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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집트의 중재로 5일 오전 8시부터 사흘(72시간)간 휴전에 들어갔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상군을 가자지구로부터 완전 철수해 한 달간 이어진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를 마무리 짓고 ‘방어’ 태세로 전환할 방침을 밝혔다. 지난달 8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1850여 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땅굴을 파괴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중동 국가들뿐 아니라 우방인 미국으로부터도 민간인을 대량 살상하는 전쟁범죄자로 비판받는 처지에 몰렸다. 국제사회의 거센 압박 덕분에 당분간 휴전 합의가 지켜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고 이번 전쟁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그러나 근본적 해결은 아니어서 오래가진 못할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전쟁이 2008, 2009년과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최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은 일정한 패턴을 지니고 있다. 대규모 지상군이 투입됐던 2008, 2009년과 비교하면 명확해진다”고 전했다. 제반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같은 충돌이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NYT에 따르면 양측의 두 차례 충돌은 ①하마스 로켓 공격과 이스라엘의 강력 대응 ②미국의 이스라엘 지지 ③하마스의 재공격 ④이스라엘 지상군 투입 ⑤유엔 개입 ⑥휴전 순으로 전개됐다. 이 때문에 2008, 2009년 휴전 이후 5년 만에 또다시 충돌이 일어난 것처럼 이번 휴전 합의도 평화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선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는 항상 제자리일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맴도는 ‘환상방황(環狀彷徨)’이라는 말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5년 전 충돌과 다른 점도 꽤 두드러진다. 이스라엘은 2008, 2009년 가자지구 침공 당시 하마스 로켓을 대거 파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하마스의 공격용 터널을 찾아 파괴하는 데 주력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지상군 투입으로 ‘하마스 땅굴’ 32개를 모두 파괴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재래식 땅굴에 노이로제 반응을 보여 왔다. 전쟁사학자인 제럴드 디그루트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땅굴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쪽이 첨단 무기로 잘 무장된 상대방을 위협할 수 있는 가장 싸고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전면전이 아니라 게릴라전을 수행하는 데 땅굴만큼 좋은 수단이 드물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6년 6월 팔레스타인 하마스 병사들이 땅굴을 통해 기습 공격을 감행해 19세의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를 생포했다. 당시 작전에 걸린 시간은 6분에 불과했지만 하마스는 샬리트를 5년 이상 감금하다가 결국 팔레스타인 죄수 1027명과 맞바꾸는 데 성공했다. 또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립 양상이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길게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 국무부는 이스라엘의 유엔학교 포격을 두고 3일 이례적으로 “수치스럽다. 경악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하루 한 개의 사과가 푸틴을 쫓아낼 수 있다!” 요즘 폴란드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난데없이 사과를 먹는 셀카(셀프카메라·자가 촬영) 사진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말레이시아항공 MH17 여객기 격추 사건 뒤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받은 러시아가 폴란드에 ‘사과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1일 폴란드 사과에서 과도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는 이유로 폴란드의 과일과 채소 수입 금지를 단행했다. 폴란드 정부는 이를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에 적극 찬성한 자국에 보복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연간 4억3800만 유로(약 6073억 원)의 사과 수출액 중 75%를 차지하는 러시아가 수입을 금지하자 폴란드 사과 재배 농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에 폴란드 경제일간 ‘풀스비즈네수’는 사설을 통해 ‘하루에 사과 한 개씩 먹기’ 운동을 제안했고 범국민운동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페이스북에는 ‘사과를 먹어 푸틴 골려주기(Jedz Jablka Na Zlosc Putinowi)’라는 이름의 계정이 등장했다. 폴란드 농업장관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사과 먹는 셀카 사진을 올리고 있다. 바르트워미에이 시엔키에비치 내무장관은 TVN24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분쟁으로 폴란드가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사과 값을 지불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폴란드 최대 슈퍼마켓인 ‘폴로마켓’은 “범국민적인 사과 소비 캠페인에 동참한다”고 밝히면서 사과를 재료로 한 각종 요리법을 소개했다. 특히 사과 발효주인 ‘사이다’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지난 주말 바르샤바 시민의 절반 이상이 사과술에 취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운동을 제안했던 언론인 그세고시 나바츠키는 “폴란드의 연대(Solidarity) 정신이 살아있고 우리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모두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주변국과의 분쟁 때마다 ‘위생 문제’를 이유로 무역보복 조치를 내렸다. 지난해에는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소유한 회사의 초콜릿 수입을 금지했고 지난달 31일에는 우크라이나의 콩, 옥수수, 해바라기, 유제품 수입을 금지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대피 중인 유엔 학교를 세 번째 공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지상군을 철수시키고 있는 이스라엘은 4일 7시간 동안의 한시적인 휴전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인도주의적 휴전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대변인인 사미 아부 주흐리는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휴전 선언은 그들이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의 휴전 선언은 전날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유엔 학교가 공격을 받은 이후 나왔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이 학교에 있던 유엔 직원 등 10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부상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전쟁범죄 행위”라며 “제발 광기를 멈추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미국의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도 “수치스럽다. 무장 세력의 공격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수많은 민간인을 위협하는 공격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우방국인 이스라엘을 이례적으로 맹비난했다. 