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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겨울방학이 끝난 교문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학생들 사이에 조용히 퍼졌다. 교실에서 옆 교실로, 또 그 옆 교실로. 그것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학생이 점점 늘었지만, 교사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팬데믹(대유행) 같았다. 올해 3월부터 서울의 A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에선 은밀한 유행이 돌았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 뒤에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던 것. 이들이 함께 접속한 건 한 온라인 도박 ‘바카라’ 사이트였다. 시작은 단 한 명이었다. 최승현(가명·18) 군은 방학 동안 바카라를 시작했다. “터치 몇 번, 클릭 몇 번이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한 유튜브 영상 때문이었다. 호기심에 시작한 도박은 점점 판돈이 커졌다. 종국에는 2400만 원을 쏟아부었다. 궁지에 몰린 최 군은 만회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이 도박 사이트는 친절하게 팁을 안내하고 있었다. ‘신규 회원을 추천해 가입시키면 온라인 머니 2만8000원을 드립니다!’ 이거다. 개학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던 최 군은 새 학기 바빠졌다. 교실마다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도박 사이트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최 군의 솔깃한 유혹을 친구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최초의 ‘슈퍼 전파자’였다.● 학교 집어삼킨 ‘도박 다단계 유혹’ 이용자가 ‘다단계’처럼 지인들을 꼬드겨 가입시키게 만드는 도박 사이트의 계략은 적중했다. 최 군은 먼저 같은 반 친구 3명을 사이트에 가입시켰다. 그 뒤에는 다른 반 친구 4명도 추가로 가입시켰다. 인당 2만8000원, 7명이니 총 19만6000원의 사이버 머니가 입금됐다. 최 군은 이 돈으로 다시 베팅했다. 최 군이 끌어온 7명의 학생은 다시 다른 학생들을 끌어와 가입시킨 뒤 사이버 머니를 입금받았다. 최 군이 끌어온 신규 회원이 늘어날수록 학교는 점점 ‘도박 왕국’으로 변해 갔고, 학생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이 학교 권준우(가명·18) 군도 그중 한 명이었다. 권 군은 바카라에 손을 댔다가 불과 몇 달 새 560만 원을 잃었다. 그래도 손을 털지 못하고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한 판에 적게는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을 썼다. 총 3600만 원을 판돈으로 탕진한 학생도 있었다. “10초면 수십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70만 원을 베팅했다가 잃은 저소득층 학생도 있었다. 4월이 지나자 3학년 총 9개 반 중 5개 반 이상의 학생들이 도박에 빠져 있었다.● 수사로 드러난 ‘도박 왕국’ 학교 실태 “쟤들이 왜 맨날 모여 있지?” 의아하게 여기던 3학년 상담교사가 어느 날 현장을 덮쳤다. 학생들이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에는 도박 게임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건 학교가 감당할 수준을 넘었다. 교사는 경찰에 신고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단체로 도박을 하고 있어요.” 경찰은 학교전담경찰관(SPO) 6명을 학교에 보냈다.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가 시작됐다. 그 결과 3학년 전체 학생 233명 중 23명이 바카라, 스포츠토토 등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입시가 코앞인 고3 교실마다 도박 중독자가 2, 3명씩 있다는 사실에 학교는 경악했다. 경찰이 적발한 23명에게 도박 중독 평가를 실시한 결과 8명은 중독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1000만 원대의 판돈을 쓴 학생도 있었다. 경찰은 부모들에게 자녀의 도박 중독 상담 치료를 권했으나 “그냥 재미 삼아 한 것뿐일 거예요” “내 아이한테 도박 중독이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냐” 등의 반응이 돌아왔다. 경찰이 소개해 준 도박 치료 상담센터가 “너무 멀다”며 치료를 거절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 센터는 학교에서 지하철로 불과 54분 거리에 있었다. ● “전 부처 차원의 대책 마련 시급”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도박으로 붙잡힌 10대 청소년은 올해 1∼5월 사이 217명이다. 이미 지난해 전체(184명) 규모를 훌쩍 넘었다. 현 추세대로라면 연말에는 400∼500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검거된 217명 중 138명(64%)은 비수도권 학생들이었다. 10대는 오프라인 도박장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도박을 하다 보니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도박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검거 인원이 가장 많은 지역은 부산 30명, 서울 22명, 대구 21명 순이었다. 전남 무안군은 소도시인데도 불구하고 19명이 검거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검거된 10대 도박 사범 471명 중 92명(19.5%)은 재범 이상이었다. 올해 1∼5월 적발된 194명 중에서는 41명(21.1%)이 재범 이상이었다. 하지만 도박 중독 청소년을 감당할 수 있는 치료, 상담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총 45개 시군에서 청소년 도박 사범이 검거됐는데, 이 중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산하 상담센터가 있는 곳은 11곳(24%)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은 도박 문제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도박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 부처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과거 일부 학생이 일탈 성격으로 사이버 도박을 했다면, 지금은 상당히 많은 청소년들이 도박을 하는 시대가 됐다는 증거”라며 “체계적인 도박 예방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이상환 사회부 기자 payback@donga.com▽팀원 이수연 손준영 이채완 서지원 사회부 기자}
온라인 도박에 빠져 빚까지 지게 된 10대 중학생, 고등학생 등 청소년들은 빚 독촉과 폭력, 협박을 피해 학교를 옮기고 아르바이트로 내몰리는 등 일상이 무너졌다. 경남의 한 고등학교 2학년 최승민(가명·17) 군은 지난해 6월 친구를 따라 카드 게임형 온라인 도박 ‘바카라’에 우연히 손댔다. 최 군은 실력이 좋지 못해 승률이 절반에도 못 미쳤고 돈을 잃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김모 군(17)에게 “벌써 50만 원이나 잃었다”고 토로했다. 김 군은 다른 도박 사이트를 알려주며 “‘내가 돈을 빌려줄 테니 여기서 해봐라. 쉽게 딸 수 있다”고 제안했다. 솔깃한 제안에 최 군은 김 군에게 도박 자금을 빌렸다. 처음 빌린 것은 실제 돈이 아니라 도박 사이트에서 통용되는 사이버 머니 ‘1만 원’권이었다. 일종의 가상화폐 같은 것. 이후 최 군은 계속 돈을 잃었고 그때마다 김 군은 계속 돈을 빌려줬다. 빌리는 돈이 3만 원, 5만 원, 10만 원씩 점차 불어나 한 번에 200만 원까지 빌리기도 했다. 한 달 뒤 도박 빚은 총 500만 원 이상으로 불어 있었다. 갚아야 할 금액이 커지자 최 군은 두려운 마음에 김 군에게 “이젠 돈을 빌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군은 “그러면 지금까지 빌려간 돈을 내놔라”라며 화를 내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올해 4월에는 김 군이 최 군의 교실로 찾아와 주먹을 휘둘렀다. 현금이 4만 원밖에 없던 최 군은 이를 김 군에게 준 뒤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김 군은 심지어 최 군의 부모도 협박했다. 5월에는 김 군이 최 군의 부모에게 “제 돈 받아내기 위해 뭔 짓이든 하겠다. 웃으면서 기다려주는 것도 이번까지다”라는 협박 문자를 보냈다. 최 군의 아버지는 김 군에게 20만 원을 줬다. 계속되는 협박과 독촉에 견디다 못한 최 군은 5월에 경남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갔지만 ‘도박에 빠졌던 애라더라’는 소문이 나버려 결국 자퇴했다. 최 군은 지난달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무섭고 후회된다”며 “최근까지도 김 군의 협박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김 군과 관련해 현재 내사 중이다. 특별취재팀▽팀장 이상환 사회부 기자 payback@donga.com▽팀원 이수연 손준영 이채완 서지원 사회부 기자}
