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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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재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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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01-01~2025-01-31
칼럼100%
  • ‘디지털 뉴딜’ 고속도로에 횡단보도부터 치워주세요[광화문에서/김재영]

    간만에 가슴 설렜다. 갑갑한 뺄셈식 과거 논쟁이 아니라 덧셈식 미래 비전을 보여준 것 같아서다.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한국형 뉴딜’ 얘기다. 스케일부터 남다르다. 국비만 114조 원, 지방비와 민간 투자를 포함하면 160조 원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의 22조 원 ‘녹색성장’(4대강 사업)이나 박근혜 정부의 21조 원 ‘창조경제’와는 규모부터 차원이 다르다. 핵심은 58조 원 규모의 디지털 뉴딜이다. 디지털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생태계 강화, 교육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 등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경험상 숫자로 표시된 예산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쏟아부은 예산이 마침 160조 원 정도다. 결과에 대해선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끝나지 않는 고용한파 속에 일자리 예산 수십조 원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다. 예산이야 어떤 이름을 붙여서라도 맞출 수 있다. 공공기관의 PC를 모두 교체하고 디지털 뉴딜이라고 포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예산이나 인프라 구축보다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정부의 의지다. 디지털 경제에 맞게 규제를 획기적으로 정비해 마음 놓고 투자해도 되겠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막힘없이 달릴 수 있다는 자신이 없으면 액셀 페달에 쉽게 발이 가지 않는 법이다. 50년 전 경부고속도로가 막 개통했을 땐 고속도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인근 마을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거나 자전거와 우마차를 끌고 다녔다고 한다.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고속도로에 횡단보도를 깔거나 과속방지턱을 놨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실없는 상상 같지만 지금도 혁신산업에선 감속, 정차, 심지어 퇴출이라는 어이없는 상황이 수시로 일어난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산업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기존 법령의 제약에 막혀 좌절하고 만다. 5세대(5G)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부는 통신 3사에 수십조 원의 투자를 독려하지만 한편으론 3조 원대 주파수 재배정 비용을 요구하고, 보편 요금제와 과징금으로 압박하며 투자 여력을 막는다. 대기업 진출이 제약된 소프트웨어 산업은 외국 기업들이 이미 장악했다. 디지털 경제 추진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해서도 정부는 아직 계획이 없는 것 같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디지털 뉴딜 세부 브리핑에서 “서로 소통하고 조금씩 양보하자는 의미의 ‘한 걸음’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좋은 말이긴 한데 이런 어정쩡한 ‘사회적 대타협’ 기조 속에 타다와 카풀이 멈춰 섰다. 구조 전환을 위해 필요한 정책은 그대로 과감하게 추진하되 이 흐름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은 별도의 정책으로 포용해 어루만져야 한다. 고속도로에선 쌩쌩 달리게 하되 안전한 보행로는 따로 만들자는 얘기다. 디지털 뉴딜이라는 미래 비전의 성공을 위해 규제 정비 등 제도적 보완 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입법 속도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임위원회에 법안이 상정되고 본회의를 거쳐 법률로 공포되기까지 이틀이면 족하다. 176석의 힘을 이럴 때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재영 산업1부 차장 redfoot@donga.com}

    • 20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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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진화’ 없고 ‘증세’만 금융투자소득 과세 논란[광화문에서/김재영]

    요즘 주변에 펀드 투자한다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다. 실적이 부진한 공모펀드는 처량하고,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사모펀드는 끔찍하다. 최근 펀드 투자자들의 한숨은 더 커졌다. 정부가 2년 뒤부터 주식형 펀드 수익 전액에 양도소득세를 과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정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을 확정했다. 핵심은 2023년부터 소액주주도 2000만 원을 넘는 주식 양도차익에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순이익에만 세금을 매기는 ‘손익통산’, 3년 범위 내에서의 ‘손실 이월공제’ 등 획기적인 방안을 내놨는데도 시장에서는 오히려 ‘꼼수 증세’라는 원성의 목소리가 더 크다. 부동산에 쏠린 시중 유동자금을 생산적 투자로 유입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시장 투자자들의 의욕을 꺾는 방안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 펀드 투자자들은 역차별을 호소한다. 주식 직접투자는 양도소득세 공제 한도가 2000만 원인 반면에 국내 주식형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는 공제 혜택이 전혀 없다. 해외·비상장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의 공제 한도가 250만 원인 것과 비교해도 불리한 조건이다. 게다가 세금은 주식 직접투자보다 한 해 빠른 2022년부터 내야 한다. 주식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펀드를 통한 우량주 중심의 장기 투자를 장려해 온 방향과 배치된다. 이럴 거면 직접투자 하지 누가 펀드 투자를 하겠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패닉에 빠진 국내 증시를 떠받친 ‘동학개미’들도 불만이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4월 초 “기업에 대한 애정과 주식시장에 대한 믿음으로 적극 참여해주신 투자자께 감사드린다”고 했는데 이제 세금 청구서를 들이민다. 물론 세금을 안 내겠다는 건 아니다. 그 대신 거래세를 없애 달라는 것이다. 거래세는 금융실명제 이전 소득 확인이 쉽지 않아 편의상 소득과세 측면에서 도입됐다. 이제 여건이 돼 양도세를 도입한다면 거래세는 폐지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기재부는 거래세 폐지에는 요지부동이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에 대한 과세도 못 하고, 고빈도 매매에 대해 대응 수단이 사라진다는 이유다. 하지만 7일 공청회에선 진짜 속내를 드러냈다. 농어촌특별세 전체 세수 중에 증권 거래에서 발생하는 것이 전체의 절반이어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왜 증권거래세 인하 계획이 0.15%에서 멈추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현재 증권거래세율이 0.25%인데,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의 경우 0.1%가 순수 거래세, 0.15%는 농특세다. 2023년 거래세가 0.15%가 되면 순수한 거래세는 사라지고 농특세만 남는다. 그럼 거래세를 폐지하고 주식 양도세 일부를 농특세 재원으로 활용하는 건 어떠냐는 제안에 기재부는 “농특세는 안정적 세금 재원이 필요한데 주식 양도차익은 해마다 변동성이 있다”며 반대한다. ‘금융세제 선진화’의 목적은 결국 ‘안정적 세수 확보’였나. 홍 부총리는 “금융산업의 혁신을 뒷받침하고 생산적 금융으로 거듭나기 위한 금융세제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 말이 진짜 맞는지 자본시장 투자자들은 이달 나올 세제 개편안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김재영 산업1부 차장 redfoot@donga.com}

    • 20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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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발 금융허브 쟁탈전, 그저 바라만 보는 한국[광화문에서/김재영]

