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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럽 최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지역이었던 이탈리아가 다음 달 3일부터 대대적인 봉쇄 완화에 나선다. 환자 증가세가 둔화된 데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국내총생산(GDP)의 약 13%를 차지하는 관광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실상 코로나19 종식 준비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BBC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던 해외 관광객 입국을 다음 달 3일부터 허용하고, 자국민 이동제한 조치도 완전히 풀기로 했다. 이에 따라 유럽 국가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협정’ 가입국 시민은 2주의 강제격리 없이 이탈리아에 입국할 수 있다. 3월 9일부터 전 국민 이동제한령을 내렸던 이탈리아는 이달 4일 제조업, 도매업, 건설 공사 등을 허용했다. 18일부터 일반 소매상점 영업과 종교 활동이 재개되고 25일부터는 체육관과 수영장 같은 일부 스포츠 시설의 이용도 가능해진다. 극장 등 문화 시설은 다음 달 15일부터 영업을 재개한다. 이탈리아는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음식점 내 탁자 간격을 최소 4m로 설정할 방침이었다. 소규모 음식점에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이를 1m로 줄이기로 했다. 해변의 파라솔 간격도 당초 5m에서 대폭 완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주세페 콘테 총리는 이날 TV 연설에서 봉쇄 완화로 인한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위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대 다시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이탈리아의 신규 코로나19 확진자는 875명으로 13일 이후 나흘 연속 1000명 미만을 유지했다. 사망자는 153명으로 전 국민 이동제한령을 발령한 3월 9일 이후 가장 적었다. 터키도 20일부터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31개국 국민의 의료관광용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또 다른 관광대국 그리스 역시 7월 초부터 외국인 관광객들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15일 슬로베니아는 “지난 2주 동안 신규 확진자가 매일 7명 이하였다”며 코로나19 사태 종료를 선언했다. 이날 핀란드도 학교를 열고 일부 국경 통제를 완화했다. 다만 봉쇄 완화가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동유럽 러시아의 환자 급증세가 가파른 데다 스페인, 영국 등에서도 눈에 띄는 감소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봉쇄 완화가 관광업 활성화로 이어질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은 자국민에게 해외여행을 다음 달 15일까지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도 국경 개방에 미온적이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두웨이(杜偉) 주이스라엘 중국 대사(58·사진)가 17일 텔아비브 북부 헤르츨리아에 위치한 관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이스라엘 경찰이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현지 인터넷 언론 와이넷뉴스를 인용해 두 대사의 보좌관이침대에 누운 채 숨을 거둔 두 대사를 발견했고, 일단은 심장마비가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두 대사에게는 외상의 흔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두 대사는 올해 2월 15일 이스라엘 대사로 부임했고, 직전에는 우크라이나에서 근무했다. 두 대사는 이달 13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된 소극적인 정보공개와 대(對)이스라엘 투자를 비난하자 이틀 후 대사관 명의로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주이스라엘 중국대사관은 15일 “미국 행정부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우리는 유대인 친구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뿐 아니라 ‘정치적 바이러스(폼페이오의 주장)’도 이겨내기를 기원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중동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넓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국은 이스라엘 최대 항구 겸 전략적 요충지인 하이파의 항만 건설 및 관리 사업권을 획득하는 등 다양한 대이스라엘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하이파항은 평소 이스라엘과 동맹인 미국의 해군이 자주 이용하는 시설이며 미·이스라엘 해군은 인근 해상에서 주기적으로 훈련을 진행해왔다. 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
한국 정부가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 및 가족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보낸 KF94 마스크 50만 장이 12일(현지 시간) 수도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한국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는 22개 유엔참전국의 참전 용사에게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감사의 마스크 총 100만 장을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 육사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육군 출신으로 동료들이 서로 돕는 일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미국은 한국의 친절한 기부와 관대함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숨진 폼페이오 장관의 부친은 한국전쟁 때 미 해군 구축함 ‘USS루퍼트’함에서 무전병으로 활약했다. 로버트 윌키 미 보훈 장관도 성명을 통해 “마스크 선물은 70년 전 전쟁과 위기의 시기에 굳어진 두 나라의 깊고 지속적인 존중을 보여준다”며 양국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막기 위한 정의롭고 고귀한 대의명분에 같이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도 주에티오피아 한국대사관 주최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민관합동 물품전달 행사가 열렸다. 진단키트(2만8300회 분), 마스크, 손세정제, 살균소독제 등 총 47만 달러(약 5억7550만 원)의 물품이 전해졌다. 한국 정부, 이코스, LG, 대우건설, 굿네이버스(NGO),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KOTRA 등이 참여했다. 6·25전쟁 참전국인 에티오피아는 과학기술과 대학교육 부문 등에서 한국을 적극 벤치마킹하는 나라로 꼽힌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아람코는 12일(현지 시간) 올해 1분기(1~3월) 순이익이 166억6100만 달러(약 20조3837억원)로 222억1000만 달러(약 27조1739억 원)였던 전년동기에 비해 약 25% 감소했다고 밝혔다. 순이익이 급감한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경기가 위축됐고, 석유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잉여현금 흐름도 올해 1분기 150억 달러(약 18조3525억 원)을 기록해 174억 달러(약 21조2889억 원)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정도 줄었다. 그러나 1분기 실적에 대한 주주배당 금액은 187억5000만 달러(약 22조9406억 원)으로 134억 달러(약 16조 3949억 원)였던 지난해 4분기(9~12월)보다 약 40% 늘었다. 아람코는 지난해 12월 사우디 증권시장인 타다울에 상장하면서 올해 주주배당 총액이 750억 달러(약 91조7625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올해 남은 기간에도 전세계 에너지 수요와 유가, 그리고 아람코의 수익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세계경제가 회복하면서 에너지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
