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2018년에 빚진 걸 이제야 갚을 수 있게 됐다.”위르겐 클린스만 감독(60·독일)이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다는 소식이 들리자 독일 축구 팬 사이에서 이런 우스개가 유행했습니다.독일 남자 축구 대표팀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최종전에서 한국에 0-2로 패하면서 사상 첫 조별리그 탈락 기록을 남겼습니다.‘빚을 갚았다’고 표현한 건 클린스만 감독이 독일을 대표하는 공격수였던 선수 시절과 달리 전술적인 면에서는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그리고 한국에서도 ‘무(無)전술’이라는 평가 속에 354일 만에 불명예 퇴진하고 말았습니다.축구에서 전술을 분석하는 첫걸음은 패스 특징을 분석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번 카타르 아시안컵 한국 대표팀 패스 네트워크에서 제일 중요한 선수는 황인범(28·츠르베나 즈베즈다)이었습니다.황인범은 공격과 수비의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니까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황인범은 이번 대회를 통틀어 패스 성공이 가장 많은(528번) 선수이기도 합니다.선수들을 공격수와 수비수로 크게 나누면 설영우(26·울산)가 패스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선수였다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사실 호주와 맞붙은 8강전까지는 김민재(28·바이에른 뮌헨)가 제일 중요한 수비수였는데 준결승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뒤로 밀렸습니다.공격수 가운데는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PSG)이 제일 중요한 선수였습니다.그리고 이강인이 패스 네트워크에서 제일 중요한 선수가 된 건 ‘크로스’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강인은 이번 대회 때 크로스를 총 69번 시도했습니다.이 부문 공동 2위(36번)인 김태환(34·전북), 아크람 아피프(28·카타르)와 비교해도 1.9배 많은 숫자입니다.한국에서는 역시 공동 10위(24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이번 대회 크로스 톱10 안에 세 명이 이름을 올린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그렇다는 건 전체적으로 크로스가 많았다는 뜻.한국은 이번 대회 6경기를 치르는 동안 크로스를 총 178번 기록했습니다.2위 이란(125개)과 비교해도 40% 이상 많은 숫자입니다.물론 경기를 많이 치르면 크로스 누적 횟수도 자연스레 늘어나게 마련입니다.한국은 90분당 평균 크로스 횟수(26.6번) 역시 팔레스타인(30.5번)에 이어 2위였습니다.이번 대회 전체 평균이 17.2번이니까 한국은 다른 팀과 비교해도 10분에 한 번 정도 크로스를 더 올린 셈이 됩니다.요컨대 전임 파울루 벤투(55·포르투갈) 감독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빌드업’이었다면 클린스만 감독은 ‘크로스만 감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크로스는 ‘이게 정말 효과적인 전술인가?’라는 물음이 따라다니는 공격 방법입니다.그래서 유럽 5대 리그(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에서도 크로스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2017~2018시즌에는 총 3576경기에서 크로스가 6만6819번 나왔습니다.2022~2023시즌에는 같은 경기에서 6만2083번으로 4736번이 줄었습니다.한국 대표팀이 거꾸로 크로스를 이렇게 사랑했던 건 ‘제일 쉬운 공격 전술’이었기 때문일 겁니다.세밀한 작전 지시가 없을 때는 크로스가 제일 무난한 선택이니 말입니다.크로스는 또 패스를 ‘배달’하는 선수만큼 받는 패스를 받는 선수 기술이 중요한 전술이기도 합니다.세계적인 공격수 출신인 클린스만 감독은 어쩌면 ‘아, 왜 저걸 못 넣지?’라고 생각하고 말았을지 모릅니다.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무능한 지도자라고 부릅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손흥민(32·토트넘)이 한국 축구 대표팀 내분 사태가 알려진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토트넘이 16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개한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복귀를 반겨주신 팬들께 정말 감사하다. 그런 환영을 받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운을 뗐다.이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주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팬 여러분께서 응원해주신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리고 계속해 “이번 시즌 (우승을) 이룰 수 있도록 그리고 토트넘 소속으로 뛰는 마지막 날까지 여러분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도록 또 토트넘 팬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손흥민은 18일 0시 복귀 후 두 번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에 나선다.이 경기 상대는 황희찬(28)이 몸담고 있는 울버햄프턴이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스파이크를 할 수 있는 건 토스가 올라온 덕분이다. 토스가 올라왔다는 건 거기까지 연결해준 리시브가 있었다는 것이다.” ─ 일본 배구 만화 ‘하이큐’배구에서 랠리는 기본적으로 서브 → 리시브 → 세트(토스) → 공격 → (블로킹, 디그…) → 득점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모든 스포츠에서 그런 것처럼 배구에서도 득점력이 좋은 선수가 가장 주목을 받게 마련입니다.그래서 프로배구 기사에 ‘양 팀을 통틀어 최다 득점을 올린 ○○○’ 같은 표현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반면 ‘가장 세트가 많았던’ 혹은 ‘가장 상대 서브를 많이 받은’ 같은 표현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가장 세트가 많았던’에 해당하는 선수는 어차피 양 팀 세터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장 상대 서브를 많이 받은 선수’가 가장 과소 평가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올스타전 휴식기가 끝난 뒤 14일까지 프로배구 여자부에서 상대 서브를 가장 많이 받은 선수는 정관장 지아(26·미국·150개)입니다.다만 리시브 점유율은 지아(42.1%)보다 상대 서브를 142번(2위) 받은 흥국생명 레이나(25·일본·54.4%)가 더 높습니다.5라운드 들어 리시브 점유율이 50% 이상인 그러니까 상대 서브를 절반 이상 받아낸 여자부 선수는 레이나뿐입니다.레이나는 4라운드까지 14.5%였던 공격 점유율도 5라운드 들어 27.7%까지 끌어올린 상태입니다. 레이나는 5라운드 들어 치른 네 경기에서 공격을 139번 시도했습니다.오퍼짓 스파이커로 상대 서브를 한 번도 받지 않은 같은 팀 윌로우(26·미국·141번)도 레이나보다 공격을 두 번 더 시도했을 뿐입니다.