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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강명(45)은 이달 초 ‘책, 이게 뭐라고’(아르테)를 냈다. 2017년부터 2년간 작가 요조와 함께 진행한 팟캐스트를 글감의 바탕으로 삼아 ‘정보를 담는 오래된 매체 책과 그 매체를 제대로 소화하는 단 한 가지 방식인 독서’에 대한 글 38편을 모았다. 이 책에서 세상은 ‘말하고 듣는’ 세계와 ‘읽고 쓰는’ 세계로 나뉜다. 읽고 쓰는 세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같은 디지털 매체를 등에 업은 말하고 듣는 세계의 집중포화에 그로기 상태다. 그럼에도 ‘책을 쓴다는 일은 우주의 기본 속성’이라고 믿는 장 작가를 14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났다. 장 작가는 책에서 한때 웹소설을 써볼까 고민도 했다고 고백한다. ‘거기에 독자들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한국문학이 점점 ‘게토화, 갈라파고스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가장 두려운 것은 문학과 문학을 읽고 쓰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옛날 이문열 황석영이 시도했던 ‘한국사 전체에 내가 대응한다’는 것이 사라졌다. ‘한국사회 전체가 이렇다’는 걸 보여주는 것, 그렇게 하겠다는 야심도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런 게 가능한 시대인가 싶기도 하고. 문학도 파편화된 영역에서 이슈 파이팅 삼아 쓰긴 하는데 ‘다른 건 필요 없고 내 이슈가 제일 중요하다’는 식이다.” 말하고 듣는 세계의 거주자들은 현재와 부단히 소통한다. 읽고 쓰는 세계의 거주자들은 ‘읽으며 과거와 대화’하고 ‘쓰면서 미래로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현재와 싸울 수밖에 없다’. 그는 책에서 ‘50년 뒤 독자들에게 존중받으려면 우리 시대 사람들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10만 부 넘게 팔리는 책을 쓰고 싶은’ 속내를 감춘 적이 없다. “찰스 디킨스는 스스로를 사회운동가로 생각했지만 당대의 진지한 (문학적) 평가를 받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 ‘데이비드 코퍼필드’ 같은 그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 토를 달지 못하죠. 그때 디킨스가 어떤 기분이었을까 싶기도 해요. 결국 쓰고 싶으니까 소설을 쓰는 건데. 김진명 작가가 부러운 게 아니라 정말 열렬한 한 명의 독자를 사로잡고 싶다는 식의 선민의식에 빠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도 되고 싶고. 딜레마예요.” 정식 등단하기 전에 언제나 책을 들고 다니던 장 작가는 요즘 전자책으로만 책을 읽는다. ‘손끝에 닿는 책장의 느낌’이니 ‘종이 냄새’니 하며 종이책의 물성(物性)을 강조하는 사람은 의심한다. 읽고 쓰는 세계에 책이라는 물신(物神)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책의 ‘팬시상품화’도 마뜩지 않다. 읽고 쓰는 세계가 만들어낼 우려가 있는 ‘근본주의’보다는 말하고 듣는 세계가 지어내는 ‘근본이 사라지는 현상’을 두려워한다는 장 작가는 SNS와 인터넷 게시판에서 풍기는 포퓰리즘을 경계한다. “포퓰리즘은 진정한 국민과 부패한 엘리트라는 상상의 전선을 만들고 ‘우리는 진정한 국민인데 저들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권을 잡은 뒤에도 그런다는 거죠.”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2012년 정치 경제 제도가 포용적이냐, 착취적이냐에 따라 국가의 실패 여부가 결정된다는 베스트셀러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쓴 저자들이 이번에는 어떤 국가가 성공하는지를 분석했다. 이들에게 국가 성공의 기준은 개인의 자유 보장이다. 자유는 근본적으로 ‘개인을 공포와 폭력으로부터,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가치에 따른 삶을 추구할 수 없게 만드는 지배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근대 정치사상가 홉스는 공포와 폭력, 지배라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국가, 즉 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나 리바이어던은 언제든 자유보다 통제에 탐닉할 수 있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국가에 사회가 족쇄를 채워야 한다는 것. 저자들이 고대 그리스 아테네부터 중국 미국에 이르기까지 들여다본 리바이어던의 역사는 국가와 사회가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다. 그것은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와 레드 퀸의 달리기 경주와 같다. “여기서는 같은 자리에 있으려면 네가 있는 힘껏 달려야 해.” 사회가 국가와 나란히 달리지 못하면 국가가 비대칭적으로 커져 ‘독재 리바이어던’으로 치우쳐 자유는 질식한다. 사회가 국가의 작용 자체를 막을 만큼 커지면 ‘부재(不在) 리바이어던’으로 흘러 개인은 자발적 예속에 놓인다. 독재와 부재 사이의 좁은 회랑(回廊)이 바로 자유로 가는 길, ‘족쇄 찬 리바이어던’의 길이다. 이때 국가는 법으로 폭력을 통제하고 분쟁을 해결하며,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잘 조직된 사회의 제어를 받는다. 국가와 사회의 균형을 맞추는 레드 퀸의 경주는 혼란스럽고 예측하기 어렵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은 파편화한 정당체제, 페라인스마이어라이(극성스러운 모임광·狂)가 상징하는 고도로 결집한 사회의 양극화가 심했다. 모든 당사자 간 타협은 부재했으며 적대적이었다. 결과는 나치 독재였다. 책은 중국에 대해 “진나라 이후 사회에 대한 국가의 압도적인 지배력으로 2500년 동안 회랑에서 떨어져 독재의 길을 걷고 있다”고 혹평한다. 반면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타협의 산물로 건립한 미국은 족쇄를 차고 태어나 그 무게 때문에 회랑 안에 머물며 진화를 계속한다고 본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을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통일사회당, 프랑스 국민전선과 함께 포퓰리스트로 분류한다. 포퓰리스트는 ‘운동에 참여 않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몰면서 교활한 엘리트 집단의 일부로 묘사하고 양극화를 부추긴다.’ 신뢰를 잃은 제도적 기관들이 타협을 주선하기는 더욱 어려워 회랑 밖으로 튕겨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독재적 리바이어던의 출현을 막으려면 국가에 맞서 사회의 광범위한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1938년 스웨덴 살트셰바덴 사회민주주의 연합을 사례로 든다. 이 책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전에 쓰였다. 개인 자유의 보장에 대한 동아시아와 미국 유럽의 관점이 큰 차이를 보이는 현 상황에서라면 책 내용이 조금은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2017년 1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프로그래밍 디렉터인 애덤은 선댄스영화제에서 러시아 도핑 스캔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카루스’를 봤다. 걸작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치고 비싼 250만 달러를 입찰가로 생각했다. 하지만 경쟁사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어 400만 달러는 돼야 할 것 같다. 최고콘텐츠책임자(CCO)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결정을 하라고 당신한테 월급을 주는 겁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월척이라면 450만이든, 500만이든 잡아야죠.” 애덤은 460만 달러로 결정했다. 