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2015년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따른 우라늄 농축 비율(3.67%) 파기를 선언한 이란이 8일 “우라늄 농축도가 4.5%를 넘어섰다. 우리가 원하면 핵합의 이전 농축도인 20%까지 높이는 일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관영 ISNA통신에 따르면 이날 베루즈 카말반디 이란 원자력청 대변인은 “오늘 아침 이란의 우라늄 농축도가 4.5%를 초과했다. 남아 있는 핵합의 당사국들이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를 완충해줄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60일 후 합의 사항을 어기는 또 다른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은 하루 전 “우라늄 농축도가 3.67%를 넘어섰다”고 공식 선언했다. 발끈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곧바로 기자들에게 “이란은 ‘조심하는 게 좋다(better be careful)’. 그들은 많은 나쁜 일을 하고 있으며 절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경고했다. 같은 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트위터에 “이란의 최근 핵 프로그램 확대는 추가 고립 및 제재로 이어질 것”이라며 “핵무기로 무장한 이란 정권은 전 세계에 더 큰 위험을 안긴다”고 가세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핵합의 서명국들은 연일 강경 대응을 밝힌 미국과 달리 “대화와 협상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6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1시간 이상 전화 통화를 갖고 15일까지 대화 재개 조건을 찾아보기로 합의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10일 이란에 관한 긴급회의를 연다. 중국은 이란을 편들며 ‘미국 때리기’에 나섰다. 관영 환추(環球)시보에 따르면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이란에 최대한의 압박을 가한 것이 이란 핵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미국의) 일방적 괴롭힘이 세계적으로 더 많은 문제와 큰 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0일 이란 군이 격추한 미군 무인기(드론) 사건에 대한 진실 공방도 뜨겁다. 이란 언론 테헤란타임스는 “격추 직후 미국이 외교 경로를 통해 ‘미국 체면을 살리기 위한 공습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으나 이란이 거부했다”며 ‘미국 망신 주기’성 보도에 나섰다. 골람 레자 잘랄리 이란 군 사령관은 “당시 미국이 ‘중요하지 않은 사막 지역에 제한된 공습을 하고 싶다. 이에 대응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공격도 전쟁 시작으로 여기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는 “격추 직후 보복 공습을 계획했지만 인명 피해를 우려해 약 10분 전 취소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상반된다. 이란은 미국과의 협상에도 부정적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결정되는 2020년 11월 미 대선 때까지 협상을 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라며 “핵 합의를 파기한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협상하느니 새 대통령과 협상에 나서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이란이 지난해 5월 미국의 전격적 핵 합의 파기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공식적으로는 ‘핵 합의 맞불 파기’를 선언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새 대통령과의 협상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워싱턴=이정은 / 파리=김윤종 특파원}
그리스 조기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신민주당의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대표(51·사진)가 8일 새 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이날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대통령 및 바르톨로메오스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 앞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신민주당은 하루 전 총선에서 39.8%를 얻어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45)가 이끈 급진좌파연합(시리자·31.5%)을 눌렀다. 총 300석 중 158석을 차지해 다른 정당과 연합 없이 단독 정부 구성이 가능하다. 유례없는 ‘선거 다음 날 취임’은 그리스 상황이 그만큼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로 평가된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및 2010년 남유럽 재정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그리스는 지난해 8월에야 약 8년에 걸친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재정 지출 등에 있어 채권단의 엄격한 감독을 받고 있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채무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15년 1월 ‘긴축 거부’를 주창해 그리스 사상 최연소 총리가 됐다. 하지만 집권 후 ‘현실의 벽’을 절감한 그는 채권단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여 긴축 정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세금이 크게 오르고 재정 지출이 대폭 삭감됐다. 국민들의 월급 및 연금 수령액도 약 3분의 1 감소했다.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자 경제 규모는 약 25% 줄었고 일자리 감소도 심해졌다. 유럽연합(EU) 통계기구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그리스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은 각각 20%, 40%대다. 7∼8%인 유럽 평균 실업률보다 월등히 높다. 2010년 이후에만 약 35만 명의 청년이 이민을 떠났고 민심 이반도 심해졌다.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컨설팅사 매킨지에서 일한 미초타키스 신임 총리는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망가진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이미 감세, 투자 유치, 관료주의 타파, 규제 개혁, 공공 서비스 민영화 등을 공약했다. 또 국제채권단과의 긴축 재협상을 통해 재정 지출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외신들은 선거 결과를 두고 ‘그리스가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대신 일자리와 경제를 선택했다’고 평했다. 4년 전 혜성처럼 등장했던 치프라스 전 총리의 재집권 실패는 물론이고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했던 극우 황금새벽당도 3% 미만의 득표율로 의회에 진출하지 못했다. 미 CNN은 “그리스는 지난 10년간 유럽에 포퓰리즘을 가져온 첫 번째 나라였지만 이번 선거로 유럽 내 ‘극단적 포퓰리즘 종말’의 시작을 알렸다”고 진단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왜 아치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만 봐야 하냐.” 영국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빈이 첫아이인 아치 해리스 마운트배튼 윈저의 세례 사진을 6일(현지 시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자 영국인들은 불만이 가득한 반응을 나타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8번째 증손자 아치는 이날 런던 윈저성 예배당에서 성공회 세례를 받았다. 영국 성공회 최고위직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세례식을 진행했다. 세례 후 해리 왕손 부부는 아치의 사진 두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첫 번째 사진은 윈저성 내 장미정원에서 아치를 안은 해리 왕손 부부 모습이다. 또 다른 사진은 해리 왕손의 아버지인 찰스 왕세자 부부를 비롯해 메건의 어머니인 도리아 래글랜드, 형 윌리엄 왕세손 부부 등이 세례식을 기념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이를 두고 영국 왕실 팬들이 “왜 사진만 공개하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간 영국 왕실은 관례적으로 왕실 가문의 세례식 모습을 일부분 대중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날 세례식에도 해리 왕손 부부와 아치를 보려는 시민들이 윈저성 일대에 몰렸다. BBC 등 외신은 “세금 250만 파운드(약 36억 원)가 해리 왕손 부부의 거주지 리모델링 등에 투입된다”며 “왕실 세례식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그리스의 정치 지형이 4년 만에 ‘우향우’ 할 것으로 보인다. 정권 탈환이 유력한 보수파 야당이 일자리와 투자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침체된 그리스 경기는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7일 오전 7시 그리스 전역에서 차기 정권을 결정하는 조기 총선 투표가 시작됐다. 지난 8년 동안 이어졌던 국제채권단 구제금융 체제를 지난해 8월 졸업한 후 첫 의원 선거다. 하지만 선거 전 시행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도우파인 야당 신민주당이 여당보다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어 정권교체가 확실시되고 있다. 예상대로 선거가 마무리되면 신민주당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대표(51·사진)가 그리스 신임 총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초타키스 대표는 그리스 보수파의 핵심 인물이자 총리(1990∼1993년)를 지낸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전 총리의 아들이다.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금융권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뒤늦게 정치를 시작한 후 2013∼2015년 안도니스 사마라스 내각에서 개혁행정부 장관 등을 지냈다. 신민주당이 의회 총 300석 중 과반인 150∼160석가량의 의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된다. 미초타키스 대표는 정권교체를 자신한 듯 그리스 국기 색깔에 선거일을 빗대 “일요일에는 그리스가 파랗게 되고, 월요일에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 여당인 시리자(급진좌파연합)는 4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현 총리(44)는 2015년 국제채권단의 긴축 요구를 거부하겠다는 공약으로 그리스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됐다. 그러나 집권 후 임금 삭감 등 긴축정책을 펼쳤음에도 실업률이 악화됐고 기대만큼 경기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게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 지목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특히 지난해 7월 아테네 인근 마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재해로 100명 이상이 사망했지만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도 민심에 영향을 줬다. 보수파가 다시 정권을 잡아도 그리스 경제 회복에는 난관이 많다. 신민주당은 세금을 낮추고 공공서비스를 민간으로 전환하는 한편 국제채권단과 재협상을 추진할 방침이다. 하지만 부채와 방만한 재정 운영에 대한 혁신적인 개혁 없이는 경제가 회복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180%에 육박하는 만큼 새 정부는 일자리 확대 등 경기부양책과 재정안정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오늘도 행복하세요.’ 채팅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종종 주고받는 말이다. 30대 회사원 김주환 씨(가명)는 이 문자를 보여주며 “행복이 뭔지 고민된다”고 했다.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이 선망하는 A은행에 입사했다. 연봉은 7000만 원이 넘는다. 연인과는 곧 결혼할 예정이다. 부모님은 건강하신 편이다. 그럼에도 그는 “고객들에게 대출을 권유하는 일을 하는데, 정작 나는 대출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집을 사기 힘들다”며 “굳이 행복 점수를 매기면 100점 만점에 40점 정도인 거 같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지난해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이었다.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15년 이래 가장 낮았다. 경제적 만족도나 심리적 안정감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감을 높일 수 있을까?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인 2020년까지 한국인의 행복을 탐구하는 ‘행복원정대 2020 프로젝트’를 통해 그 해답을 알아봤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지난 한 해 대한민국의 소비와 문화 트렌드를 표현한 신조어다. 타인의 평가나 거시적 경제지표보다 스스로의 만족감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이처럼 달라진 행복의 기준에도 불구하고 2018년 한국인의 행복도는 이전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지난해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으로, 201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다. 지표를 처음 개발한 그해 동아행복지수는 57.43점이었다. 이어 2016년 57.90점, 2017년 58.71점으로 계속 상승했으나 지난해 처음으로 꺾인 것이다.○ ‘심리적 안정감’ 결핍된 한국인 직장인 박지윤 씨(가명·32)는 요즘 유럽 국가로 유학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늦깎이 유학길에 오르는 건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다. 결혼 무렵 그는 대출을 받아 3억 원짜리 빌라를 전세로 얻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자가 실직을 하면서 생활이 쪼그라들었다. 