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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가 가득한 다리 위. 지독한 안개 탓에 연달아 자동차 추돌사고가 발생한다. 화마가 치솟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른다. 구조용 헬기마저 추락해 다리 양쪽이 끊긴다. 설상가상으로 전투용 개들이 사람들을 향해 달려든다. 아비규환이다. 통신이 끊긴 상태에서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이는 무전기를 손에 쥔 청와대 행정관 차정원(이선균) 뿐. 하지만 차정원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덮기 위해 급급하다. 군에서 전투용으로 훈련 시킨 개에 대해 미쳤을 뿐이라고 둘러댄다. 조금만 기다리면 구조될 수 있다고 토닥인다. 과연 사람들은 이 다리 위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12일 개봉하는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바다 위에 설치된 거대한 다리가 최악의 안개로 고립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영화다. 자동차가 연쇄 추돌하고, 구조용 헬기가 다리 위로 추락하는 장면은 실제 재난 상황을 보는 듯 실감 난다. 사고를 수습하려고 현장을 찾은 견인차 기사(주지훈)의 유머가 곳곳에서 긴장감을 풀어준다. 제작비 185억 원에 달하는 여름 텐트폴(거액의 제작비와 유명 배우를 동원해 흥행을 노리는 작품)로 손색이 없다. 영화는 배우 이선균이 지난해 12월 세상을 뜬 뒤 처음 공개되는 유작이다. 2022년 촬영돼 지난해 5월 제76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지만, 1년 2개월이 지나서야 국내에서 개봉된다. 영화를 연출한 김태곤 감독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선균이 형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도 연출하면서 놓친 부분이 있는데 형이 캐릭터 감정이나 동선에 대해 의견을 많이 줬다”고 술회했다. 이선균의 연기는 그의 과거 출연작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들을 향해 냉소를 풍기는 차정원의 모습은 영화 ‘기생충’(2019년)에서 자신의 운전기사를 무시하는 ‘박동익’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생존을 위해 죽기 살기로 달리는 모습은 영화 ‘끝까지 간다’(2014년)에서 그가 연기한 형사 ‘고건수’와 겹친다. 드라마 ‘파스타’(2010년), ‘나의 아저씨’(2018년)로 널리 알려진 이선균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가 관객을 사로잡는다. 다음 달 14일에는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행복의 나라’가 개봉한다. 이선균은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 역을 맡았다. 유작들의 연이은 개봉은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마지막 선물이 될 것 같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대통령을 죽인 게 아니다. 이 나라를 살린 거다.”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는 대통령 시해를 시도한 뒤 자신의 비서에게 이렇게 말한다. 뇌물과 비리가 판치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앞서 박동호는 한때 동고동락했던 대통령이 재벌 총수에게 뒷돈을 받은 사실을 알아챘다. 박동호가 이를 폭로하려고 하자, 대통령은 수사기관을 동원해 박동호를 겁박한다. 궁지에 몰린 박동호가 대통령 시해를 시도한 것. 의식불명 상태가 된 대통령을 대신해 박동호가 권한대행이 된다. 이에 재벌 편에 선 부총리 정수진(김희애)은 박동호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과연 박동호는 정치판을 개혁할 수 있을까. 지난달 28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돌풍’은 배우 설경구가 처음 출연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로 주목받았다. 부패한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공개 직후 한국 1위(TV 부문·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올랐다. 시청자 사이에선 “현실 정치 같아 소름 돋는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비판해 통쾌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건 정치인에 대한 현실적 표현 때문이다. 특히 박동호가 자신이 세운 부패 척결이란 대의를 완수하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시도하는 장면을 통해 선악의 이분법을 지웠다.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라 더 큰 거짓말”, “여기가 나의 현충원이다” 같은 박동호의 대사를 통해 정치인이 점점 몰락해 가는 이유를 섬세하게 그렸다. 드라마를 연출한 김용완 감독은 2일 기자들과 만나 “신념을 가진 인물이 괴물이 돼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존 인물들을 생각나게 하는 점도 논란이다. 특히, 마지막에 박동호가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장면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전대협에서 활동한 남편 대신 정치에 나서는 정수진을 보고 특정 여성 정치인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김 감독은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연상시키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저마다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겠다”고 했다. 배우 설경구는 “박동호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판타지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2012년), ‘황금의 제국’(2013년), ‘펀치’(2015년) 등 이른바 ‘권력 3부작’을 쓴 박경수 작가의 필력도 두드러진다. “두려움은 그들(부패 정치인)의 몫이다”(박동호),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정수진) 등 맛깔나는 대사가 돋보인다.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배우 김희애는 “‘돌풍’에는 허투루 흘려보낼 수 있는 대사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다소 과장되고 극적인 연출은 ‘옥에 티’다. 한국 정치를 소재로 삼아 해외에선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근육병의 일종인 ‘선천성 근위축증’을 지닌 채 태어났다. 근력이 점점 사라져 7세부터 걷지 못했다. 14세부턴 “코끼리처럼 긴 코”(호흡기)를 사용해야 했다. 근육이 점점 수축하면서 몸에 부착하는 기계 장치가 하나둘 늘어났다. 삶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다. 장애인을 힘들게 하는 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육체적 불편함도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연기 수업을 듣고 싶었으나 신체 활동이 제한적이라며 거절당했다. 입학하고 싶었던 대학 기숙사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지 않아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다른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유쾌하게 소리친다. “자자 여러분, 주목! 나는 휠체어를 사용하지만 누가 도와주면 몇 발자국은 걸을 수 있어요. 여러분이 본 건 기적이 아니에요.” 이 책은 중국계 미국인이자 장애인 인권 활동가가 쓴 회고록이다. 저자의 나이는 50세. 어렸을 때 주치의는 18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의학 발달로 수명이 연장됐다. 신간은 엉뚱한 상상으로 시작한다. 현재를 과거라고 상정하고, 미래의 시점에서 책을 썼다고 능청을 떠는 것이다. 