레이나의 서브 리시브 점유율과 공격 점유율을 합치면 82.1%가 나옵니다.5라운드 들어 여자부에서 이 두 점유율을 합쳐 이보다 높은 기록을 남긴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그러니까 올스타전 휴식기 이후에는 레이나가 여자부에서 ‘가장 바쁜’ 선수인 셈입니다.물론 그저 바쁘기만 하다고 팀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닙니다.레이나는 5라운드 들어 공격 효율 0.388을 기록하면서 IBK기업은행 아베크롬비(29·미국·0.416) 다음으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리시브 효율 25.3%는 좋은 기록이라고 하기가 쉽지 않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이 GIF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리시브가 정확하지 못해도 자신이 해결하는 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레이나는 이 기간 리시브 후에 바로 공격했을 때 효율 0.480을 남겼습니다.같은 상황에서 공격을 15번 이상 시도한 선수 가운데 레이나보다 공격 효율이 좋은 건 지아(0.480) 한 명뿐입니다.레이나는 1~4라운드 때는 같은 상황에서 공격 효율 0.300에 그친 선수였습니다.레이나가 이렇게 살아나면서 ‘배구 여제’ 김연경(36)의 어깨가 가벼워졌습니다.김연경은 1~4라운드 때는 리시브를 받았을 때 6번 중 1번은 본인이 공격까지 책임져야 했지만 5라운드 들어서는 17번 중 한 번으로 부담이 줄었습니다.아본단자 흥국생명은 감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레이나는 팀을 앞에 놓고 자신을 뒤에 놓는 선수”라고 말합니다.동시에 김연경을 비롯해 팀원이 믿고 기다려줬기에 레이나도 기량을 꽃피울 수 있었을 겁니다.김연경을 ‘착한 언니’라고 표현하는 레이나는 “배구를 할 때는 잘하면 칭찬해주고, 실수는 할 때도 ‘이렇게 하는 게 낫겠다’고 말해줘서 도움이 된다. 코트 바깥에서도 선수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게 많이 도와준다”며 고마워했습니다.‘하이큐’에서 다나카 류노스케(田中龍之介)는 첫 연습 경기를 앞두고 잔뜩 긴장한 후배 히나타 쇼요(日向翔陽)에게 이렇게 말합니다.“못 해도 돼! 민폐 팍팍 끼쳐! 그런 걸 덮어주려고 팀이 있고 선배가 있는 거다!”그리고 선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본인부터 일단 ‘예쁜 후배’가 되어야 합니다.흥국생명은 ‘거함’ 현대건설을 무너뜨린 지 사흘 만인 15일 IBK기업은행를 상대로 5연승에 도전합니다.상대 팀 IBK기업은행은 흥국생명보다 이틀을 더 쉰 상황.이럴 때일수록 코트 위에서 더욱 바쁘게 뛰는 후배가 있을 때 선배들도 힘을 내게 마련입니다.거꾸로 IBK기업은행이 흥국생명을 물리치려면 레이나를 흔드는 게 중요합니다.과연 레이나가 또 한 번 승리를 안기는 ‘승리 요정’이 될 수 있을까요?아니면 IBK기업은행이 드디어 흥국생명을 상대로 승리를 챙기게 될까요?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테일러 스위프트 효과’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챔피언결정전 ‘슈퍼볼’ TV 시청 기록까지 갈아 치웠다. 이번 슈퍼볼 중계를 맡은 미국 CBS 방송은 캔자스시티가 샌프란시스코를 25-22로 물리친 12일 경기 평균 시청자 수는 1억2340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13일 발표했다. 이는 지난 시즌에 나온 1억1510만 명보다 830만 명(7.2%) 많은 슈퍼볼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에 대해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남자 친구 트래비스 켈시(캔자스시티)의 러브 스토리가 (스포츠에는 별 관심이 없던) 대중문화 팬들까지 TV 앞으로 몰려들게 만든 결과”라면서 “슈퍼볼 58년 역사상 두 번째로 연장까지 이어질 만큼 경기가 접전으로 흘러간 것도 시청자 수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스위프트는 ‘미스 아메리카나’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미국 내에서 사회·문화적 영향력이 큰 존재다. 뉴욕포스트는 “이번 슈퍼볼보다 미국 내 TV 시청자 수가 많았던 이벤트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닐 암스트롱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순간에는 약 1억2500만∼1억5000만 명이 TV 중계를 지켜본 것으로 추산한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서양에서 13은 불길한 숫자로 통한다. 반면 12월 13일생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35)는 13을 행운의 숫자라고 믿는다. X(옛 트위터) 계정부터 ‘@taylorswift13’이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2월 11일(2+11=13)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캔자스시티와 샌프란스시코가 맞붙은 제58회(5+8=13) 슈퍼볼은 스위프트가 남자 친구 트래비스 켈시(35·캔자스시티)가 뛰는 모습을 ‘직관’한 13번째 경기였다. 스위프트는 일본 도쿄에서 콘서트가 끝난 뒤 약 13시간 만에 로스앤젤레스(LA) 공항에 착륙해 남자 친구가 100만 달러(약 13억 원)를 주고 예약한 VIP룸에 경기 시작 약 130분 전 도착했다. 스위프트는 남자 친구 등번호(87번)로 된 목걸이를 찬 채 이날 경기를 지켜봤다. 캔자스시티가 뒤지고 있을 때는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이 경기장 전광판에 잡히기도 했다. 전광판에 스위프트가 나올 때마다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스포츠 베팅 업체도 샌프란시스코의 우승 확률(56.5%)을 더 높게 평가했다. 미국도박협회(AGA)에 따르면 이번 슈퍼볼 베팅 규모는 역대 최대인 231억 달러(약 31조 원)에 달했다. 그래도 이 행운의 숫자는 이번에도 스위프트를 배반하지 않았다. 캔자스시티는 연장전 끝에 25-22 역전승을 거두고 두 시즌 연속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챔피언에 올랐다. 슈퍼볼 2연패 팀이 나온 건 2004∼2005시즌 뉴잉글랜드 이후 19년 만이다. 미국에서는 켈시가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슈퍼볼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면 스위프트에게 청혼을 할 것인지를 두고 베팅이 열리기도 했다. 켈시는 청혼 대신 입맞춤으로 여자 친구와 기쁨을 나눴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서양에서 13은 불길한 숫자로 통한다. 반면 12월 13일생인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35)는 13을 행운의 숫자라고 믿는다. 각종 시상식에 참가할 때마다 ‘(13번째 로마자인) M열 13행 좌석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다.미국 현지 시간으로 2월 11일(2+11=13)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58회(5+8=13) 슈퍼볼은 스위프트가 남자 친구 트래비스 켈시(35·캔자스시티)가 뛰는 모습을 ‘직관’한 13번째 경기였다. 스위프트는 전날 일본 도쿄에서 공연을 마친 뒤 8900km를 날아와 남자 친구가 100만 달러(약 13억 원)를 주고 예약한 VIP룸에 경기 시작 약 130분 전 도착했다.