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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말과 행을 같이하는 수행 중심으로 소임에 임하겠습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어려워 동체대비(同體大悲·천지중생이 나와 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킴) 사상과 호국 불교 사상을 유지해 나가겠습니다.”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에 추대된 뒤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고불식(告佛式)에서 나온 성파(性坡·82) 스님의 말이다. 성파 스님은 “오늘 추대는 됐지만 우주에는 해가 둘이 있을 수 없다”며 “아직 종정 스님이 계시기 때문에 추대됐다고 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성파 스님의 종정 임기는 내년 3월 시작된다. 종정추대위원회를 앞두고 성파 스님을 비롯해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 스님 등이 후보로 거론됐으나 큰 이견 없이 성파 스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하기로 뜻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총무원장이 종무 행정을 총괄하는 종단 대표라면 종정은 종단의 정신적 지도자다. 종정은 종단 행정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종헌·종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과 징계 등에서 권한을 행사한다. 성파 스님의 스승은 제9대 종정을 지낸 월하 스님이다. 1962년 통합 종단 출범 이후 출가로 인연을 맺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종정에 오른 첫 사례가 됐다. 성철 스님(6, 7대 종정)과 법전 스님(11, 12대 종정)은 법(法)으로 이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성파 스님은 수행자이면서 예술가의 삶으로도 주목받아왔다. 팔만대장경을 일일이 새겨 도자기로 구워내는 도자대장경 불사(佛事)는 10년에 걸쳐 이뤄낸 큰 성과로 꼽힌다. 옻칠과 서화 전시회도 여러 차례 열었고, 100m 길이의 한지를 만들어 불화를 제작하고 있다. 성파 스님은 이전 인터뷰에서 ‘예술적 끼’에 대해 묻자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수행과 예술이 따로 있나? 뱀이 물을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잖아. 수행의 근본 바탕이 있으면 어떤 것을 해도 수행이다.” 수행과 일상을 구분하지 않는 불이(不二)의 정신은 성파 스님을 상징한다. 통도사 서운암에 머물며 주변에 야생화를 심어 토종 야생화의 소중함을 일깨웠고, 관심을 기울여온 서운암 된장은 ‘명물’이 됐다. “아유일권경 불인지묵성(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내게 한 권의 책이 있으니 그 책은 종이와 먹으로 된 게 아니다), 전개무일자 상방대광명(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펼쳐 보니 한 자도 없지만 항상 대광명을 놓는다). 일터가 선방이고 공부방이지. 백 마디 말보다 와서 보고 가라는 거지. 열심히 봐도 안 보이면 할 수 없고. 마음이 없으면 봐도 안 보이고 먹어도 맛을 몰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인 성파(性坡·82·사진) 스님이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宗正)에 추대됐다. 조계종 종정추대위원회는 이날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회관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성파 스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고 밝혔다. 1939년 경남 합천에서 출생한 성파 스님은 조계종 제9대 종정을 지낸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종단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원과 통도사 주지 등을 지냈다. 2014년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했으며, 2018년 영축총림 방장으로 추대됐다. 조계종 헌법인 종헌에 따르면 종정은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 권위와 지위를 갖는다. 계율을 관할하는 전계대화상을 위촉할 수 있으며, 종헌종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과 징계의 사면·경감·복권을 행할 수 있다. 임기는 5년이며 한 차례 중임할 수 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인 성파 스님(82·사진)이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宗正)에 추대됐다. 조계종 종정추대위원회는 이날 오후 한국불교역사문화회관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성파 스님이 만장일치로 추대했다고 밝혔다. 1939년 경남 합천에서 출생한 성파 스님은 조계종 제9대 종정을 지낸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종단 국회격인 중앙종회 의원과 통도사 주지 등을 지냈다. 2014년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했으며 2018년 영축총림 방장으로 추대됐다. 조계종 헌법인 종헌에 따르면 종정은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갖는다. 계율을 관할하는 전계대화상을 위촉할 수 있으며 종헌종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과 징계의 사면·경감·복권을 행할 수 있다. 종단 비상시에는 원로회의 재적 3분의 2이상의 제청으로 중앙종회를 해산할 수 있다. 임기는 5년이며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 종정추대위원회를 앞두고 종단 안팎에서는 성파 스님을 비롯해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 스님 등이 후보로 거론됐으나 큰 이견 없이 성파 스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밥은 먹고 다니냐?” 부산 해운대구 대운사 주지이자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이사장인 주석 스님(51)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잘 알려진 이 말을 최근 몇 년간 자주 들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도 큰 불사(佛事)를 진행 중인 주석 스님을 격려하며 이런 걱정을 했다고 한다. 9일 해운대구에서 열린 ‘쿠무다 명상문화센터’ 개원 법회에서 주석 스님은 여러 사연을 소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계종 전 교육원장인 무비 스님도 “죽을 것 같지? 그래도 해 봐라. 통장 번호나 알려 달라”고 했다는 전언이다. 쿠무다는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연꽃’이라는 뜻이다. 2013년 설립된 쿠무다는 차와 디저트를 맛보면서 전시와 작은 음악회를 즐길 수 있는 문화 포교공간이다. 