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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 상당수가 투기 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 누구를 위해 이런 법을 만든다는 것인지 걱정스럽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한 중소기업(출판사) 대표 A 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20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유일호 경제부총리 초청 최고경영자(CEO) 조찬 간담회’에서였다. A 대표의 발언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중견·중소기업들의 우려를 대변하고 있다. 대주주 권한을 제한하는 조항을 다수 포함한 상법 개정안은 표적으로 하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로 중견·중소기업 회원사가 많은 한국무역협회가 16, 17일 전국 무역업계 대표 79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5%가 상법 개정안 통과를 반대했다. 31.8%는 상법 개정안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개정안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8.5%에 불과했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의 47.0%, 중견기업의 77.3%, 대기업의 80.0%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듯 유 부총리는 이날 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안이 경영 안정성을 전반적으로 위협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제도를 부분적으로라도 도입한다면 국내에 거의 없다시피 한 경영권 방어제도도 같이 도입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에는 외부 자본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할 때 해당 기업의 기존 주주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기존 주주가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포이즌 필’과 대주주 지분에 의결권을 더 많이 부여해 지배권을 강화하는 ‘차등의결권’이 대표적 사례다. 국내에는 이런 제도가 없다. 재계에서는 이 때문에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성벽도 쌓지 않은 채 적을 불러들이는 꼴”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입법부가) 법안의 파급 효과에 대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이샘물 evey@donga.com·한우신 기자}
정치권의 오락가락 정책 행보 속에 재계가 길을 잃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20년 전부터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를 외치며 주도해 온 지주회사 정책 때문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야권이 ‘재벌 개혁’을 목표로 내놓은 공정거래법과 상법개정안에는 지주회사 관련 규제 강화 방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를 대상으로 주주대표소송 및 장부열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특정 주주가 지주회사 지분 1%만 획득해도 자회사 전체를 대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 기업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생긴다. 법인세법 개정안은 회사 분할 시 자사주에 분할신주를 배정하면 해당 신주만큼 따로 법인세를 매기도록 하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 전에 갖고 있던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게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추진되고 있다. 기업으로서는 지주회사 전환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180도 달라진 정치권의 태도에 2003년 LG그룹을 시작으로 SK, 두산, CJ 등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던 지주회사 전환 움직임은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기업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지주회사 전환을 적극 독려했다는 점에서 현재 야권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중장기 전략을 세워나가야 하는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규제 때문에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참여정부가 타결시켰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민주당이 2012년 총선에서 “집권 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던 선례를 연상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날 정치권이 우후죽순 발의하고 있는 규제 법안들에 대해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박 회장은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유일호 경제부총리 초청 최고경영자 조찬 간담회’에서 “쓰나미처럼 쏟아지는 규제 법안이 휩쓸리듯 통과되면 법 잘 지키고 성실하게 사업하는 많은 분들이 과연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20대 국회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연말까지 발의된 기업 관련 법안은 590개다. 이 중 규제 법안은 407개(69%), 지원 법안은 183개(31%)다. 김지현 jhk85@donga.com·이샘물 기자}
17일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은 경기 의왕시 소재 서울구치소에서 6.56m²(약 1.9평) 규모 독방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독방 안에서 먹어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화장실 세면대에서 스스로 식판과 식기를 설거지해 반납하게 돼 있다. 구치소 독방에서는 TV를 시청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수용자는 법무부 교화방송센터에서 제작 편성한 교화프로그램(단일채널)을 시청해야 하며, 채널을 돌리지 못한다. 독방 바닥에는 전기 열선이 들어간 난방 패널이 깔려 있다. 겨울에는 목욕탕에서 일주일에 2회씩 온수 목욕을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형이 확정될 때까지 주로 변호인과 접견을 하면서 재판 준비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구치소에 따르면 형이 확정되지 않은 수용자는 가족이나 지인 등을 만나는 접견은 하루에 한 번만 10분 이내로 할 수 있지만, 변호인 접견은 횟수 및 시간에 제한이 없다. 일반 접견은 모든 대화 내용이 녹취되는 반면, 변호인 접견은 형사소송법상 방어권 보장을 위해 녹취나 교도소 직원 입회 없이 진행된다. 재계에서는 총수가 변호인을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소한의 옥바라지’로 꼽는다. 다만 삼성은 불필요한 특혜 논란이 제기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는 분위기다. 과거 총수 구속 사태를 경험한 다른 기업 사례도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몇 년 전 총수가 구속됐던 A그룹은 구치소 인근에 임시 사무실을 만들어 재판을 준비하면서 총수의 가족과 지인, 변호인의 접견 일정을 조율했다. 이 그룹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많은 내용을 물어보지만 총수는 세부적으로 다 기억하지 못하는 만큼 본인이 무슨 혐의를 왜 받는지 꼼꼼히 복기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전했다. 그는 또 “임원들이 총수 접견을 갈 때마다 눈물을 짤 수도 없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회사 이야기만 할 수도 없고 애매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경영진과의 접촉도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총수 구속을 경험한 B그룹 관계자는 “접견이 가능한 횟수가 제한돼 있는 만큼, 가족이나 지인 등의 일정을 고려해 회사 경영진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방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화 내용이 녹취가 되는 만큼, 경영상 민감한 내용은 외부로 알려질 소지가 다분히 많아 접견 과정에서 언급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원격 경영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과거 구치소에 수감된 총수들은 접견 시간을 제외하고는 상당한 시간을 책을 읽으면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2만 원 사용 한도인 영치금을 활용하면 신문이나 책, 잡지 등을 구독할 수 있다. 총수 옥바라지를 전문으로 했던 C그룹 관계자는 “영치금이 마르지 않도록 계속 입금하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이샘물 evey@donga.com·김지현 기자}
