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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다혜 씨는 요즘 수시로 e메일 함을 열어본다. 재테크를 알려주는 ‘어피티 머니레터’, 문화 정보를 담은 ‘앨리스 미디어’, 책을 추천하는 ‘리딩리딩’…. 출퇴근길이니 휴식 시간에 틈틈이 이들 콘텐츠를 본다. 박 씨는 “관심 정보를 한번에 볼 수 있어 편리하다. 친구에게 받은 것 같은 기분도 든다”고 했다. 메일로 원하는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구독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에세이 재테크 문화 시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구독료는 무료부터 월 2만 원 선으로 다양하다. ●“매일 신선한 정보를 당신에게” 대세를 이루는 건 일상 에세로, 메일 구독 서비스의 개념을 알린 ‘일간 이슬아’의 뒤를 잇는 창작물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일간 매일마감’은 매일 저녁 PDF형식의 메일을 발송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작가 모호연, 전 다큐멘터리 감독 지민, 다큐멘터리 감독 깅이 번갈아가며 글을 쓴다. ‘매감 미술학원’, ‘내 손으로 러시아 여행기’, ‘공포영화 대신 봐드림’ 등을 연재한다. 작가들의 솔직한 입담과 손 그림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는 반응이 많다. 문보영 시인은 지난해 말 ‘일기 딜리버리’를 시작했다. 매주 2,3편씩 에세이나 소설을 보내고 매달 두 번 손 편지를 쓴다. 문 시인은 “메일 구독 서비스는 훌륭한 마감 촉진제”이라며 “특별한 플랫폼 없이 독자와 바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관심을 갖는 젊은 창작자들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소설 음악 그림을 함께 제공하는 ‘트리플 픽션’과 이정현 작가가 매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구독 신청을 받아 에세이를 전하는 ‘일상시선’도 반응이 좋다. 가수 이랑은 암에 걸린 친구를 돕기 위해 6개월간 매일 시, 소설, 영상을 보내주는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서비스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필요한 정보 쌓이면 ‘개인 도서관’ 한 분야를 깊게 다루는 서비스도 많다. ‘어피티 머니레터’는 경제 상식은 물론 ‘까먹은 돈 찾아주는 앱’, ‘똑똑한 온라인 쇼핑’, ‘주거리 은행 정하기’ 같은 재테크 정보를 제공해 2030 여성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20대 직장인 송민하 씨는 “재테크를 하고 싶은데 신문은 어렵고 카페 정보는 지나치게 방대했다. ‘어피티…’는 젊은 여성을 위한 맞춤형 경제 정보지 같다”고 했다. ‘줌줍’은 예술 경영 관련 소식지를 표방한다. ‘디독’은 디자인을 다룬 해외 기사를 번역해 발송한다. 문화 트렌드와 맛집에 대한 내용을 전하는 ‘앨리스 미디어’도 있다. 음악 전문기업 스페이스 오디티에서 만든 ‘오디티 스테이션’은 유튜브 동영상과 함께 추천 음악을 제공한다. 직장인 밴드 ‘그들이 기획한’도 최신 밴드 소식과 음악계 이모저모를 담은 뉴스레터 ‘그들이 기획한 이슈’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정치를 알기 쉽게 풀어주는 ‘폴리티카’, 채팅 형식으로 상식을 전하는 ‘디에디트’도 20, 30대 사이에서 인기가 뜨겁다. 기업에게는 뉴스레터가 좋은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할머니들이 손수 만든 매듭 팔찌와 반지를 판매하는 마르코로호는 최근 ‘할모니레터’를 시작했다. 매달 책 8권을 골라 소개하는 북큐레이션 서비스 ‘리딩리딩’은 유료 회원은 물론 비회원에게도 뉴스레터를 발송한다. 조민선 리딩리딩 대표는 “메일은 독자에게 바로 가닿을 수 있어 친근감을 쌓으면서 서비스도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한강 소설가(49·사진)는 지난해 공식 석상에서 자주 마감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소년이 온다’, ‘흰’에 이은 ‘눈 3부작 연작 소설’을 완결하는 작품의 집필이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작가를 오래 힘들게 한 소설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첫 회분을 발표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다. 주인공은 작가의 페르소나로 읽히는 소설가 k. 2014년 학살을 다룬 작품을 발표한 이후 k는 악몽에 시달린다. 무덤 같은 수천 개의 통나무 위로 시퍼런 파도가 덮치고, k는 무덤을 구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몸부림치며 그곳을 빠져나온다. 4년이 지나 k는 친구 인선을 통해 제주4·3사건을 접하면서 오랜 악몽이 현실의 예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손가락을 다친 인선 대신 인선이 키우는 새를 돌보기 위해 제주도로 가는 길. k는 언젠가 인선이 들려준 인선 어머니의 일화를 떠올린다. “(어머니는) 어린 자매가 마침내 가족들의 시신을 찾아내 장사를 치른 과정에 대해서도, 그 후 어떤 끈기와 행운으로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어. 오직 그 눈(雪)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이야.” 소설에는 과거 k가 작품을 쓰면서 겪은 심적 고통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가족에게 어두운 영향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거나 위경련, 편두통을 겪는 모습이 한강 소설가가 ‘소년이…’를 집필하던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k처럼 한강 소설가도 샘터 잡지 기자 출신이다. ‘소년이…’는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이다.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무덤이 나오는 악몽을 꾸던 k는 인선의 부탁으로 작고 여린 새를 돌보러 제주도로 가는데, 이는 집단적 죽음으로부터 개별적인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무덤, 나무토막, 눈이 빚은 정갈한 이미지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3년 만에 발표한 이번 작품은 2회분으로 나눠 소개할 예정이다. 이상술 문학동네 문학1팀장은 “처음에 중편으로 예상했지만 분량이 길어져 장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년 상반기에 눈 3부작 연작 소설집을 출간할 계획이다”라고 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사회적 메시지는 줄어든 반면 사적 영역을 다룬 작품이 늘었다. 노인에 대한 서사가 많았고 죽음도 담담하게 다루는 경향이 짙었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6일 열린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서 심사위원들은 응모작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올해 신춘문예 응모작은 총 6612편으로 지난해보다 다소 감소했다. 응모자도 2196명으로 소폭 줄었다. 분야별로는 시 4762편, 단편소설 552편, 중편소설 285편이었다. 시조(611편) 동화(234편) 시나리오(74편) 영화평론(40편)은 응모작이 늘었다. 희곡은 39편, 문학평론은 15편이었다. 올해도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 해외 곳곳에서 e메일로 응모해 왔다. 