상사와 고객의 ‘갑질’이 난무하는 직장생활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자신마저 관두면 생활이 더 어려워질 거란 생각에 꾹 참았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막연한 불안감’이다. 부부가 건강하면 지금처럼 빠듯하게 생활해도 먹고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라도 아프면 어떻게 하지?’ ‘경기가 더 나빠지면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애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고민이 날로 커졌다. 1년을 고민한 그는 사회보장체계가 잘 되어있고 워라밸이 좋다는 유럽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20대 이상 104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심층설문을 한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2017년에는 행복지수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으로 △경제적 만족도 △가족생활 △건강 순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생활 △경제적 만족도에 이어 △심리적 안정감이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현재 상황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솟아오르는 집값, 높아진 실업률, 갈등으로 치닫는 정치 등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하다는 인식이 커졌다”며 “불안이 커질수록 ‘안정’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안정감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다 보니 상대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았다. 20대의 행복지수는 52.64점이다. 30대는 55.23점, 40대는 55.81점, 50대 이상은 59.24점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행복지수도 상승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20대는 치열한 학업과 취업 경쟁에서 느끼는 불확실성이 크다”며 “취업을 한다 해도 집값이 비싸 내 집을 갖기 어렵고, 자연스럽게 결혼도 어렵다는 비관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분석했다. 특히 ‘내 집 마련’과 행복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동아행복지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족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그룹에서 자가 거주자가 세입자보다 행복지수가 높았다. 회사원 박모 씨(35)는 “작년에 집값이 너무 뛰는 것을 보며 지금이라도 빚을 내서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출 규제가 심해 물거품이 됐다”며 “나 같은 젊은이에게 ‘내 집 마련’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일상이 변해야 행복감 커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도를 높일 수 있을까? 당장 고가의 아파트가 하늘에서 떨어질 리 없다. 월급을 많이 받으면서 일은 힘들지 않은 ‘꿈의 직장’을 갖는 것도 꿈같은 얘기다. 전문가들은 일상 속 ‘작은 행동의 변화’가 행복감을 높이는 첫걸음이라고 조언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행복을 높이는 방안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선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부터 줄여야 한다. 최근 스마트폰에서 피처폰(전화와 문자메시지만 되는 휴대전화)으로 바꾼 한혜미 씨(22)는 삶의 만족감이 크게 높아진 케이스다. 시험 준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소셜미디어를 멀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들과 비교하는 습관이 사라졌다. 그는 “눈이나 손목 등 육체적 피로도도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행복과 거의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마트폰을 1분마다 한 번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52.01점이다. 반면 △스마트폰 사용 간격 1∼5분 52.41점 △5∼10분 55.69점 △10∼30분 56.43점 △1∼3시간 56.89점으로 그 간격이 길수록 행복도가 높아진다. 스마트폰이 아예 없는 이들의 행복지수는 57.28점으로 가장 높았다. 밝게 자주 웃는 것도 중요하다. 하루 6번 이상 웃으면 행복지수가 65.86점에 이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번 웃으면 50.74점, 아예 웃지 않으면 43.32점에 머문다. ‘사랑 표현’도 하루 2∼5회를 하면 행복지수가 61.07점까지 올라가지만 한 번도 안 하면 50.76점에 그친다. 행복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도 중요하다. 소소한 취미를 갖는 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일하는 시간 외의 여가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61.74점이나 되지만 취미가 없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49.01점으로 뚝 떨어진다. 어떤 취미를 갖느냐도 행복에 영향을 준다. 이왕이면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 수 있는 활동이 좋다. ‘행복한 그룹’으로 분류된 이들은 주로 음식이나 운동, 여행, 목욕, 명상 등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답했다. 반면 불행한 그룹의 취미는 음주나 TV 시청 등으로 나타났다. ▼ 1046명 심층설문… 객관적 지표에 주관적 요소 결합 ▼ ‘동아행복지수’ 어떻게 개발했나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만든 ‘동아행복지수’는 소득, 직장, 연령 등 객관적 지표와 개인의 심리적 안정, 인간관계, 건강 등 주관적 요소를 결합해 2015년 개발했다. 유엔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행복지수는 대체로 국내총생산(GDP) 같은 거시경제 지표를 바탕으로 산정한다. 국가 간 비교에는 적합할 수 있지만 국민 개개인의 행복감을 분석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동아행복지수는 지난해 12월 지역과 남녀, 연령 등을 고려해 20대 이상 1046명을 온라인에서 심층 설문한 결과를 바탕으로 산출했다. 이번 조사에선 검색 트래픽 정보와 소셜 데이터 등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소비, 투자, 여가, 문화 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도출했다.김수연 sykim@donga.com·김윤종·김은지 기자}
퀴즈 하나. 그 시절에는 ‘박-박’이었고 이후에는 ‘김’이었다가 요즘은 ‘손’이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하면서 ‘한 해 동안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준 인물’을 물었다. 그 결과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축구의 에이스 손흥민 선수(토트넘)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어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 국내 응급의료의 버팀목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 요리 연구가이자 방송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등이 뒤를 이었다. 또 한류 스타 방탄소년단, 가수 아이유 등 연예인과 혜민 스님, 이해인 수녀와 같은 종교인들도 행복을 주는 인물로 꼽혔다. 유튜브 스타인 대도서관, 감스트 등도 거론됐다. 반면 개개인의 삶과 사회 제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이나 법조인,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은 한 명도 언급되지 않았다. 스포츠 선수가 행복감을 주는 인물 최상위권을 차지한 이유로 △높은 실업률과 사회적 불안감 △선명하게 드러나는 스포츠 특유의 성취 과정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성공에 대한 갈망 등을 꼽을 수 있다.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고 기뻐하는 축구 경기는 단순하면서도 선명해 보는 이들에게 손 선수의 기쁨과 행복감이 쉽게 전이된다는 것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경기침체로 일상에서 행복을 찾기 어렵다 보니 스포츠나 대중문화에 대한 몰입이 커진다”며 “더구나 시민들이 정치나 경제 등 사회 주요 분야는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반면 스포츠는 페어플레이를 통한 성취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스포츠 선수를 통한 대리만족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야구의 박찬호 선수와 골프의 박세리 선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가 행복감을 주는 인물 최상위에 꼽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오늘도 행복하세요.’ 채팅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종종 주고받는 말이다. 30대 회사원 김대원 씨는 이 문자를 보여주며 “행복이 뭔지 고민된다”고 했다.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이 선망하는 A은행에 입사했다. 연봉은 7000만 원이 넘는다. 연인과는 곧 결혼할 예정이다. 부모님은 건강하신 편이다. 그럼에도 그는 “고객들에게 대출을 권유하는 일을 하는데, 정작 나는 대출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집을 사기 힘들다”며 “굳이 행복 점수를 매기면 100점 만점에 40점 정도인 거 같다”고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데도 스스로 ‘불행하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지난해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이었다.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15년 이래 가장 낮았다.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만족도나 심리적 안정감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감을 높일 수 있을까?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인 2020년까지 한국인의 행복을 탐구하는 ‘행복원정대 2020프로젝트’를 통해 그 해답을 알아봤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지난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의 소비와 문화 트렌드를 표현한 신조어다. 타인의 평가나 거시적 경제지표보다 스스로의 만족감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이처럼 달라진 행복의 기준에도 불구하고 2018년 한국인의 행복도는 이전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지난해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으로, 201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다. 지표를 처음 개발한 그해 동아행복지수는 57.43점이었다. 이어 2016년 57.90점, 2017년 58.71점으로 계속 상승했으나 지난해 처음으로 꺾인 것이다.● ‘심리적 안정감’ 결핍된 한국인 직장인 박지윤 씨(32·가명)는 요즘 유럽국가로 유학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늦깎이 유학길에 오르는 건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다. 결혼 무렵 그는 대출을 받아 3억 원짜리 빌라를 전세로 얻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자가 실직을 하면서 생활이 쪼그라들었다. 상사와 고객의 ‘갑질’이 난무하는 직장생활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자신마저 관두면 생활이 더 어려워질 거란 생각에 꾹 참았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막연한 불안감’이다. 부부가 건강하면 지금처럼 빠듯하게 생활해도 먹고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라도 아프면 어떻게 하지?’ ‘경기가 더 나빠지면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애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고민이 날로 커졌다. 1년을 고민한 그는 사회보장체계가 잘 되어있고 워라밸이 좋다는 유럽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20대 이상 104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심층설문을 한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2017년에는 행복지수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으로 △경제적 만족도 △가족생활 △건강 순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생활 △경제적 만족도에 이어 △심리적 안정감이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현재 상황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방증이다.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솟아오르는 집값, 높아진 실업률, 갈등으로 치닫는 정치 등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하다는 인식이 커졌다”며 “불안이 커질수록 ‘안정’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안정감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다보니 상대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았다. 20대의 행복지수는 52.64점이다. 30대는 55.23점, 40대는 55.81점, 50대 이상은 59.24점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행복지수도 상승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20대는 치열한 학업과 취업 경쟁에서 느끼는 불확실성이 크다”며 “취업을 한다 해도 집값이 비싸 내 집을 갖기 어렵고, 자연스럽게 결혼도 어렵다는 비관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분석했다. 특히 ‘내 집 마련’과 행복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동아행복지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족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그룹에서 자가 거주자가 세입자보다 행복지수가 높았다. 