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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조용필의 노래에 나오는 오륙도(五六島)는 부산항을 드나드는 각종 배들이 반드시 지나야 하기 때문에 부산의 상징이다. 오륙도는 용호동 앞바다에 솟아있는 6개의 바위섬이다.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에 “오륙도는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이렇게 이름한 것”이라고 이름의 유래가 설명돼 있다. 폭우가 쏟아진 지난 주말 오륙도 위에 짙은 구름이 끼어 더욱 신비스럽게 보였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달 부산항에서 출발해 일본 규슈지방을 다녀오는 3박4일짜리 크루즈선 여행을 했다. 나가사키와 구마모토에서 각각 하루씩 기항을 하고 부산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나가사키는 1571년에 포르투갈선이 처음 입항했던 항구로, 쇄국정책을 펼치던 에도시대 때 유일하게 외국에 개방한 도시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서양인들의 주거지였던 글로버가든, 유황 온천수가 솟아오르는 운젠지옥계곡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구마모토에서는 가토 기요마사의 성으로도 유명한 구마모토성과 수전사 공원 등이 관광 포인트다. 기항지 항구에 내려서 자유롭게 시내를 도보로 걸으면서 쇼핑을 하는 사람도 있고, 관광버스를 타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점심식사가 포함된 패키지 여행을 하기도 한다. 나가사키 항구에 배가 정착하니 유서깊은 서양식 석조건물과 근대적인 항구도시 유적이 어우러져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가운데 크루즈선에서 입국수속을 끝내고 관광버스를 타러 가는데, 일본의 전통 의상을 입은 남녀 연주자들이 환영의 음악을 연주했다. 보라색 의상을 입은 남자는 북을 치면서 쇠를 울리고,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은 피리와 나팔, 서양의 관악기까지 불어가며 나긋나긋한 음조의 노래를 연주한다. 이들은 한국에서 온 크루즈 관광객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곤니치와~”하며 손을 흔든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밝게 웃으며 연주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인사성이 밝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가사키 관광을 마치고 오후 5시경 다시 크루즈선인 코스타세레나호로 돌아오는 데 이번에는 현지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마중나왔다. 배가 정박해 있는 항구의 앞 마당에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수십명이 트럼펫, 호른, 트럼본 등 금관악기와 팀파니, 드럼, 베이스 등 타악기와 전자악기를 갖춘 밴드를 형성해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고교생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커다란 깃발을 휘두르며 춤을 추고,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 뮤지컬 음악과 팝송까지 연주하며 흥겹게 율동을 선보였다. 크루즈 승객들은 객실 창문 발코니에서, 갑판 위에서 일본 고교생들의 공연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드는 의문. 고등학생 밴드들까지 동원해서 왜 이렇게 친절하게 환영을 해주는거지? 다음날 구마모토에 기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하선할 때는 현지 주민 수십명이 나와서 구마모토를 상징하는 캐릭터인 곰돌이 ‘구마몽’ 인형을 흔들며 승객들을 환영했다. 또한 오후에 관광을 마치고 다시 크루즈선에 승선하러 왔을 때도 어김없이 동네주민들로 구성된 20여 명의 관악 오케스트라가 ‘뿜뿜~ 빵빵~’하는 소리를 내며 환영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크루즈선이 기항하는 일본의 지자체와 항구도시의 주민들은 왜 이렇게 크루즈 승객들을 극진히 환영의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크루즈의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기항지에 내린 승객들은 적게는 200~3000명, 많게는 5000명이 넘는 승객이 동시에 내려서 5~7시간 동안 짧고 굵게 돈을 쓰고 간다. 크루즈선 1대가 기항지에 입항하면 승객 200여 명이 타는 대형 비행기 10대 이상에 맞먹는 효과를 낳게 된다. 크루즈 승객들은 이름난 자연경관과 문화유산만 관광하고 가는 것이 아니다. 나가사키, 구마모토의 관광코스 곳곳에는 면세점과 쇼핑센터가 활황이다. 크루즈의 특성상 공항 면세점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배에 오르기 전에 쇼핑센터에 들러 과자, 초콜릿, 사케, 위스키, 건강식품, 전자제품 등을 구입해 양손 가득 선물을 사서 배에 오른다. 또한 수천명의 기항지 관광객들은 시내 곳곳으로 퍼져 점심식사를 한다. 나가사키에서는 ‘나가사키 짬뽕’을 먹어보고, 구마모토에서는 지역의 명물인 ‘말고기 스시’를 맛보는 것이다. 이렇게 크루즈선이 도착하면 그날 하루는 온 시내가 관광객들로 들썩들썩한다. 크루즈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의 평균 지출 비용도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크루즈 관광객들이 기항지에서 지출하는 금액은 1인당 평균 700달러(약 90만원) 이상이다. 이는 비행기 등 다른 여행수단을 통해 찾아오는 관광객의 평균 지출액에 비하면 3배 이상 많다. ‘탐험 크루즈’로 불리는 초대형 크루즈를 이용해 여행하는 고객들은 기항지에서 1인당 평균 1500달러(약 195만원)를 소비하는 것을 집계됐다. 이 뿐 아니다. 세레나 코스타 크루즈선에서는 매일 3000여 명의 승객과 1400여 명의 승무원들이 식사를 해야 한다. 엄청난 양의 채소와 달걀, 닭고기, 생선 등의 식자재와 물, 전기와 연료가 필요하다. 크루즈선은 기항지에 들를 때마다 물과 식자재를 보충하고, 엔진에 들어가는 기름을 보충해야 한다. 또한 배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기항지에 맡겨 처리해야 하기도 한다. 크루즈선이 기항지의 프로비저닝(식품, 음료 조달)을 맡는 전문 팀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크루즈선이 입항하는 지자체의 경우 관광수입 뿐 아니라 프로비저닝 수입이 지방경제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산, 인천, 속초, 여수, 제주, 서산 등 6개 지자체에서 크루즈선 입항을 유치하려고 하고 있다. 국내 크루즈선 입국자는 2019년 한해에만 27만 명을 기록했지만,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크루즈선 입항 전면금지로 관련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팬데믹 이후 전세계에서 크루즈 여행이 다시 본격화하자 아시아 시장에서도 각국 지자체들의 기항지를 선점하려는 유치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아시에서는 현재 엔저를 타고 일본이 기항지로 가장 인기라고 한다. 대만~오키나와를 오가는 크루즈는 벌써 활황이고, 한국~일본~대만을 오가는 노선,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등도 본격적인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해외 크루즈선을 유치하기 위해 부산, 제주, 인천, 속초, 여수, 서산 등 6개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부산은 올 하반기 대형 국제크루즈선이 40여 차례 부산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주도 최근 국제크루즈 포럼을 열었다. 국제 크루즈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색다른 도시를 가고 싶어하므로, 한국의 K팝과 K드라마 열풍에 따라 한국의 항구도시에 대한 국제 크루즈 수요도 점점 커지고 있다. 크루즈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정책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본 나가사키, 구마모토의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처럼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관광객을 맞아주는 친절함도 필요할 것 같다. ●크루즈 여행정보올해 여름과 가을 시즌에는 부산, 속초, 제주 등지에서 일본 규슈, 홋카이도, 오키나와, 대만 타이베이 등으로 가는 다양한 크루즈선이 출발한다. 겨울 시즌에는 따뜻한 홍해 크루즈가 인기다. 홍해 크루즈는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3개국을 10일간 여행하는 코스다. 출발은 올해 11월 24일, 12월 8일, 22일, 내년 1월 26일 등 4차례. 항공편으로 카이로로 이동한 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체험한 뒤 수에즈만 인근의 수크나항에서 크루즈여행을 시작한다. 요르단의 페트라와 알아카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이집트 룩소르 등지를 여행한다. 9만2000t 규모에 길이가 290m에 이르는 ‘MSC오케스트라’호에는 승객 2600명, 승무원 900명이 승선한다. 나가사키·구마모토=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루즈 여행의 계절이 돌아왔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였던 국내 크루즈 여행이 3년 8개월 만에 부산항, 속초항 등지에서 본격 시작됐다. 그런가하면 홍해와 지중해 등 해외 크루즈 여행 상품도 본격적으로 손님을 모집하고 있다. 크루즈는 배라기 보다는 바다 위에 떠나니는 거대한 리조트. 선내에서 숙식은 물론 다양한 이벤트도 즐길 수 있는 크루즈 여행은 가족과 친지, 동창과 함께라면 더욱 즐거운 단체 여행의 백미다. ●크루즈 선내에서 100배 즐기기지난달 초 KTX 부산역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면 10분만에 도착하는 부산항국제여객선터미널. 1700여 명의 승객과 1400명의 승무원이 탄 대형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가 정박해 있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배라기 보다는 11층 높이의 호텔 수십채가 연결돼 있는 바다 위의 리조트를 연상케했다. 승객들이 승선 수속을 마치자 크루즈선은 부산항대교 아래를 미끄러지듯 통과하며 출항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크루즈 운항이 중단된지 3년8개월여 만에 다시 시작된 국내 항구에서 출발하는 전세 크루즈선 여행이었다. 부산항에서 출발한 이 배는 일본 규슈(九州) 지방의 나가사키(長崎)와 구마모토(熊本)에서 기항지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3박4일짜리 코스였다. 크루즈 여행의 특징은 직접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관광지를 찾아갈 필요도 없고, 숙소를 고르고, 식당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갑판 위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깅을 하고, 밤에는 달과 별을 구경하기도 한다. 바다가 보이는 야외 수영장에서 설치돼 있는 워터슬라이드를 타고 물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다. 크루즈 여행에 온 사람들은 부모님 환갑, 칠순을 맞아 형제, 자매가족끼리 온 사람도 있고, 동창회와 향우회, 동호회원들끼리 단체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 많았다. 세 형제가 가족들과 함께 여행 온 김현수 씨(52)는 “가족끼리 여행을 해봤어도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이라며 “한 배를 타고 여유있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크루즈 여행의 묘미”라고 말했다. 11만4500톤 급의 코스타세레나호는 전장이 289.6m. 최대 3617명의 승객에 1200여 명의 스태프를 포함해 최대 4800명까지 태울 수 있다. 배 안에는 대극장과 카지노, 면세점, 마사지숍, 8개의 수영장과 자쿠지, 8개의 레스토랑과 스낵바, 10개의 바와 라운지가 있는 거대한 리조트다. 특히 승객들이 기항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시간부터 선내에서의 이벤트는 하이라이트를 맞는다. 승객들은 선내 곳곳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정찬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저녁을 먹을 즈음, 배는 벌써부터 출항을 시작한다. 내일 새로운 기항지 관광을 할 도시로 밤새 이동하기 위해서다. 저녁을 먹자마자 배가 떠나는 이유는 또 있다. 항구에서 벗어나 공해상으로 배가 나가게 되면 면세점과 카지노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기항지 국가와 맺은 협약 때문에 배가 항구에 정박하고 있을 때에는 면세점과 카지노는 문을 열 수 없다. 크루즈 안의 면세점에는 보석, 시계, 화장품, 가방 등 럭셔리한 브랜드 제품 쇼핑객으로 가득찬다. 이슬람국가를 여행할 때 가장 큰 제약은 술을 마시는 걸 금지하거나 제약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크루즈 여행을 선택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등의 이슬람국가들을 여행하는 홍해크루즈의 경우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는 술을 판매할 수 없다. 그러나 공해상으로 배가 빠져나오면 해당 국가의 법률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술을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연과 댄스, 타로점이 있는 파티크루즈 선에서 저녁을 먹고 쇼핑까지 마쳤다면, 이제는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 입을 차례다. 부산항에서 출발해서 일본 규슈 지역을 다녀오는 크루즈선이라 승객의 90% 이상이 한국인 관광객들인 전세 크루즈선이었음에도, 저녁시간 대 수많은 여성들이 세련된 드레스 차림으로 갈아 입고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성들은 아직까지 아웃도어 차림으로 저녁 파티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여성들은 미리 이브닝 드레스를 준비해 와 파티 분위기를 한껏 냈다. 저녁을 먹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대극장이다. 3,4,5층까지 이어지는 대극장에서는 매일 밤 오후 8시반부터 1시간 가량 메인 공연이 펼쳐진다. 러시아와 동유럽 출신 남녀 무용수들이 펼치는 아크로바틱 댄스, 서커스와 마술, 뮤지컬과 콘서트 공연에 사람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 날에는 이탈리아인 선장과 스태프들이 샴페인잔을 들고 승객들에게 환송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파티를 연다. 대극장 공연이 끝나면 크루즈선 곳곳에서 파티가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전국에서 온 라틴 댄스동호회 회원들이었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회원들은 메인 홀 에서 자리를 잡았고, 필리핀, 말레이시아 출신 악단이 현장에서 직접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왈츠부터 바차타, 탱고까지 날아갈 듯 가볍게 댄스를 선보였다. “라틴댄스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크루즈 선에서 춤을 추는 것은 평생의 로망입니다. 취미로 댄스를 배우던 사람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화려한 선상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은 가슴 벅찬 순간이죠. 언젠가 크루즈선에서 춤을 추기 위해 댄스를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임상용 씨는 10여 년 전부터 동호회원들과 함께 지중해, 북유럽, 알래스카, 멕시코 등을 다녀오는 크루즈 여행을 주최해왔다고 한다. 그는 서양 관광객들이 많이 타는 지중해, 홍해, 유럽과 미주의 장거리 크루즈선에서는 밤마다 댄스파티가 열리기 때문에, 크루즈 관광객에게 춤추기 능력은 여행의 기본적인 준비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댄스 동호회원들과 함께 여행하다보면 외국인들과도 댄스로 교류하고, 자연스럽게 소통하면서 여행은 더욱 즐거워진다”고 말했다. 선상의 다른 쪽의 무대에서는 부산에서 온 노래강사가 이끌고 온 동호회원 40~50명이 노래자랑 대회를 열었다. 그런가 하면 한쪽 테이블에는 ‘타로와 함께 하는 크루즈 여행’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타로 동호회원들이 승객들에게 1만원을 받고 상담을 해주며 함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기자도 타로 점이 처음이라 한번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양력생일로 별자리를 찾고, 카드를 3장을 뽑았다. 우연히 뽑은 카드에 나온 그림들이 현재의 내가 처한 상황과 묘하게 연결되고, 특히 마지막 카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의 실마리를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아 신기했다. 타로카드는 미래의 운세를 점친다기 보다는, 현재의 내 고민을 들어주고 잘 설명해주는 심리상담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끼리 크루즈 여행을 왔다면? 갑판부터 수영장 주변, 홀 곳곳에 있는 바를 돌며 한 잔씩 하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한 잔 한 잔 주문할 경우 맥주와 와인, 위스키 한잔이 5달러 정도하지만, 35달러 정도를 내면 3박4일간 음료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크루즈 여행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젊은 승객들도 디스코텍이나 바에서 밤늦게까지 모임을 가지며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힐링의 크루즈 여행크루즈선에서는 이렇게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구마모토에서 밤에 출발해 부산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아침, 기항지 관광이 없을 때에는 선내 곳곳에서는 요가 레슨과 건강한 걸음걸이, 전문의와 함께 하는 건강강좌가 펼쳐진다. 또한 부동산 전문가가 해설해주는 부동산 투자 특강도 펼쳐지기도 한다. 이렇게 오늘 선내에서 어떤 파티와 공연, 강좌 등 이벤트가 열리는지 알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객실 문 앞에 꽂히는 ‘크루즈 신문’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참석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밑줄 쫙~. 크루즈 여행을 홀로 왔거나 커플끼리만 와서 서먹서먹하다면? 이들을 위해 분위기를 띄워주고, 주변과 함께 어울리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애니메이터(Animator)’다.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인도시아, 필리핀, 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다국적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메인 로비에서 환영파티 때 춤을 추기도 하고, 밤마다 화려한 의상으로 갈아 입고 승객들과 사진을 찍어준다. 애니메이터 중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사람들도 있다. 낮에 기항지 관광에 가지 못하는 유아나, 저녁에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전용공간에서 게임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유아 전용풀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크루즈 선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공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사우나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폴, 태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크루즈 여행을 확대해온 코스타세레나호는 9층과 10층에 대형 스파시설을 갖추고 있다.바다를 바라보며 실내자전거와 러닝머신을 탈 수 있는 피트니스 센터 옆에는 대형 자쿠지 풀이 있고, 일본식, 중국식 건식사우나 시설과 핀란드식 습식사우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타일이 붙어 있는 따뜻한 돌로 된 릴렉스 의자에 누워서 가운을 입고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데, 유리창을 통해 바다에 떠 있는 섬들 사이로 햇살이 부서진다. 마사지의 경우에는 1회 받는데 200달러 가량하기 때문에 손님이 많지 않다. 그런데 사우나는 사흘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패스가 99달러다. 