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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통 안에서 다양한 색의 친구들과 어울려 사는 색연필들. 검정이는 친구들을 잘 보살피고, 노랑이는 밝고 명랑하다. 초록이는 믿음직하고, 파랑이는 속상한 친구를 잘 안아준다. 갈색이는 친구들과 달리 자신은 특별한 장점이 없는 것 같아 고민이다. 갈색이는 친구들에게 “내 장점은 뭘까?”라고 묻는다. 검정이는 답한다. “갈색이 넌 그냥 갈색이면 돼. 아주 특별한 색이거든. 우리가 모두 섞이면 갈색이 되잖아. 모든 색깔을 합친 게 너야. 우리 각자의 좋은 점이 네 안에 다 있어.” 갈색이는 자신 안에 여러 색을 잘 골라 쓰기만 해도 가장 멋진 갈색이 될 거라는 검정의 조언을 따랐다. 갈색이는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 친구들을 배려했다. 그러자 갈색이 주변엔 더욱 좋은 친구들이 생겨났다. 갈색이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과정은 관계 맺기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친구들의 표정이 실감나게 그려져 각각의 감정이 곧바로 전해진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한국 그림책의 수준이 짧은 기간에 놀라울 정도로 성장한 만큼, 작가의 저작권 보호 등 출판 환경 역시 제대로 정립돼야 해요. 출판물뿐 아니라 2차 저작물 개발과 사업이 함께 커지고 있지만, 작가의 권리 보호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니까요.”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스웨덴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2020년)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가 전화 통화에서 한 말이다. 통화는 지난달 7일 국내 작가 4명이 아동문학계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수상자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도 백 작가는 혹여나 자신이 후배들에게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건 아닌지 늘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백 작가는 신인 시절인 2003년 그림책 ‘구름빵’을 출간했다. 출판사 한솔교육과 2차 콘텐츠까지 모든 저작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850만 원에 ‘매절(買切)계약’을 했다. 이후 지원금을 포함한 백 작가의 총수입은 고작 1850만 원에 그쳤다. 반면 출판사는 구름빵이 40여만 부 팔리며 2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구름빵은 해외 수출 및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2차 콘텐츠로 제작됐지만 이 과정에서 백 작가는 배제됐다. 결국 백 작가는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했지만 2020년 재판에서 패소했다. 지난달 12일에는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캐릭터 업체와의 저작권 분쟁 도중 세상을 등진 사실이 알려졌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대변인 김성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에 따르면 이 작가는 2007년 캐릭터 업체 형설앤과 사업권 설정 계약을 체결했다. 김 변호사는 “계약에 따르면 형설앤 측은 검정고무신 저작물 관련 사업화를 포괄적 무제한 무기한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15년간 검정고무신 이름으로 77개가량의 사업이 이뤄졌지만 작가의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통지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대책위 측 주장이다. 이 작가가 같은 기간 받은 금액은 1200만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신인 창작자에게 저작권을 영구 양도받는 식의 출판계 계약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국 정부는 ‘제2의 검정고무신’을 막겠다고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5개 분야 표준계약서 82종을 전면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저작권법에 불공정계약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표준계약서 재점검 역시 문제를 바로잡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산업은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해주는 풍토에서 꽃필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세계에서 K콘텐츠가 급부상하고 있지만, 국내 저작권 보호 시스템이 국제적인 수준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소설 ‘해리포터’로 인세와 영화 및 관련 상품 로열티를 통해 1조 원 이상을 벌어들인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은 무명시절 저작권 대행업체를 통해 저작권을 인정받고 출판사도 구했다. 롤링이 영국 작가가 아닌 한국 작가였다면 어땠을까. 제2의 백희나, 이우영이 되지 않았으리란 법이 없다. 창작자가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문화강국도 공허한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국내 여행 숙박비 3만원 지원… ‘내수 살리기’ 팔 걷은 정부올해 국내 여행을 떠나는 100만 명은 숙박비 3만 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중소·중견기업 근로자 19만 명은 국내 여행비 10만 원을 지원받는다. KTX 및 관광열차 운임은 최대 50%까지 내린다. 29일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내수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입국 절차 간소화도 추진된다. 