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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나이 들수록 옷장 문 열 때마다 화가 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입고 나갈 옷은 없는데 철철이 옷 해줄 능력 없는 ‘삼식이’ 남편이 미워진다는 거다. 내가 나이 먹어 옷태 안 난다는 생각은 못 하고 남 탓만 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계절은 또 바뀌는데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 액세서리 구두 등 청와대가 공개를 거부한 의전비용과 특수활동비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때라도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30일 밝힌 것처럼 “김 여사의 의상 구입에 쓰인 특활비는 한 푼도 없다. 사비(私費)로, 카드로 결제했다”고 똑 부러지게 밝혔다면 ‘×멜다’ 같은 험한 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대통령이고 2021년 연봉이 2억4065만 원이다. 대통령 부인이 남편 돈으로 좋은 옷 사 입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청와대는 그러지 않았다. 법원이 “국익을 해칠 우려나 공무집행에 지장을 줄 우려가 없다”며 공개하라고 판결했음에도 불복해 항소했다. 문 대통령 임기 끝까지 붙잡고 있다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 15년간은 감춰두겠다고 국민 염장을 지른 셈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이 2018년 3월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은 대통령 및 김 여사의 의전비용이 특활비에서 지급됐는지 여부였다. 김 여사의 옷값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옷값도 함께 물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은 특활비 폐지였고 김 여사의 옷값은 ‘미끼’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다들 김 여사 옷값에만 신경 썼지 문 대통령의 고급 양복엔 관심도 없다. 넉 달 후 청와대가 김 여사의 옷을 사비로 산다고 답하지 않은 것은 의아하다. 탁현민의 뒤늦은 사비 주장을 믿기 힘든 이유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은 공문을 통해 "(특활비) 세부 지출내역에는 국가안전보장, 국방, 외교관계 등 민감한 사항이 있어 공개하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특활비 내역에서 김 여사의 옷값이나 수량 또는 사이즈 같은 민감 사항이 공개될 경우, 국민의 심신을 자극해 국익이 현저히 훼손될 우려가 있는 건 맞다. 만일 대선 전에 김 여사 옷값 논란이 터졌다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득표에서 최소한 10%포인트는 깎아먹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구나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이어 탁현민이 사비론을 강조한 30일, 전태수 JS슈즈디자인연구소 대표는 “2017년 5월 김 여사에게 구두 6켤레를 켤레당 25만 원에 판매했고 보좌관이 현금으로 결제했다”고 밝혔다. 문 정권의 나팔수 김어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냄새가 나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김 여사의 옷값 논란을 보는 것은 편치 않다. 프랑스 혁명 때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여혐의 희생자’로 단죄됐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서울경찰청이 시민단체 고발에 따라 30일 김 여사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도 진영과 상관없이 마음 아프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관저운영비나 생활비도 특활비로 처리하던데 생활비는 대통령 봉급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혀 국민을 경악시켰다. 청와대에선 지금껏 생활비조차 특활비로 썼다는 사실이 기막혀서다. 기획재정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란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영수증 없이 쓸 수 있고 현금으로 지급되는 ‘묻지 마 예산’이어서 납세자연맹에선 귀족들의 ‘세금횡령 면책특권’으로 본다. 국정원과 청와대 등 19개 기관에 배정된 특활비가 작년에만 9838억 원이었다. 할 말은 아니지만 김 여사의 옷값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에 비하면 거의 새 발의 피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특활비를 둘러싼 ‘법무부·서울지검의 돈봉투 만찬사건’을 감찰했다. 공석이 된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윤석열을 깜짝 발탁해 오늘날 대통령 당선인으로 마주하게 됐다. 임기는 신분사회를 연상시키는 특활비 폐지와 함께 끝냈으면 한다. 김 여사가 기를 쓰고 방문했던 노르웨이에선 총리가 예산을 쓰고도 영수증을 안 내면 형사책임은 물론 탄핵을 당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정직하게 세금을 낼 의무가 있다. 대통령도, 대통령 부인도 그래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한 정권의 성패는 종종 아주 초기에 결정된다.” 서울대 장덕진 교수는 지난주 경향신문 칼럼에 이렇게 썼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발표하기 전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 1호인 적폐청산에 5년 내내 매달리는 바람에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청와대 해체 및 대통령실 광화문 이전’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공약은 10대 공약 중 1호도 아닌 열 번째다(1호 공약은 코로나 위기 극복). 만약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다면(재수 없는 소리 미안), 출범도 하기 전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소란 때문일 공산이 크다. 그래서 납득이 안 되는 거다. 대체 왜 윤 당선인은 이 중차대한 시기에 대선 공약집 340쪽 중 329쪽에 실린 공약에 매달려 귀중한 ‘정치적 자산’을 까먹고 있는 건가. ● “광화문 된다”더니 용산 간다고? 압도적 승리를 했으면 또 모른다. 겨우 0.73%포인트 차이로 이겨 문 대통령한테 “역대 가장 적은 표 차로 당락이 결정됐다”는 ‘조롱’까지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탈권위적 이미지가 절실했을 수 있다. 출근길에 국민과 반갑게 인사하고, 그 동력으로 국민 앞에 자랑스러운 대통령으로 펄펄 날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기대했던 ‘청와대 이전’도 광화문까지였다. 그래서 대선 기간 중인 1월 27일 그는 “경호 문제나 외빈 접견 문제는 충분히 검토했다”며 “인수위 때 준비해 임기 첫날부터 광화문 집무실 근무가 가능하다”고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당선 다음 날인 10일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이 찾아와 ‘문재인 정부도 (이전을) 검토하다 실패했다’고 하자 윤 당선인은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느냐”며 광화문 시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17일자 동아일보가 단독보도 했듯, 광화문 이전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호와 보안 문제 등으로 시민들에게는 거의 재앙 수준이라는 거다. 대신 용산구 국방부 신청사로 이전하겠다고 윤 당선인은 20일 사과도 없이, 지휘봉을 들고 당당히 발표했다. 그 뒤엔 ‘윤석열체’로 쓰인 백드롭이 걸려 있었다.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 안보 놓고 실험하는 자 누군가광화문이 불가능해 용산을 선택한 건 좋다고 치자. 윤 당선인은 중국집에 짜장면 떨어졌다고 짬뽕 시켜 먹고 와서는 “참 잘했어요” 칭찬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광화문과 용산은 짬짜면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문 대통령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가장 큰 문제는 안보(安保)이고, 절차와 소통 문제가 다음 문제다. 우선, 5월 9일 밤 12시까지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는 문 대통령이다. 비록 문 대통령이 안보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해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시기에 안보 공백을 초래할 수 있는 청와대 집무실 이전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 대통령도 과거 대선 때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공약한 바 있어서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린다는 뜻에 공감하고 있다. 시간에 쫓겨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 국방부, 합참, 청와대 모두 보다 준비된 가운데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순리”라는 문 대통령의 입장은 옳다는 얘기다. 이런 청와대에 대고 윤 당선인의 경호경비팀장 김용현이 “역겹다”고 비판한 건 무례하기 짝이 없다. 주군에게 충성하겠다고 현직 대통령에게 함부로 하는 경호팀장이 국민을 받들 리 없다. 더구나 국방부 신청사가 안보에 취약하다는 민주당 설명(또는 선동)은 들을수록 불안하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같은 일이 터져도 새 정부는 할 말 없을 판이다. 국민 앞에 제대로 설명하는 절차 한번 거치지 않은 채 너무나 서두른 탓이다. ● 그것은 상식에 어긋난 제왕적 대통령질 용산 이전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세계 주요 국가의 대통령이나 내각제 총리의 집무실은 전부 도심에 있다”며 “국민과 호흡하는 도심에 있어야 민성을 들을 수 있고, 직언과 고언을 해야 할 참모들도 편안한 가운데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용산은 고려 때 몽고 침략군부터 일제 침략군까지 주둔했던 곳이다. 주한미군이 떠난 용산공원에 문 정권은 생태공원을 만들려 했고,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임대주택 등을 짓자고 했었다. 나는 용산공원 한쪽에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서는 것이 ‘제2의 해방’과 맞먹는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5월 10일 20대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서두는 것은 안보 문제를 포함해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특히 ‘공정과 상식’을 들고나왔던 윤 당선인이 “지금은 여론에 따르는 것보다 정부를 담당할 사람(즉 윤석열)의 철학과 결단이 중요하다”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벗어나는 게 더 어려워진다”며 “제왕적 대통령을 내려놓는 방식을 제왕적으로 한다는” 점은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비판을 다 알면서도 집무실 이전을 밀어붙이는 고집(불통)의 일하는 방식이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한다. ● 물러서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그리하여 제왕적 새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했다고 치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무총리 인준부터 순순히 협력해 줄 것 같은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쿼드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방문을 계기로 5월 하순경 한국을 찾으면, 윤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 말고 어디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할 터인가.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과연 승리하겠으며, 앞으로 5년간 대통령실은, 정국은 얼마나 소란할 것인가. 협치나 통합은커녕 성공한 대통령, 아니 우파 정권 재창출은 가능할 것인가. 나는 지금 윤 당선인이 물러서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5월 9일까지는 문 대통령에게 청와대를 맡기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다. 집무실 이전은 그 다음, 윤 대통령 책임 아래 하는 것이 옳다. 일단 문 대통령처럼 청와대 여민관에서 집무하다가 국민적 합의를 거쳐 8·15 광복절에 용산 국방부 신청사로 옮기면 또 어떤가. 안보 공백도 없고, 국민도 불안하지 않고, 윤 대통령도 제왕적이란 소리 듣지 않을 수 있다. 석 달쯤 대통령실 이전이 늦어진다고 아무도 잡아먹진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은 초기에 결정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한가하다. 여가부 존폐를 놓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릴 판이다. 그런데도 장관은 1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서 열린 유엔여성지위위원회에서 우리 정부의 성과를 소개했다고 홈페이지에 자랑했다. 남들이 믿을지 의문이다. 리얼미터에서 작년 5월 실시한 18개 부처 대상 ‘2021년 대한민국 정책수행 평가’ 결과 여가부는 꼴찌였다. 문재인 정권이 ‘민주정부 3기’라고 치고, 정영애를 포함한 민주정부 여가부 장관들의 공통점이 있다. 주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나 여성민우회를 거친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이다. 진선미는 민변 출신, 이정옥은 담쟁이포럼 출신이지만 ‘꼴페미’라는 점에선 거기서 거기다. 이대남(20대 남자)에게 여가부가 페미니즘의 상징이라면 이대녀(20대 여자)에게는 여성정책 지킴이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2001년 여성부로 출범한 이래 노무현 정부 당시 지은희 장관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 통과를 최고의 업적으로 자부했다. 그러나 ‘여성정책변동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조영희 고려대 교수는 “핵심적 처벌 조항들을 최종적으로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여성단체가 주도하는 흐름에 수동적으로 따라갔다”고 지적한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공이 더 컸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그 무렵은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의 성폭력 가해자 명단 공개로 어지럽던 시기였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2018년 성폭력 사건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같은 운동권 출신 성의식을 엿보게 해준 데 있다. 1999년 보건의료노조 술자리에서 성폭력이 터졌는데도 ‘조직 보위 논리’로 덮었기 때문이다. 2005년 호주제 폐지가 국회를 통과하자 여성단체들은 잠시 침체기에 들어간다. 이후 10여 년간 이대녀를 파고든 것이 강단 여성학자들의 급진 페미니즘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다. 