한편 이스라엘군 대변인 피터 러너는 “하마스가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간 연결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 파놓은 땅굴 30여 개를 찾아내 파괴했다”면서 가자지구에서 지상군 대부분을 철수했다고 밝혔다. 하마스와 자치정부 지도자들은 이날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나 가자지구의 휴전 방안을 논의했다.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마슈알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진정한 휴전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봉쇄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독일 헬무트 콜 전 총리(84)가 자신의 육성 증언 녹음테이프 소유권을 두고 회고록 대필 작가와 벌여온 소송에서 이겼다. 쾰른 소재 연방고등법원은 언론인 출신 대필 작가 헤리베르트 슈반이 지녔던 테이프의 소유권이 콜 전 총리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독일 일간 디벨트가 2일 보도했다. 콜 전 총리는 1심에 이어 이번에도 이겨 소유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커졌다. 슈반은 2001, 2002년 독일 남부 루트비히스하펜에 있는 콜 전 총리의 자택에서 105차례 만나 증언을 녹음했다. 총 135개의 테이프에 630시간 분량이다. 콜 전 총리는 2008년 뇌중풍으로 쓰러진 이후 말을 하거나 거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이 녹음은 콜 정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지막 자료”라고 평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 있는 유엔학교 인근에 3일 이스라엘군이 쏜 포탄이 떨어져 최소 10명의 주민이 죽고 36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의료진이 전했다. 이스라엘군이 유엔학교를 공격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 학교는 팔레스타인 주민 3000여 명이 피신해 있는 곳이다. 한 목격자는 “사람들이 줄서서 배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 미사일 한 발이 학교 정문 부근에 떨어졌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24일과 30일에도 가자지구에서 유엔이 난민캠프로 사용하는 학교에 포격을 가했다. 당시 유엔과 국제사회는 이를 ‘전쟁범죄’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로써 지난달 8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1762명이 목숨을 잃고 9200여 명이 부상했다. 이스라엘은 군인 64명이 교전 중 사망했고 민간인 3명이 숨졌다. 특히 이번 포격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일부 병력을 철수시키는 가운데 발생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교전이 다시 악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마스는 “가자 봉쇄 해제 전까지 항전을 이어갈 것”이라며 여전히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2일 가자 동쪽에 있던 탱크 등 일부 병력을 이스라엘 접경지역으로 재배치했다. 또 피란 중인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라히야 주민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모세 얄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일부 병력이 가자에 남아 터널 파괴 작전을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진 팔레스타인인어머니 배 속에서 제왕절개로 출생한 ‘기적의 아기’가 세상에 나온 지 5일 만에 결국 숨졌다. 지난달 25일 숨진 어머니 몸속에서 1시간을 버틴 끝에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태어난 샤이마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병원에서 31일 숨졌다. 담당 의사는 “샤이마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사망했다”고 말했다. 아기의 엄마인 샤이마 알셰이크 카난(23)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집이 무너지면서 건물 잔해에 깔려 숨졌다. 배 속 아기는 의료진이 재빠르게 대처한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이후 인큐베이터 안에서 지내왔다. 지난달 8일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이 24일째 이어지면서 어린이와 여성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30일 새벽 가자지구 제발리야 난민캠프 유엔학교에 이스라엘군이 포격을 가해 19명이 숨지고 90여 명이 다치자 유엔 등은 ‘전쟁범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의 수장 피에르 크란뷜은 이스라엘의 유엔학교 포격은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자 세계적인 수치”라고 비난했다. 한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31일 안보 내각을 소집해 땅굴을 파괴하는 군사작전을 계속하기로 결정하고 예비군 1만6000명에게 추가 동원령을 내렸다. 이스라엘은 아울러 미국에 탄약 지원을 요청했다. CNN은 이와 관련해 미국이 박격포탄과 수류탄 등 10억 달러어치의 탄약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러시아 제국의 옛 영광을 재현하는 ‘차르’를 꿈꾸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 빠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1989년 냉전체제 종식 이후 최고 수준의 대(對)러시아 제재안에 합의해 푸틴 대통령을 옥죄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경제제재 강화는 신(新)냉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으나 푸틴 대통령을 고립시키기 위한 서방의 제재는 더욱 날카로워지는 추세다. EU 28개 회원국 대표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금융 방위 에너지 등 러시아 경제 주요 부문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제재안에 합의했다. 러시아 정부가 지분을 50% 이상 소유한 은행들이 유럽 금융시장에서 90일 이상짜리 채권을 판매하거나 주식을 거래하지 못하고 하고 신규 무기 거래도 금지하며 북극해 개발과 셰일오일 채굴 기술협력도 제한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EU의 3대 무역 파트너로 지난해 EU와 러시아 간 무역 규모는 3300억 달러(약 338조 원)였다. 미 재무부도 이날 러시아 정부가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대외무역은행(VTB)과 자회사인 모스크바은행, 러시아농업은행 등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이로써 러시아 6대 국영은행 중 미국 제재를 받는 은행은 5개로 늘어났다. 러시아 은행들은 앞으로 미국과 유럽의 금융시장에서 돈을 조달할 수 없게 돼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EU옵서버’는 이번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올해 약 31조 원, 내년 약 103조 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1.5%, 4.8%에 해당하는 규모다. 러시아 내 여론도 차갑게 식고 있다. 서방의 강력한 제재로 ‘푸틴의 친구들’로 불리는 기업과 투자자들이 입을 타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미하일 카샤노프 전 러시아 총리는 “전면적 제재가 시작되면 러시아 경제는 6주 안에 붕괴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독일연방정보국(BND)의 게르하르트 신들러 국장은 “크렘린 내 강경파와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사이에 권력투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독일 시시주간 슈피겔이 전했다. 신흥재벌 세력은 서방과의 타협을, 강경파들은 러시아가 유럽 대신 중국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천문학적 액수의 소송도 푸틴 대통령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28일 러시아 정부가 강제 수용한 옛 러시아 석유회사 ‘유코스’ 주주들에게 500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러시아 GDP의 2.5%에 이르는 금액이다. 