여행 수요를 늘려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는 취지다.》정부가 국내 여행객 100만 명에게 3만 원의 숙박 할인을 제공하고, 일본 등 22개국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제(K-ETA)를 내년 말까지 면제한다.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의 ‘내수 활성화 대책’을 29일 내놓았다. 최근 고물가, 고금리로 위축된 민간 소비를 살리기 위한 조치다. 재난지원금처럼 현금을 뿌려 물가 상승을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국외 여행 수요를 국내로 돌려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위기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생 안정”이라며 “내수 활성화를 통한 새로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6월부터 국내 숙박 상품에서 3만 원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 100만 장을 발행한다. 테마파크 등 놀이공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쿠폰(1만 원) 18만 장도 지급한다. 이들 할인쿠폰은 숙박 예매 사이트나 놀이공원 홈페이지 등에서 선착순으로 내려받으면 된다. 정부는 여행비 할인쿠폰 발행에 최대 400억 원을 투입한다. 중소·중견기업이 10만 원, 종사 근로자가 20만 원을 여행자금으로 각각 적립하면 정부가 10만 원을 추가 지원하는 ‘근로자 휴가 지원사업’도 기존 9만 명에서 19만 명으로 확대한다. 여기에는 정부 재정 200억 원이 들어간다. 국토교통부는 5월 중 임산부와 동반자의 KTX 운임을 50% 할인한다. 4인 동반석에 다자녀로 등록한 가족이 철도를 이용하면 어른 운임 할인 폭을 기존 30%에서 50%로 확대한다. SRT도 봄(4월 1∼17일)·가을(10월) 기간 중 운임을 최대 30% 할인한다.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을 위해선 일본, 대만 등 22개국을 대상으로 K-ETA를 내년까지 한시 면제한다. K-ETA는 무비자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개인정보를 사전 등록하는 시스템이다. K-ETA는 항공기 탑승 72시간 전까지 신청해야 하고 수수료 1만 원을 내야 하는 등의 제약이 있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걸림돌로 지목돼 왔다. 5월부터는 무비자 환승 관광도 가능해진다.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3종 환승 무비자 제도를 복원해 유럽, 미국 등 34개국 입국 비자 소지자가 환승 시 지역 제한 없이 최대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대규모 면세점 할인행사도 연다. 5월 한 달간 열리는 ‘Korea Duty-Free Festa 2023’에 전국 면세점이 참여해 온·오프라인 할인(최대 20%) 행사를 벌인다. 50여 개 한류행사 및 국제회의를 연중 실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와 함께 올 9월까지 중국·동남아·일본 노선 등 국제항공 노선을 2019년 대비 약 80∼90% 수준으로 회복시킨다. 특히 지역 국제공항(김해·대구·무안·양양·청주)에 외국인 방한객을 늘리기 위해 신규 취항 항공기, 관광 전세기에 공항시설 사용료(편당 최대 800만 원) 면제 및 운항지원금(노선당 최대 3000만 원) 혜택을 준다. 일각에서는 이번 내수 활성화 대책의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재정 지출로 혜택을 받는 대상과 규모가 크지 않아 아주 큰 내수 진작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지출 분야가 여행, 관광에 국한된 점도 한계로 보인다”고 말했다.세종=조응형기자 yesbro@donga.com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정부가 국내 여행객 100만 명에게 3만 원의 숙박 할인을 제공하고, 일본 등 22개국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제(K-ETA)를 내년 말까지 면제한다.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의 ‘내수 활성화 대책’을 29일 내놓았다. 최근 고물가, 고금리로 위축된 민간소비를 살리기 위한 조치다. 재난지원금처럼 현금을 뿌려 물가 상승을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국외 여행 수요를 국내로 돌려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위기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생안정”이라며 “내수 활성화를 통한 새로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올 6월부터 국내 숙박 상품에서 3만 원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 100만 장을 발행한다. 테마파크 등 놀이공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쿠폰(1만 원) 18만 장도 지급한다. 이들 할인쿠폰은 숙박예매 사이트나 놀이공원 홈페이지 등에서 선착순으로 내려받으면 된다. 정부는 여행비 할인쿠폰 발행에 최대 400억 원을 투입한다. 중소·중견기업이 10만 원, 종사 근로자가 20만 원을 여행자금으로 각각 적립하면 정부가 10만 원을 추가 지원하는 ‘근로자 휴가 지원사업’도 기존 9만 명에서 19만 명으로 확대한다. 여기에는 정부 재정 200억 원이 들어간다. 국토교통부는 5월 중 임산부와 동반자의 KTX 운임을 50% 할인한다. 4인 동반석에 다자녀로 등록한 가족이 철도를 이용하면 어른 운임 할인폭을 기존 30%에서 50%로 확대한다. SRT도 봄(4월 1일~17일)·가을(10월) 기간 중 운임을 최대 30% 할인한다. 외국인 관광객 유입을 위해선 일본, 대만 등 22개국을 대상으로 K-ETA를 내년까지 한시 면제한다. K-ETA는 무비자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개인정보를 사전 등록하는 시스템이다. K-ETA는 항공기 탑승 72시간 전까지 신청해야 하고 수수료 1만 원을 내야 하는 등의 제약이 있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걸림돌로 지목돼 왔다. 5월부터는 무비자 환승 관광도 가능해진다.