이란 해군이 훈련 중 자국 군함에 미사일을 발사해 최소 19명이 숨졌다. 이란군은 올해 1월 8일에도 우크라이나 민항기를 적군기로 오인하고 격추시켜 당시 탑승자 176명 전원이 숨졌다. 알자지라방송 등에 따르면 10일 오후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만에서 훈련하던 이란 프리깃함 ‘자마란’함에서 발사된 ‘누르1’ 미사일이 보급지원용 군함 ‘코나락’함을 맞혀 현재까지 19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실종된 승무원도 20여 명에 달한다. 이란 국영방송은 “미사일이 코나락함 인근의 표적을 공격해야 했지만 코나락함을 표적으로 오인했다. 표적과 코나락함 사이에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코나락함은 네덜란드에서 제작됐고 1988년부터 쓰인 구형이다. 자마란함은 이란이 자체 제작한 함정으로 2010년부터 사용됐다. 이란은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대거 개발했고 이슬람국가(IS) 퇴치 때 강력한 지상전 및 특수전 능력을 입증한 중동의 군사강국이다. 하지만 서방의 오랜 제재로 최첨단 장비를 구입하지 못해 정밀한 기술이 필요한 공군과 해군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항기 격추 때도 낡은 레이더망 등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로 페르시아만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이란의 야심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다고 분석하고 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5일 오후 6시 30분(현지 시간)경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부의 외교공관 밀집 지역인 마아디를 찾았다. 5분 뒤 인근 모스크에서 일제히 아잔(이슬람교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울려 퍼졌다. 무슬림의 하루 5번 기도 중 4번째 기도를 뜻하는 ‘마그리브’를 알리는 소리였다. 마그리브는 라마단(이슬람 성월) 기간 중 특히 중요하다.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식사를 할 수 없지만 일몰 시간대를 뜻하는 마그리브 이후에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모스크 주변을 둘러보는 기자에게 나이가 지긋한 관리인이 “이집트에 언제 왔냐. 이렇게 조용한 라마단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자가 답하기도 전에 “이렇게 썰렁한 라마단은 생전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라마단은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3일까지다. 원래대로라면 이슬람권 전체가 최대 명절을 맞아 들썩여야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라마단까지 삼켜 버린 분위기다. 이날 모스크 안팎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라마단의 전형적인 풍경으로 꼽히는 ‘이프타르’(금식 뒤 단체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도 사라졌다. ○ 모스크 문 닫고 성지순례 금지 코로나19는 전 이슬람권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6일 국제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터키(12만9491명), 이란(10만1650명), 사우디아라비아(3만251명), 파키스탄(2만2550명), 카타르(1만7972명), 아랍에미리트(UAE·1만5192명) 등 주요국 확진자가 모두 상당하다. 공식 확인된 감염자 수는 아직 적지만 오랫동안 전쟁과 내전을 겪어온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등에서도 본격적인 확산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앙정부의 기능이 유명무실하고 의료체계도 사실상 붕괴돼 향후 인명 피해가 급속도로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제구호위원회(IRC)는 최근 “아프간, 시리아, 예멘을 포함한 취약 국가에서 최고 320만 명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동 각국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야간통행금지, 이동제한, 영업중단 등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스크 폐쇄 같은 초강수도 불사했다. 신자가 밀집한 모스크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신정(神政)일치 국가인 이란의 고위 성직자들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모스크가 아니라 집에서 기도해도 된다”고 말할 정도다. 이슬람 성지 3곳 중 2곳인 메카와 메디나를 보유한 사우디도 마찬가지다. 사우디는 3월부터 외국인의 성지 방문을 금지했다. 자국민의 메카와 메디나 방문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라마단 때도 이를 유지한다. 사실상 성지를 폐쇄한 셈이다. 각국은 저소득층과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공공장소에서의 대규모 이프타르도 금지하고 있다. 이프타르를 하는 동안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렵고, 음식을 나눠 먹는 행사의 특성상 심각한 집단 감염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였다. 국제구호단체에서 20년 이상 활동한 한 중동전문가는 “예멘, 레바논, 아프간처럼 정세가 불안한 지역에 있을 때도 올해처럼 조용한 라마단을 본 적이 없다. 라마단에 모스크를 폐쇄하는 것을 보면 중동 전체가 코로나19에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냉기만 도는 ‘라마단 경기’ 종교 활동뿐만 아니라 라마단 경기도 차갑게 얼어붙었다. 기자는 라마단 시작 직전인 지난달 20일 카이로 신도심 뉴카이로에 있는 레하브 전통시장을 찾았다. 라마단 직전이고 퇴근 시간인 오후 5시경인데도 시장 전체가 한적했다. 라마단 때 즐겨 먹는 대추야자 열매, 견과류, 과자 등을 파는 가게에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가게 입구 앞에 놓인 테이블로 대추야자 열매와 견과류를 넣은 상자를 나르던 가게 점원은 “지난해와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야외 이프타르가 금지돼 대량 주문이 사라졌다. 일반인도 예년보다 상당히 적게 구입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시리아식 양고기와 닭고기 구이를 파는 식당도 썰렁했다. 저녁 식사 시간인데도 주문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라마단 특수’를 묻자 종업원은 “올해는 기대조차 안 한다”고 퉁명스레 답했다. 인근 상인과 주민들 역시 “평소에는 라마단 때마다 화려하게 시장 주변을 장식했지만 올해는 거의 안 할 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집트보다 훨씬 잘사는 걸프지역 산유국의 라마단 경기에도 냉기가 느껴진다. 특히 코로나19로 가속화한 유가 하락 때문에 오일머니로 먹고사는 중동 전체가 힘겨워하고 있다. 세계적인 쇼핑 천국으로 꼽히는 UAE 두바이의 소비는 최근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얼어붙었다. 두바이 정부는 3월 말부터 쇼핑몰 영업을 금지했다. 아랍뉴스에 따르면 UAE 구매관리자지수(PMI)는 3월과 4월 각각 45.2와 44.1을 기록해 두 달 연속 기준치인 50을 밑돌았다. UAE 양대 항공사인 에미레이트항공과 에티하드항공의 국제선 운항도 거의 중단됐다. 사우디 역시 라마단 직전까지 수도 리야드 등 주요 도시에서 24시간 통금을 실시했다. 그런데도 확진자가 계속 늘고 경제도 침체되자 평화롭고 풍성해야 할 라마단 시기에 ‘구조조정 규정’까지 발표했다. 사우디 정부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민간 기업이 최대 40%까지 직원 임금을 삭감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로 인한 민심 이반 위험을 알지만 워낙 경기가 나빠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제 정상화 시점 고민 봉쇄 조치가 길어지면서 최근 심심찮게 통금 및 이동제한 조치가 지켜지지 않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집트는 라마단 시작과 함께 통금 시간을 기존 오후 8시에서 오후 9시로 1시간 늦췄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카이로 곳곳에서 오후 9시 이후에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채 달리는 자동차를 볼 수 있다. 한 30대 이집트 직장인은 “경찰이 단체 모임은 엄격히 통제하지만 통금 시간 이후 혼자 돌아다니는 것, 공원이나 광장에서 노는 것은 엄격하게 단속하지 않는 편”이라고 전했다. 파키스탄은 이슬람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올해 라마단에도 모스크 예배를 허용했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민심 이반을 두려워한 현 정권이 종교계 강경파들의 요구에 백기를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키스탄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년간 60억 달러(약 7조2000억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도 코로나19 등으로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지난달 16일 13억9000만 달러의 추가 지원까지 받기로 했다. 중동 각국은 경제 정상화 시점을 놓고도 고민하고 있다. 지금처럼 철저한 봉쇄 조치를 시행해도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면 쉽사리 봉쇄 해제를 단행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봉쇄를 계속하자니 “코로나19에 걸리기 전에 먼저 굶어죽겠다”며 불만을 표하는 국민들을 외면하기도 힘들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우디, 카타르 등 전제군주 체제인 나라를 포함해 중동 각국은 대부분 극소수의 인물이 장기 집권하고 있다. 평소에도 정치사회 활동에 대한 제약이 많고 국민들의 불만도 폭발 직전이다. 라마단 같은 명절에 더더욱 민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라마단 이후는 더 걱정 전문가들은 라마단 이후 중동 전체가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우디와 UAE 같은 산유국은 코로나19로 대형 인프라 사업이 모조리 중단되거나 축소됐다. 저유가 타격이 심각한 국가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안길 수밖에 없다. 중동 각국에서 완전히 방치된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단 감염 우려도 높다. 이들의 열악한 주거 여건 및 위생 상태를 중동 전체에 코로나19가 대거 확산된 원인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도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및 지원에 나서고 있지 않다. 