영국에선 말레이시아항공 MH17 격추로 희생된 영국인 유족들이 푸틴 대통령을 상대로 수백만 파운드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냉전 종식 이후 25년간 이어져 온 서방과 러시아의 협력관계의 장(chapter)이 닫히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은 내셔널리즘을 내세워 내부 단속에 나서는 한편 서방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강 대 강’ 맞불작전을 구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최창봉 기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유엔이 제안한 정전을 받아들이지 않고 28일 또다시 교전을 벌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TV연설을 통해 “이스라엘 시민들을 노리는 하마스의 터널이 모두 파괴될 때까지 우리 군은 가자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투가 ‘장기전’이 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이스라엘은 지상군 투입 후 지금까지 터널 30여 개와 100곳의 출입구를 확인해 파괴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28일 땅굴을 통해 이스라엘에 침입한 하마스 대원 5명을 총격전 끝에 사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제안한 휴전안에 대해 “하마스에 항복하는 꼴”이라며 분노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하마스 땅굴을 없애기 위한 지상군 투입을 케리 장관이 명쾌하게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가자지구 북부 샤티 난민촌의 공원 놀이터에 포탄이 떨어져 어린이 9명 등 10명이 숨졌다. 하마스 대변인 사미 아부 주흐리는 “이스라엘은 민간인과 어린이 대학살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시파병원 주변에도 폭발이 일어났고 하마스가 운영하는 알아끄사 TV 방송국도 공격을 받았다. 지난달 초 팔레스타인 통합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가자지구 총리를 지냈던 이스마일 하니예의 자택에도 29일 새벽 폭탄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는 1101명으로 늘었고 이스라엘에서는 5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네타냐후 총리와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마슈알에게 ‘조건 없는 즉시 정전’을 촉구한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 성명을 수용하라고 압박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무고한 어린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폭력을 제발 멈춰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서자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정전을 강력 촉구하고 나섰다. 중국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에 특사를 파견했다.○ 즉각적인 정전 촉구 교황은 27일 바티칸 교황궁 창문에서 삼종기도를 집전하면서 “이제는 그만둘 때”라며 가자지구와 이라크,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중단하라고 호소했다. 교황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언급하며 “전쟁을 통해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기억하자”고 강조했다. 교황은 특히 “목숨을 잃거나 다친 아이, 불구가 된 아이, 고아, 전쟁 잔해를 장난감으로 삼는 아이, 더이상 웃지 않게 된 아이를 생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8일 이후 최소 106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니세프는 이 가운데 어린이 사망자가 218명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조건 없는 인도주의적 휴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이 제안한 24시간 휴전 연장안을 수용하라고 양측에 촉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8일 긴급회의를 열어 “조건 없이 즉시 정전해야 한다”는 의장 성명을 냈다. 유엔 안보리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7월 28일부터 8월 2일까지 라마단 이드 기간과 그 이후까지 인도적 정전을 받아들이고 필요한 긴급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중국까지 중재자로 나서 15일 이후 중동지역에서 활동해 온 중국의 우쓰커(吳思科) 중동문제 특사는 24일 카타르에서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미샬을 만나 전쟁 종식 방안을 논의했다. 홍콩의 친중국 언론인 다궁(大公)보는 28일 중국 정부 대표가 하마스 지도자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중국이 대담하게 이-팔 갈등 해소 주선에 나선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화해 중재자 행보를 통해 중동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이-팔 충돌 해결에 이집트가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하마스의 동지인 무슬림형제단을 축출해 서로 등을 돌렸고 미국에 대한 불신도 커 ‘중동의 중재자’가 없는 틈을 노린다는 것이다. 우 특사는 미샬과 만나 “중국은 조속히 양측이 전쟁을 중단하고 정전에 이르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누구라도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이스라엘 공습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한 가자지구에 인도적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베이징=구자룡 특파원}
알베르 다뒤르. 21세. 셰르부르 출신. 23보병연대 소속. 1915년 2월 7일 사망. 2013년 7월 21일 이곳에서 유골이 발견되다.’ 24일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너른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마시주 고지 참호 유적.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연합군이 일진일퇴를 거듭했던 이곳에는 지금도 땅만 파면 병사들의 유골이 나온다. 지하벙커와 참호 곳곳에는 병사들이 사용했던 녹슨 수통과 포탄 파편, 야전삽 등이 나뒹굴어 당시의 참상을 전한다. 손녀와 함께 이곳을 찾은 장프랑수아 푸코 씨(72)는 “제1차 세계대전의 지옥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28일은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1차 대전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사라예보에서 19세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할 때만 해도 각국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분쟁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과 오스만제국이 참전하고 세르비아 편에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벨기에 미국 등 열강이 총출동하면서 이 분쟁은 ‘거대한 전쟁(Great War)’으로 바뀌고 말았다. 4년 4개월이나 지속된 전쟁에서는 사망자만 1500만 명이 넘었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으로 불렸던 1차 대전은 그 후의 국가 간 분쟁과 문명의 비극을 잉태하기도 했다.○ 지옥의 참호전과 현대전의 시작 프랑스 동북부 알자스로렌 지방의 최대 격전지였던 베르됭 계곡. 1916년 프랑스와 독일군이 이곳에 있는 야산 한 개를 점령하려고 10개월간 싸워 양측에서 1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곳이다. 전쟁 당시 ‘파괴된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고 ‘총검 참호 박물관’에는 참호 속 병사들의 비참했던 모습이 재연돼 있다. 박물관 안내자인 사라 카로멜 씨는 “베르됭은 독일군이 독가스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곳이며 영국군은 인근 솜전투에서 탱크를 처음으로 선보였다”며 “1차 대전은 기관총 곡사포 전투기 잠수함 등 현대전의 무기체계를 만들어낸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개전 초기 독일은 러시아와 상대하기 전에 먼저 프랑스를 치는 ‘슐리펜 계획’에 따라 병력을 이동시켰다. 그런데 파리 인근 마른 강 유역 전투에서 프랑스와 영국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이후 4년간 악몽 같은 ‘참호전’이 이어졌다. 