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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생을 끌어들여 5000억 원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판돈을 마련해 주겠다’고 유혹하자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앞다퉈 친구들에게 사이트를 홍보했다. 경찰에 붙잡힌 10대 도박 사범은 1년 새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청소년 도박 중독 문제를 두고 볼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2’ 홍보책 등 중고교생 12명 낀 도박장 운영단 12일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중고교생을 도박 범죄에 끌어들인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 35명을 검거하고, 그중 총책인 40대 남성 등 1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 조직은 2018년 12월부터 이달 초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사무실을 두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도박장 개장)를 받는다. 이들은 각종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적은 돈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도박 사이트를 홍보했다. 이번에 검거된 일당 중 12명은 중고교 재학생이었다. 도박에 중독된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0대 청소년들을 홍보책으로 이용한 것. 이들은 도박하다 돈이 부족해진 10대에게 ‘사이트 운영을 도우면 도박 자금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벌 수 있다’며 꼬드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범죄에 가담한 중고교생은 주변 친구에게 도박을 권하거나 텔레그램 광고 채팅방을 운영하는 식으로 사이트를 홍보했다. 그중 중학생 3명은 지난해 8월부터 3개월 동안 5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했고, 1인당 200만 원의 범죄 수익금을 받아 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홍보에 힘입어 해당 사이트는 회원 1만5000명, 규모 5000억 원에 이르는 도박 사이트로 급성장했다. 경찰은 해외 도피 중인 조직원 9명의 신원을 특정하고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적색수배 조치를 한 상태다. 확보한 범죄 수익금 83억 원 역시 기소 전 몰수보전 조치했다. 경찰은 또 이들의 죄질이 나쁘다고 보고 최고 사형까지 가능한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했다. 도박장 개장은 최고 징역이 5년형이다.● ‘중독→범죄’ 굴레에 빠진 도박 청소년 10대 도박 사범은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에 검거된 10대 도박 사범은 171명으로 전년(74명) 대비 2.3배로 늘었다. 최근 5년간 검거된 10대 도박 사범(471명) 중 다시 범죄에 가담했다가 검거된 경우도 19.5%에 이른다. 10대 도박 사범 중에는 “불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유튜브의 광고를 통해 호기심에 스포츠토토 등을 접한 뒤 본격적으로 도박에 빠졌다”고 경찰 조사에서 밝힌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부족한 판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까지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도박 중독 청소년이 판돈을 구하려 마약 유통에 가담하거나 보이스피싱 조직을 돕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엔 스포츠토토에 빠진 고교 2학년생이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이스피싱 중간 관리책으로 일하다 붙잡혀 구속 기소되는 일도 있었다. 중독의학계에선 이미 청소년 도박 중독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지난해 6월까지 ‘도박 중독’으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10대 환자는 66명이었다. 연말까지 집계하면 2021년(101명)의 기록을 훌쩍 넘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 5년간 진료를 받은 10대 405명 중 완치가 안 돼 재진료를 받은 경우도 70.9%에 이른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도박 사이트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도박 중독 치료 기반을 강화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이 최근 경찰의 잇따른 비위 행위에 대해 재발 땐 일선 경찰서장 등 관리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11일 밝혔다. 조 청장이 내부 단속에 나선 지 이틀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소속 경찰관의 음주 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서장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11일 조 청장은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연이은 경찰 비위 사건과 관련해 “국민을 볼 면목이 없다. 청장으로서 송구스럽고 면도 없다”고 사과했다. 그는 “일선 경찰관에게 서울청장으로서 호소도 하고 현장 관리자들에게 관리도 주문했다”며 “이번 주부터는 호소와 관리 주문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확인하고 그 책임도 가시적으로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 청장은 특히 ‘책임’ 대상에 일선 경찰서장을 지목했다. 