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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서부 소도시 부차 등 수도 키이우 외곽 점령지에서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정황이 드러났다. 3일(현지 시간) 키이우 일대에서 민간인 시신 410구가 발견되자 국제사회는 일제히 ‘집단 학살(제노사이드)’이라고 규탄했다. 유엔은 전쟁범죄 조사에 나섰고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CNN 등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 검찰은 러시아군이 퇴각한 부차 일대에서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시신 280여 구를 수습했다. 곳곳에서 검은 포대 등으로 둘둘 만 시신이 발견됐고 반쯤 타거나 신체가 훼손된 시신, 맨홀에 던져진 시신도 있었다. 특히 대부분의 시신은 손이 뒤로 묶인 상태여서 러시아군이 저항할 수조차 없는 민간인을 고의로 학살했다는 의혹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군이 보이는 민간인을 닥치는 대로 쐈다는 증언도 속출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 CBS 인터뷰에서 “집단 학살이 벌어졌다. 우리를 말살하려는 시도”라고 규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부차에서 일어난 일은 너무나 충격적”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고 CNN과 CNBC 방송이 전했다.“러軍, 민간인 손 뒤로 묶고 총 쏴”… 부차 일대에 시신 410구 러軍, ‘부차 민간인 집단학살’… “교회 마당에 시신 150구 묻혀” 증언젤렌스키 “우리 말살하려 해” 규탄… 유엔, 러의 전쟁범죄 조사 나서美-서방, 대대적인 추가 제재 예고, 獨도 입장바꿔 “러 가스 수입금지” “러시아군이 양손을 뒤로 묶은 후 뒤통수에 총을 쐈다. 곳곳에 머리와 팔다리가 사라진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소도시 부차 등에서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정황이 3일(현지 시간) 드러나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미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영국 더타임스 및 가디언 등 각국 주요 언론 또한 4일자 1면에 부차 학살 기사와 사진을 실었다. 영국 대중지 메트로와 미러는 각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수니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보다 더 나쁘다’ ‘집단 학살’을 제목으로 달았다.○ 젤렌스키 부차 찾아 러 전쟁 범죄 규탄3일 미 민간위성업체 맥사가 공개한 위성사진에서는 부차의 교회 앞마당에 길이 약 14m, 폭과 깊이가 1m를 넘는 구덩이가 포착됐다. 주민들은 이 구덩이에 러시아군이 살해한 시민 150여 명이 묻혔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 CBS 인터뷰에서 “집단 학살이 벌어졌다. 우리를 말살하려는 시도”라고 규탄했다. 4일 직접 부차를 찾은 그는 참혹한 현장 사진을 텔레그램에 공개했다. 손이 뒤로 묶인 채 뒤통수에 핏자국이 묻어 있는 시신 사진으로 가득했다. 러시아군이 무고한 민간인을 포박한 뒤 살해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는 “러시아 병사들의 어머니는 자식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똑똑히 봐야 한다”고 했다. 국제 인권감시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강간, 즉결 처형, 약탈 등 민간인 대상 범죄가 수없이 발생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3일 밤 대국민 담화에서는 이미 정계에서 은퇴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2008년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을 추진했을 당시 두 사람이 미온적 태도를 보인 것이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침공 및 부차의 집단 학살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두 사람을 부차로 초청한다. 러시아에 대한 14년간의 양보 정책이 무엇을 낳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일갈했다.○ 獨 “러 가스 수입 금지해야”…佛·伊도 찬성 서방은 대대적인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아주 이른 시일 내에 대러시아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집단 학살마저 서슴지 않는 ‘전쟁 기계’ 푸틴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자격 정지를 요청할 뜻을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또한 독립 조사를 촉구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 역시 러시아를 전쟁범죄로 처벌하기 위한 각종 지원에 나섰다. 러시아는 ‘미국의 명령에 따른 음모론’ ‘우크라이나의 연출극’이라고 부인했다. 새 제재는 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나토 외교장관 회담에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은 에너지·광물 금수 및 추가 금융 제재, 러시아와 거래하는 국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등을 검토하고 있다. 끔찍한 전쟁범죄에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독일조차 추가 제재에 찬성했다.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은 “유럽연합(EU)이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수입 금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간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에 대해 미온적이었던 이탈리아 또한 찬성으로 선회하고 있으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러시아산 석유 및 석탄의 전면 수입 중단을 원한다고 CNN 등은 전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양손을 뒤로 묶은 후 뒤통수에 총을 쐈다. 무차별 포격으로 거리에는 머리 팔 다리가 사라진 시신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새가 시신의 눈을 파먹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서부 소도시 부차를 비롯해 수도 키이우 외곽 점령지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는 시민들의 증언이다.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부차 등 키이우 외곽 일대에서 3일(현지 시간) 민간인 시신 410구가 발견되자 국제사회가 분노하는 가운데 유엔이 전쟁범죄 조사에 나섰다.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외신은 “제노사이드(집단학살)가 대러시아 제재 강화의 변곡점”이라고 전했다.● 거리 곳곳에 훼손된 민간인 시신들미 CNN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검찰은 이날 러시아군이 퇴각한 부차 일대에서 민간인으로 보이는 시신 280여 구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곳 거리 곳곳에서는 검은 포대 등으로 둘둘 말은 시신들이 목격됐다. 반쯤 타거나 신체 부위가 훼손된 시신도 많았다. 우크라이나군은 떠돌이 개나 새들이 특정 부위를 파먹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국 민간위성업체 맥사가 이날 공개한 위성사진에는 부차의 한 교회 앞마당에 길이 약 14m, 폭과 깊이가 1m를 넘는 구덩이가 포착됐다. 현지 주민들은 이 구덩이에 러시아군이 살해한 시민 150여 명이 묻혔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 CBS 인터뷰에서 “부차 지역에서 제노사이드가 벌어졌다. 우리 국민을 말살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국제 인권감시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강간, 즉결 처형, 약탈 등 민간인 대상 범죄가 수없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전쟁범죄 입증을 위해 시신 410구 중 150여 구를 수습해 부검에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성명을 내고 “책임 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러시아를 전쟁범죄로 처벌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명령에 따른 음모론” “우크라이나 정부의 연출극”이라며 부인했다. ● 獨도 “가스 수입 금지해야”미국과 서방은 대대적인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MSNBC에 출연해 “아주 이른 시일 내에 러시아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집단학살마저 서슴지 않는 ‘전쟁기계’ 푸틴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제재는 6일 나토 외교장관 회담에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추가 제재로는 러시아 에너지·광물 금수 제재와 추가 금융제재, 러시아와 무역·금융 거래를 유지하는 국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등이 거론된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에드워드 피시맨 전 국무부 제재 담당 보좌관은 WP에 “이란식 제재 등 최대 제재에 이를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램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EU는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금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에 반대하던 독일 이탈리아가 찬성으로 선회해 제재를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앞서 발트3국(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는 1일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군의 집단학살이 러시아산 석유, 천연가스 구매를 정당화하기 어렵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 지위 결정을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맡기는 데 합의했다고 우크라이나 측이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양국 대통령 정상회담이 터키에서 열릴 가능성도 제기됐다. 러시아가 침공 전략 목표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장악으로 수정하면서 동부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2일(현지 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다비트 아라하미야 우크라이나 협상단 단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중립국 지위에 대한 국민투표가 현재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라는 데 러시아가 동의했다”며 “크림반도 문제를 제외한 (우크라이나의) 모든 입장을 수용한다고 러시아 측이 구두 답변했다”고 말했다. 아라하미야 단장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중재하에 양국 정상회담이 이스탄불 또는 앙카라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도 밝혔다. 