회사원 박모 씨(35)는 “작년에 집값이 너무 뛰는 것을 보며 지금이라도 빚을 내서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출 규제가 심해 물거품이 됐다”며 “나 같은 젊은이에게 ‘내 집 마련’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일상이 변해야 행복감 커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도를 높일 수 있을까? 당장 고가의 아파트가 하늘에서 떨어질리 없다. 월급을 많이 주면서도 일은 힘들지 않은 ‘꿈의 직장’을 갖는 것도 꿈같은 얘기다. 전문가들은 일상 속 ‘작은 행동의 변화’가 행복감을 높이는 첫걸음이라고 조언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행복을 높이는 방안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선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부터 줄여야 한다. 최근 스마트폰에서 피처폰(전화와 문자메시지만 되는 휴대전화)으로 바꾼 한혜미 씨(22)는 삶의 만족감이 크게 높아진 케이스다. 시험 준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소셜미디어를 멀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남들과 비교하는 습관이 사라졌다. 그는 “눈이나 손목 등 육체적 피로도도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행복과 거의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마트폰을 1분마다 한번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52.01점이다. 반면 △스마트폰 사용 간격 1~5분 52.41점 △5~10분 55.69점 △10~30분 56.43점 △1~3시간 56.89점으로 그 간격이 길수록 행복도가 높아진다. 스마트폰이 아예 없는 이들의 행복지수는 57.28점으로 가장 높았다. 밝게 자주 웃는 것도 중요하다. 하루 5번 이상 웃으면 행복지수가 65.86점에 이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1번 웃으면 50.74점, 아예 웃지 않으면 43.32점에 머문다. ‘사랑 표현’도 하루 2~5회를 하면 행복지수가 61.07점까지 올라가지만 한번도 안 하면 50.76점에 그친다. 40대 회사원 박재훈 씨는 무뚝뚝한 표정을 바꾸려 노력한 끝에 행복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박 씨는 아내로부터 초등학생 딸의 고백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빠의 표정이 어두워 어느 순간부터 말을 걸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뒤 박 씨는 딸이 있을 때마다 거실과 식탁에서 의도적으로 크게 웃었다. 박 씨는 “처음에는 아빠가 오버한다고 생각하던 딸이 어느 순간부터 함께 웃기 시작해 가정 분위기가 좋아졌고, 자녀와의 대화도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말했다. 행복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도 중요하다. 소소한 취미를 갖는 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일하는 시간 외의 여가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61.74점이나 되지만 취미가 없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49.01점으로 뚝 떨어진다. 어떤 취미를 갖느냐도 행복에 영향을 준다. 이왕이면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 수 있는 활동이 좋다. ‘행복한 그룹’으로 분류된 이들은 주로 음식이나 운동, 여행, 목욕, 명상 등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답했다. 반면 불행한 그룹의 취미는 음주나 TV 시청 등으로 나타났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나, 우리는 이반 골루노프다.’ 10일(현지시간)자 러시아 유력 일간지 1면에 나온 헤드라인 문구다. ‘이반 골루노프’는 마약 유통 혐의로 최근 경찰에 체포된 러시아 탐사보도 기자 이름이다. 왜 기자 이름이 러시아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을까? 러시아에서 최근 유명한 탐사보도 언론인이 마약 거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언론 자유를 저해하는 음모’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모스크바타임스와 CNN 등에 따르면 러시아 유럭 신문사인 코메르산트, 베도모스티, RBC 등은 이날 신문 1면 상단에 일제히 ‘나, 우리는 이반 골루노프다’라는 문구를 게재했다. 이와 함께 “골루노프의 마약 유통 혐의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며 “그를 체포한 경찰을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골루노프 씨의 체포가 ‘부당하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셈이다. 프리랜서 기자인 골루노프 씨(36)는 러시아 정부의 미디어 통제를 거부하는 독립언론인으로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6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경찰 검문을 받던 중 가방에서 4g의 마약이 발견돼 체포됐다. 이후 경찰은 “그의 아파트에서 코카인도 발견됐다”며 마약 거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기각하는 대신 2개월의 자택구금을 선고했다. 골루노프 씨는 현재 집에 갇혀있는 상태다. BBC에 따르면 그는 최근 러시아연방보안국 관료와 자국 내 장례사업 등의 연계와 비리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서는 누군가를 음해하거나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마약을 몰래 가방이나 자택에 넣는 방식이 자주 사용된다. 러시아 유력 언론들이 이번 사건이 기자의 취재를 막는 한편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음모’일 수도 있다고 보는 이유다. 특히 1면에 성명을 발표한 것은 2015년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자 세계 시민들이 언론의 자유를 주창하면 외쳤던 구호인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를 연상시킨다. 실제 체포 후 이뤄진 골루노프 씨의 소변 검사에서는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골루노프 씨의 구금이 알려지자, 러시아 유명 래퍼 옥시미론(Oxxxymiron) 등 예술가와 저명인사들도 구금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러시아 시민들도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 골루노프 씨를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그만큼 자국 내 언론통제가 심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에는 러시아 정부가 숨기고 있는 ‘시리아 용병 파병’ 문제를 취재하던 기자가 자택 발코니에서 추락하는 의문사가 발생했다. 미국 비정부기구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1992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무려 기자 58명이 피살됐다. 국제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조사한 세계 언론자유도 조사에서 러시아는 100개국 중 83위다. 사태가 확산되자 러시아 정부는 “이번 사건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으며 정부도 사태를 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현 고2 학생들이 대입을 치르는 2021학년도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위주로 뽑는 대학들의 정시 선발 비중이 지금보다 소폭인 0.3%포인트 늘어날 전망이다. 또 논술 선발 비중은 계속 감소하는 반면, 고른기회 특별전형 의무화에 따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대입 문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이런 내용의 전국 198개 4년제 일반대의 ‘2021학년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을 30일 발표했다. 고등교육법상 대학들은 매 입학년도의 22개월 전까지 대입전형 계획을 짜 공표해야 한다. 2021학년도의 총 대입 모집인원은 34만7447명으로, 학령인구 감소세에 따라 전년대비 419명이 줄었다. 현행과 마찬가지로 수시는 학생부 교과 및 학생부 종합전형 등 학생부 위주로, 정시는 수능 위주로 선발한다. 2021학년도 대입전형 계획은 지난해 이뤄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결과를 반영해 정시 선발 비중을 늘린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지난해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대학들에 수능 위주 전형(정시모집)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도록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정시 비율이 ‘30%’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들은 2022학년도까지 수능 선발 비중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학들은 2021학년도 대입전형에서 정시 확대 경향을 반영해 2020학년도 대비 0.3%포인트 증가한 23.0%(8만73명)를 정시로 선발하기로 했다. 입시정보업체 진학사는 “서울소재 주요 대학 중에서는 이화여대가 전년대비 정시 선발 인원을 169명 늘려 가장 큰 증가를 보였다”며 “건국대 116명, 경희대 119명, 고려대 94명, 서울대 52명, 연세대 84명, 중앙대 64명 등도 많이 늘린 편”이라고 설명했다. 정시 선발 소폭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체 대입 선발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24.8%로, 정시 비중보다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대입선발전형은 △교과 내신 성적 위주로 뽑는 학생부교과전형 △비교과 활동을 눈여겨보는 학생부종합전형 △별도의 논술 시험을 봐 뽑는 논술전형 △수능 위주 전형 등으로 나뉜다. 사교육 유발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논술전형은 계속 감소세를 유지해 2021학년도에는 전년대비 984명이 줄어들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고른기회 특별전형’은 운영 의무화에 따라 2021학년도에 전년대비 1279명이 늘어난 4만7606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22일 오후 1시.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엔 폐박스가 가득했다. 4명의 젊은이들이 폐박스를 일정한 크기로 잘랐다. 여러 장 겹친 후 그 위에 광목천을 덧댔다. 코팅 역할을 해주는 제소를 바르자 누런색의 폐박스가 새하얀 캔버스로 변신했다. “이 캔버스를 작가들에게 보냅니다. 그러면 작가들이 그림을 그려 다시 저희에게 보내요.” 박스를 자르던 김인용 씨(25)가 얼굴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는 올 초부터 이곳에서 캔버스를 만들고 있다. 2016년 문을 연 ‘러블리페이퍼’는 폐지를 줍는 저소득층 노인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저소득층 노인에게서 일반 폐지보다 20배 비싼 가격으로 폐박스를 사들인 후 캔버스를 만들고 그 위에 재능기부 작가들의 그림을 그려서 판매한다. 그 수익으로 저소득층 노인을 돕는다. 김 씨는 “다양 한 일과 직업이 있겠지만 혼자서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잘살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 “나와 공동체의 성공, 함께 이뤄져야” 취재팀이 3, 4월 기성세대와 달라진 청년들의 ‘성공 법칙’을 알아보기 위해 심층 인터뷰한 20, 30대 중 상당수는 자신의 성공이 지역사회나 공동체와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공의 기준을 경쟁과 승리, 재산, 명성, 명예 등의 키워드로 설명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공존이나 공생, 배려, 공정, 환경 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중요한 성공 기준으로 삼았다. 3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퇴직한 후 2017년 전남 목포로 향한 박명호 공장공장 대표(32)가 그런 사례다. 박 대표는 현재 목포시 중앙동에서 ‘괜찮아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목포 시내 빈집과 여관 터를 개조한 후 청년들에게 생활공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현재까지 60여 명의 청년이 이곳에서 거주하며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 이곳을 거친 청년들은 목포 내 각종 공방이나 식당을 여는 등 동네를 발전시킬 각종 사업체를 설립하고 있다. 박 대표는 “주변 사람들과 공생하고, 함께 성공하는 법을 알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많다”며 “이런 청년들을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와 함께 청년 452명에게 ‘성공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웃, 지역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함께 추구해야 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63.1%가 ‘그렇다’고 답했다.○ “공정해야 성공도 의미가 있어” 이런 청년들의 태도에 기성세대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50대 직장인 최모 씨는 “90년대생들은 자기중심적이다 못해 이기적인 줄 알았다”며 “하지만 겪어보면 의외로 공익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청년세대의 이런 흐름은 빈곤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들의 성장 배경에서 싹이 텄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기본적인 의식주가 갖춰진 환경에서 자랐다”며 “그러다 보니 가난했던 경험을 토대로 물질적 가치를 성공 기준으로 삼았던 기성세대와 달리 탈물질적 가치에 삶의 무게를 둔다”고 말했다. 특히 ‘공정’을 추구하는 청년들이 많다. 명문대 출신인 고귀현 씨(32)는 6년 전 남미 배낭여행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길에서 수공예품을 파는 가난한 어린이와 여성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한 끝에 남미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국내에 납품하는 사회적 기업 ‘크래프트링크’를 설립했다. 그는 “현지보다 두 배 정도 더 비싼 가격에 수공예품을 사들여 현지 여성들의 소득 수준을 높여준다”고 전했다. 