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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5000선을 돌파한 S&P500지수는 또다시 새로운 기록을 쓸 수 있을까요. 뉴욕증시가 ‘대통령의 날’을 맞아 휴장한 19일(현지시간), 시장 참가자들은 주요 기업 실적에 눈을 돌립니다. 이번주엔 증시에 영향력이 큰 두 기업의 실적이 발표될 예정이죠. 바로 엔비디아와 월마트입니다. 최근 아마존과 알파벳을 차례로 제치고 미국 증시 시총 3위에 오른 엔비디아.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한 게 약 8개월 전인데 어느덧 시총이 1조8000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뒤를 잇고 있는데요.올해 1월에 끝난 회계연도에서 엔비디아 매출은 590억 달러에 달할 걸로 전망됩니다. 전년도의 두배 이상이죠. 이른바 메가캡 기술 기업 중 이렇게 빠른 속도로 매출이 두배로 불어난 사례는 없다는데요. 덕분에 엔비디아 주가가 그렇게 뛰었는데도 여전히 12개월 선행 PER(주가수익비율)은 33배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아마도 엔비디아는 21일 또다시 강력한 실적을 발표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투자자들이 더 궁금해하는 건 이 AI 반도체 호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입니다. 특히 올해와 내년 AI 반도체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들 텐데요.현재까지 월가는 꽤 낙관적입니다. AI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지만, 엔비디아는 올해 말 신제품 B100을 내놓으며 치고 나갈 거기 때문이죠. 얼마 전 UBS는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850달러로 상향조정하기도 했습니다. 시총 2조 달러를 돌파할 거란 전망이죠.월마트는 엔비디아보다 하루 앞서 20일 실적을 발표합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월마트가 또다시 강력한 실적을 내놓을 거라고 보죠. 고물가 상황에서 미국 소비자들이 가성비 좋은 월마트를 더 많이 찾고 있기 때문인데요.하지만 실적 호조만으로 주가가 상승세를 이어가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경영진이 올해 실적 전망과 관련해 신중한 어조를 취한다면 말이죠. 에버코어ISI 애널리스트 그레그 멜리츠는 월마트 실적이 예상을 충족할 거라면서도 “보수적인 가이드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실적 발표 후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지난번 실적발표 때도 더그 맥밀런 CEO는 ‘디플레이션’을 언급해 투자자들을 당황케 했죠(당시 주가 8% 급락).다만 만약 주가가 하락한다면 이는 매수 기회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지난 몇 분기 동안 월마트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 일시적으로 하락했다가 회복되곤 했죠. 오펜하이머의 루페쉬 파리크 애널리스트는 “앞으로 12~18개월 동안 지속적인 실적 개선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전망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유권자만 2억명 넘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가 14일 치러졌죠. 여론조사 결과, 예상대로 현 국방장관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의 당선이 유력합니다. ‘독재자의 오른팔 출신’의 승리에 민주주의 후퇴가 우려된다는 반응이 나오는데요.우리가 인도네시아 대선까지 신경 쓰는 이유는 사실 경제 때문이죠. 자원부국 인도네시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상당한데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성향의 새 리더를 맞이하게 된 인도네시아 경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인니판 트럼프’의 당선에서는 2024년 인도네시아 대선에 대해 이렇게 예측(?)했습니다. ‘누구든 조코위 현 대통령이 미는 사람이 당선될 확률이 커 보인다’고요. 그리고 역시 그렇게 됐습니다.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37)를 러닝메이트로 삼은 프로보워 후보가 3수 끝에 대선 승리를 선언했죠. 사실 공식 선거 개표 결과는 한 달 뒤에나 나오지만, 표본 출구조사 결과(득표율 58%)가 꽤 정확해서 뒤집힐 일은 없어 보입니다. 과반수 득표에 성공하면 6월에 결선투표를 치를 필요 없이 바로 당선이 확정됩니다.프라보워(72세)와 조코위(62세). 정반대 캐릭터이죠. 프라보워가 명문가 출신의 거만한 전직 장군이라면, 조코위는 서민 출신의 부드러운 전 가구 제조업자입니다. 프라보워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닮았다면, 조코위 별명은 ‘인도네시아 오바마’이죠. 특히 프라보워는 인도네시아를 30년 넘게 통치한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수하르토가 하야한 1998년 이혼)이자 친위대장 출신으로, 민주화 운동가 탄압에 관여한 전력이 있습니다. 소통에 강한 문민 정부 지도자인 조코위와는 도통 닮은 점을 찾을 수 없죠.그런데 그 둘이 손을 잡았습니다. 아무리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정치판이라지만, 참 놀라운 일인데요. 도대체 왜? 조코위 대통령이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고,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거겠죠. 친족주의와 정실주의. 인도네시아 정치의 오랜 폐습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인구 2억7600만명인 인도네시아는 세계 세 번째로 큰 민주주의 국가(1위 인도, 2위 미국)이죠. 하지만 아직도 정치와 경제 권력을 쥐고 있는 건 수하르토 시절부터 부를 축적한 지배층입니다. 재벌이 정치까지 주무르는 ‘그들만의 세상’이죠.조코위가 2014년 당선됐을 때만 해도 이 낡은 구조를 일소할 거란 기대를 받았는데요. 조코위 대통령은 그 대신 실용주의를 택했습니다. 영리하게 기득권층을 달래고 어르고 타협하면서 자신의 개혁안(규제 개혁, 신수도 건설 등)을 통과시켰죠. 덕분에 경상수지 균형, 5%대 경제성장률, 수천 ㎞의 도로를 포함한 인프라 건설 같은 눈에 띄는 성과도 올렸고요.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 조코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70%가 넘었습니다.하지만 국제투명성기구의 2023년 부패인식지수에서 인도네시아는 180국 중 115위를 기록했습니다. 2019년 이후 점수가 오히려 떨어졌죠. 이런 상황에서 기득권층의 대표 주자 프라보워가 권좌에 오르게 된 겁니다. 인도네시아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누리 옥타리자 연구원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이렇게 말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기본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교육, 의료인프라, 빈곤, 일자리 창출, 부패 근절 문제가 여전히 주요 초점이죠. 프라보워의 군사주의적 배경과 포퓰리즘적 성향을 고려할 때 그가 어떤 지도자가 될지는 매우 불확실합니다.”니켈 부국이 불안한 이유전 세계가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 건 그 경제적 잠재력 때문이죠. 인구대국이자 자원대국인 인도네시아는 최근 2년 연속 5%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강한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아직은 GDP 기준 세계 16위이지만 이런 성장세라면 10여 년 뒤엔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전망이죠. 물론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보다 더 야심 찬 계획(2030년 세계 10위, 2045년 세계 5위)을 밝혔지만요.이런 성장 배경엔 니켈 중심의 산업정책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이죠. 인도네시아는 니켈 매장량 세계 1위 국가이고요. 지난해 글로벌 니켈 시장에서 이 나라는 무려 점유율 55%를 차지했는데요.2020년 인도네시아는 니켈 원광(가공 전 단계) 수출을 전격 금지해버렸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니켈을 가공하도록 강제했고, 그 결과 인도네시아에 니켈 제련공장과 배터리 제조 공장을 만들기 위한 외국기업 투자가 밀려드는 효과를 거뒀죠. 자동차 산업이랄 게 없던 이 나라에 BYD, 포드, 그리고 현대자동차까지 앞다퉈 진출했습니다.여기까지만 보면 ‘자원 무기화의 승리’라 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글로벌 니켈 시장이 지난해부터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겁니다. 공급 과잉 때문에 니켈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 건데요. 2022년 3월 t당 4만8000달러를 찍었던 니켈 가격은 이제 1만6000달러로 3분의 1토막 났습니다. 1년 전과 비교해도 40% 가까이 떨어졌죠.니켈 공급 과잉의 주범은 누구일까요. 세계은행도, 맥쿼리도 모두 인도네시아를 지목합니다. 맥쿼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의 니켈 생산량이 지난해 30% 급증하면서 다른 국가에선 수익성 없는 니켈 광산을 폐쇄하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BHP그룹, 파노라믹 리소시스, 와일루 메탈스 같은 굴지의 호주 광산기업이 니켈 채굴을 중단했습니다. 이 가격으론 도저히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거죠.경쟁자들이 나가떨어졌으니, 이제 인도네시아가 시장을 장악할 기회일까요?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니켈 공급 홍수로 인해 인도네시아 니켈산업조차 휩쓸려버릴 위험에 처했는데요.인도네시아 광산전문가협회의 리잘 카슬리 회장이 최근 CNBC와 인터뷰한 내용이 무시무시합니다. 그는 현재 건설 중인 니켈 제련소가 모두 완공되면 “거의 1200만t 정도 공급이 늘어나게 된다”고 전하죠. “세계 시장에 니켈이 넘쳐날 것”이라며 걱정하는데요. 지난해 인도네시아 전체 니켈 생산량은 약 200만t. 그 6배 물량이 앞으로 더 쏟아져나온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이미 공급 과잉인데, 그 많은 물량을 어떻게 소화할까요. 공급 폭탄이 현실화하면 니켈 가격 붕괴는 피할 수 없습니다.‘조코위 2.0’ 기대하지만요약하자면 인도네시아 경제 성장을 이끈 조코위 대통령의 ‘니켈 무기화’ 약발이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팜유나 석탄 같은 다른 주요 수출품 가격도 하락세에 있고요.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의 성장 둔화까지 겹치면서 당분간 수출 전망은 썩 밝지 않습니다. 게다가 심각한 빈부 격차와 고질적인 부정부패 문제는 여전히 골칫거리인데요. 즉, 인도네시아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려면 앞으로 10년이 정말 중요한 시기입니다.10월 대통령에 취임할 프라보워는 인도네시아 경제를 어떻게 이끌까요? 일단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조코위 정책 계승’을 내걸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정책입니다. 니켈을 포함한 천연자원을 활용한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을 더 확대하고(이른바 ‘다운스트림’ 정책),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규제를 개혁하고, 새로운 수도 누산트라 건설을 계획대로 진행해나가겠다는 거죠. 바로 그 점-크게 달라지지 않고 안정적일 거란 기대- 때문에 그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특히 많았습니다.프라보워의 승리 소식이 알려진 15일 인도네시아 증시는 1%대 상승으로 마감했는데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인도네시아 경제에 긍정적인 것도 프라보워 정부가 ‘조코위 2.0’이 될 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JP모건은 현재 7300포인트 수준인 자카르타종합지수가 올해 7500까지 오를 걸로 내다봤고요. 씨티그룹은 7750포인트를 제시합니다. 투자회사 야누스헨더슨의 펀드매니저 샛 두흐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코위 정부는) 오랜 경상수지 적자와 외국인 직접 투자 문제를 해결했고 인프라 측면에서 많은 진전을 이뤘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와도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기대합니다.”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인도네시아 전문가인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 알렉산더 아리피아노 연구원 분석은 좀 다릅니다. 그는 상당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얘기하죠. “프라보워는 지금 조코위에 경의를 표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자신의 길을 가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도네시아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력한 국가가 되길 바랍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 자원을 투입할 겁니다.”걱정스러운 ‘판차실라 경제관’괜한 의심이 아닙니다. 프라보워는 이미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경제관을 밝힌 적 있는데요.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인도네시아가 ‘판차실라 경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판차실라 경제? 도대체 그게 뭘까요. 일단 판차실라(Pancasila)는 1945년 제정된 인도네시아 헌법 전문에 실린 건국 이념인데요. 다섯개 원칙(신에 대한 믿음, 인도주의, 통합, 민주주의, 사회 정의)으로 구성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통합을 추구하는 정신이라 하겠는데요. 참 이대로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은 이념이긴 합니다.문제는 판차실라가 과거 정권에서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곤 했다는 거죠. 수하르토 시절 악명 높았던 극우 정치깡패 집단 이름이 ‘판차실라 청년단’이었으니까요.어찌 됐든 판차실라 자체는 우리나라 ‘홍익인간’처럼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념인데요. 프라보워는 자신의 국수주의적 경제관을 판차실라로 교묘하게 포장합니다. 그는 판차실라 경제론을 이렇게 설명했죠. “이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 즉 중도의 길입니다. 인도네시아는 항상 중간 길을 택했습니다. 제로섬 게임이 아닌 타협입니다.” 그러면서 생산 부문은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 개인이 아닌 국가 이익을 중시해야 한다, 평등주의적이고 대중적인 경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칩니다.아울러 “현재 인도네시아 경제는 신자유주의로 향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규제완화와 금융시장 개방, 국영기업 민영화와 재정건전성 강화 같은 조코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을 죄다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낙인찍은 겁니다. 갑자기 웬 신자유주의 타령인가 싶을 텐데요. 그는 신자유주의란 용어를 ‘국가의 부를 해외로 빠져나가게 만드는 매판 자본주의’와 같은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로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이게 만든 경제정책들이 죄다 국가의 번영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보는 거죠.어떤가요. 이해되시나요? 인도네시아 경제는 이제 간신히 재정 건전성 높이고 외국 투자자 신뢰를 되찾고 있거든요. 더 많은 외국인 투자를 끌어오기 위해 발벗고 나서도 모자랄 판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운운하는 건 너무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닌가 싶습니다.오죽하면 해외에서도 유능한 경제관료로 명성이 높은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 재무장관이 지난달 사임하려고 했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됐죠. 그는 그동안 국방장관인 프라보워와 예산 때문에 번번이 충돌해왔는데요. 조코위 대통령이 대선에서 프라보워 편에 서는 걸 보고 열 받아서 장관을 관두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가 실제 물러나진 않았지만(후임자의 예산 낭비가 걱정돼서 사임하지 않았다고), 이 소문만으로 인도네시아 통화가치가 한때 출렁거렸을 정도로 금융시장엔 충격을 줬습니다.아직은 공식적으로는 프라보워가 후보자 신분이니 ‘조코위 정책 계승’ 약속을 바로 뒤집지야 않을 텐데요. 막상 권좌에 오르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동안 한국 기업도 인도네시아 시장을 유망하게 보고 많이 진출해왔죠. 인도네시아판 트럼프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By.딥다이브프라보워 후보는 한국과 악연이 있습니다. 2019년 국방장관이 되자마자 한국과 공동개발한 KF-21 전투기 사업 분담금 지급을 중단해버렸기 때문이죠. 그는 지난해 카타르에서 중고 미라지 전투기 12대를 구매키로 해서 또다시 한국 뒤통수를 쳤는데요. 이 계획은 스리 물야니 재무장관이 예산을 주지 않고 버티면서 결국 무산되긴 했습니다. 국가간 약속도 쉽게 깨버리는 프라보워에게 과연 신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인도네시아 대선이 프라보워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조코위 현 대통령의 장남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운 것이 결정적인 승리 요인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친족정치, 정실정치 악습이 되살아났습니다.-자원 부국 인도네시아 경제는 양호한 성장을 기록 중이지만, 걱정거리도 있습니다. 성장의 큰 축인 니켈산업이 공급과잉 여파로 가격 폭락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앞으로 10년이 인도네시아 경제엔 중요한데요. 일단 프라보워는 대선 공약에선 ‘조코위 경제 정책 계승’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국수주의적 경제관을 볼 때, 그가 약속을 지킬지 의문입니다. 그는 규제개혁이나 재정건전성 강화 같은 기존 경제 정책을 ‘외국 기업만 배불리는 신자유주의’로 매도합니다. 솔직히 좀 우려스럽습니다.*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 3대 지수가 15일(현지시간) 일제히 상승했습니다. 이로써 이틀 전 ‘물가 쇼크’로 급락했던 걸 만회했는데요. S&P500은 0.58% 상승해 또다시 사상 최고치(5029.73)를 기록했고요. 다우지수는 +0.91%, 나스닥지수는 +0.3%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날 아침에 나온 1월 소매판매는 예상보다 더 나쁜 0.8% 감소를 기록했는데요. 이 소식이 주식시장엔 오히려 호재로 통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경기가 좀 꺾이는 신호가 나타난다면 연준이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앞서 13일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주식시장이 심하게 요동쳤었는데요. 이제 와선 그게 너무 과잉반응이었다고 보고 되돌림이 나타나는 겁니다. B릴리 웰스 매니지먼트의 아트 호간 최고시장전략가는 CNBC에 이렇게 설명했죠. “적당히 높은 CPI에 시장은 엄청난 반응을 보였고, 그중 일부를 되돌리기 위해 남은 주를 보낼 겁니다.”이날 증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업종은 상업용 부동산 관련 주식입니다. CBRE,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JLL 모두 주가가 8%대로 급등했죠. 세계 최대 상업용 부동산 그룹인 CBRE가 “사무실 임대에 대한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는 낙관론을 표명했기 때문인데요.