객실의 샤워실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호텔보다는 좁은 부스에서 간단히 샤워를 해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사우나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끊은 후로 크루즈에서의 삶이 달라졌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사우나로 달려간다. 바다를 바라보며 피트니스센터에서 러닝머신으로 간단하게 몸을 푼다. 물론 본격적인 운동을 하고자 함은 아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런닝머신을 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기항지 여행을 마치고 저녁에 돌아온 후에도 바로 사우나로 향한다. 여행의 피로를 넓은 자쿠지 풀에서 수압으로 근육마사지로 풀어낸다. 하얀색 수건으로 된 가운을 입고 사우나에 가서 따뜻한 타일이 붙어 있는 돌의자에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스르르 감기는 눈. 적당히 따뜻한 온도에 땀이난다. 한층 더 올라가면 마사지실 밖으로는 카페처럼 차를 마시는 공간이 있다. 티백에 담긴 녹차와 홍차, 꽃차 중에 하나를 골라 컵에 뜨거운 물을 따르고 차를 우려낸다. 릴렉스 의자 위에서 발을 뻗고 창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마신다. 크루즈 여행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힐링의 순간이었다. ●크루즈 여행정보올해 여름과 가을시즌에는 부산, 속초, 제주 등지에서 일본 규슈, 홋카이도, 오키나와, 대만 타이페이 등으로 가는 다양한 크루즈가 출발한다. 겨울시즌에는 따뜻한 홍해 크루즈가 인기다. 11월24일, 12월8,22일, 내년 1월26일 등 4차례 출발하는 홍해 크루즈는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3개국을 10일간 여행하는 코스다. 항공편 카이로로 이동한 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체험한 뒤 수에즈만 인근의 수크나항에서 크루즈여행을 시작한다. 요르단의 페트라와 알아카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이집트 룩소르 등지를 여행한다. 9만2000톤 규모에 길이 290m에 이르는 ‘MSC오케스트라호’에는 승객 2600명, 승무원 900명이 승선한다. 나가사키·구마모토=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루즈 여행의 계절이 돌아왔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였던 국내 크루즈 여행이 3년 8개월 만에 부산항, 속초항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런가 하면 홍해와 지중해 등 해외 크루즈 여행 상품도 본격적으로 손님을 모집하고 있다. 크루즈선은 배라기보다는 바다 위에 떠다니는 거대한 리조트다. 숙식은 물론이고 화려한 이벤트가 가득한 크루즈 여행은 가족과 친지, 동창과 함께라면 더욱 즐거운 단체 여행의 꽃이다. ● 크루즈 선상에서 댄스를 지난달 초 KTX 부산역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면 10분 만에 도착하는 부산항국제여객선터미널. 1700여 명의 승객과 1400명의 승무원이 탄 대형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가 정박해 있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배라기보다는 11층 높이의 호텔 수십 채가 연결돼 있는 바다 위의 리조트를 연상케 했다. 승객들이 승선 수속을 마치자 크루즈선은 부산항대교 아래를 미끄러지듯 통과하며 출항했다. 코로나19로 크루즈선 운항이 중단된 지 3년 8개월여 만에 다시 시작된, 국내 항구에서 출발하는 전세 크루즈선 여행이었다. 부산항에서 출발한 이 배는 일본 규슈(九州) 지방의 나가사키(長崎)와 구마모토(熊本)에서 기항지 여행을 하고 되돌아오는 3박 4일짜리 코스였다. 크루즈 여행의 특징은 직접 운전하거나 대중 교통을 타고 관광지를 찾아갈 필요도 없고, 숙소를 고르거나 식당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갑판 위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깅을 하고, 밤에는 달과 별을 구경하기도 한다. 바다가 보이는 선상 야외 수영장에서 워터슬라이드를 타고 물속으로 풍덩 빠져보는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다. 크루즈 여행은 부모님 환갑이나 칠순을 맞아 형제 자매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있고, 동창회와 향우회, 동호회원들끼리 온 단체 여행객들이 많았다. 세 형제가 부양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온 김현수 씨(52)는 “가족끼리 여행을 해봤어도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이라며 “한배를 타고 여유롭게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크루즈 여행의 묘미”라고 말했다. 11만4500t급의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는 전장이 289.6m로 최대 3617명의 승객에 약 1200명의 스태프를 포함하면 최대 4800명까지 태울 수 있다. 대극장과 카지노, 면세점, 마사지숍, 8개의 수영장과 자쿠지, 8개의 레스토랑과 스낵바, 10개의 바와 라운지가 있는 거대한 리조트다. 승객들이 기항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면 선내에서는 멋진 하이라이트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와인 한잔을 곁들인 저녁을 먹을 즈음 배는 출항을 시작하는데, 다음 날 새로운 기항지 관광 도시로 밤새 이동하기 위해서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면서 면세점과 카지노가 영업을 시작한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인 오후 8시 반에는 3, 4, 5층에 걸쳐 있는 대극장에서 화려한 뮤지컬, 서커스, 마술 등의 공연이 펼쳐진다. 선내 곳곳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도 파티가 이어진다. 남성들은 여전히 아웃도어 차림이 많은 반면에 여성들은 대부분 파티용 드레스를 챙겨 와 갈아입고 나온 모습이 놀라웠다. 그중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사람들은 전국에서 온 라틴댄스 동호회 회원들. 이들은 필리핀 악단이 직접 연주하는 탱고, 바차타, 왈츠 음악에 맞춰 날아갈 듯 춤을 추었다. 10여 년 전부터 동호회원들과 함께 아시아뿐 아니라 지중해, 알래스카, 멕시코 등 크루즈 여행을 주최해온 임상용 씨는 “크루즈선에서 춤을 추는 것은 라틴댄스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로망”이라며 “취미로 댄스를 배우던 사람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화려한 선상 무대에서 춤을 추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말했다. 선상의 다른 쪽 무대에서는 부산의 노래강사가 이끌고 온 동호회원 40∼50명의 노래자랑 대회가 열렸다. 그런가 하면 한쪽 테이블에는 ‘타로와 함께하는 크루즈 여행’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타로 동호회원들이 승객들에게 1만 원을 받고 상담을 해주며 함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이 밖에도 크루즈선에는 건강강좌와 요가클래스, 부동산 투자, 어린이 스포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선내에서 오늘 어떤 파티와 공연, 강좌가 열리는지 알기 위해선 매일 아침 객실 문 앞에 꽂히는 ‘크루즈 신문’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크루즈선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공간을 꼽는다면? 단연 사우나였다. 창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따뜻한 타일이 붙어 있는 릴랙스 의자에 누워 사우나를 하는 기분은 남다르다. 2개 층에 있는 사우나는 일본식, 중국풍 사우나, 핀란드식 습식사우나, 자쿠지 풀까지 다양하다. 마사지는 1회에 200달러 가까이 하지만, 사흘간 사우나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는 99달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시로 피로를 풀 수 있고, 바다가 보이는 넓은 카페 같은 공간에서 여유 있게 차를 마시는 것은 크루즈 여행 최고의 힐링 순간이었다. ● 크루즈 승객들에 대한 열렬한 환영부산항에서 출발한 크루즈선은 일본의 나가사키와 구마모토에서 각각 하루씩 기항지 관광을 한다. 나가사키는 1571년에 포르투갈선이 입항했던 항구로, 쇄국정책을 펼치던 에도시대 때 유일하게 해외에 개방한 도시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서양인들의 주거지였던 글로버가든, 유황 온천수가 솟아오르는 운젠지옥계곡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구마모토에서는 가토 기요마사의 성으로도 유명한 구마모토성이 관광 포인트다. 그런데 항구에서 승하선을 할 때 일본 현지인들의 열띤 환영·환송 행사가 눈길을 끌었다. 나가사키 항구에 내릴 땐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전통 의상을 입은 연주자들이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환영의 음악을 연주하더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악단이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다음 날 구마모토에 기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승하선 시 구마모토시를 상징하는 캐릭터인 곰돌이 ‘구마몬’ 인형과 깃발을 흔드는 동네 주민들로 구성된 20여 명의 관악 오케스트라가 “뿜뿜∼ 빵빵∼” 환영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크루즈선이 기항하는 일본의 지자체와 항구도시 주민들은 왜 승객들을 극진히 환대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크루즈의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크루즈선 1대가 기항지에 입항하면 2000∼3000여 명의 승객이 동시에 내려 식사와 쇼핑 등으로 돈을 쓰고 간다. 이는 200여 명이 탑승하는 대형 비행기 10대에 맞먹는 효과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크루즈 관광객들이 기항지에서 지출하는 금액은 1인당 평균 700달러(약 90만 원) 이상이다. 이는 비행기 등 다른 여행수단을 통해 찾아오는 관광객의 평균 지출액에 비하면 3배 이상 많다. 이뿐 아니다. 크루즈선은 기항지 항구에서 정박할 때마다 물과 식자재, 연료를 보충하기 때문에 지자체로서는 막대한 수입이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해외 크루즈선을 유치하기 위해 부산, 인천, 속초, 여수, 제주, 서산 등 6개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크루즈 여행 정보올해 여름과 가을 시즌에는 부산, 속초, 제주 등지에서 일본 규슈, 홋카이도, 오키나와, 대만 타이베이 등으로 가는 다양한 크루즈선이 출발한다. 겨울 시즌에는 따뜻한 홍해 크루즈가 인기다. 11월에 출발하는 홍해 크루즈는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3개국을 10일간 여행하는 코스다. 항공편으로 카이로로 이동한 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체험한 뒤 수에즈만 인근의 수크나항에서 크루즈 여행을시작한다. 요르단의 페트라와 아까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이집트 룩소르 등지를 여행한다. 9만2000t 규모에 길이가 290m에 이르는‘MSC오케스트라’호에는 승객 2600명, 승무원 900명이 승선한다. 출발은 올해 11월 24일, 12월 8일, 22일, 내년 1월 26일 등 4차례. 문의는 크루즈여행닷컴.글·사진 나가사키·구마모토=전승훈 기자raphy@donga.com}
여행을 하다보면 숲이나 계곡, 바닷가에서 마애불(磨崖佛)을 심심찮게 만난다. 마애불은 바위에 새긴 불상이다. 절에 있는 불상이 목조나 철, 청동, 금동으로 조각돼 있거나 탱화로 그려져 있다. 절에 모셔진 불상은 엄격한 도상학적 의미에서 그려지기 때문에 손가락의 모양이나 눈빛, 미소, 의상까지 완벽한 비례와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그러나 산속이나 바닷가 돌과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그렇지 않다. 절이 없는 깊은 산이나 동네 마을 뒷산에 마애불을 모시고, 백성들이 기도하는 민간신앙의 현장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애불의 부처님은 좀더 친숙한 우리네 한국인의 얼굴을 닮았고, 천진난만한 아기의 미소를 짓는 경우도 많다. 엄격한 부처님 대신에 생활 속에 가까이 하고 싶은 얼굴을 새겨넣어서인지도 모른다. 온갖 비바람과 눈보라, 뜨거운 햇볕과 같은 풍상을 겪으면서도 마애불은 우리 곁을 지켜왔다.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마애불의 거칠거칠한 질감은 박수근 화백의 화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화강암은 새기기도 어렵지 않기만, 보존도 잘 되는 편이어서 현재까지 수많은 마애불이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마애불은 기원전 2,3세기 인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아잔타, 에룰라 등 석굴사원의 입구나 주벽에 새겨져 있다. 탈레반이 파괴했던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산맥 절벽에 조성됐던 바미안 석불도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중국을 거쳐서 국내로도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7세기 백제에서부터 마애불이 시작됐다고 한다. 백제시대의 작품인 서산마애삼존불을 비롯해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28개나 된다. 경주 남산에는 마애불군이 있는데, 쓰러진 채 600년을 버틴 마애불의 오똑한 콧날이 땅과의 5cm의 틈사이로 보존돼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수묵화가 호림 남행연 작가가 평생 사랑해왔던 ‘마애불’을 주제로 한 전시를 열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7월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루벤이다. “3년 전 전북 고창 선운사에 한 1주일간 머물 때, 매일 두번씩 도솔암에 올라가 마애불을 보고 왔어요.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서 만든 마애불의 크기가 어마어마했지요. 사람이 개미만해 보일 정도였어요. 도솔암에서 마애불을 만난 감동은 아직도 잊지 못해요.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마애불의 존재가 내 가슴을 달구었습니다. 그래서 마애불을 그리게 됐고, 마애불과의 사랑이 시작됐습니다.”남 작가는 이후 전국의 마애불상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에 그토록 많은 마애불이 있고, 보물로 지정된 마애불도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온갖 풍상과 시련에도 당당하게 견뎌온 마애불을 수묵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붓에 먹물을 묻혀 수백 번, 수천 번의 점을 찍어 마애불의 화강암 질감을 표현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해맑은 미소를 담아내야 했다. 그는 “하나하나 점을 찍어 마애불을 그리면서 내 자신이 돌처럼 단단해져 감을 느꼈다”며 “그것은 마애불이 견뎌온 긴 세월을 몸소 체험해보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었다”고 말했다. 남 작가의 마애불 그림을 보면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처럼 수많은 점들로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심지어 먹물로 찍은 점 위에 돌가루와 호분(바닷가 모래사장의 굴, 대합 등 조개를 빻아 만든 흰색 안료)을 뿌려 마애불의 질감을 표현해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운주사 석불, 내금강 삼존 마애불 창군,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좌상 등의 그림이 전시된다. 그 중에서도 경주 불국사 석굴암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본존불(국보 24호) 그림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경주 불국사 주지 스님의 배려로 저녁 노을 속 토굴에서 석굴암 부처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신라시대에 조성된 부처님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삼배를 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여행을 다니다보면 만날 수 있는 마애불 중에는 장난꾸러기처럼 해학적인 모습의 부처님도 있다. 사람 얼굴처럼 생긴 돌이나 바위 중에는 미륵불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도 많다. 함께 답사를 다니는 지인 중에 전국에 있는 수령 수백년이 넘는 노거수를 찾아 답사하는 나무 전문가가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는 돌과 바위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두 사람은 나무를 보러다니면서도, 마애불도 함께 챙겨보는 여행을 다닌다. 산과 들에 꽃도 피고, 나무도 자라고 있지만, 숨어 있는 마애불을 찾고 감상하는 일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강원 인제와 양양을 잇는 국도 44호선을 넘어가는 고개 정상의 ‘한계령 휴게소’는 드라이브할 때 꼭 들르는 명소다. ‘올림픽 주경기장’과 ‘공간사옥’을 설계한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1981년에 지은 작품이다. 설악산 능선을 따라 그대로 이어진 지붕선이 자연의 풍경에 녹아든다. 기암괴석 칠형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관을 즐기며 먹는 황태해장국이 별미다. 또 16가지 한약재를 달여 만드는 약차도 이 휴게소의 명물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강원 강릉시 300년 전통의 한옥 선교장에 들어서면 초록 연잎들이 가득한 연못에 고풍스러운 정자 활래정(活來亭·사진)이 떠 있다. 7월이면 연꽃이 솟아올라 8월 중순쯤 절정을 이룬다. 1816년 지은 활래정은 주자의 시 ‘위유원두활수래(爲有源頭活水來)’에서 따왔다. 샘이 있어 맑은 물이 솟아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선교장 앞까지 호수여서 배를 타고 건너다녔기에 동네는 ‘배다리마을’로 불렸고 여기서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아비뇽에 교황청이 있던 14세기. 당시 아비뇽 교황청 궁전에는 67년간(1309~1377년) 7명의 교황이 재위했다. 대부분 프랑스인 출신의 교황들이었으니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에서 와인을 공수하기 보다는 가까운 지역에 새로운 포도밭을 만들어 와인을 마시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비뇽에서 론강을 건너 북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언덕 마을에 새롭게 생긴 교황이 마시는 전용 와인을 생산하던 마을이 ‘샤토 네프 뒤 파프’다. 론 지역을 대표하는 ‘샤토 네프 뒤 파프’(Chateau Neuf du Pape)는 교황(Pape)의 새로운(Neuf) 성(Chateau)이라는 뜻이다. 아비뇽 교황청 자체도 로마 바티칸과 다른 새로운 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성은 아비뇽에서 두번째 탄생한 교황인 요한 22세가 여름 별장으로 지은 궁전이었다. 아비뇽 교황청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인 셈이다. 렌터카를 타고 ‘샤토 네프 뒤 파프’ 주차장을 찾아가니 반쯤 부서진 벽돌로 쌓인 거대한 문이 나온다. 폐허가 된 문을 차를 타고 통과하니 언덕 위에 넓은 포도밭이 나타난다. 저 멀리 론강 유역부터 360도의 평야지대가 보이는 전망이 탁월한 그림같은 포도밭이다. 절반쯤 무너져 내린 샤토 네프 뒤 파프 성 앞에서 난 마리 조제 씨(오랑쥬-샤토네프뒤파프 관광사무소)는 손에 커다란 열쇠를 들고 있었다. 둥근 고리 끝에 요철 문양의 키가 달린 고색창연한 열쇠다. “철커덩!” 그녀는 굳게 잠긴 성문 열쇠구멍에 이 열쇠를 넣어 문을 열었다. 14세기로 교황의 별장 안으로 타임슬립을 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문을 열자 와인잔이 놓여 있는 넓은 연회장이 나타났다. 마리 조제 씨는 “이 성은 원래 4개의 탑과 연회장, 화려한 장식이 있는 방이 있는 건물이었다”며 “교황이 여름에 이 성에 올 때는 100~200여 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왔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성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점령군 사령부로 쓰다가 떠나면서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켰다. 그래서 북쪽 절반이 파괴된 채 텅빈 폐허로 남아 있다. 