독일은 벨기에 해안에서 스위스 접경 벨포트로 이어진 전선을 따라 철통같은 방어선을 구축했고 전쟁은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한 총력 소모전 양상으로 흘렀다. 기관총이 새로 등장한 전쟁에서 연합군은 나폴레옹 시절의 ‘돌격 앞으로’ 전술을 쓰다가 희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프랑스군은 1915년 2, 3월 샹파뉴에서 폭 1.5km도 되지 않는 지역을 탈환하느라 24만 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다. 잦은 비로 물이 흥건하게 고이는 참호 속 병사들은 군화 신은 발이 동상이 걸린 것처럼 신경이 마비되면서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참호족(Trench Foot)’을 앓았다. 1919년 6월. 승전국이 된 프랑스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에 200억 마르크를 요구하는 강화조약을 맺었다. 앞서 이 궁전은 1871년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 왕 빌헬름 1세가 독일제국 황제로 즉위했던 장소로 이용해 독일-프랑스 간 복수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기도 됐다.○ 20세기 비극의 씨앗 뿌려 워싱턴포스트는 “1차 대전이 모든 것을 바꿨다. 현대의 모든 글로벌 외교 분쟁의 원인을 알려면 이 전쟁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은 주요 강대국들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었다. 그런데도 강대국들은 기존의 동맹조약과 복수감정이 얽히면서 전쟁에 끌려들어갔다. 프랑스 국제정치학자인 피에르 르누뱅 교수는 “동맹블록의 경직 현상”을 1차 대전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이 전쟁으로 제정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대영제국 등 4대 제국이 붕괴됐다. 제정 러시아의 붕괴는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는 제3세계 약소국들의 독립운동을 부추겼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1차 대전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1차 대전 당시 ‘동부전선’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였다. 우크라이나 서쪽 주민들은 독일-오스트리아 편에, 동부는 러시아 쪽에 붙어 싸웠다. 우크라이나를 놓고 벌이는 유럽과 러시아와의 갈등은 이때부터 싹튼 셈이다. 올해 동북아, 중동의 불안한 정세도 100년 전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미중 관계를 1차 대전 당시의 영국과 독일 간 패권경쟁과 비교하면서 동북아에서의 중국과 일본 간의 군사 충돌을 경고했다. 또 지난 10년간 유럽연합(EU)의 경제를 이끌어 온 독일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까지 거두자 독일의 패권을 경계하는 유럽인들이 늘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1차 대전의 가장 큰 교훈은 자유로운 세계질서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유럽이 러시아 제재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를 놓고 뉴욕타임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이 거대 전쟁을 만들 수 있다는 1차 대전의 교훈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샹파뉴·베르됭=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북한 무기 수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6일 보도했다. 신문은 서방 소식통을 인용해 하마스가 레바논에 있는 무역회사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통신장비 등 수십만 달러 규모의 무기를 들여가는 거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마스는 현찰로 계약금을 지불했고 북한은 곧 가자 지구로 보낼 무기 선적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다량 발사하면서 로켓 재고를 채우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이 소식통은 “이슬람 무장단체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북한은 확실한 무기 공급처”라고 말했다. 2009년 지대지 미사일을 포함한 북한산 무기 35t을 실은 화물기가 태국 방콕에서 적발되면서 북한과 하마스 간 무기 거래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한편 인도주의 차원에서 24시간 동안 정전하자는 유엔의 26일 제안을 거부했던 하마스는 27일 뒤늦게 수용했다. 사미 아부 주흐리 하마스 대변인은 “오후 2시(한국 시간 27일 오후 8시)부터 24시간 정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고 BBC가 전했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오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군사행동을 계속하는 등 정전 요건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하마스를 비난했다. 이에 앞서 이스라엘 안보 내각은 26일 유엔의 24시간 정전안을 먼저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방적인 정전에 들어간 이후에도 하마스가 로켓 공격을 계속하자 육해공군을 동원한 군사작전을 재개했다. 시신 수습이 추가로 진행되면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는 1060명으로 집계됐고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군인 43명을 포함해 46명으로 늘었다. 반(反)이스라엘 시위도 세계 각지에서 이어졌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당국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26일 최대 5000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와 “이스라엘은 암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독일 베를린, 이란 등지에서도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유럽에서 유대인 증오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런던 시위에서는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를 찬양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다. 나탄 샤란스키 전 이스라엘 부총리는 최근 기고문에서 “유럽에서 유대인 종말의 시작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 신문 잡지들은 7월 초부터 여름 바캉스 기간에 읽을 책들을 추천하는 코너를 마련한다. 바캉스가 보통 한 달씩 이어지기 때문에 가방 안에는 선크림과 함께 책 몇 권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주간 르누벨 옵세르바퇴르는 최근 몇 달간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던 7권의 책을 휴가지 도서로 추천했다. 잉카문명의 황금, 빅토리아 여왕의 마지막 춤, 돌아온 히틀러 등 역사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류가 많았다.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끈 책은 ‘탈레반 크리켓 클럽’(메르퀴르 드 프랑스·사진)이라는 스포츠 소설이었다. 인도 출신의 작가인 티메리 무라리는 2000년도에 아프가니스탄이 국제크리켓연맹에 회원 가입 신청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탈레반이 4년간 집권하는 동안 국제사회로부터 정식 국가로 인정받고자 했던 시도였다. 작가는 “정말 아이러니와 모순에 가득 찬 시도”였다고 회고했다. 크리켓 룰에는 “정의와 페어플레이를 해야 하며, 자율 행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이슬람 원리주의 탈레반 정권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실제 이러한 사연에 기초해 소설을 만들어냈다. 주인공인 룩사나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데일리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언론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탈레반의 권력 남용과 비리 혐의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후 직장을 잃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어느 날 그녀는 탈레반의 ‘도덕 진흥 및 악행 예방 장관’으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그런데 그녀를 만난 장관은 뜻밖의 말을 내뱉는다. 