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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이복형인 김정남(43)이 파리에서 최소 5일 이상 머물렀던 것으로 확인돼 아들 김한솔 군(19)을 만나는 것 외에 특별한 방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파리 샹젤리제 인근 르메르디앙 에투알 호텔에 투숙해 온 한국의 대기업 부장인 S씨는 "26일 출장 온 이후 닷새 동안 매일 조식 뷔페에서 김정남이 식사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특유의 외모 때문에 첫 눈에 김정남 임을 알아봤으며 자주 마주쳐 서로 눈인사를 나눌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호텔 정문 앞 대로변을 10여 분간 산책을 즐겼으며, 인근 거리의 레스토랑 창문에 붙어 있는 메뉴를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S씨가 전했다. 그는 김정남과 함께 동행한 30대 여성에 대해서는 "외모나 두 사람의 대화로 미뤄볼 때 이 여성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남한 또는 북한)이 확실해 보였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김정남은 아침식사를 마친 후에는 늘 외출했으며 오후 시간 대에는 호텔 로비나 식당, 바에서 마주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정남이 파리에만 5일 이상 체류하며 바쁘게 활동하는 것은 르아브르에 있는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에 재학 중인 아들을 만나는 목적 외에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특히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7일 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신변이상설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김정남의 파리 방문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김정남이 파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동아일보 보도(30일자 1면)가 나가자 르메르디앙 호텔에는 한국의 특파원과 일본 후지TV 등 내외신 기자들이 아침부터 로비에서 하루 종일 진을 치고 기다렸다. 그러나 늘 오전 8시~8시반 사이에 아침식사를 했다는 김정남은 대규모 취재진을 의식해서인지 이날 로비나 식당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호텔 프론트에 문의한 결과 본보 기자가 김정남을 호텔에서 만난 29일 이후 체크아웃을 한 '김(Kim)' 씨 성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김정남이 동행한 여성의 이름으로 호텔을 예약했다가 이미 다른 곳으로 호텔을 옮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파리 샹젤리제 인근에 자리잡은 르메르디앙 호텔은 4성급 호텔로 객실요금이 1박 가격이 400유로(60만원) 이상 나가는 최고급 호텔이다. 2011년 SM타운의 파리 공연당시 소녀시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 F(x) 등의 K팝 스타들이 이 호텔에 묵어 아침 저녁으로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도 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이복형인 김정남(43·사진)이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 나타났다. 그는 29일(현지 시간) 오전 8시 반 파리 샹젤리제 거리 근처 르메르디앙 에투아 호텔 로비에서 이 여성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러 가다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김정남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던 고모부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숙청된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올 1월과 5월 각각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입국했다는 게 가장 최근에 알려진 김정남의 근황이다. 김정남은 최근 북한 상황을 묻는 질문에 “솔직히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진짜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국가 운영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생각을 하다 “잘 모르고, 할 말이 없다”면서도 “언제 어떻게 인터뷰하겠다는 약속은 못 하지만 생각을 정리해서 마음이 내키면 (기자의 명함을 가리키며) 이쪽으로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생각이 있지만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라는 표정과 말투였다. ▼ 김정남 “내 건강상태? 아직 쓸만해 보이지 않나” 농담도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하던 김정남은 장성택 이야기를 꺼내자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장 부위원장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돌리면서 푹 숙였다. 또 표정도 굳어지며 걸음이 빨라졌다. 아랫입술도 살짝 깨물었다. 그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정말 할 말 없다. 이제 그만하시라”고 했다. 검은색 얇은 점퍼와 회색 티셔츠, 청바지를 입고 있었던 김정남은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건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지금 보시는 대로다. 보니까 어떤가? 아직 쓸 만해 보이지 않느냐”고 살짝 웃으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과 가족에 대한 질문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선을 분명히 그었다. ‘주로 싱가포르와 마카오 쪽에 있느냐’와 ‘거주지에 큰 변화(망명 등)를 줄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김정남은 “개인 프라이버시라 절대 말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동행한 여성에 대해서도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하여튼 같이 온 사람이다. 그리고 이건 프라이버시니 더 묻지 말라”고 말을 끊었다. 촬영을 해도 되는지 묻자 “절대 안 된다”며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정남과 동행했던 여성은 빨간색 긴팔 티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얀 피부에 코가 오뚝한 얼굴이었다. 북한 또는 남한 여성으로 추정됐다. 160cm 중후반 정도의 키에 검은색 긴 생머리였다. 이 여성은 기자가 김정남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자 시선을 피하며 굳은 표정으로 먼저 식당으로 이동했다. 김정남의 이번 파리 방문에 대해선 다소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지만 그동안 주로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목격됐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2007년 11월과 2008년 10월 파리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일부 외신에 공개된 게 전부다. 