이날 컨퍼런스콜에서 CBRE는 미국의 사무실 수요가 6개월 동안 증가세를 보였고, 올해 말 미국 금리 인하가 예상되면서 거래량이 증가할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엠마 지아마르티노 CFO는 애널리스트들에게 “2025년엔 과거의 핵심 주당순이익(EPS) 정점을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이 소식에 CBRE 주가는 8.53% 급등하면서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그동안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원격근무 확대와 고금리가 겹치면서 어려움에 처했었죠. 특히 부동산 소유주의 채무불이행 사태가 이어지면서 대출해준 은행에까지 충격파가 미칠 수 있다는 걱정이 컸는데요. 아직 우려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끝이 보인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에 대격변이 일고 있다. 전통의 강자였던 미국 아이로봇은 중국 경쟁사에 밀려 빠르게 쇠락 중이다. 중국 에코백스가 1위로 떠올랐지만 중국 내수시장 경쟁이 과열되면서 지위는 위태롭다. 그러자 중국 업체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로봇청소기의 한국 시장 공습도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밀려난 아이로봇 룸바 미국 로봇청소기 제조사 아이로봇(iRobot)이 지난달 말 직원 31%(약 350명)를 해고하고 최고경영자를 교체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아이로봇 인수를 추진해온 아마존이 인수 포기를 발표한 데 이은 조치다. 아이로봇은 2002년 가정용 로봇청소기 ‘룸바(Roomba)’를 출시하며 로봇청소기 시장을 개척한 기업. 2016년엔 세계시장 점유율 64%에 달하는 절대강자였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실적이 급격히 악화했고 2022년부터 적자의 늪에 빠졌다. 아이로봇은 아마존으로의 매각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미국과 유럽연합 경쟁 규제당국의 반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아이로봇을 인수하면 아마존이 경쟁사를 도태시키게 될 것”이란 우려였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을 통해 “엘리자베스 워런이 아이로봇을 중국에 바쳤다”고 비판했다. 빅테크 인수합병을 강하게 반대해온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 같은 강경파 때문에 아이로봇과 경쟁하는 중국 기업만 웃게 됐단 뜻이다. ● 중국의 프리미엄 전략 현재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 1위 기업은 중국 에코백스(중국명 커워쓰)로 추정된다. 공식 점유율 수치는 없지만, 에코백스 매출은 이미 2022년부터 아이로봇을 추월했다. 에코백스의 지난해 1∼3분기(1∼9월) 매출은 아이로봇의 2배가 넘는다. 에코백스를 비롯한 중국 로봇청소기 제조사가 2010년대 말부터 두각을 보이는 건 기술력 때문이다. 로봇청소기 성능을 가르는 건 내비게이션 능력이다. 집 안 구조를 빠르게 파악해 지도를 만들고, 장애물을 피하면서 효율적인 경로로 청소해야 한다. 중국 제조사는 드론이나 자율주행차에 쓰이는 고급 첨단 라이다(LiDAR) 센서를 탑재해 이 성능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제품 가격은 비싸졌지만 한층 똑똑해졌다. 뉴욕타임스의 제품 리뷰 서비스 ‘와이어커터’가 지난달 ‘최고의 로봇청소기’로 꼽은 제품 역시 중국 2위 업체 로보락(중국명 스터우커지)의 ‘Q5’였다. 아이로봇 룸바에 대해서는 “매핑(집안 지도 제작) 시간이 3배 이상 걸렸다”, “자주 장애물에 부딪혔다”며 추천하지 않았다. 먼지 흡입과 걸레질 기능을 통합한 제품을 일찌감치 내놓은 것도 중국 제품의 인기 이유다. 집 바닥에 카펫이 깔린 미국과 달리 바닥재가 마루나 타일인 아시아권에선 물걸레질이 필수여서다. 고급화 경쟁에서도 앞서갔다. 걸레를 자동으로 빨아주고 열풍 건조까지 시키는 이른바 ‘올인원’ 제품을 2021년부터 앞다퉈 내놨다. ● 내수 경쟁에 주가는 급락 중국 로봇청소기가 세계 시장을 휩쓸지만, 정작 선두기업 주가는 신통찮다. 에코백스 주가는 1년 새 65% 추락했다. 고점(2021년 7월 225위안)과 비교하면 7분의 1토막 수준이다. 중국 내수시장 경쟁이 너무 과열됐기 때문이다. 에코백스는 지난달 ‘연간 실적 예비 발표’를 통해 “2023년 순이익이 전년보다 60∼65% 감소할 걸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매출은 소폭 증가했지만 치열한 경쟁 탓에 판매 비용이 급증했다. 에코백스는 최신형 제품 ‘디봇 X2 프로’를 중국에서 정가보다 26% 할인 판매 중이다. 경기 둔화로 중국 소비가 위축되면서 비싼 로봇청소기가 잘 팔리지 않는다. 중국은 로봇청소기 제조사만 200곳 넘는 레드오션이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 살길은 해외 진출뿐이다. 에코백스 역시 성장세 회복을 위해 “올해엔 해외 사업 비중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고 밝혔다. 이미 로보락이 해외 진출 효과를 입증했다. 일찍부터 해외로 나선 로보락은 높은 해외 비중(52%) 덕분에 지난해에도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주가도 지난 1년 동안 40%나 뛰었다. 한국은 중국 로봇청소기 제조사가 노리는 주력 시장이 될 전망이다. 프리미엄 전략이 잘 통하기 때문이다. 2020년 한국에 법인을 설립한 로보락은 2022년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고, 지난해 상반기(1∼6월)엔 약 7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판매가격이 180만 원 전후인 최고가 제품이 홈쇼핑 방송에서 5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LG전자가 2003년, 삼성전자가 2006년 로봇청소기를 처음 출시했을 정도로 한국 기업은 이 시장에 일찍 뛰어들었다. 하지만 2013년 LG전자 전직 연구원이 중국 가전회사로 로봇청소기 핵심 기술을 유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중국 기업은 이 분야 연구개발에 열을 올렸고, 지금은 성능이 앞선 제품을 내놓고 있다. 김현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중국 로봇청소기 기업은 1000명 넘는 연구원이 전담 투입되는데, 우리나라 기업은 30명 수준”이라며 “중국의 인해전술에 국내 기업이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발랄한 숏폼 동영상으로 가득한 틱톡(TikTok)에서 음악이 사라지면 어떨까요. 실제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요. 2월 1일부터 유니버설뮤직그룹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을 사용한 틱톡 영상이 음소거됐습니다. 유니버설뮤직과 틱톡의 재계약 협상이 깨졌기 때문이죠.음반 레이블과 기술기업 간의 음원 사용료를 둘러싼 전투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긴 하죠. 상대가 유튜브에서 스포티파이, 틱톡으로 달라졌을 뿐인데요. 이번 갈등엔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란 더 중요한 이슈까지 자리 잡고 있답니다. 음반업계 최대 거물, 루시안 그레인지 유니버설뮤직 회장이 던진 승부수가 과연 통할까요. 유니버설뮤직과 틱톡의 싸움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틱톡 ‘음소거’ 이유는 돈. 얼마인데?‘이 사운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저작권 제한으로 인해 소리가 제거됐습니다.’틱톡에서 이런 설명과 함께 음소거 처리된 영상이 크게 늘었습니다. 바로 세계 최대 음반 제작사 유니버설뮤직그룹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이죠. 여기엔 테일러 스위프트, 드레이크, 아리아나 그란데, 올리비아 로드리고, 더 위켄드 같은 해외 정상급 뮤지션이 속하고요. BTS와 뉴진스, 블랙핑크 같은 K팝 아티스트 음원도 포함됩니다(유니버설뮤직이 해외 유통을 맡음). 이들의 음악은 기존 영상에서 묵음처리될 뿐 아니라, 새로 만드는 영상에도 쓰일 수 없게 됐죠.유니버설뮤직과 틱톡 간 콘텐츠 사용료 협상이 결렬됐기 때문입니다. 일단 양측의 계약은 1월 31일 자로 종료됐습니다. 1월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유니버설뮤직 측은 협상이 결렬된 이유로 세 가지 문제를 거론했는데요(①아티스트와 창작자에 대한 보상 ②AI의 유해한 영향 ③틱톡 사용자의 온라인 안전). 가장 큰 건 역시 돈 문제이죠. 유니버설뮤직은 “틱톡이 유사한 위치의 주요 소셜 플랫폼이 지불하는 요율의 일부에 불과한 요율을 제안했다”면서 “음악에 대한 공정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고 음악 비즈니스를 하려고 한다”고 맹비난했습니다. 아울러 “틱톡은 우리 총수익의 약 1%만을 차지한다”고도 밝혀버렸죠.이거 참 솔깃한 팩트인데요. 유니버설뮤직의 2023년 매출이 115억 달러로 추정되거든요. 따라서 틱톡이 현재 유니버설에 연간 약 1억1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가 유니버설뮤직에 지불하는 금액은 이보다 2~3배 수준이라고 하죠(구겐하임파트너스의 마이클 모리스 애널리스트).유니버설뮤직에 준 게 이 정도라면 틱톡이 전체 음악 권리자에게 연간 3억~4억 달러를 지급한다는 뜻이 되거든요. (유니버설뮤직의 전 세계 음반시장 점유율은 약 32%, 음악 퍼블리싱 시장 점유율은 약 23%). 틱톡의 2023년 글로벌 광고 매출이 약 150억~180억 달러로 추정되는데요. 이는 곧 틱톡이 매출의 2~3%를 음악 이용료로 쓰고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이 정도 금액이면 많은 걸까요, 적은 걸까요. 입장 따라 판단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죠. 유니버설뮤직 측은 틱톡 영상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며 너무 턱없이 적은 보상이라고 분노하고요. 반면 틱톡 측은 자기네 영상은 실제 음원 구매를 대체하지 않고, 오히려 프로모션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반박합니다. 틱톡이 낸 짤막한 반박 성명엔 이런 입장이 담겨 있죠. “그들(유니버설뮤직)은 자신의 재능을 위한 무료 홍보·발견 수단 역할을 하는 10억 명 넘는 사용자를 보유한 플랫폼의 강력한 지원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습니다.”누가 권력을 쥐고 있나양측의 정면 충돌과 이로 인한 음소거 사태. 영상을 만드는 이용자뿐 아니라, 음반을 홍보하려는 가수와 그들의 팬들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로 인해 아주 흥미로운 테스트가 시작됩니다. 과연 음반사와 틱톡, 누가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틱톡엔 얼마나 음악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음반사엔 틱톡이 얼마나 필요할까요.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몇 가지 과거 사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2008년 워너뮤직의 유튜브 철수이죠.워너뮤직은 2008년 12월 유튜브와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자 유튜브에서 모든 콘텐츠를 삭제해버렸습니다. 소속 아티스트의 공식 동영상을 전부 내렸죠. 그리고 9개월 뒤 워너뮤직은 “가능한 최고의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자평하며 다시 유튜브로 돌아와서 내렸던 영상을 되살렸는데요.그럼 당시 재계약의 승리자는 워너뮤직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9개월 동안 워너뮤직은 유튜브에 올라오는 수많은 저작권 침해 게시물을 감시하기 위해 수십명을 동원해 ‘두더지 잡기’를 했는데요. 한 달에 수만 건씩 잡아내느라 총 200만 달러 넘게 썼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기껏 저작권 침해로 차단해도, 유저가 이의를 제기하면 다시 복원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워너뮤직은 2016년 의회에 제출한 서한에서 “2009년 9월 워너뮤직그룹이 유튜브와 체결한 계약 조건은 2008년 12월 거부한 조건보다 약간 나아진 것에 불과했다”고 패배를 인정했죠.최근 사례에선 좀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틱톡은 지난해 2월 호주에서 테스트를 하나 진행했죠. 일부 호주 이용자를 대상으로 게시물에 주요 음반사 음악 대부분을 이용할 수 없게 제한한 겁니다. 과연 음악이 틱톡 사용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실험해본 셈인데요.결과는 어땠을까요. 테스트를 시작한 이래 3주 연속으로 호주의 틱톡 활성이용자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앱 사용시간도 줄었고요. 블룸버그는 “이 테스트는 음악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려는 노력이었다”면서 “그러나 초기 결과는 정반대로 음악이 틱톡 매력의 핵심임을 강화했다”고 설명합니다.파장은 일파만파결국 유니버설뮤직과 틱톡, 양측이 어떤 식으로든 합의하게 될 거란 전망이 대세이긴 합니다. 유니버설뮤직의 광범위한 음악 산업 영향력이 그 이유로 꼽히는데요.유니버설뮤직은 2022년 말 기준으로 약 300만개의 음원을 보유하고 있죠. 이게 이미 틱톡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요. 여기에 더해서 약 400만곡에 대해 작곡가의 저작권을 관리합니다. 이걸 ‘퍼블리싱권’이라고 부르는데요. 녹음 작업은 다른 음반사와 했지만, 퍼블리싱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유니버설뮤직이 소유한 음악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예컨대 아델은 소니뮤직 소속 아티스트이지만, 저작권 관련해서는 유니버설뮤직퍼블리싱과 계약했죠.요즘엔 곡 하나에 작곡자가 4~5명씩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중 단 한명이라도 유니버설뮤직퍼블리싱 소속이라면, 그 음악은 틱톡에서 쓸 수 없게 되는 거죠. 만약 30일의 유예기간이 지나도록 유니버설뮤직과 틱톡의 재계약이 맺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곡들까지 모두 틱톡에서 듣지 못하게 되는 게 법적으로 맞습니다.만약 정말 그렇게 되면? 아주 난리가 날 겁니다. 미국의 음악 매체 ‘뮤직 비즈니스 월드와이드’는 익명의 음악업계 고위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이렇게 전하죠. “스트리밍과 소셜 플랫폼의 모든 음악 콘텐츠의 최대 80%는 어떤 형태로든 유니버설뮤직퍼블리싱 소속 작곡가가 권리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즉 유니버설뮤직이 단 1%라도 권리를 가진 음악은 전부 틱톡에서 내리게 한다면, 남는 음악이 별로 없게 되는 겁니다. 이건 틱톡에도 큰일이지만, 유니버설뮤직 측도 곤란해질 수 있는 일인데요. 다른 음반사 소속 가수가 이에 대해 ‘왜 내 노래를 틱톡에서 홍보하지 못하게 하냐’고 문제를 제기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음악계 거물의 베팅물론 그는 이런 걸 다 감수하고서라도 이번에 틱톡을 길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가 누구냐고요? 타자 공인 전 세계 음악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루시안 그레인지 유니버설뮤직그룹 회장 겸 CEO입니다.45년 동안 음악 산업에 몸담아온 그레인지는 LP판이 CD로, 다시 MP3와 스트리밍 시대로 바뀌는 격변의 시대를 지나왔는데요. 음악산업이 바닥으로 추락했던 2011년 회장 겸 CEO에 올라, 유니버설뮤직그룹을 지금의 독보적인 위상으로 끌어온 인물입니다. 그는 기술기업이 음악 업계에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압박하는 싸움에서 항상 선두에 서 왔죠.2011년 미국에 진출한 스포티파이와의 협상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당시 음악 산업이 어땠는지 기억하시나요? 1999년 파일 공유 사이트 냅스터 등장 이후 불법 디지털 복제가 판치면서 전 세계 음악 시장은 매출이 뚝뚝 떨어졌죠. 음악 산업은 사양 산업으로 전락했고, 음반 제작사들은 고사 위기에 처했는데요.이 때문에 음악 업계는 스트리밍서비스에도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레인지 회장은 거기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가장 먼저 뛰어들었죠. 대형 음반사 중 처음으로 스포티파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건데요. 이때 음원의 스트리밍 점유율에 따라 구독료의 3분의 2를 로열티로 받는 방식이 탄생합니다. 그 결과 음악 산업은? 극적으로 다시 살아나 호황기를 누리게 됐습니다. 그레인지 회장을 음악 산업의 구원자로 칭하는 이유이죠. 물론 유니버설뮤직의 높은 시장 점유율 덕분이 이런 협상력을 갖게 된 거긴 한데요. 이후 그는 2017년 주요 음반사와 페이스북과의 계약 체결 협상도 주도했고요. 지난해에는 스포티파이와 디저(프랑스 스트리밍서비스 기업)가 전문적 아티스트 음악에 더 많은 로열티를 지급하도록 하는 변화도 이끌어냈습니다. 음악 업계 전체가 더 많은 수익을 배분 받도록 하는 데 총대를 맨 겁니다.그는 지난달 진행된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죠. “나는 가치가 수조 달러에 달하는 회사들(테크 기업)과 협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피라미입니다.”그레인지 회장은 음악 산업이 다음 기술의 파고를 어떻게 넘을지를 열정적으로 연구 중입니다. 바로 생성형 AI인데요. 유니버설뮤직 측이 이번 틱톡과의 협상 결렬 원인 중 하나로 AI 문제를 거론한 건 바로 이런 그레인지 회장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유니버설뮤직은 성명에서 이렇게 밝혔죠. “틱톡이 플랫폼 자체에서 AI 음악 창작을 활성화하는 도구를 개발할 뿐만 아니라, 이런 콘텐츠가 인간 아티스트의 로열티를 크게 희석시킬 수 있는 계약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AI로 인간 아티스트를 대체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보입니다.”그레인지 회장의 AI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한쪽으로는 어떻게 하면 AI가 음악 또는 아티스트와 관련한 권리를 무단 도용하는 것을 막을 것이냐이죠. 이와 관련해 유니버설뮤직은 지난해 10월 AI 기업 앤트로픽에 “노래 가사를 무단으로 AI 학습에 사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요. 아울러 미국 의회에 로비를 펼쳐 지난달 하원이 ‘AI 사기 방지법(No AI Fraud Act)’을 발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그의 인터뷰 멘트가 인상적입니다. “나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업계를 만들기 위해 여기서 45년을 보낸 게 아닙니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또 다른 중요한 관심사는 과연 AI가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느냐입니다. 생성형 AI 서비스가 미래엔 스포티파이처럼 돈을 벌게 될 거고, 그 수익을 아티스트가 분배받게 될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거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지난해 닐 모한 유튜브 CEO가 취임하자마자 만났고요. 이후 유튜브와 손잡고 소속 아티스트들이 AI 도구를 실험하는 ‘음악 AI 인큐베이터’를 가동 중입니다. AI 시대에도 음악 산업의 주도권은 뺏기지 않으려는 그의 발빠른 행보가 놀라운데요. 그가 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틱톡의 AI 이용 계획을 단호하게 거부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과연 생성형 AI와 인간 아티스트의 상생이란 가능할까요. AI가 음악산업의 몫을 빼앗지 않고 더 많은 수익을 배분해 줄 길이 열릴까요. 아직 그 답을 알긴 너무 이른데요. 낙관주의자인 그레인지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냥 준비합시다.” 유니버설뮤직과 틱톡의 이번 싸움이 음악 산업의 역사엔 어떤 식으로 기록될지 궁금합니다. By.딥다이브이번 사태를 뉴욕타임스가 오픈AI에 소송을 제기한 사건과 비슷하다고 평가하는 기사가 있더군요. 콘텐츠 창작 집단과 AI 기술 기업의 수익배분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점에선 비슷한데요. 유니버설뮤직엔 테일러 스위프트로 상징되는 강력한 팬덤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포진돼있다는 점에서, 뉴욕타임스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도 따라붙습니다(스위프트가 ‘틱톡 아웃’을 외치면 게임이 끝날지도?). 흠. 역시 언론보다는 음악 산업이 유망해보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세계 최대 음반회사 유니버설뮤직과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됐습니다. 