이카루스는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제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세계적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에린 마이어 교수와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에 관해 지난해 함께 쓴 ‘규칙 없음’에는 애덤 같은 실무자(책에서는 ‘정보에 밝은 주장·informed captain’이라고 표현)가 홀로 큰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적지 않게 들어있다. 저자들은 ‘직원 결정을 승인하거나 거부하기 위해 존재하는 상사는 혁신을 막고 성장을 더디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단언한다. 올 4월 기준 전 세계 유료 구독자 1억9300만 명을 보유한 굴지의 콘텐츠 기업 넷플릭스에는 이처럼 대부분의 회사에는 당연히 있는 것이 많이 없다. 휴가 규정, 비용 규정, 출장 규정, 승인 절차, 의사결정 승인, 핵심성과지표, 성과 향상 계획, 성과급…. 얼핏 직원 마음대로인 것 같은 이런 방식은 자유와 책임의 문화다. 헤이스팅스는 지난 300년간 기업은 대량생산과 낮은 오류비율을 위해 중앙 집중적인 통제, 규정, 정책, 의사결정을 통한 규정과 절차 문화 속에 움직였다고 본다. 지휘자가 악보를 바탕으로 단원들을 한 음, 한 박자 흐트러짐 없이 이끄는 교향악처럼. 그러나 이는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일 뿐이다. 성격과 목표가 오류 방지가 아니라 혁신인 산업은 그런 통제 절차와 규정은 거의 없고, 의사결정권은 철저히 분산돼 있으며 직원 각자에게 많은 자유를 주고 각 부서가 유연하게 운신한다. 그래야 예측 못 한 기회가 생기고 사업 조건이 변할 때 빨리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민첩성이 극대화한다. 연주자 각자의 즉흥연주가 놀라운 화음을 이루는 재즈같이. 여기에는 선결조건이 있다. 인재 밀도가 높아야 한다. 넷플릭스의 인력관리 원칙은 이렇다. ‘적당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두둑한 퇴직금을 주고 내보낸다.’ ‘대단한(great)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좋은(good) 직원을 해고한다.’ 창의력이 생명인 분야에서 뛰어난 직원 1명은 평범한 직원 10명보다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분명 조직을 이끄는 방식에 관한 책이지만 읽고 나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한편 무시무시하면서도 변화할, 또는 바뀌어야 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희열이 조금씩 밀려온다. 원제 ‘No Rules Rules’.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책 제목이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라고 하자 이정화 정은문고 대표(53·사진)의 동생이 물었단다. “고려시대 다음의 그 조선을 말하는 거야?” 조선시대에 조선 남성과 결혼한 일본 여성 이야기냐는 뜻이었다. 1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기자와 만난 이 대표는 “저도 일본 이와나미문고(巖波文庫) 신간 소식에서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북송(北送)사업’이 뭔지 몰랐어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북송사업은 1959년 2월∼1984년 7월 북한 정부와 조총련이 재일교포 약 9만3000명을 북송선에 태워 북한에 보낸 일을 말한다. 우리는 강제송환이라 불렀고 북한은 동포귀국사업이라고 했다. 1990년대 초 조총련을 탈퇴한 인사들은 북송된 이들 대부분이 참혹하게 산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지난달 중순 출간된 이 책은 유명한 보도사진작가인 하야시 노리코(林典子·37)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평양, 원산, 함흥 등지에서 북송사업으로 재일교포 남편과 함께 북에 온 일본 아내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포토 다큐멘터리’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4∼76년 저희 집에서 일하시던 일본인 할머니가 계셨어요. ‘왜 일본 사람이 우리 집에서 일하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에 한국 남편과 결혼했는데 이후 혼자 살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어요.” 이 대표는 출간 작업에 들어가면서 북송사업의 실체를 파헤친 책 ‘북한행 엑소더스’를 어렵게 구해 읽고 일본 영화 ‘박치기’도 봤다. 이 대표는 “이 책이 북송사업에 대한 정치적 관점에서부터 글을 풀어냈다면 별 관심이 없었을 것 같다. 아내들 개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여서 좋았다”고 했다. 책의 사진과 글은 일본인 특유의 정서라고나 할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들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것처럼 보이고 읽힌다. 물론 저자가 이들을 만날 때마다 안내원이 옆에 있다는 한계가 있었을 테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듯싶다. 아내들은 한국 북한 일본 정부가 ‘강제송환이다’ ‘귀국이다’ ‘납치다’라고 외쳐대지만 그저 그렇게 됐을 뿐이라는 식으로 담담히 말한다. “저자는 말해요. 자신은 사회나 국가나 역사를 보면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면서 그가 처한 처지나 상황, 역사나 정치적 역학관계를 생각한다고. 그런 시각이 중요합니다. 국가나 사회부터 보게 되면 사람을 보기 전에 판단이 결정되거든요. 이 책처럼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 판단하기 이전에 알아가게 되는 거죠. 독자께서 그렇게 전체를 보시길 바라요.” 책 표지는 건물 한쪽이 드러나고 그 뒤로 바다가 끝도 없이 보이는 사진이다. 저자가 끝까지 이 사진을 고집했다. 원산 앞바다다. 일본인 아내들은 저 바다 너머 무엇을 보려 한 것일까. 저자는 책 표지에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미국에 필요한 것은 분열이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증오가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폭력과 무법이 아닙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 지혜와 연민, 그리고 정의감입니다….’ 1968년 4월 4일 미국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피살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그날 오후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유세가 잡혀 있었다. 유세 장소는 이 도시에서도 빈곤한 흑인들이 많은 곳이었다. 선거 참모들은 위험하다며 취소하자고 했지만 로버트 케네디는 감행했다. 사실상 즉흥연설을 통해 슬퍼하고 분노하며 일촉즉발이던 흑인들을 위로했다. 킹 목사 사후 24시간 동안 미국 119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나 46명이 숨지고 약 2500명이 다쳤다. 인디애나폴리스는 소요가 발생하지 않은 유일한 대도시였다. 이 책은 존 F 케네디(JFK)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1925∼1968)가 1968년 3월 16일 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그해 6월 5일 JFK처럼 총탄에 숨질 때까지 82일간의 선거운동을 다뤘다. ‘무자비하고 까다롭고 호전적이며 무례하고 참을성 없으며 기회주의적’이란 평을 받던 그가 어떻게 ‘진정성 있고 선하며 품위 있고 온화하며 영리하고 단호하고 사람을 고무할 줄 아는’ 리더로 변해 대중이 우러르는 죽음을 맞았는지 꼼꼼한 취재와 분명한 ‘편애’로 기술했다. 영웅시된 그의 입지는 대중이 ‘케네디라는 이름의 마술에 홀린’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은 극심한 인종차별, 베트남전쟁 반대, 빈부 격차의 증대에 따른 빈곤 같은 당시 미국의 시대적 이슈를 그가 정치적 거래를 배제한 채 진정성 있게 부딪힌 결과로 파악한다. 