그는 2007년에는 치과 치료를 위해, 2008년에는 당시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을 치료할 의사를 찾기 위해 파리를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의 이번 프랑스 방문은 현재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한솔 군(19)과 만나기 위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파리정치대학은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대학 위의 대학’으로 불리는 그랑제콜 중 하나다. 한솔 군은 지난해 9월 시앙스포에 입학해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인 지난해 5월 보스니아 국제학교인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 모스타르 분교를 졸업했다. 김정남의 이번 파리 방문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현재 머물고 있는 호텔이 주로 출장이나 관광을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묵는 곳이어서 자신의 모습이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리에 오래 머물 계획이었다면 아파트같이 좀 더 사생활이 보호될 수 있는 시설을 빌렸을 가능성이 높다. 파리의 한 교민은 “관광객과 출장자들로 붐비는 샹젤리제 거리 근처 유명 호텔에 장기간 머물면서 신변이 노출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김정남이) 그리 오랜 기간 머물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파리=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전승훈 특파원}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공습에 참여한 아랍에미리트(UAE)의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인 마리암 알만수리 소령(35)이 물불 안 가리는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들에게 ‘악몽’이 되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F-16 전투기를 몰고 공습에 나서는 만수리 소령은 2007년 아부다비의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최초로 히잡을 쓰고 전투기를 탔다. 그가 성전주의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천국에 가지 못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급진주의 이맘(이슬람 성직자)들은 ‘지하드에서 순교한 전사들은 천국에서 갈색 눈동자의 처녀 70명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는 꾸란 구절의 해석을 전사 모집수단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성전주의자가 천국에 가지 못하는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바로 여성 손에 죽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살폭탄 테러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여성 적군’이다. 에드 로이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공화·캘리포니아)은 최근 쿠르드 자치정부 외교장관을 만나 IS 대원들이 쿠르드족의 여군들을 만나면 싸우지도 못하고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기 바빴다는 여군 활약상을 들었다고 뉴욕포스트가 전했다. 실제로 모술댐 탈환작전 때 쿠르드 자치정부 보안군인 ‘페슈메르가’의 여군 여단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쿠르드 정부는 병력의 3분의 1을 여성 전투원으로 뽑아 남성과 똑같이 소총을 지급하고 로켓 추진포 발사와 수류탄 투척 훈련도 실시한다. 만수리 소령은 서방 국가로부터 온갖 찬사를 듣지만 정작 ‘만수리 가문’으로부터는 ‘시리아와 이라크를 부당하게 공격한 연합군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절연’ 통보를 받았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미국과 동맹국들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의 터키 접경지역 공세를 강화하며 진격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5일 보도했다. 특히 쿠르드족이 모여 사는 인구 40만 명의 국경도시 코바니가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터키로 대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IS가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의 핵심 도시인 코바니를 공격한 것은 16일부터로 22일 미국의 공습이 시작된 뒤에는 탱크와 박격포까지 동원해 총공세에 나서 코바니 인근 마을 60여 곳을 장악했다. 터키로 탈출한 코바니 주민들은 “IS가 마을을 점령한 뒤 집에 불을 지르고 포로들을 참수했다”고 전했다. 터키 난민캠프에 도착한 하메드 씨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공습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상군”이라고 밝혔다. IS의 진격을 피해 지금까지 쿠르드족 주민 20만 명이 터키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3년간의 시리아 내전 기간 중 단기간에 가장 많은 난민 피난사태가 벌어진 것. 터키 정부는 국경검문소 8, 9곳을 개방했다가 난민 행렬이 급증하자 22일부터 2곳으로 줄였다. 터키 정부는 터키로 넘어오려는 수만 명의 시리아 쿠르드족 난민뿐 아니라 거꾸로 IS에 맞서 쿠르드족 자치도시를 지키려고 시리아로 넘어가려는 수천 명의 터키 내 쿠르드인들도 막고 있다. 이 때문에 국경지대에서는 쿠르드족 시위대와 터키 경찰 간의 충돌까지 빚어지고 있다. 시리아-터키 국경 양편의 쿠르드족은 터키가 IS에 대항하는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들은 터키가 쿠르드족이 자치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IS를 지원해온 것으로 믿고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이번 미국의 시리아 공습에 참여를 거부해온 터키의 태도는 이러한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터키는 1, 2차 걸프전, 이라크전 등 중동전마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의 전진기지 역할을 해왔지만 이번엔 주저하고 있다. 그러나 터키가 더욱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 문제다. 특히 터키 정부가 불법테러 단체로 규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 무장대원들이 대거 시리아 국경을 넘어가 서방의 지원을 받고 전투력을 강화한 뒤 다시 돌아와 터키 내부에서 소요사태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 “코바니의 혼란은 IS 공격이 낳은 중동 분쟁의 복잡함을 상징한다”며 “미국이 뿜어내는 화력이 예기치 못한 다양한 곳에서 타오르기 시작했고 점점 더 분쟁을 조각내고 있다”고 지적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여왕이 전화기를 붙들고 눈물을 흘려가며 정말 좋아했다. 