연구원)이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왜 필요한지, 유통산업 규제 강화에 왜 신중해야 하는지, 여기에 답이 있다.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에몬스는 6일 인천 남동공단 내 본사에서 2018 봄여름 시즌 가구 트렌드 및 신제품 품평회를 열고 ‘웰-리브(Well-Live)’를 트렌드 콘셉트로 발표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김경수 에몬스 회장이 직접 대리점주들에게 제품을 설명했다. 공간과 스타일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프리 스타일 옷장과 통가죽으로 만든 오더메이드 소파 등 다양한 맞춤형 가구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침대가 눈길을 끌었다.김창덕기자 drake007@donga.com}
‘위생 전문가 투입이 제대로 통했다.’ 롯데마트가 8월 시작한 ‘하이젠 마스터’(위생 전문가)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9일 롯데마트에 따르면 하이젠 마스터 10명이 활동한 8∼11월 ‘신선식품 품질불량 보증제’ 보상 건수는 전년 동기보다 23.8% 감소했다. 품질불량 보증제는 고객이 신선식품 품질에 만족하지 못할 때 5000원짜리 상품권으로 보상하는 제도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 전 점포에서 식품 위생 관련 행정처분은 한 건도 없었다. 롯데마트는 전국 121명의 품질관리 전담 인력을 대상으로 필기 및 실기평가를 해서 10명을 선발했다. 하이젠 마스터들은 단순한 위생 점검에 그치지 않고 매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는 게 핵심 역할이다. 롯데마트는 내년에 하이젠 마스터 10명을 추가로 선발할 계획이다. 김영수 롯데마트 매장상품팀장은 “고객에게 가장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에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불이익변경)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쉽게 말해 회사가 근로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근로조건을 변경하려 할 경우 노조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 개정의 필요성을 두고 오랜 공방이 이어져 온 사안이다.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요건 완화와 함께 ‘노동개혁 2대 지침’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임 한 달 만인 9월 2대 지침 폐기를 선언했다. 노조 측에 잔뜩 힘을 실어준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27일 오후부터 28일 밤까지 파업을 벌이고도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현대차는 6월 출시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의 공급량을 맞추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기존 1공장 11라인 외에 엑센트를 만들던 12라인에서도 코나를 생산하려고 했다. 잘 팔리지 않는 차의 생산량을 줄이고 인기 차종을 많이 만들겠다는 건 회사로서는 당연한 경영적 판단이다. 그러나 울산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 상식이었다. 현대차 노사는 한 달 이상 생산라인 전환 문제를 협의했다. 노조는 이를 빌미로 근로여건 개선, 추가 인원 배치 등을 요구했다.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코나를 주문한 고객들은 한 달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연말부터 미국 수출을 계획하던 현대차는 결국 24일 12라인에서 코나 생산을 시도했다. 울산 1공장 노조는 ‘합의 없는 생산 강행’에 반발하면서 27일 파업으로 맞섰다. 현대차의 1∼9월 생산량은 2015년 353만7573대에서 올해 326만9185대로 7.6% 줄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4조8428억 원에서 3조7994억 원으로 21.5%나 급감했다. 특히 사드 갈등으로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죽을 쑤고 있다. 어느 때보다 국내 사업장의 뒷받침이 절실한데 노조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해외 딜러들은 절대로 제조사 사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납품 지연은 치명적 리스크다. 글로벌 시장에는 현대차 대신 팔 수 있는 자동차가 널려 있다. 해외 딜러망은 구축은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파업을 하면 사측이 조급해진다는 게 이들에게는 최대의 무기다. 현대차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관련 조항에 발목을 잡힌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대차는 2013년 7월 맥스크루즈와 그랜드스타렉스의 시간당 생산대수를 32대에서 38대로 늘려야 한다고 노조에 요청했다. 