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3종 환승 무비자 제도를 복원해 유럽, 미국 등 34개국 입국 비자 소지자가 환승 시 지역 제한 없이 최대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대규모 면세점 할인행사도 연다. 5월 한 달간 열리는 ‘Korea Duty-Free Festa 2023’에 전국 면세점이 참여해 온·오프라인 할인(최대 20%) 행사를 벌인다. 50여 개 한류행사 및 국제회의를 연중 실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와 함께 올 9월까지 한-중·동남아·일본 노선 등 국제항공 노선을 2019년 대비 약 80~90% 수준으로 회복한다. 특히 지역 국제공항(김해·대구·무안·양양·청주)에 외국인 방한객을 늘리기 위해 신규 취항 항공기, 관광 전세기에 공항시설 사용료(편당 최대 800만 원) 면제 및 운항지원금(노선당 최대 3000만 원) 혜택을 준다. 일각에서는 이번 내수 활성화 대책의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재정지출로 혜택을 받는 대상과 규모가 크지 않아 아주 큰 내수 진작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지출 분야가 여행, 관광에 국한된 점도 한계로 보인다”고 말했다.세종=조응형기자 yesbro@donga.com최동수기자 firefly@donga.com김정은기자 kimje@donga.com}
어느 날, 한 소년의 발에 파란색 얼룩이 묻었다.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던 이삿날 한 방울, 아빠의 꾸중에서 한 방울, 식탁에 앉아 엉엉 울고 있는 엄마의 눈물에서 한 방울, 전학 온 낯선 학교에서 또 한 방울…. 그렇게 더해진 파란색 얼룩은 어느새 소년의 몸을 다 덮을 정도로 번졌다. 소년은 자꾸 화가 나고 눈물이 나고 슬프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해진다. 등굣길, 길에서 만난 같은 반 여자아이는 온통 노란색이다. 밝고, 친절한 아이다. 여자아이는 소년의 손을 잡고 “같이 놀자”고 말한다. 그 순간, 파란색을 띤 소년의 손과 노란색의 여자아이 손은 초록색으로 변한다. 두 아이는 다양한 색을 지닌 다른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소년의 몸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으로 물든다. 작가는 자신의 일기 속 “물감이 번져 가듯 조그맣던 우울함이 머리끝까지 번졌다”는 문장을 곱씹으며 작품을 떠올렸다고 한다. 여러 감정을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해 공감을 자아낸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일본 청소년의 한국 수학여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지 3년 만에 재개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일본 구마모토현 루테루학원 고등학교 소속 학생 37명이 21일부터 25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전북 전주와 서울 일대를 여행한다”고 20일 밝혔다. 일본 고교생들은 자매학교인 전주신흥고를 방문해 수업을 참관한 뒤 한복을 입고 전주한옥마을을 둘러볼 예정이다. 서울에선 종로구 경복궁, 용산구 남산서울타워, 송파구 롯데월드 등을 방문한다. 일본 청소년의 한국 수학여행은 1972년 처음 시작된 뒤 계속 이어져 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전면 중단됐다. 이번에 방문하는 루테루학원 고교생들은 팬데믹 후 3년 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청소년 수학여행단이다. 한편 문체부는 일본 여행업계와 협의해 일본 청소년에게 관심이 높은 주제에 맞춰 수학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교육 여행 콘텐츠 확대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이번 여름방학 기간에 일본 중고교 교직원 100여 명을 한국에 초청해 시범 투어를 열 예정”이라며 “양국 간 수학여행 교류를 늘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숲에는 조그맣고 보송보송한 털을 자랑하는 동물들이 살고 있다. 속상한 일이 생겨 울거나 힘들고 지쳐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들에게 동물들은 슬며시 따뜻한 마음을 담아 위로의 말을 건넨다. 실수해서 당황하는 친구에게 화를 내기보단 “실수하면 좀 어때? 너는 잘하고 있어. 조금씩 자라고 있단다”라고 얘기한다. “모두에게 꼭 맞는 신발도 너에게 맞지 않으면 소용없어. 네 생각이 가장 중요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어색한 느낌이 든다면 억지로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된단다.” 우는 토끼에게 흰넓적다리붉은쥐가 건넨 말이다. 동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가끔 실수도 하고 속상해하며 성장하는 것이라고 위안을 건넨다. 포근한 베이지색 바탕에 그려진 동물들은 따뜻한 눈빛을 머금고 있다. 글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온기와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각 페이지 밑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명칭이 표기돼 있어 다양한 동물을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할머니, 나이가 들면 어때요?” 어린 손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나이 듦’이 궁금하다. 아이의 질문에 할머니는 “어릴 때랑 똑같지. 그냥 조금만 달라”라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할머니가 말하는 조금 다른 점은 뭘까. 할머니는 어릴 땐 아직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이제 더는 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화가 난다고 설명한다. 또 어릴 때는 시간이 너무 늦게 흘러 참아야 할 때가 많지만, 나이가 들면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 더는 참을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나이가 들어도 어릴 때와 같은 점은 뭘까. 