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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987년 러시아와 체결했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탈퇴 시한인 2일이 임박했지만 미국과 러시아 모두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국제사회에 새로운 ‘군비 경쟁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미국, 2일 탈퇴… 러시아 주장 반박 칼라 글리슨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러시아는 INF 의무사항의 검증 가능한 준수 상황으로 돌아가려는 어떤 의미 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조약이 8월 2일 종료되면 미국은 더 이상 INF상 금지 조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이례적으로 ‘INF 오해 바로잡기(Myth Busters)’라는 자료까지 내며 INF 탈퇴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러시아 측 주장을 반박했다. 이 자료는 ‘러시아가 조약 관련 협상 의지가 있는데 미국은 없다’는 지적에 대해 “미국은 6년간 러시아에 조약 불이행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벌여 왔고 30회 이상 문제를 제기해왔다”며 러시아와의 6년간 논의 기록까지 담았다. INF 조약은 냉전시대였던 1987년 12월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사이에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됐다. 사정거리 500∼5500km의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없애고 개발, 배치하지 않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국이 유럽에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구축하고, 러시아도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조약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재작년 러시아가 9M729 미사일을 실전 배치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INF 조약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러시아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9M729의 사거리가 500km에 미치지 않아 INF 금지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3일 INF 조약 참여 중단 법령에 서명했다. 미국이 INF 조약을 탈퇴하면 러시아도 탈퇴하겠다는 것이다.○ 나토 중재도 무용지물 INF 조약이 파기되면 새로운 군비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 때문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등 유럽 국가들은 INF 준수 및 유지를 촉구해 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우리는 INF 조약을 살리기 위해 러시아의 조약 준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의 INF 탈퇴 이후 동북아에서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 배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려 하면 ‘제2의 사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2021년 시한이 만료되는 신(新)전략무기감축 협정(New START)도 갱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 국방부는 6월 핵무기 사용을 옹호하는 듯한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당시 ‘핵 작전’이라는 명칭으로 합동참모본부와 함께 작성한 이 보고서는 핵전략과 작전, 사용 계획과 타깃 등까지 구체적으로 담고 있었다. 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올 4월 대형 화재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던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최근 복구과정에서 불거진 ‘건강 스캔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화재 당시 내부 골조에 쓰인 납 300t 이상이 녹아내린 뒤 연기와 함께 입자 형태로 성당 주변 수백 m 밖까지 확산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수도권 일드프랑스 광역행정청은 26일 성당 복구공사를 중단했다. 성당 인근 학교와 보육원 등도 임시 폐쇄했다. 납 오염 논란이 제기된 건 5월부터다. 당시 납 오염 우려가 제기되자 일드프랑스 보건소는 성당 인근 출입금지구역의 토양을 검사했다. 그 결과 토양 1kg당 납이 최대 20g으로, 프랑스 보건부 기준치(kg당 0.3g)의 67배에 달했다. 중금속인 납은 미세분진에 흡착돼 호흡기나 입으로 들어간다. 납에 중독되면 실명, 사지 마비, 기억 손상 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당시 보건당국은 “성당과 근접한 출입금지구역 외에는 기준치를 넘는 납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납 오염 위험성 축소 의혹이 제기됐다. 이달 초 현지 탐사보도 매체 메디아파르(Mediapart)와 환경단체들은 성당 주변뿐 아니라 주변 수백 m까지 허용 기준치의 400∼700배에 달하는 납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보건당국에 책임을 물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성당 복구공사가 중단되기 전인 이달 17일 기자가 공사현장에 찾아갔을 당시 만난 한 관계자는 “작업복 등으로 철저히 무장했고, 하루 업무가 끝나면 모두 폐기한다”면서도 “화재로 일대에 납 오염이 확산돼 겁난다”고 말했다. 프랑스 환경단체 ‘로뱅 데 부아’의 자키 본맹 대변인은 “휴가철을 맞아 수많은 관광객이 노트르담 성당 주변을 찾아오지만 납 중독 관련 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의 옷이나 신발을 통해 납 분진이 더 많은 곳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행자들의 신발 밑창을 통해 납이 파리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 성당 인근 생미셸역은 지난달부터 일시 폐쇄된 상태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여행객들은 납 오염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성당 주변 흙바닥이나 시설에 손을 대는 모습도 쉽게 목격됐다. 멕시코인 여행객 페르난데스 씨(56)는 “성당 주변에 최소한의 경고 표지판이라도 달아야 하지 않나”라고 성토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마크롱(프랑스 대통령)의 어리석음에 대응하겠다.” 프랑스가 최근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주요 정보기술(IT) 회사에 디지털세를 물리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이를 비판하며 프랑스 대표상품 ‘와인’에 대한 보복관세를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프랑스는 위대한 미국 기술 기업들에 디지털 세금을 부과한다”며 “만약 누군가 이들 기업에 세금을 부과한다면, 그것은 고국인 미국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마크롱의 어리석음에 대한 상호적(reciprocal) 조치를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며 “나는 항상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보다 좋다고 말해왔다”고 했다. 이를 두고 AFP 통신과 르피가로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디지털세에 대한 불만으로 프랑스 와인 관세 강화를 암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프랑스 상원은 연 수익 7억5000만 유로(약 9890억 원) 이상이면서 프랑스에서 2500만 유로(약 330억 원) 이상의 수익을 내는 IT기업이 자국에서 벌어들인 연간 총매출의 3%를 디지털세로 부과하는 법안을 11일 의결한 바 있다. 이 법안은 주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기업을 타깃으로 한다. 법안 통과 직후 미국은 즉각적으로 반발하며 보복 관세 부과를 경고했다. 트럼트 대통령의 발언은 이를 곧 시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 국제무역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은 수입 와인에 알코올 함량과 종류 등에 따라 구분해 1병당 5.3¤12.7센트의 관세를 부과한다. 반면 EU는 미국산 와인에 1병당 11¤29센트의 세금을 매긴다. 와인세 적용이 임박하자 프랑스도 바빠졌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디지털세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했다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전했다. 그는 “10년간 유럽 내 미국 산 와인 판매가 30% 증가한 상황”이라며 “(디지털세와 와인세) 두 가지 이슈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다음달까지 미국과 디지털세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낼 방침이다. 