누군가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처음 봤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18일 실시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부결로 결정된 직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의 통화 내용을 떠벌려 구설에 올랐다. 캐머런 총리는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경제인들과의 회동 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과 걸으면서 잡담을 나눴다. 이들의 사적인 대화는 현장에 있던 영국 스카이뉴스 방송 취재진의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캐머런 총리는 블룸버그 전 시장에게 “여왕에게 전화해 ‘당신의 왕국이 손상을 입지 않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여왕이 ‘정말 잘됐다(That's right)’라고 말하며 쉴 새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캐머런 총리는 또 여론조사는 막판까지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지만 개표 결과는 독립 반대가 10%포인트가량 앞섰던 데 대해 “여론조사 업체들을 찾아내서 고소하고 싶다. 투표를 앞두고 내 속이 얼마나 탔는지 위에 구멍이 날 정도였다”고 농담했다. 그의 이런 ‘잡담’이 공개되자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캐머런 총리의 발언은 여왕의 정치적 중립성에 큰 손상을 입힐 수 있다. ‘총리는 군주와의 대화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영국 왕실과 정치권 사이의 전통이 깨졌다”고 지적했다. 독립 찬성 진영을 이끌었던 앨릭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역시 “캐머런은 4년간 총리 자리에 있었는데도 여왕에 대해 떠벌리지 않는다는 기본적 예의도 못 배웠다”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버킹엄궁은 “사적인 대화에 대해서는 견해를 밝히지 않겠다”고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미국이 ‘이슬람국가’(IS)의 시리아 거점을 공습함에 따라 IS가 인질 살해와 테러 등으로 보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IS는 22일 미국의 공습이 시작되자 인질로 붙잡고 있는 영국 프리랜서 기자 존 캔틀리 씨가 등장하는 영상을 전격 공개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캔틀리 씨는 이 영상에서 “과거 베트남전쟁이 미국에 타격을 줬던 것처럼 시리아 분쟁에 발을 들이는 것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IS는 앞서 미국이 자신들을 격퇴하기 위한 국제연합군 규합에 나서자 이에 동참하는 국가에 보복하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아부 무함마드 알아드나니 IS 대변인은 21일 인터넷에 공개한 음성 메시지에서 “미국은 물론이고 특히 악의적이고 저주받은 프랑스인을 비롯해 호주인 캐나다인 등 ‘반(反)IS동맹’에 참여한 국가의 불신자들은 민간이든 군인이든 죽여도 된다”고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전 세계 연인(戀人)들이 매단 ‘사랑의 자물쇠’로 몸살을 앓고 있는 프랑스 파리 센 강의 ‘퐁데자르’(예술의 다리)를 보호하기 위한 긴급조치가 나왔다. 파리 시 당국은 19일 퐁데자르의 쇠 철조망으로 된 난간 일부를 두꺼운 투명 플라스틱 패널로 교체해 자물쇠를 달지 못하도록 막았다. 시 당국은 우선 난간 2개 패널을 투명 플라스틱으로 교체한 데 이어 앞으로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퐁데자르에 사랑의 자물쇠가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 ‘연인끼리 자물쇠를 매단 후 열쇠를 센 강에 던지면 사랑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155m 길이의 퐁데자르에는 6년 만에 54만 개가 넘는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급기야 올 6월 자물쇠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난간 일부가 부서졌다. 난간 패널 1개당 달린 자물쇠 무게가 500kg이나 돼 다리 난간이 견딜 수 있는 무게를 4배 정도 초과했다고 시 당국은 추산했다. 시 당국은 최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사이트를 만들어 ‘퐁데자르에서 찍은 연인끼리의 셀카’ 콘테스트를 열어 자물쇠를 다는 대신에 셀카를 찍도록 권유해왔다. 그러나 별다른 소용이 없자 다리 난간을 투명 패널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브뤼노 쥘리아르 파리 시장 수석보좌관은 “우리는 파리가 ‘사랑의 수도’라는 점이 매우 자랑스럽다”며 “아름다운 경관을 해치는 방법 말고 다른 사랑의 표현법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낭만의 도시 파리에 사랑의 자물쇠를 남겨놓을 곳을 또 찾아 나설 것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다면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다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앨릭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사진)이 밝혔다. 샐먼드 수반은 21일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분리독립 주민투표는 한 세대에 한 번쯤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변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19일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부결된 지 이틀 만에 또다시 독립투표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다. 이어 그는 “영국 정치가들이 거짓 약속으로 스코틀랜드인들을 속였다. 영국 중앙정부가 자치권 확대 약속을 저버리는 것도 투표 요구를 다시 촉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반발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스코틀랜드에 자치권을 확대하는 대신 스코틀랜드 의원들의 의결권을 일부 제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캐머런 총리는 21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기고한 글에서 “영국 의회는 스코틀랜드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데 스코틀랜드 지역구 의원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법률 제정에 참여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정계 복귀를 선언한 니콜라 사르코지(사진) 전 프랑스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일간 르파리지앵은 20일 ‘어느 지도자가 프랑스를 더 잘 재건할 수 있는가’를 묻는 여론 조사 결과 사르코지가 현직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와의 양자 대결에서 60% 대 32%로 우세했다고 보도했다. 사르코지는 차기 대선 출마를 노리는 마뉘엘 발스 총리와의 대결에서도 51%를 얻어 43%에 그친 발스를 따돌렸다. 사르코지는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64% 대 28%로 압도했다. 