    ‘이제 부산이다(Time for Busan).’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으로 ‘금융허브’ 홍콩이 흔들리자 최근 부산이 팔을 걷고 나섰다. 홍콩을 떠나려는 금융기관과 인재를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타깃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자설명회를 열고 사무실 무상임대, 세제 혜택 등도 집중 홍보할 계획이다. 부산뿐만 아니다. 일본도 관계 부처와 도쿄도가 머리를 맞대고 파격적인 우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싱가포르, 대만 등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아시아 각국이, 부산까지도 나서는데 정부와 서울시는 조용하기만 하다.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한 것일까, 아니면 남의 어려움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일까. 어차피 안 될 테니 포기하자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도 꿈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로드맵’을 발표한 게 벌써 2003년 12월이다. 계획대로라면 2020년 올해는 ‘아시아 3대 금융허브’의 원년이 됐어야 했지만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꿈이다. 올해 3월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이 내놓은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서울은 세계 33위에 그쳤다. 2007년 3월 첫 발표 당시 43위보단 올랐다고 위안해야 할까. 전교 등수 말고 반 등수는 오히려 떨어졌다. 13년 전 아시아태평양 도시 중 9위였는데 지금은 11위다. 나란히 세계 3∼7위에 오른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도쿄 베이징 앞에서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학습계획만 세워 놓고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다. 도시 하나만 제대로 키워도 벅찬데 서울, 부산에 이어 제3 금융중심지 지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여당에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KDB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옮기자 한다. 금융은 집적효과가 중요한데 전국에 흩어 놓자는 것이다. 금융규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하는데 오히려 21대 국회는 개원하자마자 금융을 꽁꽁 묶는 법안들만 줄줄이 발의했다. 딱히 맛도 없는데 메뉴만 번잡하다. 파리 날리는 식당의 전형적 모습이다. 정부도 이제 슬슬 꿈을 접을 모양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심의한 ‘제5차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안(2020∼2022년)’은 해외 금융사의 한국 유치 대신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분명 ‘국내에 공장 많이 지어 제조업 메카로 만들자’던 계획이었는데 이젠 ‘해외에 공장 지어도 된다’고 바뀐 셈이다. 아직은 꿈을 포기하기 이르다. 지금부터라도 금융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명확한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금융을 돈줄로만 보지 말고 법률 컨설팅 정보기술(IT) 등 파급효과가 큰 지식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접근해야 한다. 세계적인 금융기업과 인재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경영·교육·세제 등의 파격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인천 영종도와 송도를 묶어 금융특구로 집중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물론 지금 당장 홍콩을 넘보는 건 어렵다. 하지만 5년 뒤, 10년 뒤에 생각지 못한 또 다른 기회가 올 수 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솔직한 심경으론 이번에도 안 될 것 같긴 하다.  김재영 경제부 차장 redfoot@donga.com}

    •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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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통’까지 탈탈 털었다” SK바이오팜 청약에 31조 몰려 신기록

    “퇴직금 싸들고 왔다.” “마통(마이너스통장)까지 탈탈 털었다.” 올해 상반기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는 SK바이오팜의 공모주 일반 청약에 시중 유동자금 31조 원이 쏟아져 나오며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 치웠다. 최근 제약바이오주들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증시 반등을 이끈 데다 금리 인하로 시장에 유동성이 넘치면서 자금이 쏠린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마감한 SK바이오팜 공모주 일반 청약에는 30조9889억 원의 증거금이 모여 323.02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증거금 1억 원을 넣어도 13주 정도만 배정받는 셈이다. 5000억 원 이상 공모한 기업 중 경쟁률과 청약증거금이 사상 최대 규모다. 기존 기록은 2014년 제일모직의 30조635억 원이었다. 공모주 배정 결과는 26일 발표되고, SK바이오팜은 7월 2일 코스피에 입성한다. SK바이오팜이 투자자들에게 유독 많은 관심을 끈 것은 최근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시중에 유동자금이 풍부한 데 비해 투자처가 마땅치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증시 진입 대기자금으로 여겨지는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해 말 약 27조 원대에서 이달 47조 원대까지 늘었다. 예·적금 수익률이 사실상 0%에 가깝고, 부동산 규제로 부동산 투자도 여의치 않다 보니 1%포인트라도 더 나은 수익률을 찾아 공모주 청약으로 몰려든 것이다. 대출 금리가 낮아 빚을 내 청약에 나서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모 씨(60)는 얼마 전 퇴직한 남편의 퇴직금에 마이너스통장 대출로 약 1억 원을 더해 청약에 나섰다. 청약을 진행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출 이자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청약 마지막 날 대출을 받은 고객이 많았다” 며 “일부 지점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북새통을 이뤘다”고 전했다. SK바이오팜이 시장의 예상보다 낮은 기업가치로 공모를 진행한 점도 흥행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초 회사 측이 제시한 상장 기업가치는 3조8000억 원으로, 시장이 예상해 오던 5조 원에 비해 20% 이상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상장 당일 주가가 공모가(4만9000원)보다 크게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에선 상장 이후 수급 상황에 대한 낙관론이 퍼지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상장 이후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확약한 비율이 81.15%로 역대 최고 수준이고 상장 이후 코스피200에 조기 편입되면 시장 흐름을 따라가는 패시브펀드가 자동으로 주식 매수에 나설 수 있어서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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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라” 라임사태 뒷짐 진 금감원[광화문에서/김재영]

    지난달 개막한 한국 프로야구가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메이저리그 개막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좀이 쑤셨던 미국 팬들은 한국 야구 특유의 호쾌한 ‘빠던’(배트 던지기)에 열광한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오심이 기껏 얻은 점수를 깎아 먹는다. 심지어 심판이 당사자인 포수에게 공이 바운드된 게 맞는지 물어보고 판정을 내리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요즘 금융감독 당국을 보면 오심 논란으로 시끄러운 야구판이 연상된다. 금융감독원의 징계에 금융회사와 경영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에 나선다. 라임펀드 사태 등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는데도 진상조사는 축축 늘어지고 당국의 존재감은 희박하다. 신속한 조사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금감원이 오히려 ‘사적 해결’을 종용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진다. 최근 금융사들이 라임펀드 피해자들에 대해 ‘선보상’에 나선 데는 금감원의 압박도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이미 신영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선보상 계획을 밝혔고, 나머지 판매사들도 이사회를 거쳐 논의할 예정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4월 취임 2주년 간담회에서 과거 선보상 사례를 언급하며 “그런 사례가 계속 퍼질 수 있었으면 한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금융회사가 자율 배상을 하면 시기적으로 빠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행 자본시장법 55조는 ‘투자자 손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후에 보전해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정당한 사유’라는 예외를 뒀지만 뭔지 애매하다. 책임소재가 가려지기도 전에 먼저 보상에 나섰다가 자칫 배임 문제가 빚어질 수 있어 당초 판매사들은 선보상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자 지난달 윤 원장은 “배임 이슈 등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적 화해’에 의해 (선보상을) 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금융투자업 규정상 ‘위법행위 여부가 불명확할 경우 사적 화해의 수단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행위’는 예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선보상과 관련해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비조치 의견서’를 금융회사들에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자의 성향이나 책임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보상하는 것은 차후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배임 여부를 따지는 법정에서 “금감원이 눈감아 주기로 했다”며 ‘비조치 의견서’를 흔든다고 통할지 장담할 수 없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무턱대고 보상을 하는 사례가 쌓여 가면 자기책임 원칙을 근간으로 한 투자시장이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다. 정작 금감원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진상조사와 분쟁해결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후 명확한 근거와 절차에 의해 보상을 진행하면 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조사에 착수해 반년이 지난 올해 2월에야 중간 조사 결과를 내놨다. 본격적인 현장조사는 4월에야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지연된 점도 있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은 엄격한 잣대에 따른 일관되고 신속한 판정이다. 우리 편을 들어준다고 좋은 심판이 아니다. 엄하게 퇴장을 명한다고 권위가 확보되지 않는다. 금감원은 자본시장의 관객이 아니라 책임 있는 심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재영 경제부 차장 redfoot@donga.com}