이대녀들은 그래서 윤석열에게 표를 줄 수 없었다지만 남녀를 갈라치기 한 쪽은 문 정권과 민주당이라고 본다. 남자를 거의 적으로 몰아붙이는 메갈리아를 ‘새로운 페미니즘’으로 인정한 쪽이 정영애가 이사로 있던 한국여성재단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명숙, 지은희가 몸담았던 여성민우회는 메갈리아 사이트가 개설되자 여성혐오 근절 캠페인을 벌인다며 ‘넷페미’들을 불러 모았다. 진선미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 사이에서 ‘갓선미’로 떠받들어지면서 여가부 장관까지 할 수 있었다. NL(주사파) 페미 여성단체-여가부-민주당 의원-이후 대학총장으로 이어지는 성권력 및 좌파 이권 네트워크가 완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가부 페미 장관들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사건이 터지자 8일 만에 대책회의를 열고 피해자를 ‘고소인’이라 불렀던 거다. 담쟁이포럼에서 문 후보를 받들었던 장관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성인지 감수성 집단학습의 기회’라고 했던 것이다. 노 정권은 성매매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문 정권 도지사, 시장들은 비서를 관기 취급했고 올드 꼴페미는 이를 ‘내로남불’로 보호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에서 영페미 넷페미는 여가부를 여성정책의 지킴이로 믿고 ‘무상연애’ 이재명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진 꼴이다. 여가부 설립 목적의 첫 번째가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및 권익 증진이다. 그러나 올해 예산 1조4560억 원 중 양성평등 분야는 7%에 불과하다. 정현백 전 장관이 “예산의 62%가 가족에, 30%가 청소년에 쓰인다”고 확인했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예산 2조8092억 원에 비교해도 쥐꼬리만큼 적다. 그렇다면 굳이 ‘여성가족부’라고 ‘여성’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여가부의 영문 명칭도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양성평등가족부)다. 좌파 여성단체 출신 꼴페미를 장관에 앉힐 이유는 더더구나 없다. 이제 두 달 후면 정권은 바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여가부 폐지’를 내걸었지만 단순명료한 구호였을 뿐이라고 본다. “더 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 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가족부’라고 해도 좋다. 독일이 그렇게 하고 있다. 장관 1명에 차관 3명의 매머드급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다. 그래서 인구절벽 문제를 풀 수 있고 남녀가 사이좋게 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아침마다 우크라이나의 안녕을 확인한다.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면 그냥 파죽지세로 끝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러시아군이 진입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노바 카호브카에선 한 할머니가 러시아군대를 향해 빗자루를 휘두르며 호통치는 것이었다. 수도 키이우에서 BTS 지민의 팬들이 “러시아 군인들을 ‘따뜻하게’ 해주겠다”며 화염병을 만들고 있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조국을 지킨다며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나라가 눈물겹게 아름다운 우크라이나였다. 할머니들까지 나서 결사 항전하는 나라는 절대 무너질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쳐들어온 지 아흐레 되는 3일(현지 시간) 군복 티셔츠 차림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말했다. “우리 국민은 특별하고 비범한 사람들”이라고. ● 푸틴정권 교체 소리가 나온다벌써 외신에선 푸틴의 패배를 예견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포린어페어스’ 인터넷판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기사 제목만 봐도 가슴이 뛸 정도다. ‘푸틴이 소련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푸틴의 실수’ ‘푸틴이 값을 치르게 하라’ ‘푸틴 종말의 시작’ ‘푸틴은 러시아에서 실각할 것인가’ ‘러시아가 패배한다면’ 등등이 2월 말부터 마구 올라온다. 러시아가 승리한다는 기사는 없냐고? 2월 18일에 올라온 ‘크레믈린이 이긴다면?’이 고작이다. 미국이 만든 전문지여서 그런가 싶어 영국서 만드는 파이낸셜타임스를 들여다봤다. 5일자 사설은 “베를린 장벽 붕괴와 9·11테러가 세계를 변화시켰듯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세계를 각성시켰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독재자 푸틴에 맞서는 용기와 존엄성을 보여주었고, 민주주의 국가들은 독재자 푸틴 정권을 하룻밤 새 버렸다는 거다.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밝혔듯,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심각한 오산으로 드러났다. 애초 푸틴은 하루 이틀 안에 키이우를 점령하고 ‘선량한’ 우크라이나 국민으로부터 ‘해방군’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을 줄 알았다. 그래서 점령 72시간 내 친러 괴뢰정부를 세우고 대러시아 제국의 차르로서 수렴청정을 할 계획이었다. 스트롱맨(strongman)으로 유명했던 푸틴이 알고 보니 지푸라기로 만든 스트로맨(straw man)이었던 꼴이다. ● 히틀러 같은 독재자에게 또 당할 수 없다이따위 침략 결정을 내린 푸틴은 과연 제정신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000~2008년, 그 후 4년은 헌법에 막혀 총리를 하다 2012년부터 (개헌까지 해서) 대통령으로 ‘예스맨’에 둘러싸여 있으면 정상이던 사람도 비정상이 된다고 본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도 그랬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그런 비극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후세의 정치인들이 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의 ‘외교 도박’은 1936년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한 라인란트 재무장부터 시작된다. 불과 3000명의 병력으로 라인란트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 뒤 히틀러는 “만일 프랑스가 밀고 들어왔더라면 우리는 꼬리를 내리고 물러났을 것”이라고 나중에 몇 번이나 말했다. 프랑스도, 영국도 독일과 싸울 엄두를 못내 히틀러의 패권외교가 이겼을 뿐이다. 자신은 절대 안 틀린다는 히틀러의 과대망상은 도를 더해갔고 유화정책의 결과 1938년 뮌헨협정이 탄생했다. 지도자 숭배 열풍이 팽배한 나치 체제에서 히틀러에게 “No”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히틀러’를 쓴 어윈 커쇼 영국 셰필드 대학 현대사 교수는 분석했다. 그래서 푸틴의 군대가 우크라이나로 들어오자 민주세계는 군사적 수단만 빼고(3차 세계대전이 터질 수 있으므로) 모든 조치를 다 취하는 거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일제히 국가신용등급을 낮추면서 급기야 러시아에 국가부도 위기가 임박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피에 젖은 땅, 우크라이나 1941년 히틀러는 우크라이나에서 독일을 세계의 강국으로, 유럽의 곡창으로 만들어 줄 옥토를 봤다. 독일 침략으로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주민(특히 유대인) 300만 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이미 이 땅에선 사상 최대의 인위적 기근으로 300만~400만 명이 문자 그대로 굶어죽은 다음이었다. 1928~33년 스탈린은 제1차 5개년 계획으로 유토피아를 약속했었다. 농토와 농민은 현대 산업국가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 쥐어짜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우크라이나의 기름진 땅에서 곡물을 샅샅이 긁어갔기 때문이다(티머시 스나이더 ‘피에 젖은 땅’). 스탈린 아버지, 이걸 보세요집단농장은 정말 정말 멋지다나요(중략)빵도 없어요, 기름기도 없어요공산당이 모조리 쓸어갔어요(중략)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잡아먹어요당원은 아버지를 때리고 밟고우릴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버리죠(우크라이나 동요)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왜 러시아 군대에 한 뼘의 땅도 내주지 않는지, 왜 초보 대통령(그는 유대인 혈통이다)이 죽어도 그 땅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하는지 이제 이해되지 않는가.● 이재명의 중국은 한국을 지켜줄까 그래도 우크라이나에선 민족이 다른 독재자가 우크라이나 민족을 굶겨 죽였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제 국민을 굶겨 죽인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은 지금도 독재자로 김씨 왕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 북의 독재자를 향해 ‘남쪽 대통령’이라고 자칭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평양 경기장에서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이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나토가 가입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은 충돌했다”고 TV토론에서 말한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가 언급했던 초보 대통령이 지금 세계적 찬사를 받는 민주주의의 상징적 지도자로 꼽히고 있고, 이재명은 집권할 경우 조국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중국과 더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기 때문이다. 이재명이 언급했던 중국은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와 척을 진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다짐한 나라다. 그가 당선돼 중국과 긴밀히 협력하면 과연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내일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5년 임기 내내 두 개의 ‘청산’에 매달렸다. 적폐청산은 국민이 다 안다. 눈치 없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살아있는 권력’까지 파헤치다 쫓겨나 야당 대통령 후보가 돼버렸다. 또 하나 조용히 진행된 것이 역사청산이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3·1절 기념사에서 “김대중 정부가 첫 민주정부”라고 연설한 건 의미심장하다. 2일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이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 이어 4기 민주정부를 만들어내겠다”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에서 울며 다짐했다. 그가 당선될 경우, 정권 연장 아닌 네 번째 평화적 정권교체란 말인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동아시아연구원의 ‘대선 특별 논평’에서 “문재인 정부의 역사청산은 80년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협약에 의한 민주화’를 파기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1970∼80년대 권위주의 국가의 집권 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에서 폭력 아닌, 합의에 의해 이뤄진 민주화를 ‘협약에 의한 민주화’라고 한다. 1987년 한국의 민주화운동으로 탄생한 노태우 정부도 여기 속한다. 문 정권은 2016년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규정했다. 통일 지향적 민족주의 세력이 문 정권이다. 이들 눈에 1987년 협약에 의한 민주화 상대였던 보수 세력은 일제 패망과 더불어 사라졌어야 할 반민족 세력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정부는 물론 민주화 이후 노태우, 김영삼 등 보수 정부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사에서 이들을 모두 지워버리면 임시정부 다음 첫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문 정권의 역사청산인 것이다. 최장집은 “한국 역사의 다층성과 복합성을 간과하고 역사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행위”라고 했다. 3·1절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3·1독립운동에는 남과 북이 없었다. 다양한 세력이 임시정부에 함께했고 좌우를 통합하는 연합정부를 이뤘다…고국으로 돌아온 임정 요인들은 분단을 막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았다. 그 끝나지 않은 노력은 이제 우리의 몫이 되었다”고 역사청산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연설문에 “공산주의자와는 아무것도 더불어 할 수 없다”는 임정 시절 백범의 말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다. 우리나라가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든, 김씨왕조이든, 분단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식의 대통령 인식은 무섭고 위험하다. 문제는 ‘4기 민주정부’를 만들겠다는 이재명도 문 대통령과 다름없는 역사인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2017년에 쓴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친일세력을 등에 업고 편법으로 정권을 창출한 이승만 정권’이라고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서술했다. 고시공부 틈틈이 운동권 서적 특히 ‘해방전후사의 인식’ 시리즈를 읽고 정신이 번쩍 든 결과다. 대한민국을 마치 편법으로 태어난 나라처럼 보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 뒤에도 이재명은 역사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작년 11월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느닷없이 꺼냈던 가쓰라-태프트 협약이 그 책에 그대로 등장한다. “1년 국방예산 40조 원이면 자주국방이 가능하다…남북이 힘을 모아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것이 우리 세대 모두의 책임이자 희망이다” 같은 대목은 대통령 후보의 글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단순하고 얄팍하다. 모르면 차라리 낫다. 유능함을 자신하는 것이 더 섬뜩하다. 1일에도 이재명은 ‘유능한 평화안보 대통령’ 제목의 방송연설에서 “한미 연합훈련 횟수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2.5배나 대폭 늘었다”고 태연하게 밝혔다. 군 관계자가 “2018년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키리졸브, 독수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 등 3대 연합훈련이 모두 폐지됐는데 무슨 소리냐”고 황당해했을 정도다. 