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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남녀 성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시 인구 관련 통계를 보고 나서였다. 한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는 서울에서 20대는 물론, 30대 인구도 여성이 많았기 때문. 통상 ‘좋은 일자리들’이 있다는 서울에 젊은 여성 인구가 남성에 비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이 채용 시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물론, 일부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는 남성 지원자를 뽑으려고 우대책까지 펴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인 셈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직장이라 부르는 대기업과 증권사가 몰려 있는 서울의 젊은 인구는 여성이 더 많았던 것. 그렇다면 전국 성비는 어떨까 싶어 통계를 뒤지기 시작한 것이 5월 12일 ‘동아일보’ 토요판에 실린 ‘역전된 성비…그 많던 남자애들은 어디 갔을까’의 기사가 됐다. 실제로 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하다던 1980년대 중반,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인구의 성비도 자연 성비에 가깝도록 차츰 조절되고 있다. 기사에는 싣지 못했지만 남녀 성비 불균형은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출생 성비는 자연 성비였지만 10대가 되면서 남녀 성비가 110 대 100까지 벌어지는 세대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성비는 일정 시간이 흐르며 매번 제자리로 돌아갔다. 특이한 사회 현상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일부 독자에게 이 기사는 다르게 읽혔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댓글창이 남녀 성대결 장이 된 것. 기사 내용과 관계없는 비방이 오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기사 내용이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가끔 눈에 띄었다. 이에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일부 댓글 내용을 반박하는 글을 실었다. 국내 통계는 물론, 세계 통계까지 사용해 남녀 성비 현상을 분석한 것. 다음은 황 기자의 글 전문이다.원래 자연 상태에서는 남자가 많아야박세준 기자가 ‘주간동아’ 이번 호에 ‘그 많던 남자애들은 어디 갔을까’라는 제목으로 재미있는 기사를 썼습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이 기사를 찾아 읽다 보니 이 기사에 본문만큼 재미있는(?) 댓글이 달렸네요. “원래 자연 상태에서는 여성 성비가 높고, 그렇기 때문에 남성 성비가 높은 경우는 다른 이유들로 인해 비정상적인 상황이지요. 이런 상식 수준의 전제도 없는 논지 전개로 글을 쓰는 기자의 수준도 문제이지만, 이런 글을 데스크에서 거르지 못하는 동아일보의 데스크 수준도 참 안타깝습니다. 어쩌다 동아일보 인력이나 글 수준이 3류 인터넷 매체 수준으로 전락했는지.” 일단 이 기사는 주간동아 기사지만 동아일보에도 ‘[토요기획]어릴 적 모자라던 여자 짝꿍, 커서 보니 남녀 짝이 얼추 맞네’라는 제목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니 동아일보 데스크 운운한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원래 자연 상태에서는 여성 성비가 높(다)’는 주장은 맞을까요? 원래 남자아이가 더 많이 태어난다? 아닙니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가장 최신 시점(2016)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여자아이 1000명이 태어날 때 남자아이는 1073명이 태어났습니다. 물론 전 세계 데이터라고 해서 ‘자연 상태’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각각 인구 13억 명이 넘는 중국이나 인도에 여전히 남아선호사상이 아주 심하니까요. 2016년에 여자아이 1000명이 태어날 때 중국에서는 남자아이가 1152명, 인도에서는 1107명 태어났습니다(참고로 한국은 1070명으로 세계 평균보다 3명 적었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이 여전한 나라에서 남자아이가 많이 태어나는 건 (우리도 경험했던 것처럼) 성별 초음파 검사→딸로 판명→임신중절수술 과정을 밟기 때문. 그렇다면 임신 시점 성별 분포를 알 수 있다면 이를 ‘자연 상태’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2015년 4월 12일자에 이를 다룬 연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등에 속한 연구진은 수정 후 3~6일이 지난 배아 13만9704개를 분석해 이 중 50.2%가 남자아이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를 1000명 단위로 바꾸면 여아 1000명이 태어날 때 남아 1008명이 태어나는 셈이 됩니다. 이 정도면 거의 일대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자연 상태에서도 남자아이가 더 많은 겁니다. 자연스레 ‘원래 자연 상태에서는 여성 성비가 높(다)’는 주장은 힘을 잃고 맙니다. 한국 사람들이 틈만 나면 찾아 비교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어떨까요? 역시 세계은행 자료에서 OECD 평균 출생 성비는 여아 1000명당 남아 1053명(2016년 기준)입니다. 이 정도면 ‘원래 자연 상태에서는’ 남자아이가 더 많이 태어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실제로 보통은 여아 1000명당 남아 1030~1070명이 태어날 때를 ‘자연 성비’라고 부릅니다. 남자가 더 많이 태어나기 때문에 전 세계 인구 가운데서도 남자가 더 많습니다. 계속 인용하고 있는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 가운데 50.4%가 남자입니다. 그것도 갈수록 남자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네, 맞습니다. 남자가 더 많이 죽는다는 점입니다. 50.4%를 역시 1000명 단위로 환산하면 여자 1000명당 남자 1016명입니다. 태어날 때는 여자 1000명당 남자가 1050명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는데 인구 구성에서는 남자가 이보다 더 적으니까요.전 세계 인구 중에서도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다한국도 당연히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이 포스트를 처음 쓰게 만든 주간동아 기사에서 인용하면 :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현재 20대 후반~30대 초반 남성의 유년 시절인 1990년 유년기 남아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35.5명으로 여아(21.2명)보다 높다. 이들이 10대가 되면서 남성 사망률은 61.3으로 여성(30.1)보다 배 이상 커진다. (중략) 자살률도 남성이 훨씬 높다. 통계청의 ‘2015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자살로 사망한 남성은 9559명으로 여성(3954명)보다 훨씬 많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로 보면 남성이 37.5명, 여성이 15.5명으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네이버에는 이 기사에 “재미있는 기사인 줄 알았는데 남자가 많이 죽어서 성비가 맞춰져 간다는 기사. 살벌하네”라는 댓글을 남기신 분도 계셨는데 살벌한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게 ‘자연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남자가 더 많이 죽으니까 더 많이 태어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건데 요즘에는 예전만큼 많이 죽지 않아서 전 세계적으로 남자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거니까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사회경제적 환경이 성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겁니다. 미국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연구팀이 영국학술원을 통해 펴낸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60년 52.7%였던 남아 출생 비율은 1963년 51.0%까지 떨어졌습니다. 1960년에는 여아 1000명당 남아 1114명이 태어났는데 1963년에는 1040명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이 기간에 중국 역사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대약진 운동’(1958~62)이었습니다. 이 운동 목표는 ‘잘살아보세’였지만 실제로는 3000만 명이 굶어 죽는 ‘대기근’으로 이어졌습니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남아 출산이 줄었던 겁니다. 거꾸로 억만장자는 아들을 많이 낳습니다. 엘리사 캐머런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대 교수 연구팀이 2009년 1월 14일자 ‘플로스 원(PLos One)’을 통해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억만장자, 특히 남자 억만장자는 아들을 많이 낳습니다. 남자 억만장자는 자식 중 65%가 아들입니다. 아들이 많은 억만장자라 하면 역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떠오릅니다. 그는 아들만 6명을 뒀습니다(한 명은 생후 10주 만에 숨졌습니다). 생전에 한국 최고 부자였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혼외자 두 딸을 제외하면) 슬하에 8남 1녀를 뒀습니다. 연구진은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에서 이유를 찾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임신 당시 호르몬 분비(부모 모두)가 자녀 성별 결정에 영향을 끼칩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으면 아들을 낳을 확률이 올라가는 식이죠. 