변호사 서국화 씨(34)는 동물권 연구 변호사단체 ‘PNR’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내 일도 바쁘지만, 동물을 위한 법률 개선에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성공을 공동체의 성장과 연결시키려는 청년들의 움직임을 긍정적인 사회적 에너지로 활용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조영복 부산대 경영대 교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사회적 문제를 인지하고 또 해결에 나설 수 있게 되면서 ‘나보다는 우리’를 외치는 청년이 늘어났다”며 “기성세대는 이런 청년들이 힘을 모을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내 삶의 주인은 나” “행복한 일 하는게 성공” ▼달라진 청년들의 말말말 “더 이상 삶의 기준을 타인에게 맞추지 않을 겁니다. 내게 중요한 가치를 지키며 살 거예요.” 대기업 8년 차인 정혜은(가명) 씨는 동아일보 창간기획 ‘“부장님처럼 살기 싫어요”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특별취재팀 대나무숲에 e메일을 보내 이전과 달라진 다짐을 밝혔다. 정 씨는 “기사를 보며 기성세대의 기준대로 살고 싶지 않은 청년들이 많다는 것에 깊이 공감했다”면서 “나 역시 안정성과 높은 연봉이라는 기준에 맞춰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삶의 목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현재 퇴사학교에서 삶의 목적과 방향을 고민하는 수업을 듣고 있다. 그는 “작더라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며 살 수 있는 회사에서 일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 5회 시리즈 연재를 위해 만난 청년들은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공통된 시각을 갖고 있었다. 기성세대의 필승 성공법칙이던 명문대 졸업, 대기업 입사, 전문직 취업은 더 이상 청년들에게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기성세대를 이해하면서도 나만의 성공 기준을 찾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2회 ‘부모가 정해놓은 성공 공식을 거부하다’ 편에 소개된 ‘딸기 농부’ 이하영 씨(21)는 기성세대 성공의 척도인 ‘엄친아·엄친딸’에 대한 생각을 묻자 “농업계 엄친딸이 되면 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남자 유치원 교사 김건형 씨(32)는 “기성세대의 생각은 이해하지만 내가 행복한 일을 하는 게 성공”이라고 말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만의 성공 기준을 세우고 행복을 찾는 청년의 모습은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됐다”면서 “기성세대가 이들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함께 고민할 때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김수연(정책사회부) 김도형 김재형(산업1부)황성호(산업2부) 김형민(경제부)최지선 기자(국제부)}
《더 이상 기성세대처럼 살지 않겠다고 외치고 나선 청년들. 그들이 새로 쓰는 성공의 법칙에선 ‘공존’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이웃, 지역, 공동체. 그리고 환경과 동물까지도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추구한다. 청년들은 이제 ‘혼자’서만 잘 사는 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는 말한다. 많은 청년들이 사회적 기업과 환경·시민단체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위해 뛰고 있다.》22일 오후 1시.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엔 폐박스가 가득했다. 4명의 젊은이들이 폐박스를 일정한 크기로 잘랐다. 여러 장 겹치게 한 후 그 위에 광목천을 덧댔다. 코팅 역할을 해주는 젯소를 바르자 누런색의 폐박스가 새하얀 캔버스로 변신했다. “이 캔버스를 작가들에게 보냅니다. 그러면 작가들이 그림을 그려 다시 저희에게 보내요.” 박스를 자르던 김인용 씨(25)가 얼굴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는 올 초부터 이곳에서 캔버스를 만들고 있다. 2016년 문을 연 ‘러블리페이퍼’는 폐지를 줍는 저소득층 노인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저소득층 노인에게서 일반 폐지보다 10여배 비싼 가격으로 폐박스를 사들인 후 캔버스를 만들고 그 위에 재능기부 작가들의 그림을 그려서 판매한다. 그 수익으로 저소득층 노인을 돕는다. 김 씨는 “다양한 일과 직업이 있겠지만 혼자서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 “나와 공동체의 성공, 함께 이뤄져야” 취재팀이 3, 4월 기성세대와 달라진 청년들의 ‘성공법칙’을 알아보기 위해 심층 인터뷰한 20, 30대 중 상당수는 자신의 성공이 지역사회나 공동체와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공의 기준을 경쟁과 승리, 재산, 명성, 명예 등의 키워드로 설명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공존이나 공생, 배려, 공정, 환경 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중요한 성공기준으로 삼았다. 3년 간 다니던 대기업을 퇴직한 후 2013년 전남 목포로 향한 박명호 씨(32)가 그런 사례다. 박 씨는 현재 목포시 중앙동에서 ‘괜찮아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목포 시내 빈집과 여관 터를 개조한 후 청년들에게 생활공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현재까지 60여명의 청년이 이곳에서 거주하며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 이곳을 거친 청년들은 목포 내 각종 공방이나 식당을 여는 등 동네를 발전시킬 각종 사업체를 설립하고 있다. 박 씨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공생하고, 함께 성공하는 법을 알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많다”며 “이런 청년들을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와 함께 청년 452명에게 ‘성공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웃, 지역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함께 추구해야 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63.1%가 ‘그렇다’고 답했다.● “공정해야 성공도 의미가 있어” 이런 청년들의 태도에 기성세대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50대 직장인 최모 씨는 “90년대 생들은 자기중심적이다 못해 이기적인 줄 알았다”며 “하지만 겪어보면 의외로 공익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청년세대의 이런 흐름은 빈곤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들의 성장배경에서 싹이 텄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기본적인 의식주가 갖춰진 환경에서 자랐다”며 “그러다보니 가난했던 경험을 토대로 물질적 가치를 성공 기준으로 삼았던 기성세대와 달리 탈물질적 가치에 삶의 무게를 둔다”고 말했다. 특히 ‘공정’을 추구하는 청년들이 많다. 명문대 출신인 고귀현 씨(32)는 6년 전 남미배낭여행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길에서 수공예품을 파는 가난한 어린이와 여성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한 끝에 남미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국내에 납품하는 사회적 기업 ‘크래프트링크’를 설립했다. 그는 “현지보다 두 배 정도 더 비싼 가격에 수공예품을 사들여 현지 여성들의 소득 수준을 높여준다”고 전했다. 변호사 서국화 씨(34)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내 일도 바쁘지만, 동물을 위한 법률 개선에 목소리 내는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성공을 공동체의 성장과 연결시키려는 청년들의 움직임을 긍정적인 사회적 에너지로 활용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조영복 부산대 경영대학 교수는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보다 쉽게 사회적 문제를 인지하고 또 해결에 나설 수 있게 되면서 ‘나보다는 우리’를 외치는 청년이 늘어났다”이라며 “기성세대는 이런 청년들이 힘을 모을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 삶의 주인은 나” 달라진 청년들의 모습 ▼ “더 이상 삶의 기준을 타인에게 맞추지 않을 겁니다. 내게 중요한 가치를 지키며 살 거예요.” 대기업 8년차인 정혜은 씨(가명)는 동아일보 창간기획 ‘“부장님처럼 살기 싫어요”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특별취재팀 대나무숲에 e메일(youngdream@donga.com)을 보내 이전과 달라진 다짐을 밝혔다. 정 씨는 “기사를 보며 기성세대의 기준대로 살고 싶지 않은 청년들이 많다는 것에 깊이 공감했다”면서 “나 역시 안정성과 높은 연봉이라는 기준에 맞춰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삶의 목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현재 퇴사학교에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설계하는 수업을 듣고 있다. 그는 “작더라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며 살 수 있는 회사에서 일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 5회 시리즈 연재를 위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청년들에게는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기성세대의 성공법칙이던 명문대 졸업, 대기업 입사, 전문직 취업이 더 이상 청년들에게 행복을 보장하지 못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를 이해하면서도 나만의 성공 기준을 찾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2회 ‘부모가 정해놓은 성공 공식을 거부하다’ 편에 소개된 ‘딸기 농부’ 이하영 씨(21)는 기성세대 성공의 척도인 ‘엄친아·엄친딸’에 대한 생각을 묻자 “농업계 엄친딸이 되면 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남자 유치원 교사 김건형 씨(32)는 “기성세대의 생각은 이해하지만 내가 행복한 일을 하는 게 성공”이라고 말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만의 성공기준을 세우고 행복을 찾는 청년의 모습은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됐다”면서 “기성세대가 이들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함께 고민할 때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김수연(정책사회부) 김도형 김재형(산업1부) 황성호(산업2부) 김형민(경제부) 최지선 기자(국제부)}
“일하면서 즐거운 순간요? 일을 재미로 하나요?”(40대 중견기업 부장 A 씨) 8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취재팀은 ‘나는 일하면서 ○○ 순간만큼은 즐겁다’라는 문구가 적힌 보드판을 들고 3시간가량 거리를 누볐다. ‘재미’와 ‘일’의 상관관계에 대한 직장인 인식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점심을 먹으러 무리 지어 나온 직장인들은 보드판 답을 채워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퇴근’ ‘점심시간’ ‘상사의 외출’ 등을 적었다. 고민 끝에 ‘無(없다)’라고 쓴 직장인은 이렇게 말했다. “일하면서 재미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한 인생이죠.” ‘회사는 동아리가 아니다’, ‘일에서 재미 찾을 생각 마라.’ 부장님이 젊은 사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내키지 않은 일도 소처럼 성실히 하는 게 기성세대의 태도였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다르다. ‘좋은 대학→대기업→승진→정년’이란 기존의 성공 공식을 거부하고 일에서 ‘재미’를 찾아 성공을 거두겠다는 인식이 강하다. ○ 재미가 밥 먹여 줍니다 취재팀이 만난 청년들은 “월급을 많이 받는 삶보다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는 삶이 곧 ‘성공’”이라고 말했다. ‘덕업일치(취미와 일의 조화)’ ‘재미주의자’ 같은 신조어의 배경이다. 19일 오후 4시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해성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학생들 틈에서 송지훈 군(17)은 교실을 빠져나갔다. 오후 8시에 예정된 유튜브 개인방송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굣길에서 그는 “오늘은 무슨 내용으로 시청자들을 웃기지”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송 군은 개인방송 BJ(진행자)와 유튜버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유명 BJ의 개인방송에 출연했던 게 인생을 바꿨다. 시청자들이 ‘웃기다’며 연신 댓글을 다는 것을 보며 ‘이게 내 일이다’란 확신이 들었다. 방송 시작 8개월째인 그의 유튜버 구독자는 1만 명에 이른다. 송 군은 “‘공부 안 하냐’며 비난하던 어른들도 이젠 내 목표를 이해해준다”고 말했다. 덕업일치의 꿈을 이미 실현한 청년들도 있다. 인기 온라인 웹툰업체 레진코믹스에 다니는 손이경 씨(33)는 “재미가 밥은 먹여 주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만화를 좋아한 그는 일본 만화를 읽기 위해 일어를 공부했고, 그 영향으로 한국외국어대 일어과에 진학했다. 대기업을 준비하는 동기들과 달리 그는 첫 직장으로 소규모 웹툰 제작사를 선택했다. 레진코믹스 이직 후 한국 웹툰 수출 업무를 맡고 있다. 손 씨는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건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송주현 씨(33)는 ‘음식’ 알리기를 직업으로 삼았다. 그는 음식 정보 배우기에 큰 즐거움을 느껴 식자재 유통업체 마켓컬리에 입사해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취재팀이 이달 초 청년 452명에게 ‘○○ 없이 살기 싫다’를 물어보니 “‘재미’ 없이 살기 싫다”(44.0%)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단순히 재미 좇았다가 시간 낭비 될 수도 청년들의 이런 흐름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재미만 좇는 것이 아닌지 걱정한다. 통계청이 지난해 조사한 신입사원의 근속연수는 ‘1년 5개월’에 불과했다. 30년 넘게 지방 공기업에서 근무했던 김상만 씨(59)의 아들은 대기업에 다니던 중 연극극단에 들어가겠다며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김 씨는 아들을 만류했다. 