탈모치료제는 대통령이 안 줘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해 침공을 자초했다는 인식을 가진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재명이 대통령 되어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와 자주국방을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자유도 인권도 없는 전체주의국가 북한과 연합정부를 이뤄 과연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선 후보가 잘나서 지금의 지지율이 나왔다고 보면 오산이다. 국민은 정권교체가 절실해서, 국민의힘이 제1 야당이어서, 그 당 대선 후보가 윤석열이어서 지지하는 것이지 당신들이 예뻐서가 아니다.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해선 후보 단일화가 필수다. 자강론? 웃기지 마시라. 22~24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38%, 윤석열이 37%다. 일주일 만에 다시 뒤집힌 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가 결렬되면서 이재명은 전주보다 4%포인트 올랐고 윤석열은 4%포인트 빠져버렸다. 정당 지지도도 뒤집혔다. 민주당은 전주보다 4%포인트 올라 39%, 국민의힘은 5%포인트 빠져 34%다. 20일 안철수 단일화 결렬 선언 이후 민주당은 24일 결선투표와 다당제 등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개혁안’을 제안하는 등 죽을힘을 다했다. 국민의힘은 뭘 했는가. 안철수 조롱하기? 국민은 오만한 정치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 결과가 바로 나온 것이다. ● 1997년 DJP도 결선투표하면 패배 후보 단일화 요구도 지겹지만 제도 탓이다. 우리 헌법에 결선투표제만 있으면 이런 고생 않는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당시 김영삼, 김대중의 분열을 노린 대통령 전두환이 요렇게 만들어 놨다. 그때 피눈물을 흘렸던 김대중(DJ)은 1997년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다.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김종필(JP) 자민련 후보에게 내각제 개헌, 총리 임명 등 DJP연합을 약속한 것이다. 결과는 40.3% 득표,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였다. 한나라당 이회창은 38.7%까지 따라붙고도 패배했다. ‘IMF 사태’가 터졌음에도 불과 1.6%, 39만 표 차이로 진 것이다.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도 19.2% 득표했다. 보수 진영으로선 단일화를 못해 정권을 내준 것이다. 윤석열도 이 꼴 될까 봐 국민이 끌탕을 하는 거다. 결선투표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1위 DJ의 득표율이 50%가 안 되므로 1, 2위(이회창)가 다시 투표를 치러야 한다. 이 경우 최종 당선자는 이회창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2019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간 ‘선거연구’에 실린 ‘대통령선거의 결선투표제 도입에 있어 실시요건에 관한 연구’ 결과다. ● 이회창도, 이인제도 “천추의 한을 남기지 마라”이회창은 2017년 회고록에서 “언론이나 논평가들은 패배 원인을 ①여권분열(이인제 탈당 출마) ②야권연대(DJP연합) ③병풍 ④IMF 위기로 꼽지만 사후약방문”이라고 했다. 선거에 진 것은 자신의 잘못이지 누구 탓이 아니라는 거다. 바람직한 정치인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회창은 최근 “윤석열-안철수가 단일화를 해야 하느냐”를 묻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단일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JP연합이 1.6% 차이로 내가 대통령이 안 된 (여러 요인 중 하나의) 요인이 된 건 틀림없다”며 “이번에도 만일 1%든 2%든 3%의 차이로 떨어진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 그 이인제도 24일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두 사람이 결단하면 끝난다”고 했다. 전직 여야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100여 명의 윤석열 지지선언 행사장에서 그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압도적 지지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도록 자유우파 세력이 통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는 절박한 후보가 이긴다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은 “단일화에 대해선 우리 후보의 의중이 최우선”이라고 했지만 그건 젊고 건방진 당신 생각이다. 설령 윤석열이 원치 않는다 해도 단일화는 절박하다. 정권교체를 국민이 원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도 25일 TV토론 뒤 단일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막말로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은,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누가 대통령 돼도 상관없다. 이재명만 아니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핵관이나 국민의힘 사람들이 지방선거 공천권 놓칠까, 내각이나 공공기관 밥그릇 줄어들까 막아서는 것이라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과거 DJ 측은 이회창처럼 대의명분을 따지지 않았다(오인환의 ‘김영삼 재평가’). 이회창은 대선에서 이기려면 충청의 JP를 잡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3김 청산’을 내건 그로선 JP와 손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DJ는 유신세력 JP와도 포옹했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아니 국민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 당신들이 예뻐서가 아니다나는 안철수가 교만하고, 인색하다고 쓴 적이 있다. 사람을 모으지 못해 정치에 맞는지 의문이라고 썼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다른 사람을 낙선시킬 순 있다. 윤석열이 안철수를 잡아야 하는 이유다. 28일 투표용지 인쇄에 들어간다. 오늘 윤석열이 안철수에게 전화를 걸었으면 한다. 직접 찾아가서 만나기 바란다. 어쩌면 안철수는 전화를 받지 않을지 모른다. 집에 없다며 문밖에 덩치 큰 윤석열을 세워 둘 수도 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실패 후 되풀이됐던 일이 또 반복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윤석열은 한밤중 안철수를 보쌈이라도 해 와서 정치개혁에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만드는 압도적 정권교체에 함께 나아가기 바란다. 이제는 제발 정치인이 국민들 마음 편하게 해줄 때도 되지 않았는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경제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덕분에 온 국민이 경제 공부 참 많이 한다. 일단 ‘기축통화국’이 뭔지 알게 됐다. 21일 TV토론에서 “우리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며칠 전 보도에 나왔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 이재명이 잘못 읽은 보도자료 한국은행의 온라인 경제용어사전은 기축통화를 ‘여러 국가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국제거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통화를 지칭한다’고 정의한다. 국제무역결제에 쓰이고, 환율평가 할 때 지표가 되며, 대외준비자산으로 보유되는 통화가 기축통화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곧 기축통화국이 될 것 같진 않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국제결제 시 사용하는 통화 비율이 미국 달러화(39.92%) 1위, 유로(36.56%)가 2위다. 영국의 파운드(6.3%) 3위이고 원화(0.2%)는 20위에도 들지 못했다. 이재명이 봤다는 보도는 1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낸 ‘원화의 기축통화 편입 추진 검토 필요’라는 제목의 자료였다. 제목만 딱 봐도 원화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편입되는 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 ● 틀려도 인정하지 않는 고집은 뭔가이쯤 되면 기축통화국에 대해선 잘못 알았다고 후퇴할 만하건만 이재명은 그러지 않았다. 23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축통화국 발언도 얘기해 달라”고 하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좀 길다. 참고 봐주시기 바란다). “그게 우리나라 국채비율이 너무 높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높다.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낮으니까 나온 논리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였어요. 예를 들면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도 (국채비율) 100% 넘는 나라가 훨씬 많고 그리고 그런 나라들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축통화국 얘기는 제가 하자고 한 게 아니고 전경련에서 그런 발표를 했고, IMF에서 특별인출권이라고 이게 기축통화냐 아니냐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데 거기서 SDR에 원화를 포함시키는 검토 이번에 합니다. 전경련에서 한 거고요.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으로 인정된 나라보다 국가신용등급이 훨씬 높고 예를 들면 외환 돈 빌릴 때 이자도 다른 나라 기축통화국보다 훨씬 낮아요. 국가신용 정도나 화폐 객관적 가치나 훨씬 높은 상태라서 기축통화국이 형식적으로 아니니까 부채비율이 더 낮아야 된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고요. 국가부채는 대외부채가 아닙니다. 국내 기관들이 사잖아요. 우리 국내에서 채권 채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국제평가에 해악될 정도로 심각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IMF가 오는 건 아니거든요. IMF는, 그때 당시 국채비율은 엄청나게 낮았습니다. 거의 없다시피 했죠. 그 당시하고 연결되면 안 된다 말씀드리고요. 기축통화국은 실제로 SDR 얘기 특별인출권 대상으로 검토 중이다, 라는 보도 확인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23일) 中유창하되 장황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독자들 실감하시라고 일부러 그대로 실었다). 그래서 그의 말만 들으면 사람들은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그게 뭐였더라…혼돈스러워지기 십상이다. 대장동이 그랬고, 기축통화국이 그렇다. 자칫하면 ‘경제 대통령’ 선전도 홀랑 넘어갈 공산이 크다. ● 전경련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헷갈리지 말기 바란다. 전경련이 ‘기축통화’를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기준’으로 판단한 건 맞다. 여기엔 달러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위안화가 들어간다. 전경련은 원화도 SDR에 ‘편입’되도록 ‘추진’할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희망’했을 뿐이지, 곧 기축통화국이 된다고 하지는 않았다. TV토론 후 논란이 커지자 전경련은 22일 입장문까지 냈다. “한국이 비(非)기축통화국의 지위로서 최근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고, 국제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으로 무역수지마저 적자가 지속될 수 있어 신용등급 하락 등에 따른 경제위기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원화의 SDR 편입을 희망한다는 메시지였던 것”이라고 분명히 설명했다. 그런데도 23일 이재명은 “기축통화국은 실제로 SDR 얘기 특별인출권 대상으로 ‘검토 중’이다, 라는 보도 확인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며 전경련을 거짓말쟁이처럼 만든 것이다. 방송만 들은 사람들은 이재명을 정말 유식한 ‘경제대통령’처럼 인식할 판이다. ● 벌지는 못할망정 나랏빚 늘리겠다니지겨운 기축통화국 얘기는 끝났다고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건 이재명이 이 논리를 국채발행 여력이 많다는 근거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TV토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재정건전성이 중요한 이슈인데 국채는 얼마든지 발행해도 된다는 뜻인지?” 물었다. 그러자 이재명은 “국채발행 비율이 다른 나라는 110%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50%가 안 된다. 이유는 국가가 가계소득지원을 거의 안했기 때문”이라며 “IMF나 국제기구들은 85%정도까지 유지하는 것이 적정하니 너무 낮게 유지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또 IMF가 그랬다, 안 그랬다며 논란을 벌이고 싶진 않다(그러지 않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 소득을 늘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대체 왜 나랏빚만 늘리려 드느냐는 것이다. 빚만 늘리고도 경제 대통령이라면, 성적을 떨어뜨려 빵점만 맞고도 우등생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나랏빚의 두려움우리에게는 나랏빚 트라우마가 있다. 1997년 ‘IMF 위기’라는 외환위기 이후 생긴 병이다. 이재명은 “국가채무 비율이 100%를 넘겨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외환위기는 단기채무가 과다한 상태에서 국가 및 금융기관의 신인도가 급격히 하락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당시는 채무비율이 11.4%여서 그나마 빠르게 극복했지만 국민은 금 모으기까지 하며 절감했던 나랏빚의 무서움을 잊지 못하고 있다. 진정 이재명은 ‘경제 대통령’이고 싶은가. ‘전환적 공정성장’이라는 공약은 좋다. 기회의 총량이 증가한 사회, 기대하겠다. 그러나 나랏빚은 꿈도 꾸지 말았으면 한다. 수내동 집에서 한우는 법카로 사서 먹었으면서 왜 미래세대에게는 빚부터 안길 작정이신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식 슬로건은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 대통령’이다. 마침 내일 열리는 TV토론 주제가 ‘코로나 시대의 경제 대책’과 ‘차기 정부 경제 정책 방향’. 이재명에게 내일 토론은 지지율을 만회할 절호의 찬스일 터다.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이재명은 뭘 물어도 청산유수다. 그래서 좀 미심쩍은 답을 들어도 그게 잘못된 답인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꽤 있다.‘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도 그렇다. 마치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세계은행이 내다본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이 4.1%다(선진국 3.8%, 신흥국 4.6%).● 좌파 정책으로 한국만 위기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전망을 보면 우리만 2.7%로 나쁘다. 