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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횃불 사이로 오토바이 추격전이 펼쳐진다. 대형 장대에 올라탄 배우들은 거미처럼 성큼성큼 무대를 누빈다. 극 중 수시로 등장하는 금속 재질의 차가움과 횃불의 따뜻함은 인간의 양면성을 상징한다. 이달 19일까지 열리는 의정부음악극축제의 개막작인 폴란드 극단 ‘비우로 포드루지’의 야외 연극 ‘맥베스’가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작품은 셰익스피어 원작 맥베스를 각색해 인간의 야망이 불러온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보여준다. 극단은 지금까지 50여 개 국가에서 야외 버전의 맥베스를 공연했다. 7일 한국을 찾은 파벨 슈코타크 연출가(54)는 “폴란드와 한국은 모두 전쟁의 아픔, 상처를 겪은 공통점이 있어 작품에 공감하기 쉬울 것”이라며 “10년 전 한국 관객의 뜨거운 환호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 초연 후 10년이 지났어도 야외 연극은 아직 생소한 장르다. 그는 “사람들이 극장에 오지 않을 때 우리가 관객 앞으로 극장을 가져간다는 게 극단의 취지”라며 “시간, 날씨, 주변 건축물이라는 요소만 고려하면 연극은 어디서든 다 통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도시를 비롯해 레바논,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도 가설무대를 차려 공연했다. ‘연극’이라는 단어도 모른 채 생애 처음으로 극을 접하는 관객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든 교감하게 만드는 힘이 연극에 있다”고 강조했다. 많은 관객이 자유롭게 관람하는 야외극은 극의 원작자인 셰익스피어 활동 시기와 잘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맥베스 연극이 야외에서 공연될 때면 귀족, 평민, 하층민 등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연극을 봤다. 오늘날 야외 연극은 극장이라는 공간 안팎을 구분하지 않으며 누구든 관객이 될 수 있다. 슈코타크 연출가는 “배우들도 매 순간 달라지는 무대와 관객 앞에서 더 생동감 넘치게 연기한다”고 말했다. 작품에 사용하는 10여 개의 장엄한 오페라 음악과 화려한 볼거리는 인류의 폭력성, 잔인함을 더욱 거칠고 광폭하게 표현한다. 극단과 30년째 함께하는 그는 “‘여행사’라는 뜻의 극단 이름처럼 관객을 상상 속 여행으로 초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일 오후 9시, 11일 오후 8시 반. 경기 의정부예총 앞 야외광장(시청 앞 광장). 무료.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법은 구멍이 나 있다. 내가 그 구멍을 메운다. 널 풀어준 법을 원망해라.” 우수한 성적, 온화한 성격, 뛰어난 체력까지 갖춰 동료의 신뢰를 독차지한 경찰대생 김지용. 그는 어린 시절 흉악범에게 어머니를 잃었다. 경찰대에 입학한 뒤 스스로 자경단을 자처하며 법이 제재하지 못하는 범죄자를 찾아가 사적으로 복수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과 범죄자들은 조두순 사건, 아우디 음주 역주행 사건 등 실제 뉴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거의 각색하지 않았다. 웹툰 ‘비질란테(vigilante)’는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고발적 메시지를 담은 ‘다크 웹툰’이 인기를 끌고 있다. 법의 한계, 성폭력, 가정폭력 등 소재도 다양하다. 웹툰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피해자들과 다양한 사회 주체의 목소리가 조명되면서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고 있다. 3월 정식 연재를 시작한 웹툰 ‘27-10’이 대표적이다. 제목인 ‘27-10’은 열 살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성폭력을 스물일곱 살이 되어 말한다는 의미로, 가정 내 성폭력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꺼냈다. 성인이 된 주인공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심리상담을 받을 정도로 변화해 자기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는다. 작가 AJS는 “시작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 어쩌면 영원히 못 할 것만 같던 이야기. 그녀가 지나온 시간의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4월 정식 연재를 시작한 ‘땅 보고 걷는 아이’는 가정폭력과 환영받지 못한 임신, 출산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주인공은 언뜻 보기엔 평범한 10대 소녀지만 이따금씩 어린 시절의 끔찍한 폭행 트라우마로 몸서리친다. 친부모로부터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언어폭력과 폭행을 당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남아 선호로 인한 낙태 문제와 가정폭력의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독자들은 “사회의 썩은 부분을 대놓고 찌르는 웹툰” “묵직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깊이 공감하면서도 “있어서는 안 될 사회악”이라며 분노를 표하고 있다. 다크 웹툰의 댓글 창은 작품 속 사례와 비슷한 본인의 피해를 토로하거나 아픈 현실에 분노하는 독자 의견으로 가득 찬다. 소방관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 ‘1초’에는 작품보다도 더 열악한 소방관의 처우를 꼬집는 현직 소방관들의 의견도 올라왔다. 독자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작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임신한 10대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틴맘’에 대해서는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겪게 될 차별과 고민을 지나치게 가볍게 다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작가 측은 “독자 의견을 반영해 1회 이후 10대 임신을 더 진지하고 섬세하게 다룰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교수(만화평론가)는 “웹툰 독자가 늘고 연령층도 넓어지며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는 등 다양한 분야로 주제가 확장되고 있다”며 “장르 특성상 작가가 자기 고백적 서사로 아픈 경험과 트라우마를 털어놓고 치유도 받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여정 네이버웹툰 리더는 “사회 내 여러 주체의 목소리가 주목받는 만큼 더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법은 구멍이 나 있다. 내가 그 구멍을 메운다. 널 풀어준 법을 원망해라.” 우수한 성적, 온화한 성격, 뛰어난 체력까지 갖춰 동료의 신뢰를 독차지한 경찰대생 김지용. 그는 어린 시절 흉악범에게 어머니를 잃었다. 경찰대에 입학한 뒤 스스로 자경단을 자처하며 법이 제재하지 못하는 범죄자를 찾아가 사적으로 복수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과 범죄자들은 조두순 사건, 아우디 음주 역주행 사건 등 실제 뉴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거의 각색하지 않았다. 웹툰 ‘비질란테(vigilante)’는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고발적 메시지를 담은 ‘다크 웹툰’이 인기를 끌고 있다. 법의 한계, 성폭력, 가정폭력 등 소재도 다양하다. 