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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습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92)가 6일(현지 시간) 숨을 거둔 직후 그가 남긴 이 같은 내용의 ‘셀프 부고’(사진)가 공개됐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기기 위해 그만의 방식으로 고별인사를 한 셈이다. 6일 미국 파아웃매거진 등에 따르면 숨지기 전에 1쪽 분량의 부고를 작성했다. 고인은 “항상 가까이 있었던 모든 친구들과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죽음을 알린다”며 글문을 열었다. 이어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하기로 했다”며 직접 부고를 쓰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우선 “형제나 다름없고 마지막까지 함께한 페푸초와 로베르타를 언급하고 싶다”며 지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어 아들, 딸, 며느리, 손주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고인은 1956년 결혼해 평생을 함께한 아내 마리아 트라비아에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비범한 사랑을 되새기고 싶다. 이제 이 사랑을 단념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며 작별을 고했다. 부고는 고인의 변호사가 셋째 아들로부터 건네받아 공개했다고 파아웃매거진은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공연을 중단했다가 이날 130여 일 만에 문을 연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은 모리코네의 음악을 연주하며 그를 추모했다고 BBC 등이 전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이건 겨우 시작일 텐데….” 가족 중 한 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선 무쿨 가르그 씨는 나지막이 탄식했다. 생후 3개월 된 조카부터 90세 할아버지까지 한 집에서 부대끼는 가족 17명의 얼굴이 하나둘 머릿속에서 스쳤다. 인도 뉴델리의 4층짜리 건물에 모여 사는 이들 가족은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켜왔다.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식량 등 생필품을 사러 외출했고, 다녀온 뒤에는 온몸을 꼼꼼히 소독했다. 외부 감염 요소를 차단했다고 생각해 집 안에서는 평소처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어울려 지냈다. 하지만 4월 말 무쿨 씨의 삼촌 한 명에게서 열이 났다. 이후 고모, 부모, 할머니가 차례로 코로나19 증상을 보였고, 결국 1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인도 델리의 집 대문에는 커다란 격리 스티커가 붙었고, 감염 가족들은 각자 방에서 격리생활에 들어갔다. 인도에서 이 같은 가족 집단 감염이 코로나19의 주요 원인으로 떠올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6일 전했다. WP는 “인도에서 가족 집단 감염이 점차 늘고 있다”며 “병상이 부족해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인구 13억 명이 넘는 인도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국제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6일 인도의 누적 확진자 수는 70만724명으로 한 달 만(6월 6일 22만6622명)에 2.8배가 늘었다. 사망자 수는 1만9703명으로 집계됐다. 확진자 수 규모는 미국(298만2928명)과 브라질(160만4585명)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다. 인도가 코로나의 ‘핫스폿’이 된 주요 배경으로 대가족 문화가 꼽힌다. 인도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절반 이상은 60세 이상이다. 전문가들은 WP에 “가족끼리 모여 살면 젊은이들이 가족 내에서 부모, 조부모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기 쉽다. 봉쇄 기간 가족 내 집단 감염이 더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열악한 거주 문화도 감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인도 일간지 더 힌두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6일 기준 104일째 이동 제한 등 봉쇄조치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지저분하고 좁은 빈민가에서는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 검사가 충분히 실시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감염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 인프라는 취약하다. 뉴델리에 일반 병상 수는 1만여 개에 불과해 밀려드는 환자를 수용하지 못했다. 이에 인도 정부는 뉴델리 차타르푸르 지역의 종교시설에 축구장 20개 규모의 코로나19 의료센터를 만들었다고 BBC는 전했다. 미 포린폴리시는 최근 “인도 뉴델리와 뭄바이 등이 코로나19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올랐다. 무증상자와 높지 않은 검사율을 감안하면 실제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했다. 더 힌두는 “봉쇄 조치로 귀향했던 노동자가 도시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감염이 더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이설 snow@donga.com·이윤태 기자}
“이건 겨우 시작일 텐데….” 가족 중 한 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선 무쿨 가르그 씨는 나지막이 탄식했다. 생후 3개월 된 조카부터 90세 할아버지까지. 한 집에서 부대끼는 가족 17명의 얼굴이 하나 둘 머릿속에서 스쳤다. 인도 뉴델리의 4층짜리 건물에 모여 사는 이들 가족은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켜왔다.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식량 등 생필품을 사러 외출했고, 다녀온 뒤에는 온 집을 꼼꼼히 소독했다. 외부 감염 요소를 차단했다고 생각해 집안에서는 평소처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어울려 지냈다. 하지만 4월 말 무쿨 씨의 삼촌 한 명에게서 열이 났다. 이후 고모, 부모, 할머니가 차례로 코로나19 증상을 보였고, 결국 1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인도 델리의 집 대문에는 커다란 격리 스티커가 붙었고, 감염 가족들은 각자 방에서 격리생활에 들어갔다. 인도에서 이 같은 가족 집단감염이 코로나19 주요 원인으로 떠올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6일 전했다. WP는 ”인도에서 가족 집단감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병상이 부족해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인구 13억이 넘는 인도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국제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6일 인도의 누적 확진자 수는 69만8817명으로 한 달 만(6월6일 22만6622명)에 2.8배가 늘었다. 사망자 수는 1만9703명으로 집계됐다. 확진자 수 규모는 미국(298만2928명)과 브라질(160만4585명)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다. 인도가 코로나의 ‘핫스폿’이 된 주요 배경으로 대가족 문화가 꼽힌다. 인도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절반 이상은 60세 이상이다. 전문가들은 WP에 ”가족끼리 모여 살면 젊은이들이 가족 내에서 부모, 조부모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기 쉽다. 봉쇄기간 동안 가족 내 집단감염이 더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열악한 거주 문화도 감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인도 일간 더 힌두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6일 기준 104일째 이동 제한 등 봉쇄조치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지저분하고 좁은 빈민가에서는 방역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 검사가 충분히 실시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감염자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 인프라는 취약하다. 뉴델리에 일반 병상 수는 1만여 개에 불과해 밀려드는 환자를 수용하지 못했다. 이에 인도 정부는 뉴델리 차타르푸르 지역의 종교시설에 축구장 20개 규모의 코로나19 의료센터를 만들었다고 BBC는 전했다. 미 포린폴리시는 최근 ”인도 뉴델리와 뭄바이 등이 코로나19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올랐다. 무증상자와 높지 않은 검사율을 감안하면 실제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했다. 더 힌두는 ”봉쇄조치로 귀향했던 노동자가 도시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감염이 더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2015년 3월 싱가포르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타계했을 당시 취재차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추모소의 벽면은 포스트잇 크기의 메모로 빼곡했다. ‘우리가 집이라 부르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생의 헌신을 존경합니다’…. 