LG하우시스는 17일 이사회를 열고 슬로바키아의 자동차부품 기업 c2i(Composite Innovation International) 사의 지분 50.1%를 486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05년 설립된 c2i는 자동차의 연비를 높일 수 있는 경량화 소재로 각광받는 탄소섬유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다. LG하우시스는 다음달까지 거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서울 성동구의 콘센트 제조·판매 업체 태주산업은 2010년 8월 창업 이후 약 5년간 자금난에 시달렸다. 초기엔 정부 지원금을 받아 제품을 개발했지만 6개월 만에 자금이 바닥난 것. 어렵사리 판로를 확보했지만 판매 실적이 미미해 적자가 이어졌다. 지난해 한 TV 프로그램에 제품이 소개된 뒤에야 상황이 반전됐다. 신헌수 태주산업 대표는 “지난해 비로소 매출다운 매출(26억 원)을 올렸고 올해는 매출 300억 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주산업처럼 3년이 넘도록 지속되는 창업기업은 국내에서 3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창업기업 75만9000여 곳(2014년 기준)을 조사한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통계로 본 창업생태계 제2라운드’ 보고서를 15일 발표했다. 한국의 창업기업 생존율은 선진국에 크게 못 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창업기업 3년 생존율’은 스웨덴(75%), 영국(59%), 프랑스(54%), 독일(52%) 등에 뒤처졌고 조사 대상 26개국 중 25위에 불과했다. 한국의 창업 생존율이 낮은 건 민간 중심의 벤처 투자 생태계가 미비하고 판로 확보가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 방향을 이제 스타트업(start-up·창업)에서 스케일업(scale-up·성장)으로 레벨 업 할 때”라고 말했다. 판로 개척뿐 아니라 기업공개(IPO) 규제 간소화, 인수합병(M&A) 활성화 등 선진적인 민간 투자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평소에 독서할 시간이 없었는데 한 달에 3, 4권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분야도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영어 오픽(OPIc) 시험 준비를 꾸준히 한 끝에 목표보다 한 단계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자신감을 회복하게 됐고, 회사에 대한 자긍심과 업무 의욕도 향상됐습니다.” ㈜한화 인재개발팀에는 최근 임직원들로부터 이 같은 사연 40건이 도착했다. ㈜한화는 지난해 3월 ‘1일 1시간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인재개발팀이 제도 도입 1년을 앞두고 “하루 1시간이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든 이야기를 편하게 들려 달라”는 공지를 띄웠다. 그 공지를 보고 직원들이 소소한 변화를 공유해 온 것이다. ㈜한화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지원하고 임직원을 직무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공식 근무시간인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사이 1시간을 할애해 자기계발에 쓰도록 한 것이다. 조성운 ㈜한화 여수 생산6팀 과장은 매일 1시간씩 화약류 및 산업안전 관련 자격증을 공부해 2개의 자격증을 땄다. 조 과장은 “기존엔 업무 및 인간관계에 치이다 보니 자기계발을 할 시간이 없었는데 개인적인 성장을 이룬 좋은 한 해가 됐다”고 회고했다. 박승혁 ㈜한화 구미 개발3팀 주임연구원은 매일 직무와 관련된 영문 전문서적을 번역했다. 박 연구원은 “실제 직무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화는 자기계발 시간엔 상사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게끔 했다. 1시간의 ‘단절’은 오히려 직원 간 유대를 강화했다. 동료와 선후배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게 됐다는 사연들도 많았다. 구매팀의 한 직원은 “그 선배의 자기계발 노력은 후배인 저에게 큰 귀감이 됐고, 저도 매일 아침 어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연을 보내왔다. 여수 위험성평가 태스크포스(TF)에서는 부장급 직원과 관련해 “대선배의 진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는 이야기를 공유했다. “업무가 바빠도 팀 동료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자극이 돼 더 노력하게 됐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자발적인 동기 부여다. 일괄적인 의무 교육은 효과가 떨어지기 쉬운 만큼 각자 독서, 온라인 강의 수강, 어학 공부 등을 자유롭게 하도록 한 것이다. ㈜한화 직원들은 “예전에는 책을 한 달에 한 권 읽었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한 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하던 공부가 끊기면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1일 1시간 학습 덕분에 장기적인 목표를 수립하게 됐다”는 사연을 털어놨다. 나진 ㈜한화 인재개발팀장은 “자기계발 프로그램이 구성원들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자아실현 기회도 줄 수 있어 ‘강한 회사, 좋은 회사’라는 경영 모토 달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에 대한 구속영장을 14일 다시 청구한 직후 삼성그룹은 충격에 빠졌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인사와 채용 등 주요 경영 계획이 ‘올스톱’된 상태에서 맞은 특검의 조치를 두고 삼성은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삼성은 특검이 구속영장 재청구 사유로 제시한 ‘뇌물 공여’ 등에 대해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일은 결코 없다”고 줄곧 부정해 왔다. 처음 영장이 청구된 지난달 16일엔 “특검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정면으로 반박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삼성은 14일에도 “대통령에게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주거나 부정한 청탁을 한 적이 결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또 “법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특검은 영장 기각 이후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늘어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과정과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이슈,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 등을 전방위적으로 들여다봤다. 