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우리 집 텃밭엔 꽃이 아주 많아.” 천진난만한 미소로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아이는 꽃을 사랑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꽃은 장미나 백합 같은 화려한 게 아니다. 무꽃, 토마토꽃, 시금치꽃, 양파꽃 등 텃밭 채소들이 틔우는 소박한 꽃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는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살랑 꽃잎을 흔드는 무꽃을 보며 “발레리나”라고 표현하고, 둥근 꽃망울을 지닌 양파꽃에겐 꽃봉오리가 팡팡 터질 것 같다며 “불꽃놀이”라고 말한다. “양파는 눈이 매운데 양파꽃은 눈이 부셔”라고 하는 아이의 말은 시 같다. 아이는 자기 역시 텃밭에 핀 새싹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자신에게도 상상하지 못할 멋진 꽃이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너에게는 어떤 꽃이 필까?” 식물이 꽃을 피우는 과정을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싱그러운 미소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아이의 밝고 순수한 표정이 눈길을 끈다. 색의 강약도 보는 맛을 더한다. 꽃은 다양한 색으로 그렸지만 아이는 검은색 선으로 스케치했다. 아이의 발그레한 볼은 오렌지색을 칠해 생기를 불어넣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부모님을 따라 해외로 간 아이는 한국이 그립다. 새로 이사한 집 뒷마당에는 오래된 자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아이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한국 집 마당에 있던 감나무가 생각난다. 나무는 아이를 안아 올리고, 아이는 나뭇가지를 타고 논다. 아이는 나무에 ‘자두랑’이란 애칭을 붙여준다. 나무와 아이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세찬 바람과 함께 폭풍우가 도시를 휩쓴다. 자두랑도 뿌리가 뽑히며 쓰러진다. 마음을 기댈 나무가 없어진 아이는 아빠에게 자두랑이 그립다고 고백한다. 결국 아이와 아빠는 자두랑이 있던 그 자리에 키가 작고 꼿꼿한 새 자두나무를 심는다. 상실과 아픔의 자리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자라난다. 자두나무가 꽃을 처음 피운 날, 아이는 마치 자두랑을 마주한 것 같은 익숙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두나무가 점점 더 크고 단단해지는 것을 지켜보며 아이는 힘들 때마다 위로를 얻는다. 지난해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최우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작으로 화려한 색감과 나무를 표현한 섬세한 질감이 인상적이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부산에 가면 초량 출신의 가수 나훈아가 어린 시절 과외 수업을 받았던 절이 있고, 전남 목포에 가면 목포 출신 가수 남진의 생가가 있습니다. 국내 관광 프로그램에 대중가수들의 삶을 녹인 스토리텔링으로 ‘대중가요로드’(가칭)를 만들 계획입니다.”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에서 지난달 30일 만난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67)은 팬데믹으로 침체됐던 관광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K콘텐츠를 기반으로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팬들이 한국을 더 많이 찾아오도록 대규모 K팝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김 사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서울 예술의전당 사장, 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5년 11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대중가요로 본 한국 근대사회의 발전상’ 토크콘서트를 열어 큰 주목을 받았다. 1920∼80년대를 풍미한 트로트 히트곡들을 역사적 사건과 결부시켜 분석한 ‘트롯의 부활’을 2021년 출간한 데 이어 문화계에서 쌓은 경험과 사색, 명상을 담은 에세이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창가에 서서’를 지난달에 내놓았다. 김 사장은 “5000년 한국사엔 위대한 인물과 재미난 전설이 많다”며 “이는 관광에 스토리텔링을 강화할 수 있는 큰 자양분”이라고 했다. 계획 중인 스토리텔링 강화 관광 사업으로 이순신 둘레길 투어, 삼국통일로 투어 등을 꼽았다. “우리나라 외곽을 걸을 수 있는 ‘코리아둘레길’을 활용해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처음 승리를 거둔 장소, 노량해전 배경지, 거북선이 탄생한 곳을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며 함께 걷는 방식이 될 겁니다.” 태종 무열왕, 김유신 장군,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이끈 결정적인 전투들과 이들의 흔적이 있는 곳들을 연계한 역사 관광 프로그램도 만들 예정이다. 문체부에서 종무실장을 지낸 그는 종교계와의 인연도 깊다. “2002년 시작한 불교계의 템플스테이가 20년 넘게 내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불교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발자취를 따라 다양한 관련 시설을 찾는 영성관광을 개발할 생각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들의 공연을 여럿 기획해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에 오는 외국인도 늘릴 예정이다. 종교, 가요, 클래식 등 차곡차곡 쌓아온 문화적 경험과 역량을 관광과 연결시켜 다채로운 꽃을 피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를 통해 인구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을 살리고 2027년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에게 노래를 요청하자 패티김의 ‘연인의 길’과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를 구성지게 뽑아냈다. 