영국 5.6%, 독일과 캐나다는 4.2%, 미국 3.8%, 일본도 3.0% 성장이 예상된다. 심지어 전쟁 날까 조마조마한 우크라이나도 4.1%로 우리보다 낫다. 그러니까 우리만 이 모양이라는 얘기다. 왜 그렇겠나. 최저임금 급진적 인상, 공공부문 급격한 확대, 노동시간 과격한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28차례의 미친 부동산정책…. 이 정도면 좌파 경제학자들이 30년 간 골방에서 외쳐온 정책들을 거의 다 실천한 거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재명이 소속된 바로 그 더불어민주당과 그 대통령 때문이다. 그래서 이재명이 ‘위기에 강한’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을 거다. ‘경제 대통령’이라고 작명도 했다. 하지만 따져보자. 그가 왜, 어떤 점에서 경제 대통령이란 말인가? ● 이재명의 최대치적 대장동 개발나라 경제를 망친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더 왼쪽의 해법을 내놓은 것도 참 독특하다. 소득주도성장 뺨치는 국가주도성장이다. 이재명은 ‘전환적 공정 성장’을 통해 ‘5.5.5. 공약(국력 세계 5위, 국민소득 5만 달러 및 코스피 5000)’을 이루겠다고 했다. 국가주도성장으로 성공한 사례로 이재명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든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뉴딜정책 아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살아났다는 게 정설이다. 그보다 진짜 이재명이 유능한지 알아보려면, 미래 공약보다는 이미 해놓은 일을 보는 게 빠를 터다. 그는 작년 9월 “대장동 개발은 지금도 제가 자랑하는 성남시장 시절 최대 치적”이라고 했다. “뚝심 있게 공공개발로 전환해 개발이익 5503억 원을 환수한 단군 이래 최대 규모 대표적 모범개발행정 사례”라는 것이다. 맞다! 대장동이다. ● 대장동 국감에서 유동규 잡아뗐던 이재명3일 첫 TV토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대장동 얘기를 꺼내자 이재명은 “제가 자청한 국감에서 탈탈 털다시피 검증했다”고 말했다. “시간 낭비하기보다 민생 경제얘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국감 때 모든 의혹이 다 해소된 줄 알았다. 아니었다. 뒤져보니, 10월 대장동 국정감사에서 이재명은 야권에서 요구한 관련 자료 200여 건 중 단 한 건도 제출하지 않았다. 측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에 대해서도 이재명은 “잘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국감 이후 얼마나 많은 사실이 새로 드러났는지 우리는 안다. 다만 세세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고 이재명은 3일 토론에서 “이미 검증 끝났다”고 또 국민을 속였던 거다. ● ‘대장동 모델’이 국가주도성장이다이재명이 대통령 된다면 ‘대장동 모델’이 결국 국가주도성장 정책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TV토론에서 윤석열도 말하지 않았던가. “대장동 개발로 김만배 등이 3억 5000만원을 투자해 6400억 원을 챙겼는데 이 후보는 ‘내가 설계했다’ ‘다시 (설계)하더라도 이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안철수도 말했다. “본질은 1조원 가까운 이익이 민간에게 갔다는 것”이라고. 심지어 심상정도 말했다. “이재명이 투기세력과 공범이냐, 아니면 활용당한 무능이냐.” 백만 번 양보해서, ‘대장동 개발’에 이재명 잘못은 한 개도 없다고 치자. 그럼에도 이재명이 주장하는 공공환수는 5503억 원이 아니라 1800억 원이라고 이재명 최대 치적을 ‘깎아서 볼’ 필요가 있다. 공원이나 터널은 공공환수한 돈에서 조성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시행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 법카로 소고기, 세금으로 퍼주기민주당은 19일 새벽 정부가 제출한 1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단독으로 기습 처리했다. 이재명의 ‘유능한 경제 대통령’ 캠페인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영업자·소상공인 320만 명에게 방역지원금 300만원 씩 지급해야 한다는 거다. 이재명은 추경 통과 뒤 페이스북에 “늦어서 죄송한다”며 “곧 추가로 더 하겠다”고 썼다. 이재명의 배우자 김혜경은 법카로 소고기, 초밥 등등을 사 먹었다. 이재명은 세금으로 국민에게 300만원 씩 뿌리려 한다. 그래서 경제가 나아지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경제 대통령’이라는 소리는 말기 바란다. 법카로 얼마나 재미났는지 몰라도, 퍼주기로 거덜 나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주로 야권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있다. 정권교체가 아니다. 후보 단일화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는 “완주한다고 계속 얘기해도 ‘단일화 꼬리표’만 붙이려 한다”며 13일 여론조사 경선을 국민의힘에 제안했다. 5자 구도로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선 선거 2주일 전 ‘중도·보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한 시민사회 원탁회의’까지 열렸다. 2012년 좌파인사들이 단일화를 강요했던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를 본뜬 모임이었다. 그렇게 ‘대선 단일화’ 역사를 파내려가다 나는 혼자 탄식을 하고 말았다. 후보 단일화는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 때마다 불거졌던 구조적 문제였던 것이다. 야권에선 후보가 여럿 나오니 표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를 위해선 제발 후보들께서 단일화해 달라고 유권자들이 애걸해야 한다. 그러나 1, 2위 후보끼리 한 번 더 겨루는 결선투표제만 있으면 국민은 ‘전략적 투표’로 속 썩일 필요가 없다. 후보들은 비생산적 논란으로 시간 낭비 않고 더 중요한 문제를 논할 수 있다. 프랑스를 비롯해 2014년 현재 대선 결선투표제를 둔 89개국이 그 증거다. 그렇다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던 1987년 개헌 때 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았는지 기이하지 않은가. 민주당 김영삼 총재, 김대중 고문은 곧 대통령이 된다는 생각에 세심한 고려를 못 한 것 같다. 개헌안을 논의한 7월 15일 의총에서도 결선투표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YS는 대통령 되는 게 급해선지 “대선을 빨리 앞당기자”고 했을 뿐이다. 민정당 개헌안에 결선투표제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전두환은 2017년 회고록에서 “김대중 씨를 사면복권했을 때 나는 이미 양 김씨의 동시 출마를 예상했고, 양 김씨가 동시 출마하면 노태우 후보에게 승산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썼다. ‘4자 필승론’은 DJ 아닌 전두환에게서 먼저 나왔던 거다. 여야가 각기 마련한 개헌안을 토대로 7월 31일∼8월 31일 ‘8일 정치회담’을 13차례나 가졌음에도 누구의 입에서도 결선투표제의 ‘결’자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 개헌안을 의결한 10월 12일 국회에서도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을 말한 의원이 없다는 점 역시 놀라운 일이다. 당시 신민당 이철승 의원이 “투표자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지 않아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소수의 의사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으로서 이는 다수의 저항과 도전에 부딪히게 된다”고 우려했으나 귀 기울이는 의원은 많지 않았다. 만일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1987년 13대 대통령은 노태우 아닌 YS가 당선됐을 것이라는 예측 결과가 있다. 2019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대통령선거의 결선투표제 도입에 있어 실시요건에 관한 연구’ 논문이다. 제도가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뒤늦게 깨닫고 1990년 결선투표제를 주장한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를 비롯해 야권과 정치학자들은 끊임없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2017년 대선 전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무리하게 단일화를 할 필요가 없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청와대발 개헌안에 결선투표제를 포함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그 개헌안은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강화시키고 사법부 독립을 무너뜨리는 등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어서 야 3당이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단일화 사슬’에서 풀려날 방법이 있다. 2017년 대선 전 결선투표제를 주장했던 안철수가 바로 결선투표제 개헌을 조건으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만 실현돼도 안철수가 요구하는 ‘더 좋은 정권교체, 즉 구체제 종식과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교체’는 가능해진다. 대통령의 대표성과 정통성, 통치의 안정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정당연합이나 정책공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군소 정당의 영향력이 커져 사회경제적 갈등 완화에도 도움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이렇게 안철수가 진정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된다면, 국민은 감동한다. 안철수는 새정치를 펼칠 수 있고, 그와 나라의 미래도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이 독을 품고 기다리는 여론조사 단일화만 고집하다 완주한다면, 안철수는 5년 후 또 출마해 단일화 요구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대선 TV토론은 ‘내 눈에 콩깍지’라고 한다. 애들 학교에서 단체 사진을 찍어도 내 눈엔 내 아이가 제일 예쁜 것과 마찬가지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제일 낫다’ 싶다. TV토론을 보고 지지 후보를 바꿨다는 유권자는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그래서 11일 TV토론 후보 인상 비평을 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일요일^^독자들도 재미 삼아 자신들의 시청 소감과 비교해주었으면 한다.● 이재명에게 ‘회피’는 생존본능인가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성남시장 재직 시절 성남산업진흥원 등 산하기관에 선거대책본부장 자녀가 들어간 것이 공정한가”를 묻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질문에 즉각 “사실이 아니다”며 넘어가려 했다.TV토론에선 시간이 부족해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선일보 1월 3일자에 따르면, 성남산업진흥원이 2011년에 뽑은 김 모씨의 아버지가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된 김인섭 씨다. 바로 어제 TV토론에서 이재명이 “패배한 (2006년 성남시장) 선대본부장이고 최근에 본 적이 없다”고 발뺌했던 바로 그 사람 말이다.윤석열의 부친이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의 누나에게 집을 팔았다고 이재명은 “국민의힘이 (대장동) 부정부패를 설계했다”고 주장했다. 성남시의 인허가권을 휘두르며 “측근 아니다”라던 유동규 등에게 천문학적 이익이 나게 설계해줬다는 의혹을 받는데다, 얼굴도 못 봤다는 측근의 자식들에게는 신의 직장 공공기관 일자리를 줬던 이재명이 어떻게 ‘유능’과 ‘공정’을 자부할 수 있는지 난 납득할 수 없다.● 윤석열의 ‘귀’를 잡은 자가 누구인가윤석열이 답변에 나서면 불안하다. 정치권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데다, 족집게 과외를 받았대도 말솜씨가 능란하진 않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가 중요하다. 윤석열은 참모만 잘 쓰면 된다는 듯 말했지만 누가 유능한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노동이사제 관련 말하는 걸 보면 참모진은 탁월한 것 같지가 않다.“강성 귀족노조가 청년 일자리를 막고 있는데 윤 후보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찬성하는 이유가 뭐냐”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질문에 윤석열은 “공공기관은 국민의 것이니까 정부가 임명한 간부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사가 돼 도덕적 해이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공공기관이 국민의 것? 자기들만의 것으로 아는 ‘철밥통’이 수두룩하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노조원 처우 개선, 고용보장 요구를 늘려 철밥통을 금밥통으로 만들고 청년취업 기회는 절멸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윤석열 자신이 공무원 출신이라 “공공기관 개혁 필요!” 외칠 수 없으신가? 그렇다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안철수는 작은 데 집착이 강하다안철수가 준비를 많이 한 티는 역력하다. 그러나 2차 토론에서 또 노동이사제와 연금개혁을 들고나온 건 패착이라고 본다. 같은 문제에 집착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그는 윤석열에게 “국민연금에는 출산율에 대한 가정이 들어있다”며 “(처음 연금을 설계할 때) 출산율이 어느 정도로 돼 있는지 아는지?” 물은 것도 쪼잔해 보인다. TV토론은 장학퀴즈가 아니다. 대통령 후보가 현재 출산율도 아니고 당시 출산율까지 외우고 있을 수도 없다.나는 연금개혁이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순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철수가 진정 연금개혁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어제 토론에선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위원회 설치’ 같은 원칙에만 합의하면 충분했다. 그런데 수급 연령, 대체율같은 문제를 꺼내다니…안철수는 연금개혁위원장을 맡아도 어렵겠다 싶다. 이미 답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갈등을 타협으로 이끌어 내겠나(13일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국민경선 제안도 쪼잔한 데 집착하지 않기 바란다).● 심상정은 주 4일제 행복한 나라에서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외치는 ‘복지국가’가 희망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선 도전도 벌써 네 번째다. 이제 심상정이 입을 열면 무슨 말을 할지, 말투까지 익숙하다. 그래선지 토론에서조차 다른 후보를 훈계하고 가르치려 드는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다.그는 선진국들이 모두 주4일제를 하고 있다며 윤석열에게 “주 4일제 하실 생각 없으세요?” 물었다. 윤석열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라고 답하자 심상정은 난데없이 “법을 전공한 분들이 왜 이렇게 진실되지 않은지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이 다 언론에서 말해 놓고, 행사 때 말해 놓고 나중에 말 바꾸고 그러면서 여기 와서 이렇게 우기는 게 정당합니까?”라고 야단을 쳤다.