그는 ‘자신이 우려하는 바를 위로하는 말로 감추지 않고 그릇된 희망이나 망상으로 속이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과 반대되는 생각을 이야기하고, 자신에게 동조하는 청중이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정치적으로는 위험하지만 자신을 속이지 않는 기조를 밀고 나갔다. 로버트 케네디의 대선 도전은 JFK의 후광과 어렴풋한 죽음의 그림자를 극복하는 기록이었다. 하나는 성공했지만 다른 하나는 실패했다. 선거운동 81일째, 고비였던 캘리포니아주 예비경선 승리가 확실해진 순간 ‘그와 형 사이에 남은 가장 큰 유사점은 매사추세츠 억양 그리고 애국과 희생은 분리할 수 없다는 믿음’뿐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그는 운명(殞命)한다. 이 책은 2008년 출간됐다. 당시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마지막 해로 대선을 몇 개월 남겨 놨다. 저자는 1968년과 2008년의 미국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인종차별은 그대로고 원치 않는 이라크전쟁으로 도덕적 리더십마저 상실하고 있다는 것. 책의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2008년과 지금의 미국 또한 흡사하다며 로버트 케네디를 다시 읽어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그러나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로버트 케네디의 ‘재림’이라고 생각됐듯 조 바이든도 그럴지는 솔직히 관심 없다. 다만 ‘(지지자들을) 이용하려는 대신 교육하고, 분열 대신 화해를 시도하고, 메시지를 주입하는 대신 대화하고, 지갑이 아닌 선한 마음에 호소하고, 안위를 약속하는 대신 희생을 요구’하는 젊은 정치인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생길 뿐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인정한다. 시간이 남아돌아도 책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책 읽는 효과는 단번에 나지도 않는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再)확산으로 실내 점유 시간은 늘어났다. TV든 넷플릭스든 유튜브든 지루할 때가 온다. 책을 꺼내볼 겨를이 생기지 않을까.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다. 독서법 전문가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64·‘고수의 독서법을 말하다’ 저자), 김병완 김병완칼리지 대표(50·‘한번에 10권 플랫폼 독서법’), 이성열 작가(66·‘독서 고수들의 독서법을 훔쳐라’),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64·‘나는 도서관에서 교양을 읽는다’)에게서 ‘집콕, 책 읽는 기술’을 들었다.》○ 너의 관심은책은 많은 이에게 소일거리 아니면 공부다. 어느 쪽이든 책을 읽을 동기부여가 되기 어렵다. 독서법의 첫걸음은 자신의 관심에서 내딛는다. 지금 내 관심사는 무엇인가. 직장 업무의 특정 분야인가, 운동 같은 취미인가, 혼란한 시대의 불안한 마음인가, 직업을 바꿀 생각인가, 사춘기를 겪는 자녀인가…. 나를 흥미롭게 하는 것, 마음이 쏠리는 것이 독서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책을 들어라관심이 명확해졌다면 책을 읽는 구체적인 목적이 생긴 것이다. 기간을 분명히 해보자.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정도면 나쁘지 않다. 관심과 관련된 책을 10권이면 10권, 20권이면 20권 정한다. 대출 서비스를 지속하는 지역 도서관에서라면 충분히 빌릴 수 있다. 책은 물리적으로 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가까이 둬야 한다. TV 앞이든, 화장실이든, 외출할 때 가방에든, 읽든 말든 상관없다.○ 정독, 피하라책 한 권을 완벽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서문을 읽고 목차를 훑어 내려가며 눈에 들어오는 꼭지를 찾아 읽는 것도 방법이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놓고 왔다 갔다 하며 보는 것도 좋다. 옛사람은 서재에 나란히 꽂힌 책등을 보는 것도 독서라고 했다. 지금은 책 앞뒤 표지와 띠지에 적힌 내용을 읽는 것만으로도 독서라 할 수 있다.○ 영상과 함께분명 책 읽는 것은 지루하다. 군데군데 뽑아서 읽어도 그렇다. 책이라는 텍스트를 영상이라는 비주얼과 조합하면 지루함을 반감시킬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 문학에 꽂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읽는다고 생각해 보자. 중간에 때려치우기 서너 번에 결국 포기하기 일쑤다. 그럴 때는 유튜브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Le Pere Goriot(고리오 영감)’를 찾아보라. 영화가 나온다. 서양사 관련 책을 읽을 때도 관련 영화(영상)는 꽤 많다.○ 어떻든 독후감책을 읽었다면 말이나 글로 읽은 소감을 정리해서 알리도록 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책과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렇게 생긴 지적 호기심은 다른 책으로 연결시켜 준다. 보물찾기 하듯 내 관심에 대한 책마다의 해답을 연결해서 새로운 나만의 지식을 구축한다. 그러면 더 큰 의문이 생긴다. 그런 결절점마다 자신만의 독후감을 어떤 형식으로든 남기면 좋다. ○ 부모가 읽어라독서법 전문가들은 대중을 상대로 강연도 많이 한다. 자녀가 초등학생 이상인 여성들이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아이가 알아서 책을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지루할 때가 상상력을 키우기 가장 좋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확실한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부모님께서 책을 읽으세요.”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광복 75주년과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1891∼1955) 서거 65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회고한 책 ‘나라와 민족의 선각자 仁村 金性洙’(백산출판사·사진)가 출간됐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각계 원로급 인사 19명이 인촌과의 인연, 그에 대한 경험과 소회를 담았다. 김형석 명예교수는 ‘나라와 민족의 큰 어른’이라는 글에서 “인촌은, 낮은 야산만 보고 살았던 나에게 큰 거봉(巨峰)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 그가 지닌 애국심 때문이다. …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변함없는 애국심을 지니고 살았다”고 했다. 인촌이 설립한 중앙학교 교사였던 김 교수는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그 이튿날 학교를 찾아가 “학교 재정을 은행에 맡겨두면 공산군 손에 넘어갈 테니 그 예금을 찾아 교사와 직원에게 3개월씩 월급을 먼저 지급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인촌은 바로 허락해 서울 수복이 될 때까지 3개월간 중앙학교 교직원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지냈다. 김 교수는 이어 “인촌의 탁월한 장점은 인재를 배출해 그를 아끼며 믿고 위해주었다는 사실”이라며 “인촌은 언제나 자신보다 유능한 적임자라고 인정할 때는 서슴지 않고 그 직책을 맡기고 자신은 뒤에서 돕는 자세였다”고 회고한다. 책은 인촌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주대환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의 말을 인용해 “독립운동가들 모두가 김성수의 도움을 받았다. … 그의 한계를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그의 족적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강조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50대를 겨냥한 책이 부쩍 늘었다. 