사르코지는 19일 “나는 내 정치 가족(야당 대중운동연합)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 후보로 나갈 것”이라면서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차기 대선 출마에 여론은 아직 차갑다. 20일 BFM TV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7년 대선에서 사르코지가 후보가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63%가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특히 사회당 지지자들의 반대 의견이 92%나 됐다. 응답자의 67%는 지난 대통령 임기 중 사치스러운 개인생활로 지적을 받았던 사르코지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사르코지는 ‘프랑스2’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대선 출마를 밝힐 때가 아니다”라며 “야당 개혁을 위한 긴 여정이 이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307년 만에 영국의 품에서 벗어나려던 스코틀랜드의 시도가 좌절됐다.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 유권자들은 독립보다는 ‘유나이티드킹덤(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 남는 선택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가슴’으로는 독립국을 원했지만 현실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머리’가 더 힘을 발휘한 것이다. 나라가 쪼개질 위기를 간신히 넘긴 영국은 투표 결과에 안도하면서도 ‘스코틀랜드 끌어안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9일 32개 지역의 개표를 완료한 결과 독립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55.3%로 ‘찬성’ 44.7%보다 약 10%포인트 앞섰다. 주도인 에든버러 등 28개 지역에서 ‘반대’가 우세했고 ‘찬성’이 우세한 지역은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 글래스고 등 4곳에 불과했다. 각종 여론조사는 ‘반대’가 4∼6%포인트 차로 앞설 것으로 내다봤으나 막상 투표함의 뚜껑을 열어 보니 예상보다 반대표가 더 많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동안 침묵해 온 ‘반대 군단’이 막판에 결집해 승리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독립하면 영국 파운드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위기감과 주요 기업들의 본사 런던 이전 엄포, 초기 독립국 재정을 위한 증세 우려 등이 공포심리를 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투표율은 84.6%로 집계돼 1918년 영국에 보통선거가 도입된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종전 기록은 1950년 총선 당시의 83.9%였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날 아침 개표 결과가 나온 직후 연설을 통해 “이제 영국이 하나로 뭉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밝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영국 국민들의 화해와 통합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어 스코틀랜드에 새로운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모두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주민투표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독립 찬성 여론이 반대를 처음으로 앞지르는 등 상승세를 보이자 이를 꺾기 위해 조세징수권과 예산편성권 등을 스코틀랜드에 이양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권한 이양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스코틀랜드 내 반영국 정서가 다시 고개를 들 수도 있다. 보수당에서는 캐머런 총리가 2년간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막판에 스코틀랜드에 자치권 대폭 확대를 약속하는 등 너무 많이 양보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에 독립 찬성 운동을 주도하던 앨릭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최대의 승리자로 떠올랐다. 전 세계에 스코틀랜드의 독자 브랜드를 각인시킨 데다 중앙정부로부터 더욱 큰 권력 이양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샐먼드 수반은 이날 TV 연설에서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이제 스코틀랜드와 나머지 영국 모두의 이익을 위해 실질적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독립투표 부결 소식에 영국의 파운드화 가치가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9일 오전 영국 런던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0.4% 오른 1.65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 2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에든버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드디어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미래를 판가름하는 운명의 날이다. 18일 오전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 에든버러 성 앞 세인트 자일 대성당 인근에 마련된 투표소.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에 대해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줄을 섰다. 인근 광장에는 푸른색 스코틀랜드 깃발을 몸에 두른 분리 독립 찬성 운동원들과 빨간색 풍선을 든 반대 운동원들이 유인물을 경쟁적으로 뿌렸다. 스코틀랜드가 그레이트브리튼에 남을지, 독립할지는 19일 오전 6시경(한국 시간 오후 2시)에 윤곽이 드러난다. 분리 독립의 파장이 전 세계에 미치는 만큼 각국도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론조사와 높은 투표율로 미루어 독립 찬성이 나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세계적 도박 사이트인 ‘벳페어닷컴’은 18일 현재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확률보다 영국에 남을 확률이 높다고 예측했다. 로이터통신은 투표 직전 5개 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독립 반대가 2∼6%포인트 차로 찬성을 앞섰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찬반을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당초 30만 명 수준에서 60만 명으로 늘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번 선거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영국과 스코틀랜드에 뿌리 깊은 반목과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영국은 절대로 투표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독립 투표가 부결되면 분노한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중앙정부에 더 많은 특혜를 요구할 것이고 이는 다시 “왜 스코틀랜드에만 특혜를 주느냐”는 반발을 불러일으켜 나라를 분열시킬 것이란 분석이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다른 지역 주민의 삶도 큰 변화를 겪는다. 