“나는 ‘16세 도박 총판’이었다”… 검은 돈의 악마가 된 청소년들《10대 청소년들이 온라인 도박에 빠지고 있다. 즐기는 정도를 넘어 도박 조직 ‘총판’으로 일하고 불법 사채까지 손댄다. 동아일보 사건팀은 3개월간 도박 청소년 37명을 취재했다. ‘온라인 도박, 교문을 넘다’ 3부작의 첫 번째는 10대에 ‘도박왕’이 된 김동현(가명·22)과 박성호(가명·19)의 이야기다.》“당신 아들 도박 빚, 학교에 알려줄까?” 동현(2019년 당시 17세)은 수화기 너머 40대 여성에게 쏘아붙였다. 오늘은 꼭 받아내야겠다. “아드님이 도박한다면서 나한테 돈을 빌렸다고요. 우리 학생부장이 알면 안 좋아할 텐데. 어머니가 갚으셔야죠.” 동현은 안다. 아주머니는 떨고 있다. 당신의 고등학생 자녀가 도박 빚이 있고 갚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부모들은 사색이 됐다. 판검사들도 똑같았다. 동현도 같은 10대였고 부모의 자식 사랑을 잘 알았다. 달랐던 것은 동현은 이미 ‘도박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는 사실이다. 전화를 받은 여성의 아들은 동현의 같은 반 친구였다. 친구는 동현이 권한 온라인 도박 ‘바카라’에 빠져 500만 원을 빌렸고 이자가 붙어 3000만 원으로 불어 있었다. 도박 자금이 필요한 아이들은 동현을 찾아왔다. “이자는 하루 10%, 이틀 20%, 사흘 30%.” 살인적인 이자율에도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돈을 빌렸다. 도박 빚을 안 갚으면 동현은 그들의 부모에게 전화했다. 이날 통화가 끝난 뒤 동현의 휴대전화에는 ‘3000만 원이 입금됐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사이 카카오톡 메시지 수십 개가 쌓여 있었다. “나 10만 원만 빌려줘.” “다음 주에 갚을게.” 중3이 될 때까지만 해도 동현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그는 대구 일대 중학교, 고등학교를 도박으로 주름잡고 있었다. “당신 아들 도박빚, 학교에 알릴까” 친구 엄마에게도 전화했다‘16세 도박 총판’ 김동현 씨1만원 무료 사이버머니가 늪의 시작학교 친구들 온라인 도박 가입 유혹‘하루 10%’ 고리로 도박자금 빌려줘동현이 도박에 발을 들인 건 2017년 중3(당시 15세) 때였다. 하루 종일 접속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에는 “돈 벌 수 있다”는 도박 광고 콘텐츠가 넘쳤다. 몇몇 친구는 “바카라로 10만 원 땄다”고 자랑했다. “나도 만 원만 넣어볼까.”그게 시작이었다. 친구가 알려준 온라인 도박 ‘바카라’ 사이트에 가입했다. 신규 회원이라며 무료로 ‘1만 원’ 사이버 머니가 지급됐다. 동현의 실력이 제법 좋았는지 며칠 새 사이버 머니 지갑에는 200만 원이 쌓였다. 돈의 맛은 황홀했다. 그날부터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동현은 구석에서 친구들과 휴대전화를 쥐고 도박을 했다. 판돈은 수백만 원으로 커졌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는 ‘베터(bettor·도박 고객)’에 불과했다.● 도박 고객에서 홍보 총판으로2018년(당시 16세). 동현이 고1에 올라가자 ‘잘나가는 형들’이 다가왔다. “꼬맹아.” 이미 온라인 도박에 깊게 손댔던 형들은 동현에게 사이트 홍보를 담당하는 ‘총판’ 자리를 제안했다. “수입이 꽤 쏠쏠할 거야.” 그들은 젊은 나이에 BMW를 몰았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는 건가. 망설임 없이 ‘총판’ 직함을 달았다.동현이 처음 잠재적 고객으로 겨눈 건 같은 학교 친구들이었다. “한 판이 10초면 돼.”, “너도 돈 벌 수 있어.” 동현의 유혹에 친구들이 사이트에 가입해 돈을 쓰면 동현은 판돈의 1%를 수수료로 챙겼다. 친구들은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탕진했다. 그사이 동현의 돈벌이는 점점 늘었다. 다른 학교 총판을 관리하는 ‘총판들의 총책’이 됐다. 아래 총판들이 신규 회원을 물어오면 동현은 한 사람당 100만 원을 인센티브로 챙겨줬다.● 불법 사채를 시작하다동현은 고1 가을쯤 새 사업에 눈을 떴다. 친구들에게 도박 자금을 빌려주고 고리(高利)의 이자를 받았다. 불법 사채. 그전까지 벌어온 돈이 ‘종잣돈’이 됐다. ‘하루 이자 10%’라는 말도 안 되는 이자율에도 고등학생들은 해맑게 돈을 빌려갔다. 영악한 동현은 그때마다 친구들 얼굴 사진, 학생증 사본, 부모들 연락처를 받아뒀다. 돈을 갚지 않으면 ‘도박 빚 안 갚은 놈’이라고 낙인찍어 얼굴 사진을 온라인 여기저기 뿌렸다. 부모에게 전화해 빚 독촉도 했다. 그래도 못 갚을 땐 수족으로 부렸다. 추심팀. 즉, 다른 학생들의 빚을 받아오라고 시켰다. 일을 잘해오면 받은 돈에서 얼마를 떼어줬고 그럴수록 추심팀원들은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빚을 받아왔다.“돌이켜보면 그때쯤부터 죄의식이란 게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내 손으로 험한 일 안 해도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동현이 뿌린 도박의 씨앗은 착실히 학교에 뿌리내렸다.● 갑자기 온 몰락… 남은 건 빚 1억몰락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2019년 고2에 올라갈 무렵 동현은 대구의 한 상가에 홀덤펍으로 위장한 불법 도박장을 차렸다. 동현보다 나이가 많은 20대 대학생 누나들을 면접 봐 딜러로 고용했다. ‘어른의 세계’에 진출한 듯했다. 하지만 어느 날 동네 건달 무리가 찾아왔다. “너 누구 허락 받고 장사하냐.” 그들은 다 때려 부쉈다. 6개월 만에 도박장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번 돈은 모두 잃었다. 만회하려고 손을 댄 도박으로 1억 원이 넘는 빚까지 졌다.동현과 함께 도박을 하던 무리 중 한 명은 작년에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현재 스물두 살 동현은 도박 중독 치료를 받으며 지낸다. 요즘도 여전히 그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좋은 건이 있는데, 같이 해볼래?”도박 사이트 만들어 파는 박성호 씨중 3때 도박 총판 月 2000만원 벌어아버지에 들킨 뒤 도박사이트 제작과거로 돌아가도 또 도박할 것 같아눈을 뜨니 숙취 탓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요즘 성호(가명·19)의 일상은 매일 잠, 일, 친구, 술, 잠의 반복이다. 주섬주섬 차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잠시 학교 앞을 지날 때 운동장에 친구들 모습이 보였다. 체육 시간인가 보네. ● “너도 해볼래?” 3년 전인 2021년. 평범한 중3 학생이었던 성호(당시 16세)에게 “너도 해볼래?” 물으며 다가온 것은 동네 고등학생 형들이었다. “뭔데요?” “그냥 게임. 돈 버는 게임.” 성호가 온라인 도박에 흥미를 보이자 형들은 얼마 뒤 다른 제안을 했다. “적당히 기프티콘 뿌리면서 회원들 관리만 해. 돈이 쏟아질 거야.”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서 ‘회원 관리’를 해보겠냐는 권유였다. 해보지 뭐. 딱히 다른 일도 없는데. 성호는 도박 사이트 ‘총판’이 됐다. 신규 회원을 끌어와 가입시키고 유지, 관리하는 게 일이었다. 끌어온 친구들이 도박을 하는 걸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돈을 잃어 도박을 그만두려는 친구들에게는 “한 번만 더 해봐” 기프티콘을 뿌리며 판을 못 떠나게 붙잡았다. 성호가 친구들을 회원으로 끌어올 때마다 형들은 인센티브를 줬다. 말 그대로 다단계였다. ● 늪에 빠져든 친구들 성호가 학교를 돌며 “너도 해봐”, “내가 챙겨줄게” 하며 친구들을 끌어모을 때마다 학생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온라인 도박에 빠지는 이들이 늘어갔다. 학교를 마치면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게도 찾아갔다. 그러는 동안 성호의 은행 계좌에 어느 날에는 600만 원, 어느 날에는 4800만 원씩 거금이 입금됐다. 성호는 회상한다. “그때 매달 평균치로 치면 한 2000만 원씩 벌었던 것 같아요. 총 2억에서 3억 원 정도 되려나. 중학생이 만진 돈이라는 게 상상이 되세요?” 당시 성호의 주변에는 총판 일을 하는 친구들이 열댓 명 있었다. 이들은 도박 사이트로 번 돈을 ‘저금할 수 없는 돈’이라고 불렀다. 은행 계좌에 넣어두면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이를 잘 몰랐던 성호는 번 돈을 계좌에 넣어놨다가 2021년 12월 보이스피싱 의심 계좌로 신고, 정지됐다. 60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은행에 직접 가야 묶인 계좌를 풀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의심을 사고 결국에는 경찰로 가게 될 텐데. 6000만 원 그냥 잊자. 성호는 그 대신 페이스북, 텔레그램 등에 ‘대포통장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려 300만 원씩 주고 통장을 사들였다. 그렇게 불린 통장만 수십 개.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명품 매장에 뛰어갔다. 시계도 사고 옷, 모자, 신발……. 교복 차림의 친구들과는 다른 계급이 된 것만 같았다.● 도박을 못 하면 도박 사이트를 만들자 꼬리가 길면 밟힌다. 성호가 고2이던 지난해 아버지가 알았다. 휴대전화 단도리를 잘했어야 했는데. 가족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 성호의 휴대전화에 ‘650만 원이 입금됐다’는 문자가 날아들었고 아버지가 이를 봤다. 장난기 많던 아버지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딱 한마디 말했다. “그 일, 그만둬라.” 