이달 ‘철학하는 50대는 미래가 두렵지 않다’ (빈티지하우스) ‘50,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빌리버튼), ‘50이라면 마음청소’(센시오)가 출간되는 등 올 들어 10종 넘게 나왔다. 출판계에서는 제목에 ‘50(대)’을 박아 넣은 책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주로 자기계발서인 이 책들이 상정하는 50세(혹은 50대)는 세상의 뜻을 아는 지천명(知天命)이라기보다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는 나이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밀려오는 때다. 이성용 빈티지하우스 대표는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두는 일, 즉 ‘은퇴’를 앞두고 재취업이냐 투자냐, 돈 걱정에 자녀교육 문제로 불안하다. 이때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50대를 잘 준비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책을 냈다”고 말했다. 50을 타깃으로 하는 이 책들이 생각하는 주요 소비층은 막 50이 됐거나 50을 맞이할 40대 중후반, 즉 ‘뉴노멀 중년’이다. 이들이 30대 중반∼40대 초반이었을 때 ‘30대 재테크 성공전략’(2008년) ‘대한민국 30대, 재테크로 말하라’(2008년)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2011년) 같은 책이 유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나 4차 산업혁명같이 시대를 완전히 뒤바꿀 일은 상상도 못했기에 그런 경제·경영서에 신경 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현준 빌리버튼 대표는 “10년, 20년 전의 50대에 비해 재취업이나 투자환경이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며 “이들은 그때 놓친 기회를 후회하고 있다”고 짚었다. 뉴노멀 중년은 과거의 50대와 다르다. 주로 1970년∼1975년에 태어난 이들은 X세대다. 그전 586세대(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닌 50대로 대표되는 세대)까지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했다면 X세대는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에 집중한 첫 세대다. 이들은 50을 맞아 자아 찾기에 나선다. 지난달 나온 ‘50, 우아한 근육’(꿈의지도)는 세 자녀를 키우는 1970년생 동화작가가 50을 맞아 근육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이 탈바꿈한 과정을 담고 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노년을 준비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윤소영 꿈의지도 팀장은 “뉴노멀 중년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고, 나의 몸과 취향에 투자한다. 책임을 오랜 시간 다한 후에 더 절실해진 자아 찾기”라고 말했다. 비상교육 Geo Company 대표인 1971년생 노중일 씨가 올 4월 펴낸 ‘50 SO WHAT?’(젤리판다)는 뉴노멀 중년이 동년배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다. 출생연도별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에 속하는 1970, 71, 72년생이 코로나19와 산업구조 격변 속에 ‘오춘기’를 겪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과거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펼쳐내야 하는 책임을 진 X세대의 고민과 두려움의 표현이라는 것. 노 씨는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X세대가 Y, 밀레니엄, Z세대와 더불어 잘 살려면 그들의 다양성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한다. 50을 위한 책의 잇단 출간은 독서 연령층의 고령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약 10년 전 책의 주소비층이던 30대 직장여성이 나이를 먹어 40대 중후반이 돼서도 계속 책을 구입하는 주요 연령대가 된다는 얘기다. 반면 디지털 매체를 선호하는 20, 30대의 책 시장 유입은 지지부진하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더 이상 성장은 불가능한가. 정부의 개입은 어디까지가 적정한가. 양극화는 극복할 수 없는가. 대공황은 불가피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모든 것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미중 무역 분쟁의 여파로 휘청대던 세계 경제가 미증유의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엎친 데 덮친 경제난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저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택했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카를 마르크스부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로버트 솔로까지 근현대 글로벌 경제 체제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들을 소환해 이들이 던져줄 묘안을 모색해 본다. 이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공통점은 이론 탐구에만 머물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려 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명확한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경제학의 일가를 세운 이들의 이론과 삶을 일별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마이클 루이스는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작가다. 출루율이라는 보잘것없던 통계가 불러온 야구계의 격변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단 단장의 자전적 실화로 풀어낸 ‘머니볼’(2003년)이 그랬듯 이 책도 미식축구 전술의 작은 변화가 일궈낸 흑인 빈민 소년과 백인 부유층 가족의 휴먼스토리를 담았다. 이미 10년 전 국내에서도 개봉된,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영화는 백인 가족이 길거리 갱이 될 뻔한 흑인 소년을 연봉 수백만 달러의 프로 미식축구 선수로 키워내는 훈훈한 과정을 담았다. 흑인판 신데렐라 내지는 미국판 피그말리온처럼도 보인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현재 시각으로 보면 자칫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장을 펼치면 미 남부 복음주의 기독교도 가족의 선행이라는 태풍은 1980년대 초반 로렌스 테일러라는 불세출의 미식축구 수비수가 부른 나비효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야구팬은 1000만에 가깝다지만 미식축구팬은 채 1만이 될까. 만약 이 전형적인 미국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전형적인 표현으로 이 책을 쥐는 순간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낯선 전문용어가 난무하지만 번역자가 최대한 매끄럽게 풀어내 군데군데 눈에 띄는 오타와 오역에도 너그러워진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일본 작가 센주 히로시(千住博·1958∼)의 이 책을 보고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1896∼1933)의 ‘은하철도의 밤’을 떠올렸다. 8, 9년 전 은하철도의 밤을 읽고 ‘일제강점기는 어쩔 수 없었다’는 용납되지 않을 탄식을 속으로 삼켰다. 