    •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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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송금, 수수료 싼 ‘카드앱’으로

    롯데카드는 국내 시중은행 및 인터넷은행보다 저렴한 수수료로 빠르게 송금할 수 있는 ‘롯데카드 해외송금’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해 1월 개정된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은행 제휴 없이 카드사가 단독으로 해외송금 서비스를 실시하는 첫 번째 사례다. 롯데카드 해외송금은 은행에서 해외송금 시 발생하는 전신료, 중개수수료, 수취수수료 등의 별도 부대비용 없이 송금수수료 3000원 또는 5000원(국가별 상이)만 지불하면 돼 고객들의 부담을 크게 낮췄다. 올해 말까지는 이벤트로 송금수수료마저도 전액 면제해 준다. 국가별 평균 송금 소요기간은 최대 2일로, 일반적인 은행의 송금 소요기간인 3∼5일보다 빠르다. 일부 국가(영국, 베트남, 싱가포르)의 경우 실시간 송금도 가능하다. 이 서비스는 롯데카드 회원이면 누구나 ‘롯데카드 라이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롯데카드 라이프 앱 내 ‘해외송금’ 서비스에서 국가 및 송금금액, 수취정보 입력 후 본인 인증만 하면 본인의 카드 결제 계좌 또는 본인 명의의 계좌에서 송금이 완료된다.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건당 최대 미화 5000달러, 연 최대 5만 달러까지 송금 가능하다. 현재 10개 통화로 11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호주,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에 송금할 수 있으며, 베트남을 제외한 10개국의 경우 법인 명의 계좌로도 송금이 가능하다. 특히 국내 인터넷은행 및 카드사 최초로 베트남 은행 계좌에 송금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올해에는 중국, 캐나다, 홍콩 등 20여 개국으로 송금 가능 국가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향후에는 받는 사람의 은행 계좌가 없어도 55만 개 점포에서 현금 수취 방식으로 즉시 수령 가능한 송금 방식을 추가해 220여 개국에 송금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롯데카드는 디지털을 활용한 고객 서비스 고도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롯데카드는 최근 고객 편의성 제고를 위해 불필요한 대기 시간 없이 직접 화면을 보며 쉽고 빠른 상담이 가능한 ‘디지털 ARS’를 선보였다. 기존 음성 ARS처럼 전화 연결이나 모든 음성 안내를 들으며 기다릴 필요 없이 소비자가 스스로 화면을 보면서 원하는 상담 업무를 해결할 수 있다. 음성 ARS 메뉴를 그대로 스마트폰 화면에 옮겨놓은 ‘보이는 ARS’보다 한 단계 더 진화된 형태로,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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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글로벌 리더 역할 제안’에…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다른 나라가 들어갈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59)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48)는 12일(현지 시간)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체인의 변화를 이렇게 전망했다. 국제 분업 구조가 붕괴하기보다는 더 다양화될 것이며, 이는 특히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는 시도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국에는 기회요인이기도 하다. 부부 경제학자인 이들은 19일 서울에서 열리는 ‘2020 동아국제금융포럼’의 기조 연사로 참석한다. 올해 포럼은 방역을 위해 미국과 한국을 화상으로 연결해 진행한다. 행사에 앞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소개한다.― 위기 이후 전개될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은 어떤 모습일까.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시기에 세계 경제를 예측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사회적 신뢰와 문제해결 능력의 위기, 심각한 양극화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번 위기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달라질 것이다.”― ‘V자’ 형태의 신속한 경제 회복은 가능한가.“백신이 개발되고, 형편없는 정책들 때문에 위기가 통제 불능 상태로 빠지지만 않는다면 과거 역사를 볼 때 매우 빠른 반등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계속 소비를 할 수 있고 엄청난 수요 감소에 따른 불황도 피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세계화 때문에 더 급속히 확산됐다는 지적이 있다.“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진 건 사람들의 빈번한 이동 때문이다. 국제무역 자체는 이번 확산과 관련이 없다. (세계화의 순작용인) 글로벌 공조는 ‘코마 상태’인 세계 경제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세계화에 반하는 사례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글로벌 공급체인의 변화가 예상된다. “기업들 입장에선 글로벌 공급체인에서 얻는 이득이 너무 크다.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시나리오는 기업들이 앞으로 자사 부품 공급처를 어느 한 국가-특히 중국-에 의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공급처 다변화를 꾀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일부 시장에 다른 국가들이 침투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뜻이다.” 바네르지 교수는 “한국이 가진 불리한 점으로 중국과의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꼽았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하느냐는 질문에 “수출국이든 수입국이든 다변화에 따른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 어떤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보는가.“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대응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덴마크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의 소국인 토고 사례도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정부에 대한 집단적 신뢰가 강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포용적 사회정신을 공유하며 다시 뭉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 미국, 아마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은 미숙한 대응 때문에 제도에 대한 신뢰가 더욱 낮아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들의 힘을 모으는 것도 힘들어질 수 있다.” ― 미국이 경제 재개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지침을 따르지 않고 경제활동을 재개하려는 무계획적인 시도는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미 육가공업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육류 가공기업들은 대통령의 ‘필수 서비스’ 선언으로 보호를 받으면서도 노동자 보호 조치는 별로 하지 않았다. 일부 공장은 집단 감염지가 됐다. 많은 미국 기업들의 DNA에는 노동자 보호 개념이 없다. 정부가 나서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당한 시간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미국 실업률이 25%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신규 실업급여 청구자 수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문제는 많은 실직자들이 미래를 너무 걱정해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 뒤에도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일자리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행정부, 의회,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해야 할 일은 훨씬 더 오래 실업수당과 건강보험을 보장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위기는 더 크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한 3월 중순 이후 7주간 3350만 명이 신규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사상 초유의 ‘실업대란’이 일어났다. 미 연방정부는 실직자들에게 주당 600달러의 추가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 한국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신속한 조치와 효과적인 접촉자 추적 관리는 놀라운 본보기다. 미국은 이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보건 측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보여줬다. 이런 노력이 경제에도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은 고용보험 확대, 소규모 자영업자 지원 등의 조치를 했다. 이는 많은 국가들이 한 일들이다. 적자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이런 조치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한국이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는데. “수익이나 생산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후생을 존중하는 사회 구축 방안에 대한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다. 단기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새로운 규칙을 터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위기가 악화된 것은 기업들이 이익 극대화와 기업가치 분배에만 지나치게 몰두하고 노동자와 사회 구성원 보호에 충분한 관심을 쏟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한국은 더 나은 균형을 찾는 방법을 세계에 보여줄 준비가 돼 있다.”― 한국에서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해야할지, 선별 지급해야할지 논란이 있었다. “통계가 열악하고 이행 능력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모두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소득’이 더 나은 선택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보다 부유하고 복잡한 사회는 대상자를 선별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난한 국가들에 ‘보편적 초(超)기본소득’을, 부유한 나라들에는 더 정교한 ‘표적 대응(targeted response)’을 제안한 바 있다.”― ‘포퓰리즘적 현금 살포’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런 함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꽤 많다. 꼭 필요할 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돈을 유용하게 쓰고, 일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사회보장 제도가 가난한 사람들을 안주하게 만들 것이라는 두려움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야말로 이런 가정을 재고할 수 있는 좋은 시기다.”― 코로나19에 따른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막기 위한 방법은? “경기 침체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완화시키는 조치를 해야 한다. 물론 모든 국가가 이런 조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동등하게 갖고 있진 않다. 지원 확대 조치를 너무 일찍 중단하면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 저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이 출간됐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뉴노멀 시대’에 좋은 경제학은 어떤 의미인가. “‘좋은 경제학’은 이념이 아니라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겸손하다. 선지자 행세를 하긴 하지만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이런 경제학이 필요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 소감으로 “라듐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마리 퀴리는 상금으로 1그램의 라듐 원소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본인만의 ‘라듐’을 찾았나. (뒤플로 교수) “현 시대의 ‘라듐’은 세계 각지에서 연구 중인 젊은 연구자들이다. 우리는 상금 전액을 빈곤 퇴치를 위한 혁신적 해법 연구를 지원하는 ‘바이스펀드’에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재단 창업자인 앤디 바이스 씨가 우리가 기부한 약 100만 달러에 더해 5000만 달러를 매칭 펀드로 기부하기로 했다.” 인도 출신인 바네르지 교수는 인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도 조언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두 부부가 집에서 함께 연구할 시간이 늘지 않았을까. 답변은 평범한 부부들과 같았다. 이들은 “6살과 8살 2명의 아이가 있는데,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야 하는 시기여서 연구에 쏟는 시간이 이전보다 엄청나게 줄었다”며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박용 특파원parky@donga.com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는△1961년 인도 뭄바이 출생 △1981년 인도 콜카타대 졸업(경제학) △1988년 미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1988~1992년 미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조교수 △1992~1993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조교수 △1994~현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Poor Economics)’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 등 저술(뒤플로 교수와 공저)에스테르 뒤플로 교수는△1972년 프랑스 파리 출생 △1994년 파리고등사범학교 졸업(역사학 경제학) △1999년 MIT 경제학 박사 △1999~2002 MIT대 조교수 △2002~현재 MIT대 종신교수(최연소 임용) △2010년 존 클라크 메달 수상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두 번째 여성 수상자이자 역대 최연소 수상자)}