울산 4공장의 노조는 1년 이상 이를 거부했다. 2014년 9월에야 생산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1년 2개월간 현대차가 허공에 날려버린 기회비용은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는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를 겪을 것이다. 10월 취임한 하부영 현대차지부장은 노조 내부에서도 강성으로 꼽힌다. 그는 2년 임기의 첫 테이프를 파업으로 끊으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현대차 노사는 아직도 ‘2017년 임금 및 단체협상’을 하고 있다. 울산 1공장 생산라인을 이틀간 멈춰 세운 박성락 대의원대표는 해고자 출신이다. 2011년과 2013년 생산라인 무단 정지 등으로 2014년 1월 해고됐는데 지난해 11월 노조 간부가 됐다. 현대차는 주력 제품 생산을 놓고 해고자와 협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 울산 1공장 파업은 균형을 잃어버린 한국형 노사관계의 한 단면이다. 역설적이지만 대기업 노조가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일깨워준 셈이다.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마! 이 순간만 참아!” 그의 목소리가 강당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10대 시절 만난 복싱 코치에게 들은 한마디다. 위기에 빠졌을 때 스스로 되뇌던 말이라고 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상대와 스파링을 하던 중 비틀거릴 때마다 코치는 ‘마!’라며 호통을 쳤단다. 그러면 그는 거짓말처럼 일어나 없는 힘까지 짜내 라운드를 마치곤 했다. 23일 저녁 경기 성남시 SK플래닛 판교사옥 1층 대강당에 팀장급 직원 100여 명이 모였다. SK플래닛이 두 달에 한 번씩 여는 팀장급 인사이트 포럼이었다. 초청 연사는 최병오 패션그룹 형지 회장(64·사진)이었다. 1시간 반 동안 이어진 열띤 강연에서 최 회장은 “오늘 내가 한 말을 다 잊어버려도 딱 한마디, ‘마! 이 순간만 참아!’라는 것만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은 마침 최 회장이 어음관리 부실로 첫 부도를 맞은 1993년 11월 23일로부터 꼭 24년이 되는 날이었다. 최 회장은 “그때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참고 다시 일어났다. 준비를 잘한 덕분에 기업이 픽픽 쓰러졌던 외환위기 때는 오히려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최 회장은 강연을 많이 하는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동대문시장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매출 1조 원대 기업을 일군 성장 스토리는 늘 주목을 받는다. 이날 강연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동대문 출신 CEO가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정보기술(IT) 기업에 던진 메시지 때문이었다. 주제는 ‘기본’이었다. 최 회장은 1981년 친척이 인수한 서울 구 반포 지역 제과점을 운영했던 기억을 꺼냈다. 그는 “당시 식빵이 한 봉지 500원이었다. 이윤이 별로 안 남아도 기본부터 잘해야겠다 싶어 하루 세 번씩 식빵을 구워냈다”고 했다. 맛있는 식빵이 소문나니 그걸 사러 왔다가 다른 빵도 집어 드는 고객이 많았다는 거다. 길거리에서 팔던 ‘센베이(전병)’ 과자를 좋은 재료로 만들어 판 것도 주효했다. 최 회장은 “사업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배운 것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옷을 만드는 저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 나갈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만 19세에 사업을 시작해 벌써 45년 ‘경력’을 가진 최 회장에게도 고민이 없을 리 없다. 1990년대, 2000년대에 ‘성인 여성복’ 시장을 새로 개척해 큰 성공을 거뒀지만 최근 이어지는 해외 브랜드의 공습을 견디기가 쉽지는 않다. 최 회장은 강연 막바지에 “한창 장사가 잘될 때와 달리 요즘엔 직원들에게 화도 내고 자주 다그치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고는 “문제는 내게 있었다. 그걸 직원들에게 풀다 보니 악순환이 된 거다. 그래서 다시 ‘마!’라는 코치의 호통을 떠올린다”며 환하게 웃었다.성남=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롯데시네마는 25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송파구청과 함께 문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뮤지컬 ‘타이타닉’ 관람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에는 다문화가정, 한 부모 가정 등 송파구민 65명이 초대됐다. 지난 8월 뮤지컬 갈라콘서트 관람에 이은 두 번째 문화 소회계층 대상 행사다. 뮤지컬 타이타닉은 10일 개막해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김창덕기자 drake007@donga.com}