웹툰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피해자들과 다양한 사회 주체의 목소리가 조명되면서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고 있다. 3월 정식 연재를 시작한 웹툰 ‘27-10’이 대표적이다. 제목인 ‘27-10’은 열 살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성폭력을 스물일곱 살이 되어 말한다는 의미로, 가정 내 성폭력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꺼냈다. 성인이 된 주인공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심리상담을 받을 정도로 변화해 자기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는다. 작가 AJS는 “시작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 어쩌면 영원히 못할 것만 같던 이야기. 그녀가 지나온 시간의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4월 정식 연재를 시작한 ‘땅 보고 걷는 아이’는 가정 폭력과 환영받지 못한 임신, 출산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주인공은 언뜻 보기엔 평범한 10대 소녀지만 이따금씩 어린 시절의 끔찍한 폭행 트라우마로 몸서리친다. 친부모로부터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언어폭력과 폭행을 당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남아선호로 인한 낙태 문제와 가정폭력의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독자들은 “사회의 썩은 부분을 대놓고 찌르는 웹툰” “묵직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깊이 공감하면서도 “있어서는 안 될 사회악”이라며 분노를 표하고 있다. 다크 웹툰의 댓글창은 작품 속 사례와 비슷한 본인의 피해를 토로하거나 아픈 현실에 분노하는 독자 의견으로 가득 찬다. 소방관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 ‘1초’에는 작품보다도 더 열악한 소방관의 처우를 꼬집는 현직 소방관들의 의견도 올라왔다. 독자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작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임신한 10대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틴맘’에 대해서는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겪게 될 차별과 고민을 지나치게 가볍게 다뤘다는 지적이 나왔다. 독자들은 임신을 한 여학생이 자신의 삶을 염려하기보다 남자친구에게 차일까봐 고민하고 여성 혼자 임신을 책임지는 장면 등이 문제라며 연재 중단을 요구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만화평론가)는 “웹툰 독자가 늘고 연령층도 넓어지며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는 등 다양한 분야로 주제가 확장되고 있다”며 “장르 특성 상 작가가 자기 고백적 서사로 아픈 경험과 트라우마를 털어놓고 치유도 받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여정 네이버웹툰 리더는 “사회 내 여러 주체의 목소리가 주목 받는 만큼 더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
“노트르담 성당 화재로 저희 출연진, 예술가들 모두가 큰 슬픔에 잠겼죠. 5년 안에 다시 보게 될 성당의 모습을 소망하며 노래할 생각입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프랑스 오리지널팀이 한국에서 뮤지컬 콘서트를 연다. 공연을 위해 직접 한국을 찾은 연출 필리프 바로(49·사진)는 “공연을 준비하던 중 성당의 화재 소식을 접한 배우들이 슬퍼하면서 한참 동안 서로 위로했다”며 “뮤지컬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이 사건을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과 배우들의 애달픈 연기 안에 녹여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8∼1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1980년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공연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탄생 40주년을 앞두고 기획됐다. 원작 뮤지컬은 초연 이후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라이선스 공연으로 성공을 거뒀다. 콘서트와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세계적으로 ‘레미제라블 붐’을 일으켰다. 작품은 노트르담 성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는 “핵심 배역인 자베르가 넘버 ‘스타스(Stars)’를 노래하는 장면을 비롯해 다양한 장면에서 파리와 노트르담 성당이 주된 공간적 배경”이라며 “또 원작 소설을 집필한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성당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작가로 유명하다”고 밝혔다. 이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품의 오리지널팀에 뽑힌 단원들은 사고 이후 어느 때보다도 공연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르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는 프랑스 오리지널팀 소속 서정시(lyriques) 가수 겸 배우 28명과 40인조 오케스트라 단원이 참여한다. 배우들은 고증을 거친 200벌가량의 19세기 의상을 갈아입으며 뮤지컬 넘버를 노래하고 연기한다. 그는 “서정시 가수 겸 배우들이 전하는 노랫말의 의미와 감성을 느끼는 게 관람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바로는 한국에서 수년 전 개봉한 영화 ‘레미제라블’의 큰 인기를 전해 듣고 한국 공연을 꿈꿔 왔다. “한국에 수많은 레미제라블 팬들이 있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오리지널팀 제작진은 오랜 시간 한국에서 공연을 꿈꾸고 있었죠. 내년 전 세계 투어에 앞서 한국 관객이 레미제라블 콘서트의 서정성, 창의성을 느끼고 작품의 메시지에 공감하길 바랍니다.” 7만∼14만 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흑자 도예가 김시영의 개인전이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강남구 대치동 슈페리어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한중일 전통 흑자 재현에 몰두한 초기부터 추상으로 변해가는 최근 작업까지 대형 달항아리, 최신 조각품 등 총 47점을 선보인다. 찻잔 등 소품도 함께 전시되며 새롭게 시도한 ‘3차원 회화’와 ‘추상을 향하는 조각’도 나온다. 작업은 흙과 불이 만나 이뤄낸 형식적 특성에 집중해 진행했다. 6월 15일까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난 소진(消盡)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무대에서 한 점의 찌꺼기도 남기지 않고 내 모든 걸 소진하는 게 연극이거든요. 미처 저를 다 태우지 못한 날이면 스스로 얼마나 부끄럽던지….”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77)는 최근 낭독극 ‘꿈속에선 다정하였네’에서 ‘혜경궁 홍씨’로 변신했다. 