반면 러시아 대표단의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보좌관은 “협상이 양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정도로 진전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미국 CNN은 이날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가 요구한 안전보장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대신 중립국화를 받아들이되 서방이 러시아로부터 안전을 보장한다는 조약을 맺자고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일대 등 북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하면서 동남부가 주요 격전지로 바뀌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러시아군이 장악했던 이르핀, 부차 등 수도권 30여 곳을 탈환했다고 밝혔다. 부차 등지에서 시신 300여 구가 발견되는 등 벨라루스 국경 쪽으로 퇴각하는 러시아군이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주장했다.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거점 장악에 실패한 푸틴 대통령은 전략 목표를 동부 지역 장악으로 바꾸고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인 5월 9일까지 이를 달성해 ‘전쟁 승리’를 선포하려 한다고 미 정보당국은 전했다. 러시아군은 1일 동부 전선 요충지 이줌을 함락하고 돈바스 도네츠크주 슬라뱐스크로 진격했다. 남부 오데사에도 3일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미국은 유럽과 협력해 소련제 탱크를 돈바스 전선 우크라이나군에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의 탱크 지원은 처음이다. 독일은 옛 동독군 장갑차 58대를, 영국은 러시아 군함 저격용 대함미사일을 지원할 방침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는 신호”라고 전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86)이 2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갈등을 조장하는 ‘시대착오적’ 지도자”라고 비판했다. 교황이 푸틴 대통령을 지목해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황은 조만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방문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지중해 섬나라 몰타 방문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오직 죽음, 파괴, 증오만을 초래하는 전쟁의 차가운 바람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휩쓸고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철없고 파괴적인 침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푸틴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슬프게도 일부 강력한 통치자가 민족주의적 이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로 인해 (전 세계에) 갈등이 조장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AP통신은 “교황은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을 호소해 왔지만 푸틴이나 러시아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며 “이날 발언은 푸틴에 대해 교황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교황은 이날 몰타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키이우 방문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테이블 위에 있다”고 답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교황이 피란민들이 몰리는 우크라이나 인접국 몰타에 방문했기 때문에 곧이어 키이우 방문도 가능하다”며 “전쟁 중단을 위한 큰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교황은 이날 우크라이나 피란민 증가로 인한 각국의 난민 기피 현상을 의식한 듯 “유럽은 피란민들을 존엄하게 보호하기에 충분한 땅과 국가가 있다”며 인도적 수용 확대를 촉구했다.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우크라이나 서남부 도시 체르니우치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는 책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매트리스 2장이 깔려 있었다. 머리를 질끈 묶은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AK47 소총을 잡고 매트리스 위에서 ‘엎드려쏴’ 자세를 하고 있었다. 사격 시 유의 사항과 소총 분해·조립 방법이 빼곡히 적힌 칠판 앞에서 교관이 말했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 눈으로만 확인해선 안 됩니다. 귀로 소리를 들어 총의 상태를 점검하고, 몸으로 반동을 느껴 보세요. 자, 발사.” 건축 디자이너인 테이티아나 씨(26)는 “난생처음 총을 잡아 본다”고 했다. 자세는 서툴렀지만 옆으로 세운 책상을 엄폐물 삼아 몸을 낮추고 총을 겨누는 눈빛에 결의가 느껴졌다.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고 싶어 건축학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러시아의 포격으로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총을 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자도 이날 우크라이나 여성 10여 명과 함께 사격 훈련을 받았다. 군복무 시절 M16 소총을 다뤄 본 적이 있지만 훈련을 따라가기 만만치 않았다. 여성들은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동포들을 생각하며 진지하게 교육에 임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서서쏴’ ‘앉아쏴’ ‘숨어쏴’ 등 자세를 취했다. 총기 분해법을 배울 땐 꼼꼼히 필기했다.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다샤 씨(31)는 “사람 죽이는 연습을 하는 나 자신이 못마땅할 때도 있다”고 했다. “무기는 인간의 악함에서 나온 산물이지만 저는 그 악함을 이용해 러시아군과 싸울 겁니다. 우리를 지켜야 하니까요.”우크라 초등교 사격훈련, 절반이 여성… “죽음 두렵지만 싸울것” “내 가족 친구 조국위해 모두 뭉쳐” AK47 소총들고 실전같은 훈련우크라이나軍 소속 훈련 교관 “교육후 금세 익숙… 민병대 합류도”대학생들 “러에 종전 구걸 말아야”… 젤렌스키 “영토 지키기 위해 싸울것”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군대 경험이 없고 건강이 안 좋더라도 입대하고 있어요. 언제든 우리 도시도 러시아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도 싸우려 합니다.”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의 한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사격 훈련에 참여한 언론인 나스차 씨는 “죽음이 두렵고 피를 흘리기 싫지만 내 가족과 친구, 조국, 나아가 자유를 위해 모두가 뭉쳤다”고 했다.○ 대학생들 “러에 종전 구걸 말아야” 훈련을 진행한 우크라이나군 소속 교관 드미트로 씨(42)는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총을 쏠 줄 모르지만 교육을 받은 후 금세 총기를 다룰 수 있게 돼 민병대에도 합류한다”며 “훈련 인원의 50%는 여성”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와 함께 사격 교육을 받은 훈련생 10여 명도 모두 여성이었다. 드미트로 씨는 군 복무 시절 M16 소총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기자에게 “당신 군대에 다녀온 게 맞느냐. 우크라이나 여성들만 못하다”며 “AK-47 소총은 1947년에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신뢰할 만한 동구권의 핵심 무기”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포위하던 병력의 20% 정도를 동부 돈바스 등 지역에 재배치했다. 러시아가 동부 지역을 점령하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한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 13만 명 규모의 민병대가 러시아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펼친 것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대학가에도 저항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체르니우치 국립대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에 대해 “전쟁으로 너무 많은 피해를 봤다. 러시아에 종전을 구걸하지 말고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잔츠나 씨(29)는 “회담이 잘 진행돼 전쟁이 멈추길 바라지만 러시아 측의 요구에 굴종하면 안 된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럽연합(EU) 가입, 중립국화 등을 두고 국민투표를 결정하면 투표장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영토 지키기 위해 싸울 것”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5차 회담 후 “병력을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리는 겉만 번지르르한 어떤 문구도 믿지 않는다”며 “우리의 모든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중립화 등에서는 양보하지만 러시아가 편입을 시도하는 동부 돈바스 문제는 타협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도 러시아가 병력을 재배치하고 있을 뿐 군 철수는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최근 24시간 동안 키이우 주변에 배치한 소규모 군대와 기동부대인 대대전술단을 재배치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가 지원하는 민간 용병 조직인 와그너그룹 용병 1000여 명이 배치됐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우크라이나에 내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4월 1일 온라인 형식의 회담을 열어 휴전협상을 재개한다. 2008년 옛 소련 국가인 조지아에서 분리·독립을 선포했던 남오세티야는 이날 공교롭게도 러시아로 편입을 하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을 시도해 온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한 뒤 이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러시아가 조지아로 전선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폴란드 등 서쪽 인접국 국경을 넘은 사람들은 자가용도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에요.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은 멀리 대피를 못 가고 국내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민 올리하 씨(50)는 가족 5명과 함께 서남부 소도시 비지니차로 피란을 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올리하 씨 가족은 키이우를 포위한 러시아군이 아파트 등 민간 시설물을 본격적으로 포격하기 시작한 15일 피란을 결심했다. 버스와 기차 등 대중교통으로 오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다. 기자가 29일 찾은 인구 4000명의 소도시 비지니차는 현재 피란민 수가 5000명이 넘는다. 80km 거리에 인구 26만 명의 체르니우치가 있지만 큰 도시는 러시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주변 소도시로 몰리고 있다. 비지니차 시내 중심가의 극장은 피란민들에게 줄 헌옷을 모으는 물품 창고가 됐고, 주민들 집에는 피란민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한 주민은 식구가 많은 올리하 씨에게 집을 통째로 내줬다. 