이런 식이면, 귀한 TV토론 시간을 4명의 후보자에게 똑같이 기계적 배분해서 유권자들이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안 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에선 지지율 15%이상 후보자만 TV토론 하도록 만들어 ‘양자토론’을 제도화하고 있는 거다.요것도 아나 모르나 보자 식의 유치한 질문, 1분 30초 안에 재치문답 식으로 답변하게 만드는 형식도 제발 검토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TV토론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작정인지, 차라리 거대담론을 말하고, 질문하고,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지금까지 이렇게 흠 없는 대선 후보는 없었다. 공약 탄탄하고, 기업과 정당을 경영해본 경험도 있다. 무엇보다 도덕성 결함이나 ‘가족 리스크’가 없다!그렇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다. 하지만 6일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안철수를 뽑겠다”는 응답은 10.1%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윤석열(41.7%), 더불어민주당 이재명(37%)에 한참 못 미친다는 얘기다. 안철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터다. 작년 11월 출마선언에서 밝힌 대로 ‘여당 후보는 부동산 부패카르텔의 범죄를 설계해서 천문학적인 부당이익을 나눠가지게 하고도 뻔뻔하게 거짓을 늘어놓고’ ‘야당 후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전근대적인 주술논란’을 벌였다. 그런데 흠 없는 촬스는 왜 지지율이 10%대에 불과하단 말인가.● 교만하고 인색한 장수는 쓰지 말라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그는 “제가 어떤 사람이고, 비전과 정책에 대해 말씀드리면 국민들이 인정해주실 것”이라고 했다. 국민은 안철수의 진가를 몰라서 지지율이 안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안잘알’(안철수를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부정적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정파 안 가리고 바른말 잘하는 것으로 이름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달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철수와 함께 했던 사람들 90%가 척지고 떠났다”고 했다. 대체 그 이유가 뭐냐 말이다. 제갈량은 병법서 ‘장원(將苑)’에서 절대 장수(將帥)로 쓰면 안 될 두 가지 품성을 교만함과 인색함, 즉 장교린(將驕恡)이라고 했다. 교만하면 무례를 범하게 되고, 무례를 범하면 인심이 떠난다. 인색하면 상을 주지 않게 되고, 상을 주지 않으면 부하들이 목숨 바쳐 싸우지 않는다는 거다.● 안철수도…교만하고 인색하다 “내 멘토는 300명”이라던 안철수의 멘트를 기억하는가. 서울시장 보선 출마설이 파다하던 2011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시절, 그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내 멘토라고 하는데 내 멘토는 김제동, 김여진 등 300명 정도”라고 건방을 떨어 윤여준, 김종인 등 그를 도우려던 노(老)정객들을 경악시켰다. 그때는 정치적 문법에 미숙해서였다고 치자. 출발부터 대선 후보급이기 때문일까. 안철수는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마땅하다는 ‘교만’을 왕관처럼 쓰고 사는 것 같다. 2016년 2월 안철수와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했던 이상돈 전 의원은 지난해 낸 회고록 ‘시대를 걷다’에서 안철수에 대해 “자기가 대통령이 된다는 집념 내지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썼다(바른미래당은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당선돼 4년 뒤 대선에 나가기 위해 만든 ‘1회용 플랫폼’이었고ㅠㅠ). 인색한 것도 사실로 봐야 한다.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까지 국민의당이 누구 돈으로 운영돼왔나요. 다 제 돈으로 했지”라고 말했지만 나중에 국고보조금이 들어오면 영수증 첨부해서 전부 돌려받는다는 점은 말하지 않았다. 안철수는 자기 돈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100원 단위까지 받아내 당내에선 혀를 내둘렀다는 게 국민의당 사람들의 전언이다. ● 내가 당선돼야 정권교체라고?이제 이해되지 않는가. 한때 안철수 곁에 있던 사람들이 왜 좋은 소리 않고 떠나갔는지. 정치는 사람이 따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안철수에게 세(勢)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사람은, 안철수는 발전을 한다는 거다. 나는 지난해 초 서울시장 선거 전 ‘도발’에다 안철수 부친이 “큰아이는 경선할 아이가 아냐”라고 했던 말을 인용하며 ‘안철수는 경선하지 않는다’고 썼다. 내가 틀렸다. 안철수는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을 제의했고, 경선했으며, 자신이 패배하자 오세훈 후보를 도와 국민의힘 승리에 기여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안철수는 자기가 당선돼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보다는, 지 알고 내 알고 모두가 아는 정권교체 방법이 존재한다. 바로 야권 후보 단일화다. 그래서 지금 지지율 10%대에 불과한 안철수에게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안철수를 껴안고 싶어 난리다. ● 안철수가 이재명과 단일화로 대통령 되면안철수는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끝까지 갈 것”이라며 “만약 단일화가 안 돼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 책임은 큰 정당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책임은 큰 정당인 국민의힘에 있다는 경고이자 협박이다. ‘10분 담판’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가 가능하다는 윤석열의 메시지가 안철수로선 무례하고 불쾌했을 것이다.윤석열이 안철수를 성나게 만든 건 실수였다. 안철수는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재명과의 ‘물밑 접촉설’을 부인하지 않은 바 있다. 이재명으로선 안철수를 윤석열과 단일화시키지 않는 게 최선이고, 차선이 자기와 단일화하는 것일 터! 이미 대통령 자리도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는 루머까지 나돈다(왜? 그쪽은 대선에서 지면 죽으니까!)‘나로 정권교체’ 하겠다고 안철수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돼서 할 수 있는 일은…거의 없다. 사람도 없고 세(勢 )도 없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책임총리 이재명’이 안철수를 청와대에 위리안치 시킨 채 170여석 민주당을 지휘해 이석기의 통진당 부활은 물론, 남북연합이나 고려연방제를 포함한 개헌까지 모든 일을 해버릴 수도 있다. ● 안철수가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게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따져보기 바란다. 설령 그런 일까지 벌어지진 않더라도, 생각을 해보면 알 것이다. 아무리 이재명이 자기가 당선돼도 “정권교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건 국민 55% 이상이 바라는 진정한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것을.“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거대 양당에 대한 신뢰가 바닥일 때 3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마크롱 모델’을 들먹이는 안철수가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게 있다. 프랑스에는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 바로 결선투표제다.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우리 국민도 당선 가능성을 따지는 ‘전략적 투표’ 없이 맘 편하게 원하는 후보를 찍을 수 있다. 안철수한테 단일화해달라고 10년 째 애걸할 것도 없다. 그래서 89개 국가에선 이미 이런 제도를 도입해놓고 있는 것이다. 젠장. ● ‘한국적 결선투표’의 길을 열어주시라그렇다면 이번에 안철수가 ‘살아있는 결선투표’로 진정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어주면 어떤가. 윤석열과의 진지한 협상을 통해 자신이 간절히 원해왔던 ‘새 정치’를 얻어내고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장렬하게 사퇴하는 것이다.윤석열도 교만한 ‘10분 담판’이 아니라 안철수와의 정치협상으로 진정한 정치교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암만 좋게 보려 해도 과학기술이나 미래 비전에 대한 윤석열의 식견은 한참 부족하다. 지지기반도 안철수를 통해 중도 쪽으로 넓혔으면 한다. 특히 당선 뒤 국정운영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안철수와 손잡는 외연 확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안철수에게도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당신은 아직 젊다. 호랑이띠. 이제 60세다. ‘10분 협상’이든 ‘당신들의 혁명’이든 국민을 감동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금껏 모이지 않던 사람들도 차츰 구름같이 모여들 것이다. 그렇게 교만과 인색에서 벗어나다보면, 5년도 잠깐이다. 대통령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대선 후보들의 첫 TV토론 후폭풍이 뜨겁다. 그중 하나가 3불(不) 문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 안 하며, 미국 주도 미사일방어체계 않는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對)중국방침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3불 정책’이 유지돼야 하느냐”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질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3불 정책은 아니고 3가지 한국 정부의 입장”이라며 “적정하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경제협력 관계 때문”이라고 답했다. 안철수는 “그럼 너무 굴욕적인 중국 사대주의 아닌가” 반문했다. ● 노영민 “국힘당 요즘 귀신 들렸나”여기서 끝났으면 문 대통령 ‘후계자’도 아닌 이재명은 차라리 좋았을 뻔했다. 4일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문 정권의 초대 주(駐)중국 대사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노영민이 ‘3불 폐지’ 즉 사드 추가 배치를 주장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느닷없이 비판하고 나선 거다. 그는 “2017년 10월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사드 추가 배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며 “그게 한미 간에 합의된 내용”이라고 했다. 심지어 노영민은 “요즘 국민의힘이 하는 말을 보면 귀신들린 것 같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문 정권이 아무리 ‘청와대 정부’라 해도 비서는 비서일 뿐이다.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토론에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노영민은 신임 주중 대사로 부임하자마자 “중국의 사드 반대를 이해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환추시보는 한국대사가 중국의 경제보복이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며 인용했고, 급기야 강경화 당시 외교장관이 “유사한 일이 재발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국회에서 사과를 하게 만든 전과가 있다.● 한중회담과 안보주권 바꿔먹은 그놈의 3불 노영민의 상관이었던 강경화가 국회 답변 형식을 통해 ‘3불’을 말한 것은 맞다. 그러나 ‘한미 간’ 합의임을 노영민이 확실히 알고 말하는지는 의문이다. 3불이란 2017년 5월 18일 문 대통령의 취임 특사로 방중했던 이해찬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으로부터 “양국 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하라”는 굴욕적 발언을 듣고서, 또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는 ‘보고자 자리’에 앉아 알현하는 굴욕을 겪고 돌아와서 애써 짜낸 해법이기 때문이다.문정인 외교특보에 따르면 ‘한-중 간’ 두 차례 비공식 접촉을 가진 다음에 2017년 10월 30일 강경화가 국회 답변을 통해 3불을 밝힌 것이다.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같은 날 강경화는 “조만간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한 소식을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도 빼먹지 않았다. 3불이란 국민의 생명과 안위가 걸린 안보 주권을 한-중 정상회담과 바꿔먹은 외교 참사였음을 기록에 남긴 셈이다. 게다가 강경화는 2020년 10월 2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3불에 대해 “합의가 아니라 협의”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3불에 구애받을 의무가 없다는 뜻이다. 2017년 10월 중국과 ‘그놈의 3불’ 협의를 주도했던 남관표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합의도, 약속도 한 적 없다”고 그해 주일 대사관 국감에서 밝히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야당이 “정부의 공식입장이냐” 묻자 강경화가 외교장관으로서 “남 대사가 잘 대답한 것”이라고 공식 입장임을 재확인해준 거였다.● 북한은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포기했다이 대목에서 “그럼 전쟁하자는 말이냐” 하지 말기 바란다. 좌파는 꼭 그런 소리를 해서 나라와 국민을 갈라치곤 한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그러나 모든 나라는 군대를 둔다. 전쟁을 원해서 군대를 두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은 1월에만 벌써 일곱 번이나 미사일 도발을 했다. 그럼에도 홍길동 정부도 아닌 문 정권은 “도발”이란 말도 못 한다. 문재인 ‘후계자’도 아닌 이재명은 5일도 “안보와 평화가 밥이고 경제”라며 윤석열을 비난했다. 5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하늘에서 파편이 비처럼 쏟아진다고 해서 ‘강철비’라고 불리는 KN-24형 미사일 도발 직후인 1월 19일, 북한은 “국가의 존엄과 국권, 국익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 없이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과업들 재포치”를 선언했다. 2018년 4월 북한이 정했던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모라토리엄 선언을 포기한다는 소리다. 머리 위로 북핵이 이고 앉아서도 얌전히 머리 조아리며 우리는 사드 추가 배치 안 해요, 한미일 군사협력 안 해요, 미국과 미사일 협력 안 해요…그런 대통령을 당신은 진정 원하는가? ● 이재명의 안보 공약은 믿을 수 없다동북아시아를 연구하는 순수 민간 독립 싱크탱크 NEAR재단은 2021년 11월 발간한 ‘외교의 부활’에서 3불에 대해 “주권 포기 행위”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MD를 본토 및 동맹국에 대한 핵 위협에 대비하는 핵심 기제로 발전시키고 있다”며 미사일 방어 상호 운용성 강화는 기술 발달에 따라 거부할 수 없는 협력 방향이라고 했다. 