유니버설뮤직의 음원이 기존 영상에서 음소거 처리되고, 새로운 영상에 쓰지 못하게 됐습니다. -역시 가장 큰 건 돈 문제입니다. 유니버설뮤직은 “틱톡이 정당한 음악의 가치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틱톡은 “우리는 음악 홍보 플랫폼”이라고 받아칩니다.-과연 둘 중 어디가 더 권력을 쥐고 있을까요. 2008년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지웠던 워너뮤직은 9개월 만에 돌아와야 했는데요. 음악이 중요한 틱톡 플랫폼은 다를지도 모릅니다.-유니버설뮤직을 이끄는 루시안 그레인지 회장은 그동안 기술기업과의 성공적인 협상을 통해 음악산업을 구원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생성형 AI라는 기술 격변을 맞이한 지금, 그의 베팅은 또다시 성공할 수 있을까요.*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역시 3월 기준금리 인하는 물 건너간 걸까요. 중앙은행이 기대만큼 일찍 금리를 내리지 않을 거란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국채 금리는 뛰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71%, S&P500 –0.32%, 나스닥지수 –0.20%를 기록했죠.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4일 방송된 CBS와의 인터뷰에서 금리인하와 관련해 언급했는데요. 그는 올 한해 0.25%포인트의 금리 인하만을 예상한다면서 “예측을 극적으로 바꿀 거라고 생각할 만한 일은 없다”고 밝혔죠. 당장 3월부터 6차례에 걸쳐 금리 인하가 이뤄질 거라는 시장의 기대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은 겁니다.이날 발표된 미국의 서비스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예상치(52)를 웃도는 53.4를 기록했는데요. 미국 경제가 매우 탄탄하다는 걸 보여주는 이 신호에 주식시장은 실망했습니다. 맥쿼리의 티에리 위즈먼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미국 고용시장의 강세로 소비도 강세를 유지하면서 디스인플레이션 추세를 되돌리고 긴축적 통화정책을 더 연장하게 될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죠.조기 금리인하 기대감이 꺾이면서 이날 미국 국채 가격은 급락했습니다(금리 상승). 10년물 국채금리는 0.139%포인트 오른 4.171%, 30년물 금리는 0.121%포인트 상승한 4.348%를 기록 중이죠. 달러 가치는 뛰었습니다. 이날 6개 주요 통화 바스켓을 기준으로 한 달러인덱스는 이날 0.55% 상승해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주가지수는 정체됐지만, 이날도 AI 열풍은 이어졌습니다. 엔비디아 주가는 4.79%나 올라 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 골드만삭스가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625달러에서 800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한 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토시야 하리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4분기에도 엔비디아 핵심 사업인 데이터센터 실적은 CPU의 범용 컴퓨팅에서 GPU의 가속 컴퓨팅으로 이동하는 추세를 보여줄 것”이라며 이런 추세가 1분기에도 이어질 거라고 전망했는데요. 엔비디아는 오는 21일 장 마감 뒤 실적을 공개할 예정입니다.이날 실적을 발표한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 주가가 12.05%나 급등한 것도 눈에 띄는데요. 전년 동기보다 줄어든 매출과 순이익을 발표했지만 전 세계 직원의 3~5%를 감원한다는 소식이 주가엔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6만2000명에 달하는 직원 중 최대 3100명을 감축하겠다는 건데요. 에스티로더는 주력인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죠. 파브리치오 프레다 CEO는 “재고를 줄이고 비용을 관리해 진전을 이뤘다”면서 “변곡점에 와있다”고 밝혔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이른바 ‘3대 이모님’으로 통하죠. 식기세척기·건조기, 그리고 로봇청소기.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부담을 줄여줘서 요즘 인기 끄는 가전제품입니다.스웨덴 일렉트로룩스가 2001년 세계 최초의 로봇청소기 ‘트릴로바이트(삼엽충이란 뜻)’를 선보인 지 23년. 과거보다 한층 똑똑해진 로봇청소기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시장이 쑥쑥 커가는데요. 하지만 무한경쟁에 놓인 제조사들 간의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시장 구도가 빠르게 변해갑니다. 서비스 로봇의 대표주자이기도 한 로봇청소기 시장을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중국에 아이로봇을 바쳤다?아이로봇(iRobot), 또는 룸바(Roomba)를 아시나요? MIT 출신 로봇공학자가 설립한 미국 아이로봇은 오랫동안 전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을 선도해온 점유율 1위 기업입니다. 아이로봇이 2002년 내놓은 룸바는 출시와 동시에 각종 언론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발명품’에 오르며 히트를 쳤죠. 룸바가 채택한 자동 충전기능이나 낭떠러지 인식 기능, 사이드 브러시은 청소 로봇의 바이블이 되었습니다. 탄탄한 로봇공학 기술과 함께 충격적인 가성비(초기엔 199달러)가 인기 비결로 꼽혔는데요. 룸바가 로봇청소기의 대중화 시대를 열면서, 미국에선 룸바라는 명칭이 로봇청소기를 일컫는 보통명사처럼 쓰일 정도입니다.그런 아이로봇이 실적 악화에 시달리다가 2022년 8월 아마존의 인수 선언으로 반짝 관심을 끌었는데요. 하지만 인수가 미뤄지더니 결국 지난달 아마존이 14억 달러 규모의 아이로봇 인수를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했죠.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의 경쟁 규제 당국이 ‘시장 경쟁을 약화할 수 있다’라며 딴지를 걸자 아마존이 두손을 들어버린 겁니다.빅테크 규제에 앞장서는 엘리자베스 워렌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아마존의 아이로봇 인수를 처음부터 강하게 반대해왔죠. 아마존이 아이로봇 주인이 되면 경쟁업체는 쇼핑몰에서 공정한 경쟁이 어려워질 거란 이유였는데요. 동시에 스마트 로봇청소기 기능을 이용해 아마존이 미국 가정을 감시하게 될 거란 다소 특이한 논리도 펼쳤습니다.EU 집행위원회 역시 “아이로봇 인수로 아마존이 경쟁사를 도태시킬 수 있다”라며 지난해 11월 반대 입장을 냈죠. 아마존이 쇼핑몰에서 경쟁 로봇청소기를 목록에서 빼버리거나 잘 안 보이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심이었습니다. 결국 아마존의 포기로 매각이 무산된 아이로봇은 직원의 31%인 350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했고요. 주가는 급락했습니다.이런 규제당국의 입장, 동의하시나요. 적어도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1월 29일 사설을 통해 “엘리자베스 워렌이 중국에 아이로봇을 선물했다”며 강하게 비판했죠. “2025년까지 로봇 공학을 장악하는 목표를 가진 베이징(중국) 외에 이 거래 실패로 누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워렌 같은) 진보주의자들이 걱정하는 아이로봇의 라이벌은 중국 기업”이란 지적입니다. 아마존의 아이로봇 인수 포기가 결과적으로 로봇청소기 시장을 중국에 내주는 결과를 가져올 거란 뜻이죠.결국 기술의 차이미국 언론의 이런 걱정은 꽤 일리 있어 보입니다. 실제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중국기업의 공세가 상당히 위협적이죠.과거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아이로봇 점유율은 46%에 달했습니다. 2016년 64%에 비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2위인 중국 에코백스(중국명 커워쓰·科沃斯, 17%)와 격차가 꽤 있었죠.이후 정확한 세계시장 점유율 통계는 집계된 게 없는데요. 대신 매출로 변화를 추정할 수 있겠죠. 아이로봇은 지난해 1~9월 매출이 전년보다 29%나 줄어든 5억8303만 달러(약 7771억원)에 그치며 또다시 적자를 기록했는데요. 에코백스의 같은 기간 매출은 105억3200만 위안(약 1조9520억원)에 달합니다. 이미 매출에서 중국 경쟁회사가 크게 앞서가죠. 시가총액을 비교하면 격차는 더 큽니다. 아이로봇 시총(3.79억 달러, 약 5000억원)은 에코백스(194.84억 위안, 약 3조6100억원)와 비교해 7분의 1 수준이죠.로봇청소기 시장 개척의 일등공신이었던 기술기업 아이로봇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밀리게 됐을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기술과 성능에서 경쟁업체에 뒤지고 있기 때문이죠.일반적인 무선 진공청소기에선 높은 흡입력(모터 성능)과 배터리 수명이 중요하죠. 하지만 로봇청소기에선 내비게이션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집안의 벽·방·장애물을 빠르게 파악해 지도를 만들고(매핑), 장애물을 피해가며 정확하고 효율적인 경로로 청소를 해내야 하죠.에코백스를 비롯한 중국 제조사들은 자율주행을 위한 최첨단 센서 기술을 채택해 이 내비게이션 성능을 대폭 끌어올렸습니다. 로보락(중국명 스터우커지·石頭科技)은 라이다(LiDAR), 에코백스는 dToF(direct Time-of-Fligh) 센서를 탑재하는데요. 그 결과 가격은 룸바보다 오히려 비싸졌지만, 성능 면에서 크게 앞서갑니다. 한층 똑똑해진 거죠.한국이나 중국에서 필수인 ‘물걸레 기능’을 통합한 것도 중국 제품이 인기를 끈 이유입니다. 문화권에 따라 바닥 재질이 다르죠. 미국은 집에 카펫이 깔려있기 때문에 물걸레는 별로 필요 없고 먼지를 잘 빨아들이는 게 중요했는데요. 동양권에선 마루 걸레질까지 빤짝빤짝하게 해야 청소한 기분이 들잖아요. 바로 이런 수요에 맞춰 먼지를 흡입하는 동시에 물걸레질까지 하는 겸용제품을 내놨고, 이게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대세가 됩니다.더 나아가 에코백스나 로보락은 2020년 말부터 ‘올인원 로봇청소기’로 불리는 고급형 제품을 내놨는데요. 청소를 마치면 걸레를 자동으로 빨아서 열풍건조까지 해줍니다. 바닥을 쓸고 닦는 건 물론이고, 걸레 빠는 것조차 하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한 제품인데요. 물론 가격은 기존 제품의 두배로 뛰었지만 그 수요가 꽤 있습니다.결국 가성비에 연연하지 않는 로봇청소기 고급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이런 트렌드에 둔감했던 아이로봇은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잃게 됐습니다. 지난달 뉴욕타임스의 제품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가 13개 로봇청소기 성능을 비교하는 기사를 게재했는데요. 뉴욕타임스는 그중 최고의 로봇청소기로 중국 브랜드 로보락의 Q5를 꼽았습니다. 아이로봇 룸바에 대해서는 “로보락보다 매핑 시간이 3배 이상 걸렸다“, ”자주 장애물에 부딪혔다”며 추천하지 않는다고 밝혔죠.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고, 이제 똑똑하지 못한 로봇청소기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이 됐습니다.에코백스 주가는 왜 이래?여기까지만 보면, 중국 제조사의 압도적 승리로 보일 텐데요. 정작 중국 로봇청소기 기업엔 지금이 상당한 위기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잘 나가는데 왜 위기이냐고요? 중국 내수 시장 경쟁이 치열해도 너~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은 꽤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아직 보급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죠.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으로 미국의 로봇청소기 보급률은 14%, 독일은 9%에 그친다고 합니다. 2029년까지 글로벌 시장 연평균 성장률이 16.6%에 달할 거란 전망치도 있죠.하지만 중국에선 오히려 로봇청소기 판매가 확 줄고 있습니다. 2018~2020년 매해 600만대를 넘었던 로봇청소기 판매대수가 2022년엔 441만대로 줄었고 지난해엔 그보다도 크게 감소한 걸로 추정되죠.부동산 경기 침체로 중국 경제가 꺾이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탓이 큽니다. 또 아까 말씀드린 고급화 경쟁으로 인해 로봇청소기 가격이 너무 비싸진 것도 원인이고요. 대당 5000위안(약 93만원)이 넘는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척척 살 수 있는 중국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그 결과 한때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로봇청소기 제조사 주가는 놀랍도록 추락했습니다. 중국시장 1위 에코백스는 ‘로봇청소기계의 마오타이’로 불릴 정도로 주가가 급등해서 2021년 7월엔 주당 220위안을 넘었는데요. 2월 1일 종가는 그 7분의 1인 31.6 위안입니다.전망도 별로인데요. 에코백스의 지난해 3분기 실적은 상당히 우울했습니다. 매출은 소폭 늘었지만 순이익이 1년 전보다 92%나 폭락하고 말았죠.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마케팅 비용을 과도하게 쓴 영향입니다. 실제로 중국 시장에서 로봇청소기 판매 가격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할인 경쟁이 한창이죠.중국엔 이미 200개 정도 되는 로봇청소기 제조사가 있거든요. 가전 대기업인 메이디그룹과 그리일렉트릭까지 진출했으니 정말 붐빕니다. 특히 후발주자들이 빠르게 뒤쫓으면서 선두기업 에코백스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는데요.중국 내 2위 기업 로보락은 매출과 이익 모두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지난해 3분기 매출 58%, 순이익 160% 급증). 로보락은 시가총액이 348.58억 위안(약 7조1300억원)으로 에코백스의 두배 수준이죠. 또 다른 중국 제조사인 유니콘 스타트업 드리미(중국명 追觅科技·주미커지) 역시 파격적인 가격 할인으로 점유율을 키워가고 있고요. 오죽하면 에코백스 치안쳉 CEO가 지난해 8월 공개 행사에서 “모방품은 외관만 원본과 유사하다”면서 드리미를 견제하는 발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이죠. 그만큼 쫓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이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국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잔디깎기 로봇, 세탁기 등) 해외시장 개척에 열심히 나서야죠. 로보락뿐 아니라 에코백스까지 모두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150만원이 넘는 로보락의 고가 신형 제품이 홈쇼핑에서 5분도 안 돼 매진됐을 정도로 한국에선 불티나게 팔리죠. 오랜 세월 로봇청소기를 만들어온 한국의 대기업(LG전자는 2003년, 삼성전자는 2006년 첫 출시)까지 중국의 공세에 밀리는 상황이 아닌가 싶은데요. 소비자는 지갑을 열 때 아주 냉정한 법이죠. 결국 혁신과 기술 업그레이드를 통해서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결론입니다. By.딥다이브개인적으로 아이로봇은 십수년 전 결혼 선물로 받아서 썼던, 추억의 가전제품입니다. 물론 당시 부실한 성능 때문에 기대만큼 많이 쓰지 못하고 고철 신세가 됐지만요. 한때 혁신의 대명사였던 아이로봇이 이렇게 밀려나는 신세가 될 줄이야.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가전 시장에선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아마존의 아이로봇 인수가 규제 당국의 반대로 인해 무산됐습니다. 로봇청소기 대중화 시대를 연 아이로봇은 중국 경쟁업체의 공세로 내리막을 걷고 있는데요. 미국 언론도 ‘중국에 아이로봇을 바쳤다’고 지적합니다.-로봇청소기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건 이제 중국 제조사입니다. 발빠르게 최신 첨단 기술을 채택해서 로봇청소기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죠. -하지만 정작 중국 기업들은 실적 압박에 시달립니다. 중국 내수 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르면서 중국 안에서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인데요. 중국 1위 기업 에코백스 주가는 폭락했습니다.-결국 중국 기업의 살길은 해외 진출이죠. 한국 시장에서 중국 로봇청소기가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갑니다. 로봇청소기 개발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던 한국 가전 대기업이 과연 시장을 방어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하루 만에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전날 연준 의장의 매파적 발언이 충격을 안겼지만, 시장은 다시 빅테크 실적으로 눈을 돌렸죠. 1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상승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97%, S&P500 +1.25%, 나스닥지수 +1.30%.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조기 금리인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죠. “3월 금리 인하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발언했는데요. 이에 따라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바클레이스 등 투자은행은 3월 금리 인하 전망을 지우고 5월로 미뤄야 했습니다.하지만 이날 뉴욕증시는 전날의 충격을 잊은 듯한데요. 증시가 기댈 수 있는 건 빅테크 실적이죠. 이날 장 마감 뒤 주요 빅테크 기업이 실적을 보고했습니다.일단 아마존 실적을 볼까요. 지난해 4분기 매출이 14%나 증가했고, 이익은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106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월가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었죠. 시장에서 중요하게 보는 AWS 클라우드 컴퓨팅 부문 매출이 13% 증가해 예상에 부합했습니다. 기대에 부합하는 실적 발표에 아마존 주가는 애프터마켓에서 7% 넘게 뛰어올랐죠.메타 역시 상당히 좋은 실적을 기록했는데요. 온라인 광고 시장이 살아나면서 지난해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5%나 증가했습니다. 비용 절감 효과로 영업이익률은 이전의 두배가 넘는 41%를 기록했고요. 순이익 역시 140억 달러로 전년 동기의 3배 수준으로 불어났는데요. 메타는 3월 26일 투자자들에게 주당 50센트의 배당금을 지급한다고 밝혔습니다. 회사 역사상 처음인데요. 시간 외 거래에서 주가는 15% 급등했죠.그럼 애플은? 애플은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 증가한 1196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는데요. 5개 분기 만에 역성장을 멈춘 겁니다. 주당 순이익은 16% 증가한 2.18달러로 예상치를 넘어섰고요. 하지만 문제는 중국 시장이죠. 중국 내 매출은 같은 기간 13% 줄어든 208억 달러에 그쳤는데요. 애널리스트들의 예측(235억 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애플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1% 안팎으로 하락 중이죠.금요일인 2일엔 1월 고용보고서 발표가 예정돼있습니다. 과연 고용시장이 식어가고 있다는 신호가 나올 수 있을까요. 월가에선 1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이 전달보다 3만5000명 줄어든 18만명 증가에 그칠 거라고 기대합니다. 한번 지켜보시죠.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포르셰와 페라리. 여러분은 두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중 무엇을 더 사고 싶으신가요. 어차피 살 돈이 없는데 왜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냐고요? 물론 차를 살 돈이야 없죠. 하지만 주식이라면 다릅니다. 포르셰 주식은 주당 약 11만원, 페라리는 45만원 정도이니까요.라이벌인 두 자동차 기업의 주가가 지난해 들어 뚜렷하게 다른 흐름을 보였습니다. 이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데요. 포르셰와 페라리가 보여주는 자동차와 럭셔리 시장의 단면을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페라리에 따라잡힐라‘유럽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 제조사’는 어디일까요. 