    •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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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300여 건 ‘살인음모’… 음주운전 없는 새해 되길[광화문에서/김재영]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음주운전 얘기다. 28일 경기 화성시에서 만취한 30대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달아나다가 자신을 붙잡은 피해 차량 운전자를 폭행해 경찰에 검거됐다. 27일 새벽엔 광주에서 술에 취한 운전자가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추락했다. 25일 밤 세종시에선 음주운전 차량이 역주행해 버스를 들이받아 3명이 다쳤다. 보도되지 않은 사고나, 다행히 사고가 나기 전에 단속에 걸린 경우는 훨씬 많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2일까지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인원만 8295명, 하루 평균 377명에 이른다. 사실상 ‘살인예비음모’로 볼 수 있는 범죄행위가 매일 이렇게나 많이 벌어진다. 경찰이 9월부터 진행한 100일 특별단속 기간 동안 하루 평균 225명이 단속됐다니 연말 들어 부쩍 증가한 셈이다. 물론 경찰이 단속을 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겠지만, 단속 기준과 처벌 수위를 강화한 이른바 ‘윤창호법’ 시행 이후 반짝 커졌던 경각심이 해이해진 건 아닌지 걱정도 든다.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닌 살인행위”라던 청와대조차 음주운전으로 장관직에서 낙마한 인사를 최근 인사청문회가 필요 없는 차관급 자리에 다시 기용할 정도니. 단순한 실수라기엔 음주운전 사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짙고 길다.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재연구센터가 음주운전 사고 피해자 300명을 설문조사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의 약 3분의 2가 사고로 3주 이상 입원 치료를 받았고 후유장애에 시달렸다고 답했다. 피해자의 22.7%는 사고 이후 직업이 바뀌었다고 했다. 직업 변동이 있었다는 응답자 중에 사고 전엔 회사원(정규직)이 55.9%로 다수였는데 사고 후엔 임시직(시간제)이 29.4%로 가장 많았다. 직장을 옮기면서 일자리의 질이 나빠진 것이다. 사고 이후 실직한 경우 재취업하기까지는 평균 2년 9개월이나 걸렸다. 개인적인 삶도 달라졌다. 사고 당시 기혼이었던 피해자의 약 8.1%가 배우자와 헤어짐(이혼, 별거, 가출 등)을 겪었다고 답했다. 경제적 여건 악화, 원만한 관계 유지 어려움, 후유장애에 따른 배우자 부담감 증가 등을 이유로 꼽았다. 응답자의 34.0%는 심리적 위축과 신체적 불편 등으로 사고 이후 사회적 모임에 참여하는 횟수가 줄었다고 했다. 이에 비하면 가해자의 고통은 미미하다. 처벌이 강화됐다지만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대부분이다. 가해자에게 지울 수 있는 사고부담금 한도는 최고 400만 원에 그친다. 이러니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 줄지 않는다. ‘음주운전=패가망신’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 있도록 엄한 처벌과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 가해자 배상 책임을 높이고 미국, 유럽 등에서 시행하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IID)’ 부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도 이제 하루 남았다. 송년회는 용케 넘겼대도 아직 신년회의 유혹이 남았다. ‘딱 한 잔은 괜찮겠지’ ‘이 정도 쉬었으니 괜찮겠지’ 재지 말고 한 방울이라도 마신다면 절대 운전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야 한다. 차라리 음주운전 단속 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 0.00%’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 내년엔 음주운전 사고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김재영 경제부 차장 redfoot@donga.com}