아들은 4년 넘게 월 100만 원을 받으며 극단 생활을 하다가 서른 중반을 넘겨 다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김 씨는 “아들 인생을 되돌리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재미를 느낀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만큼 끝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성대모사 동영상으로 유명해진 후 온라인 크리에이터 기획사를 하는 김봉제 온웨이즈 대표(33)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남들보다 월등히 잘해야 직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직업을 선택하면 ‘덕업일치’에 실패할 수도 있다. 안성민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은 “적당히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가 크게 후회할 수 있다”며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꾸준히 실력을 키워야 ‘덕업일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따분하면 고통… 직장 고를때 재미 중시” 77% ▼본보, 청년 452명 설문조사“행복 얻기위한 자아실현 도구 여겨 기업도 업무 맡길때 자율 중시를”“재미가 없다면 매일, 매일이 고통스러울 것 같다.” 동아일보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가 이달 1∼4일 진행한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설문조사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얘기다. 청년 452명에게 “당신이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하는 데 ‘재미’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350명(77.4%)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 중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130명(28.8%)이었다. “거의 중요하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답변한 청년(5.8%)은 극히 드물었다. 기성세대는 일과 재미를 분리했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일에서 재미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박하리만큼 강하다. 직업에 대한 가치관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에게는 직업이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라며 “반면 청년세대는 행복이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 일을 하다 보니 직업을 자아실현의 도구로 여긴다”고 말했다. 청년세대는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직장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란 세대다. 자주 야근하는 아버지를 보며 직업을 가지면 회사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내기 싫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3년 차 직장인 조모 씨(31)는 “직장엔 계속 있어야 하는데, 일에 재미가 없으면 동기부여 자체가 안 된다”며 “즐겁게 일할 직장으로 이직하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이제 기업이 청년들에게 업무를 맡기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입사원이라도 작지만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를 맡긴 후 알아서 하도록 자율과 권한을 줘야 동기부여가 돼 즐겁게 일하게 되고 성과도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창간기획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특별취재팀은 기성세대와 달라진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나무숲 e메일’(youngdream@donga.com)을 개설했다. 자신의 다짐을 비롯해 부모나 직장 상사, 정책담당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요구사항, 도움이 필요한 내용 등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김수연(정책사회부) 김도형 김재형(산업1부)황성호(산업2부) 김형민(경제부)최지선 기자(국제부)}
“일하면서 즐거운 순간이요? 일을 재미로 하나요?”(40대 중견기업 부장 A 씨) 8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취재팀은 ‘나는 일하면서 ○○순간만큼은 즐겁다’라는 문구가 적힌 보드판을 들고 3시간 가량 거리로 누볐다. ‘재미’와 ‘일’의 상관관계에 대한 직장인 인식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점심을 먹으러 무리 지어 나온 직장인들은 보드판 답을 채워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퇴근’ ‘점심시간’ ‘상사의 외출’ 등을 적었다. 고민 끝에 ‘無(없다)’라고 쓴 직장인은 이렇게 말했다. “일하면서 재미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한 인생이죠.” ‘회사는 동아리가 아니다’, ‘일에서 재미 찾을 생각마라.’ 부장님이 젊은 사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내키지 않은 일도 소처럼 성실히 하는 게 기성세대의 태도였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다르다. ‘좋은 대학→대기업→승진→정년’이란 기존의 성공공식을 거부하고 일에서 ‘재미’를 찾아 성공을 거두겠다는 인식이 강하다. ● 재미가 밥 먹여 줍니다 취재팀이 만난 청년들은 “월급을 많이 받는 삶보다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는 삶이 곧 ‘성공’”이라고 말했다. ‘덕업일치(취미와 일의 조화)’ ‘재미주의자’ 같은 신조어의 배경이다. 19일 4시 전주 완산구 해성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학생들 틈에서 송지훈 군(17)은 교실을 빠져나갔다. 저녁 8시에 예정된 유튜브 개인방송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굣길에서 그는 “오늘은 무슨 내용으로 시청자들을 웃기지”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송 군은 개인방송 BJ(진행자)와 유튜버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유명 BJ의 개인방송에 출연했던 게 인생을 바꿨다. 시청자들이 ‘웃기다’며 연신 댓글을 다는 것을 보며 ‘이게 내 일이다’란 확신이 들었다. 방송 시작 8개월째인 그의 유튜버 구독자는 1만 명에 이른다. 송 씨는 “‘공부 안 하냐’며 비난하던 어른들도 이젠 내 목표를 이해해준다”고 말했다. 덕업일치의 꿈을 이미 실현한 청년들도 있다. 인기 온라인 웹툰업체 레진코믹스에 다니는 손이경 씨(33)는 “재미가 밥은 먹여주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만화를 좋아한 그는 일본만화를 읽기 위해 일어를 공부했고, 그 영향으로 한국외대 일어과에 진학했다. 대기업을 준비하는 동기들과 달리 그는 첫 직장으로 소규모 웹툰 제작사를 선택했다. 레진코믹스 이직 후 한국 웹툰 수출업무를 맡고 있다. 손 씨는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건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송주현 씨(33)는 ‘음식’ 알리기를 직업으로 삼았다. 그는 음식 정보 배우기에 큰 즐거움을 느껴 식자재 유통업체 마켓컬리에 입사해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취재팀이 이달 초 청년 452명에게 ‘OO없이 살기 싫다’를 물어보니 “‘재미’없이 살기 싫다‘(44.0%)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단순히 재미 쫓았다가 시간 낭비 될 수도 청년들의 이런 흐름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재미만 쫓는 것이 아닌지 걱정한다. 통계청이 지난해 조사한 신입사원의 근속연수는 ’1년 5개월‘에 불과했다. 30년 넘게 지방 공기업에서 근무했던 김상만 씨(59)의 아들은 대기업에 다니던 중 연극극단에 들어가겠다며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김 씨는 아들을 만류했다. 아들은 4년 넘게 월 100만 원을 받으며 극단 생활을 하다가 서른 중반을 넘겨 다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김 씨는 ”아들 인생을 되돌리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재미를 느낀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만큼 끝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성대모사 동영상으로 유명해진 후 온라인 크리에이터 기획사를 하는 김봉제 온웨이즈 대표(33)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남들보다 월등히 잘 해야 직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직업을 선택하면 ’덕업일치‘에 실패할 수도 있다. 안성민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은 ”적당히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가 크게 후회할 수 있다“며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꾸준히 실력을 키워야 ’덕업일치‘를 실현할 수 있다“며 고 말했다. ▼“재미가 없다면 매일, 매일이 고통스러울 것 같다.”▼ 동아일보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가 이달 1~4일 진행한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설문조사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얘기다. 청년 452명에게 “당신이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하는데 ‘재미’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350명(77.4%)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도 130명(28.8%)이었다. “거의 중요하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답변한 청년(5.8%)은 극히 드물었다. 기성세대는 일과 재미를 분리했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일에서 재미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박하리만큼 강하다. 직업에 대한 가치관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에게 직업을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라며 “반면 청년세대는 행복이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 일을 하다보니 직업을 자아실현의 도구로 여긴다”고 말했다. 청년세대는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직장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란 세대다. 자주 야근하는 아버지를 보며 직업을 가지면 회사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내기 싫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3년차 직장인 조모 씨(31)는 “직장엔 계속 있어야 하는데 일하는데 재미가 없으면 동기부여 자체가 안 된다”며 “즐겁게 일할 직장으로 이직하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이제 기업이 청년들에게 업무를 맡기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입사원이라도 작지만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를 맡긴 후 알아서 하도록 자율과 권한을 줘야 동기부여가 돼 즐겁게 일하게 되고 성과도 극대화 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창간기획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특별취재팀은 기성세대와 달라진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나무숲 e메일’(youngdream@donga.com)을 개설했다. 자신의 다짐을 비롯해 부모나 직장 상사, 정책담당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요구사항, 도움이 필요한 내용 등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김수연(정책사회부) 김도형 김재형(산업1부) 황성호(산업2부) 김형민(경제부) 최지선 기자(국제부)}
“살면서 후회가 되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당시로 돌아가면 어떻게 말할 건가요?” 8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카페. 청년 8명이 모여 있었다.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자 모두 고민에 빠졌다. 한 청년이 “지금 일은 적성에 맞지 않으니 ‘맞는 일을 찾아라’라고 조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청년은 “고교 때 왕따 친구를 못 도와줬다”고 했다. ‘어른이 놀이터’라는 이 모임은 취업을 준비하는 여타 스터디그룹과는 달리 청년들이 스스로 돌아보는, 즉 ‘나를 스터디’하려는 목적으로 생겼다. 모임의 장인 이민해 씨(27·여)는 “인원을 8명으로 제한하는데, 늘 대기자가 많다”고 전했다. ○ ‘내가 누군지’ 공부하는 청년들 서울뿐 아니라 대구와 대전 등에도 이런 모임이 많아지는 추세다. 요즘 청년들은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는 ‘성공’과 ‘행복’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르다. 아버지 세대는 세상을 먼저 파악하고, 자신을 세상에 맞춰 왔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세상보다 스스로를 먼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야 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별도의 ‘자아 탐색 기간’을 가지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김보준 씨(29)가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했던 아버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하지만 김 씨는 2015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사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김 씨는 병원을 그만뒀다. 막상 시작한 간호사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를 고민하던 과정에서 세계일주에 나섰고, 소아암 환자를 돕는 사하라사막 횡단 마라톤에 참가한 경험을 토대로 ‘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책도 출간했다. 