이 지역은 원래 포도주를 생산하던 마을이었지만 요한 22세 교황이 새로운 성을 지으면서부터 인근 포도밭에 본격적으로 최고급 품질의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샤토 네프 뒤 파프 와인은 ‘교황의 와인’으로 알려졌다. 샤토 네프 뒤 파프 지역의 포도밭을 걸어보니 밭에 감자만한 둥글둥글한 차돌이 가득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비뇽으로 유유히 흘러 지중해로 가는 론강을 따라 알프스에서 쪼개진 돌들이 이곳에사 자갈 마당을 이뤄놓아 포도밭에도 온통 자갈 투성이다. 그런데 작은 몽돌이 아니라 전남 해남 보길도의 ‘공룡알 해변’에서 볼 수 있는 공용알이나 타조알 만큼 큼직한 차돌이었다. ‘갈레 훌레(Gallet Roulet)’라고 불리는 이 돌들은 낮에 프로방스의 강렬한 햇볕에서 받은 열기를 해가 지고 난 후 한밤까지도 유지하며, 반사열을 나무에 전달한다고 한다. 이렇듯 샤토네프 뒤 파프는 돌멩이가 포도를 익히는 특이한 토양이 개성이다. 샤토 네프 뒤 파프 와인의 깨끗하면서도 강렬한 맛의 비밀이 담긴 테루아(Terroir)인 셈이다. 샤토 네프 뒤 파프는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시라 등 13가지 현지 토착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든다. 성 밑 마을의 중앙 광장 부근에 있는 ‘라 비나데아’(La ViNADEA)에서는 보카스텔(Chateau de Beaucastel), 페구(Domain du Pegau), 클로 생 장(Clos St. Jean) 등 샤토 네프 뒤 파프 지역의 다양한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다. 대표 와이너리 중 하나인 도멘 페구의 이름은 교황 궁전 유적 발굴 중 발견된 와인용 항아리를 따서 만든 것이라 한다. ‘페구(Pegau)’는 14세기부터 내려온 테라코타 와인 저그(손잡이가 담긴 항아리)다. 샤토 네프 뒤 파프 와인에는 화이트도 있지만 95%가 레드 와인이며 로제는 만들지 않는다. 비나데아(VINADEA) 직원 엘자 씨는 “인근 타벨(Tavel) 지역에서 레드 와인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로제 와인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샤토 네프 뒤 파프는 로제를 만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샤토 네프 뒤 파프 지역의 최고급 와인은 전통있는 가문이 세대를 거쳐 생산하고 있다. 언덕 위 교황의 성채가 보이는 포도밭이 있는 ‘샤토 드 라 가르딘(Chateau de la Gardine)’도 그 중 하나다. 본래 교황청 소유였다가 몇 년째 주인 없던 포도밭을 가스통 브루넬이 1945년 구입하면서 라 가르딘의 역사가 시작됐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파트리크와 손자 기욤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샤토 라 가르딘의 와인 저장창고 앞에는 목조로 만든 교황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이 와이너리에는 방문객을 위해 품격있게 장식된 별도의 방에 시음장을 갖추고 있다. 이 곳에서 6종의 화이트와 레드와인을 맛을 보았다. 샤토 드라 가르딘의 와인병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다른 와인과는 다르다. 수제로 병을 만든 듯 병이 옆으로 살짝 눌리고, 병목도 약간 휘어진 비정형의 형태가 특이함을 자아낸다. 이 와이너리의 초창기 선조들의 얼굴과 이름을 넣은 ‘제네라시옹 가스통 필립(Gaston Philippe)’은 수령 60년 이상의 나무에서 수확한 그르나슈와 시라, 무르베드르를 블렌딩해서 만든다고 한다. 2003년 빈티지는 보르도 와인처럼 바디감이 강하면서도, 부르고뉴 와인처럼 부드럽고 깨끗한 맛과 긴 여운이 인상적이었다.또한 이 와이너리의 최고급 라벨 중에는 또 ‘임모텔(l’Immortelle)‘이라는 와인이 있다. Immortel은 프랑스어로 ’불멸‘이라는 뜻이다. “임모텔은 최고급 포도를 엄선해서 수작업으로 만든다. 매해 나오지 않으며, 최상급 품질의 포도가 나온 해에만 생산한다. 기계나 펌프보다는 완전 핸드메이드로 만든다. 포도가 와인으로 숙성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인공적인 손길을 없애고, 포도 자체를 존중한다. 임모텔은 우리가 와인을 만드는 방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기욤 브루넬)임모텔의 병을 장식하는 라벨은 다른 와인과 달리 매우 특이한 그림으로 돼 있다. 와인 메이커인 파트릭 브루넬 씨의 친구인 한 예술가가 그려준 그림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라벨을 선물해주었던 예술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 이 와인의 이름은 영원한 친구를 기리는 마음에서 ‘불멸(L’Immortelle)‘로 지었다고 한다. “라벨에 보면 씨앗이 발아해서 꽃이 피고, 비가 오고 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처음 이 와이너리를 인수했을 때 들판에 가득 피어있던 꽃을 그린 그림입니다. 포도도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양조가 되는 것을 상징하는 라벨입니다.”론강 유역 덩텔르 드 몽미라 지역의 쉬제트 마을의 ‘페름 드 생 마르탱(Ferme de Saint Martin)’은 요즘 프랑스를 휩쓸고 있는 새로운 내츄럴 와인을 제조하는 와이너리다. 와인메이커인 소피 줄리앙 씨는 “오래 전부터 와인 제조과정에서 이산화황 등 화학물질을 전혀 넣지 않는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해왔다”며 “밭에서도 말을 이용해 물건을 옮기고, 염소가 잡초를 뜯어먹게 하는 농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고대 로마의 도시, 오랑쥬샤토 네프 뒤 파프에서 북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오랑주는 고대 로마 유적의 보고다. 기원전 52년부터 로마제국의 현재 프랑스(갈리아)로 와서 점령한 이후로 약 400여 년 동안 로마가 직접 통치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프랑스인(골루아인)들에게 건축과 도로, 수로, 와인 담그는 기술 등 다양한 문명을 전수하며 융화정책을 폈다. 오랑주에 진입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기원전 49년에 세워진 로마시대 개선문이다. 높이 18m, 폭 19m, 두께가 9m의 이 개선문은 세 개의 아치로 구성돼 있다. 앞 뒷면에는 카이사르의 전승을 기념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2000년이 훌쩍 넘은 오랑주 개선문은 아직도 당당하게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로마 황제의 전승을 알리고 있다. 개선문에서 빅토르 위고 거리를 계속 걸어가 구시가지를 지나면, 오랑주의 명물인 고대극장이 나타난다. 현대식 건물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보존상태가 좋은 거대한 돌벽이 인상적이다. 이 고대극장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 지어진 것으로,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극장 주변에는 로마에 있는 포룸처럼 사원과 회당 등의 건물 유적지가 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반원형 계단과 무대가 있는 거대한 극장이 나타난다. 오랑주 시는 1950년 중앙벽면의 움푹 들어간 곳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조각상을 다시 재건축함으로써 대중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게 만들었다. 2000년이 넘은 요즘에도 공연이 벌어지는 살아 있는 극장이다. 매년 7~8월에 열리는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의 주요 무대다. 1869년에 시작된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축제다. 약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극장의 전면에는 두께 1.8m의 거대한 벽면이 있어 영상을 쏘아 무대 효과를 낼 수 있다. 야외 공간이지만 오케스트라의 음향은 놀랄만큼 명료한 소리를 낸다. 비밀은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조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무대 뒷편의 거대한 벽. 높이 38m, 가로 103m의 이 돌벽이 가수들의 노래를 효과적으로 반사시켜 객석 어디에서나 풍요한 음향을 즐길 수 있다. 프로방스의 아를에서도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장이 투우 경기와 오페라, 콘서트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오랑주의 고대극장도 오페라 뿐 아니라 록음악, EDM 등 다양한 현대 음악축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새삼 로마시대 건축의 위대함을 생각해본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0여 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새벽 4시쯤에 출발해 자동차를 타고 남부 도시 아비뇽까지 간 적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김밥에 컵라면을 먹어가며 쉬엄쉬엄 13~14시간을 달려 저녁 해질 무렵에 아비뇽에 도착했다. 아비뇽의 성채를 지나 교황청 밑 도심 지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장으로 올라오니 거대한 고딕건물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마침 세계 최대의 연극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 이 열리던 7월이어서 교황청 앞 광장에서 밤늦게까지 현대무용과 마임 등 길거리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아비뇽 교황청 내부까지 들어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프로방스 취재길에 교황청에 들러 내부까지 꼼꼼히 둘러보았다. 아비뇽은 론 와인의 수도이자, 세계적인 축제의 도시이지만 세계사적으로는 ‘교황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중세 로마 교황권과 프랑스 왕권간의 충돌로 교회가 대분열하고 ‘아비뇽 유수’가 벌어진 현장이었던 아비뇽 교황청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비뇽 교황청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의 궁전’이라고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다. 그 말대로 아비뇽의 ‘팔레 데 파프(Palais des Popes, 교황의 궁전)’는 면적 1만5000㎡에 이르는 웅장하고 육중한 석조 건물이다. 성벽의 높이가 50m, 두께는 4m에 이른다. 뾰족한 탑과 망루가 세워진 성채가 그야말로 도시를 감싸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비뇽 교황청은 14세기 67년간(1309~1377년) 7명의 교황들이 살던 곳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병영으로 변모됐으며, 19세기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됐다. 그래서인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의 미술품으로 화려한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 비해 아비뇽 교황청 내부에는 남아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 당시 ‘성상 파괴 운동’의 피해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황청 옆에 있는 아비뇽 대성당 입구의 성상은 아직도 머리 부분이 부서진 채 그대로 있다. 프랑스 제11대 왕 필리프 4세(1268~1314) 때 당시 교황청은 교황권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왕권과 대립했다. 필리프 왕은 교황의 양해 없이 프랑스 내의 교회에 ‘임시세‘를 부과했고, 이탈리아 로마 남동쪽 ‘아나니’에 있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급습해 3일 동안 투옥시켰다. 아나니는 보니파시오 교황의 탄생지며 별궁이 있던 곳이다. 교황은 시민들의 협력으로 구출됐으나 1년 후에 병사하고 만다. 아나니 사건 이후 왕권은 신장되고, 교황권은 쇠퇴하면서 교황청은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기게 된다. 1305년 프랑스인 클레멘스 5세(1264~1314)가 교황이 된 이후로 교황청은 67년간 프랑스에 있게 된다. 아비뇽에 거주한 교황들은 클레멘스 5세에서 시작해 요한 12세, 베네딕토 12세, 클레멘스 6세, 이노센트 6세, 우르반 5세 그리고 그레고리오 11세까지 7대의 교황으로 이어지는데, 이로써 아비뇽은 제2의 로마로서 부각된다. 아비뇽 유수 시절 네번째 교황으로 재직했던 클레멘트 6세(재위 1342~1352)는 1348년 시칠리아 여왕으로부터 아비뇽을 사들여 교황청 궁전을 건축했다.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면 대연회실을 비롯해 기도실, 예배실, 회랑, 회의실, 주방 등 20여 개가 넘는 방을 관람할 수 있다. 내부의 화려한 장식과 가구는 대부분 사라지고 없는 데, 입장할 때 주는 태블릿PC를 빈 벽에 비추면 중세시대 모습을 3D 증강현실 기술로 실감 나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교황의 예배당과 침실에는 13~14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 화가들의 프레스코화 그림이 벽에 남아 있고, 바닥의 모자이크 타일도 오랜 세월에 퇴색된 채 남아 있다. 성 마르샬, 성 요한, 대강당의 벽화는 이탈리아 화가 마테오 지오바네티의 프레스코화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교황의 침실 벽의 프레스코화는 하늘색 배경 위에 포도 덩굴과 떡갈나무 잎사귀 그림이 섬유의 텍스타일 디자인처럼 새겨져 있다. 식물 사이사이로 새와 다람쥐가 묘사돼 있는 장면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의 틀은 밖으로 갈 수록 좁게 만들어져 있어 원근법을 활용한 장식으로 보인다. 벽체의 아랫부분은 커튼모양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바티칸 교황청의 내부 방들 아랫부분이 명암과 원근법을 활용한 그림으로 장식돼 입체처럼 보이는 눈속임을 활용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교황의 방에서 나오면 클레멘트 6세의 서재인 ‘사슴의 방(Chambre de Cerf)’으로 연결되는 좁은 복도가 있다. 이 벽에는 1343년 프랑스와 이탈리아 화가에 의해 그려진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눈길을 끈다. 자연의 농장 안에서 사냥과 낚시, 과일따기 등 전원 속 즐거움을 그린 그림이다. 연못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흰담비를 이용해 사냥을 하고, 허브, 꽃이 피어 있는 숲 속에서 과일을 따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이 방의 천정 밑에는 화려한 레임 밑으로 붉은색 배경에 낚시, 사냥, 동물들이 나오는 프리즈(frieze) 장식도 둘러싸고 있다. 교황청 벽화라면 바티칸의 ‘천치창조’나 ‘최후의 만찬’과 같은 성화를 떠올리는데, 아비뇽 교황청에는 전원 속에서 매우 세속적인 즐거움을 표현한 그림이 그려 있어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밖으로 나오면 교황의 정원이 펼쳐진다. 요한 22세, 베네딕트 12세, 클레멘스 6세, 우르비노 5세 교황은 분수와 나무, 꽃이 있는 정원 가꾸기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요한 22세는 곰, 사자, 낙타, 멧돼지, 사슴, 토끼 등 방대한 동물을 우리에서 길렀고, 후계자들은 타조와 공작도 정원에서 보고 즐겼다고 한다. 베네딕트 12세는 정원에서 교황의 식탁에 오르는 채소를 기르게 했다고 한다. 양배추, 시금치, 양파, 콩, 가지, 단호박 등의 야채와 마조람, 보리약초, 파슬리, 황소반 등 의약용 약초도 길렀다고 한다. 아비뇽시는 옛 문헌을 참고해 베네딕토 12세와 클레멘스 6세의 상부 정원과, 우르바노 5세의 하부정원의 꽃과 나무, 분수 등을 복원하고 있다. 현재 정원에는 포도나무, 꽃, 채소, 향신료 허브 등 다양한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교황청의 지붕으로 올라가면 뾰족탑과 요철 문양의 성채, 활을 쏘는 십자가 모양의 틈 넘어 아비뇽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교황청 오른편에 12세기에 세워진 아비뇽 대성당(노트르담 데 돔)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비뇽 대성당은 머리 꼭대기 돔 위에 4.5톤 무게의 황금빛 성모상이 햇빛에 비쳐 빛나고 있다.팔레 데 파프 광장의 한쪽에는 프티팔레 미술관이 있다. 아비뇽 유수 기간인 1320년에 지어진 옛 대주교의 궁전이었다. 현재 이곳은 보티첼리, 비토레 카르파초 등 13~16세기 이탈리아 종교화, 교황청 유물 등 뛰어난 종교 예술 컬렉션을 보유한 아비뇽의 대표 미술관 중 하나다.아비뇽 대성당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로쉐 데 돔 공원(Rocher des Doms)’이 나온다. 절벽으로 이뤄진 언덕 위에 만들어진 영국식 정원으로 아기자기한 연못도 있고, 인공 동굴도 있다. 공원의 정상 부근의 파노라믹 전망대에서는 붉은색 지붕이 모여 있는 아비뇽 시가지와 론 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둥근 탑 아래로 론강에 놓여 있는 생베네제교가 입체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언덕 위 전망대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오면 생베네제(Saint Benezet) 다리가 나온다. ‘아비뇽 다리 위에서’(Sur le Pont d‘Avignon)이라는 프랑스 민요로 유명한 다리다. 파리에서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쉬를 퐁 다비뇽 오니 덩스~, 오니 덩스~‘(아비뇽 다리 위에서 다함께 춤추자)하며 입에 달고 살던 동요였다. 아비뇽 페스티벌이 열릴 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만들며 춤을 추거나, 한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부르는 노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빙글빙글 돌며 ’강강술래‘ 를 부르던 것과 같이 프랑스인들에게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다.생베네제 다리는 12세기 양치기 소년 베네제가 신의 계시를 받고 하나하나 돌을 쌓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베네제는 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어야 한다는 강렬한 영감을 받고 계획을 실행하려 하지만 아비뇽 사람들은 비웃고 손가락질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베네자가 천사의 도움으로 서른 명의 장정들 힘으로도 들 수 없는 거대한 바위를 들어서 옮기는 종교적 기적을 보여주게 된다. 이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가 사람들은 다리 놓기에 참여하게 된다. 1177년에 시작된 대공사는 1185년에 마침내 완성된다. 베네제는 이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아 생(Saint) 베네제라 불리게 된다. 프랑스 아비뇽은 프로방스에 위치한 보클뤼즈의 중심이다. 알프스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드는 론 강이 아비뇽 생베네제 다리 밑으로 흐른다. 생베네제 다리는 원래 22개의 아치로 이뤄진 길이 920m의 다리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1226년 루이 8세가 아비뇽에 쳐들어온 전투 때 다리의 4분의 3이 파괴됐다. 이후 로마식 교각으로 겨우 재건했으나 17세기 초에 잦은 강의 범람과 홍수로 다리가 또 붕괴됐다. 현재는 4개의 아치만 남아 있다. 다리 중간 1,2층에는 생니콜라스 예배당과 생베네제 예배당이 있다. 강과 어부의 수호자인 성 니콜라스를 위한 예배당이자 천사의 계시를 받은 생베네제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생베네제 다리가 끊긴 마지막 지점에 가면 론강 건너편에 바스텔라스 섬이 보인다. 야생적인 론강은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섬을 만들어왔는데, 아비뇽 올드타운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바스텔라스섬은 면적이 700ha나 된다. 프랑스의 강 주변 섬 중에 가장 면적이 크다는 섬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되면 자동차를 타고 다리를 건거나 배를 타고 바스텔라스 섬으로 건너가보자. 아비뇽 시민들이 와인 한병과 과일, 샌드위치를 싸들고 피크닉을 떠나는 장소다. 바스텔라스 섬 쪽의 강변에 서서 아비뇽 구시가지를 바라보는 풍경이 기가 막히다. 육중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교황청과 아비뇽 대성당에서 이어지는 생베네제 다리까지… 론강 물 위에도 아비뇽의 역사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이 비치는 것이 포인트다. 석양에는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하는데, 푸른색으로 넘실 거리는 론강의 숨결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교황청 역사지구를 둘러보다가 지친다면 교황청 바로 뒷편 골목에 있는 5성급 호텔 라 미랑드에서 차 한잔 마시는 것도 좋다. 14세기 추기경의 궁전이었던 곳을 새단장한 호텔로, 창문으로 교황청 궁전이 내려다보이는 18세기 스타일의 앤티크 객실이 인상적이다. 