바로 독일 포르셰입니다. 2022년 9월 독일 증시에 상장한 포르셰는 상장하자마자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물론 모기업인 폭스바겐그룹까지 제쳤죠. 전 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테슬라와 토요타에 이어 시가총액 3위의 자동차 회사입니다.포르셰는 희망범위 최상단인 82.5유로의 공모가를 인정받으며 증시에 데뷔했었죠. 워낙 화려한 출발이어서 딥다이브의 첫 번째 뉴스레터에서 다루기도 했는데요( 참고). 포르셰 주가(티커 P911)는 이제 얼마일까요. 29일 종가가 76.48유로. 공모가보다 7% 넘게 떨어졌고, 고점(2023년 4월 118.9유로)과 비교하면 35% 넘게 급락했습니다.사실 포르셰가 IPO 했을 땐 다들 증시에서 ‘제2의 페라리 신화’를 쓸 거라고 기대했거든요. 그럼 이탈리아 슈퍼카 제조사, 페라리 주가 흐름은 어떨까요.페라리는 2015년 10월 공모가 52달러로 뉴욕증시에 상장했죠. 티커는 RACE. 초반에 잠시 부진했던 주가는 2016년부터 질주본능을 발휘했는데요. 지난해에도 레이스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26일 기준 종가는 340.17달러. 상장 이후 500% 넘게 올랐고, 최근 1년 동안에도 35% 뛰었죠.지난해 주가가 정반대 흐름을 보이면서 두 기업의 시가총액 차이는 상당히 좁혀졌습니다. 1년 전만 해도 포르셰 시총이 페라리의 두배를 훨씬 넘어섰는데요. 지금은 페라리 시총 622억 달러, 포르셰 757억 달러입니다. 불과 1년여 만에 페라리가 이렇게까지 맹추격을 할 줄이야. 아니, 포르셰가 후진한 결과라고 봐야 할까요.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최근 기사에서 이렇게 꼬집었죠. “(상장 당시 포르셰) 투자자들은 페라리와 경쟁할 슈퍼카 주식이란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꿈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고, 일부 투자자들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의심합니다.”흔들리는 포르셰혹시 포르셰 판매가 줄어들기라도 한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지난해 1~9월 판매량은 약 24만3000대로 전년보다 10% 늘었죠. 이자∙세금 차감 전 마진(EBIT마진)도 18.3%로 양호했고요. 폭스바겐(6.8%)이나 현대차(10.1%), 메르세데스 벤츠(13.2%)와 비교해도 확실히 인상적인 마진율입니다.하지만 포르셰 판매가 흔들린다는 신호는 포착됩니다. 일단 마진율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죠. 가장 큰 성장 동력이었던 중국 시장이 부진한 탓이 큰데요. 포르셰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판매량은 지난해 3분기에 1년 전보다 40%나 쪼그라들었습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청년 실업률 증가 같은 중국 경제의 전반적인 둔화가 영향을 끼친 거죠.미국이나 유럽 시장도 고금리 탓에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데요. 최근 포르셰 측은 애널리스트들에게 올해 판매량이 정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질을 줬다고 합니다. 회사 측은 블룸버그에도 “올해는 가치지향적 성장과 안정적 판매 수준”에 집중할 거라며, 올해 4개 모델 업데이트를 진행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하죠. 상황이 썩 좋지 않지만 ‘신차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인데요.실제 지난 25일 포르셰는 첫 SUV 전기차 ‘마칸 일렉트릭’을 공개했습니다. 카이엔 아랫급인 마칸은 지난해 카이엔을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포르셰 차종으로 올라섰죠. 그래서 마칸 전기차가 엄청난 기대주이건만. 주가를 보면 시장 반응이 생각만큼 열광적이진 않습니다. 이게 사실 1년 전에 나왔어야 할 신모델인데, 한참 지각 출시됐기 때문이죠. 폭스바겐 그룹의 아주 큰 골칫거리인 소프트웨어 개발 지연 탓이었는데요. 그 결과 하필 전기차 신모델 출시 시점이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고꾸라지는 때와 겹치고 말았습니다. 참, 바쁘게 치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래저래 발목 잡는 일투성이입니다.럭셔리주인가 아닌가요약하자면 중국 경제 위축과 고금리, 신차 출시 지연으로 포르셰 성장 전망이 어두워졌고, 주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죠. 투자자들이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라, 경기 영향을 받지 않는 럭셔리 기업인 줄로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아니네?’라고 말이죠.일반적으로 자동차 제조사 주식은 주식시장에서 높은 가치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영업이익률이 낮은데다, 전기차 같은 기술혁신에도 취약하기 때문이죠. 12개월 선행 PER(주가가 미래 12개월 주당순이익의 몇 배인지)이 현대차는 4배 내외, 메르세데스벤츠가 5배 수준인 이유인데요. 포르셰는? 선행 PER이 13배 수준으로 상당히 높은 가치평가를 받고 있죠.그럴 수 있는 건 포르셰가 일반적인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고 그간 주식시장에서 평가 받아왔기 때문인데요. 그 평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번스타인의 자동차 애널리스트 다니엘 로스카 역시 바로 이 점을 지적합니다. “포르셰는 모델 주기에 의존하는 순환 주식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투자자들이) 럭셔리 기업에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자, 그럼 페라리는 어떨까요. 일단 페라리는 판매량이 포르셰보다 훨씬 적죠. 연간 30만대를 판매하는 포르셰와 달리, 페라리는 판매량이 그 20분의 1 수준인 연간 1만3000대 남짓인데요. 가격 면에서도 차이가 상당합니다. 페라리 대당 평균 판매가는 약 36만8000유로(약 5억3000만원). 포르셰는 그 3분의 1 정도에 그치죠.페라리는 지난해 1~9월 1만418대를 판매했는데요. 판매량은 1년 전보다 5%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이것만 보면 성장세가 포르셰보다 못하죠. 그런데 같은 기간 페라리 매출은 19%나 늘었습니다. EBIT마진은 포르셰보다 10%포인트나 높은 28%에 달하고요. 압도적인 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도대체 페라리는 차를 별로 많이 팔지 않고도 어떻게 돈을 잘 벌까요. 비결은 ‘개인화(personalization)에 있다는데요. 페라리는 기본 차값도 비싸지만 아주 광범위한 범위의 개인화 옵션을 제공합니다. 거의 완전히 새로운 ‘나만의 차’를 만들 수 있게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죠. 그 결과 개인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차값은 20~100%까지도 올라가는데요. 부유한 페라리 고객들이 점점 더 값비싼 개인화 옵션을 선택하면서 페라리가 버는 돈은 늘어만 갑니다.보통 자동차 제조사들은 성장을 위해서는 판매량을 늘려야만 하죠. 그래서 경기가 안 좋을 땐 가격을 낮춰서라도 물량 밀어내기를 해야 하고요. 페라리의 성장방식은 이런 일반 자동차 기업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물량에 의존하지 않고, 판매가격을 올리며 커가고 있죠. 달리 말하자면 페라리는 회사가 가격 결정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네데토 비냐 CEO는 지난해 3분기 실적발표에서 이렇게 밝혔죠. “개인화의 지속적인 매력에 힘입어 성장한 기록적인 분기였습니다. 주문량은 여전히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2025년 전체에 걸친 모든 지역의 강력한 수요를 반영합니다.” 내년 말까지의 생산량이 이미 주문이 꽉 차 있다고 얘기한 건데요. 경제 둔화? 고금리? 최상위 부자만 상대하는 페라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베블런재와 에르메스가격이 계속 올라가는데, 수요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다? 수요-공급의 법칙 작동하지 않는 이런 재화를 일컫는 용어가 있죠. 바로 ‘베블런재(Veblen good)’. 미국 경제학자 소스턴 베블런이 1899년 만든 개념인데요.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하는 사치재가 여기 해당합니다.페라리가 전형적인 베블런재라 할 수 있겠죠. 주식시장에서 페라리의 선행 PER은 약 40배로, 포르셰나 다른 일반적인 자동차 제조사를 압도합니다.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럭셔리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죠. 패션계에도 비슷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프랑스 명품회사 에르메스 주가는 주당순이익의 약 50배 수준으로 평가받는데요. 경쟁사인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나 케어링(구찌 모회사)은 그 절반으로 거래됩니다. 명품 회사끼리도 차이가 큰 건데요.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럭셔리 기업의 지난해 성장세는 이전보다 확연히 둔화했죠. 하지만 에르메스는 지난해 3분기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매출 성장(15.6%)을 기록하며 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회사 측은 “고객 수요에 부담을 주지 않는 가격인상 덕분에 경제적 역풍을 이겨냈다”고 자평했는데요. 1만 달러가 넘는 에르메스 가방에 대한 수요는 가격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늘고 있는 겁니다. 덕분에 에르메스 주가는 지난 1년 동안 15% 넘게 뛰었습니다. LVMH는 -3%, 케어링은 -32%를 기록했는데 말입니다.전기화 이후 2라운드는?결론적으로 슈퍼카와 명품 시장도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그냥 부자가 아니라 ‘슈퍼리치’를 위한 브랜드만이 성공을 이어가고 있죠. 그 결과 포르셰는 당초 IPO 때 기대했던 ‘페라리 대체제’로 주식시장에서 자리 잡진 못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평가도 냉정하죠. 최근 도이치뱅크는 포르셰 목표주가를 120유로에서 100유로로 낮췄습니다. “가격 보호를 위해 중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물량을 배분한 게 마진 방어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팀 로코사 애널리스트)는 이유였는데요.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포르셰 말고 페라리 주식이 더 유망하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또 아닙니다. 페라리 주가는 올라도 너무 올랐거든요. 지난해 말 HSBC와 엑산BNP파리바는 각각 페라리 투자등급을 ‘아웃퍼폼’에서 ‘중립’으로 하향조정했습니다. 자고로 좋은 주식이란 가치보다 가격이 싼 주식이죠. 팁링크스에 따르면 페라리 목표주가 평균치는 365달러. 현재 주가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또 페라리는 올해와 내년에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데요. 바로 순수전기차 시장 진출입니다. 이미 페라리는 하이브리드차량을 판매 중이죠. 엔진 굉음이 특징인 슈퍼카에 웬 하이브리드엔진인가 할 수 있는데요. 지난해 3분기 페라리 출하량 중 과반수(51%)가 하이브리드차량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페라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순수전기차 신모델을 선보이기 위해 현재 전용공장을 짓고 있죠. 올해 6월 새 공장이 완공되고, ‘전기 페라리’ 신모델을 2025년에 출시한다는 계획입니다.과연 페라리는 전기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까요. 출발이 한발 늦은 감도 없진 않은데요. 비냐 CEO는 “모든 테스트를 프로토타입에서 진행 중이고, 모든 것이 제시간에 맞춰 왔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전기 페라리가 시장 기대를 충족해낼 지는 나와봐야 압니다. 현재로선 예측이 어렵죠. 이와 비교하면 포르셰는 비록 소프트웨어 문제로 개발에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전기화를 더 일찍부터 앞서서 해왔고, 이제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할 겁니다. 두 럭셔리 스포츠카의 주가 경쟁 1라운드는 일단 페라리의 승리로 막을 내리는 듯하지만, 전기화 이후의 2라운드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By.딥다이브포르셰는 상장 전부터 페라리와 끊임없이 비교 당했습니다. 특히 ‘포르셰는 페라리만큼 럭셔리는 아니다’라는 지적이 참 많았는데요. 현재까지만 보면 그 지적이 맞아떨어졌군요. 그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2022년 9월 화려하게 증시에 데뷔했던 포르셰 주가가 빠르게 후진 중입니다. 최고점보다 35%나 떨어졌죠. 전체적으로 판매가 늘고는 있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확연히 꺾였기 때문입니다.-반면 페라리 주가는 상승흐름을 이어가며 견조합니다. 압도적인 이익률과 매출성장세 덕분인데요. 선행 PER도 포르셰는 13배, 페라리는 40배에 달합니다.-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럭셔리 회사로 인정 받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거시경제에 영향 받지 않고 가격 결정력이 있는 기업이어야만 주식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고급 스포츠카 시장도 양극화된 셈인데요. 하지만 시장은 계속 변화하는 법. 전기 스포츠카 시장을 두고 벌어질 2라운드의 결과도 궁금해집니다.*이 기사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바쁜 한 주가 시작됐습니다. 빅테크 실적과 FOMC, 고용 보고서가 줄줄이 대기 중이죠. 출발은 좋습니다. 29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상승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59%, S&P500 +0.76%, 나스닥지수 +1.12%를 기록했죠. S&P500은 4900선까지 돌파하며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지난해 시장을 이끈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세븐’ 주식 중 5곳의 실적이 이번 주에 발표됩니다. 30일 알파벳과 MS, 2월 1일엔 메타∙아마존∙애플 실적이 나올 예정이죠. 또 30~31일 이틀에 걸쳐 FOMC 회의가 열립니다. 물론 기준금리 동결은 거의 확실시되는데요. 31일 기자회견에서 파월 연준 의장이 어떤 신호를 줄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죠. 과연 3월 금리인하 가능성을 내비칠 수 있을까요.금요일인 2일엔 1월 고용보고서가 발표되는데요. 월스트리트저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1월 신규일자리가 18만개 증가해 전달보다 둔화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고용시장의 열기가 적당히 식는다면 3월 금리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줄 신호가 될지도 모르죠.이트레이드의 투자책임자 크리스 라킨은 “이번 주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장이 돌파구를 유지하려면 이번 주 빅테크 라인업이 실망스러운 실적을 피하고, 연준의 금리에 대한 고무적인 소식을 듣고, 견고하지만 너무 뜨겁지 않은 일자리 수를 확인해야 한다”는 겁니다.이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미국 주식에 대한 전망을 중립에서 비중확대로 상향 조정했다는 소식이 눈에 띄는데요. 지금의 기술주 중심 랠리가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며 시장이 장밋빛 거시전망을 고수함에 따라 더욱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S&P500의 상승 모멘텀이 향후 6~12개월 동안 계속될 수 있다는 낙관론인데요.다만 올해 말에는 상황이 다시 달라질 거라고도 예측했습니다. 블랙록 투자 연구소는 “우리는 올해 인플레이션이 2% 가까이 하락해 (주식시장) 상승 모멘텀이 이어질 거란 시장 의견에 동의한다”면서도 “인플레이션 2%가 장기적으로 유지되진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는데요. 높은 임금인상률이 이어지면 “2025년엔 물가상승률이 다시 3%까지 롤러코스터처럼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결국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투자자들은 민첩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전기차 배터리 가격이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저가형 배터리 시장을 장악한 중국 제조사들이 올해 공급가격을 1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는 소식까지 나오는데요. 그럼 전기차 값도 내려가냐고요? 그건 그렇지만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닙니다. 한국 배터리 산업도 함께 가격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기 때문이죠. 도대체 배터리 가격은 왜 이렇게 떨어지는 걸까요. 이 고비는 어떻게 넘겨야 할까요. 오늘은 배터리 가격 하락세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1년 새 반토막 났다‘배터리가 0.3위안/Wh 시대에 진입하다’이달 중순 중국 기술 전문매체 36Kr가 ‘독점’이라며 이런 보도를 내놨습니다. 중국 최대 배터리 기업 CATL이 현지 자동차 기업들에 ‘올해 안에 표준 규격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셀을 와트시(Wh)당 0.4위안 이내 가격으로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는 소식인데요.‘0.4위안/Wh’란 수치, 좀 생소하죠. 중국에서 LFP 배터리셀 가격이 1년 전엔 0.8~0.9위안/Wh였거든요. 그러니까 일단 1년 만에 셀 가격이 반토막 났다고 보면 되고요.이걸 비교하기 쉽게 배터리팩 가격으로 환산해볼까요. 아시다시피 배터리는 셀을 여러 개 모아 팩으로 만들어 전기차에 탑재되는데요(보통 ‘셀→모듈→팩’ 구조이지만, CATL은 모듈을 생략한 ‘셀투팩(CTP)’ 방식). 셀이 배터리팩 가격의 80% 정도 되거든요. 그래서 간단한 산수를 좀 해보면, 셀 가격이 Wh당 0.4위안(0.06달러)이라는 건 팩 가격이 대략 kWh(킬로와트시)당 75달러 정도 된다는 뜻입니다.아니, kWh당 75달러밖에 안 된다고? 이거 좀 놀라운데요. 왜냐면 2023년 글로벌 배터리팩 평균 판매가격이 139달러/kWh(블룸버그NEF 추정)에 달했거든요. 아무리 저가형 배터리, 그중에서도 전 세계에서 배터리가 가장 싼 중국 내 판매가격이라고 해도 심하게 낮은데요. 앞서 골드만삭스는 올해 전 세계 배터리팩 가격을 kWh당 120달러로, 블룸버그NEF는 133달러로 전망한 적 있습니다.그런데 어쩌면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립모터(Leap Motor)의 차오리 수석부사장은 이달 10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LFP 배터리 구매가격이) Wh당 0.4위안인데, 올해 안에 0.32∼0.35위안 범위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죠. 현지 배터리 업계에선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생산원가만 0.3위안이 넘는다”고 손사래 치긴 하는데요. 36Kr은 “경쟁이 치열한 배터리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적자 수주’를 한다면 0.32위안/Wh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을 덧붙입니다. 선두업체 CATL이 불붙인 배터리 가격 경쟁이 앞으로 더 심화할 거라고 보는 거죠.하얀 석유의 추락그럼 배터리값이 왜 이렇게까지 떨어진 걸까요. 그 답은 리튬 가격에 있습니다. 핵심원료인 리튬 가격이 무섭게 떨어지면서 제조사 입장에선 가격을 내릴 여력이 생긴 건데요.얼마나 떨어졌냐고요? 아래 그래프를 보시죠. 2022년 1월부터 최근까지의 탄산리튬 가격입니다.2022년 들어 가파르게 오른 탄산리튬 현물 가격은 그해 11월 t당 60만 위안에 육박했죠.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왔다며 업계가 환호했던 시기인데요. 그런데 이후 가격이 급락세를 탔습니다. 현재 탄산리튬 가격은 t당 9만5500위안. 14개월 만에 6분의 1토막 났죠.리튬 가격 하락은 수요·공급 법칙에 따른 겁니다. ‘전기차 시대엔 리튬이 대세’라며 그동안 기업들이 앞다퉈 리튬 채굴·정제 산업에 뛰어들었는데요. 