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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 3당이 2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방송4법 개정을 위해 공조에 나섰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여권 우위로 재편되며 김장겸 MBC 사장 해임안 처리가 임박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전날 야 3당 원내대표 회동을 소개하며 “방송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문재인 정부가) 방송 장악 시도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게 합의사항”이라고 말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도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3일 공동기자 간담회를 열어 방송법 개정안 등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가 필요한 법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방송법 개정안 처리에 여권이 추진하는 다른 법안을 연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야 3당이 공조에 나선 방송법 개정안은 지난해 7월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민의당, 정의당 소속 의원 162명이 공동 발의한 것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이사를 여당이 7명, 야당이 6명 추천하고 사장 임명은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뽑도록 하는 ‘특별다수제’를 따르도록 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청와대와 여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코드 인사’를 사장으로 선임하기 어렵다. 방송법 개정안은 9월 1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된 이후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야 3당은 MBC 사장의 교체가 가시화되자 12월 9일 끝나는 정기국회 안에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며 분주해졌다. 여당도 원칙적으로 “정치권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개입하는 길을 막아야 한다는 대의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야 3당은 “개정되는 방송법에 따라 MBC 사장의 임명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야당 주장은 전 정권에서 임명한) 김장겸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공영방송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수영 gaea@donga.com·길진균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6개월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여당이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국정감사 종료와 예산 국회를 앞두고 동아일보는 주요 당 대표들에게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첫 번째 순서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30일 만났다. 추 대표는 적폐청산의 의미에 대해 “미래로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잘못을 바로잡아 투명하고 공정한 법과 제도로 귀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폐청산의 출구전략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고쳐놓은 것도 없다. 고치자고 외쳤을 뿐인데 이제 그만 덮어버리자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피로감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마저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추 대표와의 일문일답. ―적폐청산에 매몰돼 미래 비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을 오래 치료했다고 해서 ‘병간호에 지쳤다. (환자를) 이제 버리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지치더라도 ‘끝까지 해 봅시다’라고 해야죠. 공기업 채용비리 등 공정한 기회를 빼앗은 과거를 바로잡는 게 미래를 위한 것이다. 적폐청산은 미래와 함께 가는 것이다. 우려하는 것처럼 전혀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고 하는 것이 아니다.” ―청와대와 여당이 협치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태극기를 든 국민도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여야 모두가 협치에 대해 미숙하다. 깨진 그릇을 어떻게 모을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협치다. 야당이 여당에 협치를 요구하면서 줄 것이 뭐가 있느냐고 묻는 것은 협치가 아니다. 그건 거래다. 태극기 진영도 물론 국민이다. 그렇지만 소리 지른다고 해서 여당이 왜 껴안아 주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올바른 협치의 방법이 아니다. 바람직한 주장을 하고 서로 조율해 나가는 것이 협치다. (야당이 국회에) 불출석하고 있는데 (여당에)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답변을 할 수 없다.” ―국민의당과 구체적인 협치 방안이 있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는 하진 않는다. 국민에게 뚜렷하게 이야기하고 동의를 얻는 것이 정치다. 각자 공약한 것의 차이를 좁히고 공통 공약을 모아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 대통령 공약대로 개헌안 투표가 성사될 수 있다고 보나. “가능성을 점치기보다는 그렇게 돼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이에 동의했다. 모든 정당은 민심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다. 난파선이 될 생각이 아니라면 민심을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내년 6·13 지방선거 전략은…. “오랫동안 한집에 계속 살면 켜켜이 먼지가 쌓이는데 빗자루질 몇 번 한다고 먼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방 토호들이 지방 권력과 유착해 인허가 등 특혜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한 번도 못 바꿔본 오래되고 낡은 지방 권력은 바꿔줘야 한다. 준비된 후보나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를 민주당 험지에 출마시켜 지방 권력 교체 필요에 대한 시민적 공감을 얻어내겠다.” ―공천을 책임지는 당 대표로서 청와대 참모들의 지방선거 출마를 어떻게 생각하나. “‘청와대의 누구다’ 등의 이유로 당에서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본인들 마음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가지고 지방선거인 만큼 생활 정치를 더욱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에서 인위적으로 어떻게 한다고 해서 바람이 불지는 않을 것이다.” ―본인의 서울시장, 대구시장 출마설이 거론되는데…. “나는 ‘설’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출마 여부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정리했나. “입장은 속으로 정리하면 됐지 굳이 (지금) 언론을 상대로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웃으며) 나도 호기심을 계속 주면서 가야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재통합 논의 등 야당의 견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민은 지난 70년간 주권자로서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 왔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국민이 차린 밥상을 정치 집단이 뒤엎는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무책임한 정당, 무책임한 정치인에게 국민이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인사에 있어서 과(過)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조각이 마무리된 뒤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 필요하다고 보나. “본인만 알고 있는 일부 사안은 외부 검증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사안들이 국민의 이해 수준을 넘었다고 볼 때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인사 철회를 하거나 본인이 사퇴를 하는 것이 절차다. 그런 절차대로 가고 있다. 대통령은 이미 야당 대표 회동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다. 추가적인 유감 표명을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살지 않는 집 파시라’고 강조했고, 추 대표 역시 보유세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 고위 관료 상당수는 다주택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마음으로 할 것이라 믿는다.”(추 대표는 이 대목에서 잠깐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대답은 짧았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딸에 대한 편법 증여 의혹은 어떻게 보나. “바람직하지 않다.”길진균 leon@donga.com·최우열·박성진 기자}
