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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타일과 철창으로 둘러싸인 수감시설. 희뿌연 안개 사이로 하얀 옷을 입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 몸이 돼 바닥을 구른다. 입술이 닿은 채 회전하고, 서로의 신체 굴곡을 따라 미끄러지며 격정적인 춤을 춘다. 8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국내 초연된 댄스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이다. 동명 클래식 발레에서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우아한 2인무 ‘발코니 신’이 세계적 안무가 매슈 본의 손을 거쳐 파격적으로 재창작됐다. 본은 클래식 발레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올리비에상을 무려 9차례 받은 영국의 스타 안무가다.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된 건 2019년 ‘백조의 호수’ 이후 5년 만이다. ‘두 젊은 남녀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소재를 제외하곤 원작의 서사는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현대적으로 각색됐다. 원작인 셰익스피어 동명 소설의 큰 틀을 이루는 두 가문 간 갈등은 등장조차 않는다. 또 원작의 배경인 이탈리아 베로나 공국은 청소년 교정시설 ‘베로나 인스티튜트’로 탈바꿈했다. 주인공 줄리엣은 내면의 악마와 싸우는 문제아로, 로미오의 두 친구는 동성 연인으로 등장해 성 정체성과 폭력, 사랑 등 오늘날 젊은이들이 맞닥뜨린 문제를 중점적으로 비춘다. 대사, 마임 없이도 서사를 촘촘하게 보여주는 안무는 연극을 보는 듯한 재미를 줬다. 경비원에게 학대받는 친구를 구출하고자 다급히 뛰어다니며 머리를 싸매는 동작 등은 상황을 직관적으로 전달했다. 음악을 시각화한 안무도 강점이다. 통상 발레 공연에서 볼 수 없는 앞구르기, 주먹 지르기 등의 동작을 활용해 박자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다만 1300여 석 규모 대극장의 무대를 채우기엔 군무 등이 빈약했고, 무대 연출에서도 허전함이 느껴졌다. 공연은 23∼26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이어진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긴축 정책. 경제 불황을 맞닥뜨린 정부가 흔히 꺼내 드는 카드다. 그런데 허리띠를 졸라 결국 ‘잘사는’ 이들이 누구인지 다른 시각으로 따져 보면 이렇다. 재정 부족에 직면한 정부는 공공서비스부터 손댄다. 복지 지출은 줄이고 민영화, 고용 규제 완화에 시동을 건다. 대다수 국민에게는 근검절약을 강조하며 각자도생을 권하지만 역진적 과세를 통해 소수의 투자자가 져야 하는 부담은 덜어준다. 미국 뉴욕의 더뉴스쿨에서 진보경제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쓴 책의 내용이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는 오늘날 저자는 자본 질서를 재평가하는 데 천착해 왔다. 저자는 “널리 당연시되는 긴축의 성과를 토론 대상으로 삼아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함”이라고 저술 의도를 밝힌다. 책은 긴축 정책이 소득계층의 불평등을 악화했다고 주장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 쟁의가 확산하자 영국, 이탈리아 정부가 지배층의 부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방책으로써 긴축을 펼쳤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이 더 열심히 일하되 덜 소비하고, 정부로부터 받고자 하는 기대치를 낮췄다. 이는 민간 부문과 자본주의식 생산에 공적 투자를 집중시켰다”고 한다. 저자 스스로도 “당파적이라 치부되기 쉽다”고 한 긴축의 악영향은 객관적 통계 자료로 입증한다. 총 10개 챕터 가운데 제9장과 10장에서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실질임금 및 노동분배율 추이 등을 통해 긴축의 정치경제적 여파를 보여준다. 1923년 영국의 긴축 정책으로 공공 예산이 삭감되자 육체노동자의 주당 평균 소득은 2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책의 피날레는 ‘제11장’이나 다름없는 총 1255개의 주석이다. 논증이 이뤄지는 대목마다 빼곡히 달린 주석을 따라가다 보면 마천루처럼 번쩍이는 경제사의 뒤편을 들춰보는 듯한 재미가 느껴진다. 불황마다 들려오는 “허리띠 졸라매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가져볼 수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서정적인 낭만발레 ‘돈키호테’부터 전쟁의 아픔을 꼬집는 컨템포러리 발레 ‘올리브’까지…. 총 12편의 다채로운 발레 공연이 모인 ‘제14회 대한민국발레축제’가 다음 달 23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다. 우선 국내 양대 발레단이 참여해 발길을 모은다. 국립발레단은 다음 달 5∼9일 주요 레퍼토리 작품인 ‘돈키호테’를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전설적인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를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인 송정빈이 재안무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이달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CJ토월극장에서 꿈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는 무용수들의 삶을 춤과 대화로 유쾌하게 그려낸 ‘더 발레리나’를 공연한다. 오늘날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 공연들도 눈길을 끈다. 다음 달 13, 14일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가 선보이는 ‘Foggy 하지마’는 환경오염에 대한 작품이다. 공기 정화 마스크가 없으면 숨조차 쉴 수 없는 미래가 배경이다. 아함아트프로젝트의 ‘올리브’는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겪는 아픔과 그리움, 욕망 등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준다. 다음 달 22, 23일 공연된다. 문학 작품을 재창작한 발레도 펼쳐진다. ‘양영은 비욘드발레’는 주인공들의 순수한 사랑과 이별을 그린 ‘국화꽃 향기’를 다음 달 18, 19일 선보인다. 드라마 ‘가을동화’로 제작돼 사랑받은 김하인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프로젝트 클라우드 나인’의 ‘황폐한 땅’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황폐한 집’을 각색했다. 책임감을 잃은 사회상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다음 달 22, 23일 공연된다. 한편 다음 달 29일부터는 화성, 부산, 춘천, 제주 등 4개 지역에서 축제가 이어진다. 7월 20일까지 갈라 공연 3편과 기획포럼 1건이 진행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묵은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무실을 가득 채웠던 공연 자료와 참고 서적들이 모두 빠져 공간은 휑했다. 20년 된 낡은 냉난방기와 빈 책상, 의자 2개만 우두커니 서 있다.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 4층에 있는 김민기의 사무실은 빠르게 을씨년스러워져 있었다. 김민기가 이끌어온 소극장 학전이 3월 15일 폐관된 이후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7일 저녁 건물 관계자의 협조로 학전의 출입문을 다시 열어 볼 수 있었다. 극장 지하의 공연장에 들어서자 습한 기운과 함께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디선가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천장을 올려다 보니 조명 사이사이에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바닥엔 대야와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심각한 재정난을 겪던 학전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배우도, 관객도, 그리고 연출자인 김민기도 떠난 텅 빈 공연장. 아동극이 올려졌던 이곳에 퍼졌던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어느덧 먼 옛날 얘기가 된 듯했다. 극장 외벽에 튼튼하게 내걸렸던 ‘학전’이란 현판도 형체 없이 사라졌다. 김민기가 걸었던 곳을 따라 근처의 한 청국장 집으로 길을 잡았다. 