작사자와 작곡가는 물론이고 가사에 담긴 사연을 상세하게 설명한 뒤 노래해 마치 작은 콘서트를 보는 듯했다.“사람과 이야기가 풍경과 어우러질 때 매력은 배가됩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곳들로 가득하고요. 국내외 많은 분이 여행을 통해 이를 음미할 수 있도록 발로 뛰겠습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토끼 친구들이 모인 교실, 선생님이 새로 전학 온 친구 루시를 소개한다. 낯선 환경에 놓인 루시는 작은 목소리로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토끼 친구들은 그런 루시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쉬는 시간, 친구들은 운동장으로 향한다. 한 친구가 “루시는 우리와 정말 다르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 반 친구니깐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외친다. 또 다른 친구가 “루시에게 점심으로 무엇을 가져왔는지 물어보자. 분명히 우리처럼 당근을 가져왔을 거야”라고 제안한다. 친구들은 깜짝 놀란다. 각자 다른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루시와 가장 좋아하는 것 등에 대해 얘기하지만,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친구들은 루시를 제외한 자신들이 모두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음을 깨닫는다. 친구들은 루시에게 다가가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한 용기 있는 한마디였다. 친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키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양한 색을 활용용한 밝고 경쾌한 그림도 귀엽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올해 가장 큰 놀라움 중의 하나는 호평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아카데미상 국제영화상 최종 후보에서 배제된 것.”(AP통신)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24일(현지 시간) 발표된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의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이후 3년 만에 오스카 문을 두드린 한국 영화의 도전이 무산된 셈이다. 해당 소식이 알려진 뒤 흥미로웠던 건 외신 반응이었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올해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상의 유력 수상 후보로 꼽힌 ‘헤어질 결심’이 결국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자 거세게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인 매셔블은 “칸영화제 선두주자였던 ‘헤어질 결심’을 무시하기로 한 아카데미의 결심은 절대적인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매체 인사이더는 “‘헤어질 결심’의 오스카 후보 탈락은 올해 가장 큰 퇴짜 중 하나”라며 “일부 사람은 ‘아카데미의 억지’라고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담담히 소식을 전한 국내 언론과 달리 외신들은 흥분한 어조의 아카데미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박 감독은 ‘깐느 박’으로 불릴 정도로 칸영화제가 사랑하는 영화인이다. 하지만 유독 북미에선 그의 감성이 통하지 않는 모양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10일 열린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헤어질 결심’은 비영어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끝내 고배를 마셨다. 박 감독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했지만 시상식을 중계한 NBC의 카메라에 박 감독의 모습은 단 1초도 담기지 못했다. 국내 영화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여러 관계자들에게 이야기를 듣던 중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기생충’ ‘오징어게임’ ‘미나리’ ‘헤어질 결심’ ‘브로커’ 등 한국계 영화가 주요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비영어권 작품 중 K콘텐츠에 상이 몰렸다”고 분석했다. 비영어권 작품 중 유독 한국영화가 상을 독식한 점이 이번 아카데미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북미권에서 상을 받으려면 통상 사회 문제를 깊게 다루거나 ‘오징어게임’처럼 창의적이란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헤어질 결심’은 그 두 부분이 다소 약하다”고 말했다. 아카데미의 벽을 넘든 넘지 못했든 ‘헤어질 결심’이 수작이란 점은 변함이 없다. 특히 ‘미장센의 대가’로 불리는 박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은 감탄을 거듭 자아내게 만든다. 극 막바지 해준(박해일)이 서래(탕웨이)를 찾으러 간 바닷가 장면에서 모래사장에 남은 파도 자국은 서래의 옆모습과 닮아 놀라움을 선사했다. 해준이 스마트폰 고도계를 활용해 서래의 남편이 사망한 절벽이 138층 높이인 걸 확인하는데 공교롭게도 ‘헤어질 결심’의 러닝타임은 138분이다. 관객들은 박 감독이 작품에 숨겨둔 의도를 찾아내고자 N차 관람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카데미의 결정은 아쉽지만, 아쉬움은 수작을 놓친 아카데미의 몫이다. ‘헤어질 결심’은 다음 달 1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비영어영화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유럽에서 강한 박 감독의 마법이 다시 한 번 통하길 기대해 본다.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내 기분은 무지개색이야. 자꾸자꾸 달라져. 내일은 또 어떤 기분이 꽃처럼 피어날까?” 소녀는 자신의 기분을 색깔로 표현한다. 아침에 막 눈을 뜬 아이의 기분은 ‘눈부신 하양’이다. 오늘 하루가 어떤 색의 기분으로 칠해질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라면서. 