그런데 이 남성호르몬은 성취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억만장자는 이런 성취욕이 아주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테스토스테론 분비도 많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많이 낳게 된다는 겁니다.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조지프 가너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원 박사가 샌디에이고동물원 포유류 번식 기록을 분석한 결과 암컷은 자기 건강 상태와 짝짓기 상태였던 수컷의 계급 등을 고려해 새끼 성별을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식 환경이 좋아서 자기 건강 상태가 좋거나 (혹은 동시에) 수컷 계급이 높을수록 수컷 새끼를 많이 낳았습니다.왜 아들이 선택 대상인가이 정도가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딸이 아니라 아들을 낳을지 말지 선택해야 하는 걸까요? 그건 자식을 낳는 일이 기본적으로 유전자를 남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딸을 통해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에 확률이 떨어지는 아들이 선택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건 왜 그럴까요? 일단 세상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많습니다. 그러니 남자에게 기본적으로 ‘연애=경쟁’입니다. 게다가 여자보다 남자가 바람을 피울 확률도 더 높습니다. 남자가 실제 성비보다 더 치열하게 경쟁에 매달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경쟁에서 실패하면 유전자를 남길 확률이 제로(0)에 머물 수도 있는 게 아들 인생입니다. 할리우드에서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라는 영화를 만들어도 ‘40살까지 못해본 여자’는 만들지 않는 이유가 다 있는 법입니다. 반면 딸을 통해서는 유전자를 남기기가 상대적으로 쉬워도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가 어렵습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옛 소련에 살던 바실리예프 부인이 자녀 69명을 낳은 게 역대 최다 출산 기록입니다. 그의 남편은 두 번째 부인을 통해 자녀 18명을 더 얻었습니다. 심지어 1672~1727년 모로코를 다스렸던 물레이 이스마일 이븐 샤리프 술탄은 자녀를 867명까지 두기도 했습니다(예상하시는 것처럼 아들이 525명으로 60.6%였습니다). 요컨대 어떻게든 유전자를 남길 확률을 높이겠다면 딸을 낳는 게 효율적인 선택이지만, 아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아들을 낳는 게 효율을 높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절 ‘무조건 아들 낳고 보자’는 모드였고 그 결과…. 줄었다는 성비가 1985~1989년생 여자 1000명당 남자 1107명, 1990~1994년생 1056명입니다. 전 세계 통계와 비교하면 1985~1989년생은 여전히 출생 자연 성비도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동아일보 기사 제목과 달리 여전히 짝이 얼추 맞지 않고, 여러분이 연애를 못 하는 건 꼭 여러분 잘못이 아닙니다. 전국에 계신 모든 총각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5월 12일 토요판 기사에 논쟁적 댓글이 많이 달린 이유는 최근 남녀 성대결 분위기가 심화됐기 때문. 과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디시인사이드’ 등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행되던 여성 혐오에 대한 미러링으로 ‘남성 혐오’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메갈리아’ ‘워마드’ 등 페미니즘을 자처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관련 내용을 주 콘텐츠로 세를 넓혀왔다. 여성 가운데 일부를 ‘김치녀’ ‘된장녀’라고 하는 것을 꼬집어 한국 남성을 ‘한남충’(한국 남자와 벌레의 합성어)으로 부르는 식이다. 이 중 워마드는 2015년 메갈리아 운영진이 남성 성소수자 비하 용어 사용을 금지시키자 이에 반발하고 나간 이용자들이 다시 만든 커뮤니티다. 이들은 활동 초기 사이트 메인 화면에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우월주의와 남성혐오 커뮤니티라고 정체성을 밝혔다. 이후 메갈리아는 활동이 저조해 문을 닫았다.불길에 섶을 지고 뛰어들었다워마드의 미러링은 가끔 정도가 심해 논란이 되곤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호주의 한 남자 어린이를 성폭행했다는 글과 사진이 올라왔고 해당 글 작성자는 호주 현지에서 체포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5월 1일에는 홍익대 회화과 누드 크로키 수업의 남자 누드모델을 몰래 촬영한 사진이 올라와 10일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논쟁이 커졌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 범죄는 9일 만에 검거하면서 수많은 여성 대상의 불법촬영 범죄는 구속 등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 5월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여성도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이 순간에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물이 단순한 인터넷 게시물로 소비되고 신고해도 2차 가해만 돌아온다. 피해자가 여성이면 넘어가고 남성이면 빠르게 수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불법촬영(몰래카메라) 관련 범죄 검거율은 2016년 기준 94.6%이다. 관련 문제로 남녀 논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남녀 성비 관련 기사가 올라오니 댓글창에는 불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한 남성 이용자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댓글은 “한국에서 젊은 남자로 사는 것이 점차 팍팍해진다. 군대도 다녀와야 하고, 위험한 일은 도맡아 한다. 얼마 전까지는 당연한 성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한국 남성 전체가 문제라며 혐오 표현과 범죄를 일삼는 일부 여성들 때문에 화가 난다. 나야말로 한국이 싫어 이제는 떠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반하는 주장의 댓글은 대부분 해외 매매혼 등의 이유로 통계가 왜곡됐다는 주장을 폈다. 다른 누리꾼은 “기자도 어쩔 수 없는 한남. 한남들 매매혼 많이 하는 것은 쏙 빼고 여성이 많아졌다고? 니들이 사온 베트남 여자들은 안 세느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사에도 언급한 것처럼 인용된 통계는 한국에 사는 한국 국적자만 해당한다. 한국인과 결혼하더라도 국적을 취득하려면 귀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남아선호가 처음도 아닌데남아선호사상 탓에 어린 시절 성비가 맞지 않았지만, 결혼 적령기를 전후해 성비가 맞아가는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1980년대 이전에도 남아선호사상이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해방 이후 세대 대부분의 남녀 평균 출생 성비는 107 대 100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 성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완화되고 각 세대의 결혼 적령기에 다다르면 성비가 얼추 105~100의 자연 상태를 찾아간다. 남성 사망률이 여성에 비해 높은 것은 전 연령적 현상이기 때문. 1960년에는 5년 전만 해도 110을 넘던 당시 20대 초반 남녀 성비가 106으로 맞춰졌다. 이 성비는 이들이 20대 후반이 된 1965년에는 98.93까지 떨어진다. 조사의 문제인지, 출생 이후 남녀 인구가 꾸준히 늘어 성비가 110까지 오르다 떨어지는 사례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세대가 해방둥이라 부르는 1940~1945년생이다. 이들의 남녀 출생 성비는 105~107 대 100 정도인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1955년 이들이 10대가 되자 성비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아이들의 출생 성비만큼이나 큰 격차를 보였다. 10~14세는 110.3, 15~19세는 110.5까지 성비 불균형 현상이 일어난 것. 통계청에 따르면 출생신고를 늦추던 당시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당시 시대 풍조를 생각하면 남아가 여아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을 확률이 높다. 당시 굶어 죽는 사람도 많던 시절이라 남아가 여아에 비해 많이 살아남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과거에도 기성세대의 남아선호사상으로 젊은 층의 남녀 성비 불균형 문제가 상존해왔던 것. 한편 이들의 성비 조절에는 외부 환경의 변화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베트남전쟁 파병 등을 겪으며 통계상 성비가 조절되는 듯한 모습이 관측된다. 1960년까지 이들의 남녀 성비는 110~109 대 100 정도였으나 10년이 지난 뒤에는 99~106으로 조정됐다.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법’, ‘폐지’, ‘처벌’. 지난해 8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키워드는 이 세 가지였다. 10일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의 청와대 청원 17만4545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입법 요청이나 법률의 폐지, 부당행위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적폐청산’ 드라이브와 관련 있는 청원이 많았던 것. 청원 게시판 출범 초기 주를 이뤘던 ‘떼쓰기’식 청원은 점차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인권·성평등’ 분야가 가장 많은 공감 청와대 청원 게시판의 특징은 ‘청원’과 ‘참여’의 구분이다. 