최근 사석에서 몇몇 친분이 있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만났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이슈가 화제에 올랐다. 인사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번에 자유한국당으로 파견 나갔던 공무원들은 안됐어. A 국장은 승진은커녕 본부로 가지도 못하고 지방으로 갔더라. 그래서 정권 말에는 당으로 가면 안 되는 건데….” 다른 이도 거들었다. “그걸 누가 몰라? 그래도 다행히 3년 넘게 당에 있던 B 국장은 이번에 1급으로 승진했잖아. 그나저나 이번엔 누가 간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올 3월. 한국당 안에선 드러나지 않은 인사(人事)가 있었다. 중앙부처 공무원 출신 당 수석전문위원 15명이 사임하고 조용히 당을 떠났다. 이들 대다수는 친정인 원 소속 부처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각 부처에서는 새로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 보낼 공무원 선발 작업이 한창이다. 여당 정책위에는 15명 안팎의 국장급 공무원, 즉 경험이 많은 관료들이 맡는 자리가 있다. 당과 정부의 정책 조율 및 가교 역할을 맡고 있는 당 수석전문위원들이다. 이들은 정치 논리에 치우치기 쉬운 정당 정책을 보완하거나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이들을 통해 당의 의사나 기류를 원활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당 전문위원들은 1, 2년간 당에 봉사한 뒤 특채 형식으로 친정으로 복귀하는 것이 사실상 보장된다. 진급도 뒤따른다. 2급 국장급 인사가 집권당을 거쳐 1급 차관보 또는 실장급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 통례다. 하지만 잃는 것도 있다. 친정을 떠난다는 부담에다 연봉은 30%가량 삭감된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한 정당은 이들이 정부에서 받던 연봉을 그대로 줄 여력이 없다. 민주당은 국장급 당료가 받는 7000만 원 안팎의 연봉을 이들에게 지급한다. 그래도 집권당의 실세 정치인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회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까지 올랐던 변양균 씨도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을 거쳤다. 그래서 정권 초반이나 집권당의 정권 재창출이 유력할 때는 각 부처 엘리트들이 앞다퉈 당 전문위원이 되기 위해 경합을 벌이기도 한다. 여당은 여당대로 중앙당 당직자 수를 최대 100명으로 제한하고 있는 정당법을 근거로 내밀며 관료에게 내준 15명 안팎의 국장급 당료 자리를 각 부처나 정부기관에서 마련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여당 당료들은 행정부 경험을 쌓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정당 근무는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당 수석전문위원은 정부에 사직서를 내고, 입당 절차를 거쳐 고위 당직을 받은 정식 당원이다. 매달 5만 원 상당의 당비도 낸다. 월급 또한 당의 재정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당과 정부가 이들을 애써 ‘당직자’가 아닌 ‘파견 공무원’으로 부르고 1, 2년 뒤 친정으로 복귀시키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다. 예전 자료를 뒤져봤지만 언제부터 어떻게 이 제도가 시행됐는지 찾기가 어려웠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이던 1988년 국회에서 “집권당에만 공무원을 파견해 특정 정당에 봉사하게 하는 것은 3권 분립 정신에 위배된다. 정부는 야당에도 공무원을 보내줘야 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미뤄볼 때 군사정권 때도 존재했던 것 같다. ‘관료 전문위원제’의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헌법이 규정한 3권 분립과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이라는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꼭 필요한 제도라면 관행으로 이어갈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공론화를 거쳐 시스템으로 안착시키는 것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000}
박근혜 정부 취임 첫해인 2013년 10월 당시 장경욱 국군 기무사령관의 전격 경질은 군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떠들썩하게 한 미스터리 사건이었다. 취임 6개월 만의 이례적 경질이었다. 후임으로 박 전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 씨와 육사 동기생인 당시 이재수 중장(육사 37기)이 발탁됐고 당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 ‘권력 핵심에 의한 되치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다만 당시에도 기무사 보고서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와 청와대 직보의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많았는데, 그 미스터리가 풀릴지 주목된다.○ 김관진 전 장관의 인사 전횡 내용 담겨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열람한 기무사의 ‘장군 인사 절차 및 여망’ 보고서에는 김 전 장관의 ‘인사독점’ 사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장관 교체가 최선의 방안”이라고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돼 있다. 특히 보고서는 ‘독일육사’(독일 유학파) 출신 중용 문제와 함께 김 전 장관 시절 도입한 ‘우수 군사전문가’ 제도가 장관의 측근 인물 선발에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1년과 2012년 이 제도를 통해 준장 15명을 선발했는데, 김 전 장관과 인연이 있는 사람 4명이 발탁됐다는 것. 이 의원은 “이 제도를 통해 당시 김 장관은 이전까지 장군 승진에서 4차례 탈락한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의 주역인 연제욱 전 국군 사이버사령관(육사 38기)을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또 “류성식 전 인사참모부장(육사 39기)은 3차 준장 진급자임에도 1차에 사단장으로 진출시킨 후 조기에 인사참모부장직에 보직시키는 등 특혜를 부여해 군내 비난 여론이 무성하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다만 보고서 기재 사항과는 별개로 김 전 장관의 인사 전횡의 사실 여부는 증거로 입증돼야 하는 문제라는 인식이 당시 군 내부에 퍼져 있었다.○ 김관진 vs 장경욱 기무사령관의 청와대 직보 문제는 단순 규정 위반은 될 수 있어도 지휘체계 문란은 아니라는 게 군 내부의 일반적인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령부령에 따르면 사령관은 장관의 명을 받아 업무를 총괄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장 전 사령관이 장관을 건너뛰고 청와대에 직보한 행위는 일단 규정 위반이자 지휘체계 문란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군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 직보는 청와대의 하명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장 전 사령관의 행위를 지휘체계 문란으로 볼 순 없다는 것이다. 장 전 사령관의 해임은 일부 주요 야전 지휘관의 부적절한 처신을 확인하고 주의와 경고를 요구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경질 직후 돌았다. 박 전 대통령의 남동생인 지만 씨의 육사 동기(37기) 중 일부의 불합리한 행태를 들추다가 ‘부메랑’을 맞았다는 것이다. 지만 씨 동기 관련 보고서 내용은 이날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은 장 전 사령관 경질 이유에 대해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러 가지 능력이나 자질 등이 기무사를 개혁하고 발전시킬 만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진급 심사에서 누락돼 교체가 불가피했다”고 답했었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국방·안보 라인은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 전 장관이 장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장 전 사령관이 ‘힘의 균형추’ 역할을 하기 위해 청와대에 김 전 장관의 인사 전횡을 보고했다가 오히려 국방부에 ‘되치기’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정 견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박성진 psjin@donga.com·손효주·길진균 기자}
얼마 전 추석 연휴 기간 중에 국회로 출근했을 때다. 밤늦은 시간까지 의원회관 사무실은 대부분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10여 년 전 국회를 처음 출입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해마다 보게 되는 국회만의 추석 풍경이다. 당 지도부 등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국회의원들에게 국정감사 기간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수확철이나 마찬가지다. 의원들은 1년 동안 지켜보면서 정부 각 부처가 쉬쉬하는 정책의 실패 또는 문제점을 밝혀내고,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안을 관철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성공하면 능력 있는 의원, 밥값 하는 의원으로 인정받는다.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돼 국민에게 이름이나 얼굴이 노출되면 금상첨화다. 보좌진 역시 마찬가지다. 크게 ‘한 건’ 올린 보좌진은 몸값이 올라간다. 비서관에서 보좌관으로 승진하거나 다른 의원에게 영입 제안을 받기도 한다. 정치부 기자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국감 때가 되면 정치부 기자들에게는 e메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을 통해 매일 수백 건의 국감자료가 밀려든다. 살펴보면 놀랄 정도로 의미 있는 자료들이 꽤 많다. “수도권 대학, 대학구조개혁평가 이후 정원 외 모집 늘어”(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 “방사능 오염물질, 인천 포항 등 고철업체에 방치”(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 “10년 미만 폐차, 관용차 46.7% vs 자가용 7.1%”(국민의당 박주현 의원) 16일 하루만 해도 이를 포함해 300건이 넘는 자료들이 e메일로 들어왔다. 주말 동안 의원과 보좌진이 밤을 새워 만든 자료들이다. 평소 같으면 신문 주요 면에 크게 다뤄도 손색이 없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료는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다. 너무나 많은 자료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이크가 큰 당 지도부나 일부 의원들의 정쟁으로 이들의 목소리는 파묻히기 일쑤다. 