김민기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통 오후 5시에 혼자 이곳을 찾았다. 봄이고 가을이고 허름한 야외 테이블에 앉아 김치청국장을 시켰고, 막걸리를 들이켰다. 몇 시간이고 느긋이 사색을 즐겼다고. 주인 김정득 씨는 “지난해 말 입원하기 사나흘 전에 찾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매일 보던 모습을 보지 못하니 많이 그립다”고 했다. 학전 식구들은 이 식당에서 장부를 달아 놓고 자유롭게 먹었다. ‘적어도 배는 곯지 않아야 한다’는 김민기식의 직원 복지 정책이었다. 대학로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인 학림다방 단골 손님 가운데에도 김민기가 있다. 이충열 학림다방 대표는 김민기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형님(김민기) 음반을 틀었다가 엄청 혼났었다”고 했다. 그는 “형님의 부탁으로 보도용 공연 사진을 제가 찍어왔다”면서 “학전의 공연 사진을 다시 찍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이렇게 큰 무대에 두 번이나 섰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상까지 받아 과분할 따름입니다. 더 성실히 노력해 좋은 무용수가 돼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54회 동아무용콩쿠르 본선에서 일반부 여자 한국무용 창작부문 금상을 수상한 김경빈 씨(21·이화여대 4년)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김 씨는 4년 전 동아무용콩쿠르에 참가해 고등부 같은 부문 은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그는 “4년 전엔 큰 대회라 욕심이 났고 긴장도 많이 한 탓에 당시 무대에서 실수를 했다. 이번에는 ‘내가 만족하는 무대를 만들자’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렸다”고 말했다. 김 씨는 부채춤과 화관무를 창시한 김백봉 선생(1927∼2023)을 기려 올해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부상으로 신설된 김백봉상도 받았다. 김백봉상은 일반부 한국무용 창작부문 남녀 금상 수상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심사위원 명단과 본선 채점표는 동아무용콩쿠르 사이트(www.donga.com/concours/dan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콩쿠르 실황 동영상도 이번 주 이 사이트에 공개한다.수상자 명단 ◇일반부 ▽한국무용 전통(여) △금상 권지아(20·한예종 3년) △은상 이수림(26·한예종 졸업) △동상 김시은(20·성신여대 2년) ▽한국무용 전통(남) △금상 김시백(25·세종대 졸업) △은상 이승훈(23·한양대 졸업) △동상 이현규(20·한예종 3년) ▽한국무용 창작(여) △금상 김경빈(21·이화여대 4년) △은상 신유민(20·한예종 3년) △동상 조수경(21·경희대 4년) ▽한국무용 창작(남) △금상 김규년(23·한예종 전문사 2년) △은상 박준섭(21·한예종 4년) △동상 육지현(23·단국대 4년) ▽현대무용(여) △금상 옥모성(23·한성대 4년) △은상 임재령(21·경희대 4년) △동상 이예지(22·한양대 4년) ▽현대무용(남) △금상 김승욱(20·한양대 에리카 3년) △은상 김현진(21·한성대 3년) △동상 전진우(22·강원대 졸업) 장예성(22·한양대 에리카 4년) ▽발레(여) △금상 류희정(20·한예종 3년) △은상 이윤서(20·한예종 3년) △동상 김민주(20·한예종 3년) ◇고등부 ▽한국무용 전통 △금상 이승현(18·계원예고 3년) △은상 홍서연(17·계원예고 3년) △동상 김은서(18·고양예고 3년) ▽한국무용 창작 △금상 이시환(17·서울예고 3년) △은상 전지우(18·서울예고 3년) △동상 박초아(16·계원예고 2년) ▽현대무용 △금상 오수민(18·서울예고 3년) △은상 홍석인(17·보라고 3년) △동상 양정윤(17·덕원여고 3년) ▽발레 △금상 이세령(17·서울예고 2년) △은상 방수혁(16·선화예고 2년) △동상 박윤재(15·서울예고 1년) ◇중등부 ▽발레 △금상 인지영(15·선화예중 3년) 김설아(14·예원학교 3년) △동상 김하은(14·계원예중 3년) △장려상 박시현(14·홈스쿨링) 이예원(14·예원학교 2년) 이의소(14·예원학교 3년) 김아윤(14·선화예중 3년) 윤하랑(15·선화예중 3년) 권오성(14·선화예중 3년) 안하랑(13·교문중 2년) 김주안(15·예원학교 3년) 신민아(14·예원학교 2년) ◇초등부 ▽발레 △금상 공지민(11·운중초 6년) △은상 박수영(12·운현초 6년) △동상 박희훈(11·서울인왕초 6년) △장려상 김채이(12·서울대도초 6년) 신아윤(11·서울버들초 6년) 오제인(12·새빛초 6년) 한예주(11·서울도성초 6년) 민채원(12·서울잠신초 6년) 김효은(12·서울중랑초 6년) 이현승(11·인천창신초 6년)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학전’ 폐관 두달, 위암과 싸우는 김민기 굳게 닫혔던 문을 열자 묵은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울 대학로 학전 건물의 4층 사무실. 김민기(사진)가 떠난 빈자리엔 그가 피우던 담배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위암 4기로 경기 고양시 일산 집에서 칩거하는 그의 ‘지금’을 살펴봤다.》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찬다. 머리카락도 부쩍 빠진다. 손발 끝은 항암치료 때문에 어느새 새까매졌다. 지인들이 경기 고양시 일산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하지만 이젠 만나기 부담스러울 정도다. 뒤늦게 대중도 그를 찾는다. 그의 옛날 노래를 다시 듣고, 과거 동영상을 일부러 찾아본다. 관심이 ‘반짝’ 높아진 것과 상관없이 그는 대중 앞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가수이자 극단 학전(學田)의 대표 김민기(73) 얘기다. 그가 33년을 일군 극단 학전이 3월 15일 폐관된 지 두 달 가까이 됐다. 정부는 옛 학전 공간에 새 어린이극장 개관을 추진하며 ‘학전’이란 이름을 넣고 싶어 했다. 하지만 최근 김민기는 이렇게 말했단다. “내가 뭐라고 이름을 남기겠나.”● “고맙다” “미안하다” 지난 6개월간은 김민기에게 가슴 아픈 시간이었다. 위암 4기였는데 간으로 전이가 됐고, 학전의 운영 상태도 악화됐기 때문. 지난해 늦가을 서울 종로구 한 한옥 마당에서 열린 차남의 결혼식. 김민기는 지인들에게 “학전 문을 닫아야겠다”고 읊조렸다. 별다른 설명도 없었다. 김민기의 한 경기고, 서울대 동창은 “민기가 평소 말랐었는데 그날 보니 많이 부어 있더라”라고 했다. 그해 11월 김민기는 학전의 폐관 결정을 대외적으로 알리게 된다. 한 달여 뒤 12월 31일 학전의 송년회 자리.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김민기가 들어오자 주위는 차분해졌다. 할 말이 많은 자리였지만, 김민기는 말을 아꼈다. “고맙다” “미안하다” 정도. 학전 출신 배우 이황의는 “치료가 힘드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저희도 폐관에 대해 물어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학전의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주위의 관심이 커졌다. 물론 김민기도 학전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위탁 운영도 의논했다. 하지만 김민기는 스스로 학전이란 이름을 지우기로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다른 곳에서 운영한다고 되겠나. 그건 아닌 거 같다.”33년간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못자리’라고 자임했던 학전의 정체성이 외부에 의해 훼손될 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 “우리는 김민기를 잊고 있었다” 학전은 1994년 창립 이후로 30년 동안 계속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명 캐릭터 공연에 밀려 김민기의 창작 어린이극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폐관 결정이 나서야 김민기는 대중의 관심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극심한 경영 위기와 김민기의 나빠진 건강 상태에 사람들은 적지 않게 놀랐고, ‘인간 김민기’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방송사들은 다큐멘터리와 예능을 통해 김민기를 재조명했다. 중년층에게는 그와 함께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지금 젊은층에게는 잘 몰랐던 우리 대중문화계 ‘큰어른’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런 뒤늦은 깨달음은 김민기의 선후배들도 다르지 않았다. 