서울 지역 경찰관의 비위 사건이 계속될 경우 일선 경찰서장에게 징계를 포함한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아울러 서울청 감찰 인원을 일선 경찰서에 파견해 직원 관리가 면밀히 되고 있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조 청장은 “‘음주는 적절히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내려갔는데도 팀 회식에서 과다하게 음주를 하고 사고가 나면 (일선 경찰서장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방침은 최근 한 달 새 서울 내에서 최소 5건의 경찰관의 비위 사건이 벌어진 데 따른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7일 전국 시도 경찰청장과 경찰서장을 화상으로 불러 모아 ‘의무 위반 근절 특별 경보’를 발령했다. 조 청장도 6일 일선 경찰서장을 불러 모아 엄중 경고하고 7일 전 직원 음주 자제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틀도 지나지 않은 9일 오전 서울경찰청 기동단 소속 경찰관이 거리에서 술에 취한 채 행인과 시비를 벌인 혐의(폭행)로 입건되자 경찰 안팎에선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경찰이 6일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를 공모한 혐의를 받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경찰은 다음 주 초까지 의협 전현직 간부들에 대한 1차 조사를 마친 뒤 사법 처리 방향을 정할 방침이다. 주 위원장은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이날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주 위원장을 업무방해 및 의료법 위반 방조 혐의로 불러 조사했다. 지난달 27일 보건복지부가 ‘주 위원장 등 전현직 간부 5명이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를 교사하거나 방조했다’며 경찰에 고발한 지 8일 만이다. 경찰은 이달 1일 의협 압수수색 과정에서 내부 회의록과 투쟁 로드맵, 단체행동 관련 지침 등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모 여부에 대해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 위원장은 경찰 조사 전 기자들과 만나 “(전공의 사직을) 교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교사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방조죄는 ‘알고도 가만뒀다’는 건데,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신인류라 선배들이 이러쿵저러쿵해도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또 “복지부는 현 사태가 마치 의사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론을 조작했다”며 “(의사 사직은) 허위 선동에 맞서 싸우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경찰은 업무방해 교사 혐의가 성립하는지는 발언 전후 맥락과 의협 간부의 사회적 지위, 영향력 등을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전공의 사직과 관련해) 구체적 행동 지침을 배포·전파하고 단체행동을 지지하는 공식 의견을 표명했다”고 적시했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의협 간부 수사와 관련해 “(혐의 성립 여부를) 행위(발언) 자체만으로 재단할 순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주 위원장과 함께 고발된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을 9일,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김택우 위원장과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을 12일에 각각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이다. 임 회장 측은 고발장 공개를 청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조사가 마무리된 뒤 신병 처리 방향을 검토할 예정이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63)이 개인 계좌와 공금 등 26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자신의 전직 비서를 고소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용산경찰서는 노 관장의 비서로 일했던 30대 A 씨를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와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수사 중이다. 노 관장 측은 올 1월 경찰에 A 씨를 고소했다. 노 관장 측 등에 따르면 A 씨는 2019년 입사한 뒤 그해 1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노 관장의 예금 19억7500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가 노 관장의 신분증 사본과 인감도장을 보관하고 있다가 이를 이용해 시중은행에 인터넷뱅킹 신청을 하고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를 발급받아 한 번에 적게는 100만 원, 많게는 5000만 원을 보냈다는 게 노 관장 측의 주장이다. A 씨의 고소장엔 그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노 관장 명의로 계좌를 개설한 뒤 1억9000만 원을 대출받아 자신에게 빼돌리고 지난해 5월 노 관장인 척 다른 직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공금 5억 원을 가로챈 혐의도 적혔다고 한다. 