한국 농업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 농부’들과 귀농을 준비하는 ‘예비 농부’들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했다. 10월 28, 29일과 11월 18, 19일 두 차례 ‘청년 창농열차’를 주최한 청년드림센터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중복 참가자와 비응답자를 뺀 최종 설문 응답자는 55명이다. 만 18∼39세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어서 평균 나이는 27.1세였다. 충남 서천과 천안의 농가를 방문할 때마다 “농촌에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한 번에 오니 너무 반갑다”는 반응이 이어졌던 이유다. 1박 2일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이들인 만큼 ‘농촌에서 창업이나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나’라는 질문에는 83.6%가 ‘있다’라고 답했다. 이유는 ‘도시를 떠나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와 ‘농업이 유망한 산업이라는 판단에서’라는 답변이 각각 47.8%로 균형을 이뤘다. 청년들이 귀농할 때 가장 큰 장벽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복수응답)은 역시 ‘돈’과 ‘경험’이었다. ‘초기 창업자금이 부족하다’(50.9%)와 ‘농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30.9%)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지원해 줬으면 하는 분야(복수응답)는 ‘정착지원금 등 자본금’(67.3%)이 첫째로 꼽혔고, ‘판로개척 지원’(23.6%), ‘신기술 및 농업기술 전수’(20.0%) 등의 요구도 많았다. 참가자들은 프로그램 코너 중 ‘선배 귀농인들과의 허심탄회한 대화’(43.6%·복수응답)를 가장 좋았던 점으로 선택했다.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다 짧게는 2년, 길게는 7, 8년 앞서 결단을 내린 귀농 선배들의 경험담이 큰 도움이 됐다는 뜻이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벌써 “3차 행사는 언제냐”는 질문이 빗발치고 있다. 응답자 55명 중 다음 차수에 다시 지원하겠다는 답변은 51명(92.7%)이나 됐다.천안=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현대백화점그룹이 23일∼다음 달 3일 11일간 ‘쇼핑 축제’를 진행한다. 백화점, 아웃렛, 홈쇼핑, 리바트, 한섬, 렌털케어 등 그룹 계열사가 총출동 한다. 우선 23일부터 미국 홈퍼니싱 브랜드 ‘윌리엄스 소노마’의 현대시티몰 가든파이브점과 WSI 플래그십스토어 논현점에서 ‘시즌 오프’ 행사를 진행한다. 가방 침구 식기 잡화 등 500여 종 상품을 10∼50% 할인 판매한다. 현대백화점그룹 쇼핑 축제는 미국 블랙프라이데이(24일) 등 해외 대규모 할인 행사로 소비자들을 뺏기지 않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16∼19일 진행한 현대백화점 세일 행사에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2.7% 늘어나는 등 소비 심리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판단도 반영됐다. 정지영 현대백화점 영업전략실장(전무)은 “국내 고객에게 합리적인 쇼핑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협력사의 재고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그룹 단위 할인 행사를 정례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경기 용인 에버랜드는 20일부터 연간이용회원으로 신규 또는 재가입한 어린이(36개월∼만 12세)들에게 사각형 모양의 정보기술(IT) 기기 하나씩을 선물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처음 선보인 ‘커넥트 태그’다. 쉽게 말해 사람이나 물건의 위치를 쉽게 찾도록 돕는 기기다. KT의 사물인터넷(IoT) 전용망을 기반으로 하면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나 와이파이기반위치확인시스템(WPS)으로 물건의 위치를 알려준다. 아이들이 놀이공원에서 부모 손을 놓쳐도 미아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놀이공원에 IT가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커넥트 태그처럼 IT로 놀이공원 내 안전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고 새로운 즐길 거리로 주목받기도 한다. IT 기업들은 놀이공원을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는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다. 에버랜드는 SK텔레콤과 함께 9월 말 5세대(5G) 이동통신 체험존 ‘헌티드 하우스’를 열었다. 대용량, 초고속 통신기술인 5G를 체험할 미디어를 한곳에 모아 놓은 체험시설이다. 가상현실(VR) 워크스루, 영화 촬영용 특수 효과 같은 타임 슬라이스, 홀로그램 등 7개의 체험공간으로 구성됐다. 