미래에서 바라보면 현재의 장애인 인식 수준이 낮다는 점을 풍자한 것. “저는 단지 여러분 모두와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기 위해, 그저 그 최소한을 위해 이 모든 전투를 치러야 했답니다.” 저자는 살면서 여러 차별과 마주하지만 유쾌함으로 이를 극복해 나간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에 “엄마 아빠, 낙태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소리친다. 자신이 죽은 뒤 실릴 부고 기사를 싣기도 했는데 진중함 속에 발랄함이 가득하다. ‘신탁 예언자이자 이야기꾼이고 사이보그이며 ‘트러블 메이커’(말썽꾸러기)이고 활동가이며 올빼미형 인간인 앨리스 웡이 숨졌다. 향년 96세.’ 친한 친구와의 통통 튀는 대화, 장애인이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 레시피, 커피를 마시는 일의 즐거움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장애인 회고록이 사회에 대한 비판을 쏟아낼 거라는 편견을 부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한 인간이 삶에 대한 열망을 가득 쏟아내 읽는 내내 기분이 좋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야구 관람 중에 앞에 있는 한국분이 젓가락으로 도시락을 드시더라고요. 젓가락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울버린의 ‘클로’(칼날이 여러 개 달린 무기) 같았습니다. 하하.” 호주 출신 배우 휴 잭맨(56)은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기자간담회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한 소감을 묻자 자신이 맡은 역인 ‘울버린’답게 농담을 던진 것. 한국에서 ‘남자 중의 남자’란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은 잭맨이 한국을 방문한 건 이번이 6번째다. 라이언 레이놀즈(47)는 잭맨과 함께 한복을 선물로 받고 몸에 걸친 뒤 “데드풀 슈트를 입으면 초능력이 생기는 것만 같은데 한복을 입으니 비슷한 느낌이 든다”며 해맑게 웃었다. 24일 개봉하는 신작은 데드풀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전편인 ‘데드풀’(2016년)과 ‘데드풀 2’(2018년)는 국내에서 각각 332만 명과 37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번 작품은 히어로에서 은퇴해 중고차 딜러로 살아가던 데드풀이 어려움에 처하자, 정반대 성격의 울버린을 찾아가 힘을 합치는 내용의 ‘버디 무비’다. 시종일관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데드풀과 과묵하고 진중한 성격의 울버린이 만나는 ‘상반된 케미’에 제작 초반 우려도 있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데드풀 역의 레이놀즈는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6년이 순탄하진 않았다”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와 엑스맨의 세계관을 합치는 방식에 대해 마블과 장시간 토론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내 확신을 밀고 나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간담회에 동석한 숀 레비 감독은 “액션, 유머, 감동을 선사하는 여름에 딱 맞는 블록버스터”라며 “갈등으로 시작해 연대로 발전해 가는 우정 이야기를 우리 세 사람이 힘을 합쳐 그려냈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신작이 디즈니 MCU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배우 박서준 등이 출연한 영화 ‘더 마블스’가 지난해 11월 개봉했지만 국내 관객 수가 69만 명에 그치는 등 MCU 작품들이 최근 연달아 흥행에 참패하고 있기 때문. 데드풀과 엑스맨이 만나 반전의 흐름을 만들 수 있을까. 레이놀즈는 “마블 영화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안다”며 “우리가 추구해온 것은 전 세계 관객에게 즐거움과 용기를 선사하는 일”이라고 에둘러 답했다. 그는 영화에서 데드풀 연기뿐만 아니라 프로듀서와 작가로도 참여했다. 이와 관련해 극 중 ‘내가 마블의 예수님이야(I am Marvel Jesus)’라는 데드풀의 대사에 대해 그는 “아내인 블레이크 라이블리도 이 대사가 (마블의 위기를 의식해) 일부러 쓴 거냐고 묻더라”라며 “마블의 리셋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건 알지만 이 대사는 데드풀의 망상이란 차원에서 레비와 함께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작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건 흥행에 부담 요소다. 데드풀 시리즈는 성적 수위가 높은 농담을 내뱉고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전투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신작은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한 뒤 내놓은 첫 데드풀 시리즈로, 어린이 관객이 많은 디즈니의 색깔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레비는 “디즈니는 처음부터 신작이 기존의 디즈니 작품들과 다를 거라는 걸 이해했다. 영화에 흐르는 피는 ‘데드풀’의 유전자(DNA)”라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두 배우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이 세 번째 방한인 레이놀즈는 “평생 야구 경기를 관람한 게 두 번인데 그중 한 번이 어제 본 경기다. 딸의 가장 친한 친구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데드풀과 울버린이 용감한 전사인 만큼 한국 최전방에 배치했으면 좋겠다”고 농을 던졌다. 어찌 됐든 ‘데드풀과 울버린’이 올여름 극장가에서 살아남는 게 먼저일 것 같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야구 관람 중에 앞에 있는 한국 분이 젓가락으로 도시락을 드시더라고요. 젓가락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울버린의 ‘클로’(칼날이 여러 개 달린 무기) 같았습니다. 하하.”호주 출신 배우 휴 잭맨(56)은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기자간담회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한 소감을 묻자 자신이 맡은 역인 ‘울버린’답게 농담을 던진 것이다. 한국에서 ‘남자 중의 남자’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은 잭맨이 한국을 방문한 건 이번이 6번째다.‘데드풀’ 역을 맡아 3번째 방한한 캐나다 출신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47)도 “평생 야구경기를 관람한 게 두 번인데 그 중 한 번이 어제 본 경기다. 딸의 가장 친한 친구가 한국인”이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레이놀즈는 잭맨과 함께 한복을 선물로 받고 몸에 걸친 뒤 “데드풀 수트를 입으면 초능력이 생기는 것만 같은데 한복을 입으니 비슷한 느낌이 든다”며 해맑게 웃었다.이날 간담회에는 잭맨, 레이놀즈, 숀 레비 감독이 참석했다. 세 사람은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간담회에서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수시로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레이놀즈는 “데드풀과 울버린이 용감한 전사인 만큼 한국 최전방에 배치했으면 좋겠다”고 장난스레 말했다. 잭맨은 “2009년 서울시 홍보대사를 맡은 적이 있다. 여전히 홍보대사로 느껴질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24일 개봉하는 신작은 데드풀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전편인 ‘데드풀’(2016년)과 ‘데드풀 2’(2018년)는 국내에서 각각 332만 명과 37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레이놀즈는 “데드풀 시리즈가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걸 보면서 감격했다”고 했다.신작은 히어로 생활에서 은퇴한 후 평범한 중고차 딜러로 살아가던 데드풀이 울버린을 찾아가며 펼쳐지는 우정 서사다. 시종일관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데드풀과 과묵하고 진중한 성격의 울버린이 만났다는 점에서 ‘상반된 케미’가 주목받고 있다. 