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민동용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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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동용 기자입니다.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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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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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쓰는 법]“진짜 민중의 삶, 역사책엔 없죠”

    길이 1m 남짓한 한지에 써 내려간 가사체(歌辭體) 글귀. ‘이 하늘에 비가 올까/저 하늘에 비가 올까∼’로 시작하는 이 글의 제목은 ‘애타는 한여름의 가뭄’. 맨 끝에 ‘병자년(丙子年)’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을 검색해 보니 병자년인 1876년, 엄청난 한발로 왕이 숱하게 기우제를 올렸다. 그런데 역사책은 이해를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해로 기술한다. 하지만 당대 조선 사람의 진정한 관심은 가뭄이었을 게다. “그걸 알고는 ‘내가 배운 역사는 반쪽짜리였다’고 생각했어요. 공식 역사가 말하지 않은 것을 자료를 통해 보충해주고 싶었습니다.”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휴머니스트)의 저자 박건호 씨(51·사진)가 수집에 새롭고 큰 의미를 부여한 순간이었다. 대학에서 국사를 전공하고 고교와 재수학원에서 27년째 역사를 가르치는 박 씨는 당초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보여줄 만한 조선시대와 근현대 자료를 수집했다. 주로 그 시대를 살던 필부필부의 자료였다. 그런데 자료에서 스토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식 사진을 무심코 수집했는데 모으다 보니 주례 뒤편 태극기가 걸려 있는 게 스무 장쯤 돼요. 국가주의가 심했던 1970년대 찍은 거라고 봤는데 사진들 뒤를 보니 1950년대예요. 뿌리를 찾으니까 일제강점기, 집이 아닌 식장에서의 ‘사회결혼’이 유행할 때 일장기를 걸었던 것이 광복 후 태극기로 바뀐 거였어요. 수집하다 이야기가 보이게 된 거죠.” 책은 1920년대 경성자동차학교에 다니던 청년 김남두가 고향 집에 보낸 편지, 1907년 정미의병 때 충북 제천에서 실종된 통역관 조용익을 찾는 훈령, 1941년 육군특별지원병으로 전장에 나가기 직전 찍은 조선인 청년 9명의 사진, 1952년 7월 강원도 육상대회에서 우승한 삼척공고 기념사진 등 당대 서민 민중 민초가 남긴 미시사다. 역사책은 알려주지 않던 그 시대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의 11장 ‘전쟁도 지우지 못하는 민중의 삶’은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6·25전쟁 때 군인들이 꽃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전쟁 통에 꽃은 무슨…’ 하겠지만 그 와중에도 꽃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삶이 있습니다. 삶이란 ‘독립운동’이냐 ‘친일’이냐같이 획일화, 규격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다기합니다. 150mm 박격포 탄피로 재떨이를 만들어 쓰고, 미국 원조품 포대로 바지를 지어 입었습니다. 민중은 역사에서 둥둥 떠다닌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삶과 대면했습니다.” 종이로 된 자료 중심으로 약 1만 건을 수집했다는 박 씨는 60세가 될 때까지 4권의 책을 더 낼 생각이다. 그것이 운명적으로 자신에게 온 자료들에 예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자께서 하나만은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사소한 자료는 있어도 사소한 사람, 사소한 역사는 없습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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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값보다 근본적 문제 있는건 아닐까?…강남은 어떻게 ‘버그’를 낳았나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겁니다.’ ‘강남 부동산 불패!’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쟁의 정점엔 서울 강남이 있다. 온갖 정쟁 속에서도 모두가 궁금한 것은 오직 하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강남 부동산 가치의 향방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팀 ‘강남버그’는 제3의 방향에서 강남을 분석한다. 건축가와 미술가, 기획자가 협업한 이 그룹은 그 결과물을 지난달 24일 개막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전에 선보이고 있다. 강남의 속살이 드러난 이곳에서 강남버그는 이렇게 묻는다. ‘정책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집값보다 더 근본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사교육 1번지’의 천태만상 영상 설치작품 ‘강남버스’는 반포 둔치를 시작으로 압구정동 대치동 구룡마을을 돌아 강남역에 도착한다. 배우 노래강사 워킹맘 등 가이드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홍색 가이드북은 ‘강남어’를 소개한다. 화려한 겉모습 속 학벌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 ‘레테(레벨테스트) 돼지엄마(학원과 팀 수업을 결정하는 엄마) 참새아빠(부인, 자녀를 대치동에 유학 보낸 아빠) 과떠리 외떠리 민떠리(과학고, 외고, 민사고에 떨어져 일반고 다니는 학생)….’ 이런 관점의 배경에는 강남버그의 실제 경험이 있다. 멤버인 이정우 박재영(미술가) 김나연(기획자) 이경택(건축가)은 모두 ‘강남8학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스스로가 ‘강남의 버그(벌레)’라는 우스갯소리로 출발했다. “대기업 취직을 통해 사회 주류가 되길 바랐던 부모의 기대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강남의 교육 시스템이 전혀 다른 결과 값을 낳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버그라는 생각이 들었다.”(이경택) 버그들의 자조 섞인 냉소는 ‘천하제일뎃생대회’로 이어졌다. 사전 신청자들이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서 주어진 시간에 석고상을 그리는 참여 이벤트였다. 행사의 이면엔 ‘대학에 가고 나니 아무 쓸모가 없던 입시교육’에 대한 풍자가 깔려 있다. “대치동에서 선릉역 일대 미술학원 거리는 홍대 입구와 함께 198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미대 입시를 담당했다. 그때는 석고 소묘가 필수였는데 대학에 가니 ‘이제 석고 소묘는 잊어라’고 했다. 그 뒤 입시에서 석고 소묘가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박재영) 당시 미술교육이 예술의 본질보다는 ‘대학에 들어가는 기술’에 치중했다는 이야기다. 강남의 ‘상징’인 사교육도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따져 묻는다. 이때 ‘강남버스’에서는 연극배우가 가이드로 나선다. 잠실에 살지만 ‘뺑뺑이’로 압구정동 현대고를 졸업했다는 그는 말한다. “현대고 출신이라면 다들 제가 여유롭다고 착각해요. 그런데 저도 가끔 그걸 우쭐해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죠. 내가 지금 강남 출신을 연기하고 있나?”●깨어나지 못한 ‘마취 강남’ ‘강남버스’ 뒤편엔 건축 도면이 둘러싼 공간이 펼쳐진다. 도시건축의 시선에서 강남을 바라보는 설치작품 ‘마취 강남’이다. 강남 쏠림을 억제한다고 하는 부동산 정책이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듯 강남은 이미 정책들에 ‘무감각해졌다’고 진단한다. 이렇게 ‘깨어나지 못한 도시’ 강남을 의학용어로 해석한다. 1972년 서울 도심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 발표와 이를 전후로 한 인구 분산 정책은 ‘이식(移植)’이라고 본다. 은마아파트의 재개발 움직임에 자극받은 ‘우성-선경-미도 아파트’(우선미) 조합은 ‘유착’이다. 1980년대 강남의 유일한 대형 호텔이던 르네상스호텔의 철거는 ‘절제’다. 이런 끊임없는 증상과 시술의 후유증으로 등장한 것이 구룡마을이다. 전시장 벽면에는 없어졌거나 실현되지 못한 강남의 건축물 도면이 걸려 있다. 단기적 시야에 국한된 개발, 맹목적 사교육, 그 가운데 밀려난 인간적 가치와 본질을 이들은 결국 버그라고 본다. 버그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버그의 수정에 미래가 있다고 강남버그는 제안한다. “권력이나 힘에 의해 억지로 개발된 지역, 유흥과 부동산의 도시. 이런 과거 이야기보다 현재의 강남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고 싶다. 강남은 그 지역만이 아닌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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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겁진 않지만 꾸준히 사랑받는 ‘총서의 세계’