프랑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보편적인 과세 방안에 대해 합의한다면 디지털세 정책을 철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프랑스는 다음 달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디지털세를 의제로 논의한 후 각국 정상들과 적정 수준의 과세에 합의하길 원한다고 로이터 통신은 밝혔다. 앞서 19일 미국을 포함한 프랑스 독일, 일본 등 G7국가들은 디지털세가 원칙적으로는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모두 합의한 바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이런 더위는 처음입니다. 못 견디겠어요.” 25일(현지 시간) 오전 프랑스 파리 리옹 역 앞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 가브리엘 씨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그를 포함해 역 주변의 많은 시민들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폭염으로 인한 각종 불편과 고통을 호소했다. 이날 파리의 낮 최고기온은 무려 42.6도. 역대 최고 기온이다. 1873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후 기존 최고인 40.4도(1947년 7월 28일)보다도 2.2도 높다. 폭염으로 유명한 이집트 수도 카이로보다 높은 수치다. 루앙(40.7도), 릴(40.5도), 트루아(41.4도) 등 다른 대도시도 비슷했다. 프랑스 전역이 ‘찜통’으로 변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웃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독일 링겐(42.6도), 벨기에 클라이네브로겔(40.6도), 네덜란드 힐저레이언(40.4도) 등 유럽 곳곳이 40도를 넘었다. 폭염의 원인은 아프리카에서 온 뜨거운 공기로 추정된다. 다음 달에도 폭염이 이어지면 2003년 최악의 폭염으로 2주 동안 유럽 노인 등 1만5000여 명이 사망한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유럽 곳곳에서 열병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프랑스 내무부는 “이달 들어 50명이 숨졌다. 야외 활동을 피하고 노인과 어린이는 특히 더 주의하라”고 밝혔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한 2세 아이가 부모가 보지 못한 사이에 폭염에 과열된 자동차에 탔다가 숨졌다. 벨기에 미델케르케 해변에서도 일광욕을 하던 66세 여성이 사망했다.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점도 피해를 키웠다. 원래 유럽은 여름에도 더위가 심하지 않고 습도가 낮아 일반 가정이나 식당 등 공공장소에도 에어컨이 많지 않다. 기자가 이날 파리 15구 내 10군데 커피숍을 돌아본 결과 ‘미국 프랜차이즈’ 스타벅스 1곳에서만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다. 일반 프랑스 커피숍에서는 에어컨을 찾기 어려웠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유럽 가정의 평균 에어컨 설치율은 10% 미만이다. 최근 1개월간 에어컨 가격은 약 40% 올랐다. 폭염으로 프랑스 남부 골페슈 원자력발전소도 잠시 멈췄다. 이날 국영 전기회사 EDF는 골페슈 원전의 원자로 2기 가동을 중단했다. 냉각수 과열이 임계치를 넘은 탓이다. 독일 정부도 그론데 원전 작동을 중지시켰다. 폭염이 더 이어지면 남부 바이에른주 원자로 2기 가동도 중단하기로 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한국이 24일(현지 시간)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수출 제재에 대해 “협의로 풀어내자”고 강조했다. 일본 측 제재의 부당함을 이날 모인 전 세계 국가에 알리는 한편 전 세계 앞에서 회의 후에도 제네바에 남아 양국이 협의를 통해 갈등을 풀어보자는 ‘끝장 토론’을 제안한 것이다. 한국 대표로 나선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이날 WTO 일반이사회 이틀째 회의에서 “일본의 조치는 부당하며,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의 발언은 이날 점심시간대(오후 1~3시)가 다가오는 시간에 이뤄졌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비교적 진지하게 김 실장의 설명을 들었다. 김 실장은 또 “협의를 통해 한국과 일본 양국이 이 문제를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한일 양국이 제네바 WTO본부에서 전 세계 164개국 앞에서 이번 수출 제재의 문제를 논쟁한 만큼, 회의가 끝난 후에도 제네바에 남아 양국이 더 대화를 해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사실상 ‘제네바 끝장 토론’인 셈. 한일 양국이 대립보다는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도를 담았고 산업부 측은 밝혔다. 반면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원자재 등의 수출규제에 대해 “WTO의 규칙 위반이 아니다”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날 오전 김 실장 발언이 끝나자, 일본 대표 이하라 준이치 주제네바 일본 대표부 대사가 반론을 펼쳤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회원국에 발언권을 주고 의견을 들어보려던 중 오후 1시가 돼 점심식사를 위해 위원회가 휴회했다. 오후 3시 위원화가 재개된 후에도 양 측 간 오전과 유사한 대화가 오간 후 20분 만에 한일 의제가 끝났다. TV아사히 보도에 따르면 이하라 대사는 이날 “수출 규제 강화는 강제징용 관련한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다. 일본의 안전보장 관점에서 수출 관리의 운용을 재검토한 것이다. WTO의 규칙에도 부합한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23, 34일 이틀 간 열린 WTO 일반이사회에서는 14개 의제 중 11번째로 한일의제가 상정됐다. 하지만 WTO 개혁과 개도국 통상 문제점 등 앞선 의제들에 대한 논의가 길어지면서 23일에는 8번째 의제를 논의하는 데 그쳤다. 수출 제재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여론전은 24일 30분 만에 마무리된 셈이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제네바=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일본의 무역 제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3일 오전 10시 10분(이하 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내 일반이사회 회의장. 동아일보 기자가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에게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대꾸 없이 회의장으로 향했다. WTO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질 한국과 일본의 팽팽한 여론전을 의식한 모습이었다. 한국은 WTO를 통해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이유로 한 정치 보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대한(對韓) 수출 규제가 수출 관리 체계 점검 차원일 뿐 보복이 아니라며 방어막을 치는 형국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국제 여론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일 양국 WTO 여론전 WTO 일반이사회는 164개 전체 회원국 대표가 중요 현안을 논의·처리하는 자리다. 이날 오전 9시 55분 한국 측 대표인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기자가 “일본 무역 제재의 문제점과 우리 측 방어 전략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김 실장에 이어 데니스 시어 주제네바 미국대표부 통상담당 대사가 나타났다. 그 역시 일본의 무역 제재에 대한 미국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피했다. 한국은 회의에서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때문에 한국에 보복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 김 실장은 22일 제네바 공항에 도착해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일본의 (WTO 규범) 위반 범위는 더 커진다”면서 “일본의 주장에 준엄하지만 기품 있게 반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일본은 세계 각국이 자국 안전 보장을 위해 수출 관리를 하고 있으며 한국이 전략물자를 부적절하게 관리했다고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3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WTO에서 인정하는 ‘안보를 위한 수출관리제도’를 적정하게 재검토한 것이며 WTO 규정 위반이라는 (한국의) 지적은 전혀 맞지 않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날 한국 대표로 참석한 김 실장은 통상 분쟁 전문가로 4월 한국이 일본과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 관련 WTO 분쟁에서 승소하는 데 기여했다. 일본 대표단 중 한 명인 야마가미 신고(山上信吾) 외무성 경제국장도 당시 제소 과정을 총괄했다. 