레비는 “액션, 유머, 감동을 선사하는 여름에 딱 맞는 블록버스터”라며 “갈등으로 시작해 연대로 발전해가는 우정 이야기를 우리 세 사람이 힘을 합쳐 그려냈다”고 설명했다.영화계는 신작이 디즈니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배우 박서준이 출연한 영화 ‘더 마블스’가 지난해 11월 개봉했지만 국내 관객 수가 69만 명에 그치는 등 MCU 작품들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묻자 레이놀즈는 “마블 영화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안다”며 “우리가 추구해온 것은 전 세계 관객에게 즐거움과 용기를 선사하는 일”이라고 에둘러 답했다.신작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건 흥행에 부담 요소다. 데드풀 시리즈가 성적 수위가 높은 농담을 내뱉고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전투 장면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신작은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한 뒤 내놓은 첫 데드풀 시리즈로, 어린이 관객이 많은 디즈니의 색깔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레비는 “디즈니는 처음부터 신작이 기존의 디즈니 작품들과 다를 거라는 걸 이해했다. 영화에 흐르는 피는 ‘데드풀’의 유전자(DNA)”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평범한 독서대 안에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부유층의 책장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책장엔 서책이 가득 꽂혀 있다. 고급 도자기와 문방구, 화분에 놓인 꽃도 진열돼 있다. 왠지 이 독서대를 사용해 책을 읽으면 옛 선비들처럼 독서에 빠져들 수 있을 것만 같다. 독서대 안에 그려진 그림은 ‘책가도’. 조선 화가 장한종(張漢宗·1764∼1815)의 작품이다.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경기도박물관과 협업해 올 4월 내놓은 ‘굿즈’(기념품)로 다른 서점에선 판매하지 않는다. 최근 서점들이 다양한 업체와 협업해 차별화된 굿즈를 내놓고 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은 스누피로 유명한 만화 ‘피너츠’ 캐릭터가 그려진 캠핑 가방을 3일 선보였다. 교보문고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유명한 캐릭터 ‘놀자곰’이 새겨진 텀블러와 공책을 다음 달 22일까지 판매한다. 예스24는 20, 30대 여성들이 주로 찾는 브랜드와 협업한 굿즈를 지난해부터 연달아 내놓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인기를 끌었다. 예스24가 한 해 평균 제작하는 굿즈는 96종, 65만 개에 달한다. 서점들이 굿즈에 투자하는 건 독자의 객단가(고객 한 명당 평균 구매액)를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예스24에 따르면 굿즈를 구매한 독자의 객단가는 굿즈를 사지 않는 독자보다 약 2배 높다. 굿즈를 사려면 최소 구매 금액을 충족해야 하는데 보통 3만 원대다. 책을 1권만 사려던 독자들의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것. 출판계 불황 속 살아남기 위한 서점들의 ‘굿즈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평범한 독서대 안에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부유층의 책장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책장엔 서책이 가득 꽂혀 있다. 고급 도자기와 문방구, 화분에 놓인 꽃도 진열돼 있다. 왠지 이 독서대를 사용해 책을 읽으면 옛 선비들처럼 독서에 빠져들 수 있을 것만 같다. 독서대 안에 그려진 그림은 ‘책가도’. 조선 화가 장한종(張漢宗·1764~1815)의 작품이다.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경기도박물관과 협업해 올 4월 내놓은 ‘굿즈’(기념품)로 다른 서점에선 판매하지 않는다. 최근 서점들이 다양한 업체와 협업해 차별화된 굿즈를 내놓고 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은 스누피로 유명한 만화 ‘피너츠’ 캐릭터가 그려진 캠핑 가방을 3일 선보였다. 교보문고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유명한 캐릭터 ‘놀자곰’이 새겨진 텀블러와 공책을 다음 달 22일까지 판매한다. 예스24는 20, 30대 여성들이 주로 찾는 브랜드와 협업한 굿즈를 지난해부터 연달아 내놓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인기를 끌었다. 예스24가 한 해 평균 제작하는 굿즈는 96종, 65만 개에 달한다. 서점들이 굿즈에 투자하는 건 독자의 객단가(고객 한 명당 평균 구매액)를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예스24에 따르면 굿즈를 구매한 독자의 객단가는 굿즈를 사지 않는 독자보다 약 2배 높다. 굿즈를 사려면 최소 구매 금액을 충족해야 하는데 보통 3만 원대다. 책을 1권만 사려던 독자들의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것. 출판계 불황 속 살아남기 위한 서점들의 ‘굿즈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2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보고 직전 김 위원장 사의를 수용하고 면직안을 재가했다.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후 13개월간 7명째 방통위 수장 교체다. 민주당 주도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방통위원장이 사퇴하는 것은 지난해 12월 이동관 전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다. 7개월 만에 방통위가 정족수(2인 이상)를 채우지 못하는 비정상적 1인 체제가 된 것. 방통위는 이상인 부위원장이 직무대행을 맡는다. 민주당이 김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다음 날 김 위원장 주도로 방통위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등 공영방송 3사의 임원 선임 계획을 의결로 맞대응한 가운데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탄핵소추-사퇴’의 악순환으로 반복되는 형국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거대 야당의 탄핵소추라는 작금의 사태로 인해 국민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통신 미디어 정책이 장기간 멈춰 서는 우려스러운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과 이 부위원장의 ‘2인 체제 운영’이 직권남용이라는 점을 내세운 야당의 김 위원장 탄핵소추가 야당 주도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위원장 직무가 중단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임 위원장으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방송 정책에 대한 이해가 있고, 현재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여러 대안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이 사퇴하자 다른 6개 야당과 함께 ‘방송 장악 관련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방송 장악 쿠데타를 기도한 김 위원장이 탄핵을 피하려 꼼수 사퇴했다”며 “방송 장악 쿠데타에 대해 반드시 죄를 묻겠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무리한, 근거 없는 탄핵 발의안에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방통위 파행 부른 ‘방문진 이사’ 갈등… “친여로 교체” “친야 사수”여권 “野, MBC 사장 사수 무리수”정부, 내달 방문진 이사 교체 계획野 “김홍일 꼼수사퇴 의도 드러나방송장악 국정조사 추진할 것”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하면서 방통위는 지난해 5월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이래 잦은 수장 교체로 비정상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8, 9월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라는 정부 여당의 로드맵도 새 국면을 맞을 수 있다. 