1층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과 함께 분위기 있는 살롱 스타일의 카페가 있다. 이 곳 레스토랑의 19세기 키친에서도 호텔 셰프가 진행하는 쿠킹 클래스가 열린다. 프로방스의 미식과 요리를 직접 만들고 체험하면서,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파티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아비뇽 구시가의 중심에는 시계탑 광장이라는 뜻의 ‘오를로쥬 광장’(Place de l‘horloge)이 중심이다. 오를로쥬 광장 왼편에는 아비뇽 시청사와 오페라 극장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프랑스의 대부분의 광장에는 꼭 있는 회전목마가 놓여 있다. 애잔한 배경음악의 영화에 나올 법한 회전목마다. 노천카페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광장 오른편에는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에 뿌리를 둔 예술 영화관 유토피아(Utopia)가 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비스트로도 있다. 아비뇽 구시가를 걷다보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건물을 발견한다. 프라이빗 호텔로 쓰이는 ‘라 디빈 코메디(La Divine Comédy)’의 정원에는 프로방스의 명물인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을 거닐며 산책할 수 있다. 연못과 수영장, 대나무숲으로 구성된 프로방스의 정원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라 디빈 코메디’는 이탈리아 대문호 단테의 ‘신곡(神曲)’이다. 이 정원을 걷다보면 단테가 두루 여행했던 천국과 지옥의 진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리라. 프로방스 보클뤼즈 지역의 중심도시인 아비뇽은 론(Rhone) 와인의 수도이기도 하다. 구시가지 골목길에 있는 ‘르 방 드봉 스와(Le vin devant Soi)’는 론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는 와인샵이다. 이 샵의 이름이 흥미롭다.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을 패러디해 ‘자기 앞의 와인’이라고 붙인 이름이다. ‘자기 앞의 생’이 앞으로의 여생을 의미한다면, ‘자기 앞의 와인’은 내게 남은 여생에 즐길 와인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인가. 이 와인샵에서는 일정액의 카드를 구입하면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취향 껏따라 마실 수 있는 시스템이 눈에 띈다. 주인장은 지도를 펼쳐놓고 코트 뒤 론 부터 샤토 네프 뒤파프, 타벨, 바케라스, 지공다스, 에르미타쥬, 생조셉, 코트 로티, 콩드리유 등 론 지역의 명품 와인들의 포도 품종과 맛, 향기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아비뇽 교황청에서 가까운 골목길에 있는 ‘라 푸르셰트(La Fourchette)’는 미슐랭가이드가 추천하는 아비뇽 10대 레스토랑 중 하나다. 입구부터 메인홀까지 레스토랑 벽면에는 아비뇽 페스티벌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 있다. 축제를 찾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식당이기 때문이다. 1982년부터 40년 넘게 운영해온 이 레스토랑에서 맛볼 요리로는 프로방스 아비뇽식 소고기찜 요리인 ‘도브(Daube de Boeuf)’를 추천한다. 국물이 자작한 소고기 스튜요리로 마치 갈비찜과도 유사한데, 레드와인과 토마토, 올리브, 아티쵸크, 그리고 허브를 넣어 5~6시간 익혀내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 맛을 느낄 수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남부 아비뇽은 14세기에 로마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해 7명의 교황이 재위했던 도시다. 인근 론강 유역에는 교황의 와인을 만들던 포도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매년 7월이면 세계적인 연극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이 펼쳐지는 프로방스 도시로 와인 여행을 떠나 보자.》 ●사냥 그림이 그려져 있는 교황청7월의 아비뇽은 축제의 도시다. 건물 곳곳에는 오페라, 연극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길거리와 광장 곳곳에서 마임과 무용 공연이 펼쳐지는 아비뇽은 론 와인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비뇽이 세계사에 기록된 ‘아비뇽 유수’와 교황의 도시라는 점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로마 바티칸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아비뇽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경험도 색다를 수밖에 없다. 아비뇽을 둘러싸고 있는 성채 밑으로 들어가면 교황청 밑 도심에 대형 주차장이 있다. 차를 세우고 광장으로 올라오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딕 건물이 당당하게 서 있다. ‘팔레 데 파프(Palais des Papes·교황의 궁전)’. 면적 1만5000㎡에 이르는 육중한 석조 건물이다. 뾰족한 탑과 망루가 설치된 건물의 높이는 50m, 두께는 4m에 이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비뇽 교황청은 14세기 68년간(1309∼1377년) 7명의 교황이 살던 곳이다. 프랑스 왕권과 로마 교황권의 대립 끝에 가톨릭 교회가 로마와 아비뇽으로 대분열했던 시기의 중심 도시다. 아비뇽에 거주한 교황들은 클레멘스 5세에서 시작해 요한 22세, 베네딕토 12세, 클레멘스 6세, 이노센트 6세, 우르반 5세 그리고 그레고리오 11세까지 7대의 교황으로 이어졌다.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면 대연회실, 기도실, 예배실, 회랑, 주방 등 20개가 넘는 방을 관람할 수 있다. 교황청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병영으로 변모하고, 19세기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되면서 성상과 장식품 등이 대부분 파괴됐다. 그런데 입장할 때 주는 태블릿PC를 빈 벽에 비추면 중세시대 모습을 3D 증강현실 기술로 실감 나게 살펴볼 수 있다.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교황의 침실과 예배당, 대강당 등에 남아 있는 프레스코화가 눈길을 끈다. 이탈리아 화가 마테오 조바네티 등 13∼14세기 화가들의 작품이다. 특히 교황의 침실 벽을 장식하는 포도 덩굴과 떡갈나무 잎사귀 문양 속에는 다람쥐와 새들이 숨어 있고, 클레멘트 6세 교황의 서재로 연결되는 복도에는 사냥과 낚시, 꽃과 과일이 그려진 벽화가 있다. 바티칸의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성화에 비해 아비뇽 교황청에는 세속적인 즐거움이 담긴 현대적 벽화가 그려져 있어 사뭇 다른 느낌이다. 밖으로 나오면 교황의 정원이 펼쳐진다. 교황청 옆에 12세기에 세워진 아비뇽 대성당의 꼭대기에 4.5t 무게의 황금빛 성모상이 도시의 수호자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아비뇽 대성당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론강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면 ‘아비뇽 다리 위에서’라는 프랑스 민요로 유명한 다리가 나온다. ‘생베네제 다리’다. 12세기 양치기 소년 베네제가 천사의 도움으로 장정 서른 명의 힘으로도 들 수 없는 거대한 바위를 들어서 옮기는 기적을 보여준 후 사람들이 동참해서 놓은 다리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원래 길이 920m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였는데, 현재는 22개 아치 중 4개만 남아 있다. 느릿느릿 아비뇽 역사지구를 걷다가 지칠 즈음 교황청 바로 뒤편 골목에 있는 5성급 호텔 라 미랑드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쉬어가도 좋다. 14세기 추기경의 궁전이었던 곳을 새 단장한 호텔로,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과 살롱 스타일의 카페가 있다. 19세기풍의 키친에서는 호텔 셰프가 진행하는 쿠킹 클래스가 열린다. 아비뇽 구시가를 걷다 보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라 디빈 코메디(La Divine Comédy)’를 만난다. 프로방스의 명물인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거진 정원을 거닐며 산책할 수 있다. ‘라 디빈 코메디’는 이탈리아 대문호 단테의 ‘신곡(神曲)’이다. 이 정원을 걷다 보면 단테가 여행했던 천국과 지옥의 진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리라.●교황의 와인, 샤토네프뒤파프 “철커덩!” 아비뇽에서 북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언덕 마을인 ‘샤토네프뒤파프(Châteauneuf-du-Pape)’다. 절반쯤 무너져 내린 성 앞에서 만난 마리 조제 씨(오랑주 샤토네프뒤파프 관광사무소)는 손에 둥근 손잡이가 있는 고색창연한 열쇠를 들고 있었다. 그녀가 굳게 잠긴 성문 구멍에 열쇠를 밀어넣자 붉은색이 칠해진 나무 문이 열렸다. 14세기 교황의 별장 안으로 타임슬립을 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성은 원래 4개의 탑과 연회장, 화려한 장식이 있는 방이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교황이 여름에 이 성에 올 때는 100∼200여 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왔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했지요.”론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인 ‘샤토네프뒤파프’는 교황(Pape)의 새로운(Neuf) 성(Château)이라는 뜻이다. 아비뇽에서 두 번째 교황인 요한 22세가 여름 별장으로 지은 궁전이었다. 주변의 포도밭은 교황 전용 포도주를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됐다. 그러나 교황의 별장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폭파시켜 북쪽 절반이 파괴된 채 텅빈 폐허로 남아 있다. 주변 포도밭을 걸어 보니 밭에 감자만 한 둥글둥글한 차돌이 가득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비뇽으로 유유히 흘러 지중해로 가는 론강을 따라 알프스에서 쪼개진 돌들이 이곳에서 자갈 마당을 이뤄 놓은 것이다. 작은 몽돌이 아니라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공룡알 해변’에서나 볼 수 있는 큼직한 차돌이었다. ‘갈레 룰레(Gallet Roulet)’라고 불리는 이 돌들은 낮에 품은 프로방스의 강렬한 햇볕을 한밤까지도 유지하며, 반사열을 나무에 전달한다고 한다. 이렇듯 샤토네프뒤파프는 돌멩이가 포도를 익히는 특이한 토양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시라 등 13가지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드는 샤토네프뒤파프 지역의 최고급 와인은 대를 이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샤토 드 라 가르딘(Château de la Gardine)’도 그중 하나다. 본래 교황청 소유였던 포도밭을 가스통 브루넬이 1945년 구입하면서 라 가르딘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초창기 선조들의 얼굴과 이름을 넣은 ‘가스통 필리프(Gaston Philippe)’와 ‘리모르텔(L’Immortelle)’은 수령 60년 이상의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엄선해서 만든다고 한다. 리모르텔의 라벨은 와인 메이커의 친구 예술가가 그려준 그림인데, 안타깝게도 이 화가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와인메이커 파트리크 브뤼넬 씨는 “완전 수작업으로 와인을 만드는 리모르텔은 친구를 기리기 위해 ‘불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고대 로마의 도시, 오랑주샤토네프뒤파프에서 북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오랑주는 고대 로마 유적의 보고다. 오랑주에 진입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기원전 49년에 세워진 로마시대 개선문이다. 높이 18m, 폭 19m, 두께 9m의 이 개선문은 세 개의 아치로 구성돼 있다. 개선문에서 빅토르 위고 거리를 계속 걸어가 구시가지를 지나면, 오랑주의 명물인 고대극장이 나타난다. 이 고대극장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 지어진 것으로,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매년 7∼8월에 열리는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의 주요 무대다. 약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극장이다. 무대 전면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조상이 내려다보는 돌벽(높이 38m, 가로 103m)이 있어 객석 어디에서나 풍요한 반사 음향을 들려준다.글·사진 아비뇽=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남 담양의 양곡수매창고를 개조한 문화예술공간 ‘담빛예술창고’에는 국내 유일의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높이 4m, 폭 2.6m의 오르간 제작에는 담양의 명물인 대나무 700여 개가 쓰였다. 2015년 첫선을 보인 이 악기는 일반 파이프 오르간에 비해 더 따뜻하고 아늑한 소리가 난다고 한다. 주말마다 열리는 연주회에서 높은 천장을 가진 내부 공간을 울리는 오르간 소리는 담양 사람들에게 최고의 힐링이 되고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날아오르는 새의 섬.’ 전남 신안군 비금도(飛禽島)는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펼친 큰 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안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그림산의 절경과 끝없는 명사십리 해변으로 유명한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가 처음 만난 섬’ ‘샴페인의 섬’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금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전남 목포 KTX역에서 차를 타고 천사대교를 건너니 암태도 남강선착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차를 싣고 페리호를 타면 50분 만에 비금도에 도착한다. 해변이 4.2km에 이르는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을 차를 타고 달릴 수 있을 만큼 눈과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해변이다. 또한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하누넘 해변’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인증샷을 남기는 명소다. 비금도를 가로지르는 그림산과 선왕산은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다도해의 섬들이 몽환적으로 떠 있고, 염전 위로 붉은 노을이 진다. 천혜의 자연이 살아 있어 어느 곳을 바라봐도 힐링이 되는 섬이다. 그런가 하면 알파고와 대결했던 세계적인 바둑 명인 이세돌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비금도 해변이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172년 전 이 섬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관리들이 샴페인과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첫 만남을 가졌던 스토리 때문이다. 1851년 4월 2일. 프랑스의 고래잡이선 나르발호가 비금도 모래 해변 바위섬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프랑스 북부 르아브르에서 출항한 나르발호는 고래를 찾아 대서양, 인도양, 남태평양을 넘어 한국까지 와 신안 앞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바다에는 서양의 포경선이 수시로 출몰했는데, 1849년에는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동해에서 독도를 발견해 ‘리앙쿠르섬’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해안에 좌초된 나르발호 선원들은 200년 전 하멜이나 처형된 프랑스 신부처럼 감옥에 갇히거나 목숨을 잃을 것이란 공포에 떨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로 국내에 비밀리에 입국해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대거 처형당해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던 상황. 그래서 9명의 선원이 소형 배를 타고 탈출해 4월 19일 중국 상하이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가 구조를 요청했다.샤를 드 몽티니 영사(1805~1868)는 다음 날인 4월 20일 곧바로 통역관과 영국 상인, 중국인 선원 등 30명을 태운 배를 이끌고 비금도에 있는 선원들을 찾아나섰다. 몽티니 영사는 제주도 대정 해변에 도착해 “난파된 프랑스 배와 선원들을 봤느냐”고 물었지만 모두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북상해 신안 앞바다 섬들을 하나하나 뒤지며 찾아다닌 끝에 비금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비금도에 도착한 몽티니 영사는 걱정과는 달리 선원들이 주민들로부터 쌀 등 음식을 제공받고, 숙소에서 당국의 보호 아래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고 한다. 비변사등록과 일성록에 따르면 조선의 조정에서는 비금도에 난파한 프랑스 선원들이 중국으로 갈 수 있도록 배 2척을 마련해 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몽티니 영사는 5월 2일 비금도를 관할하는 나주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프랑스 선원들을 직접 배에 태워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인 2일. 몽티니 영사와 나주목사는 송별회를 가졌다. 몽티니 영사는 배에서 샴페인과 와인 수십 병을 꺼내 왔고, 조선인들은 도자기와 항아리에 담긴 전통술을 가져왔다. “선실에서 조선의 관료들에게 내일 출발에 필요한 식량을 요청하고 나서, 다시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우리 배의 50여 명의 선원이 다양한 음식이 차려진 작은 테이블(‘소반’을 칭하는 듯)을 각자 앞에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항아리 단지와 잔을 들고 다니면서 술을 따라 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함께 마셨습니다.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식사(pittoresque repas)였습니다.” (몽티니 영사의 보고서)“우리는 몇 시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샴페인과 와인, 독주를 함께 마셨습니다. 나는 한국인들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샴페인과 와인, 특히 도수가 높은 술을 열정적으로 마셨습니다. 조선의 관료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인들에게도 마시고 샴페인 병을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몽티이 영사의 보고서)당시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보낸 보고서에 비금도에서의 송별연 장면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조선인들이 따라 주었다는 항아리 단지에 담긴 술은 막걸리로 보이며, 독주도 마셨다는 말로 보아 소주도 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 사람이 처음 샴페인을, 프랑스 사람이 처음 우리 막걸리와 소주를 마신 공식 기록이다. 몽티니 영사는 보고서에서 비금도를 ‘날아오르는 새의 섬(l’île de l’Oiseau Volant)’이라고 썼다.지난달 2일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서는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옹기로 만든 갈색 주병(酒甁)이었다. 1851년 비금도에서 몽티니 영사가 선물로 받아 본국에 가져갔던 바로 그 술병이었다. 비금도 사건을 연구했던 피에르 에마뉘엘 루 교수(파리7대학)는 “초기에 비밀리에 활동한 프랑스 선교사들이나 개인적으로 표류했던 선원도 있지만,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정부의 외교관으로서 처음으로 조선의 관료와 첫 공식 만남을 가진 사람”이라며 “비금도는 한-프랑스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소”라고 말했다.