싱가포르 같은 선진국에서조차 외국인 노동자의 집단 감염이 심각한데 보건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중동에서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 이집트 보건장관은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코로나19와 공존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사실상 코로나19를 관리할 역량이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중동 전체에서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5일 오전 11시 반(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국제공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선 운항이 중단된 이집트에서 발이 묶였던 한국 교민과 기업체 주재원 140여 명이 한국행 전세기를 타기 위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이들 사이로 낯선 얼굴이 보였다. 남수단 어린이 글로리아 간디 양(4). 한국인은 아니지만 글로리아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나왔다. 한국에 가는 이유를 묻자 긴장한 표정으로 아빠 손을 꼭 잡고 기자를 빤히 쳐다봤다. 동행한 지인은 “겁먹을까 봐 아직 병원에 간다는 걸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글로리아가 한국에 가는 이유는 식도 쪽에 걸려 있다가 폐와 심장 사이로 넘어간 작은 금속조각을 빼내는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글로리아는 지난해 8월 남수단의 집에서 지붕 수리를 하는 중에 떨어진 금속조각을 삼켰다. 병원에 갔지만 ‘남수단에선 이런 수술을 하기 힘들다’는 답만 들었다. 아버지 간디 산토 씨는 글로리아를 데리고 지난해 11월 친척이 있는 이집트로 왔다. 하지만 이집트에서도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병원은 찾지 못했다. 글로리아의 딱한 소식은 이집트에서 활동하면서 수단인들을 돕는 한국인 선교사에게 전해졌고, 이 선교사는 한국 병원들을 대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아봤다. 그리고 최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간디 산토 씨는 “한국이 의료 수준이 좋고, 코로나19도 잘 대응했다는 걸 들었는데 글로리아가 한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리아뿐 아니라 남수단의 많은 아픈 어린이들이 한국의 도움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대중에게 한국은 제조업과 과학기술이 발달했고, 대중문화가 매력적인 나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 등 엘리트 그룹에선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해 가장 부러워하는 점으로 ‘뛰어난 보건의료 인프라’를 뽑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의료인 양성 노하우 △응급 의학 인프라 △건강보험 제도 △국가 혈액관리 시스템 등이 큰 관심을 받아왔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는 한국의 감염병 대응 및 방역 역량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엘리트 그룹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는 코로나19를 통해 나타난 한국 사회의 의료진 응원 및 존중 문화에 놀라고, 이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코로나19 확산 뒤 금호타이어 카이로지사에서 진행한 ‘의료인(의사, 간호사, 약사) 특별서비스 제공’ 이벤트는 의료인 존중 문화가 약한 현지에서 화제가 됐다. 이처럼 한국의 의료 역량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이때 좀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개도국 대상 의료 원조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한 극소수의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의 국제사회 기여를 새롭고 특별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오랜 기간 전쟁과 내전을 겪어온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등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기능이 유명무실하고 보건체계도 사실상 무너진 상황이라 향후 인명 피해가 급속도로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제구호위원회(IRC)는 최근 “아프간, 시리아, 예멘을 포함한 취약 국가에서 최고 320만 명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3일 AP통신에 따르면 아프간 당국은 최근 수도 카불에서 500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했다. 이 중 3분의 1이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아프간은 중동에서 가장 먼저 대규모 코로나19 감염이 발생한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교류도 활발하다. 올해에도 아프간인 25만 명 이상이 이란에서 귀국했다. 인구 3660만 명의 아프간에선 4일 기준 불과 1만1068명만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이 중 24.4%인 2704명(사망자 8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15년부터 내전이 본격화한 예멘에서는 지난달 10일 서부 알시르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같은 달 29일에는 알시르에서 540km 떨어진 남부 최대 항구도시 아덴에서 5명의 확진자가 추가로 나왔다. 사실상 코로나19가 국토 전역에 퍼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001년부터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는 3일까지 44명(사망자 3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인근 레바논과 터키에 있는 시리아 난민캠프에서도 코로나19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원유와 천연가스 판매로 얻은 ‘오일머니’에 기반한 산유국 국부펀드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로 국제 유가가 급락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적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일부 산유국들은 국부펀드를 통해 보유 중인 자산을 팔아 현금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저유가로 인한 재정수입 감소에 대비하는 것이지만, 이런 움직임이 세계 금융 및 원자재 시장에 2차 충격파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최희남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은 “산유국 국부펀드들에서 공격적인 투자와 자산 현금화 모습이 동시에 나타난 적은 드물다”며 “코로나19 사태 뒤 본격적인 경기 침체 및 조정 현상이 나타나면 산유국 국부펀드들의 행보에 더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19세기 중반부터 설립 국부펀드(SWF·Sovereign Wealth Fund)는 보유 외환 등 국가 자산을 각종 금융상품 및 원자재에 투자하는 국영 투자기관이다. 1854년 미국 텍사스주가 공교육 확대를 목적으로 설립한 상설학교기금(PSF·Permanent School Fund)이 효시로 꼽힌다. 국가 단위로는 1952년 설립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선구자 격이다. 미국 국부펀드연구소(SWFI)에 따르면 4월 기준 100개가 넘는 국가가 국부펀드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엔 남태평양 키리바시, 아프리카 적도기니 등도 있다. 미국처럼 상당수 주(州)가 국부펀드를 보유한 나라도 있다. 한국은 비교적 늦은 2005년에 KIC를 설립했다. SWFI에 따르면 전 세계 국부펀드의 자산 총액은 약 8조1602억 달러(약 9947조284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독보적 1위가 북유럽 산유국 노르웨이가 1990년 설립한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다. 자산이 무려 1조1867억 달러(약 1446조5870억 원)에 달한다. 2018년 세계은행 기준으로 약 4342억 달러(약 529조2900억 원)인 노르웨이 국가총생산(GDP)의 약 2.7배다. 이어 중국투자공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아부다비투자청(ADIA), 쿠웨이트 국부펀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각국이 국부펀드를 두는 이유는 단순히 높은 투자 수익률 때문만은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의도가 작지 않다. 미국, 호주 등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전략 산업에 대한 타국 국부펀드의 투자를 제한한다. 정부 소유 돈이므로 상장기업과 달리 운용 현황과 실적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저유가로 알짜기업 매수 기회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국부펀드는 사우디의 PIF다. 올해 1월 기준 3200억 달러(약 390조40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PIF는 최근 한 달 사이 로열더치셸(네덜란드), 토탈(프랑스), ENI(이탈리아), 에퀴노르(노르웨이) 같은 유럽 메이저 석유 회사에 약 10억 달러(약 1조2200억 원)를 투자했다. 업계에서는 메이저 석유회사 주가가 저유가로 급락하자 PIF가 저가 매수 기회로 보고 대규모 선제 투자를 단행했다고 본다. 사우디가 국영 석유사 아람코에 만족하지 않고 유럽 석유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많다. 비(非)에너지 분야 투자도 활발하다. 특히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중장기 경제발전 전략 ‘비전 2030’에서 중요성을 강조한 문화콘텐츠와 관광 산업에 대한 투자가 돋보인다. 