당시 만난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파운딩 파더(founding father·건국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토로했다. 독재와 언론자유 말살 등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지만 그가 싱가포르의 근간을 다졌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였다.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해 1959년 자치정부 초대 총리에 올랐다. 이후 26년간 총리로 재직하며 싱가포르의 발전을 이끌었다. 1965년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퇴임한 1990년 30배 이상인 1만2759달러로 늘었다. 싱가포르는 리콴유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정치적으로는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해 왔다. PAP 의석은 1959년 이래 80석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반면 야당인 노동당(WP)은 2011년 6석을 차지한 것이 최고 기록이다. 아랍에미리트 일간 내셔널은 “싱가포르는 다인종 국가로서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야 했다”며 “번영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관용을 허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싱가포르 정치계가 야당의 열띤 정치 공세와 ‘형제의 난’으로 최근 술렁이고 있다. 내셔널은 “이번 총선에서도 PAP가 승리하겠지만 몇 달간 이어진 정치 공세는 싱가포르의 기반이 서서히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그 중심에는 리콴유의 차남인 리셴양(李顯陽)이 있다. 리콴유는 2남 1녀를 뒀다. 장남 리셴룽(李顯龍) 총리, 장녀 리웨이링(李瑋玲) 국립신경과학연구소 자문, 차남 리셴양 싱가포르민간항공국 회장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친하지 않았지만 갈등도 없었던’ 이들의 관계는 아버지 생가 처분 문제를 놓고 틀어졌다. 리셴룽 총리가 ‘집을 허물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따르지 않고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자 동생들이 이에 격렬히 반발한 것. 리웨이링과 리셴양은 2017년 성명을 내고 “리 총리가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남용하고 있다. 아버지를 우상화해 ‘리콴유 왕조’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아들 리훙이(李鴻毅)에게 권력을 세습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갈등은 7월 10일 예정된 싱가포르 총선을 앞두고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리셴양은 6월 24일 전진싱가포르당(PSP) 입당을 발표했다. PSP는 반정부 인사인 탄쳉복(陳淸木)이 싱가포르의 변화를 희망한다며 지난해 창당한 신당이다. 그는 “싱가포르를 사랑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PSP에 모였다고 생각한다”고 입당 배경을 밝혔다. 현지 언론은 그의 출마 여부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후보 등록 마감일인 6월 30일 그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리셴양의 발언 하나하나가 총선 이슈를 집어삼키자 리 총리는 6월 29일 “이번 총선은 가족 간 분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싱가포르의 미래에 대한 투표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리셴양은 다음 날인 30일 곧바로 페이스북 영상을 통해 반격했다. “투표를 통해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PAP의 시대를 종식시키자. 거대 정당이 된 PAP는 더 이상 국가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지 않는다. 정부 관료들은 내시병(비판 정신을 잃었다는 뜻)을 앓고 있다.”(30일 싱가포르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 반부패, 개혁, 청렴, 전문성…. 아버지(26년)와 아들(16년)이 도합 40년 넘게 싱가포르를 이끈 리콴유 집안은 싱가포르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형제 간 진흙탕 싸움은 국민들에게 큰 아픔과 충격을 안겼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반전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PAP의 압승이 당연시되는 상황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데르지트 싱 전 PAP 의원은 최근 “리셴양의 야당 입당으로 여당 고정 지지층인 유권자 60%의 일부가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리콴유의 아들이 야당을 지지할 때 유권자들은 현재의 PAP가 과거의 PAP와 다를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설 국제부 기자 snow@donga.com}
흉부외과 의사 청식힌, 간호사 웡캉타이…. 홍콩의 홍콩공원 내에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추모 공원’이 있다. 2003년 홍콩을 덮친 사스 환자들을 돌보다 숨진 의료진을 기리는 곳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올해, 이곳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미국 시사지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은 최근 “의료진을 존중하는 문화, 선한 공동체 의식 등 사스가 홍콩에 남긴 유산이 코로나19 시국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스 사태 당시 감염되거나 과로로 목숨을 잃은 홍콩 의료진은 299명에 달한다. 홍콩인들은 목숨을 내놓고 환자 곁을 지킨 이들을 ‘사스 영웅’이라 불렀다. 요즘은 ‘코로나 영웅’들이 각국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감염 공포, 열악한 환경, 부족한 수면 속에서 의술을 펼치는 이들에게 대중은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탈리아의 발코니 열창, 영국의 박수 플래시몹, 프랑스의 플래카드 이벤트….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응원 물결은 각 대륙으로 번졌다. 3월 중순 이후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고리로 세계가 한마음으로 응원전을 폈다. 매주 같은 시간 하던 일을 멈추고 손뼉을 치는 영국의 ‘의료진을 위한 박수’가 대표적이다. 가디언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은 물론 미국, 캐나다에도 이 응원전이 전파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응원전을 두고 회의론이 제기됐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응원은 현실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당장 ‘멘털데믹(Mentaldemic)’ 관리가 시급하다.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의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일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병동에서 겪는 환자의 죽음은 차원이 다른 상흔을 남긴다고 인도 의사 발디 씨는 BBC에서 토로했다. “감염 위험 때문에 대부분 중증 환자는 격리된 채 치료를 받습니다. 자연히 환자의 마지막은 의료진이 지키게 되지요. 가족 없이 죽음을 맞는 환자의 상황이 상당한 심리적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인도 남부 에르나쿨람 의대 중환자실장 파타후덴 박사는 “보통 환자의 가족과 함께 치료에 대한 정서적 부담을 공유한다. 하지만 코로나19 환자의 경우엔 그 짐을 의료진이 오롯이 져야 한다”며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해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등을 겪는 현장 의료진이 적지 않다. 22일 미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코로나19 최전방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의료진 137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PTSD를 겪고 있었다. 20%는 우울 및 불안 증세를 보였다. 이런 증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연구팀은 최근 BBC에 “사스가 종식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도 당시 현장에서 근무했던 의료진의 1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보호장비 부족, 가족의 불이익, 사회적 편견도 불안의 주요 요인으로 파악됐다. 