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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부터 6개월 넘게 이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1948년 이스라엘인에게 요긴했던 ‘중동의 시금치’ 코비자(사진)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7일 “구호단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가자에서 코비자는 어느 때보다 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비자란 야생식물이 이스라엘군의 통제로 기아를 겪고 있는 가자 주민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식재료가 되어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코비자는 가자 전역 어디서건 쉽게 눈에 띄는 아욱과 식물이다. 시금치와 유사한 맛을 내는데, 주로 빵이나 레몬·고추 양념 등에 곁들여 먹는 저렴한 식재료다. 하지만 먹을 게 마땅치 않은 지금은 주민들이 직접 캐서 요리해 먹으며 허기를 달래는 소중한 영양분이 되고 있다. 식구가 많은 가정에선 묽은 수프로도 많이 끓여 먹는다고 한다. 가자지구 주민인 아부 카디자 씨는 NYT에 “다른 채소가 없으니 코비자를 먹는 것”이라며 “잎을 끓인 다음 갈아서 수프로 만든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 역시 “배고픔에 지친 가자 주민들이 거리에서 코비자를 찾아 헤매고 있다”며 “라마단 기간에도 일몰 후 식사로 코비자를 먹었다”고 전했다. 코비자는 과거 이스라엘인에게도 도움이 됐던 식량원이다. NYT는 “지금은 거의 먹지 않지만, 1948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 당시에 코비자를 먹으며 굶주림을 버텼다”고 했다. 가자 주민들의 이런 고통에도 휴전 협상은 엇갈리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휴전 협상 중인 하마스 관계자는 8일 로이터통신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 입장에 변화가 없어 회담도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이스라엘 외교부 장관인 이스라엘 카츠는 이날 “협상이 중요 단계에 근접했다”며 “지난해 11월 일시 휴전 이후 가장 타결에 가까워졌다”고 말해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한편 이스라엘군은 7일 가자지구 남부에서 1개 여단을 제외한 모든 지상군을 철수시켰다. 하지만 “다음 임무를 준비하기 위한 임시 철수”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현지 매체인 와이넷뉴스도 “작전 중단이 아닌 새로운 전략 전환을 위한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중동전 6개월… 이란, 이 공격 임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7일(현지 시간) 6개월을 맞은 가운데 하마스 후원자를 자처하는 이란의 이스라엘 직접 공격이 임박해 확전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은 6일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을 폭격한 이스라엘을 향해 “최대한의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밝혔다. 공격 시점으로는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의 ‘권능의 밤’이 있는 10일 전후가 거론된다. 미국은 이르면 이번 주에 큰 공격이 이뤄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초경계 태세로 전환했고, 이스라엘은 전 세계 28개 대사관을 임시 폐쇄했다. 》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발발한 중동전쟁이 반년을 맞은 가운데 하마스의 후원자를 자처하는 이란이 이르면 이번 주 이스라엘 직접 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란은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과의 직접 충돌을 자제했지만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이란영사관을 폭격해 혁명수비대 간부 등 13명이 숨지자 보복 차원에서 공격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 시점으로는 이슬란의 금식 명절 ‘라마단’ 기간 중 ‘권능의 밤’이 거론된다. 권능의 밤은 라마단의 마지막 열흘 가운데 홀숫날 중 하루로, 10일 전후가 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란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보고 초경계 태세로 전환했다. 이스라엘 또한 전군에 비상 경계령을 내렸다. 이란의 공격이 현실화하면 중동전쟁이 발발 6개월 만에 이란과 미국의 대리전으로 본격 번질 수 있어 국제사회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이란 참모총장 “이스라엘에 최대 피해” AFP통신 등에 따르면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은 6일 중부 이스파한에서 열린 혁명수비대 간부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의 장례식에 참석해 “이스라엘에 가장 가혹하게 대응하고 최대한의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복의) 시점과 형태는 우리가 결정할 것이고, 적(適)이 자신들이 한 일을 후회하게 만드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또한 최근 이스라엘을 향해 “매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당국자는 CNN 등에 “이르면 이번 주에 중동 내 미군 시설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것으로 보고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 CBS방송 등에 따르면 이란은 샤헤드 무인기(드론), 순항미사일을 동원한 보복을 계획 중이다. 다만 공격이 이란 땅에서 시작될지, 이라크 및 시리아 등 친이란 국가에서 실행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란의 후원을 받고 있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 역시 시아파인 시리아 정부군, 시리아 및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등의 동반 총공세도 예상된다.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지도자는 5일 “완전히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이란의 이 같은 행보는 고질적 경제난, 히잡 의문사 시위 탄압 등에 따른 국민 불만이 상당한 가운데 자국 영토로 간주되는 영사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마저 가만히 두고 볼 경우 시아파 맹주의 위상마저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전쟁 6개월 만 이란-美 확전 기로 이란의 공격이 현실화하면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바게리 총장은 미국이 1일 공습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하며 “미국 역시 이에 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모하마드 잠시디 대통령실 정무부수석은 5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미국까지 공격받지 않으려면 물러서라”라고 밝혔다.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 경우 미군 관련 시설 직접 공격 및 확전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스라엘은 전투 부대원의 휴가를 중단하고 방공망 운용 예비군을 추가로 동원하는 등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우리를 해치려는 세력을 우리가 (먼저) 해칠 것”이라고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다만 11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민심 이반을 우려하는 이란 모두 대대적인 확전은 원치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알리 사드르자데 중동문제 전문가는 영국 BBC에 “이란은 현재 전면전을 벌일 여력이 없다”면서 “이스라엘에 당한 모욕으로 들끓는 국내 여론을 잠재우고 지역 동맹 사이에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상징적 보복’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 예로 이라크 내 미 공군기지에 대한 탄도미사일 공격 가능성을 거론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6개월간 이어진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3만3000여 명이 숨졌다. 이스라엘군은 1일 기준 군인 총 600명이 하마스와의 전투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6일 BBC는 전쟁 반년간 수천 명의 하마스 대원을 사살하고, 광대한 땅굴 네트워크를 대부분 파괴했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군의 성과가 대부분 입증하기 어렵다고 평가절하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지 6개월을 하루 앞둔 6일 이스라엘 전역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이스라엘의 거듭된 민간인 살상과 오폭을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여론 또한 고조됐다. 이에 이스라엘군은 7일 “하루 전 가자지구 남부에서 1개 여단만 남겨둔 채 대부분의 지상군을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유일하게 남은 ‘나할’ 여단은 남부로 피신한 가자지구 주민들이 중북부로 이동하는 것을 통제하기로 했다. 6일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는 수만 명이 모여 총리 사퇴 및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했다. 하마스에 납치된 민간인 인질들의 가족도 참여했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인질 엘라드 카치르 씨(47)의 유해를 수습한 사실을 공개하자 인질 가족과 시민들의 분노가 거세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카치르 씨의 여동생 카르미트 씨는 “제때 석방 협상을 했다면 오빠가 구조될 수도 있었지만, 지도부의 정치적 셈법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네타냐후 정권을 비난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지지 기반인 극우 유권자를 의식해 하마스에 강경 일변도의 정책만 고집하는 바람에 인질들이 제때 풀려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야권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 또한 “총리의 퇴진이 없으면 이스라엘이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국제사회의 여론은 이스라엘에 적대적으로 변했다.