야마가미 국장은 수산물 분쟁서 패소한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불려가 ‘방심해서 졌다’며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성 없지만 미국 중재 효과 기대 WTO 일반이사회에서 논의된 내용이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일본의 조치 철회를 이끌어 내거나 회원국에 관련 결의를 요청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도 이번 회의만으로 실효성 있는 조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당장 물러서지는 않겠지만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계속 알리면서 미국이 개입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일반이사회 논의 이후 WTO 분쟁 해결 기구에 공식 제소를 준비할 예정이다. 일반이사회에서 한국 대표가 발언한 내용은 향후 WTO에 제소할 때 심리에 반영될 가능성도 있다. 이날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의 지지와 중재를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유 본부장은 27일까지 미국 경제, 통상 관련 고위 인사들과 관련 업계 인물, 상·하원 의원 등을 두루 만나 일본이 강제징용을 이유로 경제 보복을 하고 있다고 강조할 계획이다. 유 본부장은 “일본의 수출 제한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분업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제네바=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세종=최혜령 기자 / 도쿄=박형준 특파원}
“일본의 무역제재를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3일 오전 10시 10분 스위스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내 일반이사회 회의장. 기자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대해 묻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는 아무 말 없이 회의장으로 향했다. WTO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질 한국과 일본의 팽팽한 여론전을 의식한 모습이었다. 이날 WTO 일반이사회에서는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에 대한 한일 간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WTO 일반이사회는 164개 전체 회원국 대표가 중요 현안을 논의·처리하는 자리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회의 시작인 이날 오전 9시부터 회의장 앞에는 한국과 일본의 20여개 언론들 비롯해 100여명의 취재진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날 오전 9시 40분부터 각국 대표들의 입장이 시작됐다. 이날 오전 9시 55분 우리 측 대표인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기자가 “일본의 무역 제재의 문제점과 우리 측 방어 전략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김 실장이 모든 것을 오후 발언에 집중하고 있다.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김 실장에 이어 회의장에 데니스 시어 주제네바 미국 대표부 통상담당 대사가 나타났다. 그 역시 일본의 무역 제재에 대해 미국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별도의 응답을 하지 않았다. 회의 시작 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나돌았다. 이를 반영하듯 일본 측 대표 중 한명인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는 회의 시작 시각보다 10분여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 역시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긴장된 얼굴로 회의장으로 향했다. 앞선 9일 열린 WTO 상품 무역 이사회에서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와 준이치 대사가 설전을 벌였다. 팽팽한 긴장감을 의식한 듯 일본 정부 대표단 관계자들은 한국 취재진에게 와 일본 대표단 관계자가 들어갈 때마다 웃으며 어떤 인물인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일본 대표 중 핵심인물로 알려진 야마가미 신고 일본 외무성 경제국장은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자가 일본 측 관계자에게 묻자 “안건 논의가 예정된 오후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 시작 전에 오지 않은 이유를 묻자 “특별한 건 없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는 밝혔다. 회의장 내에는 한일 대표단 자리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회의 시작 진전까지 회원국들에게 어떻게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전달할지 골몰하는 분위기였다. 한국은 이번 무역제재가 사실상 일본의 정치적 보복인 점을, 일본은 안보 조치의 일환을 강조한다는 방침이다. 앞선 22일 밤 제네바에 도착한 김 실장은 공항에서 취재진에 “통상 업무 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일본 조치는 상당히 무리가 많다. (WTO에서) 일본 주장에 대해 준엄하지만 기품있게 반박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화이트 리스트 문제로까지 확대하면 일본의 (WTO 규범) 위반 범위는 더 커진다”며 “일본 정부가 신중하게 조처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23일 영국 집권 보수당이 신임 당 대표 겸 총리 발표를 앞둔 가운데, 사실상 새 총리로 확실시되는 ‘영국판 트럼프’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외교장관(55)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존슨 전 장관은 테리사 메이 현 총리로부터 총리직을 승계한 후부터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이란 유조선 억류에 대한 대응, EU 및 미국과 관계 재설정 등 첩첩산중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앞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존슨 전 장관이 “위기에 영국 단합을 강조하면서 ‘21세기 처칠이 되고 싶어 하지만 난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은) ‘영국판 마리 앙투아네트’가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존슨에게 주어진 시간은 ‘30일’…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 증가 총리에 오른 그의 가장 큰 시험대는 ‘브렉시트’ 처리 여부다. 현재 브렉시트 재협상은 10월 31일로 예정돼 있다. 현재로서는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영국과 EU가 결별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다. 브렉시트 강경론자인 그는 보수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정해진 날에 무조건 EU에서 탈퇴한다”고 수차례 노딜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고 밝혀 왔다. 다만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성향이 강한 존슨의 성격상 막상 총리에 오르면 여론에 따라 노딜 브렉시트를 막는 합의안을 들고 EU와 합의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그가 노딜 브렉시트 의지를 꺾어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10월 31일까지 석 달이 남았지만 의회의 여름 휴회, 정당 연례회의, 주말 등을 제외하면 새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는 시간은 1개월에 불과하다고 미 CNN은 전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결정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찾아내지 못한 합의점을 단 30여 일 만에 찾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백스톱’(영국령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 간 통행·통관 자유를 보장한 안전장치) 조항에 대한 영국과 EU의 입장 차가 크다. 존슨 전 장관은 조항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반면 EU는 일체의 재협상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악조건에서 난제 해결을 자신하는 그를 ‘케이키즘(Cakeism)’에 빠져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손쉽게 케이크를 먹듯이 현실적 상황이나 능력을 넘어서 무언가를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는 정치이념에 함몰됐다는 의미다. ○ 미국과 밀월 강화로 반(反)세계화 보호주의 확산 우려 존슨 체제하의 영국은 향후 유럽국가 간 연대보다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경제는 물론이고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정책을 고려하면 영국의 EU 탈퇴는 반세계화와 보호주의가 더욱 확산되는 국제 정세 변화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영국이 브렉시트 강행으로 호된 경기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 BBC에 따르면 노딜 브렉시트 우려로 지난달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올해 들어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EU 탈퇴로 관세가 부활하고 무역장벽이 생기는 반면 불확실성과 투자 저하가 커진다.