이 행운의 숫자는 이번에도 스위프트를 배반하지 않았다. 캔자스시티는 이날 연장 접전 끝에 샌프란시스코를 25-22로 물리치고 두 시즌 연속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챔피언에 올랐다. 슈퍼볼 2연패 팀이 나온 건 2005년 뉴잉글랜드 이후 19년 만이다.이날 경기장 전광판에 남자 친구 등번호(87번)로 된 목걸이를 차고 있는 스위프트의 모습이 나타날 때마다 환호보다 야유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샌프란시스코 팬들이 경기장을 더 많이 찾았다는 방증이다. 스포츠 베팅 참가자들도 샌프란시스코의 우승 확률(56.5%)을 더 높게 평가했다. 미국도박협회(AGA)에 따르면 이번 슈퍼볼 베팅 규모는 역대 최대인 231억 달러(약 31조 원)에 달했다.‘언더도그’(예상 승률이 더 낮은 선수나 팀)에는 행운이 필요한 법. 캔자스시티가 터치다운을 허용해 13-16으로 역전을 허용한 4쿼터 초반 행운이 찾아왔다. 샌프란시스코가 보너스 킥(1점)에 실패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 때 보너스 킥을 61번 시도해 60번(98.4%) 성공한 팀이다.그 결과 캔자스시티는 13-16, 3점 차이로 샌프란시스코를 추격할 수 있게 됐다. 미식축구에서 3점 차이는 필드골(3점) 하나로도 균형을 맞출 수 있지만 4점 이상 차이가 날 때는 최소 필드골 두 개가 필요하다. 실제로 이 1점 때문에 캔자스시티는 19-19 동점으로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연장전에서도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캔자스시티는 연장전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먼저 필드골을 내줬다. 지난 시즌까지 슈퍼볼은 어느 팀이든 점수를 내면 바로 끝나는 ‘서든 데스’ 방식으로 연장전을 치렀다. 그러다 올 시즌부터 양 팀에 공격 기회를 최소 1번씩 주도록 규칙을 손질했다. 그 덕에 캔자스시티는 마지막 공격 기회를 얻어 역전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 2010년 이후 NFL 플레이오프 경기가 연장전까지 이어진 건 이번 슈퍼볼이 13번째였다.미국에서는 켈시가 이번 슈퍼볼 때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NFL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면 스위프트에게 청혼을 할 것인지를 두고 베팅이 열리기도 했다. 켈시는 청혼 대신 진한 입맞춤으로 여자 친구와 기쁨을 나눴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좋은 팀은 완벽한 선수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실체’가 아니라 부족한 것이 많은 선수들이 서로를 연민하고 빈자리를 메우려 도우며 도달하는 어떤 ‘상태’가 아닌가 싶다.” ─ 곽한영 ‘배구, 사랑에 빠지는 순간’지금은 연일 프로배구 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흥국생명 윌로우(26·미국)는 ‘완벽한’은 물론 ‘좋은’이라는 형용사도 앞에 붙이기 힘든 선수였습니다.그랬다면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때 두 번이나 ‘물을 먹을’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같은 팀 레이나(25·일본)도 아시아쿼터 선수 드래프트 때 전체 최하위로 지명을 받은 선수입니다.그런데 두 선수가 만나 팀을 이루면서 흥국생명은, ‘배구 여제’ 김연경(36·흥국생명)이 김연경치고는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도, 두 경기 연속 셧아웃(3-0) 승리로 5라운드를 시작했습니다.지난달 25일자 ‘발리볼 비키니’(https://bit.ly/49qnA05)는 김연경과 외국인 선수가 모두 후위에 있을 때 흥국생명이 공격에 애를 먹는다는 내용을 다뤘습니다.그러면서 “김연경과 대각에 서는 아웃사이드 히터가 받쳐 주지 못하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썼습니다.여기서 ‘김연경과 대각에 서는 아웃사이드 히터’가 바로 레이나입니다.레이나는 옐레나(27·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함께 뛴 4라운드까지 공격 효율이 0.244밖에 되지 않던 선수였습니다.그러다 5라운드 들어 윌로우와 호흡을 맞추면서 이 기록을 여자부 현재 1위인 0.507까지 끌어올렸습니다.배구에서 선수 A와 선수 B가 ‘대각에 선다’는 건 A가 전위에 있을 때 B는 항상 후위에 있다는 뜻입니다.거꾸로 선수 A가 후위에 있을 때도 선수 B는 항상 전위에 있습니다.따라서 김연경이 후위에 있을 때는 레이나가 전위 왼쪽에서 공격을 책임져 줘야 합니다.그리고 이런 로테이션 상황 세 번 중 두 번은 윌로우도 항상 전위에 있습니다.윌로우는 예전에 ‘라이트’라고 부르던 오퍼짓 스파이커니까 코트 오른쪽을 책임집니다.이런 상황에서 레이나의 공격력이 떨어진다면 상대 팀 블로커는 코트 왼쪽을 비워도 됩니다.김연경에게 서브를 넣는다면 중앙까지 비우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아웃사이드 히터가 후위에 있을 때는 코트 중앙에서 ‘파이프 공격’을 시도하는 게 일반적입니다.김연경이 서브 리시브에 신경 쓰느라 코트 가운데 공간을 차지하면 세트(토스)는 오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흥국생명은 4라운드 때까지 미들 블로커가 주로 시도하는 속공을 선택한 비율(6.5%)이 여자부 7개 구단 가운데 가장 낮은 팀이기도 합니다.상대 감독 성향 또는 경기 상황에 따라 반대 방향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오퍼짓 스파이커에게 블로커를 붙여도 어차피 점수를 내줄 테니 왼쪽을 봉쇄하자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는 겁니다.그리고 어떤 선수라도 블로커 숫자가 늘어나면 점수를 올리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레이나는 4라운드까지 상대 블로커가 없거나 한 명일 때(러닝 세트)는 공격 효율 0.368을 기록했지만 2명 이상일 때(스틸 세트)는 0.188에 그쳤습니다.그래서 ‘양쪽 날개’가 균형을 이룰 때 상대 블로커를 헷갈리게 만들 수 있고 그래야 다시 팀 전체 공격 효율도 올라오게 됩니다.레이나가 윌로우의 덕을 보고 있는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레이나는 2일 장충 GS칼텍스전이 끝난 뒤 “블로커 한 명의 존재가 큰 영향을 끼친다. 윌로우가 있기에 상대 블로커가 그를 의식하고 그래서 공격이 수월해진 느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실제로 위에 있는 GIF를 보시면 GS칼텍스 블로킹 라인이 윌로우를 의식하다가 레이나에게 ‘원(1) 블로킹’ 상황을 내주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날 경기만 놓고 보면 레이나가 공격을 시도한 27번 중 11번(40.7%)이 러닝 세트 상황이었습니다.4라운드 때까지 레이나가 러닝 세트 상황에서 공격을 시도한 비율은 29.0%였습니다.이렇게 느끼는 건 윌로우도 마찬가지입니다.윌로우 역시 “레이나와 김연경 덕분에 상대 블로커가 한 명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대각이 비어 공격하기가 쉬웠다”고 말했습니다.레이나와 윌로우가 이렇게 상부상조하면서 흥국생명은 5라운드 들어 김연경이 후위에 있을 때도 팀 공격 효율 0.393을 기록하고 있습니다.흥국생명은 4라운드 이전까지는 같은 상황에서 공격 효율 0.238에 그친 팀이었습니다.부족한 것이 많은 선수들이 서로를 연민하고 빈자리를 메우려 도우며 어떤 ‘상태’에 도달한 겁니다.