강헌 음악평론가는 “김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뒤 학전 출신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들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민기 형이 그렇게까지 아픈 줄 몰랐다’는 말들이 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도 그럴 것이 김민기는 자신의 병세에 대해 주위에 전혀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가수 한영애는 “걱정되고 염려는 되지만 일부러 전화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분이 그런 것(안부 전화)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건강해지길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학전’ 이을 이름 찾는 ‘대국민 공모전’ 김민기가 이끌던 대학로 학전 건물은 시설 개·보수를 거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아시테지 코리아)가 7월부터 어린이·청소년 공연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김민기가 사재까지 털어가며 유지해온 학전 공간의 운영을 사실상 정부가 맡게 된 것이다. 정부는 학전의 리모델링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정유란 아시테지 이사는 “처음 학전을 찾았을 때 너무 낡아서 현대적으로 싹 고치자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부 논의 결과 현재 학전의 모습 자체가 학전의 역사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내부 구조 변경도 최소화하고 대대적인 도색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공연장이 문을 열면 이전 학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방지영 아시테지 이사장은 “학전에 이어 새롭게 마련되는 공연장은 어린이극을 창작하고 제작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여러 공연을 시도하고, 그것을 어린이·청소년들과 직접 선보이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학전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활용해 어린이극 제작의 링크와 허브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공연장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김민기가 떠난 학전은 이제 ‘구(舊)학전’이라 불리고 있다. 새 공연장 이름을 짓기 위한 ‘대국민 극장명 공모전’은 9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배우 이호재, 전무송, 박정자 등 ‘연극계 거목’들이 대거 출연하는 연극 ‘햄릿’과 황정민 주연의 연극 ‘맥베스’가 올여름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17세기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손꼽히는 두 작품을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로 만나볼 수 있는 것. 6월 9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햄릿’은 원로 배우와 창작진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2016년 초연 당시 28회 전 회차 전석이 매진된 작품으로,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이다. 김성녀, 남명렬, 손숙, 정동환 등 ‘대선배’ 배우들부터 양승리, 이충주 등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드는 젊은 배우들까지 총 24명의 화려한 출연진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햄릿 역은 강필석과 이승주가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지낸 손진책 연출가와 이태섭 무대디자이너의 협업도 눈길을 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로도 유명한 연극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독살된 선왕의 원수를 갚고자 선과 악 사이에서 느끼는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초연, 재연과 비교해 이번 공연에선 ‘죽음’이라는 주제 의식이 강조된다. 손 연출가는 “관객이 ‘햄릿’을 보며 역설적으로 삶을 반추하게끔 하는 것이 목표”라며 “배우들은 마치 죽은 영혼들처럼 연기함으로써 삶과 죽음 간 경계를 더 적극적으로 허문다”고 말했다. 배우 황정민이 주인공 역을 맡아 화제가 된 연극 ‘맥베스’는 7월 13일부터 8월 18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을 따라 국왕을 살해한 뒤 왕좌에 오르지만 끝내 파멸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연극 ‘리차드 3세’ 등을 만든 공연제작사 샘컴퍼니가 제작해 처음 선을 보인다. 연출은 연극 ‘파우스트’ ‘코리올라누스’ 등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열중해 온 양정웅 연출가가 맡았다. 양 연출가는 “4대 비극 중 가장 마지막에 쓰인 만큼 서사와 주제 의식이 군더더기 없이 압축적으로 담긴 수작”이라며 “원작을 최대한 충실하게 담아내되, 시각적으로는 현대적 감성을 전달하려 한다”고 말했다. 무대는 여신동 무대디자이너가 맡았다. 황정민이 연극 무대에 서는 건 2022년 ‘리차드 3세’ 이후 2년 만이다. 배우 송일국과 송영창이 각각 뱅코우, 덩컨 역을 맡아 호흡을 맞춘다. 레이디 맥베스 역은 김소진이, 맥더프 역은 남윤호가 연기한다. 모든 배우는 전 회차 단일 캐스트로 출연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프로 무대 경력 5년 이상.’ 극단 단원 모집 공고를 본 ‘나’의 얼굴에 비장함과 혼란스러움이 동시에 번진다. 온몸과 휠체어 사이를 샅샅이 뒤지며 ‘경력’을 찾지만 손에 잡혀 나오는 건 먼지뿐. ‘나’는 “혼자 버텨온 시간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었다”고 되뇌며 휠체어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땅바닥을 뒹군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자격을 구축하기 위한, 오디션을 준비하기 위한 경력”을 쌓을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3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의 연습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작품은 한 예술가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는 ‘인정투쟁’을 들여다보는 내용으로 28일부터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 2019년 초연과 마찬가지로 뇌병변장애, 골형성부전증, 언어장애 등 출연 배우 6명 전원이 장애인으로 구성됐다.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하지성, 김지수 등은 ‘나’의 내면에서 여러 줄기로 갈라지는 목소리를 연기한다. 이연주 연출가가 이 작품으로 2019년 제56회 동아연극상 신인 연출상을 받았다. 초연과 달라진 건 장애인 배우들의 몸 본연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부각했다는 점이다. 신가은 두산아트센터 PD는 “무대를 객석이 둘러싼 형태로 바꿔 각자의 몸이 갖는 고유성이 관객에게 더 잘 보이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22∼28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국내 초연되는 연극 ‘젤리피쉬’에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배우 백지윤이 무대에 올라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주인공 켈리 역을 연기한다. 스물일곱 살 켈리의 사랑과 성장을 통속적인 로맨스물로 그려낸 작품으로,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이 희곡을 썼다. 켈리가 비장애인 연인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면서 겪는 현실적 고민을 진솔하게 다룬다. 배우 김범진, 김바다, 정수영 등이 출연해 호흡을 맞춘다. 이처럼 장애인 배우들이 출연해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연기하는 작품 두 편이 관객을 만난다. 그동안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배역과 연기 양식을 따르던 데서 벗어나 장애인 배우의 움직임과 발성으로 배역이 완성되는 것이 특징. 