화수분처럼 벌던 돈이 끊기자 성호는 금단 현상을 겪듯 안절부절못했다. 돈을 벌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올해 고3에 올라간 성호는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만들어서 파는 새 일을 시작했다. 건당 1만 원 정도 들이면 만들고, 파는 건 5만 원씩. 제법 잘돼서 벌이가 쏠쏠하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아무 문제가 없잖아. 내가 뭐 징역을 간 것도 아니고. 난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아마 도박을 할 것 같아요.” 성호는 올해 5월 학교를 자퇴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상환 사회부 기자▽팀원: 이수연 손준영 이채완 서지원 사회부 기자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모의평가 문제를 만들고 학원에 팔아 최대 수억 원을 챙긴 현직 교사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한 현직 고등학교 교사는 4년간 문제 판매로 2억50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주관하는 수능 모의평가 검토진으로 참여한 교사도 있었다. 2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사교육 업체와 유명 입시학원 등에 문제를 만들어 판 혐의로 현직 고교 교사 등 69명을 입건하고, 이 중 2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입건된 69명 중 교원은 46명(퇴직자 2명 포함), 학원 관계자는 17명(강사 6명 포함), 기타 6명이다. 기타 6명 중에는 평가원 관계자 4명, 입학사정관 1명도 포함됐다. 이번에 검거된 서울 소재 고교 A 교사는 2022년 5월 ‘2023학년도 6월 수능 모의평가’ 검토진으로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출제 정보를 활용해 문항 11개를 만들어 모의평가가 시행되기 전 대형 입시학원 2곳에 판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2019년부터 이 같은 방식으로 문제 수천 개를 만들어 팔아 총 2억54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EBS 교재 출제위원으로 활동했고 현재도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A 씨를 포함해 문항 판매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14명 중 11명은 사교육 업체에 수능 관련 사실 문항을 제작 및 제공한 대가로 돈을 받았다. 함께 검거된 다른 교사 3명은 특정 학원에만 독점적으로 문항을 만들어 공급하는 대가로 최대 3000만 원씩의 계약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송치된 24명은 전원 서울의 현직 고교 교사였다. 이들은 문제를 만들어 돈을 받고 팔거나(청탁금지법 위반), 문제를 사교육 업체에 유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한 문항당 평균 10만 원 내외, 많게는 30만 원까지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사의 문항 판매 행위에 청탁금지법이 적용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직 교사는 최근 3년 내 문항을 제작해 판매하거나 문제집을 제작하면 평가원 출제위원 등으로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 적발된 교사 중 19명은 평가원에 허위 자료를 제출해 출제위원으로 선정됐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도 겸직근무 위반 등의 교원 징계 사유일 뿐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위법인 줄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교육부는 2017년부터 ‘문항을 판매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수차례 학교에 전달해 왔다”며 “‘위법성을 몰랐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수사 중인 나머지 사교육 카르텔 사건 연루자 40명에 대해 신속히 수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며 “교육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입시 절차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건전한 교육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실효적 제도 개선 방안이 마련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최근 우체국 집배원, 택배기사 등을 사칭하는 방식의 신종 보이스피싱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경찰이 주의를 당부했다. 2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우체국 집배원 등을 사칭하고 악성 애플리케이션(앱) 설치를 유도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을 공개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자신을 집배원이라고 속여 접근한 뒤 피해자들에게 ‘명의 도용 피해를 입은 것 같다’며 고객센터 번호를 알려준다. 피해자가 그 고객센터 번호로 전화를 걸면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 같으니 원격제어 앱을 설치해야 한다’고 앱 설치를 유도한다고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설치하도록 유도한 건 원격제어 앱이다. 이들은 또 다른 악성 앱을 설치하거나, 범행 마지막 단계에서 피해자와의 대화 기록을 삭제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용도로 이 앱을 악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이 같은 방식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7억 원을 뜯긴 사례도 있었다. 최근에는 피해자에게 휴대전화 추가 개통을 요구하는 수법의 보이스피싱 사기도 잇따르고 있다. “새로 개통한 휴대전화로만 연락하라”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도록 지시하거나, 현금을 인출할 때도 해당 휴대전화만 가지고 다니라고 일러준다. 은행 직원이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대화 내용 등을 토대로 범행이 발각될 위험이 있다 보니 이를 막기 위해 사전 작업을 벌인 것이다. 국수본 관계자는 “수사기관은 절대로 보안 유지 목적으로 원격제어 앱의 설치나 휴대전화 개통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신종 사기 수법을 숙지하고 있으면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최근 우체국 집배원, 택배기사 등을 사칭하는 방식의 신종 보이스피싱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경찰이 주의를 당부했다.2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우체국 집배원 등을 사칭하고 악성 애플리케이션(앱) 설치를 유도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을 공개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자신을 ‘집배원’이라고 속여 접근한 뒤 피해자들에게 ‘명의도용 피해를 입은 것 같다’며 고객센터 번호를 알려준다. 피해자가 그 고객센터 번호로 전화를 걸면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 같으니 원격제어 앱을 설치해야 한다’고 앱 설치를 유도한다고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설치하도록 유도한 건 원격제어 앱이다. 이들은 또 다른 악성 앱을 설치하거나, 범행 마지막 단계에서 피해자와의 대화 기록을 삭제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용도로 이 앱을 악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이같은 방식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7억 원을 뜯긴 사례도 있었다. 최근에는 피해자에게 휴대전화 추가 개통을 요구하는 수법의 보이스피싱 사기도 잇따르고 있다. “새로 개통한 휴대전화로만 연락하라”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도록 지시하거나, 현금을 인출할 때도 해당 휴대전화만 가지고 다니라고 일러준다. 은행 직원이나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대화 내용 등을 토대로 범행이 발각될 위험이 있다 보니 이를 막기 위해 사전 작업을 벌인 것이다. 국수본 관계자는 “수사기관은 절대로 보안 유지 목적으로 원격제어 앱의 설치나 휴대전화 개통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신종 사기 수법을 숙지하고 있으면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2013년 SK하이닉스에 입사한 중국 국적 30대 여성은 2022년 6월경 고액의 연봉을 받고 중국 화웨이로 이직했다. 