이 때문에 영국 내에선 “6400만 명이 사는 영국의 운명을 불과 200만 명의 스코틀랜드인에게 맡기는 것이 공정하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선거 전부터 터져 나왔다. 투표일인 18일에도 영국인들은 “예스”와 “노”를 외치는 스코틀랜드 운동원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1707년 제정된 영국 연방법 1조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국의 영구 통합을 명시했다. 그러나 2014년 영국은 자국의 분열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이날 투표를 마치고 나온 작가 잔 로스 씨(56·여)는 “그동안 스코틀랜드가 선택하지 않은 영국 의회는 우리에게 불평등을 강요해왔다”며 “오늘은 수백 년간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되찾는 기쁜 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잭 호퍼 씨(60)는 “우리 부부와 공무원인 첫딸은 반대표를 던지고, 나머지 두 딸은 찬성표를 던졌다. 가족까지도 분열시킨 이번 투표가 우리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된다”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 선거에서 찬성이 더 많이 나오면 영국은 국토의 3분의 1과 북해유전을 잃게 되면서 연간 10조 원이 넘는 세수 감소를 감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전체도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제2의 금융위기’에 빗대고 있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막기 위한 영국 정부의 회유와 압박은 선거 당일까지 이어졌다. 영국 정부의 앨리스테어 카마이클 스코틀랜드 장관은 “독립 투표가 통과되면 북해 유전지대의 셰틀랜드 제도도 스코틀랜드에서 벗어나 자치령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18일 보도했다. 영국 정부가 최후에 빼든 카드는 독립 찬성파의 버팀목이던 북해 석유를 빼앗아 갈 수 있다는 폭탄발언이었다.에든버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웨스트민스터의 압제로부터 자유를.” “우리와 함께 머물러 달라.” 1707년 잉글랜드에 병합된 지 307년 만에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을 묻는 투표의 날이 밝았다. 투표일을 하루 앞둔 17일 스코틀랜드의 주도 에든버러는 한겨울처럼 쌀쌀했지만 표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막바지 경쟁은 후끈 달아올랐다. 시내 중심가 보도블록과 동상 받침대 등은 분필로 적은 찬반 구호들이 뒤덮다시피 했다. 시내 곳곳이 거대한 찬반 토론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길거리에는 독립 찬성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나눠 주는 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뉴잉턴&사우스사이드 지역 ‘YES 캠페인’ 본부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던 그레이엄 마셜 씨(60)는 “내일 주민투표가 끝나면 결과와 상관없이 스코틀랜드는 크게 변해 있을 것”이라며 “영국 웨스트민스터(의회) 권력이 스코틀랜드를 더이상 얕잡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간 스코틀랜드 축구팀 응원복을 입고 ‘예스맨’으로 활약해 온 아널드 씨(42)는 “스코틀랜드인의 자존심과 자유를 실현할 일생의 기회”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행인들에게 물어보면 ‘반대’ 의견을 나타낸 이들이 더 많았다. 은행원인 존 로스 씨(23·로이즈뱅킹그룹)는 “독일이 주도하는 유로는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의 재정위기로 가치가 떨어졌지만 영연방 스스로 통제하는 파운드화는 금융위기 속에서도 건재했다. 스코틀랜드는 계속해서 파운드화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주민투표에서는 투표연령이 18세에서 16세로 낮아져 젊은층의 표심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샘 잘몬드 군(17)은 “스코틀랜드는 자원이 풍부한데도 영국보다 더 심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젊은층은 변화를 원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반면에 대학생 피터 제임스 씨(21)는 “이성보다는 애국주의와 적대심으로 호소하는 앨릭스 샐먼드 자치정부 수반의 ‘장밋빛 환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16일 마감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대와 찬성 비율은 52% 대 48% 정도로 반대가 더 많았다. 하지만 오차 범위 안의 접전이라 어느 쪽도 우세를 장담키는 어렵다. 영국 정부와 주요 정당들은 전날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에 조세권과 예산권까지 넘기는 획기적인 자치권 확대를 약속하는 합의문을 공개하며 반대표 결집을 위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영국 현지 언론들은 이 합의문이 찬성 열기를 식히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주민투표가 그 결과를 떠나 스코틀랜드를 분열시켜 깊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기자가 돌아본 거리의 대다수 주택 창문엔 ‘YES’ 또는 ‘NO’ 표시가 붙어 있었다. 이웃끼리도 한쪽은 영국을 상징하는 ‘유니언잭’을 내걸었는가 하면 다른 쪽엔 스코틀랜드 독립을 상징하는 푸른색과 흰색 ‘성 안드레아 십자가’ 깃발을 내걸기도 했다. 택시 운전사 게리 씨(56)는 “노동계급이 많이 사는 지역엔 변화를 기대하는 ‘YES’ 표시가 많고 부유한 지역에는 안정을 바라는 ‘NO’ 지지자가 많다”며 “이번 투표가 마감된 뒤 주민 화합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2일 마감된 선거인 명부에는 유권자 428만 명이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60만 명이 해외 거주자다. 18일 오전 7시에 시작되는 투표는 오후 10시경에 마감되며 개표 결과는 19일 오전 6시(한국 시간 오후 2시)경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에든버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주성하 기자}