청원은 누구나 올릴 수 있지만, 20만 명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낸 청원에 대해서만 청와대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본보가 청원 제목과 참여자 수를 합산해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낸 키워드는 ‘법’(365만5174건), ‘폐지’(344만7800건), ‘처벌’(231만7495건)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청원 제목만 조사한 결과 7번째로 많았던 ‘이명박’(7위·9896건)은 참여자 수를 합산한 결과에서는 2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한 청원은 많이 올라왔지만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한 것. 이에 청와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불편하거나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과 관련한 청원이 많은 참여를 얻는 양상이 뚜렷하다. 일종의 ‘집단 지성’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청원 운용 초기 말도 안 되는 청원이 잇따라 올라왔던 것에 비해 자정 기능이 생겼다는 자평이다. 25만여 명이 참여한 ‘전안법(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개정 또는 폐지’ 청원과 21만여 명이 공감한 ‘주취감형(술을 먹으면 형벌 감형) 폐지’ 청원이 이런 기류를 반영한 대표적 청원으로 분류된다. 분야별로는 ‘인권·성평등’(394만2202건), ‘문화·예술·체육·언론’(267만7277건), ‘정치개혁’(237만1841건) 분야가 시민들의 참여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청원 게시판은 청원을 올릴 때 16개 분야(기타 제외)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20만 명 이상이 참여해 청와대가 답변을 내놓은 ‘낙태죄 폐지’,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인권·성평등 분야의 대표적인 청원이다. 청원 게시판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민들이 주목하는 이슈의 양상이 청원 게시판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북한 귀순 병사 치료를 계기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지난해 11월의 청원 게시판 최다 키워드는 ‘권역외상센터’였다. 이런 여론은 야간에도 출동이 가능한 ‘닥터 헬기’의 아주대병원 추가 배치로 이어졌다. 또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이 오락가락했던 1월에는 ‘가상화폐’가,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의 팀워크 논란이 불거졌던 2월에는 ‘김보름·박지우’가 각각 월별 최다 키워드로 집계됐다.○ ‘청와대가 다 해결해 달라’는 식의 청원도 여전 그렇다고 청와대의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2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청원 게시판과 관련해 “고충을 말씀드리자면 (청와대가)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문제가 많이 올라온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2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청원 중 ‘국회의원 전원 위법사실 전수조사’, ‘국회의원 시급의 최저시급 책정’, ‘나경원 의원의 평창올림픽 위원직 파면’ 등은 청와대 권한 밖의 청원들이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을 맡았던 정형식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은 이 청원을 청와대가 법원에 전달해 삼권분립 위반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답변 기준인 ‘20만 명 참여’를 충족시키는 청원이 속속 늘어나는 점도 청와대의 고민이다. 지난해에는 답변 기준을 충족시킨 청원이 6건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벌써 27건에 달한다. 또 사회적 혐오나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청원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욕설 및 비속어를 사용하거나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 내용이 담긴 청원은 삭제하는 규정을 새롭게 도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답변 대상이 늘어나고 있지만 20만 명이라는 기준을 높이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대신 청원 게시판에 대한 자체 모니터링은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황규인 kini@donga.com·한상준 기자}
24일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1면에 △포털 뉴스장사-댓글조작 방지법 만든다(동아일보) △3野 “포털의 뉴스·댓글 장사 막겠다”(조선일보) △네이버 ‘댓글 장사’ 공론장을 비틀다(한겨레) 등 댓글 여론 조작 사태와 관련해 네이버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네이버가 편집해 기사 10건을 올리는 ‘네이버 모바일 뉴스판’에서는 관련 기사를 단 한 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오전 6시, 9시, 낮 12시 등 시간대별 기사 배열 이력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네이버 측은 직원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등도 기사 배열에 개입한다고 하지만 네이버의 자의적인 편집이 강하게 반영된 게 아닌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네이버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대응에서도 열흘 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달 13일, 더불어민주당원이 댓글 조작에 연루됐다는 보도가 나온 이래 여론 왜곡 등 각종 비판이 빗발치는데도 네이버에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알림, 해명 자료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24일이 돼서야 네이버는 1인당 클릭할 수 있는 댓글 공감 수를 제한(현재 무제한)하고 댓글을 연달아 작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마저도 언론에 흘리듯 나온 얘기다.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다. 자사에 불리한 대외 이슈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해 왔다. 지난해 특정 대선 후보 인물명 검색 시 자동완성 서비스 오류, 진경준 전 검사장 등 특정인 자녀들에 대한 인턴 특혜 의혹 등의 이슈가 있을 때마다 즉각 사과문을 올려 발 빠르게 대처했다. 구글코리아가 ‘구글이 세금을 안 내고 있다’는 이해진 전 네이버 의장의 지적에 반박하자, 한성숙 네이버 대표 명의로 7000자 분량의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은 자사의 상업적인 이익에 핵심적인 댓글 문제가 이슈화되자 우박이 지나갈 때까지 뭉개고 보자는 심리가 발동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처럼 네이버의 책임 회피와 미봉책을 되풀이하는 행태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23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해진 총수는 ‘뉴스 알고리즘’을 공개하고 댓글 시스템,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대한 정비를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이 없다”며 “포털 중심의 뉴스 소비 구조 왜곡이 이번 댓글 조작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네이버는 2004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뉴스 댓글을 신설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트래픽을 많이 유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해 왔다. 2007년 댓글 추천 기능을 공감·비공감으로 세분했고 2012년 댓글 순서를 최신순, 답글 많은 순서로 나눴다. 2013년에는 공감 수에서 비공감 수를 뺀 ‘호감순’ 기준을 추가했고 2015년에는 댓글이 보이는 초기 설정 기준(디폴트값)을 최신순에서 호감순으로 바꿨다가 2017년 6월에는 공감 비율순(공감 수 비율이 높은 순서로 나열)을 추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네이버가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질타가 끊이지 않자 네이버는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네이버는 지난해 11월 댓글을 순공감순(공감 수가 높은 순서로 나열)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댓글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탓에 이번에 드루킹, 서유기 같은 여론 조작 세력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또 네이버는 올해 3월 외부 자문기구인 ‘댓글정책이용자패널’을 발족해 댓글 관련 정책을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이슈가 생길 때마다 네이버가 네이버뉴스편집자문위원회, 기사배열공론화포럼, 스포츠이용자위원회 등 외부 기구를 양산하며 비판의 화살을 바깥으로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패널 구성원도 개인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아 ‘깜깜이 운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송시강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외부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네이버가 사실상 스스로 언론 역할을 하려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한다”며 “뉴스 기사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기성 언론과의 소통을 통해 네이버가 유통 과정에서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분 등을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상반기(1∼6월) 중 토론회를 열어 뉴스 배열 원칙과 알고리즘 공개 수준, 이용자 인식 등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내놓겠다”고 말했다.신무경 yes@donga.com·김성규·황규인 기자}