예심에는 △김중일 박준 시인(시) △정이현 편혜영 백가흠 손보미 소설가(단편소설) △김도연 소설가, 정여울 조연정 문학평론가(중편소설) △정윤수 영화감독,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시나리오)가 참여했다. 김중일 시인은 올해 응모작에 대해 “사회적 의미를 담은 작품은 줄고 개인적인 영역을 다룬 작품이 늘었다. 특히 선언적인 성격이 강했던 페미니즘 이슈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했다. 박준 시인은 “시간 장소 성별이 모호한 시감(詩感)이 도드라졌다. 감수성이 파편화돼 모든 삶의 영역에 스며든 느낌이 강해졌다”고 평했다. 단편소설에서는 노인, 연애를 다룬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정이현 소설가는 “노인에 대한 서사가 많았는데 죽음조차 담담하게 다루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응모자의 연령대가 높아진 느낌이다”고 했다. 편혜영 소설가는 “사회적 소수자와 인권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았다”고 했다. 백가흠 소설가는 “독백 형식의 작품이 여럿 있었지만 사회적 울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흐지부지 만났다 헤어지는 연애 이야기도 상당수였다”고 말했다. 중편소설은 소재와 장르가 다양해졌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게임중독 질병 죽음 같은 다채로운 소재가 등장했고 스릴러 로맨스 역사소설 등 장르적 실험도 예년보다 늘었다. 파격적 스토리와 도발적인 사건을 담은 작품은 넘치는 반면 작은 사건이라도 충실하고 개연성 있게 묘사한 작품은 드물었다”고 했다. 조연정 문학평론가는 “누군가의 죽음이나 그로 인한 상처 혹은 생활고로 고통받는 이야기가 많았다. 청년 세대의 빈곤과 취업난을 다룬 이야기는 여전히 주를 이뤘다”고 했다. 김도언 소설가는 “소설에서 극적인 사건도 필요하지만 삶의 미세한 흔들림을 포착한 문장도 중요하다. 그런 문장 없이 이야기만 나열된 소설은 아쉬웠다”고 했다. 시나리오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작품이 적지 않았다. 정윤수 감독은 “공동체가 겪는 상처와 박탈감, 피해의식을 조명한 작품이 많았다. 사회적인 분노가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는 “지난 10년간 국내 시나리오계를 지배한 사극과 스릴러가 확연히 줄고 장르가 다변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날 예심 결과 시 부문 18편을 비롯해 중편소설 11편, 단편소설 9편, 시나리오 9편이 본심에 올랐다. 시조 희곡 동화 문학평론 영화평론은 예심 없이 본심을 진행한다. 당선자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내년 동아일보 1월 1일자에 게재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푸코 사후 34년 만인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된 ‘성의 역사’ 완결판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푸코 권위자인 오생근 서울대 불문학과 명예교수가 언어를 옮겼다. ‘성의 역사’는 푸코의 대표작이자 말년의 저작이다. 1976년 ‘지식의 의지’를 펴낸 뒤 8년 만인 1984년에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를 동시에 출간했다. ‘육체의 고백’은 푸코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 매달린 미완성 유작이다. 푸코 자신은 출간을 반대했으나 유족들이 원고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육체의 고백에서 푸코는 2∼5세기 초기 기독교 사상과 인식에 나타난 성의 문제를 탐구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클레멘트 등 성직자들이 성 문제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꼼꼼히 살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재미 작가 이성애(60·사진)가 최근 장편소설 ‘툰드라의 시간’(예지)을 펴냈다. ‘하와이에 핀 민들레’, ‘바다에 피는 꽃’에 이은 세 번째 장편이다. 이메일로 만난 그는 “육신을 갖고 태어난 모든 이들은 필연적으로 고난을 겪게 마련이다. 숙명과도 같은 시련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탐색한 작품”이라고 했다. 주인공은 40대 초반의 석형우.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그는 대권을 꿈꾼다. 하지만 선거 유세 중 어머니와 작은아버지의 관계를 둘러싼 루머가 터지고, 의문의 가족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석형우는 고뇌에 빠진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국제 무대를 배경으로 지난한 삶을 그렸어요. 35년째 해외에서 살다 보니 자연히 글의 무대가 넓은 편이죠. 이번 작품은 추리적 요소가 강해 흥미롭게 읽힐 겁니다.” 그는 1986년 하와이로 건너가 구멍가게부터 사탕수수 공장까지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했다. 1997년 지금 살고 있는 미국 유타주로 건너갔다. 소설을 처음 쓴 건 2005년. 한국을 떠나온 지 20년이 지나 모국어가 희미한 상태에서 겁도 없이 장편소설에 도전했다. 단편소설 ‘귀향’으로 윤동주 해외동포문학상을, 수필 ‘누명’ 등으로 수필세계 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최근 미국 문학계에서 한국인 2세나 1.5세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미국 이웃들이 읽어봤느냐고 물어볼 정도”라고 했다. “더 많은 한국 작가의 작품이 번역돼 세계 무대에 진출하길 희망합니다. 훗날 제 소설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는 손주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교열과 표지 작업까지 마무리했다. 이제 ‘그것’만 받으면 출간이다.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까. 은희경 작가의 장편소설 ‘빛의 과거’ 출간(올해 8월)을 앞두고 은 작가와 이민희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팀장은 머리를 싸맸다. 책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추천사 때문이었다. 고심 끝에 택한 인물은 신형철 평론가와 정세랑 작가. 이 팀장은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 정 작가에게, 문학적 조명이 필요하다고 여겨 신 평론가에게 추천사를 각각 부탁했다”고 했다. 추천사는 책의 핵심을 전하는 짤막한 글이다. 보통 권당 한두 편을 받는데, 데뷔작이나 기대작은 홍보용 추천사를 따로 받기도 한다. 청탁 1순위 기준은 책과의 궁합. 작품 세계가 비슷하거나 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을 신중히 고른다. 장류진 작가의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의 추천사를 정이현 작가가 쓴 건 ‘일, 도시, 사랑’이란 공통분모 때문이었다. 추천사는 보완재 역할도 한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가벼운 책은 어렵게 쓰는 작가에게, 무거운 책은 유머를 갖춘 작가에게 글을 받아 균형을 잡으려 한다”고 했다. 동료 작가의 작품 평가는 부담스러운 일. 이 때문에 요즘에는 지인이 응원 글처럼 추천사를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작가와 친분이 깊은 인물 간의 역사가 깃든 추천사는 한결 깊고 그윽해진다. 장석남의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에서 권여선 작가는 “내가 아는 그는 술 퍼먹고 무언가를 묻는 자였다. 그의 질문은 사소하여 철학적이었다. 내가 읽은 그는 시 속에서 웅얼웅얼 답하는 자였다. 