오히려 너무 일찍, 많이 리튬 생산에 나선 바람에 공급이 늘어나는 속도가 수요 증가세를 추월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공급과잉이죠.지금 리튬 가격은 거의 바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리튬 기업의 생산원가가 6.3~9.5만 위안이니까 말이죠. 그럼 더 이상 추락하진 않을까요. 글쎄요. 리튬 재고가 이미 많이 쌓인 기업들이 역마진을 감수하고라도 재고 떨이에 나설 가능성도 없진 않습니다. 당분간 리튬 가격이 오르긴 어려워 보이고, 자칫 더 떨어질 수도 있는 거죠.캐즘과 수요 부진게다가 전기차 수요의 성장세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 역시 공장 가동률이 60% 이하로 떨어진 중국 배터리 기업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이유인데요. 현대차그룹 경제산업연구센터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순수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지난해(26%)보다 낮은 23.9%에 그칠 거라고 합니다.일단 최대시장인 중국은 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죠. 부동산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어서인데요. 전기차도 중대형 패밀리카보다는 저렴한 소형 콤팩트카 위주로 팔려나가는 추세입니다. 소형차는 배터리가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배터리 제조사엔 반갑지 않은 소식이죠.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신기술에 열광하는 얼리어답터들이 전기차 구매에 적극적이었는데요. 솔직히 이제 초기에 살만한 사람은 다 샀고요. 이제 얼리어답터가 아닌 일반 소비자들까지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그러기엔 아직 장벽이 있습니다. 전기차 값이 아직 비싼데다, 충전 인프라도 부족하죠. 이를 극복하고 주류시장으로 넘어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텐데요.이를 일컫는 용어가 있죠. 바로 캐즘(Chasm)인데요. 혁신적인 제품이 얼리어답터 중심의 초기시장에서 일반 소비자의 주류시장으로 넘어갈 때, 일시적으로 수요가 오히려 후퇴하는 침체기를 겪는 걸 일컫는 말입니다. 그 틈(캐즘)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뜻인데요. “2023년 글로벌 전기차 침투율이 16%를 돌파하면서 캐즘 단계에 진입했다”(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기차와 함께 배터리 수요도 일시적으로 침체할 수밖에 없는 고난의 시기가 닥쳐온 거죠.치킨게임의 기억요약하자면 리튬 가격 급락과 전기차 수요 부진이 겹쳐 배터리 가격이 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단기에 달라지기도 어려워 보이죠. 그래서 불안합니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나서인데요. 바로 태양광이나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나타났던 치킨게임이 재현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입니다.아직까지 중국 기업이 원가 이하로 배터리를 파는 건 아닙니다. 출혈 경쟁은 시작되지 않았죠. 하지만 중국 배터리 업계는 상당한 재고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국 1위 기업인 CATL의 지난해 재고량이 2019년과 비교해 12.6배로 늘어났다는데요. 만약 악성 재고 밀어내기가 시작된다면? 중국발 치킨게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이미 과거 사례를 잘 알고 있습니다.물론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중국 전문가의 우려를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진수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중국이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을 만한 산업이 전기차밖에 없다 보니, 그 시장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강하거든요. 과거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우 중국 BOE가 한국 기업과의 경쟁을 위해 치킨게임을 벌인 케이스가 있고요. 아마 중국이 작정하고 (배터리 산업도) 그렇게 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전기차, 휘발유차보다 싸진다?너무 우울한 얘기인가요. 하지만 이쯤에서 희망회로를 좀 돌려볼까 합니다. 좀 더 넓게 보면 배터리 가격 하락은 엄청난 기회요인일지도 모릅니다. 캐즘을 뛰어넘어 전기차 대중화 시대로 넘어갈 발판이 될 테니까요.소비자들이 전기차 사기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충전? 안전성? 많은 설문조사에선 ‘높은 가격’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데요. 전기차 가격이 비싼 건 배터리 때문이죠. 순수전기차의 경우엔 배터리가 차값의 30~40%를 차지합니다.그럼 배터리 가격이 얼마나 내려야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만큼 싸질까요. 그동안 보통 그 기준선을 ‘100달러/kWh’로 제시해왔습니다. 배터리팩 가격이 kWh당 100달러이면 보조금이 없어도 전기차 가격이 동급 내연기관차와 같아진다는 겁니다. 어, 그런데 이미 중국산 배터리는 100달러 아래로 내려왔네요?그렇습니다. 당초 골드만삭스는 2025년, 블룸버그NEF는 2027년에야 글로벌 배터리팩 평균 가격이 100달러/kWh 이하로 떨어질 거라고 내다봤는데요. 이런 추세라면 어쩌면 그 시점이 더 당겨질지 모릅니다. 마침 자동차 업체들은 가성비 좋은 3000만원대 ‘반값 전기차’ 출시를 서두르고 있는데요. 배터리 가격 하락 덕분에 실현이 충분히 가능해졌습니다. 최근 로이터는 테슬라가 암호명 ‘레드우드’라는 보급형 전기차 모델을 2025년 중반부터 생산할 거란 소식을 전하기도 했죠.달리 보면 한국 배터리 기업 입장에선 지금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보릿고개를 어떻게든 견뎌서, 다가오는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대비해야 하죠. 치킨게임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을 방법은? 지금보다 더 기민하게 시장 트렌드를 따라잡는 수밖에 없는데요.그래서 한국 배터리 제조사는 요즘 중저가형 배터리를 열심히 개발 중이죠. 그동안 한국 배터리 업계의 주력 제품은 고급형인 삼원계 배터리였는데요. 요즘엔 중국이 주로 하는 저가형 LFP 배터리도 개발해 양산을 준비 중입니다. 얼마 전 메르세데스 벤츠가 LFP 배터리도 채택하겠다고 밝혔듯이, 점점 저렴한 배터리를 찾는 고객사가 늘어나기 때문이죠. 동시에 중간 가격대 신제품도 개발 중이죠. 삼원계 배터리보다 니켈 함량을 낮춘(40~60%) ‘고전압 미드니켈’ 배터리가 그중 하나고요. LFP 양극재에 망간을 추가해 성능을 높인 ‘LMFP 배터리’도 있습니다. 앞으로 열릴 전기차 대중화 시대엔 어떤 배터리가 대세가 될지 모르니, 다양한 성능과 가격대의 제품을 갖춰 놓는 게 중요합니다. 최보영 연구원은 “LFP 배터리에선 중국산과의 단가 경쟁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 기업은 아마도 그보다 한 단계 윗급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데요. 아직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초기 단계이고, 아마도 진짜 경쟁은 이제부터가 될 겁니다. 실적과 주가가 모두 흔들리고 전망도 어두운 이 시기에 터널의 저편을 내다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By.딥다이브딥다이브는 지난해 8월 리튬시장이 공급 과잉에 처할 거란 전망을 전해드린 적 있는데요(딥다이브 리튬 편). 당시 t당 26만 위안이던 탄산리튬 가격이 5개월 만에 10만 위안 아래로까지 떨어질 줄은 솔직히 아무도 예상 못했죠. 참, 시장은 냉정하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전기차용 배터리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CATL이 배터리셀 가격을 Wh당 0.4위안으로 낮췄다는 소식이 나왔는데요. 배터리팩 가격이 kWh당 75달러 수준으로 내려간 셈입니다. -공급 과잉으로 리튬 가격이 생산원가에 근접할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인데요.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 성장세가 둔화된 것도 배터리 제조사들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혹시 이런 가격 급락이 치킨게임의 서막일까요. 혹시 재고 떨이를 위해 역마진을 감수하는 출혈경쟁이 펼쳐질까 우려됩니다.-동시에 배터리 가격 하락이 전기차 대중화를 앞당길 수도 있는데요. 실적과 주가 모두 어두운 지금이 배터리 기업엔 중요한 시기입니다.*이 기사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미국 경제가 강한 성장을 기록하면서 뉴욕증시가 환호했습니다. 25일(현지시간) 3대 지수는 일제히 상승 마감했는데요. 다우지수 0.64%, S&P500 0.53%, 나스닥지수는 0.18% 올랐습니다. S&P500과 나스닥지수는 6거래일 연속 상승이죠. 특히 S&P500은 5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 기록을 썼습니다. 이날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율 3.3%. 지난해 3분기(4.9%)보다는 둔화했지만, 월가 전망치 2.0%를 크게 웃도는 ‘깜짝 성장’이었는데요. 동시에 이날 발표된 4분기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은 1.7%에 그쳤습니다.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잡는 ‘연착륙’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찰스슈왑의 케빈 고든 전략가는 “정말 건전한 데이터의 조합”이라며 “연준이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추구할 때 얻을 수 있는 열반에 가깝다”고 평가했죠. 블룸버그는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인 2%에 부합하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고무적인 신호로 여겨졌다”고 설명합니다.하지만 이날 증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종목은 테슬라였는데요. 전날 저조한 실적 발표의 여파로 주가가 12% 넘게 급락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9월(21% 급락) 이후 최악의 기록이죠. 특히 회사 측이 주주서한에서 “2024년 판매 성장률이 2023년 달성한 차량 인도 증가율(38%)보다 현저히 낮아질 수 있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게 주가를 끌어내렸습니다. 테슬라는 매년 제시해왔던 연간 차량 인도량 목표치를 올해는 제시하지 않았죠.애널리스트들은 테슬라 목표주가를 일제히 낮춰잡았는데요. 바클레이즈는 “앞으로의 흐린 경로가 하방 위험을 강화한다”면서 목표가격을 250달러에서 225달러로 조정했고요.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는 300달러에서 297달러, 캐너코드 제뉴이티는 267달러에서 234달러로 하향 조정했습니다.대표적인 테슬라 강세론자인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애널리스트 역시 전날 테슬라 실적발표를 두고 “무너진 기차 같다”고 평가했는데요. 머스크 CEO가 전기차 수요 둔화나 가격인하 등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은 데 실망한 겁니다. 아이브스는 테슬라 목표주가를 기존 350달러에서 315달러로 낮춰 잡았습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전기차 배터리 가격 하락세가 심상찮다. 중국 제조사가 1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값을 내려 판매하겠다고 나섰다. 자칫 치킨게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전기차 대중화의 길이 열릴 거란 기대가 교차한다.● 반 토막 난 배터리셀 가격 중국 언론에 따르면 저가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강자인 중국 CATL은 최근 전기차용 배터리셀 가격을 더 낮춰 잡았다. 올해 주력 배터리셀을 Wh(와트시)당 0.4위안 이내로 공급하겠다고 자동차 기업에 제시한 것. 지난해 초 LFP 배터리 가격이 Wh당 0.8∼0.9위안, 지난해 8월 0.6위안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내림세다. 전기차엔 배터리셀을 모아 만든 배터리팩 형태로 탑재된다. 이를 배터리팩 가격으로 환산하면 kWh(킬로와트시)당 75달러 수준까지 떨어진 셈이다. 골드만삭스가 전망한 올해 글로벌 배터리팩 평균 가격인 120달러를 한참 밑돈다. 중국산 LFP 배터리가 한국의 삼원계(NCM) 배터리보다 저렴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가격은 지금보다 더 내려갈 수도 있다.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립모터의 차오리 수석부사장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LFP 배터리 구매가격이) Wh당 0.4위안인데, 올해 안에 0.32∼0.35위안 범위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터리 가격 경쟁이 더 치열해질 거란 전망이다. ● 리튬 가격 폭락과 수요 위축 배터리 값이 이렇게까지 떨어지는 건 제조사가 낮출 여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요인은 핵심 원자재인 리튬 가격의 하락이다. 2022년 11월 t당 60만 위안까지 급등했던 탄산리튬 가격은 지난해 폭락해 현재 9만5500위안. 14개월 만에 84%나 떨어졌다. 한때 ‘하얀 석유’로 불리며 몸값이 높아졌던 리튬이지만 이젠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전기차 시대를 내다본 기업들이 앞다퉈 리튬 채굴에 뛰어들면서 너무 빠르게 공급을 늘린 탓이다. 수요 증가 속도를 추월해 버린 것이다. 현재 리튬 가격은 생산원가(t당 6만∼8만 위안)를 간신히 웃도는 수준. 이미 가격이 바닥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재고가 쌓인 리튬 생산 기업이 역마진을 감수하고 재고 떨이에 나선다면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배터리 업체가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대 시장인 중국은 경제 둔화로 소비 여력이 줄어든 상황. 수요 위축으로 중국 배터리 공장의 가동률은 50∼60%로 떨어졌다. 미국·유럽의 전기차 수요 역시 눈에 띄게 감소했다. 신기술 수용에 적극적인 ‘얼리어답터’ 수요를 거의 다 채웠기 때문이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혁신적인 제품이 얼리어답터 중심 초기 시장에서 일반 소비자의 주류 시장으로 넘어갈 땐 ‘캐즘(Chasm·아주 깊은 틈)’, 즉 침체기를 거친다”며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침투율이 16%를 돌파하면서 캐즘 단계에 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대중화의 시작 중국 기업이 배터리 가격을 낮추고는 있지만 아직은 출혈 경쟁까진 아니다. 하지만 당분간 전기차 수요 회복이 어려운 가운데 배터리 재고가 쌓여간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배터리 업계가 우려하는 시나리오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바로 치킨게임이다. 정진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무역장벽에 가로막힌 중국이 세계적으로 내세울 산업이 전기차뿐인 상황에서, 무리해서라도 이 산업을 육성하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라면서 “자칫 과거 디스플레이 산업 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제조사 BOE가 저가 물량 공세로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장악했던 것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으로 눈을 넓혀 보면 배터리 가격 하락은 큰 기회다.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앞당길 수 있어서다. 전기차 값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안팎. 지금처럼 배터리 값이 떨어지면 전기차 제조사는 그만큼 차 값을 낮출 수 있다. 이런 추세라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가격이 비슷해지는 시점이 생각보다 더 빨리 올지 모른다. 그동안 비싸서 전기차를 외면했던 소비자들까지 전기차로 눈을 돌린다면 시장은 확 커진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한국 배터리 기업은 중·저가형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군을 갖춰, 싸고 좋은 배터리를 찾는 완성차 기업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전기차 시장 초기인 만큼 어떤 배터리가 대세가 될지 단정하기 이르다는 점도 신제품 개발에 힘쓰는 이유다. 기존 삼원계 배터리보다 니켈 함량을 낮춘 ‘고전압 미드니켈’ 배터리, LFP 양극재에 망간을 추가한 ‘LMFP 배터리’가 그 예다. 최보영 연구원은 “앞으로 열릴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누가 잡을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며 “한국 기업은 중국이 이미 장악한 LFP 배터리보다 한 단계 윗급에서 경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쓰레기를 많이 버리면 돈을 많이 내게 하는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사람은 돈을 많이, 적게 버리는 사람은 조금 내는 거죠. 그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요? 쓰레기 처리 비용은 쓰레기를 만든 사람이 부담하는 게 맞다고요?한국에 쓰레기 종량제가 의무화된 지 30년째. 규격봉투가 아닌 데 생활쓰레기를 담아 버리는 일은 이제 상상하기 어렵게 됐는데요.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쓰레기 종량제는 꽤 논쟁적인 제도입니다. 한국처럼 전국적으로 전면 도입한 국가는 얼마 없죠. 올해 4월 쓰레기 종량제 전면 시행을 예고했던 홍콩도 최근 여론에 밀려 4개월 연기를 발표했을 정도인데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쓰레기 종량제의 경제적 효과와 의미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홍콩의 종량제 논란홍콩 시민들은 앞으로 쓰레기를 초록색 규격봉투에 담아 버려야 합니다. 15L짜리 한 장에 0.36홍콩달러(62원)짜리 봉투를 사서 말이죠. 홍콩이 20년에 걸친 논의 끝에 드디어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기로 한 겁니다.그런데 4월 1일 제도 도입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오던 홍콩 정부가 지난 19일 갑자기 연기를 결정합니다. 날짜를 8월 1일로 4개월 미루기로 했죠. 대중 교육과 홍보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요.사실 이 정책은 지난해 12월 도입하려다 한차례 미뤄진 적 있거든요(당시는 ‘연말엔 쓰레기 처리 직원이 부족하고, 방학에 쓰레기가 급증할 수 있다’는 이유였음). 이번이 두 번째 연기입니다. 홍콩 환경보호국은 “6, 7월엔 학교 시험이 집중되기 때문에 8월이 이상적 시기”라고 다소 특이한 택일 이유를 밝혔는데요.홍콩 정부가 이렇게 쓰레기 종량제 도입을 자꾸 미루는 건 여론의 아우성 때문입니다. 곳곳에서 갖가지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죠. 예컨대 ‘대걸레 막대는 어떻게 버리냐’와 같은 식의 질문이 끝도 없이 나오는데요. 이를 두고 지난주 라디오에 제도를 홍보하려 출연한 홍콩 환경보호국 관계자가 “톱으로 잘라서 규격봉투에 넣으면 된다”고 답해서, 가뜩이나 불만투성이인 시민들을 열받게 했습니다(‘쓰레기 버리려면 톱이 필수품이라니!’라는 반응).단순히 규격봉투 이용이 불편하고 귀찮기 때문에 홍콩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질까 우려하는 이들도 있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얼마 전 홍콩의 요양원을 취재했는데요. 하루에 많게는 7~8번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노인들이 모여있는 요양원의 경우, 규모에 따라서 연간 수십만 달러(수천만 원)의 비용이 추가될 거라고 걱정합니다. 장애인·저소득층 가정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단 주장도 나오죠.이렇게 국민 부담이 늘고 여론이 악화하더라도 쓰레기 종량제는 도입할 만한 가치가 있긴 있는 거겠죠? 그걸 입증해주는 사례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이죠.