겨울올림픽은 눈과 얼음의 축제다.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눈과 얼음이 차고 미끄러운 성질을 버리는 건 아니다. 차고 미끄러우면 다치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올림픽 현장에서 다친 사람은 총 7000명이 넘는다. 평창 올림픽 최고의료책임자(CMO)를 맡은 이영희 연세대 원주의료원장(61·사진)은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보통 겨울올림픽 때는 올림픽 패밀리가 1만 명이 넘게 의료진을 찾는데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에 따라 아직 정확한 숫자는 밝히기 어렵지만 이 중 30% 정도(2000여 명)가 선수라고 보면 된다. 나머지는 운영요원과 자원봉사자, 관객 등”이라고 설명했다. 이 인원에는 부상자뿐 아니라 감기 같은 내과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도 들어간다. 종목별로는 설상인 스노보드 경기장에서 중증 부상자가 제일 많이 나왔다. 이 원장 병원은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발생한 부상 케이스를 총 11건 받았고 그중 6건을 수술했다고 한다. 이 원장은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 현장 처치부터 1차 처치(경기장 의무실), 병원 이송, 처치까지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 이뤄져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 원장은 대회 CMO를 맡으면서 경험 부족을 걱정했다. 의료 수준은 최고였지만 각 경기장 상황별 대처 노하우가 부족했다. 2016년에 테스트이벤트로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 한국은 올림픽 기준을 충족하는 설상(雪上) 대회를 한 번도 치른 적이 없었다. IOC와 FIS는 경기장에서 부상자가 나왔을 때 필수적인 수술 같은 ‘확정적인 처치’까지 1시간 이내가 걸려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 원장은 “테스트이벤트 때 설상 경기장에서 직접 헬기를 띄우니 헬기 바람에 입간판과 시설물이 모두 무너지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이 때문에 해외 의료진에게 응급의료 지원을 위탁하는 게 낫겠다는 제안도 많이 받았다”며 “하지만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릴 수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각종 테스트이벤트 때 다양한 리허설로 실전 경험을 쌓는 등 열심히 준비한 덕에 4년 전 소치 때보다 중증 환자가 많이 발생했는데도 신속하게 (부상 선수를) 이송하고 말끔하게 수술에 성공해 각 국가로부터 호평을 받았다”고 자평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돌부처’ 오승환(36·사진)이 토론토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잔류할 것으로 보인다. 26일 캐나다 스포츠 매체 ‘스포츠넷’에 따르면 토론토와 오승환은 1년 200만 달러(약 21억5000만 원)에 계약하기로 합의했다. 양쪽은 신체검사 이후 계약 내용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토론토는 오승환에게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2019년에도 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베스팅(vesting) 옵션도 제시했다. 베스팅 옵션은 부상이 의심되는 선수와 계약할 때 구단이 제시하는 카드 가운데 하나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오승환은 텍사스와 2년 계약을 맺었지만 텍사스는 신체검사 결과 팔꿈치에 문제가 있다며 계약을 취소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오승환의 에이전트는 “단순한 염증일 뿐이다. 던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한국은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단일 겨울올림픽 최다 메달 획득 기록을 새로 썼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 등 총 17개의 메달을 따냈다. 이전까지는 8년 전 밴쿠버 대회 때 따낸 14개(금 6, 은 6, 동메달 2개)가 최고였다.메달 종목도 다양해졌다. 4년 전 소치 올림픽 때까지 한국이 메달을 따낸 종목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3종목뿐이었다. 평창에서는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스노보드, 컬링 등 4개 종목에서 사상 첫 메달을 따냈다. 한국이 올림픽 한 대회에서 6개 종목 메달을 따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역전에 능한 한국 쇼트트랙은 역시 쏜살보다 빨랐다. 쇼트트랙이 양궁을 제치고 한국 최고 올림픽 ‘효자 종목’이 됐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20일 2018 평창 겨울올림픽 3000m 계주에서 우승하면서 한국이 쇼트트랙에서 따낸 올림픽 금메달은 총 24개로 늘어났다. 2년 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한국이 양궁에서 따낸 금메달은 이보다 1개 적은 23개다. 만약 한국이 22일 쇼트트랙에 걸려 있는 금메달 3개(남자 500m·계주, 여자 1000m)를 싹쓸이한다면 이 차이는 4개로 벌어진다. 그렇다고 양궁이 계속 뒤처져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2020 도쿄 올림픽이 끝났을 때는 양궁이 다시 최다 금메달 종목 자리를 되찾을 수도 있다. 혼성 단체전 추가로 올림픽 양궁 금메달이 5개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부터 다시 2년 후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는 쇼트트랙이 권좌를 되찾아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이 두 종목에서 계속 정상급 실력을 유지한다면 2년마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할 확률이 높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1998년 나가노 대회 때부터 겨울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컬링에는 늘 ‘얼음 위의 체스(Chess on Ice)’라는 설명이 따라다닌다. 실제로 체스와 컬링은 머리를 잘 써서 공격과 수비를 적절히 조화해 전술을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경기 도중 크게 뒤진 쪽에선 패배를 선언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체스는 두 선수가 한 수씩 주고받고 컬링은 한 엔드(end) 안에서 번갈아 투구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한다. 올림픽 때는 10엔드(혼성은 8엔드)가 한 경기다. 한 팀 선수 4명이 연속해 두 번씩 총 8번 스톤을 굴리면 한 엔드가 끝난다(혼성은 보통 5회 투구가 1엔드). 컬링에서는 하우스(house) 중심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스톤(사진) 한 개가 체스에서 ‘킹’ 노릇을 한다. 티(tee)라고 부르는 이 중심의 가장 가까이 스톤을 안착시킨 팀만 각 엔드에서 하우스 안에 있는 스톤 개수만큼 점수를 가져갈 수 있다. 거꾸로 각 엔드에서 패한 팀 점수는 무조건 제로(0)다. 선수 등 전문가끼리만 이해하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컬링 경기를 보다 보면 각 팀 선수가 ‘헐’, ‘얍’, ‘업’처럼 외치는 걸 들을 수 있다. 헐 또는 하드(hard)는 ‘서두르다(hurry)’를 줄인 말로 스톤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빗자루처럼 생긴 브룸(broom)을 빨리 얼음판 위에 문지르라는 구호다. 얍(yap)도 같은 뜻이다. 거꾸로 업(up)은 비질을 멈추라는 뜻이다. 브룸을 문지르면 스톤 방향과 속도가 바뀐다. 이 비질이 보기에는 쉬워도 운동량은 결코 적지 않다. 전 컬링 국가대표 신미성 씨에 따르면 평균 2시간 30분 내외가 걸리는 10엔드 경기의 총 운동량은 약 30km를 빠르게 걷는 수준이다. 브룸 한 자루 가격은 20만 원 정도로 일반적인 예상보다 비싸다. 머리 부분을 특수 소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경기 때 신는 컬링화도 켤레당 50만 원 안팎으로 신발 가게에 흔한 스니커즈와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가격이 나간다. 컬링화 한쪽 바닥은 프라이팬 등을 코팅할 때 쓰는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테플론)’으로, 한쪽 바닥은 고무로 만든다. 그래도 이 둘이 스톤 가격(약 125만 원)은 못 따라간다. 올림픽 때 쓰는 스톤은 영국 스코틀랜드 지역 무인도 에일서크레이그섬에서 캐낸 화강암으로 만든다. 이 섬은 철새 도래지라 10년에 한 번 정도만 채굴할 수 있다. 푸른빛이 감돌아 ‘블루 혼(Blue Hone)’이라고 부르는 화강암은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돌로 습기에도 강하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스키 여제’가 린지 본(34·미국)이라면 ‘스키 황제’는 마르첼 히르셔(29·오스트리아·사진)다. 히르셔는 2011∼2012시즌부터 6년 연속 국제스키연맹(FIS) 알파인스키 월드컵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현재 진행 중인 2017∼2018시즌 역시 1위다. 히르셔는 세계선수권대회 정상도 여섯 번 차지했다. 이렇게 완벽한 그에게 딱 한 가지 부족한 게 있었으니 바로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히르셔는 처음 출전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는 대회전에서 기록한 4위가 최고 성적이었고, 2014년 소치에서도 은메달(회전)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평창이 그에게는 더욱 잊지 못할 대회가 될 것 같다. 