물론 ‘사물·현상이 놓여 있는 모양이나 형편’(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는 상태(狀態)는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GS칼텍스는 상대에게 러닝 세트를 허용하는 비율(32.2%)이 여자부 7개 팀 가운데 가장 높은 구단 = 블로킹에 약점이 있는 구단입니다.반면 8일 맞대결 상대인 정관장은 상대 공격 시도를 블로킹 득점으로 연결한 비율(6.5%)이 가장 높은 팀입니다.김연경, 레이나, 윌로우 삼각편대가 서로를 도와 정관장의 블로킹 벽도 뚫을 수 있을까요.그렇게 될 때 흥국생명의 상태는 비로소 ‘보통 때의 모양이나 형편’을 뜻하는 상태(常態)가 될 수 있을 겁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프로배구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삼성화재는 ‘몰방(沒放) 배구’에 울고 웃는 팀입니다.삼성화재는 5일까지 공격을 총 2665번 시도했는데 그중 50.1%(1331번)가 외국인 선수 요스바니(33·쿠바) 차지였습니다.배구에서는 팀 전체 공격 시도 가운데 특정 선수가 차지하는 비율을 ‘공격 점유율’이라고 표현합니다. 남녀부 14개 팀을 통틀어 특정 선수 공격 점유율이 50%를 넘어가는 팀은 삼성화재뿐입니다.삼성화재는 요스바니가 한국에서 뛰는 네 번째 팀입니다.다만 ‘풀 시즌’을 소화한 팀은 OK저축은행(현 OK금융그룹)과 삼성화재밖에 없습니다.요스바니는 2018~2019시즌 OK저축은행에서 공격 점유율 39.4%를 기록했습니다.한국 프로배구 V리그가 제아무리 몰방 배구가 기본인 리그라고 해도 요스바니가 이렇게 때리고 또 때리는 건 이번이 처음인 셈입니다.특히 올 시즌 5라운드 두 경기는 더 심합니다.삼성화재는 이 두 경기에서 공격을 총 240번 시도했는데 그중 57.5%(138번)가 요스바니 차지였습니다.그렇다고 몰방 배구 그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다만 몰방 배구가 통하지 않는데 계속 이 전략을 고집할 때는 문제입니다.요스바니는 4라운드 때까지 공격 효율 0.368을 기록했습니다.그러나 5라운드 두 경기에서는 0.210까지 기록이 내려온 상태입니다.그러면서 시즌 전체 공격 효율도 0.352까지 내려왔습니다.누적 기록으로 보면 요스바니는 라운드가 지날수록 점점 공격 효율이 떨어지는 선수가 되고 있습니다.같은 경기에서 초반과 후반을 비교해도 차이가 두드러집니다.요스바니는 지금까지 한 경기에 공격을 평균 51번 시도했습니다.첫 공격부터 51번째 공격까지는 효율이 0.366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0.262로 기록이 나빠집니다.특히 60번째를 넘어가면 0.186까지 기록이 내려갑니다.팀 주포가 공격을 유독 많이 시도하는 경기는 승부가 치열하게 벌어졌을 확률도 그만큼 높습니다.그리고 이런 경기는 후반에 승부처가 찾아오는 일이 많습니다.그런데 요스바니는 바로 그 상황에서 자기 몫을 하지 못하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다른 말로 하자면 요스바니는 몰방 배구에 아주 적합한 선수는 아닌 셈입니다.몰방 배구계 최고 ‘아티스트’ OK금융그룹 레오(34·쿠바)는 다릅니다.레오는 경기 50번째 공격 시도까지 0.408이던 공격 효율을 그 이후로는 0.490으로 끌어 올립니다.같은 경기에서 60번째가 넘어가는 공격을 시도한 게 10번밖에 없지만 이때도 7번 점수를 올렸습니다.요컨대 꺼내도 꺼내도 공격 카드가 계속 나오는 ‘요술 바구니’는 (요스바니가 아니라) 레오인 셈입니다.몰방이 경기에서 이기려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필요악’인지 아니면 배구를 망치는 ‘절대악’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실컷 몰방 배구를 하고도 이기지 못하면 절대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삼성화재는 6일 레오가 이끄는 OK금융그룹과 5라운드 세 번째 경기를 치릅니다.몰방을 필요악으로 만드는 팀은 삼성화재와 OK금융그룹 중 어느 팀이 될까요?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손흥민(32)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역사상 처음으로 연장전에서 세 골을 넣은 선수가 됐습니다.손흥민은 3일 카타르 알와크라에서 열린 올해 대회 8강에서 연장 전반 12분 오른발 프리킥으로 호주 골망을 흔들었습니다.손흥민은 우즈베키스탄과 맞붙은 2015년 호주 대회 8강에서도 연장 전반 14분에는 헤더로, 연장 후반 4분에는 왼발로 각각 골을 넣은 적이 있습니다.아시안컵 연장전에서 왼발, 오른발, 머리로 모두 골을 넣어 본 선수도 물론 손흥민뿐입니다.손흥민을 제외하면 아시안컵 연장전에서 통산 두 골 이상을 기록한 선수도 이태호(63)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이태호는 역시 카타르에서 열린 1988년 대회 준결승에서 중국을 상대로 연장에 두 골을 몰아 넣었습니다.아시안컵 경기 연장전에서 한 골이라도 넣은 선수는 총 24명이고 그중 7명(29.2%)이 한국 선수입니다.손흥민과 이태호 이외에도 △1972년 박이천(77) △2000년 이동국(45) △2011년 윤빛가람(34) 황재원(43) △2019년 김진수(32)가 아시안컵에서 연장 득점 기록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나 어땠어, 자기야(What’s up, sweetie)?” 그라운드로 내려온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35·사진)를 발견한 남자 친구 트래비스 켈시(35·캔자스시티)가 두 팔을 벌렸다. 품에 안긴 스위프트와 짧게 입을 맞춘 켈시가 이렇게 묻자 스위프트는 “당신이 이렇게 멋져 보인 적은 없었다”면서 켈시의 가슴을 두드렸다. 켈시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는 ‘아메리칸풋볼콘퍼런스(AFC) 챔피언’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스위프트의 남자 친구 켈시가 2년 연속으로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챔피언결정전인 ‘슈퍼볼’ 무대를 밟는다. 지난 시즌 슈퍼볼 챔피언 캔자스시티는 29일 볼티모어 방문경기로 열린 AFC 챔프전에서 17-10 승리를 거뒀다. 캔자스시티가 다음 달 12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이번 시즌 슈퍼볼에서도 우승하면 2003∼2004, 2004∼2005시즌 뉴잉글랜드 이후 19년 만에 슈퍼볼 2연패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캔자스시티는 1969∼1970시즌 슈퍼볼 정상을 차지한 뒤 49년 동안 우승은커녕 슈퍼볼 진출 기록도 남기지 못했던 팀이다. 그러다 주전 쿼터백 패트릭 머홈스(29)와 타이트엔드 켈시가 ‘찰떡 콤비’를 이뤄 2019∼2020시즌 우승을 차지한 이후 이번까지 총 네 차례 슈퍼볼에 올랐다. 이 다섯 시즌 동안 캔자스시티가 슈퍼볼에 오르지 못한 건 2021∼2022시즌뿐이다. 켈시는 이날도 경기 시작 7분 19초 만에 머홈스의 패스를 받아 선제 터치다운을 성공하는 등 양 팀 최다인 121야드 전진을 기록하면서 팀 승리에 앞장섰다. 켈시는 머홈스로부터 패스를 총 11번 받아내면서 포스트시즌 패스 리셉션 기록을 통산 156번으로 늘렸다. 전설적인 와이드 리시버 제리 라이스(62)의 151번을 뛰어넘은 이 부문 역대 최고 기록이다. 지난해 9월부터 켈시와 공개 연애 중인 스위프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셀럽’으로, 별명부터 ‘미스 아메리카나’다. 그의 공연이 열리는 도시에서 쇼핑몰, 식당, 호텔 등의 매출이 늘어나는 걸 뜻하는 신조어 ‘스위프트노믹스(Swiftnomics)’가 등장할 정도로 경제적 영향력도 크다. 