꽃과 나비를 보며 학교로 향하는 등굣길, 아이는 ‘설레는 노랑’이라고 기분을 말한다. 호기심이 가득할 땐 초록,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 땐 수줍은 마음이 들기에 여린 잎처럼 파르르 떨리는 연두, 칭찬을 받아 신이 날 땐 주황, 가장 좋아하는 남자친구랑 소꿉놀이를 할 때는 두근두근 분홍색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우울할 땐 회색, 화가 날 땐 불이 일렁이는 것처럼 붉은 빨강 등 색깔과 기분 상태를 절묘하게 연결하는 아이의 표현력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감정의 파도에 흔들리는 인간의 기분을 색깔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도 신선하다. 다양한 색을 활용해 아이의 순간순간을 세련되게 그린 삽화도 인상적이다. 한 편 한 편의 그림 작품을 보는 듯하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근무복에 한복의 전통미를 더하니 우아한 스타일이 완성됐어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이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한복 근무복 전시 ‘한복 입고 일하다’와 전통한복 전시 ‘전통한복, 일생의례’를 함께 개최한다. 12일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김소연 씨(34)는 “한복 근무복이란 개념이 신선하고, 다소 불편한 옷이라 여겼던 한복이 실용성을 갖춘 의복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복 입고 일하다’ 전시에선 ‘한복 근무복’ 개발 사업을 통해 지난해 만든 항공 열차 분야 및 여가 서비스직 한복 근무복 25벌을 처음 공개했다. 권혜진 김혜진 이서정 이혜미 정혜진 등 한복 디자이너 5명과 지난해 한복 디자인프로젝트 공모전 대상 수상자인 고수경 씨가 디자인 개발에 참여했다. 이들이 디자인한 한복 근무복은 항공 열차 및 여가 서비스직 종사자를 비롯해 한복 패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의 의견을 참고해 최종 완성됐다. 전시된 작품 중 열차 승무원 및 스튜어디스 근무복을 디자인한 권혜진 한복스튜디오 혜온 대표(54)는 “한복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가 입었을 때 불편하다는 점”이라며 “근무복이 갖춰야 할 실용성과 활동성을 고려해 잘 늘어나는 옷감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는 “서양복 패턴으로 만들되 한복의 깃 디자인을 살리고 책가도(冊架圖) 등 전통 문양을 섞어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덧붙였다. 전시장 3층에선 전통한복 전시인 ‘전통한복, 일생의례’가 진행 중이다. 전시장엔 오늘날의 성인식에 해당하는 전통의례인 관례·계례복을 시작으로 혼례복, 장수를 축하하는 수연례(환갑 칠순 등) 의상, 제사 때 입는 제례복 등 디자이너 5명(김인자 이혜순 유현화 조은아 이춘섭)이 만든 총 10벌의 일생의례복이 전시돼 있다.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일생의례’란 한 사람이 태어나 겪는 성인식, 결혼식, 환갑 등 삶의 기점마다 그 변화를 잘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예를 갖추는 의식을 말한다”며 “생활 방식이 서구적으로 변하면서 점차 사라진 의례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관련 의복 전시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곳곳에는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보유자 황을순 씨의 꽃장식 작품 윤회매, 옻칠 공예가 김난희·디자이너 김상윤의 매듭장 등 다양한 전통 소품이 배치돼 이를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이번 전시에선 한국실크연구원과 함께 개발한 항라, 춘포 등 한복 소재 원단 10종도 공개한다. 혼례복을 디자인한 유현화 한복디자이너(52)는 “전통 혼례복은 속옷을 겹겹이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을 간소화했다”고 말했다. 유 디자이너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현대적인 드레스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겹겹이 겹쳐 입어 격을 갖춘 의복처럼 보일 수 있도록 분홍 저고리 위에 칠부 연두색 저고리를 덧댔다. 두 벌의 효과를 내며 드레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말했다. 조은아 디자이너가 만든 또 다른 혼례복은 대례복에서 차용한 면사포와 영친왕비(1901∼1989) 적의에 있는 꿩 문양에서 영감을 얻은 새 문양 패턴을 사용해 눈길을 끈다. 김태훈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복 고유의 품격과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활동성을 높여 한복도 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앞으로 일상에서 한복이 보다 많이 활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아기 늑대가 아빠 늑대에게 물었다. “나는 커요?” 아빠 늑대는 “그때그때 다르지”라고 답한다. “기린 옆에 서면 너는 아주 작아. 기린은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거든. 하지만 네 옆을 지나가는 개구리에 비하면 너는 커. 아주 커다랗게.” 아기 늑대는 매일 자신이 빠른지, 포동포동 한지, 목소리가 큰지 등 질문을 쏟아낸다. 그때마다 아빠 늑대는 주변 동물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하며 물음에 답한다.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지만 아빠의 답변에 담긴 메시지는 한결 같다. 누가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게 아니라 서로가 그저 다를 뿐이란 것이다. 아기 늑대가 조심스레 묻는다. “나를 사랑해요? 그때그때 다르지 않아요?” 아빠는 말한다. “네가 힘이 세든 약하든 키가 크든 작든 전혀 상관없단다. 아빠는 너를 항상 사랑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지.” 아빠 늑대와 아기 늑대의 대화에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자존감을 지켜나가는 방법에 대한 지혜가 담겼다.