차마 발설하지 못한 이유는 윤동주(1917∼1945)의 ‘별 헤는 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별은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다. 이때 우리는 인간만은 아니다. 모든 자연이다. 스스로 그러한 물자체다. ‘별이 내리는 밤에’에서는 사슴이다. 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슴은 별에 홀린 듯 어디론가 헤맨다. 작가는 친절하게 그 행적을 작은 ‘지도’에 표시해준다. 없어도 괜찮았으리라. 사슴은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을 생각한 것일까. 두 번 별똥별이 하늘을 긋는다. 개는 긴장하면 입을 다문다. 사슴은 단 한 번 입을 연다. 가족을, 혹은 동료를 만났을 때다. 이 책은 그림책이다. 정말 그렇다. 글이 없다. 그러나 무한을 웅변한다. 다 다르게 들리리라.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요즘 한의학의 관심은 코인가 보네’ 하며 표지를 훑어보다 출판사 이름에 멈칫했다. 사이언스북스…. 흐음. 한의학과 과학 사이에는 건너기 쉽지 않은 강이 있는 것 아니었나. 하지만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주간(47·사진)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과학과 비(非)과학이 쉽게 둘로 쪼개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마이클 셔머의 책 ‘과학의 변경지대’를 보면 현재 주류과학이라는 것, 표준모형이라고 보는 것들도 (과거) 언젠가는 변경지대였으니까요. 만약 과학과 비과학을 엄밀하게 나눈다면 갈릴레오 이전은 모두 비과학이 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이 아닌 거죠. 그렇게 따질 수 있나요?” 1997년에 생긴 사이언스북스는 ‘한국과학사’(전상운 지음)를 비롯해 현대과학의 눈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다시 보고 그 안에서 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임진왜란 때 있었다는 비거(飛車)를 재현하는 ‘조선의 비행기, 다시 하늘을 날다’, 천변등록(天變謄錄) 같은 옛 기록을 통해 천문을 헤아리는 ‘우리 혜성 이야기’, 전통문화에 담긴 미생물학적 지혜를 찾는 ‘담장 속의 과학’ 등 이른바 한국 전통과학의 창조적 유산들을 집대성한다는 취지다. 그 연속선상에서 보면 이 책 ‘코의 한의학’(이상곤 지음)은 유별난 기획이 아니다. 이비인후(耳鼻咽喉)를 전공한 이상곤 한의사는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왕의 의료기록을 꼼꼼히 살펴 이미 사이언스북스에서 ‘낮은 한의학’과 ‘왕의 한의학’을 냈다. “이번 책에서는 특히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이비인후과 관련 왕의 병증과 이에 대한 처방 내용을 보강했습니다. 한약은 사람 계절 환경마다 다르게 처방해야 하는데 실록에는 대략적으로 어떤 약을 썼다고만 돼 있는 반면, 승정원일기에는 어떤 것을 얼마나 하루에 몇 번 어떻게 썼는지 자세히 기록돼 있다는 거죠.” 승정원일기의 임상기록은 굉장히 풍부하다고 한다. 환자(왕들)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 그 후손들이 누구인지 유전자로 특정되는 등 이 같은 기록들과 근대 한의사들의 연구를 토대로 하면 놀라운 의학적 발전의 실마리나 바탕으로 삼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또한 번역된 승정원일기 의료기록 중에는 한의학 용어를 엉뚱하게 번역하거나, 병을 뜻하는 단어인지 아니면 약을 뜻하는 단어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등 착오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는 한의사, 역사학자, 의사들의 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협력해서 논의할 수 있는 틀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전통과학사의 맥락에서 한의학 책들을 펴내는 것이죠. 한의학도 몇 천 년에 걸쳐 데이터를 축적했는데 누군가 실험과 정량화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할 기록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독자가 이런 책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최근 충북 청주의 이슬람교 행사에 참석한 우즈베키스탄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주연 박사(37)의 어머니는 이 뉴스를 접하자 이렇게 말했다. “우즈베크에 무슬림이 있어?” 티무르 제국의 시조(始祖), 아미르 티무르(1336∼1405)의 생을 다룬 역사서 ‘勝戰記(Bafar-n ̄ama·승전기)’를 이슬람권 밖 언어로는 세계 최초로 완역한 딸을 둔 어머니로서는 ‘의외’의 반응일 수 있겠다. 티무르 제국의 시작은 우즈베크였다. “우리는 중앙아시아를 잘 모르죠. 지정학적으로 한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만 알아도 세계를 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또 다른 넓은 세계인 무슬림 세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9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이 박사는 올 2월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논문 ‘티무르朝의 史書, 야즈디 撰 ‘勝戰記(Bafar-n ̄ama)’의 譯註’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달 은퇴한 중앙아시아 연구 석학 김호동 교수의 제자다. 논문 분량은 1140쪽. 보통 박사학위 논문의 2배가량이다. “김호동 선생님께서 국내 연구가 많지 않은 분야인데 연구서보다 번역서를 내는 게 괜찮겠다고 조언해주셨어요. 사료를 통독해야 공부가 잘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사료를 번역하면 연구거리가 많을 것 같았죠.” 샤라프 알리 앗딘 야즈디가 1424년 페르시아어로 쓴 승전기는 아미르 티무르의 일대기다. 티무르는 14세기 말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조지아 등 캅카스 산맥 일대 및 소아시아, 북인도, 중국 서부 등을 정복해 대제국을 세웠다. “정복 지역 지배층은 튀르크 유목민, 피지배층은 무슬림 정주민(定住民)이었죠. 유목민에게는 몽골제국 후예의 딸들을 부인으로 둔 (몽골제국의) 부마(駙馬)라며 정통성을 주장한 반면에 피지배층에게는 자신을 투철한 무슬림으로 보이게 해서 정통성을 얻었죠.” 승전기에서는 티무르를 ‘사힙키란’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페르시아 문화에서 기원한 칭호로 목성과 토성의 합일(合一) 때 태어나 세계 정복이 예정된 인물을 말한다. 승전기가 1722년 프랑스어로, 1723년 영어로 완역은 아니지만 상세히 번역될 정도로 유럽의 티무르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영원한 적’ 오스만 제국 너머에서 나타난 티무르를 ‘절름발이 이미지’로 보면서도 두려워하며 칭기즈칸을 떠올리기도 했다. 승전기는 무엇보다 안에 담긴 페르시안 시 때문에 어렵다. 운율을 예쁘게 하려고 어순을 바꾸거나 발음도 바꾼다. 이 박사도 2016년 이란에서 6개월간 시 읽는 법을 배웠다. 물리교육과에 입학했다가 역사교육을 복수 전공하며 중앙아시아사에 빠져든 이 박사의 논문은 이르면 올 하반기 책으로 나온다. 이 박사는 “무력을 휘두르며 원하면 사람을 죽이던 일반적인 유목민 군주가 아니라 전략에 능하고 지역조사에 밝으며 정확한 루트에 따라 이동하던 다른 모습의 군주를 독자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출판사는 책으로 말한다. 내는 책이 늘어나며 정체성이 쌓여 간다. 그럼에도 ‘최고편집자’인 대표가 책을 쓴다는 건 어지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일 터다. 올해 그런 책이 좀 나왔다. 2000년 세운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58)는 10일 인터뷰집 ‘스무 해의 폴짝’을 냈다. 