그는 “처음에는 떠나온 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는데 지금은 집을 빌려준 분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이 지역 출신 청년들도 피란민들을 돕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인기 밴드 ‘카즈카(Kazka)’ 멤버인 드리트로 씨(24)는 최근 돌아와 피란민에게 물품을 지원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가 일주일 전 피란민을 주제로 제작한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1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드리트로 씨는 “자신의 재능으로 피란민들을 도우려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에도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폭증하면서 곳곳에서 식량, 의료품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조이스 음수야 유엔 인도주의 담당 사무차장은 CNN에 “첫 번째 유엔 호송대가 의약품 300t 이상, 다량의 음식, 물, 통조림을 피란민들에게 전달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피란민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약탈, 성범죄 우려도 크다”고 했다. 전쟁이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29일 “지난달 24일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인 1100만 명이 집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전체 인구(4400만 명)의 4분의 1에 달한다. 이 중 국경을 넘어 폴란드 헝가리 등 인접국으로 간 피란민은 400만 명. 이들은 언론에도 집중 조명되며 각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650만 명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쟁 관리에 집중하고 있어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고 생필품, 의료품도 크게 부족하다. 피란민 200만 명을 받아들인 폴란드를 비롯해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유럽연합(EU)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8일 회원국 내무장관 회의를 열고 피란민으로 인한 국가별 부담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인구 대비 입국한 우크라이나인 수를 나타내는 ‘피란민 지수’를 도입하기로 했다.비지니차=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폴란드 등 서쪽 인접국 국경을 넘은 사람들은 자가용도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예요.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은 멀리 대피를 못 가고 국내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민 올리하 씨(50)는 가족 5명과 함께 서남부 소도시 비지니츠야로 피란을 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올리하 씨 가족은 키이우를 포위한 러시아군이 아파트 등 민간 시설물을 본격적으로 포격하기 시작한 15일 피란을 결심했다. 버스와 기차 등 대중교통으로 오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다. 기자가 29일 찾은 인구 4000명의 소도시 비지니츠야는 현재 피란민의 수가 5000명이 넘는다. 80㎞ 거리에 인구 26만 명의 체르니우치가 있지만 큰 도시는 러시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주변 소도시로 몰리고 있다. 비지니츠야 시내 중심가의 극장은 피란민들에게 줄 헌옷을 모으는 물품 창고가 됐고, 주민들 집에는 피란민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한 주민은 식구가 많은 올리하 씨에게 집을 통째로 내줬다. 그는 “처음에는 떠나온 집을 생각하면서 눈물이 났는데 지금은 집을 빌려준 분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이 지역 출신 청년들도 피란민들을 돕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인기 밴드 ‘카즈카(Kazka)’ 멤버인 드리트로 씨(24)는 최근 돌아와 피란민에게 물품 지원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가 일주일전 피란민을 주제로 제작한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1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드리트로 씨는 “자신의 재능으로 피란민들을 도우려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에도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폭증하면서 곳곳에서 식량, 의료품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조이스 음수야 유엔 인도주의 담당 사무차장은 CNN에 “첫 번째 유엔 호송대가 의약품 300t 이상, 다량의 음식, 물 통조림을 피란민들에 전달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피란민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약탈, 성범죄 우려도 크다”고 했다. 전쟁이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29일 “지난달 24일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인 1100만 명이 집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전체 인구(4400만 명)의 4분의 1에 달한다. 이중 국경을 넘어 폴란드 헝가리 등 인접국으로 간 피란민은 400만 명. 이들은 언론에도 집중 조명되며 각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650만 명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쟁 관리에 집중하고 있어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고 생필품, 의료품도 크게 부족하다. 피란민 200만 명을 받아들인 폴란드를 비롯해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에서 포화상태가 되면서 유럽연합(EU)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8일 회원국 내무장관 회의를 열고 피란민으로 인한 국가별 부담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인구 대비 입국한 우크라이나인 수를 나타내는 ‘피란민 지수’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EU 회원국 간에 정해진 비율에 따라 피란민을 받아들이는 쿼터제 도입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윌바 요한슨 EU 집행위원은 “현재로선 자발적으로 피란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BBC는 “자율적인 피란민 배분은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와 유사한 분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비지니츠야=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우크라이나가 둘로 쪼개지게 생겼어요. 푸틴이 우리를 한국처럼 분단국가로 만들려 합니다. 한국인인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28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서남부 도시 체르니우치의 시청 앞 광장에는 시민들이 모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동부를 점령하기 위해 전력을 집중시키는 현 상황에 대해 두려움과 분노를 토로했다. 러시아의 집요한 공격을 한 달 넘게 버텨내던 남동부 마리우폴이 이날 러시아군에 사실상 넘어갔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남북이 분단된 한반도처럼 ‘동서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될까 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루스라나 씨는 “분단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세르히 씨는 “우크라이나 남부는 우리 땅이다. 푸틴은 러시아로 돌아가라”고 했다. 시민들은 시청 광장에 우뚝 선 한 동상을 에워싸고 있었다. ‘국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였다. 러시아의 모진 탄압에도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로 시를 썼던 그는 우리로 치면 윤동주 시인 같은 존재다. 시민들은 그의 시에서 따온 구절인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구호를 수없이 외쳤다. 한 시민은 기자에게 다가와 셰우첸코의 시 ‘유언’을 읊어줬다. ‘그대들이여, 떨치고 일어나 그대들의 자유를 굳게 지키라. 나 죽거든 그리운 우크라이나 넓은 들판에 묻어다오.’“남동부 마리우폴 함락 임박… 우크라 동서분단 위기 현실화”크림~돈바스 잇는 ‘친러 벨트’ 완성… 러, 準국가 주장 후 분단 시도 전망이스탄불서 러-우크라 5차 협상우크라 “러와 정상회담 할만큼 진전”… 러 “키이우 등서 군사행동 줄일것”“우크라이나가 동서로 나뉜 분단국이 될 수 있다”는 시민들의 우려는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체르니우치로 대피한 시민들을 돕는 자원봉사자 소피아 씨는 기자에게 “마리우폴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그래도 버텨 왔는데… 남동부의 핵심 지역인 그곳을 러시아군이 거의 점령했다고 하니 분단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북 분단 한국처럼 ‘동서 분단’ 우려”28일(현지 시간)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CNN에 “러시아군의 계속되는 포격으로 너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불행히도 마리우폴 지역 대부분이 러시아군 통제에 놓이게 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시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마리우폴에서 어린이 210명을 포함해 최소 5000여 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사망자가 최대 1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도 했다. 도시 내 주거 건물의 90% 이상이 손상됐고, 완전히 무너진 건물이 40%에 달한다. 러시아군의 포위에 시민 16만 명이 식량과 물, 난방을 차단당했다. 러시아에 마리우폴은 친러시아 세력이 대부분 장악한 동부 돈바스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을 손에 넣으면 이미 점령한 남부 도시 헤르손을 비롯해 크림반도-마리우폴-돈바스를 잇는 친러시아 남부 벨트가 완성된다. 러시아는 점령지들을 하나로 이어 준(準)국가라 주장한 뒤 분단을 시도할 것으로 우크라이나는 보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한반도(식 분단) 시나리오’를 구현하려 한다”며 “수도 키이우, 제2도시 북부 하르키우의 병력까지 동남부로 이동시켜 동남부 함락 지역을 연합하려 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크라 “러와 정상회담 할 정도 협상 진전”우크라이나인들은 분단 위기를 실감하면서 더욱 결속하고 있다. 기자가 체르니우치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시민 10여 명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분단국가로 만드는 것만큼은 결사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KIIS)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와 맞서 싸우겠다’는 응답은 58%인 반면 ‘피란 가겠다’는 의견은 19%에 그쳤다. 우크라이나군이 28일 키이우 서북부 도시 이르핀을 러시아군으로부터 탈환하는 등 북부에서는 반격이 거세다. 올렉산드르 마르쿠신 이르핀 시장은 이날 “완전히 해방됐다. 