버리는 사람이 돈 낸다는 발상먼저 쓰레기 종량제가 어떤 제도인지를 좀 살펴볼까요.쓰레기 처리 비용은 어떻게 부담하는 게 합리적일까요. 쓰레기를 배출하는 오염원이 처리 비용을 어느 정도는 부담할 필요가 있다는 건 대체로 동의할 텐데요. 이를 어려운 말로 바꾸면 ‘오염자 부담 원칙’이죠. 1990년대 초반 한국도 이런 원칙에 따라 쓰레기 수수료를 가정에 매기긴 했는데요. 그땐 마치 세금처럼 부과했습니다. 집이 넓을수록 더 많은 처리비를 내는 식(건물 연면적과 재산세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눠 부과)이었죠. 다른 나라의 경우엔 모든 가정이 똑같은 처리비를 내는 ‘정액제’ 방식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적게 버릴 경제적 유인이 전혀 없죠. 쓰레기 배출량이 적든 많든 내는 돈은 똑같으니까요. 어떻게 해야 공평하게 비용을 부담하는 동시에 쓰레기 배출을 자발적으로 줄이게 만들까. 이런 취지로 고안된 것이 쓰레기 종량제, 영어로는 ‘pay as you throw(약자 PAYT)’ 시스템입니다.사실 쓰레기 종량제 역사는 꽤 오래됐습니다. 미국 일부 지역이나 일본 일부 지자체에선 1970년대부터 운영됐고, 지금도 지자체 중 많은 곳이 시행 중이죠. 유럽 여러 국가의 지방자치단체도 1990년대부터 도입해왔고요. 하지만 전국적으로 쓰레기 종량제를 일제히 의무화한 건 한국이 최초였습니다. 시범사업을 거쳐 1995년 1월 1일을 기해 제도가 전격 시행됐죠. 지정된 봉투를 사서 쓰레기를 버리게 하는 동시에 재활용품은 공짜로 분리 배출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게 참 놀라운 정책이었는데요. 2001년 7월 발행된 ‘월간 폐기물21’ 특집기사엔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격적인 종량제 시행을 접하고서 “역시 한국은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전제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라는 나라에서 어떻게 국가 전체가 하루아침에 종량제 시행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다는 것이다. 쓰레기 종량제를 전국적으로 일시에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쓰레기 종량제를 우리보다 먼저 시행한 독일, 스위스, 일본에서도 전국적인 시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초기엔 대혼란그럼 이 낯선 제도는 처음부터 환영받았을까요. 물론 아니죠. 당시 쓰레기 종량제는 정부와 도시의 강력한 의지+일부 전문가의 지지로 시작됐습니다. 경제 발전으로 쓰레기는 매년 7~10%씩 무섭게 늘어나는데, 매립지 조성과 쓰레기 소각시설 건설은 순탄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가 1991년 11개 소각시설 건설을 계획했지만, 결국 주민 반대에 부딪혀 4개밖에 건설 못한 것만 봐도 심각성을 알 수 있죠. 정부와 지자체로선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했습니다.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도였습니다. 불만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쓰레기 버리는 데 돈을 내라고?”였는데요. 그때 아파트엔 집집마다 쓰레기 투입구가 있어서, 거기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털어 넣으면 끝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슈퍼마켓에서 규격봉투를 돈 주고 산 뒤, 쓰레기를 담아서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버려야 하니 돈도 들고 번거롭기까지 합니다. 전문가 중에서도 쓰레기 불법 투기가 늘어날 거라며 도입에 신중한 이들도 있었죠. 아니나 다를까. 1995년 1월 1일 시행과 동시에 각종 문제와 불만이 터져 나오는데요.당시 동아일보 기사에 나타난 현상을 모아보자면 이런 겁니다. 하필 시행일을 1월 1일로 잡는 바람에 연초 연휴(당시는 1월 1~2일이 양력설 연휴) 기간에 규격봉투 살 곳이 없어 봉투 구입에 애를 먹었고요. 뭐가 재활용품이고 뭐가 일반쓰레기인지 구분을 못해 우왕좌왕했습니다.채소나 수산물을 파는 소매점은 쓰레기봉투 값 부담이 늘어나 울상이었습니다. 가락시장 같은 대형 도매시장엔 외부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무단투기가 늘어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가게 앞에 내놓은 쓰레기를 내용물은 빼놓고 봉투만 몰래 가져가는 신종 도둑이 생겨났고요. 가짜 쓰레기봉투가 만들어져 대량 유통되기도 했습니다.종량제 시행 이후 골목길이 더러워졌다는 한탄도 나왔죠. 쓰레기 봉투값 부담 때문에 주민들이 이웃집 대문 앞과 동네 놀이터까지 청소하던 미풍양속이 사라졌단 겁니다. 게다가 쓰레기봉투는 왜 이리 약해서 찢어지는지. 초반엔 손잡이 없는 봉투도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종량제 실시로 인해 고소득층의 부담은 줄어들고 저소득층은 많게는 10배 이상 수거료가 인상된다’고 당시 동아일보는 지적했습니다(1995년 1월 6일자).설득력 있는 비판도 많았는데요. 무엇보다 쓰레기를 줄이려고 종량제를 하는데, 쓰레기봉투 자체가 1회용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재생 원료를 쓴 친환경 봉투를 쓰자는 움직임도 있긴 한데요. 잘 찢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여전히 사용을 꺼린다고 하죠.숫자가 보여주는 성과쓰레기 종량제 시행 30년째. 성과는 어떨까요. 이를 보여줄 서울시 통계를 가져왔습니다. 하루 생활폐기물 발생량 추이입니다.(전국 통계는 기준과 단위가 중간에 바뀌어서 이전 수치와 비교가 어려워서, 서울시 통계를 대신 씁니다.)1994년 하루 1만5392톤에 달하던 서울시 생활폐기물 배출량이 1995년 제도 시행과 함께 뚜렷하게 줄어드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초기엔 ‘쓰레기가 줄긴 했는데 종량제 효과인지, IMF 외환위기(1997년)로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나왔는데요. IMF 위기 극복 이후 살짝 늘었던 배출량이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줄어든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를 전면 실시한 2013년엔 8559톤으로까지 감소하기도 했죠.하지만 보시다시피 이후 슬금슬금 다시 배출량은 늘었습니다. 특히 2021년엔 다시 1만톤을 넘어섰죠.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온라인 쇼핑이 늘고, 음식배달이 늘면서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가 다시 많아진 겁니다.동시에 재활용 비율은 빠르게 늘었는데요. 1994년에 겨우 20%에 그쳤던 재활용 비율이 2021년엔 67%로 높아졌습니다. 같은 기간 매립되는 쓰레기 비율은 79%에서 10%로 뚝 떨어졌죠. 종량제 도입과 함께 재활용품은 공짜로 수거해준 정책이 분명한 효과를 가져온 겁니다.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2014년 보고서에서 “종량제 시행 후 2012년까지 생활폐기물 감소와 재활용 증가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최소 19조5600억원”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 계산이 어떻게 나오냐고요? 쓰레기 배출이 줄면 수집운반·처리시설 운영에 드는 돈을 크게 아낄 수 있고요(과거 보고서에 따르면 쓰레기 1톤 감량당 14만원 절감). 재활용품은 수집·운반·선별·가공비용이 들긴 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1톤 재활용당 1만9000원 편익. 단, 이자율과 각종 단가에 따라 경제효과 계산은 달라짐을 유의).무엇보다 쓰레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게 큰 성과가 아닐까 싶은데요. 재활용품은 물론 음식물 쓰레기까지 전 국민이 분리수거를 척척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소비자들이 포장이 과한 제품을 피하면서 제조사들도 쓰레기가 적게 나오는 상품을 만들게 되고요. 인상적인 건 10년 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쓰레기 분리배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인데요. 응답자의 65.3%는 “분리수거가 귀찮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귀찮음이 이 제도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그걸 극복해낸 겁니다.음악이 함께하는 대만 종량제이쯤에서 쓰레기 종량제로는 한국 못지않게 유명한 성공사례를 하나 더 소개합니다. 바로 대만입니다.대만은 2001년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했는데요. 정해진 봉투를 사서 쓰레기를 배출해야 하고, 철저히 재활용품을 분리배출한다는 점은 우리와 같습니다. 하지만 이를 버리는 모습은 사뭇 다른데요.우리는 쓰레기 버리는 곳에 모아두면(주택은 집 앞에 두면), 정해진 요일에 수거차가 와서 조용히 가져가잖아요. 그런데 대만은 노란색 수거차가 크게 음악을 울리며 나타나면, 그에 맞춰 사람들이 종량제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나와야 합니다. 수거차는 도시든 시골이든 주 5일, 정해진 시간대에 찾아오는데요. 수거차의 당도를 알리는 음악(보통 ‘엘리제를 위하여’나 ‘소녀의 기도’)이 곧 ‘쓰레기 버릴 시간’이란 알림음인 겁니다. 보통은 사람들이 미리 쓰레기를 들고 와서 트럭을 기다리곤 하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 5일 대만 곳곳에서 이 광경이 펼쳐집니다.그 결과 쓰레기 버리는 이 시간이 이웃과 소통할 소중한 교류의 시간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수거차에서 울리는) 노래가 대만 사람들에게 거의 파블로프식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도 전합니다. ‘엘리제를 위하여’나 ‘소녀의 기도’를 들으면 쓰레기를 버리고 싶어진다는 거죠.대만인이 1인당 하루에 배출하는 쓰레기 양은 850g(2018년 기준). 15년 전과 비교하면 29%나 줄어든 건데요. 대만은 30년 전인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쓰레기섬’이라고 불렸습니다. 매립지가 포화상태에 다다르면서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쓰레기는 줄고 재활용은 생활화됐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는데요. 그만큼 제도와 인프라 변화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입니다.한국과 대만의 이런 극적인 경험은 다른 나라에도 전파 중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비록 연기되긴 했지만 홍콩이 종량제 도입을 앞두고 있고요. 베트남 역시 늦어도 2025년에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는 환경보호법 개정안이 이미 2020년 통과됐습니다. 물론 제도 시행까지 많은 논란을 거치게 되겠지만요.한국인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배출하는 생활(가정)쓰레기 양은 2021년 기준 870g. 최근 수년간 줄지 않고 정체돼있습니다. 이제 쓰레기 종량제와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2013년) 도입 약발이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결국 쓰레기를 줄이려는 개인의 작은 노력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었다는 사실,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By.딥다이브연이어 나오는 홍콩의 종량제 관련 뉴스들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나서 기사를 쓰게 됐는데요. 종량제를 도입한 지 벌써 30년째라니 기분이 묘하네요. 여러분은 그 이전에 어떻게 쓰레기를 버렸는지가 기억 나시나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야심차게 쓰레기 종량제 도입을 계획했던 홍콩 정부가 여론에 밀려 또다시 4개월 연기를 발표했습니다. 아직 홍보와 교육이 부족하다는 이유인데요. 불편한 데다 비용 부담까지 늘어나는 종량제 의무화에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쓰레기 종량제는 ‘버리는 만큼 지불’하는 오염자 부담 원칙에 맞는 제도입니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려는 자발적인 노력을 하도록 유인하는 효과가 있죠. 쓰레기 처리가 골칫거리였던 한국이 1995년 1월 이를 전격 도입한 이유입니다.-도입 초기엔 물론 대혼란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첫해부터 쓰레기 배출량은 극적으로 줄었고, 재활용률은 빠르게 늘었습니다. 다만 최근 10년간은 이런 효과가 정체상태입니다.-우리보다 늦게 제도를 도입한 대만도 종량제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했죠. 잘 설계된 제도와 인프라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일제히 상승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습니다. 22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만8000선을 돌파했고, S&P500지수는 이틀 연속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다우는 +0.36%, S&P500 +0.22%, 나스닥지수+0.32%로 장을 마감했죠. 새해 들어 다소 주춤했던 미국 증시는 최근 3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죠. 지난해 4분기 나타났던 랠리가 다시 재개되는 듯한 분위기인데요. 미국 경제가 여전히 강하고, 인공지능(AI) 붐이 이어질 거란 낙관론이 퍼지고 있습니다. CIBC프라이빗웰스의 데이비드 도나베디안 CIO는 “강세에 대한 이야기가 바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동안은 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낙관론을 주도했다면, 이젠 투자자들이 경제를 ‘방탄’으로 보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건데요. 그는 “금리가 아무리 높아져도 경제는 계속 순항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지금의 강세장을 주도하는 건 기술주인데요. 특히 애플은 이날 주가가 1.22% 상승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에 넘겨줬던 시가총액 1위 자리를 탈환했습니다. 종가 기준으로 1위 자리를 MS에 뺏긴 지 6거래일 만이죠. 지난주 애플이 사전 주문을 시작한 혼합현실(XR) 헤드셋 신제품 ‘비전 프로’의 주문량이 예상치를 웃돈다는 소식이 나왔기 때문인데요. 애플 분석으로 유명한 대만 궈밍치 TF증권 애널리스트 추정에 따르면 지난 주말 애플의 비전프로는 16만~18만대가 팔렸습니다. 이전 전망치의 2배가 넘는 수준이죠. 물론 틈새시장을 노리는 제품이라 얼마나 대중화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출발은 꽤 좋습니다.이번주는 주요 기업이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죠. 23일(현지시간) 넷플릭스, 24일 테슬라, 25일 인텔의 실적이 공개될 예정인데요. 팩트셋에 따르면 현재까지 실적시즌 성적표는 썩 좋진 않습니다. S&P500 상장 기업 중 10%가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이중 62%만 예상치를 웃도는 주당순이익(EPS)를 발표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다소 저조한데요. 그래서 이번주에 나올 실적 발표 내용이 중요합니다. 머피앤실베스트 웰스매니지먼트의 폴 놀테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합니다. “연준이 금리를 동결한다면 경제가 냉각될까요? 이번 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실적 시즌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겁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한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분야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메모리 반도체, OLED, 이차전지? 이것도 빼놓지 말아 주세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이름이 너무 어렵다면 이렇게 불러도 됩니다. ‘차세대 태양전지’.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의 한계를 뛰어넘을 미래 기술이죠.한국이 꽤 오랫동안 기술을 리드해온 이 분야에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후발주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불과 1~2년 사이에 놀라운 속도로 치고 올라와 버린 겁니다. 이러다 기술 주도권을 놓칠까 걱정이라는데요. 태양전지의 미래와 기술 주도권 경쟁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마의 30%’ 벽 깬다세계적인 테크 미디어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해마다 가장 주목할 10대 미래기술을 선정합니다. 올해 초에도 10가지를 발표했는데요. 인공지능(AI), 애플 비전프로(VR 헤드셋), 체중감량 약물(위고비)처럼 가장 핫한 기술과 함께 이름을 올린 게 이겁니다. ‘초고효율 태양전지’. 기존 태양전지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종의 슈퍼 태양전지라 할 수 있죠.여기서 잠깐. 지금 우리가 쓰는 태양전지는 광활성층(햇빛을 받아 전력을 생산하는 층)이 실리콘인 것 아시죠. 실리콘 태양전지는 1950년대 미국에서 처음 개발돼, 한때는 유럽·일본을 거쳐 한국에서도 꽤 잘 만들곤 했는데요. 지금은 90% 이상이 중국산입니다. 치킨게임을 거쳐 중국이 완전히 시장을 장악해버렸죠.이 실리콘 태양전지엔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광변환효율이 최고 29.4%까지밖에 나올 수 없죠. 전지에 닿는 햇빛양이 100이면, 그중 29.4까지만 전기로 변환할 수 있단 뜻인데요. 이미 효율이 26%, 27%짜리 태양전지가 나오고 있거든요. 그 말인즉슨 이제 곧 한계에 다다른다는 거죠.효율이 높으면 당연히 더 작은 면적의 태양전지로 더 많은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비용도 줄이고 설치공간도 아낄 수 있습니다. 효율 30%, 40% 이상의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그 방법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올해의 10대 미래기술로 꼽힌 초고효율 태양전지가 바로 그것이죠.어떤 거냐고요? 구조는 간단합니다. 광활성층 두 가지를 겹쳐 쓰는 거죠. 실리콘 위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얹어 올리는 겁니다. 그러면 한계로 여겨졌던 ‘마의 30%’ 벽을 얼마든지 넘을 수 있습니다. 아마 40%까지도(이론 한계 효율 44%).얼마나 유망한 기술인지 감이 오시죠. 그런데 한가지 큰 걸림돌이 있습니다. 페로브스카이트라는 이 신소재의 취약점이 있습니다. 수분과 열에 약해요. 태양전지는 비와 눈도 오는 야외에 설치돼야 하는데, 내구성이 떨어지면 쓸 수가 없겠죠. 그래서 보호층을 만들어서 내구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고요. 동시에 전지의 효율을 더 끌어올리려는 연구도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이 있죠.한국이 기술 선도국‘페로브스카이트로 태양전지를 만들어보자’라며 연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스위스였고요. 2009년 일본 연구진이 실제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은 그보다 좀 늦게 이 분야에 뛰어들었는데요.우리가 발견은 좀 늦어도 제조 기술은 탁월하지 않습니까. 페로브스카이트는 여러 가지를 섞어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 최적의 제조방법을 2014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만들어냅니다. 태양전지를 만들려면 필름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얇게 입혀야 하는데요. 아주 치밀하고 균일하게 박막을 만들어야만 높은 효율을 낼 수 있거든요. 바로 그 레서피를 찾아낸 거죠.그 결과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서 한국이 신기록을 쓰기 시작합니다. 최고 효율 기록을 계속 갈아치운 거죠. 국제 공인을 거친 태양전지 최고 효율은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 차트에 기록되는데요. 한국화학연구원(KRICT)이나 울산과학기술원(UNIST) 같은 한국 기관이 지난 10년간 상당히 자주 등장합니다. 발표 시점 기준으로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단 뜻이죠.