그는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을 선교사 박해나 병인양요(1866년)로만 기억하는데, 비금도 사건은 난파된 선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양국 관료들이 힘을 합한 인도주의적 만남이었고, 술과 음식을 나눈 문화 교류의 장이었다”며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화합의 장소로 잘 기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몰려오는 예술섬 신안군의 비금도, 도초도, 노대도, 안좌도 등엔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앤터니 곰리 등 세계적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이 들어서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비금도를 한-프랑스 간의 역사적인 첫 만남을 기리는 기념관, 샴페인과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해변 공원 등 한국과 프랑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섬으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금도 명사십리 주변 바닷가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설치 미술가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곰리는 영국 북동부의 작은 탄광 도시였던 게이츠헤드에 220t의 철근을 사용해 ‘북방의 천사’(높이 20m)라는 거대 철제 조각상을 세웠다. 덕분에 한때 탄광촌이었던 이 작은 도시는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명사십리 해변에 세워지는 곰리의 작품은 신안의 명물인 소금 결정체처럼 정육면체 모양의 철근이 모여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포스코가 40억 원어치의 철근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곰리의 작품은 밀물 때는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보기 드문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의 설치미술가 터렐은 노대도에 화성과 목성의 소리를 채집해서 색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국축제’로 유명한 도초도에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엘리아손의 작품이 들어선다. 내년 말까지 연꽃을 닮은 지형의 중심에 수국을 형상화한 엘리아손의 미술관이 들어서고, 주변은 계절마다 다양한 빛깔의 경관농업으로 ‘대지의 미술관’을 형성하게 된다. 안좌도엔 일본의 야나기 유키노리가 설계한 물에 떠 있는 ‘플로팅 뮤지엄’이 들어선다.●에마뉘엘 루 교수 인터뷰 비금도에서의 한불간의 첫 만남을 연구한 교수는 피에르 에마뉘엘 루 파리7대학 교수다. 그는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에서 샤를르 드 몽타니 영사의 보고서를 찾아내고, 몽타니 영사가 조선에서 가져온 도자기 술병도 확인했다. 그는 2012년에 펴낸 ‘십자가, 고래, 대포(La Croix, La Baleine, Et Le Canon)’라는 책에서 19세기 중엽 한불관계 초기 프랑스의 대조선 정책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다음은 에마뉘엘 루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 ― 신안 비금도 사건을 연구하시게 된 계기는. “제가 2005년 프랑스 파리 이날코대학 한국학과 석사과정을 다닐 때 초기 한불 관계와 외교수립 과정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 지도교수는 ‘병인양요’를 중심으로 연구해보라고 조언해줬다. 그런데 교수님이 한불수교가 병인양요만으로 이뤄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 전후로 뭔가 여러가지 한불간의 접촉이 있지 않았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1840~50년대 한국 관련 문헌을 다 뒤져봐야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 해무부 고문서관, 파리 외방전교회에 수없이 찾아가 자료를 찾아봤다. 흥미롭게도 제가 파리 외무부 고문서관에서 가장 먼저 요청한 자료가 바로 비금도 관련 자료였다.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에서 19세기 중엽 조선 관련 자료는 주로 중국 문서철이나 일본 문서철에 포함돼 있다. 프랑스 영사나 외교관들이 중국, 일본에 주재해 있었고 조선에는 주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50년대 중국 상하이 영사관 자료를 뒤지는데, 가장 먼저 비금도에 난파했던 ‘나르발(Narval)호’ 사건 관련 문건이 나왔다. 행운이었다.” ―그전에도 비금도에 프랑스 배가 난파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나? “전혀 몰랐다. 상하이 영사관 문서를 보다가 처음 알게 됐다.” ―나주 목사가 선물했던 도자기 술병이 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 있었다는 건 알았나? “그 때는 몰랐다. 2012년도에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대조선 정책 연구를 주제로한 석사논문을 개편해서 프랑스에서 ‘십자가, 고래, 대포(La Croix, La Baleine, Et Le Canon)’라는 책을 펴냈다. 책을 낼 때만해도 도자기의 존재를 몰랐다. 그런데 2015년 프랑스 세브르국립도자기 박물관에서 열린 한국관련 전시회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당시 19~20세기 한국 도자기와 물품이 전시됐었다. 몽티니 영사는 1856년 잠깐 프랑스로 돌아왔는데, 당시 본국에 전달했던 물품 중에 비금도에서 가져온 술병이 포함돼 있었다. 이 도자기는 창고에 수장돼 있었는데, 이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옹기병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는데, 저만 그 앞에서 10분 이상 바라보았다. 이 병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티니 영사가 비금도에 가게 된 과정은. “1851년 4월2일 29명이 탄 나르발호가 비금도에 난파됐다. 프랑스 선원 29명은은 조선정부가 외국인(프랑스인)을 체포하거나, 처형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서 9명의 선원들이 작은 고래잡이용 배를 타고 다시 황해를 건너 상하이로 가서, 프랑스 영사관에 구조요청을 했다. 선원들은 몽티니 영사에게 ‘포경선 나르발호가 조선 땅에서 난파했는데, 우리 20명의 선원들이 아직 남아 있다. 구해달라’고 말했다. 몽티니 영사는 바로 다음날 배를 구해 영사관 통역관 1명, 영국 상인 1명, 포경 선원의 친척 1명, 나르발호 선원 5명, 중국인 20여 명 등 총 30명 정도를 태우고 비금도로 향했다. 배는 ‘록샤(Lorcha)’라고 불리던 중국과 서양 스타일이 혼합된 배였다. 그런데 문제는 몽티니 영사를 비롯한 프랑스 사람들은 비금도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난파된 배에서 돌아온 9명의 선원들이 비금도를 ‘티오상(Tio-sang)’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Tio-sang’이란. “19세기 한국어의 발음을 생각하면 조선을 ‘됴선’이라고 표기한다. 그래서 ‘됴선’을 들리는 대로 ‘티오상(Tio-sang)’이라고 한 것이다. 포경선 선원들이 비금도에 난파한 직후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비금도 사람들이 ‘조선이다. 조선 땅이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상하이에서 출발한 몽티니 영사는 처음에 제주도 서남쪽 대정해안에 도착했다. 이 곳은 200년 전에 ‘하멜표류기’를 쓴 네덜란드 상인 하멜이 표류했던 지점과 거의 비슷하다. 중국 상해에서 배를 타고 가면 해류와 바람 때문에 항상 제주도에 먼저 도착한다고 한다. 몽티니 영사는 제주도에서 ‘티오상이 어딘 줄 안냐? 난파한 프랑스 배를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모른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서 몽티니는 다시 배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고 며칠 있다가 전라도 신안의 다도해에 도착했다. 몽티니는 신안의 섬 하나하나를 뒤지면서 난파된 선원들을 봤느냐고 수소문했고, 마침내 비금도에서 선원들을 발견했다. 상해에서 출발한지 거의 2주일 만이었다. 비금도가 큰 섬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현지 주민들과 관료들이 찾아와 구경하게 되고, 만나게 됐다. 몽티니 영사는 5월1일에 비금도에 도착하고, 5월 3일에 상해로 돌아갔다. 사실은 사흘도 안되는 짧은 방문이었다.” ―몽티니는 한국인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나. “몽티니는 통역관을 데리고 갔지만, 그들은 중국어만 할 줄 알았지 한국어를 몰랐다. 대화를 할 때는 주로 그림이나 필담으로 했다.” ―이 사건은 어떻게 기록돼 있나. “몽티니 영사 보고서는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것이다. ‘4월 중순에 포경선 선원이 상해에 도착했고, 제가 아주 용감하게 조선땅에 가서 선원들을 구조해왔다’는 내용이다. 관련 한국측 자료도 있다. 나주목사가 한양으로 보낸 장계 같은 것이다. 한국측 자료를 보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뭐하러 왔는지도 몰랐고, 그냥 이국인(異國人)이라고 표현한다. 고래잡이 어선이라는 점도 잘 몰랐다. 다만 조선은 난파한 이국인들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계속 이야기하니까, 이 사람들을 중국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배 2척이 필요하다는 장계를 조정으로 올렸다. 한양의 조선 조정에서는 비변사 회의를 열어 ‘이국인들에게 배를 마련해서 돌려보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조정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날에 몽티니가 비금도에 도착했다. 그래서 조선에서 배를 마련하기 전에 몽티니가 타고 온 배를 타고 29명의 선원들이 다시 상해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1851년에 영국 잡지에서도 비금도 사건 관련 기사가 실렸다. 당시 상하이에서 발행된 ‘더 노스 차이나 헤럴드(The North-China Herald)’라는 영문 잡지가 있었다. 몽티니 영사랑 배를 타고 비금도에 같이 간 영국 상인이 아주 길게 연재한 글이다. 비금도 사건 관련 기록은 프랑스 외교문서, 영국 잡지 기사, 조선의 공식문서로 남아 있다.” ―양국이 샴페인과 막걸리를 마시고 만찬하게 된 과정은? “몽티니 영사와 나주 목사는 5월 2일에 만나서 선원들과 관료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가 조선인들에게 샴페인을 주었고, 조선인들도 술을 가져왔다고 한다. 지난 5월2일 프랑스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샴페인과 막걸리의 만남’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몽티니 보고서를 보면 ‘샴페인과 와인, 리큐어(Liqueurs Fortes)’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한 선원 50여명이 각자 음식이 차려진 작은 테이블(소반) 앞에 앉았고, 그 사이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항아리에 든 술을 잔에 따라주며 마셨다고 돼 있다.”―술은 몇 병이나 마셨나. “19세기 다른 서양인들이 쓴 조선 관련 보고서를 보면 ‘조선인들은 고래처럼 술을 마신다’라는 기록이 있다. 술고래다. 아마도 비금도에서도 술을 많이 마셨을 것이다. 몽티니 영사는 보고서에서 ‘il est rare de voir des hommes boire comme les Coréens’(한국인들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볼 수 없다). ils sont passionnés pour les vins et surtout les spiritueux(한국인들은 와인과 독주에 대한 열정이 넘쳐난다). 조선의 상관(관료)들은 자기들이 술을 마실 뿐 아니라, 하인들에게도 술을 주고 가져가도록 했다‘고 썼다. 그날 몇시간 동안 그림같은(pittoresque) 만찬을 즐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술을 마시고 난 뒤 분위기는 어땠나. “19세기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의 다른 기록을 보면 ‘조선인들은 처음엔 우리랑 얘기를 안하려고 했는데, 술을 가져다 주니까 서로 말이 통하며 일이 잘 풀렸다’는 기록이 있다. 비금도에서 현지 관료들은 몽티니가 조선과 통상 요구를 하거나 선교를 하러 온 게 아니고, ‘사람들을 구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아마 더 쉽게 대화하게 됐다. 그래서 몽티니가 5월1일 비금도에 도착하고, 다음날인 2일 저녁에 술을 마시게 됐다. 이게 마지막 만찬이었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화려한 송별파티였다.” ―당시는 천주교 박해로 프랑스 신부들을 죽이기도 했는데 왜 그냥 순순히 추방하고 중국으로 다시 돌려보냈나. “사실 19세기 서양인들은 조선 앞바다에서 난파하게 되면, 200여 년전 ‘하멜표류기’의 주인공인 하멜처럼 감옥에 갇히고, 유배생활을 하거나, 선교사들처럼 처형당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몽티니도 그런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빨리 한국에 가서 조선에 난파한 우리 선원들을 구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조선 왕조 이전, 아마 고려시대 이전부터도 조선(중국, 일본, 동남아)엔 ‘표류민 송환 제도’가 있었다. 외국 표류민이 발견되면 잘 대접해서 보호한 뒤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제도다. 조선 후기에도 해마다 신안 앞바다에는 중국이나 일본, 서양에서 온 배가 난파하거나 표류하는 사람이 많았고, 대부분 표류민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서양인들도 마찬가지다. 1840~50년대에는 조선 앞바다에는 나르발호 뿐만 아니라 수백척의 서양 고래잡이 포경선이 활동했다. 당시 가끔 포경선이 조선의 앞바다에 난파하거나 표류하면, 정부에서 그 사람들을 돌려보낸 것으로 나온다. 당시 서양의 상선이 표류할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만약 서양인이 통상이나 선교를 하러 왔다고 말하면 당연히 쉽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서양인들은 두가지로 불렸다. 먼저 통상이나 선교를 하러 온 서양인을 ‘양적, 양추’라고 부른다. 서양 오랑캐라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은 입항을 거절한다. 그러나 포경선원이라든가 표류하는 서양인들은 그냥 ‘이양선(異樣船)을 타고 온 이국인(異國人)’이라고 불렀다. 이국인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말이 아니고 중성적인 표현이다. 잘 대접해주고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몽티니는 천주교 선교사가 아니었다. 그는 나주 목사나 현지 관리에게 천주교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사람들을 구하러 왔다고 말했다.” ―당시 조선 앞바다에 서양의 포경선은 얼마나 많이 왔었나. “19세기 포경업은 미국인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에 유럽의 프랑스, 독일인이었다. 18세기~19세기 초까지는 주로 대서양에서 고래잡이를 했다. 그런데 고래가 줄어들자 인도양으로 옮겼고, 1840년대까지 뉴질랜드 부근 남태평양에서 고래를 잡았다. 이후 북태평양쪽으로 올라가게 된다. 1840~50년대에는 한국 동해와 일본 동쪽의 태평양, 오오츠크해에서 고래를 많이 잡았다. 한국의 서해 흑산도 인근에서도 고래를 잡았다. 1840년대와 50년대에는 나르발호 뿐 아니라 다른 서양의 포경선들도 한국과 일본 앞바다에서 표류하는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나발호는 어떤 배였나. “당시 프랑스 포경선들은 전부 프랑스 북부 항구인 르아브르에서 출항했다. 당시 한번 고래잡이 출항을 하면 3년 간 전세계를 돌도 귀항하곤 했다. 대서양을 지나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인도양에서 중국, 한국, 일본, 오오츠크해를 지나 태평양 건너 하와이, 남미 칠레를 지난 뒤 다시 대서양을 건너서 르아브르로 돌아왔다. 1849년에 독도를 발견해 ‘리앙쿠르섬’이라고 이름붙인 리앙쿠르호도 프랑스 포경선이다. 리앙쿠르호는 1847년에 르아브르에서 출항해 3년 여 동안 세계를 돈 뒤 1850년에 다시 르아브르로 돌아왔다.” ―나르발호가 비금도에 난파했던 정확한 장소는 어디인가. “비금도 서해안 쪽이다. 비변사등록,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등 한국 측 자료를 보면 비금도 서면 율내촌이라고 나온다. 조선시대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찾아보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비금도에 가서 현지 주민들과 이야기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비금도에서의 첫 만남이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에서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프랑스와 조선이 수교를 맺기도 전, 프랑스 외교관이 조선 땅에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방문했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전에도 조선땅에 들어간 프랑스인은 있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제일 먼저 비밀리에 입국했었고, 프랑스 해군장교도 조선 앞바다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프랑스 외교관으로서는 몽티니 영사가 처음이다. 특히 몽티니 영사는 마지막 날에 지역을 관할하는 나주 목사를 만남으로써 공식적으로 양국의 관료가 만나게 됐다.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이라고 생각할 때는 주로 선교사 박해, 아니면 병인양요같은 전쟁을 생각한다. 그래서 한불 관계의 첫만남은 갈등으로 시작됐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사실은 비금도 포경선의 표류사건을 통해서 한불관계 시작은 갈등보다는 인도주의적인 만남이었고, 음식과 술이 있는 문화교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비금도 사건이 전쟁이나 박해같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화합의 자리로 끝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후 몽타니 영사의 행보는. “몽티니 영사는 1851년 이후로 당시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 3세와 외무장관에게 해마다 프랑스와 조선이 수교를 맺어야 한다고 보고서를 보냈다. 프랑스 포경선원과 선교사들의 안전과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을 개항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몽티니 영사의 조선과의 수교협상 요구를 계속 무시했다. 당시 나폴레옹 3세나 외무부 장관에게 한반도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주된 관심사는 중국, 일본이었고, 1850년대 말에는 주로 베트남의 개항에 관심이 더 컸다.”신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날아오르는 새의 섬.’ 전남 신안군 비금도(飛禽島)는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펼친 큰 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안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그림산의 절경과 끝없는 명사십리 해변으로 유명한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가 처음 만난 섬’ ‘샴페인의 섬’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금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 전남 목포 KTX역에서 차를 타고 천사대교를 건너니 암태도 남강선착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차를 싣고 페리호를 타면 50분 만에 비금도에 도착한다. 해변이 4.2km에 이르는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을 차를 타고 달릴 수 있을 만큼 눈과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해변이다. 또한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하누넘 해변’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인증샷을 남기는 명소다. 비금도를 가로지르는 그림산과 선왕산은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다도해의 섬들이 몽환적으로 떠 있고, 염전 위로 붉은 노을이 진다. 천혜의 자연이 살아 있어 어느 곳을 바라봐도 힐링이 되는 섬이다. 