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만난 그는 “낭독극인 만큼 관객에게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인물의 감성을 담아 나를 불태우듯 대사를 뱉어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앞둔 그는 “잠깐 무대 좀 보고 오겠다”며 손수 음향과 무대를 점검했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하게 오가며 완벽을 추구했다. “아무리 작은 극장이라도 관객에게 제 연기가 고루 전달되지 않으면 얼마나 속상한지 몰라요. 2층에 제 대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어 음향을 점검하고 새 장비도 설치했죠.” 작품은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영조의 며느리인 혜경궁이 집필한 ‘한중록’을 재구성한 이야기다. 그의 기억을 따라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대면한다. 배우이자 프로듀서 역할도 겸한 그는 “부부갈등, 남편과 아들의 갈등, 친정의 몰락이라는 비극을 감내해야 했던 여성 혜경궁에게 한(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며 “후대에 그의 말을 전하고 싶어 직접 작가, 연출을 섭외했다”고 설명했다. 숱한 무대 경험에도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책임감 때문에 “평생 했어도 무대는 점점 더 떨린다”고 했다. 그가 끊임없이 새 도전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연극을 안 하면 숨이 막히거든요. 6·25전쟁 중인 아홉 살 때부터 극을 접하기 시작했으니 연극은 이미 운명이자 공기처럼 제 안에 들어와 있어요. 그 말 말고는 설명이 안 되네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할머니 역할 오디션에 도전해 캐스팅된 일화도 털어놨다. “우리 때는 오디션이라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영국에서 온 연출가는 베테랑 배우더라도 오디션은 거쳐야 한다고 했죠. 국내 제작진이 난감해할 때 제가 먼저 오디션을 보겠다고 했어요. 제 나이라고 못할 게 뭐가 있나요.” 배우로서 노력과 도전을 강조하는 그도 타고난 목소리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는 “어머니 목소리를 빼닮아 배우로서 큰 무기를 가졌다”고 말했다. 성우로 먼저 연기를 시작한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 덕택에 지금도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원작자도 제가 영어만 된다면 극 중 마녀 역할을 해주길 원했어요. 최근 봉준호 감독 요청에 영화 ‘기생충’ 소개 영상에도 제 목소리를 담았죠. 외모는 변해도 쉽게 변하지 않는 목소리 덕택에 배우로서 늘 감사하며 삽니다.” 인터뷰 내내 박정자는 앞으로의 도전에 대한 욕심도 내비쳤다. 혜경궁처럼 하고픈 말이 많은 명성황후의 ‘살풀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조상들의 원혼이 있다면 저를 내려다보며 고마워하겠죠. 새로운 배역으로 항상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제 인생이야말로 한바탕의 굿거리입니다.” 12일까지. 3만, 4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난 소진(消盡)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무대에서 한 점의 찌꺼기도 남기지 않고 내 모든 걸 소진하는 게 연극이거든요. 미처 저를 다 태우지 못한 날이면 스스로 얼마나 부끄럽던지…”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77)는 최근 낭독극 ‘꿈속에선 다정하였네’에서 ‘혜경궁 홍씨’로 변신했다. 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만난 그는 “낭독극인 만큼 관객에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인물의 감성을 담아 나를 불태우듯 대사를 뱉어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앞둔 그는 “잠깐 무대 좀 보고 오겠다”며 손수 음향과 무대를 점검했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하게 오가며 완벽을 추구했다. “아무리 작은 극장이라도 관객에게 제 연기가 고루 전달되지 않으면 얼마나 속상한지 몰라요. 2층에 제 대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어 음향을 점검하고 새 장비도 설치했죠.” 작품은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영조의 며느리인 혜경궁이 집필한 ‘한중록’을 재구성한 이야기다. 그의 기억을 따라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대면한다. 배우이자 프로듀서 역할도 겸한 그는 “부부갈등, 남편과 아들의 갈등, 친정의 몰락이라는 비극을 감내해야 했던 여성 혜경궁에게 한(恨)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며 “후대에 그의 말을 전하고 싶어 직접 작가, 연출을 섭외했다”고 설명했다. 숱한 무대 경험에도 그는 긴장의 끝을 놓지 않았다. 책임감 때문에 “평생 했어도 무대는 점점 더 떨린다”고 했다. 그가 끊임없이 새 도전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연극을 안 하면 숨이 막히거든요. 6.25 전쟁 중인 9살 때부터 극을 접하기 시작했으니 연극은 이미 운명이자 공기처럼 제 안에 들어와 있어요. 그 말 말고는 설명이 안 되네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할머니 역할의 오디션에 도전해 캐스팅된 일화도 털어놨다. “우리 때는 오디션이라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영국에서 온 연출가는 베테랑 배우더라도 오디션은 거쳐야한다고 했죠. 국내 제작진이 난감해할 때 제가 먼저 오디션을 보겠다 했어요. 제 나이라고 못할 게 뭐가 있나요.” 배우로서 노력과 도전을 강조하는 그도 타고난 목소리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는 “어머니 목소리를 빼닮아 배우로서 큰 무기를 가졌다”고 말했다. 성우로 먼저 연기를 시작한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 덕택에 지금도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원작자도 제가 영어만 된다면 극 중 마녀 역할을 해주길 원했어요. 최근 봉준호 감독 요청에 영화 ‘기생충’ 소개 영상에도 제 목소리를 담았죠. 외모는 변해도 쉽게 변하지 않는 목소리 덕택에 배우로서 늘 감사하게 삽니다.” 인터뷰 내내 박정자는 앞으로의 도전에 대한 욕심도 내비쳤다. 혜경궁처럼 하고픈 말이 많은 명성황후의 ‘살풀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조상들의 원혼이 있다면 저를 내려다보며 고마워하겠죠. 새로운 배역으로 항상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제 인생이야말로 한바탕의 굿거리입니다.” 12일까지. 3만·4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3년간 공백이라고요? 연극 무대에서 제가 하고 싶은 코미디를 펼쳤던 가장 행복한 시간이죠.”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이 개그 트렌드를 이끌던 시절, ‘정 여사’ 캐릭터로 인기를 끌며 ‘개콘 간판스타’로 불린 정태호(41)는 어느 순간 TV에서 자취를 감췄다. 누군가는 인기가 떨어져 그가 잠시 휴식을 갖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이 꿈을 위해 연극인으로 변신했다. 최근 만난 그는 서울 홍익대 인근 번화가 한복판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정태호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정태호는 “개그콘서트에 출연할 때도 늘 머릿속에서는 나만의 무대와 작품을 꿈꾸며 대본을 썼다”며 “누가 뭐라고 하든 지난 3년은 나에게 가장 행복하고 생산적인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구상한 작품은 끊임없는 변신과 도전 끝에 여장 남자의 하숙집 생활 이야기를 발랄하게 풀어낸 연극 ‘그놈은 예뻤다’로 탄생했다. 