그의 대답은 절박하여 미학적이었다”고 썼다. 인권, 페미니즘, 과학 등 책의 주제와 관련 있는 이들도 종종 추천한다. 이는 새로운 독자층을 공략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일상에 만연한 폭력을 다룬 애나 번스의 장편소설 ‘밀크맨’은 김영란 전 대법관과 김보라 영화감독이 추천사를 달았다. 아나운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홍 작가의 신작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박지윤 아나운서가 추천했다. 해외 문학 작품은 유명 인물의 추천평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추천한 책은 따로 홍보가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한다. 국내에서 잘 팔릴 만한 소설은 국내 작가에게 따로 추천사를 맡긴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은 올해 1월 출간했을 때는 추천사를 넣지 않았지만 저자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정이현 작가에게 추천글을 받아 새로 실었다. “추천사는 대세 작가를 보여주는 가늠자”라는 말도 있다. 쓰는 이가 대중성을 갖춰야 홍보 활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출판계에 따르면 정이현 김연수 정세랑 박상영 소설가와 신형철 강지희 인아영 평론가가 추천사를 자주 쓰는 편이다. 백다흠 악스트 편집장은 “정이현 작가는 과하지 않은 선에서 친절하게 책을 설명하고 신형철 평론가는 문학적으로 분석한다”고 평가했다. 정세랑 작가는 순문학은 물론 장르문학 추천사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추천사계 리베로’로 불린다. 역대급 추천사는 작가에 대한 수식어로 남는다. 박범신 작가가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에서 언급한 “그녀는 괴물 같은 소설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추천사는 편집자의 고유 권한이지만 저자와 협의를 거친다. 추천사를 원하지 않거나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추천사에 대한 호불호도 갈린다. 한 중견 소설가는 “추천사는 기본적으로 권위에 기대는 느낌이라 좋아하지 않는다. 잘못하면 주례사처럼 보일 수 있어 소설이나 해설의 발췌문을 더 선호한다”고 했다. 한 대형 출판사 편집자는 “자기 색을 강조하거나 개그 욕심을 내는 추천사는 없는 게 낫다”고 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의 문학 강국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월레 소잉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치누아 아체베, 여성의 삶을 그린 부치 에메체타를 낳았다. 자양분은 비극의 역사였다. 250여 개 부족이 혼재하며 민족 갈등과 비아프라 내전을 겪었고 1960년까지 영국 식민 지배를 받았다. 최근 나이지리아 문학의 샛별들이 새롭게 약진하고 있다. 영미권은 물론이고 부커상 같은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에서 두각을 보이며 부흥기를 맞은 것. 나이지리아 출신 부친과 백인 영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와 올해 부커상을 공동 수상했다. 2004년 ‘보라색 히비스커스’로 데뷔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 문학의 새 장을 연 주인공이다. 소설뿐 아니라 문화 아이콘으로 활약 중이다. 올해 미국 ‘소설 부문 여성상’에서는 16명 중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가 3명이나 포함돼 화제를 모았다. 오인칸 브라이스와이트, 아콰에케 에메지, 다이애나 에번스 등이다. 왕은철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영국 식민지 지배를 받으며 문학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억눌린 억압의 역사가 시간이 지나 문학으로 영글었다”고 배경을 짚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최근 영미 문학은 소재 고갈로 제3세계 문학에 주목하고 있다. 이국적인 데다 깊이가 색다른 아프리카 문학이 이런 요구와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논어가 모든 현대 문제를 해결해 줄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공들여 읽을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지성과 정서의 핵심 토대니까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사회평론)을 펴냈다. 부제는 ‘김영민 논어 에세이’. 논어의 렌즈로 사회 현상을 분석한 일간지 연재글을 묶은 책이자 ‘논어 프로젝트’의 첫 결실이다. 그는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논어에 대한 제대로 된 길잡이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서점에 배치된 논어 해설서만 50여 종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화와 혐오에 가까운 책이 많더군요. 입문 가이드 격 에세이인 이번 책을 시작으로 해설서(10권)와 번역 비평서를 펴내 ‘논어 프로젝트’를 완성할 계획입니다.” 그는 유쾌한 글쓰기로 ‘칼럼계 아이돌’이라 불린다. 비결을 묻자 “학생들을 독자로 떠올린다. 이번 책도 10년간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하다 보니 젊은 느낌이 묻어난 것 같다”고 했다. 논어는 청년에게 적합한 책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논어는 짧고 맥락 없는 대화처럼 보이는 글의 묶음입니다. 집중해서 읽고 배경지식을 알아야 이해되는 글이 많지요. 꼼꼼한 독서를 배울 수 있어 대학 교육의 기본에 적합합니다.” 중국에서 논어를 이용하는 건 사회주의의 공백을 메울 상징 자원으로서 공자를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첫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출간한 후 독자와 소통을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그림과 음악을 올리고 있습니다. 근육처럼 정신도 적절한 자극이 없으면 퇴화하지요. 음악 글 그림을 잠깐씩 감상하며 양질의 자극을 얻기 바랍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이번에도, 그게 왔습니다. 그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을 훔치고 그가 발견했던 기쁨을 파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게 뭘까? 사람일까, 짐승일까? 영혼일까, 신일까?”(2권 117쪽) 나이지리아 양계장 집 아들로 태어난 치논소. ‘흙수저’인 자신과 달리 미모 지성 재력을 갖춘 은달리와 결혼을 꿈꾸며 유학길에 오른다. 하지만 전 재산을 털어 간 유학은 사기였고, 설상가상 살인 사건에 휘말려 철창에 갇힌다. 친구의 배신에 이어 살인 누명을 쓰게 된 순간 그는 ‘그것’의 그림자를 느끼고 몸을 떤다. 나이지리아 이보족이 신봉하는 ‘이보 우주론’의 도식, 발음하기 힘든 신의 이름, 모든 인간에게 깃든 수호령 ‘치’의 개념…. 첫인상은 생경한데 사랑으로 망한 한 많은 생을 다룬 줄거리는 익숙하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 같다. 