그런가 하면 알파고와 대결했던 세계적인 바둑 명인 이세돌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비금도 해변이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172년 전 이 섬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관리들이 샴페인과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첫 만남을 가졌던 스토리 때문이다. 1851년 4월 2일. 프랑스의 고래잡이선 나르발호가 비금도 모래 해변 바위섬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프랑스 북부 르아브르에서 출항한 나르발호는 고래를 찾아 대서양, 인도양, 남태평양을 넘어 한국까지 와 신안 앞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바다에는 서양의 포경선이 수시로 출몰했는데, 1849년에는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동해에서 독도를 발견해 ‘리앙쿠르섬’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해안에 좌초된 나르발호 선원들은 200년 전 하멜이나 처형된 프랑스 신부처럼 감옥에 갇히거나 목숨을 잃을 것이란 공포에 떨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로 국내에 비밀리에 입국해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대거 처형당해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던 상황. 그래서 9명의 선원이 소형 배를 타고 탈출해 4월 19일 중국 상하이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가 구조를 요청했다. 샤를 드 몽티니 영사(1805∼1868)는 다음 날인 4월 20일 곧바로 통역관과 영국 상인, 중국인 선원 등 30명을 태운 배를 이끌고 비금도에 있는 선원들을 찾아나섰다. 몽티니 영사는 제주도 대정 해변에 도착해 “난파된 프랑스 배와 선원들을 봤느냐”고 물었지만 모두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북상해 신안 앞바다 섬들을 하나하나 뒤지며 찾아다닌 끝에 비금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비금도에 도착한 몽티니 영사는 걱정과는 달리 선원들이 주민들로부터 쌀 등 음식을 제공받고, 숙소에서 당국의 보호 아래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고 한다. 비변사등록과 일성록에 따르면 조선의 조정에서는 비금도에 난파한 프랑스 선원들이 중국으로 갈 수 있도록 배 2척을 마련해 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몽티니 영사는 5월 2일 비금도를 관할하는 나주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프랑스 선원들을 직접 배에 태워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인 2일. 몽티니 영사와 나주목사는 송별회를 가졌다. 몽티니 영사는 배에서 샴페인과 와인 수십 병을 꺼내 왔고, 조선인들은 도자기와 항아리에 담긴 전통술을 가져왔다. “선실에서 조선의 관료들에게 내일 출발에 필요한 식량을 요청하고 나서, 다시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우리 배의 50여 명의 선원이 다양한 음식이 차려진 작은 테이블(‘소반’을 칭하는 듯)을 각자 앞에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항아리 단지와 잔을 들고 다니면서 술을 따라 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함께 마셨습니다.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식사(pittoresque repas)였습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샴페인과 와인, 독주를 함께 마셨습니다. 나는 한국인들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샴페인과 와인, 특히 도수가 높은 술을 열정적으로 마셨습니다. 조선의 관료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인들에게도 마시고 샴페인 병을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당시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보낸 보고서에 비금도에서의 송별연 장면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조선인들이 따라 주었다는 항아리 단지에 담긴 술은 막걸리로 보이며, 독주도 마셨다는 말로 보아 소주도 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 사람이 처음 샴페인을, 프랑스 사람이 처음 우리 막걸리와 소주를 마신 공식 기록이다. 몽티니 영사는 보고서에서 비금도를 ‘날아오르는 새의 섬(l’île de l’Oiseau Volant)’이라고 썼다. 지난달 2일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서는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옹기로 만든 갈색 주병(酒甁)이었다. 1851년 비금도에서 몽티니 영사가 선물로 받아 본국에 가져갔던 바로 그 술병이었다. 비금도 사건을 연구했던 피에르 에마뉘엘 루 교수(파리7대학)는 “초기에 비밀리에 활동한 프랑스 선교사들이나 개인적으로 표류했던 선원도 있지만,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정부의 외교관으로서 처음으로 조선의 관료와 첫 공식 만남을 가진 사람”이라며 “비금도는 한-프랑스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소”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을 선교사 박해나 병인양요(1866년)로만 기억하는데, 비금도 사건은 난파된 선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양국 관료들이 힘을 합한 인도주의적 만남이었고, 술과 음식을 나눈 문화 교류의 장이었다”며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화합의 장소로 잘 기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몰려오는 예술섬 신안군의 비금도, 도초도, 노대도, 안좌도 등엔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앤터니 곰리 등 세계적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이 들어서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비금도를 한-프랑스 간의 역사적인 첫 만남을 기리는 기념관, 샴페인과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해변 공원 등 한국과 프랑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섬으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금도 명사십리 주변 바닷가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설치 미술가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곰리는 영국 북동부의 작은 탄광 도시였던 게이츠헤드에 220t의 철근을 사용해 ‘북방의 천사’(높이 20m)라는 거대 철제 조각상을 세웠다. 덕분에 한때 탄광촌이었던 이 작은 도시는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명사십리 해변에 세워지는 곰리의 작품은 신안의 명물인 소금 결정체처럼 정육면체 모양의 철근이 모여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포스코가 40억 원어치의 철근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곰리의 작품은 밀물 때는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보기 드문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의 설치미술가 터렐은 노대도에 화성과 목성의 소리를 채집해서 색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국축제’로 유명한 도초도에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엘리아손의 작품이 들어선다. 내년 말까지 연꽃을 닮은 지형의 중심에 수국을 형상화한 엘리아손의 미술관이 들어서고, 주변은 계절마다 다양한 빛깔의 경관농업으로 ‘대지의 미술관’을 형성하게 된다. 안좌도엔 일본의 야나기 유키노리가 설계한 물에 떠 있는 ‘플로팅 뮤지엄’이 들어선다.글·사진 신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남부 아비뇽 북쪽에 있는 오랑주에서는 매년 7∼8월에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린다. 축제 장소는 오랑주 고대 극장이다. 기원후 1세기경 로마 옥타비우스 황제가 세운 극장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869년 시작된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축제다. 지름 103m, 높이 37m에 약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극장이다. 전면에는 두께 1.8m의 벽면이 있어 영상을 쏘아 무대 효과를 낼 수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관문인 후쿠오카(福岡)에는 두 개의 명물이 있다. 높이 234m로 일본 해변에 세워진 타워로는 가장 높은 ‘후쿠오카 타워’와 일본 최초로 세워진 개폐식 돔구장 ‘후쿠오카 PayPay 돔’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후쿠오카에 도착할 즈음 하카타만의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 근처에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원형 돔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돔구장 바로 옆에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 ‘BOSS E·ZO 후쿠오카’가 새로운 명소로 등장해 현지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빅보이’ 이대호 선수가 뛰던 일본 프로야구(NPB)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의 후쿠오카PayPay돔은 1993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지어진 개폐식 돔구장이다. ‘보스 이조 후쿠오카’는 경기가 없을 때에도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이다. 지상 40m 높이에서 건물 벽면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는 약 100m의 튜브형 미끄럼틀, 스마트폰으로 숲 속 동물과 물고기를 수집할 수 있는 환상의 디지털 아트세계, 직접 배팅과 수비, 주루 플레이를 체험해볼 수 있는 익사이팅한 야구 체험존까지…. 이 건물에서 요즘 가장 인기있는 공간은 ‘팀랩 포레스트(teamLab Forest)’다. 한 때 세계적 열풍을 불러왔던 ‘포켓몬GO’의 AR(증강현실)을 업그레이드해 재미와 학습을 겸비한 환상적인 엔터테인먼트다. 내부로 들어가면 면 화려한 나무가 울창한 숲과 연못이 펼쳐지는데, 코끼리나 고래, 사슴을 닮은 신기한 동물들이 숲 속을 거닐고 있다. 스마트폰에 전용앱을 깔면 본격적인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화살을 쏘아 동물을 잡고, 바다에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다. 벽에 있던 동물이 화면으로 들어오는데 동물의 특징과 생태를 설명해주는 문구가 제공된다. 잡은 동물은 다른 숲에 가서 놔줄 수도 있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컬렉션을 완성하다보면 한두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또다른 방(Immersive Museum FUKUOKA)으로 가면 모네, 고흐,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몰입형 전시(9월 10일까지)도 펼쳐진다. 올림픽경기장을 비롯해 야구장, 축구장 등 거대한 스타디움을 지을 때 가장 큰 우려는 천문학적인 건설비용과 사후 운영 비용이다.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거나 지자체의 골칫덩이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인수한 이 구단은 좌석부터 건물 이름, 시구자까지 기업마케팅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한다. 돔구장은 거대한 미식체험장이자 콘서트장이다. 코로나 기간에는 아예 돔구장 옆에 야구경기가 없어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지었다. 건물 내부의 중심에는 일본 프로야구의 레전드인 오 사다하루(83) 소트트뱅크호크스 회장에게 헌정된 베이스볼 뮤지엄이 있다. ‘왕정치(王貞治)’로 잘 알려진 그는 세계 최다 기록인 868개의 홈런을 친 레전드 선수다. 뮤지엄에 들어가면 그가 선수시절 쓰던 배트와 글러브 뿐 아니라 아라카와 코치와 함께 검을 들고 허공을 가르며 외다리 타법을 연마했던 방까지을 재현해놓았다. 남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공간은 ‘89PARK’다. 실제 타격과 수비, 주루를 하면서 야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160km의 구속이 얼마나 빠른지 심판석과 선수석에서 체감해보니 비명이 절로 나온다. 내가 투수가 되어 공을 던져보며 구속을 확인해보는 코너도 있다. 와인드업을 해서 던져보니 처음에는 70km, 나중에는 94km가 나왔다. 사력을 다해 던졌는데도 100km를 넘지 못했다. 두산베어스 전 프로야구 선수 유희관이 120km대 직구로 ‘느림의 미학’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도 얼마나 빠른 것인가. 더 던지면 어깨가 아플 것 같아 100km를 깨겠다는 욕심은 접어야 했다. 대신 포수를 향해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깨는 제구력 게임을 즐겼다. 다음은 타격이다. 스크린 골프처럼 스크린 야구를 펼치는 곳이다. 언더핸드 투수가 던지는 공이 화면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정타를 맞추려고 힘껏 휘둘렀는데 장타가 나오지 않았다. 공의 약간 아랫부분을 맞춰야 공이 뜬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윙을 수정하니 ‘빵’ ‘빵’하며 장타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배트가 공에 제대로 맞는 순간 화면에서 빛이 번쩍하며 공이 백스크린 상단을 맞췄다. 짜릿한 손맛이다. 뒤에서 바라보던 일본 여성들도 환호성을 질러댔다. 다음으로는 수비 연습. 화면에서 투수가 볼을 던지면 좌우로 움직이는 구멍에서 공이 튀어나온다. 공이 나오는 방향으로 재빠르게 달려가서 글러브로 공을 잡고, 1루수 또는 3루수로 지정된 곳으로 송구를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달려가 전진수비를 해야 시간내에 정확히 송구를 할 수 있다. 실제로 감독이 펑고를 쳐주고 송구하는 훈련을 한 느낌이다. 두 번이나 수비게임을 하고 나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다음에는 주루와 견제 연습이다. 출발신호가 들리면 실제 홈에서 1루까지 거리를 영상 속 선수와 달리기를 겨룬다. 견제는 1루에서 2~3m 정도 리드를 하고 있다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면 재빨리 귀루하는 게임이다. 투수의 동작을 유심히 보고 순발력을 다해 귀루해야 세이프를 받을 수 있다. 정말 야구장에서 공격과 수비, 주루의 모든 것을 체험해볼 수 있는 3차원 게임이다. 운동을 하며 놀다가 출출해지니 3층 푸드홀로 향했다. 라멘, 꼬치, 스시 등을 파는 맛집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MLB카페’다. 미국 메이저리그 공인 라이센스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대형 TV화면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팀의 김하성 선수 출전 경기 생중계를 보면서 맥주와 커피,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입구에는 오타니, 트라웃 등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진 공식 굿즈를 구입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 펍에서 축구경기를 보는 것처럼, 메이저리그 야구를 즐기면서 햄버거와 스파게티, 스테이크를 먹는 곳이다. 음료 중에는 불량식품처럼 형광색 초록빛이 나는 상큼한 멜론티가 눈길을 끌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운코 뮤지움'(UNKO Museum FUKUOKA, 9월3일까지 전시)이다. ‘운코’는 한국말로 ‘응아’랑 비슷한 의미다. 똥이 달팽이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쌓여 있는 ‘운코’를 보기만 해도 아이들은 자지러지며 웃어댄다. 전시장 내부에 들어가면 승리를 기원하는 황금색 운코가 놓여 있고, 관람객들은 손에 아이스크림모양의 운코를 들고, 머리에 운코를 단 헤어밴드를 하며 즐거워 한다.분홍색, 노랑색, 연두색 운코가 마카롱 과자나 케익모양으로 놓여 있는 테이블은 공주의 애프터눈 티테이블이다. 커플이 들어가는 운코 러브방, 음악에 맞춰 화면속에서 날아오는 운코를 터뜨리며 춤을 추는 댄스게임방, 바닥에 있는 운코 그림자를 밟으면 총천연색으로 터져나가는 게임방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논다. 전시장 입구에는 변기가 놓여 있다. 소프트뱅크 경기 시구를 위해 이 곳을 찾았던 이대호 선수가 뚜껑을 열고 소변을 보려는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 똥’을 비롯해 수많은 동화책에서 똥을 주제로 한 그림에 아이들이 열광한다. 그러나 똥모양을 귀여운 캐릭터와 게임, 액서세리로 만들어 즐기는 일본의 문화는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옥상에는 돔구장 주변의 바닷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절경(絶景) 3형제’ 놀이기구가 있다. 그 중 ‘쓰리ZO’는 옥상에 복잡하게 설치된 레일에 매달려 탑승자의 무게로 움직이는 아날로그 롤러코스터로, 건물 밖으로 나가는 구간에서는 가속도가 붙어 짜릿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다. ‘스베ZO’는 지상 40m 건물 벽면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100m의 튜브형 미끄럼틀이다. 후쿠오카 여행을 간다면 ‘후쿠오카 PayPay돔’ 투어(약 1시간)를 한 뒤 ‘보스 E·ZO후쿠오카’에서 음식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으로 걸어가 ‘후쿠오카 타워’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현지에서는 보스 이조 후쿠오카 놀이시설의 티켓을 따로따로 구입해야 하는데, 5가지 어트랙션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펀티켓을 ‘디스커버리 큐슈(Discovery Kyusu)’에서 미리 구매하면 싸고 편리하다. 또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경기 할인티켓도 일본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10~20%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후쿠오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 7일 밤 9시반. 일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의 홈구장인 후쿠오카 PayPay 돔. 9회 초 소프트뱅크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를 4대0으로 꺾고 승리하자 경쾌한 음악이 경기장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경기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어서 돔구장의 천정에서 터져 쏟아지는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불꽃들. 홈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하나비(花火·불꽃놀이)’였다. 지상 68m 높이의 실내 돔구장에서 불꽃쇼가 펼쳐지다니!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었다. 이어서 굉음과 함께 천천히 돔구장의 천정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트모양으로 절반이 열린 돔구장 천정 너머로 힐튼호텔과 후쿠오카의 밤바다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돔을 한번 개폐하는 데 드는 전기료는 한화로 약 1000만 원 가량. 호크스팀이 승리를 했을 때 불꽃놀이와 함께 홈팬들을 위한 화끈한 서비스인 셈이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빅보이’ 이대호(41) 선수가 2014년부터 4번타자로 뛰며 2년 연속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팀이다. 이대호는 2015년에 MVP까지 거머쥐었다. 이대호는 지난달 28일 다시 후쿠오카 돔구장을 찾아 열띤 환호 속에 시구행사를 갖기도 했다. 1993년 4월에 문을 연 후쿠오카 PayPay돔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90년 개장한 캐나다의 로저스 센터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개폐식 돔구장이다. 