주석 스님은 이와 가까운 송정 바닷가에 대규모 명상문화센터 건립을 추진해 개원에 이르렀다. 이날 공개한 명상문화센터는 지하 2층, 지상 8층, 하늘정원 등으로 구성됐다. 지하공간에는 220석 규모의 다목적 콘서트홀이 있어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이 가능하다. 지상 1층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과 오채현 작가의 ‘참선하는 청년’ 상징물이 설치돼 있다. 2층은 카페 쿠무다로 북카페와 갤러리로 활용된다. 3층 퓨전아시아 레스토랑과 4층 쿠무다 다이닝 레스토랑은 셰프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권과 함께 운영한다. 5층은 유튜브 촬영과 녹음 등에 쓰이는 스튜디오와 문화강좌 강의실, 6∼8층은 숙박 공간인 힐링 빌리지가 각각 들어섰다. 하늘정원은 바다법당으로 전상용 작가의 해수관음보살좌상이 설치돼 있다. 이날 행사에는 원행, 무비 스님을 비롯해 종단 계율을 관장하는 전계대화상 무관 스님,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윤성이 동국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원행 스님은 “쿠무다 개원은 불교 포교를 위한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라며 “불교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무비 스님은 “불교를 젊게 하는 불사”라며 “새로운 불교, 미래불교를 위해 원력과 신심을 펼쳐 달라”고 했다. 수불 스님은 “쿠무다는 수행과 문화의 시대 트렌드를 선도하게 될 것”이라며 “유튜브와 메타버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문화 포교의 새로운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 달라”고 말했다. 개원 법회 뒤 만난 주석 스님은 “10여 년 전부터 이런 공간을 꿈꾸었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을지 몰랐다”며 “부처님과 여러 분의 도움으로 가능했다”고 말했다. 쿠무다에 쏠린 우려와 기대에 대한 각오도 이어졌다. “전통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어른 스님들의 걱정이 있는데 전통과 현대적 요소를 잘 조화시키겠다. 법화경에 ‘인욕(忍辱)의 갑옷을 입고 자비의 방에 들어가서 중생을 대하라’라는 말이 있다. 이번 불사뿐 아니라 출가하고 수행하면서 결코 놓지 않은 부처님 말씀이다. 철저한 각오로 정진하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도록 노력하겠다.”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오늘날 사회에서도 가장 힘들고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을 위해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더욱 고민하고 노력하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천주교서울대교구 제14대 교구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된 정순택 대주교(60)가 8일 오후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착좌(着座)미사를 봉헌하고 교구장으로서의 공식적인 임기를 시작했다. 한국 교회 주교단과 사제, 신자 등 600여 명이 이날 미사에 참석했으며, 정 대주교의 문장(紋章)과 사목표어 ‘하느님 아버지, 어머니 교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대형 휘장들이 성당 안팎을 장식했다. 수도회 출신 첫 교구장인 정 대주교는 이날 강론에서 영성 회복, 미래의 주역인 청년 세대와의 동반, 시노드(주교 대의원대회)를 통한 교회 쇄신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정 대주교는 1984년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후 사제가 되겠다는 뜻에 따라 같은 해 가톨릭대 성신교정에 편입한 뒤 1986년 가르멜회에 입회했다. 1992년 이 수도회 인천수도원에서 사제품을 받은 뒤 2000년 로마로 유학을 떠나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으며, 올해 10월 서울대교구장 임명과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했다. 미사에 앞서 열린 착좌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령을 받아 신임 교구장이 주교의 권위를 상징하는 주교좌(主敎座)에 자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달 30일 이임 미사로 서울대교구장직을 내려놓은 염수정 추기경은 인사말에서 “우리 모두 어려운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고,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도 분명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우리 하느님 백성은 교구장님을 중심으로 한국의 순교자들처럼 굳게 복음 말씀을 따라 살며 용기를 내어 살아가자”고 말했다.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수에레브 대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령을 낭독한 데 이어 관례에 따라 수에레브 대주교와 교구 사무처장이 착좌록에 서명했다. 염 추기경은 정 대주교에게 교구장의 품위와 관할권을 상징하는 지팡이인 목장(牧杖)을 전달했다. 정 대주교가 염 추기경과 수에레브 대주교의 안내를 받아 주교좌에 착좌한 뒤 교구 사제단의 순명(順命)서약이 이어졌다. 미사가 끝난 뒤 축하식에서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손병선 회장 등의 축사와 수도자를 대표한 이해인 수녀의 축시가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독한 축사에서 “어려운 고비마다 빛과 소금이 되어주신 것처럼, 일상 회복과 평화를 위해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 대주교는 답사에서 “하느님께는 지금 감사의 마음을 올리지는 못해도, 큰 대과 없이 달릴 길을 다 달리고 나서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를 올리고 싶다”며 “그럴 수 있도록 모든 분들의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박헌영(1900~1956)의 아들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인 원경 스님(사진)이 6일 81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원경 스님이 이날 오전 10시경 자신이 주지로 있는 경기 평택시 만기사에서 입적했다고 밝혔다. 스님은 박헌영과 그의 둘째 부인 정순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남한에서 살았던 박헌영의 유일한 혈육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주의 운동에 뛰어든 박헌영은 해방 후인 1946년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을 창당해 미군정의 수배를 받고 월북했다. 