이재명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이 책은 “한국이 개발 중에 있는 L-SAM(장거리요격)미사일이 서로 따로 작동하면 북한의 핵공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그가 TV토론에서 “사드에 버금가는 L-SAM미사일 조기개발”을 밝힌 것을 미리 안 것처럼 말이다. 순수 민간 독립 전문가들의 말을 믿는다면, 이 책은 또 사드 추가 배치 역시 우리 국방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치외법권 지역인 주한 미군기지에 미국이 그들의 국방전략계획에 따라 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싶다. 미국 소고기 먹으면 당장 광우병 걸릴 듯 시위하던 좌파의 광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놈의 3불을 수호하고 싶은 정치인들은 정말 미안하지만 중국에 가서 살아줬으면 한다. 이 나라에선 자유와 민주와 인권을 수호하는 대통령 뽑아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엔 이재명 대선 후보의 새해 인사가 맨 앞에 올라가 있다. 선거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명은 이순신 장군처럼 한밤중에 홀로 앉아 국민들께 편지를 쓴다. 잔잔하고도 감동적인 음악과 함께 그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첫마디가 하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었다. ‘존경하는’이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이 말은 이재명이 작년 12월 7일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말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할 때 썼던 수식어다. 그는 “표 얻으려고 존경하는 척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데 전혀 아니다”라며 펄쩍 뛰었다. 선거대책위원회에선 “‘존경하는’이란 단순한 수사(修辭)”라는 해명까지 내놨다. 나는 이재명의 가장 큰 잘못이 이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의 ‘욕설 녹취록’도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10년 전 발언이다. 최근 다시 공개된 뒤 재차 사과도 했다. 그러나 ‘존경하는’이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는 말은 차원이 다르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상투적으로 ‘존경하는 의원님’ 하고 붙이는지 몰라도, 일반인은 그렇지 않다. 존경(尊敬)이라는 단어는 선생님이나 은사님한테, 그것도 가려가며 쓴다. 그 말을 이재명은 농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그의 공약은 물론이고 이재명의 어떤 말도 믿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재명의 위기도 이 발언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진짜인 줄 알더라”는 발언을 한 시기 이재명의 지지율은 36%,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35%였다(갤럽 여론조사). 윤석열은 당 내분 사태로 1월 초 지지율 26%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 11월 초 대선 후보로 선출된 다음엔 컨벤션 효과에 힘입어 42%까지 치솟은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재명은 40% 이상 올라가 본 적 없이 30%대 지지율에 갇힌 상태다. 설 연휴 직전 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윤석열은 35% 동률이었다. 1주 전에 비해 이재명은 1%포인트, 윤석열은 2%포인트 오른 수치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지난달 29일 조사한 결과에선 윤석열 43.5%, 이재명 38.1%였다. 윤석열이 상승세를 타는 반면 이재명은 정체 내지 하락세인 상황이다. 박스권의 지지율이 답답했던지 이재명은 지난달 2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의도 정치를 확 바꾸겠다. 앞으로 일체의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효력은 2시간도 가지 않았다. 경기 고양시 문화광장 즉석연설에서 “리더가 주어진 권한으로 술이나 마시고 자기 측근이나 챙기고… 환관 내시들이 장난치고… 이런 나라가 어떻게 됐나”라며 국민의힘 윤석열을 향해 네거티브를 날린 거다. ‘네거티브 안 한다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는 식으로 유권자를 우롱한 꼴이다. 자기 말 뒤집기는 차라리 약과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을 놓고서는 국민의 속이 뒤집힐 판이다. 이재명의 첫 대응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 공익환수 사업”이었다. 2일 CBS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양자토론에서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는 “대장동은 (이 후보가) 책임자로 있을 때 일이다. 국가 지도자가 신뢰를 줄 수 있으려면 (대장동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것을 해줬으면 어떨까 한다”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재명은 답변을 피했다. 김동연이 ‘지도자의 신뢰 문제’라고 강조했음에도 이재명이 답하지 않는 건 기이한 일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 공자는 국가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백성의 신뢰라고 했다. 단군 이래 최대 비리 사건이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가 불투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외교안보 문제를 놓고 국제무대에서 오락가락한다면 국가 위신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 안보가 위태로워질 우려가 있다. TV토론에서 이재명 캠프의 전략은 ‘유능한 경제 대통령’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이재명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싶다. 다만 눈물로 호소하진 말기 바란다. 지난달 25일 그는 “(전날) 울었더니 속이 시원하다”며 “더 이상 울거나 그러지 않겠다”고 말해버렸다. 만일 또 운다면 자기 말을 또 뒤집는 것이고 그 눈물조차 거짓처럼 보일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대선이 5년 만에 열리다보니 다들 잊은 모양이다. 5년 전 대선주자 5명이 전부 참가한 TV토론이 얼마나 중구난방이었는지. 오죽하면 2017년 4월 14일 동아일보 1면 제목이 ‘5명 뒤엉켜 난타전’이고 부제목이 ‘양자 끝장토론 필요성 제기돼’였겠나.2012년 TV토론도 여당 박근혜, 야당 문재인, 그리고 지금은 해산된 통진당 이정희까지 달랑 3명이 나왔음에도 전혀 알차지 못했다. 이정희는 주제가 바뀔 때마다 첫마디로 박근혜를 공격하며 토론을 방해했다. “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는 전설적 어록까지 남겼다. 다음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이 ‘겉핥기… 동문서답… 한계 드러낸 3자토론’이다. 새누리당은 1차 TV토론 뒤 TV토론 참가자격을 지지율 15% 이상인 후보자로 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미국의 기준도 그렇다. 그래서 양자토론이 이뤄진다. 당시 이정희의 지지율은 0.6%였다. ●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양자토론이다법원이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간 양자 TV토론을 열면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지상파 3사를 상대로 각각 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거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대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공식 TV토론을 3번 개최하게 돼 있다. 초청 자격은 소속 의원이 5석 이상인 정당의 후보,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3% 이상 득표한 정당의 후보, 선거 기간 개시일 30일 전 여론조사에서 5%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후보자다. 하지만 이번에 양당이 추진했던 양자토론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의 공식 TV토론이 아니었다. 공직선거법 제82조는 언론기관이 초청할 경우 양자가 합의만 하면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고, 보도할 수 있음을 명시해 놨다. 공정보도만 하면, 법적으로 모든 언론기관이 대선일까지 횟수 제한 없이 양자 끝장토론을 자유롭게 개최할 수 있다. 그걸 안철수, 심상정이 못하게 막은 것이다. 이번에!! ● 미안하지만 심상정 이번엔 아니다생각해보시라. 유권자는 설 전에, 적어도 설 연휴에 이재명-윤석열, 또는 윤석열-이재명이 대선 공약을 놓고 치열하게 겨루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애초에 양자토론을 하자고 했던 것도 이재명의 제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여기에 안철수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은 불쾌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양당구도를 깨고싶은 그로선 절박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심상정은 용서하기도, 납득하기도 어렵다. 뉴스핌이 여론조사 기관 코리아정보리서치에 의뢰해 23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심상정 지지율은 허경영(5.6%)보다 낮은 3.1%였다(윤석열 42.4%, 이재명 35.6%, 안철수 8.8%). 당선가능성이 있다고 전혀 볼 수 없다. 게다가 심상정의 포부는 2017년 대선에서도 들었다. 2012년엔 심지어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 스스로 사퇴했다. “야권 대표주자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교체의 열망을 모아내자”며. 그래놓고 이번엔 양자토론을 듣고 싶은 유권자 열망을 막는단 말인가?● 유권자 중심으로 양자토론을!법원은 ‘방송국 재량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판단했지만 TV토론까지 간섭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모르겠다. 다수 후보자가 참여하는 TV토론이 벌어졌기에 내용도, 토론형식도 기계적 공정성과 형평성 유지에 초점이 맞춰졌고, 토론이 실질적 논쟁이 되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지적됐으며, 참여기준도 군소 후보자의 형평성 논란에서 시작해 지지율이 낮은 후보와 당선권에 있는 후보가 같은 수준에서 참여시키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타당하느냐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게 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에서 나온 얘기다(논문을 옮겼기에 이렇게 딱딱하답니다).미국은 선거방송토론 관련 법 규정이 없다. 1988년부터 비영리 민간법인인 대통령토론위원회(Commission on the Presidential Debates·CPD)가 주관해 토론 초청 후보자 기준으로 15% 이상 지지율 규정을 만들었을 뿐이다. 제3당 후보를 배제한다는 비판이 있으나 이젠 관행이어서 그러려니 한다. 2015년 선거방송토론위는 ‘유권자 중심의 TV토론 법·제도 연구’ 연구용역을 맡긴 바 있다. 정당이나 후보자 아닌 ‘유권자’를 중심으로 본다면, 답은 분명하다. 유권자는 적어도 지지율 15%이상 되는 후보자 간의 양자토론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도 빡쎈 토론을! 여럿이 나오는 공식 TV토론은 3회가 기다리고 있다. 안철수, 심상정은 그때 참가하면 된다. 이번엔 제발 참으시기 바란다. 유권자는 양자토론도 볼 권리가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청와대가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중동 해외 순방(15~22일)을 마친 뒤 금주 중으로 신년기자회견 일정을 계획했다”며 “그러나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된 현 상황에서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설 연휴가 끝나봤자 2월 3일이다. 그런데 박수현은 “설 연휴가 끝나면 바로 2월 15일부터 대통령 공직선거운동이 시작된다”고 납득 못할 소리를 했다. 2월 3일 다음이 15일이라니, 그의 눈앞에 달력을 들이대 주고 싶다. 박수현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해주시는 언론인 여러분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가 여의치 않게 된 점이 매우 아쉽다는 말씀드린다”고 했지만 그게 아닌 듯했다. 쉽게 말해 대통령은 기자회견하기 싫은 것이다. ● 기자들이 오미크론 우세종인가문 대통령이 오미크론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신년회견을 취소한다는 것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15일 무려 6박8일간 중동 3개국 순방길에 나설 때 이미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우려되는 만큼 국무총리 중심으로 방역 상황을 잘 챙기라”고 환송 나온 유영민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국민에게도 방역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었다. 그렇게 우려스러웠다면 중동순방을 떠나지 말고 청와대를 지켰어야 했다. 순방은 순방대로 다 하고 와서는 뒤늦게 오미크론 대응을 하겠다며 기자회견까지 취소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자들이 무슨 오미크론 변이 우세종 대마왕이라도 된단 말인가.게다가 문 대통령은 박수현을 통해 24일 “총리가 중심이 돼 범정부적으로 총력 대응해 새로운 방역 치료체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시까지 내렸다. 그럼 됐지 무슨 대응을 더 집중한다고 신년회견까지 취소한단 말인가. 임기 마지막 신년회견에서 나올 질문이 그렇게 겁나고 두려우신가. ● 선거관리위원회가 일어섰다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사표 반려로 위원직을 유지했던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2900여명의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떠밀려 재차 사표를 내고, 중동 순방 중인 대통령이 해외에서 사표를 수리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바로 며칠 전에 벌어진 것이다. 나는 3년 전 ‘김순덕의 도발’ 첫 회 ‘독재자 감별법을 아십니까’에서 문 대통령이 대선캠프 특보 출신인 조해주를 인사 청문회도 없이 임명 강행한 것을 독재자 조짐으로 소개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3년 간 그는 선관위가 불공정하다는 오명을 얻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히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1963년 선관위 설립 이래 전 직원이 조해주의 사퇴를 촉구하는 유례없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선관위는 살아있었던 것이다!이번 신년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든, 문 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설명과 사과 요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자폭을 해야 마땅하다. 