할머니는 많이 웃는다든가, 가끔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있다든가,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일이 가끔 일어나는 게 같다고 말한다. 어린 손자와 할머니의 문답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지혜와 따뜻함이 묻어나는 할머니의 답변은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맑고 세련된 그림은 이야기와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캐스팅의 반가운 전화도, 가슴 설레던 첫 촬영의 기억도 모두 물거품이 되려 한다.”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과 함께 넷플릭스 드라마 ‘종말의 바보’에 출연한 배우 김영웅이 지난달 24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지난해 8월 촬영을 마친 ‘종말의 바보’는 올해 공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연배우 유아인의 마약 스캔들로 공개 시점은 오리무중이다. 지난달 경찰이 진행한 유아인의 소변 및 모발 검사에선 프로포폴, 대마, 코카인, 케타민 등 총 네 종류의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김영웅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작품에 출연한 조연 배우들은 잇달아 SNS 등을 통해 절규했다. 유아인은 다작하는 주연급 배우로 유명하다. 올해 공개 예정인 그의 차기작은 총 3개. 그중 2개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신작 영화와 드라마로, 다음 달 글로벌 공개 예정이던 넷플릭스 영화 ‘승부’와 올 하반기 글로벌 공개를 계획한 넷플릭스 드라마 ‘종말의 바보’다. 특히 한국 바둑의 두 전설인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의 승부를 그린 영화 ‘승부’는 제작비만 무려 200억 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다. 출연 기회가 적은 조연 배우들에겐 이들 작품은 기회였고, 희망이었다. ‘승부’에 조연으로 출연한 배우 현봉식은 SNS에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고 고백했고, 함께 출연한 배우 문정희 등이 해당 글에 공감의 댓글을 남겼다. 유아인이 출연한 또 다른 신작 영화는 ‘하이파이브’. 영화 ‘과속스캔들’ ‘써니’를 만든 강형철 감독의 작품으로 올 6월 개봉할 예정이었다. 유아인의 마약 스캔들로 출연작들의 공개가 무산될 경우 유아인은 넷플릭스 등에 고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해당 동료 및 스태프의 경우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마땅치 않다. 유아인을 비롯한 주연급 배우들은 작품 회차당 서민의 월급, 때에 따라 연봉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다. 그들의 출연료에 대해선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그들의 연기로 다듬어진 작품의 완성도, 부가가치 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출연료에는 인기와 실력뿐 아니라 영향력을 지닌 공인(公人)으로서의 가치 역시 매겨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마약을 비롯해 음주운전, 성폭행 혐의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자숙하는 연예인들을 숱하게 봐왔다. 대다수는 어느 순간 슬그머니 복귀해 아무 일 없는 듯 활동했다. 반면, 작품 하나에 생계가 걸렸던 조연 배우나 스태프의 고통과 날아가버린 기회는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배우 유아인이라는 캐릭터는 관객이 만들어 낸 것이기에 좀 더 귀하게 보살펴 좋은 순간을 만들어 가고 싶다.” 지난해 8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아인이 한 말이다. 그가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전혀 모르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팬과 동료를 기만했다.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시대다. K스타들의 책임감과 윤리성도 그에 맞게 높아지길 바란다.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국내 그림책 작가 4명의 작품이 아동문학계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BIB상’과 함께 세계 3대 그림책 상으로 꼽힌다. BIB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서 수여하는 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6일 “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 이지연 작가의 ‘이사가’ 등 그림책 4편이 선정됐다”며 “국제 무대에서 한국 그림책의 저력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은 픽션 부문에서 이지연 작가의 ‘이사가’(엔씨소프트), 오페라 프리마 부문에서 미아 작가의 ‘벤치, 슬픔에 관하여’(스튜디오 움), 만화(중등·만 9∼12세) 부문에서 김규아 작가의 ‘그림자 극장’(책읽는곰), 5unday(글)·윤희대(그림) 작가의 ‘House of Dracula’(5unday)다. 지난해에는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비룡소)와 최덕규 작가의 ‘커다란 손’(윤에디션)이 각각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과 논픽션 부문 우수상(스페셜 멘션)을 수상했다. 한국 작가들은 2004년 첫 입상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라가치상을 수상해왔다. 1966년 제정된 볼로냐 라가치상은 이탈리아에서 매년 3월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도서전인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출품된 책 중 예술성과 창의성이 우수한 책에 수여한다. 