올림픽 리듬체조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1)과 염문설에 휩싸인 알리나 카바예바(31)가 언론사 회장으로 옮기기 위해 하원의원직을 사퇴했다. 러시아 최대의 민간 언론사인 내셔널미디어그룹의 대변인은 15일 “카바예바 의원이 그룹의 이사회 회장직을 맡아 달라는 주주들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리듬체조에서 금메달을 딴 카바예바는 2007년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통합러시아당 소속으로 국가두마(하원)에 진출해 재선 의원으로 활약했다. 특히 그는 30년 연상인 푸틴 대통령의 정부(情婦)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크렘린궁은 염문설을 낸 신문사를 폐간시키면서까지 이를 부인해왔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올해 4월 본처 류드밀라 씨와 이혼 절차를 끝내 카바예바는 차기 대통령부인 1순위로 꼽혀왔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출신인 카바예바는 세계선수권대회도 두 번이나 제패했으며 올해 소치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 봉송주자로 등장한 뒤 대회장에서도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자리에 머물렀다. 그는 2007년 남성잡지 맥심이 선정한 ‘가장 섹시한 러시아 미녀 베스트 100’ 중 9위로 꼽히며 화보를 내기도 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주민투표에서 독립을 거부하면 광범위한 자치권을 줄 것이며, 자원도 공유하겠다.”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주민투표를 이틀 앞둔 16일 찬반 양 진영의 캠페인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 닉 클레그 부총리 등 영국 지도자들이 스코틀랜드에 자치권을 보장하는 공동 성명을 내고 막판 표심 결집에 나섰다. 영국 BBC에 따르면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초안을 만든 이 성명에는 영국이 자치권을 보장하는 안과 함께 북해 석유를 평등하게 배분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캐머런 총리는 15일 마지막 지원 유세를 위해 스코틀랜드 석유산업의 중심지 애버딘을 찾아 “독립은 한번 해보는 별거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이혼(painful divorce)’이 될 것”이라며 ‘사라져 버릴 꿈’에 현혹되지 말라고 호소했다. 대니 알렉산더 재무담당 부장관은 부동산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웹사이트 주플라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역내 집값이 평균 3만 파운드(약 5000만 원)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유사한 충격이다. 반면 분리 독립 운동을 이끄는 앨릭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겸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당수는 이날 “중앙정부의 경제 불안론은 근거 없는 협박”이라며 적극적인 찬성표 행사를 호소했다. 샐먼드 수반은 “스코틀랜드가 배출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살아있다면 독립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퍼거스 유잉 스코틀랜드 에너지장관은 스코틀랜드 북쪽 해상에 있는 셰틀랜드 제도에서 새로운 유전층 개발이 가능하다는 업계의 자료를 제시하면서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은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며 북해 원유 고갈론을 반박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주민투표에 우려를 표시한 것도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조시 어니스트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15일 “영국이 강하고 견고한 연방 형태로 남아 있는 게 미국의 이해와 일치한다”며 공식적으로 독립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독립이 가져올 경제적 대가는 놀랄 만큼 부정적일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영국의 베팅업체들은 독립투표 내기(베팅)에 정치 사안으로는 최대 규모의 돈이 몰리고 있다며 반기고 있다. 200만 파운드 이상이 판돈으로 걸릴 것으로 예상한 베팅업체 ‘윌리엄힐’은 4파운드를 걸면 가결됐을 때 11파운드를 받고 부결되면 1파운드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부결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결 배당률이 높게 나온 것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용접공 출신 노조지도자 스테판 뢰프벤 사회민주당 당수(57)가 스웨덴의 신임 총리에 바짝 다가섰다. 총리직에 오르면 1921년 스웨덴에서 보통선거가 도입된 이후 의회나 정부에서 공직을 거치지 않은 최초의 총리가 된다. 뢰프벤 당수가 이끄는 사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녹색당 좌파당 등과 좌파연합을 구성해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전 총리의 우파연합을 따돌리고 8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개표 결과 좌파연합은 43.7%로 159석을 얻었고 우파연합은 39.3%로 142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입양아가 일약 스웨덴 총리로 1957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뢰프벤은 어머니가 생후 10개월 때 보육원에 맡겼다. 아버지가 일찍 숨져 뢰프벤과 한 살 위인 형을 모두 부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양부는 벌목꾼이자 공장 노동자였고 양모는 방문간호사였다. 그는 22세 때 생모와 형을 만나 원래 이름을 알게 됐다. 학력은 상고를 졸업하고 스웨덴 북부 우메오대에서 1년 반 동안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다 중퇴한 게 전부다. 그는 48주의 용접기능공 과정을 마친 뒤 1979년부터 용접공으로 일했다. 2년 뒤 단위노조 간부가 됐으며 2005년 ‘IF메탈’(금속노조) 초대 위원장을 거쳐 2012년 1월 사민당 당수에 올랐다. 그의 이력은 폴란드조선소 노조위원장 출신인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과 닮았다. 1994년 지금의 아내와 만나 9년 뒤 결혼했다.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전남편과 사이에 장성한 자녀 2명이 있었다. 그는 총선 전 “아내와 출발은 매우 힘들었지만 그럴수록 관계는 더욱 굳건해졌다. 나는 요리는 잘 못하지만 집 안 청소와 다림질은 내 몫”이라고 말했다. 그는 13세 때 ‘복지대국’ 스웨덴의 기초를 닦은 올로프 팔메 전 스웨덴 총리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사민당에 입당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철폐투쟁을 보며 불평등에 문제의식을 품은 것이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뢰프벤 당수는 단독정부 수립에 필요한 과반 확보에 실패해 연정에 나서야 한다. 우파연정에 참여했던 3개 정당 중 일부와 손을 잡아야 해 스웨덴 최초의 좌우 연정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좌파 승리 속 우파도 전진 사민당은 친(親)시장경제 정책을 앞세운 우파에 밀려 8년간 야당으로 밀려났다. 보수파인 레인펠트 전 총리가 2006년 취임한 이후 8년간 국내총생산(GDP)은 12.6% 성장했고 가처분 소득도 20% 증가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집권 여당에 등을 돌렸다. 