해마다 국감 무용론 또는 한계론이 제기되는 것도 매일 TV에 얼굴을 내밀고 상대 당을 비난하는 당 지도부와 국감장에서 고함치고 윽박지르는 일부 의원들의 ‘활약(?)’에 기인한 바 크다. 올해 국감도 마찬가지다. 요즘 국회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단어는 적폐청산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연일 적폐청산을 강조하고 있고, 이 프레임을 깨지 못한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아예 적폐청산 프레임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른바 ‘신(新)적폐청산’ 전략이다. 국회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온통 적폐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야가 각각 ‘적폐’로 규정한 과거 정부의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제도 및 시스템을 정상화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여야 지도부는 문제 해결보다는 적대적 공생, 반정치 프레임 확산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권은 이제 적폐청산이라는 호랑이 등에 함께 탄 형국이 됐다. 여야 지도부 모두가 나중에 호랑이 등에서 떨어져 물려 죽더라도 지금은 지지층의 군중심리에 올라타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지만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잘 끌어가는 것이 제대로 된 정치의 역할이 아닐까. 지금처럼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웠던 노무현 정부 때 “운전사가 백미러를 보는 것은 앞으로 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던 한 중진 의원의 말이 떠오른다.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서게 될까. 일단 이 전 대통령은 현재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방송장악 의혹을 이유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증인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은 4대강 사업의 책임을 이유로 환경노동위에서 증인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증인 채택에 대해 강경했던 민주당은 최근 들어 신중론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분위기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12일 라디오에서 “민주당이 생각하는 증인에 이 전 대통령이 포함되나”란 진행자의 거듭된 질문에 “각 상임위가 논의할 사안”이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했다.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범계 의원 역시 10일 국회에서 회의를 마친 뒤 “(증인 채택) 사안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섣불리 전직 대통령을 (채택) 할 사안이 아니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민주당이 이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을 끝까지 고집할 경우 자칫 보수 야당이 주장하는 정치보복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지도부는 “이미 피고발인 신분이 돼 있는 이 전 대통령이 조만간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민주당이 보수층을 직접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최근 5년간 우울증으로 고통받은 국민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60대 이상 우울증 환자가 꾸준히 증가해 전체 우울증 환자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우울증 진료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국민이 300만 명(연인원)에 이르렀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매월 5만 명의 국민이 우울증 치료를 받은 셈이다. 2012년 58만 명 수준이던 우울증 환자는 2013년, 2014년에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다 2015년 60만 명을 넘겼다. 지난해 국내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은 인구는 64만1941명으로 4년 전인 2012년 58만7860명에 비해 9.2% 늘었다.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우리 국민이 우울증 진료비로 지출한 금액은 1조3364억 원에 이른다. 우울증 진료를 위해 환자 1인당 45만 원 정도의 의료비가 지출된 셈이다. 지난해 국내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은 남성은 21만1666명으로 4년 전인 2012년 18만2162명보다 14% 증가했다. 성별 진료 인원은 여성이 남성보다 매년 2배가량 더 많았지만 여성은 2012년 40만5698명에 비해 2016년 43만275명으로 5.7% 증가했다. 단순 인원은 여성이 많지만 남성의 증가율이 급증한 것이다. 특히 최근 5년간 60대 이상 우울증 환자는 125만 명으로 집계돼 전체 우울증 환자 300만 명 중 절반에 육박했다. 2012년 22만9000명 수준이던 60대 이상의 우울증 환자는 2016년 27만6000명으로 늘었다. 20.5%가 증가한 수치다. 60대 이상 우울증 환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우리 사회의 1인 가구 증가, 황혼이혼·사별 등 가족 해체, 노후 파산 및 실업난 등의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노년층의 우울증 증가 추세는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자살률 추이와도 연계해 비교할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는 50∼69세 33.3명, 70대 이상은 61.5명으로 파악됐다. 우울증을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처해야 한다는 근거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기 의원은 “가족 해체와 노후 파산 등 사회적 환경이 우리 국민을 우울증으로 내몰고 있다”며 “관계 부처는 우울증의 근본적 원인을 사회에서 찾아 종합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영남권은 부산울산경남(PK)과 대구경북(TK)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5·9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정당 지지율이 역전된 PK는 수도권 못지않은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TK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공략하기 쉽지 않은 곳으로 꼽힌다. 호남권은 지난 국회의원 총선거 때 현역 의원을 휩쓴 국민의당에 여당인 민주당이 도전장을 내미는 형국이다. ○ 영남권 공략하는 민주당, 수성 나선 한국당 부산은 지난 대선 때 진보 진영 후보(문재인 대통령 38.71%)가 보수 진영 후보(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31.98%)보다 득표율이 높았다. 민주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해 그동안 여러 차례 좌절했던 첫 진보 성향 부산시장에 재도전한다. 여당 내 가장 유력한 주자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본인은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끊임없이 차출설이 나온다. 무소속인 오거돈 전 해수부 장관이 민주당 입당 뒤 부산시장 4수(四修)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는 직전 선거에서 서병수 현 부산시장에게 석패했다. 최인호 박재호 의원,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도 거론된다. 이에 맞서 한국당에선 재선에 도전하는 서 시장을 비롯해 조경태 의원, 박민식 이종혁 전 의원 등이 거론되고 바른정당은 김세연 의원 등의 이름이 나온다. 홍 전 지사의 대선 출마로 공석이 된 경남지사는 여권에서는 친문(친문재인) 핵심인 민주당 김경수 의원, 문 대통령의 고교 및 대학 후배인 공민배 전 창원시장 등이 후보군에 들어 있다. 한국당에선 이주영 의원과 창원시장을 지낸 박완수 의원, 홍 전 지사 밑에서 행정부지사를 지낸 윤한홍 의원 등이 거론된다. 울산은 한 번도 단체장 자리를 빼앗긴 적 없는 한국당과 공세에 나선 민주당 후보 간의 격전이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에서는 송철호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한국당에서는 김기현 현 울산시장의 재선 도전이 유력하다. TK는 대구시장 선거에 여당 후보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등판하느냐가 가장 큰 변수다. 20대 총선에서 이미 한 차례 보수의 벽을 뚫은 그가 다시 나온다면 대구시장 승부도 예측불허가 될 수 있다. 한국당에서는 권영진 시장 외에 이재만 최고위원, 곽대훈 의원 등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관용 현 지사(3선)가 물러남에 따라 무주공산이 된 경북은 여야 구도보다는 한국당 내부의 공천 싸움이 본선이 될 수 있다. 이철우 최고위원과 김광림 강석호 등 현역 의원이 경쟁하는 모양새다. ○ 호남권, 민주당 vs 국민의당 각축전 예상 호남권은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을 내주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광주는 현재까지 대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으로 꼽힌다. 민주당 후보로 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지원자는 넘쳐나는데 국민의당 ‘선수’는 찾기 힘들다고 한다. 광주 지역 국회의원이 모두 국민의당 소속이란 점은 변수다. 민주당에서는 윤장현 현 시장의 재선 도전이 유력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강기정 전 의원, 이용섭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최영호 광주 남구청장, 민형배 광산구청장 등도 출마 여부를 재고 있다. 