이들 작품 속에서 장애인 배우는 단지 서사적 소재를 넘어 주체적이고 완전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인정투쟁’의 배우 하지성은 “연기는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인 동시에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작업이다. 내 언어장애가 담긴 대사로 ‘나’를 이야기하는 작품이기에 더 주체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같은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 김지수는 “장애로 만든 드라마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이 출연하는 작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관객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습 과정이 색다르게 진행되기도 했다. ‘젤리피쉬’에선 모든 출연진이 함께 감각 워크숍과 공간인지 훈련 등을 수차례 진행했다. 민새롬 연출가는 “기존의 연습 방식은 다양한 개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아 참여 장벽이 높다”면서 “공간과 관계를 맺는 훈련을 통해 연습실 내 불안지수를 낮추려고 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반세기 동안 고도를 기다리던 사나이가 떠났다. 한국 연극계의 거목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가 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의 아들 임수현 산울림 예술감독(서울여대 불문과 교수)은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생 연극에 헌신하신 아버지가 1년 가까이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며 “1985년 개관한 산울림 소극장 40주년을 맞아 내년에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란 갔던 휘문고 2학년 때 연극제를 열 정도로 당돌하고 끼 많은 소년이었다. 서라벌예대 연극영화학과 재학 시절인 1955년 연극 ‘사육신’으로 연출 데뷔했다. 졸업한 후 신문기자를 거쳐 동아방송과 KBS에서 PD로 일했다. 고인은 2016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아방송에서 PD로 재직하며 연극 연출 작업을 동시에 했었다”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회사와 선후배들이 후원자였던 것 같다”고 했다. 고인의 인생을 바꾼 건 부조리극의 대표적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다. 두 부랑자가 시종일관 얼토당토아니한 대화를 나누며 ‘고도’라는 정체불명의 인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작품이다. 고인은 1969년 초연한 이 작품의 성공을 계기로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 배우인 김성옥 함현진 김무생 김인태와 윤여정 박정자 손숙 윤소정 사미자 김용림이 산울림 창단 멤버다. 이후 50여 년간 1500여 회 공연에 22만여 명이 고인의 공연을 봤다. 고인은 2012년 “나도, 극단 산울림도, 산울림 소극장도 ‘고도’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고인은 1985년 아내인 오증자 서울여대 명예교수(89)와 사재를 털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산울림 소극장을 열었다. 23㎡(약 7평) 크기의 무대에 객석 74석의 작은 공간이었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소극장을 유지하기 위해 고인은 말년까지 극장 건물 3층에 살았다. 극장 건물 3층에서 자란 아들이 산울림 예술감독, 딸이 산울림 극장장으로 아버지의 꿈을 잇고 있다. 산울림은 ‘연극학교’로 불리며 수많은 연출가와 배우를 배출했다. 특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을 평일 낮에 공연해 주부에게 인기를 끌었다. 박정자의 ‘위기의 여자’, 윤석화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손숙의 ‘담배 피우는 여자’가 대표작이다. 배우 손숙은 이날 “산울림은 남성 배우들이 차지하던 연극판에 주부를 불러들이고, 여성 배우 전성시대를 열었다”며 “고인은 열악한 시절 오직 뚝심만으로 연극계의 지평을 넓혔다”고 했다. 고인은 1985년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로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받았다. 또 그가 이끈 극단 산울림은 1986년 대상(‘위기의 여자’) 등 동아연극상을 총 23회 수상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던 고인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1995년) 동랑연극상(1995년) 보관문화훈장(2004년) 금관문화훈장(2016년)을 받았다. 한국 최초로 1989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국립극단 이사,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초대 회장 등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2019년 “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라며 “반세기 외길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증자 교수, 아들 수현 산울림 예술감독, 딸 수진 산울림 극장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7일 오전 8시.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현지 제작진과 함께 무대에 올린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인 토니상의 의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토니상 주최 측에 따르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의상디자인을 맡은 린다 조는 토니상 최고 의상디자인 부문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지난달 25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 개막했다. 린다 조는 앞서 뮤지컬 ‘신사들을 위한 사랑과 살인 설명법’으로 2014년 토니상 의상상을 받은 바 있다. 토니상 시상식은 6월 16일 뉴욕에서 열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꼭 봐야 하는 공연의 마지막 회차. 예매에 실패한 내게 남은 기회는 당일 취소표뿐. 악천후를 뚫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헐떡이며 극장으로 달려간다. 겨우 한두 장 나올 취소표 대기줄에는 벌써 두 명이 와 있다. 그런데 한 명은 가방만 둔 채다. 내가 내는 세금을 받아 일하는 매표소 직원에게 문제를 제기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줄은 알아서 서세요”.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고 나는 ‘지성인답게’ 말한다. “제가 이해하는 공정함과 상식에 따르면 이건 아니죠.”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 중인 연극 ‘더 라스트 리턴’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일랜드 극작가 소냐 켈리가 쓴 희곡이 원작이다. 인기 공연의 마지막 취소표를 두고 벌이는 다툼을 세밀한 대사로 그려냈다. 배우 최희진, 정승길, 이송아 등이 출연해 권리의 본질과, 이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공연에는 주류와 비주류, 특혜와 차별을 동시에 오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심각한 신장질환을 앓는 퇴출 직전의 교수, 외국계 기업을 다니다 밑바닥 신세로 전락한 직원, 전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군인 등이 저마다 절박한 사정을 하소연하며 억지에 가까운 논리를 펼친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말다툼에 따라 오르내리는 각 인물의 대기순번을 보면서 관객은 자신의 지위와 시스템의 정당성에 대해 따져보게 된다. 어느새 흐릿해진 목적 의식 속에서 맹목적으로 다투는 아이러니는 희극적 연출로 강조됐다. 피비린내 나는 총성에 이어 울려 퍼지는 해맑은 음악은 쓴웃음을 유발한다. 무대 세트는 마치 장난감 나라처럼 꾸며져 객석과 심리적 거리감을 만든다. 이는 낯 부끄러울 정도로 닮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비춰보게 하는 효과를 낸다. 공연은 허를 찌르는 반전과 함께 다소 허망하게 끝난다. 그러나 여백 많은 결말은 오히려 이 투쟁의 목적과 결과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곱씹을 여지를 준다. 