세계일주 후 그는 구직활동을 중단한 채 적합한 직업과 꿈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기 위해 ‘6개월’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1∼4일 동아일보가 취업정보업체 ‘캐치’에 의뢰해 청년 452명을 설문한 결과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154명·34.1%)보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162명·35.8%)는 응답이 더 많았다. ○ 갈등 피하기 힘들다면 ‘자아 탐색’ 시간 줘야 ‘자신부터 알아야 성공한다’는 청년들의 사고에는 직업 안정성, 조기 퇴직 등 사회가 구조적으로 달라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 영업직, 요식업 등 직업을 여섯 번 바꾼 장재원 씨(34)는 “기성세대가 정년이 있는 직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면 우리 세대는 수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증가로 평생직장을 잡기가 어렵다면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부터 찾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 자신만의 능력을 키워 회사에서 밀려나도 대처가 가능하고, 자유롭게 회사를 옮겨 다닐 수 있다. 2018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년이 첫 직장을 떠난 이유는 “계약직이어서”라는 취지의 응답이 12.1%로 가장 많았다.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청년은 이데올로기 등 거시적 틀이 아닌 개인의 행복 추구와 합리성이라는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성세대와의 갈등이다. 5일 서울 강남에서 열린 KT 홍보행사에서 만난 유튜버 ‘감스트’ 김인직 씨(29). 유튜브 축구해설로 인기를 얻는 그의 사인을 받으려 수십 명이 줄을 서 있었다. 김 씨는 2012년 인터넷방송 시작 후 공무원인 아버지와 6년 동안 사실상 ‘의절’했다. “정신 차리고 이상한 방송을 그만하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아버지의 눈에는 장난 같은 그의 방송이 제대로 된 ‘직업’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김 씨는 꾸준히 축구해설 영상을 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지상파 TV에 출연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식 성공 법칙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찾는 시간을 장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선진국에선 청년기 자아 탐색을 뜻하는 ‘갭이어(Gap Year)’가 보편화되는 추세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딸 말리아 (21)도 2016년 하버드대 입학 전 1년 동안 갭이어를 통해 평소 경험하지 못한 스페인어 문화권을 여행했다. 미국 일부 대학에선 장학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갭이어를 장려한다. ▼ “달라진 시대… 아이들의 꿈 찾기 응원” ▼아버지들 “후회하지 않는 선택 하길… 조금만 더 이타적 마음 가졌으면”‘나부터 알아야 성공한다’는 가치관을 가진 청년의 아버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취재팀은 ‘세상에 자신을 맞춰’ 살아온 아버지들을 만나 자녀와의 소통에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기획보도에 등장한 청년의 아버지들은 “부모들도 요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자녀 세대의 달라진 생각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요즘 청년들은 경제적 수혜를 누렸던 자신들, 즉 아버지 세대와 달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촉발된 저성장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6개월간 ‘자아 탐색기’를 갖고 있는 김보준 씨(29)의 아버지 김영규 씨(64)는 현대자동차에서 40년 가까이 근로자로 쉬지 않고 일했지만 아들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주변 친구들의 자녀는 취업도 하지 못해 아들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젊어서 선택권을 가지고 있을 때 스스로의 삶을 찾아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자녀들이 ‘나를 찾는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지나치게 함몰되지 말고 조금 더 세상을 넓게 보면서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고 아버지들은 말했다. 직업을 수차례 바꾼 장재원 씨(34)의 아버지 장경호 씨(70)는 “아들이 꿈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아들이 보험영업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고객들은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감과 이타적인 마음도 아들 세대가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도 아버지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들의 관점에서 한 번쯤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세대 간 이해가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세대 간 소통이 활발해지면 청년들이 꿈을 마음껏 펼치기 좋은 사회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동아일보 창간기획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특별취재팀은 기성세대와 달라진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나무숲 e메일’을 개설했다. 자신의 다짐을 비롯해 부모나 직장 상사, 정책 담당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요구 사항, 도움이 필요한 내용 등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특별취재팀▽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김수연(정책사회부)김도형 김재형(산업1부)황성호(산업2부) 김형민(경제부)최지선 기자(국제부)}
《“반에서 누가 가장 ‘엄친딸’ 같아요?” “….” 5일 서울 성동구 무학여고. 시끌시끌하던 1학년 3반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엄친딸’을 지목해달라는 요청에 학생들이 잠시 망설였다. 이내 교실에선 “그걸 왜, 굳이 찾아야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날 취재팀은 서울의 고등학교 2곳을 찾아 엄친아, 엄친딸이란 말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인식을 탐구했다. 명문대, 전문직이라는 기성세대 성공 법칙의 시작인 이 단어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학생들에게 ‘엄친딸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란 질문부터 던졌다. 김수민 양(16)은 “사람마다 특성이 다 다른데 왜 무엇이 좋다고 먼저 규정해 놓고 그렇게 부르는지 의문이 든다”고 얘기했다. 엄친딸은 어른들이 정해 놓은 틀에 갇혀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친구들 같다는 것이다.》“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제 꿈을 찾아가는 ‘첫걸음’이었습니다.” 딸기농사에 스마트 농업기술을 도입하려는 이하영 씨(21)도, 명문대 타이틀을 버리고 요리를 배운 김현성 씨(37)도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들뿐 아니다. ‘부장님처럼 살기 싫다’는 요즘 청년들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임산부용 과자 제작자, 웹소설 작가 등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저게 직업이냐’란 분야에서 성공하길 원한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기성세대인 ‘부모’와의 갈등이 일어난다. 대한민국 부모 대다수는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해 전문직으로 성공하길 바란다. 이런 바람이 ‘엄친아, 엄친딸’이란 말에 투영돼 있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가 청년 452명에게 ‘부모님 등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성공 기준’을 묻자 ‘높은 연봉 등 경제력’(34.4%)과 ‘안정적 직장’(22.2%)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은 ‘엄친아, 엄친딸’에 호의적이지 않다. 스스로 정한 성공법칙을 찾고, 그 안에서 다양한 재미와 보람을 추구하는 요즘 청년들에게 이 단어는 꿈을 막는 장애물과 동의어다. 취재팀은 엄친아가 되기를 거부한 채 새로운 진로를 찾아 나선 청년들을 만났다.▼ 농사에 꽂힌 열네살 “딸기 농부 될래요” 한달동안 부모 설득 ▼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2005년 전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학습 시간으로 유명한 한국에서 15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이 말은 대학 진학에 모든 것을 거는 청소년을 대표하는 말이 됐다. 이날 오후 찾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 3학년 8반 교실에서도 ‘엄친아’는 청년들에게 꿈을 획일화하는 장애물로 여겨졌다. 황희준 군(18)은 “원래부터 부모의 기준에서 만들어진 말”이라며 “자녀 입장에서 엄친아가 이상적인 존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의 벽 넘어서 내 길 찾는 청년들 이를 반영하듯 ‘엄친아’의 공식에 갇혀 있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광주에 사는 이하영 씨(21·여)의 직업은 ‘농부’다. 농사에 ‘꽂힌’ 건 열네 살 때였다.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의 책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가 문제였다. “농업고에 가겠다”는 딸의 폭탄 발언에 이 씨의 부모는 뜨악해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것이 최고라며 만류했다. 이 씨가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며 한 달 넘게 설득하고서야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라”는 부모의 허락을 얻을 수 있었다. 올해는 논농사를 준비하고 있는 이 씨는 훌륭한 ‘딸기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가장 좋아하는 맛 좋은 딸기를 4계절 내내 재배해서 사람들에게 먹이고 싶어서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수석 입사했던 김현성 씨(37)는 입사 2년 만인 2014년 사표를 냈다. 오랜 셰프의 꿈을 이루려 결단을 내린 것이다. 퇴사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잠이 안 온다”며 반대했다. 서른두 살의 초짜 요리사 지망생을 받아주는 가게가 없어 음식점 서빙부터 했고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영국에서 연수를 받은 뒤에 서울에서 레스토랑을 열었다. 김 씨는 “내가 갈 길을 내가 정해 후회는 없다”며 “부모님도 이제는 내 길을 이해해주신다”고 말했다.○ “엄친아·엄친딸 효용성 줄어들어” 서울 양진초병설유치원에서 근무하는 ‘남자유치원 교사’ 김건형 씨(32)처럼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기성세대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낸 경우도 있다. 그는 “주변에서 남자가 왜 유치원 교사를 하냐는 눈초리가 있었다”며 “하지만 난 이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엄친아를 거부하는 청년들에게 부모들도 하고 싶은 말은 있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웹툰작가가 꿈인 중학생 자녀를 둔 A 씨는 “그동안 공부는 100명 중에 50등을 해도 먹고살 수 있었지만 다른 분야는 1등을 해도 살아남기 어렵지 않았냐”며 “엄친아를 강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현재 A 씨는 자녀의 목표를 인정하고 애니메이션고 진학을 돕고 있다. A 씨처럼 자녀가 전형적인 ‘엄친아’가 되길 바라는 분위기가 약해진 것도 감지된다. 중3 자녀를 둔 학부모 송모 씨(43)는 “좋은 대학에 입학해도 졸업 전부터 공무원 준비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엄친아보다는 아이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찾도록 돕는 게 목표라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엄친아가 되기 위해 발버둥쳐도 부모 세대만큼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가치관에 맞는 직업을 찾으려는 흐름이 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 “4050이 먼저 돌아보세요, 엄친아-엄친딸로 행복했는지” ▼ 청년들 ‘좋은 학벌=성공’ 인식 줄어… “학벌은 중요한 요소 아니다” 42%“좋은 학벌이 플러스가 될 순 있지만 필수는 아니다. 큰돈 벌지 않아도 원하는 일에 도전하며 취미를 즐기면 성공한 삶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청년들에게 들은 ‘성공의 조건’은 이렇게 요약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엄친아’, ‘엄친딸’의 기준으로 여겨졌던 ‘좋은 학벌’이 전만큼 성공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아일보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가 청년 452명에게 ‘학벌이 행복과 성공에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느냐’고 물었더니 42.0%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응답했다. 학력자본(좋은 학벌)이 부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는 경험이 쌓인 결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명문대와 안정적 직장을 향한 무한 경쟁 레이스에서 승리하더라도 얻는 것이 별로 없다면 정해진 레이스 대신 자신이 원하는 속도와 방향을 향해 달린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청년들은 오히려 성공과 행복을 스스로 규정하고 자기성취감이 높은 세대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 20대는 타인의 시선이나 물질적 기준이 아닌 주관적인 만족을 추구할 수 있게 된 세대”라고 설명했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말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했던 4050 세대가 대다수일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이 신(新)청년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자녀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 넓은 시야로 조언한다면 각 분야에서 즐겁게 일하는 청년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런 신청년들이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는 ‘소확행’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동아일보 창간기획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특별취재팀은 기성세대와 달라진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나무숲 e메일’(youngdream@donga.com)을 개설했다. 