그 기회를 청와대가 신년회견 취소로 원천봉쇄하고 만 것이다. ●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들 기자회견이 별것 아닌 듯해도...기자는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이다. 문 대통령에게 날카롭게, 때로는 가슴이 철렁해지게 물어야 한다. 저널리즘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대통령도, 우파도, 좌파도 아닌 ‘시민’이기 때문이다. “60년 만에 처음으로 선관위 전 직원들이 조해주 재임명에 반대했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통령님께서는 국민 앞에 사과하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기자들이, 국민들이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을 독자들이 여기 아래 댓글로 달아주면 어떨까 싶다. 청와대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신년회견을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싶도록.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기자 생활하면서 특종 한번 못했던 나는 일요일 밤 MBC를 보면서 가슴을 쳤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해 궁금했던 내용이 ‘스트레이트’에서 줄줄 쏟아지고 있었다. 저 인터뷰를 내가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윤석열은 “집사람이 정치할 거면 가정법원 가서 도장 찍고 하라고 했다”고 했었다. 김건희가 걸걸한 목소리로 “권력이라는 게 무섭다”면서 정치적 분석과 판단을 술술 하는 걸 보니 그는 권력을 모르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안다. 이른바 공영방송인 MBC가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 기자로부터 통화 녹음 파일을 건네받아 내보냈다는 걸. 맨 처음 소속 매체와 기자 이름을 밝혔다지만 누나, 동생 하면서 척척 오가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과연 보도될 걸 알면서 저럴 수 있나 싶으면서 김건희의 담대함에, 기자의 수완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말 김건희가 눈을 내리깔고 ‘거짓 이력’을 사과할 때의 모습은 방송 속의 원더우먼 같은 목소리와 딴판이었다. 그래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연기(演技)의 중요성을 말했을 거다. MZ세대에선 ‘걸크래시’ ‘김건희에 반했다’ 같은 반응이 나오면서 심지어 후보 교체를 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터져 나왔다. 윤석열을 김건희로 바꿔야 한다는 거다! 방송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사적(私的)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이라며 방송금지 가처분신청까지 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배우자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는 비판과 감시 대상이라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공교롭게도 19일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제정한 언론윤리헌장이 선포됐다. 반론권 보장 등의 측면에서 이들 방송은 언론윤리 위배 소지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이번 방송으로 김건희 인기가 되레 올라갔다며 MBC가 야당을 도와줬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미안하지만 국민의힘이 만세 부를 때가 아니다. 방송엔 안 나왔지만 “내가 정권을 잡으면 가만 안 둘 것”이라는 김건희 발언은 섬뜩하다. 법원의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문이 유출되는 바람에 상당수 국민들이 알게 된 발언이다. 어떻게 ‘영적인’ 김건희가 언론윤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기자를 몰라보고 이런 말을 함부로 했는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아무리 보도되지 않을 줄 알고 발언했다고 해도 유력 대선 후보의 부인이면, ‘내 남편이’도 아니고, ‘국민의힘’도 아니고, “내가 정권을 잡으면 가만 안 둘 것”이라는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선 안 될 말이다. 정권은 대통령 부인이 잡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부인이 누구를 가만 안 두겠다는 것인가. 자기를 비판한 언론을 잡아넣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검경이 알아서 잡아넣는 국가가 된다는 의미인가. 그런 나라로 가자고 정권교체를 할 순 없다. 지금 문재인 정권과 지배 세력만 교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18일 장영하 변호사가 공개한 음성파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형 이재선 씨가 “너 마누라 혜경궁 홍씨가 체어맨 타고 다녔다며…공무원이냐” “너 마누라가 댓글 쓴다고”라는 대목이 있다. 그 유명했던 트위터 계정 ‘혜경궁 김씨’의 소유주가 이재명의 부인 김혜경 씨임을 시사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혜경궁 김씨보다는 김건희가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 안주인이 누가 되더라도 국민은 불안할 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윤석열이 집권할 경우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청와대정부’ 출신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청와대에는 많은 인력과 세금으로 영부인 활동을 지원한다”며 윤석열 방침이 잘못됐다고 말했으나 그렇지 않다. 전두환도, 노태우도, 노무현도, 역대 대통령들의 부패는 부인과 처가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사코 청와대 내부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을 두지 않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차기 대통령은 반드시 특별감찰관부터 임명하되 그것도 여성으로 임명해 대통령 부인부터 밀착 감시했으면 한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보다 똑똑하다던 힐러리도 대통령 부인 때는 넘치도록 비판받았다. 선출되지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정치에 적극적인 대통령 부인은 미국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내조로 충분하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선거 때 무슨 말을 못 하겠느냐.” 이 말이 또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의 13일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공약 발표장에서다. 문재인 정부 정책과 딴판이라는 지적이 안 나올 수 없다. 작년 말 재건축·재개발 신속 추진을 공약한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과도 비교됐다. 기자들 지적에 이재명은 “정책엔 저작권이 없고 결국 실천이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고?“국민의힘은 과거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대통령 되신 분께서 ‘선거 때 무슨 말을 못 하느냐’는 말과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께서 ‘선거 때 한 약속 다 지키면 망한다’는 말을 했다. 국민의힘이 지금까지 그렇게 국민들을 속여 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책공약을 잘 안 믿는 경향이 있다.”이 말만 들으면, 국민의힘은 ‘아무 말 대잔치’나 벌이는 당 같다. 그래서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대통령 되신 분’이 이명박 전 대통령인 건 맞다. 하지만 전후맥락이 중요하다. 이명박이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당선인에 대해 한 말이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미국 방문 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관해 오바마가 자동차 분야를 놓고 반대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명박은 말했다.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자동차 노조의 절대적 지지로 당선됐는데…선거 때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 문 대통령 선거공약 다 지키다 망해 “선거 때 한 약속 다 지키면 망한다”는 말도 이재명이 할 말은 못 된다. 2018년 1월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성태가 문 정권을 비판하며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16.4%나 인상해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김성태의 비판에 방송 진행자가 “최저임금 1만원은 홍준표의 공약”이라고 꼬집었다. 그러자 김성태는 말했던 거다. “대선 공약대로 실천하면 나라는 망한다고 그러잖아요.”이재명의 ‘탈모 공약’도 700억 원 정도로 예상한다지만 진짜가 되면 달라진다.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던 탈모인들이 돌연 나도 약 먹겠다고 나서면 1조원도 모자란다. 비만인은 또 가만있을쏘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선거는 선수끼리 국민 속이기”선거와 공약(空約)에 대해 꼭 말하고 싶다면 불후의 명언이 있다. 말로써 화끈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다. 2006년 2월 “선거는 선수들끼리 국민 속이는 게임”이라고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권 심판론이 무성한 때였다. 노무현은 “선거라는 게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비실비실 웃으면서 나가서 시비하고, 선수들끼리 알면서도 부분적으로 국민을 속이는 게임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말했다. 후보의 진정성과 공약을 믿었던 유권자에게 이건 거의 배신이었다! 안타깝게도 이재명은 이 명언에 들어맞을 말을 자기 입으로 해버렸다.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말하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고 스스로 밝힌 사람이 바로 그였다. ● 앞으로 어떤 공약도 믿을수 없다차라리 가만있었으면, 그의 말대로 국민의 집단지성이 알아서 새겨들었을 거다. 그러나 굳이 아니라고 외치는 바람에 이재명의 얕고도 얍삽한 두뇌회로가 드러나고 말았다. 심지어 선대위에선 ‘존경하는’이란 정치인들이 크게 싸운 상대에 대해 통상적으로 붙이는 단순한 수사(修辭)라고 말도 안 되는 해명을 내놨다. 그렇게 치면 ‘존경하는’만 단순한 수사일 것이냐. ‘공약하는’ ‘철회하는’도 단순한 수사일 수 있다. 작년 10월 29일부터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장하더니 정부여당까지 반대하자 11월 18일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철회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철회한 적 없다. 철회가 아니고 기본적 원리를 말한 것”(12월 7일)이라고 했다가 올 들어선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원하는 지원은 전국민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의 소비쿠폰”이라고 또 말을 바꿨다. 이쯤 되면 이재명의 새 캐치프레이즈 ‘앞으로 제대로’도 못 믿는다. “앞으로 제대로, 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안다”는 소리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아들은 남이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안다” “규제 완화라고 공약했더니 진짜인줄 안다” 소리가 줄줄이 이어질 수도 있다.● ‘나를 위해’라니, 대통령이 애인이냐 ‘나를 위해, 이재명’ 슬로건은 차원을 달리한다. MZ세대를 겨냥했다지만 남친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대통령후보가 ‘나를 위해’라니, 간지럽다 못해 심각해진다. 아파트 동대표 선거 때도 “우리 아파트를 위해”라고 하지 “나를 위해”라고는 안 한다. 대통령이 나만을 위한다면, 그럼 내 옆집은 외면할 건가.그 합리적인 독일인들을 나치가 사로잡은 것은 거창한 독트린이 아니었다. “히틀러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줬다”는 것이 ‘비극의 불가피성; 헨리 키신저와 그의 세계’를 쓴 배리 그웬의 통찰이다. 무책임한 국민은 나치도, 공산당도 투표로 선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국민이 지금 여기, 대한민국이어야 하는가.정치(politics)의 어원이 그리스어 폴리스(polis·도시국가)다. 폴리틱스는 폴리스로 간 자유인들이 폴리테이아(politeia·公的영역) 즉 공화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일이라고 함재봉은 최근 저서 ‘정치란 무엇인가?’에 썼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면 “나를 위해” 같은 유혹적 언사 말고, 사적(私的) 이기심을 자극하는 간사한 약속 말고, 최소한 공선사후(公先私後) 바라건대는 시대적 흐름과 세계를 파악하며 큰 그림과 국익을 말해야만 한다. 우씨, 아무리 선거가 선수끼리 국민 속이는 게임이래도 말이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만약, 북한이 휴전선 가까이 북한군 10만 명을 집결시켰다고 가상해보자. 그리고는 미국에 ①대북 적대행위 중단 ②남한에 군사기지 건설 중단 ③사드 등 미사일 배치 중지 ④핵우산 제공 금지를 요구하며 거부할 경우 쳐들어온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일이 지금 우크라이나를 놓고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러시아군 10만 명을 집결시키고는 작년 12월 15일 미국과의 협정문 초안을 일방적으로 작성해 보냈다. ①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진 중단 ②구 소련국가와 군사협력 금지 ③미사일, 전략폭력기와 군함 배치 중지 ④미국 밖 모든 핵무기 철수 등을 요구하며 침공불사를 밝힌 거다.도저히 받지 못할 푸틴의 협박문도대체 말이 되는 내용인가. 협상을 위한 문안이 아니라 파투를 내려는 협박문이다. 나토 동진 중단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다는 소리다. 미국과의 군사협력 금지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미국은 지원군을 보내지 말란 얘기다. 그러고 보면 소름이 돋는 내용이다. 러시아 근처에 미군 전략폭격기나 군함을 배치 못하게 만들면, 유럽은 물론 한국에도 전략자산을 배치 못하게 된다. 미국 밖 모든 핵무기를 철수하라는 건 미국이 동맹국을 방어하는 핵우산 시스템 자체를 깨버리겠다는 의미다. 러시아의 최후통첩을 미국이 받아들인다면, 그게 더 끔찍해질 판이다. 다행히 10일(현지 시간) 스위스에서 열린 전략안정대화(SSD)에서 미국은 러시아에 “주권과 영토 보전, 주권국가가 동맹을 선택할 자유에 대한 미국의 결의를 강조했다”고 밝혔다(이 대화에 우크라이나는 끼지도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실제상황이다. 푸틴은 핵·미사일 위협까진 안 했다북한은 5일과 11일 극초음속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다. 