하루 평균 800명 정도가 찾아 5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당초 19일까지였던 운영 기간은 26일까지로 일주일 연장됐다. VR를 접목한 놀이기구들은 어린이들에게 최고 인기다. 에버랜드는 VR 전문 중소기업인 상화와 협력해 3월과 9월 각각 로봇VR, 자이로VR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두 기기 탑승객만 15만 명이 넘는다. 상화는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인도 통신사 홍보관에 설비를 제공했다. 해외 리조트들과 납품 논의를 하는 등 기술 수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에버랜드의 IT 접목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삼성전자와 함께 초고해상도(UHD) TV로 멸종위기 동물을 생생하게 재현한 ‘로스트밸리 멸종 위기동물전(展) UHD ZOO’(2013년), 80여 개 첨단 전자기기가 접목된 세계 유일의 ‘IT 판다월드’(2016년) 등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VR 기기를 쓰고 티익스프레스 등 에버랜드의 인기 놀이시설을 4차원(4D)으로 가상 체험하는 ‘VR 어드벤처’(2016년)까지 1200만 명 이상이 놀이공원과 IT의 만남에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관계자는 “IT 강국의 특성을 살려 독창성을 강화함으로써 에버랜드만의 경험을 제공하는 IT 테마파크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저희와 미팅을 원하셨던 건 어떤 걸 제안하려고 하신 거죠?”(최형욱 현대백화점 생식품팀 대리) “지금 저희가 거래하지 않는 곳이 현대와 롯데백화점입니다. 나머지와는 다 하고 있고요. 저희 상품 포트폴리오부터 한 번 보시죠.”(양천석 사조씨푸드 유통팀 차장) 1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 10B홀의 사조씨푸드 부스. 사조씨푸드의 양 차장은 현대백화점 바이어인 최 대리와의 상담에 집중했다. 둘은 참치나 연어 가공 방법, 대형 유통사 납품 현황 등에 대해 3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2017 Sea Farm Show’의 또 다른 의미는 참여 업체들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할 기회를 가진다는 데 있다. 이날 행사에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현대백화점, 현대홈쇼핑 등 국내 3대 유통그룹의 바이어들이 찾아 업체들을 만났다. 오현호 롯데백화점 수산바이어는 “박람회를 오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상품이나 브랜드를 볼 수 있어 적극 활용한다”고 했다. 경남 통영시에서 온 근해통발수산업협동조합 부스에서는 신세계백화점 신선식품팀의 안철기 과장이 붕장어 상품에 관심을 보였다. 안 과장은 “박람회에서 상담 후 신규로 바로 거래를 트기는 힘들지만 중간 밴더(공급업체)들에 공급처 조정을 의뢰할 수는 있다. 붕장어 제품은 회사로 가져가 상품가치를 다시 따져 볼 것”이라고 했다. 경남 하동군에 본사가 있는 식품회사 정옥도 잔뜩 고무됐다. 이 회사는 22일 공영홈쇼핑을 통해 ‘민물새우매운탕’과 ‘얼갈이민물새우탕’ 두 가지 신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해썹) 인증’을 받지 못해 백화점 납품은 못 하고 있다. 이 회사 정윤경 이사는 “내년에는 해썹 인증을 받을 예정이어서 주요 백화점 바이어들과도 미리 얘기를 해둬야 한다. 오늘 그런 기회가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서남부 지역의 상인들 중 여기 송화시장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시장 상황이 어떠냐는 질문에 조덕준 송화벽화시장 조합장(69·사진)이 내놓은 답변이다. 조 조합장은 2003년 설립 인가를 받은 이 시장의 상인협동조합을 만든 인물이다. 중간에 3년 정도 공백 기간을 제외하고 10년 이상 조합을 이끌어 왔다. 조 조합장은 아내와 함께 시장 내 포목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직장에서 퇴직한 후 35년 전부터 아내가 해오던 가게에 합류했다. 1970년대 중반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시장은 30년이 훌쩍 넘도록 상인들이 파라솔을 펴 놓고 장사를 했다. 그는 2001년부터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했다. 처음에는 상인 설득이 쉽지 않아 설립 인가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정부가 8억 원을 내고 상인들이 2억 원을 모아 추진한 아케이드 설치 공사가 끝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시장이 깨끗해지자 대형마트로 떠났던 고객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조 조합장은 “지금 각 상점에서 조합비로 월 6만 원을 걷는데 이는 다른 시장보다 2, 3배 많은 액수다. 그래도 시장이 좋아지니 상인들이 기꺼이 낸다”고 했다. 