    • 20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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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결, “광화문 시대 10년째인 내년 톱10 안착 선거법컨설팅-법률AI서비스에도 주력”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는 역대급으로 격렬한 선거가 될 것으로 봅니다. 후보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당선될 수 있도록 바른 길을 제시하겠습니다.” 안식 법무법인 한결 대표 변호사(55·사법연수원 29기)는 17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사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부터는 선거법 위반 이후에 수사에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전적이고 예방적인 선거법컨설팅이 새로운 선거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선거법컨설팅은 업계에서 한결이 최초로 시도한 분야다. 지난해 6·13지방선거에서 처음 시도해 올해 3월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거치면서 자리를 잡았다. 한결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출신 전문위원을 영입하는 등 전문팀을 구성했다. 내년 1월엔 ‘선거운동 A to Z’라는 제목의 선거운동 지침서도 발간할 예정이다. 안 대표는 “공직선거법은 부정선거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엄격한 규제 중심의 법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조문도 279조나 될 정도로 방대하고 규정이 매우 복잡해 ‘상식적으로 이 정도는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하다가 법을 위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등 새로운 선거운동 양상도 뚜렷해지고 있어 대응이 필요하다”며 “선거법컨설팅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준법선거, 공정선거로 이어져 선거문화가 한 차원 성숙해지고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내년에도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불확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대내외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정부의 규제정책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 같다”며 “공정거래, 금융규제, 주52시간 근무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등 자본시장과 노동 분야의 이슈에 대응하는 데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총선에 따른 사회적 대립과 정치적 불안정성도 우려되고 입법 과정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며 차분하게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분야별 컨설팅 등을 통해 사전에 미리 점검하고 대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결은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점차 다양해지는 고객들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성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수합병(M&A) 등 기업법무, 금융, 부동산, 노동, 지식재산권 및 영업비밀 보호, 국제, 저작권 및 미디어, 형사, 가사 등 전문팀을 바탕으로 팀 간 협업 구조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안 대표는 “탄탄한 전문 서비스에 기초를 두되 고객이 필요로 하는 종합적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사건별로 신속하게 맞춤형 협업구조를 활성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2015년 발족한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다. 산업재해 의심 사례를 미리 찾아내 원만한 협의를 도출해 내는 프로젝트다. 그는 “준법지원, 산업안전, 노동, 기업팀 등의 유기적 협업으로 위원회의 운영을 지원하면서 한국 사회의 갈등 해소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모범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선거법컨설팅과 함께 법률 인공지능(AI) 서비스 등 신사업에도 주력할 생각이다. 한결은 SK C&C의 인공지능 ‘에이브릴’을 활용한 부동산권리분석 서비스를 상용화해 9월부터 부동산거래 플랫폼 다방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안 대표는 “인공지능이 등기부등본 등을 분석해 위험도를 판단하고 물건에 대한 요약정보를 제공해 주는 서비스”라며 “내년부터 부동산 직거래사이트 피터팬에도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며 점차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인공지능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표준화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활용범위가 점차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3월 교보빌딩에 입주한 한결은 내년이면 광화문 이전 10년째를 맞는다. 안 대표는 “광화문 시대 10년째인 2020년은 한결이 또 한번 도약을 이룰 중요한 시점”이라며 “내년에 계획하는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업계 톱10에 안착하는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설립 3년째를 맞는 사단법인 한결을 통해 더 새롭고 창의적인 공익활동을 펼쳐 사회적 책임과 나눔에서도 더 큰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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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암매장’ 거론 옛 광주교도소서 유골 40구 발견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을 암매장한 장소로 거론돼 왔던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골 40구가 발견됐다. 법무부와 5·18기념재단은 19일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부지 내 무연고 묘지 개장 작업을 하던 중 신원 미상의 유골 40구를 발굴해 수습했다고 20일 밝혔다. 유골이 발굴된 곳은 법무부가 놀이형 법체험 테마파크인 솔로몬로파크 조성 사업을 추진하는 대상 부지로 무연고 묘지 터다. 당초 이곳 공동묘지에는 개인 묘 50기와 합장묘 2기(유골 61구) 등 모두 111구의 유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관리대장에 없는 유골이 추가로 나온 것이다. 유골들은 기존 콘크리트 관 위에 마구잡이로 묻혀 있어 5·18운동 행방불명자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발굴된 유골은 국군함평병원에 안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오수 법무부 장관대행과 문찬석 광주지검장 등은 20일 현장을 찾아 확인에 들어갔다. 법무부는 국방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협조를 받아 육안 검사와 유전자(DNA) 검사 등을 통해 신원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5·18운동 사적지 22호인 옛 광주교도소는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이 주둔한 곳으로 계엄군에 희생된 행방불명자들이 암매장됐다는 증언이 여러 차례 나왔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옛 광주교도소 공동묘지 부근에 행방불명자들을 매장했다는 군 기록이 있는 만큼 암매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201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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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벌 반복하는 쳇바퀴 법정, 근원 해결하는 치유법원[광화문에서/김재영]

    4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법정에선 특별한 졸업식이 거행됐다. 한국 법원에서 처음 시도한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친 피고인에게 법원은 실형 대신 집행유예의 선물을 줬다. 30대 A 씨는 음주 뺑소니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3개월간 술을 끊고 오후 10시까지 귀가하라는 조건으로 보석을 결정했다. 숙제를 잘하고 있는지 매일 동영상을 찍어 올리게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A 씨는 “프로그램 첫 참여자로서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어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미술놀이를 하는 등 동영상엔 가족의 웃음이 묻어났다. 103일 동안 써내려간 금주일기엔 삶의 변화가 담겼다. A 씨는 “아예 술을 끊겠다. 자랑스러운 아버지, 믿음직한 남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교도소로 보냈다면 이 같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을까. 재판부가 색다른 실험을 한 것은 수사와 기소, 판결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형사사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는 반성에서다. 특히 마약 음주 등 중독에 따른 범행은 아무리 처벌해도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박주영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저서 ‘어떤 양형 이유’에서 회전문을 돌듯 법정을 드나드는 피고인에게 판사는 “무표정하게 출소와 입소 시기를 결정하고 절차를 안내하는 회전문 집사일 뿐”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선 이미 치유법원(Treatment Court), 문제해결법원(Problem-solving Court) 등으로 불리는 제도가 정식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선 1989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에 약물치유법원이 설치된 게 시초다. 이후 재범률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약물 정신건강 가정폭력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됐다. 2014년 말 현재 미국 전역에서 4300여 개의 치유법원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치유법원에선 판사와 검사, 변호인, 보호관찰관, 사회복지사, 전문상담인, 의사 등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범행을 불러온 행동이나 습관, 질병을 고치기 위해 맞춤형 처방을 내리고 사법당국의 감독하에 치료와 훈련을 수행한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형사법원으로 넘기고, 숙제를 잘 마치면 처벌을 면하게 해준다. 물론 치유법원이 만능은 아니다. 엄벌이 필요한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준다거나 법원이 개인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질병마다 다양한 처방전이 필요하듯, 우리 법원도 형벌 외에 또 다른 보완적 수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도움이 절실하고 의지가 있는 대상자를 잘 골라낸 뒤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고 제대로 감독, 평가하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우선 시범사업을 확대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해 정식 도입을 논의해 볼 만하다.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마치고 재판부는 “이제 작은 씨앗 하나를 뿌린 것”이라고 했다. 싹이 무럭무럭 자라나 우리 법정이 단죄하기만 하는 차가운 법정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치유하는 따뜻한 법정의 역할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재영 사회부 차장 redfoot@donga.com}