이미 견고히 세워진, “도착 순서대로 번호표를 받는 간단한 시스템” 안에서 “밀치고 훔쳐서라도 앞으로 가야 하는” 투쟁의 끝은 모두의 안녕과 평화이어야 하지 않을까. 전석 3만5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극 ‘욘’이 열리는 극장에 들어서자 차가운 숲 내음이 코끝에 닿았다. 작품의 주인공 욘이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숲을 표현한 향기, 바질과 측백나무 향내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이는 관객 밀집도, 출입문 열림 횟수 등 변수에 맞춰 로비 내 발향 기기 2대로 조절한 농도였다. 관객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시향지에는 온라인 프로그램북으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찍혀 있어 공연이 끝나고도 작품 감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최근 공연계가 작품, 극장에 어울리는 향기로 시청각을 넘어 관객 후각까지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무대 위 화원의 문이 열릴 때마다 은은한 꽃 향과 흙 내음이 객석 전체에 퍼지게끔 했다. 조향 업체와 약 2개월간 논의 끝에 ‘누구나 아름답게 기억할’ 향을 개발한 것. 뒷좌석 관객들도 같은 농도의 향을 맡을 수 있도록 중형 서큘레이터 한 대로 극장 내 공기 순환을 조절했다. 제작사뿐 아닌 극장들도 향기 마케팅에 나섰다. 현재 뮤지컬 ‘헤드윅’이 공연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 들어서면 ‘뒷골목 오래된 펍’이 연상되는 달콤하면서도 뇌쇄적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조향 업체와 협업해 주인공 헤드윅이 공연했을 듯한 공간의 향을 제작한 것. 라벤더와 머스크, 바닐라의 달콤함이 어우러진 향은 로비에 설치된 발향 기기 2대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분 30초마다 분사된다. 극장 자체를 대표하는 향기를 만들기도 한다. LG아트센터 서울은 2022년 서울 강서구로 이전 개관하면서 알싸한 나무 느낌의 시그니처 향 ‘136’을 제작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공연장 내 타원형 통로인 ‘튜브’에서 영감을 받은 향이다. 객석과 사무공간을 제외하고 튜브를 중심으로 매일 오전 11시부터 12시간가량 건물 내부 공조 시스템을 통해 분사된다. 캔들, 방향제 등 상품으로도 제작해 극장에서 판매 중이다. 이는 향기를 통해 관객의 공연 몰입도를 높이고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게끔 하기 위함이다. ‘비밀의 화원’을 연출한 이기쁨 연출가는 “4DX 영화처럼 또 하나의 감각을 사용했을 때 작품이 훨씬 생생하게 와닿는다”며 “통상 공연이 시각과 청각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후각을 통해 환상적인 몰입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샤롯데씨어터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의 윤세인 공연사업팀장은 “마니아층이 아닌 관객도 공연을 즐기고 기억할 방법의 일환”이라며 “향을 통해 극장이 단지 공연만 보고 마는 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공연계 향기 마케팅은 이색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관객 발길을 모으려면 ‘경험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작용됐다. 연극 ‘욘’을 제작한 서울시극단의 박지환 PD는 “오늘날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며 “연극 ‘욘’을 시작으로 올해 남은 작품 3편 모두 맞춤형 향기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지인 LG아트센터 홍보마케팅팀장은 “공연장에 오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현장성’이라는 장르 특성을 살려 공감각적 요소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MZ세대 젊은 관객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머시브 공연 등 관객과 공연을 적극적으로 연동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향기 마케팅 역시 그 사례다. 공연장의 형태, 활용 방식 등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시내 박물관과 공연단체들이 각양각색의 행사와 공연을 선보인다. 아이 손 잡고, 즐겁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들이 가득하다. 관람이 끝나고 아쉬운 분들을 위해 주변 볼거리도 함께 소개한다. ● 어린이박물관 즐기고, 서커스도 보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달 4∼6일 산하 어린이박물관의 입장 인원을 하루 1300명에서 1800명으로 늘린다. 어린이박물관에서는 예부터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진 해, 산, 물, 거북 등을 다룬 ‘십장생, 열 가지 이야기’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다. 관람일 2주 전부터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며, 예약이 찼더라도 당일 노쇼 인원만큼 현장 관람이 가능하다.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을 마쳤다면 도보로 6, 7분 거리의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는 ‘어린이, 한글과 놀자’ 행사를 찾을 만하다. 어린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야외마당에서 서커스 음악극, 비눗방울 퍼포먼스, 코미디 마술, 한글 퀴즈 맞히기, 책갈피 만들기 등이 진행된다. 한글박물관 행사를 찾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인근 용산가족공원 산책을 추천한다. 야외 조각상과 연못을 구경한 뒤 너른 풀밭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서울 도심권에서는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과 인근 고궁 나들이를 고려할 만하다. 어린이날 민속박물관에서는 아이들이 분리수거를 실천하며 맑은 물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국악 뮤지컬 ‘동동마을을 구해주세요!’를 선보인다. 민속박물관과 이어져 있는 경복궁뿐 아니라 창덕궁에서는 1∼5일 ‘어린이 궁중문화축전’이 열린다. 경복궁에선 조선시대 군인인 갑사(甲士)의 선발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창경궁 통명전에서는 도장을 활용해 왕실 잔치 의궤도를 그리는 ‘화원 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서울 강남권에서는 3일 개관하는 송파구 서울어린이백제박물관을 찾을 만하다. 1991년 문을 연 몽촌역사관을 전면 개편한 곳으로, 인터랙티브 영상 등을 활용해 전시장을 새로 꾸몄다. 이곳에서는 ‘열려라 백제 왕성’ 등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백제 역사를 설명한 전시를 볼 수 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에는 백제 초기 왕성 터로 박물관과 맞닿아 있는 몽촌토성을 둘러볼 수 있다. 몽촌토성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에는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지인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있다.● 동화책이 현실로…청와대도 ‘눈높이 개방’ 어린이날을 맞아 다채로운 기획 공연들도 열린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뮤지컬 배우들이 디즈니 만화영화 속 OST를 영어로 들려주는 ‘2024 디즈니 인 콘서트’가 열린다. ‘인어공주’, ‘라이온 킹’부터 ‘겨울왕국’, ‘위시’ 등 최근 개봉작까지 아우른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디즈니 만화 영화도 감상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뮤지컬 배우 김환희, 이아름솔, 최민우, 이종석이 화음을 맞춘다. 4만4000∼11만 원. 인기 동화를 재창작한 뮤지컬도 눈길을 끈다. 서울 마포구 마포문화센터 아트홀맥에서는 뮤지컬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이 무대에 오른다. 일본의 판타지 동화 작가 히로시마 레이코가 쓴 동명의 스테디셀러가 원작. 