이르핀은 반격의 거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키이우시는 러시아군이 외곽으로 물러나면서 이날부터 오후 9시∼오전 6시 통금 시간을 2시간 줄이고,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재개했다. 우크라이나는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시아와 5차 평화회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국 지위를 갖는 대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터키 등이 우크라이나 안보를 보장하는 새 체제를 러시아에 제안했다. 중립국 지위가 채택되면 우크라이나에 외국 군사기지를 유치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했다. 특히 이날 회담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 측 협상 대표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보좌관은 “양국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충분한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협상 대표단은 러시아군이 집중 공격을 벌여 왔으나 고전해온 키이우와 북동부 체르니히우 등 2곳에서 “군사행동을 대폭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자꾸 하늘을 보게 돼요. 언제 머리 위로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쏟아질지 모르니까요.” 28일 루마니아 국경과 가까운 우크라이나 서남부 도시 체르니우치 시청 앞 광장. 봄 햇살이 비치는 화창한 날이었지만 거리에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자 시민들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사이렌 소리에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들의 얼굴에는 극도의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시 당국은 우크라이나 서남부 지역 상공에 비행물체가 출몰하거나 도시 주변에서 폭발음이 들리는 등 특이사항이 감지될 때마다 수시로 사이렌을 울리고 있다. 이날 오후 중앙극장에서 화재 신고가 접수돼 소방차 여러 대가 도심을 가로지를 때도 시민들은 굳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한 시민은 “요즘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도 공포”라고 했다. 그는 전날에도 저녁에만 경보가 3차례 울려 지하실 등 대피 장소를 찾아 헤맸다고 했다. 수도 키이우에서 피란을 온 30대 여성 이리나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열흘 전 체르니우치에서 100km 남짓한 거리의 이바노프란키우스크 지역에도 러시아가 미사일 폭격을 했어요. 단언컨대 우크라이나에서 안전한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지난달 24일 침공 이후 약 한 달간 우크라이나 전역에 1100기가 넘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영토 양보 없다던 젤렌스키 “러 점령 돈바스 타협할 수 있다” “땅 중요하지만 많은 생명 구해야”… 영국 주간지와 인터뷰서 강조빠른 종전 위해 현실적 선택 분석… 시민들 “끝까지 싸우겠다” 비장“이제 안전지대 없다” 불안한 나날… 공습 사이렌에 기자도 지하 대피“러, 한미일 국민 입국 금지 예정” 28일 기자가 우크라이나 서남부 체르니우치 도심을 취재하는 동안에도 “이이이이잉” 하는 공습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기자는 시민들을 따라 인근의 지하 은신처로 대피했다. 함께 가던 소피아 씨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쓰고 폐쇄됐던 방공호인데 최근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400명이 대피할 수 있는 이 은신처에는 방이 10개 있었다. 벽면 곳곳에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꽃과 문양 등이 그려져 있었다. 대피한 시민들이 불안감을 달래며 그린 그림이었다. 벽면에 꽃을 그리던 10세 소녀 타냐는 “죽을 수도 있어서 무섭지만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체르니우치에는 이런 지하 은신처가 68곳 있다.○ 공습 사이렌에 기자도 함께 대피체르니우치는 루마니아 국경으로부터 40km 떨어진 인구 26만 명의 도시다. 우크라이나 북동부와 달리 러시아군의 공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헝가리 루마니아 등 인접국 국경을 넘지 못한 피란민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임시 사무소를 비롯해 각국의 임시 대사관도 있다. 하지만 ‘그나마 안전할 것’이라는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촬영하면 안 됩니다. 건물 사진이 보도되면 러시아군의 폭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기자가 시청 광장 주변 건물을 카메라로 촬영하려 하자 한 경찰관이 달려와 막아섰다. 그의 목소리에서 경찰로서의 의무감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시민으로서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40대 사업가 유리 씨는 “인근 지역마저 러시아군 최첨단 무기의 폭격을 받고 있다. 너무 불안해서 보드카라도 잔뜩 마셔야 잘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시민들은 “언젠가는 우리 차례 아니겠느냐”며 “우크라이나에 안전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고 했다. 18일 체르니우치에서 100km 거리인 이바노프란키우스크 지역의 델랴틴 일대가 러시아군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에 초토화됐다. 러시아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킨잘’을 실전에서 사용한 것은 처음인 만큼 서남부 지역도 긴장이 높아졌다. 체르니우치 시민들은 “남부까지 전쟁이 번지면 끝까지 싸우겠다”는 비장함을 보이고 있다. 블라디슬라우 아트로시첸코 체르니우치 시장은 러시아군이 도시를 공격할 경우 시민들에게 민병대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러시아군 장갑차와 전차를 파괴하면 15만∼25만 흐리우냐(약 600만∼1000만 원)의 포상금을 주기로 했다. ○ 젤렌스키 “러와 돈바스 타협 가능”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9일부터 터키에서 5차 평화 협상을 시작한다. 협상에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현재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일부를 장악한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해 러시아와 타협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도 논의 가능하다고 밝혔다. 영토 문제에 대해 양보할 수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도 “전쟁에서 승리는 가능한 한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며 “우리 땅은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영토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전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하기보다 둘로 쪼개기 위해 동남부에 전력하려 한다는 판단에 따라 현실적으로 빠른 종전을 택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은 “푸틴은 ‘한국형 (분단) 시나리오’를 모색하고 있다”며 “동남부의 러시아군 점령 지역과 나머지 비점령 지역을 분단시키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8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는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비우호국가’ 국민의 러시아 입국을 금지하는 법령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저널리스트라 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취재기자로 당장 등록하세요.” 28일 오전 우크라이나 남부 체르니우치주(州)의 포루브네 국경검문소. 이곳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루마니아로 건너가려는 인파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반면 우크라이나로 입국하려는 사람은 기자를 포함해 3명에 불과했다. 국경수비대원은 기자의 여권과 한국 외교부가 발급한 ‘예외적 입국 허가서’를 유심히 보더니 처음에는 “이 정도로는 통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남서부 지역은 북부나 동부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을 들었고 해외 언론 입국에도 비교적 관대했다. 그러나 서부에 미사일 공격이 잇따르면서 체르니우치 쪽 국경 검문이 더욱 까다로워진 것. 기자는 우크라이나 정부 측에 여권 사진과 기자증 등을 따로 보내고 취재 경위를 설명한 후에야 2시간 만에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국경수비대원은 우크라이나 영토로 진입한 기자에게 “무사히 취재를 마치고 살아 돌아오라. 행운을 빈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13일부터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인의 일반적인 우크라이나 입국은 불가능하다. 무단 입국을 하면 여권법 위반으로 고발된다. 다만 예외가 있다. 여권법 시행령 제29조 1항 ‘공공이익을 위한 취재나 보도를 위한 경우’는 외교부 허가를 받아 입국이 가능하다. 기자는 신청서와 취재활동계획서 등을 작성한 후 외교부 심사를 거쳐 28∼30일 현지에서 취재할 수 있는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은 후 우크라이나에 입국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입국 및 활동의 모든 책임은 당사자가 져야 한다. 정부는 입국하려는 취재진에 ‘우크라이나 방문·체류 중 발생하는 안전상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 재산상 불이익 등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음을 동의하라’는 서약을 받는다. ‘전쟁특약보험’ 가입도 권고한다. 취재 기간을 총 3일로 제한했고 지역도 체르니우치시 일대로 한정했다. 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사교장을 개조한 미국 백악관 오벌오피스, ‘일일 클럽’이 열린 프랑스 엘리제궁, 의회와 도보 10분 거리인 영국 다우닝가 10번지…. 최고지도자 집무실의 개방성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각국 정상의 ‘열린 집무실’ 지난해 2월 1일 미국 워싱턴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1600에 위치한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밋 롬니,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 등 야당 공화당 중진을 만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2일 만에 집권 민주당이 아닌 야당 의원을 먼저 백악관 내 집무실 ‘오벌오피스’로 초청해 화합을 강조했다. 그는 “집무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내 마음도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수도 한복판에 위치해 있고 일반인이 견학할 수 있는 백악관과 마찬가지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국 정상의 거처와 집무실은 모두 수도 중심에 있다. 특히 의원내각제인 영국, 독일, 일본 등은 의회 근처에 총리 집무실을 설치해 총리가 수시로 의회와 국정을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 또한 국민에게 수시로 대통령 공관 엘리제궁을 개방하고 이곳을 ‘일일 클럽’으로 만드는 파격까지 선보였다. 