아프가니스탄에 크리켓 토너먼트 경기를 벌여 우승한 팀을 국가대표로 선발해 파키스탄 전지훈련을 하고, 해외를 돌며 경기를 치르게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는 룩사나에게 결혼을 요구한다. “여성은 집이 아니면 무덤에만 머물러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해 온 탈레반은 여성들이 손톱에 매니큐어만 칠해도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무시무시한 정권. 룩사나는 만일 결혼을 거부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인도에서 유학 시절에 크리켓을 배웠던 룩사나는 남자로 변장해 형제들과 사촌들을 모아 크리켓 팀을 구성한다. 팀명이 ‘탈레반 크리켓 클럽’이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그녀는 억압적인 나라와 강요된 결혼으로부터 탈출하게 된다. 이 책은 블랙 코미디와 스포츠 서스펜스, 인간 승리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그러나 이 책의 하이라이트 액션은 경기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탈레반 정권시절 카불에서 체류하면서 직접 보고 겪었던 끔찍한 억압의 디테일을 소설 속에 영화처럼 담아냈다. 교수형을 당해 대통령궁 앞에 매달린 전직 대통령, 길 한복판에서 투석형을 당하는 여성, 음악도 책도 영화도 연극도 모두 금지돼 즐거움이 메말라 버린 사회…. 작가는 ‘심지어 새들도 모두 떠났다’고 묘사한다. 룩사나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크리켓 경기에서는 폭력이 허용될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어떤 이가 대답한다. “그러면 크리켓은 이곳에서는 인기를 얻을 수 없겠네요.”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18일 오후 1시 15분경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정류장. 인천으로 가는 공항리무진 버스기사 박종호 씨(57)는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안을 돌기 시작했다. 박 씨는 10여 명의 승객에게 일일이 안전띠 착용을 권유했다. 대부분의 승객은 안전띠를 매지 않은 상태였지만 기사가 직접 착용을 권유하자 모두 벨트를 맸다. 박 씨는 모든 승객이 안전띠를 착용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자리로 돌아와 운행을 시작했다. 박 씨는 “평소 안전띠 매기를 귀찮아 하는 손님도 눈을 맞추면서 정중히 말씀드리면 착용을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인천공항 노선 등 5개 공항버스 노선을 운영하는 ‘한국도심공항’은 이처럼 기사가 승객에게 안전띠 착용을 직접 권유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결과는 어떨까. 한국도심공항에 따르면 2011∼2013년 이 회사의 사고 건당 승객 경상자는 0.48명, 중상자는 0.04명에 불과했다. 사망자는 1명도 없었다. 같은 기간 일반 고속도로의 고속버스 교통사고에서는 건당 0.22명의 사망자와 6.32명의 부상자(중상자 2.34명, 경상자 3.98명)가 발생했다. 이처럼 안전벨트 착용은 사고 시 승객의 사망 부상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5월 14일 오전 9시 55분 인천공항 방향 영종대교 상부도로(왕복 6차로)에서 공항리무진버스(6100번)가 중앙분리대 청소 준비를 위해 서행하던 25t 신호트럭에 부딪친 뒤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사고가 있었다. 버스의 앞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파되고 신호트럭 뒷부분이 반파될 정도로 큰 충격이 발생했지만 승객 10여 명은 대부분 경상에 그쳤다. 아무도 좌석에서 튕겨 나가거나 유리창 등에 부딪치지 않았다. 승객 모두 안전띠를 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전을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답이다. 동아일보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일상 속에서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일곱 가지 제언을 한다.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방안들로 이를 차근차근 실천한다면 대한민국은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①20명 모인 곳 대피안내 의무화하자노래방 구석에 대피도 1장… 불나면 우왕좌왕 불보듯②안전안내, 기계 아닌 사람이 하자녹음된 음성, 지루함 유발… 육성은 각성효과 가져와③안전 관련 종사자 제복 입게하자승객 생명 지킨다는 책무… 일상적으로 느낄수 있어④안전훈련 불시에 실시하자英금융가 예고없이 경보… 실전처럼 일사불란 대피⑤안전위반 신고포상금 도입하자“위반해도 안걸리면 그만”… 공익신고 활성화 시켜야⑥생존교육 필수교과로 지정하자독일 학교들 수영 수업… 인명구조 배워야 ‘졸업’⑦매뉴얼 기관별 공개 의무화하자독립기구서 매뉴얼 평가… 부실한 곳 불이익 줘야22일 오전 10시 25분 서울 강남구 롯데시네마 씨티강남점 4관. 영화 상영 전 비상대피로 안내 영상이 17초 동안 상영됐다. “대피 시에는 왼쪽 안전 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녹음된 여성 목소리와 함께 화면 왼쪽에 “가장 가까운 출입문을 확인해 주세요” 등의 글자가 나왔다. 비상대피 영상은 앞뒤로 20여 편의 광고가 상영되는 데다 고작 17초에 불과했다. 더구나 대피 안내 영상이 4관뿐 아니라 다른 상영관의 대피로를 함께 보여줬기 때문에 정작 기자가 있던 4관의 대피로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영상에는 소화기와 소화전 등의 위치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피로 안내 영상에 따라붙는 협찬 광고주의 홍보성 동영상이 배경에 깔리는 경우도 많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이형우 씨(36)는 최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에서 영화 상영 전 광고가 붙은 대피 영상을 본 뒤 “대피 안내 영상이 ‘그냥 뛰어나가면 된다’는 것 말고 무엇을 알려주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업주는 위급 상황에서 이용객들이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도록 피난계단과 통로, 피난설비 등이 표시된 안내도를 갖추거나 피난 안내에 관한 영상물을 상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건물 내부 구조를 잘 모르기 때문에 건물주나 시설 담당자가 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다. 노래방이나 PC방, 고시원, 영화관, 대중목욕탕 등 23곳이 다중이용업소다. 하지만 이 법 규정은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극장뿐 아니라 노래방이나 PC방도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최소한의 정보만 담은 비상 대피도를 붙여놓은 게 전부다. 유사시에 대피로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엉키면 대형 인명 사고로 번질 수밖에 없다. 기준을 정해 일정 인원 이상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관리 책임자가 방문객에게 대피 요령 안내를 직접 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숱한 인재를 겪으며 안전 관련 제도와 문화를 발전시켜 온 영국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는 건물에서 행사가 열리면 방문객 대상으로 대피 요령 안내 및 대피 훈련을 먼저 한다. 영국은 ‘직장에서의 건강과 안전법(Health and safety at work ACT·1974년 제정)’에 따라 회사의 고용자나 사무실의 관리자에게 이 같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 법은 사유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설에 적용된다. 콜린 그레이 주한 영국대사관 대변인은 “대사관에 신입직원이 들어오면 근무 첫날은 안전 지침을 숙지하고 건물의 동선을 확인하고 이를 테스트하면서 하루가 다 간다”며 “안전관리 담당자는 대사관의 대피 훈련 결과를 영국 본국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피 요령을 미리 녹음된 음성으로 안내하면 실제 육성보다 사람들의 인지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지하철 열차에서 규칙적으로 흘러나오는 안전 관련 기계음성, 영화관에서 광고와 함께 섞여 나오는 대피 요령 방송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직원이 대면해 안전 수칙을 안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사람은 규칙적인 기계음보다 불규칙적인 음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말했다. 