방통위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휩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여야는 비정상의 원인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탄핵 남발로 국정 공백이 계속된다”고 주장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주요 현안이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의결돼 위법이 누적되고 있다”며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이다. 여권 관계자는 “본질은 MBC 사장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서로 입맛에 맞게 각각 친여 성향으로 교체하거나 친야 성향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셈법”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각자에게 유리한 방송 환경을 조성하려고 팽팽히 맞선다는 의미다.● 방문진 이사 “친여로 교체” vs “친야 유지” 방통위의 가장 큰 현안은 다음 달과 9월로 예정된 MBC 대주주인 방문진과 KBS, EBS 이사진 구성이다. 야당이 김 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를 발의한 이튿날인 지난달 28일, 당시 김 위원장은 방문진, KBS, EBS 이사 선임 계획을 의결했다. 여권은 “야당이 식물 방통위를 만들어 MBC 이사진 구성 변경 시기를 늦추기 위해 김 위원장 탄핵 소추를 발의했다”고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2일 퇴임사에서 “야당의 탄핵 소추 시도는 헌법재판소의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구하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저에 대한 직무 정지를 통하여 방통위 운영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 사퇴는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계획을 예정대로 이끌어 가는 데 걸림돌을 없애려는 의도”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현행 방문진 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그 시기에 맞춰 인적 구성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 통화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사장을 새로 임명하는 것은 방송 장악이 아니라 정당한 순리”라며 “(MBC가) 민주당을 대변한다고 생각해 기존 방문진 이사 임기를 이어가려는 것이야말로 방송 장악이자 더 큰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野 MBC 사수 지나쳐” vs “방송 장악 국조” 다음 달 12일 임기가 만료되는 방문진 이사진은 의결된 계획안에 따라 14일간 공모해 국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쳐 임명된다. ‘과반 찬성’으로 의결이 이뤄지는 방통위 규정상 이상인 부위원장 혼자 안건을 의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후임 위원장을 즉각 임명해 의사정족수(2인 이상)를 채운 뒤 다음 달 내로 방문진 이사 교체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주당의 MBC 사수는 도가 지나쳤다”며 “2인 체제가 문제라면 왜 서둘러 다른 방통위원을 추천하지 않느냐”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의 사퇴를 두고 “기습 사퇴”라며 “방문진 이사를 친여 성향으로 꾸리려는 의도”라고 판단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선 20여 일 걸리는 국회 청문 절차 등을 거치면 7월 말쯤엔 새 방통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방통위가 강행한 계획안에 따라 방문진 이사를 ‘정부 입맛’에 맞는 인선으로 꾸리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은 후임 위원장만 추가된 2인 방통위나 이 부위원장의 ‘1인 방통위’에서 주요 안건을 의결하는 행위 자체가 위법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김 위원장의 사퇴로 탄핵 추진이 무산되자 이를 대신해 야 6당과 함께 ‘방송 장악 관련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최민석 대변인은 2일 “‘런동관’(이동관 전 방통위원장), ‘런종섭’(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이은 ‘런홍일’”이라며 “국민이 심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탄핵 소추안이 송달된 대상자는 사퇴할 수 없도록 하는 ‘김홍일 방지법’(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안규영 기자 kyu0@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면직안을 재가한 2일 “국정 공백이 없도록 후임 인선 절차를 잘 진행해 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실은 김 위원장 사퇴 후 야당의 대응 등을 살핀 후 이르면 이번 주 신임 방통위원장 후보자를 지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 대통령은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사진) 등 복수 인사를 후임 방통위원장 후보군에 올려 놓고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전 사장에 대해 “여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거론될 때 인사 검증 등을 받은 바 있다”며 “현재로선 가장 앞서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명에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다”며 “현재로선 누구도 확답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1961년생인 이 전 사장은 경북 성주 출신으로 1986년 MBC에 입사해 MBC 국제부장, 보도본부장 등을 거쳤다. 황교안 대표 체제 때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영입 인재로 정계에 입문했다. 지난해 8월 여당 몫이었던 김효재 전 방통위 상임위원 퇴임 후 국민의힘은 이 전 사장을 후임으로 추천했으나, 야당이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부하면서 임명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이 전 사장이 과거 이명박 정부 당시 정수장학회 측과 MBC 민영화 논의를 한 당사자라는 점 등을 문제 삼는 분위기다. 방통위원장 임명 뒤 또다시 방통위가 ‘2인체제’로 운영될 경우 또 다른 탄핵도 불사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소속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은 “이 전 사장 임명 후 방통위가 또다시 2인 체제로 운영된다면 이 역시 탄핵 사유”라며 “제2, 제3의 이동관과 김홍일이 등장한다면 여지없이 탄핵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후임 방통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등 절차를 거쳐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새 위원장 취임 후 다음 달 12일 임기가 만료되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선임안을 의결하면 새 이사진이 MBC 사장 교체를 검토하는 수순이다.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지친다. 학교가 싫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 티빙, 왓챠가 지난달 29일부터 동시 공개한 드라마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조폭고)의 한 장면. 중년 남성 조폭 김득팔(이서진)은 왕따 고등학생 송이헌(윤찬영)이 쓴 일기를 우연히 읽다 이런 대목을 발견한다. 일기에서 이헌은 학교 폭력을 당하는 삶을 토로하며 “다 그만두고 싶다. 