테이트 섀너펠트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특히 가족이 겪을지 모를 신체·정신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실제 멕시코에서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표백제, 뜨거운 커피를 붓는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유럽, 미국 등지에서 봉쇄 완화 조치를 속속 도입하고 있지만 의료진은 여전히 외로운 사투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연대도 뜻깊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최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밤낮 없이 일하는 의료진에게 필요한 것은 박수가 아닌 보상”이라며 “의료진에 대한 보상과 복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BBC는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방역 지침을 잘 지키는 것이 의료진을 도와주는 길”이라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중장기적 심리적 보살핌과 보호장비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영웅, 전사, 천사란 말도 좋지만 균형에 어긋난 희생은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의료진을 위한 박수’를 처음 기획한 앤마리 플라스 씨도 이제 방향을 틀 생각이라고 최근 가디언에서 밝혔다. “(비판 의견들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9일을 끝으로 응원전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박수는 멈춰도 감사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의료진을 지지할 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 이설 국제부 차장 snow@donga.com}
1923년 9월 1일, 규모 8.0의 간토(關東) 대지진이 일본 도쿄, 요코하마 등을 덮쳤다. 지진으로 인해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사망자가 급증한 가운데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방화를 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재난 속에서 극심한 공포와 혼란은 소문을 빠르게 키웠다. 일반인이 조직한 자경단(自警團) 등에 의해 일본에 거주하던 수많은 조선인이 살해됐다. ‘조선인 대학살’의 피해자 수는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구촌을 덮친 지 넉 달째. 한편에선 간토 대지진 때처럼 악의에 찬 선동이 난무한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은 최근 기사에서 “코로나19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다양한 테러리즘이 저마다의 전략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고 했다. 팬데믹(대유행)으로 인한 경제난, 고립, 빈부갈등이 인간의 악한 본성을 자극해 테러리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극단적 인종차별이다. 14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최근 인도 수도 뉴델리의 변두리에서 한 무슬림 청년이 힌두교도들에게 끌려가 매질을 당했다. 지역 사회에 고의로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게 ‘죄목’이었다. 최근 인도 내 무슬림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돼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난달 중순 뉴델리 니자무딘에서 열린 종교집회가 감염 확산의 진원으로 알려진 게 시작이었다. 이후 일부 급진 힌두교도들은 ‘무슬림이 식수에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음모론까지 퍼뜨리며 노골적인 탄압에 나섰다. 미국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외곽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 티머시 윌슨이 병원 폭파 테러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사회가 어수선해진 틈을 타 범행을 계획했다. 이 사건을 보도한 CNN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코로나19를 지역 사회에 의도적으로 유포하려 한다”며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신체 접촉을 통해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도록 서로 격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양인에 대한 혐오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에 대한 반감은 서구에 국한된 게 아니다. 포린폴리시는 인도네시아의 한 연구원을 인용해 “최근 이슬람계 위구르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의 탄압까지 맞물려 인도네시아 내 중국인들이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차별은 증오와 혼란을 낳고, 이는 테러가 확산될 수 있는 양분이 된다. 기존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은 혼란을 틈타 서방세계에 대한 공격을 부추기고 있다. 테러단체 알카에다는 9일 영문 선전매체에서 코로나19를 ‘미국 경제와 생활방식을 강타한 쓰나미’로 정의하고 “금융 전문가인 무슬림들은 미국 경제의 취약점을 찾아 공격하라”고 선동했다.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한 지지자는 최근 선전매체에서 “이동제한 조치 등으로 경찰들이 골목에 배치돼 있어 공격이 용이해졌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성전주의자(지하디스트) 사이에서는 “팬데믹을 이용해 그들을 무찔러야 한다. 전염병은 기회”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우왕좌왕하는 허점을 이용해 테러리스트나 범죄조직이 세를 불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보다 훨씬 까다로운 기준으로 방역을 취하며 이를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멕시코 마약 범죄조직들은 코로나19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서민들에게 생필품 등을 나눠주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코로나19가 생화학 테러를 부추길 것이라는 잿빛 전망도 나온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브리핑에서 “이번 팬데믹은 향후 생화학 테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보여줬다. 생화학 테러가 일어날 위험성도 커졌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폭발한 경제난, 사회 불안, 고립감 등을 양분 삼아 테러 수법도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비대면 접촉의 보편화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온라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테러를 일으킬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각국 정부는 각종 폭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테러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는 해결책의 일부 조각에 불과하다. 모두가 지닌, 그러나 대체로 잊고 지내는 연대와 사랑의 힘을 다시 한번 발휘할 때다. 이설 국제부 차장 snow@donga.com}
당연한 일이었지만 실망이 컸다. 지난달 캐나다 극작가 닉은 1년간 준비해온 뮤지컬 공연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할 즈음이었다. 마음을 추스른 그는 인터넷 사이트 ‘거리두기 축제’를 열었다. 코로나19로 기회를 잃은 세계 예술가들을 위한 온라인 축제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음악가,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탄자니아 무용수가 축제의 문을 두드렸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4개월째. 짧은 시차를 두고 전 대륙을 덮친 역대급 팬데믹(대유행)은 개인, 사회, 국가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거리두기 사이트’는 변화의 작은 퍼즐 조각이다. 첼리스트 요요마가 의료진에 연주를 헌정하는 등 온라인에서는 예술을 통해 연대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셰리 터클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이를 두고 “새로운 연결이 탄생했다. 인간적 면모와 기기의 결합은 코로나19의 강력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변화의 물결이 출렁인다. 격리, 봉쇄, 통행증 등이 일상어가 된 건 기본. 방역 지침에 밀려 병원 진료, 장보기, 등교 같은 일상은 사치스러운 일이 됐다. 이런 낯선 상황이 어느 정도 질서로 자리 잡은 걸까. 이제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에 궁금증을 품기 시작했다. 해외 언론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최근 ‘코로나 비포 앤드 애프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낙관과 비관이 교차한다. 지난 50년간 미국 사회는 고질적인 양극화가 지배해왔다. 피터 T 콜먼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견고한 경제·문화적 양극화가 무너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는 강력한 공동의 적인 데다 빈부와 지위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극화를 허물 잠재력이 충분하다.” 