창립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만든 420여 종의 문학 예술 인문서 저자 가운데 문학 쪽 20명을 정 대표가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만나 나눈 이야기를 모았다. 이들에게 운동화를 선물했는데 또 한 번의 도약, ‘폴짝’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자기 출판사 저자들과 대화한 내용을 정리하는 일은 드물죠. 책을 받아 보고서는 ‘충격이다’라고 반응한 출판사 대표도 계셨어요. 20년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게 과분하기도 하고, 책 출간을 동의해주고 도와준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고맙지요.” 인터뷰이 가운데 교수인 권혁웅(시인) 이기호(소설가) 신형철(평론가)을 만나서는 안정된 제도권 안에 있으면서도 젊은이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모습에 ‘편견’이 깨졌고, 지난 20년간 “10년은 독자, 10년은 작가였다”는 소설가 김금희 백수린 손보미의 말에 새삼 시대의 변화를 깨달았다. 1992년에 등단해 90년대 시집을 2권 낸 정 대표는 “책을 만들면서 마음속에 시어(詩語)가 덜그럭거려 420여 편의 시도 썼다”고 했다. 자신의 책을 스스로 만들어 보면서 저자의 심정을 더 절실히 알게 됐다는 대표도 있다. 올 초 우연한 기회에 주변의 권유로 에세이집 ‘다행히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을 낸 출판사 황소자리 지평님 대표(54)는 “30년 가까이 편집자로서 저자를 바라본 것과 실제 저자가 된 것을 비교해 보니 서로의 간극이 컸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이번에 책을 낼 때 표지 디자인이 제 느낌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끝내 아쉬웠죠. ‘모든 저자가 이렇게 속으로 삭였겠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독자 반응에 대한 ‘민감도’도 달랐다. 예전에는 출간한 책에 대한 인터넷 서평을 볼 때 코웃음을 치기도 했었단다. 하지만 자신의 책에 대해서는 코웃음은커녕 매우 소심해졌다. “오타라도 날까 봐 마음 졸이는 수준을 넘어서 굉장히 떨리더라. 결국 32쪽 분량이 페이지 번호가 뒤바뀌는 제본 사고를 냈다. ‘초짜’처럼 허둥대는 모습에 송구하고 창피하고 그랬다.” 국내 굴지의 단행본 출판사 문학동네를 1993년 설립하고 대표를 지낸 강태형 씨(63)도 올 초 자신의 첫 장편소설 ‘온전한 고독’을 펴냈다. 198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한 강 전 대표는 사임한 뒤 ‘길을 떠돌면서 이야기를 찾고’ 있다. 당시 그는 주위에 “견딜 수 없이 쓰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고 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땅만 바라봐서는 지구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인 저자가 지난 25년간 25차례 배를 타고 남극권의 심해를 탐구, 조사한 까닭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하다 우연한 계기로 온누리호에 올라탄 후 지금까지 해양 탐사를 이어가고 있는 저자가 그동안 남극권에서 경험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2015년 남극권 중앙 해령(海嶺) 최초의 열수(熱水) 분출구와 신종 열수 생물을 최초로 발견하고 빙하기와 간빙기가 순환하는 증거를 찾아내는 등 저자가 그의 연구팀과 이뤄낸 성과들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이 열수 분출구 이름을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따온 ‘무진’으로 붙이고, 열수 생물인 키와속(屬) 게는 아라온호 이름을 따 ‘키와 아라오나’로 지은 것에서 지은이의 문학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약간 과장되게 말하자면, 책을 읽다 보면 ‘원피스’의 루피가 종종 떠오른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20여 년 전에 이 소설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1946년생인 작가가 40대 초반까지 자신의 삶을 형상화한 듯한 이 작품은 1권은 고향의 삶, 2권은 타향의 삶으로 나뉜다. 그 시기는 정확히 한국의 근대화와 겹친다. 이른바 후일담과 사소설로 한국 소설이 빠져들게 된 1990년대 이전에는 이 같은 배경을 가진 작품이 적잖았다. 토속적, 향토적이라는 수식어로 표현되던 시골의 서정 또는 누추함. 냉정한, 비열한 등으로 꾸며지던 도시의 비참 또는 잔인함. ‘은골로 가는 길’은 이것들이 한데 합쳐져 드러난다. 이 소설 1권은 충남 산골마을 은골에서 몇백 년 살아온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 세혁의 유년부터 고교 졸업 후 결혼까지를 담았다. 2부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한 세혁의 서울 생활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같지만 1권과 2권은 각기 다른 소설 같다. 1부는 보릿고개와 가난의 참혹함을 갈 데까지 보여주면서도 생생한 충청도 사투리와 시 같은 문장이 버무려져 찰지게 읽힌다. ‘나는 산에 갈 때 숲을 보고 들어갔다가 나무를 보고 나왔다. 나무도 사람처럼 똑같이 생긴 나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곧고, 뒤틀리고, 살찌고, 마르고, 다보록하고, 엉성하고, 꼬이고, 꺾이고, 벌레 먹고, 병들고, 상처 없이 자란 나무는 없었다.’ 반면 2부는 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를 중심으로 1권에 비해 딱딱한 문장으로 다소 건조하게 구성된다. 시대 배경은 영화 ‘국제시장’과도 겹치지만 무조건적인 ‘아,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다. 근대화의 초석을 놓았다는 객관적 평가를 받는 경부고속도로지만 세혁에게는 ‘경부고속도로는 독일 아우토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잉태하여 경북 구미에서 사산(死産)되었구나!’일 뿐이다. 산업화와 ‘잘살아보세’의 그 시대를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살았다. 어떤 모습이 옳은지, 그른지 딱 잘라서 볼 수도, 볼 필요도 없다. 누군가 말했다. “사소한 사람도, 사소한 역사도 없다”고.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향수(鄕愁)라는 말을 이 소설을 통해 한번 느껴볼 만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조금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작품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서점(동네책방)을 한다는 것은 돈 없는 정우성이랑 산다는 것과 같다.’ 동네책방 주인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는 글이다. 겉으로는 ‘폼 나’ 보이지만 한 달에 100만 원 손에 쥘까 하는 곳, 동네책방. 동네의 핫 플레이스라는 낭만적 이미지나, 책방 주인의 일상 에세이 정도로만 알려진 동네책방의 실상은 사실 생계를 걱정할 정도다. 책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책은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주로 사는 시대, 동네책방의 의미와 살길을 모색하는 ‘동네책방 생존탐구’(혜화1117)를 지난달 말 펴낸 출판평론가 한미화 씨(52)를 만났다. 지난해 기준 전국의 동네책방은 약 550개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책의 초고를 완성한 올 5월 이후에도 글에 등장하는 동네책방 몇 개가 문을 닫았다. “처음에는 ‘동네책방 전성기 탐구’라는 주제로 서점이 멋지게 변화한 모습을 쓰고 싶었는데 (취재할수록) 먹고살기 힘든 게 명약관화했어요. 그렇다고 네거티브하게 끌고 가자니 마음은 안 좋고…. 그럼 같이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고민해 보자는 의도에서 썼어요.” 국내 동네책방은 2015년 무렵부터 붐이 일었다. 과거 서점과는 다르게 개성 있는 인테리어, 사람이 모이는 공간, 맛있는 커피 또는 맥주 등 나름의 분명한 콘셉트와 정체성을 드러냈다. 동네책방을 찾아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여기 어디야?’ 