녹음된 음성처럼 일정한 음은 잠이 올 때의 뇌파인 ‘세타파’를 발생시켜 지겨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 소장은 “사람의 육성처럼 불규칙한 음성은 활동할 때 발생하는 뇌파인 ‘베타파’를 유발시켜 각성하는 효과를 가져와 집중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택시 버스 운전사 등 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진 대표적 안전 관리자들에게 제복 착용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제복을 통해 타인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주면서 스스로의 책무를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현재는 제복 착용과 관련한 규정이 없다. 이번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을 방치하고 자신들만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이 하나같이 제복을 벗고 사복 차림이었던 것도 제복이 갖는 책임감을 방증한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찰 및 군인 제복이 의무와 책임을 일깨워주는 것처럼 제복은 사회적으로 자기 통제와 책임성을 강화한다”며 “제복을 입은 사람이 사회적 책임에 맞춰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대피 요령 안내의 실질화 외에도 안전 시스템을 보완하고 강화할 부분이 많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방법 몇 가지가 제시된다. 초중고교에서 ‘생존교육’을 필수교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파리 15구의 공립초등학교인 ‘에콜드루엘’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일주일에 한 시간씩 ‘생존 수영’을 가르친다. 물 위에 떠 있기, 호흡하는 법, 물놀이를 하면서 물속에서의 기본적인 생존능력을 키워주는 게 목표다. 수업 중에는 학생들에게 물안경을 씌우지 않는다. 실제 사고 시에도 당황하지 않고 물속에서 눈을 뜨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독일도 학교의 수영 수업 마지막 단계에 인명구조를 배우고 자격증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 독일 공교육을 받은 모든 학생은 인명 구조요원과 같은 수준이 돼 졸업하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안전에 대해 보건교과나 ‘창의학습체험’ 등을 통해 비정기적이고 부수적으로만 교육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존 과목을 신설하고 관련 교과서도 발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국가가 공인하는 안전 관련 공인자격증을 만들어 취득자에게 생명보험료를 할인하는 등의 혜택을 주는 안도 검토할 만하다. 또 사고가 불시에 닥치듯 훈련도 불시에 할 필요가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2005년 7·7 지하철·버스 테러 이후 다중이용 시설의 비상 대피훈련을 불시에 실시한다. 금융의 중심가인 ‘시티’의 30∼40층 고층빌딩에서도 불시에 소방벨이 울리면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비상구로 일사불란하게 내려온다. 시내의 고급 호텔에서도 새벽 두 시 반경 불시에 훈련 화재경보가 울리기도 한다. 중앙부처 및 지자체의 각종 방재 매뉴얼과 사고백서 공개도 의무화해야 한다. 각 기관이 각자 작성한 매뉴얼은 3400개나 있지만 유관 부서끼리도 내용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실정이다. 유사시에 부처들이 업무 구분이 뒤죽박죽된 채 서로 영역 다툼을 해서는 사고 피해 최소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부처 등이 작성한 매뉴얼은 독립적인 전문기구가 평가해 우수한 곳에는 혜택을 주고 부실한 곳에는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매뉴얼을 보완해야 한다. 안전 관련 신고포상금제 도입도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안전 관련 규정 준수율이 낮은 이유는 위반해도 적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시인력과 인프라를 무한정 늘리기도 어렵다. 이에 대한 대안이 공익신고 시스템 도입이다. 시민들의 반발로 시행이 중단된 교통법규 위반 신고 포상제도도 ‘카파라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재추진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의 재난 대비 컨트롤타워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해마다 9월을 재난 대비의 달로 정하고 지난 1년 동안 재난 대비에 탁월한 성과를 나타낸 개인과 단체 등에 상을 수여하고 있다. ‘개인 및 지역사회 준비 대상(FEMA Individual and Community Preparedness Awards)’이다. 국가 차원의 재난 대비 능력 강화와 아울러 아래로부터 지역사회와 개인의 자발적인 재난 대비 능력을 키우기 위한 인센티브인 셈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조종엽·박성진 기자파리=전승훈 /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그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브라질 월드컵 4강에 올라 오렌지 빛깔로 환호하던 네덜란드 전역이 월드컵 폐막 1주일 만에 검은색 물결로 뒤덮였다. 자국민 193명이 희생된 말레이시아항공 MH17 여객기 격추 사건을 네덜란드인들은 “우리에게 닥친 9·11테러”라며 슬픔에 잠겼다. BBC는 네덜란드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프로필과 사진을 검은색 사각형이나 검은색 리본으로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위터에서는 희생자 유해의 송환을 기원하며 ‘그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라’(#BringThemHome)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있다. 네덜란드는 제정 러시아 이후 약 400년 동안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네덜란드 해외투자의 16%, 국내투자의 12%가 러시아와 관련돼 경제적 유대관계도 깊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는 크림 반도 합병사태 이후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 과정에서도 유연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여객기 격추 사건 이후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희생자들의 유류품을 약탈하고 시신을 함부로 다루자 분노하는 네덜란드인들이 많아졌다. 또 네덜란드 현지 언론들은 MH17을 격추시킨 데 사용된 부크 미사일의 생산에 네덜란드 자위다스 경제구역에 본사를 둔 기업이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업은 러시아 국영 방산기업인 로스텍이 지분 100%를 가진 계열사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자위다스 지역은 입주 기업들에 상당한 세금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세금 혜택을 받아 만든 미사일이 네덜란드 국민을 죽이는 데 사용됐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은 21일 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나 “많은 이들이 ‘최소한 사랑하는 이들과 품위 있는 작별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 좌절과 아픔을 잘 이해한다”고 위로했다. 한편 네덜란드에서는 일상적 삶이 계속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로테르담 음악축제인 ‘크레이지 섹시 쿨 페스티벌’이 19일 열리는 등 여러 곳에서 주말 축제가 예정대로 진행됐다. NYT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네덜란드는 법치주의 전통이 강해 일단 감정을 자제했다가 사건 전모가 명확해진 뒤에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희생자 유가족의 직접적인 반응을 언론에서 찾아볼 수도 없다.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 현장의 끔찍한 소식이 전해졌지만 유족들의 반응은 ‘침묵’에 가깝다”며 “이는 정부의 ‘철통 보안’ 때문”이라고 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60)이 여배우 쥘리 가예(42)와 곧 결혼할 것으로 보인다고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이 2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집권 사회당 고위 간부의 말을 인용해 “올랑드 대통령이 가예와의 관계를 공식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지난 3개월 동안 계속 나오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결혼 날짜는 올랑드 대통령이 환갑을 맞는 8월 12일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정가에 퍼져 있다. 