스위프트의 남자 친구가 된 뒤로 켈시의 유니폼 판매량도 400% 이상 늘었다. ‘나 어땠어, 자기야?’도 이날 바로 유행어가 됐다. 스위프트는 슈퍼볼 전날까지 일본 도쿄돔에서 콘서트 일정이 잡혀 있지만 공연이 끝나는 대로 비행기에 올라 슈퍼볼을 ‘직관’할 계획이다. 스위프트는 아직 슈퍼볼 ‘하프타임 쇼’ 공연을 한 적은 없다. ‘미스 아메리카나’의 응원에 맞서는 팀은 ‘미스터 무관심’ 브록 퍼디(25·쿼터백)가 이끄는 샌프란시스코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날 안방에서 열린 내셔널풋볼콘퍼런스(NFC) 챔프전에서 디트로이트에 34-31 역전승을 거뒀다. 샌프란시스코는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7-24로 뒤져 있었지만 17점 차를 결국 뒤집었다. 콘퍼런스 챔프전 역사상 이렇게 큰 점수 차이를 뒤집은 건 이번 시즌 샌프란시스코가 처음이다. ‘미스터 무관심(Mr. Irrelevant)’은 매 시즌 NFL 신인 드래프트 때 가장 마지막에 뽑힌 선수에게 붙는 별명이다. 퍼디는 2022∼2023시즌 신인 드래프트 때 전체 262번으로 샌프란시스코 유니폼을 입었다. 지금까지 팀을 슈퍼볼 무대로 이끈 쿼터백 가운데 지명 순번이 가장 늦은 선수가 퍼디다. 다만 아예 지명을 받지 못한 커트 워너(53)가 팀을 슈퍼볼에 세 차례 진출시킨 적은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캔자스시티가 슈퍼볼에서 맞대결하는 건 2019∼2020시즌 이후 4년 만이다. 당시에는 캔자스시티가 31-20으로 이겼다. 이번이 8번째 슈퍼볼인 샌프란시스코는 1993∼1994시즌 이후 30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다. 샌프란시스코가 올해 우승하면 피츠버그, 뉴잉글랜드와 함께 슈퍼볼 최다(6회) 우승 팀이 된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프로 스포츠 지도자들이 ‘짤리면’ 보통 해외 연수를 간다. ‘부족한 걸 채우고 돌아오겠다’고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사실상 ‘구경꾼’으로 생활하고 돌아오는 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경질 과정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할 시공간이 필요하다”는 게 좀 더 솔직한 이유 아닐까. 말하자면 ‘명장병’ 치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프로배구에서 가장 심한 명장병 환자는 최태웅 전 현대캐피탈 감독이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그에게 명장병 진단을 처음 내린 기사는 황규인 기자 그러니까 이 ‘광화문에서’를 쓰고 있는 사람이 썼다. 그만큼 그의 명장병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지난해 12월 21일 경질당한 뒤 한 달 넘게 칩거하던 그를 최근 만나 명장병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지 물었다. 워낙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만 골라 한다는 걸 알기에 해외 연수 이야기는 꺼내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렇다고 “코딩 공부를 하고 있다”고 답할 줄은 몰랐다. 최 전 감독은 “사실 팀에 있을 때도 틈틈이 코딩 공부를 했다. 시간이 났으니 코딩을 제대로 배워 배구 작전 구상에 제대로 활용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최 전 감독이 2015년 부임 이후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풀던 생각이 났다. 당시 그는 “수학을 다시 해두면 데이터 분석에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면서 “부끄럽고 쑥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마침 수학을 잘하는 프런트 직원이 있어서 그 직원을 열심히 괴롭히면서 배우고 있다”며 웃었었다. 최 전 감독은 이런 공부를 바탕으로 남들과 다른 선택을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팀은 다 한 명인 수비 전문 포지션 리베로 자리에 굳이 두 명을 쓴다거나, ‘원포인트 서브 전문 선수’를 따로 키워 세트마다 마무리 투수처럼 기용하는 식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런 전술이 이제는 프로배구에서 ‘뉴 노멀’이 됐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런 전술이 잘 통했다. 최 전 감독은 ‘만년 2위 팀’ 현대캐피탈에 두 차례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다. 문제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만 너무 매달렸던 게 결국 독이 됐다는 거다. 그 바람에 ‘세상에는 이미 잘린 감독과 앞으로 잘릴 감독만 있다’는 프로 스포츠 세계 논리를 비켜 가지 못했다. 지난 시즌 준우승팀 현대캐피탈이 시즌 반환점을 앞두고 ‘뒤에서 2등’을 하고 있다는 건 잘리고도 남을 이유였다. 최 전 감독 체제에서 4승(13패)에 그쳤던 현대캐피탈은 그가 지휘봉을 내려놓은 바로 다음 경기부터 5연승을 내달렸다. 이런 결과와 최 전 감독의 명장병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스포츠를 10년 넘게 취재하면서 느낀 게 있다. 명장병에 걸린 모든 지도자가 명장이 되는 건 아니지만 명장 반열에 오른 지도자에게는 모두 명장병 증상이 있다는 점이다. 그 증상을 잘 다스리면 명장이 되지만 그러지 못하면 그냥 명장병 환자로 남는다. 코딩 공부가 최 전 감독의 명장병을 ‘관리 가능한 질병’으로 바꿔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 한국 축구 대표팀은 25일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최종 3차전에서 130위 말레이시아와 3-3으로 비겼습니다.한국이 FIFA 랭킹 차이가 100계단 이상 나는 팀과 경기를 치른 건 이날이 20번째였습니다.한국은 앞선 19차례 경기에서 16승 2무 1패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따라서 한국이 FIFA 랭킹이 100계단 이상 차이 나는 팀을 이기지 못한 건 이날이 처음은 아닙니다.한국이 이런 팀을 상대로 처음 승리를 기록하지 못한 건 2002년 9월 7일이었습니다.당시 FIFA 랭킹 22위였던 한국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에서 북한(126위)과 0-0으로 비겼습니다.이 경기는 대회 특성상 결과가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처음 비판을 받은 건 2004년 3월 31일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2차 예선이었습니다.역시 FIFA 랭킹 22위였던 한국은 142위 몰디브와 역시 0-0으로 비겼습니다.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패전을 기록한 건 이로부터 7년이 지난 2011년 11월 5일이었습니다.당시 29위였던 한국은 2014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에서 146위 레바논에 1-2로 무릎을 꿇었습니다.손흥민(32·토트넘)도 당시 대표팀 멤버였습니다.이 경기 레바논은 지금까지도 한국 축구 대표팀에게 패배를 안긴 가장 FIFA 랭킹이 낮은 팀으로 남아 있습니다.그다음이 앞에 나온 몰디브 케이스였고 3위가 이번 아시안컵 말레이시아입니다.