국민의당에서는 박주선 국회 부의장, 김동철 장병완 의원 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호남 지역의 ‘빅 매치’는 전남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이낙연 전 지사의 국무총리 임명으로 공석이 된 전남은 중량감 있는 유력 주자들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전남도 행정부지사를 지냈고 전남 유일의 민주당 현역인 이개호 의원이 도전 의사를 밝혔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출마 여부가 변수가 될 수 있다. 국민의당에서는 주승용 황주홍 의원이 꾸준히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일각에선 박지원 전 대표의 출마 여부를 주목하기도 한다. 전북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치열한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에서는 송하진 현 전북도지사의 재선 도전이 유력하다. 여기에 당내에서 김춘진 전북도당위원장과 이춘석 사무총장 등 3선 이상의 정치 베테랑들이 도전장을 던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민의당에서는 정동영 유성엽 의원 출마 가능성이 꾸준히 돌고 있다. ▼ 최문순 3선-원희룡 재선 성공할까 ▼강원-제주 광역단체장 누가 뛰나강원과 제주는 현직인 더불어민주당 최문순 강원지사와 바른정당 원희룡 제주지사의 수성 여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강원지사는 최 지사가 3선 고지를 밟을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강원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 때 이광재 전 지사가 당선됐다가 낙마한 뒤 2011년 재선거 승리로 도정을 이어받은 최 지사가 2014년까지 내리 승리했다. 최 지사는 본선에 앞서 최욱철 전 의원, 원창묵 원주시장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민주당 ‘예선’을 먼저 돌파해야 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는 각각 권성동 의원과 황영철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당적이 없는 육동한 강원연구원장은 공개적으로 출마 의지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지사 후보군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제주에선 민주당은 물론 한국당 국민의당 등에서 모두 10명 안팎의 후보가 거론되면서 재선 의지를 밝히고 있는 원 지사와 함께 치열한 3파전 또는 4파전이 예상된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3선을 지낸 김우남 현 제주도당위원장의 출마가 유력하다. 4선의 강창일 의원과 4선 도의원 출신인 박희수 전 제주도의회 의장의 출마도 거론된다. 한국당 김방훈 제주도당위원장은 이미 출마를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원 지사의 정무부지사를 지내다 6월 사퇴하고 한국당에 입당했다. 국민의당 후보로는 장성철 제주도당위원장과 강상주 전 서귀포시장 등이 꼽힌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내년 6·13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지역이 몇 곳이나 될지도 관심거리다. 선거 규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물론이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바른정당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잠재적인 차기 대선 주자들의 등판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6·13 재·보선이 ‘미니 총선’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까지 항소심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의원은 4명이다. 자유한국당 박찬우 의원(충남 천안갑), 국민의당 최명길(서울 송파을) 송기석 의원(광주 서갑), 새민중정당 윤종오 의원(울산 북)이 그들이다. 또 한국당 권석창(충북 제천-단양) 배덕광 의원(부산 해운대을), 국민의당 박준영 의원(전남 영암-무안-신안) 등 3명은 1심에서 의원직 상실 형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의원직을 내려놓은 서울 노원병 외에 일부 여야 의원들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할 경우 재·보선 지역은 더 늘어날 수 있다. 한편 민주당 의원들은 4·13총선 이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14명이 재판을 받고 있지만 모두 1심이나 2심에서 100만 원 미만의 벌금형이 선고돼 의원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길진균 leon@donga.com·최고야 기자}
《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 맞는 민족 대명절. 추석 연휴 밥상머리 대화에서 정치와 선거 얘기가 빠질 수 없다. 동아일보 청와대팀과 정당팀 기자 12명도 머리를 맞댔다. 청와대와 여의도 정치인들 사이에서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6개 주제를 놓고 나름대로 문답(問答)을 해봤다. 매일 여러 정치인을 만나 정리한 ‘취재수첩’을 토대로…. 현장 기자들이 ‘족집게’는 아니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어차피 정치는 예측불허의 요지경 아니던가. 》 답변이 팽팽하게 맞섰다. 내년 6·13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고 대다수 국회의원 역시 원칙적으로 개헌에 동의하고 있다. 한 기자는 “답변이 갈리는 것은 당위와 현실의 차이”라며 “여당 개헌특위 의원들도 7공화국 출범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가장 큰 장애물은 국회의 동의, 즉 여야의 합의다. 개헌 국민투표를 위해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가뜩이나 1여 3야 구도 등으로 여당에 유리할 것으로 점쳐지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이슈까지 더해지면 선거 결과는 야권에 더욱 불리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다른 기자는 “국회가 단일안을 내지 못하면 정부가 직접 개헌안을 내겠다고 했지만 야당이 정부안에 동의해줄 리 없지 않느냐”고 했다. 개헌이 가능할 것으로 본 기자들은 ‘국민의 뜻’과 ‘대통령의 의지’에 무게를 뒀다. 또 “여야가 권력구조 개편 등 묵직한 주제를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기본권, 지방분권 등 일부 조항에 대해 우선 합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과 기본권이나 지방분권 문제는 더 복잡할 것이란 견해가 엇갈렸다. 당분간 고공행진을 할 것 같았던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최근 60% 중반대로 하락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65%가 깨지기도 했다. 대다수는 ‘안보위기’를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지만 통상 6개월 정도 유지되는 허니문 기간의 종료에 따른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한 기자는 “문재인 정부 5개월 동안 보여준 것은 칼 휘두르고(적폐 청산), 규제하고(부동산), 퍼준 것(포퓰리즘적 복지정책)이 전부다. 문재인 정부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만큼 60%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야권의 반응을 전했다. 이에 대해 다른 한 기자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당분간 60%대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야당”이라며 “10% 안팎에 머무르는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지지율과 40% 안팎에 이르는 문 대통령 지지층의 충성도를 고려하면 당분간 국정 지지도 고공행진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역설적으로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보위기 못지않게 야권의 지지율 추이가 문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 대다수가 “누군가는 출마할 것”이라고 답했다. 내년 지방선거는 여야 모두에 중요한 전환점이다. 여권 입장에서는 집권 초반 개혁 드라이브 강공에 나설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다. 적폐 청산 및 사회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압승’이 목표다. 야권에서는 문재인 정부 독주를 단숨에 견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출마를 예측한 기자들도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특정 지역의 열세가 눈으로 확인된 순간 ‘차출’의 형식으로라도 등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출마 후보로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꼽는 기자가 많았다. 임 실장은 현재 서울시장, 전남도지사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의 부산시장 출마를 예상하는 기자도 다수였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부산시장 출마,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대구시장 출마를 전망한 기자도 있었다. 기자 2명은 출마에 부정적이었다. 이들은 “집권 초반 인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진땀을 쏟아낸 문 대통령이 1년도 안 돼 진용을 무너뜨리고 새 인물을 발탁하는 모험을 할 가능성은 낮다”며 “차출론이 나오더라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의 전망은 ‘통합’이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3선 의원들이 ‘보수우파통합추진위원회’를 띄웠고 추석 연휴 이후에 이들이 다시 만난다. 한 야권 출입기자는 “두 당의 통합 흐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107석의 한국당과 20석의 바른정당이 전면 통합을 해서 127석의 ‘제1당’이 될 것이냐는 물음엔 곳곳에서 “글쎄”라는 답변이 나왔다. 이미 ‘자강파’의 대표 주자인 유승민 의원이 바른정당 전당대회(다음 달 13일) 출마를 선언하며 ‘통합파’의 결행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여야 할 것 없이 출입기자들은 “일부 바른정당 의원들의 ‘컴백홈’으로 지방선거 전 통합의 움직임은 일단락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한 기자는 “단순히 보수 통합이 아니라 바른정당 일부가 국민의당에 합류하는 ‘중·소폭의 정계 개편’이 동반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기자 2명은 “바른정당이 수구 이미지를 청산했는데 지방선거 승리만을 위해 한국당에 흡수·통합될 리 없다”며 “친박(친박근혜)계의 ‘뒤끝’이 통합의 큰 흐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는 말 그대로 양날의 칼이다. 