최근 PIF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지분 80%를 3억 파운드(약 4532억4900만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세계 최대 크루즈 기업인 미국 카니발의 지분 8.2%,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라이브네이션의 지분 5.7%도 사들였다. 카니발과 라이브네이션 주가는 올해 초 대비 각각 80%, 40% 가까이 떨어졌다. PIF는 미 차량 공유 업체 ‘우버’, 미 전기차 업체 테슬라, 미 증강현실(AR)용 헤드셋 업체 매직리프 등 실리콘밸리를 좌지우지하는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에도 투자했다. UAE 아부다비는 양대 국부펀드인 ‘ADIA’와 ‘무바달라’를 활용해 안정과 고수익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약 580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ADIA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2300억 달러의 무바달라는 IT, 헬스케어 분야에 주로 투자한다. 로이터통신은 무바달라가 코로나19 사태로 생명과학 및 디지털헬스 분야 투자를 더 확대할 것으로 점쳤다. 영국 런던의 명물 더샤드 빌딩과 최고급 해러즈 백화점, 프랑스 프로축구(리그1)의 파리 생제르맹 등을 소유한 카타르투자청(QIA)은 지난해부터 북미와 아시아 투자를 확대했다. 최근에는 신흥국 팀을 조직해 중남미, 아프리카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 금융위기 때 쏠쏠한 재미 중동 국부펀드의 공격적 투자는 과거의 성공 사례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쏠쏠한 재미를 봤다. 한때 부동의 세계 최대 은행이었던 미국 씨티그룹이 금융위기 여파로 큰 위기에 몰렸지만 쿠웨이트 국부펀드 및 ADIA의 투자로 회생했다. 카타르 국부펀드 역시 당시 영국 바클리은행, 스위스 은행 크레디트스위스, 독일 폭스바겐과 포르셰 등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많은 투자자들이 금융주를 꺼릴 때 역발상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금융위기 후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자 이런 선제적 투자가 빛을 발했다. 2009년 이후 카타르 국부펀드는 한때 17%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들이 ‘너무 위험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도 공격적 행보를 고수하는 이유다. 사우디 왕실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저평가된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물류, IT, 원격의료 등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리 샤리프 알 에마디 카타르 재무장관도 “해외 투자의 적기로 보고 있다. 헬스 및 IT 부문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가세했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유국이 산업 다각화와 첨단기술 등 탈(脫)석유에 집중하면서 국부펀드 운용 전략도 바뀌었다”며 “특히 금융, 제조업 투자가 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후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사우디 소식통은 “한국에선 아람코 서울지사가 투자 유망 기업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자산 현금화 과정서 시장 출렁일 수도 일부 산유국 국부펀드는 투자 대신 자산 현금화에 치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얻은 돈을 저유가와 코로나19란 이중고로 부족해진 국가 재정을 메울 수단으로 쓰겠다는 속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올해 1분기(1∼3월)에 670억 크로네(약 7조8700억 원)를 현금화했다. 코로나19 대책을 세우려면 긴급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국부펀드가 보유한 채권을 매각해 추가로 돈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중동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각한 이란도 4월 초 국부펀드에서 10억 유로(약 1조3205억 원)를 인출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다. JP모건은 올 상반기(1∼6월)에만 세계 국부펀드의 자산 현금화 규모를 약 2250억 달러(약 274조3875억 원)로 추산했다. 이는 국제 유가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산유국은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일 때 균형 재정을 맞출 수 있다. 10달러대까지 떨어진 지금은 원유를 생산해도, 팔아도 손실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보건의료를 포함한 각종 복지 지출이 눈덩이처럼 증가하다 보니 보유 자산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산유국의 이런 상황은 국제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산유국은 미국 국채의 외국인 보유액(6조7000억 달러) 중 13%를 차지하고 있다. 김희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이들이 선진국 채권을 매각하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들의 국채조차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각국 투자자들의 매도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주가 하락으로 인한 국부펀드 보유 자산 감소는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3월 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분기에만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자산이 약 1조3300억 크로네(약 154조 원)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전체 자산의 70%를 주식에 투자해 코로나19로 인한 주가 급락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홀딩스 역시 올 들어 약 235억 달러(약 30조 원)의 평가 손실을 입었다.○ 불투명성·정치적 이용 등 개선점 산적 일각에서는 향후 산유국 국부펀드의 질적 도약을 위해 지배구조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산유국 중 정부, 의회, 중앙은행 등이 국부펀드를 다양한 각도에서 관리 감독하는 나라는 사실상 노르웨이뿐이다. 노르웨이를 제외하곤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국부펀드 관리 감독 체계를 갖추고 있는 산유국은 없다. 중동 국부펀드들을 두고 ‘언제든 왕실의 사(私)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회의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주요 의사 결정을 직접 내리는 PIF가 대표적 예다. 2018년 10월 사우디 반(反)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총영사관에서 처참하게 살해됐다. 당시 배후 인물로 지목받은 무함마드 왕세자는 국제적 지탄을 받았고, 사우디 국가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우디는 이 돌파구로 PIF를 이용했다. 지난해 인도를 찾은 무함마드 왕세자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PIF를 통한 투자 의사를 밝혔다. 카타르도 마찬가지다. 2017년 6월 사우디, UAE, 바레인 등 걸프지역 수니파 왕정국가들은 카타르의 친(親)이란 및 친터키 행보 등에 반발해 단교했다. 이들은 시아파 맹주 이란과 아라비아반도로의 영향력 확장에 관심이 많은 터키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단교 사태 뒤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카타르 국왕은 “국부펀드를 이용해 터키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국부펀드를 단교 국가에 맞서는 도구로 쓸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카타르 국부펀드는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간접 지원해 화제를 모았다. 쿠슈너 소유 부동산 회사가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입은 뉴욕의 빌딩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당시 외교가에선 ‘카타르가 백악관의 중동정책을 총괄하는 쿠슈너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공을 들인다’는 반응이 나왔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중동 산유국의 국부펀드는 왕실 고위층의 입김에 따라 정치적인 악용이 가능한 구조다. 현재로선 이를 개선하려는 시도 역시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이윤태 기자}