죽고 싶다”고 쓴다. 득팔은 불의의 사고로 이헌의 몸에 ‘빙의’된 상황.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태블릿PC에 저장된 이헌의 일기를 찾는다. 이헌을 이해하기 위해 일기를 읽던 중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 이유를 알게 된다. 드라마와 달리 웹소설 플랫폼 리디북스 등에 2021∼2022년 연재된 동명의 원작 웹소설에선 같은 장면에 ‘동성애 코드’가 가득하다. 이헌이 괴롭힘을 당한 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들켰기 때문이라는 설정이다. 원작에서 이헌은 일기에 “화장실에 들어가니까 안에 있던 애들이 나왔다. 게이 새끼랑 같이 화장실을 쓰기 싫다고 한다. 처음 보는 애들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게이인 걸 알고 있다”고 토로한다. 원작 제목엔 남성 간 연애물을 뜻하는 ‘BL’(Boys Love) 표시가 들어 있고, 성인 인증을 거쳐야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원작에서 이헌은 동성 친구 최세경(봉재현)을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한다. “고개만 돌리면 반대쪽 창가 자리에 앉은 세경이가 작게 보인다. 턱을 괴고 웃는 세경”이라며 몰래 짝사랑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이헌이 세경을 사랑하는 건 ‘동경’ 때문이다. 왜소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완벽한 외모와 성격으로 ‘킹카’로 사는 세경이 부럽기 때문이다. 이헌의 몸에 빙의한 득팔은 세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환장하게 생겼고, 키도 큼직해 허우대는 멀쩡했다. 저런 학생이 아들이라면 부모님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아시아 OTT 플랫폼 VIU의 태국, 인도네시아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드라마는 이헌과 세경의 관계를 ‘우정’으로 규정하고, 조폭이 왕따 고교생의 몸에 빙의한다는 설정에 집중한다. 재벌의 혼외자로 숨죽이며 살아가는 이헌과, 검사 아빠 아래에서 힘든 삶을 사는 세경이 친구로서 서로를 위로하며 나아가는 이야기로 바꾼 것. 마치 ‘브로맨스’를 그리는 홍콩 누아르 영화처럼 느껴진다. 극 중에서 이헌은 일기에 “세경이도 같은 반이라서 좋다. 세경이랑 친구가 되고 싶다” 정도로 언급한다. 이처럼 각색된 건 대중적 가치관에 민감한 드라마 특성상 동성애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기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어서다. ‘조폭고’ 제작진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BL 장르는 제작비 투자나 회수에 한계가 있다”며 “작품을 ‘브로맨스’로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만, 드라마는 조폭을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폭인 득팔이 오랫동안 모범 시민으로 살아오기를 꿈꿨으나 가난 때문에 삶의 궤적이 바뀌었다거나, 수능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조폭 코미디 영화 ‘두사부일체’(2001년), ‘달마야 놀자’(2001년)를 생각나게 한다. 상대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을 더 많이 담고 있는 웹소설을 대중이 소비하는 드라마로 만들 때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지친다. 학교가 싫다. 왜 나를 괴롭히는 걸까.”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티빙·왓챠가 지난달 29일부터 공동 공개하는 드라마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조폭고)의 한 장면. 중년 남성 조폭 김득팔(이서진)은 왕따 고등학생 송이헌(윤찬영)이 쓴 일기를 우연히 읽다 이런 대목을 발견한다. 득팔은 불의의 사고로 이헌의 몸에 ‘빙의’된 상황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태블릿PC에 저장된 이헌의 일기를 찾았다. 이헌을 이해하기 위해 읽기를 읽던 중 이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 이유를 찾은 것이다. 일기에서 이헌은 학교폭력을 당하는 삶을 토로하며 “다 그만두고 싶다. 죽고 싶다. 죽어 없어지고 싶다”고 썼다. 이헌이 육교에서 뛰어내린 건 소심한 성격과 왜소한 체격 때문에 아이들에게 괴롭힘 받았다는 점을 의미한다.반면 리디북스 등에 2021~2022년 연재된 동명의 원작 웹소설에선 이 장면에 ‘동성애 코드’가 가득하다. 사실 이헌이 괴롭힘당하는 건 자신이 동성애자인 사실을 친구들에게 들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웹소설에서 이헌은 “화장실에 들어가니까 안에 있던 애들이 나왔다. 게이 새끼랑 같이 화장실을 쓰기 싫다고 한다”고 토로한다. “처음 보는 애들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게이인 걸 알고 있다”는 대목에서 이헌이 괴롭힘당한 이유가 동성애자라는 점을 찾을 수 있다.●“고개만 돌리면 세경이가”…‘동성애’ 가득한 원작이처럼 웹소설은 대놓고 동성애 작품이다. 웹소설 제목엔 남성 간 연애물인 ‘BL’(Boys Love)임이 명시돼 있다. 독자가 읽으려면 19세 성인 인증을 해야 한다. 교복을 입은 두 남자 고등학생이 기대고 있는 표지도 동성애 작품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대목이다.원작에선 일기에서도 이헌은 동성 친구인 최세경(봉재현)을 좋아하는 마음을 짙게 고백한다. “고개만 돌리면 반대쪽 창가 자리에 앉은 세경이가 작게 보인다. 턱을 괴고 웃는 세경이가”라며 몰래 세경을 짝사랑하는 상황을 그려낸다.“세경이가 사탕을 줬다. 추파춥스 딸기 맛. 기억하고 싶어서 일기를 쓴다. …(중략)… 세경이. 최세경. 불러보고 싶다. 세경아.”● 사랑의 이유는 ‘동경’사실 ‘조폭고’에서 이헌이 세경을 사랑하는 이유는 ‘동경’ 때문이다. 왜소하고 친구들과 어룰리지 못하는 자신과 다르게 완벽한 외모와 성격으로 ‘킹카’처럼 사는 세경이 부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헌의 몸에 빙의한 득팔은 세경을 이렇게 묘사한다.“기생오라비 같지만 야시시하니 여자들이 환장하게 생겼고, 키도 큼직해 허우대는 멀쩡했다. 저런 학생이 아들이라면 부모님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중략)… 그 짧은 사이에 눈웃음을 몇 번이나 친 건지. 어쩐지 야살스러운 눈웃음이 잔상으로 남을 것 같다.”세경과 달리 이헌의 삶은 비참하다. 이헌이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떠들던 웃음을 뚝 끊었다. 친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앉아” 있고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게 삶이다. 여자애들한테 친한 척을 하면 표정이 썩어가기 일쑤다. 더군다나 이헌의 삶을 채우는 건 학교폭력. 학폭에 시달리는 삶을 이헌은 “안 보이는 곳만 때린다. 명치랑 허벅지가 얼룩덜룩하다.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다”고 묘사한다.● 시장성 고려해 드라마는 ‘브로맨스’로반면 아시아 OTT 플랫폼 VIU에서 태국·인도네시아 1위를 달리고 있는 드라마는 BL 장르가 아닌 조폭이 왕따를 당하는 고등학생의 몸에 빙의한다는 설정에 치중했다. 예를 들어 일기에서 이헌이 “세경이도 같은 반이라서 좋다. 세경이랑 친구가 되고 싶다” 정도로 짧게 언급한 것이다.실제로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도 드라마는 세경과의 관계를 ‘우정’으로만 선 긋는다. 재벌의 혼외자로 숨죽이며 살아간는 이헌과 검사 아빠 아래에서 힘들게 삶을 버텨나가는 세경이 서로를 위로하며 청춘을 버텨나가는 과정을 친구 사이로만 한정한 것. 마치 남자들의 우정인 ‘브로맨스’를 그리는 홍콩 누아르 영화처럼 느껴진다.사실 웹소설, 웹툰 시장에서 동성애 작품은 인기 있는 장르다. 특히 여성 독자들이 BL 작품을 많이 소비한다. 팬들이 아이돌을 소재로 가상소설을 쓰는 ‘팬픽’에서 시작된 흐름이 다양한 BL 작품으로 나오고 있다.하지만 드라마라는 대중성이 높은 장르에서 동성애 코드는 시장성이 부족하다. ‘조폭고’ 제작진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BL 장르는 제작비 투자나 회수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이 작품은 브로맨스로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드라마를 연출한 이성택 감독은 2022년 BL 드라마 ‘수업중입니다’도 연출한 바 있지만 각색을 새롭게 한 셈이다.