삼성은 사태 초기만 해도 ‘언론 플레이’ 논란을 의식해 각종 의혹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영장 기각 이후 조목조목 반박 자료를 내놓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가만히 있다가는 설령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이미지 훼손과 평판 악화로 인해 이 부회장이 지도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질 거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검은 ‘삼성 지배구조 전문가’이자 ‘삼성 저격수’로 꼽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12일 오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이튿날 오전 3시까지 조사했다. 김 교수는 특검에 다녀온 뒤 “영장 기각 이후 특검이 새로운 증거를 대거 확보함으로써 수사가 충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대선 주자들의 행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청구하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기업이 마치 ‘범죄 집단’처럼 취급되면서 해외 사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기업과 기업인의 법적, 도덕적 문제에 특히 민감한 해외에서는 투자자나 파트너사가 등을 돌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매출의 약 90%를 해외에서 거둬들인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 중 85%를 해외에 팔았다. SK하이닉스, LG전자 등 다른 주요 기업들도 대부분 해외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로 인해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 과정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샘물 evey@donga.com·김창덕 기자}
“한국에서 와인은 아직 다가서기 어려운 고급술로 인식되잖아요. 막상 와인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식사할 때도 대화할 때도 함께 즐기는 소통의 수단인데 말이죠.” 와인 정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테이스팅앨범’의 김정빈 대표(32)는 7일 창업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소비자들이 와인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테이스팅앨범에선 자신이 마신 와인의 △과일(향) △산도(신맛) △타닌(떫은맛) △알코올(도수) △보디(맛의 경중) 등에 대해 별점을 매기고 시음 노트를 남길 수 있다. 마셔 보지 않은 와인은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한 뒤 라벨 사진만 찍어 인식시키면 상세 정보와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볼 수 있다. 생소한 와인이라도 본인이 남긴 시음 노트를 기반으로 ‘예상 별점(호감도)’을 받을 수 있다. ‘팔로’ ‘좋아요’ ‘댓글’ ‘해시태그’ 등을 통한 소통은 덤이다.○ 와인에 매력 느껴 창업 나선 의사 김 대표가 와인의 매력에 눈을 뜬 건 2015년 여름이다. 민족사관고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의 권유로 와인 숍을 찾았다가 다채로운 맛과 풍부한 스토리에 푹 빠졌다. ‘그동안 내가 알던 와인과 다른 세계구나.’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일주일에 2, 3회씩 와인을 마셨다. 가격에 비해 맛이 좋은 와인은 박스 단위로 구매했다. ‘왜 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와인 맛이 다를까?’ 맛의 차이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궁금했다. 급기야는 와인레스토랑에서 소규모 스터디를 하고, 영국에 기반을 둔 국제 와인 전문가 인증 과정 ‘WSET’ 1, 2를 수료했다. 와인 SNS를 만들어야겠다는 구상은 와인 바에서 시작됐다. 친구와 함께 여러 술을 한 잔씩 모아놓고 마신 뒤 메뉴판을 보며 이름을 맞히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술 맛은 제각기 달랐지만 메뉴판에 이름만 써 있고 상세한 정보가 없으니 맞히기가 힘들었다. 답답했다. 어느 술집에 가더라도 다양한 술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친구와 창업 준비에 돌입했다. 사업 기획서를 쓸 줄도, 앱 개발이나 디자인을 할 줄도 몰랐다. 매일 퇴근 후 서울 강남의 24시간 카페에 앉아 A4 용지에 그림을 그려 가며 앱을 설계했다.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는 왜곡될 수 있었다. 온·오프라인 연계(O2O·Online to Offline) 업계에서는 여러 사람이 직접 만드는 정보의 가치가 높다고 했다. SNS 형식의 앱을 만들어 편리하면서도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와인 정보를 제공하자고 결심했다. 수십 차례 면접을 본 끝에 앱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섭외했다. 그해 11월 정식으로 법인을 설립했고, 지난해 5월 성형외과를 나와 창업에 전념했다. 지난해 9월 앱 베타버전이 출시됐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가입자가 늘어났다. 이달 초 기준으로 테이스팅앨범 앱 가입자는 3500여 명, 페이스북 팔로어는 3800여 명에 이른다. ○ “커피처럼 와인 즐기는 문화 만들 것” 투자 유치를 위해 발표할 때 투자자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의사라는 직업은 경제적인 수입도 높고 언제든지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지 않나요? 대표의 자세가 절박하지 않을 것 아닌가요?” 김 대표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반문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의사가 창업가보다 더욱 가치 있는 직업이라고 가정해 보죠. 그렇다면 최소한 현재 이 순간만큼은 투자자님이나 혹은 의사가 아닌 다른 어떤 창업가보다도 저는 더 많은 가치를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더 절박하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테이스팅앨범은 지난해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게임오브디캠프(GoD) 1기로 선정됐다. 롯데그룹의 창업보육 전문 법인 롯데액셀러레이터의 ‘엘캠프(L-Camp)’ 2기에도 들어갔다. 그 덕에 사무 공간 무료 이용 등의 도움을 받게 됐다. 에인절투자자와 롯데액셀러레이터 등으로부터 총 1억2000만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테이스팅앨범은 올 상반기(1∼6월) 중 O2O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온라인에서는 앱을 통해 개인별 추천 와인과 이를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 정보를 제공한다. 오프라인에서는 매장에서 앱으로 와인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양질의 와인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와인카페를 여는 게 목표다. 소비자들이 앱을 통해 맞춤형 메뉴를 추천받고 앉은 자리에서 주문도 할 수 있는 카페다. 커피를 마시듯 누구나 부담 없이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을 꿈꾼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와인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공간”이다. “한 골목에도 서너 개씩 카페가 자리 잡기까지 불과 몇 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잔의 와인과 함께 영화, 책, 음악 등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았어요.”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세계 반도체 1위 회사인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에 70억 달러(약 8조500억 원)를 투자해 새 공장을 짓는다고 최근 발표했다. 여기서 생길 새 일자리만 3만 개다. 1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런 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좋은 일자리’”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정부가 각종 규제와 세금 부담을 덜어줄 것을 알기에 인텔이 이런 일자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국내 4대 그룹 관계자는 “힘을 앞세운 ‘일자리 뜯어내기’란 비판에도 어쨌든 트럼프는 자신이 약속한 ‘일자리 창출’ 어젠다를 지켜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인들보다 낫다”고 말했다. 