최근 국내 출간된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1, 2’는 사랑이라는 이야기의 원형에 아프리카 문화를 얹어 비범함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나이지리아 작가 치고지에 오비오마(33·사진)는 데뷔작 ‘어부들’에 이어 이 작품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e메일로 만난 그는 “아프리카 이보족 사상인 이보론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자 친구가 겪은 아픔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난데없이 비극에 휘말리는 삶과 인간의 마음이 고장 나는 이유가 궁금해 써 내려갔다”고 했다. “2009년 터키에 속한 북키프로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친구가 다락방에서 몸을 던졌어요. 어떤 감정이 인간을 극단으로 이끄는 걸까…. 이후 인간 감정의 변화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탐구를 통해 인간의 조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치논소의 인생 여정은 ‘치’의 존재로 신화적 기운을 덧입었다. 700년간 환생을 거듭한 ‘치’는 주인을 여럿 바꿔가며 그들의 생을 보듬는다. “기대는 시간의 핏줄에 떨어진 악랄한 피 한 방울입니다”, “그런 애정은 영혼이 죽어가면서도 그 숨결로 열망하는 바이며, 그의 심장이 갇혀 있는 숭고한 지하 감옥입니다”…. 잠언 같은 ‘치’의 내레이션은 절망의 기본값에서 고군분투해온 인간 운명을 보여준다. 16세기와 현재를 넘나드는 주인들과의 일화는 모험담의 활기를 안긴다. “치는 이보론 믿음의 중심이에요. 치를 통해 이보 문명의 지도를 그리는 한편 흑인 사회의 무의식적 열등감을 깨부수고 싶었습니다. 디아스포라를 포함한 아프리카 문제의 핵심은 우리에게도 뛰어난 사상과 체제가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고 보거든요.” 오비오마는 나이지리아 아쿠레에서 태어났다. 열 살 무렵부터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 민족 신화를 탐독했다. 사춘기 시절 만난 토니 모리슨의 ‘블루스트 아이’는 충격적이었다. 검은 피부를 추악하다 여기며 셜리 템플처럼 ‘파란 눈’을 동경하던 열한 살 흑인 소녀의 이야기였다. 책장을 덮은 후 소년 오비오마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깨치고 유산에 자부심을 가져야 다른 세계가 우리를 파괴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키프로스, 터키를 거쳐 미국 내 주류 작가로 발돋움한 지금도 ‘무엇을 쓰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잘 안다. “미국 생활이 올해로 7년째입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이라 불리며 미국의 사회적 담론과 정치, 나아가 미국에 대해 글을 쓰라는 압박을 슬슬 느끼고 있죠.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서구화로 아프리카가 변했고, 잃어버린 우리 문화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제가 많은 그는 ‘어부들’에서 형제 간 경쟁과 갈등을 들여다봤다. 차기작에서는 ‘어부들’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좀 더 밀어붙일 생각이다. 좋아하는 작가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존 밀턴, 셜리 해저드, 버지니아 울프, 살만 루슈디. “높이 날아올라 새로운 형태를 부여하는 문장을 쓰는 작가”들이란다. 한국 팬들에게 남긴 한마디는 이렇다. “언젠가 한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졌어요. 함께 서울로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결국 이별하게 됐지만요. 한국을 찾아 두 눈과 두 손으로 한국을 느껴보고 싶습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그래픽 노블’은 대사량이 많고 예술성을 갖춘 만화를 뜻한다. 괜히 뒤숭숭한 기분에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 연말. ‘어른들의 그림책’과 독서 비수기를 나는 건 어떨까. 홍유진 열린책들 기획위원은 “영화와 소설의 중간 지점에서 상상과 문학의 즐거움을 두루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올해는 문학을 원작으로 하거나 사회성 짙은 그래픽 노블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우선 문학은 ‘모비 딕’과 ‘시녀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고 순항 중이다. 허먼 멜빌 200주기를 기념해 출간한 ‘모비 딕’은 프랑스 작가 크리스토프 샤부테가 원작을 소화해 그림으로 다시 써내려간 작품이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와 압축의 미로 원작의 장엄한 매력을 잘 살렸다. ‘시녀 이야기’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장편 소설이다. 출산 기계와 다름없는 시녀가 되기를 거부하면 ‘비여성’으로 낙인찍혀 사회적으로 추방당하는 여성의 미래를 그렸다. 직장인 한수현 씨는 “원작인 소설과 드라마보다 그래픽 노블이 주는 여운이 짙었다. 매 장면을 힘줘 표현해 시녀들의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1·2’는 독일 판타지 소설 ‘차모니아 시리즈’ 부흐하임 3부작 중 1부가 원작이다. 원작에 삽입된 연필 스케치에 풍성한 색채를 덧입혀 환상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데 공을 들였다. 2권에서 채색 작업을 소개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전쟁과 역사를 다룬 작품도 여러 권 출간됐다. 미국 배우 에단 호크가 쓴 ‘죽은 자들’은 아메리카 인디언과 이주민의 마지막 전쟁을 아파치족의 시선으로 그렸다.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내 어머니 이야기’와 ‘내게 스무 살은 없다’는 각각 한국과 스페인 작가가 가족이 겪은 전쟁의 비극을 전한다.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도스토옙스키’ ‘프리다 칼로’ 등 역사 속 인물을 다룬 어른들의 위인전도 인기 있다. 귀여운 그림체로 국내에서만 1만 부 넘게 판매된 ‘반 고흐’(2014년)의 바바라 스톡 작가는 올해 집필 뒷이야기를 담은 ‘반 고흐와 나’를 펴냈다. 이 밖에 3초 동안 빛의 여정을 따라가도록 만든 ‘3초’로 잘 알려진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신작 ‘르 데생’, 명대사가 돋보이는 ‘빌어먹을 세상 따위’, 정재윤 작가의 ‘재윤의 삶’과 ‘서울구경’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지식을 다루는 교양툰도 대세다. ‘한빛비즈 교양툰’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오리진’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그래픽 노블’은 대사량이 많고 예술성을 갖춘 만화를 뜻한다. 괜히 뒤숭숭한 기분에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 연말. ‘어른들의 그림책’과 독서 비수기를 나는 건 어떨까. 홍유진 열린책들 기획위원은 “영화와 소설의 중간 지점에서 상상과 문학의 즐거움을 두루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올해는 문학을 원작으로 하거나 사회성 짙은 그래픽 노블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우선 문학은 ‘모비 딕’과 ‘시녀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고 순항 중이다. 허먼 멜빌 200주기를 기념해 출간한 ‘모비 딕’은 프랑스 작가 크리스토프 샤부테가 원작을 소화해 그림으로 다시 써내려간 작품이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와 압축의 미로 원작의 장엄한 매력을 잘 살렸다. ‘시녀 이야기’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장편 소설이다. 출산 기계와 다름없는 시녀가 되기를 거부하면 ‘비여성’으로 낙인찍혀 사회적으로 추방당하는 여성의 미래를 그렸다. 