하고 반응할 수 있는 30대 전후가 책방의 주인이자 독자가 됐다. “대부분 돈이 벌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시작해요. 책만 말고 다른 것도 같이 팔면 밸런스를 맞출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죠. 동네책방 여는 법을 가르치는 곳에서도 부가가치를 만들 것을 모색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만만치 않다. 동네책방은 1만 원짜리 책을 팔면 2500원이 남아야 대략 수지를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를 비롯한 유통구조와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동네책방 생태계가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출판 서점 독자 모두가 마음을 열고 고민해 보자는 것이 한 씨의 생각이다. “알아서 책을 찾아보는 사람에게는 동네책방이 없어도 되죠. 하지만 책하고 담을 쌓았거나 무슨 책을 읽을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실합니다. 가까운 곳에서 책을 만나고, 이들에게 맞춰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 동네책방이 필요한 거죠. 콘텐츠를 담는 그릇으로 책만 한 것은 없으니까요.” 독자가 자발적으로 책방을 찾아오지 않는 시대에 동네책방은 ‘누구에게나 책이 재미있다는 걸 경험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한 씨는 말한다. “읽기는 습관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책방에 가서 책 읽는 환경 속으로 이끄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죠.” 하지만 독자가 찾아오기 위한 곳이 되기 위해서는 동네책방이 고군분투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독자를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네책방은 분명 사적인 비즈니스지만 더 많은 사람을 책의 시민으로 이끄는 ‘공공의 역할’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내 이름은 요나스 요나손이고 내 입장을 설명드리고자 한다. 나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속편을 쓸 뜻이 전혀 없었다.” 성우 구자형 씨(55)가 낮고 포근한 목소리로 소설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의 머리말을 읽기 시작하자 주변 공기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이어 성우 조경아 씨(44)가 박완서 선생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중 남성과 여성의 대화를 읽어 내려가자 분명 남성의 음성은 아닌데도 두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각각 30년 차, 9년 차 성우이면서 현재 오디오북 녹음을 하는 두 사람을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세계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올해 35억 달러(약 4조 원)로 전망된다.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추정에 따르면 국내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200억 원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성장세다. 두 성우는 국내 오디오북 플랫폼 업체 중 스웨덴계 스토리텔과 작업하고 있다. ‘텔레토비’ ‘뽀로로’의 내레이션 등으로 유명한 구 씨나 ‘다큐프라임’ 같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등을 해온 조 씨 같은 베테랑 성우들에게도 오디오북 녹음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업과 준비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520쪽 분량의 ‘핵을 들고 도망친…’ 오디오북 플레이타임은 9시간 20분인데 완독에 13시간 40분 걸렸습니다. 준비시간까지 약 60시간 소요됐습니다. 가성비가 좋은 분야는 아니지요. 하하.”(구 씨) “책 한 권을 평균 세 번 읽지만 초기에는 여섯 번 읽었어요. 전체 내용 파악, 묶음으로 큰 흐름 숙지, 세밀하게 분석, 캐릭터 특성 파악, 다시 전체 분석, 낭독하기 전 읽을 분량만큼 다시 읽었어요.”(조 씨) 오디오북은 전체적인 맥락을 중요시하며 서술형 문장을 장시간 편안하게 읽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캐릭터의 특징을 강조하는 평소 ‘습관’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더빙할 때는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특정 부분에 강세를 주는 등 ‘힘’을 줘야 했지요. 그래서 오디오북 낭독 초기에는 ‘힘을 좀 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조 씨) “쓸데없이 조사(어미)를 강조하는 버릇을 지적받았어요. 읽을 때 ‘…다’ ‘…다’를 세게 읽는 거예요. 좀 심하면 ‘따따체’라고 부를 정도니까요. 체질을 바꾸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구 씨) 오디오북은 예전에는 내레이션 따로, 남녀 캐릭터 따로 식의 ‘오디오 드라마’처럼 제작했지만 요즘은 성우 한 명이 남녀 캐릭터를 다 표현하는 1인 낭독이 주류다. “낭독의 큰 기둥은 화자, 내레이터 같아요. 목소리를 변조해 남성 캐릭터를 표현하지 않고 할머니가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 들려주듯 캐릭터의 특징과 느낌을 표현하려고 하면 남성으로 들으시더라고요.”(조 씨)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이 실사 영화 ‘라이언킹’보다 감정 표현을 더 잘한 것처럼 소리도 오토튠을 써서 제가 여자 목소리로 ‘피치업’한다고 해서 그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캐릭터 안의 알맹이(정서)라는 뼈대에 제 상상력을 붙여 만들어낸 소리가 중요한 거죠.”(구 씨) 두 사람은 오디오북 업계에서 ‘수요’가 많은 성우다. 팬덤도 형성돼 ‘성우계의 마법제야’ ‘글이 아니라 사람이 들린다’ ‘책을 온몸으로 상상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흡입력이 대단하네요’ 같은 독자 반응이 줄을 잇는다. “오디오북은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해석해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청자 혹은 독자의 감정과 정서를 건드려 마음이 따뜻해지게 하죠.”(구 씨) “북적대는 지하철에서도 ‘나만의 시공간’에서 책을 들을 수 있고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책 한 권을 들을 수 있어요. 눈으로 읽었을 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들으니까 보인다는 독자도 있지요. 책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어요.”(조 씨)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내 이름은 요나스 요나손이고 내 입장을 설명드리고자 한다. 나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속편을 쓸 뜻이 전혀 없었다.” 성우 구자형 씨(55)가 낮고 포근한 목소리로 소설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의 머리말을 읽기 시작하자 주변 공기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이어 성우 조경아 씨(44)가 박완서 선생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중 남성과 여성의 대화를 읽어 내려가자 분명 남성의 음성은 아닌데도 두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각각 30년 차, 9년 차 성우이면서 현재 오디오북 녹음을 하는 두 사람을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은 올해 국내 오디오북 시장 규모를 200억 원대로 보지만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성장세다. 