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이 2% 하락할 것이라고 영국 예산책임처는 진단했다. 영국은 미국과 ‘견고한 무역협정’을 체결해 극복한다는 입장이지만 당분간 영국의 경기침체는 유럽, 나아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EU를 비롯해 유럽 각국이 물밑으로 존슨 전 장관에게 브렉시트 추가 연장 제안에 나선 이유다. 아일랜드 네덜란드 벨기에 등 EU 회원들은 새 브렉시트안을 논의하기 위해 존슨 전 장관 측과 접촉하고 있다고 영국 더선데이타임스는 밝혔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23일 집권 보수당 대표 겸 차기 영국 총리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은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55)을 조롱하는 대형 풍선인형(사진)이 20일 수도 런던 한복판에 등장했다. 자극적 언행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트럼프’ 존슨 전 장관을 조롱하기 위해 반(反)트럼프 시위 때 단골로 등장하는 인형을 내세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존슨 전 장관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수천 명의 시위대는 이날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광장에 모여 ‘노 투 보리스, 예스 투 EU(No to Boris, Yes to EU)’를 외쳤다. 덥수룩한 금발머리로 유명한 존슨 전 장관의 모습을 묘사해 해당 인형에는 사방으로 뻗친 금발 뿔 수십 개가 달렸다. 붉은 얼굴은 우스꽝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다. 특히 인형의 가슴 부분에는 ‘£350m’ 문구도 등장했다. 2016년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 당시 존슨 전 장관은 브렉시트에 찬성하며 “영국이 매주 EU에 3억5000만 파운드(약 5100억 원)를 보낸다”고 주장했다. 해당 금액은 추후 가짜 뉴스로 판명 났지만 존슨 측은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영국인들은 지난해 7월과 올해 6월 말 트럼프 미 대통령의 런던 방문 때도 그를 기저귀를 찬 채 휴대전화를 든 아이로 희화화한 풍선 인형을 집회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달 국빈 방문 당시 “존슨을 차기 영국 총리로 지지한다”고 해 내정간섭 논란을 빚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또 “존슨이 차기 총리가 되면 매우 좋은 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고 그를 두둔했다. 23일 발표되는 보수당 대표 경선 투표 결과에서는 존슨의 당선이 기정사실화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의원 및 유권자의 3분의 2가량이 존슨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총리에 오르면 보수당 내분은 물론이고 노딜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내 갈등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유럽연합(EU) 내에서 거래되는 탄소배출권의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올랐다. 유럽의 전례 없는 폭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11월 취임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차기 EU 집행위원장 등 유럽 지도자의 환경정책 강화 등이 반영된 현상이란 분석이 나온다. 1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번 주에 거래된 탄소배출권 가격은 t당 29.27유로(약 3만8700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만 해도 유럽 내 탄소배출권 가격은 t당 2만 원대였다. 가격 상승이 가파르다. ‘배출권 거래’란 기업별로 온실가스 허용량을 정한 뒤 이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이 초과한 양만큼 배출권을 사는 제도다. 할당량보다 온실가스를 덜 내뿜는 기업은 줄인 만큼 배출권을 판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한 조치다. 한국도 2015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t당 약 2만8000원에 거래된다. 전문가들은 유럽 내 탄소배출권 가격은 올해 말까지 45유로(약 5만9000원)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내년에는 65유로(약 8만600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16일 사상 최초의 여성 EU 집행위원장으로 인준된 폰데어라이엔 전 독일 국방장관은 유명한 환경론자다. 그는 10년 후 유럽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대 대비 40% 이상 감축하는 한편 2050년까지 ‘탄소중립’, 즉 자동차 등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과 자연이 흡수하는 양이 동일해지도록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부족한 국가에 세금을 매기는 ‘탄소 국경세’ 도입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의 이상기온도 심각한 상태다. 이달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40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그리스에서도 이달 엄청난 폭우가 몰아쳐 7명이 숨졌다.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당의 약진도 뚜렷하다.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 그룹은 기존 의석수(52석)에서 17석을 늘린 69석(전체 750석의 9.2%)을 확보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기성 정당에 염증을 느낀 젊은 유권자들이 특히 녹색당으로 몰리고 있다. 일각에서 탄소배출권 가격이 60유로까지 치솟는다는 전망을 제기하자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지지하는 쪽은 환경 개선은 물론이고 지구온난화 문제에서 유럽이 미국 대신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기업 부담이 커져 결국 생산 비용 및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런던 투자회사 RCMA캐피털의 챈 비마 최고투자책임자는 FT에 “유럽을 뛰어난 청정에너지 지역으로 만들려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배출권 가격은 거품”이라고 주장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23일경 공식 사퇴하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사진)가 마지막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자신의 후임자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외교장관을 준엄하게 비판했다. BBC 등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총리로서의 마지막 대중연설에 나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와 권위주의가 민주주의와 국제질서를 약화시킨다고 우려했다. 그는 “원칙과 현실을 결합하지 못하고 필요할 때 타협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모든 정치적 담론은 잘못된 길로 내몰린다. 이는 사실상 절대주의로 이어졌다. 자신의 시각만을 강조하면 당신만의 길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또 “증오와 편견은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까지도 어두운 곳으로 몰고 간다. 어떤 이들은 상대방 의견을 비하하지 않고 비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그의 발언은 자극적이고 배타적 언행으로 끊임없는 논란을 야기한 트럼프 대통령과 존슨 전 장관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은 이란, 기후변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분담금 등 주요 사안에서 유럽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만 고집해 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14일 민주당 유색인종 여성 하원의원 4명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을 해 큰 비판을 받았다. 