그는 북한에서 내각부총리 겸 외무상을 지냈으나 1956년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처형됐다. 원경 스님은 사실상 고아 생활을 하다 10세 때 한산 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1963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으며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흥왕사·청룡사·신륵사 주지를 지냈다. 2014년 원로의원이 됐으며 2015년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에 올랐고 2017년 원로회의 부의장에 선출됐다. 스님은 2004년 ‘박헌영 전집’(전 9권)을 출간한 바 있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10일 오전 10시 경기 화성시 용주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진다. 031-226-3488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947년 성철, 청담 스님 등이 ‘오직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뜻을 모은 ‘봉암사 결사(結社)’는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당시 비구와 대처의 대립 속에서 조계종이 비구 종단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결사는 고려 말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 결사’ 등 한국 불교사의 고비 때마다 일어났다. 내년 4월 개원하는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은 조계종의 선(禪) 수행을 상징하는 경북 문경시 봉암사 인근에 조성되는 대규모 명상 타운이다. 8만4000여 m²(약 2만5410평) 부지에 참선수행과 명상이 가능한 선방을 비롯해 다목적체험관, 리조트형 명상숙소, 참선수행자 전문 숙소 꾸띠(개인 수행처) 등이 들어선다. 세계명상마을 선원장인 각산 스님(61)을 1일 서울 강남구 참불선원에서 만났다. ―명상마을 건립 현황은 어떤가. “전체적으로 80% 정도 완성됐다. 다목적체험관은 95% 완공된 상태이고 2차로 명상센터와 선방, 수행자 숙소 건립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꾸띠는 좀 생소하다. “부처님 시대 언급되는 ‘숲속의 개인 공간 수행처’를 모델로 하고 있다. 23m²(약 7평) 규모인데 출가자용 50개, 재가자용 120개를 조성 중이다. 부처님은 올바른 수행요소로 7가지를 말씀하셨다.”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탁발의 편리함, 숲속의 독립적인 개인 공간 수행처, 좋은 도반(道伴), 부처님의 법을 나누는 30분의 대화, 개인 체질에 맞는 기후와 음식, 수행을 위한 올바른 (몸의) 자세다.” ―무문관(無門關)과는 어떻게 다른가. “무문관은 중국의 폐관 수행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좁은 공간에서 하는 수행법은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한 고수(高手)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부처님 당시는 일주문 내를 무문관으로 삼았고, 티베트 수행자들은 몇 km 떨어진 주변에 돌을 내려놓아 경계석으로 삼아 그 반경에서 자유롭게 산책한다. 꾸띠 반경은 165m²(약 50평)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신개념의 무문관인가. “부처님 시대부터 전해지는 불교 수행법의 핵심은 내려놓는 방하착(放下着)이다. 여기에는 자율과 평등만 존재하지 전체주의적 요소는 없다.” ―명상마을이 봉암사 옆에 들어서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나. “봉암사는 세계적으로도 귀한 봉쇄수행자 도량이다. 모름지기 좋은 수행처는 좋은 도사(전문가), 환경 좋은 도량, 함께 수행하는 좋은 도반의 3도(三道)를 갖춰야 한다. 봉암사 산자락 인근만큼 좋은 곳이 있겠나? 명상마을은 국민에게 행복을 심어주는 국민선원(國民禪院)이 될 것이다.” ―국민선원은 어떤 의미인가. “국가와 국민이 없는 종교는 존재할 수 없다. 명상마을은 종교와 국적 등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다. 모든 게 무료로 개방된다.” ―그게 가능한가. “불교는 가난해서가 아니라, 물질이 넘칠 때 위기를 맞았다. 청빈 무소유의 삶이 불교 번영을 이끈다. 제대로 된 부처님 말씀, 즉 법(法)을 전하고 모범이 되면 보시(布施)는 넘치게 돼 있다. 어른 스님들의 이런 말씀이 있더라. ‘니가 뭐라고 혼자서 불교 걱정하냐. 법이 있으면 논두렁에 지팡이를 꽂아놔도 사람들이 몰린다.’” ―어떤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나. “역대 큰스님들이 전승해 온 대승 선불교의 간화선과 부처님 시대의 안반선(安般禪·아나빠나 사띠) 수행법의 통섭(統攝)이 핵심이다. 2박 3일의 대국민 무료참선 템플스테이를 열 계획이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기출가 프로그램 ‘대한민국 청년 희망캠프’도 계획 중이다.” ―왜 청년들인가. “그들에게 꿈과 낭만, 도전정신을 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불교를 믿으라는 게 아니라 내면에 등불을 켜서 자신의 인생을 밝히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이 되라는 취지다. 자신과 국가를 밝히라는 의미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울역 동문을 나섰을 때 무엇보다 강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옛 서울역사도, 서울로7017도 아니다. 바로 서울스퀘어, 옛 대우센터빌딩이다.” 슬그머니 궁금증이 고개를 쳐들게 하는 구절이다. 이 책 저자에 따르면 이 순박하리만치 거대한 직육면체 건물은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작품이라며 나서는 이가 없다. “미스터리도 이런 미스터리가 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내 설계를 내 설계라 밝히지 못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연이 담겨 있는 건축물”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십수 년째 건축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산업시설 건축설계를 주로 맡았다. 이 책은 그가 서울의 이곳저곳을 뚜벅뚜벅 걸으며 쓰고 그려낸 드로잉 에세이다. 그가 주목한 건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쌓여 있는 시간과 공간의 층위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와 함께 걸으면서 특정 건물이나 거리에 관한 해설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묘사가 촘촘하다. 1997년 대입 재수를 위해 상경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한 저자는 서울역사에 대한 관심이 도시기행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책은 서울역을 기점으로 서울역 동쪽 도심과 남산(1부), 서울역 서쪽 구릉지 및 철길(2부)로 크게 나뉜다. 