● 90도 인사, 결투 장면…조폭 미화 비판도다만 드라마는 조폭을 미화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조폭인 득팔이 오랫동안 모범 시민으로 살아오기 꿈꿨으나 가난 때문에 삶의 궤적이 바뀌었다거나 수능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조폭 코미디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드라마 속에서 득팔이 선생님을 존경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점도 2000년대 초반을 흔든 영화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처럼 조폭 코미디의 전형을 떠올리게 한다. 콘텐츠 표현의 자유가 높은 웹소설을 드라마화할 때 주의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예를 들어 득팔이 빙의한 이헌은 첫 등굣길에 명찰을 다는 것을 깜빡하지만 선생님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고 소리친다. 선생님은 이런 이헌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용서해준다. 또 이헌이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을 결투로 싸우는 장면도 조폭 간 결투를 생각나게 한다. 조폭 영화가 마구잡이로 양산됐다는 비판을 받았던 때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조폭 드라마가 유행한다는 점은 어쩐지 씁쓸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방송통신위원회가 28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KBS, EBS의 이사 선임 계획을 의결했다.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김홍일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두고 여권이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교체 지연 목적”이라며 반발하는 가운데 방통위가 이사진 선임 절차 강행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다음 주 탄핵안 본회의 처리에 앞서 김 위원장의 자진 사퇴 카드가 여권에서 검토되면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둘러싸고 여야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방통위는 이날 김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고 공영방송 3사 이사진 선임 계획을 의결했다. MBC는 이 부위원장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지만, 방통위는 신청 자체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각하했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서 “현행법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추천 및 선임 절차를 진행하는 게 법 집행 기관인 방통위의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MBC 대주주인 방문진은 8월 12일, KBS는 8월 31일, EBS는 9월 14일에 각각 이사 임기가 끝나는 만큼 이사진 선임 절차를 예정대로 이어갈 뜻을 드러낸 것이다. 민주당 소속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들은 이날 정부과천청사 방통위를 항의 방문하고, 김 위원장과 이 부위원장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전날 야당 의원 187명 명의로 발의한 김 위원장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을 다음 달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보고한 뒤 3, 4일경 표결 처리할 방침이다. 탄핵안 가결로 인한 김 위원장의 직무 정지 사태를 피하기 위해 여권에서는 김 위원장의 자진사퇴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선임 계획을 의결하기 위해 28일 개최한 전체회의는 금주 주간일정에 빠져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27일 김홍일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 예정에 없던 전체회의를 서둘러 소집한 것이다. 보통 방통위는 매주 수요일에 전체회의를 연다. 다음 주로 예상되는 국회 탄핵안 의결 전에 KBS 등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절차에 착수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민주당이 예고한 대로 다음 달 3일 혹은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 표결이 이뤄진다면 현 방통위 체제하에서 공영방송 이사를 당장 선임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표결 직후 김 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면 현재 ‘2인 체제’인 방통위가 이상인 부위원장만 남는 ‘1인 체제’가 되기 때문이다. ‘과반 찬성’으로 의결이 이뤄지는 방통위 규정상 이 부위원장 혼자 안건을 의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존 이사들의 임기가 한 달 넘게 남은 점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기는 8월 12일, KBS는 8월 31일, EBS는 9월 14일로 그 후에야 이사 선임이 가능하다. 이사 선임을 위한 추후 절차를 감안해도 국회 표결 전 이사 선임은 어렵다. 방통위는 이날 이사 선임 계획만 의결했을 뿐 앞으로 후보자 결격 사유 확인, 후보자 선정, 이사 선임 및 추천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날 방통위 의결에 따라 방문진 이사 9인과 감사 1인, KBS 이사 11인 공모는 이날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이뤄진다. EBS 이사 9인은 다음 달 12일부터 25일까지 공모가 진행된다. KBS 이사는 방통위가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방문진 이사·감사와 EBS 이사는 방통위가 바로 임명할 수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잔잔한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햇빛은 따사로웠고, 바람은 선선했다. 그런데 갑자기 폭발음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로켓이 창공을 가른 뒤 남은 연기만이 보였다. 훈련이라 생각했다. 가자지구에선 이런 일은 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폭발음은 갈수록 심해졌다. 깨달았다. 일회성 포격이 아니었다. 급히 해안으로 헤엄쳤다. 비명이 사방에서 들렸다. 차를 탄 뒤 미친 사람처럼 차를 몰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전쟁이 시작된 건지, 험악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어떤 사람들은 하마스의 짓이라고 했다. 다른 이들은 별일 아니라 했다. 지난해 10월 7일. 저자가 겪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첫날이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문화부 장관이자 소설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겪은 경험을 담은 에세이다. 저자는 가자지구 북부에서 이스라엘군의 첫 폭격을 맞았던 지난해 10월 7일부터 이집트로 탈출한 같은 해 12월 30일까지 85일을 일기로 썼다. 전쟁의 참혹함을 담은 이 일기는 미국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에 실려 주목받았다. 이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책 초반부 저자는 담담하게 전쟁을 묘사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전쟁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전쟁 첫날 바다에서 같이 헤엄치던 아들을 어디에 두고 왔냐는 질문에 저자는 “상어한테 던져 주고 왔다”고 농담한다. 