    •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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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호사-세무사 갈등 해법… 국민 편익 고려 우선해야[광화문에서/김재영]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세무사법 개정을 놓고 변호사와 세무사 업계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변호사도 세무대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라는 헌법재판소의 권고 마감시한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세무사들은 국회 앞에서 연일 1인 시위를 펼치고 있고, 대한변호사협회는 최근 국회를 방문해 의견을 전달했다. 지난해 4월 헌재는 2004∼2017년 변호사 자격 취득자에게 세무사 자격을 주되 세무대리 업무는 할 수 없도록 한 세무사법 규정은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운전면허는 있는데 운전은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모순에 대해 헌재는 올해 말까지 법을 고치라고 했다. 세무사 전체 1만3000여 명보다 많은 변호사 1만8000여 명이 세무대리 허용 대상이 된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조세소위원회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개정안은 △기획재정부안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안 △민주당 이철희 의원안 등 세 가지다. 정부안은 변호사에게 모든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하되 실무 교육과 평가 등을 이수하도록 했다. 변호사들은 이 의원안을 선호한다. 실무 교육 없이도 변호사들이 세무업무 전반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 반면 세무사들은 김 의원안의 통과를 요구한다.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세무대리 업무에서 회계장부 작성, 성실신고 확인 업무 등을 제외했고, 실무 교육도 강화했다. 변협 측은 “장부 작성과 성실신고 업무는 법에 대한 해석, 적용을 포함하는 세무대리의 핵심 업무”라며 “이를 제외하는 건 헌재 결정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세무사회 측은 “변호사에게 법률과 관계없는 회계 업무까지 허용하는 것은 전문자격사 제도의 근본 취지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맞선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해 쉽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직역(職域)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변호사 3만 명 시대를 앞두고 생존경쟁에 내몰린 변호사들이 다양한 법률서비스를 내세워 영역을 확장하면서 다른 분야 전문자격사와 마찰을 빚고 있다. 반대로 변리사 법무사 노무사 등도 해당 서비스 시장이 포화하자 “우리도 소송을 대리할 수 있게 해 달라”며 변호사의 고유 업무를 넘보려 한다. 국회 회기마다 이 같은 갈등이 되풀이된다. 특정자격사법을 개정해 직역의 칸막이를 높이거나 범위를 확대하려고 하면 다른 자격사들이 ‘생존권 수호’를 외치며 반대하는 식이다.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개정하다 보니 관련법은 복잡하게 꼬여 있다. ‘법조인접직역’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미국처럼 전문자격을 통합해 장기적으론 변호사와 회계사로 단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자격사를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면 영국 독일 등처럼 변호사와 전문자격사 간 동업(MDP)을 허용해 한곳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해법의 대전제는 전문자격사의 ‘밥그릇’ 확보가 아니라 국민 편익에서 찾아야 한다. 국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골라 누릴 수 있도록 꼬여 있는 실타래를 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재영 사회부 차장 redfoot@donga.com}

    •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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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의 ‘결재’ 건너뛴 0.12%의 예외적 개혁[광화문에서/김재영]

    “집 빨리 안 팔면 감옥 간다고요?”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많은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무주택자에게 청약 기회를 확대한다는 좋은 취지인데 벌칙 조항이 문제였다. 규제 지역에서 청약에 당첨된 1주택자가 새집 입주 뒤 6개월 안에 기존 집을 팔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 입법예고 40일간 논란이 끊이지 않자 국토부는 이 조항을 삭제했다. 담당 공무원에게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서 미안하지만 이래서 입법예고가 있는 것이다. 법령안의 내용을 미리 국민에게 알리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거치는 법률과 달리 시행령, 규칙 등 하위 법령은 행정부 마음대로 제정, 개정할 수 있어 입법예고가 특히 중요하다. ‘국민 결재란’인 셈이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추진한 검찰 개혁엔 국민 결재란이 잘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는 심야 조사와 별건 수사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인권보호수사규칙 제정안’을 15∼18일 단 4일간 입법예고했다. 이를 수정해 25일 재입법예고했지만 역시 기간은 닷새에 불과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40일 이상 하도록 한 행정절차법에 비추어 보면 지나치게 짧다.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서 확인하니 올해 들어 이달 27일까지 입법예고한 부처 법령은 1644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1346건(81.9%)이 한 달 이상 입법예고됐다. 1주일 미만은 43건(2.6%)에 불과했다. 이 중 38건은 부처 직제와 정원 등의 단순 조직 변경, 2건은 법률 개정에 따른 시행령 변경이었다. 1건은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한 것이다. 인권과 관련한 주요 법령을 새로 만들면서 입법예고 기간이 1주일에도 못 미친 건 인권보호수사규칙 입법예고와 재입법예고가 올해 들어 ‘유이’하다. 0.12%의 예외다. 1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은 아예 입법예고를 생략했다. 검찰 특별수사부를 축소하고 명칭을 반부패수사부로 변경하는 내용으로, 조 전 장관의 검찰 개혁 과제 중 ‘법제화 1호’다. 물론 행정절차법 41조에 따라 입법예고를 건너뛸 수 있다. 생략 가능한 예외 규정을 따져봤다. ①‘신속한 국민의 권리 보호’. 46년 된 특수부 간판을 내리는데 40일을 더 못 기다릴까. ②‘상위 법령 등의 단순한 집행’.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축소하는 중대한 변경이다. ③‘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경우’. ‘국민의 명령’인 검찰 개혁인데 그럴 리가. ④‘단순한 표현·자구를 변경하는 경우’. 국군기무사령부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검찰 공안부를 공공수사부로 이름만 바꿀 때도 입법예고를 빼먹진 않았다. ⑤‘예고함이 공공의 안전·복리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혁명적 조치나 국가기밀도 아닌데. 딱 하나 남는다. ‘예측 곤란한 특별한 사정의 발생’. 갑작스러운 장관의 퇴임 전에 뭔가 해야 한 걸까. 입법예고는 요식행위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급하다고, 귀찮다고 국민의 의견을 묻는 과정을 줄이거나 생략할 수는 없다. 개혁은 내용과 속도만큼이나 절차도 중요하다. ‘국민의 결재’를 받는 절차가 국무회의와 어전회의를 구별하는 중요한 차이다. 김재영 사회부 차장 redfoot@donga.com}

    •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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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일 개막 경주엑스포 ‘문화로 여는 길’ 펼쳐져

    경주는 도시 전체가 문화재이자 볼거리지만 올가을에는 한층 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올해 10회를 맞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11일 경북 경주시 천군동 보문관광단지 엑스포공원에서 개막된다. ‘문화로 여는 미래의 길’을 주제로 11월 24일까지 이어진다. 경주엑스포공원 백결공연장에서는 세계 각국의 공연팀이 펼치는 화려한 무대가 한 달간 이어진다. 2008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캄보디아 왕립무용단’은 12∼13일 1000년 역사를 가진 크메르 문명의 클래식 무용을 선보인다. ‘호찌민 시립 봉센민속공연단’도 같은 날 베트남의 색채가 배어있는 연주회를 펼친다. 25∼27일에는 ‘이집트 룩소르 지역의 전통댄스 공연팀’이 무대를 갖는다. 국내 전문 음악팀이 울려내는 클래식 선율도 공연페스티벌을 황홀하게 적신다. 13일 국내 탱고 대가들이 아름다운 탱고 음악으로 경주엑스포에 기품을 더한다. 스토리텔링 MC의 해설과 영상이 함께하는 ‘N.M.C솔리스트 앙상블 클래식 스토리’ 공연도 19일과 26일 양일간 열린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입장권은 어른 기준 1만2000원이다. 자세한 내용과 입장권 예매는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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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산마을∼부용대 아우르는 13.7km 걸으며 황금들녘 ‘만끽’