송화시장은 지난해 8월 ‘골목형 육성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아케이드 천장에 명화 15점을 그렸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 유럽에서 18년간 근무했던 조 조합장이 ‘시장에도 문화를 입히자’고 낸 아이디어였다. 시장의 공식 이름도 올 2월 ‘송화골목시장 상점가 진흥협동조합’에서 ‘송화벽화시장’으로 아예 바꿨다. 이 그림들은 해가 지면 조명을 받아 시장을 더 멋들어지게 만든다. 인근을 지나다 시장 천장의 그림이 눈에 띄어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조 조합장은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인근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재능을 기부하거나 덕원예고 등 인근 학교 학생들이 직접 시장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장이라는 가치를 입히겠다는 의도에서다. 조 조합장은 “지금까지 성장해온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조합원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단결이 잘되고 있어 앞으로 발전하는 건 시간문제”라며 웃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현대홈쇼핑은 2011년 7월 중국 현지 기업과 합작해 ‘상해현대가유홈쇼핑’을 만들었다. 한국 측이 35%, 중국 측이 65%의 지분을 가졌다. 중국 파트너는 현지 홈쇼핑 사업자 가유홈쇼핑과 케이블TV 사업자인 동방유선의 자회사였다. 경영은 현대홈쇼핑이 맡기로 했다. 초반 성적표는 괜찮았다. 3년 만인 2014년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2000년대 중반 첫 중국 진출에서 실패를 맛본 현대홈쇼핑은 달콤한 열매를 딸 기대에 부풀었다. 중국 파트너가 어느 날 다짜고짜 경영권을 요구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현대홈쇼핑이 거절하자 지난해 4월 동방유선은 홈쇼핑 방송 송출을 일방적으로 끊었다. 결국 국제 소송전으로 번졌다. 소송은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진행 중이다. 그러니 소송에서 이겨도 방송이 재개된다는 보장은 없다. 파트너십 회복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CJ오쇼핑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CJ오쇼핑은 2004년 ‘동방CJ’ 지분 49%를 확보하면서 중국 시장에 도전했다. 장사가 잘되자 중국의 합작 파트너인 상하이미디어그룹은 유상증자에서 CJ를 배제했다. 급기야 지분 매각 압력으로 이어졌다. CJ오쇼핑의 지분은 15%까지 쪼그라들었다. CJ오쇼핑은 떠밀리듯 지분을 빼는 방안을 검토하는 처지가 됐다. 모두 한중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중국은 본래 사업하기 까다로운 나라다. 돌발 상황이 너무 많아서다. 대부분은 납득할 만한 해명도 없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 우선 정책을 노골적으로 편다. 한 유통업체 임원도 “중국이 워낙 큰 시장이라 진출하긴 했지만 정말 너무 어렵다”고 했다. 화장품, 식품 등은 통관 절차가 어려워 결국 현지 상품만 진열하다 보니 차별화도 어렵다는 설명을 붙였다. 로컬 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이점이 없다. 1997년 중국 사업을 시작한 이마트는 2012년 매장 26개를 일괄 매각하려다 일단 철회했다. “한 번 더”를 외쳤지만 불어나는 적자를 견디지 못해 매장을 점차 줄였다. 결국 올해 9월 완전 철수를 공식화했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재계 고위 인사는 “유통업체 성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입지인데 이미 좋은 자리를 차지한 로컬 업체를 이길 수가 없다”고 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어쩌면 예상된 리스크였을지 모른다. 물론 충격파가 빠르고 컸다. 중국은 지난해 말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에 시동을 걸더니 올 3월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상사의 형제회사 롯데마트가 집중 타깃이 됐다. 현대자동차는 중국에서 낙하산도 없이 추락했다. 한류 바람을 타고 불티나듯 팔리던 화장품은 면세점 매장에서 하얗게 먼지가 쌓였다. 11일 한중 정상회담은 중국의 경제 보복 중단 기대감을 높였다.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면 ‘대놓고’ 이뤄지던 한국산 배척 현상이 다소 진정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중국 시장의 본질이 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불합리한 칼을 휘두르는 중국의 민낯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담 당시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재차 언급했다고 한다. 경제든 외교든 중국 의존도가 큰 한국으로서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셈이다. 