우리나라도 야구장에서 즐기는 치맥이 유명하지만, 후쿠오카 돔구장에는 규슈 지방의 맛집이 빼곡하다. QR코드를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좌석까지 배달해주기도 한다. 소프트뱅크 호크스팀의 선수와 감독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도시락도 판다. 감독의 도시락이 가장 비쌀 줄 알았는데 아니다. 감독과 코치 얼굴이 들어간 도시락은 2000엔인 반면, 4번타자 호타준족 외야수 야나기타 유키의 도시락은 2300엔으로 가장 비싸다. 10kg짜리 통을 등에 지고 다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손짓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무릎꿇고 호스를 꺼내내 컵에 생맥주를 따라준다. 미식(美食)을 즐기며 야구경기와 치어리더, 마스코트의 다양한 쇼까지 즐기는 야구장은 거대한 디너쇼 극장을 방불케했다. 일본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구단이 홈구장을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것은 후쿠오카 PayPay돔 밖에 없다. 한국계 일본인 기업인인 손정의가 인수한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홈구장을 직접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좌석을 다양하게 변형시켜 기업 스폰서들에게 마케팅용으로 판매해 재정자립도는 높였다. 야수의 플레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코카콜라석은 그물망이 없어 헬멧을 쓰고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해변의 의자처럼 파라솔 밑에서 누워서 볼 수 있는 좌석도 있고, 명란젓 회사와 증권사가 협찬해 독특하게 꾸민 좌석도 있다. 매일매일의 경기도 기업 스폰서의 이름을 붙여주며, 시구는 연예인이 주로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그날의 스폰서 기업의 회장이나 사원대표가 시구를 한다. 후쿠오카 돔구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장애인석이었다. 구석에 마지못해 만들어놓은 좌석이 아니라 내야가 잘 보이는 위치에 널찍한 테이블과 좌석이 함께 있었다. 의자를 접거나 옮길 수 있어 휠체어 전동차를 탄채 장애인도 야구를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배려한 점이 돋보였다. 4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후쿠오카 페이페이돔은 관광객들을 위한 돔투어 프로그램이 잘 돼 있다. 파리, 베를린의 오페라극장이나 뉴욕, 런던의 뮤지컬 극장에 가면 백스테이지 투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돔투어는 ‘돔만끽 코스’와 ‘어드밴처 코스’로 나뉜다. ‘돔만끽 코스’는 투수들이 워밍업하는 불펜 연습장, 선수들의 락커룸, MVP시상식이나 입단식이 열리는 기자회견장, 경기장의 잔디를 밟아보고 선수들의 타격, 수비연습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코스로 이뤄져 있다. 홈플레이트 근처에 있는 원정팀 덕아웃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선수와 감독이 대기하는 곳을 축구에서는 벤치라고 하는데 야구에서는 왜 ‘덕아웃(dug out)’이라고 부를까? 해설해주는 가이드가 이렇게 설명한다. “야구에서는 투수의 볼을 포수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에 그라운드보다 약간 낮은 자리에서 감독과 선수들이 대기하는 것이죠. 그래서 ‘덕(dug·파내다)’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선수들이 연습하고 있는 내야의 인조잔디였다. 보통 인조잔디는 선수들이 슬라이딩했을 때 화상을 입을 우려가 있고, 비가 올 경우 미끄럽다는 단점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천연잔디를 선호한다. 그런데 소프트뱅크 홈구장의 인조잔디를 자세히 보니 천연잔디와 거의 다름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구장 관계자는 옛날 버전의 짧은 인조잔디와 리모델링한 현재의 인조잔디를 비교해주는 모형을 갖고 설명했다. ‘필드터프’로 불리는 현재의 롱파일 인조잔디는 길이가 약 6.3mm로 길었다. 잔디는 4.4mm 높이의 푹신한 소재가 감싸고 있는데, 위에 노출된 부분은 천연잔디처럼 부드럽게 이리저리 눕게되는 형태였다. 어드밴처 코스를 택하면 돔의 천장까지 올라가볼 수 있다. 투어를 신청한 관람객들에게는 안전을 위해 플래시가 장착된 헬멧과 목장갑을 나눠준다. 이어서 ‘백스크린’ 뒤쪽의 좁은 계단 통로를 올라간다. 후쿠오카 PayPay돔의 백스크린인 ‘호크스비전’은 점보제트기 3대를 세워 둔 것과 같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계단을 타고 지상 35m 지점에 올라서니 돔 구장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곳에서 지상 68m 돔구장 천정으로 올라가는 계단(캣워크)이 있다. 불꽃놀이 장인이 경기 1시간 전부터 불꽃 장치를 들고 올라가 대기하는 통로다. 장인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천청에 대기하며 불꽃놀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승리를 기원한다고 한다. 1만2000톤 무게의 육중한 지붕이 열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지름 약 21m인 세 장의 지붕이 돔 둘레를 따라 이동하며 전부 열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이다. 면적만해도 5900평이나 되며, 두께 4m에 이르는 지붕 한 장의 무게는 4000톤으로 사람이 천천히 걷는 속도로 움직인다. 평소에는 지붕을 닫은 채 경기를 하다가 날씨가 맑고, 바람이 세게 불지 않는 날, 홈팀이 승리했을 때 뚜껑이 열린다. 불꽃놀이 장인이 걸어가는 천장행 통로는 관람객은 갈 수 없다. 대신 허리를 낮춰 개구멍을 통과하니 돔의 바깥으로 나아가는 길이 나왔다. 통로 옆으로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있는 레일이 놓여 있었다. 돔구장이 열릴 때 사용하는 레일이다. 돔구장 밖으로 나아가니 비가 내렸다. 돔의 거대한 곡선의 홈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린다. 이탈리에 피렌체에 갔을 때 보았던 두오모 성당의 돔지붕처럼 아름다웠다. 어떻게 중세시대에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 위로 둥근 곡선의 지붕을 얹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보고 있는 돔구장은 지붕이 열리고 닫히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지붕 바깥으로 나가니 후쿠오카 앞바다 하카타만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랑의 종’이 매달려 있다. 연인끼리 와서 이 종을 울리면 사랑이 이뤄진다던가. 비내리는 후쿠오카의 바닷가 풍경을 배경으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종의 줄을 당겨 ‘땡땡땡~’ 치고 내려왔다. 후쿠오카 여행을 간다면 ‘후쿠오카 PayPay돔’ 투어(약 1시간)를 한 뒤 ‘보스 E·ZO후쿠오카’에서 음식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으로 걸어가 ‘후쿠오카 타워’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디스커버리 큐슈(discoveryKyusu)’ 네이브 스토에서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경기 할인티켓을 살 수 있다. 일본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10~20%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후쿠오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관문인 후쿠오카(福岡)에는 두 개의 명물이 있다. 높이 234m로 일본 해변에 세워진 타워로는 가장 높은 ‘후쿠오카 타워’와 일본 최초의 개폐식 돔구장 ‘후쿠오카 PayPay 돔’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후쿠오카에 도착할 즈음 하카타만의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 근처에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원형 돔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돔구장 바로 옆에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 ‘보스 이조(E-ZO) 후쿠오카’가 새로운 명소로 등장해 현지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대호가 뛰던 돔구장의 불꽃놀이7일 오후 9시 반. 일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의 돔구장. 9회초 소프트뱅크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4-0으로 꺾고 승리하자 경쾌한 음악이 경기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갑자기 경기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어서 돔구장의 천장에서 터져 쏟아지는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불꽃들. 안방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하나비(花火·불꽃놀이)’였다. 지상 68m 높이의 실내 돔구장에서 불꽃쇼가 펼쳐지다니.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었다. 이어서 굉음과 함께 천천히 돔구장의 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트 모양으로 절반이 열린 돔구장 천장 너머로 힐턴호텔, 후쿠오카의 밤바다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돔을 한 번 개폐하는 데 드는 전기료는 약 1000만 원. 호크스팀이 승리했을 때 불꽃놀이와 함께 안방 팬들을 위한 화끈한 서비스인 셈이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빅보이’ 이대호 선수(41)가 2014년부터 4번 타자로 뛰며 2년 연속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팀이다. 이대호는 2015년에 MVP까지 거머쥐었다. 이대호는 지난달 28일 다시 후쿠오카 돔구장을 찾아 열띤 환호 속에 시구 행사를 갖기도 했다. 1993년 4월에 문을 연 후쿠오카 PayPay 돔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90년 개장한 캐나다의 로저스 센터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개폐식 돔구장이다. 우리나라도 야구장에서 즐기는 치맥이 유명하지만, 후쿠오카 돔구장에는 규슈 지방의 맛집이 빼곡하다. 좌석까지 배달해 주는 미식(美食)과 생맥주를 즐기고, 치어리더와 캐릭터 댄스까지 야구장은 거대한 디너쇼 극장을 방불케 한다.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 가면 백스테이지 투어를 하는 것처럼 야구장에는 돔 투어 프로그램이 잘돼 있다. ‘돔만끽 코스’는 불펜 연습장, 라커룸, MVP 시상식이나 입단식이 열리는 기자회견장, 방문팀의 더그아웃을 둘러보고 경기장의 잔디도 밟아 볼 수 있다. 어드벤처 코스를 택하면 돔의 천장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 투어팀은 플래시가 달린 헬멧과 장갑을 착용하고 구장 내 점보제트기 3대 크기 ‘백스크린’ 뒤쪽의 좁은 통로를 올라간다. 지상 35m 지점에 올라서니 돔구장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지상 68m 돔구장 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캣워크)이 있다. 불꽃놀이 장인이 경기 1시간 전부터 불꽃 장치를 들고 올라가 대기하는 통로다. 약 20분에 걸쳐 1만2000t 무게의 육중한 지붕이 열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천장의 복잡한 구조물 사이에 뚫린 구멍을 통과해 돔구장 지붕 밖으로 나가니 비가 내렸다. 돔의 거대한 곡선이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처럼 아름다웠다. 지붕 밖에는 연인들의 사랑을 이뤄준다는 ‘사랑의 종’이 설치돼 있다. 비 내리는 후쿠오카 하카타만의 바닷가 절경을 바라보며 종을 ‘땡땡땡’ 치고 내려왔다. ●스포츠와 예술을 온몸으로 체험거대한 스타디움을 지을 때 가장 큰 우려는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과 사후 운영 비용이다.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인수한 이 구단은 좌석부터 건물 이름, 시구자까지 기업 마케팅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한다. 돔구장은 거대한 미식 체험장이자 콘서트장이다. 최근에는 아예 돔구장 옆에 야구 경기가 없어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문을 열었다. 야구 체험과 가상현실(VR) 게임, 디지털 아트, 음식과 놀이시설을 즐길 수 있는 ‘보스 이조 후쿠오카’다. 건물 내부의 중심에는 일본 프로야구의 레전드인 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83)에게 헌정된 베이스볼 뮤지엄이 있다. ‘왕정치(王貞治)’로 잘 알려진 그는 세계 최다 기록인 868개의 홈런을 친 레전드 선수다. 뮤지엄에 들어가면 그가 선수 시절 쓰던 배트와 글러브뿐 아니라 아라카와 히로시 코치와 함께 검을 들고 허공을 가르며 외다리 타법을 연마했던 방까지 재현해 놓았다. 남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89PARK’다. 실제 타격과 수비, 주루를 하면서 야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속 160km의 구속이 얼마나 빠른지 심판석과 선수석에서 체감해 보니 비명이 절로 나온다. 내 투구 속도를 재보고, 코치가 쳐주는 펑고를 잡아 송구를 하고, 1루로 전력 질주하는 게임도 있다. 스크린 골프처럼 투수가 실제로 던지는 공을 타격하는 방도 있다. 배트가 공에 제대로 맞는 순간 화면에서 빛이 번쩍하며 공이 백스크린 상단을 맞혔다. 짜릿한 손맛이다. 여성 관람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팀랩 포리스트’다. 세계적 열풍을 불러왔던 ‘포켓몬GO’의 증강현실(AR)을 업그레이드한 환상적인 공간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화려한 나무가 울창한 숲과 연못이 펼쳐지는데, 코끼리나 고래, 사슴을 닮은 신기한 동물들이 숲속을 거닐고 있다. 스마트폰에 전용 앱을 깔아 화살을 쏘고, 그물을 던지면 동물을 잡을 수 있다.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모네,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몰입형 전시도 연인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운코(Unko) 뮤지엄’이다. ‘운코’는 우리말로 ‘응가’랑 비슷한 의미다. 달팽이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쌓여 있는 ‘운코’를 보기만 해도 아이들은 자지러지며 웃어댄다. 승리를 기원하는 황금색 운코,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로 변신한 분홍색 연두색 운코 캐릭터와 게임에 열광하는 일본 사람들의 심정을 알다가도 모를 느낌이었다. 옥상에는 돔구장 주변의 바닷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절경(絶景) 3형제’ 놀이기구가 있다. 그중 ‘쓰리ZO’는 옥상에 복잡하게 설치된 레일에 매달려 탑승자의 무게로 움직이는 아날로그 롤러코스터로, 건물 밖으로 나가는 구간에서는 가속도가 붙어 짜릿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다. ‘스베ZO’는 지상 40m 건물 벽면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100m의 튜브형 미끄럼틀이다. 놀다가 출출해지면 라멘, 꼬치, 스시 등을 파는 3층 푸드홀로 가면 된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MLB카페’다. 미국 메이저리그 공인 라이선스를 받은 레스토랑으로, 메이저리그 생중계를 보며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다. 메이저리그 스타들의 공식 굿즈를 구입할 수도 있다. 여행 정보=후쿠오카 여행을 간다면 ‘후쿠오카 PayPay 돔’ 투어(약 1시간)를 한 뒤 ‘보스 이조 후쿠오카’에서 음식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으로 걸어가 ‘후쿠오카 타워’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현지에서는 보스 이조 후쿠오카 놀이시설의 티켓을 따로따로 구입해야 하는데, 5가지 어트랙션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펀티켓을 ‘디스커버리 큐슈’에서 미리 구매하면 싸고 편리하다. 또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안방경기 할인 티켓도 일본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10∼20%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글·사진 후쿠오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달리는 말 위에서 스틱을 휘둘러 공을 딱하고 맞힐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골프를 칠 때도 공이 스윙 스팟에 제대로 맞으면 경쾌한 소리가 나잖아요? 바로 그 손맛에 하는 겁니다. 멈춰져 있는 골프공을 잘 맞추기도 어려운데,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잔디 위를 구르고 있는 공을 맞춘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한국폴로클럽 최용호 이사) 축구장 6배 크기의 잔디밭. 말을 탄 8명의 선수들이 공을 좇아 쏜살같이 달려 간다. 말 위에서 긴 스틱을 휘둘러 하얀색 공을 맞추자 ‘탕’하는 소리가 퍼져나간다. ‘우두두두~’ 육중한 말들이 지축을 박차는 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린다. 이어지는 박수소리, 환호성소리. 서양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알려진 폴로 경기를 한국에서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낯설면서도 진기한 장면이다.제주시 구좌읍 한국폴로클럽(KPC)은 한국과 일본 지역에 최초이자 유일하게 만들어진 폴로 경기장이다. 2010년에 문을 연 제주 폴로경기장의 클럽하우스는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의 유작이다. 콘크리트와 목재를 이용해 한옥처럼 편안하게 햇빛을 끌어들이는 긴 처마가 인상적인 건물이다. 탁트인 전망을 갖춘 카페와 야외 수영장과 콘도까지 갖추고 있다. 멤버십으로 운영되고 있는 폴로 클럽에는 약 30여 명의 회원이 있으며, 일본에서 경기를 하러 오는 회원도 있다. 현재 폴로는 전세계 약 80여 개국에서 3만 여명이 즐기고 있다. 국내의 선수층이 매우 얇다보니 초기에는 외국인 선수들이 주축을 이뤄서 경기를 벌였다. 지난해에는 미국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영국 옥스포드, 캠브리지대 등 명문대 폴로팀을 제주로 초청해 친선경기를 벌였다. 또한 한국 대표팀은 프랑스,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태국 등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폴로 경기의 유래폴로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경기다. BC 6세기~AD 1세기에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성행했으며 원래 국왕 직속 기마대의 훈련용 경기로 펼쳐졌다. 한 팀이 100명 정도로 구성됐던 당시의 폴로 경기는 호전적인 민족이 행하는 축소판 전투와 다름없었다.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폴로는 아라비아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까지 전파되었다. 동양에서는 ‘격구(擊毬)’로 불렸는데 말을 타고 하는 경기이기에 귀족 스포츠가 됐다. 격구는 삼국시대 고구려에 전해졌다. 통일신라 고분 모서리 기둥에는 ‘폴로 스틱을 든 페르시아인’이 새겨져 있다. 고려시대 무인정권 시절에도 격구는 각종 궁중 행사에서 빠지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용비어천가’ 제44장에 격구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무과시험에서도 정식 과목이었다. 조선시대 군사훈련교본인 ‘무예도보통지’에 이십사반(二十四般) 무예의 하나로 격구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13세기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인도를 정복하면서 인도에도 폴로를 전파했다. 처음으로 폴로 경기를 한 유럽인들은 인도의 아삼 주에 있던 영국인 차(Tea) 농장주들이었다. 이들은 1859년 실차르에서 최초의 유럽인 폴로 클럽을 결성했다. 1866년 초 인도에 주둔해 있던 제10 경기병대소속의 장교들이 팀을 짜서 경기를 한 이루 폴로는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1875년경 폴로는 영국 전역에 빠르게 보급됐다. 리치먼드파크와 헐링엄에서 여러 번 경기가 펼쳐지면서 1만 명 이상의 관중들을 끌어모았다. 처음엔 이 경기를 영국에 소개한 군인들 사이에서 성행했지만, 차츰 귀족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게 됐다. 이후 폴로는 모든 스포츠 중 가장 귀족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게 됐다.