존슨 전 장관 역시 영국 경제에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되는데도 무책임한 노딜 브렉시트(합의안 없는 유럽연합·EU 탈퇴)를 고집하고 있어 전임자로서 이를 우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이 총리는 특히 “타협은 결코 ‘더러운 말(dirty word)’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도자의 역할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거나 대중이 듣고 싶은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면 서로 양보할 의지를 갖고 설득하며 팀워크를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지만 (해결하지 못해) 매우 실망스럽다”고 아쉬워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10일 프랑스 파리 팔라틴 거리. 생쉴피스 성당 앞에는 ‘뱅상 랑베르를 위한 묵상(Recueillement Pour Vincent Lambert)’이라고 적힌 팻말을 든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팻말에는 중년 남성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그림도 보였다. 모두가 ‘뱅상 랑베르’란 이름의 남자를 위해 기도했다. 랑베르 씨는 하루 뒤인 11일 사망했다. 11년 전인 2008년 31세 청년이던 랑베르 씨는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뇌가 손상된 그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그를 버리지 못했다. 연명치료가 시작됐다. 랑베르 씨가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6년 뒤인 2014년.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그의 아내와 형제들은 말기 환자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안락사법’을 근거로 튜브를 제거하려 했다. 랑베르 씨가 평소 “억지로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랑베르 씨의 부모는 분노했다. “아들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소송을 걸면서 가족 간 법정싸움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랑베르 씨가 눈을 껌뻑거리며 의료진에게 반응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그의 연명치료를 두고 프랑스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오랜 논란 끝에 지난달 28일 프랑스 대법원은 “의료진 판단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병원은 2일 랑베르 씨에 대한 수분과 영양 공급을 끊었고 9일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랑베르 씨 사례는 남의 나라 얘기로만 볼 수 없을 것 같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5%가 넘는 ‘고령 한국’이 준비해야 할 가까운 미래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시행되고 있다. 1년 5개월 만에 5만4000여 명이 존엄사를 선택했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32%에 불과하다. 나머지 68%, 10명 중 약 7명은 가족의 선택에 맡겨졌다. 연명의료를 결정하는 사전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나 질환으로 의식을 잃으면 배우자와 1촌 가족이 환자의 존엄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법조항에 근거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은 배우자와 부모, 자식 사이에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 번쯤 ‘좋은 죽음’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웰다잉 전도사’로 통하는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엔딩노트’를 만들어 그간의 인생과 남은 삶,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건강검진 시 사전의향서를 작성할 기회를 제공하는 등 존엄사를 고민하고 미리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가족 간 갈등으로 11년간 식물인간 상태였던 랑베르 씨를 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만 고민했던 기자 역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자문해봤다. 이토록 묵직하고, 무섭고, 상상하기 힘든 질문에 곧바로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죽음을 ‘가볍게 묵상’할 기회는 필요할 것 같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지금 생(生)을 살찌우는 것은 물론이고 랑베르 씨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내 가족에게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작은 믿음 정도는 생기지 않을까.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61)이 유럽연합(EU) 역사상 첫 여성 집행위원장에 공식 선출됐다. 11월 1일부터 임기 5년의 ‘유럽합중국 대통령’에 오르는 셈이다. 그는 16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실시된 인준 투표에서 전체 의원 748명 중 383명(51.2%)의 찬성을 얻었다. 인준 직후 “단합을 통해 강한 EU를 만들겠다”고도 선언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최초 여성 집행위원장’ 당선을 소개하면서도 화려한 타이틀 뒤에 가려진 과제도 많다고 전했다. 그가 얻은 383표는 가결정족수(374표)보다 불과 9표 많을 뿐이다. 장클로드 융커 현 위원장은 2014년 422표로 뽑혔다. 취약한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집행위원장직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뜻이다.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대미관계, 기후변화 등도 힘든 과제다. 당장 10월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가 ‘발등의 불’이다. 영국과 동반자 관계를 강조해 온 폰데어라이엔은 그간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지지해 왔다. 하지만 이달 중 차기 영국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외교장관은 15일 “브렉시트 ‘백스톱’(영국령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 간 통행 및 통관 자유를 보장하는 안전장치) 조항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영국이 EU를 떠나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장벽을 짓고 세관을 두어 통행 및 통관을 강화하는 ‘하드 보더(hard border)’가 불가피하다. 주민 불편과 경제 악영향을 우려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와 무관하게 2020년까지 EU 관세동맹에 남아 하드 보더를 피하겠다”고 했지만 존슨 전 장관이 완전히 무위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존슨 전 장관이 영국 총리가 되면 ‘EU와 영국의 순조로운 이혼’에 난관이 예상된다. 관세 인상 및 방위비 분담금 압박 등으로 연일 EU를 거세게 압박하는 미국도 골치다. 특히 이란 정책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의견 차이도 그가 나서서 중재해야 한다. NYT는 “다자주의, 공정무역 등을 강조한 폰데어라이엔의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반대편에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거세다. 폰데어라이엔은 EU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대 대비 40% 이상 감축하고,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부족한 회원국에 세금을 매기는 ‘탄소 국경세’ 도입을 찬성한다. 반면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 국가들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첩첩산중이다. 폰데어라이엔은 보수 성향의 유럽통합파 정치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외교관 출신이다. 195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그는 13세 때 독일로 돌아왔고 프랑스어 영어 등에 능통하다. 하노버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산부인과 의사이며 2003년 니더작센주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5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발탁돼 중앙정부 내각에 진출했다. 가족청소년부 및 노동사회부 장관을 거쳐 2013년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에 올랐다. 사업가 남편과의 사이에 2남 5녀를 둔 다둥이 엄마다. 