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원죄로 전쟁 발발 후 줄곧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독일 정부는 5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한 국경 개방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을 포함한 미국 집권 민주당 의원 37명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무기 지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스라엘의 오인 폭격으로 국제 구호단체 직원 7명이 목숨을 잃는 참변이 발생하자 사망자 중 자국민이 포함된 영국, 미국 등이 “철저히 사태를 조사해야 한다”며 강도 높게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제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하는 구호단체마저 폭격한 이스라엘의 ‘고삐 풀린 행보’에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통화에서 “영국인 3명을 비롯해 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의 직원들이 숨진 사건에 경악했다.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총리실을 통해 밝혔다. 가자지구에서 너무 많은 민간인과 구호요원 등이 희생당하는 점을 언급하며 민간인 보호를 위한 추가 조치를 이스라엘 정부에 요구했다고도 덧붙였다. 미국 백악관도 이번 사건에 분노를 나타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직접 성명을 내 “미국인 1명을 포함해 WCK 직원이 사망한 데 격분했고 비통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역사상 최악의 구호요원 사망 사건 중 하나이며 이스라엘은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WCK의 창립자인 스페인 출신의 유명 요리사 호세 안드레스에게도 위로 전화를 걸어 “구호요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이스라엘 측에 분명히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WCK 요원들은 참변 당시 키프로스로부터 선박에 싣고 온 구호품 전달을 돕고 있었는데 이스라엘군은 WCK 직원들을 보호하던 무장 보안요원을 하마스 대원으로 착각해 이들 차량을 폭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WCK는 사건 발생 직후 식량 운송을 중단했다.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한 점도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받은 가운데 오폭 사건까지 연이어 터지며 이스라엘은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무고한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은 공습을 했다”고 책임을 빠르게 인정한 점을 두고도 “미국, 영국 등 우방국의 사망자가 발생해 대응한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앞서 다른 피해에 대해선 아예 대응하지 않거나 책임을 미루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미 구호단체 자료를 분석한 BBC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후 가자지구에서만 196명 이상의 구호단체 직원이 숨졌다. 사망자 중 170여 명은 유엔난민구호기구(UNRWA) 등 유엔 산하 기관 직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이스라엘은 UNRWA의 직원 가운데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가담한 직원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현 상황에 (이란 참전 등) 중대한 변화를 불러올 ‘마지막 지푸라기(the last straw·최후의 결정타)’가 될 수 있다.”(미국 CNN방송) 이스라엘이 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폭격함으로써 지난해 10월 발발한 중동 전쟁이 지역 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날 공격으로 이란 고위급 장교 3명 등 최소 13명이 목숨을 잃자, 이란은 “공격자를 어떻게 처벌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보복을 시사했다. 이번 미사일 타격은 그간 시리아 및 레바논의 친(親)이란 민병대나 무장조직을 대상으로 했던 공격과 달리 이란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개전 이후 6개월 동안 여러 확전 고비에도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없었던 이스라엘과 이란의 ‘그림자 전쟁(shadow war)’이 결국 파국을 맞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군 고위급 등 13명 사망… 이란, 보복 천명 시리아 SANA 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1일 낮 12시 17분경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에 미사일 6발을 쏟아부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이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 특수부대인 쿠드스군 고위 지휘관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와 부사령관인 모하마드 하디 하지 라히미 등 최소 13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영사관 건물은 폐허가 됐다. 직접 피해를 입은 이란은 즉각 분노를 드러냈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장관은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성을 잃었다”고 비난했다. 그는 미국에도 “(이스라엘 지원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처벌 방식은 추후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란은 자국에 대사관을 두지 않는 미국 대신 미 정부에 전달자 역할을 하는 주이란 스위스대사대리를 초치했다. 이란이 주도하는 ‘저항의 축(Resistance Axis)’에 동참해 온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적이 처벌과 응징을 당하지 않고선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론 언급을 삼가고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공격을 감행한 게 맞다”라고 보도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도 CNN에 “영사관으로 위장한 쿠드스군의 군사시설”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 “이란 본토 공격과 동급”… 美, 전전긍긍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이 줄곧 이어지긴 했지만, 이스라엘이 이란 외교 공간을 직접 타격한 건 처음이다. 이전 공격은 주로 중동 지역에 산재한 이란 군사시설을 노렸다. 때문에 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는 NYT에 “이란 본토를 표적으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했다. 현지에선 이번 공격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수도 예루살렘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등 돌린 민심을 붙잡기 위해 극약 처방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지지부진한 전쟁 국면의 전환을 꾀했다는 시각도 있다.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란다 슬림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란에 ‘너희의 방어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가 담겼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난처한 입장이다. 11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지지층의 반전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이란 참전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에 미 정부 고위급 인사는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에 “미국은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고, 다른 당국자도 “이란에도 이를 직접(directly) 설명했다”고 전했다. 확전 불씨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의 사남 바킬 중동연구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번 공격은 역내 긴장을 ‘심각하게’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구호단체도 공습해 7명 사망 1일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 공습으로 구호단체 7명이 목숨을 잃는 참변도 벌어졌다.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은 “가자지구 데이르알발라에 식량을 전하고 오던 WCK 차량 3대에 탑승한 구호요원 6명과 팔레스타인 운전사 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영국인 3명과 호주·폴란드·미국인(캐나다 이중국적) 각 1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WCK는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 요리사 호세 안드레스가 2010년 미국에서 창설한 자선단체다. NYT에 따르면 해당 단체는 지난달 개시된 해상 구호품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WCK는 “형제자매들의 희생으로 당분간 구호식량 운송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에서 비난이 거세지자 네타냐후 총리는 “의도치 않은 사고”라며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지금 보이는 이 땅에 중국 회사 공장들이 들어설 겁니다.” 지난달 22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동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홍해 항구도시 아인수크나. 카이로에서 드넓은 사막을 지나 1시간 반가량을 차로 달려온 대규모 공업단지에선 건물을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단지 곳곳엔 중국 선박들이 싣고 온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었다.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서 중국-이집트 협력업체의 공장 건설을 감독하던 무함마드 가말 씨(42)는 “앞으로 생길 중국 공장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면서 “요즘 라마단(금식월·禁食月) 기간이라 작업량이 줄어든 편”이라며 “평소엔 자재를 나르는 트럭들과 인부들이 밤낮으로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이집트 안 ‘작은 중국’ 공업단지 축구장 약 1100개 면적(약 730만 m²)에 조성된 이 공업단지는 이집트와 중국 톈진(天津)경제기술개발구(TEDA)가 공동 조성한 ‘테다중국산업구역’이다. 중국은 2008년 이집트 정부와 처음으로 파트너십을 맺고, 약 5년 전부터 이곳에 수많은 공장을 건설하며 지분을 늘려 왔다. 