성공하면 안 대표는 다시 한 번 대선주자로서의 기반을 단단히 다질 수 있고 국민의당 역시 3당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다. 반면 실패하면 말 그대로 낭떠러지다. 가뜩이나 호남 세력과 안 대표 세력의 갈등 속에서 당 대표가 자신의 욕심만 앞세웠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내년 서울시장선거는 정부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들로서도 절대 놓칠 수 없는 선거인 만큼 총력전이 예상된다. 한 기자는 “아직은 유력 후보가 없지만 자유한국당 역시 후보를 낼 수밖에 없다”며 “1여 3야 구도에서 승리가 쉽지 않은 형국이기 때문에 안 대표는 마지막 순간까지 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출마를 예상하는 기자들은 안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 외에는 다른 활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시장 재임을 통해 ‘성과’와 ‘실적’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차기 대선 후보 안철수로서의 존재감을 되찾을 기회를 마련하기 쉽지 않다. 이들은 “안 대표가 대선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선 서울시장 도전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교안 전 대통령권한대행의 대선 출마 여부는 지난 대선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이제는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올해 1월 대선을 앞두고 동아일보 정당팀은 7 대 4로 황 전 권한대행의 대선 불출마를 예견했다. 이번에도 12명 중 8명이 서울시장선거 불출마를 예상했다. 황 전 권한대행에게 드리워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자와 취약한 당내 지지 기반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한 기자는 “보수 진영에서 적극적 구애가 있을 것이지만 황 전 권한대행은 똑똑한 사람이다. 지는 게임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황 전 권한대행은 페이스북 등에서 거침없는 보수 일성의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여의도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측근의 전언도 있다. 최근 서울 강남에 개인사무실도 냈다. 따라서 “지방선거를 비롯해 국회의원선거 등 선거에 임박해 당선 가능성에 따라 다른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길진균 leon@donga.com·송찬욱·박성진 기자·정당팀 종합}
“그럴 리가…”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미국 뉴욕 출국 길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 협조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20일 뒤늦게 알려졌을 때다. 문 대통령 출국 직전까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물 밑으로 대통령의 협조 전화를 요청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묵묵부답이었다. 사실상 거부의 뜻으로 이해됐다. 국무총리 인준, 정부조직법 개정 등 국회로 인해 정국이 꽉 막혔을 때도 문 대통령은 야당 의원에게 전화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국민의당 김 원내대표도 처음엔 대통령의 전화인 줄 모르고 안 받았다고 한다. 예상을 깨고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자 당청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국민의당을 향해 “골목대장 같다”고 비난했던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안 대표와의 회동을 제안했고, 안 대표가 이를 거부하자 국민의당 대표실까지 찾아갔다. 청와대는 정무수석뿐 아니라 여러 수석이 앞다퉈 국민의당 등 야당 의원들과 식사 회동을 요청하는 등 전방위적인 행동에 나섰다. 한 국민의당 초선 의원은 대법원장 인준 표결 직후 “이전과 너무나 달랐다”며 “대통령만 빼고 인연이 있는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의 전화를 셀 수도 없이 받았다. 국빈 대접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국정 운영에서 문 대통령에게 여의도 정치와의 ‘협치’는 적폐청산의 하위 개념으로 여겨진다. 대선 때 그는 ‘협치’의 상징으로 떠오른 연정에 대해 “국론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적폐를 제대로 청산한 뒤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집권 후에도 문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회가 새 정부의 발목을 잡더라도 촛불 민심의 힘으로 뚫고 가겠다는 의지를 종종 드러냈다. 청와대 참모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게 시민과의 직접 소통이고 ‘직접 민주주의’였다. 문 대통령은 예전부터 보스 정치, 밀실 담합 등으로 상징되는 여의도 정치를 신뢰하지 않았다. 기득권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이 때문에 당 대표 시절 중진 또는 계파 수장들의 영향력은 크게 줄었고, 그들의 정치적 기반도 흔들렸다. 언젠가부터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 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고, 문 대통령에게는 ‘정치력 부재’ ‘리더십 부족’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졌지만 문 대통령은 완강했다. 그는 20대 총선 공천을 앞둔 1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여의도 정치에 물들지 않았다”며 “여의도 정치문화에 오래 젖어 있는 분들은 기득권을 누려 왔기 때문에 변화해야 된다는 의지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물꼬는 트였다.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부결과 대법원장 인준 가결이 보여준 함의는 야당과의 협치는 필수이고, 협치를 이끌 동력은 문 대통령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야당이나 여의도 정치의 관행이 ‘옳다 그르다’ 또는 ‘좋다 싫다’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여당이 원하는 개혁을 위해선 무엇보다 국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정권교체가 됐다지만 이는 행정부의 질서일 뿐 지난해 4·13총선의 민심으로 탄생한 20대 국회는 앞으로 3년은 유효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여소야대 환경 속에서 건강보험개혁법안을 관철시키고, 이란 핵 협상을 타결하고,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이뤄냈다. 하나같이 야당인 공화당이 강력하게 반대했던 사안들이다. 야당 의원들을 식사에 초대하고 전화통 붙잡고 설득하는 정치로 거둔 성취다. 미국과는 정치 시스템이나 정치 문화가 다르다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문 대통령 역시 못할 이유가 없다.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사진)이 19일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기조 변화를 강조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제부터라도 혁신성장을 위해 몇 가지 정책 기조 변화가 필요하다”며 “우리나라 경제성장 전략은 그동안 선진국의 성공을 모방하는 추격형 성장 전략을 채택해 왔다. 이제는 선도형 또는 혁신형 성장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공정한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서 혁신창업 생태계가 조성되고, 4차 산업혁명이 발 맞춰 나갈 때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고 혁신경제로 인한 민간 일자리도 창출된다”고 말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구체적 해법으로 창업·중소벤처기업들을 위한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4차 산업혁명과 신성장산업에 대한 국가 지원 확대 방안 등을 제시했다.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 개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 발표도 예고했다. 그는 “일각에서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이나 공공부문 일자리에만 치중한다는 지적도 있으나 그건 사실과 다르다”며 “일자리위원회에서 조만간 (민간) 일자리 5년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하면 구체적인 세부 비전을 발표할 것이고, 각 부처에서도 혁신성장과 미래성장 동력을 위한 대책이 수립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다음 날부터 이틀 동안 긴장감 속에 진행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13일 마무리됐다. 여당은 ‘제2의 김이수 사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 국회 의석 분포상 이번에도 ‘캐스팅보트’는 제3당인 국민의당이 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국민의당 5명만 찬성… 최소 15명 추가 동의 필요 김명수 후보자가 본회의 표결을 통과하려면 재적 국회의원 전원(299명)이 참석한다고 가정할 때 15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121명), 진보성향의 정의당(6명)과 새민중정당(2명), 민주당 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까지 130명은 찬성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야당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만큼 국민의당 의원 중 20명이 추가로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동아일보가 이날 국민의당 의원 40명 가운데 36명에게 찬반 여부를 확인한 결과 5명만 찬성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응답자의 80%인 29명은 “판단 유보” 또는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2명은 인준 반대 의사를 굳혔다. 