그의 집행위원장 취임으로 공석이 된 국방장관은 ‘미니 메르켈’로 불리는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독일 기민당 대표(57)가 맡는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매년 행사에 오는데…. 올해는 유독 도로를 많이 막아놨네요. 1시간을 걸었어요.” 14일(현지 시간) 오전 10시 파리 샹젤리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리는 ‘대혁명기념일’ 행사인 군 퍼레이드를 보려고 거리에 나선 매튜 씨(34)는 한숨을 쉬었다.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곳곳에 세워진 바리케이드로 인해 샹젤리제 중심도로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행사를 가까이 볼 수 있는 샹젤리제 안쪽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바리케이드 앞에서 200m가 넘는 줄을 선 뒤 가방 검사 등 검문을 거쳐야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리케이드 앞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과한’ 경호에 화가 난 시민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노란조끼’ 시위대였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노란조끼 시위는 35주째 이어지고 있다. 이날 일부 시위대는 집회를 불허한 경찰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란조끼를 입지 않거나 가방에 숨기고 샹젤리제를 찾았다. 오전 10시 40분 전투기 에어쇼가 펼쳐지자 시민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그러나 노란조끼 시위대는 ‘우∼’ 하고 야유를 퍼부었다. 군 퍼레이드가 끝난 후에는 아예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면서 경찰과 치고받았다. 곳곳에 최루탄이 터지면서 샹젤리제 거리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띈 것은 노란조끼 시위를 바라보는 프랑스 시민의 ‘시선’이었다. 대체로 무관심했고, 폭력사태가 발생하려 하자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전국 280만 명에 달했던 노란조끼 시위 참가자 수는 최근 6000명 이하로 감소했다.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파리 시내 노란조끼 집회도 100명 이하일 때가 많아졌다. 무엇이 노란조끼 시위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었을까. 불과 9개월 전만 해도 노란조끼 시위대는 프랑스인 70∼80%의 지지를 받았다. 사회 양극화 문제를 건드린 탓에 시위가 프랑스를 넘어 유럽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정치 세력화까지 눈앞에 뒀다. 하지만 현재 지지율은 한 자릿수다. “잘사는 도시 좌파의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변질됐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특히 노란조끼 시위가 일으킨 ‘폭력의 피로감’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노란조끼 운동의 쇠퇴는 폭력에 대한 피로와 두려움의 결과물”이라고 전했다. 시위대 스스로도 폭력으로 피해를 입었다. 15일 미 CNN에 따르면 노란조끼 시위 중 경찰이 쏜 고무총 등에 맞아 실명한 사람만 24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날 대혁명기념일 행사가 끝난 거리에 시위대가 놓고 간 노란조끼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의도가 선해도, 목적이 옳아도 ‘폭력’을 내세운 시위에는 한계가 있다. 버려진 노란조끼가 그 사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프랑스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리는 ‘대혁명기념일’을 맞아 ‘우주군(Space Force)’ 창설을 선언했다. 이미 우주군을 창설했거나 계획을 밝힌 미국 중국 일본 등에 이어 프랑스까지 합류하면서 주요국의 군사력 대결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3일 “우주 군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 9월에 우주군사령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36억 유로(약 4조8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우주군사령부는 레이더 감시 시스템 구축, 첩보위성 위치 추적 등을 담당한다. ‘우주군’이란 말 그대로 우주를 기반으로 한 병력이다. 상대국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현재는 지상에서 발사된 요격미사일이 대기권에서 상대 미사일을 격추한다. 하지만 우주군이 창설되면 위성 등 우주 공간에서 발사 단계부터 사전 감지를 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상대 미사일 요격이 쉬워지고 상대국 위성을 파괴해 전투 지역의 각종 정보를 차단시킴으로써 ‘장님 부대’로 만들 수 있다. 미국은 올해 3월 우주군 창설 입법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5년간 20억 달러(약 2조3500억 원)를 투입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위성을 통해 중동 페르시아만 미 항공모함, 예멘 상공의 드론, 시리아 상공의 전투기를 운용하고 아프가니스탄 순찰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하는 등 향후 미군의 우주군 의존도가 커진다고 전했다. 중국도 2015년부터 우주군을 창설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지난해에만 위성 39기를 발사했다. 중국은 상대국 인공위성의 센서를 무력화하는 레이저 체계도 곧 갖출 계획이다. 러시아도 냉전 때 창설한 기존 우주군을 2011년에 우주항공방위군으로 강화했다. 영국 BBC는 “중국 러시아 미국은 모두 지구로부터 미사일을 발사해 상대 위성을 직접 요격하는 무기를 시험했다”고 전했다. 이런 경쟁을 반영하듯 지난해 발사된 우주 로켓은 총 128대로 냉전 시기(1984년) 129대 이후 가장 많았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 보도했다. 우주 패권을 둘러싼 각국 경쟁과 별도로 유럽 주요국의 군사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14일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프랑스 공군의 주도하에 영국 독일 스페인 등 유럽 10개국 군인 약 4300명이 모여 대대적 퍼레이드를 했다. 독일 A-400M, 스페인 C-130, 영국 치누크 헬리콥터 등 각국 대표기가 굉음을 울리며 비행하자 시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1989년 프랑스와 독일이 함께 창설한 독불여단(BFA) 병력도 이날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이를 반영하듯 마크롱 대통령은 물론이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유럽 지도자가 총출동했다. 참석할 예정이던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데이비드 리딩턴 국무조정실장을 대신 보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초청했던 프랑스가 올해는 ‘유럽만의 행사’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유럽 지도자를 대거 불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 각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안보를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유럽 공동 신속대응군’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유럽에 연일 나토 분담금 증액을 거세게 요구하는 등 대서양 동맹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을 반영한 움직임이란 평가가 나온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프랑스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리는 ‘대혁명기념일’을 맞아 ‘우주군’(Space Force) 창설을 선언했다. 이미 우주군을 창설했거나 계획을 밝힌 미국, 중국, 일본 등에 이어 프랑스까지 합류하면서 주요국의 군사력 대결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3일 군 고위층이 참석한 리셉션에서 “우주 군사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9월에 우주군사령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36억 유로(약 4조8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우주군사령부는 레이더 감시시스템 구축, 첩보위성 위치 추적 등을 담당한다. ‘우주군’이란 말 그대로 우주를 기반으로 한 병력이다. 예를 들어 상대국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현재는 지상에서 발사된 요격미사일이 대기권에서 상대 미사일을 격추시킨다. 하지만 우주군이 창설되면 위성 등 우주공간에서 발사 단계부터 사전 감지를 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상대 미사일 요격이 쉬워지고 상대국 위성을 파괴해 전투 지역의 각종 정보를 차단시켜 ‘장님 부대’로 만들 수 있다. 