지난해 3월 막을 올린 후 계속 공연(오픈 런)하고 있다. 관객은 TV 속 모습과는 사뭇 다른 그의 진지한 연기와 유머에 빠져 유쾌한 에너지를 얻고 있다. 연극인으로 변신하기로 결정했을 때 두려움은 없었을까.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기에 이를 모두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수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려도 2∼3분 내외의 짧은 코너에서 소모적으로 소비되는 점이 안타까워 도전을 밀어붙였죠.” 그토록 원하는 무대를 갖게 됐지만 꾸려나가기는 만만치 않다. 연기는 물론 무대 디자인, 조명까지 모든 것을 손수 챙겨야 한다. 임차료를 포함한 소극장 운영비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관람료 수익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방송 출연 당시 모아두었던 돈과 종종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 받는 출연료도 소극장에 쓰고 있어요. 무대를 직접 준비해 보니 모든 게 준비된 상태에서 개그 연기만 하면 됐던 방송이 고맙기도 하더라고요.” 동료들은 그의 도전을 걱정하면서도 힘을 보탰다. 개그 코너를 함께 짜던 송병철, 김대성 등은 ‘웃기면서 좋은’ 무대를 만든다는 취지에 공감해 함께 작품에 출연한다. 정태호는 “개그맨들 중에는 자신의 개그를 선보일 무대만 있다면 어디든 갈 준비가 된 사람이 많다”며 “개그맨이 하는 연극은 ‘우습고 하찮을 것’이라는 편견을 뒤집고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웰메이드 코미디’를 100회 공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일 공연, 4만5000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허영만 화백의 만화 ‘오! 한강(사진)’을 25년 만에 종이책으로 복간해 출시했다. 이 작품은 해방기부터 6·29선언까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다룬 만화책으로 당대를 살아간 화가 이강토와 그의 아들 이석주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문 장면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대학가에 독재 타도, 민주화 쟁취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88년과 1995년 단행본으로 나왔으나 이후 절판됐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3년 간 공백이라고요? 연극 무대에서 제가 하고 싶은 코미디를 펼쳤던 가장 행복한 시간이죠.”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이 개그 트렌드를 이끌던 시절, ‘정 여사’ 캐릭터로 인기를 끌며 ‘개콘 간판스타’로 불린 정태호(41)는 어느 순간 TV에서 자취를 감췄다. 누군가는 그의 인기가 떨어져 잠시 휴식을 갖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이 꿈을 위해 연극인으로 변신했다. 최근 만난 그는 서울 홍대 인근 번화가 한복판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정태호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정태호는 “개그 콘서트에 출연할 때도 늘 머릿속에서는 나만의 무대와 작품을 꿈꾸며 대본을 썼다”며 “누가 뭐라고 하든 지난 3년은 나에게 가장 행복하고 생산적인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구상한 작품은 끊임없는 변신과 도전 끝에 여장 남자의 하숙집 생활 이야기를 발랄하게 풀어낸 연극 ‘그놈은 예뻤다’로 탄생했다. 지난해 3월 막을 올린 후 계속 공연(오픈 런)하고 있다. 관객은 TV 속 모습과는 사뭇 다른 그의 진지한 연기와 유머에 빠져 유쾌한 에너지를 얻고 있다. 연극인으로 변신하기로 결정했을 때 두려움은 없었을까.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기에 이를 모두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수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려도 2~3분 내외의 짧은 코너에서 소모적으로 소비되는 점이 안타까워 도전을 밀어붙였죠.” 그토록 원하는 무대를 갖게 됐지만 꾸려나가기는 만만치 않다. 연기는 물론 무대 디자인, 조명까지 모든 것을 손수 챙겨야한다. 임대료를 포함한 소극장 운영비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관람료 수익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방송 출연 당시 모아두었던 돈과 종종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 받는 출연료도 소극장에 쓰고 있어요. 무대를 직접 준비해보니 모든 게 준비된 상태에서 개그 연기만 하면 됐던 방송이 고맙기도 하더라고요.” 동료들은 그의 도전을 걱정하면서도 힘을 보탰다. 개그 코너를 함께 짜던 송병철, 김대성 등은 ‘웃기면서 좋은’ 무대를 만든다는 취지에 공감해 함께 작품에 출연한다. 정태호는 “개그맨들 중에는 자신의 개그를 선보일 무대만 있다면 어디든 갈 준비가 된 사람이 많다”며 “개그맨이 하는 연극은 ‘우습고 하찮을 것’이라는 편견을 뒤집고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웰메이드 코미디’를 100회 공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유인택 서울 예술의전당 사장(64·사진)이 임기(3년) 내에 국고보조금 비율을 50%까지 높이고 유료 회원 10만 명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30일 열린 취임 간담회에서 유 사장은 “예술의전당 연간 예산 440억 원 중 27%인 120억 원을 국고보조금으로 받고 있다. 이를 국내외 타 예술기관과 비슷한 수준인 50% 이상까지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1인당 연간 10만 원을 내는 유료회원을 10만 명까지 늘린다면 추가로 100억 원을 마련하고 예술 대중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원 확보에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대학로에서 소극장을 운영하고 영화 및 공연계에서 일하며 40년간 쌓은 네트워크를 총동원할 것”이라며 “평생 ‘을’로 살았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의 공적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예술의전당이 대관 장사, 임대·주차 사업 등 수익 창출에만 골몰한다는 지적을 알고 있다”며 “재무구조를 개선해 순수예술과 기획공연·전시에 더 많이 투자하는 제작극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무대 위 갈릴레이의 모습은 달라도 하늘을 바라보며 진실을 갈구하는 인간의 모습은 똑같습니다.” 2019년 봄, 한국 공연계에 노래하는 갈릴레이와 고뇌하는 갈릴레이가 나타났다. 17일 막을 올린 뮤지컬 ‘시데레우스’에서는 정민 배우(37)가 갈릴레이 역을 맡아 진실을 향한 여정을 힘차게 노래한다. 호평 속에 28일 막을 내린 국립극단의 ‘갈릴레이의 생애’에서는 베테랑 김명수 배우(53)가 진실 앞에서 고뇌하는 갈릴레이를 연기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인물을 연기한 두 배우를 최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숱하게 무대에 오른 두 배우는 이날 처음 만나 “요즘 대세는 갈릴레이인가 보다”라며 조심스레 인사를 나눴다. 