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는 아빠 늑대의 따뜻한 마음이 돋보인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한국 배우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 할리우드와 충무로를 오가며 활약하는 배우 마동석…. 지난해 K콘텐츠를 국내외에 알린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CJ ENM이 선정한 ‘2023 비저너리(Visionary)’ 10인에 포함됐다. CJ ENM은 2020년부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흐름을 주도하며 전 세계 대중에게 영감을 준 인물을 ’비저너리’로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올해 비저너리로 선정된 이는 배우 이정재 박은빈 마동석 김혜수, 가수 겸 배우 아이유, 박 감독과 정서경 작가, 나영석 PD, 티빙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환승연애’를 연출한 이진주 PD, 걸그룹 (여자)아이들이다. ‘2023 비저너리’ 시상식은 서울 마포구 CJ ENM 센터에서 8일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박은빈은 “그동안 배운 건 ‘부담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지자’는 것이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진심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훗날 뒤돌아봤을 때 모든 선택이 맞는 길이었다고 여길 수 있도록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마동석은 “‘범죄도시3’에 이어 4편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며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에 더 재미있고 즐거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비저너리의 뜻처럼 미래를 읽고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인지는 아직 자신이 없지만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쓰겠다”고 말했다. 이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느끼는 연대감이 내게는 독창성의 근원”이라며 “함께 일한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작품인지, 관객과 시청자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인지 늘 고민하며 작업하겠다”고 덧붙였다. 해외 일정으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박 감독은 영상으로 소감을 밝혔다. 박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은 영화가 영화일 수 있게 해주는 기본 요소들에 충실하고자 한 작품”이라며 “비저너리로 선정된 것이 흥미롭고,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의미도 담긴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K콘텐츠는 강력한 글로벌 팬덤을 만들며 세계 곳곳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구창근 CJ ENM 대표는 “K엔터의 힘은 사람이 가진 독창성에서 비롯된다”며 “비저너리 수상자들처럼 K엔터가 만들어갈 미래의 모습에 대해 계속 고민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공중 곡예를 하는 피에로 우첼로는 서커스단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예사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우첼로는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려고 애쓴다. 공연이 끝난 뒤 우첼로에게 남는 건 외로움과 불안감이다. 사랑받고 싶지만 그런 마음이 커질수록 복잡한 감정이 우첼로를 서서히 옥죄어 온다. 어느 날 우첼로는 방안에 걸린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때 흰색 깃털 하나가 나타난다. 깃털을 따라 내려가자 굳게 닫힌 문이 나왔다. 자물쇠 위에 찍힌 문양에 우첼로가 조심스레 손을 얹자 문이 철컥 열린다. 방 안은 새장에 갇힌 아이들로 가득했다. 바로 우첼로의 자아였다. 그제야 우첼로는 깨닫는다. 자신을 괴롭혔던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자신이란 것을 말이다. 내면을 돌보지 못한 탓에 버려진 마음의 상처가 커졌다. 우첼로가 새장 안 아이들을 한 번씩 안아 주자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 자신을 지키는 자존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우첼로의 모습을 인형으로 구현해 한 편의 인형극을 보는 것 같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팬데믹 국면에서도 K컬처 시장은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국내 미술시장 유통액은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겼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4일 발표한 ‘2022 미술시장 규모 추산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에서 거래된 미술품 유통액은 1조377억 원으로 2021년(7563억 원)보다 37.2% 늘었다. 미술시장 ‘1조 원’의 동력을 이끈 큰 축은 아트페어와 화랑이었다. 지난해 아트페어 매출액은 3020억 원으로 전년(1889억 원) 대비 59.8% 증가했다. 문체부는 “아트페어 방문객 수가 2021년 77만4000명에서 지난해 87만5000명으로 13.1% 늘면서 아트페어 매출액이 늘어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9월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의 공동 개최는 미술시장에 열기를 더했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리면서 한국이 차세대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프리즈 서울 관람객도 7만 명을 넘기며 흥행했다. 다만 ‘프리즈 서울’ 매출액은 공개되지 않아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MZ(밀레니얼+Z세대)세대가 새로운 컬렉터로 부상한 점도 미술시장의 활기를 더했다. 