    출판인에게 ‘팔릴 책’과 ‘내야 할 책’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다. 내야 할 책의 타깃이 대중이 아니라 소수라면 더욱 그렇다. 그것도 단행본이 아니라 총서(叢書)라면 어지간한 고집과 어느 정도 담대함이 필요하다. 민음사, 문학동네, 북21 같은 대형 단행본 출판사가 아닌 중소 출판사라면 고민은 깊어진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누가 찾을까’ 싶은 총서를 꾸역꾸역 내는 곳들이 있다. ‘독자는 좀 있냐고? 제법 된다.’ 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의 거장’은 2018년 8월부터 새로 펴내는 평전(評傳) 시리즈다. 위대한 사람도 약점투성이에 상처가 많으며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2004년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를 시작으로 소개했던 국내외 예술가 26명 중 일부를 추리고 새 인물들을 추가해 구스타프 말러부터 짐 모리슨까지 10권을 냈다. 작은 국내 논픽션 시장 가운데서도 더 좁은 평전 시장인 데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열광하지만 그를 다룬 책에는 ‘인색한’ 독자를 고려한다면 ‘마니아 독자를 위한 마니악(미친)한 기획’이다. 초판을 소화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편처럼 7쇄를 찍기도 했다. 정상준 주간은 “최소한 30권을 낸 뒤 전체 숲(손익)을 봐야 한다”면서 “소수의 독자를 위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도 있다”고 말했다. 평전은 아니지만 작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저명인사 인터뷰를 다룬 마음산책의 ‘말’ 총서도 있다. 2015년 수전 손태그가 처음이었다. 시리즈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는데 이 책이 8쇄가 나갔다. “책은 저작물에 국한한다는 생각은 지났다. 독자는 작가와 직접 부딪쳐서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시대가 변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마음산책 정은숙 대표) 보르헤스, 박완서, 해나 아렌트, 미국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등 14명의 ‘말’을 펴냈다. 모두 초판을 소진했고 1만 부 넘게 팔린 것도 있다. 총서는 하나씩 덧붙여 가며 풍성해질 수 있고 한 권 판매가 저조해도 실망이 크게 되지 않으며 독자와의 소통이 잘된다는 장점이 있다. ‘다음에는 ○○○의 말을 내달라’고 제안하는 독자도 있다. 정 대표는 “‘내가 안 사주면 누가 사줄까’ 하는 독자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사명감은 됐고요’ 하는 총서도 있다. 워크룸프레스의 ‘실용총서’는 “재미있으니까” 낸다. 그동안 ‘워크룸 문학총서 제안들’ ‘입장들’ 같은 총서를 내왔다. 현재 ‘생활 공작’ ‘헤비듀티’ ‘히트곡 제조법’ 등 3권을 낸 실용총서는 ‘과거에는 실용이었으나 오늘날 실용만으로 기능하지 않는, 과거에는 실용이 아니었으나 오늘날 실용으로 기능하는’ 자료 발굴이 목표다. ‘생활 공작’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적지에 침입한 공작원을 교육할 때 사용한 ‘단순 방해 공작 야전교범’을 번역한 것. 그 내용이 기업 등 각종 조직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들로 꽉 차 있다. 민구홍 편집자는 “과거 콘텐츠이지만 현재에 좀 더 재미있는 맥락이 드러나고, 시치미 뚝 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을 담았다”고 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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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만드는 법]“지구온난화 해결에 철도가 꼭 필요하죠”

    “굉장히 무모한 책이기도 한데요….” 박활성 워크룸 프레스 편집장(사진)은 ‘거대도시 서울 철도’(전현우 지음·워크룸 프레스)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원래 철도에 대한 좀 더 정밀한 기계비평서로 기획했으나 엄청난 데이터와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국 철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기후변화의 위기를 맞아 철도가 해야 할 일까지 전망하는 550쪽의 두꺼운 책이 될지는 몰랐다. “출간하기 전에 ‘철덕’(철도에 푹 빠진 오타쿠를 우리 식으로 표현한 ‘철도 덕후’의 줄임말) 몇 분에게 보여드렸더니 감동을 받으시더라고요. 하지만 솔직히 일반 독자에게는 (이 책이) 벽이 좀 있어요. 하하.”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종이를 실로 꿰맨 모양을 그대로 드러내도록 누드사철(絲綴) 제본한 책의 표지는 요령부득의 빨간색 우하향(右下向) 사선 수십 개가 그어진 그래프다. 책을 펼치면 수백 개의 도표와 지도가 지면 곳곳을 점령하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전문용어 설명만 열네 쪽에 이른다. 죽 훑어보기만 해도 정보의 밀도가 대단해 설렁설렁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2017년 원고를 청탁하고 첫 번째 장(章)을 받았는데 원고지 1000장이 왔어요.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다음부터 제 역할은 원고를 쳐내는 일이었어요. 철덕의 세계가 넓고도 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서론을 읽어보면 흥미가 솔솔 인다. 서울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한국 철도망에 각종 자료를 덧입혀 철도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생명력을 갖는지 촘촘히 설명한다.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의 철도 기술, 경영, 정책을 누비고 결국은 기후위기 대응에 결정적인 수단이 철도라는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입증해낸다. 결국 항공기와 자동차가 득세하고 자율주행차까지 등장하는 미래 교통의 세계에서도, 철도가 여전히 그리고 더 많이 필요한지를 논증하는 책이다. “국제에너지기구가 기후변화 억제를 위해 지구 평균 상승기온을 섭씨 2도 미만으로 하려면 철도수송량을 늘려야 한다고 전망했는데 저자는 ‘페르미 추정’을 통해 따져봤어요. 대략 계산했더니 경부고속철도 700개나 서울지하철 4호선 2500개 짓는 정도라는 거죠. 이를 위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철도 개발을 지원하자는 건데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죠.” 박 편집장이 생각하는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는 철도 현업 종사자, 정책입안자, 연구자들이다. 그렇다고 일반 대중이 이들보다 덜 중요한 독자라고는 보지 않는다. 도시철도 노선을 신설한다고 하면 집값 오를까만 생각하지 말고 철도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 가면 선거철마다 개발 논리에 부화뇌동하는 정치인 등을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거 뭐지’ 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2장까지는 한번 마음을 열고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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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50년이 지나도 여전한 ‘공장식 축산’의 폐해