세부적으로는 서소문·정동·서학당길을 비롯해 7개의 도시 산책 코스를 안내한다. 하나의 길이 끝날 때마다 대표 건축물에 얽힌 사연과 문제점을 짚은 코너가 흥미롭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사제로 51년, 주교로 20년을 살아왔다. 9년 반은 교구장이라는, 부족한 제게는 너무 버거운 십자가를 지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당부하신 양 냄새 나는 착한 목자로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치려고 했지만 능력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30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천주교서울대교구장 이임 감사 미사 중 염수정 추기경(78)이 남긴 말이다. ‘하느님 뜻에 따라 살고자 노력했고,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았던 사제로 기억해주면 좋겠다.’ 가톨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염 추기경의 소망대로 그는 부드러운 미소와 겸손함으로 사제와 신자들을 지켜주던 신앙의 울타리였다. 1943년 경기 안성의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1970년 사제품을 받은 뒤 2002년 주교로 서품됐다. 2012년 정진석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13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고, 2014년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 미사를 주례할 때 교황과 함께 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손병선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은 “추기경의 사목 여정과 순례의 시간이 어제의 열매이자 내일의 씨앗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사제와 신자 등 700여 명이 명동대성당과 코스토홀에서 이날 미사를 지켜봤다. 후임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를 비롯해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 전임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등이 참석했다. 미사에 이은 환송식에서는 염 추기경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신임 교구장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했다. 교구의 젊은 사제들은 염 추기경의 ‘애창곡’으로 알려진 성가 ‘나를 따르라’를 열창했다. 30일은 염 추기경의 세례명인 안드레아 성인을 기념하는 영명축일(靈名祝日)로 그 의미를 더했다. 염 추기경은 환송식 답사에서 “안드레아 성인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을 따라 나선 첫 사도 중 한 분이고, 오늘은 어머니 기일이기도 해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날”이라며 “이날 이임 미사를 봉헌하고 새 교구장님이 오시게 된 것은 성령의 섭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의 유머로 대성당 내에서는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여러분, 제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바뀌면 장사가 안돼요. 농담입니다.” 이날 미사 뒤 염 추기경은 명동 주교관을 떠나 사제의 꿈을 키웠던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내 주교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교회법상 추기경은 종신직이며 염 추기경의 교황 선출권은 만 80세까지 유지된다. 후임인 제14대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착좌(着座) 미사는 8일 오후 2시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원다문화센터가 개설 6돌을 맞아 29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다문화TV스튜디오에서 ‘다문화사회의 원불교의 역할’을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조성균 전 여성가족부 권익보호과장이 ‘한국다문화 정책과 전망’, 고세천 원불교 논산교당 교무가 ‘원불교 다문화교화의 과제와 전망’을 발제하고, 불교여성개발원 다문화봉사단국장인 서정애 박사와 남원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이성일 교무가 토론을 벌인다. 원다문화센터 이사장 김대선 교무(사진)는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이후 외국에서 온 기업인과 이주노동자, 외교관, 유학생 등 다문화인이 크게 증가했다”며 “다문화인이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정착하는데 다양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세미나는 다문화TV를 통해 유튜브로 생중계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3일 경기 부천시 서울신학대에서는 한국복음주의신학회의 정기논문 발표회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교회: 예배, 훈련, 경건’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기채 목사(63·중앙성결교회)는 ‘한국교회의 회개해야 할 7가지 죄’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그가 꼽은 7가지 죄는 영적(靈的) 남용, 공(公)의 사유화, 신앙생활의 사사화(私事化), 친목과다 신드롬, 공로자 신드롬, 송사(訟事) 신드롬, 무례한 기독교. 성결교단 총회장을 지낸 그의 이력과 비중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비판이다. 18일 서울 종로구 중앙성결교회에서 그를 만났다.》 ―논문은 앞서 출간한 책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할 한국교회 7가지 죄’가 바탕이 된 걸로 알고 있다. 책 제목이 ‘세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고 있는 세계적 재난상황이다. 전쟁과 전염병 등 위기상황에서는 하나님 백성이 먼저 반성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통한 치유가 이뤄질 수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첫 번째 죄로 영적 남용을 꼽은 이유는…. “영적 권력은 믿는 이, 신자들에게는 무엇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그 힘을 가진 목회자들이 교회와 세상을 잘못 이끌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책임져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의인(義人) 10명을 못 찾아서 망한 것이다.” ―교계 반응이 궁금하다. “직접적인 어려움은 없다(웃음). 