아트센터 측은 다른 직원이 노 관장에게 직접 송금된 공금 처리 문제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A 씨 주변의 자금 흐름을 파악했다고 밝혔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멈춰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1일 최모 소방사(35)는 지난달 28일 마약에 취한 채 난폭 운전을 하던 한 운전자를 붙잡았을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3년차 119구급대원인 그는 사건이 일어난 날 오전 8시 반경 차를 몰고 경기 포천시 신북면의 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가던 검은색 외제차가 S자를 그리며 1, 2차선을 넘나들었다. 해당 차량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도 멈추지 않자 최 소방사는 음주운전 차량이라고 생각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곤 경적과 상향등을 켜고 차량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직후 옹벽을 들이받은 차량은 이내 최 소방사의 유도에 따라 갓길에 차를 멈춰 세웠다.시동을 끄고 차량에서 내린 여성 운전자에게서 술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말투가 어눌했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돌아가는 길”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등 횡설수설했다. 이 모습을 수상히 여긴 최 소방사는 신분을 밝히고 동의를 얻어 여성의 양쪽 팔을 확인했고, 손목과 팔 등에서 다수의 멍 자국을 발견했다.출동한 경찰관들은 여성을 인계받은 뒤 마약 간이 시약 검사를 실시했고,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오자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은 운전자 여성을 상대로 마약 투약 혐의와 공범 등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경기북부경찰청은 다음 주 중 대형 사고를 막고 마약사범 체포에 이바지한 공로로 최 소방사에게 표창장을 수여할 계획이다.3년차 소방 구급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최 소방사는 동아일보에 “큰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막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구급대) 대장님과 동료 대원들, 어머니에게 칭찬을 들으니 뿌듯하다”고 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4년 후에는 가족이 세상을 떠나도 화장(火葬)할 곳을 찾지 못하는 ‘화장 절벽’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사망자가 급증하는데도 화장시설을 확충하지 못해서다.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국내 화장 인구는 34만2128명으로, 2018년 대비 8만2781명(31.9%)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 화장로는 347개에서 382개로 35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방자치단체가 장사시설을 확충하려 할 때마다 주민 반발에 부딪혀 화장장을 60곳에서 62곳으로 2곳밖에 늘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화장로에서 한 해 수습 가능한 시신은 34만6680구라는 게 국회 입법조사처 분석이다. 그런데 통계청 장래 사망자 추계에 화장률(90%)을 대입하면 2028년엔 35만1000명의 화장 수요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년 후에는 최소 4320명의 시신이 화장할 곳이 없어 떠돌게 되는 것. 하지만 2028년까지는 전국에 새로 준공 계획이 마련된 화장장이 없다. 이대로라면 화장장의 수용 능력과 수요의 격차는 2030년 2만2320명, 2040년 13만3020명, 2050년 26만9820명으로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에는 한국인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장사시설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은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사망자 증가 속도가 기대수명 연장의 효과를 압도하고 있다”며 “장사시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화장장과 주민 편의시설을 한 장소에 건립하는 등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 줄 밀리는 화장장… 4년후 시신 4000구, 갈곳 못찾을 우려 ‘화장 절벽’ 온다 주민 반대에 화장시설 못늘려… 관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화장진행유족들 모두 모여 추모도 못해수도권은 이미 ‘원정화장’ 일상화… 日은 화장장 짓는데 15년 주민설득 최근 인천 부평구 인천시립승화원 화장장을 찾은 김모 씨(47)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의 시신이 담긴 관을 인계하고 관망실(유리벽 사이로 화장을 확인하는 공간)로 걸음을 옮겼는데, 유족이 미처 모이기도 전에 화장로의 문이 닫힌 것이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슬품에 한 유족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2시간 뒤 유골함을 넘겨받은 유족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서둘러 장지로 이동해야 했다. 다음 화장 순서가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유골함 받기도 전에 다음 순서” 23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울시립승화원도 혼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날의 열다섯 번째 화장을 앞두고 관이 줄지어 도착하자 직원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앞서 화장로에 들어간 고인들에 대한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직원들은 다음 순서를 호명했다. 