올해 볼로냐 아동도서전은 6일(현지 시간)부터 9일까지 열리며, 시상식은 6일과 7일 진행된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벤치, 슬픔에 관하여’를 쓴 미아 작가를 비롯해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한국 작가들이 대부분 신인 작가”라며 “볼로냐 라가치상이 수상 부문을 다양화하면서 실험적인 작품들이 부각되는 분위기 속에 한국 신인 작가들이 선방한 것이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스웨덴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는 “한국 그림책의 수준이 짧은 기간 내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며 “최근 몇 년간 각종 국제도서전에서 한국관을 주목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관심도 높아졌다”고 말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훈이는 단짝친구 소희와 함께 등교하기 위해 소희네집에 들렀다. 그런데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은 채 떠 있는 소희를 발견한다. 훈이는 고민 끝에 소희 아빠의 운동화 바닥에 흙이 담긴 비닐봉지를 깔고 소희에게 신긴다. 소희의 발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운동화 끈도 꽉 조인다. 다행히 소희의 몸은 더 이상 뜨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날 소희의 몸은 더 가벼워져 등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떠올랐다. 훈이는 노끈의 한쪽 끝을 소희의 허리에 묶고 다른 쪽 끝을 자신의 손목에 감는다. 소희는 풍선처럼 떠오른다. 그렇게 둘은 학교에 간다. 그날 밤, 소희가 훈이 방 창문 너머로 찾아온다. 소희는 훈이에게 인사한 뒤 밤하늘로 날아가 별처럼 반짝이더니 이내 사라지는데…. 표제작은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이다. 신간은 표제작을 포함해 총 7개 동화를 엮었다. 매일 입, 코, 눈이 하나씩 사라지는 두리에게 형의 도움으로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는 ‘형’, 다양한 감정에 휘말린 어린이들이 동물의 모습으로 변하는 ‘낭비금지’ 등에 담긴 풍부한 상상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정부가 올해 수출 목표를 6850억 달러(약 893조 원)로 설정했다. 연간 기준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 수출액(6836억 달러)보다 0.2% 늘려 잡은 수치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말 경제정책 방향에서 발표한 올해 수출 전망치(―4.5%)보다 4.7%포인트 끌어올린 목표를 잡고 수출 총력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범정부 수출 확대 전략’을 담은 산업통상자원부의 보고를 받고 “전문가들이 글로벌 경기 둔화와 반도체 가격 하락 등을 이유로 4.5%의 수출 감소를 전망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모든 외교의 중심을 경제와 수출에 놓고 최전선에서 뛰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전기차 등 주력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원전, 방위산업, 녹색산업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 여러 국가 핵심 수출 품목에 대한 세제 지원들이 국회에서 진영과 정략적인 이유로 반대에 부딪쳐서 나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며 “저는 여기에 더 드라이브를 걸고, 국민들을 상대로도 직접 설득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는 K콘텐츠 수출액을 2021년 124억 달러(약 16조1200억 원)에서 2027년 250억 달러(약 32조5000억 원)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K콘텐츠 수출 전략’을 공개했다. 전 세계적 주목을 받는 웹툰이나 K드라마 등을 발판으로 한국형 플랫폼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연관 산업이 함께 성장하도록 촉진해 4대 콘텐츠 강국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K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수출 규모가 늘어나고 전·후방 연관 효과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지금은 ‘아이폰’도 디자인이 승부를 내는 시대다. 세계 최고의 디자인 아티스트와 기업들이 커갈 수 있도록 국가가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에 참석한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 박성웅 씨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신세계’의 대사를 인용해 “오늘은 발표하기 딱 좋은 날”이라며 드라마 해외 진출 관련 발표를 했다. 윤 대통령은 “폭력배 연기를 잘해서 인상 깊었는데, 오늘 보니 말씀을 잘하더라”라고 말했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정부가 올해 수출 목표를 6850억 달러(약 893조 원)로 설정했다. 연간 기준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 수출액(6836억 달러)보다 0.2% 늘려 잡은 수치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말 경제정책 방향에서 발표한 올해 수출 전망치(―4.5%)보다 4.7%포인트나 끌어 올린 목표를 세우고, 수출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범정부 수출 확대 전략’을 담은 산업통상자원부의 보고를 받고 “전문가들이 글로벌 경기 둔화와 반도체 가격 하락 등을 이유로 4.5%의 수출 감소를 전망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모든 외교의 중심을 경제와 수출에 놓고 최전선에서 뛰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전기차 등 주력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원전, 방위산업, 녹색산업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고금리 복합 위기를 돌파하는 일은 오로지 수출과 스타트업의 활성화”라며 “정부는 원전·방산·해외 건설·농수산 식품·콘텐츠·바이오 등 12개 분야에 대한 수출 수주 확대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는 K-콘텐츠 수출액을 2021년 124억 달러(약 16조 1200억 원)에서 2027년 250억 달러(약 32조 5000억 원)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K-콘텐츠 수출 전략’을 공개했다. 