전 세계적으로 보면 2014년 11월 14일 그리스(당시 18위)가 FIFA 랭킹 187위 차이가 나는 페로 제도(187위)에 0-1로 패한 게 기록입니다.1996년 11월 6일에는 이탈리아(당시 5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당시 170위)에게 1-2로 패하기도 했습니다.그러니까 랭킹이 100계단 이상 차이가 나는 팀을 이기지 못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일은 아닙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이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팀에서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던 옐레나(27·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내보내기로 한 것.대신 ‘빅 유닛’ 랜디 존슨(61)의 딸로 유명한 윌로우(26·미국)가 외국인 선수 자리를 채웁니다.윌로우는 과연 옐레나가 해내지 못했던 ‘김연경 도우미’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요?이 질문 정답에 다가가려면 일단 옐레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배구 여제’ 김연경(36·흥국생명)은 아웃사이드 히터로 뛰는 선수입니다.이 그림을 보면 아웃사이드 히터를 예전에 ‘레프트’라고 부른 이유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코트 왼쪽에서 주로 공격하는 선수니까 말입니다.옐레나와 윌로우는 예전에 ‘라이트’라고 불렀던 오퍼짓 스파이커로 뜁니다. 그러면 옐레나도 주로 오른쪽에서 공격했을까요?적어도 전위에 있을 때는 오른쪽 공격 비중이 더 높았다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옐레나가 코트 왼쪽과 오른쪽에서 비슷하게 공격을 시도한 이유는 ‘로테이션’ 순서 때문입니다.흥국생명은 기본적으로 김연경과 옐레나 사이를 ‘한 칸 띄워서’ 코트에 내보내는 팀입니다.예를 들어 17일 장충 GS칼텍스전 4세트 때 흥국생명은 김연경 → 이주아 → 옐레나 → 레이나 → 김수지 → 김다솔 순서로 선발 오더를 짰습니다.상대 팀 GS칼텍스는 김지원 → 유서연 → 권민지 → 실바 → 강소휘 → 오세연 순서로 오퍼짓 스파이커 실바와 아웃사이드 히터 강소휘가 붙어 있었습니다.이렇게 오퍼짓 스파이커를 아웃사이드 히터와 붙여서 내보내는 팀에서는 오퍼짓 스파이커가 왼쪽에서 공격하는 일이 줄어듭니다.두 선수가 모두 전위에 있는 랠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는 데 충실하면 되는 것.이를 뒤집어 말하면 두 선수가 모두 후위에 있는 랠리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 됩니다.흥국생명을 이끄는 아본단자 감독은 김연경과 옐레나가 모두 후위에 있는 순간을 최대한 줄이고 싶어서 두 선수를 한 칸 띄어 배치했던 겁니다.두 선수가 모두 후위에 있으면 팀 공격 전체가 엉망이 되니까요.김연경과 옐레나가 모두 후위에 있을 때 흥국생명 공격 효율이 이렇게 떨어지는 이유는 공격 위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스크롤을 올려서 확인해 보시면 두 선수가 모두 후위에 있을 때는 전위 왼쪽이 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김연경이 후위 공격 효율 1위(0.311) 옐레나가 3위(0.303)인데도 이 로테이션 순번에서 공격에 유독 애를 먹은 이유입니다.물론 아본단자 감독도 이 문제점을 알고 있습니다. 김연경은 “전체 연습량을 100으로 보면 후위 공격이 50을 차지할 정도”라고 말했습니다.그러나 기본적으로 김연경과 대각에 서는 아웃사이드 히터가 받쳐 주지 못하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아본단자 감독은 시즌 초반 미들 블로커로 활용했던 레이나(25·일본)를 원래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히터로 기용하면서 해법 찾기에 나섰습니다.3라운드 때까지 11.3%였던 레이나의 공격 점유율은 4라운드 들어 24.5%로 늘어난 상황입니다.다만 같은 기간 공격 효율은 0.263에서 0.217로 내려왔습니다.4라운드 때 흥국생명(0.266)보다 팀 공격효율이 떨어지는 팀은 최하위 페퍼저축은행(0.201)밖에 없습니다.결국 흥국생명이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면, 2라운드 이전에 옐레나가 그랬던 것처럼, 오퍼짓 스파이커가 자기 몫을 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옐레나는 1, 2라운드 합계 공격 효율 0.305(5위)를 기록했습니다.이 기간 흥국생명은 승점 30(11승 1패)으로 2위 현대건설(승점 26·8승 4패)에 한 경기 이상 앞선 리그 선두였습니다.3라운드 이후 옐레나의 공격 효율은 0.218로 떨어졌습니다.4라운드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이제 흥국생명(승점 50·18승 6패)은 현대건설(승점 58·19승 5패)에 세 경기 가까이 뒤진 2위로 내려앉았습니다.김연경은 1, 2라운드(0.358)와 3, 4라운드(0.365) 모두 공격 효율 1위 자리를 지켰지만 혼자 팀 공격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요컨대 윌로우가 1, 2라운드 때 옐레나만큼만 해줘야 흥국생명은 5, 6라운드 때 반전을 만들 수 있습니다.한국배구연맹(KOVO)은 여자부 흥국생명과 남자부 현대캐피탈 경기를 같은 날 배정합니다.현대캐피탈은 2016~2017시즌 5라운드 중반 톤(40·캐나다)을 대니(37·크로아티아)로 바꾸는 승부수를 던져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반면 흥국생명이 2020~2021시즌 도중 루시아(33·아르헨티나) 대신 선택한 브루나(25·브라질)는 결국 V리그 역대 최악의 외국인 선수를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됐습니다.윌로우는 과연 대니와 브루나 중 어느 쪽에 가까운 선수가 될까요?본인도 한국에 이름을 남길까요? 아니면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아빠만 유명한 선수로 남을까요?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희빈 콤비’ 전지희(32)와 신유빈(20)이 2024 월드테이블테니스(WTT) 도하 컨텐더 단식 결승에서 맞대결을 벌였다. ‘열정 언니’ 전지희가 ‘삐약이’ 신유빈을 꺾고 개인 처음으로 컨텐더 대회 여자 단식 챔피언에 올랐다. 세계랭킹 33위 전지희는 21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대회 여자 단식 결승에서 9위 신유빈에게 4-3(8-11, 11-9, 14-16, 9-11, 18-16, 11-8, 11-5) 역전승을 거뒀다. WTT는 △챔피언스 △스타 컨텐더 △컨텐더 △피더 등 4개 등급으로 나눠 대회를 치른다. 지금까지 컨텐더 등급 이상 대회에서 여자 단식 정상을 차지한 한국 선수는 신유빈(3회)뿐이었다. 전지희는 2021년 도하 스타 컨텐더 8강에서도 신유빈과 맞대결을 벌여 3-1 승리를 거둔 적이 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복식 금메달을 합작한 띠동갑 ‘희빈 콤비’는 앞서 열린 이번 대회 복식 결승에서 독일의 자비네 빈터-아네트 카우프만 조에 3-0(11-8, 11-5, 11-4) 완승을 거두고 팀 여섯 번째 WTT투어 우승 기록을 남겼다. 남자 복식 결승에 나선 이상수(34)-임종훈(27) 조도 홍콩의 람시우항-호콴킷 조를 3-2(11-13, 11-4, 9-11, 11-7, 11-6)로 꺾고 우승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게레로 가문이 155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았던 기록에 도전한다. 2대에 걸쳐 형제 메이저리거를 배출하는 것이다. 