이 여성은 퇴사 직전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정 문제 해결책 등이 담긴 A4용지 3000쪽 분량의 자료를 출력했다. 해당 자료를 화웨이 등에 넘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올해 4월 이 여성을 구속하고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송치했다. 18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올 상반기(1∼6월) 기술 유출 범죄를 단속한 결과 해외 기술 유출 사건 12건을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반도체-이차전지 기술 유출 국수본이 발표한 상반기 기술 유출 범죄 규모(12건)는 지난해 같은 기간(8건)보다 50% 늘었다. 해외 기술 유출 범죄는 2021년에 9건에서 2022년 12건, 지난해 22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지난해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상반기 해외로 유출된 기술 중 절반은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 핵심 기술이었다. 반도체 기술이 4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배터리 등 전기 기술 2건, 디스플레이 기술 3건 등이었다. 국수본 관계자는 “기술 유출 12건 중 10건이 중국 기업과 관련됐고 나머지 2건은 미국, 이란”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6월 한 중국 배터리업체가 서울에 기술 연구소를 세웠다. 연구소 측은 ‘기존 연봉의 2배’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삼성SDI, SK온 등 국내 대기업 인력을 잇달아 영입했다. 이직한 연구원들은 이전 직장에서 알고 있던 배터리 기술을 중국 기업에 넘겼다. 경찰은 올 1월 기술 유출에 가담한 연구원 5명과 중국 기업을 산업기술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경찰은 상반기 기술 유출 사건 중 2건에서 피의자들이 대가로 받은 급여나 수당, 해외 체류 비용 등 4억7000만 원가량을 환수했다.● 법원 “기술 유출 사범 엄벌 필요” 이날 수원지방법원(형사12단독 하상제 부장판사)은 3400억 원가량의 가치를 지닌 디스플레이 기술을 중국에 빼돌리려 한 혐의(영업비밀국외누설 등)로 기소된 전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원에게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해당 연구원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문가로 퇴직 뒤 한국과 중국에 설립한 업체를 통해 디스플레이 기술을 중국에 판매, 제공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국가의 첨단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선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계 등에 따르면 중국은 한국 사정을 잘 아는 브로커를 고용한 뒤 영입할 ‘표적’을 정해 포섭한다. 한 기술업계 관계자는 “누가 핵심 인력인지 중국은 다 파악하고 있다. 그런 인력이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는 정보를 손에 넣으면 거액을 제시하며 영입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 반도체 엔지니어 A 씨는 최근 헤드헌터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는 “헤드헌터는 영입을 원하는 기업이 중국 기업이라고는 밝히지 않고 ‘아시아권 회사’라고 소개했다”며 “각종 조건을 내밀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안을 떠나서 내 이메일과 신상을 어떻게 알았는지 황당하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원장은 “중국은 자국이 가지지 못한 핵심 기술을 다른 국가에서 빼오려는 목표가 있다”며 “기술 유출은 우리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중국에 우수한 인재와 기술을 모두 뺏겨 기술력을 역전당할 수도 있다”며 “선진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에게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변종국 기자 bjk@donga.com}
경찰이 전선 생산 업체인 대한전선이 경쟁사인 LS전선의 기술을 부정하게 입수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대한전선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최근 대한전선 본사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경찰은 LS전선의 케이블공장 건설을 맡았던 건축 관련 업체 A 사를 통해 고전압 해저 케이블 기술이 대한전선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을 수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사 관계자도 입건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전압 해저 케이블 기술은 작동 속도는 물론 내구성이 우수해 해상풍력 발전의 고부가 가치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LS전선은 유출 피해가 의심되는 해저케이블 기술에 대해 “20년 동안 공장 건설 및 연구개발(R&D)에 1조 원을 투자해 얻은 성과”라며 “기술 유출이 사실일 경우 회복이 어려운 손해를 입어 피해가 막대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결과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강력한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했다.이에 대해 대한전선은 “현재 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며 “진행되는 수사에 협조하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에 대해 적극 소명하겠다”고 밝혔다.대한전선은 또 “2009년부터 해저케이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고, 2016년 당진 공장에 관련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납품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김철문 경북경찰청장이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와 관련해 외압은 없었다고 11일 국회에 출석해 밝혔다. 반면 야당은 ‘수사 외압’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이날 김 청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해병대원 사망사건 수사와 관련해 전화나 일체 청탁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8일 경북청은 채 상병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의혹의 중심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죄가 없다고 판단하고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 김 청장은 “오로지 관련된 증거와 진술, 법리에 따라 판단했다”며 “수사심의위원회를 통해 외부 전문가로부터 수사 적절성 요구에 대한 검토도 받았다”고 했다. 수사가 늦어진 이유를 묻는 야당의 질의에 김 청장은 “관련자가 많았다. 67명을 수사했고 대부분이 군인이었는데 훈련 때문에 출석에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날 출석한 윤희근 경찰청장도 수사가 적절했냐는 질의에 “경북청 수사팀의 11개월에 걸친 수사와 판단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하기 하루 전에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이 시점은 대통령실과 협의한 것인가”라고 묻자 윤 청장은 “(협의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은 임 전 사단장 불송치 의견을 낸 수사심의위원회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 청장은 “명단을 공개하기 시작하면 제도의 운영 취지가 무너진다”며 “명단이 공개되는 순간 이분들(위원회 위원들)은 이후 수심위에 나오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수심위 명단이 공개된 적 있다는 지적에 윤 청장은 “추가 검토는 해보겠다”고 답변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9급으로 시작해 5급까지 어렵사리 오른 공무원, 아들 하나 딸 둘을 키우는 은행원 아빠, 승진 소식에 동료들의 축하를 받던 회사원….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 교통사고로 숨진 사망자 9명은 모두 평범한 아들, 아빠, 동료, 가장들이었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회식을 하고, 대중교통을 타고, 길가에서 담소를 즐기던 일상의 장소가 참사 현장이 됐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인근 회사원들은 “그들에게 어제 벌어진 일이, 내일은 나한테 벌어질 수도 있다”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회식 도중 전화 받으러 나갔다가 참변 사망자 김모 씨(52)는 9급 세무공무원으로 구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최근 서울시 5급 사무관까지 승진했다. 