자신의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히르셔는 13일 강원 정선군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알파인스키 남자 복합 경기에서 활강과 회전 합계 2분06초52로 1위를 차지했다. 히르셔는 먼저 열린 활강에서는 1분20초56으로 12위에 그쳤지만 주 종목인 회전에서 45초96을 기록하며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경기 후 히르셔는 “사실 2주 전까지도 복합 종목에 출전하지 말고 (본인이 강점을 보이는) 대회전이나 회전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큰 기대 없이 출전한 종목이었는데 금메달을 목에 걸게 돼 초(超)행복(super-happy)하다. 무엇보다 ‘멍청한 질문’과 작별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멍청한 질문은 스스로에게 ‘올림픽 금메달이 없어도 완벽한 선수 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던 걸 뜻한다. 히르셔는 18일 대회전, 22일 회전에서 또다시 금메달에 도전한다. 이날 은메달과 동메달은 모두 프랑스 선수 차지였다. 알렉시 팽튀로(27)가 2분6초75로 2위, 빅토르 뮈파장데(29)가 2분7초54로 3위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은 30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 연방 하원 본회의장에서 신년 국정연설(연두교서)을 했다. 1시간 20분 동안 이어진 연설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단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였다. ‘미국인(American)’이 55번, ‘미국(American)’ 27번, ‘위대한(Great)’ 13번 등의 순이었다. 가장 중요한 청중인 미국인들에게 ‘올인’한 것이다. ‘세계(world)’는 단 10번 등장하는데 그쳤다.한국을 뜻하는 ‘Korea(n)’은 7번 등장했다. 관련 키워드는 역시 북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장애인 지성호 씨(36)의 탈북 과정을 소개하는 등 북한 이야기에 총 475단어를 할애했다. 취임 첫 해 주요 업적으로 꼽은 이슬람국가(IS) 소탕에 302단어를 쓴 것과 비교하면 불안한 북한 상황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두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란(48단어)과 아프가니스탄(34단어)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진짜냐고요? 네. 정현(22·한국체대)이 테니스를 잘 하는 이유는 키(188㎝)가 커서입니다. 정말이예요.선수들의 키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농구나 배구도 아닌데 테니스에서 키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아닙니다. 테니스 역시 키가 중요합니다. 일단 세계랭킹별 키만 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랭킹이 높은 선수일수록 키도 큽니다. 이건 키가 클수록 많이 이겼다는 뜻이겠죠? 이 역시 그렇습니다. 이를 알아보려고 남자프로테니스(ATP) 웹사이트에서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 동안 4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 남자 단식 경기 결과를 모두 조사했습니다. 이 중 선수 키를 확인할 수 있는 경기는 총 1만 1경기. 이 중 58.1%(5806경기)에서 키카 큰 선수가 이겼습니다.테니스 선수들 키도 갈수록 커지는 추세입니다. 1998년 4대 메이저 대회에 참가한 남자 선수의 키는 평균 184.9㎝였습니다. 지난해에는 187.2㎝로 2.3㎝ 늘었습니다. ATP 프로필에 자기 키를 188㎝라고 밝힌 정현은 평균보다 큽니다. 또 지난해 4대 메이저 단식에 참가한 선수 키 분포를 보여주는 히스토그램을 보면 정현이 속한 185~190㎝ 구간에 가장 많은 선수가 속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정현 전에 한국 테니스를 대표했던 이형택(42)은 어떨까요? 이형택은 180㎝. 그가 한국 최고 랭킹(세계 36위)을 세웠던 2007년 메이저 남자 단식 참가 선수 평균 185㎝보다 5㎝가 작았습니다. 키 큰 선수가 테니스를 할 때 유리한 건 서브 때문입니다. 키가 크면 보통 팔도 더 길기에 서브를 더 높은 위치에서 내리 꽂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네트에 걸릴 확률도 줄어 첫 번째(퍼스트) 서브에서 강점을 지닐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날아온 공은 바닥에 튄 다음에도 더 높게 치솟습니다. 그래서 상대 선수는 리턴 위치를 잡을 때 애를 먹습니다.26일 호주오픈 4강에서 정현과 맞대결을 벌일 로저 페더러(37·스위스·랭킹 2위). 정현이 같이 경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 ‘테니스 레전드’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또 압니까. 적어도 키는 정현이 페더러(185㎝)보다 3㎝ 더 큽니다. 키가 크면 테니스를 더 잘한다는 이 분석 결과가 이번 경기에는 딱 맞아떨어지기를 꿈꿉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한국 테니스 간판’ 정현(22·한국체대·세계랭킹 58위)이 한국 테니스 역사상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선수가 됐습니다. 정현은 24일 호주 멜버른 로드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서 테니스 샌드그런(27·미국·97위)을 3-0(6-7, 7-6, 6-3)으로 완파하고 대회 4강에 진출했습니다. 현재 랭킹 포인트 857점인 정현은 이번 승리로 랭킹 포인트 615점을 추가로 확보했습니다. 합계 1472점. 정현은 다음 주 남자프로테니스(ATP)에서 세계랭킹을 발표할 때 1472점으로 세계 29위에 오릅니다. 이는 이형택(42)이 2007년 8월 6일 기록한 36위를 뛰어 넘는 한국 선수 최고 기록입니다. 한국 남자 테니스 선수 중 최초로 세계랭킹 30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김봉수(58)입니다. 그는 1988년 1월 4일 300위를 기록했고, 1998년 12월 11일 129위까지 랭킹을 끌어올렸습니다. 김봉수는 총 189주 동안 한국 선수 최고 랭킹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는 이형택(631주)에 이어 한국 선수 가운데 두 번째로 긴 기간입니다.세 번째로 길게 한국 선수 최고 랭킹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수가 바로 정현입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정현이 아직 22세라는 점입니다. 이형택이 22세이던 1998년 1월 그의 세계 랭킹은 362위에 그쳤습니다.정현은 과연 세계랭킹을 어디까지 끌어올릴까요?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16일 600만 관중을 돌파한 영화 ‘1987’에는 물 고문을 받다 숨진 고(故) 박종철 열사의 유해를 아버지와 형이 강물 위에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를 본 전국의 많은 아버지들이 “이 장면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1987년 오늘(1월 17일)자 동아일보 창(窓) ‘이 아비는 아무 할 말이 없다이’는 실제 이날 현장을 독자에게 소개했다. 당시 이 기사를 쓴 황열헌 기자는 현재 정세균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아래는 당시 기사 원문.《15일 오후 6시경 서울 중구 황학동 경찰병원 영안실.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에서 교내 시위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다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 군(21·언어학과 3년)의 분향실이 마련된 이곳의 경비는 삼엄하기 짝이 없었다.기자들이 도착, 분향실로 들어가려 하자 건장한 체구의 경찰관들이 몸으로 막고 나섰다. 기자들이 분향실 안을 향해 “유가족 누구 없습니까”라고 소리치자 건장한 사내들 뒤편에 웅크리고 앉아 흐느끼고 있던 박 군의 누나 은숙 양(24)이 나섰다.“13일 밤 철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하숙비를 좀 보내달라고…. 그런데 집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거든요…” 박 양은 목이 메어 잠시 말을 끊었다.“그런데… 14일 저녁 낯선 남자가 찾아와 아부지를 데리고 상경한 뒤 오늘 아침 아부지한테서 염불 책과 철이 사진을 가져오라는 전화가 왔잖아요.” 박 군의 누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이때 아버지 박정기 씨(57)가 실성한 모습으로 분향실 안으로 들어왔다.“뭐요. 뭘 알고 싶소. 우리 자식이 못 돼서 죽었소.” 박 씨는 내뱉듯 외쳤다.기자가 “아드님을 왜 못 됐다고 하십니까”고 묻자 박 씨는 “이놈의 세상은 똑똑하면 못 된 거지요”라고 고함지르듯 말하고 고개를 떨군 뒤 박 양을 데리고 나갔다.16일 오전 8시 25분 박 군의 사체는 영안실을 떠나 벽제화장장으로 옮겨져 오전 9시 10분 화장됐다.두 시간여 화장이 계속되는 동안 아버지 박 씨는 박 군의 영정 앞에서 정신 나간 듯 혼잣말을 계속했고 어머니 정차순 씨(54)는 실신, 병원으로 옮겨졌다.화장이 끝난 박 군의 유골은 분골실로 옮겨졌고 잠시 뒤 하얀 잿가루로 변해 박 군의 형 종부 씨(29)의 가슴에 안겨졌다.종부 씨는 아무 말 없이 박 군의 유해를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경찰이 마련한 검은색 승용차에 올랐다. 잠시 후 일행은 화장장 근처의 임진강 지류에 도착했다.아버지 박 씨는 아들의 유골 가루를 싼 흰 종이를 풀고 잿빛 가루를 한줌 한줌 쥐어 하염없이 샛강 위로 뿌렸다.“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 박 씨는 가슴 속에서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박 씨는 끝으로 흰 종이를 강물 위에 띄우며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다이”라고 통곡을 삼키며 허공을 향해 외쳤다. 이를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은 흐느끼거나 눈시울을 붉혔다.