중국은 17년 전 한국 정부가 자국산 마늘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하자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막아버렸다. 뺨을 맞은 사람이 손찌검한 사람과 합의했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합의금 한 푼을 못 받았다면 재발 방지 각서라도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정갈하게 포장된 수십 가지 반찬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취나물무침, 콩나물무침, 계란말이, 콩자반…. 4개를 집으면 5000원. 반찬을 주워 담는 손님들의 손길이 바삐 움직이고 묵직한 비닐봉지와 5000원짜리 지폐가 속속 교환된다. 밑반찬 백화점 옆에서는 한 청년이 열심이 배추김치를 담그고 있다. “이모 여기 맛 좀 봐주세요.” “됐네, 됐어.” 고무장갑을 낀 청년 앞에 놓인 배추김치, 오이김치, 겉절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6일 오후 서울 강서구 송화벽화시장 내 ‘세 자매 마트’의 풍경이다. 세 자매 마트는 사실 생긴 지 한 달밖에 안 됐다. 추석 연휴 때 간판을 걸었다. 그렇다고 이 시장 새내기라는 얘기는 아니다. 1남 4녀 중 셋째 선채자 씨(57)는 이미 18년 전부터 바로 앞자리에서 전을 구워 팔았다. 몇 년 전 둘째 채심 씨(64)가 반찬가게를, 넷째 채영 씨(55)가 김치가게를 냈다. 전남 고흥 출신인 세 자매는 음식 솜씨를 타고났다. 손님들이 줄을 이었고 가게를 넓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마침 채자 씨의 전 가게 앞 슈퍼마켓 자리가 났다. 고민할 것도 없이 인수하고 세 가게를 합쳐 버렸다. 그래서 이름이 세 자매 마트가 됐다. 일손이 모자라다 보니 채심 씨와 채자 씨 아들들이 하나씩 나와 가게 일을 도와준다. 첫째인 오빠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고향인 고흥에서 방앗간을 하는 친척 동생이 고춧가루 등을 보내온다. 채영 씨는 “자매끼리 일하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다”며 웃었다. 세 자매가 요즘 더 신나는 이유는 젊은 손님들이 많아져서다. 시장이 깨끗해지니 마트만 갈 것 같은 신혼부부들도 이곳을 찾아 장을 봐 간다. 매일 오전 6시에 출근하는 것이 고되지만 장이 끝나는 오후 8시쯤 반찬이 다 팔려서 텅텅 빈 테이블을 보면 힘이 난단다. 송화벽화시장을 찾은 시간은 오전 11시 반경. 이미 시장은 오고가는 손님들로 활력이 넘쳤다. 7555m²(약 2285평) 부지에 103개 점포가 있어 시장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지하철 5호선 우장산역 바로 인근인 데다 주변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가 많아 유동인구가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 전통시장만의 차별화된 매력을 확실히 가꾼 탓에 주변의 대형마트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시장을 둘러보다 ‘신장개업’이라는 현수막이 붙은 그릇가게가 눈에 띄었다. 이대규 씨(46)의 ‘진성그릇’이다. 이 씨는 직전 사장과 인수받은 물품 수량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이 씨는 “인근에 저가상품 전문 대형유통업체가 있지만 전통시장에 올 분들은 따로 있다. 그분들을 위해 차별화된 물건들을 갖춰놓았다”고 했다. 이 씨는 그릇가게와 붙어 있는 ‘진경나물반찬’에서 어머니를 도와 10년간 일했다. 그가 새 가게를 내느라 바쁜 사이 반찬가게는 동생 이흥규 씨(43) 내외가 돕고 있다. 흥규 씨도 그릇가게 옆에 방앗간을 내기로 했다. 방앗간은 인테리어공사가 한창이다. 대규 씨는 “어머니의 반찬가게는 옆 가게에 미안할 정도로 줄이 길게 늘어섰었다. 저나 동생이나 전혀 새로운 업종에 도전하는 거지만 자신있다”고 했다. 송화벽화시장은 ‘신구(新舊) 조화’가 잘 이뤄진 시장이다. 70% 정도는 2003년 상인조합이 생기기 전부터 시장을 삶터로 삼아온 이들이다. 나머지 30%는 젊은 청년 상인들을 포함한 새로운 얼굴로 채워졌다. 시장이 활성화되다 보니 상인들도 신이 난다. 서울시내에 있는 수백 곳의 전통시장 중 가게 권리금이 1억 원 이상인 몇 안 되는 시장 중 하나라는 게 조합 측의 설명이다. 세 자매 가게나 진성그릇처럼 기존 상인들이 아예 가게를 넓히는 사례도 많다. 새로 들어온 청년 상인들은 활력을 더해 주는 요소다. 물론 30년 이상 된 터줏대감들이 중심을 지켜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장 한쪽 구석에 자리한 ‘경상도집’은 1979년부터 여기에 있었던 식당이다. 이 시장이 자생적으로 생긴 시점이 1974년이라고 하니 사장인 진점이 할머니(77)는 이곳의 살아 있는 역사다. 경상도집은 돼지갈비를 불고기처럼 자작한 육수에 넣어 끓여주는 ‘물갈비’가 유명하다. 점심시간인 낮 12시 반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진 할머니의 통화를 들어보니 아마도 차를 가지고 오는데 내비게이션만으로는 잘 찾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차 델 데가 없심니더. 애도 있으면 오기 힘들텐데, 아이고 별나라. 그라믄 여 앞에 주차장에 차 세우고 오이소.” 20분 쯤 후 들어선 한 가족. 친정어머니와 한 아이씩 나눠 데리고 온 딸이 “맛있다고 소문나서 멀리서 찾아왔다”고 생색부터 낸다. 같은 시각 직장인들로 보이는 여섯 명이 아예 낮부터 회식판을 벌였다. 