반면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은 100만 m²에 달하는 국가주석의 공관 ‘중난하이’를 전혀 개방하지 않고 있다.○ 美, 사교장을 집무실로 바꿔 소통 강조미 백악관은 크게 3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중앙 건물은 대통령과 가족이 사는 관저, 왼쪽은 오벌오피스가 있는 대통령의 집무 공간 웨스트윙, 오른쪽은 영부인 집무실과 연회장 등이 있는 이스트윙이다. 말 그대로 타원형의 건물인 오벌오피스는 웨스트윙의 서쪽 끝에 있다. 1909년 취임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이 만들었다. 그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사교 공간인 ‘블루룸’을 본뜬 타원형 공간을 조성하라고 지시했다. 이때만 해도 집무실로 쓰이지는 않았으나 4연임을 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곳을 집무실로 바꾸면서 자연스레 후임자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초 손님을 맞기 위해 설계된 개방형 공간을 집무실로 바꾼 터라 민주적 소통에 용이하다는 평을 얻고 있다. 오벌오피스의 창은 대통령이 기자회견 및 야외 행사를 하는 로즈가든 쪽을 향하고 있다. 창가에 대통령 전용 책상 ‘레졸루트 데스크’(Resolute Desk·결단의 책상)가 있고 정중앙에 3인용 소파 2개, 의자 4개가 놓여 있다. 오벌오피스에서는 주요 장관과 참모들이 대통령과 일반 가정집의 소파에서 차담을 나누듯 격의 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통령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 참석자 또한 적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최근 2년간 소파와 의자 군데군데를 비워두고 있지만 과거에는 참모들이 서로 소파를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일 정도로 이곳에서 자주 회의가 열렸다. 외국 정상과 귀빈을 맞는 공간이 따로 있지만 이들을 종종 오벌오피스로 초대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2018년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그를 오벌오피스에서 만났다. 오벌오피스가 개방성에 중점을 두고 설계된 만큼 기밀 사안을 다루거나 사적 업무를 볼 때는 오벌오피스와 연결된 개인 서재, 관저 3층에 마련된 ‘트리티룸’을 쓴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퇴근 후 보고 자료, 다음 날 발표 자료 등을 읽기 위해 트리티룸을 자주 활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 당시 이곳에서 문 대통령을 만났다. 대부분의 대통령은 오벌오피스의 인테리어에 국정 철학과 자신의 소신 등을 반영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바닥 카펫을 민주당 당색인 파란색으로 바꿨다.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지만 대통령 선거 직전 암살된 로버트 F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흉상을 들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 또한 정치적 롤모델로 삼았던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의 초상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흉상을 들였다.○ 클럽으로 변신한 佛 엘리제궁… 英·獨은 의회 소통 중시프랑스 대통령의 관저와 집무실이 있는 엘리제궁은 파리 도심 한복판인 8구에 위치했다. 1만1179m²의 면적을 보유한 2층 건물로 1층에는 매주 국무회의가 열리는 대회의장 ‘살롱 뮈라’, 2층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이곳은 1722년 유명 건축가 아르망클로드 몰레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왕족과 귀족의 저택 및 별장으로 쓰였고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불렸다. 1873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파트리스 드 마크 마옹 대원수가 이듬해 엘리제궁에 정착하며 공관이 됐다. 프랑스는 매년 6월 21일 ‘음악 축제의 날’, 매년 9월 셋째 주 주말 ‘유럽문화 유산의 날’에는 엘리제궁을 개방한다. 이때 대통령 집무실 또한 볼 수 있다. 시민이 참여하는 각종 파티도 열린다. 2018년 6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엘리제궁에 유명 DJ들을 초대해 이곳을 나이트클럽으로 만들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시 시민들과 어울려 춤을 추며 소통했다. 대통령이 반드시 엘리제궁에 거주해야 할 의무는 없다. 프랑수아 미테랑,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등은 사택에서 잠을 자고 엘리제궁의 집무실로 출퇴근했다. 영국 총리의 집무실 역시 런던 도심 한복판인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다. 3층짜리 일반 주택으로 1층은 접대 공간, 2층은 국무회의실, 3층에 총리가 기거한다. 조지 2세가 1732년 초대 총리 겸 재무장관인 로버트 월폴에게 하사했고 1735년부터 공관으로 쓰였다. 바로 옆 다우닝가 9번지는 집권당 원내대표의 집무실, 11번지는 재무장관의 집무실, 12번지는 총리 공보실이다. 특히 총리와 재무장관의 공관은 안쪽으로 서로 연결돼 있어 언제든 국정을 논의할 수 있다. 공관에서 의회까지는 도보 10분 거리다. ‘분데스칸츨러암트’로 불리는 독일 총리 공관은 2001년 베를린 도심 슈프레 강변에 지어졌다. 8층짜리 대형 건물로 역시 총리와 의회의 소통을 중시한다. 총리실과 의회의 거리는 불과 500m로 도보 1분에 오갈 수 있다. 이 건물 7층에 총리 집무실, 한 층 아래인 6층에 각료 회의실이 있다. 4층에는 국가 위기 때 사용되는 비상대책회의실, 8층에 총리 처소가 있다. ○ 日 총리 집무실·의회·정부 부처 한 울타리일본 총리 집무실은 도쿄 중심지인 지요다구 나가타정에 있다. 일본에서는 총리 집무실만 ‘관저(官邸)’라는 고유명사로 부른다. 현 관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시절인 2002년 완공됐다. 지하 1층, 지상 5층이며 유리로 둘러싸인 현대식 건물이다. 관저는 이 건물 5층에 있다.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의 사무실도 같은 층에 있다. 4층에는 국무회의실 격인 각의실, 해외 정상 등을 맞이하는 특별응접실, 대회의실 등 회의 공간이 집결돼 있다. 지하 1층에는 위기관리센터가 있다. 1층에는 기자회견실과 기자실이 있어 취재진이 상주한다. 관저 출입기자들은 1층 로비에서 총리 출퇴근 시에 매일 총리와 약식 인터뷰를 가질 수 있다. 서울 광화문, 경기 과천, 세종시 등에 각 부처가 흩어진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정부 부처 대부분이 관저 반경 2km 내에 몰려 있다. 각 부처에서 관저와 협의할 일이 있으면 도보로 10분 안팎 걸리는 관저를 찾거나 국회에서 협의한 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면 된다. 국회의사당도 관저 옆에 있다. 총리 집무실, 국회, 정부 부처가 사실상 한 울타리에 있는 셈이다. 총리의 주거 공간은 관저 부지 내에 있는 별도 건물인 공저(公邸)다. 현 관저가 지어지기 전까지 관저로 쓰였다. 공저와 관저의 거리 역시 도보 1분이다. 지진 등 위기가 발생했을 때 총리가 자다가도 바로 관저로 이동해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일본 최고 권력자 또한 반드시 공저에 거주하지는 않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겠다며 시부야에 있는 사저에서 출퇴근했다. 북동부 아키타현이 고향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는 의회 인근 중의원 기숙사에서 살았다. 지난해 9월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2012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 이후 9년 만에 공저에 입주해 화제를 모았다. 공저에 입주했던 역대 총리들이 단명하거나 불운한 결말을 맞으면서 ‘터가 좋지 않다’ ‘귀신이 나온다’ 등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아베 전 총리, 스가 전 총리 또한 이를 의식해 입주하지 않았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기시다 총리는 입주 당시 “공무에 전념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밝혔다.○ 100만 m²의 호화 공관 中 중난하이… 시민 접근 차단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공관은 베이징 중난하이에 있는 친정뎬(勤政殿)이다. 청나라 최고 군주로 꼽혔던 강희제가 ‘정무(政)에 힘쓴다(勤)’란 뜻으로 직접 지은 이름이다. 자금성 서쪽과 붙어 있는 중난하이는 전체 면적이 100만 m²에 달해 주요국 최고 지도자의 공관 중 최대 규모라는 평을 얻고 있다. 중하이(中海)와 난하이(南海)라는 두 호수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답게 전체 면적의 약 절반인 47만 m²가 호수다. 두 호수 주변에는 명·청 시대의 전각, 망루, 호화 저택이 있다. 친정뎬,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서기처, 중앙판공청, 국무원 등 주요 당정기관이 모두 중난하이에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처음 집무실로 사용한 친정뎬은 중하이 호수를 등지고 난하이 호수를 바라보는 요지에 있다. 30여 개의 회의실이 있으며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주재하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포함해 각종 회의와 외빈 접견이 이뤄진다. 장 전 주석이 1997년 미국을 방문한 직후 미 백악관과 연결되는 직통 전화도 개설했다. 중난하이에는 베이징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와 별도 전력선이 구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주치의로 중난하이에서 22년간 거주한 리즈수이(李志綏) 박사에 따르면 핵 위기 등을 피할 수 있는 지하 터널도 있다. 트럭 4대가 동시에 통과할 수 있는 크기로 톈안먼(天安門) 광장, 인민대회당, 해방군 305의원(병원) 등 베이징 요지와 바로 연결된다. 권위주의 국가답게 중국은 중난하이를 일절 개방하지 않고 있다. 문화대혁명 직후인 1960년대 후반,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 초반 잠시 개방했지만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이후 시민 접근을 완전히 차단했다. 경비가 워낙 삼엄해 ‘베이징에서 가장 은밀한 곳’으로 불린다. 내부 또한 베일에 싸여 있다. 중국 포털 바이두에서 친정뎬을 검색하면 한자가 같은 경복궁 근정전 사진과 설명이 더 많이 나온다. 소통, 개방을 중시한 서구 지도자의 공관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워싱턴=문병기 weappon@donga.com 파리=김윤종 기자 zozo@donga.com도쿄=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베이징 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우크라이나 해군이 24일(현지 시간) 남부 아조우해 베르단스크 항구에서 병력 보급에 나선 러시아 대형 군함 사라토프함을 격침했다고 CNN 등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해군에 따르면 이 군함에는 탱크 20대, 장갑차 45대, 병력 400명이 있었다. 사라토프함이 바다에 가라앉으면서 다른 선박 2척과 3000t급 연료탱크도 함께 파괴됐다고 우크라이나 해군은 발표했다. 이날 수도 키이우 일대에서는 러시아군 일부가 도심에서 70km 밖으로 퇴각했다고 우크라이나군은 전했다.