박지원 김성식 권은희 김경진 황주홍 의원 등 5명은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했다. 황 의원은 “김이수 김명수 두 후보자를 모두 부결시키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고 했다. 김성식 의원은 “사법부에 신선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적임자”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청문회 나왔던 인사 중 보기 드물게 도덕적 하자도 없다”고 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김중로 의원과 함께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한 장병완 의원은 “법관으로선 훌륭한 사람이지만 단순히 한 명의 법관이 아니라 앞으로 12명의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는 인사”라며 “특정 성향을 가진 모임의 대표를 전체 법조의 대표자로 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입장을 유보한 인사청문특위 위원인 손금주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느냐, 사법부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행정 경험이 적은데 사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느냐 등 세 가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 전 본회의 표결 불투명 청와대와 민주당은 야당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24일로 예정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 전에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대법원장 공백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말했다. 헌재소장, 대법원장 연속 공백이라는 공세로 야권을 압박하겠다는 뜻이다. 14일 인사청문특위는 보고서 채택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위원장이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인 점이 변수다. 청문보고서 채택이 늦어지면 본회의 표결 일정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정세균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해 표결을 시도할 수 있지만 같은 절차를 밟은 김이수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실패한 적이 있어 내키지 않는다. 국민의당으로선 찬성 또는 반대 어느 쪽에 서더라도 적지 않은 후폭풍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호남 출신인 김이수 후보자를 배제하면서 안철수 대표의 동향이자 동문인 부산 출신 김명수 후보자의 손을 들어준다면 그렇지 않아도 싸늘한 호남 민심을 잡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 등이 국민의당을 거세게 압박하는 상황에서 국민의당이 ‘투항’하는 것으로 비치면 향후 정국 운영에서 존재감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민의당 의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청문보고서 채택과 본회의 표결을 최대한 미루면서 여론의 추이를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 의원은 “장기전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길진균 leon@donga.com·장관석·최고야 기자}
출발부터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이 2일 정기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을 선언했을 때다. 가을 국회, 즉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가 실시되는 9월 정기국회는 ‘야당의 시간’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문제, 꼬여만 가는 북핵 위기 등 정부여당의 잘못을 따져 묻고 야당의 역할과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의 장(場)이기도 하다. 야당의 힘이 먹히는 때다. 그런데도 제1야당인 한국당은 정기국회 시작과 동시에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2005년 12월 노무현 정부 때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등을 이유로 한나라당이 거리로 나선 이후 12년 만의 장외투쟁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장외투쟁은 잘만 쓰면 유용한 전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인 4대 개혁입법 저지를 위한 장외투쟁으로 정권 교체의 기반을 다졌다. 다만 여론의 호응과 국민의 지지가 필수다. 한국당은 장외로 무대를 옮기며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를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낙하산 사장 임명을 막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의 방송법 개정(‘특별다수제’ 도입) 요구에 대해서는 논의를 계속 거부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야당 시절 끊임없이 이를 주장했던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뒤 문재인 대통령의 한마디에 슬그머니 개정을 미루려 하는 그 법이다. 한국당은 북한의 6차 핵실험 규탄 결의안 채택도 거부했다. 길게 말할 것도 없다. 한국당이 이러는 것은 뭐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무조건 반대하는 게 당의 결속과 내년 지방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냥 “밟고 지나가라”는 얘기다. 한국당은 지금의 투쟁이 ‘내부용’이라는 속내를 감출 생각조차 없다. 홍준표 대표는 6일 의원총회에서 “지금은 우리가 장외투쟁을 하면서 야성(野性)을 키우고, 앞으로 4년 반 동안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단련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자기 생각과 조금 다르고 또 못마땅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 이번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의 지지가 뒤따르지 않는 자신을 위한 싸움은 엇나가기 마련이다. 여론의 무관심 속에 한국당은 장외투쟁의 정당성을 시민들에게 직접 알리기 위해 9일 서울 강남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공영방송 장악 STOP!’ ‘문 정권의 구걸안보 즉각 중단!’ 등의 피켓을 준비했다. 하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엉뚱한 피켓을 들고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을 즉각 석방하라!’ 피켓이었다. 무엇 하나 당 지도부의 뜻대로 가지 않는 한국당이 처한 현실이 드러났다. 한국당은 결국 장외투쟁을 접고 국회로 돌아왔다. 한국당이 국회로 복귀한 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표결이 부결됐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전략 부재, 제3당의 존재감 부각에 몰두한 국민의당, 한국당의 표결 참석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였다. 민주당은 “정권 교체에 대한 불복” “탄핵에 대한 정치적 보복” 등 격한 반응을 쏟아냈고, 한국당은 “민주주의와 상식의 승리” “다음은 (문 대통령) 탄핵이다”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과연 한국당의 승리일까. 청와대와 민주당 강경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직접민주주의’를 거론하며 지지층을 향해 한국당 등 야당을 건너뛰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정치권이 극한 대결 정국으로 휩쓸려 가는 듯하다. 이전투구식 정파 정치는 거대 양당의 오랜 생존전략 아니었던가. 사드 배치 등 안보 문제로 지지층 이탈에 맞닥뜨린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 짙게 드리워진 전운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우리라고 방송 장악 유혹이 없을까…. 권력을 잡은 세력이 언론이나 방송을 장악하려는 낡은 질서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비장해 보였다. 5·9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2월 말.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12명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나흘 동안 릴레이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민주당 등 야 3당 의원 162명이 공동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을 규탄했다. ‘언론장악 방지법 처리’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등의 팻말이 걸렸다. 개정안의 핵심은 KBS, MBC 등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특별다수제’ 도입이었다. 청와대와 여당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 인사를 떨어뜨리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다. 민주당은 19대 국회 때인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에도 ‘특별다수제’ 도입을 정부조직법 처리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는 제1야당 민주당의 숙원이었다. 당시는 문재인 정부 출범이 눈앞에 있던 시점이었다. “혹시 집권하고 나면 생각이 바뀌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 “방송법 개정은 당론이다. 잘못된 관행을 우리가 끊어내자는 것이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지만 그런 유혹을 이젠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믿어도 된다.”