탄핵정국 이후 조기대선이 가시화하고 있지만 유력 대선 주자들은 일자리 확대를 위한 경제 성장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진보 후보들 사이에서는 재벌 해체와 규제 강화 등 ‘진영 논리’만 쏟아지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 번은 기업의 부를 빼앗아 나눠 가질 수 있겠지만 그 다음에는 무엇으로 나눠 가질지, 부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진보진영의 교훈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이 투자하고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기본 원리다. 지금 한국 정치권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규제는 강화하고 사회 안전망에 투입해야 할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자는 구호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선진국 진보 진영의 성공적인 경제 어젠다를 한국 정치권이 복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때론 보수진영의 경제논리까지도 수용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책으로 성장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1993년 집권한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는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공공투자 확대로 재임 말년인 2000년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의 재정흑자를 달성했다. 행정비 지출은 강력히 억제하는 한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 첨단기술 개발 및 인력 자원에 대한 기업 투자에는 인센티브를 대거 도입했다. 집권 첫해인 1993년 2.7%이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0년 4.1%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6.90%에서 3.99%로 절반 수준으로 낮춰졌다. 독일의 대표적 진보정당인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2003년부터 대대적인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주도했던 인물은 폴크스바겐 이사 출신인 페터 하르츠. 이른바 ‘하르츠 개혁’으로 불린 이 프로젝트의 키워드는 ‘고용 창출’이었다. 신규 창업 때는 최장 4년간 임시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최장 32개월이던 실업급여 지급기간은 최소 12개월로 줄였다.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아오던 독일의 실업률은 2005년 11.7%에서 2007년 9.0%로 줄었다. 2012년 11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정부가 도입한 ‘갈루아 보고서’ 역시 요점은 기업조세 부담 경감을 통한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늘리기였다. 재무관료 출신으로 기업경쟁력 전문가로 꼽히던 루이 갈루아 전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 회장의 이름에서 따온 보고서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부(富)를 만들어 내는 것은 기업인인데도 기업인에 대한 적대감이 너무 컸다. 이래서는 프랑스가 일어설 수 없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이라고 했다. 1997년 입각한 영국 신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정부는 전임 정부의 창조산업 정책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계승했다. 산업 및 도시 경쟁력을 강화해 일자리를 늘리려는 ‘성장 어젠다’라는 점을 높게 평가해서다. 1998년 7.5%이던 영국의 실업률은 2006년 5.3%로 줄었다.○ 거꾸로 가는 한국 대선 주자들 전문가들은 지금 한국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방안이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현장에 바탕을 둔 경제정책이 아니라 프로파간다(선동)적인 슬로건에만 익숙해져 있다”며 “이대로라면 경제성장률이 2%대도 유지하지 못하고 1% 이하로 추락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우려했다. 지금까지 거론된 핵심 키워드는 ‘규제 강화’에 가깝다.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대 재벌을 겨냥해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서 전체 대기업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 등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거론돼 온 경제민주화 규제들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소속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재벌 해체’를 공언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미래 청사진으로 일제히 앞세우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산업계는 고민 없이 좋은 단어만 나열하는 것 아니냐며 회의적이다. 4차 산업혁명은 단순 자동화를 넘어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통해 공장 및 제품이 지능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산업 자체만 놓고 보면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OECD 21개 회원국을 봤을 때 평균적으로 전체 일자리의 9%가 자동화로 대체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드는 일자리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급한 시점인데,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떠드는 정치인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전부터 업계에서 요구해온 서비스 산업 규제 완화 등 관련 법안은 수년째 국회에 묶여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부터 밝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샘물 evey@donga.com·김지현 기자}
다음 달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는 인적분할과 사외이사 추가 선임 등 굵직굵직한 지배구조 관련 안건들은 상정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런 내용을 요구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공식 주주제안서 제출 마감시한인 지난달 31일까지 제안서를 내지 않았다. 엘리엇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보통주 0.62%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0.5% 이상의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는 주주제안서를 통해 주총 안건 상정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주총 안건으로 올라가려면 주총 6주 전까지는 공식 제안서를 제출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엘리엇이 당초 요구했던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분리 △30조 원 특별배당 △사외이사 3명 추가 선임 △사업회사의 미국 나스닥 상장 중 일부만 수용하기로 밝힌 상태다. 재계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지주회사 설립. 삼성전자가 엘리엇의 요구가 있은 후 “지주회사 전환을 중립적으로 검토 중이며 최소 6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추측으로만 떠돌던 인적분할 가능성이 처음으로 공식화된 시점이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3월 정기 주총에서 검토 결과를 중간발표하고 인적분할 절차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왔다. 