동료들 사이에서 김 씨는 “누구보다 성실했던 사람”으로 불렸다. 김 씨는 어린 시절에 한쪽 눈을 다쳐 실명했고, 한쪽 팔도 불편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모를 정도로 열심히 맡은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은 김 씨가 이끄는 팀이 서울시 ‘동행매력협력상’을 받은 기쁜 날이었다. 그의 팀은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 이전, 야외 밤 도서관 행사 등을 맡았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공로를 인정받았다. 한 동료는 “이태원 분향소 철거하고 난 다음에 직접 아침 일찍부터 가서 쓰레기를 줍고 청소할 정도로 성실했던 사람”이라며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망자 윤모 씨(31)는 2020년 7급 지방직 공개채용을 거쳐 서울시에 들어왔다. 그는 평소 직원들 사이에서도 똑부러지는 직원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윤 씨의 상사는 “다른 좋은 기업에 갈 수 있는 실력이었는데도 본인이 공직을 선택한 직원이었다”며 “부서 내에서도 솔선수범해 업무를 하고 대인관계도 굉장히 좋아서 동료 직원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망자 박모 씨는 신한은행 한 지점의 부지점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사고 당일 현장 인근의 한 호프집에서 동료들과 승진 축하 회식을 하다가 잠시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갔다. 그 순간 가해 차량이 돌진해 화를 입었다. 신한은행 소속 이모 센터장 등 다른 신한은행 직원 3명도 이날 인사 이동 전에 송별회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이 센터장은 슬하에 아들 하나, 딸 둘을 둔 아빠였다. 큰딸과 작은딸은 사회인이지만, 막내아들은 아직 고등학생인 것으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직장인 추모 행렬… 유가족들 통곡 사고 하루 뒤인 2일 사건 현장에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갑자기 벌어진 대형 참사가 ‘남 일’만은 아니라는 두려움과 공감대가 퍼지고 있었다. 특히 매일 사고 현장 근처를 오갔던 인근 회사원들은 충격이 더 크게 와닿는 분위기였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 교차로 한편에는 시민들이 하얀 국화를 놓고 갔다. ‘애도를 표하며 고인들의 꿈이 저승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추모 포스트잇도 붙었다. 광화문의 한 회사원은 “내 직장 동료를 잃은 듯 먹먹하다”고 말했다. 한 시청 직원은 “사고 장소는 자주 밥 먹으러 가는 일상적인 장소”라며 “직장 동료를 잃은 후 ‘밖에 나가기 무섭다’며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했다. 갑자기 변을 당한 사망자의 유가족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달려왔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망자 김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심정지라는 얘기를 듣고 달려왔다”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울었다. 김 씨의 고등학생 딸은 장례식장 한쪽 계단에 앉아 아버지의 죽음에 흐느껴 울었다. 이날 서울대병원 1, 2층에 마련된 신한은행 직원 4명의 빈소엔 은행장 등이 보낸 화환이 놓이고 조문객들로 붐볐다. 반면 지하 1층에 마련된 주차관리 직원 3명의 빈소는 10여 명의 조문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신무경 기자 yes@donga.com}
9급으로 시작해 5급까지 어렵사리 오른 공무원, 아들 하나 딸 둘을 키우는 은행원 아빠, 승진 소식에 동료들의 축하를 받던 회사원…….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 교통사고로 숨진 사망자 9명은 모두 평범한 아들, 아빠, 동료, 가장들이었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회식을 하고, 대중교통을 타고, 길가에서 담소를 즐기던 일상의 장소가 참사 현장이 됐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인근 회사원들은 “그들에게 어제 벌어진 일이, 내일은 나한테 벌어질 수도 있다”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회식 도중 전화 받으러 나갔다가 참변사망자 김모 씨(52)는 9급 세무공무원으로 구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최근 서울시 5급 사무관까지 승진했다. 동료들 사이에서 김 씨는 “누구보다 성실했던 사람”으로 불렸다. 김 씨는 어린 시절에 한쪽 눈을 다쳐 실명했고, 한쪽 팔도 불편했다.하지만 동료들은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모를 정도로 열심히 맡은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은 김 씨가 이끄는 팀이 서울시 ‘동행매력협력상’을 받은 기쁜 날이었다. 그의 팀은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 이전, 야외 밤 도서관 행사 등을 맡았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공로를 인정 받았다. 한 동료는 “이태원 분향소 철거하고 난 다음에 직접 아침 일찍부터 가서 쓰레기를 줍고 청소할 정도로 성실했던 사람”이라며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또 다른 사망자 윤모 씨(31)는 2020년 7급 지방직 공개채용을 거쳐 서울시에 들어왔다. 그는 평소 직원들 사이에서도 똑부러지는 직원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윤 씨의 상사는 “다른 좋은 기업에 갈 수 있는 실력이었는데도 본인이 공직을 선택한 직원이었다”며 “부서 내에서도 솔선수범해 업무를 하고 대인관계도 굉장히 좋았어서 동료 직원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사망자 박모 씨는 신한은행 한 지점의 부지점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사고 당일 현장 인근의 한 호프집에서 동료들과 승진 축하 회식을 하다가 잠시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갔다. 그 순간 가해차량이 돌진해 화를 입었다.신한은행 소속 이모 센터장 등 다른 신한은행 직원 3명도 이날 인사 이동 전에 송별회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이 센터장은 슬하에 아들 하나, 딸 둘을 둔 아빠였다. 큰 딸과 작은 딸은 사회인이지만, 막내 아들은 아직 고등학생인 것으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직장인 추모 행렬… 유가족들 통곡사고 하루 뒤인 2일 사건 현장에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도심 한 가운데서 갑자기 벌어진 대형 참사가 ‘남 일’만은 아니라는 두려움과 공감대가 퍼지고 있었다. 특히 매일 사고 현장 근처를 오갔던 인근 회사원들은 충격이 더 크게 와닿는 분위기였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 교차로 한편에는 시민들이 하얀 국화를 놓고 갔다. ‘애도를 표하며 고인들의 꿈이 저승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추모 포스트잇도 붙었다. 광화문의 한 회사원은 “사고 당일 밤에 야근 중이었는데 창밖에 소방차, 구급차가 빼곡이 몰려있는 것이 보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은 “자주 회식을 하던 곳”이라며 “마치 내 직장동료를 잃은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갑자기 변을 당한 사망자의 유가족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달려왔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망자 김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심정지라는 얘기를 듣고 달려왔다”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울었다. 김 씨의 고등학생 딸은 장례식장 한쪽 계단에 앉아 아버지의 죽음에 흐느껴 울었다. 같은 날 오전 1시 50분경 영등포병원 장례식장에 달려온 한 여성은 “아빠 아니라고 해! 우리 아빠가 아니라고 해!” 외치며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뒤따라 도착한 엄마도 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신무경 기자 yes@donga.com}