박 군의 유골 가루를 뿌린 후 박 군의 아버지를 태운 승용차는 경찰병원에 들러 박 군의 부검을 지켜본 삼촌 월길 씨를 태우고 시내를 한동안 헤맨 뒤 치안본부 대공분실 마당 안으로 사라졌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제일 강조한 건 역시 ‘국민’이었습니다.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1723개 낱말로 된 신년사를 발표했습니다. 이 가운데 ‘국민(국민들)’이 64번으로 가장 많이 등장했습니다. 다음으로 많이 사용한 정부(각각 27번)의 두 배가 넘습니다. 세 번째는 25번 등장한 ‘우리’였습니다.한 낱말이 어떤 낱말과 함께 자주 등장했는지 살펴보는 ‘의미망 분석’ 결과를 통해서도 문 대통령이 국민을 강조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국가에 내어준 덕에 촛불(혁명)을 이뤄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대한민국을 안전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대 국민에게 약속도 도드라집니다. 같은 방식으로 ‘북한 핵 문제는 대화로 풀어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 내겠다’고 강조한 대목도 드러납니다. ‘경제’에서 제일 강조한 건 역시 ‘일자리’였습니다.문 대통령은 삶(21번), 일상(10번), 가족(3번), 생활(2번)처럼 많은 이들이 좀 더 가까이 두고 싶은 낱말을 총 38번 사용했습니다. 문 대통령 신년사처럼 2018년에는 온 국민이 삶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현재 프로배구 블로킹 1위는 세트당 0.92개를 기록 중인 현대캐피탈 신영석(32·사진)입니다. 여기서 블로킹 1위는 상대 공격을 가장 많이 가로막았다는 뜻. 그러면 거꾸로 블로킹에 가장 많이 가로막힌 선수는 누구일까요?한국배구연맹(KOVO)에 따르면 8일 현재 2017~2018 도드람 V리그 남자부 경기에서 가장 블로킹을 많이 당한 선수는 우리카드 파다르(22·헝가리)입니다. 파다르는 총 87세트를 뛰면서 94번 상대 블로킹에 당했습니다. 블로킹에 가로막힌 누적 횟수도 1위고, 세트당 숫자(1.08개)도 1위입니다. 위에 있는 표에서 외국인 선수가 1~5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는 건 공격 시도 자체가 많았기 때문. 그래서 상대 블로킹에 당할 일도 많았던 겁니다. 그러면 전체 공격 시도 중에서 블로킹에 당한 비율을 따져 보면 누가 가장 많이 당했을까요?네, 사진으로 확인하신 것처럼 삼성화재 박철우(32)가 1위입니다. 박철우는 현재까지 공격을 총 561번 시도했는데 그 중 13.4%에 해당하는 75번이 상대 블로킹에 가로막혀 삼성화재 코트에 떨어졌습니다. 참고로 현재까지 남자부 전체 공격 시도(1만4999번) 중 9.1%(1369번)가 상대 블로킹으로 끝이 났습니다. 박철우는 리그 평균보다 47.3% 더 자주 블로킹에 당했던 겁니다.박철우는 데뷔 이후 현재까지 총 796번 상대 블로킹에 당했습니다. 앞으로 상대 블로커가 박철우의 공격 시도를 4번만 더 가로막으면 박철우는 OK저축은행 김요한(33)에 이어 프로배구 역사상 두 번째로 상대 블로킹에 800번 이상 당한 ‘토종’ 선수가 됩니다. 김요한은 현재까지 총 855번 상대 블로킹에 당했습니다. 외국인 선수 중에서는 V리그에서 네 시즌 동안 활약한 안젤코(35·크로아티아)가 804번으로 상대 블로킹에 가장 많이 찍힌 선수입니다.이렇게 상대 블로킹에 당한 걸 보면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이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외국인 선수 모두 상대 블로킹 앞에서 기를 펴지 못했기 때문. 올 시즌 첫 번째 외국인 선수였던 브람(29·벨기에)은 현재까지도 외국인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이 블로킹에 걸린 선수로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새로 온 마르코(31·포르투갈)는 현재 공격 점유율(10.1%)이 기준 이하라 표에서 이름이 빠졌지만 비율 자체는 16%로 국적을 떠나 1위입니다.한편 여자부에서는 KGC인삼공사 알레나(28·미국)가 누적 횟수 76번, 세트당 1.21개, 공격 시도 대비 비율 7.1%로 모두 상대 블로킹에 가장 많이 당했습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부산에 오니까 참 기분이 윽수로 좋습니더.”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4월 22일 고향 부산을 찾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산에서만 고향이라 이렇게 사투리(방언)를 쓴 게 아닙니다. “싸우지 않는 정치”를 하겠다는 발언이 경상 방언 때문에 [사우지 않는 정치]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문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닙니다. 영남 출신 정치인들은 사투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필요에 따라 능숙하게 표준어를 쓰는 호남 출신 정치인과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MBC에서 정치 다큐멘터리 드라마 ‘격동 50년’을 연출한 오성수 PD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녹음해 잘 들어보면 영남 쪽 의원들은 의원총회 등 내부 회의부터 국회 상임위까지 대부분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만, 호남 쪽 의원들은 사투리를 잘 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방언을 쓰는 게 절대 잘못은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내는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 보고서’ 가장 최신(2015년) 버전에 따르면 ‘평소에 사용하는 말’로 표준어를 꼽은 건 54.5%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45.5%는 평소에 그 지역 방언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겁니다. 경상도 사람들도 자녀는 표준어를 사용하길 원합니다. 같은 조사 참여자에게 ‘자녀가 지역 방언과 표준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일 경우 어느 것을 사용하길 바라십니까’라고 묻자 경상권에서도 ‘표준어만 사용하기를 바란다’(20.9%)는 응답이 ‘지역 방언만 사용하기를 바란다’(1.8%)는 대답을 압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상도 부모들 스스로는 표준어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요? 정답은 표준어를 사용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라고요? 사회언어학적으로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어쨌든 내 고향은 부산 정치인 출신 지역을 영·호남으로 나누면 김태정 전 법무부 장관은 재미있는 케이스입니다. 법조인 신상 정보를 모은 ‘한국법조인대관’을 보면 1997년 이전판에는 김 전 장관의 고향이 ‘부산’이라고 돼 있었습니다. 그가 ‘부산 사투리’를 썼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그런데 1998년 김대중(호남) 정권이 들어서자 고향이 전남 장흥군으로 바뀝니다. 김 전 장관이 거짓말을 한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김 전 정관은 검찰총장 시절이던 1997년 8월 18일에 나온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출신 지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아버님은 전남 장흥군 부산면 출신입니다. 우연히 부산(釜山)과 한자만 다르지(장흥군 부산면은 夫山) 한글은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가난 때문에 젊은 시절 부산으로 이사, 사업을 시작했고, 나는 부산 영도구에서 태어났습니다.” 말하자면 자기가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할 때도 부산(釜山)이 맞았고, ‘아버지 고향이 진짜 고향’이라고 표현할 때도 부산(夫山)이 맞았던 겁니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분명 그렇지만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지 않나요? ● 언어는 권력이다 김 전 장관의 고향 문제를 이해하려면 사회언어학에서 쓰는 ‘위세(prestige)’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윌리엄 라보프(사진)라는 언어학자가 고안한 이 개념은 의미 그대로 어떤 언어 형태와 다른 형태 사이에 존재하는 지위와 권세 차이를 나타냅니다. 방언을 예로 들자면 사실상 표준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사투리’가 다른 지역 방언보다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위세형’ 언어를 선호합니다. 그러니 ‘나는 사투리를 계속 쓰더라도 자식아 너는 표준어를 쓰거라’하는 조사 결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따라서 만약 표준어보다 더 위세 있는 언어 형태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 쪽을 선호하게 될 겁니다. 네, 그게 바로 경상 방언입니다. 이번에는 이유가 간단합니다. 경상 방언이 ‘권력의 표준어’니까요. 역대 한국 대통령 12명 가운데 7명(58.3%)이 바로 영남 출신.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지만 경북 포항시에서 자란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포함하면 전체 대통령 중 3분의 2가 경상 방언 구사자입니다. 그렇다 보니 경상 방언 구사자는 사투리를 ‘포기’해야 할 이유를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반면 정치적으로 소외받은 호남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고향 말씨를 숨겨야 했습니다. 그렇게 전국 곳곳에서 경상 방언은 넘쳤지만, 전라 방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라 방언이 복권(復權)된 현재는 어떨까요?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전라권 거주자는 같은 방언을 쓰는 사람과 대화할 때 ‘매우 편하고 친근하다’(48.7%)고 느끼는 이들이 제일 많았지만, 경상권에서는 ‘별 느낌이 없다’(51.9%)는 답변이 1위였습니다. 소외 받은 이들은 서로를 보듬지만 권력을 쥐고 사람에게는 권력이 당연해 보이기 때문일까요?● 그 남학생은 왜? 사실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닙니다. 