뉴욕 메츠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유망주 블라디미르 미겔 게레로(17)와 11만7000달러(약 1억5000만 원)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고 16일 발표했다. 미겔은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블라디미르 게레로 시니어(49)의 아들이자 현재 토론토 간판타자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25)의 이복동생이다. 미겔도 장타력이 장기인 선수지만 오른손잡이인 아버지, 형과 달리 왼쪽 타석에서 공을 친다. 게레로 시니어 역시 데뷔 때 형제 메이저리거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형인 윌톤 게레로(50)는 LA 다저스에서 박찬호(51)와 한솥밥을 먹는 등 MLB에서 8년간 뛰었다. 게레로 시니어, 윌톤 형제는 1998∼2000년 몬트리올에 함께 몸담기도 했다. 이전까지 2대에 걸쳐 형제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건 헤어스턴 가문뿐이다. 존 헤어스턴(80), 제리 헤어스턴 시니어(72) 형제가 MLB에서 나란히 뛰었고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48), 스콧 헤어스턴(44) 형제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헤어스턴 가문은 1951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뛰었던 할아버지 샘(1920∼1997)을 포함해 3대가 MLB에서 뛴 기록도 남겼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길고 긴 기다림이 끝났다. ‘끝판왕’ 오승환(42·사진)이 드디어 도장을 찍었다. 프로야구 삼성은 오승환과 2년 총액 22억 원(계약금 10억 원, 연봉 총액 12억 원)에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었다고 16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05년 삼성에서 프로로 데뷔한 오승환은 내년까지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게 됐다. 이종열 삼성 단장은 “비로소 올 시즌 투수진 구성을 화룡점정하게 됐다. 팀을 위한 최선의 길을 고민하느라 협상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면서 “구단의 행보를 이해해 준 오승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은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구원진 평균자책점(5.16)이 5점을 넘긴 팀이었다. 시즌 종료 후 이 단장에게 팀 전력 구성을 맡긴 삼성은 이번 FA 시장에서 김재윤(34·전 KT·통산 169세이브)과 임창민(39·전 키움·통산 122세이브)을 영입하는 등 불펜 강화에 힘썼다. 여기에 한국 무대에서만 통산 400세이브(41승 24패 17홀드)를 거둔 오승환까지 잔류시키면서 ‘통산 691세이브 트리오’ 구축에 성공했다. 오승환의 400세이브는 한국 프로야구 역대 1위 기록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통산 30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선수도 오승환뿐이다. 오승환은 일본프로야구 한신에서 2년간 80세이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3개 팀에서 4년간 42세이브를 올려 한미일 통산 522세이브를 기록 중이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프로야구 키움이 김혜성(25)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도전 의사를 수용하기로 했다. 김혜성은 16일 고형욱 키움 단장과 만나 ‘2024시즌이 끝난 뒤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 시스템을 통해 MLB에 진출하고 싶다’는 뜻을 공식 전달했다. 구단은 내부 논의를 거쳐 김혜성의 MLB 도전을 적극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김혜성은 “큰 무대에 대한 도전 자체가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팀에서 지지해주시는 만큼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해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키움은 이미 ‘메이저리거 사관학교’라고 부를 만한 팀이다. 전신 넥센 시절을 포함해 지금까지 키움에서는 강정호(36·전 피츠버그), 박병호(37·전 미네소타), 김하성(29·샌디에이고),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등 4명이 포스팅을 거쳐 MLB 무대에 진출했다. 지금까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프로야구 선수(8명)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이정후와 프로 입단(2017년) 동기인 김혜성은 2021년에는 유격수, 2022년과 지난해에는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리그를 대표하는 내야수로 활약해 왔다. 지난해까지 통산 성적은 826경기 출장에 타율 0.300, 25홈런, 311타점, 181도루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특별반보다 야구부에서 먼저 도쿄 6대학 합격자가 나올 거다.” 일본 하나마키히가시 고교에, 한국으로 치면 SKY 진학을 목표로 하는, 특별반이 생기자 이 학교 사사키 히로시 야구부 감독(49)은 이렇게 말했다. 2021년 겨울 이 학교 야구부 숙소 앞에 플래카드 석 장이 붙었다. 왼쪽은 야구부 선배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 수상을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오른쪽은 기쿠치 유세이(33·토론토)의 MLB 진출 축하 플래카드였다. 그리고 가운데 플래카드에는 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지난 오마키 마사토(23)의 이름 앞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축 합격 도쿄대학.” 오마키가 도쿄대 진학을 목표로 삼은 건 이 학교 1학년 때였다. 사사키 감독은 해마다 신입 부원이 들어오면 모든 부원에게 ‘목표달성표’를 나눠준다. 오타니가 ‘사고’를 칠 때마다 언론에 등장하는 그 만다라트 계획표다. 오타니가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중 8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는 걸 목표로 삼았듯, 오마키는 도쿄대 진학을 목표로 세웠다. 그리고 삼수 끝에 목표를 이뤘다. 사사키 감독은 “야구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야구를 잘하는 것만으로 고교 생활을 보내는 건 헛수고이고 아까운 시간 낭비”라며 “근육의 힘은 나이가 들면 떨어지지만 지식과 지혜는 평생 쓸 수 있다. 