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러시아가 공세를 펼칠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전황은 교착 상태가 됐다”고 했다. BBC도 BBC는 미국 정보당국을 인용해 “러시아는 전쟁 시작 때 최소 1100개의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발사 불능, 폭발 실패 등 60%의 실패율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어린이 8만4000명을 포함해 4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러시아로 강제 연행됐다”며 “추후 인질로 활용하려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17일 ‘어린이’라는 대형 표식을 설치해놨음에도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았던 마리우폴의 극장 지하에서는 어린이 등 300여 명이 건물 잔해에 깔려 사망했다고 시 당국은 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데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던 벨라루스의 알렉산더 루카셴코 대통령은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며 참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벨라루스 병력 5000명이 곧 키이우 함락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지 매체 크라인시카 프라우다는 “러시아군이 2차 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5월 9일(전승일)까지 전쟁을 끝내려 한다”고 보도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이 개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나토 회원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화학무기나 핵무기가 동원되면 ‘레드라인(Red line·금지선)’을 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미군이 직접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어서 주목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면 대응할 것”이라며 “어떻게 대응할지는 러시아가 어떤 무기를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G7 정상들도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푸틴은 생화학, 핵무기로 위협하지 말라. 필요에 따라 추가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를 주요 20개국(G20)에서 퇴출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나의 대답은 ‘예스’”라며 “이는 G20에 달렸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등 일부 국가가 동의하지 않아 러시아를 퇴출시키지 못할 경우 우크라이나를 G20 정상회의에 참석시켜 참관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서방 정상들은 중국을 향해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라”고 재차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은 자신의 경제가 러시아보다 서방에 훨씬 더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이해한다”면서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를 지원할 경우 유럽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나 경제성장 등의 목표가 큰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어기고 러시아와 거래하는 중국, 인도 등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의 편에 서온 중국은 이날 “러시아와 협력에도 마지노선이 있다”며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친강(秦剛) 미국 주재 중국대사는 24일 홍콩 펑황TV와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에는 금지 구역이 없지만 마지노선은 존재한다”면서 “유엔 헌장 원칙, 공인된 국제법, 국제관계의 기본 원칙 등이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하고 있고 생화학무기나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를 무조건 지지하기에는 부담이 커 ‘출구 전략’을 고려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친강 대사는 서방의 ‘2차 제재’에 대해선 “발동된다면 맞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미국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러시아 수출 제한 조치를 무시하고 반도체 등을 러시아에 파는 중국 기업을 찾아내 ‘문을 닫게 하겠다’고 경고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요 7개국(G7),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연달아 참석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중단을 비롯해 동유럽 군사력 증강, 생화학 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대책 등을 논의했다. 특히 그는 러시아 하원의원 328명 전원의 미 입국을 금하고 자산을 동결하는 등 러시아 압박 수위를 대폭 높였다.○ 美, 中에 세컨더리 보이콧 경고바이든 미 대통령의 유럽 순방길에 동행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3일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무기 지원뿐만 아니라 경제·금융지원에 대해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과 대응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러시아 제재를 약화시키거나 회피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중국에 우려를 전달했다”며 “G7 제재는 중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제재를 약화시키는 조치에 대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출통제와 관련해 러시아에 금지된 물품을 공급하는 중국 기업이 있는지 찾고 있다며 “우리는 이 같은 시도가 일어날 수 없도록 보장하는 대응책을 분명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 간 거래가 미국 등 G7이 부과한 수출통제 조치에 저촉되는지 이미 감시, 조사하고 있으며 확인되면 중국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재 국가와 거래하는 정부나 기업, 은행을 제재하는 것)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한 것. 미국은 지난달 24일 군수 목적으로 쓸 수 있는 반도체, 컴퓨터, 정보통신, 항공, 센서·레이저 등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또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결제망 퇴출 제재를) 우회해 금융결제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며 “G7과 이에 대한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이 러시아에 반도체 칩을 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소프트웨어 사용을 금지해 근본적으로 문을 닫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미·유럽 “러 가스 수입 완전 중단 논의”유럽 순방 첫 일정으로 24일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 대통령은 29개 회원국 정상과 함께 우크라이나 인근 동유럽 나토군을 2배로 증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등에 4개의 나토 전투부대를 새롭게 배치하는 내용이다. 현재 약 4만 명의 나토군이 이들 국가 국경지대에 분산 배치돼 있어 증강 시 나토군은 10만 명에 육박한다. 러시아가 생화학무기, 핵미사일 등을 사용할 가능성에 따른 대처방안도 논의했다. 이어진 EU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이 논의됐다. 설리번 보좌관은 “유럽의 러시아 가스 수입을 완전히 중단(full-stop)하는 수준으로 의존도를 줄이는 게 우선순위”라고 했다. 이날 합의 내용을 담은 ‘러시아 에너지 수입 중단 로드맵’은 25일 발표된다. 이번 연쇄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의 침공 과정 전반을 전쟁범죄 행위로 공식 규정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공격한 러시아군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형사 기소 등 모든 방법을 활용해 책임지게 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형사재판소(ICC)를 통한 러시아 처벌 추진 외에도 미 국내 법정에 러시아를 세우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영국은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암살을 추진했던 민간 용병부대 와그너그룹,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자녀, 러시아 부호 등을 추가로 제재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 또한 천연가스뿐 아니라 원유 수출 대금도 자국 통화인 루블화로 받겠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는 2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우크라이나의 인도주의적 상황을 우려한다”는 ‘적반하장’식 결의안 통과를 시도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찬성 2표, 기권 13표로 부결됐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2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19구에 있는 ‘노령보험 국민금고(CNAV)’를 찾았다. 가입자가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은퇴 후 연금을 지급하는 곳으로 한국의 국민연금공단과 비슷하다. 프랑스 인구의 약 3분의 1인 2140만 명이 CNAV에 보험료를 내고, 1500만 명의 은퇴자가 연 1440억 유로(약 193조 원)를 수령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CNAV의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어서 입구는 철문으로 봉쇄된 상태였다. 시민 마리안 씨(58)는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연금 개혁 논쟁이 한창”이라며 “CNAV 건물의 리모델링처럼 연금제도 역시 대대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마크롱, 62→65세 정년 연장 추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는 다음 달 10일 실시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같은 달 24일 1, 2위 득표자가 결선 투표를 한다. 2017년 집권한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극우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대표, 극우 레콩케트(프랑스회복운동)의 에리크 제무르 대표, 중도우파 공화당의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 중도좌파 사회당의 안 이달고 파리 시장, 극좌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 좌파 녹색당의 야니크 자도 유럽의회 의원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주요 여론 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30% 내외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까지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났다. 이처럼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 1차 투표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1위 가능성이 높지만 두 극우 후보인 르펜 대표와 제무르 대표가 단일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결선 투표의 승자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17일 파리 외곽 오베르빌리에에서 재선을 위한 각종 공약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내세운 의제가 법정 정년을 현 62세에서 65세로 올리고 그만큼 연금 보험료를 더 납부하자는 연금 개혁안이었다. 