전 세계적 주목을 받는 웹툰이나 K-드라마 등을 발판으로 한국형 플랫폼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연관 산업이 함께 성장하도록 촉진해 4대 콘텐츠 강국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K-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수출 규모가 늘어나고 전·후방 연관 효과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아이폰도 디자인이 승부를 내는 시대다. 세계 최고의 디자인 아티스트와 기업들이 커갈 수 있도록 국가가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에 참석한 씨제스엔터테인먼트 박성웅 배우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신세계’의 대사를 인용해 “오늘은 발표하기 딱 좋은 날”이라며 “정부가 콘텐츠 업계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팀의 멤버인 피아노 연주자와 이전에 팀원이었던 드럼 연주자에게는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가 있어요. 둘 다 어릴 때 경제적으로 어려워 수술을 제때 받지 못했죠. 이들을 통해 결심했어요. 음악을 통해 가치 있는 일을 하기로요.” 가야금 해금 첼로 피아노 드럼 연주자 5명으로 구성된 사회적 기업 ‘허지혜컴퍼니’의 대표 허지혜 씨(43)는 3년 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의 ‘ARKO크라우드펀딩 매칭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예술위의 후원사업 ‘예술나무운동’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허지혜컴퍼니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해 모금을 진행했고, 3년간 총 1만1292명의 후원으로 800만 원이 모였다. 예술위가 매칭으로 지원한 150만 원을 더해 총 950만 원이 마련됐다. 허 대표는 “이 기금으로 청각장애 아동 3명에게 보청기를 지원했다”며 “아이들이 ‘새 보청기를 끼니 소리가 잘 들려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예술위는 문화예술 후원 활성화를 위해 2012년부터 예술나무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을 ‘우리가 키워야 할 나무’로 형상화해 예술위 홈페이지에서 ‘예술나무 1그루’당 3000원씩 후원할 수 있다. 개인, 단체, 기업 후원 등을 합쳐 10년간 총 2237억 원이 모였다. 2017년부터는 카카오 등 플랫폼의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기부금 후원을 받고 있다. 최근까지 19만 명이 참여해 총 6억 원가량을 모금했다. 예술위는 이렇게 조성한 후원금으로 예술 유망주를 육성하고 예술 분야의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회화, 사진, 시각디자인, 영상, 일러스트, 전시기획자 등으로 구성된 예술인 축구동호회 CFC도 재능기부로 신진 예술인을 지원했다. 2021년 CFC 회원 30여 명이 나이키 에어포스1 운동화에 개성 있는 디자인을 담아 서울 마포구 무신사 테라스 홍대에서 한 달간 전시했다. 해당 운동화를 판매한 수익금 230만 원 전액을 예술나무운동에 전달했다. CFC 멤버인 문현철 갤러리 CDA 대표는 “취업하지 않고 작품 활동만 하는 미술 전공자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며 “저 역시 그런 경험을 했기에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술나무운동을 통해 예술위는 2017년부터 예술 영재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바이올린, 피아노, 발레 등 5개 분야 영재 12명에게 후원금을 전달했다. 이들 중 박재홍 씨(24)는 2021년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를 거머쥐었고 4개 부문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순수예술 분야에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워 예술가들이 정부나 단체의 지원 없이 활동하기 쉽지 않다”며 “예술인 후원 제도를 범국민적으로 전개해 예술가들이 마음껏 활동하고 국민은 예술을 더 많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햇볕이 내리쬐는 기분 좋은 오후. 갑자기 하늘에 수상한 무언가가 나타난다. 검은 구름 한 조각이 나타난 것. “저기 좀 봐!” 누군가 검은 구름을 가리킨다. “이런, 비가 오려나 보네.” 사람들은 하나둘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검은 구름은 당황스럽다.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왜 다들 나를 싫어하지?” 검은 구름은 사람들을 피해 꼭꼭 숨는다. 바람이 불자 이리저리 떠밀려 모습이 드러난다. 새들은 검은 구름을 보자 놀라며 날아가 버린다. 시간이 흘러 검은 구름은 거대한 먹구름이 됐다. 더는 숨을 곳도 없다. 결국 검은 구름은 참았던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사람들은 비를 피해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만, 어린아이들은 노란 우비를 입고 거리로 뛰쳐나와 고인 빗물에 발을 담그며 신나게 논다. 그 모습에 위로받은 검은 구름은 울음을 그쳤고, 무지개가 떠오르며 다시 기분 좋은 일상이 이어진다.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이나 평가 때문에 위축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밝은 수채화는 산뜻함을 선사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2019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된 뮤지컬 ‘아이다’. 