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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된 정책을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빨리 논의해 다음 달 초 1차 실행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 연석 청문회에서 ‘의사를 늘리면 지역 및 필수의료 분야 의사를 확보할 수 있느냐’는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하며 “증원된 의사들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지역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적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 구체적인 내용을 곧 국민들에게 보고드리겠다”고 말했다. 또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 부족은 의료개혁이 지연되면서 누적된 것”이라며 “정책 실패라는 점을 아프게 받아들이며 대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조 장관은 ‘복지부에서는 (의료공백) 과정이 해결 안 되고 이 사태까지 올 것으로 생각했느냐’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는 “비상진료 체계를 4개월 이상 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면서도 “정부는 단계별로 차질 없이 비상진료를 할 수 있는 대책을 계속 보완 발표하고 있다”고 했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이탈이 장기화되며 지난달 말 기준 183명의 지역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수도권 대학병원 등에 파견되며 지역의료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에는 “공보의는 공백이 큰 병원 위주로 배치되고 있는데, 도서 지역이나 응급실 등의 공보의 파견은 제한하고 가능하면 같은 행정구역 내에 파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공보의가 줄어드는 것은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어 발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장관은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가 지역의료 확충을 고민한 결과로 알지만 법에 의한 강제 확충이 필요하고 입학에서의 불공정성 우려 등을 감안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다만 지역의료 확충에 대해서는 정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공공) 수가 도입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의료 공백 장기화에 따라 환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체계적 조사를)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이날 참고인으로 참석해 “정부에서는 환자 치료가 잘되고 있다고 하지만 환우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30% 정도만 정상 진료를 받고 있다”며 “이 시간에도 중증 환자와 가족들은 처참한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전국 수련병원들은 9월에 수련을 시작하는 하반기 전공의 추가 모집을 마감했지만 지원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16일 국회 교육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의과대학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에서 논란이 된 의대 학생 정원 배정위원회(배정위)를 둘러싼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회의록 작성 의무’와 ‘회의록 폐기 여부’다. 정부는 배정위 회의록을 작성할 의무가 없으며 이에 따라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은 중요한 의사 결정에 대한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교육부가 중요한 기록을 폐기했다고 맞섰다.● 정부 “배정위 회의록 작성 의무 없어” 당초 교육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이 회의를 주재한 배정위원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배정위원은 익명이 원칙’이라며 난색을 표해 대신 배정위 회의 내용을 알 수 있는 회의 기록을 제출받는 조건으로 증인 채택을 철회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미 공개된 바 있는 12페이지짜리 요약 자료만 제출했고, 야당 의원들은 “교육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교육부는 배정위가 공공기록물관리법상 회의록 의무 작성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회의 결과를 정리한 자료는 제출했다”며 “회의 결과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상세한 자료들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오 차관은 ‘배정위 회의록 파기는 누구의 결정이냐’는 질문에 “회의록 파기가 아니다. 참고했던 자료들은 행정상 보관하지 않는 것이며 파쇄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야당 “중요한 회의, 기록 남겼어야” 야당은 배정위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분에 대한 배정이 이뤄진 만큼 회의 참석자, 결론을 낸 경위 등이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맞섰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은 “배정위는 굉장히 중요한 회의였다”며 “당연히 기록을 남겨야 됐음에도 불구하고 합의하에 내용을 파기했다는 것이냐”고 했다. 