앞서 기다리던 유족이 미처 유골함을 건네받기 전부터 다음 순서 유족이 뒤섞여 장내가 혼란스러워졌고, 이들은 좁은 공간에 뒤엉킨 채 슬픔을 삭여야 했다. 일괄적인 화장과 수골(收骨)은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인천시립승화원 화장장에선 아무 관계없는 고인 2명의 유골이 뒤섞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분골기에 이미 1명의 유골이 들어있었는데 담당 직원이 이를 덜어내지 않고 다음 유골을 수습했다. 인천시설공단 측은 “앞으로 직원끼리 역할을 나누지 않고 한 시신을 직원 1명이 맡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경기 화장장 부족 현실화… 원정 화장도 이런 혼란이 벌어지는 이유는 늘어난 화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화장장마다 화장로의 가동 횟수를 최대한으로 늘리고 있어서다. 대도시 등에선 화장장 부족이 이미 현실화했다. 2022년 서울과 경기에선 지역 내 화장장이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화장해야 할 시신이 각각 1만7000여 구, 2만6000여 구 더 많았다. 부산과 대구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9년 넘게 상조회사에서 장례지도 업무를 해온 김모 씨(49)는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겨울에는 화장장 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원정 화장’을 가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복지부는 지난해 1월 제3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2027년까지 화장로 52기를 추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미 포화한 화장시설에 화장로를 더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한들 늘어나는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것에는 변함이 없다. 당장 화장장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준공은 물론이고 착공을 앞둔 화장장도 없다. 경기 양주시가 추진 중인 광역 화장장이 가장 빠르지만 이마저도 타당성 검사를 마치고 착공하려면 4년 넘게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엔 경기 이천시립화장장 등이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日, 주민과 15년 대화, ‘필요 시설’ 설득 전문가들은 지역 주민들이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보고 기피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각 지자체의 끈질긴 대화와 설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나고야시는 2015년 제2화장장을 준공하기 15년 전부터 당국이 주민과 2700회에 걸쳐 대화했다. 초등학교를 찾아 “귀신이 나오는 게 무섭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우려를 해소할 방법을 찾았다. 가와구치시는 화장장 주변에 호수공원과 키즈카페 등 선호시설 건설을 병행한 끝에 주민 동의를 얻어 2018년 화장장을 신설했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유럽에서도 장사시설을 늘릴 땐 철저한 계획이 선행됐다. 벨기에는 정부가 주도해 화장장 21개를 지었는데, 인구 30만 명당 화장장 1곳을 가정하고 시설이 한 지역에 몰리지 않도록 안배하는 등 표준화된 세부 계획을 내세워 갈등을 해결했다. 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 연구포럼 대표는 “2001년 장사법이 시행됐을 때 정한 원칙은 모든 시군이 각자 화장장을 갖추는 것이었으니 지자체들이 의지를 갖고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며 “화장로 1, 2개짜리 소규모 화장장을 여러 곳 운영하는 유럽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휴대용 부탄가스통 수십 개를 들고 새마을금고에 들어가 ‘건물을 폭파하겠다’고 위협한 50대 남성이 16년 넘게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21일 서울 동대문소방서에 따르면 50대 후반 남성 A 씨는 2007년 3월경부터 동대문소방서 휘경대 소속으로 의용소방대원 활동을 시작했다. 의용소방대원은 관할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민간 봉사 단체로, 화재시 소방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의용소방대원은 매달 한 번 의무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특정 횟수를 넘지 않으면 자동 해임되는데, A 씨는 한 해도 빠짐없이 요건을 충족한 것이다. A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도 하는데 (부탄가스통을 쌓아둔 범행이) 위험한 줄 몰랐겠느냐”고 말했다.서울북부지법은 부탄가스통 수십 개와 라이터를 들고 건물 내부로 진입해 난동을 부려 현주건조물방화 예비 혐의로 체포된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19일 기각했다. 법원은 “주거지가 일정하고 방화죄 관련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적이 없으며 방화를 저지르지 않고 스스로 경찰에 신고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경찰에 따르면 A 씨는 17일 오후 6시경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는 한 새마을금고 건물 내부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부탄가스통 30여 개를 놓은 뒤 경찰에 전화해 “다 터트려버리겠다.