직장인 한수현 씨는 “원작인 소설과 드라마보다 그래픽 노블이 주는 여운이 짙었다. 매 장면을 힘줘 표현해 시녀들의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1·2’는 독일 판타지 소설 ‘차모니아 시리즈’ 부흐하임 3부작 중 1부가 원작이다. 원작에 삽입된 연필 스케치에 풍성한 색채를 덧입혀 환상적 분위기를 살리는 데 공을 들였다. 2권에서 채색 작업을 소개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전쟁과 역사를 다룬 작품도 여러 권 출간됐다. 미국 배우 에단 호크가 쓴 ‘죽은 자들’은 아메리카 인디언과 이주민의 마지막 전쟁을 아파치족의 시선으로 그렸다.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내 어머니 이야기’와 ‘내게 스무 살은 없다’는 각각 한국과 스페인 작가가 가족이 겪은 전쟁의 비극을 전한다.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도스토옙스키’, ‘프리다 칼로’ 등 역사 속 인물을 다룬 어른들의 위인전도 인기다. 귀여운 그림체로 국내에서만 1만 부 넘게 판매된 ‘반 고흐’(2014년)의 바바라 스톡 작가는 올해 집필 뒷이야기를 담은 ‘반 고흐와 나’를 펴냈다. 이밖에 3초 동안 빛의 여정을 따라가도록 만든 ‘3초’로 잘 알려진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신작 ‘르 데생’, 명대사가 돋보이는 ‘빌어먹을 세상 따위’, 정재윤 작가의 ‘재윤의 삶’과 ‘서울구경’도 마니아층을 형성 중이다. 지식을 다루는 교양툰도 대세다. ‘한빛비즈 교양툰’,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오리진’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마음 쓰고 피곤해지느니 혼자가 속 편하다. 의롭고 궁지에 몰리느니 비겁하고 말지 싶다. 경쟁에 치이고 사람에게 다쳐 ‘실망-체념-무관심’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알아서 빗장을 걸어 잠근다. 타인과 세상에 냉담한 이들이 늘고 있다. 빅토르 프랑클 연구소 소장이자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의미치료와 실존분석을 가르치는 저자는 이런 세태를 ‘무관심의 시대’라 명명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로 잘 알려진 빅토르 프랑클(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를 ‘실존적 공허’라 이름 붙였다. 제자는 25년 전 함께한 스승 프랑클을 떠올리며 현대인이 집단적 ‘실존적 공허’에 빠졌음을 직감한다. 책임, 기여, 희망 같은 가치를 외면한 채 그것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느라 허덕이다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관심의 스위치를 끄면 일견 편안하지만 필연적으로 공허감이 찾아든다. 인간으로서 타고난 속성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이 처음 겪는 감정은 사랑이고, 생물학적으로도 상호작용을 추구하며, 선한 본성에 충실할 때 역사도 순탄히 흘렀다는 점을 근거로 “참여적이고 유의미한 가치야말로 우리 존재의 의미”라고 강조한다. 무관심은 사회적으로도 재앙이다. 무관심의 빈자리는 불온한 가치들이 차지하기 쉽고, 결국 그 피해는 개인이 떠안게 된다. 프랑클도 “불안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만 따라 하거나(추종주의) 그에게 원하는 것만을 한다(전체주의)”고 무관심의 파괴력을 경고했다. 인간의 존재 의미와 사명에 대한 갈구를 병리학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도 일침을 가한다. “정신적 결함은 (오히려) 희망과 의미를 포기할 때 나타난다. … 예술, 아름다움, 위안, 온기, 사랑, 학문적 발견의 기쁨, 감격, 유의미하고 참여적인 삶의 모험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제시된 삶의 태도는 거창하지 않다. 친절한 말 한마디, 감사의 인사, 뜻밖의 선물, 소박한 미소, 작은 호의…. 크고 작은 연대의 끈을 놓지 않으면 된다. 저자는 프랑클의 “우리가 삶의 사실들에 응답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미완의 사실 앞에 서게 된다”는 명제를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모든 사람은 유일무이한 존재다. 삶 속에 실현할 수 있는 것도 개인적이다. 자신의 방식으로 미완의 사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이 사명 속에 의미를 실현하면 불안함은 잦아들고 안전함을 느끼게 된다. … 첫 번째 안전한 순간은 애착과 사랑을 받은 유년 시절이고, 두 번째로 안전한 순간은 유한성과 책임, 우리의 시간과 가능성을 책임감을 가지고 대하는 때다.” ‘쿨’하긴 쉽지만 친절은 어렵다. 친절을 베풀면 호의를 오해하거나 만만하게 구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집단화된 무관심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고, 세상은 부대끼는 자에게만 풍요로운 속살을 내어보인다”. 책장을 덮고 나면, 선한 의지에 대한 믿음이 생길까. 저자는 독자에게 넌지시 믿음을 내비친다. “인간은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생명체다. 한 명의 개인은 자신의 세계의 매일 아니 매초를 바꿀 수 있다. 누구나 세상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다.” 타인과 사회에 심드렁한 시기에 펼쳐볼 만한 책이다. ‘신박한’ 이론은 없지만 방향키를 잃고 질주하는 일상을 다잡고픈 생각이 든다. 프랑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와 함께 읽어도 좋겠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직장인 김정인 씨는 연극 무대의 여운을 간직하려 대본집을 찾아 읽다가 희곡의 매력에 눈떴다. 그는 “평소 독서를 즐기지 않는데 희곡은 입말로 쓰여 있어 친근했다. 주인공이 된 듯 근사한 기분은 덤”이라고 했다. #40대 출판계 종사자 서모 씨는 ‘낭독공연’을 즐겨 본다. 대사를 외지 않고 대본을 보면서 연기하는 장르다. 그는 “‘연기자들의 연습 장면을 훔쳐보는 듯한 짜릿함을 준다”고 했다. 생소하고 따분한 장르로 알려진 희곡에도 볕이 드는 걸까.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희곡집 판매량은 지난해 대비 6%가 늘었다. 지난해와 지지난해 모두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수치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의 희곡집 ‘관객모독’이 1만 부 가까이 팔렸지만 소설로 분류돼 희곡집 판매량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출판계는 직장인 연극 모임 증가를 주요 원인으로 짚었다. 최근 2년 사이 직장인 연극 모임 수는 껑충 뛰었다. ‘극단충동’, ‘프로하비’, ‘좋은희곡읽기모임’, ‘좋은사람들’ 등이 대표적이다. ‘극단충동’ 장은정 연출은 주 52시간 근무제와 참여형 예술에 대한 욕구를 원인으로 꼽았다. 취미로 연극에 입문한 이들은 자연스레 희곡으로 눈을 돌린다. 2년째 연극 모임에 참여해온 30대 후반 신정훈 씨는 “희곡은 새로운 차원의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희곡을 읽고 연극을 보거나 원작인 희곡과 소설 드라마를 비교하길 즐긴다”고 했다. 주연급 스타들이 연극무대에서 활약하는 것도 희곡 친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송일국 이순재 등 기존 스타에 더해 드라마와 영화에서 인기를 얻은 강하늘 정일우 등이 계속 무대에 서고 있어 연극과 희곡을 향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긍정적 영향을 줬다.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관계자는 “희곡은 특히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다. 