화랑을 통한 판매액도 2021년 3142억 원에서 지난해 5022억 원으로 59.8% 증가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지난해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크게 성장해 외국 작품을 다루는 한국계 화랑들 창고에 재고가 없을 정도였다”며 “이배, 이건용 등 한국 인기작가들 작품 재고도 찾기 어려워 아트페어나 미술품 경매에서 전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곤 했다”고 말했다. 한 유명 갤러리 관계자도 “지난해 상반기 각 전시장과 아트페어에선 작품의 판매 속도가 여느 때보다 빨랐고, 판매 가격도 전반적으로 껑충 뛰었다”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미술계에서도 한국 미술시장을 주목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지난해 상반기(1∼6월) 1450억 원이었던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는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하반기(7∼12월)에는 883억 원으로 줄었다. 출판 음악 등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꾸준히 늘어 2021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21년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124억5000만 달러(약 14조 3000억 원)로 전년(119억2000만 달러)보다 4.4% 늘었다. 문체부는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한국 가수들이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져 콘텐츠 수출액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며 “2022년 수출액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K콘텐츠에 대한 세계인의 사랑이 더욱 커져 지난해 더 많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동아일보 올해 신년호 A1면에 이수지 그림책 작가의 그림이 실렸다.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지난해 수상한 이 작가가 새해를 맞아 동아일보 독자들을 응원하는 작품을 보내온 것이다. 하얀 눈 뭉치를 만들어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빨간 파랑 노랑 녹색 등 다양한 색의 크레파스를 덧대 스케치한 그림 속 아이들의 신난 표정은 마치 사진을 보듯 생생했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행복한 작품이었다. 이 작가는 평소 연필·목탄으로 스케치하고 최소한의 색을 입힌다. 그의 작품 ‘강이’ ‘선’ ‘파도야 놀자’를 봐도 흑심의 물성을 최대한 활용한 연필 드로잉을 자주 사용한다. 이번에 동아일보에 선보인 그림은 달랐다. 색감이 다채로웠다. 독자들 역시 “신문 1면을 보고 아이처럼 웃음을 지은 건 처음이다”, “매년 보는 해돋이 사진도 의미 있지만, 작품을 실은 게 신선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지 말고 너의 눈 뭉치를 날리렴, 높이 멀리 신나게!’라는 이 작가의 자필 응원 문구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독자도 있었다. 가끔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을 통해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지난해 아동문학을 담당하며 다양한 신간을 접했다. 올해 여섯 살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 ‘인생 2회 차’를 사는 느낌으로 각종 동요와 어린이책을 다시 섭렵 중인데, 매주 쏟아지는 어린이책 속에서 보석 같은 작품을 만날 때 동심의 순수함에 웃고, 반성하고 힘을 얻는다. 기억에 남는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 산타의 이웃집에 사는 다람쥐가 산타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는 모습을 담은 ‘아기 다람쥐의 크리스마스’는 산타를 선물 주는 존재로만 여겼던 통념을 뒤집은 발상이 신선했다. 이 동화를 읽고 나선 기자 역시 부모님 등 누군가를 베푸는 존재로만 여기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바쁘게 살다 보니 미처 서로를 챙기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반성과 함께 훈훈함을 전하는 동화도 있었다. ‘너만을 위한 선물’이다. 다락방 청소를 하다 털실 뭉치를 발견한 주인공 꼬마돼지는 주변 친구들에게 스웨터를 짜 입으라며 모두 선물하는 바람에 정작 자신의 것은 챙기지 못했다. 며칠 뒤 친구들은 스웨터를 짜고 남은 털실로 화려한 무지개색 스웨터를 함께 만들어 꼬마돼지에게 선물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베풀면 선한 결과가 돌아온다는, 다소 진부한 메시지일 수 있지만, 실제 우리 삶에 이런 훈훈한 미담이 흔치 않은 탓인지 마음을 움직였다.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 사용할 다이어리를 구입하고 신년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계묘년 새해엔 어릴 적 가졌던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순수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며 작은 일이라도 도우려고 노력해 보면 어떨까. 밥상물가가 치솟고, 사고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각박한 세상이지만, 결국 행복한 삶은 ‘인간의 따뜻한 관계’에서 비롯되니까.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빨간 장갑은 겨울마다 꼬마의 단짝이 된다. 꼬마가 새하얀 눈을 꾹꾹 눌러 눈덩이를 만들 때 왼쪽 장갑, 오른쪽 장갑은 함께 돕는다. 꼬마가 처음 눈사람을 만들 때도 힘을 모았다. 어느 날, 꼬마가 오른쪽 장갑을 잃어버렸다. 왼쪽 장갑은 홀로 집에 돌아왔다. 항상 나란히 함께했던 오른쪽 장갑이 없어 허전하다. 다음 날 아침 꼬마는 눈을 뜨자마자 오른쪽 장갑을 찾아 나서지만 찾지 못한다. 엄마는 꼬마에게 오른쪽 장갑을 새로 떠준다. 그사이 숲에 버려진 오른쪽 장갑은 토끼와 생쥐, 비둘기, 청설모의 이불이나 스웨터로 변신한다. 며칠 뒤 왼쪽 장갑은 숲속 나뭇가지에 걸린 빨간 무언가를 발견한다. 오른쪽 장갑이다. 