    식용으로 길러지는 동물의 처참한 환경을 고발해 동물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은 적지 않다. 언뜻 생각만 해도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1992년),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2009년), 티머시 패키릿의 ‘육식제국’(2011년)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분야의 제일가는 고전으로 대다수가 꼽는 책이 ‘동물기계’다. 영국의 동물복지 활동가였던 저자(1920∼2000)가 1964년 쓴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증하는 육식에 대한 수요를 맞추려고 동물을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처음으로 파헤쳐 고발한 작품이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사육방식이던 공장식 축산은 그야말로 동물을 공산품처럼 생산하는 기계나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사료를 빠르게 고기로 전환시켜 최대한의 이윤을 빨리 얻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물을 통째로 지배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 방식은 빛도 없는 좁은 곳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송아지 상자’, 달걀을 더 빨리 더 자주 낳게 하려는 ‘배터리 케이지’, 임신한 돼지를 가두는 ‘모돈 스톨’ 등을 사용해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이 책이 사회에 던진 충격은 컸다. 이듬해인 1965년 영국 정부는 ‘브람벨 위원회’를 꾸려 ‘모든 동물은 서고, 눕고, 돌고, 스스로를 핥고, 가슴을 쭉 펼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5대 동물 자유’를 선포하고 송아지 상자 등의 사용을 금지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 도살장의 더럽고 처참한 현장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결국 식품의약국(FDA) 설립을 이끌어낸 업턴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1906년)과 비견되기도 한다. 루스 해리슨이 이 책을 쓴 지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전 세계 식탁에 오르는 동물의 99%는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된다고 한다. 사육방식이 과거처럼 소름끼칠 만큼 비참하지는 않다고 해도 대부분 식용동물은 성장촉진제 안정제 호르몬 같은 다양한 약품으로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자란다. 이 책은 육식을 하면서도 사람이 동물과의 일체감을 좀 더 갖고 사육하는 방식이 무엇일지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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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보 칼럼 ‘오늘 뭐 먹지’ 음식 128종 모아 책 출간

    점심시간,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의 머릿속은 온통 하나다. ‘오늘 뭐 먹지?’ 평일이건 주말이건 휴일이건 휴가건 끼니마다 마찬가지다. 이런 고민을 단번에 씻어낼 책이 나왔다. ‘오늘 뭐 먹지?’(다이어리알·사진). 2017년 2월 9일부터 동아일보 문화면에 매주 한 번씩 연재하고 있는 동명(同名)의 음식칼럼을 모았다. 필진이 화려하다. ‘치과 원장으로 식도락의 인문학을 개척하는 석창인 박사’ ‘맛깔스러운 얘기꾼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맛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하는 임선영 작가’ ‘맛의 엄격한 세계를 전하는 정신우 셰프’ ‘손맛과 글을 모두 갖춘 홍지윤 요리쌤’ 등이다. 이들은 가정식 백반부터 텐동(덴돈) 훠궈 똠얌꿍 라비올리 파테드캉파뉴까지, 한식 중식 일식 프랑스 이탈리아 태국 베트남 요리 등 128종의 음식을 맛깔스럽고 웅숭깊게 펼쳐낸다. 이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전국 359곳(현재 폐업 또는 휴점인 17곳 포함)의 목록은 메인디시에 이은 ‘디저트’로 손색이 없다. ‘칼국수 집들의 상호엔 왜 이모, 할매, 아지매 등의 이름이 많고 또 그래야 맛이 더 나는 걸까요?’같이 정감 어린 문장과 ‘갖고 싶은 명품 가방은 없지만 밥 한 끼보다 비싼 디저트와 잘 내린 균형감 있는 커피 한 잔에 가끔은 지갑을 열고 싶다’처럼 도회적인 글이 미각을 더 자극한다. 1만6000원.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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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이 웹툰과 영화로… ‘작가 매니지먼트 시장’ 커진다

    작가 매니지먼트 시장이 본격화하고 있다. 2016년 블러썸크리에이티브(이하 블러썸)가 첫발을 내디딘 지 4년. 네이버웹툰이 지난달 소설가 장강명과 계약을 맺고 이 시장에 들어섰다. 2013년 웹툰, 웹소설 작가 매니지먼트를 시작한 네이버웹툰이 기성 작가와 호흡을 맞추게 된 것이다. 자본력과 기획력이 있는 네이버웹툰의 등장으로 작가 매니지먼트 시장의 확장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작가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책을 낸다. 책의 마케팅과 홍보, 저자 인터뷰 등은 보통 출판사가 담당한다. 그러나 출간되고 두세 달이 지나면 책이나 저자 ‘관리’는 허술해지기 쉽다. 특히 여러 곳에서 다양한 책을 낸 경우 작가가 이 저서들을 도맡아 관리하기는 역부족이다. 책이 영상, 애니메이션, 각종 디지털 콘텐츠 같은 2차 저작물로 만들어질 기회가 커지면서 더욱 그렇다. 작가 매니지먼트 사업은 출판·콘텐츠 산업의 이 같은 변화를 파고들어 저자의 강연, 방송 출연부터 출판 이외의 모든 영역을 관리한다. 2011년 등단 이후 출판사 예닐곱 곳에서 10종이 넘는 책을 낸 장 작가도 작품 관리에 힘겨움을 느끼고 네이버웹툰과 손을 잡았다. 이희윤 네이버웹툰 IP(지식재산권)비즈니스 팀장은 “장 작가가 영상 판권을 계약하는 도중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우리에게 매니지먼트를 요청하기도 했다”며 “아직은 매니지먼트 영역이 순문학 작가로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기성 작가들과도 계약하는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네이버웹툰은 장 작가의 작품으로 영상콘텐츠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영상물의 성공이 책 매출에도 도움을 주는 선순환이 이뤄지면 이를 바탕으로 다른 작가들에게 매니지먼트 계약을 제안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팀장은 “웹에서 젊은 구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웹툰, 웹소설 시장과 더 높은 연령대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출판사가 1차 관문인 소설시장은 서로 다르지만 콘텐츠 소비의 다양성 추구라는 관점에서는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네이버웹툰의 등장에 블러썸 측은 반기는 분위기다.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의 약 70%가 대형 에이전시에 소속된 미국, 유럽처럼 시장 자체가 확대될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김진희 본부장은 “대기업이 들어와서 매니지먼트 시장의 파이를 키워주면 작가도 좋고, 우리에게도 자극이 돼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블러썸에는 김금희 김영하 김중혁 김초엽 배명훈 장류진 편혜영 작가가 소속돼 있다. 블러썸 측은 작가에 대한 섭외 요청을 거절하는 간단한 일부터 이들의 작품이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하도록 제안하고 환기시키는 일까지 맡고 있다. 책이 출판되기 전 수익 창출의 일환으로 e북 구독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와 함께 소속 작가의 책을 먼저 e북으로 내고 있다. 김중혁 작가와는 책을 영상으로 보는 ‘The 본다’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김 작가가 글, 그림을 맡아 ‘소설을 읽는 202가지 이유’라는 연재를 하고 있다. 소설 시장의 축소로 글 실을 곳이 부족한 작가들에게 새 연재처(處)를 찾아주는 것도 주요 업무다. 김 본부장은 “아직은 수익이 많이 나는 구조는 아니지만 영화계에서는 원천 콘텐츠로 소설을 다시 검토하고 있고, 해외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케이팝뿐만 아니라 ‘케이노블’로 오는 순간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해 찬찬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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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같은 藥인데 여성이 복용땐 잘 듣지 않는 까닭은