그는 “고령사회에 살고 있기에 과거보다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2017년과 다른 개혁을 원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향후 5년 안에 완전고용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을 단순하게 만들고 실업보험도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실업률은 7.4%로 2008년 이후 14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노령화 등으로 연금 적자 눈덩이 3년 더 일하라는 마크롱 대통령의 공약을 반길 사람은 많지 않다. 22일 발표된 BFM-TV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9%가 정년 연장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그가 이 인기 없는 의제를 들고나온 이유는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향후 더 큰 문제를 낳을 소지가 상당하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0년 기준 프랑스 남성과 여성의 기대 수명은 각각 79.2세, 85.3세다. 각각 1980년대보다 6세 이상 늘었다. 고령화, 출산율 하락 등으로 연금을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수령할 사람은 점점 늘어나니 연금 적자 또한 불가피하다. 은퇴자 문제를 연구하는 국가조직 ‘연금오리엔테이션협의회(COR)’는 2030년까지 매년 100억 유로(약 13조5000억 원)의 연금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2030년에는 노령연금이 국가 공적 지출의 1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AFP통신은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돼 공공 지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정년 연장을 통해 연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진단했다.노동계 반발로 수차례 무위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17년에도 대대적인 연금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프랑스는 직업, 직능별로 42개나 되는 복잡한 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하철, 버스 같은 대중교통 종사자는 퇴직 연령이 55.7세로 평균 62세보다 6세 이상 빠르다. 반면 민간기업 근로자는 공식 정년인 62세까지 일한 후에야 연금을 받으므로 수령 시기를 둘러싼 사회 갈등이 상당하다. 특히 국영기업 근로자는 정부 보조 등으로 은퇴 전 월급의 약 70%를 연금으로 받아 수령 액수 또한 타 직종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에 마크롱 정권은 42개 제도를 모두 없애고 수령 시점과 지급 액수를 단일화하는 파격적 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9년 12월에는 총파업까지 발생해 나라 전체가 사실상 마비됐다. 당시 프랑스 어디를 가도 교사, 의료진, 경찰, 환경미화원, 대중교통 운전 노조 등이 항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후 코로나19가 발생해 2년간 마크롱 대통령도, 반발하는 노동계도 모두 이 의제를 접어두고 있었는데 재선 도전을 계기로 마크롱 대통령이 다시 ‘뜨거운 감자’를 들고나온 것이다. 연금 개혁은 과거 수십 년간 많은 대통령이 관철하지 못한 의제이기도 하다. 1995년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 또한 노동계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3주간의 총파업 후 시라크 정권은 심각한 레임덕에 빠졌다. 2003년, 2010년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 노동계 저항으로 흐지부지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2010년 정년을 기존 60세에서 62세로 올린 것이 거의 유일한 성과다.경쟁자들은 일제히 비판 마크롱 대통령의 주요 경쟁자들은 일제히 정년 연장 공약을 비판했다. 르펜 대표는 “대통령이 다수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한다. 정년 연장을 거부한다”고 했다. 멜랑숑 대표는 아예 ‘정년 인하’를 주창하고 있다. 그는 “60대 고용을 유지하면 젊은 세대의 실업이 되레 늘어난다”며 일자리 창출, 성별 임금 불평등 해소, 사회보장 강화 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극우 르펜 대표와 극좌 멜랑숑 대표가 연금 개혁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둘 다 구체적인 재정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획기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크레스 후보는 “정년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나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자가 만난 많은 파리 시민은 ‘연금 개혁이 내키지는 않지만 불가피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파리 15구의 40대 회사원 마티 씨는 “평균 수명이 대폭 늘었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 내고 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후세대를 위해서도 연금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프랑스 정도의 수준 높은 연금제도를 보유한 나라가 흔치 않다며 “나 또한 빨리 은퇴해서 연금 생활자로 지내고 싶다”고 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24일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째를 맞은 가운데 러시아군 가용 전력이 침공 시작 당시의 90% 이하까지 줄어들고, 탄약 식량 연료 등은 3일을 버티기 힘들 정도로 부족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군은 23일에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 제2도시인 동북부 하르키우,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등 주요 거점을 공략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으로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 우크라軍, 마카리우 탈환 등 반격 미국과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22일 러시아군과의 교전 끝에 키이우 서쪽 전략적 요충지인 마카리우를 탈환했다. 키이우가 러시아군의 전방위 포위 공격을 받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군이 서쪽 일부 도로를 확보함에 따라 반격이 수월해졌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러시아군이 장악했던 흑해 연안 도시 헤르손 역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러시아군 헬기가 공항에서 철수한 모습이 미국 민간위성업체 ‘플래닛 랩스’에 포착됐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CNN에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쫓아내는 일이 최근 며칠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하르키우와 동부 돈바스를 잇는 도시 이줌에서도 반격을 시작했다. 수일 내 더 많은 도시를 탈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곳곳에서 고전하고 있다. CNN은 미 국방부 당국자를 인용해 “추위와 보급 부족으로 동상에 걸린 병사들이 전투에서 열외가 돼 후송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관영 매체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는 20일 러시아 정부를 인용해 러시아군 9861명이 사망하고 1만6153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가 곧 기사를 내렸다. 사망자와 부상자를 합치면 우크라이나 침공에 투입된 총 병력 약 15만 명의 10%를 훌쩍 뛰어넘는다. 러시아군은 침공 후 키이우 등 거점도시를 속전속결로 장악하려 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지형을 활용한 매복 공격으로 러시아군 보급로를 차단해 전투능력을 약화시켰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러시아 공군은 우크라이나의 10배가 넘는 군용기를 보유하고도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Su-35 등 신형 전투기를 하루 200회가량 출격시키는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1980년대에 개발한 Su-27 등 구형 전투기를 하루 10회 이하로 출격시켰다. 그럼에도 지대공 미사일 방공시스템과 러시아군 조종사를 압도하는 공중전 실력으로 현재까지 러시아 전투기 97대를 격추시켰다고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밝혔다. ○ 최고위직 항명 등 지도부 균열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뉴욕타임스(NYT)에 “우크라이나에서의 실패는 러시아 지도부의 균열을 불러왔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목됐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직위해제 위기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책임자인 세르게이 베세다 대령, 러시아 국가경비대 로만 가브릴로프 부사령관은 작전 실패 등의 명목으로 체포됐다. 아나톨리 추바이스 러시아 기후 특사도 푸틴 대통령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항명의 뜻으로 사임하고 러시아를 떠났다고 블룸버그가 23일 보도했다. 추바이스 특사는 이번 전쟁에 반대해 사임한 인사 가운데 최고위직이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추바이스는 1990년대 경제 개혁을 이끌며 러시아의 사유재산 제도를 설계했다. 2020년 국영 기술기업 루스나노 대표직을 지낸 뒤 푸틴 대통령의 최고위급 정책 고문 자격으로 여러 국제기관과의 교류를 담당해왔다.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거리에 널린 시신들 사이로 어린아이 시신까지 보인다. 러시아군에 포위된 도시에 갇혀 눈을 녹여 먹으며 버티던 사람들은 굶주리다 못해 주인 잃은 개까지 잡아먹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21일(현지 시간) 모습이다. 러시아는 이 도시를 함락하기 위해 쑥대밭으로 만든 뒤 데드라인을 정해 항복을 요구했지만 시 당국이 항복을 거부하면서 도시 전체가 궤멸 위기에 놓였다. 흑해 연안 최대 항구 도시 오데사 주거지역에도 이날 처음으로 러시아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속전속결에 실패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민간인을 괴롭혀 우크라이나를 항복시키려는 ‘플랜B’로 선회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 전쟁 성패 직결 마리우폴 함락 집착20일 러시아군은 마리우폴시에 “21일 오전 5시(한국 시간 오전 11시)까지 무기를 버리고 도시를 넘기라”고 요구하면서 동이 트기 전 항복하면 민간인 대피 통로를 개방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마리우폴시 당국은 항복 대신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인도주의적 대피 통로를 열어라’라는 편지를 러시아군에 전달했다. 그러자 러시아 육해공군은 더욱 가혹하게 전방위 폭격을 퍼붓고 있다. 