그래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선 한국이 여전히 기술력에서 세계 선두권이긴 한데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실리콘 없이 페로브스카이트만으로 만든 태양전지에서만 앞서 나가고 있다는 거죠. 물론 그것도 참 대단하긴 한데요. 페로브스카이트만으로 만든 태양전지는 현재 최고 효율이 26% 정도이거든요. 실리콘 태양전지와 맞먹긴 하지만 ‘초고효율’까진 아니죠. 물론 앞으로 더 높아지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한데요.결국 단기간 안에 ‘슈퍼 태양전지’로 가려면 앞에서 설명한 대로 페로브스카이트를 실리콘 위에 쌓아 올려야 합니다. 이걸 ‘페로브스카이트/실리콘 탠덤 태양전지’, 줄여서 ‘탠덤 태양전지’라고 흔히 부르죠.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말하는 초고효율 태양전지가 바로 이겁니다. 다시 말해 2024년 지금 시점엔 ‘탠덤 태양전지’가 단연 대세입니다.실리콘 태양전지야 이미 많으니까, 일단 우리가 페로브스카이트만 잘 만들면 실리콘 위에 올리는 거야 간단하지 않냐고요? 그럴 줄로 알았죠.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그렇게 마음 놓고 있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더 서둘러야 합니다!무서운 사우디와 중국2023년은 차세대 태양전지 분야에 대격변이 일어난 해입니다. 그 중심엔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있죠. 사실 사우디와 중국은 이전엔 이 분야에서 존재감이 없던 국가들인데요.사우디아라비아가 태양광 발전에 진심인 것 아시나요. 사우디엔 석유만 많은 게 아니죠. 일 년 내내 쨍쨍 내리쬐는 햇빛도 가진 나라인데요. 게다가 남아도는 땅(사막)도 많으니, 태양광 발전에 딱입니다. ‘포스트 석유시대’를 준비 중인 사우디는 태양광 발전을 대대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죠.사우디는 차세대 태양전지 쪽을 키우기 위해 유럽 과학자를 스카우트하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데요. 그 결과 사우디의 KAUST(킹압둘라과학기술대)가 태양전지 연구계에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2022년까지 페로브스카이트와 실리콘을 결합한 탠덤 태양전지의 최고효율기록이 독일의 HZB(헬름홀츠센터 베를린 연구소)가 세운 32.5%였는데요(참고로 한국의 탠덤 태양전지 효율은 아직 29.9% 수준). KAUST가 2023년 들어 33% 넘는 신기록을 내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6월엔 33.7%를 기록한 겁니다. 업계가 깜짝 놀랐죠.그런데 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중국의 거대 태양광 기업 론지솔라가 갑자기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겁니다. 론지솔라가 탠덤 태양전지를 개발했다며 처음 기술을 공개한 게 지난해 5월인데요. 5월 31.8%, 6월 33.5%로 효율을 높여가더니 급기야 11월엔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웁니다. 공인 효율이 무려 33.9%. 론지솔라 창업자 리전궈 회장은 기록 수립을 자축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 태양광 산업은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계속 세계를 선도해야 합니다.”그동안 각국이 차세대 태양전지 연구에 매진해온 배경엔 ‘또다시 중국에 뺏길 순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실리콘 태양전지는 중국에 뺏겼지만, 미래 태양전지 기술은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의지였는데요. 경계 대상인 중국이 미래 신기술에서마저 빠르게 치고 나온 겁니다. 이만저만 큰일이 아닙니다.기반도 관심도 부족하다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페로브스카이트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인 석상일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특훈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10년 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페로브스카이트 레서피를 만든 장본인이죠.석상일 교수는 이렇게 얘기합니다.“이제 우리나라가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을 리드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닦아온 기반이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우리가 집중하고 협력한다면 따라잡을 수야 있겠지만, 이대로 1년만 더 머뭇거리면 상당히 어려워질 겁니다. 워낙 기술 진화 속도가 빠르니까요. 론지솔라의 기록도 불과 1년 만에 이뤄진 일이거든요.”그럼 왜 분위기가 바뀐 걸까요. 석 교수는 한국의 기존 태양광 산업 기반이 무너진 데다,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마저 시들해진 게 원인이라고 봅니다. 지금 단계에서 집중해야 하는 연구 분야는 단연 ‘탠덤 태양전지’인데요. 이건 페로브스카이트만 가지고는 개발할 수 없고, 실리콘 태양전지 쪽과 협력해야만 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선 연구용 실리콘 태양전지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중국 기업에서 들여오려니까, ‘너희가 연구한 걸 발표 전에 미리 보여달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고요. 탠덤 태양전지 연구를 하려고 해도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운 셈인데요. 아니, 예전엔 한국에도 실리콘 태양전지 만들던 좋은 기술자들이 참 많았는데 말이죠. 다 어디 갔느냐고요? 한국엔 설 자리가 없으니 해외로 많이들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주로 인도 같은 데로 말이죠.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정부 차원의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이죠. 석 교수는 “정부가 태양광 쪽에 대한 드라이브를 많이 낮추면서 연구 지원도 소극적이 됐다”고 전하는데요. 그는 “연구자로서 좀 화가 난다”고 말합니다. “연구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다들 열심히 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는데, 뭔가 발목을 잡고 이러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요. 사실 에너지는 우리의 생존이 달린 분야잖아요. 정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 이상하게 에너지가 정치화됐어요.”한국화학연구원에서 차세대 태양전지를 연구하는 강봉주 선임연구원도 지금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하는데요. 얼마 전 올해 차세대 태양전지 관련 과제 연구비가 30~60% 깎였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하거든요. 앞으로 5년 안에 상업화가 되느냐 아니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만약 5년 안에 못 해내면 자칫 또 실리콘 태양전지처럼 될 수 있거든요. 한국이 아주 잘하던 걸 다른 나라에 뺏겨버리게 될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그는 다른 연구자로부터 최근 들었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애국심으로 연구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중국에 뺏길 순 없다고요.”분발하는 일본연구자들의 이런 한탄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옆 나라 일본은 차세대 태양전지에 대한 투자를 올해 들어 대폭 늘려 잡았는데요. 우리와 비슷한 상황(실리콘 태양전지 시장은 이미 중국에 뺏김, 페로브스카이트 기술은 일찌감치 개발)에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거죠.올해 일본이 이 분야에 배정한 예산은 548억엔(약 5000억원). 기업이 차세대 태양전지를 이른 시일 내 대량생산하도록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당장 2025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는 상당히 야심 찬 계획입니다.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일본은 일단은 ‘순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쪽에 집중한다는 겁니다. 실리콘 없이 말이죠. 태양광 자립, 즉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100% 국산화를 위해선 현재로선 그게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인데요. 페로브스카이트의 핵심 원료는 요소인데, 이건 일본에 아주 풍부해서 조달 걱정이 없습니다. 희귀금속? 자원 민족주의? 그런 위험이 사라지죠.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국토가 좁아서 태양전지판을 넓게 펼쳐놓을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런데 페로브스카이트 전지는 아주 얇고 구부릴 수 있는 데다 투명하게도 만들 수 있어서 어디든 갖다 붙이면 되거든요. 곡면으로 된 고층 빌딩이라면 마치 선팅필름처럼 창문에 전지를 붙이면 됩니다.또 제조 공정에서 그리 많은 전기가 필요 없다는 것도 일본 정부가 페로브스카이트를 지원하는 이유인데요. 지금의 태양전지는 실리콘을 만들기 위해 석영 암석을 1000도 넘는 고온으로 녹이는 데 엄청난 양의 전기를 쓰거든요. 그래서 전기료가 싼 중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할 수 있기도 했는데요. 페로브스카이트는 필름에 얇게 펴 바르거나 증착시키는 방식으로 만드는 거라 그렇게 전기가 많이 들지 않습니다. 제조과정이 친환경적이죠.물론 일본이 이렇게 가니까 그게 꼭 답이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일본 정부와 기업이 차세대 태양전지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향해 손발을 맞춰서 열심히 나아간다는 점이 인상적인데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한 일본 자원에너지청 이노우에 히로오 국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실리콘 태양전지) 기술에서 승리했지만 사업에서 패했습니다. 일본 기업은 액정디스플레이와 반도체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죠. (차세대 태양전지에서는) 투자규모와 속도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이런 분발의 자세가 부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다 일본에까지 추월당하게 될까 봐 조바심이 들기도 합니다. “차세대 태양전지는 우리가 우위를 계속 가져갈 수 있는 흔치 않은 분야다.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석상일 교수의 당부를 대신 전합니다. By.딥다이브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초고효율 태양전지가 3~5년 안에 실용화될 거라고 내다봅니다. 그렇게까지 먼 미래가 아닌 생각보다 가까이 와있는 기술인 거죠. 지금까지 한국이 연구 단계에선 꽤 오랫동안 잘 해왔지만, 과연 상용화에서도 치고 나갈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르게 될 텐데요. 이대로 기회를 놓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신소재 페로브스카이트를 이용한 차세대 태양전지는 각광받는 미래 신기술입니다. 태양전지 효율을 대폭 끌어올려 ‘마의 30%’ 벽을 돌파할 수 있게 될 겁니다.-페로브스카이트 관련 기술에선 그동안 한국이 세계 톱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 사이 지각변동이 일고 있습니다. 후발주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놀라운 속도로 치고 나왔습니다. 페로브스카이트와 실리콘을 결합한 태양전지 분야에서 현재 세계 기록 1위는 중국 론지솔라, 2위는 사우디 KAUST입니다.-분위기가 왜 달라졌을까요. 한국의 취약한 태양광 산업 기반, 정부의 태양광에 대한 관심과 지원 부족 때문이라는 게 연구자들 설명입니다. 전 세계가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상황에서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춤하다가는 영영 따라잡지 못할지 모릅니다.-반면 일본은 ‘태양광 국산화’를 목표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대폭 늘렸는데요. 비슷한 상황에 처한 두 나라의 다른 선택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게 될까요.*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모처럼 기술주들이 상승세를 타며 뉴욕증시가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애플 주가가 큰폭으로 올랐는데요. 18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54%, S&P500은 0.88%, 나스닥지수는 1.35% 상승으로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핵심 기술주 100개를 모아 만든 나스닥100 지수는 1.47% 오른 1만6982.29로 마감해,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죠. 이날 애플 주가는 3.26% 급등했습니다. 애플은 중국시장에서 판매 부진을 겪으면서 올해 들어 투자은행들의 투자의견 하향 조정이란 수모에 시달려 왔는데요.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애플이 올해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일 거라며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목표 주가도 208달러에서 225달러로 높여 잡았고요. BOA 웜시 모한 애널리스트는 올해와 내년 애플이 신형 아이폰에 생성형AI를 탑재하면서 업그레이드를 위한 수요가 늘어날 거라고 전망했는데요. 또 19일부터 미국에서 사전 판매를 시작하는 혼합현실(XR)헤드셋 ‘비전 프로’가 차별화된 사용경험을 제공할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중국 시장의 약세는 다른 국가의 강세로 대부분 상쇄될 것”이라고 분석했죠.이날 증시의 또다른 주인공은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인데요. 이날 주가가 9.79%나 급등했습니다.예상을 웃도는 4분기 실적을 발표한 데다, 올해 강력한 성장세를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덕분에 올해 매출이 20% 정도 증가할 거란 전망인데요. TSMC 효과로 엔비디아, AMD 주가도 덩달아 올랐습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QX) 역시 3.36% 뛰었고요.한동안 미국 증시가 주춤했던 건 연준이 일찍 금리인하에 나설 거란 기대감이 점점 식어가기 때문이었죠. 이날 발표한 고용지표 역시 이런 걱정을 가중시켰는데요. 지난주 미국의 실업수당 신규 신청건수는 18만7000건으로 이전 기간보다 1만6000건 감소했다고 합니다. 2022년 9월 말 이후 최저치라는데요. 이렇게 고용시장이 탄탄한데 과연 연준이 3월에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을까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3월 FOMC가 금리 인하에 나설 확률을 55.7%로 보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70.2%)보다 많이 낮아졌죠.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이날 3월 금리인하 전망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내놨는데요. “경제활동 냉각을 고려해 연준이 금리 정상화 시작 시기를 3분기로 앞당겼다”고 말한 거죠. 물론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한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나오면 더 빨리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고 덧붙이긴 했지만요. 3월이냐, 3분기이냐. 아마도 그 신호를 찾기 위해 한동안 시장이 분주할 듯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한국이 10년 가까이 기술을 선도해 온 ‘차세대 태양전지’ 분야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후발 주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며 선두를 뺏겼다. 일본도 이 분야 주도권을 되찾겠다고 나서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새로운 차원의 태양전지 이달 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간한 ‘테크놀로지 리뷰’는 2024년의 10대 미래 기술 중 하나로 ‘초고효율 태양전지’를 꼽았다. 신소재 페로브스카이트를 실리콘 위에 쌓아 올린 차세대 태양전지이다. 필름처럼 얇은 페로브스카이트를 얹으면 전지 효율은 놀랍도록 향상된다.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는 이론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효율인 ‘마의 30%’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태양전지판에 닿는 햇빛 양 중 30% 이상을 전기로 바꿀 수 있다는 뜻. 효율이 높아질수록 발전비용은 절감된다. 다만 이 차세대 태양전지가 대량생산돼 깔리려면 앞으로도 5년가량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문제는 페로브스카이트가 수분과 열에 취약하다는 점. 이를 야외에서 10년 넘게 쓸 수 있도록 내구성을 높이는 동시에, 효율도 지금보다 더 끌어올려야 한다. 그동안 이와 관련한 연구의 선두엔 한국이 있었다. 2014년 한국화학연구원은 페로브스카이트를 더 균일하고 치밀한 박막으로 만들 수 있는 ‘제조 레시피’를 개발해 냈다. 이후 한국 연구진은 줄곧 최고 효율 기록을 경신해 왔다. 이 분야를 우리보다 먼저 개척한 스위스·일본보다도 기술력 면에서 오히려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우디·중국의 놀라운 부상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상황이 급격히 달라졌다. 그전까지 존재감 없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포스트 석유 시대’에 대비해 태양광 발전에 과감하게 투자 중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유럽 출신 과학자를 영입해 속도를 내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압둘라과학기술대(KAUST)는 페로브스카이트와 실리콘을 결합한 ‘탠덤 태양전지’ 효율을 33.7%로 끌어올리며 신기록을 썼다. 이 기록은 불과 다섯 달 만에 깨진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거대 태양광 기업 론지솔라가 33.9% 효율을 공인받으며 세계 1위 자리에 오른 것.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중국은 값싼 전기와 노동력을 무기로 실리콘 태양전지 시장을 장악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동안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에선 한참 뒤진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론지솔라는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을 처음 선보인 지 1년도 채 안 돼 단숨에 선두로 치고 나왔다. 론지솔라 창업자 리전궈 회장은 “중국 태양광 산업은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계속 세계를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제 우리나라가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을 리드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직은 우리가 집중하면 따라잡을 수 있지만, 이대로 1년만 더 머뭇거리면 상당히 어려워질 거다. 워낙 기술 진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페로브스카이트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석상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훈교수의 냉철한 진단이다. 대량생산이 머지않은 차세대 태양전지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중국을 포함한 각국이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뜨거운 관심을 쏟고 있지만, 유독 한국만은 딴판이다. 