특히 이들은 이곳 일대를 철강·유리·파이프 등 제조업 기지에서 친환경 산업단지로 발전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27억5000만 달러(약 3조7180억 원)를 중국 정부가 투자하기로 했다. 이집트 정부는 외화 유치를 위해 사실상 황무지인 이곳을 외국에 저렴한 조건에 임대할 방침이라, 테다중국산업구역은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도 140개 이상의 중국 기업 및 중국-이집트 협력 업체가 입주해 있다. 사실 이곳도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발발이 홍해 물류 대란으로 이어지며 산업구역 조성에 ‘빨간불’이 켜지는 듯했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항행 및 운송에 차질을 빚으며 홍해 대신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돌아가는 우회 항로를 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선박들은 후티 반군의 타깃에서 벗어난 덕분에 홍해 일대에 경제적 영향력을 조용히 확장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중국이 후티 반군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자국 선박 보호에만 집중한다고 비난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산업구역을 둘러보니 중국의 영향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단지 중심부 8층짜리 ‘수에즈경제무역협력지대’ 청사 건물은 중국어가 아랍어보다 더 큰 글씨로 적혀 있을 정도였다. 청사 앞엔 이집트 국기와 오성홍기가 함께 펄럭였으며, 주변의 각종 안내판도 이집트 표기 아래 중국어를 병기해 뒀다. 아예 중국어만 내건 마켓이나 식당도 많아 마치 중국을 방문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공사 현장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이집트인이었지만, 청사 인근에선 중국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카이로에서 출퇴근한다는 한 중국인은 “여기서 일한 지 3년이 넘었다”며 “우리 정부가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파견 중국인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택 단지 인근의 놀이공원 ‘테다 펀밸리’에도 중국인 가족이 가득했다. 한 카페에서 일하는 유스프 압델 씨(29)는 “중국 회사 일자리가 늘어날 기대에 이집트 청년들도 이곳을 많이 찾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 지부티까지 홍해 영향력 확대 중국이 경제 영토 확장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아래 이집트와 홍해 일대에 공을 들인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중동전쟁으로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도 중국의 투자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대목은 눈여겨볼 만하다. 홍해와 맞닿은 제다 항구를 끼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중국과 경제 협력을 늘려 가는 대표적 국가다. 원유 수출로 자금력을 갖춘 사우디는 석유 수출 일변도의 경제 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중국과 물류, 제조업, 첨단 산업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국영 물류사인 코스코(COSCO)의 자회사인 코스코쉬핑포트(CSPL)는 제다 홍해게이트웨이터미널(RSGT) 항만의 지분 20%를 인수해 공동 운영 및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홍해와 맞닿은 항구도시 킹 압둘라 경제도시(KAEC)도 중국 기업의 영향력이 커진 지역이다. 제다에서 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이곳은 사우디가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집중 개발하는 지역이다. 해운 전문 매체 로드스타에 따르면 중국 해운업체 ‘차이나 유나이티드 라인(CULines)’은 지난달부터 중국 닝보(寧波)항에서 사우디 제다항까지 ‘홍해 익스프레스(Red Sea Express)’ 서비스를 개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후티 반군은 이란 정부로부터 중국 연계 선박은 공격을 자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오성홍기를 단 홍해 익스프레스 선박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운항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해와 인접한 동아프리카 국가 지부티도 중국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중국의 유일한 해외 군사기지가 있어 홍해 일대 군사 확장의 통로가 되고 있다. 올 1월에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의 자오러지(趙樂際) 상무위원장은 지부티 국회의장과 만나 군사 및 경제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지부티는 예멘과 홍해를 끼고 마주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최근엔 후티 반군의 공격이 잦다 보니 군사적 입지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중국은 2017년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건설할 당시 “해적 퇴치 등 평화 유지와 인도주의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홍해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주 목적으로 읽힌다. 최근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와 지부티를 잇는 철도 건설도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홍해 다음은 지중해도 노린다 중국은 올해 들어 이집트에 지중해 개발에 대해서도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왕원타오(王文濤) 중국 상무부장은 2월 이집트의 무스타파 마드불리 총리 등과 만난 자리에서 “향후 유럽 시장 공략 등을 목표로 이집트의 지중해 연안에도 새로운 산업 단지를 구상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지중해 연안은 홍해와는 또 다른 산업기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해 일대가 제조업 분야 중심이었다면, 지중해는 정보통신과 전자상거래 등 첨단 분야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현지 매체들은 “최근 10년 동안 양국 경제 협력이 나날이 증가해 중국의 구상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집트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중국 자본 유치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중국은 주로 차관 형태로 투자금을 제공해, 이전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과실은 중국이 독차지하고 상대국은 이자를 갚느라 허덕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이집트 정부로선 중국의 막대한 자금은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중국의 지중해 구상은 2월 아랍에미리트(UAE)가 이집트의 지중해 연안 도시인 ‘라스 알히크마’에 대규모 첨단 산업단지 및 고급 주거단지를 짓는 대가로 약 350억 달러를 투자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UAE 역시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일대에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이집트에 투자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에 중국도 지중해 진출에 더욱 속도를 내고자 하는 모양새다. 때문에 이집트 국민들 사이에선 “UAE와 중국에 돈을 받고 영토를 팔아 넘긴다”는 자조적인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반세기 동안 홍해와 중동에선 미국이 지배적인 안보 행위자였지만, 이제 중국이 포괄적 경제 파트너십과 공존을 대가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중국은 서방 국가들처럼 ‘민주화’를 강하게 압박하지 않는 데다 경제 발전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들과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했다.-아인수크나에서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
“현 상황에 (이란 참전 등) 결정적 변화를 불러올 ‘마지막 지푸라기(the last straw)’가 될 수 있다.”(미국 CNN방송)이스라엘이 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폭격함으로써 지난해 10월 발발한 중동 전쟁이 지역 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날 공격으로 이란 고위급 장교 3명 등 최소 11명이 목숨을 잃자, 이란은 “단호하게 대응할 권리”를 천명하며 보복을 시사했다.특히 이번 미사일 타격은 그간 시리아 및 레바논의 친(親)이란 민병대나 무장조직을 대상으로 했던 공격과 달리 이란을 노골적으로 겨냥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갈수록 확전 우려가 높아지는 분위기에도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없었던 이스라엘과 이란의 ‘그림자 전쟁(shadow war)’이 결국 파국을 맞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군 고위급 등 11명 사망… 이란, 보복 천명로이터통신 및 시리아 SANA 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1일 오후 12시 17분경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대사관 바로 옆에 있는 영사관에 미사일 6발을 쏟아부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이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 특수부대인 쿠드스군 고위 지휘관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와 부사령관인 모하마드 하디 하지 라히미 등 최소 11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직접 피해를 입은 이란 등은 즉각 분노를 드러냈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침략적인 이스라엘 정권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장관은 미국에도 “(이스라엘 지원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처벌 방식은 추후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란이 주도하는 ‘저항의 축(Resistance Axis)’에 동참해온 무장정파 헤즈볼라도 “적이 처벌과 응징을 당하지 않고선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론 이번 공격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공격을 감행한 건 맞다”고 보도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도 CNN 인터뷰에서 “공격한 건물은 영사관도 대사관도 아니다”며 “민간 건물로 위장한 쿠드스군의 군사 시설”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 “이란 본토 공격과 동급”… 휴전 무산되나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이란의 외교적 갈등이 줄곧 이어지긴 했지만, 이스라엘이 이란 외교공간을 직접 타격한 건 처음이다. 