북한 미사일 도발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우리도 무감각해진 듯하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다. 마하 10, 최대 음속의 10배의 극초음속미사일로 서울까지 1분, 한반도 전역을 3분이면 핵탄두로 타격할 수 있다. 한미 미사일 방어체계로 요격도 불가능하다. 북이 ‘최종시험’이라고 밝혔으니 실전배치도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11일 청와대는 “종전선언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고 했다. 작년 10월 북한이 ‘종전선언 논의를 위한 만남’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던 것이 ①적대행위 금지, 즉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이었다. 종전선언을 하면 북이 밤낮 주장하는 ②③④은 당연히 따라온다. 11일 우리 땅에선 도입된 지 36년 넘은 공군의 F-5E 전투기가 추락해 조종사가 목숨을 잃었다. 북은 핵탄두를 실어 한반도 전역을 타격할 신무기 개발에 여념이 없는데 문 정권은 우리만 무장해제하겠다며 미국에다 북한 요구를 받으라고 성화를 부리는 형국이다. 제국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우크라이나힘없는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국제질서다. 우리나라가 그랬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도 세 번이나 강대국에 분할돼 사라졌던 역사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우크라이나는 지도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라다. 9세기 동슬라브 민족 최초의 봉건국가인 ‘키예프 루시’가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1240년 몽골에 망한 뒤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번갈아 흡수됐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된 건 1921년이었다. 마침내 1991년, 70년 만에 소련이 해체됐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했다. 지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 옛날 소련 국가들을 다시 러시아 세력권으로 두고 싶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도시들의 어머니’ 키예프가 있는 우크라이나를! 어찌 보면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제국의 역사라 할 수 있다. 1900년 유럽 지도만 봐도 국가라는 것이 많지 않다. 정복과 통합의 DNA가 있는 유럽 제국들은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를 가로막자 아시아의 부와 이윤을 찾아나서 식민지 경쟁을 벌였다. 2차 세계대전 뒤, 그리고 1991년 소련 붕괴 뒤 민족국가들이 대거 탄생했지만(현재 국제 승인을 받은 주권국가는 195개) 오래도록 살아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 성공지금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국가는 모두 제국의 역사를 지닌 나라들이다. 러시아가 그렇고, 중국이 그러하며, 과거 페르시아라고 불렸던 이란도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이들 나라와 무관하지 않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 꼭대기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이란은 핵·미사일 협력으로 북한과 내밀한 관계다. 그러고도 제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살아남은 게 용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당대 최고 제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를 때 발전했다. 조선은 14세기 말 당대 최고의 경제체제와 이에 상응하는 정치, 사회체제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한 명나라 문명을 받아들여 200년 간 번성할 수 있었다고 함재봉은 역저 ‘한국사람 만들기1’에서 분석했다.그러나 17세기 초 명-청 교체기, 망해버린 명나라 주자성리학을 붙들고 쇄국을 고집하다 조선은 국권을 잃었다. 해방 후 주권국가로 거듭난 대한민국은 미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랐기에 오늘 같은 발전이 가능했다. 북한처럼 소련과 중국의 길을 따르지 않았던 ‘건국의 아버지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거꾸로 간 문, 이재명은 한술 더 뜬다중국과 ‘공동운명체’라며 한사코 따르는 문 정권은 400년 전 이미 망한 명나라를 좇는 위정척사파를 연상케 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중국에 ‘사드 3불’(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망,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을 천명함으로써 총 한번 맞지 않고 군사주권을 내주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정권교체’를 강조하는 집권당 대선 후보 이재명도 외교안보에선 문 정권과 다르지 않다. 종전선언 찬성은 물론이고 전시작전권 전환을 놓고도 “주권의 핵심을 (타국에) 맡겨놨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했다미안하지만 말 잘하는 이재명은 틀렸다.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할 때 모델로 삼은 것이 나토의 군사지휘체계다. 나토 역시 미4성 장군이 ‘유럽동맹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지휘한다. “그냥 환수하면 되지 무슨 검증이 필요한가”라는 말까지 한 걸 보면, 안보와 국제정치의 엄중함을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체결했던 통화스와프 계약이 2021년 12월 31일 종료됐다. 5일 새해 첫 북한 미사일 도발 뒤 일본과 통화하며 방위약속을 재확인했던 미국은 그러나 한국과 통화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손떼라는 북의 최후통첩을 미국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안팎에서 번지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대선 두 달 전 야당 후보 캠프의 핵심 참모들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눈물을 머금고 퇴진했다. 대선 한 달 전엔 말(言)로 표를 깎아 먹는다고 공격받던 당 대표까지 전격 사퇴했다. 하지만 연기(演技)에 불과했다. 이후 대선 토론회 등을 할 때도 핵심 측근이 실권을 행사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대선이 끝난 뒤 “후보와 직접 연결된 ‘내부서클’이 선거를 이끌어 선대위 공식 조직이 제 기능을 못 하고 패했다”는 데 당 주요 인사의 60.5%가 동의했다고 대선평가위원회는 밝혔다. ‘친노 패권주의’ 딱지를 못 떼고 있던 2012년 민주통합당 얘기다. 어제 국민의힘 선대위 해체가 연기라고 보고 싶지는 않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저와 가까운 분들이 선대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국민들의 우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선대위에서 빠졌다는 ‘윤핵관(윤석열측 핵심 관계자)’에 대해 “지금도 직책도 없는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앞으로 그런 걱정 끼치지 않겠다”는 윤석열 말이 진심이라고 믿고 싶다. 사실 ‘측근 정치’와 ‘연기’는 문재인 정권의 속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도 선대위에 속해 있지 않은 비선 라인이 존재했다.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광흥창팀의 13인 중 양정철, 윤건영은 2012년 퇴진했다던 핵심 9인 중 2인이었다. 2012년과 차이가 있다면 더불어민주당에선 친문 아닌 계파가 모조리 탈당하는 바람에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광흥창팀은 대선 승리 후 대거 청와대 1기 참모진으로 들어가 ‘청와대정부’가 됐다. 대통령 보좌조직이 내각과 집권당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민주정부의 퇴행이다. 86그룹 운동권 출신에 이념으로 뭉친 그들은 삼권분립까지 뒤흔들며 이 나라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몰아갔다. 이 광흥창팀 가운데 탁현민이 있다. 대선 사흘 전 사전투표 25%를 넘기면 문 후보와 프리허그를 하는 불법 선거운동 연기를 기획하는 등 탁월한 연출력을 발휘했다. 문 대통령의 연기 중독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를 나갔던 그를 못 잊고 불러들일 만큼 탁현민의 연출력에 매혹된 모습이었다. 임기 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나드는 데는 대통령의 ‘쇼통’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김종인이 윤석열에게 “우리가 해달라는 대로 연기만 잘하면 선거는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충정에서였을지 모른다. 성공한 정치인은 현란한 연기력과 말솜씨, 강심장 아래 그들만의 신념과 이기심, 때로는 큰 뜻을 감추고 있다. 이걸 알아챌 수 있는 날카로운 눈을 모든 유권자가 갖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측근 정치가 좋은 정치라고 할 순 없다. 특히 후보 중심의 선거캠프는 국익과 공익을 추구하기보다 선거 승리를 지상과제로 삼는 조직이다. 집권 후엔 나라가 사유재산이나 되는 것처럼 논공행상을 요구한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지만 전임 대통령의 탄핵도 비선 실세와 그로 인한 국정의 사유화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기를 쓰고 ‘윤핵관 제거’를 요구했던 이유가. 아직도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여론이 절반을 넘는다. 그럼에도 제1야당이 당내 분란에 파묻혀 정권교체에 실패한다면 국민에게 죄를 짓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은 좋은 정부란 사회의 당면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부라고 했다. 눈앞의 어려움과 한계, 우발적 상황 등을 파악해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 정치가라는 말도 남겼다. 어제 북한이 동해상에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을 자행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남북 대화 노력을 이어가겠다며 임기 끝까지 종전선언을 추진할 태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역시 “최대한 빨리 종전선언을 하는 게 좋다”며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윤석열을 겨냥해 “친일을 넘어선 반역행위”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자식도 남”이라고 연기하듯 말하는 이재명을 대통령선거에서 이기려면 윤석열은 연기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기 과외’라도 받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권교체를 통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면 말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인민들이 번영된 민주사회에서 살게 될 날이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1991년 12월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사임 연설을 이렇게 마쳤다. 다음 날 소련최고회의는 우크라이나 등 15개 신생 독립국의 독립을 공식 승인하며 소련 해체를 선언했다.30년 후인 2021년 12월 26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소련 붕괴의 교훈이 중국 사회주의 발전을 성공적으로 돕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서구에선 소련이 붕괴한 이유를 군사적 팽창, 미국과의 패권 경쟁, 계획경제와 실패한 경제개혁으로 보지만 중국의 판단은 다르다. ● “소련은 사회주의를 배신해서 망했다”중국의 주류 해석은 사회주의가 옳다는 거다. 덕분에 소련은 파시즘을 패배시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전후 미국과 겨루는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고 글로벌타임스는 주장한다. 리셴밍 전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은 “우리가 수많은 연구 결과 도달한 결론은, 소련이 망한 진짜 이유는 니키타 흐루쇼프부터 고르바초프까지 소련 지도부가 점차 사회주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며 이렇게 분석했다. 소련은 ‘인민에 대한 봉사’라는 본연의 의무를 저버리고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동지’들을 위협했다. 군사적 팽창을 추구해 인공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렸지만 식량과 생필품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 사회 갈등이 증폭됐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자유화 서구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으나 그 또한 실패로 끝났다. ● 더 강한 공산당으로 달려간 중국 그들은 소련 해체가 ‘중국을 위한 백신’이라고 했다.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교훈을 배워 중국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반면 미국은 소련의 교훈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고도 했다. 지금의 미국이 해체 직전의 소련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중국이 소련 해체에 사로잡혀 있는 건 분명하다. 시진핑이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해 광둥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질문한 것이 “왜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당은 붕괴했는가”였다. “그들은 이상과 신념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답이다. 그래서 더 강한 사회주의로 매진했고, 더 센 1인 독재로 달려가는 추세다. 중국공산당이 11월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를 폐막하며 발표한 ‘역사결의’엔 개인숭배 금지, 종신제 금지 등 독재에 제동을 걸 문구도 완전 사라졌다.● 정말 리더십 때문에 소련이 망했다면?최근 ‘붕괴: 소련의 멸망(Collapse: the fall of the Soviet Union)’을 출간한 역사학자 블라디슬라프 주복은 군사적 팽창이나 경제 실패보다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을 소련 몰락의 큰 이유로 꼽는다. 역사에서 군사제국이 전쟁에서 패하지 않고 사라진 경우는 없다. 그러나 글라스노스트가 도입돼 생각을 말하고 비판할 수 있게 되면서 소련은 달라졌다. 특히 스탈린 치하 수백만 명이 사망한 역사기록까지 공개되자 공산당 통치의 이데올로기와 합법성은 흔들렸다. 부패하고 비효율적이며 자유와 복지에도 취약한 일당 독재를 견딜 국민은 없었다. 주복은 고르바초프의 나이브한 리더십, 캐릭터, 믿음이 소련의 자멸을 불러왔다고 결론짓는다. 거꾸로 보면, 시진핑처럼 인민을 꽉 틀어잡아야 독재정권이 유지된다는 얘기다. 리더십은 그래서 중요하다. 해피 뉴 이어.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