학교·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대본을 파일로 주고받는 게 보통”이라며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연극이 기타 분야(선택 교과목 편입과 연극치료 확대)와 결합하면서 꾸준히 판매량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희곡집 시리즈도 다변화하고 있다. 2014년 시작해 올해 중순 독립한 희곡 전문 브랜드 ‘지만지드라마’(지식을만드는지식), 2016년부터 남산예술센터와 손잡고 창작 희곡집을 펴내는 ‘이음희곡선’(이음), 무대 같은 희곡집을 추구하는 ‘GD(Graphic Dionysus)’(알마)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현장과 연계해 희곡 장르를 부흥하려는 움직임도 분주하다. 한 공연사 관계자는 “인기 국내 창작극을 중심으로 대본집을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출판사와 연계해 책을 현장에서 판매하기도 한다”고 했다. 연극에 조예가 깊은 안지미 알마 대표는 “‘산책하는 침략자’는 ‘초연-희곡집 발간-재공연 시 현장 판매’의 과정을 밟았다. 관련 낭독공연도 성황을 이뤘다”며 “생경한 경험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희곡의 재발견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이설 snow@donga.com·김기윤 기자}
유신(維新)이 선포된 1972년 10월. ‘오적(五賊)’의 시인 김지하는 숨을 곳을 찾아 서울 정릉 박경리 선생(1926∼2008)의 자택 대문을 두드렸다. 망설이던 그에게 누군가가 달려왔다. 박 선생의 외동딸 김영주였다. 두 사람은 1973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생전 박경리 선생이 애지중지하던 고명딸은 2008년 어머니가 타계한 이후 강원 원주시에 머물며 선생의 문학정신과 업적을 알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은 뒤 2011년 한국 최초의 세계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을 제정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아홉 번째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에 김 이사장은 참석하지 못했다. 2년 반 전 진단받은 암 증세가 악화된 탓이었다. 토지문화재단은 25일 김 이사장의 타계 소식을 전했다. 향년 73세. 고인은 외모도, 인생 항로도 어머니를 닮았다. 박 선생은 부역자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남편을, 딸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남편을 옥바라지했다. 어머니는 첫아들을 잃었고 딸은 어린 시절 마음을 다친 두 아들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고인은 지난 10년간 토지문화관 살림을 두루두루 챙겼다. 어머니가 하던 것처럼 토지문화관에 입실한 예술가들에게 손수 지은 농작물로 식사를 대접했다. 겨울이면 어머니 손맛 그대로 배추 300포기씩 김장을 해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문화관은 장편소설 ‘토지’를 기념하는 건물이자 작가들의 무료 창작 공간이다. 국내외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창작혼을 불태운다. 박 선생이 말년에 시집 ‘우리들의 시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등을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김 이사장은 특히 해외에 어머니를 알리는 데 공을 들였다. ‘토지’ 번역 및 출판 작업 등을 일일이 챙겼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 박 선생 동상이 세워졌다. 한국학과에 선생의 이름을 딴 강좌도 개설됐다. 제막식 당시 “어머니가 마지막을 보낸 원주와 고향 경남 통영, ‘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에 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문화 벨트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고인은 박경리문학제의 외연 확장과 지역 예술인 지원 사업에도 적극적이었다. 최근 원주의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지정도 김 이사장이 제안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김지하 시인과 원보 세희 두 아들이 있다. 빈소는 강원 원주시 연세원주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지는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선영. 033-744-3969 이설 기자 snow@donga.com}
《“경주의 교보문고 같다니까요.” 한 출판사 대표가 경북 경주시에 월 매출 4000만 원을 내는 독립서점이 있다고 했다. 지방 소도시의 서점, 그것도 참고서는 일절 취급하지 않는 독립서점의 매출치고는 비현실적이었다. 11일 경주시 포석로의 ‘어서어서’ 서점을 찾았다. 평일 낮인데도 30m²(약 9평) 넓이의 서점은 바삐 돌아갔다. 평균 15명 정도가 꾸준히 서점에 머물렀다. 양상규 사장(35·사진)은 “평일이라 숨 돌릴 만하다. 매출은 하루 평균 평일은 100만 원, 주말은 300만∼5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 서점이 자리한 곳은 황리단길이다. 경주의 핫플레이스이자 관광 필수 코스다. “높은 매출은 황리단길 덕분”이라는 눈초리도 있다. 하지만 방문객 수가 매출로 곧장 이어지는 건 아니다. “후광 효과는 30∼40% 정도인 것 같아요. 우선 서점은 황리단길이 활성화되기 전인 2017년 6월에 문을 열었어요. 인근에 서점이 ‘어서어서’만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어서어서는 어른들의 놀이터 같았다. 나뭇결을 훤히 드러낸 오르간, ‘철수와 영희’가 찍힌 교과서, 꾸깃꾸깃한 사전…. 추억의 잡동사니들이 책만큼 꽉 차 있다. 그 가운데 누런 봉투가 눈에 띄었다. “이름을 적은 약 봉투에 책을 담아드려요. 책은 ‘읽는 약’이니까요. 이 봉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명해지면서 ‘경주 방문=어서어서의 책 봉투’라는 공식이 생긴 것 같아요. 인증 시대에 딱 맞는 아이템이자 매출의 일등 공신인 셈이죠.” 도장 찍기 공간도 인기가 뜨겁다. 책을 사면 종이 책갈피를 나눠 준다. 여기에 알파벳, 한글 자모, 그림 문양의 도장을 찍어 꾸민다. 서점을 방문한 30대 신재연 씨는 “모르는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도장을 찍으니 대학 시절 동아리방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30대 김유경 씨는 “경주에 다녀온 지인이 작은 박물관 같은 서점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책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오르간을 치다 보니 훌쩍 40분이 지났다”고 했다.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책 큐레이션은 어떨까. 이곳은 문학서점을 표방하지만 모든 장르를 두루 취급한다. 입고 기준은 양 사장의 ‘완독 여부’. 모든 공간은 시각적 개성에 힘을 줘 구성했다고 한다. “시집은 출간일이나 출판사가 아닌 색깔별로 분류해 배치했어요. 사진 찍는 공간도 곳곳에 뒀고요. 눈길을 잡아끌어야 책으로 손이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 1∼5위는 모두 에세이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허밍버드),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강한별), ‘진짜 모습을 보이면 더는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운 나에게’(허밍버드),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부크럼) 순이다. 