삼성전자 주가가 ‘갤럭시 노트7’ 단종 악재를 뚫고 한때 200만 원까지 상승한 것도 이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주총에서 인적분할 이슈가 거론되면 “계속 검토 중”이라고 답변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기업 출신의 사외이사 추천 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특검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섣불리 새로운 인사를 거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틀째 하락세를 기록했다. 이날은 전날보다 1.08%(2만1000원) 떨어진 192만 원에 마감했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해체를 앞두고 있는 데다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논의가 본격화되면 지배구조 개편도 더뎌질 것이라는 전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달 말 특검이 종료되면 삼성이 미전실 해체를 비롯한 대대적인 쇄신안을 발표해 주총에 처음 등장할 ‘등기이사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의 부담을 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지현 jhk85@donga.com·이샘물 기자}
《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이달 국회에서 중점 논의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재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8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이날과 9일 국회를 찾아 각 당에 상법 개정안과 관련한 경제계 의견을 전달한다. 지난해 5월 20대 국회가 출범한 뒤 대한상의가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의견을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대주주 권한 제한에 방점 둔 상법 개정안 현재 국회에 상정된 상법 개정안은 총 25개. 재계에서는 특히 김종인 노회찬 박영선 박용진 이종걸 채이배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들에 주목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세부 내용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방향성은 일치한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근로자 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 선임 △다중대표소송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처분규제 부활 등이 대표 개정안이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안 중 일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강력한 규제를 담고 있어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논란이 된 조항들은 대부분 대주주 권한을 제한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현행 상법에서는 이사를 일괄적으로 선출한 뒤 선출된 이사 중 감사위원을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주주 의결권은 이사 선임 때는 제한이 없다. 반면 국회에 발의된 상법 개정안들은 일반 이사와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출하도록 했다. 동시에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대주주 의결권은 선임 단계부터 3%까지만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이 감사위원 자리에 자기 사람을 밀어 넣을 여지가 커진다.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기 때문에 일정 지분을 가진 해외 펀드끼리 규합하면 표 대결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어서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선진국 중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하거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곳은 전무하다. 상법 개정안은 또 소액주주와 우리사주조합(또는 근로자 대표)이 추천하는 1인을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출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경제계에서는 주식회사의 소액주주 및 근로자 대표에게 이런 권한까지 부여하면 오히려 주주 간 역차별이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주주의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지배구조 개선 필요하지만 신중해야” 재계는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은 점진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보다 신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한상의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장기 불황과 글로벌 경쟁으로 지친 기업들에 경영 자율성마저 제한하면 소위 ‘테이블 데스(수술 중 환자 사망)’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문제를 개선한다고 지나치게 앞서가는 규제만 도입하면 실효도 못 거둔 채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상법 개정안대로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국내 기업들은 소송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모험적인 투자를 대폭 줄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모회사의 발행주식을 1%(상장사 0.01%) 이상 보유한 모회사 주주들까지도 자회사 이사의 경영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후진국에서는 규제를 옥상옥식으로 쌓아도 잘 작동되지 않는 반면 선진국에서는 시장참여 주체들의 자율규범에 따라 최선의 관행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기관 투자가들이 기업을 감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주요 이슈들이 하나씩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귀회의 일익 번창하심을 기원합니다. 귀회의 회원인 폐사는 퇴회를 결정하였기에 귀회 정관 제8조에 따라 본 퇴회원을 제출합니다.” 삼성전자는 6일 오전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명의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e메일로 이 같은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전경련 정관 제8조(퇴회)에 따르면 회원사가 전경련을 탈퇴하려면 퇴회원을 제출해야 한다. 단 두 개의 문장으로 1961년 8월 16일 시작돼 56년간 이어져 온 삼성그룹과 전경련의 인연은 끝이 났다.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등 그룹 내 전자 계열사들은 이날 모두 전경련을 탈퇴했다. 전경련 회원사인 삼성 15개 계열사 중 나머지 계열사들도 하루 이틀 안에 모두 탈퇴원을 내기로 했다.○ 삼성의 쇄신은 이미 ‘현재진행형’ 삼성의 전경련 탈퇴는 지난해 12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사태 관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한 약속 중 하나다. 이 부회장은 당시 △전경련 탈퇴 △삼성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차명계좌의 실명 전환에서 발생한 이익금의 용처 결정 등 세 가지를 약속했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삼성이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가 종료된 후 전경련 탈퇴를 선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대적으로 발표하는 쇄신안 중 한 가지로 거론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었다. 