두 성우는 국내 오디오북 플랫폼 업체 중 스웨덴계 스토리텔과 작업하고 있다. ‘텔레토비’ ‘뽀로로’의 내레이션 등으로 유명한 구 씨나 ‘다큐프라임’ 같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등을 해온 조 씨 같은 베테랑 성우들에게도 오디오북 녹음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업과 준비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520쪽 분량의 ‘핵을 들고 도망친…’ 오디오북 플레이타임은 9시간 20분인데 완독에 13시간 40분 걸렸습니다. 준비 시간까지 약 60시간 걸렸습니다. 가성비가 좋은 분야는 아니지요. 하하.”(구 씨) “책 한 권을 평균 세 번 읽지만 초기에는 여섯 번 읽었어요. 전체 내용 파악, 묶음으로 큰 흐름 숙지, 세밀하게 분석, 캐릭터 특성 파악, 다시 전체 분석, 낭독하기 전 읽을 분량만큼 다시 읽었어요.”(조 씨) 오디오북은 전체적인 맥락을 중요시하며 서술형 문장을 장시간 편안하게 읽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캐릭터의 특징을 강조하는 평소 ‘습관’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더빙할 때는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특정 부분에 강세를 주는 등 ‘힘’을 줘야 했지요. 그래서 오디오북 낭독 초기에는 ‘힘을 좀 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조 씨) “쓸데없이 조사(어미)를 강조하는 버릇을 지적 받았어요. 읽을 때 ‘~다’ ‘~다’를 세게 읽는 거예요. 좀 심하면 ‘따따체’라고 부를 정도니까요. 체질을 바꾸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구 씨) 오디오북은 예전에는 내레이션 따로, 남녀 캐릭터 따로 식의 ‘오디오 드라마’처럼 제작했지만 요즘은 성우 한 명이 남녀 캐릭터를 다 표현하는 1인 낭독이 주류다. “낭독의 큰 기둥은 화자, 내레이터 같아요. 목소리를 변조해 남성 캐릭터를 표현하지 않고 할머니가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 들려주듯 캐릭터의 특징과 느낌을 표현하려고 하면 남성으로 들으시더라고요.”(조 씨)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이 실사 영화 ‘라이언킹’보다 감정 표현을 더 잘한 것처럼 소리도 오토튠을 써서 제가 여자 목소리로 ‘피치업’한다고 해서 그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캐릭터 안의 알맹이(정서)라는 뼈대에 제 상상력을 붙여 만들어낸 소리가 중요한 거죠.”(구 씨) 두 사람은 오디오북 업계에서 ‘수요’가 많은 성우다. 팬덤도 형성돼 ‘성우계의 마법제야’ ‘글이 아니라 사람이 들린다’ ‘책을 온몸으로 상상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흡입력이 대단하네요’ 같은 독자 반응이 줄을 잇는다. “오디오북은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해석해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청자 혹은 독자의 감정과 정서를 건드려 마음이 따뜻해지게 하죠.”(구 씨) “북적대는 지하철에서도 ‘나만의 시공간’에서 책을 들을 수 있고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책 한 권을 들을 수 있어요. 눈으로 읽었을 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들으니까 보인다는 독자도 있지요. 책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어요.”(조 씨)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과도적 상황을 조화롭게 수습하면서 발전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늘 나의 몫이었다.” 올 5월 별세한 춘재(春齋) 현승종 전 국무총리(1919∼2020)는 최근 나온 유고(遺稿) 회고록 ‘인생 회상’(여백)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고려대 학생처장으로 1960년 4·19혁명 전야의 4·18의거부터 1965년 한일협정반대운동까지의 격변기에 학생들을 진정시키려 한 일이나, 1974∼1980년 성균관대 총장으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제2캠퍼스를 연 일이나, 1992년 10월부터 4개월여의 중립내각 국무총리로 그해 12월 대선을 공정하게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은 일 등을 볼 때 고인이 스스로를 “야구 경기에서 실점 위기에 등판하는 ‘소방수’라는 투수 역할이 나의 처지와 비슷했다”고 한 것은 겸양지덕이면서 적절한 표현으로 보인다. 이 같은 겸양지덕과 훌륭한 세이브 투수 역할의 바탕에는 ‘진(眞·진실함)’ ‘성(誠·정성스러움)’ ‘노(努·힘씀)’라는 그의 인생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음 사례들이 그렇다. 1960년 4·19혁명 하루 전날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고 자칫 폐교 당할 염려도 없지 않다는 생각에 가두 진출을 만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국회의사당(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연좌 시위하던 3000여 학생이 격앙되는 것을 막으려 애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느 한 학생도 자신에게 불손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것을 흐뭇하게 생각했다. 1962년 시위를 하다 연행된 학생 280여 명을 데리러 부평 경찰전문학교 강당에 도착해 “여러분 얼마나 고생했어요. 이 자리가 학교 교실이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라며 눈물을 흘리자 학생들도 울어 눈물바다를 이뤘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하던 학생들과 경찰들이 투석전을 벌이자 그는 ‘돌멩이를 맞더라도 내가 혼자서 맞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돌멩이가 날아드는 한복판으로 나가 섰다. 그러자 양방 모두 돌팔매를 그만뒀다. 그를 모셨던 김옥조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다른 사람이 했다면 ‘정치적 수사(修辭)’ 정도로 치부할 말도 이분이 했다면 진정이 담긴 말로 받아들여졌다”고 회고한다. 책에서는 그의 양심과 솔직함 또한 두드러진다.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일제의 학병 모집을 피해 다니다 최종 마감일인 1943년 11월 20일 결국 지원한 뒤 그는 자책한다. “죽음의 확률이 높은 징용을 면하기 위해 생명에 미련을 가지고 ‘지원’의 욕됨을 자초한 나 자신에 대한 죄”라고 토로한다. ‘또 다른’ 솔직함도 있다. 집에서 혼담이 오가자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아 배필이 될 사람을 보고 와서는 “다행히도 코는 비뚤어지지 않아 안심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군자인 양하지 않는다. ‘평안도 울뚝밸이(화를 벌컥 내며 말이나 행동을 우악스럽게 하는 사람)’ 성격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6·25전쟁 중 공군에 입대해 인사행정과장으로 있을 때 일이다. 미국 훈련을 보낼 조종사의 여권 발급 문제로 외무부에서 입씨름하다 거절되자 홧김에 현관문을 쾅 닫아 대형 유리를 깨뜨린 것. 잘 몰랐던 소소한 역사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사각모에 망토를 두르고 다닌 것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던 대학생은 없었다. 경성제대 예과생들이 둥근 모자를 쓰고 망토를 둘렀다. 이들은 스톰(storm)이라는 특유의 춤을 전찻길을 막고 추기도 했다. 고인의 101년 삶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부터의 한국 근현대사와 일치한다. 지금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