시다 스코치폴 하버드대 교수는 오히려 불평등이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상위 계층은 재택근무 등으로 소득을 유지하는 반면 하위층은 실직 후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이 높은 배달직종으로 내몰려 ‘가난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마크 로런스 슈레이드 빌라노바대 교수는 “주로 전쟁 때 동원됐던 애국심이 의료적 애국심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점쳤다. 다른 공동체를 파괴하는 대신 우리의 공동체를 지키는 이른바 ‘착한 애국심’이다. 홍콩에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에 맞서 싸운 ‘8인의 전사자’를 기리는 공원이 있다. 반면 큰 정부가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 한동안 서방 세계는 대체로 평온하고 풍요로운 시절을 보냈다. 여기에 개인의 부상과 인터넷 발달로 큰 정부는 설 자리를 잃었다. 일부 정치학자는 각국 지도자가 관련 대책을 쏟아내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 리더십이 실패하면 시민 연방주의(civic federalism)가 부상할 거라는 예측도 나왔다. 아콘 펑 하버드대 교수는 “정부보다 현명하게 코로나19에 대응한 지역, 시민, 민간 사회가 적지 않다. 시민 중심 연방주의가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소비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전염병, 기후위기 등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국가 봉쇄를 경험한 국가들이 국내 공급망을 강화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밖에 △(전염병이 지나간 뒤) 안도감을 바탕으로 한 문화 부흥 △작은 베이비붐 △공원에 대한 투자 증가 등이 눈길을 끈다. 원격 의료의 부상, 가족 돌봄 정책의 상시화, 신약 개발 등은 예견된 미래처럼 느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페스트는 과학적 사고의 시대를 열었다. 스페인독감은 독일의 전력을 약화시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앞당겼다. 코로나19의 유산은 무엇보다 ‘깨어 있는 시간’일지 모른다. 미국 문화비평가 버지니아 헤퍼넌은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코로나 이후에) 관성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소설 속) 마을이 소멸한 건 (전염병이 아닌) 습관 때문이었다. … 일상에 대한 폭넓고 용감한 접근이 중요한 시기다. … 코로나19의 시대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머무는 시간이 찰나에 불과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운다.” 이설 국제부 차장 snow@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 대기업들이 대규모 감원에 돌입했다. GE는 항공 사업부문인 엔진 제조업체 GE에이비에이션의 미국 내 직원 10%인 2500명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23일 전했다. 항공기 유지 정비업무 직원의 최대 절반도 석 달간 재고용을 약속하고 일시 해고하기로 했다. 이번 인력 감축으로 GE가 절감할 비용은 5억∼10억 달러로 추산된다. 보잉도 25일부터 3만6000명이 일하고 있는 미 워싱턴주 에버렛의 항공기 생산라인의 가동을 14일간 중단한다고 밝혔다. 보잉은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캠핑카 제작사 위너베이고와 폴라리스, 오토바이 제조사 할리데이비슨, 그리고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최근 일부 생산라인을 중단하거나 줄였다. 자동차 회사의 철강 수요가 줄면서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은 이날 인디애나주 이스트시카고의 고로 가동을 중단할 계획이다. 취업 컨설팅 회사인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는 이날 현재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미국 기업들의 인력 감축 규모가 약 9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매리엇 인터내셔널, 힐턴, 하이엇 등 글로벌 호텔 체인기업들도 직원들의 일시 해고에 들어갔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속출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처음으로 강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두고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내놓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백악관에서 ‘이번 위기에 대한 지금까지의 대응에 몇 점을 주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겠다”며 “우리는 훌륭하게 대응해왔고 전문가들도 환상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답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발 입국금지 조치를 취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웨스트버지니아를 제외한 49개주와 수도 워싱턴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고, 확진자 숫자는 4706명, 사망자 숫자는 91명으로 늘었다. 이에 캘리포니아주의 7개 카운티는 3주 동안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한 주민들의 외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수도 워싱턴과 인근 메릴랜드주는 모든 음식점과 주점 등을 폐쇄하기로 했다.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주는 식당과 술집, 체육관, 영화관, 카지노 등의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되자 잘 대처하고 있다며 낙관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태도를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상황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대해 “잘 대응한다면 7, 8월에 위기가 지나갈 것이다.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답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4월 말에 사태가 종식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을 두고는 “어쩌면 그럴 수 있다.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그는 막내아들 배런(13)이 ‘코로나19가 얼마나 나쁜 것이냐’고 묻기에 “진짜 나쁘다”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미국을 위한 대통령의 코로나19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10명 이상 모임을 갖지 말라. 식당, 바, 푸드코트를 피하고 배달 주문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정부가 미 전역에 이동금지 조치를 취할 가능성에 대해선 “상황이 심각한 특정 지역에 대해서는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전국 차원의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군 병력을 동원해 임시병동을 짓는 안에 대해서는 “매우 강하게 검토 중”이라며 가능성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 앞서 50명의 주지사와 전화 회의를 갖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상당수 주지사와 주요 도시 시장들이 일부 지역 봉쇄 등 어려운 결단을 내린 뒤에야 대통령이 등장했다고 지적했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이설 기자 snow@donga.com}
“부모가 된 디지털네이티브(디지털) 세대가 디지털 훈육에는 오히려 서툴다.”(미국 IT 매체 ‘와이어드’ 최근 기사) 세계적으로 PC에 친숙한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 출생은 디지털 1세대, 유튜브와 더불어 성장한 1990년대 중후반 출생은 디지털 2세대로 분류된다. 최근 부모가 된 이들이 10대 시절부터 디지털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면, 3세대격인 자녀들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디지털과 함께한다. 출산, 첫걸음마, 첫 배변훈련 성공 등이 엄마나 아빠의 소셜미디어에 전시되는 것은 기본. 자장가 대신 백색소음 애플리케이션을 들으며 잠들고, 뜻깊은 순간은 앨범이 아닌 유튜브에 저장된다. 하지만 디지털 세대들이 자녀의 PC, 모바일 등을 통제하는 디지털 훈육은 더 어렵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정보기술(IT) 매체 와이어드는 최근 ‘아이를 디지털 강자로 키우는 방법’이라는 기사에서 “1700만 명에 달하는 디지털 세대는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만 이런 경험이 훈육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보도했다. 격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을 피하기 위해 생후 36개월 이전에 동영상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식 정도는 알지만, 자녀의 성장시기별로 맞닥뜨리는 문제 상황에서는 쩔쩔맨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디지털 훈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다양한 층위의 이슈 가운데 우선 ‘토들러 셀피’(유아 셀카)가 눈에 띈다. 