    천재 과학자 하면 우스꽝스럽게 혀를 빼문 백발의 남성이 떠오르지 않는가. 교과서를 비롯한 과학 서적에 단골로 등장하는 아인슈타인 이미지다. 퍼뜩 생각나는 과학자는 대개 남자다. 뉴턴 케플러 테슬라 오펜하이머 세이건 호킹…. 그럼 여성 천재 과학자는 없었던 걸까. 천만에. DNA가 2개의 사슬과 인산 뼈대로 이뤄진 사실을 처음 발견한 과학자는 로절린드 프랭클린이라는 여자였다. 그 노벨상은 남자들이 탔지만. 여성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여성 천재 과학자는 역사에서 지워졌을 뿐이라고. 아이폰 액정의 평균 크기는 5.5인치(139.7mm)다. 평균적 여자의 손으로는 겨우 쥘 정도다. 핸드백에 맞도록 만들어진 것일까. 천만에. 평균적 남자의 손 크기를 기준으로 해서 그렇다. 미국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여성에게서 두 번째로 많이 보이는 약의 부작용은 아무 약효도 없다는 것이다. 남성에게는 효과가 있는 약인데 그렇다. 여성의 신체가 복잡해서 그런가. 천만에. 약의 임상시험 대상이 남체(男體)이기 때문이다. 우울증같이 여자가 남자에 비해 훨씬 많이 걸리는 병에서조차 동물시험에 암컷을 쓰지 않는다. 저자는 무의식적인 듯 또는 의도적인 듯 역사에서 지워지거나, 아이폰 등에서처럼 디폴트(기본, 표준)는 언제나 남성인 현상을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고 표현한다. 사적 영역이든 공공 영역이든, 제설 작업 순서든 남녀 화장실 배치든, 알고리즘 구성이든 음성인식 ‘시리’든 대다수 분야의 설계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은 투명인간처럼 배제된다는 것이다. ‘별도 지표가 없는 이상 남성’이라는 이 같은 접근 방식이 낳은 젠더 데이터 공백의 결과는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소수자 위치로 끌어내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사무실 표준 온도는 1960년대 40세의 몸무게 70kg인 남성을 기준으로 정해지고, 미 사관학교의 교복은 여성 입학을 허용한 지 35년 만인 2011년에야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에 맞게 제작된다. 이를 시정하려는 요구에 대해 불만에 찬 남성들은 말한다. “요즘은 여자들이 어디에나 나오잖아요.” ‘어디든 남자 것’,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디든 중산층 백인 남성 것’이라는 ‘신화’에 금이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자 목소리와 남자 얼굴로 가득한 문화 속에서 자란 어떤 남자들은 그들이 당연히 남자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권력이나 공간을 여자들이 빼앗아갈까 봐 두려워한다.’ 이런 공포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인 ‘여걸’ 셰릴 샌드버그의 말처럼 ‘이 악물고 밀고 나가야’ 하는 걸까. 그것도 필요하지만 저자는 ‘남자아이들이 더 이상 공공 영역을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지 않게 될 때까지 젠더 데이터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에게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다. 데이터 공백을 메우려면 설계나 의사결정 단계에서부터 여성의 의견이 제시되고 받아들여지도록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을 늘려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권력과 영향력 있는 지위에 오르는 여자가 늘어날수록 명백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남자들처럼 쉽게 잊지 않는다.’ 다만 할당제에 따른 여성 정치 참여의 좋은 사례로 이 책에서 인용하는 한국 여성 의원들이 최근 성추행 피해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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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라딘 “멋진 신세계, 21년간 가장 많이 팔린 SF소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이 지난 21년간 자체 SF(과학소설)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사진)가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알라딘에 따르면 1999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판매한 SF 중 디스토피아를 다룬 ‘멋진 신세계’가 판매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3위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순으로 나타났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6위를 차지해 국내 SF로는 상위 20위 안에 유일하게 들었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10만 부 넘게 팔리며 올 상반기 가장 많이 나간 SF이기도 하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잠’ ‘제3인류’ ‘고양이’ ‘죽음’ ‘타나토노트’ 등 5권을 상위 20위 안에 올렸다. 이 밖에 아서 C 클라크, 필립 K 딕, 어슐러 K 르귄, 커트 보니것 같은 SF 거장을 비롯해 ‘마션’(5위)의 앤디 위어 등 신예 작가 작품도 선정됐다. 알라딘 자체 SF 시장도 2011년 상반기 대비 올 상반기에 5.5배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라딘 측은 “20대의 SF 구매 비율이 1999∼2009년은 전체의 3.5%에 불과했으나 2010∼2019년 19.3%로 증가했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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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노예의 아들도 왕이 될 수 있었던 나라

    절대 강자를 만들지 않는 세력균형이 국가 간 관계의 철칙으로 자리 잡아가던 근대 유럽에서 오스만 제국은 공포 그 자체였다. 16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자 칼리프를 자처한 지도자들이 빈을 세 차례 포위하는 원정(遠征)을 감행했을 때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이 힘을 합친 것도 세력균형의 파탄은 곧 유럽의 붕괴라는 우려에서였다. 이런 연유 등으로 유럽 중심의 역사 서술은 오스만 제국을 단순히 객체화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발칸전쟁과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 국가들에 의해 맥없이 해체된 오스만 제국 말년의 실상은 이런 관점을 더욱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5세기 동로마 제국이 종언을 고한 이후 서구 열강의 지구적 식민지 확장 이전까지 400년 넘게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걸친 영토를 보유했던 오스만 제국은 그런 역사적 ‘박대’를 받을 대상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스만 제국을 주체적 행위자 위치에 놓고 바라보며 이 제국이 어떻게 600년을 존속할 수 있었는지 개괄한 이 책은 오스만 제국뿐만 아니라 이슬람 역사까지 객관적으로 일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오스만 제국 600년의 번영과 쇠퇴를 왕위계승, 권력구조, 통치이념이라는 3가지 틀로 본다. 왕권 다툼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계승자 이외의 왕자를 죽이는 ‘형제살해’ 방식, 시대의 변화에 맞춰 중앙집권과 분권을 오간 권력구조, 그리고 비(非)무슬림의 신앙과 가치에 관대한 이슬람 통치이념이 조화를 이루며 제국을 지탱했다는 것이다. 특히 노예의 아들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고, 기독교도 소년들을 등용해 술탄을 수행하게 하는 데브쉬르메와 이들이 커서 대(大)재상 등 요직에서 국정 운영을 맡는 카프쿨루 제도를 두며, 기독교도 노예들로 이스탄불 중심의 군사 세력인 예니체리 군단을 구성하는 등 이질적인 것의 혼융이야말로 오스만 제국 역사의 백미로 보인다. 19세기 들어 단일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와 국민국가체제의 등장을 오스만 제국이 견뎌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600년 역사를 350쪽 이내에 소화하기란 버거운 작업인데 일본 연구자 특유의 꼼꼼함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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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는 책을 싫어한다고요? 어떤 책 읽을지 몰랐을 뿐이죠”