자신의 다짐을 비롯해 부모나 직장 상사, 정책담당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요구사항, 도움이 필요한 내용 등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김수연(정책사회부) 김도형 김재형(산업1부)황성호(산업2부) 김형민(경제부)최지선 기자(국제부)}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데야.” 직장인의 삶을 그린 드라마 ‘미생’에서 만년과장 오상식이 신입사원에게 던진 조언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이제 더 이상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직장 상사인 ‘부장님’처럼 술과 야근으로 일상을 채우고, 원치 않는 격무에 시달리면서 ‘승진’만을 목표로 한 삶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장님의 성공법이 아닌 자신만의 성공 법칙을 그리고 달려가는 신(新)청년들은 “내 인생의 롤모델은 나”라고 강조했다.○ 민박집에서 완성한 꿈 독일 베를린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김동하 씨(27)는 ‘노동르포 작가’가 되는 게 꿈이다. 서울의 4년제 대학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처럼 안정적인 커리어를 목표로 살았다. 취업에 필요하다는 토익, 필기시험도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다가 2015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후 인생이 변했다. “30대 중반에 목수가 되고 싶다며 날아온 캐나다인, 3D 업종에서 일하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여행자를 만났어요. ‘평탄한 회사에 들어가 간부로 승진하고 정년을 맞이하는 게 정말 모범답안일까?’ 고정관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죠.” 한국에 돌아와 취업 준비를 해야 할 시기에 그는 호주에서 모은 돈으로 9개월간 4000km를 걸어서 여행했다. 여러 방문지 중에서도 기술자들이 행복한 나라인 독일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시절 ‘노동르포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던 꿈이 이곳에선 정말 이뤄질 거 같았다. 그는 꿈의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허름한 주택 하나를 임차해 ‘루저들의 살롱’이란 민박집을 차렸다. 이렇게 재미난 외국살이를 담아 책도 두 권이나 냈다. 그는 지금 이 상태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성공요? 건강해서 월 200만∼300만 원씩 버는 데 무리가 없고, 소원대로 계속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왜 ‘대기업’만 강요하나” 소확행(작은 행복 추구), 마이웨이(내 방식대로 살기)…. 요즘 청년들의 삶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큰 회사가 아닌 작은 회사를 찾아가는 게 기성세대의 눈엔 ‘오답’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고졸 특채로 삼성카드에 입사했던 이화정 씨(22)는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무료한 회사생활을 벗어나려고 취미로 했던 뮤지컬이 너무나 즐거워 지금은 아마추어 뮤지컬 동아리를 지도하는 소규모 회사인 ‘행복을 찾은 사람들―the열정뮤지컬’로 이직했다. 이 씨는 “누군가에게 저를 ‘○○ 직원’이 아닌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며 “연봉 2800만 원과 성과급을 보장받던 시절에 비하면 수입이 줄었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 마케팅 부문에서 근무했던 조모 씨(34)도 올해 1월 한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조직의 울타리를 벗어나도 내 능력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세월이 흘러 연봉과 직급이 더 높아지면 이직 기회를 잡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게 스타트업이었다. “스타트업 입사할 땐 지분을 받아요.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지분의 가치도 올라갑니다. 안정적인 연봉과 대기업 타이틀만이 성공의 잣대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는 최종적으로는 자신만의 사업체를 차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어릴 적부터 ‘좌절’을 경험했지만 촛불시위를 통해 세상을 바꿨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부장님처럼 살지 않아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며 자신들만의 행복 공식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꿈’하면 떠오르는건 사랑-도전-시작 ▼ “‘부장님’ 하면 떠오르는 것? 영업, 문제, 책임…. ‘꿈’ 하면 떠오르는 것? 사랑, 도전, 그리고 시작.” 국내 기업 2만8000여 곳의 직장인들이 찾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다.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블라인드’는 7일 키워드와 연관 단어를 추출해내는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적용해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전수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부장’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글에는 ‘회사, 직원, 업무’ 등 단어와 함께 ‘영업, 문제, 책임, 관리’ 등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꿈’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글에는 ‘지금, 시간, 현실, 생각’ 등 단어가 많이 사용됐다. ‘사랑, 도전, 시작’ 등 긍정적인 뜻을 내포한 단어들도 연관어로 추출됐다. 직장인 박진모(가명·33) 씨는 “회사에 충성을 바쳐 간부가 되어도 실적과 명예퇴직 압박에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며 “지금, 나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청년들의 마음은 ‘롤모델’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동아일보가 조사한 청년(35세 이하) 209명 중 ‘회사 상사’가 롤모델이라는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 유재석, 박나래 등 방송인이라고 답한 청년이 24명이고, 스티브 잡스와 마윈 등 세계적인 기업가를 꼽은 청년이 22명인 것과는 대조를 이뤘다. 청년들에게 진로 상담 등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청춘상담소 장재열 대표는 “유튜버든 스타트업이든 나만의 브랜드를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 동아일보 창간기획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특별취재팀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나무숲 e메일을 개설했다. 자신의 다짐을 비롯해 부모나 직장상사, 정책담당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요구사항, 도움이 필요한 내용 등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특별취재팀▽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김수연(정책사회부) 김도형 김재형(산업1부)황성호(산업2부) 김형민(경제부)최지선 기자(국제부)}
장영은 씨(26·여)는 3년 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금융감독원 5급 조사역으로 승진했다. 연봉도 5000만 원에 달했다. 2012년 입사한 후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 승진한 결과였다. 그러나 성취감보다는 가슴 한쪽이 뻥 뚫린 듯한 허전함이 많았다.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그저 하루하루 버티며 산다’는 한탄을 듣던 3년 전 어느 날. ‘길’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직서를 던진 장 씨는 428일 동안 6대륙 44개국을 돌아다녔다. 여행을 마치고 에세이를 출간했다. 장 씨는 “안정적인 직장은 사라졌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가르쳤다. 결승점을 향해 벌이는 속도전이라고 했다. 명문대 입학→대기업(공기업) 입사→결혼과 아파트 장만→고연봉과 승진이란 경주에서 한 방향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은 승자가 되고, 코스를 벗어나면 낙오자로 여겼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묻는다. “누가 결정한 코스인가요? 왜 결승점은 하나여야 하나요?” 취업난과 저성장, 4차 산업혁명, 저출산과 고령화 속에서 성공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시각이 기성세대와 달라지고 있다. 동아일보와 취업정보업체 진학사 ‘캐치’가 청년(17∼35세) 452명을 이달 초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성공과 자신들이 추구하는 성공은 ‘차이가 크다’고 답했다. 시각이 다르다 보니 기성세대와 청년 간의 갈등도 자주 일어난다. 프리랜서 작가 강모 씨(33)는 4년 전 유명 대기업 A사 인턴으로 입사했다가 정규직 전환을 코앞에 두고 술 접대와 오전 6시 출근을 압박하는 듯한 임원의 말을 듣고 사표를 냈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는 청년들의 달라진 성공법칙을 소개해 세대 간 이해를 돕고, 청년들의 새로운 꿈을 지원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부장님처럼 살기 싫어요.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시리즈를 5회에 걸쳐 게재한다. 취재팀이 만난 청년 30여 명은 “조직보다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 열중한다”고 입을 모았고, 공부만 잘하는 ‘엄친아’가 되기보단 농사, 장사에 인생을 걸었다.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대학을 가고 취업했던 아버지 세대의 ‘시간 함수’를 거부한 채 유튜브 같은 딴짓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 앞에 놓인 사회구조적 여건이 달라졌다”며 “새로운 길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청년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는 점을 기성세대들이 이해하고 창업지원, 교육기회 확대 등 제도적 지원책을 사회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결승점이 왜 똑같아야 하나요… 나만의 브랜드 만들어 성공” ▼ 우리는 성공모델이 달라요현장에서 만난 청년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퇴사학교’. 직장 초년생으로 보이는 20대 청년 10여 명이 ‘유튜브 크리에이터 입문’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곳은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이 자기계발을 하는 학원이다. 2016년 설립 후 지금까지 7000여 명이 거쳐 갔다. 이곳에서 만난 A 씨는 “기성세대처럼 조직에 헌신하다가 쓸쓸히 퇴사하기보다는 나만의 브랜드를 키우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요즘 청년들은 ‘좋은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승진하기’에 올인하는 기성세대식의 성공을 원하지 않는다. 조직보다는 자신이 중심이 된 활동과 이를 뒷받침해 주는 능력을 기르는 자기계발을 원한다. 실제 동아일보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가 청년 452명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을 설문한 결과 ‘롤모델이 없다’는 응답이 50.7%에 달했다. 청년 2명 중 1명이 기성세대 중 롤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또 ‘롤모델이 있다’고 답한 경우 그 이유는 ‘자신만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행복하게 살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도 ‘나만의 취향과 개인 활동’(48.7%),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도전의 삶’(14.7%)이라는 답변이 많았다. ‘경제력’(9.9%)이나 ‘명예’(1.6%) 등 기성세대가 중시하는 성공의 기준을 거론한 청년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요즘 청년들은 직위나 연봉 등 획일화된 성공 기준보다 좀 더 다양한 삶의 요소를 성공의 잣대로 삼는다. 현재 셰프로 활동 중인 김현성 씨(37)는 서울대, 대기업 코스를 밟은 ‘엄친아’였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를 배운다고 할 때 김 씨 부모는 “네 생각에 잠이 안 온다”며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그는 요리를 배웠다. 재미를 중시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송지훈 군(17)은 대학 진학보다는 유튜버의 길을 택했다. 송 군은 “유튜브를 통해 1만 구독자를 모았다”며 “수능 문제를 더 잘 맞히는 것보다 사람들의 ‘좋아요’가 늘어나는 것에 더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낙후한 지역사회에 공유 하우스를 만들거나 지역 내 동물 보호에 나서는 등 공동체와 함께 성공을 이루길 원하는 청년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성공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이 바뀌게 된 이유를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생존 환경 변화에서 찾는다. 우리 사회는 2010년 이후 2∼3%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나타냈다. 1980, 90년대 연간 경제성장률이 10%도 넘어서던 시대의 청년들과 달리 ‘성장의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달라진 청년들의 성공 법칙은 기성세대와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대형 제약회사에 다니던 박주현(가명·33) 씨는 입사 때부터 상사가 시키는 일에 충실했다. 오전 7시까지 출근해 업무를 준비했고, 팀장이 ‘퇴근하라’고 할 때까지 근무에 몰두했다. 