미국은 올해 3월 우주군 창설 입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를 주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달 4일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미국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조만간 ‘우주군’까지 갖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우주군 창설에 5년간 20억 달러(약 2조2000억 원)를 투입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위성을 통해 중동 페르시아만 미 항공모함, 예멘 상공의 드론, 시리아 상공의 전투기를 보다 정밀하게 운영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순찰하는 미군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도 2015년부터 우주군을 창설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지난해에만 위성 39개를 발사했다. 중국은 상대국 인공위성의 센서를 무력화시키는 레이저 시스템을 곧 갖출 것이라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러시아도 냉전 때 창설한 기존 우주군을 2011년에 우주항공방위군으로 강화했다. 영국 BBC는 미 비영리단체 ‘시큐어월드재단’ 연구를 인용해 ”중국과 러시아, 미국은 모두 지구로부터 미사일을 발사해 상대 위성을 직접 요격하는 무기를 시험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우주군 경쟁을 반영하듯 지난해 발사된 우주 로켓은 총 128개로, 냉전 시기(1984년)의 129기 이후 가장 많았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 전했다. 우주 패권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미국과 유럽’,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뭉쳐서 경쟁하는 신(新)냉전 구도로 구축될지, 혹은 국가별 독자적 군사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유럽 국가들의 집단 방위조약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가 우주전략 수립에 착수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중국과 경쟁할 미국을 지원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프랑스는 14일 ‘대혁명기념일’을 맞이해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영국, 독일, 스페인 등 9개 유럽국군 장비로 대대적인 퍼레이드를 펼쳤다. 이들 국가들은 안보파트너로 미국을 100% 신뢰하기 어렵다는 인식 하에 ‘유럽 공동 신속대응군’ 창설을 추진 중이라는 점에서 프랑스 우주군 창설 역시 유럽 중심의 독자적 군사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AFP 통신은 ”프랑스는 미국, 중국, 러시아가 우주 군사 활동에 집중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우주 경쟁에 합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혹평하는 메모가 유출된 지 4일 만에 전격 사임한 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65)에 대한 각국 주미 대사들의 동정론 및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10일 전했다. 미국이 2017년 이란과의 핵합의 탈퇴, 시리아 철군 등을 동맹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데다 관례와 의전도 마구잡이로 무시해 트럼프 치하의 미 워싱턴 근무가 ‘블랙홀(black hole)’처럼 느껴진다는 대사가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상당수 주미 대사들은 “우리도 트럼프 행정부의 문제점을 본국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사는 “사임 대상이 우리 중 다른 사람이었을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빛처럼 빠른 속도로 영국대사가 사임하자 워싱턴 외교관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고 전했다. CNN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아첨만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대니얼 프라이드는 WP에 대사 사임을 요구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을 강력 비난했다. 그는 “사임 압박은 지저분한(nasty) 행동이었다. 미 행정부가 무능하다는 대럭 대사의 평가가 사실로 드러났다”고 일갈했다. 2014년 9월부터 올해 봄까지 주미 프랑스대사를 지낸 제라르 아로 대사(66)도 NYT에 “모든 외교관이 그처럼 한다”며 대럭 대사를 두둔했다. 그는 자신이 미국으로부터 받은 ‘홀대’도 털어놨다. 2017년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의 방미를 추진할 때 렉스 틸러슨 당시 미 국무장관과의 면담 일정을 알려 달라고 두 달 전부터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했다. 미국은 르드리앙 장관의 방미를 하루 앞두고 “20분만 면담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결국 프랑스 측은 장관의 방미를 취소했다. 대럭 대사가 보고한 메모를 본 영국 내 관계자만 100명이 넘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유출 과정에 대한 영국 정부의 대대적 조사도 진행되고 있다. 이 와중에 이번 사태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둘러싼 ‘정치적 음모’와 연관짓는 관측도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친(親)트럼프 인사이자 열렬한 브렉시트 찬성론자인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을 차기 총리로 미는 브렉시트 강경파들이 유명한 EU 잔류파인 대럭 대사 대신 브렉시트 지지자를 주미 대사로 앉히기 위한 공작을 자행했다고 보고 있다.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유출된 메모를 처음 전달받은 언론인은 이저벨 오크숏 기자(45)다. 그도 브렉시트 찬성파로 이번 사건을 처음 보도한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서 2016∼2017년 근무했다. 오크숏 기자는 극우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 브렉시트당 대표(55)와도 가깝다. 패라지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부터 주미 영국대사를 원했던 인물이다. 대럭 대사 사퇴로 존슨 전 장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사실상 그가 유력했던 총리 선출 과정도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존슨 전 장관은 9일 TV 토론에서 대럭 대사를 적극 옹호하지 않았다. 존슨 전 장관의 보수당 동료인 패트릭 매클로플린 의원은 “총리가 되겠다는 이가 아무 잘못 없이 타국 정부로부터 공격받는 자국 공무원을 보호하지 못하다니 볼썽사납다”고 질타했다. 앨런 덩컨 외교차관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훌륭한 외교관을 버스 아래로 밀었다. 경멸을 받을 만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혹평한 메모가 언론에 유출돼 큰 파장을 낳았던 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65)가 10일 전격 사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문건 유출 직후부터 대사 교체를 요구해 왔다. 그의 사퇴는 차기 영국 총리 선출에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양자 대결에 나선 제러미 헌트 영국 외교장관은 “미국이 무례하다”고 했고,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은 “대미관계가 중요하다”며 맞섰다.》 2016년 1월부터 약 3년 반 동안 주미 영국대사로 재직해 온 킴 대럭 대사(65·사진)가 10일 전격 사퇴했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및 트럼프 행정부를 혹평한 메모가 언론에 유출된 지 불과 4일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건 유출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영국에 집요하게 대사 교체를 요구해 왔다. 이달에 퇴임할 예정인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당장 교체 계획이 없다”며 대럭 대사를 감쌌지만 세계 최고 권력자 앞에서는 무력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이날 대럭 대사가 사이먼 맥도널드 영국 외교차관에게 사임 서한을 보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서한에서 “현 상황에서는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문서 유출 후 내 거취와 임기를 둘러싼 많은 의혹이 있었고 그 의혹을 끝내고 싶다”며 “임기는 올해 말까지지만 현 상황에서는 다음 대사를 지명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수순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직업외교관인 대럭 대사는 1977년 외교부 근무를 시작해 일본 도쿄, 벨기에 브뤼셀 등에서 일했다. 유엔 주재 영국대사, 영국 국가안보실장,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외교보좌관 등을 역임한 베테랑이다. 