목회자나 교인들 모두 분별력이 있으라고 쓴 책이니까….” ―공의 사유화는 어떤 의미인가. “사회에서도 공권력을 이용해 사욕을 챙기면 큰 문제가 된다. 공적 존재인 하나님과 교회를 통해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모습들이 적지 않다.” ―친목 과다 신드롬은…. “그동안 친목회 성격의 행사가 너무 많았다. 대면과 비대면 상황을 조화시켜 예배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돈과 시간을 다이어트하면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른바 ‘무례한 기독교’는 비교인의 입장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문제다. “외부 시각에서 볼 때 자신들만 구원받는다는 식의 기독교 진리는 독선적일 수 있다. 그래서 표현하는 방식에서 훨씬 더 예의를 갖춰야 한다. 환대(hospitality)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손님들을 환대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했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도 좋아야 하고, 표현도 사회에서 인정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한 목사는 총회장 임기를 마친 뒤 몇 개월 사이 ‘…7가지 죄’를 비롯해 책 4권을 출간하고 영국 교회를 둘러봤다. 코로나19로 목회 인생을 반성하고 정리할 시간이 많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구 교회들의 현황은 어떤가. “영국 교회가 과거 우리 교회에 좋은 영향을 많이 줬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영국 교회로 가면 안 된다. (영국 교회가)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영국은 교회 세속화가 심해졌고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없더라. 1000년 된 교회도 식당이나 카페로 바뀌었다.” ―우리 교회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윤리신학 전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윤리의식이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분야는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 기독교는 정의의 종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寶血)을 통한 회복을 중시하는데, 이제는 ‘녹색 은총’도 필요한 시대다. 쉽게 말해 음식을 아끼고 쓰레기와 탄소배출을 줄이고, 주변이웃 나아가 환경과 공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아닙니다. 별로 멀지 않습니다.” 노르웨이 북쪽 외딴 마을의 술집이 문을 닫자 주민들은 저자에게 2차를 권했다. 얼마나 떨어져 있냐고 묻자 “스노 스쿠터를 타면 30분 만에 갈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숲속에서 만난 이들의 “멀지 않다”는 말은 노르웨이나 우리나라나 믿을 수 없는 모양이다. 저자 아레 칼뵈는 노르웨이에서 꽤 알려진 코미디언으로 뮤지컬과 오페라 등의 제작자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종교 축구 휴가 등 다양한 주제로 11권의 책을 냈는데 ‘내 친구들…’은 세계 13개국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그의 등산 도전기다. 입담 좋은 코미디언답게 그가 등산을 시작한 이유도 흥미롭다. 그는 젊은 시절 축구선수로 뛰었고 야외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지만 지난 30년 동안 등산은커녕 숲에서 하이킹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주변의 친구들이 자신만 빼고 회의라도 한 듯 산과 자연의 평화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산 사진을 올리지 않은 지인은 단 한 명도 없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그는 ‘그건 아니지 않은가’라며 산속의 친구들을 자기 곁으로 데려오기 위해 산으로 떠났다. 책은 그가 산에서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았고, 결론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입담 못지않은 글 솜씨와 풍부한 묘사가 재미 가득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를 연상시킨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인공지능(AI)’에도 불성(佛性)이 있을까? 최근 출간한 ‘AI 부디즘’(담앤북스)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해인사승가대 학장 대행을 맡고 있는 보일 스님(49)이다. 해인사승가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 철학과 석사에 이어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승가대 시절 논문 공모전에서 ‘인공지능 로봇의 불성연구’로 대상을 받은 인연으로 인공지능 시대 불교의 역할과 미래에 대한 연구에 힘썼다. 11일 서울 강남구 세텍(SETEC)에서 개최 중인 불교박람회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단도직입으로 AI에도 불성이 있나? “기계에 불성이나 영성(靈性)이 없다는 것은 전통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인공지능, 빅데이터, 딥러닝 등 과학적 진보가 가속화하면서 기계와 인간의 영역이 모호해졌다. 있다, 없다에 집착하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 중도(中道)의 가르침이다. 그 화두의 핵심은 기계와 인간을 구분하던 경계(境界) 또는 벽이 무너지고,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종교계 연구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10년 전에는 물리학 인공지능 뇌과학 등의 전문가들이 그 분야만 정통하면 됐지만 지금은 인문학적으로 사유한다. 공학자들이 자신들의 분야를 바탕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이 예술과 철학을 논하고, 부처와 예수를 얘기하는 시대가 됐다.” ―종교계는 어떤가? “부끄럽지만 불교계를 포함한 종교계는 과거에 갇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철학, 윤리적 난제들이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종교계는 한 마디로 이 분야를 잘 모른다.” 책은 ‘인공지능에도 불성이 있나요’ ‘디지털 자아, 나는 무엇인가’ ‘인공지능에 길을 묻다’의 3부로 구성돼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며 다가올 미래의 고민과 과제들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불교적 세계관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불교 신도가 아니라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구절을 알고 있다. 