늘어나고, 올이 풀려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만 두 장갑은 서로를 단박에 알아본다. 두 장갑은 다시 함께할 순 없지만,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원치 않게 변한 환경에서도 장갑들은 슬퍼하지 않는다. 되레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행복을 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털실로 만든 장갑의 무늬 하나하나를 연필로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은 생생함을 더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창의인재동반사업 교육 과정에서 만든 3분짜리 영상 ‘요일마다’가 네이버를 통해 공개됐는데 이를 본 명필름에서 애니메이션 ‘태일이’ 연출을 제안했어요. 덕분에 ‘태일이’를 연출할 수 있었고 안시 국제영화제 특별상까지 받게 됐죠.” 장편 애니메이션 ‘태일이’(2021년)는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대통령상(애니메이션 부문), 안시 국제영화제 특별상,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관객상 등 올해 국내외에서 상을 휩쓸었다. 전태일 열사의 삶을 그린 ‘태일이’를 연출한 홍준표 감독(37)은 지금의 자신을 만든 일등 공신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창의인재동반사업을 꼽았다. 2016년 창의인재동반사업 창의교육생(멘티) 출신인 그는 “10년 넘게 ‘태일이’ 시나리오 작업을 해온 명필름에서 전태일 열사를 현대적인 이미지로 연출할 젊은 감독을 오랜 시간 찾고 있었다”며 “명필름 관계자가 ‘요일마다’를 보고 표현 방식과 영상 구현이 ‘태일이’와 잘 맞는다고 판단해 제게 연출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창의인재동반사업의 멘토가 돼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홍 감독을 비롯해 창의인재동반사업을 통해 프로의 세계에 한발 가까워진 젊은 창작자가 많다. 창작뮤지컬 ‘금악’ ‘니진스키’의 대본을 쓴 김정민 작가(35) 역시 2019년 멘티 출신이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음악팀에서 건반을 담당했던 그는 2019년 뮤지컬 연출가 김규종에게 지도를 받았다. 김 연출가는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에서 반 고흐의 명작들을 무대에서 서정적이면서도 때론 역동적인 영상으로 구현해 호평을 받았다. 김 작가는 “김 연출가가 기술을 활용한 연출력이 뛰어나, 제가 극본을 쓸 때 단순히 대사만 쓰는 게 아니라 어떤 영상 기술을 해당 장면에 접목할 수 있을지 고려하며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교육 과정에서 동료 멘티 5명과 10분 분량의 창작 뮤지컬을 만들었다. 그는 “테스트용으로 만든 작품이었지만 반응이 좋아 한 공연제작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매지너리’라는 뮤지컬로, 사람들의 기억을 원하는 대로 삭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라며 “내년 말 초연하는 걸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멘티로 활동한 이희범 씨(30)는 영화 ‘명량’을 제작한 김주경 프로듀서의 지도를 받아 사극 ‘난장’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장을 배경으로 양반 자제들 대신 대리시험을 보는 천재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책에선 배울 수 없는 현직 선배들의 노하우와 경험,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걸그룹 ‘마마무’ ‘오마이걸’ 등을 길러낸 윤영준 프로듀서(43)는 6년째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교육생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며 “프로듀서로 성공하려면 초기엔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중점적으로 가르친다”고 말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올해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문지원 작가,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의 김민석 작가, 국내 첫 우주 공상과학(SF) 드라마인 ‘고요의 바다’ 최항용 감독, 영화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이신화 작가.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 창의교육생 출신이라는 것. 올해로 10년째 운영 중인 창의인재동반사업은 영화, 뮤지컬, 웹툰 등 문화산업 분야로 진출하길 희망하는 예비 창작자에게 교육과 현장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각 분야 전문가와 예비 창작자의 일대일 멘토링 프로그램이 호평받고 있다. 창의인재동반사업은 34세 이하 예비 창작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전우영 콘텐츠진흥원 교육기획팀장은 “콘텐츠 창작 분야에 특화된 멘토링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법인을 ‘플랫폼기관’으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며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 플랫폼 기관을 통해 멘토와 멘티를 연결해 훈련하고 창작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의인재동반사업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1560명의 멘토와 3253명의 멘티를 배출했다. 배우 강동원, 김윤식, 박소담이 출연해 관객 544만 명을 모은 영화 ‘검은 사제들’은 멘티 1기인 장재현 감독이 창의인재동반사업 교육과정에서 인큐베이팅해 상업영화로 성공시킨 작품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집필한 문지원 작가는 2013년 멘티로 참여했다. 문 작가는 교육을 받은 후 영화 ‘증인’의 각본으로 제5회 롯데시나리오공모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프로 작가로 데뷔했다. 