이 분야가 ‘태양광 산업’으로 묶이면서 관심과 지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관련 올해 연구비는 과제에 따라 30∼60% 삭감됐다. 강봉주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연구비가 줄어들면 어쩔 수 없이 (기술 개발) 목표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할 시기인데, 이러다 한국이 아주 잘하던 분야를 다른 나라에 빼앗겨 버리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탠덤 태양전지 효율은 29.9% 수준이다.● 일본은 ‘에너지 안보’로 접근 한국의 이런 흐름은 일본과도 대비된다. 일본은 지난해 4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페로브스카이트 대량 생산체제 구축에 대응하겠다”라고 밝힌 데 이어 올해 관련 예산 548억 엔(약 5000억 원)을 편성했다.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는 대부분을 중국 수입에 의존해야 하지만, 페로브스카이트는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국산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리콘 태양전지와 달리 제조 과정이 간단하고 전기가 적게 들어 친환경적이란 점도 일본 정부가 적극 나서는 이유다. 무엇보다 또다시 중국에 산업 주도권을 뺏길 순 없다는 경계심이 작용했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의 이노우에 히로오 국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과거 실리콘 태양전지에서) 우리는 기술에서 승리했지만 사업에서 패했다”며 “(차세대 태양전지는) 투자 규모와 속도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공격적으로 확대 중인 미국 정부도 차세대 태양전지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4월 미국 에너지부는 관련 프로젝트에 1800만 달러(약 242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석 교수는 “차세대 태양전지는 한국이 우위에 설 수 있는 흔치 않은 미래 산업”이라며 “에너지는 우리의 생존이 달린 분야인 만큼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지난주 미국 증시에 역사적 신상품이 등장했다는 소식, 들으셨죠. 바로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2013년부터 10년 동안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거부해온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10일 마침내 이를 승인한 건데요. ‘드디어 비트코인이 제도권에서 투자자산으로 인정받는구나’라는 감탄은 잠시뿐. 비트코인 시세는 이후 10% 떨어졌고, 투자자 관심은 벌써 ‘다음 ETF 후보는 무엇일까’로 넘어갔죠. 역시 시장은 빠릅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한번 찬찬히 짚고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일으킬 효과를 다각도로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어떤 상품인가미국 증시에 지난 11일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가 한꺼번에 상장됐습니다. 블랙록·피델리티·아크인베스트 같은 유명 운용사들 상품이죠.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ETF에 이틀(11일, 12일) 동안 순유입(매수-매도)된 금액은 무려 8억1900만 달러(약 1조800억원). ‘출시 몇 주 안에 수억 달러가 유입될 것’이라던 보수적인 언론 예측을 크게 웃도는 실적입니다.그래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뭐냐고요?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일반 주식계좌로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입니다. 투자자는 업비트·빗썸 같은 코인 거래소를 통할 필요도, 비트코인을 디지털 지갑(wallet)에 보관할 필요도 없죠. 비트코인을 실제로 소유하는 건 ETF 운용사입니다. 대신 매일(주말 포함)의 비트코인 시세를 ETF 가격에 반영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선 사실상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효과이죠.어차피 수익률에 차이가 없다면 사람들은 왜 비트코인 실물이 아닌 ETF에 투자할까요. 금 실물 대신 금 ETF를 사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원래 쓰던 주식계좌를 통해 사고파는 거 훨씬 더 익숙하고 간편하죠. 게다가 2022년 파산한 FTX나 얼마 전 유죄를 인정한 바이낸스 같은 못 미더운 거래소보다는 대형 증권사가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적어도 해킹이나 사기로 고객이 산 비트코인이 사라져 버릴 일은 없을 테죠.10년 걸렸다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누구인지 모를 인물이 비트코인을 처음 발행한 게 2009년. 비트코인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가상화폐 제왕’입니다. 하지만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2013년부터 이어진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을 줄줄이 거부했죠. ‘사기와 시장조작 가능성’을 그 이유로 들었는데요. 지난해 8월 SEC가 그레이스케일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하면서(‘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 거부는 잘못’이란 판결) 10년의 줄다리기가 끝납니다. 물론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ETF 승인 직후에도 “(ETF가 아닌) 비트코인을 승인하거나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굳이 강조했지만요.그럼 10년 만에 가상자산 업계가 거둔 이 승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마디로 판이 확 커집니다. 제도권 기관투자자가 이제 본격적으로 비트코인을 투자 자산으로 인정하고 담을 테니까요. 미래에셋증권 디지털자산TF 이용재 선임매니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존 가상자산 시장은 개인투자자에 치우친 반쪽짜리였습니다. 이젠 자산운용사·증권사·은행·보험사·연기금·공제회를 중심으로 비트코인 ETF에 투자하려 나서겠죠. ‘본격적인 기관투자자 시장이 개화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도약입니다.”이미 스탠다드차타드는 올해 안에 500억~1000억 달러 자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로 유입될 거라는 예상을 내놨죠. 미국에 등록된 투자자문사(RIA) 운용자금 중 0.1%만 비트코인 ETF로 들어와도 1120억 달러가 될 거란 계산도 나옵니다.단순히 돈이 아닌 지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조지타운대학 제임스 엔젤 부교수는 FT 인터뷰에서 이를 한때 술 판매가 불법이었던 시절에 비유하는데요. “(술과)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은 존경할 만한 투자공간 밖의 무법자로 여겨졌는데 이젠 올드보이 클럽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거죠. 아울러 그는 이렇게도 덧붙입니다. “월스트리트는 물건을 파는 데 정말 능숙해요. 돈을 벌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팔아치우죠.”한국은 왜?‘한국의 미국 비트코인ETF에 대한 경고가 주식에 타격을 입혔다.’12일 블룸버그는 이런 기사를 썼죠. 전날 한국 금융위원회가 ‘(국내 증권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가 기존 정부 입장과 자본시장법을 위반할 수 있다’고 밝히자, 가상자산 관련주 주가까지 흔들린 건데요. 14일 다시 낸 입장자료에서 금융위는 살짝 톤을 누그러뜨리긴 했지만(‘미국 사례를 우리가 바로 적용하기 쉽지 않다’,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에 이미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국내 증권사는 판매하지 말란 입장은 유지했습니다.사실 이건 너무 보수적인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금융위가 근거로 든 정부 입장이라는 게 6년도 더 전인 2017년 12월 13일 대책회의에서 나온 거니까요. 한 증권사 관계자는 “2017년 이후 다른 나라는 가상자산을 받아들이고 이용하려고 나서는데 한국은 달라진 게 없다”라며 “한국은 규제가 심한 게 아니라, 아예 생겨날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동안 뭐 하고 있었냐는 거죠.현실적으로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은 가상자산 투자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하죠. ETF 투자에도 아주 익숙하고요. 하지만 정작 한국에선 아직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있지 않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 조치는 국내에 앞으로 조성될 시장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아직 국내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미국 ETF로 자금이 대거 쏠릴까 봐 일단 막았을 거란 겁니다.따져보면 한국 투자자가 미국 상장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는 건 꽤 비용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환전 수수료도 들고, 차익을 거두면 22%를 세금으로 떼죠. 현재 우리나라에선 가상자산 과세가 2025년으로 미뤄져 있으니(올해까진 양도소득세 없음), 올해 안에 사고팔 생각이라면 그냥 비트코인 실물에 투자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사토시는 과연 좋아할까‘비트코인:P2P 전자 화폐 시스템’. 2008년 10월 나카모토 사토시가 공개한, 이후 세계를 뒤흔든 비트코인 백서의 제목이죠. 이 백서엔 ‘어떤 금융기관도 거치지 않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달되는’ 전자화폐라는 비전이 담겼습니다. 탈중앙화와 분권화. 그게 바로 비트코인의 정체성이었죠.그런데 지금의 비트코인 ETF는 어떤가요. 중앙화된 대형 금융사가 관리하는 금융시스템에 비트코인을 편입시켜 버렸죠.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나카모토 사토시는 이것(비트코인)이 분산형 시스템이 될 거라고 말했지만 중앙화로 이어졌다”면서 “이게 (비트코인 현물 ETF의) 아이러니”라고 꼬집습니다.그렇다면 비트코인 ETF의 등장은 월스트리트의 비트코인 점령을 뜻하는 걸까요. 전통 금융을 ‘비트코인의 적’으로 보는 시각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전통 금융과의 협력 내지 혼합은 비트코인이 주류로 가기 위해 불가피한 길이라는 현실주의자가 당연히 더 많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니까요. 코인데스크 칼럼니스트 JP 코닝은 “처음부터 이상적인 ‘비트코인주의’조차도 항상 돈을 벌려는 욕구와 짝을 이뤘다”며 “비트코인과 전통 금융과의 긴밀한 통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두 갈래 시장두 세계(비트코인과 전통 금융)의 융합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과연 자신의 비트코인을 디지털 지갑에 직접 보관해 소유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비트코인 ETF와 비트코인 실물, 둘 중 무엇이 더 ‘주류’ 내지 ‘대세’가 될까요.물론 아직은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국 IT전문지 와이어드는 “시장은 사실상 투자용 비트코인과 이데올로기자들만 보유하는 비트코인, 두가지로 분리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투자로 차익을 거두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지갑에 실물로 보관해둘 이유가 없으니까요. 어쩌면 지갑에 비트코인을 직접 보관해두려는 사람이 소수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P2P 거래 시장은 쪼그라들겠죠. FT가 “ETF로 인해 장기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지금까지) 비트코인을 보유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선택이었던 가상화폐 거래소”라고 지적한 이유입니다. 실제 미국 코인베이스 주가는 비트코인 ETF 승인 소식에 연일 급락세를 보였죠.다음 타자는 이더리움?지난 11일 4만9000달러 선에 근접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이후 급락해 15일 4만2000달러대에 머물러있죠.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파는’ 현상인데요. 대신 비트코인 다음으로 시총이 큰 가상화폐인 이더리움 가격은 비트코인 ETF 승인 직전보다 10%가량 올랐습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나왔으니, 이제 다음 현물 ETF는 이더리움일 거란 기대감 때문이죠.자, 그럼 정말 이더리움 현물 ETF의 등장도 곧 이뤄질까요. 전문가 의견은 조금 다릅니다. 이세일 신한투자증권 블록체인부장은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명확한 차이점이 있어서 (현물 ETF 승인이) 빠르게 되기는 어렵다”고 말하는데요. 비트코인과 달리 누가 만들었는지가 알려져 있다는 점(비탈릭 부테린이 창시자), 지분을 많이 들고 있는 사람이 더 유리한 중앙화된 채굴방식(지분증명)이라는 점이 걸림돌입니다. SEC가 비트코인은 ‘상품’으로 취급하지만(증권이 아님), 이더리움은 ‘증권’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긴 한 거죠.이 부장은 “이더리움 ETF가 나올 수 있느냐는 올해 리플과 SEC의 소송 결과에 달렸다”고도 덧붙입니다. 리플은 또 다른 가상화폐인데요. 이 소송에서 법원이 리플(XRP)에 대해 증권성 없다고 판결한다면 이더리움도 덩달아 면죄부를 받을 거란 뜻입니다. 이번에도 가상화폐 ETF의 운명은 미국 법원에 달려있습니다.20년 전 금 ETF디지털 금. 비트코인을 이렇게 일컫곤 하죠. 그래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금 ETF에 비교되곤 하는데요. 미국에 최초의 금 ETF ‘SPDR 골드셰어즈’가 상장된 게 20년 전인 2004년 11월입니다.그래서 금 ETF가 상장되자 금값이 치솟았을까요?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반대였습니다. 금 ETF 출시 전 몇 달 동안 20% 넘게 올랐던 금값이 ETF 상장과 동시에 떨어졌습니다. 이후 직전 가격을 회복하는 데 300일이나 걸렸는데요.중장기적으로 보면 다르다고요? 이후 만 19년 동안 금값은 5배 가까이로 급등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S&P500 역시 4배 상승했으니, 그리 엄청난 성적까진 아니고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라 하겠죠.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중장기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가상화폐 투자자 입장에선 살짝 실망스러울 수 있겠는데요.그래서 조수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물 ETF 승인이 다른 자산군보다 아웃퍼폼(초과 성과)하는 걸 담보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비트코인에 투자하든,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든 높은 변동성에 노출된다는 점은 변함없다”는 그의 당부도 귀담아들으셔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초기 비트코인 신봉자들이 어떤 이상향을 꿈꿨는지 기억하시나요. 2014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마크 안드레센 칼럼(‘비트코인이 중요한 이유’)엔 비트코인의 쓸모로 이런 게 나열됩니다. 저소득 이주 노동자의 국제 송금, 은행 계좌 없는 이들을 위한 결제 서비스, 초소액 결제(예컨대 동영상 재생당 결제), 시위대를 지지하기 위한 후원금 송금.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10년이 지나서 돌아보니, 참 순진하기 짝이 없군요. 과연 10년쯤 뒤엔 지금의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각종 전망을 어떤 식으로 돌아보게 될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10년의 싸움 끝에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돼 나왔습니다.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에서도 명실상부한 투자자산으로 인정받은 겁니다.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담기 시작하면서 판이 커질 전망입니다.-하지만 한국에선 당분간 이를 살 수 없습니다. 금융위가 일단 막았기 때문인데요. 아직 한국에서 비트코인 ETF를 출시할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미국에 시장을 내줄까봐서로 풀이됩니다.-현물 ETF 출시로 비트코인은 중앙화된 대형 금융사와 손을 잡았습니다. 탈중앙화, 분권화의 훼손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대중화와 주류 편입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합니다.-아마도 ETF 출시로 장기적으로 크게 타격을 받는 건 가상화폐 거래소일 겁니다. 다음 현물 ETF 후보 자산으로 꼽히는 이더리움은 최근 가격이 오르며 주목받았지만, ‘증권성’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전 세계 관심이 미국 공화당의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에 집중된 15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문을 닫았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날’을 맞아 휴장한 건데요. 이번 주 미국 증시는 4분기 실적 시즌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예정입니다. 이미 지난주 금요일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비교적 탄탄한 4분기 실적을 공개했죠. BOA의 알라스테어 보스위크 CFO는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소비자들은 여전히 충분한 화력을 갖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16일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가 실적을 발표할 예정입니다.투자자들은 17일 나올 미국의 12월 소매판매 데이터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미 연준의 금리 인하시기를 예상하는 가늠자가 될 수 있어서인데요. 만약 예상치(전월보다 0.4% 증가)보다 너무 좋게 나온다면, 연준이 3월에 금리 인하에 나설 거라는 시장 기대에 찬물을 끼얹게 될 수도 있습니다.한편 새해 들어 불을 뿜고 있는 증시는 인도와 일본이죠. 인도의 BSE센섹스30 지수는 15일에도 1.05% 올라 또다시 사상 최고치(7만3327.94)를 기록했습니다. 인도 대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가 이날 지수 상승을 이끌었는데요. 둔화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영향을 덜 받는 데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인도 증시의 상승 요인으로 꼽힙니다.일본 니케이225 지수는 15일 0.91% 상승해 6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장중 지수가 3만6000선을 살짝 넘기도 했는데요. 1990년 이후 3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 중이죠.이제 시장에선 과연 니케이지수가 1989년 12월의 사상 최고치(3만8195)를 넘어설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주가가 이미 많이 올랐는데도 긍정적인 전망이 나옵니다. BOA는 지금의 니케이 상승세가 지난해 4~6월 상승의 “데자뷰”라고 보는데요. 지난해 30년 만에 가장 높은 ‘춘투(노동조합의 4월 공동 임금인상 투쟁)’ 임금 인상 덕분에 주식 랠리가 시작됐듯이, 올해 춘투 협상에서도 급격한 임금인상이 예상되기 때문이라는군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