갈릴레이를 연기하는 고충을 묻자 이들은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연기하기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래도 진실에 다가가려는 한 인간의 모습에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며 봇물 터지듯 ‘갈릴레이 토론’을 이어갔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갈릴레이의 내적 혼란과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갈릴레이는 당대의 통념에 반하는 지동설을 계속 주장하거나 철회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정민은 갈릴레이에 대해 “학자로서 정의감도 있으면서 명예욕도 강한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김명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기를 펼쳐야 하는데 모순적이고 복잡다단한 갈릴레이의 모습 때문에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머릿속에서 비슷한 모습의 갈릴레이를 떠올리더라도 두 사람이 연기한 갈릴레이는 사뭇 달랐다. 김명수는 “구시대에 발을 딛고 신시대를 꿈꾸는 경계인의 모습을 표현하며 그가 겪었을 법한 고뇌를 심층적으로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정민은 “학문적 혹은 내적인 고민보다는 과학자 케플러와 진실을 위해 한발씩 나아가는 모습 자체를 유쾌하게 노래했다”며 “격한 감정 표현보다는 갈릴레이의 고민을 노래로 차분하게 들려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한참 동안 서로의 작품을 논하던 두 사람의 토론 주제는 자연스레 ‘배우의 삶’으로 이어졌다. 서울예술대 선후배인 이들은 “배우로 산다는 게 녹록지 않지만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했다. 김명수가 “공연은 관객과 호흡하는 매력이 엄청나다”고 하자 정민도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에서 연기하고, 무대 밖에서는 연기를 고뇌하는 우리 모습이 곧 ‘인간 갈릴레이’가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6월 30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1만1000∼6만6000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969년 국내 초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프로그램북은 50년 뒤를 내다본 일종의 ‘예언서’였다. 프로그램북에서 임영웅 연출은 자신을 “고도의 말을 전하는 소년처럼 베케트의 말을 전하는 사람”으로 적었다. 원로 연극인 김정옥은 “(이 작품이) 미래의 고전이 될 것”이라고 썼다. 50년이 지난 오늘 임영웅이 작품을 통해 연극계에 전했던 말들은 한국 연극의 역사가 됐고 ‘고도를 기다리며’는 살아있는 고전이 됐다. 다음 달 극단 산울림 50주년 공연과 ‘연출가 임영웅 50년 기록’ 전시를 준비 중인 임영웅 연출(83)과 그의 딸 임수진(56·서울 마포구 산울림소극장 극장장)을 26일 만났다. 임 연출은 부축을 받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했다. 그러나 사진 촬영을 시작하자 이내 여유롭게 포즈를 취했다. 웨딩사진 같은 다정한 포즈 요청에는 “딸이랑 나랑 나이 차가 몇인데”라며 농담도 건넸다. 50주년을 앞둔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소회를 묻자 그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하고 보는 거지 뭐”라고 답했다. 딸 수진 씨는 “초연 당시 제가 6, 7세여서 극장에 놀러가 마냥 재밌어한 기억이 있는데 벌써 50년 전”이라며 웃었다. 1969년 임 연출은 극단 산울림을 설립하며 “우리말 연극을 하니 순우리말로 하되, 사회에 여운과 울림을 줬으면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방송사 PD와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창단 공연으로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택했다. 작품은 나무 한 그루가 전부인 어느 시골길에서 부질없이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야기다.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을 표현하며 작품성은 물론이고 흥행에도 성공해 해외 초청 공연도 했다. ‘연극은 인간이 그리는 예술’이라는 그의 신념이 녹아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임 연출은 “연극은 항상 새롭기 때문에 직접 디렉팅을 했는데 올해는 몸이 불편해 쉽지 않다”며 “정동환, 안석환, 김명국 등 오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을 믿는다”고 했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 해도 그는 여전히 활동 중인 현역 연극인이다. 떨리는 손으로 손수 명함을 건네며 “극단 산울림 대표”로 본인을 소개한 그는 오랜만에 찾은 무대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둘러봤다. “이건 무슨 소품이냐” “요즘 어떤 작품이 진행 중이냐”고 묻기도 했다. 딸 수진 씨는 “얼마 전까지도 아버지는 여러 공연을 챙겨 보실 정도로 평생 연극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임 연출이 극단에서 쌓아올린 시간은 극장장인 수진 씨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그는 ‘고전극장’ ‘편지콘서트’ 등 연극, 예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수년째 이어왔다. 그는 “부모님 영향으로 늘 연극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미술이 좋아 해외로 떠났다. 근데 나중에야 연극인들의 ‘인큐베이터’ 같은 산울림의 가치를 깨닫고 소임을 다하기 위해 극장을 직접 맡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산울림소극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으며 동생인 임수현 예술감독도 힘을 보태고 있다. 임 극장장은 “가족끼리 닮은 건 많지 않아도 하나를 오랜 시간 지속하는 습관만큼은 닮았다”고 했다. 임 연출이 많은 굴곡 속에서도 50년간 극단을 이끌어왔듯 임 극장장 역시 “신진 극단, 예술가와 함께하는 협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서울 명동예술극장. 5월9일~6월2일. 2만~5만 원. 전시 '연출가 임영웅 50년의 기록展'. 서울 마포아트센터 스튜디오3. 5월7일~25일. 무료.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음악을 닥치는 대로 삼켜 버리며 자신만의 멜로디로 소화해내던 한 천재 소년. 후대에 그는 숱한 명곡을 남긴 ‘악성(樂聖)’ 베토벤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역시 ‘월광’ 같은 서글픈 꿈을 꾸며 자신의 ‘운명’을 치열하게 고뇌한 한 인간이었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는 천재 음악가 베토벤이 아닌 인간 베토벤의 생애를 톺아보며 존재의 의미와 꿈을 그린 작품이다. 동생의 아들인 카를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고 그를 수제자로 키우려 했던 실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창작했다. 피아노 소나타 ‘월광’과 ‘비창’, 교향곡 ‘운명’ 등의 곡은 주요 넘버에 접목했다. 청력 상실로 인한 베토벤의 좌절감, 음악에 대한 사랑과 집착, 카를을 향한 베토벤의 빗나간 사랑 등은 서정적 넘버와 팽팽하게 맞물린다. 지난해 초연에 비해 새로운 넘버 2곡을 추가했다. 서사의 완결성이 높아졌으며 군더더기가 줄어 극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뭣보다 작품 내 여백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무대를 빽빽하게 채우는 음향 효과가 돋보인다. 베토벤이 청력을 점차 잃는 과정에서 소리가 울리는 듯한 ‘이명(耳鳴)’ 효과나 베토벤의 격정을 표현한 천둥소리 등 음향 효과는 몰입을 높인다. 