눈썹만 찍힌 사진, 지나치게 흔들려 유령처럼 나온 사진, 아래쪽에서 콧구멍을 부각해 담은 사진…. 인스타그램에서 토들러 셀피를 검색하면 ‘아방가르드한’ 사진들이 줄줄이 뜬다. 아래에는 “저장 공간이 꽉 차서 사진첩을 봤더니 아이가 카메라 버튼을 수십 번 눌렀다”, “세 살배기가 셀카에 푹 빠졌다” 등의 설명이 달려 있다. 디지털 노출에 민감한 부모들도 유아 셀카에는 너그러운 경향을 보인다. 단순한 놀이인 데다 찍는 아이와 결과물을 받아든 부모 모두가 즐겁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아 셀카를 21세기 옷을 덧입은 거울 놀이로 본다. 크리스틴 매클린 세인트빈센트대 소아청소년학과 교수는 최근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 인터넷판에서 “1∼3세는 자아 정체감이 싹트는 시기다. 유아는 이때 처음으로 부모와 자신이 별개라는 걸 인식한다”며 “그 관념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는 셀카는 최고의 놀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다. 아동심리학자인 애덤 플리터 박사는 “유아 셀카는 발달단계에 이롭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면 다른 기능도 접하게 된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셀카를 찍는 건 반대”라고 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디지털 강자’에 관심이 많다. 뺏고 숨기고 야단쳐도 디지털 기기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래 경쟁력을 갖추는 데 디지털 능력이 이롭다는 시각도 있다. 자녀를 디지털 강자로 키우자는 주장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현실적 목소리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디지털 강자가 되기 위한 제1조건은 ‘디지털 문해력’(디지털 정보를 비판적으로 소화하는 힘)이다. 아동은 성인보다 가짜 정보에 취약하다. 인사이트전략그룹의 지난해 3월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아동의 75%가 유튜브 광고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이처럼 보이는 광고로 무장한 키즈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막강하지만, 8세 전후 어린이는 ‘악마의 마케팅’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숨은 광고 찾기나 정보 흐름 추적 게임을 하라고 조언한다. 문답을 통해 책을 깊이 읽는 독서논술처럼, 디지털 정보를 해체하는 연습도 도움이 된다. 페이스 로고 미 문맹퇴치교육협회 회장은 “디지털 문해력은 도로 규칙 같은 기본기에 가깝다. 훈련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고 했다. 디지털네이티브란 용어는 1996년 발표된 서정시 ‘사이버공간 독립선언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현재, 지구촌의 디지털 시차는 ‘제로’에 가까워졌다. 디지털 세상과의 올바른 관계 맺기는 국경을 넘나드는 이슈다. 미국 디지털 세대 부모의 고민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이설 국제부 차장 snow@donga.com}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 인터넷판에는 최근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소개됐다. 2018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인 3명 중 1명은 매일 2시간씩 정치활동을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1분이라도 오프라인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1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TV 뉴스, 팟캐스트, 라디오 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탐욕스럽게 정치를 소비했다. 이런 경향성은 학력이 높을수록 도드라졌다. 최근 미국에서 새로운 취미집단이 주목받고 있다. 정치가 취미인 ‘정치애호가(Political hobbyist)’들이다.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이들은 강박적일 만큼 뉴스를 추종하되 중앙 정치 소식만 골라 본다. 온라인에선 강력한 연대를 자랑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데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스스로 교양 시민이라 자부하지만 실상은 허세에 빠진 온라인 슬랙티비스트(slack+activist·게으른 행동주의자)에 가깝다. 이들은 퇴근 후 운동이나 독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온라인 세상을 분주하게 누빈다. 주요 정치인의 트위터 계정을 훑고 페이스북에서 시사 이슈를 정독한 뒤 잽싸게 유튜브를 의회 채널로 이동한다. 쿡 찌르면 툭 하고 대답이 나올 정도로 이슈를 섭렵했다 싶으면 가족과 지인을 불러 토론(사실상 불평)을 시작한다. “요즘 워싱턴은 정말 엉망이야.” 때론 과감하게 행동한다. 보고 듣고 사유하는 데서 나아가 온라인 청원에 서명하거나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온라인 기부를 한다. 드라마틱한 워싱턴 정가와 지적으로, 또 감성적으로 연결된 느낌은 이들에겐 종교이자 사랑에 버금간다. 스크린을 켜고 이어폰을 끼면 마법처럼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샘솟는다. 시다 스코치폴 하버드대 교수는 정치애호가들이 등장한 배경으로 고학력자 증가를 꼽았다. “대학 졸업장은 과거에 비해 흔해졌다. 충분히 똑똑하지만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정치를 게임처럼 즐긴다. 지역 정치에 책임감을 느끼던 지식인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됐다.” 미국 민주당이 지나온 길에서 뿌리를 찾기도 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950년대 미국 주요 도시에는 민주당의 지역 클럽이 유행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거대 담론을 논했다. 오늘날 정치애호가들처럼 지역 클럽도 취업, 주거 같은 이슈에는 관심이 없었다. 온라인 정치놀음은 사회에 무해할까. 정치 애호는 그저 개인 차원의 시간 낭비로 봐야 할까. 에이탄 허시 터프대 정치공학과 교수는 신간 ‘정치는 권력을 위한 것이다(Politics Is for Power)’에서 “정치애호가들이 민주주의를 해친다. 나쁜 정치를 키운다”고 썼다. “정치를 스포츠처럼 즐겨라. 그러면 정치인은 대중을 구경꾼으로 대하며 간간이 분노의 밑천만 던져주려 할 것이다. 나쁜 정치인은 무신경한 정치 소비를 먹고 자란다. 이들이 활개 치는 정치가 천박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정치애호가에게 정치 파탄의 책임을 묻는 건 가혹해 보이기도 한다. 온라인 정치에 골몰하지만 투표를 하고 집회에 참여하고 탄원서에 서명하고. 대체로 선한 시민에 가까운데 말이다. 표심만 얻으면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닫는 정치인들의 행태에 지쳐 체념했노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천 없는 관심은 무관심에 가깝고, 무관심의 빈자리에선 어둠이 쉽게 자란다. 그 피해는 개인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치를 게걸스럽게 소비하더라도 허무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허시 교수는 “정치적 문제에 마비됐다고 느끼면 실제 정치를 하라. SNS 친구들과 논쟁하기보다 동네 투표소에서 표를 세고 이웃을 사귀어라”라고 조언했다. ‘진짜 정치’가 생기 있는 미래를 보장한다고 정치학자들은 지적한다. 허시 교수는 원하는 내용을 얻어내기 위해 부단히 관가의 문을 두드리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이민자 케리스 마티아스를 좋은 본보기로 들었다. 그는 “마티아스는 지역 라티노연합회 회장으로 시청, 경찰청, 교육청 문을 부지런히 노크한다. 조직을 만들고 자신과 이웃을 위한 비전을 실행한다”며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정치 참여가 점잖지 못하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마티아스는 훌륭한 정치활동가”라고 말했다. 이설 국제부 차장 snow@donga.com}