오래된 과자가게 전천당이 기묘한 힘을 가진 과자로 하루 한 명의 고민을 해결해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5만∼7만 원. 서울 광진구 상상나라 극장에서는 영국의 유명 그림책을 무대화한 뮤지컬 ‘고릴라’가 펼쳐진다.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통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앤서니 브라운이 원작을 썼다. 공연은 일하느라 바쁜 아빠로부터 주인공 한나가 고릴라 인형을 선물로 받으면서 시작된다. 한나의 꿈에 고릴라 인형이 나타나 함께 동물원에 놀러가는 여정을 환상적으로 풀어냈다. 전석 4만 원. 어린이들의 오감을 자극할 체험형 공연도 열린다. 서울 성북구 하땅세극장에선 가족극 ‘오버코트’가 공연된다. 매일 출근 전쟁을 치르는 아빠와 놀고 싶은 딸 제인의 이야기를 미디어 아트와 라이브 음악으로 풀어냈다. 공연이 끝난 뒤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제인 역의 배우와 털실을 가지고 노는 행사가 이어진다. 전석 3만 원. 청와대 개방 2주년을 맞아 열리는 아동 그림 전시는 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동심을 다룬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 2층에서 1일부터 6월 3일까지 ‘희망을 그리는 아이들: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이 열린다.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자신의 일상과 희망을 그린 그림 15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금까지 연기했던 배역 중 가장 차갑고 건조한 인물이에요. 평소 웃음이 많지만 영화에선 웃는 장면이 거의 없죠. 포커페이스의 고독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29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영화 ‘설계자’ 제작보고회에서 주인공 영일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이 자신의 배역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음 달 29일 개봉하는 ‘설계자’는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완벽한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홍콩 영화 ‘엑시던트’(2009년)가 원작. 연출은 영화 ‘범죄의 여왕’(2016년)을 만든 이요섭 감독이 맡았다. 영화는 영일이 이끄는 팀 ‘삼광보안’이 한 유력 인사를 처리해 달라는 위험한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간 다수의 액션, 범죄 영화에서 지능범죄 수사팀장(‘마스터’), 꽃미남 사기꾼(‘검사외전’) 역할 등을 연기해 온 강동원은 “살인을 조작한다는 신선한 세계관에 이끌려 출연을 결정했다”며 “영일은 누구도 믿지 못하는 완벽주의자 캐릭터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삼광보안의 베테랑 팀원 재키 역은 배우 이미숙이 연기한다. 영화 출연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그는 “기존에 해온 역할과는 상반된 캐릭터라 걱정도 되고, 욕심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총, 칼 등 흉기 하나 없이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풀어낸다. 이 감독은 “일상적 요소들이 오히려 흉기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연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며 “삼광보안의 사무실이 위치한 전자상가는 ‘킬러가 숨어 있어도 모를’ 평범한 공간이기에 배경으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짜뉴스, 사이버 레커(악의적 영상 편집 등으로 조회수 올리는 유튜버) 등 요소를 추가해 현재의 한국 관객에게도 현실감을 주려 했다”고 말했다. 자극적 이슈몰이에 혈안이 된 ‘사이버 레커’ 역은 이동휘가, 사고 처리를 맡는 보험전문가 역은 이무생이 연기한다. 이무생은 “관객의 시선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는 미묘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내 편인 듯 내 편 아닌’ 이들을 의심하면서 관람하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요즘 일은 좀 어때?” 사람 여럿이 모이면 흔히 나오는 질문이다. “여전히 바쁘다”는 대답 역시 단골이다. 그런데 스스로 정직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다. 업무시간 중 정확히 무엇을 하느라 바빴는지 말이다. 혹시 바쁨이 그저 지속적인 상태라면 ‘가짜 노동’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전작 ‘가짜 노동’을 통해 오늘날의 과잉 노동을 비판한 덴마크 출신 사회인류학자다. 가짜 노동이란 ‘업무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속이나 의미가 없는 행위’를 말한다. 자동화, 스마트폰 등 각종 기술이 보급되면서 업무의 효율성은 꾸준히 높아졌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노동시간은 더 이상 줄지 않았다.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근무시간에 따라 대가를 받는 구조의 맹점을 지적한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게 됐지만, 업무의 가치를 측정할 기준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만족감을 주는 업무를 하면서 시간을 채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예로 번듯하게 들리지만 핵심은 없는 ‘헛소리’ 소통 방식을 든다. 현실적으로 가치 없는 일을 ‘잠재적 발전 가능성이 있는 도구’로 포장하는 식이다. 공자 왈 맹자 왈 식으로 논하는 책은 아니다. 조직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예컨대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 조직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애자일(agile)’ 경영 방식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애자일이 실제 도입됐을 때 직원들이 업무에 적응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과 불필요한 노동을 투입해야 하는지 등을 단계적으로 짚어 봐야 한다는 것. 경영자는 물론이고 말단 직원에게도 유용하다. 구인 광고에서 ‘가짜 노동’을 걸러내는 팁부터 조언한다. ‘당신은 새로운 계획의 개발에 참여한다’는 통상적인 설명 문구에 대해 저자는 “그 계획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지 않다면 결과적으로 당신의 업무는 무언가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최대 음반 기획사인 하이브가 25일 산하 레이블이자 걸그룹 뉴진스의 소속사인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와 부대표 A 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 용산경찰서에 고발했다. “경영권 탈취 시도가 있다”며 어도어에 대한 감사에 나선 지 사흘 만이다. 어도어의 민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경영권 찬탈 계획 의도도, 실행한 적도 없다”고 반박하며 맞소송에 나설 뜻을 밝혔다. 글로벌 음반 기획사의 본사와 자회사가 치열한 법적 공방에 본격 돌입하게 된 것이다. ● 하이브 “물증 확보” vs 민희진 “직장인 푸념일 뿐” 이날 하루 양측은 치열한 진실 공방에 나섰다. 하이브는 오전 10시쯤 “감사 대상자 중 한 명은 조사 과정에서 경영권 탈취 계획, 외부 투자자 접촉 사실이 담긴 정보자산을 증거로 제출하고 이를 위해 하이브 공격용 문건을 작성한 사실도 인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어 “(어도어 경영진 사이에서) 아티스트와의 전속 계약을 중도 해지하는 방법, 어도어 대표이사와 하이브 간 계약을 무효화하는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도어 경영진이 4일 나눈 카카오톡 대화라며 대화창 캡처본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이브가 어도어 부대표라고 지목한 A 씨는 ‘△하이브에 어도어 팔라고 권유 △적당한 가격에 매각 △민 대표님은 어도어 대표이사+캐시 아웃(Cash Out)한 돈으로 어도어 지분 취득’이란 글을 썼고, 민 대표라고 하이브가 설명한 B 씨는 “대박”이라고 답했다. 어도어의 민 대표는 하이브의 입장이 나온 지 5시간 뒤인 이날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35분간 입장을 밝혔다. 