이전 공격은 주로 중동 지역에 산재한 이란 군사시설들이 대상이었다. 때문에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는 NYT에 “이란 본토를 표적으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했다.현지에선 이번 공격 하루 전인 3월 31일 수도 예루살렘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등돌린 민심을 붙잡기 위해 극약 처방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지지부진한 전쟁 국면의 전환을 꾀했다는 시각도 있다.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란다 슬림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란에게 ‘너희의 방어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가 담겼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난처한 입장이다. 11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지지층의 반전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이란 참전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 정치매체 악시오스는 정부 고위급을 인용해 “미국은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며 “이란에도 이를 직접(directly) 설명했다”고 전했다.당분간 휴전 시도는 물건너갔다는 전망도 나왔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의 사남 바킬 중동연구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이번 공격은 역내 긴장을 ‘심각하게’ 높일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이란을 직접 충돌로 몰아가려고 의도적으로 설계한 공격”이라고 짚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국민 결정을 존중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이스탄불에 새 시대가 열렸다. 평화, 민주주의 속에 숨쉴 것이다.”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지난달 31일 치러진 튀르키예(터키) 지방선거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최대 도시 이스탄불, 행정 수도 앙카라 등 주요 도시에서 참패했다. 지난해 5월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하며 최장 2033년까지 장기집권의 길을 연 ‘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70)이 2003년 집권 후 가장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집권당의 참패 요인으로 2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67%에 달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만성적인 경제난, 지난해 초 대지진의 더딘 복구 속도, 반대파 탄압으로 일관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대한 반발 등이 꼽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 직전 ‘정계 은퇴’까지 시사하며 배수진을 쳤지만 돌아선 민심을 붙잡지 못했다. 특히 이스탄불 시장 연임을 확정한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에크렘 이마모을루 시장(53)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2028년 대선에서 그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이길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 ‘경제난 심판’ 못 피한 에르도안 국영 TRT방송, 아나돌루통신 등에 따르면 1일 대부분의 개표를 마친 가운데 CHP 소속 후보들은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부르사, 안탈리아 등 5대 도시 시장 선거에서 모두 AKP 후보를 이겼다. CHP의 전국 득표율 또한 37.2%로 AKP(35.6%)를 앞섰다. 특히 총인구 5분의 1인 약 1600만 명이 거주하고,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담당하는 이스탄불 시장 선거는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 외곽에서 출생했고, 이곳에서 시장을 지냈다. 이에 그가 ‘정치적 고향’에서 승리하기 위해 각별한 공을 들였지만 이마모을루 시장이 51.1%를 얻어 무라트 쿠룸 AKP 후보를 약 10%포인트 차로 눌렀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10개월 전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만 해도 종신 집권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고물가, 리라 가치 급락, 고실업 등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자 민심이 빠르게 돌아섰다. 에르도안 정권은 집권 내내 핵심 지지층인 서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했다. 이로 인한 살인적 물가에 지난해부터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고물가를 잡기는커녕 고금리에 취약한 서민 불만만 되레 높아졌다. 지난해 초 남동부에서 발생한 강지진도 반(反)에르도안 여론을 키웠다. 원래 에르도안 정권의 텃밭으로 꼽히는 지역이었지만 졸속 경제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내진 설계가 부실한 건물의 공사 승인을 남발한 것이 지진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 ‘대항마’ 입지 굳힌 이마모을루 선거의 최대 승자로 이마모을루 시장이 꼽힌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1일 시청 앞에서 지지자를 향해 “새 시대가 열렸다”고 외쳤다. 지지자들은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로이터통신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이마모을루 시장의 공통점에 주목했다. 둘 다 이스탄불 시장을 지내며 전국적 정치인으로 발돋움했고 젊은 시절 축구 선수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받은 징역형 선고가 열성 지지층의 결집으로 이어진 점도 같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 시장 시절인 1997년 튀르키예 극우주의자의 시를 낭송해 종교적 증오를 부추겼다며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고 4개월을 복역했다. 이마모을루 시장 또한 2019년 첫 시장 선거 당시 반대파를 ‘바보(fools)’로 칭해 1심에서 2년 7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했고 아직 항소심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에르도안 정권이 항소법원의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해 이마모을루 시장에게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마모을루 시장이 이 같은 정치적 이력을 바탕으로 2028년 대선에서 직접 출마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선거의 압도적 패배로 2028년 대선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위태롭게 됐다. 로이터는 “이번 선거는 튀르키예의 분열된 정치 지형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국제사회에서 휴전 압박을 받아 온 이스라엘이 되레 친(親)이란 무장세력 헤즈볼라 공격을 이유로 시리아와 레바논 본토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최근 3년 사이 가장 강력한 공습”이라는 평가 속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최대 우방인 미국까지 가자지구 라파 지상전에 대해 반대하자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침공설’ 등을 제기하며 전쟁을 지속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리아 등을 공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헤즈볼라와 전면전으로 번지게 되면 이란까지 나서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11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해당 공습을 지지하지 않으며, 이란과의 충돌을 원치 않는다”며 진화에 나섰다.● 민간인, 유엔 감시관까지 희생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3월 29일 시리아 및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헤즈볼라 근거지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이날 오전 1시 45분경 시리아 상공업 도시인 알레포 남동쪽에서 시작된 공격은 이들리브 등으로 확대됐다. 이번 공습은 국경에서 한참 떨어진 지역들인 본토를 노렸다는 점에서 이전의 공격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이번 공습을 앞둔 3월 27일 헤즈볼라가 무장조직을 동원해 자국을 침공하려 했다는 주장을 펴며 “레바논 심층부가 전쟁 구역이 되고 있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이스라엘군은 공습 뒤 “헤즈볼라의 고위급 지휘관인 알리 나임 로켓·미사일 부대장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공습을 받아 폭발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이번 공습으로 헤즈볼라 대원 6명과 시리아 군인 36명, 친이란 무장대원 1명 등 최소 43명이 목숨을 잃었다. SOHR은 “최근 3년간 있었던 이스라엘 공격 가운데 가장 강력했다”며 “민간인도 다수 희생됐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접한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에서도 폭발이 발생했다. 3월 30일 레바논 주둔 유엔 평화유지군(UNIFIL)에 따르면 ‘블루라인(Blue Line)’을 따라 순찰하던 유엔 정전감시기구(UNTSO) 군사 감시관 3명과 통역 보조원 1명이 폭발로 부상을 입었다. 블루라인은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종식을 위해 유엔이 채택한 120km 길이의 휴전 감시 경계선이다. 