이에 오 차관이 “배정 운영 기간 중에 폐기한 것으로 안다”고 답하며 ‘회의록 폐기’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오 차관은 “회의 진행 과정에서 제공됐던 자료들 중에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은 폐기했다”고 밝혔다. 야당은 오 차관이 오전과 오후에 답변을 다르게 하고 있다며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오전에는 협의 내용을 파기했다고 했는데, 오후에는 참고자료라며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오 차관이 폐기했다고 밝힌 자료는 배정위 회의 내용을 교육부 직원이 수기로 메모한 자료와 배정 과정에서 참고하기 위해 받은 회의 참고자료로 보인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손으로 기록했다는 수첩도 다 파쇄했느냐”는 문정복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그렇다”고 했다. 이날 교육부는 뒤늦게 3차례 열린 배정위 회의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 자료에는 증원신청서 심사지표 및 지표별 배점안, 대학별 배정 범위 및 배정안 등이 담겨 있다.● 정부, 배정위 재구성 제안 ‘거절’ 야당은 4일 동안 3번 회의를 열고 총 5시간 반 만에 전국 의대 40곳의 증원 폭을 결정한 것을 두고 ‘졸속 심사’라고 비판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의대 정원 배정 신청 자료들을) 단 하루 만에 다 검토하고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냐”며 “날림 배정이고 ‘순살 의대’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또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배정을 다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김영호 교육위원장은 “1506명의 확충을 인정하더라도 배정위를 다시 구성해 학교의 교수, 교실, 실습실 여건들을 감안해 새롭게 배정하면 각 대학 반응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배정 과정은 상당히 오랜 준비를 거친 것”이라며 사실상 거절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16일 국회 교육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의과대학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에서 논란이 된 의대 학생 정원 배정위원회(배정위)를 둘러싼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회의록 작성 의무’와 ‘회의록 존재와 폐기 여부’다. 정부는 배정위 회의록을 작성할 의무가 없으며 이에 따라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은 중요한 의사 결정에 대한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교육부가 중요한 기록을 폐기했다고 맞섰다.● 정부 “배정위 회의록 작성 의무 없어”당초 교육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이 회의를 주재한 배정위원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배정위원은 익명이 원칙’이라며 난색을 표해 대신 배정위 회의 내용을 알 수 있는 회의 기록을 제출받는 조건으로 증인 채택을 철회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미 공개된 바 있는 12페이지짜리 요약 자료만 제출했고, 야당 의원들은 “교육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반발했다.교육부는 배정위가 공공기록물관리법상 회의록 의무 작성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회의 결과를 정리한 자료는 제출했다”며 “회의 결과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상세한 자료들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오 차관은 ‘배정위 회의록 파기는 누구의 결정이냐’는 질문에 “회의록 파기가 아니다. 참고했던 자료들은 행정상 보관하지 않는 것으로, 파쇄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야당 “굉장히 중요한 회의, 기록 남겼어야”야당은 배정위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분에 대한 배정이 이뤄진 만큼 회의 참석자, 결론 도달 경위 등이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맞섰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은 “배정위는 굉장히 중요한 회의였다”며 “당연히 기록을 남겨야 됐음에도 불구하고 합의하에 내용을 파기했다는 것이냐”고 했다. 이에 오 차관이 “배정 운영 기간 중에 한 것으로 안다”고 답하며 ‘회의록 폐기’ 논란이 시작됐다. 논란이 불거지자 오 차관은 “회의 진행 과정에서 제공됐던 자료들 중에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은 폐기했다”고 설명했다.야당은 오 차관이 오전과 오후에 답변을 다르게 하고 있다며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오전에는 협의 내용을 파기했다고 했는데, 오후에는 참고자료라며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오 차관이 폐기했다고 밝힌 자료는 배정위 회의 내용을 교육부 직원이 수기로 메모한 자료와 배정 과정에서 참고하기 위해 받은 회의 참고자료로 보인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손으로 기록했다는 수첩도 다 파쇄한 거냐”는 문정복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그렇다. 파쇄했다”고 답했다.● 정부, 배정위 재구성 제안에 ‘거절’야당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배정을 다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김영호 교육위원장은 “1506명의 확충을 인정하더라도 배정위를 다시 구성해서 학교의 교수, 교실, 실습실 여건들을 감안해 새롭게 배정하면 각 대학 반응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복지부가 여러 가지 현장 점검 등 배정 과정은 상당히 오랜 준비를 거친 것”이라며 사실상 거절했다.한편 교육부는 이날 오후 3차례 열린 배정위 회의 자료를 제출했다. 