원유와 천연가스 판매로 얻은 ‘오일머니’에 기반한 산유국 국부펀드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로 국제 유가가 급락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적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일부 산유국들은 국부펀드를 통해 보유 중인 자산을 팔아 현금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저유가로 인한 재정수입 감소에 대비하는 것이지만, 이런 움직임이 세계 금융 및 원자재 시장에 2차 충격파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최희남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은 “산유국 국부펀드들에게서 공격적인 투자와 자산 현금화 모습이 동시에 나타난 적은 드물다”며 “코로나19 사태 뒤 본격적인 경기 침체 및 조정 현상이 나타나면 산유국 국부펀드들의 행보에 더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 19세기 중반부터 설립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SWF)는 외환보유고 같은 국가 자산을 각종 금융상품 및 원자재에 투자하는 국영 투자기관이다. 1854년 미국 텍사스주가 공교육 확대를 목적으로 설립한 상설학교기금(PSF·Permanent School Fund)가 효시로 꼽힌다. 국가 단위로는 1952년 설립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선구자 격이다. 미국 국부펀드연구소(SWFI)에 따르면 4월 기준 100개가 넘는 국가가 국부펀드를 보유하고 있다. 그 중엔 남태평양 키리바시, 아프리카 적도기니 등도 있다. 미국처럼 상당수 주(州)가 국부펀드를 보유한 나라도 있다. 한국은 비교적 늦은 2005년에 KIC를 설립했다. SWFI에 따르면 전 세계 국부펀드의 자산 총액은 약 8조1602억 달러(약 9947조2840억 원)에 달한다. 이중 독보적 1위가 북유럽 산유국 노르웨이가 1990년 설립한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다. 자산이 무려 1조1867억 달러(약 1446조5870억 원)에 달한다. 2018년 세계은행 기준으로 약 4342억 달러(529조2900억 원)인 노르웨이 국가총생산(GDP)의 약 2.7배다. 이어 중국투자공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아부다비투자청(ADIA), 쿠웨이트국부펀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각국이 국부펀드를 두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높은 투자 수익률 때문만은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의도가 적지 않다. 미국, 호주 등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전략 산업에 대한 타국 국부펀드의 투자를 제한한다. 정부 소유 돈이므로 상장기업과 달리 운용 현황과 실적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 저유가로 알짜기업 매수 기회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국부펀드는 사우디의 PIF다. 올해 1월 기준 3200억 달러(약 390조40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PIF는 최근 한 달 사이 로열더치셸(네덜란드), 토탈(프랑스), ENI(이탈리아), 에퀴노르(노르웨이) 같은 유럽 메이저 석유회사에 약 10억 달러(1조2200억 원)를 투자했다. 업계에서는 메이저 석유회사 주가가 저유가로 급락하자 PIF가 저가매수 기회로 보고 대규모 선제 투자를 단행했다고 본다. 사우디가 국영 석유사 아람코에 만족하지 않고 유럽 석유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많다. 비(非)에너지 분야 투자도 활발하다. 특히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중장기 경제발전 전략 ‘비전 2030’에서 중요성을 강조한 문화콘텐츠와 관광 산업에 대한 투자가 돋보인다. 최근 PIF는 영국 프로축구(EPL)의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지분 80%를 3억 파운드(약 4532억4900만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세계 최대 크루즈기업인 미국 카니발의 지분 8.2%, 미국 엔터테인먼트기업 라이브네이션의 지분 5.7%도 사들였다. 카니발과 라이브네이션 주가는 올해 초 대비 각각 80%, 40% 가까이 떨어졌다. PIF는 미 차량공유업체 ‘우버’, 미 전기차업체 테슬라, 미 증강현실(AR)용 헤드셋 업체 매직리프 등 실리콘밸리를 좌지우지하는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에도 투자했다. UAE 아부다비는 양대 국부펀드인 ‘ADIA’와 ‘무바달라’를 활용해 안정과 고수익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약 580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ADIA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2300억 달러의 무바달라는 IT·헬스케어 분야에 주로 투자한다. 로이터통신은 무바달라가 코로나19 사태로 생명과학 및 디지털헬스 분야 투자를 더 확대할 것으로 점쳤다. 런던의 명물 샤드빌딩과 최고급 해롯 백화점, 프랑스 프로축구(리그앙)의 파리생제르맹 등을 소유한 카타르투자청(QIA)은 지난해부터 북미와 아시아 투자를 확대했다. 최근에는 신흥국 팀을 조직해 중남미, 아프리카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 금융위기 때 쏠쏠한 재미 중동 국부펀드의 공격적 투자는 과거의 성공 사례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쏠쏠한 재미를 봤다. 한때 부동의 세계 최대 은행이었던 미국 씨티그룹이 금융위기 여파로 큰 위기에 몰렸지만 쿠웨이트 국부펀드 및 ADIA의 투자로 회생했다. 카타르 국부펀드 역시 당시 영국 바클레이즈은행, 스위스 은행 크레디트스위스, 독일 폭스바겐과 포르쉐자동차 등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많은 투자자들이 금융주를 꺼릴 때 역발상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금융위기 후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자 이런 선제적 투자가 빛을 발했다. 2009년 이후 카타르 국부펀드는 1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들이 ‘너무 위험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도 공격적 행보를 고수하는 이유다. 사우디 왕실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저평가된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물류, IT, 원격의료 등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리 샤리프 알에마디 카타르 재무장관도 “해외 투자의 적기로 보고 있다. 헬스 및 IT 부문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가세했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유국이 산업 다각화와 첨단기술 등 탈(¤)석유에 집중하면서 국부펀드 운용 전략도 바뀌었다”며 “특히 금융, 제조업 투자가 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후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사우디 소식통은 “한국에선 아람코 서울지사가 투자 유망 기업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자산 현금화 과정서 시장 출렁일 수도 일부 산유국 국부펀드는 투자 대신 자산 현금화에 치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얻은 돈을 저유가와 코로나19란 이중고로 부족해진 국가 재정을 메울 수단으로 쓰겠다는 속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올해 1분기(1~3월)에 이중 670억 크로네(약 7조8700억 원)를 현금화했다. 코로나19 대책을 세우려면 긴급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국부펀드가 보유한 채권을 매각해 추가로 돈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중동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각한 이란도 4월 초 국부펀드에서 10억 유로(약 1조3205억 원)를 인출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다. JP모건은 올 상반기(1~6월에만) 세계 국부펀드의 자산 현금화 규모를 약 2250억 달러(약 274조3875억원)로 추산했다. 이는 국제 유가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산유국은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일 때 균형 재정을 맞출 수 있다. 10달러대까지 떨어진 지금은 원유를 생산해도, 팔아도 손실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보건의료를 포함한 각종 복지 지출이 눈덩이처럼 증가하다보니 보유 자산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산유국의 이런 상황은 국제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산유국은 미국 국채의 외국인 보유액(6조7000억 달러) 중 13%를 차지하고 있다. 김희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이들이 선진국 채권을 매각하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들의 국채조차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각국 투자자들의 매도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주가 하락으로 국부펀드 보유자산 감소는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3월 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분기에만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자산이 약 1조3300억 크로네(약 154조 원)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전체 자산의 70%를 주식에 투자해 코로나19로 인한 주가 급락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홀딩스 역시 올 들어 약 235억 달러(약 30조 원)의 평가 손실을 입었다. ● 불투명성·정치적 이용 등 개선점 산적 일각에서는 향후 산유국 국부펀드의 질적 도약을 위해 지배구조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산유국 중 정부, 의회, 중앙은행 등이 국부펀드를 다양한 각도에서 관리·감독하는 나라는 사실상 노르웨이 뿐이다. 노르웨이를 제외하곤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국부펀드 관리·감독 체계를 갖추고 있는 산유국은 없다. 중동 국부펀드들을 두고 ‘언제든 왕실의 사(私)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회의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주요 의사결정을 직접 내리는 PIF가 대표적 예다. 2018년 10월 사우디 반(反)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처참하게 살해됐다. 