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A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범행 현장에 도착했으며 직접 부탄가스 뚜껑을 열어 건물 내부로 가스를 누출시킨 것으로 파악됐다.A 씨는 “개인적으로 억울한 사정이 있어 이를 밝히고자 보여주기식으로 실행한 것”이라며 “범행이 알려지며 당사자와 억울한 일을 풀었다”고 밝혔다. 또 “누군가를 다치게 할 목적은 없었기 때문에 일부러 사람이 많지 않은 장소를 찾았다”고 주장했다.A 씨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라이터를 들고 있던 A 씨를 체포하고 부탄가스통 30여 개와 라이터 1개를 수거했다. 당시 건물에 근무 중인 직원이나 ATM 이용객이 없어 실제 인명 피해로 이어지진 않았다.동대문소방서 관계자는 “A 씨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형이 확정되면 해임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13일 오후 9시 반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골목. 거리를 가득 메운 담배 연기 사이로 술집 종업원들이 호객하고 있었다. 이들 뒤로 붉은색 조명에 ‘19금’ 음악을 크게 튼 힙합클럽과 라운지바 등이 즐비했다. 술집 안에는 한껏 취한 채 춤추는 이들도 있었다. 취재팀 확인 결과 이 골목의 술집 클럽 등 27곳 중 14곳이 서울시 결식아동 급식카드 ‘꿈나무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돼 있었다. 취약계층만 사용할 수 있는 해당 카드를 엉뚱한 매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 심의 절차 없애자 선술집-위스키바도 등록 꿈나무카드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위소득 60% 이하 가정 등 결식 우려 아동과 청소년에게 지급된다. 매달 초 지방자치단체에서 한 달 치 급식비를 선불 충전해 가맹점에서 음식, 식재료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끼니당 9000원씩, 하루 2만7000원을 30일 동안 쓸 수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지난해 8월 기준 꿈나무카드 가맹점 10만여 곳의 명단을 분석한 결과 상호에 ‘포장마차’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라운지바’ 등이 포함된 가게가 135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식사 메뉴가 거의 없는 가게도 있었다. 가게 이름만으로도 술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점포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버젓이 가맹점으로 등록돼 있었다. 그중 한 곳은 ‘강남 제일의 게이바’라고 홍보하는 강남구의 한 위스키바였다. 업주 대다수는 “꿈나무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된 줄 몰랐다”고 밝혔다. 강서구에서 포차를 운영하는 정모 씨(33)는 “여긴 술집인데 어떻게 결식아동이 올 수 있냐”고 말했다. 인근에서 위스키바를 운영 중인 다른 업주는 “관련 안내나 공문이 없어 몰랐다”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2020년경 대다수 지자체가 아동급식카드 가맹점 등록 방식을 ‘신청-심의제’에서 카드사 자동등록제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가맹점이 적어 카드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된 업체를 일단 모두 등록하고, 적합하지 않은 업체들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 이에 따라 전국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은 2018년 3만3009곳에서 2022년 52만4143곳으로 15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일반음식점 가운데 사실상 단란주점이나 유흥주점 형태로 운영되는 점포가 많은데, 이를 일일이 모니터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자치구마다 부적절한 가맹점을 모니터링하는 인력을 1명씩 두고 있는데, 1명당 최대 4000여 곳의 가맹점을 모니터링해야 하는 구조다.● “부적격 가맹점 솎아내야” 아동급식카드를 술집에서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이 앞으로 발급된 아동급식카드를 보호자가 대신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국회에 제출한 아동급식카드 결제 명세에는 ‘××××포차’ ‘이자카야××’ 등 술집이 사용처로 줄줄이 나온다. 경기의 한 술집에선 하루 한도(2만 원)를 의식한 듯 40초 간격으로 두 카드로 계산한 기록도 나왔다. 국회 등에서 부실 관리 문제를 지적하자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각 시도로부터 분기별 점검 실적을 보고받기로 했다. 그러나 복지부 관계자는 “실적에 따른 평가는 예정된 게 없다”며 “보고 의무가 만들어진 것은 각 지자체에서 좀 더 신경을 써 달라는 의미”라고 했다. 이대로 방치되더라도 불이익이 없는 것이다. 아동급식카드 시스템을 지원하는 카드사에서 특정 키워드를 필터링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완전하진 않다. 업체 이름에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탓이다. 서울시, 강원도 등 지자체에 관련 시스템을 지원하는 신한카드 관계자는 “맥주 등 일부 단어는 이미 필터링을 통해 제외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부 부정사용자들로 인해 정책이 위축되고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며 “가맹점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여기서 경복궁은 어떻게 가야 하죠?”