이 자료에는 증원신청서 심사지표 및 지표별 배점안, 대학별 배정 범위 및 배정안 등이 담겨 있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된 정책을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빨리 논의해 다음 달 초 1차 실행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조 장관은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 연석 청문회에서 ‘의사를 늘리면 지역 및 필수의료 분야 의사를 확보할 수 있느냐’는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하며 “증원된 의사들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지역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적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 구체적인 내용을 곧 국민들에게 보고드리겠다”고 말했다. 또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 부족은 의료개혁이 지연되면서 누적된 것”이라며 “정책 실패라는 점을 아프게 받아들이며 대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조 장관은 ‘복지부에서는 (의료공백) 과정이 해결 안 되고 이 사태까지 올 것으로 생각했느냐’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는 “비상진료 체계를 4개월 이상 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면서도 “정부는 단계별로 차질 없이 비상진료를 할 수 있는 대책을 계속 보완 발표하고 있다”고 했다.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이탈이 장기화되며 지난달 말 기준 183명의 지역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수도권 대학병원 등에 파견되며 지역의료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에는 “공보의는 공백이 큰 병원 위주로 배치되고 있는데, 도서 지역이나 응급실 등의 공보의 파견은 제한하고 가능하면 같은 행정구역 내에 파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공보의가 줄어드는 것은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어 발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조 장관은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가 지역의료 확충을 고민한 결과로 알지만 법에 의한 강제 확충이 필요하고 입학에서의 불공정성 우려 등을 감안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다만 지역의료 확충에 대해서는 정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공공) 수가 도입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조 장관은 의료 공백 장기화에 따라 환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체계적 조사를)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이날 참고인으로 참석해 “정부에서는 환자 치료가 잘 되고 있다고 하지만 환우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30% 정도만 정상 진료를 받고 있다”며 “이 시간에도 중증 환자와 가족들은 처참한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한편 이날 전국 수련병원들은 9월에 수련을 시작하는 하반기 전공의 추가 모집을 마감했지만 지원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장기간 동결된 대학 등록금 때문에 교육과 연구 등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한 국내 대학들은 글로벌 대학 경쟁력 순위에서도 약세를 보이는 중이다.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인재 양성 기능마저 약화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교육 경쟁력은 2011년 39위, 2015년 38위 등으로 30위권이었으나 2019년에는 50위까지 하락했다. 이후에도 2020년 48위, 2023년 49위 등으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며 조사 대상국 60여 개국 가운데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2011년 22위, 2015년 25위, 2020년 23위, 2023년 26위 등으로 20위권을 줄곧 기록해 온 것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것이다. 대학들은 교육 경쟁력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재정 부족을 꼽는다. 상당수 대학이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에 시달리다 보니 우수 교원 및 최신 기자재 확보 등에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또 교수들이 교육과 연구보다 정부의 재정사업 지원 등에 매달리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연구에 몰두할 여건이 안 되는 교수가 늘면서 최근 5년간 국내 대학 교수들의 저술 실적도 약 20% 감소했다. 한국연구재단의 ‘대학연구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4년제 대학 전임교원이 낸 학술 전문서적은 2018년 5686건에서 2019년 5356건, 2020년 4935건, 2021년 4611건, 2022년 4567건 등으로 매년 줄고 있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인건비가 낮은 시간강사나 겸임교수 등에게 강의를 맡기며 간신히 커리큘럼을 꾸리는 실정”이라며 “우수한 교수진 영입은커녕 전임교원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연구 실적이 많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한 사립대 총장은 “학교도 교수들이 정부 재정사업 등 학문 연구와 무관한 프로젝트에 시간과 역량을 빼앗기는 상황을 알고 있지만 재원 확보에 사활을 걸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지난해 발표한 ‘2023년 학교급별 사립학교 교육비 현황 분석’에서 “10년 넘게 대학 등록금이 동결됐고 정부의 재정 지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며 “대학들의 재정 악화가 교육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지방자치단체 입찰 용역 제안서 평가위원을 공개모집합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이 같은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지원서를 낸다. 