    경북 안동을 찾았다면 하회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가며 물돌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년간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이다. S자로 마을을 휘감아도는 낙동강, 깎아지른 부용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울창한 노송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과거엔 강을 건너려면 나룻배를 타야 했으나, 최근 섶다리가 생기면서 이동이 간편해졌다. 마을 중심에 자리잡은 고택은 비슷해 보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징비록’을 집필한 옥연정사, 겸암 류운룡 선생의 위패를 모신 화천서원, 최초의 류씨 대종택 양진당, 서애가 기거한 충효당 등이 필수 코스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상설공연으로 진행되고, 매년 가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린다. 전통 그네, 각종 체험시설, 쇼핑도 가능하다. 하회마을 일대는 황금들녘을 느끼며 걷기에도 좋다. 한국관광공사는 10월에 걷기 좋은 길로 유교문화길 2코스인 ‘하회마을길’을 선정했다. 소산마을과 병산서원, 하회마을과 부용대를 아울러 도는 여행길이다. 안동한지∼소산마을(삼구정)∼병산서원∼만송정∼하회마을장터∼현회 삼거리로 이어지는 약 13.7km 코스다. 여유 있게 걸으면 4∼5시간 걸린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안동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경북도와 경북도콘텐츠진흥원은 안동 지역 독립운동과 관련된 관광자원과 관광 편의시설을 서로 연계해 ‘안동투어 패스’를 출시했다. 모바일 티켓 하나로 안동 관광지에 무료로 입장하고 맛집, 공연, 숙소 등의 제휴점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유교랜드, 임청각 독립운동 VR·AR 체험존 ‘놀팍’(NOLPARK), 월영교 황포돛배, 구름에 리조트 카페 등이 포함된 48시간 자유이용권과 하회마을, 독립운동기념관을 함께 체험하는 종합상품 등으로 구성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상품 예약과 구매가 가능하다. 올가을 안동을 찾으면 색색의 패러글라이딩이 창공에 화려하게 펼쳐지는 장면도 즐길 수 있다. 이달 26, 27일 이틀간 ‘제1회 안동웅부배 전국패러글라이딩대회’가 길안 활공장에서 열린다. 대회 첫날엔 현장 신청희망자의 패러글라이딩 체험 비행과 선수들의 연습 비행이 있다. 둘째 날 오전 10시 길안면 강변둔치(착륙장)에서 개회식을 시작으로 고급부 조종사부와 단체부 시군구 협회부 등 2개 부문으로 경기를 진행한다.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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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희-한석봉… 大家글씨 찾는 재미 ‘쏠쏠’

    경주 옥산서원(사적 154호)은 세계유산 2관왕이다. 2010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에 포함된 데 이어 올해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으로도 등재됐다. 강학 제향 교류 등 서원의 다양한 역할 중에서 옥산서원은 출판사와 도서관의 역할에 특화돼 있다. 서원을 거닐다 보면 은은한 묵향에 절로 취하게 된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 있는 옥산서원은 이곳 출신 대학자 회재 이언적 선생(1491∼1553)을 기리는 곳이다. 회재는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황과 함께 조선시대 유학을 대표하는 ‘동방 5현’의 한 명으로 성균관 문묘에 공자와 함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조선의 성리학을 독창적,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회재의 학문은 제자인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의 뼈대를 이뤘다. 옥산서원 앞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자계천이 흐른다. 회재가 이름붙인 5개 바위 가운데 하나인 세심대(洗心臺)엔 퇴계의 글씨가 남아 있다.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라’는 뜻이다. 정문은 역락문을 지나 만나는 무변루(無邊樓)는 누마루를 서원 건축에 처음으로 도입한 사례다. 학생들의 휴식공간으로 정면 7칸 건물인데 위층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그 양측은 각각 정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이다. 그 밖으로 좌우 각 한 칸에 덧붙인 누마루가 있다. 2층 누마루에 오르면 서원 내부는 물론 멀리 계곡과 산까지 그림처럼 펼쳐진다. 무변루를 지나면 강학 공간이다. 무변루와 강당인 구인당 사이에 기숙사인 민구재와 암수재가 있다. 옥산서원에선 편액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당대 대가들의 글씨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인당 처마의 ‘옥산서원’ 편액은 추사 김정희가, 대청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문신이자 명필 이산해가 썼다. ‘구인당’과 ‘무변루’ 편액은 한석봉의 글씨다. 중요한 서책을 보관하고 출판했던 옥산서원에는 보물급 문화재도 많다. 국보 ‘삼국사기’ 본질 9책 50권이 옥산서원유물관에 있다. 아쉽지만 열람은 불가능하다. ‘동국이상국전집’을 비롯한 고서 4000여 권을 포함해 무형 유산과 기록 유산 6300여 점도 있다. 서원 앞 계곡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회재가 살았던 사랑채인 독락당(보물 413호)으로 갈 수 있다. 회재가 태어난 서백당이 있는 경주 양동마을의 명품 고택들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앞으로 옥산서원 교육관 건립과 서원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 경주를 대표하는 관광콘텐츠로 육성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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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진 유학을 다시 닦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최초라는 타이틀엔 무게가 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서원에서 모시는 분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인물이다. 동방 성리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회헌 안향선생(1243∼1306) 이다. 최초의 서원에서 길러낸 수많은 선비들의 꼿꼿한 정신이 독립운동까지 면면히 이어져 영주는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소수서원은 신라시대 때 창건된 숙수사(宿水寺) 터에 세워졌다. 1543년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안향 선생을 기려 백운동(白雲洞)서원으로 세웠고 1550년 퇴계 이황이 조정에 건의해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소수(紹修)’란 무너진 유학을 다시 닦게 한다는 의미다. 죽계천을 따라 아름드리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 있다. 입구의 솔숲은 이름마저 학자수(學者樹)다. 정문인 사주문으로 들어서면 세로로 긴 형태의 강학당을 만난다. 학교를 앞에 사당을 뒤에 두는 중국식 ‘전학후묘(前學後廟)’와 달리 소수서원은 서쪽을 으뜸으로 하는 우리식 방향잡기를 따라 ‘동학서묘’(동쪽에 강학당, 서쪽에 문성공묘)를 택했다. 강학당 뒤로 서에서 동으로 도서관인 장서각, 스승의 숙소인 직방재와 일신재, 학생 기숙사인 학구재와 지락재가 나온다. 기숙사는 행여 스승의 그림자를 밟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뒤로 두 칸 물려 지었다. 대청 및 방바닥 높이도 스승숙소에 비해 30cm를 낮췄다. 학문뿐만 아니라 예의와 인격수양의 도장이라는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엄격한 질서만 강조한 건 아니다. 퇴계가 소수서원에서 무쇠장이를 제자로 받을 만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겐 신분을 따지지 않고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소수서원에서 백운교나 죽계교를 건너면 소수박물관, 선비촌으로 이어진다. 소수박물관은 성리학과 선비 문화를 조명한 곳으로, 소수서원에서 보관하던 유물을 전시한다. 소수박물관에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념으로 내년 5월까지 특별기획전을 연다. 국보로 지정된 안향초상을 비롯해 보물 2점, 국가민속문화재 1점, 도지정문화재 4점 등 50여 점을 전시한다. 선비촌은 영주지역의 선비들이 살던 공간을 그대로 재현했다. 영주시는 세계유산인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선비문화 관광도시이자 국립산림치유원 등 자연자원을 활용한 힐링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가을에 영주를 찾으면 힐링과 건강을 챙기는 다양한 축제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이달 12∼20일 영주시 풍기읍 일원에서 ‘2019영주풍기인삼축제’가 열린다. 질 좋은 풍기인삼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 우량인삼선발대회, 인삼캐기 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축제 기간 소백산과 시내 일원을 걷는 소백힐링걷기대회도 열린다. 무량수전과 함께 아름다운 은행나무 길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 일원에서는 26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영주사과축제가 열린다. 전시, 체험, 판매장과 사과홍보관, 버스킹 공연, 사과 작품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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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체는 안 보이고… ‘미끼’만 남은 지역화폐[광화문에서/김재영]