대학원 진학을 설득하려 고향집을 찾았다. 글을 쓴다는 딸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알 길 없는 부모는 취업을 하길 바랐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하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조지민 씨(26·희곡)는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전하자 부모님께서 바로 ‘한번 해봐라’고 하셨다”며 미소를 지었다.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인 이다은 씨(29)의 상황도 비슷했다. 컴퓨터 앞에서 늘 뭔가를 하는 딸을 남몰래 지켜보던 부모에게 신춘문예 당선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전날 엄마가 고향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꿈을 꾸셨대요. 주택복권 2장을 사시곤 떨어지자 혹시 다은이 꿈이 아닌가 하셨다지요. 소식을 듣고선 오열을 하셔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죠.”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자 6612명 가운데 당선의 기쁨을 맛본 9명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였다. 이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기쁘고, 겁이 나고, 막막하고, 또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중편소설 당선자인 이민희 씨(48)는 지난 1주일간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중학생 때 청소년 문학상에서 만난 한수산 작가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돼라”며 어깨를 다독인 일, 10여 년 전 본심에 올랐던 한 공모전, 그리고 2013년 본심에서 낙방했던 동아일보 신춘문예…. 쓰면서 견뎌온 지난날이 하나둘 떠올랐다. “‘당연히 떨어지겠지’ 하는 마음에 응모작을 퇴고하고 있었어요. 취재에 시간이 오래 걸려 20일 만에 집필했거든요. ‘이 작품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원고를 공개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어요.” 중학생 때부터 시인을 꿈꿔온 김동균 씨(37·시)는 지하철에서 당선 소식을 듣고선 오랫동안 울먹였다고 한다. 20대 초반 이후 15년 만에 다시 도전한 신춘문예라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동안 시 주변을 맴돌다가 2년 전부터 다시 매진하기 시작했다. 낙선도 무감해진 즈음 날아든 당선 소식이라 먹먹했다”고 했다.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 이현재 씨(27)는 전화를 받고선 “장난인가” 했을 정도로 얼떨떨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화에 빠져 지낸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영화감상, 사유, 글쓰기로 청소년 시절을 보냈어요. 공부를 전혀 안 했는데 영화에 대해 끼적인 글 뭉치 덕분에 대학에 갈 수 있었죠. 매년 300번 이상 찾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인데, 제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게 돼 행복합니다.” 소설을 쓰던 심순 씨(48·동화)는 몇 해 전 운명처럼 동화의 세계에 눈을 떴다. 동화적 이야기를 쓸 때면 소설에 매달리느라 각박해지는 마음이 치유되곤 했다. 철학 동화 모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당선작에서 죽어가는 소희를, 몸이 점점 가벼워져 공중에 뜨다가 어느 순간 하늘로 날아갈 수도 있는 존재로 그렸어요. 최근 여러 상실을 경험했고 많이 힘들었는데, 상실을 마냥 아프게만 그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서장원 씨(30·단편소설)는 7년간 내리 신춘문예에서 낙방해 에너지가 바닥난 상황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다. “소설가 한강 선생님을 오래 전부터 흠모하며 글을 써왔다. 계속된 낙방에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날아든 당선 소식이라 더없이 기쁘다”고 했다. 시조 부문 당선자 정인숙 씨(56)는 자녀들에게 ‘다른 엄마’가 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계 전선에서 밤낮없이 일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는 모습으로 남고 싶진 않았다. “당선 소식을 전해들은 딸이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고 외롭고 쓸쓸했을지 알겠더라. 그러니 글을 썼겠지. 나는 무조건 엄마 팬이야’라고 하더군요. 딸의 이야기 하나로 저는 성공입니다.” 신춘문예 당선으로 부모님과 새롭게 소통하게 된 당선자도 있었다. 홍성희 씨(32·문학평론)는 당선 소식을 전하자 부모님이 이구동성으로 “나도 책을, 문학을 좋아했다”고 하셔서 놀랐다고 했다. “전혀 몰랐는데 아버지가 희곡을 쓰셨었대요. 엄마는 못 말리는 책벌레라고 하시더군요. 부모님이 ‘우리의 이런 면모가 너에게 피로 이어진 거 같다’고 하시면서 웃음꽃이 피었지요. 앞으로 부모님과 문학 이야기도 종종 나누려 합니다.” 당선작들은 새해 첫 지면과 동아닷컴 신춘문예 사이트에서 만날 수 있다. 이제 첫걸음을 뗀 이들은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을까. “가장 중요한 독자는 저 자신이에요. 다른 포부는 엄두도 안 나고, 제 마음에 드는 글부터 만들고 싶습니다.”(서장원 씨) “지적인 유희, 실험적 문장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짓고 싶어요. 소설의 기본은 ‘소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이민희 씨) “‘닫힌 평론’이 아닌 열린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학문적’ 또는 ‘대중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평론이 분리되면 서로에게 소외되는 것 같아요. 감히, 두 가지 측면이 어우러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홍성희 씨)이설 기자 snow@donga.com}
2표씩 받은 책이 무려 9권이었다. 대기과학자 조천호의 ‘파란하늘 빨간지구’(동아시아)는 “기후가 인간 역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그레타 툰베리가 구호를 외쳤다면 조천호는 이론을 제공했다”(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는 평가를 받았다. 유정연 흐름출판 대표는 ‘다시, 책으로’(어크로스)를 택하면서 “순간 접속의 시대에 깊이 읽을수록 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고 했다. ‘맹자, 마음의 정치학’(사계절)에 대해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한글세대’ 독자들을 위한 적확하고 맥락 있는 고전 읽기의 안내서”라고 추천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김영사)은 “한일 관계 등 외교관계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 “저자의 가장 미래지향적인 책”(박영규 교보문고 대표)이라는 지지를 받았다. 역사서도 두 권 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휴머니스트)은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지닌 근대의 개념이 왜 ‘일본’과 등가를 이루는지 그 기원을 보여주는 책”(김형보 어크로스 대표)으로 평가받았다.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까치)은 “역사 밖에서 본 한국사를 어떻게 조명해야 할지 일깨운 점”(박혜숙 푸른역사 대표)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델리아 오언스의 장편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살림)에 대해 백선희 번역가는 “감동스러운 성장 이야기이자 순정한 사랑 이야기. 반전이 거듭되는 법정 스릴러이자 생태학자가 그리는 풍경화”라고 했다. 산문집으로는 ‘여행의 이유’(문학동네)와 ‘참 괜찮은 눈이 온다’(교유서가)가 꼽혔다. 각각 “하나의 브랜드가 된 김영하 작가가 인생에서 여행이 갖는 의미를 인문학적 성찰로 들려준다”(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한지혜는 소설가이기 전에 진심을 전하는 산문가다. 자신의 지나온 ‘한때’를 떠올리게 한다”(윤희영 현대문학 월간지팀 팀장)는 평을 들었다.이설 snow@donga.com·김민·김기윤 기자}
오디오북을 둘러싼 전망은 올해 초반만 해도 잿빛에 가까웠다. 영미권처럼 시장이 크지 않은 데다 독서율마저 하락하는 상황. 그냥 책도 아닌 ‘듣는 책’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최근 ‘윌라’, ‘네이버오디오클립’ 등이 선전하는 가운데 유럽권을 평정한 스웨덴의 ‘스토리텔’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오디오북의 매력은 무엇이며 각각의 서비스는 어떻게 다를까. 오디오북 전문 업체인 스토리텔과 윌라의 서비스를 체험해 봤다.○ 스토리텔 ‘연말요? 자기 계발이죠’, ‘메리 크리스마스’, ‘보온병처럼 따뜻한 북유럽의 기운’, ‘통근길 시사 만사’…. 최근 한국에 상륙한 신상 서비스 스토리텔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본 오디오북 목록들이다. 첫 화면부터 친숙하다. 취향에 기반한 추천 큐레이션이 넷플릭스와 비슷했다. 서비스 이용료는 월 1만1900원으로 첫 2주는 무료다. 첫눈에 들어오는 타이틀은 박상영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과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스토리텔이 독점 계약한 작품들이다. ‘일의…’를 틀자 발랄한 30대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일, 도시, 여성을 관통하는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다. 재생 화면에는 타이머, 목차, 북마크, 속도, 다운로드 아이콘이 나타났다. 플랫폼 설계가 아이폰처럼 직관적이라 어렵지 않게 사용법을 익혔다. 친구에게 책 주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공유 기능도 인기 있겠다 싶었다. 오디오북 관련 정보가 미흡하고 ‘뒤로가기’ 버튼이 없는 점은 아쉬웠다. 스토리텔이 갖춘 오디오북은 5만여 권이다. 4만5000권은 영어 원서, 5000여 권은 국내 책이다. ‘한국어 영어 둘 다 궁금!’ 코너는 스토리텔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베어타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 등 소설은 원서와 국내서가 나란히 올라와 있다. 원서 중에는 명사가 읽은 책도 적지 않다. ‘해외 셀럽, 여기서!’에 들어가 힐러리 클린턴이 직접 낭독한 자서전 ‘Hard Choices’를 틀었다. 자서전을 읽는 클린턴의 헛기침과 작은 한숨들에 미묘한 감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케이트 윈즐릿이 낭독한 동화를 다음 듣기 목록으로 저장해 뒀다. ‘잠자리 동화’로도 유용했다.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대신 아이들에게 오디오북을 고르게 했다. 