음향과 맞물려 정확한 타이밍에 활용하는 조명 효과는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무대 위에선 작품 내내 피아노 라이브 연주가 계속되며 소극장이 담아낼 수 있는 다채로운 연출의 매력을 뽐냈다. 배우들 간의 ‘찰떡’ 호흡도 눈여겨볼 만하다. 역동적 움직임은 없지만 배우들은 말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말하며 숨 가쁜 호흡을 주고받는다. 대사와 넘버의 경계가 자연스러우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1인 다역 연기도 잘 들어맞는 편이다. 다만 일부 장면에서 배우들의 과도한 감정 연기는 다소 부자연스럽다. 또 베토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마리’가 외치는 페미니즘적 메시지도 전체 서사에선 매끄럽지 못하다. 다만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던 베토벤과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압축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긴 해도 작품이 주는 울림은 크다. 제작진은 “베토벤의 곡이 너무 유명해 가사를 붙이기도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원곡이 주는 무게감을 잘 활용했다. 거대 오케스트라 없이도 피아노 한 대와 배우들의 목소리라는 매력적인 악기로 110분을 꽉 채웠다. 서범석 김주호 이주광 테이 등 출연. 6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4만4000∼6만6000원. 11세 관람가. ★★★☆(★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잠요? 매일 3시간밖에 못 자죠. 무대 위에서 ‘공주’ ‘황후’ 김소현과는 180도 다른 ‘안나’가 되려면 어쩔 수 없죠. 하하.” 뮤지컬 배우 김소현(44)은 다음 달 17일부터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주인공 안나를 연기하기 위해 요즘 잠을 줄이고 있다. 김소현이 연기할 안나는 톨스토이의 동명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남편과 가정을 떠나는 역할이다.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소현은 “자식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안나는 공감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고, 평소 맡던 배역과도 달라 잠을 줄여가며 연습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아이 도시락을 싸는 걸 보면 안나 때문이 아니라 영락없는 ‘워킹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며 웃었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으로 무대에 오른 뒤 ‘명성황후’ ‘마리 앙투아네트’ 등에 출연한 그녀는 대중에게 ‘김소현=공주’란 이미지로 깊게 각인됐다. 이 같은 고정관념은 ‘안나 카레니나’를 앞두고 “김소현이 안나를?” 같은 의문을 낳으며 ‘독’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배우의 일이란 게 원래 내면의 작은 조각을 극대화해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인데 제가 경험하지 못한 삶이라 더 재밌다”며 미소 지었다. 얼마 전까지 뮤지컬 ‘엘리자벳’의 지방공연을 소화해 “피곤하다”는 하소연을 할 때도 눈빛은 밝게 빛났다. 고혹적 매력을 뽐내는 안나가 되기 위해 그는 소설, 영화, 논문도 보고 자료도 찾으면서 안나와 관련된 작은 조각들을 모아 개인 자료집도 만들었다. 그는 “불륜을 저지르는 나쁜 캐릭터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 일상에 갇힌 사람”이라며 “연출가인 알리아 체비크와 ‘엄마’ ‘여성’이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수다 떨 듯이 안나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을 앞두고 그는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몸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그동안 입던 무대 드레스는 옆으로 넓게 퍼지는 풍성한 의상이었다. 반면 안나의 의상은 흔히 말해 ‘깊게 파이는’ 치명적 드레스다. 그는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닌데, 이번에는 노출이 많은 의상이다 보니 많이 못 먹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녀가 이토록 배역과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무대 위 가짜를 가장 경계하기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는 노래나 연기를 잘하고 못하는 것과는 관계없어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진심으로 연기에 임하는 게 가장 중요한 철칙입니다. 배우가 어느 무대에 오르든 진심으로 연기한다면 관객들도 이를 느끼고 함께 감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19년차 배우인 그녀는 공연을 앞두고 오드리 헵번, 마리아 칼라스의 영상을 즐겨 본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레전드라 불리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아우라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그녀는 ‘아름답다’ ‘멋지다’란 수식어보다는 ‘의외다’ ‘새롭다’는 말을 더 듣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의외’라는 말이에요. 안나 역할처럼 자꾸 변신하고 다른 면을 끄집어내며 늘 새로운 레전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 획, 한 획 글자의 의미를 생각하며 만든 캘리그래피(Calligraphy)를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낍니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니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요.” 대학원생 황의현 씨(30)는 요즘 캘리그래피에 푹 빠져 있다. 그의 캘리그래피 작업이 특별한 이유는 한글이나 영어가 아닌 아랍어로 쓴다는 것이다. 황 씨는 “아랍어 글씨는 수많은 점들을 균형감 있게 배치해야 하고 고정된 형태를 벗어나 예술적으로 크게 변형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며 “1∼2시간 동안 몰입해 완성한 캘리그래피는 내게 소중한 예술작품”이라고 말했다. 황 씨는 캘리그래피 동호회 활동을 하며 페르시아어의 글씨체인 ‘파르시’체도 연습하고 있다. 김종훈 씨(28)도 아랍어 캘리그래피 작품을 만든다. 어학 연수로 튀니지에 머무는 동안 일종의 서예학원에 다니며 취미로 아랍어 캘리그래피를 배웠다. 지난해까지는 관심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무료 강습도 했다. 김 씨는 “취직이나 경력 개발과 관련된 활동은 아니지만 삶이 힘들 때마다 펜을 집어 들고 정성스레 글자를 쓰면 자존감도 높아진다”고 했다. 그는 노래 가사, 좌우명 등을 아랍어로 번역해 작품을 만든다. 컴퓨터, 스마트폰에 익숙해져 좀처럼 펜을 쓸 일이 없어진 시대에 펜을 잡고 손으로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쓰는 캘리그래피가 각광받고 있다. ‘쓰기의 귀환’인 셈이다. 캘리그래피는 약 20년 전 유명 소설가들의 책 표지 제목 디자인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적으로도 인지도를 얻은 뒤 꾸준히 발전해 오늘날 제품 브랜드, TV 드라마·다큐멘터리 제목, 생활용품 디자인에 활용되고 있다. 