(당시 미방위 민주당 간사 박홍근 의원)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방통위 비공개 업무보고에서 “만약 이 법(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어느 쪽으로도 비토(거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선임되지 않겠나.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는 기사가 25일 오전 보도됐다. 마침 그날은 민주당이 세종시에서 워크숍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첫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각종 법안과 원내 전략에 대한 토론회를 열기로 예정돼 있던 날이다. 대통령의 문제 제기에 대한 의원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당일 저녁 토론회 직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미방위의 후신) 간사 신경민 의원은 기자들에게 “대통령 발언 취지에 따라 더 논의를 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정권교체라는 상황 변화에 맞춰서 가미할 안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당론을 수정할 수 있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었다. 비판 여론이 일자 민주당 의원들은 “당론 재검토가 아니라 더 좋은 안이 있을지 정부와 협의해 보겠다는 취지”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누구나 ‘눈 가리고 아웅’식 변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19, 20대 국회에서 셀 수도 없는 공청회, 토론회, 각 당 간의 협의 등을 거쳐 가까스로 가장 합리적이라는 개정안을 만들어 냈는데 정기국회가 며칠이나 남았다고 더 좋은 안을 만들겠다는 건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회의원을 헌법기관이라고 부른다. 한 명 한 명의 의원을 각각의 헌법기관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그들의 자율성과 판단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헌법정신을 담고 있다. 심지어 당론은 당 소속 의원 전원이 국민과 맺은 약속이다. 민주당은 소신과 신념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손바닥 뒤집듯 바꿨던 과거 정치권의 행태를 ‘적폐’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야 공수 교대 후 거리낌 없이 내보이는 말 바꾸기 행태를 모아 백서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 이들이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 제46조 2항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8년 6·13 지방선거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여야의 서울시장 후보군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안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출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정치권에서 보고 있다. 자신이 창당한 국민의당 지지율이 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인 데다 지난 대선에서 경쟁했던 후보들이 각 정당 대표로 속속 복귀한 상황에서 안 대표가 이것저것 재고 따질 여유가 별로 없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 안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지방선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효율적인 일은 뭐든 하겠다”며 출마 가능성도 열어뒀다. 서울시장이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인식 속에 여야 정치인 10여 명이 자천타천으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차기 서울시장은 임기가 차기 대선이 예정돼 있는 2022년까지라는 점에서 임기 단축에 대한 부담도 적다. 우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현역인 박원순 시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박 시장은 출마 여부에 대해 “늦지 않은 시기에 말하겠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이어가고 있지만 당내에선 박 시장의 3선 도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불거졌던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최근엔 경기지사 도전에 더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박 시장이 3선에 도전한다면, 같은 팀원끼리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 역시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방선거를 이끌어야 할 당 대표가 후보로 직접 나서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지만 추 대표는 ‘불출마’ 의사를 명확히 밝힌 적이 없다. 2011년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장 후보 국민경선에서 맞붙었던 4선의 박영선 의원과 3선의 민병두 의원도 서울시장 후보에 근접한 인사로 꼽힌다. 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우상호 이인영 의원 등도 여권의 유력한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자유한국당에서는 나경원 의원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홍정욱 전 의원 등이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다만 이들은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명확히는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바른정당에선 대선후보를 지낸 유승민 의원 차출론과 함께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용태 의원의 도전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유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생각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길진균 leon@donga.com·송찬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26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뒤 난데없이 ‘곰탕’이 화제에 올랐다. 이날 식사는 곰탕이 주 요리로 나왔고 고구마밤죽, 삼색전(녹두 애호박 버섯), 김치, 깍두기, 과일 등이 곁들여졌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오찬에서 송로버섯, 샥스핀, 캐비아 등 호화 메뉴가 제공된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논란은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식단 사진과 함께 “청와대 밥은 부실해도 성공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당청 의지는 식탁 가득 넘쳐났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기면서다. 그러자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부실해도’라는 표현을 두고 “반찬 투정을 했다”며 박 의원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역설적 표현으로 여유 있게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워낙 팍팍한 정치를 오랫동안 겪었기에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지만 이젠 좀 달라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직접 박 의원을 감싸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또 “모두의 여유를 위해 ‘왜 곰탕이었나?’에 대해 제가 추측하는 이유를 농담으로 보태 본다”며 26일 청와대 오찬 메뉴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그는 “(역대 청와대) 식사 자리가 대통령과의 대화와 함께 진행되다 보니 소박한 음식마저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며 “저도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부산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초청받아 간 적이 있는데, 이야기를 듣느라 숟가락을 제대로 들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과거 청와대에서 나오는 길로 다들 청와대 주변 곰탕집이나 설렁탕집으로 몰려가 한 그릇씩 하고 헤어진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그래서 이번엔 아예 그런 일이 없도록 청와대가 곰탕을 내놨다고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말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새 정부 출범 이후 국회 소통이 중요해지면서 세종시에 있는 각 부처 장관과 고위공직자들의 서울 여의도 주변 ‘둥지 틀기’가 한창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기 청와대 업무보고와 ‘100대 국정 과제’ 추진 등을 위해 국회 소통이 강조되면서 세종시로 이전한 정부 부처 장관들의 ‘서울 살림’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 과거에 각 부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있는 산하 단체나 유관기관 건물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고 장관의 국회 보고 때 잠깐씩 들르곤 했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난해 9월 28일 이후 이런 ‘업무 협조’가 불가능해졌고 장관이나 고위공무원들이 국회에 머무는 시간도 늘면서 최근에는 아예 여의도 인근에 ‘제2 집무실’을 임차하기 시작했다. 이전 정부 때 서울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 사무실을 장관의 임시 집무실로 사용하던 국토교통부는 최근 서울 용산역 인근에 새로운 사무실을 꾸렸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본부에 장관 집무실을 두고 있던 보건복지부 역시 최근 여의도 인근에 새로운 장관 사무실을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등은 지난 정부 때 각각 여의도 CCMM빌딩, 대하빌딩, 이룸센터 등에 마련한 임시 장관실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한 부처 공무원은 “청와대 및 국회 보고 등으로 장관 주재 회의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장관은 물론이고 주요 국장들은 세종시보다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며 “각 부처 장관 등 공무원들이 사용할 국회 스마트워크센터가 완공되면 국회가 사실상 제2의 행정수도가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고 했다. 국회와의 소통 강화를 위한 각 부처의 노력은 장관 정책보좌관 인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다수 장관은 국회 경력 10년 이상의 보좌진 출신들로 정책보좌관을 구성했다. 입법 과정에서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인사라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각 부처가 추진하는 개혁 과제 대부분이 국회 입법 과정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소속 상임위에서 10년 넘게 법 개정에 관여한 경험과 국회 내부 네트워크가 강한 정책보좌관들이 부처에 있으면 국회와의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길진균 leon@donga.com·박성진 기자}