해당 연령대보다 어려운 책도 이야기로 들으니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이야기에 몰입해 잠드는 시간이 늦어지는 낭패도 겪었다. ‘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골라야 10∼20분 사이 잠들었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국내서가 부족했다. 스토리텔 측은 매주 5, 6권씩 데이터를 늘려 가고 있다고 한다.○ 윌라 윌라는 강연 및 출판업체인 인플루엔셜이 운영하는 오디오북 앱이다. 앱 무제한 이용료는 월 9900원, 첫 한 달은 무료. ‘오디오북’ 코너는 인문, 경제·경영, 소설, 주니어 등으로 콘텐츠가 나뉘어 있었다. 인터넷 교보문고와 비슷한 구성이다. 무엇을 들을지 첫 선택부터 막혔다. ‘이달의 책’ 추천 코너로 눈을 돌렸다. ‘2030 대담한 도전’, ‘엄마의 말공부’, ‘익명의 소녀’, ‘백년을 살아보니’ 등이 보였다. 서비스 주 이용층인 ‘지적 호기심이 강한 30, 40대’를 위해 매주 2권씩 올려놓는다. 딱히 손이 가는 책이 없어 평소 잘 접하지 못했던 경제·경영 ‘주간베스트’에서 ‘부의 추월차선’을 골랐다. 책과 저자에 대한 소개와 목차별 재생 시간을 알려줘 선택에 도움이 됐다. 완독 시간은 8시간 20분. 인터넷 서핑, 운동, 넷플릭스 시청을 하면서 들었다. “오디오북의 최대 장점은 멀티태스킹”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발췌독이 안 되는 점은 낯설었다. ‘차선을 추월해 부를 얻는 비법’만 알고 싶은데…. 윌라 측은 “발췌독이 안 되기 때문에 오디오북이 종이책보다 완독률이 높다”고 말했다. 윌라의 히트작인 ‘한자와 나오키’를 틀었다. 성우 한 명이 목소리를 바꿔 여러 인물을 연기했다. 윌라 측은 “연기적 요소가 지나치지 않도록 1∼3명이 목소리를 달리해 녹음하고 있다”고 했다. 윌라가 보유한 1만5000권은 짤막한 ‘리뷰’도 함께 제공한다. 지금 듣는 책은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이다. 소설의 무대인 통영의 풍광을 설명하는 도입부 문장은 귀로 들으니 책과는 다른 맛을 느끼게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좋은 공상과학(SF) 소설 작가는 죽은 작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 ‘죽음’에서 평론가 장 무아지는 주인공 가브리엘에게 이렇게 독설한다. 베르베르는 자신을 똑 닮은 가브리엘의 목소리로 장르문학 작가로 겪은 설움을 토해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평가를 받아온 장르문학이 올해 의미 있는 행보를 보였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2019년 주요 출판계 키워드로 ‘주류가 된 장르’를 꼽으며 “장르소설 판매량이 증가했고 장르비평이 늘어났으며, 장르 전문 출판 브랜드가 속속 등장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SF, 판타지, 추리, 로맨스, 무협…. 여러 장르 가운데 SF의 도약이 특히 눈부셨다. 서구권이 강세를 보였던 SF에서 최근 1, 2년 새 국내 작품들이 질적, 양적으로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김보영 김창규 정보라 곽재식 작가 등이 꾸준히 활약하고 있고, 김초엽 작가는 데뷔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이름을 알렸다. 순문학과 SF를 넘나드는 장강명 정세랑 작가도 팬층이 두껍다. 박상준 SF협회장은 “과학기술을 몰라도 흥미롭게 읽히는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며 ‘친근해진 SF’를 이유로 들었다. 협회를 만들고 신진 작가를 양성하는 등 제도권 진입을 위한 SF계 관계자들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판타지는 영어덜트(young+adult)와 만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 김이환 작가의 ‘양말 줍는 소년’ 등 환상을 녹여낸 영어덜트 소설이 주목받았다. 청소년기의 혼란을 다독이고 위로하는 영어덜트 서사와 판타지적 요소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로맨스는 웹소설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인기 비결은 여성의 성장 서사. 한 웹소설 작가는 “남성 또는 결혼이 행복의 열쇠라는 로맨스 공식은 옛말이다. ‘재혼황후’ 같은 인기 로맨스 웹소설은 공통적으로 여성이 틀을 깨고 세계와 싸우는 서사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론 비평 분야의 확장도 주목할 만하다. ‘장르문학 산책’ ‘비주류 선언’ 등 올 한 해 10편이 넘는 장르문학 비평서가 출간됐다. 장르문학을 다루는 비평 잡지 ‘미스테리아’ ‘오늘의 SF’와 웹진 ‘크로스로드’ ‘거울’도 있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아작’ ‘황금가지’ ‘북스피어’ ‘요다’ ‘허블’이 대표적이다. ‘고즈넉이엔티’는 장르소설 20여 편을 영화 드라마 웹드라마로 만드는 판권 계약을 국내외 제작사와 맺어 장르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 이융희 문화연구가는 “1970, 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리얼리즘 문화에 익숙하다. 이에 비해 1990년대 청년기를 보낸 현재 40, 50대는 ‘퇴마록’ ‘드래곤라자’ 같은 장르문화를 경험했다. 이런 토양을 토대로 장르문학이 전성기를 맞았다”고 분석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예술원을 만들겠습니다.” 대한민국예술원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이근배 시인(79·사진)은 20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임 일성을 밝혔다. 그는 “예술원은 대한민국 예술의 주춧돌 격인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과 해외에서 공연과 전시를 자주 열어 대중과의 접점을 늘려 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예술원 회원 89명(정원 100명) 가운데 최고령은 104세이고 90세가 넘은 회원이 적지 않다”며 “한국 예술계의 정신적 지주인 이들이 현역 못지않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학술원과 함께 쓰는 공간을 분리해야 활동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며 독립 청사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1954년 설립된 예술원은 기존 회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신입 회원을 뽑는다. 임기는 4년이지만 총회의 인준만으로 연임이 가능해 사실상 종신제다. 4년 임기를 종신제로 바꾸는 법안이 지난해 통과됐다. 매년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 등 4개 부문에서 탁월한 공적을 남긴 예술가에게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전직 사우 모임인 동우회(東友會)가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2019 동우 송년의 밤’ 행사를 열었다. 조강환 동우회장(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2020년에 동우들 간 더욱 깊은 애정을 나누고 좋은 앞날이 충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겸 채널A 사장은 “동아일보는 3개 주요 신문 중 유일하게 ABC협회 유료부수가 증가했다. 채널A는 방송통신위원회의 ‘2018년 방송평가’에서 역대 최고 점수로 종합편성채널 1위를 기록했다. 내년 창간 100주년을 맞아 또 한번 도약하는 동아 100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인촌 선생은 동아일보를 만든 것만 해도 칭송 받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창간 100주년에 동우들의 다복을 기원한다”고 했다. 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가 동우회 신임 회장으로 선임됐다. ‘동우 몽도상’은 강희중 김일동 동우가 수상했다. 몽도상은 몽도(夢桃) 이동수 초대 동우회장의 유족이 기탁한 5000만 원으로 제정됐다. 이날 행사에는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 남시욱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김광희 전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김병건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 김녕만 전 사진예술 발행인, 김선휘 삼양염업 고문, 김세원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김재천 전 고려중앙학원 사무국장, 김충식 가천대 부총장, 김태선 동우회 명예회장, 권이상 전 경방 감사, 노재성 전 국민일보 부사장, 노한성 전 파라다이스 감사, 민병문 전 대한적십자사 대전혈액원장, 박문두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 박창래 전 문화일보 논설주간, 성낙오 전 영남일보 사장, 심규선 서울대 기금교수, 안평선 한국방송인회 상임부회장, 양동칠 전 주 핀란드 대사,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규석 전 국정홍보처 차장, 이대훈 전 동아일보 이사, 이병대 대한언론인회장, 이종세 전 한국체육언론인회장, 이홍우 상명대 특임교수, 정학철 전 언론중재위 부위원장, 최규철 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최동욱 전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장, 최명우 동우회 이사, 최성두 전 문화일보 전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최희조 전 문화일보 편집국장, 한중광 전 대한언론인회 이사, 황호택 서울시립대 교수 등 전현직 사우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장르와 문법을 깨부수는 출판계의 흐름이 청소년·어린이 도서로 옮겨 왔다. 