조세르 역의 한 배우에게 잊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첫 장면을 소화하고 두 번째 등장까지 시간 차가 꽤 있던 배우는 대기실로 이동하던 중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소리쳤지만 무대에 올라가야 할 시간을 고작 몇 분 앞두고 스태프에게 발견됐다. 엘리베이터 복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결국 제작사는 ‘커버’(출연 배우가 긴급한 상황으로 무대에 서지 못할 때 대신 서주는 배우)를 투입해 사고를 막았다. 최근 공연계에서 기계 결함으로 인한 ‘공연 지연’ ‘캐스팅 당일 변경’이 발생해도 관객에게 제대로 배상하지 않는 사례가 이어진다는 본보 기사가 나간 뒤 복수의 공연 관계자들은 ‘아이다’ 사례를 언급하며 “4년 전엔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니 커버 배우를 준비해 활용한 미담이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뮤지컬 ‘베토벤’의 경우 ‘카스파 반 베토벤’ 역의 배우 김진욱이 개인 사정으로 공연장에 늦게 도착해 공연은 20분 지연됐다. 관객들의 항의 및 환불 요구가 이어지자 제작사와 배우 소속사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제작사에 따르면 그를 대신할 커버 배우는 있었다. 하지만 제작사는 ‘커버’ 대신 ‘20분 공연 지연’을 선택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공연은 ‘30분 이상 지연 시 보상’하게 돼 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관객들이 신인인 커버 배우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제작사 입장에선 웬만하면 커버 투입을 꺼리게 된다”고 전했다.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지난달 17일 러빗 부인 역의 배우 전미도가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에 불참하면서 공연 당일 다른 배우가 무대에 올랐다. 제작사 측은 관객들에게 예매 환불·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줬지만 일부 관객은 전액 환불을 요구하며 항의했다. 외국은 어떨까. 미국 브로드웨이에 뮤지컬을 보러 가게 되면 객석에 앉자마자 누군가 무료 공연 잡지 ‘플레이빌’을 나눠준다. 이 안에 가끔 “오늘 ○○ 배역은 △△가 맡는다”라고 적힌 하얀 종이가 끼여 있는 날이 있다. 일종의 캐스팅 변경 고지서다. 커버가 무대에 오른다는 의미다. 브로드웨이에선 이렇게 당일 공연장에 가서야 관객이 그날 배우 캐스팅 변경 사실을 안다. 그래도 관객들은 별 군말 없이 본다. 이렇다 보니 외국에선 캐스팅 변경을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는 관객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국내는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주요 출연자가 바뀔 경우 제작사 자율적으로 티켓가의 110%를 돌려주도록 권고한다. 사정이 다른 배경은 뭘까. 국내 공연계가 수십 년째 의존해온 ‘스타 캐스팅’에 그 답이 있다. 외국 관객들은 공연의 중심지 브로드웨이 등에서 해당 작품을 봤다는 데 의미를 둔다. 배우는 공연 선택의 중요한 변수가 아니기에 캐스팅 변경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는다. 반면 스타 캐스팅으로 굴러가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국내 관객들은 ‘어떤 배우가 출연하느냐’가 작품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다. 내가 선택한 배우의 연기를 보기 위해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한 만큼, 캐스팅 변경은 보상받아야 할 요인이 된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스타에게 목매는 공연시장의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다. 공연의 본질은 ‘작품’이지 ‘스타’가 아니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우리 집 텃밭엔 꽃이 아주 많아.” 천진난만한 미소로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아이는 꽃을 사랑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꽃은 장미나 백합 같은 화려한 게 아니다. 무꽃, 토마토꽃, 시금치꽃, 양파꽃 등 텃밭 채소들이 틔우는 소박한 꽃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는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살랑 꽃잎을 흔드는 무꽃을 보며 “발레리나”라고 표현하고, 둥근 꽃망울을 지닌 양파꽃에겐 꽃봉오리가 팡팡 터질 것 같다며 “불꽃놀이”라고 말한다. “양파는 눈이 매운데 양파꽃은 눈이 부셔”라고 하는 아이의 말은 시 같다. 아이는 자기 역시 텃밭에 핀 새싹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자신에게도 상상하지 못할 멋진 꽃이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너에게는 어떤 꽃이 필까?” 식물이 꽃을 피우는 과정을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싱그러운 미소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아이의 밝고 순수한 표정이 눈길을 끈다. 색의 강약도 보는 맛을 더한다. 꽃은 다양한 색으로 그렸지만 아이는 검은색 선으로 스케치했다. 아이의 발그레한 볼은 오렌지색을 칠해 생기를 불어넣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부모님을 따라 해외로 간 아이는 한국이 그립다. 새로 이사한 집 뒷마당에는 오래된 자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아이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한국 집 마당에 있던 감나무가 생각난다. 나무는 아이를 안아 올리고, 아이는 나뭇가지를 타고 논다. 아이는 나무에 ‘자두랑’이란 애칭을 붙여준다. 나무와 아이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세찬 바람과 함께 폭풍우가 도시를 휩쓴다. 