당시 배후 인물로 지목받은 무함마드 왕세자는 국제적 지탄을 받았고, 사우디 국가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우디는 이 돌파구로 PIF를 이용했다. 지난해 인도를 찾은 무함마드 왕세자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PIF를 통한 투자 의사를 밝혔다. 카타르도 마찬가지다. 2017년 6월 사우디, UAE, 바레인 등 걸프지역 수니파 왕정국가들은 카타르의 친(親)이란·터키 행보 등에 반발해 단교했다. 이들은 시아파 맹주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로의 영향력 확장에 관심이 많은 터키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단교사태 뒤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은 “국부펀드를 이용해 터키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국부펀드를 단교 국가에 맞서는 도구로 쓸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카타르 국부펀드는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간접 지원해 화제를 모았다. 쿠슈너 소유 부동산회사가 투자했다 큰 손해를 입은 뉴욕의 빌딩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당시 외교가에선 ‘카타르가 백악관의 중동정책을 총괄하는 쿠슈너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공을 들인다’는 반응이 나왔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중동 산유국의 국부펀드는 왕실 고위층의 입김에 따라 정치적인 악용이 가능한 구조다. 현재로선 이를 개선하려는 시도 역시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재점화하고 있다. 올해 1월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사살을 계기로 양국이 정면 무력충돌 직전까지 치달았던 이후 3개월여 만이다. 양국 관계의 악화로 국제유가도 출렁이고 있다. 양국의 갈등은 15일(현지 시간) 걸프 해역에서 미 군함과 혁명수비대 해군의 고속단정들이 약 1시간 동안 대치하면서 불거졌다. 혁명수비대 해군 소속 고속단정 11척이 걸프 해역에서 합동훈련 중이던 6척의 미 해군과 해안경비대 함정들 주변에 몰려들어 9m 거리까지 접근했고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졌다. 양측은 상대방이 위협 행위를 했다며 설전을 벌였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22일 혁명수비대는 군사위성 ‘누르’(페르시아어로 빛이란 뜻)가 중북부 사막에서 발사돼 425km 상공 궤도에 안착했다며 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위터에 “해군에 ‘바다에서 이란 무장 고속단정이 우리 배를 성가시게 하면 어떤 것이라도 모조리 쏴서 파괴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23일 “해군에 ‘미 군함 및 해군 부대가 이란 상선과 군함을 위협하면 공격하라’고 명령했다”고 받아쳤다. 두 나라의 갈등이 다시 고조된 배경에는 상대국과의 긴장을 통해 국내 정치의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양국 지도부의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의 제재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약품 수급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이란은 미국과의 갈등이 커질수록 코로나19 대처 실패를 ‘미국 책임’으로 돌릴 수 있다.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 역시 대(對)이란 강경책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 결집에 도움이 된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양측 갈등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로 최근 급락했던 국제 유가도 반등했다. 22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19.1%(2.21달러) 상승한 13.78달러에 마쳤다. 장중 한때 30% 이상 올랐다. 국제 유가의 기준인 브렌트유도 전일대비 5%(1.04달러) 이상 오르며 배럴당 20달러를 넘었다. WTI는 23일 미 동부시간 오전 8시 50분(한국 시간 오후 9시 50분) 기준 전일 대비 18.65%(2.57달러) 상승한 16.35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양측 갈등이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 산유국 간 증산 경쟁에 따른 공급 과잉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는 유가를 장기적으로 떠받치지는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스티븐 쇼어크 쇼어크리포트 창업자는 폭스비즈니스에 “군사 위협으로 유가를 올릴 수는 없다. 수요 증가가 없으면 의미 있는 유가 상승도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 간 협의체인 OPEC+ 소속 국가들이 원유 공급 과잉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추가 조치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주요 산유국들이 다음달부터 6월까지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했는데도 국제유가가 계속 빠르게 하락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아랍뉴스에 따르면 알제리, 이라크, 나이지리아, 아제르바이젠 등 일부 OPEC+ 국가들은 이날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불안한 국제원유시장 상황을 논의했다. OPEC은 트위터를 통해 “이번 화상회의에서는 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재 원유시장에 대한 묘안 찾기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타메르 가드반 이라크 석유장관은 화상회의 뒤 “OPEC+는 과잉 공급된 원유를 흡수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같이 산유량이 많은 나라들은 이번 화상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우디 내각은 “현재 시장 상황을 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고 OPEC+ 구성원들과 함께 추가 조치를 취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유 시장 안정화를 위한 추가 감산 같은 조치가 이뤄질 경우 사우디가 참여할 의지가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
개인 비리로 위기에 몰렸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71·사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슈를 등에 업고 연임에 성공하면서 5선 고지에 올랐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보수 리쿠드당은 중도 성향의 청백당과 극적으로 연립정부 협상을 타결했다. 20일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리쿠드당과 군장성 출신 베니 간츠 대표(61)가 이끄는 청백당은 비상내각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네타냐후 총리와 간츠 대표는 그동안 연정 구성을 위한 협상에서 누가 먼저 총리를 할지와 주요 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어 왔다. 양측은 코로나19에 대한 위기 극복 인식을 공유하면서 극적인 타결을 이뤄냈다. 21일 기준 이스라엘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1만3883명(사망자 181명)으로 중동에서 터키와 이란 다음으로 많다. 연정 협상의 걸림돌로 여겨진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 혐의 재판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3월에서 5월로 연기됐다. 외국인 입국 제한 등 강력 조치로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도가 상승하기도 했다. 총리 임기(3년)의 전반 18개월은 네타냐후 총리가, 후반 18개월은 간츠 대표가 총리를 맡기로 합의했다. 표면적으로는 ‘윈윈 상황’으로 보이지만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승리’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총리직을 계속 유지하게 돼 당장 다음 달 열리는 자신의 개인 비리 관련 재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요르단강 서안지구(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 합병 같은 정책 추진도 용이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11월 재선에 성공하면 네타냐후 총리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는 팔레스타인과 이란에 대한 강경 정책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네타냐후 총리에 비해선 다소 온건하지만 간츠 대표 역시 안보 면에선 강경하다”며 “간츠 대표가 집권한 뒤에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과 이란에 대한 강경한 안보 정책은 계속되고 이로 인해 중동 정세가 불안해질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사회적 봉쇄 조치가 길어지면서 세계 각국에서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생사의 기로에 선 빈국(貧國) 주민들은 “이러다 굶어죽는다”며 시위를 벌이다가 분신까지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여부를 놓고 찬반이 갈리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 선진국에선 풀어도, 막아도 불만 유럽 각국은 지난달 초부터 전 국민 이동제한령, 상점 폐쇄령, 휴교령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일부 국가에서는 통제 조치를 서서히 해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20일부터 면적 800m²(약 242평) 이하 상점은 문을 열 수 있도록 봉쇄 조치를 완화했다. 