레바논 현지 매체들은 이날 폭발이 “이스라엘군의 소행”이라고 보도했으나, 이스라엘 측은 즉각 성명을 내고 부인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헤즈볼라 전면전 고려” 이번 대규모 공습은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성격을 바꾸는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군사력이 월등한 것으로 평가받는 데다, 이란과 매우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헤즈볼라가 수세에 몰릴 경우 이란은 지역 내 영향력 유지를 위해서라도 그냥 두고볼 리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이스라엘이 확전을 위해 노골적이고 필사적인 시도를 벌이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미국도 서둘러 진화에 나서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3월 30일 “레바논에서 이뤄지는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다”며 “군사적 방식으로 이란 정권과 충돌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지도부는 국제사회의 우려와 달리 이미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강경파는 “헤즈볼라에 전쟁 수준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지속적인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레바논, 시리아는 물론 더 먼 곳이라도 헤즈볼라를 추적해 공격할 것”이라며 확전 의지를 드러냈다. 이스라엘 군사전문가 로넨 솔로몬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스라엘은 이미 헤즈볼라와의 전쟁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한 상태”라고 전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주이집트 대한민국 대사관이 3월 28일(현지 시간)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을 맞아 발달 장애인으로 구성된 이집트 전통 무용 공연단 ‘화이트 하츠’를 초청해 한식 ‘이프타르’ 나눔 행사를 개최했다. 이프타르는 라마단 동안 낮에는 금식한 뒤 해가 진 다음에 하는 첫 식사를 뜻한다. 화이트 하츠는 여섯 종류의 전통 무용 작품을 선보이며 이에 화답했다.이날 행사에는 공연단 40여 명을 비롯해 이집트 카이로 아인 샴스 대학의 한국어학과 교수와 학생 30여 명, 한·이집트 디지털 서포터즈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대사관은 불고기와 김밥, 전 등 다양한 한식과 함께 이집트 전통식도 이프타르에 제공했다.김용현 주이집트 한국대사는 “화이트 하츠의 전통 민속 공연에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한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라마단의 사랑과 나눔, 평화와 연대의 정신을 기리고 한국과 이집트 문화의 유대를 증진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아울러 주이집트 한국문화원은 라마단을 맞아 ‘2024년 한국문학의 달’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행사는 한국 전래동화를 아랍어로 소개하고,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특강 등을 마련했다. 글쓰기 특강을 맡은 홍부용 작가의 소설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올해 이집트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3월 ‘라마단 특집’ 드라마로 현지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아프리카인들은 거지가 아닙니다.” 1월 29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던 이탈리아·아프리카 정상회담. 아프리카연합(AU) 45개국 정상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무사 파키 AU 집행위원장은 개최국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에게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선 (불법 이민자 지원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파키 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과격한 언사를 쓴 건 이유가 있었다. 멜로니 총리가 “교육, 보건 등 분야에 55억 유로(약 8조145억 원)를 투자하는 대가로, 유럽으로 오는 불법 이민자들을 아프리카 정부가 억제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입장에선 ‘돈 줄 테니 알아서 불법 이민자를 막으라’는 요구에 날카롭게 응수한 것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프리카로선 쉽게 거절할 처지가 아니란 게 문제다. 다수 국가들이 경제난으로 신음하고 있어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현지에선 울며 겨자 먹기지만 유럽 지원을 받아들일 거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럽도 할 말은 있다. 불법 이민자 문제는 갈수록 심각한 골칫거리다. 유럽연합망명청(EUAA)에 따르면 지난해 망명 신청 건수가 114만 건에 육박해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경 경비 강화나 단속으론 한계가 있어, 현금성 지원을 통해 불법 이민자 수용 ‘아웃소싱’(외주화)을 추진하는 것이다. 유럽이 내세운 취지는 나쁘지 않다. 지원국의 경제 성장을 도와 불법 이민의 근본 원인을 없애고, 밀입국 등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는 참사를 줄이자는 것. 하지만 벌써부터 불법 이민자들을 돈 주고 떠넘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아프리카가 불법 이민자들을 위해 돈을 쓸지도 의문이다. 유엔 인권감시기구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유럽연합(EU)이 이집트에 불법 이민자 관련 74억 유로(약 11조 원)을 지원하기로 하자 “현금 지원은 권위주의 정부의 인권 학대를 외면하는, EU 가치에 어긋난 행위”라고 지적했다.● EU, 북아프리카 돈 주고 단속 지원 EU의 불법 이민자 아웃소싱은 주로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대상이다. 유럽과 물리적으로 가까워 불법 이민자들이 유럽으로 오는 중간 기착지로 삼는 나라들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이탈리아·그리스·키프로스 정상으로 구성된 EU 대표단은 1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만나 무역, 안보 등 분야에서 재정 협력을 강화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EU가 3년간 지원할 금융패키지 74억 유로에는 보조금 항목으로 불법 이민자 대응 명목의 2억 유로가 포함돼 있다. 이집트엔 수단, 시리아 등 내전 중인 주변 아프리카와 중동 불법 이민자들이 수십 년 동안 유입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3월 기준 이집트 불법 이민자는 약 55만 명으로 추산된다. 최근 이집트 경제난이 심화되며 이들은 더욱 유럽으로 가려고 애쓰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불법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북부 해안 경비를 강화해 왔다. 그러자 요즘엔 이집트에서 치안이 불안정한 리비아로 간 뒤에 유럽으로 가는 배를 타는 불법 이민자들이 풍선 효과처럼 늘고 있다.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에서 180km 떨어진 튀니지 북부 해안도 불법 이민자들의 주요 통로다. 지난해에만 람페두사섬으로 14만5000명에 이르는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이에 지난해 7월 EU는 국경 관리 및 단속 강화를 대가로 튀니지 정부에 약 10억 유로를 제공하는 협약을 맺었다. 당시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번 협약이 북아프리카 다른 나라와 비슷한 협정을 맺는 데 선례가 될 것”이라 평했다.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도 크게 늘고 있다. 이전엔 모로코에서 스페인 본토로 가는 루트가 성행했지만, 해안 경계가 강화되자 본토에서 약 1500km 떨어진 섬으로 우회를 시도하는 것이다. AP통신은 “지난해 카나리아제도로 들어온 불법 이민자는 2006년 이후 최고치인 3만2029명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카나리아제도는 최근 멀리 떨어진 세네갈에서 밀항을 시도하는 불법 이민자도 많아졌다. 이들이 택한 ‘대서양 루트’는 지중해를 건너는 것보다 훨씬 거리가 멀어 난파할 위험도 훨씬 크다.● 고향 떠났지만 또 다른 사지로… 경제적 지원을 받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실제로 국경 단속을 강화하는 추세다. 하지만 문제는 밀입국 통로만 막았을 뿐, 불법 이민자들의 처우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인권탄압이나 실종 사례가 빈번하게 보고되며, 살길을 찾아 목숨 걸고 고향을 떠난 이들이 또 다른 사지로 몰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비영리기관 ‘이집트 난민 플랫폼(RPE)’은 “지난달 이집트 UNHCR 센터 앞에서 이집트 보안요원들이 수단 출신 불법 이민자 가족들을 ‘노예’라 부르며 괴롭혔다”고 폭로했다. 이밖에도 불법 이민자를 대상으로 폭력이나 괴롭힘 등이 빈번한 것으로 전해졌다. 21일 오후 찾아간 UNHCR 센터 주변은 실제로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불법 이민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이마 씨(47)는 “마땅히 갈 곳도, 생계 수단도 없다”며 “심사를 받으려면 수시로 서류를 제출하고 몇 개월씩 기다려야 해 아예 인근에서 머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밤이 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나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구걸을 하기도 한다. 이들을 바라보는 이집트 국민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한 인근 식당 주인은 “내전을 피해 탈출해 비교적 부유할 거란 선입견이 있지만, 대부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라고 전했다. 반면 주민 헤가지 씨(35)는 “노숙자들이 늘어나니 동네 분위기가 나빠져 아무래도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는 불법 이민자들도 적지 않다. 국제이주기구(IOM)는 22일 “리비아 남서부에서 불법 이민자로 추정되는 시신 약 65구가 묻힌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며 “사막 지역을 거쳐 밀입국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엔 리비아 사막에서 어린이와 여성이 포함된 불법 이민자들이 식수도 없이 죽어가다 가까스로 구조되기도 했다. 이들은 나이지리아 출신들로 튀니지 국경수비대에 발각된 뒤 안전 조치도 없이 국경 밖 사막지대로 쫓겨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IOM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3월 20일까지 지중해에서 실종되거나 숨진 불법 이민자들은 2만9296명에 이른다. 올해 들어서만 밀항선이 좌초되며 442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 아프리카에서 실종되거나 사망한 이들도 205명에 이른다. 이는 확인된 숫자일 뿐,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英 ‘르완다 모델’, 유럽으로 퍼지나 불법 이민자로 몸살을 앓고 있는 EU는 최근 영국식 ‘르완다 모델’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의 간판 정책으로 꼽히는 르완다 모델은 쉽게 말해 르완다에 경제적 지원을 하고 영국에 온 불법 이민자를 보내는 방식이다. 