이런 말이 과거에는 뜬 구름처럼 들렸는데 메타버스로 상징되는 디지털세계에서는 이미 현실이다.” ―불교의 구체적인 강점은 무엇인가. “불교는 2000년 이상 인간의 마음에 대해 공부했다. 신앙 여부를 떠나 명상과 참선을 통해 사람들에게 평안과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대체가 불가능한 존재라는 선언이다. 이 시대에 그런 존재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마음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 ―수행자로서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대반열반경을 보면, 제자들이 열반을 앞둔 부처님에게 장례절차를 묻는데 부처님의 답변은 단호했다. 한마디로 ‘너희들은 그런 것 신경쓰지 마라’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니 게으름 피지 말고 정진하라’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언어와 사유로 부처님의 법을 전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2일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에서 원로 조각가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89)를 초대한 ‘최종태, 구순(九旬)을 사는 이야기’전이 개막했다. 그의 작품들이 빚어낸 인연의 추억을 간직한 이들이 모여들었다. 서울 길상사 주지 덕일 스님과 꽃동네 윤시몬 수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낸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다. 2000년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 가톨릭 성모상을 닮았다는 말까지 나온 최 조각가의 관음상이 봉헌됐다. “제가 가톨릭을 대표하는 조각가인 데다 전통적인 불상이 아니라 길상사에는 어렵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법정 스님이 집으로 찾아와 ‘정말 좋다’며 작품을 맡기더군요.” 덕일 스님은 “은사 스님은 항상 겉으로 드러난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셨다”며 “불상이나 성모상에 공통된 모성(母性), 나아가 중생을 도우려는 마음을 중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윤 수녀는 최 조각가와 꽃동네의 오랜 인연을 들려줬다.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의 고교 시절 미술교사가 바로 최 조각가. 충북 음성군 꽃동네와 맹동성당, 강화도 꽃동네 등에 그의 가톨릭 조형물들이 봉헌됐다. 강원도에서 농사와 글쓰기로 인생 3모작을 일구고 있는 안 명예교수는 “2년 전 고성 산불로 집은 물론 아끼던 최 작가의 그림 2점이 소실됐다. 구순에도 작업을 멈추지 않는 작가의 열정을 지켜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조각 42점을 비롯해 테라코타, 청동, 나무 등을 소재로 한 작품 77점이 출품됐다. “최근에도 작업하냐”는 질문에 노조각가는 빙그레 웃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붉은 나무 작품이 석 달 전 작업한 거죠. 미수(米壽·88세)를 넘기니 스승이나 세계미술사 거장들에게서 벗어나더군요. 머리가 자유로워지고 손이 알아서 흙을 붙여요.”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조선 후기 이야기 문학의 실체를 보여주는 ‘정본 한국 야담 전집’(보고사)이 최근 출간됐다. 총 10권으로 ‘어우야담’ ‘청구야담’ ‘동야휘집’ 등 약 4200개의 옛 이야기들이 수록됐다. 야담(野談)은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흥미롭게 꾸민 이야기로, 18세기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유행한 장르다. 17세기 전반 작품으로 알려진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은 서사뿐 아니라 주변에서 들은 단편적 지식이나 관심사까지 포괄하고 있다. 야담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지는 과정에서 이본(異本)이 많은 게 특징이다. 이번에 발간된 전집은 바탕이 된 대표 저본(底本)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본을 대조하는 방대한 연구를 거쳤다. 정환국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았고 이강옥 영남대 명예교수,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이채경 성균관대 한문학과 초빙교수 등이 공동연구에 참여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최근 정순택 대주교(60)의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임명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르멜수도회 한국관구 본부 수도원을 4일 찾았다. 서울 대학로에서 가까운 이곳은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영성센터도 겸하고 있다. 지난해 1월 한국 관구장으로 선출된 김형신 신부(51·사진)를 만났다. ―서울대교구에서 최초로 수도회 출신 교구장이 탄생했다. “가르멜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지 거의 50년이 됐다. 그 역사 안에서 한국 교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큰 봉사직에 한 형제를 보내드렸다는 것은 영광이다.” ―국내 수도회 반응은 어떤가? “마침 최근 남자수도회 책임자들이 모이는 ‘장상연합회’ 정기총회가 있었는데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다. 서울대교구는 한국을 대표하는 교구인데 교구장이 나온 것은 같은 수도자들로 자부심을 느낄 만한 경사라는 것이다.” ―정 대주교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같이 공동체 생활을 했는데 2012년 인천 수도원에서 정 대주교님이 주교로 임명되는 순간도 지켜봤다. 경청이 그분의 매력이다. 어린 후배들을 대할 때도 항상 존대하면서 사람들이 존중받는 것을 느끼도록 했다. 무엇보다 첫 만남이 기억난다.” ―어떤 사연인가. “대학 재학 중 수도자의 길을 선택할지 고민하다가 마산 수도원을 찾았는데 그때 상담해준 분이 정 대주교였다. 면담 뒤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 중일 때 편지로 고민을 전했는데 친절한 답장들을 받았다.” ―여러 수도회 중 가르멜을 선택한 이유는…? “가르멜은 기도에 대한 ‘카리스마’(하느님의 은혜나 선물)가 크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봉사하는 수도회에도 갈 수 있지만 기도를 통해 교회와 세상에 영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세계 가르멜회 현황은 어떤가. “100여 개국에 남자 수도자는 4000여 명, 봉쇄 수녀원 수도자는 2만 명에 이른다. 8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6년마다 진행되는 수도회 총회가 열렸다. 이 모임에서 카리스마에 관한 선언문이 만들어졌다. 