민 대표는 “경영권 찬탈을 계획하거나 실행한 적이 없다”며 “하이브가 A 부대표와 내가 나눈 카카오톡 내용을 포렌식해 가져가서 일부를 딴 뒤 이런저런 정황을 이야기한 희대의 촌극”이라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눈 푸념일 뿐”이라며 “배임이 될 수가 없다”고도 했다. 민 대표는 공식 석상임에도 하이브 고위 인사들을 향해 “시×××” “지×” “개저씨(개+아저씨)” “양아치” 등의 비속어를 쏟아냈다. “개저씨들이 나 하나 죽이겠다고 온갖 카톡을 야비하게 캡처했다”고 말했다.● 아이돌 회사 운영에 ‘주술 경영’ 논란도 ‘주술 경영’ 논란도 벌어졌다. 하이브는 포렌식을 통해 확보한 민 대표와 한 무속인 간의 대화록을 공개하며 민 대표가 무속인의 코칭을 받아 ‘주술 경영’을 펼친 정황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하이브 측은 실제 대화 내용과 무속인의 이름 등을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민 대표는 ‘XX 0814’라는 여성 무속인과 어도어 경영 관련 내용은 물론 하이브 관련 내용 등을 논의했다. 또한 민 대표가 “BTS 군대 갈까 안 갈까”라고 묻자 무속인은 “가겠다”라고 답한 내용도 있다. 민 대표는 자신의 기자회견을 20여 분 앞두고 하이브가 본인과 무속인의 사적 대화를 공개한 것을 두고 “개인 사찰”이라며 “하이브 측을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 대표는 “하이브가 왜 무당이 어쩌니 하면서까지 날 쫓아내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제 원래 지인인데 무속인이다. 무속인인 사람은 지인으로 두면 안 되냐”고 반문했다. 이어 “경영권 찬탈을 시행한 적이 없다. 저는 월급 사장이고 직장인이다. 월급 사장이 왜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해서 화근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하이브가 저를 써먹을 만큼 써먹었다. 찍어 누르기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주주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나를 찍어 누르는 것이 배임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3년 전부터 독립 시도’ ‘감사 3일 만에 고발’ 하이브 측은 민 대표가 2021년부터 무속인으로부터 경영 사안에 대한 조언을 받고 이행했다는 점에서 어도어 경영진이 3년 전부터 경영권 탈취 시도 움직임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민 대표가 2021년 11월 어도어 대표에 취임한 것을 감안하면 취임 초반부터 독립을 꾀했다는 것이다. 하이브 측은 “실제 민 대표가 경영권 탈취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인 시점이 무당이 코치한 시점과 일치한다”며 “민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하이브 주식의 매도 시점도 무속인과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이브 측이 확보했다는 대화록에 따르면 2021년 무속인은 민 대표에게 ‘3년 만에 회사를 가져오라’ 등의 조언을 하고, 민 대표는 조인트벤처를 설립하는 방안, 스톡옵션, 신규 레이블 설립 방안 등을 무속인에게 검토 받았다. 하이브는 감사를 통해 확보한 어도어 부대표의 컴퓨터 등에서 ‘경영권 탈취 의도’와 관련된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 감사 사흘 만에 경찰에 고발장을 접수시킨 것은 그만큼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사건이 일단락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이브는 앞서 22일 민 대표가 어도어 경영진과 함께 뉴진스를 데리고 본사에서 불법적인 독립을 꾀하고 경영권 탈취를 공모했다며 감사에 착수하고 사임을 요구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신사용 모자를 쓴 한 시인이 예식장에 들어선다. 사랑하던 연인 에드바드의 결혼식이다. 시인은 ‘금지된 사랑’과 이별에 슬퍼하며 눈물 한 방울을 바다에 떨어뜨린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바쳐 왕자를 사랑한 인어공주가 그곳에서 탄생한다. 다음 달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발레단 신작 ‘인어공주’의 도입부다. 2005년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로열 덴마크 발레단이 제작한 작품으로,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다. 이를 안무한 이는 1973년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함부르크 발레단을 이끌어온 존 노이마이어 예술감독 겸 수석안무가다. 그는 2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시인은 상처투성이 삶을 살았던 안데르센의 분신 같은 존재”라며 “동화 ‘인어공주’가 안데르센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데서 영감을 얻어 도입부를 재창작했다”고 밝혔다. 그가 “안데르센의 원작으로 회귀하고자 했다”는 발레 ‘인어공주’는 슬픈 결말을 맞는다. 대중에게 친숙한 동명 디즈니 만화영화의 해피엔딩과는 다르다. 노이마이어 안무가는 “내가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한대도 상대가 날 사랑할 책임은 없음을 알려준다”며 “고통을 감내한 인어공주의 헌신적인 사랑을 무용수가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원작을 따르되 인어공주가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는 등 일부 요소는 현대적으로 각색됐다. 격동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전자악기 테레민과 바이올린을 사용해 불협화음을 만든다. 인어공주 역 무용수는 다리가 아닌 꼬리를 가진 존재로서 긴 바지를 입고 춤추기도 한다. 노이마이어 안무가가 국립발레단과 협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국립발레단과 함께 작업하게 돼 기쁘다. 함부르크 발레단을 통해 만난 한국인 무용수들에게서 ‘아주 성실하고 잘 훈련된 이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인어공주’에 대해 “무용수들이 ‘살아있는 감정의 형체’가 되어 관객에게 진실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인어공주 역은 솔리스트 조연재와 드미솔리스트 최유정이, 왕자 역은 수석무용수 이재우와 허서명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왕자와 약혼한 공주 역은 수석무용수 정은영과 솔리스트 곽화경이 맡는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땐 두려움이 앞섰어요. 연극을 다시 할 자신이 없었고, ‘비겁하지 않게 잘 거절할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했죠. 그러다 지난해 사이먼 스톤 연출가의 연극 ‘메디아’를 보고, 배우로서 피가 끓었어요. 그렇게 두려움을 넘어섰죠.” 배우 전도연(51)은 27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올 결심’을 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2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진행된 연극 ‘벚꽃동산’ 제작발표회 자리에서였다. 1990년 광고모델로 데뷔한 전도연은 ‘리타 길들이기’(1997년)를 끝으로 연극 무대를 떠나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누볐다. 2007년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 ‘밀양’으로 한국인 최초로 트로피(여우주연상)도 받았다. 데뷔 35년 차인 그지만 연극 무대 복귀는 ‘도전’에 가까웠다. 전도연은 “정제된 모습만을 보여주는 영화,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보여줘야 하기에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분명 (실제) 공연에서 실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실수가 두려웠다면 출연을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작품을 통해 더 성장하고 싶다”고도 했다. ‘벚꽃동산’은 10여 년 전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난 송도영(전도연)이 한국으로 돌아오며 맞닥뜨리는 위기를 다룬다. 호주의 ‘스타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동명 희곡을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맞게 재창작한 작품. 