새 학기가 되면 분명 서울로 진학한 대학 신입생 가운데 발표 시간에 방언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경상도 출신’ 남학생이 나올 겁니다. 네, 남학생이라고 썼습니다. 분명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사투리가 더 심합니다. 심지어 여학생 중에는 먼저 고향을 묻지 않으면 영남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기 힘든 경우도 많지만, 남학생은 주변에 경상 방언을 전파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실제 연구 결과를 봐도 경상 지역 여성이 남성보다 표준어에 더 가까운 발음을 구사합니다. 경상 방언 특징 가운데 하나는 홀소리(모음) ‘ㅓ’와 ‘ㅡ’ 사이 구분이 약하다는 것. 경상 방언 구사자를 흉내 낼 때 ‘음악’을 [어막]처럼 소리 내는 것 알고 계시죠? 고려대 연구진은 이런 차이를 알아보려고 서울과 대구에 거주하는 20대 남녀에게 ‘어린’, ‘언약’, ‘얼음’, ‘은행’, ‘은혜’, ‘을일(乙日)’ 같은 낱말을 발음하도록 한 뒤 지역에 따라 ㅓ와 ㅡ가 어떤 주파수로 나타나는지 분석했습니다. 그러니까 ㅓ와 ㅡ 사이 주파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두 소리를 잘 구분해 발음하는 겁니다. 그 결과 대구에 사는 20대 남성은 이 차이가 234.6로 여성(580.2)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이 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겁니다. 서울 지역하고 비교하면 남성 쪽은 서울과 대구 차이가 2.33배로 여성(1.21배)보다 컸습니다. 대구 지역 여성이 남성보다 서울 지역 발음과 더 비슷한 소리를 냈다는 뜻입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논문 ‘대구 방언 20대 화자의 단모음 실현 양상에 나타난 표준어 지향성의 성별적 차이’를 참고하시면 됩니다.)대구만 그런 건 아니고 경상 방언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물론 한국어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사회언어학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표준어에 더 가까운 언어 형태를 쓰는 건 아주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표준어뿐 아니라 모든 ‘표준형’에 있어 그렇습니다. 월트 울프람이라는 사회언어학자는 1969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흑인을 대상으로 홀소리 뒤에 [r]를 얼마나 발음하는지 계층과 성별에 따라 조사했습니다. 이 때는 홀소리 뒤에 [r]를 발음하는 게 표준형입니다. 조사 결과 모든 계층에 걸쳐 여성이 남성보다 [r]를 생략하는 비율이 낮았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여성이 모든 계층에 걸쳐서 표준형을 사용하는 비율이 더 높았던 겁니다. (위 표에서 중산층은 ‘Middle Class’, 노동계층은 ‘Working Class’를 번역한 표현입니다.) 왜 이렇게 남성은 비표준형을 선호할까요? 영국 언어학자 피터 트루질(사진)은 “비표준형은 ‘남성성’ 같은 특정 집단의 가치를 부각시켜 유대감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말이 어렵죠? 좀 더 풀이해 설명하면 비표준형은 ‘거친’ 느낌을 풍기고 이 때문에 남성 화자에게 좀더 매력적으로 비친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남성은 표준어 사용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여성은 이런 이미지를 피하려 하기 때문에 표준형을 선호합니다.● 사투리 고쳐야 하나? 그렇게 영남 출신 남성이 ‘학실히’ 가장 표준어와 거리가 먼 사람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역 방언을 쓰는 게 절대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고쳐야 할 건 사투리가 아니라 ‘사투리는 수준이 낮은 언어’라는 인식입니다. 그래도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표준어든 지역 방언이든 어느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31.4%)는 의견보다 ‘때와 장소에 따라 표준어와 지역 방언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39.0%)는 답변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니 지역 방언이 ‘틀린 언어’는 아니라고 해도 ‘다른 언어’로서 표준어를 배울 필요 정도는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냥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말입니다. 말이라는 건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쓰는 거고, 지역 방언보다 표준어를 쓸 때 그 말을 오해 없이 이해하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요.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지난 주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간다는 내용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은 올해 연인원을 기준으로 총인구 대비 출국률 50%를 넘어설 전망인데 이 비율이 지난해까지 40%대로 1위였던 대만을 제쳤을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한국 사람이 해외로 나가려면 배나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 섬나라 대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자동차만 타면 아니 걸어서도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나라도 적지 않습니다. 육지로 된 국경을 건너면서 기념 촬영을 하는 건 한국과 (역시 섬나라인) 일본 사람밖에 없다는 우스개를 들었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그래서 세계은행에서 세계 여행(International Tourism) 출국자 숫자(Number of Departures)를 찾아봤습니다. 그 결과….한국인이 세계에서 해외여행을 제일 많이 한다는 건 역시 ‘새빨간 거짓말’에 가까웠습니다.세계은행에서 출국자 숫자를 보유하고 있는 건 총 105개국. 지난해(2016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출발한 해외여행은 총 2238만3000명으로 전체 인구(5124만5707명)의 43.6% 수준이었습니다. 이 비율은 105개국 중 46에 해당합니다. 평균 이상인 건 맞지만 세계 최고는 물론 그 근처에 있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46.6%니까 한국은 OECD 평균보다도 해외여행을 적게 했습니다.그럼, 사람들이 한국하고 열심히 열심히 비교한 대만은 어떨까요? 세계은행은 유엔 산하 기구이고 대만은 1971년 이후 유엔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세계은행에서는 대만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만 교통부 관광국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지난해 대만을 떠난 출국자는 총 1458만8923명이었습니다. 지난해 대만 인구가 2355만6706명이었으니까 61.9%가 대만을 벗어난 셈입니다. 한국이 대만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게다가 대만이 세계 1위인 것도 아닙니다. 인구 대비 출국률이 가장 높은 곳은 홍콩입니다. 2016년 홍콩 인구는 734만6700명. 홍콩에서 해외로 나간 사람은 9175만8000명이었습니다. 인구와 비교하면 12.5배가 해외로 떠난 셈. 이건 세계은행이 홍콩에서 중국 본토나 마카오를 오가는 사람도 출국자로 집계했기 때문입니다.독립국 가운데서는 룩셈부르크가 298.8%로 1위입니다. 유럽은 나라와 나라가 서로 맞붙어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나라 사이를 오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평균적으로 전체 인구 대비 81.8%가 해외로 떠난 적이 있습니다. 출국자 절대 숫자로 따졌을 때는 물론 중국에서 1억1687만 명이 출국해 1위였습니다. 한국에서 출국한 사람 숫자를 같은 방식으로 따지면 13위가 됩니다. 단, 중국은 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인구 대비 비율로 따졌을 때는 8.5%(80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본도 12.8%(72위)로 전 세계 평균(18.5%·2015년 기준)보다도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백지(白紙).’ 1920년 4월 1일 이후 2017년 12월 26일자까지 2만9973번 세상에 나온 동아일보를 두 글자로 줄이면 이렇게 쓸 수 있다.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생(1912~2002)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건으로 유명한 그해 8월 25일자 동아일보 석간 2면도 오른쪽은 텅 비었다. 기사 삭제를 감수하면서 조선총독부 검열에 맞선 결과다.‘독자(讀者).’97년 동아일보 역사를 다른 두 글자로 줄이면 이렇게 쓸 수 있다. 독자라는 든든한 ‘빽’이 있었기에 동아일보는 ‘불편부당(不偏不黨)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제작정신을 지켜올 수 있었다.그래서 백지와 독자가 만난 ‘백지 광고 사태’야 말로 동아일보가 걸어온 길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자유언론 실천결의문일간지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꼽으라면 역시 매일 엄선한 뉴스를 독자 여러분께 전달하는 것. 하지만 1974년 10월 24일자 신문은 그날 세상에 나가지 못했다. 대신 다음날 전날 신문을 배달하게 돼 사과드린다는 사고(社告)를 1면에 내보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당시 박정희 정권은 소휘 ‘유신헌법’을 앞세워 언론 길들이기에 나섰다.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못하도록 아예 기관원이 언론사에 출입하며 기사에 쓴 낱말 하나하나를 모두 검열한 것. 이에 동아일보 기자들은 이날 ‘자유언론수호대회’를 열고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했다.