전쟁 넷째 날 저자는 자신이 머물던 호텔이 공습받은 뒤 태연하게 이렇게 쓴다. “뉴스를 읽지 않는다. 우리 삶 전체가 뉴스 아닌가.” 호들갑 떨지 않는 건 생사가 운이기 때문이다. 전쟁 서른 번째 날, 저자는 거리에서 오랜 친구가 길을 건너는 모습을 봤다. 잠깐 수다 좀 떨자고 불렀다. 친구는 화장실에 먼저 다녀오겠다 했다. 잠시 후 우레 같은 소리가 울렸다. 사방에서 고성이 들렸다. 미사일이 떨어진 것이다. 길 하나를 두고 친구는 죽고, 저자는 살았다. 이 외에도 저자의 처제는 미사일 공습으로 숨졌다. 조카딸은 두 다리와 한 손을 잃었다.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저자는 가자지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북부에서 출발해 남부의 이집트 국경까지 향하는 길에 절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은 손발에 자기 이름이나 가족 전화번호를 새기고 있었다. 죽더라도 자기 시신이 확인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시체가 가득한 피란길을 걷다 저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디가 공격당할까? 이번에는 누가 살해당할까? 누가 살아남을까? 사는 걸 견딜 수 없는 일로 만드는 질문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저자는 열다섯 살 아들과 이집트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저자의 가족과 이웃은 여전히 가자지구에 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비명이 들렸다. 잔해가 보였다. 나는 여전히 그곳(가자지구)에 서 있었다.” 솔직히 책을 읽는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비극을 재미난 읽을거리로 소비하는 듯한 마음이 들어서다. 또 누군가가 읽기엔 ‘살해’, ‘집단학살’ 같은 저자의 단어 선택이 과하다는 반발심이 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당시 평범한 유대인의 마음을 생각하듯 ‘집단학살 일기’를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잠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복잡한 사안에서 누군가의 편을 들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먼저니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방송통신위원회가 28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KBS, EBS의 이사 선임 계획을 의결했다.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김홍일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두고 여권이 “MBC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교체 지연 목적”이라고 반발하는 가운데 방통위가 이사진 선임 절차 강행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다음주 탄핵안 본회의 처리에 앞서 김 위원장의 자진 사퇴 카드가 여권에서 검토되면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둘러싸고 여야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방통위는 이날 김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고 공영방송 3사 이사진 선임 계획을 의결했다. MBC는 이 부위원장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지만, 방통위는 신청 자체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각하했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서 “현행법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추천 및 선임 절차를 진행하는 게 법 집행기관인 방통위의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MBC 대주주인 방문진은 8월 12일, KBS는 8월 31일, EBS는 9월 14일에 각각 이사 임기가 끝나는 만큼 이사진 선임 절차를 예정대로 이어갈 뜻을 드러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들은 이날 정부과천청사 방통위를 항의 방문하고, 김 위원장과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전날 야당 의원 187명 명의로 발의한 김 위원장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을 다음 달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보고한 뒤 3, 4일경 표결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탄핵안 가결로 김 위원장의 직무 정지 사태를 피하기 위해 여권에서는 김 위원장의 자진사퇴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김 위원장 사퇴가 검토될 수 있다. 거대 야당이 방통위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호주의 한 미술관이 스페인 출신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작품들을 여자 화장실에 전시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연유는 무얼까. 26일(현지 시간) 호주 ABC방송 등에 따르면 2020년 개관한 호주 태즈메이니아주 호바트 모나(MONA) 미술관은 여성 전용 전시관인 ‘레이디스 라운지’를 만들고 피카소 작품을 전시했다. 이에 지난해 4월 박물관을 찾은 한 남성 관람객은 자신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출입이 거절됐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올 4월 여성 전용 전시관은 차별금지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성별을 이유로 남성 입장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미술관은 레이디스 라운지를 폐쇄했다. 또 녹색 벨벳 장갑을 낀 여성이 중지를 내미는 사진과 함께 ‘개혁을 위한 폐쇄’라고 적힌 표지판도 내걸었다. 법원의 결정에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낸 것. 그러면서 “여성만을 위한 새로운 전시회가 열린다”며 여자 화장실 벽에 걸린 피카소 작품을 공개했다. 차별금지법과 관계없이 여성만 입장할 수 있는 여자 화장실에 피카소 작품을 전시하기로 한 것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조선인 여성 ‘나’는 평소 일본인을 동경한다. 일본인처럼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일본인 같다”는 말을 들으면 더없이 행복해한다. 일본 남성과 결혼까지 한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남편은 서툴게 일본인 흉내를 내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구박하고 멸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오빠가 일본군에게 붙잡힌다. 독립운동을 하다 끌려온 것이다. 슬퍼하는 나를 향해 남편은 차갑게 “(조선인은) 못된 근성이 없어질 날이 없다”고 비난한다. 분노한 나는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만주에서 선생이 돼 조선인 아이들을 교육하기로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되뇐다. “나는 알았나이다. 총과 칼이 세력 있는 시대에는 어디를 물론하고 강한 자가 문명인이요, 약한 자가 야만인인 것을.” 192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소설 ‘그릇된 동경’이다. 당선자의 필명은 김덕혜.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 당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문학단체인 카프(KAPF)를 이끌던 소설가 한설야(1900∼1976)가 필명으로 응모한 것이다. 최근 연구서 ‘근대 신춘문예 당선 단편소설: 동아일보 편’(사진)을 펴낸 손동호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교수(44)는 25일 “동아일보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엔 일본의 허위를 고발해 민족정신을 고취한 작품이 눈에 띄게 많았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을 자임했습니다. 