폴로는 서양 왕족들이 스스로 즐겼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자녀에게 폴로를 적극적으로 가르쳤다.폴로의 기본 정신은 ‘사교’다. 말을 타고 달리는 위험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엄격한 규칙과 에티켓을 지켜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경기 중에는 선수는 물론 모든 관람자들까지 경기를 마친 후에는 함께 해야하는 의무적인 행동이 있다. 바로 잔디밭 위로 말들이 달리면서 생긴 디봇(divot) 자국을 다함께 밟아주는 행동이다. 영국의 찰스 국왕도 예외없는 ‘잔디밟기’ 에티켓이다.●폴로 경기의 규칙폴로는 말을 탄 선수가 ‘말렛(Mallet)’이라고 불리는 스틱을 이용해 공을 치며 진행된다. 450kg 정도의 말을 탄 채 돌진하는 모습은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또한 선수가 스틱을 이용해 상대방의 스틱을 쳐서 스윙을 막거나 방해하는 동작들은 화려한 검무를 보는 듯 하다. 시속 60km로 달리면서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경기도중 말 위에서 다른 말로 갈아타기도 하면서 사람과 말이 하나로 호흡하는 현란한 승마 기술도 볼 수 있다. 지난달 중순 제주 한국폴로클럽을 찾았을 때는 중학생 선수 11명의 데뷔 게임이 펼쳐졌다. 대부분 회원의 자녀 선수들. 지난해부터 배우기 시작해 6개월간 훈련을 거쳐 첫 폴로 시합을 하게 된 것이다. 성인들의 게임과 달리 경기장 규모를 작게 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나무 망치가 달린 스틱을 휘두르며 공을 패스하고, 골문으로 슛을 할 때마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이날 경기와 연습을 지켜보면서 한국폴로클럽 최용호 이사와 남종훈 부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며 폴로 경기 규칙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늘 데뷔한 어린 선수들은 어떻게 훈련을 했나. “제주 국제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서울에서 주말마다 내려와서 훈련하는 친구들도 있다. 작년 8월부터 금요일 밤에 비행기타고 내려와서 토요일, 일요일에 세 번의 연습을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작년 겨울에는 태국에서 전지훈련도 갔다 왔다. 무엇보다 폴로가 재미가 있으니까 열심히 한다. 동물을 컨트롤 하면서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즐거움이다.” ―폴로 경기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폴로는 한 팀에 4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한다. 각 팀 선수들은 1~4번의 번호를 붙인다. 1번과 2번은 포워드(forward)이고, 3번과 4번은 백(back)이 된다. 그 가운데 3번 선수가 에이스로 패스를 전담하며, 팀 전술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원하는 방향과 거리에 맞게 정확하게 볼을 전달해주어야 득점으로 연결이 될 확률이 크다.” ―어떤 전술이 있나. “축구처럼 다양한 작전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한다. 스페인 축구처럼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티키타카’ 전술을 쓰기도 하고, 롱패스 위주로 하는 전략도 있다. 패스를 할 때는 달려가는 말과 선수가 가는 방향을 예상해 앞서서 밀어주어야 한다.”폴로 한 경기는 7분씩 4처커(Chukker)를 한다. 처커란 농구의 쿼터(quarter), 아이스하키의 피리어드(period)와 같은 개념이다. 각 처커 사이에는 3분씩의 휴식시간과 5분간의 하프타임이 있다. 심판은 말을 탄 2명의 엄파이아와 사이드라인의 1명의 래퍼리로 구성된다. 선수들은 말에 올라 탄 채 말렛으로 공을 쳐서 상대팀 골문에 넣으면 1점이 주어진다. 상대팀 말과 비슷한 위치에 있거나 바로 뒤에 있는 경우 공을 치려는 상대의 말렛을 자신의 말렛으로 막는 것은 허용된다. ―폴로 경기를 할 때 말은 몇마리나 필요한가. “폴로 경기는 4처커를 뛰는데, 한 처커(7분)마다 말을 교체해서 타야 한다. 양팀 선수 8명이 필요한 말이 총 32마리다. 심판이 타는 말까지 합치면 34마리 정도다. 보통 말은 한 처커를 뛰고 나면 퇴근한다. 말이 축구장 6배 될 정도로 큰 운동장에서 전속력으로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시합을 할 경우에는 한 처커 경기 도중에도 2마리씩 말을 갈아 타기도 한다.” ―제주 한국폴로클럽에는 말이 몇마리가 있나.“75마리의 말이 있다. 그 중 85%는 폴로클럽 소유의 말이고, 나머지는 회원이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말이다. 개인 소유의 말은 본인만 탈 수 있다. 연습이나 시합에서 본인이 길들인 말을 탔을 때 가장 안정적이고, 호흡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합 중에는 내가 소유한 말이라고 해도 한 처커 밖에 탈 수가 없다. 나머지 처커는 클럽 소유의 말을 빌려서 타야 한다.”―폴로경기에 사용하는 말은 어떤 종류인가.“아르헨티나에서 전량으로 수입해서 데려오는 ‘폴로 포니(Polo Pony)’라는 말이다. 어릴 적부터 폴로에 특화된 훈련을 받는데 보통 7,8살 된 말을 수입해 온다. 품종 자체가 굉장히 순하고 영리하다. 폴로경기를 하다보면 말끼리 자리싸움을 하다가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말의 경우 경기가 격렬해져 부딪치게 되면 순간적으로 날뛰어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 폴로포니는 부딪쳐도 본인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이 돼 있다. 지능이 높은 말은 오토매틱 자율주행처럼 선수가 공을 치기 좋은 위치로 알아서 찾아간다.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체중이동만으로도 말이 방향을 전환한다. 중간 등급 정도의 말은 약 4000~5000만원 정도 가격이다.”폴로 경기를 할 때는 말의 앞다리는 무릎 아래부터 발목까지 붕대를 감고 타이즈를 신긴다. 팀을 구별하는 패션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말렛(스틱)이나 공에 맞을 때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말렛을 휘두를 때 털에 엉키지 않도록 목부분의 갈기는 면도를 하고, 꼬리털도 단정하게 땋아줘야 한다. 폴로 경기장은 골대에서 골대 사이 거리가 280m, 폭은 180m 정도다. ―폴로 경기의 규칙은.“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말렛으로 공을 휘두르는 폴로 경기는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룰이 적용된다. 꼭 지켜야할 규칙은 달려가는 말의 진행방향이 절대 크로스되면 안된다. 말이 공을 향해 달려갈 때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며 경쟁해야 한다.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어 가로 막아버리면 사람과 말이 크게 다치게 된다. 이것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룰이다. 그리고 폴로는 한 골을 넣을 때마다 골대를 바뀐다. 만약 A팀이 오른쪽으로 공격을 해서 골을 넣었으면, 다음에는 골대를 바꿔 왼쪽으로 공격해서 골을 넣어야 한다. 필드가 굉장히 넓다보니까. 한 팀은 태양이나 바람을 마주보고 하고, 다른 팀은 등지고 경기를 하게 된다. 바람이나 햇빛의 영향을 양팀이 모두 똑같이 적용시키기 위해 골대를 수시로 바꾸는 것이다.” ―또다른 에티켓은?“폴로에는 휴식시간에 관람객들이 모두 경기장으로 내려와 디봇 자국을 밟아주는 문화가 있다. 골프장에서 디봇자국을 덮어주는 매너하고 비슷한 것이다. 폴로는 매너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경기 중에 상대방을 자극하는 도발이나 언행을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클럽 멤버에서 퇴출된다.” ―폴로에 쓰는 공은 어떤 것인가. “폴로공은 플라스틱을 압축해 놓은 흰색공을 쓴다. 야구공보다는 조금 더 크지만, 경도 자체는 세지 않다. 사람이 맞으면 피멍 정도가 들 정도다.” ―프로리그 폴로경기는 어떻게 진행되나. “골프에서도 핸디캡이 있듯이 폴로 선수들에도 핸디캡(등급)이 있다. 핸디캡은 -2골, -1골, 0골에서 +10골까지 있다. 숫자가 높을 수록 실력이 좋은 선수다. 보통 프로의 기준을 +3골로 본다. +10골은 최정상급 선수로 전세계에 몇 명 없다. +5골만 해도 정말 대단한 선수다. 보통 초보자들은 -2골부터 시작을 한다. 먼저 2점을 받고 경기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2골 핸디캡은 골프로 치면 18홀 모두 양파를 하는 수준으로, 140~150타 정도 치는 수준이다. 팀을 이뤄 시합할 때는 선수들의 핸디캡을 총합으로 계산한다. 만일 A팀의 핸디캡 토털이 +13골이고, B팀은 +12이라면 B팀이 1:0으로 앞선 상태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한 골의 실력차를 인정해준 상태에서 시합을 하는 것이다.” ―폴로 경기를 배우는 데는 얼마나 걸리나. “본격적으로 말을 타고, 달리고, 공을 치는 데까지는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첫 시합을 가진 청소년들의 경우 약 6개월간 연습을 했다. 어린 나이일 수록 더 빨리 배우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폴로 경기를 하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폴로는 경쟁의 스포츠라기 보다는 사교의 스포츠다. 지난해에 제주 폴로클럽에서는 하버드, 스탠포드, 예일, 옥스포드, 캠브리지 등 영국과 미국 명문 대학의 폴로클럽을 초청해서 친선 경기를 진행했다. 폴로 경기는 경기자체도 즐겁지만, 경기를 마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사교를 하는 과정도 무척 중요하다. 해외의 폴로 클럽에는 왕실이나 귀족, 세계적 기업의 오너가 회원으로 있기 때문에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폴로 경기 자체의 매력은 무엇인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채를 휘둘러 공을 딱하고 맞힐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골프를 칠 때도 공이 스윙 스팟에 제대로 맞으면 경쾌한 소리가 난다. 폴로의 스윙도 골프와 매커니즘이 거의 비슷하다. 골프는 멈춰져 있는 공을 때리는 데도 잘 맞추기 힘든데, 폴로는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움직이는 공을 정확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을 타는 실력이다. 기승 실력과 공을 치는 것은 한 8대 2정도의 비율로 기승이 더 중요하다.” ―폴로 선수들은 몸무게 제한이 있는가. “외국의 프로선수의 경우 약간 덩치가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선수 몸무게가 가벼워야 말한테도 좋고, 경기력도 좋아진다. 100~120kg 되는 사람은 말에게 무리가 가겠지만, 그 이하는 폴로 경기가 가능하다. 폴로클럽 회원 중에는 80kg대도 있다.”―폴로 경기용 말의 수명은?“보통 말의 수명은 30~40년이다. 제주 폴로클럽의 말은 복지가 좋다. 넓고 깨끗한 마사에서 수의사들의 관리를 받으며, 미네랄과 비타민이 든 사료를 먹는다. 20살 정도면 경기에서 은퇴하는데, 은퇴 후에는 노동을 하거나 도축을 하지 않는다. 경기장 뒷쪽으로 가면 은퇴한 말들이 휴식을 취하는 목장이 있다. 말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한다.” ―폴로 경기를 레슨해주는 프로들은 어디서 온 분들인가. “뉴질랜드, 영국, 아르헨티나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제주에 상주하며 지도해주고 있다. 현재 전세계 폴로 최강국은 아르헨티나다. 지난해 11월에 아르헨티나 프로리그 오픈컵에 초대돼 갔는데 인프라가 정말 좋았다. 한 동네에 축구장 6배 넓이의 폴로 경기장이 300개나 있었다. 이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말을 탄다. 상금이 큰 대회는 유럽에서 많이 열린다. 2024년에 파리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폴로를 시범경기 종목으로 넣으려고 한다.”―해외에서 폴로 경기의 위상은 어떤가. “미국, 영국, 아르헨티나 등지에서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받아들여진다. 영국의 찰스 국왕과 카밀라 왕비도 윈저성 근처의 폴로 경기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 동남아 국가에서도 폴로 경기를 한다. 브루나이에서는 왕족이 폴로 경기를 하는데 국민들이 열광하는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 동북아에서 현재 폴로 경기를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일본에는 폴로클럽이 없다. 제주 폴로클럽 회원 중에 한 분이 일본 기업 회장의 손자가 있는데, 홋카이도에 폴로 경기장을 지으려고 준비 중이다. 중국은 폴로 경기장은 있는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폴로 경기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 ―폴로 클럽 회원의 경우 1년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 “폴로 경기는 해외에서도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스포츠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폴로 경기를 해보겠다고 생각하면 연간 약 1~2억원 정도 든다. 한 게임에 처커 4게임을 한다. 한 처커(7분30초) 마다 한번씩 말을 바꿔 타야 한다. 연습경기가 아니라 본 시합 때에는 한 처커에 2마리의 말을 타기도 한다. 한 경기에 총 8마리의 말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국제대회 나가면 경기 참가비, 숙식비도 엄청나게 비싸다. 폴로 경기는 상금이 없고, 모든 비용을 참가자들이 스스로 부담한다. 폴로를 통해 글로벌한 인맥 네트워크를 맺는 데는 매우 좋은 기회다.” ―폴로의 매력은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모두가 폴로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말 타기를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누구나 말에서 떨어지는 것은 무서워한다. 그만큼 리스크를 감내하면서 해야 하는 운동이다. 폴로 클럽 회원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말에서 ‘떨어져 본 사람’과 ‘떨어질 사람’. 무조건 몇 번씩은 말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폴로를 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인정한다. 만나면 ‘야, 너도 폴로해? 말에서 떨어져봤어? 그래 너 멋있다!’고 말하며 금방 친해진다. 필리핀, 두바이에 가면 60, 70대의 나이에도 폴로를 열심히 하는 회장님들이 계신다.”●폴로클럽 안의 현대미술 갤러리“폴로 경기장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온 왕족, 귀족, 기업인 등 VIP손님들이 많은데, 한국의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세계에 소개하는 갤러리도 있습니다. 지난해 5월 ‘한국폴로클럽 아트갤러리 오픈 폴로컵’ 대회를 열었는데, 폴로 회원과 게스트들이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에 큰 관심을 갖고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미오컨템포러리 박현정 대표)지난해 5월에는 제주 한국폴로클럽안에 있는 클럽하우스 1층에 아트갤러리가 오픈했다. 원래 헬스클럽이 있던 공간인데 갤러리로 개조해 꾸민 것이다. 아트컨설팅과 전시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미오컨템포러리가 운영하는 이 갤러리에서는 6월 15일까지 전광영 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전통 한지로 작업한 ‘집합(Aggregation)’ 시리즈로 유명한 전광영 작가는 1994년부터 시작된 한지 오브제 작업을 토대로 다양한 크기의 스티로폼을 종이에 싸고 묶는 기법을 통해 조형성을 만들어낸다. 전 작가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병행전시(Collateral Event)’로 선정된 바 있다. 세계 최대규모 미술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린 수백 건의 전시 중 엄선한 30건으로 뽑힌 전시다. 아시아의 보자기 문화에서 착안한 작가의 연작 시리즈는 어린 시절 큰아버지의 한약방 천장에 매달려 있던 무수히 많은 한약재 봉지를 바라보던 기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약봉지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삼각기둥을 한지로 감싼 후 매듭을 묶어 작은 조각을 만든 후 화면에 일정한 패턴으로 재배열해 그만의 독특한 입체 회화 ‘집합’ 시리즈를 창조해 낸 것. 70~80년에서 많게는 150년 전에 만들어진 책들을 해체해 낱장이 된 한지가 작가의 손끝에서 수천수만의 매듭으로 연결되어 현대미술 작품으로 재탄생 된다. 한국코리아폴로클럽 고영만 대표는 “동양적 철학의 사유를 본인만의 개성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님의 작품으로 올 첫 전시를 시작하게 되어 의미 있게 생각한다”며 “폴로클럽이 가진 역동성을 예술이라는 문화와 접목시킴으로써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달리는 말 위에서 스틱을 휘둘러 공을 딱 하고 맞힐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멈춰 있는 골프공을 잘 치기도 어려운데, 달리는 말 위에서 구르고 있는 공을 맞힌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한국폴로클럽 최용호 이사) 축구장 6배 크기의 잔디밭. 말을 탄 8명의 선수가 공을 쫓아 쏜살같이 달려간다. 달리는 말 위에서 긴 스틱(맬릿)을 휘둘러 하얀 공을 맞히자 ‘탕’ 하는 소리가 퍼져나간다. “우두두두∼” 하며 육중한 말들이 지축을 박차는 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린다. 이어지는 박수 소리와 환호성. 서양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기는 스포츠인 폴로 경기를 한국에서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낯설면서도 신기한 현장이다. 제주시 구좌읍 한국폴로클럽(KPC)은 한국과 일본 지역에 최초이자 유일하게 만들어진 폴로 경기장이다. 2010년에 문을 연 폴로 경기장의 클럽하우스는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의 유작이다. 탁 트인 전망을 갖춘 카페와 야외 수영장과 콘도까지 갖추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영국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명문대 폴로팀을 제주로 초청해 친선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폴로 한 경기는 7분씩 4처커(Chukker)를 한다. 처커란 농구의 쿼터, 아이스하키의 피리어드와 같은 개념이다. 폴로를 할 때 한 처커(7분)마다 말을 교체해서 타야 한다. 한국폴로클럽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전량으로 수입해 오는 ‘폴로 포니(Polo Pony)’ 품종의 말 75마리가 있다. “폴로는 경쟁의 스포츠라기보다는 ‘사교’의 스포츠다. 경기 중간에는 선수와 관람객들이 잔디밭 위로 내려와 말들이 달리면서 생긴 디벗(divot) 자국을 함께 밟아주는 전통이 있다. 각국 왕실이나 귀족, 세계적 기업의 오너가 폴로클럽 회원으로 있기 때문에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남종훈 한국폴로클럽 부대표) 지난해 5월에는 제주 한국폴로클럽 1층에 아트갤러리가 오픈했다. 원래 헬스클럽이 있던 공간을 개조해 꾸민 이곳에는 현재 전광영 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미오컨템포러리 박현정 대표는 “폴로클럽에는 해외에서 온 왕족, 귀족, 기업인 등 VIP손님이 많아 한국의 대표 작가들을 전 세계에 소개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병행전시(Collateral Event) 부문에 선정됐던 전 작가는 전통 한지(韓紙)로 작업한 ‘집합(Aggregation)’ 시리즈로 유명하다. 그는 약봉지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삼각기둥을 한지로 감싼 후 매듭을 묶어 재배열하는 독특한 입체 회화 ‘집합’ 시리즈를 창조해냈다. 한국폴로클럽 고영만 대표는 “동양적 철학의 사유를 본인만의 개성으로 표현해낸 세계적인 작가를 올해 첫 전시로 모시게 돼 의미있게 생각한다”며 “폴로클럽에 예술과 문화를 접목함으로써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화 ‘자산어보’는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 선생이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주요 촬영세트는 신안군 흑산도가 아니라 도초도에 있다. 도초도 발매리 서쪽 끄트머리 언덕에 있는 가거댁(이정은)의 초가집이다. 대청마루를 둔 안채와 부엌, 돌담과 우물·평상·아궁이 등 영화 속 소품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청마루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 때리기 좋은 명당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