기도하는 삶과 공동체 생활을 더욱 강화하자는 게 그 취지였다.” ―관구장 선출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 “지난해 관구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종신서원자(終身誓願者)들을 모두 후보에 올리고 한 달 전 우편으로 투표해 정해진 날짜에 개표했다. 종신서원자 47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수도회 구성이 궁금하다. “수도회에 입회하면 청원자로 1년 6개월간 신학 공부를 하게 된다. 이어 1년 6개월의 수련자, 7년의 기한이 있는 유기서원자가 있다. 각 단계마다 공동체의 형제에 대한 식별(평가)이 있다. 10년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종신서원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향후 한국 가르멜의 계획은…? “현재 국내 5곳, 해외 2곳의 수도원이 있는데 경북 성주의 수도원은 더욱 기도하는 생활에 전념할 수 있는 은둔소(隱遁所)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곳 본부 수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영성센터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강좌와 모임을 확대할 생각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올해 3월 입적한 고산 스님이 풀이한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강의(사진)’ 봉정 고불식(告佛式)이 7일 오전 10시 30분 경남 하동군 쌍계사 경내 팔영루에서 봉행된다. 금강경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근본) 경전이며 금강경오가해는 육조 혜능, 규봉 종밀, 야부 도천 등 5명의 고승이 금강경을 해석한 책이다. 총 7권으로 발간된 금강경오가해 강의에는 금강경 경문뿐만 아니라 고산 스님이 다섯 고승의 주석을 직역하거나 해석한 내용이 담겼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에 비춰 알기 쉽게 풀이한 것이 흥미롭다. 고산 스님은 조계사 주지였던 1970∼72년 금강경오가해 관련 법문을 했으며, 1990년부터 경기 부천 석왕사 신도들에게 이를 강의했다. 고산 스님 맏상좌이자 쌍계사 주지인 영담 스님은 “은사는 종단의 소의 경전인 금강경을 특히 중요하게 여겼다”며 “다양한 비유와 풀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 핵심을 쉽게 널리 전하기 위해 애쓰던 모습이 선하다”고 말했다. 고산 스님은 경(經), 율(律), 논(論) 삼장에 두루 능한 종단의 대표 원로로 수행과 함께 평생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모범을 보였다. 폐사에 가까웠던 쌍계사를 중창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아무리 추운 환경이라 해도 눈 속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주의 묘한 힘이다.” 최근 출간한 대한불교조계종 군종교구장 선일 스님(69)의 산문집 ‘사유하는 기쁨’(불광출판사·사진)의 일부다. 이 책은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자연, 종교 등 다양한 주제로 쓴 칼럼과 에세이를 담았다. 1976년 해남 대흥사에서 운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1978년부터 7년간 군법사로 활동했고 미국 봉황사 주지를 지냈다. 현재 인천 법명사 회주(會主)로 7월 군종교구장에 취임한 그를 지난달 28일 만났다. ―책을 출간한 계기가 궁금하다. “(우리 나이로) 올해 칠순인데 요즘 분위기에 모여 밥 먹을 분위기는 아니더라. 그래서 그동안 쓴 글을 모아 책을 펴냈다.” ―미국 봉황사 주지를 지냈는데…. “1985년 대위로 전역한 뒤 불교사전 편찬 일을 도왔는데 그 사례금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초 뉴욕에서 공부도 하고 국제포교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시애틀 아래 터코마시에서 작은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한 보살(여성 신도)과 인연이 됐다. 그곳에는 큰 미군기지가 있고 사연 있는 한국 여성들이 많이 살았다. 그분들 삶이 마음을 움직여 2년간 주지를 맡았다.” 7년간 군법사에 이어 군종교구 부교구장도 지낸 선일 스님은 지금도 현역 군인처럼 날렵하고 눈매가 날카롭다. 그런데 설법 중인 옛 사진에 목사 가운 차림을 한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인가. “개신교는 이승만 정부 초기부터 군목을 파견했지만 불교는 1968년 처음으로 군법사를 보냈다. 해군 중위로 임관해 경남 진해 부임지를 가니 교회 내 한 공간을 사무실로 쓰라고 하더라. 옷도 마땅한 게 없어 목사 가운을 입었다. 하하.” ―초창기 군 포교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승복과 삭발 머리 때문에 부대에서 논란이 생긴 적도 있었다. 삭발하면 항명이나 불만의 표시로 여겼기 때문인데 스님이니 예외로 하자고 해서 넘어갔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현재 군 포교 현황은 어떤가. “군법사 14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책에 쓴 것처럼 군 포교나 우리 인생 모두 겨울이 왔을 때, 좌절하지 않고 눈 속의 꽃 같은 용기로 살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다. “지금은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지나친 탐욕으로 인한 환경 파괴가 세상에 어떤 해악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현재의 아픔을 극복하면서 그 가르침을 올바른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좋아하는 경전 한 구절을 들려 달라.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 능히 세상사를 다 그려낸다고 했다. ‘심청정 국토청정(心淸淨 國土淸淨)’, 마음이 맑아야 세상도 맑아진다. 정치인들 얘기가 맑지 않은 것은 모두 욕심으로 가득 차서 그렇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달 2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순택 대주교(베드로·60)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에 임명했다. 염수정 추기경(78)이 교회법에 따른 교구장 정년(75세)을 넘겼지만 교황청에서 맡고 있는 성직자성, 인류복음화성 위원 임기(2023년까지)를 감안할 때 올해는 교구장 직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기에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도회 출신 첫 서울대교구장이자 ‘젊은’ 교구장 탄생의 배경과 궁금증을 정리한다.○ 수도회 출신 첫 서울대교구장 서울대교구 대변인인 허영엽 신부는 최근 브리핑을 통해 “당초 예상보다 빨리 교구장님이 교체된 배경에는 최근 일정을 시작한 주교 시노드(대의원대회)가 많이 작용했을 거라고 염 추기경님과 다른 주교님들이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85세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시노드를 가톨릭교회 개혁의 중요한 기회로 여기고 있다. 