다음 달 4일부터 휴교령도 풀린다. 종교 모임도 사회적 거리 유지가 지켜진다면 일정 부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체코와 폴란드 역시 이날을 시작으로 상점 영업 재개를 허용하는 등 봉쇄령의 단계적 완화에 나섰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페인 등도 제한 조치를 푸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봉쇄 조치 해제를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달 23일부터 필수 업종을 제외한 모든 상점을 폐쇄한 영국 정부는 19일 “단계적 완화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 역시 이동제한령을 다음 달 11일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봉쇄 조치를 완화한 곳에서는 “너무 이르다”는 불만이 나오고, 봉쇄를 유지하는 나라에서는 “빨리 풀어라”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교육노조는 “교실이 작아서 사회적 거리가 유지되기 어렵고 학생들을 소규모로 가르치기에는 교사들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고 독일 주간 슈피겔은 전했다. 반대로 프랑스 자영업자들은 “이러다 다 망한다”고 정부에 봉쇄령 해제를 압박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파리 15구 베트남 식당 주인은 “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자영업자에게 기약 없는 봉쇄 장기화는 그냥 굶어 죽으란 이야기”라고 밝혔다. ○ 개도국에선 폭동 위기 커져 서남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 국가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다. 경제난과 정국 불안에 팬데믹까지 덮쳐 최악의 생활고에 직면한 탓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레바논에선 수도 베이루트와 트리폴리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승객을 1명만 태우도록 한 규정을 어겨 벌금형을 받은 택시운전사는 택시에 불을 질렀고, 시리아 내전을 피해 건너온 난민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분신했다. 케냐에서는 경찰이 통행금지 조치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12명의 시민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최근 인도의 경제 중심지 뭄바이에선 해외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온 노동자 수천 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자리를 잃은 데다 이동제한 조치로 고향으로 돌아갈 길까지 막힌 이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에선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이 계속되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사회적 봉쇄 조치가 길어지면서 세계 각국에서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생사의 기로에 선 빈국(貧國) 주민들은 “이러다 굶어죽는다”며 시위를 벌이다 분신까지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여부를 놓고 찬반이 갈리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 선진국에선 풀어도, 막아도 불만 유럽 각국은 지난달 초부터 전 국민 이동제한령, 상점 폐쇄령, 휴교령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일부 국가에서는 통제 조치를 서서히 해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20일부터 면적 800㎡(약 242평) 이하 상점은 문을 열 수 있도록 봉쇄 조치를 완화했다. 다음 달 4일부터 휴교령도 풀린다. 종교 모임도 사회적 거리 유지가 지켜진다면 일정 부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체코와 폴란드 역시 이날을 시작으로 상점 영업 재개를 허용하는 등 봉쇄령의 단계적 완화에 나섰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페인 등도 제한 조치를 푸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봉쇄 조치 해제를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달 23일부터 필수 업종을 제외한 모든 상점을 폐쇄한 영국 정부는 19일 “단계적 완화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 역시 이동제한령을 다음 달 11일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봉쇄 조치를 완화한 곳에서는 “너무 이르다”는 불만이 나오고, 봉쇄를 유지하는 나라에서는 “빨리 풀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교육노조는 “교실이 작아서 사회적 거리가 유지되기 어렵고 학생들을 소규모로 가르치기에는 교사들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고 독일 주간 슈피겔은 전했다. 반대로 프랑스 자영업자들은 “이러다 다 망한다”고 정부에게 봉쇄령 해제를 압박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파리 15구 베트남 식당 주인은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자영업자에게 기약 없는 봉쇄 장기화는 그냥 굶어 죽으란 이야기”라고 밝혔다. ● 개도국에선 폭동 위기 커져 서남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 국가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다. 경제난과 정국 불안에 팬데믹까지 덮쳐 최악의 생활고에 직면한 탓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레바논에선 수도 베이루트와 트리폴리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승객을 1명만 태우도록 한 규정을 어겨 벌금형을 받은 택시기사는 택시에 불을 질렀고, 시리아 내전을 피해 건너온 난민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분신했다. 케냐에서는 경찰이 통행금지 조치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12명의 시민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최근 인도의 경제 중심지 뭄바이에선 해외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온 노동자 수천 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자리를 잃은 데다 이동제한 조치로 고향으로 돌아갈 길까지 막힌 이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에선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이 계속되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런던정경대 파와즈 게르게스 교수는 WP에 “민주주의와 상관없이 극도의 빈곤과 배고픔으로 인한 사회적 폭발이 일어날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2017년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좀비로 변한 모습으로 분장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유명세를 탔던 이란 여성이 복역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BBC와 CNN에 따르면 파테메흐 키슈반드(19·소셜미디어 필명 사하르 타바르)의 변호인은 최근 이란 사법부 수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키슈반드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법에 따라 적절하고 책임 있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교도소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키슈반드는 다양한 얼굴 이미지를 담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말 이란 당국이 SNS에 대해 대대적 검열을 하는 과정에서 키슈반드는 신성모독과 폭력선동 등의 혐의로 붙잡혀 복역 중이다. 그가 50여 차례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본인은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포토샵과 분장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동에서 코로나19가 가장 먼저 대규모로 확산된 이란은 19일 현재 누적 확진자가 8만 명을 넘어섰다. 서방의 오랜 제재로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고 수감 시설은 특히 여건이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 당국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수감자 8만5000여 명을 조기 석방했지만 키슈반드는 포함되지 않았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해군 함정들이 15일(현지 시간) 걸프 해역에서 훈련 중이던 미국 해군과 해안경비대 함정들에 가까이 접근하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혁명수비대 함정들은 미군 함정들에 약 10m 거리에 까지 접근하며 일촉즉발의 충돌 상황이 펼쳐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과 로이터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는 혁명수비대와 미군 함정은 각각 11대와 6대 있었고, 미 함정들은 육군 소속 헬리콥터들과 함께 합동 훈련을 진행 중이었다. 