하루 몇 시간만 자리를 채우면 20만∼30만 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입찰 평가를 제안서평가위원회에 맡겨야 하는데 위원 자격은 ‘해당 분야 대학교수 등 전문가’ 등으로 규정돼 있다. 이 교수는 “평가위원으로 공공기관에 자주 가다 보면 보따리장수가 된 것 같지만 교수 급여가 장기간 안 올라 별수 없다”며 “교수들 사이에선 ‘급여는 아내에게 곧장 가 손을 못 대니 용돈은 따로 벌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고 밝혔다. 정부 규제로 대학 등록금이 16년째 동결되면서 대학교수 상당수의 급여도 제자리걸음을 이어 가고 있다. 실제로 사립대의 경우 호봉 승급분을 제외하면 16년째 급여를 한 푼도 못 올려준 대학이 많다. 그렇다 보니 캠퍼스에선 심사위원이나 평가위원, 사외이사, 기업 특강 등 ‘생계형 투잡’에 열심인 교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 측에서도 급여를 못 올려 주다 보니 과도한 대외활동이 강의와 연구 소홀로 이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립대 교수 급여 4년간 0.8% 올라 13일 교육부에 따르면 사립대 교수 급여는 2019년 1억62만2000원에서 지난해 1억139만4000원으로 4년 동안 77만2000원(0.8%) 올랐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국공립대 교수 급여가 같은 기간 1억1011만7000원에서 1억1873만7000원으로 862만 원(7.8%) 오른 것과도 차이가 크다. 장기간 오르지 않은 교수 급여는 이달 초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에서도 화제가 됐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과학기술원 교수 평균 임금이 1억3000만∼1억4000만 원인데 삼성전자는 7억2000만 원”이라고 했다. 급여가 안 오르다 보니 교수들은 ‘투잡’을 뛰는 경우가 많다. 기업 특강 등 외부 강연이 대표적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소속 교수들의 외부 강연 신고 건수를 합치면 많을 때는 한 달에 800건이나 된다”며 “최대 1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보니 본업인 교육이나 연구보다 강의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상법 시행령에 따라 최대 2개까지 겸직할 수 있는 사외이사도 선호 대상으로 꼽힌다. 한 사립대 총장은 “대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하면 1억 원 넘게 받는다. 이사회나 이사회 내 위원회 회의 참석을 통해 연봉에 맞먹는 보수를 받다 보니 겸직 허가를 다 해주는 게 맞는지 매 학기 고민이 된다”고 했다. 다만 대학 내에선 부작용을 알면서도 교수들의 대외활동을 막지 못하고 있다. 대외활동 허가 권한을 가진 대학 총장들도 ‘매년 교수들 연봉을 올려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막기는 쉽지 않다’는 분위기다. 잘하면 대박을 낼 수 있는 창업에 몰두하는 교수도 적지 않다. 서울의 주요대 총장은 “교수 처우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으니 창업하고 돈 벌겠다고 뛰어다니며 수업에 소홀한 교수도 있다”며 “남미의 경우 법대 교수들이 낮은 급여 때문에 변호사 활동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밤새우며 ‘정부 사업 따내기’ 사활 학생 눈높이와 물가는 오르는데 등록금 수입은 그대로라 상당수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 사업을 따내는 것에 필사적이다. 이때도 교수들이 보고서 작성 등에 동원된다. 비수도권 소재의 한 사립대는 최근 교수업적평가 기준에 ‘정부 사업·연구에 지원서를 얼마나 제출했는가’라는 항목을 추가했다. 과거에는 ‘얼마나 수주했는지’를 잣대로 평가했는데 지원서류 작성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까지 보겠다는 것이다. 이 대학 총장은 “장기간 등록금 동결로 학교가 돈이 필요하니 교수들에게 전공과 관련이 크지 않더라도 일단 많이 지원서를 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방의 다른 사립대 총장도 “보통 정부에 제출할 사업계획서 하나를 준비하는 데 2, 3개월 걸리는데 관련 학과 거의 모든 교수를 동원한다”며 “매일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다 보니 교수들 사이에서 수업에 쏟을 열정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푸념이 나온다”고 했다. 교육계에선 대학교수들이 ‘교육’과 ‘연구’라는 본업에 충실하게 만들기 위해선 연봉 인상 등의 유인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각 대학은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등록금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는 국가장학금 Ⅱ 유형을 지원하지 않는 식으로 규제한 탓에 현실적으로는 대학들이 등록금을 16년째 못 올리고 있다. 한 총장 출신 교육 전문가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AI 전문가에게 연봉으로 11억 원을 주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교수를 할 AI 전문가를 찾을 수 있겠느냐”며 “정부가 첨단 분야를 키우겠다면서 등록금 규제를 통해 우수 인재 영입을 어렵게 만드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법에 규정된 대로 각 대학에 등록금 인상 자율권을 줘 등록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의대 지망 수험생 10명 중 7명이 “지방 의대 수시모집에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지방 의대를 졸업한 뒤 지역에 남겠다고 답한 비율은 7%에 그쳤다. 