삼성이 예상보다 빨리 전경련 탈퇴를 발표한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삼성의 쇄신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나머지 두 가지 약속도 특검 수사 종료 시점과 맞물려 예상보다 빨리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은 실제 이날 오후 출입기자단에 “약속한 대로 미래전략실은 해체한다. 특검의 수사가 끝나는 대로 조치가 있을 것이며 이미 해체 작업을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공지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상 미전실 해체 작업이 2008년 삼성 특검 당시보다 훨씬 속도감 있게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08년 4월 17일 조준웅 특검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닷새 만인 22일 ‘경영쇄신안’을 내놓았다. 전략기획실 해체 선언은 그 후 두 달이 지난 6월 25일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적으로 이미 미전실 해체 방안은 완성돼 있고 수뇌부의 최종 사인만 남은 단계”라고 했다. 다만 수사 대상인 미전실 핵심 간부들의 거취 문제가 얽혀 있어 특검 수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미전실 해체 발표 직후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의 그룹 운영 방식을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은 그룹을 총괄하는 별도의 조직이 없다. 꼭 필요한 기능은 주력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가 맡고 있다.○ 존폐 위기 놓인 전경련 전경련의 초대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전경련은 이날 삼성의 탈퇴로 존폐 기로에 서게 됐다. 전경련 주요 회원사 중에는 LG그룹이 지난해 말 가장 먼저 탈퇴를 공식화했다. 현대차그룹도 올해 회비를 납부할 계획이 없어 사실상 탈퇴 수순을 밟고 있다. SK그룹도 마찬가지다. SK그룹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탈퇴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롯데그룹과 CJ그룹 등은 전경련의 쇄신 방향 등을 좀 더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이달 23일경 정기총회가 예정돼 있는 전경련은 아직 조직 쇄신을 위한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이달 말로 임기가 끝난다. 전경련은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을 뽑고 쇄신안 방향을 결정짓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거물급 관료 출신들을 차기 회장 후보로 영입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물망에 오른 인사들이 회장직을 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 일부 회원사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을 거론했지만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장관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비공식적으로 제안 받은 것은 맞다. 하지만 제가 갈 곳은 아니고 기업인이 맡아야 할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 선출을 매듭짓지 못하면 임원이 사무국 전체 운영을 맡는 비상운영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김지현 jhk85@donga.com·이샘물·이새샘 기자}
《 “애당초 인간은 ‘타인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각오 아래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인간의 기본(소노 아야코·펭귄카페·2014년) 》 신년에 직장인들을 만나면 종종 분위기를 살펴야 할 때가 있다. 연말 인사에서 영전했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 상대의 심기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조직이 본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리를 줬을 때 사람들은 실망과 분노를 안고 한 해를 시작하기 마련이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조직에 대한 애정과 업무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주변으로부터 온전히 이해받고 기대한 만큼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누군가가 ‘전적으로 나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또는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열심히 하거나 운이 좋으면 인정받을 때도 있지만 인간에겐 타인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타인의 인정과 이해에는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있을 수 있으니 그 양쪽을 잘 가늠하면서 인생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삶에서 원치 않는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숙명과도 같다. 책에서는 “나쁜 상황,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을 경험하는 것의 의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부담을 이겨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러지 못하면 유익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밑거름인 ‘강인함’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치를 예로 들며 “수많은 난관과 권력 투쟁을 이겨낸 사람과 그저 성적이 우수하고 정책에 정통한 사람은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전혀 다르다”고 설명한다. 일본인 비정부기구(NGO) 활동가인 저자는 인간의 위기관리 역량을 키우는 데 있어 ‘다소 불편한 상황을 극복해가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웃 나라인 한국이 경제,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도 젊은이들이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하고, 또 북한과 늘 긴장 관계에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한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구자열 LS그룹 회장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사돈을 맺는다. LS그룹은 구 회장의 외아들 구동휘 LS산전 이사(35)가 박 회장의 장녀 박상민 씨(27)와 이달 중순 서울의 한 호텔에서 결혼한다고 2일 밝혔다. 구 이사는 구 회장의 1남 2녀 중 둘째이자 외아들이며, 박 씨는 박 회장의 1남 1녀 중 장녀다. 두 사람은 지난해 구 이사의 누나 은아 씨의 소개로 만났다. 지난해 12월 양가 상견례를 가졌고, 지난달 12일에 양가 직계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약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은 주로 양가 친인척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다. 구 이사는 미국 센테너리대를 졸업하고 2012년 우리투자증권에 입사해 경험을 쌓았다. 2013년 LS산전 차장으로 입사했다. 입사 후 경영전략실을 거쳐 충북 청주의 LS산전 생산공장 생산기획팀에서 일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2015년 부장으로 승진한 뒤 올해 이사로 승진했다. 박 씨는 미국 코넬대를 졸업했다. 구자열 회장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인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박정원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SK이노베이션이 미국 1위 화학기업 다우케미컬의 에틸렌아크릴산(EAA) 사업을 3억7000만 달러(약 4270억 원)에 인수한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이 다우케미컬과 2일 이 같은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이 연초에 밝힌 ‘올해 최대 3조 원 규모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것이다. EAA는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인 기능성 접착 수지 중 하나다. 