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입구. 대만 청년 5명이 이렇게 영어로 묻자 관광경찰대 3팀 이진영 경사(46·여)가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검색했다. 이 경사는 “앞에 표지판이 보이시죠?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으세요”라고 영어로 설명했다. 이들이 “김치 말고 한국 음식도 더 소개해달라”고 부탁하자 이 경사는 “떡볶이를 꼭 먹고 가세요”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이날 3팀은 베레모를 쓰고 가슴엔 ‘POLICE’ 명찰을 단 채 신동주 팀장(55·경위)의 지휘 아래 한옥마을 일대를 순찰했다. 일부 외국인들은 이들에게 ‘셀카’를 찍자고 제안했고, 경찰관들은 익숙한 일인 듯 ‘양손 엄지 척’ 포즈를 하며 응했다.● 11년 만에 해산하는 관광경찰대관광경찰대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보호하고 민원을 지원하기 위해 경찰청 외사계 소속으로 2013년 출범했다. 길 안내 같은 단순 민원부터 절도, ‘쇼핑 강매’, 바가지 요금 등의 사건도 직접 처리한다. 관광 현장에선 외국인 관광객이 엮인 각종 ‘소비자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도 맡아왔다. 서울 부산 인천 등 3곳에서 운영 중인데, 서울의 경우 명동 동대문 홍대 이태원 등 7곳에서 59명이 근무한다. 상인과 관광객 간 오해를 바로잡는 것도 이들의 업무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명동 관광경찰대엔 필리핀 남성과 상점 업주가 함께 찾아와 언쟁을 벌였다. 남성은 5만 원권을 냈다고 주장했지만, 업주는 5000원권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상조 경장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5000원권으로 확인돼 남성이 사과하며 종결 처리됐다. 이 경장은 “두 지폐의 색깔이 비슷해 관광객들이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관광경찰대는 이달 중 공식 해체되고 현장 근무를 원하는 대원들은 지구대 등에 재배치될 예정이다. 지난해 흉기 난동 사건이 이어지면서 지구대 등 치안 현장의 인력을 보강하기 위한 조치다. 관광경찰의 업무는 기동순찰대가 담당한다. 출범 때부터 관광경찰로 일한 신 경위는 “(과거에는) 관광객들이 택시비로 50만∼60만 원을 내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요즘은 거의 없다”며 “한국이 ‘다시 오고 싶은 나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일조했다는 데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전담 조직 필요” vs “일선 인력 충원 환영”경찰 내부에선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광경찰대가 해산돼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103만1665명으로 전년(319만8017명)의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가파르게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관광경찰대가 해산되더라도 전담 부서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기동순찰대 내에 외국인 관광객을 전담하는 ‘관광경찰팀’을 따로 둬 관광경찰대 인력을 그대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반면 일선 지구대에선 관광경찰대 해산에 따른 인력 증원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광지 인근 파출소 관계자는 “관광객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인원이 부족해 힘든 상황”이라며 “관광경찰대 출신이 현장에 배치되면 치안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위층에 불이 났어요! 빨리 대피하세요!” 18일 오전 6시 50분경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아파트. 동이 트기 전 어두컴컴한 아파트 복도에 A씨(23)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급하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놀란 주민들은 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비상계단을 통해 아파트 밖으로 대피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A씨는 높이 15층 규모의 이 아파트에서 1층부터 13층까지 약 30분 동안 두 차례나 오르내리며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주민들이 모두 대피한 뒤에야 A씨는 슬리퍼 한 짝이 벗겨진 채 맨발로 뛰어다닌 걸 발견했다. 양손은 까맣게 재로 뒤덮여 있었고, 입에선 검은 가래가 나왔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새벽 이 아파트에서 대피한 주민은 95명에 달했다. 이 아파트에는 총 150가구가 살고 있다.● 아버지 유언 따라 주민 구한 청년A씨는 이날 오전 6시경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던 중 타는 냄새를 맡았다. 창문을 열고 불이 난 현장을 발견한 A씨는 오전 6시 45분경 자신이 사는 6층에서 14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연기가 복도에 가득 차 섣불리 들어서기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A씨는 “복도 안쪽에서 어르신 신음 소리가 들렸다”며 “소방이 도착하면 너무 늦을 것 같았다”고 했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A씨는 한 주민에게서 물에 적신 수건을 건네 받아 다시 14층으로 향했다. 자세를 낮춘 채로 연기 속을 더듬어 헤쳐 가던 A씨는 복도 한가운데서 헤매고 있던 고령의 주민을 발견했다. A씨는 그를 아래층으로 끌어냈고 마침 현장에 도착한 소방에 인계했다고 한다. 아파트 주민 최모 씨(61)는 “젊은 총각이 ‘불났어요. 