    “내가 난독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처음으로 책을 완독해 봤다.” 작가 이묵돌(26)이 운영하는 독서토론 모임에 참여한 일부 20대 회원의 소감이다. 이 작가는 올 초부터 유료 회원 50명을 모집해 한 달에 4회,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회원 50명 중 20대가 약 80%다. 10대 시절을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포획돼 ‘책이라고는 교과서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보낸’ 20대가 독서모임에 성큼 발을 내딛고 있다. 30대 직장인을 겨냥한 독서모임 중심의 유료 회원제 소셜 살롱인 ‘아그레아블’ ‘트레바리’ ‘문토’ 등에도 20대 회원이 점차 늘고 있다. 회원 800명가량인 아그레아블은 20대가 20∼30%를 차지한다. 월간지 ‘신동아’가 지난해 꾸려 올해 세 번째 시즌을 맞는 무료 독서모임 ‘지식커뮤니티 북치고’ 역시 예상 밖으로 회원 60여 명 중 20대가 80%를 넘었다. 종이책하고는 벽을 쌓은 것 같고, 독서 문화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자인하는 20대가 돈을 내면서까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박기수 씨(24)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 드라마 등은 SNS에서 공감대가 넓지만 책 이야기를 하면 “아는 척하냐”는 또래의 반응에 숨이 막혔다는 뜻이다. 경찰 공무원인 박 씨는 “살아온 세계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평소 듣지 못하던 얘기를 들으면 내 외연이 넓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지만 주위에 내용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해서 독서모임에 발을 들여놓는 20대도 적지 않다. 대학에 와서 우연한 계기로 책의 세계에 빠져 문예창작으로 전공을 바꿨다는 정혜성 씨(24)가 그렇다. 아그레아블 모임에 나가는 정 씨는 “이 모임에서만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고 말했다. SNS 친화적인 데다 대학 동아리 활동도 폭이 좁아지고 취업 준비에 매몰되면서 다른 자극을 바라는 마음도 한몫한다. 독서모임이 ‘삶의 환풍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작가는 “SNS에 떠도는 가벼운 콘텐츠의 공허함을 채우고 싶고, 유튜브 넷플릭스의 콘텐츠로는 채워지지 않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찾는 것도 같다”고 풀이했다. 중고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나온 정소라 씨(26)는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독서모임의 플랫폼 역할에 주목한다. 정 씨는 “독서모임은 소설이나 고전 한 권을 다 읽도록 시키는 미국 영어 수업과 유사하다”며 “책에 대해 생각을 나누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작가의 독서모임 회원인 윤현수(가명·26) 씨는 “활자 속에서 얻는 위로와 모르는 사람이 전해주는 공감이 새삼 고맙다. 묘하게 동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들 독서모임에서는 국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접수한 에세이류보다는 국내외 고전이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다룬다. 20대가 평소 많이 접하지 않는 새로운 ‘장르’인 셈이다. 어려서부터 정답을 찾는 공부 습관과 누군가 핵심을 정리해주는 데 익숙한 20대에게 독서모임은 ‘책읽기에 정답은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윤 씨는 “20대는 책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 책을 접한 적이 없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라며 “좋아하는 것을 깊게 파고드는 우리 세대의 속성상 독서에도 깊게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독서모임은 이들에게 새로운 식습관을 들게 하는 것처럼 자신만의 독서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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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만드는 법]“700페이지 요리책에 왜 사진 한장 없냐고요?”

    2001년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 시즌2 17편에서 70대 상원의원이 건강보험법안 처리를 막으려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한다. 이 의원이 8시간째 단상에서 읽는 것은 두꺼운 요리책이다. 새우튀김 요리법을 읊는 장면이 잠시 비친다. 요리책은 독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실용서다. 완성된 음식을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담은 사진이 있고, 조리 순서별 사진을 곁들인 것도 있다. 그런데 요리 사진은 아예 없고 700쪽 분량에 450여 가지 요리법을 담은 책이 있다. ‘정통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마르첼라 하잔 지음·박혜인 옮김·마티)다. 서성진 편집자(35·사진)를 비롯해 인문예술 서적을 주로 내온 출판사 마티 사람들은 이 책대로 하면 집에서도 매끄럽게 만들 수 있는지 직접 몇 가지를 요리해봤다. “대표 요리법이 양파 토마토 버터만 넣는 토마토소스, 몸통에 레몬만 넣고 굽는 로스트치킨, 우유에 조린 돼지고기 등심인데 이 중 토마토소스, 로스트치킨하고 파스타, 시금치 수프 등을 만들어 먹어보고는 ‘괜찮다, 이거’ 했지요.” 완성품 사진이 없으니 스스로 만들고서 ‘이 비주얼이면 괜찮은 건가’ 의구심도 들지만 먹어봤을 때 “괜찮잖아!”라며 만족할 수 있단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서 편집자는 “기존 요리책에는 조명도 환하고 더 번지르르하게 나오게 기름을 발라 찍는 요리 사진이 있지만 집에서 하면 절대 그런 비주얼이 안 나와 좌절감만 느낀다”고 말했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요리의 성경으로 불리는 ‘실버스푼’이 이탈리아에 사는 이탈리아인을 위한 책이라면 ‘정통 이탈리아…’는 비(非)이탈리아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책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미국에 살던 저자가 이탈리아말로 쓴 요리법을 미국인 남편이 영어로 옮겨 적었대요. 요리 초보인 배우자가 기초적인 것까지 물어봐서 그런지 내용이 자세해요.” 저자(1924∼2013)는 이탈리아에서 이 요리를 언제 왜 먹는지, 고향 또는 아버지 등 함께 먹었던 사람과 공간의 추억을 군데군데 넣어 읽는 맛도 난다. 밑줄을 쳐가며 읽을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밤은 겨울에 구하면 좋다’가 아니라 ‘밤을 구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는 낮이 짧고 밤은 길며 차가울 때’라는 식이다. 저자는 책에서 “창조적이며 놀라운 맛을 내려고 쓴 것이 아니다. 읽은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썼다”고 말한다. 그만큼 서민적이고 보편적이라는 뜻일 게다. 서 편집자는 “완벽한 맛은 아니지만 내 입맛에 간이 맞고 ‘한 끼, 잘 해먹었다’ 정도로 요리할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다’는 말이 딱 맞는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이 책의 모든 요리를 해먹어보겠다며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모를 일이다. 이 책의 요리법을 유튜브에서 누가 실연해 보일는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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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람 중심 경제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1992년)에서 자본주의의 승리를 선언했다고 해석되지만 사실 인간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신(新)사상의 부재에 대한 막막함이 더 느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전망은 속속 나온다. 그러나 이 뉴노멀을 떠받치는 아이디어는 무엇인지 찾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대전환기 프레임 혁명’은 특기할 만하다. 저자는 사람이 자본의 숙주 도구 부품 노예가 되는 자본 중심 경제 위주의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사람 중심 경제라는 새로운 사상을 이념적 좌표로 제시한다. 거기에서는 자본이 아니라 지식과 감성에 상상력을 곱한 창조력이 생산수단이 된다. 저자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산업화, 민주화 세대 모두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주장한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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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헌정사, 대통령 권력 독주에 대한 견제의 역사”