주로 포장재용 접착제로 활용된다. 기술 진입장벽이 높아 다우케미컬, 듀폰, 엑손모빌 등 글로벌 선두 기업들만 연간 14만 t가량(지난해 기준)을 생산해 왔다. 2015년 다우케미컬이 듀폰과 합병하기로 하면서 EAA는 반독점 규제에 걸리게 됐다. 다우케미컬은 올해 합병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 해당 사업을 매물로 내놨고 SK가 인수에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은 다우케미컬이 미국 텍사스와 스페인 타라고나에서 운용 중인 생산시설 2곳과 제조 기술, 지식재산, 상표권 등을 확보했다. 1분기(1∼3월) 안에 기업 결합 신고와 인수대금 지급 등 인수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글로벌 EAA 시장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연평균 2∼3%씩 성장하고 있다. 중국 시장은 아직 비중이 크지 않지만 연간 7%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EAA 사업 인수를 시작으로 신규 인수합병(M&A)과 글로벌 파트너링 발굴에 박차를 가해 2018년 기업 가치를 30조 원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올해는 SK이노베이션이 에너지, 화학 분야의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가기 위한 사업구조 혁신의 원년”이라고 강조했다. SK㈜, SK네트웍스 등 다른 그룹 계열사들도 최근 M&A를 통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2015년 8월 이후 인수를 완료했거나 계약을 맺은 M&A 규모만 총 2조2000억 원에 이른다. 특히 최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SK㈜는 OCI머티리얼즈와 LG실트론 인수, 쏘카 지분(20%) 투자 등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의 이번 인수 역시 그룹 전체적인 사업구조 혁신에 대한 최 회장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정유업계가 지난해 사상 최대 수준인 총 8조 원가량의 영업이익을 올렸을 것으로 전망됐다. 일등 공신은 정유가 아니라 석유화학 등 비(非)정유 사업인 것으로 분석돼 유가에 목매던 국내 정유업계가 체질 변화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1일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정유업계의 ‘맏형’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3조2000억 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추정됐다. 역대 최대였던 2011년 2조8424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국내 정유 및 유화 업계에서 연간 영업이익이 3조 원을 넘기는 것은 SK이노베이션이 처음이다. 다른 정유사들도 모두 지난해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 실적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에서는 지난해 GS칼텍스는 2조900억 원, 에쓰오일은 1조7200억 원, 현대오일뱅크는 9700억 원 내외의 이익을 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유업계가 사상 최대 실적을 바라보는 것은 석유화학과 윤활유 등 비정유 사업 부문이 빛을 발해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3분기(1∼9월)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1조575억 원)이 정유 부문(9725억 원)을 뛰어넘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5년간 울산과 중국 우한(武漢) 등에 공장을 건설하면서 석유화학사업에 3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 2014년엔 파라자일렌(PX) 생산 규모를 연간 280만 t으로 늘리면서 생산 규모 기준으로 세계 10위권에서 6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에너지 업계에선 이젠 ‘정유업계’란 용어부터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유사들이 화학·윤활유 등 비정유 부문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과실을 따먹으며 ‘에너지·화학사’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영업이익에서 정유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62.4%에서 지난해(1∼9월) 40%대로 줄었다. 정유업계에서는 올해도 실적 호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중국 등이 인프라 투자 확대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는 등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정유 및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정제 마진이 높게 유지되고 수출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유사들은 올해에도 석유화학 및 윤활유 등 비정유 부문을 집중적으로 키울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는 2020년 영업이익 1조 원 이상을 달성하고 이 중 30% 이상을 비정유 부문에서 창출할 계획이다. 에쓰오일은 석유화학제품 생산을 위해 총 4조7890억 원을 투자해 ‘잔사유 고도화 설비(RUC)와 올레핀 다운스트림 복합단지(ODC)’를 짓고 있다. 정유사들이 화학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높은 성장성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1∼9월) 사업 부문별 영업이익률은 정유사업은 4.6%였지만 화학사업은 18.1%로 훨씬 높았다. 그 덕분에 2011년 4%대였던 SK이노베이션 전체 영업이익률도 지난해는 2배로 오른 8%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성장이 정체된 정유업을 벗어나 성장잠재력이 큰 석유화학, 윤활유 등 비정유 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올해 국내 산업계를 기상도로 표시하면 정보기술(IT)·가전 분야만 유일하게 ‘맑을’ 전망이다. 반면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의 전망은 올해도 밝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는 3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산업 기상도’를 발표했다. 산업 기상도는 업종별 실적과 전망을 집계하고 국내외 산업 변수를 분석한 것으로 ‘맑음(매우 좋음), 구름 조금(좋음), 흐림(어려움), 비(매우 어려움)’ 등 4단계로 표현된다. IT·가전은 반도체 부문이 호조세를 견인하면서 가장 쾌청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존의 PC, 스마트폰 위주에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드론 같은 신기술 및 신제품으로 적용 범위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스마트폰 화질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도 호재다. 액정표시장치(LCD) 대신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95% 이상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교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한시법인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9월 말 종료되면 보조금 상한선이 없어져 고급형 스마트폰 구매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지난해 맑았던 건설 경기는 올해 위축될 것으로 전망됐다. 금리 인상 전망과 지난해 11월 발표된 부동산 안정화 대책,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등에 따른 것이다. 철강산업은 공급 과잉과 주요국의 수입 규제가 악재로 분석됐다. 최근 미국이 한국산 철강에 50% 이상 고율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가운데 태국, 인도, 대만 등 신흥국도 수입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11년 만에 생산량 기준 글로벌 ‘빅5’에서 탈락한 자동차 산업은 2년 연속 ‘비’로 진단됐다. 내수 시장 침체가 여전한 데다 중국과 미국발 대외 변수까지 겹쳐 ‘삼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산업 구조조정이 한창인 조선업도 자동차와 함께 ‘비’로 분류됐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 ‘빅3’는 인력 구조조정이 한창이고 중소 조선업체들은 공멸 위기에 몰려 있다. 2014년 하반기(7∼12월)부터 이어진 조선업 ‘수주 절벽’으로 당장 올해부터 독(dock·선박건조대)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것으로 보인다.이샘물 evey@donga.com·김창덕 기자}