빨리 나오세요’라고 해서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A씨는 “연기가 자욱한 걸 보고 10분 정도 망설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라 용기를 냈다”고 했다. A씨의 아버지는 간경화로 3년 전 세상을 떠나기 전 “주변 사람들이 어려우면 한 몸 바쳐서 도와주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장을 잃은 후 기초생활수급 대상이던 A씨 가족은 더욱 어려워졌다. A씨는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며 공사장, 식당 등에서 일해 왔다. 현재는 이동통신 판매업을 하고 있다. 서울 강서소방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54분경 “타는 냄새가 나고 복도에 연기가 자욱하다”는 신고가 소방에 접수됐다. 소방 당국은 인력 108명과 장비 30대를 동원해 7시 49분경 완전히 불을 껐다. 이날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14층 주택 거주자는 “담뱃불을 붙이다가 불이 살충제에 옮겨붙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화재로 옆집에 거주하는 70대 여성이 대피 도중 연기를 흡입해 의식을 잃은 채로 구조됐고, 현재는 의식을 되찾았다고 한다.● 방화문은 열려 있었고, 스프링클러는 없었다인명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이 아파트 곳곳에선 안전불감증의 흔적이 발견됐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화재 당일 1층부터 15층까지 점검한 결과 모든 층의 방화문이 열려 있었다. 불이 나면 연기 확산을 막아 주민 대피시간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복도식 아파트인 이곳은 복도에 창문이 설치돼 있어 중앙에 설치된 방화문을 닫아놔야 다른 층으로 연기가 확산되지 않는 구조였다.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이 아파트는 당시 소방법상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라 주택 내부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이곳에서 8년 넘게 근무한 아파트 관리인은 “전체 150가구 중 100가구 넘게 고령자와 장애인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재가 났을 때 쉽게 대피하기 힘든 주민이 많이 사는 곳이지만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부족한 것이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노약자나 장애인처럼 재해 약자일수록 화재에 안전한 성능을 갖춘 형태의 주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인공지능(AI)으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려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은 뒤 수십억 원을 돌려주지 않은 업체를 경찰이 신종 사기로 보고 수사에 나선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과 거래를 승인하면서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관련 범죄를 엄단하기 위한 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단역 배우를 ‘스위스 대학교수’로 내세워”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오픈AI의 챗GPT를 활용해 하루 5%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 금융업체 A사에 돈을 맡겼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고소가 전국에서 10여 건 접수되자, 5일 인천경찰청을 집중수사관서로 지정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경찰에 접수된 피해자는 80여 명으로, 피해액은 20억 원이 넘는다. 경찰 등에 따르면 피해자 대다수는 스위스 소재 S대학의 한국인 경제학과 교수라며 자신을 소개한 B 씨의 유튜브 영상을 계기로 A사를 알게 됐다. 해당 영상에서 B 씨는 “AI가 자동으로 최적의 타이밍에 가상자산을 사고팔아 준다. 5000만 원을 투자하면 월 300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하며 A사를 통한 투자를 권유한다. A사는 홈페이지에 자사의 투자 알고리즘에 대해 “정확도가 98.8%”라며 “매일 ―1%에서 5%의 수익을 만들어낸다”고 소개했다. A사 홈페이지에는 투자금이 불어나는 것처럼 표시됐지만, 실제로는 투자자 상당수가 수익금은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경찰 확인 결과 투자금을 유치한 계좌는 전부 ‘대포(차명)통장’이었다. 게다가 B 씨는 대학교수가 아닌 국내 사극 드라마 등에 출연한 단역 배우였다. B 씨는 15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출연료 30만 원을 받고 대역 연기를 한 게 전부”라며 “대역임을 자막에 명기한다고 해서 동의 후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B 씨가 (A사로부터) 대본만 받았는지, 투자 유치에 적극 가담했는지 등을 검토 중”이라며 “피해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범죄 수익을 회수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A사에 5000만 원을 맡겼다가 돌려받지 못한 C 씨(49)는 “하루 17시간씩 하수처리장에서 일하며 번 돈을 전부 날리게 생겼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투자 유치 처벌법, 넉 달째 국회 계류 문제는 가상자산을 대신 거래해 주겠다며 투자금을 모은 뒤 빼돌리는 행위를 엄중히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유사수신행위규제법상 가상자산은 ‘금전’에 해당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이 가상자산을 유사수신 대상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넉 달 넘게 본회의에 오르지 못한 채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시행됐지만 이는 공식 허가된 거래소를 통한 거래만 보호한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보통 3년 6개월 징역형을 살고 나와도 수십억 원에서 1000억 원대까지 돈이 생기니 범죄자들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제도의 사각지대 속에 가상화폐 범죄 피해 금액은 지난 5년간 약 5조4550억 원에 달한다. 