“(전략)우리는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사회 존립의 기본요건인 자유언론 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며 우리의 뜨거운 심장을 모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1.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1.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1.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절 거부한다.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 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이 결의문 지면 게재 여부를 두고 찬반이 맞서 당일이 아니라 이튿날 신문을 배달했던 것이다. 결의문 채택 이후 동아일보는 군사정권 아래 탄압받고 있던 인권운동가나 야당 인사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이에 분노한 박정희 정권은 각 기업체를 호출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결국 그해 12월 16일경부터 광고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회사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당시 야당 신민당에서 12월 26일 긴급당직자 회의를 열고 ‘광고 탄압은 새로운 수법의 언론 탄압’이라고 규정했지만 줄어드는 광고 물량까지 채울 수는 없었다.결국 그날(1974년 12월 26일)자 동아일보 4, 5면 하단에 광고를 내보내겠다는 회사를 찾지 못해 결국 백지 상태로 세상에 나갔다. 자매지 ‘신동아’, ‘여성동아’ 구독 광고가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전까지 동아일보는 최소 일주일 정도 광고 예약이 밀려 있던 상황이었다. ●광고국장 명의로 내보낸 광고언론사 역시 ‘회사’이기 때문에 언론사 구성원들 역시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언론사에 있어 광고는 곧 ‘생명줄’이다. 유신정권이 광고주를 압박한 것 역시 동아일보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의도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버티려면 동아일보가 기댈 곳은 독자밖에 없었다. 동아일보는 그해 12월 30일 김인호 당시 광고국장(1923~2016) 명의로 ‘광고 모집 광고’를 내보냈다. 이 광고에 등장하는 ‘아래와 같은 (광고)’는 이날 1면 하단에 나간 ‘언론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가리킨다. 이 글을 쓴 홍종인 선생(1903~98)은 조선일보 편집국장, 주필, 부사장, 회장 등을 지낸 원로 언론인이었다.그렇다면 홍 선생이 쓴 이 글이 동아일보 독자가 보낸 첫 번째 ‘격려광고’일까. 이에 대해 김 국장은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글은 원래 편집국으로 들어온 칼럼이었는데 1면 하단 자리에 실은 것”이라며 “격려광고라면 광고국에 광고를 의뢰하고 광고료도 내야 하는데 그 글을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했다.이어 “그날 처음으로 격려광고를 모집한다고 공지를 냈는데 어떻게 동시에 격려광고가 실릴 수 있었겠느냐”며 “(광고 문구에 등장하는) ‘아래와 같은’도 그 문안의 그 다음 구절을 가리켰을 뿐”이라고 덧붙였다.●격려광고 1호는 DJ김 국장은 계속해 “신년호에 전면광고를 내기로 했던 회사(GM코리아)가 광고를 돌연 취소해 격려광고를 싣기로 했던 것”이라며 “모집광고가 난 것을 보고 격려광고를 의뢰한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호”라고 말했다.당시 가택연금 상태였던 김 전 대통령은 총무비서였던 김옥두 전 의원(79)을 통해 격려광고를 전달했다. 단, 당시 정치상황을 고려해 이 광고를 김 전 대통령 실명이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한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나갔다.이후 그해 7월 16일자부터 다시 광고를 정상적으로 내보낼 때까지 동아일보에 들어온 격려광고는 총 1만351건에 달했다. 금액으로는 5억6755만 원.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약 57억3850만 원에 해당하는 돈이다.역시 그랬다. 백지를 채워 기사를 완성하는 건 언론사지만 그 기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바로 독자 여러분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이제 ‘TK’라는 표현을 들으면 자동으로 ‘대구경북’을 떠올리는 분들이 대부분일 거다. PK 역시 축구 페널티킥을 가리키는 약자보다는 부산(울산)경남을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리라고 짐작한다. 이 표현을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언제일까?동아일보에 처음 TK가 등장한 건 30년 전 오늘(1987년 12월 23일)자였다. 이날은 현행 헌법으로 치른 첫 번째 대통령 선거(1987년 12월 16일)가 끝나고 일주일째 되는 날. 김진현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은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노대우 전 대통령을 향해 ‘노태우 선생에게’라는 편지 형식 칼럼을 썼다. 이 칼럼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둘째는 외로운 대통령이 돼달라는 것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대구 경상북도(앞으로 TK라 부르겠습니다) 인맥과 손을 끊어달라는 것입니다.”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통합검색(KINDS) 서비스에서 찾아보면 다른 신문에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건 모두 1988년 이후다. KINDS에 기사를 제공하지 않는 조선·중앙일보 역시 각사 홈페이지 검색 결과 동아일보보다 늦게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김 실장이 1990년 과학기술처 장관이 됐을 때 “‘TK’ 신조어 만든 논객”이라고 그를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가 신빙성이 높은 이유다. PK는 물론 TK를 준용해 만든 표현이다.현재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인 김 실장은 객원논설위원으로 동아일보에 ‘동아광장’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혹시 걱정이 너무 많아 걱정이십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걱정이 너무 많아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이 너무 많다는 건 ‘머리가 좋다’는 뜻일지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걱정도 팔자’일 뿐 아니라 ‘걱정도 지능’이기도 한 겁니다. 정말입니다. 미국 뉴욕주립대 다운스테이트 메디컬센터 제레미 코플란 교수 연구진은 범불안장애(GAD·Generalized Anxiety Disorder)를 앓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지능지수(IQ) 검사와 걱정지수(?) 검사를 실시했는데요. 걱정지수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 걱정 설문(PSWQ·the Penn State Worry Questionnaire) 조사를 통해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99% 신뢰 수준에서 IQ와 PSWQ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쉽게 말하면 걱정이 많을수록 IQ가 높은 경향이 있었다는 뜻이고, 뒤집어 말하면 IQ 높을수록 걱정이 많은 경향이 있었다는 뜻입니다.이건 왜일까요? 코플란 교수는 “사람들은 흔히 걱정이 너무 많은 건 부정적으로 보고 지능이 높은 건 긍정적으로 보지만 걱정이 사실 우리를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해 준다”며 “걱정이 많은 사람은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덕에 생존률이 높다. 걱정이 많은 게 생존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걱정이 지능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똑똑이’ 가운데 돈 버는 데는 영 재주가 없는 이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큰 돈을 만지려면 위험 부담을 이겨내야 하는데 똑똑한 사람은 이런 위험을 피하려 할 테니까요. 실제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제이 자고르스키 박사가 베이비붐 세대(1946~64년 출생) 74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IQ와 가처분소득 사이에서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지 못했습니다. 자고르스키 박사는 “한마디로 똑똑한 것과 부자가 되는 것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봐도 좋다. 교수 중에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전 세계를 막론하고 대학교 교직원 주차장에 (최고급 차량인) 롤스로이스나 포르쉐가 즐비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적어도 돈에 관해서는 지능이 낮다고 핸디캡을 안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똑똑하다고 어드밴티지를 보유한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주의하셔야 할 건 이번에는 IQ와 수입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똑똑해서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돈이 없는 이유를 ‘내가 똑똑해서…’라고 생각하시면 똑똑한 게 아닙니다. 걱정 가운데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많을 수 있지만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사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데 내 돈이 부족할 뿐’이라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걱정이 행복을 여러분 곁에서 한 걸음 더 내쫓을 테니까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