대내외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인해 올해 산업 기상도는 흐릴 것으로 전망됐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는 최근 10여 개 업종단체와 공동으로 '2017년 산업 기상도'를 조사한 결과 이 같이 조사됐다고 31일 밝혔다. 이는 대선을 비롯한 국내 정치의 향배, 하방 압박에 직면한 중국 경기, 미국 금리 인상과 후폭풍,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에 따른 것이다. 업종별로는 IT·가전산업만 '맑음'으로 관측됐다. 건설, 정유·유화, 기계 등 3개 업종은 '구름 조금', 철강, 섬유·의류 등 2개 업종은 '흐림', 조선, 자동차 등 2개 업종은 '눈 또는 비'로 예보됐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4차 산업혁명의 수혜가 기대되는 IT·가전, 산유국 설비 투자 재개 수혜 등이 기대되는 기계 업종은 1단계 호전됐다. 반면 정유·유화는 중국시장의 자급 확대로, 건설은 부동산경기 둔화 등으로 1단계 악화됐다. 올해 가장 쾌청한 업종은 IT·가전으로 분석됐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기존 PC, 스마트폰 위주에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드론 같은 신기술·신제품으로 적용범위가 급격히 확대 중인 반도체 부문이 호조세를 견인할 전망이다. 철강산업은 공급과잉과 주요국의 수입 규제가 겹쳐 구름으로 예보됐다. 최근 미국이 한국산 철강에 50% 이상 고율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가운데 태국, 인도, 대만 등 신흥국도 수입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여기에 자동차, 조선 등 전방산업 부진으로 국내수요도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다만 글로벌 과잉공급의 진원지이자 세계 철강의 50%를 생산하는 중국이 지난해부터 감산 조치를 본격화했고 철강재 가격 상승 등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으나 경기회복세가 약해 철강경기 불황은 당분간 더 이어질 전망이다. 조선은 구조조정과 수주절벽의 직격탄을 맞으며 비 또는 눈으로 전망됐다. 전 세계 무역량 감소로 수주가뭄이 계속되고, 구조조정으로 건조물량 취소와 계약취소 등 일감부족이 심화될 것이란 지적이다. 과당출혈경쟁과 구조조정 적기를 놓쳐 10년 전(2008년) 중국에 추월당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수주잔량마저 일본에 재역전 당해 세계 3위로 내려앉았다. 자동차도 내수 감소, 중국차 상륙, 미국 내 투자 압박의 삼중고가 겹치며 '비 또는 눈'으로 전망됐다. 올해 내수 감소 폭이 3.5%로 지난해(0.4% 감소)보다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중국 자동차마저 내수시장 잠식에 나서 경쟁강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대외적으로도 미 신정부가 자국 생산·판매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우리 업체는 타국 업체에 비해 미국 현지생산 비중이 낮고, 관련 이슈를 논의할 한미정상회담이 주요국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사상 첫 8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30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의 시가총액(보통주와 우선주 합계액)은 25일 종가 기준 793조9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약 10년 전인 2006년 말 336조1000억 원에 비해 2.4배로 증가한 수치다. 10대 그룹 상장사 시가총액은 2012년 말 738조 원을 기록하면서 처음 700조 원 시대를 열었다. 2015년 증시 침체로 681조9000억 원으로 줄었지만 지난해 말 762조2000억 원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올해만 30조 원 넘게 늘어났다. 삼성그룹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은 2006년 말 139조6000억 원에서 25일 421조9000억 원으로 3배로 증가했다. 주력회사인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같은 기간 90조3000억 원에서 277조1000억 원이 됐다.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소속 상장사들의 시가총액도 10년여 사이 각각 36조4000억 원에서 102조1000억 원, 40조 원에서 94조7000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갤럭시 노트7’ 발화 원인을 공식 발표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선 삼성전자가 중국 민심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갤럭시 노트7에 쓰인 중국 ATL 배터리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2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3일 공식 기자회견을 하기 전 중국의 주요 언론사 기자들을 초청해 미리 설명회를 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은 기자회견에서도 “중국은 노트 시리즈에 대해 세계 어느 곳보다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던 곳”이라며 중국 소비자들을 달래는 데 공을 들였다. 기자회견장에는 중국 취재진 수십 명이 참석해 한국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로도 동시 통역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갤럭시 노트7에 대한 1차 리콜을 결정하면서 삼성SDI 배터리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중국 판매분을 수거 대상에서 제외했다. 현지에서는 중국 소비자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비판이 대두됐다. 이후 ATL 배터리를 탑재한 제품마저 발화 사고가 나자 논란은 확산됐다. 이번에는 ‘배터리 결함’이란 조사 결과가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에서 왜 자국 업체를 문제 삼느냐는 반발 기류가 형성된 것이다. 현지 언론들은 “ATL 배터리는 애플과 화웨이를 비롯한 다른 휴대전화 제조업체에도 공급됐지만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삼성에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전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배터리 공급사인 삼성SDI와 ATL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한 것도 중국 내 여론 악화를 막기 위한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배터리 공급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으면 삼성전자 주주들이 배임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이에 리콜 비용 분담에 대해서만큼은 배터리 공급사들과 협의할 방침이다. 갤럭시 노트7의 단종으로 삼성전자가 입은 손실은 7조 원 안팎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중국 내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3년 19.7%(1위)였던 삼성전자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7∼9월) 4.6%(8위)까지 떨어졌다. 차기 스마트폰인 ‘갤럭시 S8’의 성공 여부도 중국 판매량 회복에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