우파 주도의 친기업적 시장주의가 복지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뢰프벤 당수는 “청년실업률이 크게 늘었고 교육예산이 깎이면서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순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역대 최저인 28위로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스웨덴의 변화는 북유럽의 앞길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는 반(反)이민을 내건 극우정당 스웨덴민주당(SD)도 약진했다. SD는 12.9%(47석)를 득표해 제3당에 올랐다. 2010년 총선에서 5.7%의 득표율로 의회에 첫발을 내디딘 뒤 4년 만의 일이다. SD는 ‘자유 이민정책’에 반대하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었다. 스웨덴은 올해 시리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약 8만 명의 망명 신청자가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1992년 이후 가장 많은 수다. 14일 독일 주의회 선거에서도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튀링겐 주와 브란덴부르크 주에서 각각 10.6%와 12.2%를 득표해 원내 주요 정당으로 진입했다. 이에 앞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이 108년간 유지된 양당체제를 깨고 1위에 올랐으며 프랑스 국민전선도 승리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상태에서 그동안 중립을 지키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사진)이 처음으로 우회적인 반대 의사를 밝혔다. 여왕은 14일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 인근 한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뒤 지지자들과 만나 “나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는 여왕이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준 발언은 아니지만,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영국의 오랜 유대를 단절하는 문제를 두고 신중히 생각해 달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여왕의 보기 드문 정치 분야에 대한 개입”이라고 평했다. 그동안 집권 보수당은 여왕에게 직접 분리 독립 반대 의견을 밝혀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해왔다. 하지만 버킹엄궁은 “왕실이 정치에 관여해선 안 되며 엄정한 중립을 지키는 것은 영국 헌법에 명시된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특히 현재 찬반 여론이 초박빙이어서 여왕의 발언은 18일 투표에서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왕은 혈연적으로도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후손이어서 스코틀랜드에서 인기가 높다. 스코틀랜드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독립백서’에서 독립을 하더라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여왕은 1977년에도 분리 독립에 반대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가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던 당시, 재임 2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여왕은 “지역의 열망을 이해하지만 내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아일랜드를 합친 영국의 여왕으로 즉위했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번엔 영국인을 참수했다. IS의 ‘참수 정치’가 미국뿐만 아니라 동맹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BBC는 13일 “IS 대원이 미국인 기자 2명에 이어 세 번째로 영국인 인질 데이비드 헤인스 씨(44·사진)를 참수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동맹국들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IS 대원은 무릎을 꿇은 헤인스 씨 옆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이라크 정부와 협력을 약속하는 장면을 보여준 뒤 “이 영국 남성은 당신(캐머런 총리)의 약속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참수 이유를 밝혔다. IS 대원은 동영상 말미에 또 다른 영국인 앨런 헤닝 씨를 보여준 뒤 다음번 참수 대상이라고 협박했다. 프랑스 구호단체에서 일하던 헤인스 씨는 지난해 3월 시리아 난민캠프 터를 둘러보고 터키로 돌아가다 무장괴한에게 납치됐다. 함께 납치됐던 이탈리아인 동료는 5월 600만 유로(약 80억 원)의 몸값을 내고 풀려났지만 헤인스 씨는 영국 정부가 테러범과는 몸값 협상을 벌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계속 억류돼 있었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헤인스는 영웅이었다”며 “살인자들을 붙잡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IS는 “이슬람 신자가 아닌 괴물”이라며 “IS와의 싸움에서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는 지상군 투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편 IS를 격퇴하기 위해 시리아 공습을 결정한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국제연합군 구축에 전력을 쏟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주례연설에서 “우리는 IS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 미국의 공군력과 동맹국의 협조 노력을 한데 묶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13일 이집트를 방문해 압둘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 나빌 엘라라비 아랍연맹(AL)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아랍권의 협조를 요청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존 앨런 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을 국제연합군 구성을 위한 대통령 특사로 임명했다. 앨런 특사는 연합군 구성을 실무 지휘하게 된다. 독일 정부는 13일 IS에 맞서는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군 훈련을 위해 약 40명 규모의 파병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호주 정부도 병력 600명과 군용기 10대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워싱턴=이승헌 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국가(IS)의 지도자 개인에 대한 제거 명령을 처음으로 승인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1일 군사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첫 목표물은 IS의 초대 칼리프(최고지도자)를 자임한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3)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IS 같은 적을 파괴하는 방법은 매우 공격적이어야 한다. 군대를 이끄는 지휘·통제 능력을 붕괴시키는 것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IS 지도자에 대한 미군의 공격을 제한해 왔다. 