두 청년은 오랜만에 왔는지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니 직장 얘기며, 창업 얘기며 딱 그 또래들이 할 만한 대화를 이어간다. 진 할머니는 “예전에야 상인들이나 인근에 사는 단골들만 찾아왔다면 요즘은 어떻게 알았는지 멀리서도 많이들 온다”고 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LG생활건강 청주공장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8일로 꼭 50일이 됐다. 노사 양측은 임금 인상률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LG생활건강 청주공장 노조는 9월 20일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가 제시한 13.8%의 임금인상안을 회사 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협상 초기 호봉승급분 포함 3.1% 인상안을 들고나왔던 사측은 이를 5.25%까지 높였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이달 3일 제19차 교섭에서도 양측은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LG그룹 계열사 중 노조가 파업에 나설 정도로 회사와의 관계가 악화된 사례는 드물었다. LG생활건강도 2001년 LG화학에서 분사한 후 이번이 첫 파업이다. 올해 1월 백웅현 노조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온도가 달라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학섬유연맹에도 가입했다. 백 위원장은 지난달 20일 본사인 서울 LG광화문빌딩에 흉기를 들고 들어가 “차석용 부회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2층 어린이집 앞 계단 난간 위에 걸터앉아 투신을 하겠다며 무려 11시간 동안 소동을 벌였다. LG생활건강으로서는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파업 장기화가 가져올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LG생활건강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화장품의 면세점 매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청주공장에서 만들어 중국 현지로 수출하는 프리미엄 제품들이 그나마 실적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 이 공장 생산 차질이 길어지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LG생활건강에 따르면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청주공장 생산직들의 평균 연봉은 약 8000만 원. 이 중 약 40%는 지난해 기준으로 억대 연봉을 수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귀족노조의 무리한 떼쓰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계 관계자는 “LG가 그동안 쌓아온 안정적 노사 문화 이미지가 이번 파업으로 상당히 퇴색했다”고 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노측 협상력이 사측을 압도하기 때문에 장기 파업이 발생하게 된다.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는데 함께 논의돼야 할 정규직들의 기득권 조정은 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똑똑한 소비자들이라면 ‘가성비’, 즉 가격 대비 성능을 상품 구입의 첫 손에 꼽는다.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중저가 상품 구매 비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저가 상품 전문매장 다이소가 꾸준히 사랑받는 배경이다. 다이소 상품은 500원부터 최대 5000원의 가격대로 구성돼 있다. 2000원 이하 상품이 85% 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다이소 상품의 평균 가격이 12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은 만 원짜리 한 장으로 8개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적은 돈으로도 많은 제품을 사는 다이소 쇼핑을 ‘만수르 놀이’로 칭하기도 한다. 다이소는 3만2000여개 상품군을 갖추고 매달 최신 트렌드와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600여 가지 신상품을 출시한다. 주방용품, 욕실용품 및 디자인 시리즈 등 다이소의 다양한 상품은 학생, 사회 초년생 등 2030 자취생에게 필수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다이소 제품으로 DIY(Do It Yourself)를 시도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다이소 고객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비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한 인터넷 포털의 SNS 모임 ‘다이소털이범’은 1만500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김창덕기자 drake007@donga.com}