    “대통령의 권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견제할 것인가가 대한민국 헌정사(憲政史)의 최대 과제였습니다.” 서희경 박사(54)는 최근 1948년 헌법 제정 이래 1987년까지 9번의 개정을 거친 한국 헌정사를 정치적, 헌법적, 제도적으로 분석한 ‘한국헌정사 1948∼1987’(도서출판 포럼)을 펴냈다. 그에게 헌정사는 더 커지려는 대통령 권력의 정상화 시도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1200쪽 넘는 역저(力著)를 쓴 서 박사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헌정사라는 장기 변동에서 중요한 쟁점인 대통령제의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서도 헌정 원칙을 위협하는 대통령제의 한 특징이 드러난다는 것.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한 뒤 벌어진 일이나, 이승만 대통령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적산(敵産·일제가 남기고 간 재산)은 ○○에게 줘라’라고 한 일은 똑같은 거라고 봅니다.” 서울대 정치학과(현 정치외교학부) 대학원에서 헌법 탄생의 역사와 건국 시기 정부 형태를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게 헌법사도, 정치사도 아닌 헌정사인 까닭을 물었다. “헌법사는 결과물로서의 법조항과 그 변천이 중요하지만 헌정사는 역사적 맥락을 강조합니다. 김홍우 선생(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의 ‘성헌론(成憲論)’처럼 헌법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점차적으로 발전하지요. 정치사는 정치세력과 권력이 키워드지만 헌정적 쟁점(대통령제)을 중심에 두지는 않아요.” 헌정이 거치는 정치적 헌법적 제도적 국면에서 헌법사는 헌법이 만들어지고 난 헌법적 국면, 정치사는 개헌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국면에 집중한다면 헌정사는 그 모두를 통시적, 공시적으로 아우른다는 것. 헌정사의 관점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장직 등 국회 상임위원장 18개를 다 차지한 것은 ‘거대 여당의 폭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아주 작은 ‘상원(上院)’ 역할을 하던 법사위 위원장의 야당 몫은 1987년 이후 관행으로 형성된 정치세력 간의 협약인데 그걸 깬 거예요.” 이런 문제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대등한 정치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고, 여당은 대통령 권력 유지를 위해 도구화되고, 국회와 타협하기보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수호자(메시아) 의식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87년 체제’가 30년 넘게 지속되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노태우 김영삼(YS) 김대중(DJ) 세 분이 개헌을 했는데 대통령 직선제는 성취했지만 제왕적인 대통령 권한은 그대로 뒀어요. YS DJ의 ‘원죄’입니다.” 사사오입 개헌, 5·16, 10월 유신, 긴급조치, 5·17, 광주까지 헌정사는 거칠었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헌정사의 길 위에서 배우고 반성하고 깨닫는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 박사는 개헌의 ‘끝점’을 의원내각제라고 보지만 서서히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제헌헌법에서 국무원 합의와 국무총리 승인같이 대통령제에 절충 요소를 더한 것처럼 말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자립적인 중산계급, 타협적인 정당은 제2공화국 때 제기된 민주주의의 조건이었다. 여전히 중요하지만 과거만큼 절실하지는 않다. 서 박사는 “헌정의 문제는 태극기 집회같이 ‘으쌰으쌰’ 해서 풀리지 않는다”며 “헌정에 대한 국민의 지식과 성찰이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책은 읽어볼 만할지 모른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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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나무를 보면 인간의 삶이 보인다

    #1. 가벼운 나무치고 보기 드물게 빳빳해 다른 나무보다 일관되고 집중된 소리를 낼 수 있어 바이올린으로 만들었을 때 낭랑하고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는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자라는 이 나무만을 음향목(音響木)으로 썼다. 무슨 나무일까? #2. 대서양을 횡단하는 노예선에서 노예상인들은 노예들이 마실 물에 이 열매의 가루를 섞어 썩은 물을 마시게 했다. 식욕과 갈증을 달래 준다고 알려졌던 이 열매는 어떤 나무에서 나는 것일까?(※정답은 기사 마지막에.) 어느 겨울 아침, 벼락을 맞아 줄기와 가지가 부러져 죽은, 집 근처 레바논시더 나무를 발견하고 눈물 흘리던 아버지를 본 까닭에 어렸을 때부터 식물의 아름다움을 접한 저자는 “나무를 보기만 해도 그냥 알 수 있었다”고 자신한다. 원제가 ‘Around The World in 80 Trees(나무 80종과의 세계 일주)’인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영국인 저자가 런던에서부터 동쪽으로 향하며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남·북·중앙아메리카 51개국의 나무 80종이 인간 생활에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나무와 사람과 경관 사이에 어떻게 그 나름의 고유한 관계가 형성됐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루실 클레르는 모든 나무와 꽃, 열매 등을 매력적으로 그렸다. 유럽오리나무는 이탈리아 수상도시 베네치아를 정말 ‘떠받치고’ 있다. 이 나무 목재가 물속에 잠겨 있어도 멀쩡하다는 것을 12세기 주민들이 알게 된 것. 세포벽에 들어 있는 특별한 화학물질이 부패의 원인이 되는 세균의 번식을 막아 수백 년이 지나도 물속에서 본래의 압축 강도를 유지한다. ‘굽은 나무가 선산(고향)을 지킨다’는 속담대로 비틀어지고 거대한 케이폭나무와 반얀(바니안)나무는 경외의 대상이면서 마을 주민들의 회합 장소다. 반얀나무의 반얀(banyan)은 상인을 뜻하는 ‘banian’에서 왔는데 이 거대한 나무 아래가 북적거리는 장터도 됐음을 엿볼 수 있다. 17세기에 처음으로 병에 코르크참나무 껍질로 만든 코르크 마개를 사용한 사람은 돔 페리뇽(돔 페리뇽 샴페인의) 수사였고, 소말리아의 유향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에서 나는 가장 가치 있는 물자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유향을 ‘땅에 떨어진 신들의 땀’이라고 불렀다. 나무 80종에 대한 백과사전 같은 지식과 언뜻 비치는 경구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보면 저자의 권유대로 ‘가까운 식물원이나 수목원에서 나만의 나무여행’을 시작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시아에서는 9종의 나무가 소개되는데 아쉽게도 한국 나무는 없다.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아무튼, 식물’ 같은 책을 쓴 임이랑 작가에게 하나 꼽아 달라고 했더니 한라산 등 고산지대에서 나는 구상나무를 알려줬다. ‘한국에서만 사는 소나뭇과의 나무. 키는 20m까지 자라며 단단하고 우아한 외형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 심벌 나무로 지정됐다. 슬프게도 지구온난화로 고산지대 구상나무들이 죽고 있다.’ (정답 #1=독일가문비나무, #2=콜라나무)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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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프라인 두드리는 온라인 콘텐츠 “보는 것만으론 안돼, 만지고 싶어”