상사와 회의를 하고 나서 팀원들끼리 따로 모여 상사의 발언 의중이 무엇인지 2차 회의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 씨는 “직장 상사들이 강조한 근면과 희생 속에서 내 꿈이 사라지는 것 같아 퇴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년 전만 해도 청년들에게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 ‘부자가 되는 법’과 같은 제목의 책들이 인기였다면 요즘에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다룬 책이 인기라고 강조한다. 조직에서 높이 올라가는 ‘리더형 성공’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성공을 이루는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요즘 청년의 꿈이라는 것이다. 커리어 개발 전문가인 장수한 ‘퇴사학교’ 대표는 “청년들이 처해 있는 환경에 공감하지 않은 채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성공법만 늘어놓으면 청년들을 정서적 사지로 내몰 뿐이다”라며 “청년들이 원하는 지원과 제도 개선책이 무엇인지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희생에 보상 따랐던 과거와 사회구조 달라” ▼ ‘과로 사회’의 저자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성공 방정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가성비’를 꼽았다. 산업화 시기에 국가와 기업은 ‘산업역군’ ‘모범 근로자’ 등 표어를 내세웠다. 열심히 한 만큼 물질적 보상도 보장됐다. 하지만 1985년 이후 태어난 35세 이하 청년은 노동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 사고를 목격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땐 가족과 지인이 평생직장이라 믿었던 회사에서 명예퇴직당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돌연사, 과로 자살 등 이슈가 불거지면서 ‘일만 하다 죽을 수 있다’는 공포심이 청년들의 마음을 짓눌렀다. 김 위원은 “청년들은 한 회사에서 충성하는 것만으로는 가족과 나의 안위를 지켜낼 수 없다는 불안을 느낀다”며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갈 수 있게 경직된 근무 환경을 바꾸고 청년의 자기계발을 독려하는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룬 과거 세대에 맞춰진 사회구조를 청년 맞춤형으로 바꿔 가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스스로도 5060이 현재 처해 있는 문제들에 비춰 자신들의 미래를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소장은 “현재 은퇴 세대는 조기 퇴사와 과도한 자녀교육비, 부모 부양과 승진 지체 현상 등과 맞물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면서도 “하지만 인구가 줄고 있어 지금 청년 세대가 20년 뒤에도 똑같은 환경에 놓이진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최창호 중앙대 박사(사회심리학)는 “청년들이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게 사회보장 제도를 강화하고,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새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게 독려하는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창간기획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특별취재팀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나무숲 e메일을 개설했다. 자신의 다짐을 비롯해 부모나 직장상사, 정책담당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요구사항, 도움이 필요한 내용 등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김수연(정책사회부) 김도형 김재형(산업1부)황성호(산업2부) 김형민(경제부)최지선 기자(국제부)}
오늘 정부는 장래인구 특별추계를 발표한다. 말 그대로 ‘특별추계’다. 정부는 5년에 한 번씩 인구 추계를 발표해 왔다. 가장 최근인 2016년 발표된 장래인구 추계에서는 총인구 감소 시점이 2028년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합계출산율, 즉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가 지난해 0.98명을 기록하면서 정부가 급히 특별추계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총인구 감소 시점이 2028년보다 앞당겨질 것은 기정사실화된 상태다. 추계가 발표되면 온종일 ‘인구절벽’ ‘인구재앙’ ‘100조 원 투입하고도 헛발질’ ‘특단의 대책’ 등의 단어가 신문과 TV, 온라인을 도배할 것이다. 인구 수치나 관련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되풀이된 모습이다. 그런데 곳곳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움직임이 싹트고 있다. #상황1: “인구가 줄고 고령자가 많아지면 신체기능을 파악하는 센서 산업이 발달할 겁니다.” 26일 오후 7시. 서울 한양대 내 국제관 108호. 기업 최고경영자(CEO), 학교 교장 등 30여 명이 강의를 경청했다. 변화하는 인구 구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각 분야의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인구와 미래혁명 최고위자과정’의 첫 수업 모습이다. 인구 감소에 맞춘 소비자 전략, 교육체계 개편 등 자신의 분야에 미칠 저출산 영향과 대응법을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상황2: “‘저출산문제’라는 말, 쓰지 말라니까요. 저출산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고치려 하고, 단박에 해결하려 하잖아요. 불가능해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구 5000만 명 사수’를 강조해온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관계자가 사석에서 기자에게 한 말이다. 저출산을 막는 특단보다는 저출산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였다. 실제 저출산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막판까지 공개 여부를 두고 정부가 고민하다 빼는 게 있다. 바로 ‘저출산사회 연착륙’ 정책들이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첫 저출산 종합대책인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 역시 ‘연착륙 방안’을 담을 예정이었지만 ‘정부가 저출산 극복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의식해 관련 내용을 뺐다. 그럼에도 물밑으로는 ‘저출산사회 연착륙’ 대책이 준비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4차 산업혁명과 생산인구 대체 등을 담은 ‘중장기 인구정책 방향성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저출산 대응 전략’을 구축해 내년 발표되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담을 계획이다. 이런 움직임은 각 분야로 더 많이 확산될 것이다. 저출산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줄어들고 저성장이 심화돼 복지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 반면에 인구 감소로 취업 경쟁이 완화되고, 각종 자동화로 생산인구 감소가 문제되지 않고 환경오염도 개선될 수 있다. ‘미래 한국’의 적정 인구를 ‘4000만 명 정도’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저출산은 재앙’이란 패러다임을 이제는 조금은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십수 년 혹은 수십 년 뒤 인구 규모를 생각하고 현 시점에서 미래가 ‘어둡다’고 단정하지 말자. 인구 감소를 걱정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 돼야 하나’라는 철학적인 문제부터 고민하면 어떨까. 합계출산율 1.5명, 총인구 5000만 명은 현 체제 유지라는 논리로 세운 그간의 인구 목표치였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결혼 안 하고, 출산 안 하고, 현 체제 유지를 원하지 않는다. 인구수 자체가 아니라 인구를 구성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삶의 질과 방식에 대한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적정 인구와 저출산 연착륙 방안을 찾아간다면…. ‘지금의 저출산’은 더 좋은 미래로 가는 ‘과정’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
서울의 한 명문대 교수가 제자인 대학원생들에게 딸의 연구 과제와 봉사활동을 대신하도록 한 ‘갑질’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는 해당 교수의 파면을 요구했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의 입학비리 특별조사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성균관대 A 교수는 2016년 자신의 딸인 B 씨가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학부생 연구프로그램’에 제출할 동물실험을 자신의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에게 대신하게 했다. B 씨는 대학원생들이 작성한 이 연구과제 보고서로 당시 우수연구과제상을 수상했다. 또 A 교수는 해당 연구결과를 토대로 대학원생들에게 딸의 논문을 대신 작성케 했다. 대필 논문은 2017년 5월 인용색인지수(SCI)급 저널에 B 씨가 단독저자로 실렸다. 대학원생들은 B 씨의 봉사활동도 대신해야 했다. A 교수는 제자들에게 딸을 대신해 시각장애인 점자입력 등 54시간 봉사를 대신 하게 하고, 사례금 50만 원을 줬다. B 씨는 A 교수 제자들이 만들어 준 논문, 봉사활동 등을 바탕으로 지난해 서울의 한 치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했다. A 교수는 B 씨가 고등학생일 때도 대학원생들을 동원했다. 2013년 8월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한 국제청소년학술대회에서 B 씨가 발표한 논문자료 역시 A 교수의 제자들이 만들었다. B 씨는 이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해당 경력을 인정받아 서울의 주요 대학 중 한 곳에 과학인재특별전형으로 합격했다. 교육부는 이런 조사 내용을 성균관대에 통보하고 A 교수 파면을 요구했다. 교육부 관계자는“조사는 지난해 말 제보로 이뤄졌다”며 “B 씨의 치의전원 입학이 취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A 교수와 B 씨를 검찰에 수사의뢰할 예정이다. 또 A 교수의 아들인 C 씨가 대학원에 입학할 때 비슷한 갑질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세대를 규격화해 구분 짓긴 싫지만 굳이 말하자면, 기자는 ‘X세대’(1970∼1980년생)였다. 스무 살 때 귀를 뚫고 머리를 길러 한쪽 눈을 가리고 다녔다. 윗세대인 86세대(80년대 학번·1961∼1969년생)에게서 ‘요즘 것들은 버릇없다’는 소리를 내내 듣고 살았다. ‘세대론’을 꺼낸 이유는 한 세대가 또 다른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기자가 포함된 동아일보 취재팀은 최근 밀레니엄 베이비인 2000년생을 주제로 한 ‘2000년생이 온다’ 기획보도를 연재했다. 올해 성인이 돼서 사회와 대학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과 소통하는 한편, 미래의 주역인 2000년생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였다. 심층 인터뷰한 수십 명의 2000년생은 공정성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취업 불안, 양극화를 인정하면서도 형평성 있는 기회를 원했다. 기획보도 과정에서 2000년생이 기성세대에게 바라는 바를 말할 수 있는 창구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했다. 신세대들의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다. 특히 눈에 띈 것은 ‘특정 세대’에 대한 분노였다. 날것 그대로 옮겨본다. “2000년생입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86세대에 대한 증오감이 크다는 겁니다. 그들이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건 부정할 수 없으나 그것을 유일한 업적으로 삼아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가 만들어 놓은 편한 세대에 살면서 툴툴거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도 민주화를 부르짖던 86세대가 권위주의, 나이와 인맥을 우선시합니다. 지금 정권을 잡은 86세대들이나 이들을 지지하는 40, 50대와 (2000년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 사이에 갈등이 커질 수 있어요.” ‘공정세대’로 불리는 요즘 신세대가 다른 세대도 아닌, 민주화를 통한 공정사회를 꿈꿨던 86세대에게 반감이 크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86세대인 한 선배에게 묻자 “젊었을 때는 다 기성세대를 싫어한다”며 웃었다. 86세대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오히려 젊은 세대를 비판한다. “젊은이들이 학교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고”(설훈 민주당 최고위원), “게임하고 축구 보느라 정신없고”(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아세안을 가보면 ‘해피조선’을 느낄 것”(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이라고 말했다가 논란을 불렀다. 세대분석 전문가들은 기성세대의 눈에 ‘이기적이고 꿈이 없고 불평만 많은’ 요즘 젊은이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대를 규정할 때 ‘나이 효과’와 ‘집단 효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나이 효과’는 열정, 도전, 반항 등과 같이 어떤 시대와 사회에 태어났건 간에 젊은이면 누구나 가지는 특징이다. 하지만 공정성에 예민한 2000년생의 특징은 ‘나이 효과’라기보다는 ‘집단 효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극심한 경쟁과 취업 불안 등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특정 세대만 갖는 연대의식이란 뜻이다. 특히 2000년생은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실력과 능력을 중시하는 탓에 ‘우리가 직면한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의 잣대로 기성세대의 리더십을 평가한다. 그런 2000년생에게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86세대가 거부감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0년생들이 꿈을 펼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첫출발은 그들의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바라봐주는 것이다. 한 2000년생의 하소연에 답이 있다. “취업, 양극화와 같은 난제를 당장 해결해 달란 게 아니에요. 기성세대가 1980년대에 불합리한 세상을 향해 짱돌을 던졌던 그때를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