“어제까지 손주랑 같이 밥도 먹었다고 했는데….”2일 새벽 서울 중구 국립장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서울시 직원 김모 씨(52)의 어머니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빈소를 찾은 김 씨의 딸인 고등학생 김모 양은 장례식장 계단에 걸터앉아 어머니의 어깨에 기댄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사거리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해 보행 중인 시민 9명이 사망한 가운데, 장례식장에는 사망자들의 유족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사망자 대다수는 30~50대 남성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빈소에서 눈물을 터뜨리며 참담한 심정을 나타냈다. 이날 새벽 1시 50분경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선 한 여성은 “아빠 아니라고 해, 우리 아빠 아니라고 해”라고 외치며 주저앉아 오열했다. 곧이어 도착한 모친은 여성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내기도 했다. 새벽 시신을 인계받은 다른 유족들도 이날부터 빈소를 마련했다. 시청역 일대는 퇴근 후 저녁자리를 하고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들이 몰리는 곳이라 희생자 대다수 이러한 상황에서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 중 4명은 한 시중은행 동료들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퇴근 후 시청역 일대에서 회식을 즐기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청역 인근이었던 만큼 서울시 소속 공무원 2명과 병원에 근무하는 직장인 3명도 희생됐다. 이날 시청역 7번 출구 인근 교차로에는 출근길 사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한 시민은 사고 현장에 두고 간 국화꽃 두 송이를 놓여 있었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내용의 추모 문구도 붙어 있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사거리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해 최소 9명이 숨지는 등 1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검거된 68세 남성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9시 27분경 지하철 2호선 시청역 12번 출구 인근 교차로에서 68세 남성이 몰던 제네시스 G80 차량이 과속으로 역주행해 인도를 걸어가던 보행자 여러 명과 도로 위에 있던 차들을 잇달아 들이받았다. 소방당국은 오후 11시 30분 기준으로 사망자 9명, 중상 1명(가해 차량 운전자), 경상 3명 등 총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장에서 가해 운전자의 신병을 확보한 가운데, 가해 운전자는 ‘급발진’이 원인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경기 안산의 한 여객운송업체 소속 버스운전사로 알려진 가운데, 사고 직후 갈비뼈에 통증을 호소해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 현장 목격자는 “숭례문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운전 중에 신호를 대기하고 있었는데 오른쪽(세종대로18길 방향)에서 검은색 제네시스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역주행했다”며 “인도에 있는 사람 10여 명을 치고 나서도 브레이크를 안 밟은 것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고 사거리 방향으로 내달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에 따르면 오후 9시 50분경 시청역 7번 출구 앞에서 119 구급대가 들것에 사상자들을 실어 이송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현장에서 목격된 가해 차량은 운전석과 바로 뒤 좌석이 심하게 파손된 모습이었다. 운전석에는 터진 에어백으로 추정되는 하얀색 천이 매달려 있었다. 경찰은 해당 운전자의 음주운전 및 마약 복용 여부 등을 수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후 10시 37분경 대변인 서면 브리핑을 통해 “피해자 구조 및 치료에 총력을 다하라”고 행정안전부 장관과 소방청장에게 긴급 지시했다. 68세 운전차량 인도 돌진… 보행신호 기다리던 시민들 덮쳐서울광장앞 교통사고 9명 사망교차로 한복판-횡단보도-차도 등피해자들 여기저기 쓰러져 아수라장목격자 “천둥소리 같은 굉음 들려”1일 오후 9시 26분경 대형 교통사고로 최소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 일대는 소방차와 구급차, 인근을 통행하다가 멈춰 선 차량들로 마비됐다. 오후 9시 반경 본보 기자가 찾은 사고 현장에는 사상자 10여 명이 인도와 도로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시청역 교차로를 지나는 횡단보도에 약 6명이 쓰러져 있었고, 교차로 한복판에는 사고 차량에 치여 튕겨나간 것으로 보이는 사상자 2, 3명이 쓰러져 있었다. 인근 도로에도 사상자 3, 4명이 쓰러져 있었다. 본보가 확보한 사고 현장 폐쇄회로(CC)TV에는 인도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서 있던 시민 11명을 가해 차량이 들이받는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또 다른 CCTV 장면에는 가해 차량이 약 50m를 역주행해 오토바이 2대를 들이받고 그 충격으로 오토바이가 인근의 가게로 날아가는 순간이 담겼다. 사고 직후 오후 10시 40분경 소방당국은 중상을 입은 가해 차량 운전자를 포함해 최소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사상자 중 남성이 12명, 여성이 1명이었다. 소방당국과 목격자 등에 따르면 사고 직후 가해 차량인 제네시스 G80 차량에서 68세 남성 A 씨와 여성 한 명이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직후 경찰은 현장에서 가해자에게 음주 측정을 실시했으나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가해 차량에 동승했던 여성은 현장에서 본보 기자를 만나 자신이 가해자의 아내라고 밝혔다. 그는 기자에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차가 막 여기저기 다 부딪혀서 저도 죽는 줄 알았다”며 “남편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왼쪽 갈비뼈 부근이 아프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은 음주를 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경찰이 바로 측정했다”며 “남편 직업이 버스 운전사라 매일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셨다”고 말했다. 또 “남편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 시내버스를 운전해왔다”며 “착실한 버스 운전사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갑자기 급발진하면서 역주행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사고 직후 현장에서는 소방차와 경찰차, 응급차 등이 계속 몰려오고 구급대원들이 사상자들을 긴급히 실어 나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구급대원들은 사상자 중 쓰러져 있던 7명에 대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한 뒤 병원으로 이송했다. 참사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한 시민들은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사고 수습 과정을 지켜봤다. 현장 목격자 김모 씨는 “가해 차량이 갑자기 인도로 달려오며 오토바이 2대와 시민들을 덮쳤다”며 “충돌 당시 순간 천둥 소리 같은 굉음이 들렸다”고 말했다. 운전자가 고령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최근 잇달았던 노인 운전자 사고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4월 22일 경기 성남시 판교노인종합복지관 주차장에서는 90세 고령 운전자 박모 씨가 몰던 차량이 복지관을 찾은 노인 4명을 덮쳐 1명이 숨졌다. 2021년 9월에는 60대 운전자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의 횡단보도에서 자신이 몰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행인들을 치어 6세 여자아이 1명과 아이 엄마 등 총 6명이 다쳤다. 행정안전부는 현장상황관리관을 사고 현장에 보내 사고 수습을 지원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을 총동원해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사거리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해 최소 9명이 숨지는 등 1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검거된 68세 남성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서울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9시 27분경 지하철 2호선 시청역 12번 출구 인근 교차로에서 68세 남성이 몰던 제네시스 G80 차량이 과속으로 역주행해 인도를 걸어가던 보행자 여러 명과 도로 위에 있던 차들을 잇달아 들이받았다. 