    온라인 콘텐츠를 활용하는 방식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주로 웹툰, 드라마, 게임 같은 2차 저작물로 만들어지는 웹소설을 단행본으로 내고, 유튜브 채널을 통째로 무크지로 옮겨온다. 웹소설 서비스 플랫폼은 웹소설을 책으로 낼 계획이다. 다산북스는 웹소설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를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지난해 네이버 시리즈에 연재돼 누적 다운로드 1000만 회를 넘긴 히트작이다. 몇몇 군소 출판사가 웹소설을 책으로 낸 적은 있지만 단행본 출판사 매출 10위 안에 드는 업체가 뛰어든 것은 처음이다. 이호빈 다산북스 국내문학팀장은 “네이버나 카카오 웹소설 중 반응이 좋으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팬덤이 형성된 것을 주로 골랐다”고 말했다. ‘중증외상센터…’는 ‘한산이가’라는 필명의 현직 의사 이낙준 씨가 썼다. 이 씨가 동료 의사 2명과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는 63만 명이 구독한다. 포털사이트를 빼고 국내 최대 웹소설 플랫폼인 문피아도 단행본 출판에 나선다. 자사 히트작 중에서 선정해 하반기에 낼 계획이다. 김환철 문피아 대표는 “독자가 원하는 형태의 책을 원하는 수량만 공급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축적된 독자의 기호나 반응 등 방대한 1차 데이터를 토대로 책을 골라 히트할 조짐이 보이는 책은 대량으로 찍어내겠다는 복안이다. 김 대표는 “문피아의 목표는 콘텐츠 기업이다. 글을 쓰는 것은 원천 콘텐츠 확보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무크지를 표방하는 ‘유크’(아르테)는 주로 유튜브 채널 운영자의 에세이를 내거나, 운영자를 캐릭터로 내세운 만화 등을 펴내던 기존 ‘유튜브 활용법’과는 다르다. 지난달 나온 유크 1호는 구독자 18만 명이 넘는 ‘캠핑한끼’ 채널을 해부했다. 캠핑하며 스스로 한 끼를 해결하는 콘셉트의 이 채널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크리에이터는 누구인지, 기획부터 제작까지 어떻게 진행하는지, 요리는 어떻게 만드는지, 각 분야 전문가가 본 소감은 어떤지 등등을 담았다. 유크를 담당하는 이정미 아르테 문학팀장은 “사내 유튜브 콘텐츠 개발 아이디어 공모에서 뽑힌 것”이라며 “좋은 유튜브 콘텐츠를 큐레이션 해보자는 취지로,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격월간이 목표다. 이처럼 새로운 온라인 콘텐츠 활용법은 충성도 높은 독자(구독자)가 있기에 가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호빈 팀장은 “(팬덤이 형성된 웹소설) 팬들이 종이책을 만들어 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한다. 관련 상품(굿즈)까지 기획해서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정미 팀장도 “유튜브 채널의 로열티 있는 구독자를 대략 3∼5%로 추정하는데 이들을 유크의 잠재적 독자로 본다”고 했다. 모바일로 본 것을 책이라는 물성으로 소장하고 싶어 하는 웹소설 독자가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돈을 내고 보기는 하지만 그 웹소설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스스로는 디지털 세대라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사고는 아날로그적으로 하는’ 독자가 있다는 얘기다. 독자 타깃층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만큼 판매량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다산북스 측은 웹소설 분량이 방대해 대략 한 책을 5부작으로 생각하는데 권당 1만∼1만5000부를 예상하고 있다. 굳이 단행본 출간을 바라지 않는 웹소설 작가의 성향상 출판 계약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후문도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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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쓰는 법]부모님을 위해 사는 90년생 삶이 짠해서