현재 영국에선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위법으로 판결했으나, 의회에서 ‘살짝 재수정한’ 법안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유럽의회 제1당이자 중도 우파 성향인 유럽국민당(EPP)은 6월 선거 공약에 ‘이주민을 안전한 제3국으로 보내기 위해 역외 국가들과 협력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지에선 르완다 모델을 벤치마킹한 공약이란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해당 모델은 영국에서도 반(反)인권적이란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다, 유럽인권재판소가 올 1월 해당 법안의 위법성을 지적해 추진이 쉽지 않다. 불법 이민지가 가야 하는 국가가 ‘안전하지 않다’면 국제법 위반이라는 판단이다. 수낵 총리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르완다 모델을 계속해서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야당인 노동당이 반대 방침을 견지하는 데다, 여당인 보수당 일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진행이 쉽지 않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수낵 정부는 르완다로 가는 첫 비행기를 봄까지는 띄우겠다는 구상이지만, 계획에 차질을 빚으면 6월 이후로 연기될 수 있다”고 전했다. 영국 감사원(NAO) 보고서에 따르면 르완다 모델이 시행되면 영국은 불법 이민자 1명당 약 17만1000파운드를 르완다에 지불해야 한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22일(현지 시간) 모스크바 콘서트장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이들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IS-K’(Khorasan·호라산)이다. 과거 시리아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던 IS가 위축된 이후에도 이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일대에 걸쳐 있는 호라산 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대원을 모집하며 세력을 키워왔다. IS-K는 미군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때 카불공항에서 폭탄 테러를 감행해 미군 13명이 숨졌다. 이로 인해 미국의 특별 주시 대상이었으며, 미국은 이 단체에 대한 정보를 축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인 탈레반, 이슬람 시아파 ‘맹주’인 이란 정부와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올 1월엔 이란의 케르만에서 발생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추도식에서 폭탄 테러를 벌여 100여 명이 숨졌다. IS-K는 이번 모스크바 테러 직후 성명을 통해 “대규모 기독교인 군중을 공격했다”고 표현했다. IS-K는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 체첸공화국 내 분리독립운동 등에 개입해 무슬림을 탄압한 것에 불만을 품고 오랫동안 러시아를 표적으로 삼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대테러 연구기관인 수판 센터 콜린 클라크 연구원은 “IS-K는 지난 2년간 러시아에 집착해왔고, 선전매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자주 비판했다”라고 전했다. 미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마이클 쿠겔먼 연구원도 “IS-K는 러시아가 무슬림을 지속적으로 탄압해왔다고 본다”면서 “IS-K에는 크렘린궁에 불만을 품은 중앙아시아 무장단체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IS-K는 2022년 9월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러시아대사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사진)이 최악의 식량난에 허덕이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를 방문해 이스라엘의 봉쇄를 비난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뒤 가자지구 인구 230만 명의 절반이 넘는 약 140만 명의 피란민이 모여 있는 라파는 최근 아사(餓死)자가 수백 명에 이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구테흐스 총장은 23일 이집트와 가자지구 접경지대에 있는 라파 국경검문소를 찾았다. 그는 검문소에서 발이 묶인 구호품 트럭들을 보고 “비통한 현실을 보고 있다”며 “국경 한쪽엔 구호품 트럭들이 늘어섰고, 다른 쪽에는 기아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고 한탄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또 “이런 참사는 (가해자의) 도덕적 파탄으로 인한 것”이라며 “더 이상의 전쟁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도 했다. 이날 이집트 시나이주에서는 가자지구 진입을 대기하는 약 7000대의 구호품 트럭이 대기 중이었다고 무함마드 압델파딜 슈샤 주지사가 밝혔다. 이스라엘 측은 가자지구 구호품 반입량을 늘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반입된 물량은 가자지구 주민을 먹여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이집트에서 육로로 들어가는 구호품 트럭들이 이스라엘군의 까다로운 검문 절차로 지연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비행기를 이용한 ‘에어 드롭(air drop)’과 선박 운송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공급은 미미한 수준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을 점점 더 반(反)유대주의, 반이스라엘 집단으로 만들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카츠 외교장관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구테흐스 총장은 구호품을 약탈하는 하마스와 테러범에게 동조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비난한 적이 없다”며 대립각을 세웠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대통령실)에서 불과 20km 떨어진 ‘크로쿠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22일(현지 시간) 무차별 총격 테러가 벌어져 최소 137명이 숨졌다.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분파인 ‘IS-K’(호라산)는 테러 직후 배후를 자처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별다른 정황 공개 없이 “테러범들이 우크라이나 쪽으로 도주하려 했다”면서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주장했다.금요일이던 이날 오후 7시 40분경 콘서트 관람을 위해 공연장을 찾은 러시아 시민들은 무장 괴한의 자동소총 무차별 난사와 방화 등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24일 오후 6시(한국 시간 25일 0시) 기준 최소 137명이 숨지고 150여 명이 다쳤다. 2004년 3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체첸 반군의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 이후 20년 만에 러시아에서 벌어진 최악의 테러다.IS-K는 테러 직후 IS와 연계된 뉴스매체 ‘아마끄’를 통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도 “IS-K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하루 뒤인 23일 핵심 용의자 4명을 포함해 총 11명을 검거한 뒤 우크라이나와의 연계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러시아 당국이 구성한 사건 조사위원회는 “핵심 용의자 4명이 모두 브랸스크에서 검거됐다”고 설명했다. 브랸스크는 모스크바와 300km, 우크라이나와 약 100km 거리에 있다. 푸틴 대통령도 23일 대국민 연설에서 “초기 정보에 따르면 (테러범들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라고 주장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즉각 “우크라이나의 개입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푸틴을 비롯한 쓰레기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비난하려고만 한다”면서 “그들은 늘 같은 수법을 쓴다”고 반발했다. 백악관은 또 “3월 초 미 정부는 모스크바에서 계획된 테러 공격에 대한 정보를 러시아에 공유했다”고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테러의 책임을 우크라이나로 몰아가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 강화 명분으로 삼으려는 속내를 드러내자 첩보 공개를 통해 러시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6200명 공연장 출구 잠근채 총격… 엎드려 죽은 척해”크렘린궁서 20km, 러 심장부 테러… “총소리를 콘서트 시작으로 착각도”총기 난사뒤 커튼-좌석 불질러… 화장실-계단 등서 시신 수십구 발견러 “용의자 4명 등 관련자 11명 체포”… “730만원에 사주 받아” 주장 공개도 “테러범이 우리를 발견했고, 그중 한 명이 달려와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바닥에 엎드려 죽은 척할 수밖에 없었어요.” 22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부 ‘크로쿠스 시티홀’ 공연장을 덮친 총격 테러에서 살아남은 한 10대 소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무차별 총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기는 했지만 테러범들이 총기 난사 뒤 공연장에 지른 불에 화상을 입었다. 그는 왼쪽 얼굴과 왼팔을 거즈로 감싼 채 병원에 누워 23일 러시아 관영 언론 ‘RT’에 “내 옆에 있던 여자아이는 끝내 죽은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테러는 러시아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연 지 닷새 만에 러시아 대통령실인 크렘린궁에서 불과 2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2004년 체첸 반군과 러시아군의 충돌로 314명이 숨진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 이후 러시아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로 꼽힌다. ‘현대판 차르(제정 러시아 황제)’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해 온 푸틴 대통령에게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객 향해 총기 난사, 떠나며 방화 이날 밤 이 공연장에는 1978년부터 활동한 러시아의 유명 록밴드 피크닉의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었다. 6200석이 모두 매진될 만큼 인기 있는 콘서트였다. 하지만 무장괴한들이 정문에서부터 자동소총을 무차별 난사하면서 공연장 안팎은 ‘생지옥’이 됐다. 테러범들은 출구를 잠근 채 총기를 난사하고 공연장 안에 불을 질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목격자들은 오후 7시 40분경 위장복을 입은 테러범들이 미니밴에서 공연장 앞에 내렸다고 전했다. 