대다수 수험생은 의대 증원에 따른 교육의 질 하락이나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의대 평가·인증 강화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하면서도 의대 지원 희망에는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수도권 학생 7.1%만 “지방 의대 졸업 후 남겠다” 종로학원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8일까지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전국의 수험생 1715명(수도권 813명, 비수도권 90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1일 밝혔다. 수도권 학생 70.5%는 ‘지방권 의대 수시 지원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지방 의대에는 수시 지원 의사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9.5%였다. 그러나 수도권 학생들에게 ‘지방 의대 졸업 후 향후 의사활동 선호 지역’을 물었을 때는 서울 63.8%, 인천·경기 29.1%로 수도권에서 의사 활동을 하겠다는 비율이 92.9%에 달했다. 지방에서 의사 활동을 하겠다고 답한 경우는 7.1%에 불과했다. 정부가 “지역 의대 정원을 늘려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밝힌 구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지방 수험생들은 수도권 학생들의 응답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지방 수험생들에게 지역에 따른 의대 선호도를 물었을 때 65.6%는 지역 소재 의대를 선호했으며, 지역인재전형으로 해당 지역 의대를 가고 싶다는 응답 비율(63.4%)도 높았다. 수도권 의대를 희망한다고 답한 비율은 34.4%였다. 또 지방 학생들은 의대 졸업 후 선호하는 의사 활동 지역으로 수도권(31.7%)보다 지방(68.3%)을 선호했다.● 수험생 98.4% “의평원 평가 강화에도 의대 지원” 수험생들은 정원이 늘어난 의대들의 경우 교육의 질이 현 수준보다 하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답자 59.6%는 증원된 의대 교육의 질이 현재보다 ‘매우 하락하거나’(18.8%) ‘하락할 것’(40.8%)이라고 답했다.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답한 수험생은 35.4%, 현재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답한 수험생은 5.0%에 그쳤다. 최근 의평원이 대규모 증원이 확정된 의대 30곳에 대한 평가·인증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두고 53.0%는 진학 후 불이익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영향 없을 것’과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23.5%였다. 하지만 98.4%는 의평원 평가 결과에 따른 불이익 발생 가능성에도 의대 지원 의사엔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지원 포기를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1.6%에 그쳤다. 지난달 의평원은 내년도부터 10% 이상 증원된 의대에 대해 △향후 6년간 매년 주요 변화 평가 시행 △평가 항목 3배 이상 확대(15개→51개) 등 이전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의대가 의평원 인증을 못 받으면 모집 정지, 국가고시 응시 불가 등의 처분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5일 “증원된 의대 모두 의평원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지만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에 입학하면 의사 국가시험조차 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16년째 등록금 동결로 각 대학이 재정상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지만, 등록금 인상을 통해 경쟁력 강화를 꾀한 일부 대학들이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대학은 “등록금 인상분을 교육 환경 개선에 사용해 학생 만족도가 높다”고 입을 모았다. 동아대는 2009년 이후 14년 만인 지난해 등록금을 3.95% 인상했다. 대학 측은 등록금 인상을 추진하며 학생들에게 “다른 데 1원도 쓰지 않고 교육 환경 개선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결과 학생 5명, 교직원 5명, 외부 위원 1명 등 총 11명으로 꾸려진 등록금심의위원회가 만장일치로 등록금 인상안을 의결했다. 대학 측은 약속대로 등록금 인상분 수익 50억 원의 사용처를 놓고 총학생회에 ‘우선순위 희망 목록’을 받았다. 학생들이 1순위로 요구한 건 화장실 수리였다. 이해우 동아대 총장은 “오래된 변기 교체 등 교내 화장실 전반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공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학 측은 영상 화질이 떨어지는 강의실 빔프로젝터와 학생회관의 냉난방기를 교체했고, 2만여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개인사물함도 새로 들였다. 이 총장은 “학생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며 “2학기에도 학생들의 의견 중심으로 필요한 부분을 개선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학기 등록금을 5.44% 인상한 동의대는 2019년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과 재정 부족으로 중단했던 ‘학생 해외봉사단’ 운영을 5년 만에 재개했다. 올 6월 학교 측의 지원으로 재학생 30여 명이 라오스에 교육 봉사를 떠났다. 