체호프의 원작 속 아름다운 벚꽃동산의 지주이자 몰락한 귀족 ‘류바’는 송도영으로, 류바 집안 농노의 자식이었지만 신흥사업가로 성공한 ‘로파힌’은 부동산 개발업자 황두식(박해수)으로 각색됐다. 스톤 연출가는 “전통과 혁신, 세대 간 갈등 등 급변하는 사회 모습을 보여주기에 한국 사회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원작이 나왔던 당시 러시아도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급변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에서 전도연과 ‘오징어게임’의 박해수(43)가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다. 스톤 연출가는 캐스팅 배경에 대해 “전도연은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관객에게 사랑스럽게 느껴질 배우가 ‘벚꽃동산’ 송도영 역에 필요했다. 박해수는 강렬함과 연약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황두식 역을 완벽히 소화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고 했다. 그는 “한국 배우들은 다른 나라 배우들과 비교해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며 연기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도 평가했다. 스톤 연출가는 열일곱 살이던 2002년 박찬욱의 영화 ‘올드보이’를 접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국 영화 200여 편을 섭렵한 ‘K콘텐츠광’이다. 전도연과 박해수는 총 30회의 공연에 단일 캐스트로 출연해 한국어로 연기한다. 박해수는 “워크숍에서 배우들은 한국적 정서 자체보다 아버지와의 일화 등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면서 “등장인물의 성격은 물론 이름까지 개개인의 삶이 투영됐기 때문에 단일 캐스트가 아니면 안 되는 공연이었다”며 웃었다. 전도연은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만 공감하는 한국적 이야기는 아니다. 변화해야 하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작품을 제작한 LG아트센터는 ‘벚꽃동산’의 글로벌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6월 4일부터 7월 7일까지. 4만∼11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다음 달 발레와 댄스 뮤지컬로 각각 해석돼 관객을 맞는다. 10∼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이 공연하는 케네스 맥밀런(1929∼1992) 안무작과 8∼19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매슈 본 안무작이 바로 그것. 두 영국 출신 안무가가 영국 대문호의 대표작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는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앙숙 가문의 자제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원작 서사를 충실히 따른다. 1965년 초연 당시 셰익스피어 원전을 가장 충실히 담아냈다는 평가와 ‘혁신적 안무’란 평가를 동시에 받은 버전이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앞서 라브롭스키 버전(1940년)이 형식적인 마임과 반복되는 동작,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큰 리프트 안무가 많았던 것과 달리 맥밀런은 서사와 감정을 연기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본은 맥밀런의 혁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사랑과 우울증, 성 정체성 등 오늘날 젊은이들이 마주한 문제를 응시한다. 원작의 배경인 이탈리아 베로나 공국은 청소년 교정시설 ‘베로나 인스티튜트’로, 줄리엣은 내면의 악마와 싸우는 ‘문제아’로 바뀐다. 본은 ‘호두까기 인형’ 등 정통 발레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올리비에 상을 무려 9차례 받은 안무가. 본은 “어린 두 남녀의 사랑을 담기 위해서는 이들의 실제 삶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봤다”고 해석의 배경을 밝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발코니 2인무’와 ‘기사들의 춤’ 장면. 이들 장면에선 두 안무가의 색깔이 극명하게 갈린다. 맥밀런의 ‘발코니 2인무’ 장면에 대해 문 단장은 “단순 동작이 아닌 자연스러운 연기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며 “시대를 앞서간 줄리엣의 당찬 면모와 걷잡을 수 없는 첫사랑에 빠진 감정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본의 손을 거친 ‘발코니 신’은 ‘무용사상 가장 긴 키스신’으로 변주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입술이 닿은 채로 한 몸이 되어 바닥을 구르고 돌면서 5분 가까이 2인무를 추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기사들의 춤’에서 맥밀런의 작품은 캐풀릿 가문의 무도회에서 열리는 화려한 군무로 유명하다. 본의 작품에선 베로나 인스티튜트에 수용된 젊은이들이 군무를 추는 장면으로 각색됐다. 주먹을 쥐고 팔을 당기는 등 기존 무대에선 찾아보기 힘든 동작들로 이뤄진다. 주인공 역을 맡은 무용수들도 상반된 매력을 드러낸다.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에선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아메리카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가 된 서희(38) 등 내공을 갖춘 스타 무용수들이 줄리엣 역을 연기한다. 서희는 2013년 ‘오네긴’ 이후 11년 만에 내한한다. 지난해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은 강미선(41)이 같은 배역을 맡는다. 이와 달리 본의 공연에서는 1995∼2002년생 신예 무용수 3명이 줄리엣 역을 돌아가며 맡아 에너제틱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한지영 발레 평론가는 “맥밀런 버전에선 절제된 발레 테크닉으로 풀어낸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장면 전환이 빠르고 화려한 구성의 본 버전에선 마치 쇼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동그랗고 큰 눈이 고등학생 연재의 두 눈을 응시한다. 알루미늄으로 된 손을 들어 연재의 호흡과 떨림을 측정한다. 이어 성별을 알 수 없는 기계 톤 음성으로 말한다. “당신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져요.” 국립극단 74년 사상 처음 로봇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 ‘천 개의 파랑’에서 로봇이 관객을 향해 던진 대사다. 이 작품은 천선란 작가의 동명 공상과학(SF) 소설이 원작. 병든 경주마 ‘투데이’와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그리고 소녀 연재가 연대하는 과정을 그린다. 로봇과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 실시간 영상 송출 등 기술로 SF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앞서 우여곡절도 있었다. 당초 4일 개막이었는데 이틀 전 회로상 결함이 발견된 것. 공연은 연기됐고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콜리 역은 배우 김예은과 로봇이 나눠 연기한다. 로봇은 설계된 알고리즘에 따라 대사를 말하고 상체를 움직이는 반자동 퍼펫(Puppet). 공연 중 큰 버벅거림 없이 매끄럽게 ‘연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다만 손가락과 하반신 등은 움직이지 않아 다소 어색함도 있었다. 미세한 몸짓과 감정선은 배우 김예은이 풍부한 표현으로 보완했다. 김예은은 “로봇에게 마음을 열게 될 줄 몰랐다”며 “연습 초반 (신호 지연으로) 예측 불가 실수를 할 땐 더욱 인간처럼 느껴졌다. 나중엔 연습이 끝나고 콜리만 극장에 남는 게 걱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관객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최지우 씨(26)는 “로봇이 기대한 만큼 뛰어나진 않지만 사람이 연기를 뒷받침해 몰입엔 문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우수현 씨(25)는 “이보다 퀄리티가 높았다면 (로봇을) ‘고등학생이 만들었다’는 설정과 충돌했을 것 같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