테러범들은 자동소총, 권총, 칼, 화염병 등으로 무장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공연장 유리문 안쪽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고, 길 건너에 있는 사람들까지 표적으로 삼았다. 수십 명이 총격에 쓰러지자 이들은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공연장 안 관객들은 총소리를 콘서트 시작이라고 착각해 처음에는 대피하지 않았다. 일부 관객은 사람들을 대피시키려다 참변을 당했다. 엘레나 씨(61)는 “사람들이 무대 뒤쪽으로 몰려들자 테러범 중 한 명이 길을 막았다”며 “그러자 관객 중 한 명이 테러범의 총을 빼앗아 개머리판으로 그를 기절시켜 수십 명이 탈출할 수 있었다”고 RT에 전했다. 다만 “그는 살아남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테러범들은 공연장 커튼과 좌석 등에 인화성 액체를 뿌리고 불을 지른 뒤 도주했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화장실과 비상계단 등 관객들이 총격과 화재를 피하기 위해 숨었던 곳에서 시신 수십 구가 발견됐다.● 푸틴 “배후 처벌할 것” 예고했지만…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핵심 용의자 4명 등 관련자 11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특히 핵심 용의자들은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300㎞ 떨어진 브랸스크에서 붙잡혔다. 이들의 차량에서는 권총과 돌격소총 탄창, 타지키스탄 여권 등이 발견됐다. 테러 용의자 대다수가 사주를 받은 타지키스탄 출신 외국인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르가리타 시모냔 RT 편집장이 공개한 용의자 신문 영상에 따르면 용의자 중 한 명인 샴수트딘 파리둔(26)은 약 한 달 전 신원 미상의 ‘전도사(preacher)’로부터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파리둔은 “범행 대가로 50만 루블(약 730만 원)을 약속받았고, ‘나중에 100만 루블을 주겠다’고 재차 들었다”라고 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내부 피로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20년 만의 최악의 테러 참사가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푸틴 대통령이 “테러 배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예고한 대로 ‘응징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 어떤 카드를 꺼낼 수 있을지 딜레마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아시아는 서방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의 ‘뒷문’이어서 강경 대응을 하기는 부담이라는 것이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22일(현지 시간) 모스크바 콘서트장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이들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IS-K’(Khorasan·호라산)이다. 과거 시리아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던 IS가 위축된 이후에도 이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일대에 걸쳐있는 호라산 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대원을 모집하며 세력을 키워왔다.미군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때 카불공항에서 폭탄테러를 감행해 미군 13명이 숨졌다. 이로 인해 미국의 특별 주시 대상이었으며, 미국이 이 단체에 대한 정보를 축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인 탈레반, 이슬람 시아파 ‘맹주’인 이란 정부와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올 1월엔 이란의 케르만에서 발생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추도식에서 폭탄테러를 벌여 100여 명이 숨졌다.IS-K는 이번 모스크바 테러 직후 성명을 통해 “대규모 기독교인 군중을 공격했다”고 표현했다. ISIS-K는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 체첸공화국 내 분리독립운동 등에 개입해 무슬림을 탄압한 것에 불만을 품고 오랫동안 러시아를 표적으로 삼아온 것으로 알려졌다.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대테러 연구기관인 수판 센터 콜린 클라크 연구원은 “IS-K는 지난 2년간 러시아에 집착해왔고, 선전매체에서 푸틴 대통령을 자주 비판했다”라고 전했다. 미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마이클 쿠겔만 연구원도 “IS-K는 러시아가 무슬림을 지속적으로 탄압해왔다고 본다”면서 “IS-K에는 크렘린궁에 불만을 품은 중앙아시아 무장단체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IS-K는 2022년 9월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러시아대사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도 자신들 소행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아프리카 국가인 감비아의 의회가 ‘여성 할례 금지법’을 폐지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만약 법이 통과되면 세계에서 처음으로 할례 금지를 철폐한 나라가 된다. 유엔 등에선 반인권적 관습으로부터 성인 여성과 어린 소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할례를 막는 세계적인 분위기에 역행한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감비아 의회는 18일 전체 의원 58명 중 42명의 찬성으로 2015년 제정된 ‘여성 할례 금지법’ 폐지 법안을 해당 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해당 법안은 본회의 의결을 거쳐 폐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폐지를 추진한 알마메 기바 의원은 “할례 금지는 문화·종교 실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인 감비아에선 여성 할례를 종교적 미덕으로 여기는 이가 많아 폐지 찬성 여론도 상당하다. 지난해에도 할례 금지법에 따라 시술자 3명에게 벌금을 부과했는데, 이슬람 지도자(이맘)가 “여성 할례는 종교적 의무”라고 주장하며 법 폐지 운동에 불을 지폈다. 유엔은 여성 할례를 불법이자 악습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15세 이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의료 목적과 상관없이 성기 전체 혹은 일부를 절제하는 행위는 전면 근절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엔은 “전염병과 기후변화, 무력 분쟁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2030년까지 성 평등을 달성하고 여성 할례를 근절한다는 계획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할례는 무슬림 인구가 많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따르면 할례를 겪은 여성은 올해 기준 8년 전 조사 당시 2억 명보다 약 3000만 명 증가한 2억3000만 명으로 파악된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은 관습적, 종교적 이유로 여성 할례를 옹호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특히 소말리아, 지부티 등 여성 할례 경험자가 많은 나라들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구가 가파르게 늘면서 할례 경험자의 수치도 줄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수년간 만연한 무력 분쟁과 식량난에 팬데믹까지 겹치며 주민들이 정부보다 소규모 종교 공동체 등에 의존한 것도 할례가 지속되는 원인으로 꼽힌다. 월드비전은 “유럽이나 북미로 넘어간 아프리카 이민자들을 통해 악습이 퍼져 나가며 여성 할례는 특정 지역이 아닌 세계적인 문제로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아프리카 감비아의 의회가 ‘여성 할례 금지 법안’을 폐지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할례가 고유문화와 종교적 활동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법안 최종 통과 시 감비아는 세계 최초로 할례 금지를 철회한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유엔 등은 15세 이하 여성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의료 목적과 상관없이 성기 전체 혹은 일부를 절제하는 여성 할례를 전면 근절하는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할례를 겪은 여성이 8년 전 조사 당시 2억 명보다 약 3000만 명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는 등 세계 곳곳에선 여전히 할례가 자행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단체들은 고유문화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악습이자 여성 폭력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여성 할례 금지는 종교·문화 침해”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감비아 의회는 18일(현지 시각) 2015년 제정된 ‘여성 할례 금지법’을 폐지하는 법안에 전체의원 58명 중 47명이 참석, 42명이 찬성하면서 해당 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본회의 투표를 통해 법안은 최종 폐지될 가능성이 커졌다.폐지 법안을 제출한 알마메 기바 의원은 “법안은 종교적 충성심, 문화적 규범을 지키는 것을 추구한다. 할례 금지는 문화·종교 실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인 감비아에선 여성 할례가 종교적 미덕으로 여겨지는 등 폐지 찬성 여론도 큰 편이다. 이날 의회에선 “난 (딸의) 아버지라 법안에 찬성할 수 없다”며 일부 의원들은 반대 의견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지난해 할례 금지 법안에 따라 시술자 3명에게 벌금이 부과됐는데 한 이슬람교 지도자(이맘)가 “여성 할례는 종교적 의무”라고 주장하며 할례 금지법 폐지 운동에 불이 붙었다. 앞서 2015년 감비아 의회는 여성 할례 시 벌금 및 징역형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실상 제대로 된 단속은 없었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감비아의 15~49세 여성의 76%가 할례를 받았다. 세네갈 다카르에 소재한 국제앰네스티의 선임연구원 미셸 에켄은 “여성 할례 금지 조치를 철회한다면 여성 권리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인구 폭발에 공동체 의존성 심화여성 할례는 성욕을 억제하고,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정당화돼왔다. 하지만 의료 목적과 상관없이 비위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인 데다 추후 합병증은 물론 심하면 숨지는 사례도 발생해 각국 정부는 여성 할례를 불법이자 악습으로 규정하고 있다.