두 사람의 열애를 다룬 ‘국가의 열정’ 작가인 이브 아제루알 씨는 “가예가 대중의 눈을 피해 다니는 비밀스러운 정부(情婦) 노릇에 지쳤다고 몇 주에 걸쳐 압박해 마침내 ‘예스’라는 답을 얻어냈다”고 말했다. 이 결혼이 성사되면 올랑드 대통령은 생애 처음으로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두 차례 동거는 했으나 결혼한 적은 없다. 첫 번째 동거녀인 세골렌 루아얄 프랑스 환경장관(61)과는 27년간 동거하며 네 자녀를 뒀으나 2007년 당내 대통령 경선에서 커플 대결 직후 헤어졌다. 다음 동거녀인 기자 출신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 씨(49)는 올해 1월 올랑드 대통령과 가예의 스캔들 폭로 이후 8년간의 동거 생활을 끝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올랑드의 결혼은 사회당 내부의 권고와 가예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라고 전했다. 사회당 고위 관계자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올랑드 대통령이 계속 복잡한 사생활을 갖는다면 사회당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권재현 기자}
298명이 숨진 말레이시아항공 MH17 여객기 피격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이 속속 수습되고 있으나 국제조사단의 현장 접근이 통제돼 신원 확인에 애를 먹고 있다. 특히 친(親)러시아 반군들이 수습된 시신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어 “시신을 인질로 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들판에 흩어져 파리 떼가 들끓던 희생자 시신은 다섯 량의 회색 냉동열차에 나뉘어 실렸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우크라이나 총리는 이날까지 모두 272구의 시신을 수습했고 이 중 251구가 냉동열차에 실렸다고 밝혔다. 수습된 시신 수는 탑승객 298명의 91%에 이르는 수치다. 수습된 시신들을 넘겨받아 냉동열차에 싣고 있는 반군은 국제조사단에 이 시신들을 넘기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조사단이 다 오지 않았다”며 인계를 계속 미루고 있다. 이 때문에 반군이 시신들을 도네츠크 또는 마리우폴 등으로 옮길 것이라는 소문도 난무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 말레이시아 합동조사단 133명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조사단원 30명이 와 있지만 반군의 통제 때문에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반군은 21일 네덜란드의 법의학자들에게는 수습된 시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네덜란드는 이번 사고로 가장 많은 193명이 숨졌다. 네덜란드 법의학자들은 추락 현장에서 15km 떨어진 토레즈에서 냉동열차에 올라가 시신들의 보존 상태를 점검했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라마단(이슬람교의 단식 기간)이 끝나는 28일까지 신원이 확인된 자국 희생자 시신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라작 총리는 단식 집회를 마치면서 “우리는 희생자들이 낯선 땅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용인할 수 없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비행기 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네덜란드 여성의 호소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실레너 프레드릭스후흐잔트 씨는 아들 브라이스(23)와 그의 여자친구 데이지(20)를 이번 사고로 잃었다. 프레드릭스후흐잔트 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내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푸틴이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안다. 제발 내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며 울부짖었다.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파리=전승훈 특파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말레이시아항공 MH17 여객기 피격 사건에 러시아가 깊숙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천명하고 나섰다. 누가 미사일을 쏘았느냐는 진실공방이 점차 서방 대 러시아의 대결 구도로 넘어가는 양상이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20일(현지 시간) CNN CBS 폭스뉴스 등 5개 미국 방송에 연이어 출연해 “이번 사건에 러시아가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엄청나게 많다”며 강력한 추가 제재를 공언했다. 이어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 정상들도 이날 오전 3자 전화회의를 열어 러시아 제재에 합의했다. EU의 러시아 경제제재는 이르면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외교장관회의에서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1일 오후 3시(한국 시간 22일 오전 4시) 말레이시아항공 MH17 여객기 격추 사건을 규탄하고 국제사회의 조사에 모든 국가들이 협조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파리=전승훈 raphy@donga.com뉴욕=부형권 특파원}
말레이시아 MH17 여객기 격추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정황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대(對)러시아 추가 제재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특히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 러시아를 맹비난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강력한 총공세에 직면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신 수습과 블랙박스 회수를 돕겠다고 밝히며 ‘시간 끌기’에 나섰다. 케리 장관은 20일 ABC CBS NBC CNN 폭스뉴스 등 미국의 5개 주요 방송에 잇달아 출연해 “친러시아 반군이 여객기를 격추시켰다는 증거들은 충분하다. 여객기를 격추시킨 부크 지대공 미사일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에 지원했으며 이를 어떻게 작동하는지 교육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엄청난 양의 증거’들이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에 부크 미사일 사용법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미국이 언급한 것은 케리 장관의 발언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케리 장관은 이어 “불과 몇 주일 전에 전차와 포대, 각종 로켓 발사대, 무장 병력 수송 수단 등을 실은 150대의 차량이 러시아에서 동부 우크라이나로 넘어왔다”며 “우리가 입수한 영상자료에 따르면 반군은 여객기 격추 사고 직전에 SA-11 미사일을 가지고 있었다. 사고 직후 미사일 발사대를 러시아로 다시 가져가는 동영상도 확보했다”며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했다. 그는 “러시아가 진실을 말해야 할 순간이 왔다”면서 “러시아는 (여객기를 격추한) 반군을 지원하고 무장시켰으며 훈련시켰다”고 비난했다. 케리 장관은 또 “미국 정보기관이 확보한 영상 자료에 따르면 (여객기가 격추된) 17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미사일이 발사됐으며 궤적 추적을 통해 이 미사일이 여객기를 격추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케리 장관은 “그동안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한 유럽 일부 국가들에 경종(wake-up call)이 되기를 바란다”며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유럽도 러시아 추가 제재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은 20일 오전 3자 통화에서 EU 차원의 강력한 러시아 제재에 합의했다. 