한때 한글이나 알파벳을 예쁘게 쓰는 정도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독립된 예술 장르로 인정받으며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아랍어 캘리그래피를 비롯해 스케치, 드로잉과 결합한 캘리그래피가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작업 도구도 만년필, 색연필, 붓펜, 초크펜, 마커펜 등으로 다양하다. 과거에는 광고, 디자인 분야 종사자들이 캘리그래피를 주로 배웠지만 요즘에는 취미로 캘리그래피를 배우려고 전문학원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서울과 제주에서 필묵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김종건 대표는 “취미로 캘리그래피를 배우는 사람들이 수강생의 20%에서 최근 절반까지 늘었다”고 했다. 취미활동을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립’에만 캘리그래피 관련 활동이 100여 개에 이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소규모로 캘리그래피 작품을 공유하는 모임이 많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산글씨학교를 운영하는 이산 작가는 “중고교생부터 70대까지 매주 수강생 60여 명이 강의를 듣는다”고 말했다. 취미로 시작해 전문 자격증까지 취득하려는 수강생도 적지 않다고 한다.영문 캘리그래피가 한때 큰 인기를 끌었는데, 최근에는 한글 캘리그래피가 더 각광을 받고 있다. 이산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한글은 개인 취향에 따라 자기만의 글씨체를 만들기도 더 쉽고, 무한한 변형도 가능한 게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김종건 대표는 “한글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위해 스위스, 독일, 영국에서 오는 외국인 수강생도 적지 않다”고 했다. 손글씨의 인기는 도서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출판계에 따르면 시를 필사할 수 있도록 만든 ‘필사 시집’이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TV 드라마에 등장했던 필사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김용택 지음·예담)는 2015년 첫 출간 이래 81쇄를 찍었고, 현재 3권까지 출간됐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필사할 수 있는 책도 시인의 탄생 100주년(2017년)을 즈음해 여러 권이 출간됐다. 자신의 생각을 손으로 쓸 수 있도록 디자인한 각종 다이어리북도 사랑받고 있다.김기윤 pep@donga.com·조종엽 기자}
“만화는 형식일 뿐, 본질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에서 출발합니다.” 웹툰 작가 주호민(38)은 끊임없이 변신하는 아티스트다. 작가보다 사람으로서 무언가 보여주기 위해 얼마 전 정식 유튜버로 데뷔한 그는 “만화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긴장되고 설렌다”고 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최근 온라인 아카데미 콜로소(Coloso)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웹툰 스승’으로 또 한 번 나섰다. 주 작가는 “웹툰 작가 지망생들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고민부터 작품 피드백 요청까지 메일을 자주 받는다”며 “콘텐츠 기획, 콘티 제작 과정, 작가 데뷔 방법 등 노하우를 들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 핵심으로 “무엇보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주호민 표’ 웹툰은 독창성과 작품성을 고루 인정받고 있다. 2005년 만화 ‘짬’으로 인기를 끈 그는 ‘무한동력’ ‘제비원 이야기’ ‘신과 함께’ 등 연달아 히트작을 내놨다. 지금도 중국 송나라 시대 요괴를 소재로 한 웹툰 ‘빙탕후루’를 연재하고 있다. 주 작가는 1000만 관객 영화 ‘신과 함께’ 얘기가 나오자 “솔직히 이럴 만한 만화였나 싶다”며 웃었다. 그는 “지나간 생각이 박제된 것 같은 부끄러움에 영화에서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며 “그래도 과학, 다큐멘터리 등 특정 분야를 ‘덕질’해 만든 콘텐츠가 많은 이의 노력 끝에 영상화된 걸 보고 결국 감동해버린다”고 털어놨다. 주 작가는 최근 ‘요즘 감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스탠딩 코미디를 즐겨 본다고 한다. “이게 왜 낡았어?”라는 질문을 가장 경계한다. “스탠딩 코미디야말로 첨예한 사회 이슈를 다루는 첨병이죠. 감각이 낡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를 아는 건 중요해요. 문제를 느끼지 못하면 진짜 낡아빠진 사람이 되거든요. 하하.” 그는 앞으로도 하고픈 작품, 던지고 싶은 이야기가 훨씬 많다. 다만 10여 년 전과 달리 작품관은 살짝 변화했다. “과거엔 ‘밥보다 꿈’을 외쳤다면 지금은 ‘밥 먹어야 꿈꾼다’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청년과 약자에게 위안을 주는 작품을 만들며,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한 ‘언더도그마’에 지나치게 빠졌다는 생각도 해요. 늘 이것저것 재밌는 메시지와 이야기는 물론이고 언젠가는… 발달장애 아들의 이야기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프로 무용수들은 이슬만 먹고 산다?” 이에 대한 무용수들의 답은 “아니요”다. 이들은 “많이 먹어야 춤출 수 있다”고 말한다. 공연을 눈여겨본 관객이라면 무용수가 찰나의 정지 동작 중 배와 등이 달라붙을 정도로 거칠게 숨 쉬는 모습을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꼿꼿하고 마른 몸으로 가볍게 무대를 뛰노는 무용수들은 실로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낸다. 이 때문에 풍부한 에너지 섭취는 필수다. 하지만 동시에 ‘춤선’과 체중을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최근 공연을 마쳤거나 공연을 앞둔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무용단 무용수 4명의 식단을 조사했다. 이들은 아침, 점심에 적게 먹고 저녁에 다양한 음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초긴장 상태에서 배앓이를 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공연 당일 자극적 음식은 금물이다. 소화가 잘되는 초콜릿과 바나나는 ‘최애’(최고 애정) 식단으로 꼽혔다. 근육 강화를 위한 육류 섭취는 필수다. 개인별 식단 비책도 하나쯤은 갖고 있다. 개인차가 있지만 발레단원들의 식단 관리가 가장 엄격하다.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고 발끝으로 온몸을 지탱하며 직접적으로 체중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일주일여 앞둔 국립발레단의 박슬기 발레리나는 공연 시즌에는 아침 식사로 밥 반 공기 정도와 채소, 나물 반찬을 먹는다. 점심은 건너뛰거나 떡 한 조각과 우유로 대신한다. 초콜릿이나 이온음료도 수시로 먹는다. 일본에서 구한 ‘흑설탕·소금 혼합 제품’도 좋은 에너지원이다. 연습이 끝나면 닭고기를 즐긴다. 공연 2시간 전에는 계란과 채소가 든 샌드위치를 꼭 먹는다. 그는 “운동량이 적은 비시즌에는 에너지 소비가 적어 먹는 양이 확 줄어든다”며 “팔만 만져 봐도 체중을 정확히 맞힐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공연을 마친 유니버설발레단의 사공다정 발레리나는 공연하는 날 아침에 사과 반쪽과 물 한 잔, 점심식사로는 커피, 우유, 작은 초콜릿만 섭취한다. 공연이 끝나면 연두부로 단백질을 보충한다. 기름 없는 소고기 부위를 조금 먹을 때도 있다. 