새로운 읽기 경험은 감수성과 창의력을 높인다. 뻔하지 않으면서 알맹이는 알찬 신작 3권을 소개한다. ○ 달걀 생각법 무적의 달걀이자 마법의 달걀이다. 달걀의 렌즈를 들이대니 아인슈타인도 해나 아렌트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책장을 넘기면 학문적 호기심이 끓어오르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알을 깨듯 사고의 전환을 이끈 천재들이 여럿 등장한다. 아인슈타인은 달걀 두 개를 깨뜨리면 하나가 되는 원리(1+1=1)처럼 우주의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우주의 원리를 발견했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달걀과 빵 사이가 밀착된 ‘달걀 샌드위치’처럼 원의 무한대로 잘게 쪼개 넓이를 구한다. 예술도 달걀에 빚졌다. 피카소는 재료 양념 장식을 모두 뺀 다음 남은 달걀처럼, 간결한 뼈대만 남긴 현대미술로 대가 반열에 올랐다. 마르셀 뒤샹은 변기에는 ‘샘’, 달걀 한 판에는 ‘단백질 공장’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이렇게 말한다. “피카소의 뺄셈 달걀을 뛰어넘는 혁명이야.” 해나 아렌트의 달걀은 정치적이다. “달걀에는 무엇보다 사회가 필요해. 사회는 정치를 낳지. 고로 달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정치야.” 무하마드 알리 편에는 “달걀로 바위 치기는 헛수고 같지만, 백만 번 연습하면 이길 수 있다”는 미담이 담겼다. 이 밖에 ‘데카르트의 달걀 좌표’, ‘뉴턴의 만유인력 달걀’, ‘페렐만의 달걀빵’까지. 작가가 건설한 ‘달걀 공화국’에서 놀다 보면 자유로운 전자처럼 생각들이 뻥뻥 뛰어오른다. 저자는 “생각의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전할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운명적으로 달걀을 만났다. 아인슈타인이 매일 아침으로 달걀을 2개씩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상적인 음식인 달걀을 매개로 뛰어난 학자와 예술가들을 조명했다”고 밝혔다. ○ 청소년 마음 시툰 ‘안녕, 해태’+‘문학이 온다’ 피천득의 ‘인연’, 이희승의 ‘딸깍발이’, 김소월의 ‘진달래’ 정도나 어렴풋이 욀까. 당최 기억나는 게 없다. ‘안녕, 해태’와 ‘문학이 온다’를 미리 만났더라면 달랐을지 모르겠다. ‘안녕, 해태’는 곳곳에 시를 배치한 웹툰이다. 주인공은 애늙은이 같은 10대 잔디. 강릉에서 할머니와 살다 서울로 전학 왔다. 할머니는 그립고 아빠는 어색하고 친구들은 뾰족하고. 마음이 힘든 잔디 앞에 괴짜 같은 무언가가 나타나 손을 내민다. 인간계에 떨어진 영물 해태다. 잔디와 해태는 각각 서울과 인간계에 녹아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번쯤 접한 시들이 적재적소에서 인물들을 위로한다. 예지와 단짝 친구를 맺고 슬리퍼 한 짝씩 바꿔 신은 잔디의 마음은 복효근의 ‘절친’이 보여준다. ‘서로의 절반씩을 줘 버리고 나니/우린 그렇게 절반씩 부족합니다….’ 첫 데이트, 호기롭게 비싼 눈꽃빙수를 주문했지만 돈이 부족해 초조하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신경림 ‘가난한 사랑의 노래’) 커닝, 거짓말, 누명으로 다투는 소녀들 이야기와 곁들이니 시조도 흥미롭게 읽힌다. ‘… 성난 까마귀 흰빛을 시샘하니/청강에 맑게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까마귀 싸우는 골에’). 저자는 서문에 “시와 그림이 기찻길처럼 나란히 가면서 어울리길, 이 책이 시 읽기의 물꼬를 텄으면 한다”고 썼다. ‘문학이 온다’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문학을 주제별로 엮었다. 묶음 테마는 ‘성장’, ‘자존감’, ‘공감’, ‘상상’, ‘연민’. 5권의 책에는 주제에 맞는 다양한 장르의 글이 실렸다. 파스텔 톤 표지에 요즘 유행하는 성인 에세이를 연상케 하는 테마까지. 타깃층인 초등학교 고학년보다 부모들이 혹할 만하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시는 연애편지요, 시인은 서비스맨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애편지처럼 곱고 상냥하고 겸손한 시로 독자들을 위로하고 응원해야 마땅하지요.” 등단 50주년을 앞둔 노시인은 시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빌딩에 걸렸던 ‘들꽃’으로 이름을 알린 나태주 시인(74)이다. 그는 12일 서울 종로구에서 신작 시집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시와 함께한 반세기 여정을 회고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그의 시는 입에 착착 감기고 이해하기 쉽다. 신작 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에도 그런 시들이 실렸다. 신작시 100편, 대표 시 29편, 시인이 사랑하는 시 65편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써 내려간 ‘사람을 향한’ 시편들이다. “옛 제자, 출판사 편집장 등을 생각하면서 휴대전화에 시를 끼적입니다. 바로 상대에게 시를 보내기도 하지요. ‘묘비명’은 아들딸을 생각하면서 썼어요. 묘비에 적힌 ‘많이 보고 싶겠지만/조금만 참자’는 구절을 보면, 아버지 보러 온 아이들이 그리움을 걷고 열심히 살지 않겠습니까?”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풀꽃1) 나 시인은 이 시로 국민시인이 됐다. 자연히 다른 시들은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풀꽃은 독자가 선택한 시다. 김소월 ‘진달래’, 이육사 ‘청포도’처럼 시인은 한두 마디의 시를 모국어에 바치는 사람인데, 작게나마 ‘풀꽃’을 바치게 돼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허술한 제 시를 독자들, 특히 중학생들이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소위 시다운 시를 썼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다운 시를 쓰고 싶어졌어요. 나태주의 아우라가 있는 시, 세상에 없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쉽게 버려서 미안하다’(종이컵)처럼 시는 널려 있는 거예요.”이설 기자 snow@donga.com}
직장인 박다혜 씨는 요즘 수시로 e메일함을 열어본다. 재테크 정보를 알려주는 ‘어피티 머니레터’, 문화 정보를 담은 ‘앨리스 미디어’, 책을 추천하는 ‘리딩리딩’…. 출퇴근길이나 휴식 시간에 틈틈이 이들 콘텐츠를 본다. 박 씨는 “관심 정보를 한번에 볼 수 있어 편리하다. 친구에게 받은 것 같은 기분도 든다”고 했다. 메일로 원하는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구독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에세이, 재테크, 문화, 시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구독료는 무료인 것부터 월 2만 원 선까지로 다양하다.○ “매일 신선한 정보를 당신에게” 대세인 건 일상 에세이. 메일 구독 서비스의 개념을 알린 ‘일간 이슬아’의 뒤를 잇는 창작물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일간 매일마감’은 매일 저녁 PDF 형식의 메일을 발송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작가 모호연, 전 다큐멘터리 감독 지민, 다큐멘터리 감독 깅이 번갈아가며 글을 쓴다. ‘매감 미술학원’ ‘내 손으로 러시아 여행기’ ‘공포영화 대신 봐드림’ 등을 연재한다. 작가들의 솔직한 입담과 손 그림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는 반응이 많다. 문보영 시인은 지난해 말 ‘일기 딜리버리’를 시작했다. 매주 2, 3편씩 에세이나 소설을 보내고 매달 두 번 손 편지를 쓴다. 문 시인은 “메일 구독 서비스는 훌륭한 마감 촉진제”라며 “특별한 플랫폼 없이 독자와 바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관심을 갖는 젊은 창작자가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소설, 음악, 그림을 함께 제공하는 ‘트리플 픽션’과 이정현 작가가 매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구독 신청을 받아 에세이를 전하는 ‘일상시선’도 반응이 좋다. 가수 이랑은 암에 걸린 친구를 돕기 위해 6개월간 매일 시, 소설, 영상을 보내주는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서비스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필요한 정보 쌓이면 ‘개인 도서관’ 한 분야를 깊게 다루는 서비스도 많다. ‘어피티 머니레터’는 경제 상식은 물론 ‘까먹은 돈 찾아주는 앱’ ‘똑똑한 온라인 쇼핑’ ‘주거래 은행 정하기’ 같은 재테크 정보를 제공해 20, 30대 여성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20대 직장인 송민하 씨는 “재테크를 하고 싶은데 신문은 어렵고 카페 정보는 지나치게 방대했다. ‘어피티…’는 젊은 여성을 위한 맞춤형 경제 정보지 같다”고 했다. ‘줌줍’은 예술 경영 관련 소식지를 표방한다. ‘디독’은 디자인을 다룬 해외 기사를 번역해 발송한다. 문화 트렌드와 맛집에 대한 내용을 전하는 ‘앨리스 미디어’도 있다. 음악 전문기업 스페이스 오디티에서 만든 ‘오디티 스테이션’은 유튜브 동영상과 함께 추천 음악을 제공한다. 직장인 밴드 ‘그들이 기획한’도 최신 밴드 소식과 음악계 이모저모를 담은 뉴스레터 ‘그들이 기획한 이슈’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정치를 알기 쉽게 풀어주는 ‘폴리티카’, 채팅 형식으로 상식을 전하는 ‘디에디트’도 20, 30대 사이에서 인기가 뜨겁다. 기업에는 뉴스레터가 좋은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할머니들이 손수 만든 매듭 팔찌와 반지를 판매하는 마르코로호는 최근 ‘할모니레터’를 시작했다. 매달 책 8권을 골라 소개하는 북큐레이션 서비스 ‘리딩리딩’은 유료 회원은 물론 비회원에게도 뉴스레터를 발송한다. 조민선 리딩리딩 대표는 “메일은 독자에게 바로 가 닿을 수 있어 친근감을 쌓으면서 서비스도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