경찰청 ‘가상자산 불법행위 현황’에 따르면 2022년 1∼12월 108건이었던 관련 범죄 검거 건수는 지난해 1∼8월 162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9∼12월 4개월분이 합쳐지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증가 폭이 더 가파르다. 경찰 관계자는 “유튜브 영상, 오픈채팅 등에서 수익을 인증하며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은 사기일 가능성이 크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도로 위 차가 잘 보이질 않습니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삼거리. 전봇대와 가로수마다 정당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3, 4개씩 어지러이 걸려 있었다. 어떤 현수막은 횡단보도 바로 옆 눈높이에 맞게 걸려있어, 보행자가 목을 빼고 차량이 오는지 살펴야 했다.12일부터 정당 현수막 설치 시 △읍면동별 2개 이하 △한 가로등당 2개 이하 △바닥부터 2.5m 이상 △어린이보호구역 제외 등을 지키게 한 새로운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됐다.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자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규정이지만 서울 곳곳에서는 주말 동안 전혀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2개까지만 설치’ 규정, 5개 당이 위반동아일보 취재팀이 14일 국회 인근과 강남구 등 서울 시내 주요 현수막 설치 장소 38곳을 살펴본 결과 정당 현수막 35개 중 17개(48.5%)가 개정 옥외광고물법상 설치 규정에 맞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한 정당은 국회의사당 삼거리뿐 아니라 약 1km 떨어진 여의도동의 한 사거리에도 똑같은 문구의 현수막을 2개 설치한 상태였다.‘같은 읍면동 내에는 한 정당의 현수막을 총 2개’까지만 설치할 수 있는 새 규정을 벗어난 것이다. 국회 인근에서 5개 정당이 이 규정을 어겼다. 국회 앞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 씨(25)는 “현수막 때문에 사방이 막혀 있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강남구 역삼동에선 2개 정당이 이를 위반했다.현수막을 바닥에서 2.5m 이상 띄우게 한 규정을 어겨서 보행자의 시야를 가리는 경우도 많았다. 강남역 사거리를 지나던 직장인 문모 씨(38)는 “시야가 가려져서 대형차가 와도 모를 것 같다”며 “새 법이 시행됐다고 들어 현수막이 어느 정도 정리될 줄 알았는데 아직 너무 많다”고 말했다. 앞선 2022년 12월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되면서 ‘통상적인 정당 활동’에 따른 정당 현수막을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지 않고 보름 동안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거리마다 현수막이 난립하며 민원이 빗발치자 여야 합의로 지난해 12월 28일 새 개정안을 통과시켰다.●“안전 위해 정당 현수막도 신고 대상 포함해야”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되기 전에 각 정당이 설치한 현수막에는 새 규정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각 지자체는 아직 본격적인 단속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문제는 법 개정에도 정당 현수막이 여전히 관할 지자체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단속은커녕 설치 현황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각 정당이 정해진 수량 제한에 맞게 현수막을 설치했는지 확인하려면 지자체가 단속 인력을 동원해 읍면동 곳곳을 다니며 일일이 파악해야 하는 구조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지자체에선 사실상 단속이 어렵다.실제로 강남구는 4명의 인력이 현수막 단속에 배정됐다. 단속 인력 1명당 점검할 면적이 9.9km²나 된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단속 가이드라인도 없어서 시행 첫날 각 정당에 ‘현수막을 어디에 설치할지 장소 리스트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토로했다. 단속 대상에게 ‘법을 지킬 거냐’고 문의하는 형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당에서 아무 사거리에나 설치하지 않기에 단속할 범위가 더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번 주부터 지자체와의 논의를 통해 조례 개정 등 법 시행에 필요한 부분을 다듬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전문가들은 정당 현수막을 지자체 신고 대상에서 제외한 옥외광고물법을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로운 정치 활동 등을 위해 신고 예외를 둔 취지는 이해하지만, 보행자 안전보다 우선시될 순 없다는 얘기다. 송지은 변호사는 “다시 정당 현수막도 신고하도록 해 단속 인력의 낭비를 막고 단속 시 과태료 등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