호주의 토니 애벗 총리는 21일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발생한 말레이시아항공 MH17기 피격 사건을 ‘테러 행위(terrorist act)’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방의 총공세에 직면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통화에서 “시신 수습과 블랙박스 회수를 돕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각국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실제로 21일 크렘린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우크라이나가 지난달 말에 반군 진압작전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고 반군을 두둔했다. 러시아의 정치분석가인 미하일 레미코프 씨는 “반군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나오더라도 푸틴의 전략은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며 “이는 러시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크림 반도의 안정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부인 전략’은 서방과의 관계를 냉전 이래 최악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율리 니스네비치 러시아 고등경제대(HSE) 교수는 “지금 러시아와 서방은 구조적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서방이 러시아에 이란식 고립 정책을 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워싱턴=신석호 특파원}
우크라이나에서 격추된 말레이시아항공 MH17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의 안타깝고 기막힌 사연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났던 어린이 8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격추된 여객기 잔해에서는 어린이들이 갖고 놀았던 것으로 보이는 인형들과 책을 담은 가방들이 발견됐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와 비탄에 빠진 네덜란드에서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의 현장 훼손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어린이 희생자 유난히 많아 호주 국적의 모(12), 에비(10·여), 오티스(8) 삼남매는 가족여행을 갔다가 외할아버지 닉 노리스 씨(68)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아이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부모와 함께 유럽여행을 즐긴 뒤 외할아버지와 함께 호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노리스 씨는 “부모도 휴식시간이 필요하다”며 딸과 사위를 네덜란드에 며칠 더 남아 있게 한 뒤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귀국길에 올랐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국적의 율리 하스티니 씨(44·여)는 네덜란드인 남편 및 두 자녀와 함께 인도네시아 수라카르타에 있는 고향집을 찾아가던 길에 목숨을 잃었다. 네덜란드의 한 제약회사에 일하는 그는 남편 욘 파울리선 씨(47)와 함께 아들 아르주나(5), 딸 스리(3)를 데리고 고향 방문길에 올랐다. 그의 지인들은 “지난해 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 몹시 슬퍼했다”고 전했다. 하스티니 씨는 이번에 어머니 무덤을 찾을 계획이었다. 유럽 여행에 나섰던 말레이시아 일가족 6명이 모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석유회사에서 일하는 탐비 지에 씨와 부인 아리자 가잘리 씨는 무함마드 아피프 군(19) 등 4남매를 데리고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영국인 변호사 존 앨런 씨(43)와 아내 샌드라 씨는 16세, 14세, 8세인 세 아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나섰다가 희생됐다.○ 4개월 만에 운명 뒤바뀐 부부 말레이시아 언론 ‘말레이시안 인사이더’는 MH17에 탑승했던 승무원 산지드 싱 씨(41)가 동료와 근무를 바꿨다가 변을 당했다고 18일 전했다. 싱 씨의 아버지는 “낮 12시쯤 집에 온다고 해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라며 오열했다. 같은 항공사 소속 승무원인 싱 씨의 부인은 올해 3월 8일 쿠알라룸푸르를 출발해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던 중 실종된 MH370에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근무를 바꿔 살아남았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의 의붓할머니도 격추된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라작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무함마드 노아 씨의 두 번째 부인이던 시티 아미라 파라위라 씨(83)는 고향으로 가다 숨졌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국제에이즈학회(IAS)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MH17기를 탔다가 사망한 에이즈연구 전문가들은 당초 100여 명이 탑승했다고 주요 외신이 보도했지만 학회의 공식 확인 결과 탑승한 학자는 6명이었다.○ 네덜란드 전역 추도 분위기 가장 많은 목숨이 희생된 네덜란드에서는 암스테르담 교외에 있는 도시 힐베르쉼의 인구 8만 명이 모두 비탄에 빠졌다. 이 도시에 사는 세 가족과 19세 청년 등 13명이 한꺼번에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힐베르쉼 중심가의 성 비투스 성당에는 숨진 이웃을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빌럼 비테베인 네덜란드 상원의원과 가족들도 목숨을 잃었다. 그는 아내, 딸과 함께 이번 사고기에 탑승했다. 스히폴 국제공항에는 누군가가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다발을 가져다 놓기 시작하면서 희생자 위로구역이 마련됐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위로 구역에는 꽃과 인형, 카드가 쌓이고 있다. 유럽 최대 자전거 경주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한 네덜란드 선수들은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외신들은 우크라이나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 앞에도 현지 주민들이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꽃과 촛불이 가득하다고 전했다.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98명이 탑승한 말레이시아항공 MH17 여객기가 추락한 현장에 접근하려는 국제조사단을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차단하고 나섰다. 특히 지금까지 발견된 시신 196구도 모두 반군이 가져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17일 MH17가 추락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 그라보보 마을에는 기체 잔해와 승객들의 유류품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잔해가 흩어진 면적이 34km²에 이를 정도로 넓다. 더구나 현장 기온이 30도가 넘어 상당수 시신이 훼손되면서 악취까지 풍기고 있다. 시신의 신용카드나 소지품을 훔치는 도둑들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말레이시아 합동조사단 131명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조사단원 30명은 반군의 감시 탓에 사고현장에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성명에서 “반군들이 18일에는 단 75분, 19일에는 3시간밖에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장을 통제하는 반군은 공중을 향해 경고 사격을 하는 등 조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한 반군 지도자는 20일 발견한 MH17의 블랙박스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반군은 앞서 18일 블랙박스를 찾아 가져갔다는 보도는 부인했다. 이 때문에 자국민 193명이 희생된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는 “네덜란드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며 “신속한 수습과 조사 허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사태 해결 의지를 보여줄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푸틴 대통령에게 제한 없는 현장조사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21일 표결에 부친다고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