그래서 신춘문예에서 일제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도 거침없이 뽑았죠. 당시 독자들에게 동아일보가 인기를 끈 이유죠.” 손 교수는 “당선작은 주로 당대 팍팍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1929년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인 박남조의 ‘젊은 개척자’는 가난 때문에 일본인 밑에서 일하는 조선인 남성 태신의 고민을 그렸다. 일본인 주인은 태신을 아껴 양자로 삼으려 한다. 일본인 여성도 태신에게 연정을 표한다. 하지만 태신은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고 떠난다. 손 교수는 또 “노동자 계급을 내세워 하층민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작품도 눈에 띈다”고 평가했다. 한 예로 1935년 단편소설 부문 선외(選外·입선에 들지 못함) 가작인 김정혁의 ‘이민열차’는 일본인에 의해 만주에 있는 회사 직공으로 팔려가는 조선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별의 정을 나누는 여성을 기다리는 일본인의 자동차가 “빵 하고 호령”하고, 여성들이 떠나간 조선을 “찬 바람만 휙휙 몰려가고 몰려온다”고 묘사한 점이 눈길을 끈다. 다음 계획을 묻자 손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신동아 등 신문 자매지의 독자 참여제도를 분석하는 등 잡지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더 폭넓게 언론이 문학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연구할 겁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전 연인의 사생활 내용을 동의 없이 사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소설가 정지돈(41)의 중편소설 ‘야간 경비원의 일기’(현대문학·2019년)의 판매가 중단됐다. 25일 출판계에 따르면 ‘야간 경비원의 일기’는 온라인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등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품절’로 전환돼 구매 불가 상태가 됐다. 정 소설가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입장문에서 “제 부족함 때문에 (전 연인의) 고통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출판사에 ‘야간 경비원의 일기’ 판매 중단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정 작가는 함께 논란이 된 장편소설 ‘브레이브 뉴 휴먼’(은행나무)에 대해선 “출판사와의 협의하에 가능한 조치를 모두 취하겠다”고 했다. 앞서 23일 책 유튜버 ‘김사슴’으로 활동 중인 김현지 씨(35)는 자신의 블로그에 정 작가가 두 편의 소설에서 자신의 사생활 얘기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 등장하는 한 여성의 일화가 정 작가와 2017∼2019년 교제한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또 ‘브레이브 뉴 휴먼’에 등장하는 ‘권정현지’라는 인물도 자신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주장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비평은 철학이기 전에 과학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시인 김기림(1908∼?)은 1935년 한 일간지에 쓴 평론 ‘현대 비평의 딜레마’에서 문학비평의 성격을 이렇게 정의했다. 문학작품을 분석 평가하는 일은 주관적 감상에 따르기보다는 다른 학문처럼 과학적 방법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76)가 최근 출간한 학술서 ‘한국현대문학비평사’(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김 시인의 비평을 ‘과학으로서의 시학’으로 정의한 이유다. 권 명예교수는 1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 시인은 당대엔 드물게 비평의 과학적 방법에 관심을 기울였다”며 “김 시인은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한국문학사에서 비평 논리와 방법의 새로운 전환을 가능하게 한 평론가”라고 강조했다. 김기림은 시인 정지용(1902∼1950), 이상(1910∼1937)과 문학동인 ‘구인회’를 만들고, 허무주의와 감상주의를 반대하며 명랑한 시를 강조한 ‘오전의 시론’을 내놓았다. 일본에 유학해 영국 문학평론가 아이버 리처즈(1893∼1979)의 이론을 공부하면서 과학적 비평에 몰두했다. 권 명예교수는 “주관적 감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김 시인의 노력은 요즘 젊은 문학평론가들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라고 했다. 1971년 문학 평론가로 등단한 그는 미국 하버드대, 일본 도쿄대 초빙교수로 일하며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서 ‘한국문학 전도사’로 불린다. 지난해 7월부터 중국 산둥대에서 외국인 석좌교수로 일하며 ‘국제 동아시아연구원’(가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1000쪽에 달하는 신간에서 권 명예교수는 한국문학 비평의 성립과 역사적 전개 양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한국계급문학운동연구’(2014년), ‘이상 연구’(2019년), ‘한국현대문학사 개정판’(2020년·전 2권)에 이어 네 번째 학술 대작을 완성한 것. 그는 “2014∼202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겸임교수로 한국문학을 강의하며 원고를 썼다”며 “신간 초고가 200자 원고지 1만 장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신간은 비평사를 문학의 개념과 비평 방법의 확립에 초점을 맞춰 구성했다.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문학단체인 카프(KAPF) 등 문단의 쟁점을 중심으로 서술한 기존 비평사와 다른 점이다. 이 때문에 6부에 걸쳐 현대문학 비평의 전개 양상을 건조하게 기술했다. 그는 요즘 문학비평이 일반 독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를 묻자 “객관적 비평이 사라지고 주관적 독단에 빠져든 비평이 난립했기 때문”이라며 “논리도 체계도 없이 정치성에 치우친 자기주장에만 매달린다면 비평은 한낱 개인적 의견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간이 한국 현대문학 비평의 출발을 한글에 대한 관심이 치솟던 19세기 후반으로 삼은 점도 주목된다. 1896년 창간한 ‘독립신문’이 한글 전용을 채택한 사실에 집중하면서 주시경 선생(1876∼1914)의 ‘국문론’까지 현대문학 비평의 성립 단계로 정의했다. 그는 “1970, 80년대 민족·민중문학까지 정리했으니 거의 한 세기를 다룬 셈”이라고 했다. 방대한 분량의 이번 연구서 출간을 마친 소감을 묻자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한국문학 비평의 논리와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겠다는 건 1970년대 서울대 국문학과 대학원에 다닐 때부터 꿈꿔 왔던 일이에요. 이제 평생 일궈온 공부의 막바지에 다다른 듯합니다. 이 책이 제 마지막 학술 연구서가 될 것 같네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30년대 시문학파 김현구 시인(1904∼1950)의 시정신과 문학성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제5회 현구문학상 작품 공모가 7월 한 달간 진행된다. 이전까지 전남 강진에 연고를 둔 작가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것과 달리 올해부터 전국 규모로 대상을 넓혔다. 시상금도 5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대폭 상향됐다. 2021∼2023년 발간한 창작집을 대상으로 하며 등단 10년 이상 작가의 작품이어야 한다. 접수 기간은 7월 1일부터 31일까지이며 신청서와 함께 우편 접수 또는 현장 접수가 가능하다. 신청서는 강진군청 홈페이지 또는 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수상작 발표는 9월 6일. 문의 시문학파기념관.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