소방당국은 오후 11시 30분 기준으로 사망자 9명, 중상 1명(가해 차량 운전자), 경상 3명 등 총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경찰은 현장에서 가해 운전자의 신병을 확보한 가운데, 가해 운전자는 ‘급발진’이 원인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경기 안산의 한 여객운송업체 소속 버스운전사로 알려진 가운데, 사고 직후 갈비뼈에 통증을 호소해서 병원으로 이송됐다.한 현장 목격자는 “숭례문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운전 중에 신호를 대기하고 있었는데 오른쪽(세종대로18길 방향)에서 검은색 제네시스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역주행했다”며 “인도에 있는 사람 10여 명을 치고 나서도 브레이크를 안 밟은 것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고 사거리 방향으로 내달렸다”고 말했다.또 다른 목격자에 따르면 오후 9시 50분경 시청역 7번 출구 앞에서 119 구급대가 들것에 사상자들을 실어 이송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현장에서 목격된 가해 차량은 운전석과 바로 뒤 좌석이 심하게 파손된 모습이었다. 운전석에는 터진 에어백으로 추정되는 하얀색 천이 매달려 있었다. 경찰은 해당 운전자의 음주운전 및 마약 복용 여부 등을 수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후 10시 37분경 대변인 서면 브리핑을 통해 “피해자 구조 및 치료에 총력을 다하라”고 행정안전부 장관과 소방청장에게 긴급 지시했다.이상환 payback@donga.com·손준영·주현우 기자}
북한이 우리나라 공공기관을 해킹 공격할 것을 대비해 경찰이 내부망 PC 17만 대와 서버 530개에 백신 시스템을 강화하고 악성 코드 분석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 내 해킹 침투팀과 방어팀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하는 등 해킹 대비 훈련도 강화한다.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지난달 21일 인권위와 회의를 열고 ‘북한의 공공기관 해킹 공격 수법과 경찰의 대비 현황’을 보고했다. 최근 ‘워페어(Warfare)’란 계정명을 사용하는 인물이 법원, 검찰청, 경찰청 직원 40여 명의 개인 정보를 온라인에 유포하는 등 공공기관을 겨냥한 해킹 공격이 늘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번 사건이 북한의 공격은 아니지만 경찰은 향후 북한발 해킹 공격이 늘어날 상황도 대비하고 있다.경찰은 인권위에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조직 ‘라자루스’의 대법원 해킹 공격 수법을 상세히 보고했다. 또 이 같은 공격을 막을 대책으로 “경찰 PC 17만 대, 서버 530개에 백신을 설치하고 정보보호시스템 로그 기록 점검 및 악성 코드를 분석하겠다”고 제시했다. 해킹을 대비해 경찰 내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PC들의 보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백신 설치에 총 14억 원가량의 예산을 배정할 방침이다.최근 북한의 라자루스와 김수키 등은 우리나라 공공기관을 직접 공격하는 방식 대신 해당 기관과 관련된 외부 인력과 외주업체 등을 공격하는 ‘우회 공격’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경찰은 이를 대비해 외주업체의 보안 현황을 점검하고 관련 실태 조사를 추진하겠다고 인권위에 밝혔다. 또 “침투조와 방어조를 나누는 등 체계적으로 해킹 대비 훈련을 하겠다”는 내용도 보고됐다.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해킹 대비 훈련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실제 보고 이후 관련 시물레이션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관련 예산 확보의 중요성 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보고는 인권위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한 인권위 외부위원이 5월 정기회의에서 “해킹은 개인정보 보호 등 인권과도 관련된 문제”라며 관련 대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외부 인권위원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데, 이번이 사이버 테러 관련 사안이 다뤄진 올해 첫 회의였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서울 노원구가 소유하고 민간에 임대한 공공텃밭에서 양귀비가 무더기로 재배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노원구 하계동 공공텃밭 2곳에서 마약류 품종의 양귀비 230여 주가 자라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10일 밝혔다. 마약류 품종의 양귀비 진액은 모르핀과 헤로인 등 마약의 원료로 쓰여 재배가 금지돼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달 8일 “공공텃밭에 심긴 양귀비가 관상용이 아닌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마약류 품종 양귀비 약 200주가 자라고 있는 게 확인됐고, 바로 옆 텃밭에도 약 30주가 심겨 있었다. 이 가운데 한 곳은 인근 어린이집들이 현장 학습을 위해 공동으로 임대한 텃밭으로 알려졌다. 텃밭 임대인들은 자신들이 양귀비를 심지 않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양귀비가 재배된 경위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관할 텃밭 500여 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10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경남 의령군 둘레길을 경찰이 드론으로 순찰하던 중 양귀비 30주가 발견됐다. 경찰은 인근 60대 농민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재배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의령=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1회당 최대 70만 원을 받고 불법 성악 과외를 제공하고, 학부모와 브로커에게 명품백과 금품을 받은 현직 음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넘겨졌다. ‘음대 입시 비리’를 수사해 온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학원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현직 대학교수 14명과 입시 브로커 1명, 학부모 2명 등 17명을 5일 검찰에 송치했다고 10일 밝혔다. 교수들이 입시 브로커와 공모해 불법 성악 과외를 한 건 총 244차례로 교습비만 1억3000만 원 상당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학원법상 학교에 소속된 교원은 과외 교습을 할 수 없다. 경찰 조사 결과 적발된 교수 중에서 서울대 음대 실기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3명, 숙명여대 심사위원 참여 교수 1명, 경희대 등 2개 대학 심사위원 참여 교수는 1명이었다. 이들 교수 5명은 자신이 불법 레슨한 수험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에겐 대학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가 적용됐다. 특히 숙명여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수험생 2명에게 집중 과외 교습을 하고 학부모로부터 현금과 명품 핸드백 등을 받아 청탁금지법도 위반한 것으로 조사돼 유일하게 구속 송치됐다. 입시 브로커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음악 연습실을 대관해 총 679회에 달하는 불법 성악 과외 교습을 했다. 학생들은 1회 교습에 최대 70만 원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구속된 대학교수의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입시 브로커가 교수들에게 수험생들이 지원한 대학명과 실기고사 조 배정 순번을 알려주며 노골적으로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교수들은 발성과 목소리, 조 배정 순번 등으로 자신이 가르쳤던 수험생을 찾아내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교육부에 비리를 저지른 대학교수들은 입시 심사위원이나 국내 콩쿠르 대회 위원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행정 조치를 건의했다”고 밝혔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1회당 최대 70만 원을 받고 불법 성악 과외를 제공하고, 학부모와 브로커에게 명품백과 금품을 받은 현직 음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넘겨졌다.‘음대 입시 비리’를 수사해 온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학원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현직 대학교수 14명과 입시 브로커 1명, 학부모 2명 등 17명을 5일 검찰에 송치했다고 10일 밝혔다. 