“모두가 원한다지만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다. 다당제를 위한 선거법 개정은 물 건너간 것 같다.” 최근 발족한 여야 정개특위 소속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하소연이다. 사실 뭔가 이상하다.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무한 대치가 석연치 않다. 민주당은 승리한 정당이고 대통령은 협치를 내걸고 당선됐는데 너무 공격적이다. 민주당이 강조하는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전(前) 정부도 아닌 전전(前前) 정부에서 벌어진 일까지 왜 저렇게 공개적으로 파고들며 긴장을 고조시키나 싶다. 특히 지금은 100대 국정과제 입법화 등 야당의 협력이 절실한 때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뭔가 다른 계산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당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야당이 순순히 여당을 따라갈 순 없다. 그러나 과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외골수 투쟁이다. 당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져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 보이지만 요지부동이다. 왜 그럴까?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각각의 이유로 긴장 고조를 통한 양당·양강 정치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당은 전통적 지지 기반인 호남의 복원, 적폐 청산을 밀어붙이기 위한 명분과 동력 확보 및 대야 협상의 간소화를, 한국당은 당의 재건과 야권이 가진 힘의 근원인 ‘비토(veto)권’ 독점을 위해 각각 노선이 비슷한 3, 4당의 존재감을 지우려는 듯하다. 원래 소선거구제는 제도 자체의 특성과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 등으로 양당제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하다. 유명한 뒤베르제의 법칙이다. 이를 잘 아는 민주당과 한국당은 수십 년 동안 양당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켜 지지층의 결집을 꾀하고 제3세력의 의회 진입을 견제해 왔다. ‘적대적 공생’이다. 몇 번의 대선을 앞두고 통일국민당(정주영), 자유민주연합(김종필), 국민의당(안철수) 등 대선후보 중심의 정당이 창당됐지만 진정한 의미의 다당제가 정립하지 못한 이유다. 문제는 양당 구도야말로 그들에게만 익숙한 한국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적폐라는 점이다. 지지층의 분노 또는 공포로부터 더 강한 생명력을 얻는 양당 구조에서 정치 품질과 대안 경쟁은 의미가 없다. 모든 사안은 당파적 이해로만 인식된다. 더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열성적이지만 편향된 지지층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타협보다는 지지 정당이 권력을 쟁취해 자신들의 적(수구우파 또는 친북좌파)을 청산해주기를 원할 뿐이다. 결국 상대의 실패가 나의 기회가 되는 구도 속에서는 진보든 보수든 야당은 내심 대통령과 여당의 실패를 바랄 수밖에 없다. 다당제를 기반으로 하는 유럽 국가에서 종종 등장하는 ‘대타협’이나 ‘협치’는 꿈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민주당이 결사반대했던 노동개혁 입법을 문재인 정부가 약간의 수정을 거쳐 다시 추진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정치 개혁을 이루겠다”며 다당제의 기반이 되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한 선거법 개정에 적극 찬성했다. 하지만 20대 총선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치러졌다면 국회 1당은 새누리당, 2당은 국민의당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 지난 총선을 앞두고 약속했던 다당제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한국 정치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도, 정체 속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도 정치의 선택이다.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세상은 온통 노란색이었다. 방송과 인터넷은 노란색 천지였고, 당시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국회 주변에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깃발을 흔들며 “선거 혁명을 이뤄냈다”고 열광했다. 2004년 4월 탄핵정국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49석에서 152석의 국회 과반 의석으로 압승을 했을 때 이들의 흥분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그해 정기국회를 앞두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4대 중점 법안(사학법 개정, 신문법 제정, 과거사법 제정)을 포함한 ‘100대 개혁입법 과제’를 발표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정국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여야 협상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과 임채정, 문희상, 유인태 의원 등 여당 중진 의원들은 국보법 안에서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는 찬양·고무죄 등 대표적 독소조항이라도 개정하자는 중재안을 언급했다. 흥분한 친노(친노무현) 의원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의원총회에서 국보법 개정을 주장하는 선배 의원들에게 몇몇 초선 의원들은 삿대질을 하며 “당을 떠나라”고 고함쳤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국회 밖에서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며 여당 의원들을 압박했다. 2년 넘게 이어진 국가적 논란 속에서 여당은 ‘개혁독재’라는 오명(汚名)을 떠안았을 뿐 건진 것이 없었다. 국보법은 일점일획도 고쳐지지 않았고,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의 강행 처리로 개정된 사학법은 2007년 7월 재개정됐다. 그사이 노무현 정부가 내걸었던 ‘100대 개혁입법 과제’는 ‘50대 개혁입법 과제’로 축소됐다가 나중엔 흔적도 찾기 어려워졌다. 반면 ‘4대 악법 저지’ 투쟁을 이끌었던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보수 진영의 새로운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노란 완장’이 세상을 뒤흔들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 건 최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와 함께 마무리된 7월 임시국회 결과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국회 협상 과정에서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협상을 이끈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를 향해 “적폐세력과 뒷거래”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 “배신자” “정계 은퇴” 등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의 공약을 ‘그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다. 추경 통과가 임박한 지난달 22, 23일 주말엔 1000통이 넘는 문자폭탄을 받았다. 당내 일부 의원은 협상 결과를 두고 ‘누더기’ ‘반 토막’이라며 문자폭탄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임시국회는 일단락됐다. 이제 본 게임인 9월 정기국회가 다가오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25, 26일 1박 2일 워크숍을 계획하고 있다. ‘100대 국정 과제’의 입법과 현실화를 위한 논의의 장이다. 때를 맞춰 민주당 일각에선 “국민의 힘으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어느 정부나 여론의 지지가 받쳐주는 정권 초에 개혁 과제를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교한 우선순위 설정과 전략이 필요하다. 이념 논리에 갇혀 국보법 폐지 등을 무턱대고 밀어붙였던 열린우리당은 ‘차선’은 고사하고 ‘최하’도 건지지 못했다. 실패한 정치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더욱이 지금은 4당 체제의 여소야대 국회다. 편 가르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부 극렬 지지층에 권력이 의지하는 순간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은 깨질 수밖에 없다. 선거 때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번엔 달라져야 한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