자두랑도 뿌리가 뽑히며 쓰러진다. 마음을 기댈 나무가 없어진 아이는 아빠에게 자두랑이 그립다고 고백한다. 결국 아이와 아빠는 자두랑이 있던 그 자리에 키가 작고 꼿꼿한 새 자두나무를 심는다. 상실과 아픔의 자리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자라난다. 자두나무가 꽃을 처음 피운 날, 아이는 마치 자두랑을 마주한 것 같은 익숙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두나무가 점점 더 크고 단단해지는 것을 지켜보며 아이는 힘들 때마다 위로를 얻는다. 지난해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최우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작으로 화려한 색감과 나무를 표현한 섬세한 질감이 인상적이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부산에 가면 초량 출신의 가수 나훈아가 어린 시절 과외 수업을 받았던 절이 있고, 전남 목포에 가면 목포 출신 가수 남진의 생가가 있습니다. 국내 관광 프로그램에 대중가수들의 삶을 녹인 스토리텔링으로 ‘대중가요로드’(가칭)를 만들 계획입니다.”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에서 지난달 30일 만난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67)은 팬데믹으로 침체됐던 관광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K콘텐츠를 기반으로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팬들이 한국을 더 많이 찾아오도록 대규모 K팝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김 사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서울 예술의전당 사장, 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5년 11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대중가요로 본 한국 근대사회의 발전상’ 토크콘서트를 열어 큰 주목을 받았다. 1920∼80년대를 풍미한 트로트 히트곡들을 역사적 사건과 결부시켜 분석한 ‘트롯의 부활’을 2021년 출간한 데 이어 문화계에서 쌓은 경험과 사색, 명상을 담은 에세이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창가에 서서’를 지난달에 내놓았다. 김 사장은 “5000년 한국사엔 위대한 인물과 재미난 전설이 많다”며 “이는 관광에 스토리텔링을 강화할 수 있는 큰 자양분”이라고 했다. 계획 중인 스토리텔링 강화 관광 사업으로 이순신 둘레길 투어, 삼국통일로 투어 등을 꼽았다. “우리나라 외곽을 걸을 수 있는 ‘코리아둘레길’을 활용해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처음 승리를 거둔 장소, 노량해전 배경지, 거북선이 탄생한 곳을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며 함께 걷는 방식이 될 겁니다.” 태종 무열왕, 김유신 장군,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이끈 결정적인 전투들과 이들의 흔적이 있는 곳들을 연계한 역사 관광 프로그램도 만들 예정이다. 문체부에서 종무실장을 지낸 그는 종교계와의 인연도 깊다. “2002년 시작한 불교계의 템플스테이가 20년 넘게 내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불교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발자취를 따라 다양한 관련 시설을 찾는 영성관광을 개발할 생각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들의 공연을 여럿 기획해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에 오는 외국인도 늘릴 예정이다. 종교, 가요, 클래식 등 차곡차곡 쌓아온 문화적 경험과 역량을 관광과 연결시켜 다채로운 꽃을 피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를 통해 인구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을 살리고 2027년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에게 노래를 요청하자 패티김의 ‘연인의 길’과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를 구성지게 뽑아냈다. 작사자와 작곡가는 물론이고 가사에 담긴 사연을 상세하게 설명한 뒤 노래해 마치 작은 콘서트를 보는 듯했다.“사람과 이야기가 풍경과 어우러질 때 매력은 배가됩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곳들로 가득하고요. 국내외 많은 분이 여행을 통해 이를 음미할 수 있도록 발로 뛰겠습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토끼 친구들이 모인 교실, 선생님이 새로 전학 온 친구 루시를 소개한다. 낯선 환경에 놓인 루시는 작은 목소리로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토끼 친구들은 그런 루시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쉬는 시간, 친구들은 운동장으로 향한다. 한 친구가 “루시는 우리와 정말 다르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 반 친구니깐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외친다. 또 다른 친구가 “루시에게 점심으로 무엇을 가져왔는지 물어보자. 분명히 우리처럼 당근을 가져왔을 거야”라고 제안한다. 친구들은 깜짝 놀란다. 각자 다른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루시와 가장 좋아하는 것 등에 대해 얘기하지만,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친구들은 루시를 제외한 자신들이 모두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음을 깨닫는다. 친구들은 루시에게 다가가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한 용기 있는 한마디였다. 친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키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양한 색을 활용용한 밝고 경쾌한 그림도 귀엽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