정 대주교 임명은 새 교구장이 3년간 진행되는 시노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 달라는 강력한 주문인 셈이다. 최대 교구이자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서울대교구장에 수도회 출신 사제가 처음 임명된 것은 파격적이다. 허 신부는 “2014년 교황님께서 방한하셨을 때 서울을 특별히 눈여겨보셨고 영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 우리 교구가 영적인 열정을 회복하는 데 많은 힘과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회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수도회 출신 사제에 대한 신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교구장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거란 기대도 있다. 정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이 1968년 46세 때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후 가장 젊은 교구장이다. 올 4월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은 67세, 염 추기경은 69세에 교구장에 임명됐다. 정 추기경과 정 대주교가 같은 서울대 공대 출신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 정 대주교는 ‘경청의 달인’ 정 대주교는 2009년부터 5년간 가르멜수도회 로마 총본부에서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담당 부총장으로 활동해 바티칸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 가르멜수도회는 가톨릭 내에서 영성적 전통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설이 있지만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자 수도자들이 이스라엘 북부 가르멜산에 은거하면서 영성을 심화시킨 것이 수도회의 기원이 됐다. 스페인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1515∼1582)를 비롯해 십자가의 성 요한, 소화 테레사, 20세기 초반 여성 철학자 에디트 슈타인이 가르멜 출신 성인이다. 테레사 성녀는 여자 수도회를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봉쇄(封鎖) 수녀회로 창립했다. 가르멜수도회는 100여 개국에 수도원이 있으며 남자 수도자는 4000여 명, 봉쇄 수녀원 수도자는 2만여 명이다. 한국관구장을 지낸 윤주현 신부는 “가르멜수도회는 가톨릭이 세속화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는 샘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국내에는 남성 60명, 여성 150∼160명이 사제와 수도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주교는 경청의 달인이자 영성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다. 정 대주교는 28일 임명 감사미사 뒤 축하식에서도 “염수정 추기경님과 여러 선후배 사제들, 우리 교회 안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하나씩 배워가겠다”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 이후 서울대교구장이 잇따라 추기경으로 서임됐지만 정 대주교가 당장 추기경으로 서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교계 관측이다. 현재로서는 교황청 성직자성(省) 장관인 유흥식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이 유력하다. 교계 관계자는 “성직자성 장관은 추기경들이 맡아왔기에 유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은 시간문제”라며 “한국에 3명의 추기경이 있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고 정 대주교도 젊은 편이라 또 다른 추기경 탄생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정순택(베드로·60·사진) 주교가 28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에 임명됐다. 서울대교구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후 7시(로마 현지 시간 낮 12시) 정 주교를 염수정 추기경에 이은 차기 서울대교구 교구장 겸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로 임명했다. 정 신임 서울대교구장은 임명과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됐다. 한국인 서울대교구장 중 수도회 출신은 처음이다. 1961년 대구에서 출생한 정 대주교는 1984년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같은 해 가톨릭대 성신교정에 편입한 뒤 1986년 수도회 가르멜회에 입회했다. 1992년 가르멜회 인천수도원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2000년 로마로 유학을 떠나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수도원에서 여러 보직을 거친 후 로마 총본부에서 최고 평의원으로 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담당 부총장으로 일하다 2013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에 임명됐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정 대주교는 교구장 임명 뒤 “하느님은 그야말로 ‘비욘드(beyond)’이시다. 우리 인간의 생각을 훨씬 넘으시는 분이시기에 그분의 계획이나 생각을 우리가 미리 가늠하거나 헤아릴 수가 없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마음이 무겁고 두렵다”며 “부족한 제가 훌륭하신 전임 교구장님들의 길을 잘 따라 좋은 사목을 펼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는 염 추기경은 “우리 교구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새 교구장님으로 성령께서 정순택 대주교님을 선택하셨다”며 “든든하고 훌륭한 새 교구장님이 우리나라와 교회에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열매를 맺기를 모든 신자, 수도자, 사제들과 함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만 75세인 교구장 정년 만기에 따라 수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교구장 사임을 청원했다. 교회법상 추기경은 종신직이며 염 추기경의 교황 선출권은 80세까지 유지된다. 서울대교구는 다음 달 30일 염 추기경 이임 미사에 이어 12월 8일 정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 미사를 거행할 예정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