혁명수비대 함정들이 접근하자 미 함정들은 무선 방송과 음향 장비를 이용해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혁명수비대 함정들은 약 1시간 동안 머물며 지속적으로 미군 함정들에 접근하려 했다. 미군은 성명을 통해 “(당시 이란 해군은) 매우 위협적이고 공격적이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적절한 대응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걸프 해역에서 혁명수비대 함정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해군의 함정 가까이 접근했던 경우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올해 초 미국과 이란이 전면 충돌 직전까지 갔던 상황 뒤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미국은 올해 1월3일 혁명수비대의 해외작전 담당부대인 ‘쿠드스군’ 사령관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 중장을 이라크에서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살해했고, 이란은 5일 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내 미군 기지 2곳에 탄도미사일 22발을 발사했다. 한편 혁명수비대는 14일에도 오만만 항해 중이던 홍콩의 화학제품운반선인 ‘SC타이페이’를 잠시 나포했다 풀어줬다. 이에 따라 향후 걸프 해역에서 혁명수비대 함정들의 서방국가 해군과 상선들을 대상으로 한 위협 행위가 다시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공사장 노동자들에게 “왜 마스크를 쓰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면서 정작 대통령 본인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돼 비판을 받고 있다. 현지 일간 요움7에 따르면 시시 대통령은 9일 수도 카이로의 한 건설 현장을 지나가던 중 노동자들이 마스크를 안 쓰고 일하는 모습을 봤다. 그는 차에서 내려 현장 관리자들을 불러 “왜 노동자들이 마스크를 안 썼느냐. 노동자들은 가난하니 건설사가 무료로 지급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면 당시 시시 대통령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다. 소셜미디어에선 “대통령은 왜 마스크를 안 썼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이집트에서는 마스크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일반 마스크가 개당 약 15이집트파운드(약 1160원), N95 마스크는 개당 약 80~120이집트파운드(약 6180~9270원)에 팔리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질책이라는 반응도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8년 이집트의 일인당 국민총생산(GDP)는 2459달러로 중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평소 대중이나 언론 접촉에 소극적인 시시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공사장에서 마스크 문제를 강하게 질책한 배경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신행정수도 출범과 대박물관 개관 같은 핵심 국책사업들이 연기되는 등 사회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14일 기준 이집트에선 2350명의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 178명)가 발생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구성원들 사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다. 8일 뉴욕타임스(NYT)는 사우디 현지 병원과 왕실 소식통들을 통해 여러 명의 왕실 인사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여기에는 수도 리야드 지역의 주지사인 파이잘 빈 반다르 왕자(77)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파이잘 왕자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84)의 조카이며, 리야드 지역 주지사는 사우디 왕실에서 전통적으로 국왕 최측근이 담당하는 자리다. 특히 현지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사우디 왕실 구성원들의 코로나19 감염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왕실 구성원 출신 감염자들을 위해 500 병상을 준비하라는 방침이 떨어졌다. 또 유명 병원인 킹파이잘 특수병원에는 “전국에서 VIP들이 올 수 있으니 이에 대비하라”는 e메일이 의사들에게 전달됐다. 현재 사우디에선 최대 150여 명의 왕실 인사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우디에선 9일 기준 2932명의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고, 이중 41명이 사망했다. 이란(감염자 6만4586명·사망자 3993명), 터키(3만8226명·812명), 이스라엘(9404명·73명) 같은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하면 적은 수치다. 하지만 사우디는 △이슬람교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방문 금지 △국제선 운항 중단 △리야드 등 주요 도시에 대한 24시간 이동제한 같은 강경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또 하반기에 예정돼 있는 정기 성지순례도 허용하지 않는 것을 검토 중이다. 살만 국왕도 감염을 우려해 제2도시인 지다 해안에 있는 섬의 궁전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 전문가인 미국 라이스대의 크리스티안 코아테스 울리히센 교수는 “(사우디에선 왕실) 가족들의 문제가 되면 긴급한 이슈가 된다”고 NYT에 말했다. 이에 따라 당분간 사우디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정책은 지속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면서 사망자가 크게 늘고 치명률(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6일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가 7만 명을 넘어서면서 평균 치명률은 5.5%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치명률 3.4%와 비교하면 한 달 만에 2.1%포인트나 높아졌다. 치명률 상승을 이끈 것은 유럽이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는 한 달 전 사망자가 148명에 불과했지만 6일에는 1만5887명으로 크게 늘었다. 치명률도 지난달 6일에는 3.8%였지만 이달 6일에는 12.3%로 높아졌다. 사망자가 1만3055명으로 이탈리아에 이번 두 번째로 많은 스페인의 치명률도 9.6%로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다. 영국(10.3%), 네덜란드(9.9%), 프랑스(8.7%) 등도 높은 치명률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의 치명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전염 확산 수준 △주요 감염층 △의료 인프라 △검사 진행 규모 등을 꼽았다. 치명률이 높은 국가들은 의료 인프라가 취약해 의료 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놓여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2017년 기준)를 분석해 보면 인구 100만 명당 병원 수는 독일 37.3개, 오스트리아 30.8개, 영국 29.0개, 그리스 25.7개, 터키 18.9개, 이탈리아 17.5개, 스페인 16.6개다. 병상 수가 많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치명률이 각각 1.6%, 1.7%로 낮은 수준이다. 1인당 보건 예산(2018년 기준)은 노르웨이 6186달러(약 760만 원), 독일 5986달러, 오스트리아 5395달러, 캐나다 4973달러 등으로 이들 국가는 1%대의 낮은 치명률을 기록 중이다. 특히 인공호흡기 차이가 결정적이다. 코로나19 환자의 30%가 폐에 이상이 생긴다. 이탈리아는 활용 가능한 인공호흡기가 전국 3000여 대로, 인구 10만 명당 약 5개 수준이다. 독일은 2만5000여 대로 인구 10만 명당 30대에 육박한다. ‘누가’ 주로 감염됐는지도 중요하다. 치명률 0.6%인 이스라엘은 전체 감염자 가운데 30세 이하가 37%, 20대 비율이 23%에 달한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젊은 감염자 비율이 높다 보니 노년층 중심으로 감염자가 늘어난 유럽 등에 비해 치명률이 낮다”고 전했다. 반면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감염자 평균 연령은 60대다. 치명률이 1.8%로 낮은 편인 한국에서도 감염자의 연령과 치명률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30대의 치명률은 0.09%, 40대는 0.15%에 불과했지만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높아져 50대 0.68%, 60대 2.01%, 70대 7.58%, 80대 이상은 19.78%로 나타났다. 또 적극적으로 검사를 시행하면 감염 초기인 확진자를 걸러낼 수 있어서 치명률을 낮출 수 있다. 한국의 치명률이 낮은 것도 넓은 진단검사 범위를 주요한 이유로 꼽는다. 경증이나 무증상 환자까지 걸러내고 있어 포착된 환자가 많고 치명률이 낮다는 것이다. 최원석 고려대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확진자가 급증해 의료체계에 과부하가 걸렸던 2주를 제외하고는 중증 환자 발생에 적극 대처해 치명률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확진자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미국(33만6851명)도 최근 검사를 대폭 늘리면서 치명률은 2.8%로 낮은 편이다. 다만 지역별 치명률 차이가 커 향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뉴올리언스는 코로나19로 인구 10만 명당 37.9명이 사망해 뉴욕(18.8명)의 2배”라고 보도했다.파리=김윤종 zozo@donga.com / 박성민 기자 / 카이로=이세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