러시아가 마리우폴 함락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번 전쟁의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마리우폴은 2014년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내 친러시아 세력이 세운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잇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이곳을 점령하면 남·동부 전선이 연결돼 우크라이나군을 무너뜨리기가 수월해진다. CNN은 “마리우폴이 점령되면 수도 키이우와 제2도시 하르키우까지 남북으로 포위해 함락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전했다. ○ “2차 대전 때 레닌그라드처럼 완전 파괴”마리우폴 인구 47만 명 중 15만 명은 이달 초 도시를 떠났다. 남은 32만 명 중 20만 명도 탈출을 시도했지만 러시아군의 포위에 막혀 식량과 수도, 가스, 전기가 모두 끊긴 상태로 3주 넘게 도시에 갇혀 있다. 주민 미콜라 오시첸코 씨는 “지하실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너무 목이 말라 히터에 있던 물도 빼 마시고 눈도 녹여 먹었다. 개울에 긴 줄이 생기면 러시아군의 공습 타깃이 됐다”고 했다. 그는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절박한 마음에 아들을 몸으로 감싸지만 아들을 지킬 순 없다는 걸 알기에 완전한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마리우폴에서는 공습으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조차 너무 위험해 거리에는 떠돌이 개들이 방치된 사체를 먹는 모습도 목격되고 있다. 대피할 곳을 찾던 중 폭격을 받아 딸과 네 살배기 손녀를 잃은 블라디미르 씨는 BBC에 이같이 말했다. “땅을 봤는데 손녀의 머리가 심하게 훼손돼 있었어요. 바로 옆에 있던 딸도 다리에 중상을 입고 다음 날 숨을 거뒀어요. 신이시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제가 이 어여쁜 아이들을 묻다니요.” 학교 지하실 방공호에서 200여 명과 함께 대피해 있었던 크리스티나 졸라스 씨는 스카이뉴스에 “공습 때 한 여성이 엉덩이에 파편을 맞았다. 구호 인력 도착 전까지 그 상태로 꼬박 하루를 버텨야 했던 여성은 너무 고통스럽다며 독약을 달라고 부르짖었다”고 전했다. 그는 “잘 때도 폭격이 계속돼 아이들을 몸으로 덮은 채 어디에 떨어질지 모를 폭탄을 기다렸다”고 했다. 유럽연합(EU) 외교관 중 마지막으로 마리우폴을 떠난 그리스 총영사 마노리스 안드룰라키스는 자국 도착 후 “마리우폴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장기 포위로 100만 명 이상 사망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처럼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도시로 기억될 것”이라며 “내가 본 것을 누구도 보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한 우크라이나 병사는 ‘마리우폴에서의 마지막 메시지’란 동영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며 “약속한 무기와 탄약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째인 24일을 맞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행보가 주목된다. 서방 단결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바이든 대통령은 24일 유럽을 찾아 25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최전선 폴란드를 방문한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20일(현지 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 동맹, 주요 7개국(G7) 정상, 유럽연합(EU) 정상과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25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찾아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 정상들과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군사·경제 지원 움직임을 보이는 중국에 대한 대응도 주요하게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 혼란, 40년 만에 최고치로 솟은 물가 등으로 궁지에 몰렸던 그가 자유세계의 지도자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것. 다만 CNN은 “유럽 순방에서 나올 조치가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중단하도록 하는 데는 부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3일 만에 우크라이나 전체를 점령하려던 계획이 틀어진 푸틴 대통령은 내부 반발에 직면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이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연방보안국(FSB) 해외정보담당 수장 세르게이 베세다 대령을 감금했다고 전했다. 또 정보기관과 러시아군 지도부가 서로 잘못을 떠넘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은 20일 “일부 러시아 수뇌부가 독살, 사고사 등으로 푸틴 대통령을 축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침공 초기 국가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 영국 등 주요국 의회에서 잇달아 지지를 호소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대계인 그는 20일 이스라엘 의회 화상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언급하며 당시 우크라이나가 나치 독일에 맞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24일이 1920년 나치 창당일이라며 “80년 전 우크라이나는 유대인을 구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이제 이스라엘이 결단을 내리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때”라고 촉구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국내외로 피란한 우크라이나인 수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1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유엔난민기구(UNHCR)가 20일(현지 시간) 밝혔다. 해외로 탈출한 피란민은 345만 명을 넘어섰다. 국경을 넘은 피란민 가운데 90%는 어린이, 여성 등 전쟁 취약 계층이다.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등 우크라이나 인접국들의 수용 능력이 한계에 달하면서 인신매매, 현지인과의 갈등 등 피란민 문제가 향후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인구는 약 3700만 명이다. 인구의 4분의 1이 피란민이 된 것은 전례 없는 전쟁 재난이라고 BBC는 전했다. 208만 명 이상의 피란민이 입국한 폴란드는 피란민에 대한 기차 버스 등 대중교통 무료 제공에 대한 현지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또 다른 인접국 몰도바의 경우 ‘수용이 더 이상 어렵다’는 입장을 최근 발표했다. 몰도바는 전체 인구(260만 명)의 10%가 넘는 30만 명의 피란민을 받았다. 일간 르몽드는 “유럽에서 2015년 시리아 난민 400만 명 유입으로 불거진 유럽연합(EU) 내 난민 미루기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고 했다. EU는 4일부터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게 최대 3년 거주 허가권, 취업 접근권을 부여하고 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거리에 널린 시신들 사이로 어린아이 시신까지 보인다. 러시아군에 포위된 도시에 갇혀 눈을 녹여 먹으며 버티던 사람들은 굶주리다 못해 주인 잃은 개까지 잡아먹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풀의 21일(현지 시간) 모습이다. 러시아는 이 도시를 함락하기 위해 쑥대밭으로 만든 뒤 데드라인을 정해 항복을 요구했지만 시당국이 항복을 거부하면서 도시 전체가 괴멸 위기에 놓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때 우크라이나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였던 마리우폴이 이제 거대한 납골당이자 유령도시가 됐다”고 전했다.● 러, 전쟁 성패 직결 마리우폴 함락 집착20일 러시아군은 마리우폴 시에 “21일 오전 5시(한국 시간 오전 11시)까지 무기를 버리고 도시를 넘기라”고 요구하면서 동이 트기 전 항복하면 민간인 대피 통로를 개방해주겠다고 회유했다. 마리우풀 시당국은 항복 대신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인도주의적 대피 통로를 열어라’는 편지를 러시아군에 전달했다. 그러자 러시아 육해공군은 더욱 가혹하게 전방위 폭격을 퍼붓고 있다. 러시아가 마리우풀 함락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번 전쟁의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마리우풀은 2014년 강제합병한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내 친러시아 세력이 세운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잇는 지점에 위치해있어 이 곳을 점령하면 남, 동부 전선이 연결돼 우크라이나 군을 무너트리기가 수월해진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마리우풀이 점령되면 수도 키이우와 제2도시 하르키우까지 남북으로 포위해 함락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 “2차 대전 때 레닌그라드처럼 완전 파괴”마리우폴 인구 47만 명 중 15만 명은 이달 초 도시를 떠났다. 남은 32만 명 중 20만 명도 탈출을 시도했지만 러시아군 포위에 막혀 식량과 수도, 가스, 전기가 모두 끊긴 상태로 3주 넘게 도시에 갇혀 있다. 주민 미콜라 오시첸코 씨는 “지하실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너무 목이 말라 히터에서 있던 물도 빼 마시고 눈도 녹여 먹었다. 개울도 찾아다녔는데 개울에 긴 줄이 생기면 러시아군의 공습 타깃이 됐다”고 했다. 그는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절박한 마음에 아들을 몸으로 감싸지만 아들을 지킬 순 없다는 걸 알기에 완전한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마리우폴에서는 공습으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조차 너무 위험해 거리에는 떠돌이 개들이 방치된 사체를 먹는 모습도 목격되고 있다. 대피할 곳을 찾던 중 폭격을 받아 딸과 4살배기 손녀를 잃은 블라미디르 씨는 BBC에 이같이 말했다. “땅을 봤는데 손녀의 머리가 심하게 훼손돼 있었어요. 바로 옆에 있던 딸도 다리에 중상을 입고 다음날 숨을 거뒀어요. 신이시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제가 이 어여쁜 아이들을 묻다니요.” 학교 지하실 방공호에서 200여명과 함께 대피해있었던 크리스티나 졸라스 씨는 스카이뉴스에 “공습 때 한 여성이 엉덩이에 파편을 맞았다. 구호인력 도착 전까지 그 상태로 꼬박 하루를 버텨야했던 여성은 너무 고통스럽다며 독약을 달라고 부르짖었다”고 전했다. 그는 “잘 때도 폭격이 계속돼 눈뜨면 아이들을 몸으로 덮은 채 어디에 떨어질지 모를 폭탄을 기다렸다”고 했다. 유럽연합(EU) 외교관 중 가장 마지막으로 마리우폴을 떠난 그리스 총영사 마노리스 안드룰라키스는 자국 도착 후 인터뷰에서 “마리우폴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장기 포위로 100만 명 이상 사망한 레닌그라드(현 항구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처럼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도시로 기억될 것”이라며 “내가 본 것을 누구도 보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한 우크라이나 병사는 ‘마리우폴에서의 마지막 메시지’란 동영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며 “약속한 무기와 탄약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