    지난해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는 난데없이 나타난 1990년대생의 ‘언행독해법’을 소개했다. 90년생은 외계인 같은 탐구 대상이다. 그런데 1994년생 이묵돌 작가(26·사진)는 최근 낸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메가스터디북스)에서 이들의 슬픔을 본다. “‘90년생이 온다’는 1980년대생 저자가 중간관리자로서 90년생을 어떻게 이해할지 분석하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특정하기 쉽지 않은 90년생의 공통분모는 감수성, 슬픔에 있지 않을까 했어요.” 18일 서울 종로구 이마카페에서 만난 이 작가는 그 슬픔이 부모 세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짚었다. “부모에게 나약한 모습, 패배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안정적인 길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서 1차적으로 슬픔이 느껴져요. 자신이 왜 슬픈지도 몰라요. 인정을 받지 못해서? 취직하지 못해서? 취직할 이유를 알지 못해서? 계속 (회사를) 다닐 이유를 알지 못해서? 복합적이죠.” 슬프게도 이 책에서 90년생은 1970년대생도 학창 시절 느꼈을 중압감을 똑같이 느낀다. 공부다. “다른 건 필요 없고 공부만 잘해.” 부모는 변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이 작가가 사는 동네 근처 서울대에서 열린 축제 포스터 문구는 이랬다. ‘엄마, 서울대 오면 여자친구 생긴다고 했잖아.’ “(90년생은) 대학 졸업할 때쯤 돌아보면 그동안 부모에게서 투자받은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이 투자가 헛되지 않았다고 증명해야 하는 강박이 있어요. 생존을 위해서도, 누군가를 책임지는 것도 아닌데 빨리 취직하고는 ‘내가 생각한 일이 아닌데’ ‘이렇게 살다 죽는 건가’ 하면서 늘 퇴사를 생각해요. 방향성은 없는데 어른은 돼 버린 거죠.” 90년생이 성인이 될 무렵 한국 사회에는 ‘은둔형 외톨이’가 도드라졌다. 이 작가는 “시도하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사실은 실패할까봐, 실패감에서 헤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워서라는 것. “(그래서) 직장에서 ‘일을 왜 이렇게 했느냐’는 피드백을 받으면 ‘나는 무능력한 인간이야’ 실망하거나 ‘나는 완벽한데 회사가, 시스템이 잘못이야’라고 감정적인 대처를 해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금이 가면 안 되니까, 그러면 견딜 수 없으니까.” 땀 흘려서 뭔가 이루기는 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행복한 삶처럼 ‘남들한테’는 보여야 하니 짠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어’ 그런 것을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개수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 슬픔을 저희 세대가 많이 느낍니다.” 소설에 나올 법한 어려운 환경에서 큰 이 작가는 “중고교 때 몇 번 백일장 상 탄 것을 살려서 인터넷에 취미 삼아 썼다가 정말 잘 얻어 걸렸다”면서 책을 10권 쓴 경력을 겸손해했지만 문장은 결코 녹록지 않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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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국가 번영의 뒤안길서 신음하는 일본인들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뒤 일본에서는 ‘1억총참회(1億總懺悔)’라는 말이 득세했다. 무모한 전쟁도, 무참한 패배도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일본 국민이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는 취지였다.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국민, 이 책의 표현을 빌리면 ‘헐벗은 백성’에게 돌아간다. 재일 한국인 진보 지식인인 저자가 2016년 1월∼2017년 9월 교도통신 주관으로 일본 약 30개 일간지에 연재한 기행문 ‘강상중 사색의 여행 1868년부터’를 묶은 책이다. 오키나와에서 조선인 강제징용과 비참한 탄광 생활의 나가사키현 군함도, 최악의 공해병이던 미나마타병의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 1995년 한신대지진의 최대 피해지 효고현 고베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진앙’ 후쿠시마현 원자력발전소, 홋카이도 노쓰케반도까지 일본 열도를 종단하며 국가 번영의 뒤안길에서 신음하는 국민의 자취를 좇았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열강과 어깨를 견주는 근대국가로 발돋움하고, 패전 후 고도성장으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강대국이 되는 등 일본이라는 국가는 떠올랐다. 그러나 실패와 과오로 비극이 되풀이될 때마다 국가는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며 ‘망각의 안전지대로 도망’간다. 저자는 이 같은 ‘희극적 일상의 반복이 일본 근대의 패턴’이라고 꼬집으며 그 근원을 19세기 서구에 맞선 메이지 일본의 국가 전략이던 화혼양재(和魂洋才)에서 찾는다. 일본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 지식의 조화를 뜻하는 이 말은 정신과 기술의 분리를 뜻한다. 따라서 패전도, 재앙도 기술의 실패일 뿐 정신, 화혼 즉 국가의 문제는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화혼은 ‘무오류의 천황’에서 ‘국민 없는 국가주의’로 양태를 바꿨을 뿐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국가와 사회가 함께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한국은 분명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국가의 핵심으로 들어가 정권을 대변하는 현재 양상을 모르고 하는 말인 것 같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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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주제, 다른 시선… 짧은글이 뜬다

    하나의 소재나 테마로 다양한 작가들이 짧은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으로 펴내는 앤솔러지가 몇 년 새 은근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문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교양 분야에서도 시의성 있는 이슈를 다루는 앤솔러지가 눈에 띈다. 과거 앤솔러지가 문학상 수상작 모음집같이 순수문학 위주로 간간이 보였다면 최근에는 SF를 중심으로 장르문학에서 활발하다. 장강명 듀나 김보영 등 8명의 작가가 슈퍼 히어로를 주제로 펴낸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2018년·민음인), 올해 ‘일상을 살아가는 내 안의, 우리 안의 괴물’을 테마로 김동식 윤이형 곽재식 등 10명의 단편을 묶은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 ‘몬스터: 한밤의 목소리’(이상 한겨레출판), 현역 천문학자와 물리학자 등 비소설가 4명과 SF 작가 1명이 SF를 주제로 쓴 소설을 묶은 ‘떨리는 손’(사계절) 등이 대표적이다. 순수문학에서도 반향 있는 소재의 앤솔러지가 나오고 있다. 윤성희 손보미 백수린 등 여성 작가 6명이 할머니를 테마로 쓴 단편을 모은 ‘나의 할머니에게’(다산책방)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주요 단행본 출판사들도 앤솔러지 흐름을 따라가는 분위기다. 민음사는 이달 말 ‘시스터후드’ ‘모바일 리얼리티’ ‘괴담’을 주제로 하는 앤솔러지 ‘더(the) 짧은 소설’(전 3권)을 펴낸다. 문학과지성사도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3편 선정해 모은 ‘소설보다’ 앤솔러지를 내고 있다.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주간은 “짧은 글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주 독자층인 20, 30대가 읽기 원하는 당대 이슈를 그때그때 풀어서 전달할 수 있다는 것과 기획에서 출판까지 빠른 호흡으로 진행시키며 단행본 필자를 타진해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특정한 소재나 모티브에 맞춰 짧은 글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점도 앤솔러지 붐의 한 요인이다. 인문교양 분야에서는 페미니즘, 반려동물같이 최근 몇 년간의 주요 사회 이슈를 다루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전망하는 앤솔러지가 대거 등장했다. 지난주 출간된 ‘나는 반려동물과 산다’(다산에듀)는 인문학자, 수의사, 문학평론가 등 필자 9명이 개와 고양이를 사랑할 때 마주하는 인문학적 질문들을 풀어냈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글항아리)는 의사, 종교학자, 철학자, 사회복지학자 등 12명이 AD(After Disease) 시대 각 영역의 변화를 예측했다. 앤솔러지가 깊이 있고 긴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 세태의 반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학편집자는 “기획성이 도드라지는 앤솔러지는 단행본 한 권의 가치를 갖지만, 신진 작가에게는 긴 호흡의 완성도 높은 장편을 쓸 시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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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현 수필집 2억2000만원에 日수출… 역대 최고가 계약

    에세이스트 김수현의 신작 에세이집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다산북스·사진)가 한국 출판 사상 최고가로 일본에 수출됐다. 그의 전작 에세이집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국내에서 100만 부 넘게 팔렸다. 14일 김선식 다산북스 대표는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가 일본의 한 출판사와 약 2억2000만 원에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에 수출된 국내 서적 계약액으로는 최고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한국 서적이 일본에 1억 원 이상의 선인세를 받고 계약한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국내에서 출간된 김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집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타인과의 관계를 주제로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국내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에세이집을 내기 위해 주요 출판사를 비롯해 20곳 이상에서 번역 출판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을 따낸 일본 출판사는 지난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도 번역해 일본에서만 24만 부 넘게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책을 읽었다는 입소문까지 더해져 경쟁이 더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자기를 존중하면서도 남에 대해 싫을 때는 싫다고 하면서 편안하게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처방을 제시하는 등 일상 속의 통찰을 통해 삶의 가치관을 조금씩 바꿔주는 내용이 일본의 20, 30대 감성과 교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히트하는 등 최근 몇 년 새 에세이를 비롯한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잇달아 선전하고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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