그럼에도 할례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문화적, 관습적, 종교적 이유로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이달 초 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할례를 겪은 인구 전체 2억3000만 명 중 아프리카에서만 약 1억4400만 명이 파악됐다. 또 인도·동남아시아 등에서 8000만 명, 중동 지역에서 600만 명 이상 여성이 할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암암리에 관습처럼 행해지는 탓에 실제 사례는 추정치를 더 웃돌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유럽, 북미, 남미로 넘어간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여성 할례가 자행되는 사례가 파악되면서 여성 할례는 세계적 문제가 됐다”고 월드비전이 지적했다.유니세프에 따르면 15~49세 여성의 99%가 할례를 받는 소말리아를 비롯해 기니, 지부티, 말리, 이집트 등 여성 할례 경험자가 많은 국가는 공통적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여성 할례를 뿌리 뽑으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는 반면 해당 지역의 인구는 빠르게 급증하면서 할례 경험자의 수치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니세프에서 여성 할례의 동향을 조사하는 클라우디아 카파 연구원은 “지금까지 이룬 진전은 할례 관습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국가에서 태어나는 소녀의 증가세에 비하면 너무 느리다”고 지적했다.아울러 수년 간 팬데믹을 비롯해 지속된 세계적 전쟁,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만연한 무력 분쟁과 식량난, 가뭄 등으로 인해 국민들이 정부보다는 소규모 공동체에 더 의존하는 점도 할례가 줄어들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유엔 등은 “전염병, 기후 변화, 무력 분쟁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2030년까지 성 평등을 달성하고 여성 할례를 근절한다는 계획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프랑스 하원이 14일(현지 시간) ‘패스트 패션’ 제품에 최대 10유로(약 1만4000원)까지 단계적으로 부담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고객 수요에 즉각 반응해 1, 2주에 한 번씩 신상품을 쏟아내는 방식이 불필요한 소비와 환경 오염을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상원까지 최종 통과하면 세계 최초로 패스트 패션에 제동을 건 사례가 된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프랑스 하원은 이날 만장일치로 이른바 ‘패스트 패션 제한법’을 가결했다. 해당 법안은 2025년부터 제품당 5유로의 부담금을 부과하고, 판매 가격의 50%를 넘지 않는 선에서 2030년까지 최대 10유로까지 부담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제품 및 관련 기업에 대한 광고를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패스트 패션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실시간 반영해 기획·생산·유통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킨 패션을 뜻한다. 통상 브랜드들이 1년에 계절별로 4번 신상품을 내놓는다면 자라나 H&M 등은 1, 2주 단위로 선보인다. 중국 쉬인, 테무 등은 매일 신상품을 출시해 ‘울트라 패스트 패션’으로 불린다. 시장에 너무 많은 상품을 쏟아내다 보니 환경 오염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법안을 주도한 오리종당 안세실 비올랑 의원은 하루 평균 7200벌의 새 제품을 초저가로 선보이며 고속 성장 중인 쉬인을 콕 집어 환경, 사회, 경제적 여파를 지적했다. 프랑스가 패스트 패션의 과잉을 제한하는 입법을 하는 것을 두고 중국산 저가 의류로부터 자국 의류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프랑스 패션업계는 샤넬, 루이뷔통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수년간 저가 공세에 나선 해외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에 의해 빠르게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스라엘 경찰이 난민촌에서 폭죽놀이를 하던 12세 팔레스타인 소년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사살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은 오히려 경찰을 두둔하며 “테러리스트는 이렇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CNN방송은 12일 “동예루살렘 내 이스라엘 점령지인 슈아파트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 소년 라미 함단 알할룰리(12·사진)가 이스라엘 국경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당시 영상에 따르면 폭죽을 머리 위로 들고 있던 아이는 폭죽이 발사되는 순간 어디선가 총성이 들리며 쓰러졌다. 라미는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을 거둔 상태였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 경찰 대변인은 “경찰 쪽으로 공중에 폭죽을 발사한 용의자를 향해 발포했다”며 “전날부터 난민촌 인근에서 일부 팔레스타인 주민이 군경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폭죽을 쏴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대응이 정당했다는 주장이다. 어린아이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이스라엘 경찰을 총괄하는 이타마르 벤그리브 국가안보장관은 경찰을 치하하고 나섰다. 대표적 극우 정치인인 그는 소셜미디어에 “테러리스트를 살해한 경찰관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이게 바로 우리가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는 방식”이라고 썼다. 지난달 29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에게 발포해 최소 112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 의료진을 학대한 사실도 드러났다. 영국 BBC방송은 12일 “지난달 12일 가자지구 나세르병원에서 군인들이 의사 등의 옷을 벗기고 구타까지 저질렀다”며 “병원 내 하마스 대원을 색출한다며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관련 영상에선 의료진으로 보이는 이들이 속옷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 당시 피해를 입은 한 의료인은 “물을 뿌리고 모욕하는가 하면, 조금만 움직여도 폭력을 휘둘렀다”고 폭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교장관은 “매우 충격적 사건”이라며 “이스라엘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다”고 성토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무기 이전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11일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휴전 협상에는 제대로 응하지 않고 민간인 피해를 가중시킬 새로운 군사작전을 벌인다면, 이를 ‘레드 라인’을 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군사 지원 제한도 이에 대한 방편 중 하나로 풀이된다. 하지만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 브리핑에서 “정확한 정보가 아닌 추측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스라엘 경찰이 난민촌에서 폭죽놀이를 하던 12세 팔레스타인 소년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사살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부 장관은 오히려 경찰을 두둔하며 “테러리스트는 이렇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미국 CNN방송은 12일 “동예루살렘 내 이스라엘 점령지인 슈아팟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 소년 라미 함단 알훌리(12)가 이스라엘 국경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당시 영상에 따르면 폭죽을 머리 위로 들고 있던 아이는 폭죽이 발사되는 순간 어디선가 총성이 들리며 쓰러졌다. 라미는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을 거둔 상태였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 경찰 대변인은 “경찰 쪽으로 공중에 폭죽을 발사한 용의자를 향해 발포했다”며 “전날부터 난민촌 인근에서 일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군경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폭죽을 쏴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대응이 정당했다는 주장이다. 어린 아이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이스라엘 경찰을 총괄하는 이타마르 벤그리브 국가안보부 장관은 경찰을 치하하고 나섰다. 대표적 극우 정치인인 그는 소셜미디어에 “테러리스트를 살해한 경찰관에게 경의를 표현다”며 “이게 바로 우리가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는 방식”이라고 썼다.지난달 29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에게 발포해 최소 112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 의료진을 학대한 사실도 드러났다. 영국 BBC방송은 12일 “지난달 12일 가자지구 나세르 병원에서 군인들이 의사 등의 옷을 벗기고 구타까지 저질렀다”며 “병원 내 하마스 대원을 색출한다며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전했다. 관련 영상에선 의료진으로 보이는 이들이 속옷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 당시 피해를 입은 한 의료진은 “물을 뿌리고 모욕하는가 하면, 조금만 움직여도 폭력을 휘둘렀다”고 폭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 외무장관은 “매우 충격적 사건”이라며 “이스라엘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다”고 성토했다.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무기 이전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11일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휴전 협상에는 제대로 응하지 않고 민간인 피해를 가중시킬 새로운 군사작전을 벌인다면, 이를 ‘레드 라인’을 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군사 지원 제한도 이에 대한 방편 중 하나로 풀이된다. 하지만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 브리핑에서 “정확한 정보가 아닌 추측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