문 작가는 “프로파일러나 과학 수사 전문가, 무속인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거나 캐릭터 디자인을 위해 성격유형검사(MBTI) 전문가를 초청하는 등 쉽게 얻기 어려운 기회를 창의인재동반사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하는 또 다른 주요 인재양성사업은 2018년 시작한 대학 중심의 산학협력 프로젝트인 ‘콘텐츠원캠퍼스 구축 운영 사업’이다. 콘텐츠원캠퍼스 사업에 선정된 대학의 학생들이 융복합 프로젝트를 개발하도록 관련 기관과 기업체가 현장실습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5년간 79개 교육기관과 학생 4506명이 참여했다. 2020년 칸영화제 확장현실(XR)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영화 ‘레인 프루츠’(2019년)와 같은 해 선댄스영화제 프런티어 엑시비션 부문에 국내 영화로는 처음 초청된 ‘허수아비’(2019년)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콘텐츠원캠퍼스 사업 지원을 통해 만든 작품이다. 조현래 콘텐츠진흥원장은 “국내외에서 열광하는 K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제작돼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매력국가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인재를 양성하는 데 더욱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나리분지, 관음도, 도동항, 태하향목 관광모노레일…. 경북 울릉군을 방문한 이들이 많이 찾은 곳이다. 강원 정선군에 간 이들은 강원랜드, 정선아리랑시장, 병방치 스카이워크를 주로 방문했다. 최근 1년간 국내에서 방문자가 가장 오래 머문 울릉군과 두 번째로 길게 체류한 정선군에서 각광받은 곳이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 빅데이터 플랫폼 ‘한국관광 데이터랩’(datalab.visitkorea.or.kr)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울릉군에서는 방문자 1인당 평균 11시간, 정선군에서는 7.1시간 머물러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 2위로 나타났다. 지난해 문을 연 한국관광 데이터랩에서는 국내 지역별 방문자의 나이, 성별, 거주지는 물론 체류 시간, 소비 내역, 내비게이션·맛집 검색 순위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울릉군, 정선군에 이어 같은 기간 방문자가 오래 머문 곳은 경북 영양군, 강원 양구군 홍천군 고성군, 제주 서귀포시 제주시, 경북 울진군, 인천 옹진군, 강원 평창군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지역에서는 평균 6시간 조금 넘게 머물렀다. 방문자는 해당 지역에 8일 미만 머문 사람으로 했다. 최현민 관광공사 관광빅데이터전략팀 차장은 “이들 지역은 대도시와 상당히 떨어져 있어 마음먹고 찾아가야 하는 곳”이라며 “특히 배로만 갈 수 있는 울릉군은 오가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볼거리가 풍성해 충분히 머물고 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비게이션 검색 순위를 통해 사람들이 어디를 많이 찾는지 알 수 있다. 영양군은 영양자작나무숲, 송하자연미륵불, 검마산 자연휴양림이 1∼3위를 차지했다. 옹진군은 십리포해변, 영흥도, 장경리해변 순으로 나타났다. 50대 이상 방문자의 비율이 높은 곳은 울릉군(62.7%), 영양군(54.3%), 울진군(47.6%), 정선군(46.5%)이었다. 해당 지역과 가까운 거리에 사는 이들이 다수로, 인근 지역은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령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리조트와 골프장이 많은 홍천군과 평창군은 연령별로 고루 방문했고, 강원보다는 거리가 먼 서울·경기에서 오는 이들의 비율이 높았다. 양구군은 20대 비중이 27.2%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특히 20대 남성이 21.9%나 됐다. 이는 양구군에 군부대가 있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 차장은 “8일 미만 머문 사람을 방문자로 집계하기에, 상주하는 장병은 제외되지만 면회 등을 위해 20대 남성들이 자주 드나든 것 같다”고 말했다. 관광공사는 방문 지역을 시군구보다 더 세분화하고 현재 1년인 데이터 조회 기간도 늘릴 예정이다. 김영미 관광공사 관광빅데이터실장은 “지역별 축제 기간에 방문자들이 어느 지역에서 오는지와 함께 소비 내역, 내비게이션 검색지도 파악할 계획”이라며 “지방자치단체와 여행사가 치밀하게 관광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데이터를 더 정밀하게 구축하겠다”고 말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해녀인 할머니는 매일 아침 바다에 나가기 전, 손녀가 먹을 주먹밥을 만들어 놓는다. 할머니는 “주먹밥 빨리 안 묵으면 거인이 와서 다 가져간데이”라며 아이의 끼니를 챙긴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주먹밥이 사라진 걸 알게 된다. 이때 나타난 거인이 “미안. 네 주먹밥을 내가 먹어버렸어”라고 고백한다. 아이와 거인은 이날 이후 매일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친구가 된다. 거인은 아이에게 자신의 보물인 동백나무를 알려주며 꽃이 피면 가장 먼저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아이의 소원은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를 만나는 것. 할머니는 그런 아이에게 “눈 오면 (엄마가) 올 끄다”라며 달랜다. 어느 날 거인은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흰 꽃이 핀 동백나무를 바라본다. 그러자 선물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엄마 역시 한 손에 토끼 인형을 든 채 아이를 만나러 나선다. 부산 영도 봉래산에서 전해 내려오는 ‘장사 거인 전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썼다. 거인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괴물과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전설에 상상력을 더했다. 연필로 그린 스케치에 옅게 채색한 수채화는 이야기의 따뜻함을 배가시킨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오징어게임’으로 한국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78)가 최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실이 보도됐다. 