평소 독서를 즐겨 하는 방문객은 열에 하나 정도. 나머지 아홉은 일반 관광객으로 제목이 “내 이야기다” 싶은 책을 집어 든다. 부산에서 온 김혜린 씨(25)는 “이곳은 SNS에서 빈티지 숍 같은 인테리어와 좋은 책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제목에 이끌려 시집 ‘너를 모르는 너에게’를 골라봤다”고 했다. 장르소설에 흥미를 느껴 늦깎이 책벌레가 됐다는 양 사장은 “책에 대한 편견은 없다. 시작이 반인 만큼 독서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학 졸업 뒤 사진관, 은행 등을 거쳐 2013년 고향인 경주에 식당을 차렸다. 서점 창업에 필요한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식당이 자리를 잡자 인근에 저렴한 월세를 구해 서점을 열었다. 점심·저녁에는 식당, 남는 시간에는 책방을 오가며 반년간 두 집 살림을 했다. “관광지 외엔 즐길 거리가 없어서 그런지 서점 매출이 예상외로 괜찮았어요. 30만 원, 50만 원, 100만 원…. 배보다 배꼽이 커지면서 오랜 꿈인 서점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독립서점에 매출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느냐는 시각도 있다. 책에 대한 사랑으로 서점을 어렵게 꾸려가는 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운 서점은 나의 분신이다. 이윤이 가장 큰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독립서점이라고 잘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라고 했다. 책을 계산할 때 보통 바코드를 찍어 가격을 말해주지만, 여기선 양 사장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책 가격을 모두 외워요. 기계를 사용하면 아날로그적 감성이 훼손될 것 같아서요. 온라인 서점에는 없는 비기(秘器)를 습관처럼 연구합니다.”경주=이설 기자 snow@donga.com}
“경주의 교보문고 같다니까요.” 한 출판사 대표가 경북 경주시에 월 매출 4000만 원을 내는 독립서점이 있다고 했다. 지방 소도시의 서점, 그것도 참고서는 일절 취급하지 않는 독립서점의 매출치고는 비현실적이었다. 11일 경주시 포석로의 ‘어서어서’ 서점을 찾았다. 평일 낮인데도 30㎡(약 9평) 넓이의 서점은 바삐 돌아갔다. 평균 15명 정도가 꾸준히 서점에 머물렀다. 양상규 사장(35)은 “평일이라 숨 돌릴 만하다. 매출은 하루 평균 평일은 100만 원, 주말은 300만~5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서점이 자리한 곳은 황리단길이다. 경주의 핫플레이스이자 관광 필수 코스다. “높은 매출은 황리단길 덕분”이라는 눈초리도 있다. 하지만 방문객 수가 매출로 곧장 이어지는 건 아니다. “후광효과는 30~40% 정도인 것 같아요. 우선 서점은 황리단길이 활성화되기 전인 2017년 6월에 문을 열었어요. 인근에 서점이 ‘어서어서’만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어서어서는 어른들의 놀이터 같았다. 나무 결을 훤히 드러낸 오르간, ‘철수와 영이’가 찍힌 교과서, 꾸깃꾸깃한 사전…. 추억의 잡동사니들이 책만큼 꽉 차 있다. 그 가운데 누런 봉투가 눈에 띄었다. “이름을 적은 약 봉투에 책을 담아드려요. 책은 ‘읽는 약’이니까요. 이 봉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경주 방문=어서어서의 책 봉투’라는 공식이 생긴 것 같아요. 인증 시대에 딱 맞는 아이템이자 매출의 1등공신인 셈이죠.” 도장 찍기 공간도 인기가 뜨겁다. 책을 사면 종이 책갈피를 나눠준다. 여기에 알파벳, 한글 자모, 그림 문양의 도장을 찍어 꾸민다. 서점을 방문한 30대 신재연 씨는 “모르는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도장을 찍으니 대학 시절 동아리방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30대 김유경 씨는 “경주에 다녀온 지인이 작은 박물관 같은 서점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책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오르간을 치다보니 훌쩍 40분이 지났다”고 했다.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책 큐레이션은 어떨까. 이곳은 문학서점을 표방하지만 모든 장르를 두루 취급한다. 입고 기준은 양 사장의 ‘완독 여부’. 모든 공간은 시각적 개성에 힘을 줘 구성했다고 한다. “시집은 출간일이나 출판사가 아닌 색깔별로 분류해 배치했어요. 사진 찍는 공간도 곳곳이 뒀고요. 눈길을 잡아끌어야 책으로 손이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 1~5위는 모두 에세이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허밍버드),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강한별), ‘진짜 모습을 보이면 더는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운 나에게’(허밍버드),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부크럼) 순이다. 평소 독서를 즐겨 하는 방문객은 열에 하나 정도. 나머지 아홉은 일반 관광객으로 제목이 “내 이야기다” 싶은 책을 집어 든다. 부산에서 온 김혜린 씨(25)는 “이곳은 SNS에서 빈티지 숍 같은 인테리어와 좋은 책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제목에 이끌려 시집 ‘너를 모르는 너에게’를 골라봤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팔리는 책 중엔 베스트셀러가 없다. 장르소설에 흥미를 느껴 늦깎이 책벌레가 됐다는 양 사장은 “책에 대한 편견은 없다. 시작이 반인만큼 독서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학 졸업 뒤 사진관, 은행 등을 거쳐 2013년 고향인 경주에 식당을 차렸다. 서점 창업에 필요한 종자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식당이 자리를 잡자 인근에 저렴한 월세를 구해 서점을 열었다. 점심·저녁에는 식당, 남는 시간에는 책방을 오가며 반 년 간 두 집 살림을 했다. “관광지 외엔 즐길 거리가 없어서 그런지 서점 매출이 예상 외로 괜찮았어요. 30만 원, 50만 원, 100만 원…. 배보다 배꼽이 커지면서 오랜 꿈인 서점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독립서점에 매출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느냐는 시각도 있다. 책에 대한 사랑으로 서점을 어렵게 꾸려가는 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운 서점은 나의 분신이다. 이윤이 가장 큰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독립서점이라고 잘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라고 했다. 책을 계산할 때 보통 바코드를 찍어 가격을 말해주지만, 여기선 양 사장의 머리 속에서 나온다. “책 가격을 모두 외워요. 기계를 사용하면 아날로그적 감성이 훼손될 것 같아서요. 온라인 서점에는 없는 비기(秘器)를 습관처럼 연구합니다.” 경주=이설 기자 snow@donga.com}