그는 2017년 초부터 지난달 22일까지 본국에 보낸 비밀 외교문서에 트럼프 대통령 및 미 행정부를 “서툴다” “불안정하다” “무능하다”고 혹평해 큰 파장을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7∼9일 3일 내내 트위터 등을 통해 대럭 대사를 격렬히 비난했다. 메이 총리에 대해서도 “멍청한 방식으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끌고 가 완수하지 못했다. 영국이 새 총리를 맞는 건 좋은 소식”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미국은 특히 9일 예정됐던 브렉시트 관련 양국 무역 협상도 돌연 취소했다. 문건 파문에 대한 미국의 항의 표시란 분석이 제기됐다. 대럭 대사는 8일 트럼프 대통령과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의 만찬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등 외교 업무에서 이미 배제된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럭 대사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11월 미 대선 직후 대럭 대사는 당시 트럼프 당선자에 대해 “그의 성격과 공직 경험 부족을 잘 ‘이용(exploit)’하면 영국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문건 역시 언론에 유출됐고 보도 직후 트럼프 캠프 측은 극우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 브렉시트당 대표(55)를 주미 영국대사로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지지자로 유명한 패라지 대표는 이번 사태 직후 “대럭 대사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완전히 부적절하다. 얼른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그의 사퇴는 차기 영국 총리 선출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양자 대결을 펼치고 있는 제러미 헌트 영국 외교장관과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은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헌트 장관은 10일 “미 워싱턴을 방문할 때마다 대럭 대사의 전문성과 지적 능력에 감탄했다. 그의 전문 보고는 외교관으로서의 업무 수행이며 (언론에 자극적 내용만) 선별적으로 유출된 것에 분노한다”고 했다. 그는 하루 전에도 미국의 대사 교체 요구가 “메이 총리에게도, 영국에도 무례한 일이다. 동맹은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친(親)트럼프 인사인 존슨 전 장관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영국 국빈방문 당시 “차기 총리로 존슨 전 장관을 지지한다”고 밝혀 내정 간섭 논란을 빚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프랑스가 내년부터 자국 공항을 이용하는 모든 항공편의 승객에게 1인당 최대 18유로(2만4000원)를 환경세로 부과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항공 환경세를 추진 중이어서 유럽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교통부는 9일 “프랑스 공항을 사용하는 모든 항공 노선에 환경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며 “다만 출국 항공편에 환경세가 적용되며, 입국 항공편과 환승 항공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노선과 좌석에 따라 차이가 있다. 프랑스나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오가는 노선은 이코노미 좌석 기준으로 1인당 1.5유로(약 2000원), EU 외 다른 국가로 가는 항공편 승객에겐 3유로(약 4000원)의 환경세가 부과된다. 비즈니스 좌석은 각각 9유로(약 1만2000원)와 18유로(약 2만4000원)가 부과된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항공편 승객에게 최대 2만4000원의 세금이 더 붙는 셈이다. 프랑스 엘리자베트 보른 교통부 장관은 “1억8000만 유로(약 2380억 원)의 세금이 더 걷히며, 이를 교통망 개선에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도 2021년부터 자국 공항을 이용하는 항공기 승객 1인당 7유로(약 9200원)의 환경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벨기에는 유사한 정책 추진하에 3월 열린 환경장관회의에서 EU회원국 내 모든 항공에 환경세를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최근 40도가 넘는 폭염 등 유럽의 이상기후가 EU 회원국들의 항공 환경세 도입에 영향을 미쳤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비행기는 1km 이동 시 이산화탄소 285g을 배출한다. 기차(14g)나 자동차(158g)보다 많다. 항공기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란 지적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항공 환경세에 대한 반대 여론도 팽팽하다. 비행기 이용을 줄이기 어려운 상태에서 세금 부담은 승객이나 항공사의 부담만 키울 뿐 환경 개선 효과는 적다는 것이다. 비정부기구(NGO) 연합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는 “이번 조치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감소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을 통해 밝혔다. 프랑스 국적항공사 에어프랑스는 환경세로 연간 6000만 유로(약 795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비행 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럽 정치의 정세 변화가 항공 환경세를 확대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 등 친환경 정당이 기록적인 의석수를 확보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항공사 보잉이 주력 기종 B737 맥스의 추락 사고에 따른 주문 감소로 라이벌인 에어버스에 세계 1위 자리를 넘겨주게 됐다. WSJ에 따르면 보잉은 올해 상반기 총 239대의 항공기를 판매해 지난해 같은 기간(378대)보다 37% 감소한 반면 에어버스는 389대를 팔아 지난해(303대)보다 28% 증가했다. 보잉이 에어버스에 밀린 것은 7년 만이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온라인 및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증오(혐오) 콘텐츠’를 24시간 내 삭제하는 제도가 프랑스에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이 전했다. 프랑스 의회는 9일 혐오 콘텐츠를 △테러 행위 독려 및 찬양 △성별 및 성적 성향에 대한 증오 △성폭력 성매매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폭력적 글과 동영상으로 규정한 이 법안을 최종 심의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은 자사 플랫폼에 게재된 증오 및 혐오 콘텐츠를 즉시 삭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최대 124만 유로(약 16억40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온라인에서 증오 콘텐츠를 발견한 일반 누리꾼 누구나 정부에 신고할 수 있다. 심의위원회가 해당 신고 내용을 검토하고, 그 내용이 맞으면 플랫폼 회사에 삭제를 요청한다. 24시간 내에 해당 내용이 삭제되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된다. 삭제와 동시에 증오 콘텐츠 게재자에게 삭제 사실도 알린다. 다만 신고 남발을 막기 위해 허위 신고를 하면 1만5000유로(약 2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플랫폼 회사들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8일 “사용자가 악성 댓글을 게시하기 전 미리 경고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1월부터 온라인에서 혐오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5000만 유로(약 66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강력한 대책을 마련했다. 2014년 시리아 사태 이후 난민 유입이 대폭 늘어나면서 소셜미디어에서 테러 옹호, 특정 인종 및 여성 혐오, 나치 찬양 등이 급속히 확산됐고 이로 인한 사회 갈등이 심각해진 것도 이런 움직임의 배경이다. 6일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는 시민 수백 명이 모여 여성 혐오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번 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의원은 “증오의 개념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예술가들은 정부의 과도한 소셜미디어 검열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르몽드는 “일부 판사는 ‘동성애가 혐오스럽다’는 표현을 성적 성향 및 의견으로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프랑스 정부는 “명백히 불법적인 최악의 콘텐츠만 제재한다. 단순한 욕설 등은 검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