그는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서 주연보단 조연을 도맡으며 활동한 배우였다. 그러다 일흔일곱의 나이에 만난 ‘오징어게임’으로 뒤늦게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래서일까. 연극계 선후배 동료들은 그를 누구보다 응원했다. 그는 인지도가 높아진 이후 각종 광고 촬영 제의가 들어와도 ‘깐부 할아버지’ 오일남 캐릭터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면 안 된다며 일부 광고는 단칼에 거절했다. 배우로서의 탄탄한 신념과 철학, 그간 무대에서 쌓은 노력이 뒤늦게 조명되며 그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도 통하는 배우가 됐다. 노배우의 설자리가 좁았던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그의 활약은 동료 노배우들의 활로를 넓히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17년 여성 A 씨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혐의로 최근 재판에 넘겨졌다. 본인은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날의 진실’은 수사와 재판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해당 뉴스를 접하자마자 2018년 연극계를 뒤흔든 ‘미투 운동’이 떠올랐다. 당시 연극계 거장이라 불리던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 극단 목화를 창단한 오태석 극작가 겸 연출가, 흥행에 성공한 연극을 다수 제작했던 수현재컴퍼니 대표이자 배우 조재현 등에 대한 성추문 폭로가 이어졌다. 이후 이들은 연극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길 떠나는 가족’ ‘백석우화’ 등 다수의 작품으로 한국적인 극 양식을 개척하고 독특한 무대미학을 구현해 굵직한 연극상을 휩쓸었던 이윤택은 극단 단원들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로 2019년 징역 7년을 받았다. 다양한 방언을 수집해 사라져 가는 우리말을 연극 언어로 되살리고, 배우 박영규 손병호 김병옥 정은표 성지루 박희순 임원희 장영남 유해진 등을 길러낸 극단 목화의 오태석 대표는 2018년 연극계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지난달 28일 별세했다. 거장들의 미투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연극계에선 조심스럽지만 양분된 목소리가 나왔다. ‘잘못으로 인해 공은 사라지고 과만 남았다’든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좋은 연기를 한다는 평단의 평가를 권력 삼아 몹쓸 짓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연극계에는 과거부터 엄격한 상하관계와 도제식 교육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폐쇄적인 구조에서 여러 문제들이 생겼다. 2018년 미투 운동 당시에도 연극계에선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이 더 많다”거나 “곳곳의 피해자들이 언제 용기를 내느냐에 따라 또 다른 사건이 수면 위에 올라올지 모른다”는 말이 많았다. 실제 4년 뒤 뒤늦게 글로벌 스타로 부상한 오영수의 성추문 논란이 터졌다. 아무리 공을 많이 쌓아도 한 번의 잘못으로 몰락할 수 있음을 ‘거장’이라 불렸던 연극계 선배들의 사례가 보여준다. 연기예술의 기초로 불리는 연극계에서 성추문 논란은 연극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예술을 방패 삼아 범죄를 저지르는 적폐는 사라져야 한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아이가 땅에게 물었다. “행복을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땅은 “정말 행복을 찾아 떠날 거니? 바다에 가보렴”이라고 답한다. 아이는 바다에서 물과 조개껍질을 봤지만 행복을 찾지 못한다. 땅은 아이를 폭포로, 숲으로, 사막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아이는 폭포에선 물보라와 이끼, 숲에선 뿌리와 나뭇잎, 사막에선 돌과 모래만 봤을 뿐 그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한다. 땅은 마지막으로 ‘세상 꼭대기’로 가보라고 말한다. 그곳 역시 눈과 얼음만 있을 뿐, 행복은 없다. “이렇게 멀리 와서 많은 것을 봤어요. 그런데 행복은 보지 못했어요.” 그러자 땅이 답한다.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가보렴….” 이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행복만 좇던 아이가 놓친 바다, 폭포, 숲, 사막의 아름다운 절경이 그림으로 연달아 이어진다. 반전이자 이 책의 묘미다. 그림은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 출신의 작가가 그렸다. 아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긴 뒤 말한다. “행복은 우리 곁에 있었어.”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작은 오두막집에 홀로 사는 소년은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는 혼자야. 아무도 없어….” 어느 날 창문 너머로 커다란 눈동자를 지닌 거대한 금붕어가 나타난다. 금붕어가 무서우면서도 궁금한 소년은 한참을 망설이다 마음을 굳힌다. “결심했어. 그게 뭐든 마주하기로.” 커다란 금붕어의 눈동자와 마주친 소년은 용기내 말을 건넨다. “너도 혼자야? 널 ‘날개’라고 부를게. 이제 우리는 친구야.” 친구가 된 소년과 날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바위틈에 날개의 몸이 껴버리는데…. 그때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손이 내려와 바위를 들어올린다. 거대한 손은 어려움에 처한 소년과 금붕어에게 공존을 일깨워준다. 날개를 만난 뒤 자신의 세상을 넓혀가는 소년이 “나는 혼자가 아니야. 혼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야”라고 고백하는 대목에선 삭막한 세상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된다. 몽환적인 수채화 그림은 따뜻함을 배가시킨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