교수들이 입시 브로커와 공모해 불법 성악 과외를 한 건 총 244차례로 교습비만 1억3000만 원 상당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학원법상 학교에 소속된 교원은 과외 교습을 할 수 없다.경찰 조사 결과 적발된 교수 중에서 서울대 음대 실기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3명, 숙명여대 심사위원 참여 교수 1명, 경희대 등 2개 대학 심사위원 참여 교수는 1명이었다. 이들 교수 5명은 자신이 불법 레슨한 수험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에겐 대학교 입시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가 적용됐다. 이들은 심사 전 ‘응시자 중 지인 등 특수관계자가 없다’, ‘과외 교습을 한 사실이 없다’ 등의 내용이 적힌 서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특히 숙명여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수험생 2명에게 집중 과외 교습을 하고 학부모로부터 현금과 명품 핸드백 등을 받아 청탁금지법도 위반한 것으로 조사돼 유일하게 구속 송치됐다. 입시 브로커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일대 음악 연습실을 대관해 총 679회에 달하는 불법 성악 과외 교습을 했다. 학생들은 1회 교습에 최대 70만 원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입시 브로커의 자택과 음악 연습실, 구속된 대학교수의 집무실, 입시비리 피해 대학 입학처 등 16곳을 3차례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입시 브로커가 교수들에게 수험생들이 지원한 대학명과 실기고사 조 배정 순번을 알려주며 노골적으로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교수들은 발성과 목소리, 조 배정 순번 등으로 자신이 가르쳤던 수험생을 찾아내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교습으로 학원법 위반 처벌을 받더라도 처벌 수위가 약한 상황”이라며 “교육부에 비리를 저지른 대학교수들은 입시 심사위원이나 국내 콩쿠르 대회 위원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행정 조치를 건의했다”고 밝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서울 노원구가 소유하고 민간에 임대한 공공텃밭에서 양귀비가 무더기로 재배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서울 노원경찰서는 노원구 하계동 공공텃밭 2곳에서 마약류 품종의 양귀비 230여 주가 자라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10일 밝혔다. 마약류 품종의 양귀비 진액은 모르핀과 헤로인 등 마약의 원료로 쓰여 재배가 금지돼 있다.경찰에 따르면 이달 8일 “공공텃밭에 심어진 양귀비가 관상용이 아닌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마약류 품종 양귀비 약 200주가 자라고 있는 게 확인됐고, 바로 옆 텃밭에도 약 30주가 심어져 있었다. 이 가운데 한 곳은 인근 어린이집들이 현장 학습을 위해 공동으로 임대한 텃밭으로 알려졌다.텃밭 임대인들은 자신들이 양귀비를 심지 않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양귀비가 심겨진 경위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관할 텃밭 500여 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10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경남 의령군 둘레길을 경찰이 드론으로 순찰하던 중 양귀비 30주가 발견됐다. 경찰은 인근 60대 농민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재배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의령=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1. 수도권의 한 기업 팀장은 부하 직원에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했다. “뭐 하는 짓이야”라고 반말을 하며 괴롭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오히려 부하 직원이 평소 업무 마감 기한을 지키지 않는 등 근무 태만을 저질렀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이어졌던 것. 팀장은 존대를 하며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부하 직원이 무시하는 태도로 팀장에게 반말을 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해당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던 것으로 마무리됐다. #2. 올 3월 한 정보기술(IT) 업체 대리는 상사의 지시를 상습적으로 이행하지 않아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해당 대리는 상사가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신고했다. 남성인 자신에게 “여성스럽다”는 발언 등을 했다는 것이다. 신고하기 전 노무법인 등에서 신고 요령 등 관련 상담까지 받았다고 한다. 결국 회사 측은 신고가 접수된 직후 징계 절차를 중단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평소 근무 태도가 심각하게 불량한 직원이었는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경우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 결론이 나기 전까지 징계는커녕 업무 관련 지적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019년 7월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가운데 이처럼 제도를 오남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법 취지에 맞게 구제받은 이들도 많지만 괴롭힘에 대한 모호한 기준을 파고들어 무분별하게 신고부터 하고 보자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징계 피하고, 계약 갱신하러 신고 악용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지난해 1만28건으로 사상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신고 건수는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엔 8961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접수된 신고 10건 중 8건 넘게(86.2%) ‘법 위반 없었음 결론’ ‘신고 요건 성립 안 돼’ ‘신고 취하’ 등으로 종결됐다. 문제는 상사의 정당한 업무 지시에도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를 들어 신고하는 ‘오피스 빌런’(직장 내 악당)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실업급여 수급 △부서장 교체 △근로계약 갱신 △징계 회피 등을 목적으로 신고를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중소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두 달 전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퇴사자로부터 “상사가 괴롭혀 퇴사한 것이니 자발적 퇴사가 아닌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직 사유를 정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하면 자발적 퇴사와 달리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결국 이 퇴사자는 직장 상사를 고용부에 신고했다.● 모호한 규정 탓에 행정력 낭비 부작용도 무분별한 신고로 인해 이를 심의·감독하는 노동 당국의 행정력도 낭비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양측 진술이 엇갈릴 때가 많아 조사부터 처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두 달 내에 조사를 완료하게 돼 있는데 신고 건수가 1만 건을 넘어서 감독관들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신고가 접수되면 지방 고용노동청 소속 근로감독관 1명이 조사를 벌여 괴롭힘 여부를 판단한다. 고용부는 지난해 11월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 조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진전은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구체적 개념과 기준을 명시하는 것도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선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할 때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통해 일회성 신고를 걸러내고 있다”며 “노동위원회와 같이 전문성이 높은 기관에 조사 권한을 넘겨 모호한 기준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신고 남용을 막을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