    “이렇게 좋은 걸 안 쓰면 바보죠.” 인천 연수구에 사는 40대 주부 김모 씨는 지역화폐인 ‘연수e음’ 예찬론자다. 한 달에 사용액 50만 원까지는 10%, 100만 원까지는 6%를 캐시백으로 돌려받는다. 월 한도가 없던 초기에 비하면 아쉽지만 여전히 다른 카드에 비해 혜택이 좋다. 김 씨는 “학원, 미용실, 커피숍 등에서 많이 사용한다”며 “1년이면 거의 100만 원을 돌려받고, 지역경제에 도움도 된다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전국에서 ‘지역화폐’가 대박을 터뜨렸다. 올해 2조3000억 원이 발행될 것으로 예상돼 3년 만에 규모가 20배로 늘었다. 지방자치단체끼리 발행액, 할인율을 두고 경쟁도 치열하다. 취지도 좋다. 지역의 돈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해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착한 소비’다. 모두에게 좋은 사업인데 의외로 반발도 있다. 내년 2500억 원 규모로 지역화폐를 발행하려던 대전시의 계획은 지난달 시의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미 원도심인 대덕구에서 발행하고 있는데 시 전체의 지역화폐가 나오면 경제력이 강한 신도시권으로 소비가 쏠릴 것이라는 우려다. 특정 단체에 사업을 몰아주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내년에 1조 원 규모로 발행할 계획인 부산에서도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깜깜이’ 논란이 나오는 건 지역화폐 발행을 전적으로 관(官)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화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칼자루를 쥔 건 정부다. 지난해 말 정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해 2022년까지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을 8조 원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역화폐 발행액의 4%를 국비로 지원한다. 지자체가 액면가보다 저렴하게 지역화폐를 판매하면 차액을 국비로 일부 보전한다. 올 한 해만 920억 원에 이른다. 지자체들은 혜택이 줄기 전에 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앞다퉈 발행을 서두른다. 지자체장의 방향이 정해지면 전문 대행사업자를 통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흥행을 위해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내세운다. ‘100억 돌파’ ‘200억 돌파’ 등의 실적은 지자체장의 치적이 된다. 혈세가 들어가지만 제대로 된 재정 추계도 없었다. 부산은 정부의 내년 지역화폐 발행 규모 접수가 임박하자 발행 목표를 1조 원으로 늘렸다. 일단 지른 것이다. 1조7000억 원 흥행에 성공한 인천에선 이미 탈이 났다. 월 한도 없이 10%, 11%씩 주던 캐시백으로 재정 부담이 가중되자 일부 구가 혜택을 급하게 줄이거나 부랴부랴 추가경정예산으로 메웠다. 지금의 지역화폐는 사실상 정부가 제공하는 할인쿠폰이다.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지역화폐가 주민 참여의 공동체 운동 성격인 것과 차이가 크다. 언젠가 정부 지원이 끊기면 열기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지역사회의 참여를 통해 인센티브가 줄어들더라도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기업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시가 지원하는 영국 브리스틀시, 민관 합동 발행위원회를 통해 함께 고민하는 경기 시흥시 사례 등을 참고할 만하다. 공동체에 재능 기부 등을 하면 지역화폐로 보상하는 방법 등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끼로 유혹하는 개업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김재영 사회부 차장 redfoot@donga.com}

    • 201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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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을 알리려는 입에 재갈… ‘사실적시 명예훼손’ 부작용[광화문에서/김재영]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내 성폭행’ 사건 가해자가 이달 5일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직장 내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시킨 사건이었다.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린 지 거의 2년 만에 피해자는 다시 웃을 수 있게 됐다. 신입사원이던 A 씨는 2017년 1월 회식 후 교육담당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회사에도 알렸지만 회사는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다. 그해 10월 A 씨는 용기를 내 인터넷에 글을 올려 폭로했다. 지지와 응원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꽃뱀’이라는 수군거림도 견뎌야 했다. 가해자는 오히려 A 씨를 명예훼손과 무고로 고소하며 압박했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A 씨는 자신만의 감옥에 갇혀야 했다. 단지 진실을 밝히려 한 고발인에게 세상은 ‘명예훼손’이라는 협박으로 응수한다.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회사의 ‘갑질’을 제보한 직원, 임금 체불을 피켓 시위로 알린 근로자, 건물주의 횡포를 토로한 세입자 등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진실을 알리는 것이 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진실을 적시해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고소하는 자는 허위 사실임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물론 이런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조항도 있지만 고소 자체를 막을 순 없다. 법정이 낯선 일반인들은 고소하겠다는 얘기만으로도 주눅이 든다. 이 때문에 폭로를 조기에 잠재우기 위해 가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위협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대한변호사협회와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실은 심포지엄을 열고 이 조항의 폐지 여부에 대해 논의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한다고 주장했다.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실을 발설하기로 마음먹는 시민이 심각한 내적 갈등에 빠지게 한다”며 “시민들은 학습효과를 통해 엄격한 자기검열 장치를 작동시킨다”고 말했다. 반면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성범죄 피해 전력, 동성애 등 성적 정체성, 이혼, 가족관계 등 사생활이 공개돼 기본권이 침해될 위험성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퍼지면 피해를 회복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들었다. 하지만 사실을 적시했다고 처벌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 일본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미국은 명예훼손은 대부분 민사적 방법으로 해결한다. 독일, 프랑스 등은 명예훼손 처벌 규정이 있지만 내용이 사실인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 사생활 침해가 문제가 된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을 폐지하되 사생활 보호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는 그리스 신화, 페르시아 신화, 삼국유사 경문왕 설화 등 다양한 버전이 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론엔 공통점이 있다. 사실을 퍼뜨린 이발사(또는 복두장인)는 처벌받지 않았다. 진실을 말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게 해선 안 된다. 김재영 사회부 차장 redfoot@donga.com}

    •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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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차 산업혁명 시대 지녀야할 인성 모색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수서원이 있는 ‘선비의 고장’ 경북 영주에서 인성의 함양을 주제로 한 의미 있는 포럼이 열린다. 경북 영주시는 17, 18일 이틀간 영주문화예술회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성’이라는 주제로 ‘제1회 세계인성포럼’을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현대사회에서 ‘인간다움’을 발현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삶을 조명하고, 선비정신의 확산을 통한 인성회복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국내외 석학 및 학생, 교사,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1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이배용 코피온 총재(전 이화여대 총장)와 조동성 인천대 총장의 기조강연이 이어진다. 18일에는 ‘대한민국 선비대상’ 첫 수상자인 정범진 전 성균관대 총장과 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이 특별강연을 한다. 17, 18일 이틀간 학교, 사회, 가정에서의 인성을 주제로 한 3개의 세션 발표가 진행된다. 공자와 맹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山東)성 지닝(濟寧)시 맹자서원집행원의 인옌루(殷延祿) 원장, 이희범 한국정신문화재단 이사장 등 국내외 인성분야 최고 석학 20여 명이 참여한다. 포럼을 마무리하는 종합토론에서는 이진구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를 좌장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성교육 방향 및 교육기관과 정부기관의 역할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이번 포럼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신 가치인 선비정신의 의미를 되새기고 현대사회 문제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초중고교생, 학부모, 교사뿐 아니라 인성과 교육에 관심 있는 누구라도 포럼에 참여할 수 있다. 현장 등록 후 관심 있는 주제의 세션을 참관하면 된다.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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