건물주 A가 식당을 하려는 B와 1층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B는 직전 임차인에게 권리금까지 주고 들어왔다.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새로운 식당 인테리어도 설계했다. 그런데 건물주가 C로 바뀌었다. C는 B에게 냄새가 나는 식당 대신 화장품 가게를 하라고 요구했다. B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우선 화장품이 팔릴 만한 위치가 아니다. C의 요구를 따르면 지금껏 식당을 차리기 위해 투입한 시간과 비용을 날려야 한다. 이전 임차인에게 준 권리금도 무용지물이 된다. 황당한 일이다. 이런 사태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새 건물주 C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정부다. B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으려는 민간 발전사업자다. 포스코에너지는 2014년 9월 4300억 원에 동양파워 지분 100%를 인수했다. 동양파워는 2013년 정부의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삼척석탄화력발전소 사업권을 따낸 회사다. 포스코에너지는 여기에 토지 매입, 설계, 인허가 작업 진행비 등까지 더해 총 5600억 원을 썼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생겼다.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액화천연가스(LNG)발전으로의 전환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4년 전 삼척에 석탄발전소를 세우라던 그 산업부가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협의’지만 민간 기업으로서는 ‘강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변화가 있다면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새 정권은 ‘석탄’에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맞는 얘기다. 석탄발전은 실제 많은 미세먼지를 배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후화된 석탄발전소를 6월 한 달간 정지시켰을 때 큰 반발이 없었다.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계획도 충분한 명분이 있다. 문제는 앞뒤 안 재고 획일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이다. 이미 수년간 준비해온 석탄발전소를 하루아침에 LNG발전소로 바꾸라는 건 따져볼 것도 없이 재산권 침해다. 게다가 포스코에너지가 지으려는 석탄발전소는 미세먼지 배출량을 기존 발전소의 4분의 1로 줄인 최신 설비다. 기술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탈(脫)석탄’이라는 단어에만 집착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산업부는 포스코에너지가 삼척석탄발전소를 포기하면 올해 말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할 때 다른 지역의 LNG발전소 사업권을 주겠다는 생각이다. 삼척이 LNG발전소 입지가 아니라는 건 산업부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간 손실은 ‘나 몰라라’다. 산업부의 전력산업 담당자는 “포스코에너지가 주장하는 매몰비용 5600억 원 중 80% 이상은 아직 착공 허가를 받기 전인 사업권 인수 비용이다. 정부가 ‘딱지’ 값까지 물어줄 수는 없다”고 했다. 발전소를 지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사업 추진 권리’를 산 것이니 사업이 좌초돼도 책임은 기업에 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야 정부가 내준 사업권을 사실상 무효화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것도 백년대계를 세워야 하는 에너지 분야에서.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요구에 당혹스러워 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합의된 내용을 일방적으로 뒤집으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에서였다. 요즘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기업들이 느끼는 감정도 똑같은 종류의 ‘당혹감’일 것이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까지 이제 두 달 남았다. 탈석탄이든 탈원전이든 정책은 국가경영을 위한 수단이다. 그 자체가 목표가 돼선 곤란하다. 석탄발전소를 하나라도 더 줄였다는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하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정녕 LNG발전을 늘리고 싶으면 평균가동률이 40%도 안 되는 기존 LNG발전소들이나 잘 돌리면 될 일이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