미군 공습은 미국인과 시설을 방어하고 난민을 보호하거나 IS가 점령하려는 댐 등에 국한됐다. 미군은 이미 시리아 상공에서 정찰활동을 벌여 정보를 수집해 왔으며 이를 토대로 IS 지도자와 전투요원 등 공격대상 목록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CNN은 “미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IS 전투요원은 2만∼3만1500명으로 기존 추정인원인 1만 명에서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군 당국자는 “미군은 목표물을 공격할 기회만 오면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군사공격을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한편 프랑스는 미국의 IS 공습 동참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영국과 독일은 거절하는 등 오바마 대통령이 요청한 국제공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12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전격 방문해 미국의 IS 공습을 지지했다. 사우디 등 10개 아랍국은 공습 지원 의사를 밝혔다. 반면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교장관은 11일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습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필립 해먼드 영국 외교장관도 시리아 공습에 가세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러시아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 이루어진 공습 결정은 도발행위이자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다.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파리=전승훈 특파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보수당), 닉 클레그 부총리(자유민주당),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 등 영국 정계 지도자들이 분리 독립의 불길을 잡으러 10일 일제히 스코틀랜드로 달려갔다. 반면 앨릭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세 사람의 방문은 분리 독립 ‘예스’ 캠페인 열기를 더욱 높일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18일 예정된 스코틀랜드의 주민투표에 대한 궁금증을 모아 봤다. ―주민투표는 어떻게 이뤄지나. “스코틀랜드 인구 540만 명 중 유권자는 410만 명이다. 부동층에선 생애 처음 투표권 행사에 나서는 16∼18세 유권자 12만 명이 변수다. 스코틀랜드에 사는 잉글랜드, 웨일스 출신 영국인과 유럽연합(EU) 주민 50만 명도 투표한다. ‘변화를 바라는’ 젊은이들과 ‘안정을 택하고 싶은’ 외국인들의 표심이 변수다. 독립이 가결돼도 통화와 연금 복지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2016년 독립국가 출범 전까지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는 더 잘살게 될까. “독립하면 북해 유전의 84%를 소유하게 된다. 찬성론자들은 북유럽식 무상보육과 최저임금 인상, 세금 인하도 가능하다고 선전한다. 반면 영국 정부는 경제가 파산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또 230억 파운드(약 40조945억 원)의 즉각적인 채무 상환에 직면하고 국가 수립 비용으로만 15억 파운드(약 2조5000억 원)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스코틀랜드가 파운드화를 쓸 수 있나.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9일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파운드화를 쓸 수 없다고 경고했다. 반면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측은 국제통화인 파운드화를 쓰는 데 영국 정부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남을 것인가. “그렇다. 스코틀랜드는 입헌군주제 헌법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 전망이어서 여왕의 자리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생 스코틀랜드가 EU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새로 가입하나. “쉽지 않다. 스코틀랜드는 기존 회원국임을 내세우지만 EU 지도부는 신생 국가와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자격 심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다른 국가들에 영향을 주나. “스페인 카탈루냐, 캐나다 퀘벡, 프랑스 코르시카 등이 스코틀랜드 사례를 보고 분리 독립에 더 강하게 나설 가능성이 있다.” ―영국의 핵잠수함 기지는 어떻게 되나.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비핵화 원칙’을 천명하고 2020년까지 남서부 클라이드 만에 있는 영국 트라이덴트 핵잠수함 기지를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영국은 30억 파운드에 이르는 막대한 이전 비용을 마련해야 할 뿐 아니라 새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을 설득해야 한다.” ―스코틀랜드는 왜 분리 독립을 고집하나. “스코틀랜드는 켈트족이,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중심이다. 잉글랜드와는 1707년 단일 국가로 통합됐지만 누적된 민족 갈등이 최근의 경제난을 계기로 분출됐다. 분리 독립을 당론으로 내건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다수당이 되면서 주민투표 시행을 이끌어 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독일의 ‘F1 황제’ 미하엘 슈마허(45·사진)가 스키장 사고 발생 9개월 만에 스위스 로잔 병원에서 퇴원했다. 슈마허의 매니저인 사빈 켐 씨는 9일 공식 성명을 통해 슈마허가 상당히 회복했지만 여전히 힘들고 먼 길을 가야 한다면서 자택에서 계속 재활 치료를 받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슈마허 가족들의 프라이버시가 계속 존중되기를 요청하며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추측도 자제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1991년 FI에 데뷔해 7차례 월드챔피언에 오른 슈마허는 지난해 12월 말 프랑스 알프스 메리벨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189일 동안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올 6월 16일 의식을 회복했다. 슈마허는 그 뒤 6개월 동안 지내던 프랑스 그르노블의 병원을 떠나 자신의 집과 가까운 로잔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슈마허의 자택은 로잔에서 약 40km 떨어진 제네바 레만 호 인근 글랑에 있다. 자택에는 첨단 의료기기 및 전임 간병인을 위한 공간을 포함한 의료센터가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슈마허의 상태 호전은 의학계에서도 놀라워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장기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신체와 정신을 온전히 회복하는 사례는 10명 중 1명꼴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