그는 “학창 시절 부모님께 ‘밤에 라면을 먹고 싶다’고 졸라도 허락해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습관이 돼 자극적 음식과 야식은 피한다”고 말했다. 한국무용수와 현대무용수는 “발레 쪽보다는 제약이 덜할 것”이라면서도 엄격히 식단을 관리한다. ‘넥스트 스텝Ⅱ’ 공연을 앞둔 국립무용단의 김미애 무용수는 “아침에는 빵 한 조각, 점심은 탄수화물 종류, 저녁에는 육류, 단백질을 섭취하고 틈틈이 초콜릿을 먹는다”고 했다. 다만 공연 당일은 무조건 죽만 먹는다. 소화불량으로 공연에 지장이 생긴 적이 있어 이런 철칙이 생겼다. 그는 “공연용 한복을 입기에 노출이 적은 편이라 부담이 덜해도 공연만 끝나면 어김없이 식욕이 돌아온다”며 웃었다. 다음 달 3일 막이 오르는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공연을 앞둔 국립현대무용단의 서일영 무용수는 아침 식사 비책으로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끓인 누룽지와 바나나를 꼽았다. 점심에는 바나나 5, 6개만 먹는다. 그는 “삼겹살, 치킨, 피자는 저녁에 주로 먹는다”며 웃었다. 높은 열량 섭취에도 매일 연습에서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그는 무대에서 완벽한 근육질 몸매를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전 연극계에서 비주류라고 생각해요. 연극을 사랑하는 배우이자 예술감독으로서 사회 비주류가 느끼는 민감한 문제에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축제를 만들고 싶습니다.” 큰 키에 백팩을 짊어지고 1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 들어선 그는 연극만 생각하는 대학로 청춘의 모습이었다. 30년 넘게 배우로 연극무대를 누빈 남명렬 씨(60)가 올해 서울연극제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신진 작가부터 스타 연출가까지 좋은 작품들을 출품해 10편만 골라야 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어요. 메시지는 물론이고 예술적 완성도를 주로 고려했습니다.” 선정된 작품을 설명하는 동안 그는 처음 무대에 오른 대학생처럼 눈이 빛났다. 올해 40돌을 맞은 서울연극제는 이달 27일부터 6월 2일까지 이어진다. 대학로 일대에서 혐오, 젠더, 통일 등을 주제로 한 작품 10편이 무대에 오른다.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의 이야기를 토대로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모크라시’(이동선 연출)가 축제의 문을 연다. 20세기 초 중국 한 인력거꾼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돌아보는 ‘낙타상자’(고선웅 연출), 장강명 소설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인터넷 여론조작을 다룬 ‘댓글부대’(이은진 연출)가 관객들을 만난다. 죽기 직전 한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순간의 중첩을 통해 우리의 시공간을 돌아보는 ‘중첩’(이우천 연출)을 폐막작으로 준비했다. 그는 “지금, 현재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를 말하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연극 ‘오이디푸스’를 비롯해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영업사원으로 회사를 다니다 35세에 무대에 뛰어들었는데 운 좋게도 훌륭한 연출가, 작가를 만나 계속 연기할 수 있었어요. 무명 시절에는 어떻게든 연출가의 눈에 띄고 싶어 대학로를 배회하거나 꼭 공연장 근처에서 책을 읽었죠.”(웃음) 그는 ‘팬덤 문화’가 생긴 요즘 연극계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팬들을 몰고 다니는 후배를 보면 ‘내가 2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라고 우스갯소리도 해요. 그만큼 연극계가 짊어진 책임감이 더 커진 거죠. 연극은 누구보다 먼저 불편한 문제에 시선을 돌리고 내적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프로 무용수들은 이슬만 먹고 산다?” 이에 대한 무용수들의 답은 “아니오”다. 이들은 “많이 먹어야 춤출 수 있다”고 말한다. 무용을 눈여겨 본 관객이라면 찰나의 정지 동작 중 배와 등이 달라붙을 정도로 거칠게 숨 쉬는 무용수의 모습을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꼿꼿하고 마른 몸으로 가볍게 무대를 뛰노는 무용수들은 실로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낸다. 때문에 풍부한 에너지 섭취는 필수다. 하지만 동시에 ‘춤선’과 체중을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최근 공연을 마쳤거나 공연을 앞둔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무용단 무용수 4명의 식단을 조사했다. 이들은 아침, 점심에 적게 먹고 저녁에 다양한 음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초긴장 상태에서 배앓이를 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공연 당일 자극적 음식은 금물이다. 소화가 잘 되는 초콜릿과 바나나는 ‘최애’(최고 애정) 식단으로 꼽혔다. 근육 강화를 위한 육류 섭취는 필수다. 개인별 식단 비책도 하나쯤은 갖고 있다. 개인차가 있지만 발레단원들의 식단관리가 가장 엄격하다.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고 발끝으로 온몸을 지탱하며 직접적으로 체중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약 일주일 뒤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앞둔 국립발레단의 박슬기 발레리나는 공연 시즌에는 아침 식사로 밥 반 공기 정도와 야채, 나물 반찬을 먹는다. 점심은 건너뛰거나 떡 한조각과 우유를 섭취한다. 초콜릿이나 이온음료도 수시로 먹는다. 일본에서 구한 ‘흑설탕·소금 혼합 제품’도 좋은 에너지원이다. 연습이 끝나면 닭고기를 즐겨 먹는다. 공연 2시간 전 계란과 야채가 든 샌드위치를 꼭 먹어야 하는 징크스도 생겼다. 그는 “운동량이 적은 비시즌에는 에너지 소비가 적어 먹는 양이 확 줄어든다”며 “팔만 만져 봐도 체중을 정확히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공연을 마친 유니버설발레단의 사공다정 발레리나는 공연하는 날 아침에 사과 반쪽과 물 한잔, 점심식사로는 커피, 우유, 작은 초콜릿만 섭취한다. 공연이 끝나면 연두부로 단백질을 보충한다. 기름 없는 소고기 부위를 조금씩 먹을 때도 있다. 그는 “학창시절 부모님께 ‘밤에 라면을 먹고 싶다’고 졸라도 허락해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습관이 돼 자극적 음식과 야식은 피한다”고 말했다. 한국무용수와 현대무용수는 “발레보다는 제약이 덜할 것”이라면서도 엄격히 식단을 관리한다. ‘넥스트 스텝Ⅱ’ 공연을 앞둔 국립무용단의 김미애 무용수는 “아침에는 빵 한 조각, 점심은 탄수화물 종류, 저녁에는 육류, 단백질을 섭취하고 틈틈이 초콜릿을 먹는다”고 했다. 다만 공연 당일은 무조건 죽만 먹는다. 소화불량으로 공연에 지장이 생긴 적이 있어 이런 철칙이 생겼다. 그는 “공연용 한복을 입기에 노출이 적은 편이라 부담이 덜해도 공연만 끝나면 어김없이 식욕이 돌아온다”며 웃었다. 다음달 3일 막을 올리는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공연을 앞둔 국립현대무용단의 서일영 무용수는 아침 식사 비책으로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끓인 누룽지와 바나나를 꼽았다. 점심에는 바나나 5, 6개만 먹는다. 그는 “삼겹살, 치킨, 피자는 저녁에 주로 먹는다”며 웃었다. 높은 열량 섭취에도 매일 연습에서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그는 무대에서 완벽한 근육질 몸매를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