그래서 야구부원들의 학업 성적이 뒤처지지 않도록, 또 사람으로서 올바른 사고 방식을 갖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사사키 감독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그래야 ‘우리 아들을 이 학교 야구부에 보내야겠다’는 학부모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라며 “사람은 출구가 보이지 않으면 입구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출구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목표달성표를 강조한 것 역시 출구부터 보여줘야 입구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일본 고교야구 최고 유망주로 꼽히는 사사키 린타로(19) 역시 이 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린타로는 고교 3년간 홈런 140개를 날리면서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로 썼다. 그리고 미국 대학 진학을 ‘출구’로 선택했다. 그게 야구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더 큰 기회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린타로의 아버지가 바로 사사키 감독이다. 대한체육회의 ‘은퇴 운동선수 실태조사’ 최신판(2019년)에 따르면 운동선수는 평균 23.6세에 은퇴하며 41.9%가 실업 상태다. 일을 하고 있는 은퇴 선수 중에도 46.8%가 한 달에 200만 원을 못 번다. ‘출구’가 이런 상태인데도 한국 체육계는 중학생은 평균 성적의 40%, 고등학생은 30% 이상을 받아야 대회에 나갈 수 있다는 ‘학생 선수 최저학력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학교 운동부원은 ‘선수 학생’이 아니라 ‘학생 선수’라고 부른다. 선수보다 학생이 앞에 온다. 체육계가 이 사실을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한국에는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은 운동부만 늘어나지 않을까.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
흥국생명은 4일 프로배구 화성 방문 경기 5세트 14-14 듀스 상황에서 표승주(32)에게 오픈 공격을 허용하면서 매치 포인트 위기에 몰렸습니다.게다가 안방 팀 IBK기업은행 서버는 외국인 선수 아베크롬비(29)였습니다.아베크롬비는 여자부에서 올 시즌 서브를 100개 이상 넣은 선수 가운데 상대 팀 서브 리시브 효율(28.9%)을 가장 크게 떨어뜨리는 선수입니다.흥국생명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리베로 박수연(21)이 세터 이원정(24)의 머리 위로 공을 정확하게 띄웠습니다.이어 김연경(36)이 시간차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다시 15-15 듀스가 됐습니다.김연경은 이후 오픈 두 개를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결국 팀에 17-15 승리를 안겼습니다.스포츠 팬들은 이렇게 승부처에 강한 선수를 흔히 ‘클러치 능력이 뛰어나다’고 표현합니다.그리고 현재 프로배구에서 클러치 능력이 가장 뛰어난 선수는 역시 ‘배구 여제’ 김연경입니다.이를 알아보려면 일단 어떤 경우를 ‘클러치 상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정의가 필요합니다.배구는 ‘타이 브레이커’라고 할 수 있는 5세트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25점을 먼저 따는 팀이 이기는 경기입니다.그리고 모든 랠리는 반드시 한 팀 득점으로 끝납니다.이를 종합하면 1~4세트에는 양 팀이 20점 이상을 기록한 상태에서 점수 차이가 2점 이하일 때를 클러치 상황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린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김연경은 이런 상황에서 공격을 총 82번 시도해 그중 44번(53.7%) 성공시켰습니다.반면 상대 팀에 점수를 내준 건 지난해 10월 22일 안방 경기 2세트 20-22 상황에서 페퍼저축은행 야스민(28)에게 블로킹을 당한 한 번뿐입니다.이를 가지고 공격 효율을 계산하면 0.524가 나옵니다.이런 상황에서 공격을 41번 이상 시도한 선수 가운데는 공격 성공률 50%를 기록한 선수도 없습니다.김연경이 이런 상황에서 공격을 82번 시도했기에 그 절반인 41번을 기준으로 삼은 겁니다.이런 클러치 상황에서 김연경보다 공격 시도가 많았던 것도 아베크롬비(90번) 한 명밖에 없습니다.5세트가 되면 김연경은 더욱 무시무시하게 변합니다.양 팀이 모두 12점 이상을 올리고 있는 2점 차 이내 상황에서 김연경은 공격을 9번 시도해 그중 7번(77.8%)을 득점으로 연결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범실은 아예 제로(0)였습니다.다만 김연경 케이스만 봐도 이런 상황 자체가 워낙 적은 게 사실입니다.1~5세트 상황을 합치면 김연경은 클러치 상황에서 공격을 91번 시도해 51번(56.0%) 득점에 성공하면서 딱 한 번 상대 팀에 점수를 내줬습니다(공격 효율 0.549).이런 클러치 상황에서 김연경보다 공격 시도가 많았던 건 역시 아베크롬비(100번) 한 명뿐이고 효율은 0.320이었습니다.그렇다면 ‘클러치 박’ 박정아(31)는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요?박정아는 이런 상황에서 34번 공격을 시도해 11번(32.4%)은 팀에 점수를 안겼지만 4번(11.8%)은 상대 팀에 점수를 헌납했습니다.남자부에서는 레오(34·OK금융그룹)가 클러치 능력이 가장 뛰어난 공격수였습니다.레오는 클러치 상황에서 공격을 72번 시도해 47번(65.8%) 득점에 성공하는 동안 8번(11.1%)은 상대에게 점수를 내줬습니다.클러치 상황에서 30번 이상 스파이크를 날린 국내 선수 가운데는 임동혁(25·대한항공)이 62번 시도 36번(58.1%) 성공, 7번(11.3%) 실패로 가장 결과가 좋았습니다.팀 기준으로는 여자부는 역시 흥국생명(공격 효율 0.431), 남자부는 한국전력(0.418)이 1위였습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출산 후 반년 만에 코트로 돌아온 오사카 나오미(27·일본)가 완승으로 복귀 신고를 마쳤다. 지난해 7월 딸 샤이를 낳은 오사카는 1일 브리즈번 인터내셔널 여자 단식 1회전에서 타마라 코르파치(28·독일·세계랭킹 83위)를 2-0(6-3, 7-6)으로 제압했다.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브리즈번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 오픈(14일 개막) 전초전으로 통한다. 2019, 2021년 호주 오픈 챔피언인 오사카는 지난해 호주 오픈을 앞두고 “개인 사정으로 참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뒤 임신 사실을 공개했다. 그리고 출산 두 달 후인 지난해 US 오픈 기간 “내년에는 코트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고 이번 대회를 통해 468일 만의 복귀전을 치렀다. 2021년 프랑스 오픈 1회전을 마친 뒤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던 오사카는 “딸을 낳기 전에 나는 받는 법은 알아도 주는 법은 모르던 선수였다. 이제는 팬들이 나를 보러 와서 응원해 주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기쁘다”면서 “앞으로는 가능한 한 많은 대회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사카는 2018, 2020년 US 오픈을 포함해 메이저 대회에서 통산 4번 우승했다. 오사카가 앞으로 메이저 대회 우승을 추가하면 마거릿 코트(82·호주), 이본 굴라공(73·호주), 킴 클레이스터르스(41·벨기에)에 이어 메이저 대회 정상을 차지한 역대 네 번째 ‘엄마 선수’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