활자보다 낯선 도식이 먼저 독자를 맞는다. 나이지리아 이보족이 따르는 ‘이보 우주론’이다. 소설의 밑바탕에는 이 세계관이 깔려 있다. 주인공 치논소는 ‘짠내+한심’ 캐릭터다. 사랑을 얻으려 애쓸수록 일은 꼬여만 가고, 결국 한때의 연인을 자신도 모르게 해치고 만다. 단순한 줄거리가 압도적인 아우라를 덧입은 건 ‘치’의 목소리 덕분이다. 이보 우주론에서 모든 인간에게 깃들었다고 믿는 수호령인 ‘치’는 치논소의 비극적 생에서 세상 모든 ‘마이너리티’들의 아픔을 발견한다. “… 그들의 뜻대로 되는 일이라고는, 할 일이 울고 또 우는 것밖에 없는 이 보편적인 오케스트라에 합류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올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고려청자, 백자, 소반, 조각보…. 오늘날 귀한 대접을 받는 문화재들은 당대에는 흔한 생활용품이었다. 이들은 언제부터 한국 전통미술을 대표하게 된 걸까. 후대 사람들은 왜 단원의 그림, 고려청자, 조각보를 좋아하는 걸까. 300년 뒤에는 지금의 보통 물건들도 명작이 될 수 있는 걸까. 고미술 문화재 담당기자를 지낸 뒤 서원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한국미가 형성되는 과정을 짚어 나간다. 한국적 미감에는 컬렉션이 큰 영향을 미쳤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수집으로 일상용품은 미술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대중의 감상을 거치면서 컬렉션은 시대적 맥락을 덧입는다. 특히 1960, 70년대 ‘한국미술 2000년전’(1973년) 같은 전시는 한국미를 새롭게 인식하는 장을 마련했다. “미적 경험이나 한국미에 대한 인식은 사회적 기억으로 축적되고 그 기억은 다시 컬렉션과 전시에 개입해 미적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미적 인식과 사회적 기억은 그렇게 변화하고 또 변화한다.” 국내 컬렉션의 흐름을 살핀 3장과 문화재들이 미적 의미를 획득하는 다채로운 과정을 추적한 5장은 특히 흥미롭다. 컬러 도록을 곳곳에 배치해 이해를 돕는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콘텐츠 공룡’ 디즈니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가 출시 하루 만에 가입자 1000만 명을 확보했다. 미국 CNBC는 13일 “미 지상파 방송인 CBS가 온라인에서 유료 회원 800만 명을 모으는 데 5년 걸린 것을 디즈니는 단 하루에 해냈다”고 평가했다. CNBC에 따르면 디즈니는 전날 시작한 디즈니플러스의 가입자 수가 약 1000만 명이라고 밝혔다. 서비스 개시 첫날 접속 불량 등 일부 기술적 오류가 발생했지만 가입자 확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디즈니는 접속자 수가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에 생긴 오류라고 해명했다. 넷플릭스 등이 선점한 유료 OTT 시장에서 후발 주자인 디즈니가 성공적으로 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풍부한 콘텐츠와 가성비 덕분이란 평가가 나온다. ‘인어공주’(1989년) ‘알라딘’(1992년) ‘라이온킹’(1994년) 등 애니메이션의 고전부터 마블, 픽사,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이르는 콘텐츠의 양과 질이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 달에 6.99달러(약 8170원)라는 파격적인 가격도 경쟁력 중 하나다. 넷플릭스의 월 구독료 12.99달러에 비해 거의 반값이다. 현재 넷플릭스는 미국 내 6000만 명을 비롯해 전 세계 1억5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가 일주일 무료 시험기간 이후에도 1000만 가입자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디즈니는 이날 “2024년까지 최소 6000만 명, 최대 9000만 명의 가입자 확보가 목표”라고 밝혔다. 서비스 이용 가능 지역도 미국, 캐나다 외에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에는 2021년경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이윤태 oldsport@donga.com·이설 기자}
《최학 소설가(69)가 제22회 동리문학상 수상자로, 오탁번 시인(76)이 제12회 목월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최 소설가의 장편소설 ‘고변’과 오 시인의 시집 ‘알요강’이다. 동리·목월문학상은 경북 경주 출신인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 시인 박목월(1916∼1978)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경주시와 한국수력원자력이 후원하고,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주관한다. 상금은 각각 6000만 원. 시상식은 12월 6일 오후 6시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열린다.》동리문학상/ 최학 ‘고변’정여립 역모사건 소재 장편소설… 견고한 역사-시학 보여줘“등단 후 지면을 얻지 못해 1979년에 다시 장편소설 ‘서북풍’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했습니다. 당시 김동리 선생님이 심사위원이었는데, 꼭 마흔 해 만에 그분의 이름이 걸린 상을 받게 됐습니다.” 최학 소설가는 김동리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을 반추했다. 그러고는 “의기소침하지 말라는 야단으로 여기려 한다”고 말했다. ‘고변’(사진)은 1589년 있었던 정여립의 역모사건과 그로 인한 기축옥사(己丑獄事)를 소재로 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서두에는 주요 인물 69명에 대한 소개가 55쪽에 걸쳐 이어진다. 그는 “이율곡, 성혼, 이퇴계, 정철, 유성룡, 허균 등 역사적 인물들을 아우르는 방대한 이야기다. 40여 년 전 중앙대 김용덕 교수가 기축옥사를 소설로 쓰길 권했지만 고증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소설이 출간되는 걸 보지 못하고 작고한 김 교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시작했다 포기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인터넷의 발달로 자료 수집에 필요한 시간이 단축됐지요.” 조선왕조실록이 데이터베이스화돼 소설을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400년 전 인사들과 같이 먼 길을 걷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 더없이 기뻤다”며 역사소설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목월문학상/ 오탁번 ‘알요강’지극한 우리말 헌신… 풍자적 시선으로 삶의 진면목 드러내 오탁번 시인은 “등단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돌아보면 외롭고 어두운 길이었다. 목월상 수상을 ‘시의 숨결을 존중하라’는 엄정한 교훈으로 여기겠다”고 말했다. ‘알요강’(사진)은 어린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작은 요강이라는 뜻이다. 시집에는 풍물시장에서 사온 알요강에 손주가 오줌을 누는 장면을 보며 써내려간 ‘알요강’을 비롯해 76편의 시가 실렸다. ‘지날결’(지나가는 길) ‘노루잠’(자꾸 놀라 깨는 잠) ‘건들장마’(초가을 비가 오다 금방 개는 과정이 반복되는 장마) 같은 다채로운 고유어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풍자적 시선으로 삶의 진면목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이승원 문학평론가는 “고령의 연치에도 시들지 않는 뛰어난 유머 감각과 우리말에 대한 지극한 헌신은 남이 따르지 못할 경지에 있다”고 평했다. 시인은 충북 제천 시골 고향에서 자주 시간을 보내고 있다. “텃밭에서 농사도 짓고 초등학교 동창들과 막걸리도 마시지요. 자연히 우리말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모국어를 지키고 사랑하는 것도 시인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신춘문예 3관왕’이다. 1966년 동화, 1967년 시, 1969년 소설로 각각 당선됐다. “‘알요강’이 10번째 시집입니다. 앞으로 한 권을 더 내게 될지 모르겠어요. 운명적으로 밟아온 길을 묵묵히 걷겠습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