동의대 관계자는 “약 45억 원의 등록금 수익에서 국가장학금 지원(23억∼24억 원)을 제외한 21억 원을 교과 외 학생들의 외부 활동 프로그램과 시설 개선 등에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또 “학생회관 학생휴게실의 소파 교체와 공대 건물 화장실 보수 등 시설 개선은 물론이고 학교 바깥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역량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이주현 동의대 총학생회장(25)은 “등록금 인상 후 장학금 증액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해외봉사, 국토대장정 등의 활동에 대한 학교 지원금이 늘었다. 개인 부담금이 많게는 절반가량 줄었다”며 “등록금심의위원회에 학생위원으로 참여했는데 학교가 마지막 남은 부지를 매각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어려웠다. 등록금 인상 필요성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올 1학기 등록금을 법정 인상 상한인 5.64% 올린 경성대 역시 등록금 인상분으로 오래된 학과 기자재와 강의실 칠판 등을 교체하고 노후 건물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대학교에서 이차전지 분야 전임교수를 초빙합니다.’ 지방의 한 대학은 이달 초까지 2주간 첨단 분야 교수 모집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교육과 연구 경력 심사, 주제 발표, 면접 등을 거쳐 다음 달 1일자로 교수를 임용해 당장 2학기 수업과 산학협력 지원 등을 맡기려 했지만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해당 대학의 총장은 “다시 공고해야 하지만 지원자가 없을 것 같다”며 “등록금이 동결된 상태에서 제시할 수 있는 교수 연봉 자체가 적다”고 토로했다. 7일 교육계에 따르면 각 대학들이 재정난으로 교수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주요 대학의 첨단 분야 전공 교수의 초봉은 8000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 대학의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등 관련 산업을 다루는 기업에 취업하면 연봉 2억 원 수준을 받을 수 있는 인재들이다 보니 교수직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총장도 “급여 인상이 안 되는 대학의 교수로 생활하다간 서울에서 집도 사기 어렵다”며 “어렵게 모셔와도 1, 2년 열심히 하다 해외 대학으로 간다”고 말했다. 모든 물가가 오르는 동안 대학 등록금은 2009년 정부의 규제에 묶여 16년째 동결된 상태다. 특히 재정의 대다수를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사립대의 경우 전기료,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 등의 지출 비용이 커지다 보니 교육에 과감한 투자를 못 해 교육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낮은 등록금은 해외 유명 대학과의 학생 교류에도 발목을 잡는다. 한 대학 관계자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국내 학생들이 미국 대학으로 학부 교환학생 가는 수가 반의 반 토막”이라며 “미국 대학이 한국 대학에 비해 등록금이 2, 3배 높다 보니 한국과의 학생 교류를 꺼린다”고 했다. 대학들은 “교육 경쟁력 하락을 더는 버틸 수 없다”며 올 2학기 등록금 인상을 기대했다. 지난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학 총장들과 만난 비공개 간담회에서 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엔 등록금 동결 규제를 풀어줄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선 뒤 이 부총리는 입장을 바꿨다. 민생이 어려운 시기라 등록금 자율화를 논의할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일부 대학은 2학기 등록금 인상을 위해 최근까지 등록금심의위원회를 열었지만, 교육부 눈치를 보느라 쉽지 않은 상태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총장은 “대학이 무한정 올리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과 인상분을 협의할 텐데 내년에는 반드시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빗물 새는 강의실, 부족한 실습비… “등록금 동결로 학생 피해”[16년째 묶인 대학등록금]대학도 학생들도 ‘인상’에 공감… 한국 대학 등록금, 美주립대 20%해외 석학 초빙 엄두도 못내고… 교환학생 프로그램 확대 걸림돌대학들, 교육부 재정지원 눈치… “국가장학금과 연계 폐지해달라”“미국 주립대만 해도 등록금이 연간 3만∼5만 달러(약 4126만∼6878만 원)에 달합니다. 한국은 연간 등록금이 1000만 원도 안 되잖아요. 미국 대학은 5만 달러의 등록금을 내는 학생을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보내는 것 자체가 손해라고 생각합니다.”(서울 소재 한 대학의 총장) 서울의 주요 대학을 비롯한 국내 대학들은 학생들의 수요에 따라 해외 대학들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체결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낮은 등록금’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히려면 최대한 많은 해외 대학들과 협정을 맺어야 하는데, 국내 대학의 등록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해외 대학들이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학 총장은 “미국 대학에서 정한 인원보다 우리 학생 수요가 많으면 거기에 등록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데 한국 대학이 재정을 지원해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대학 등록금 2009년부터 동결 국내 대학 등록금은 2009년부터 동결됐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 경기 침체를 이유로 대학들에 등록금 인상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데서 비롯됐다. 법적으로는 각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추진할 수 있다. 단,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교육부는 2012년부터 등록금을 동결 혹은 인하한 대학에만 국가장학금Ⅱ유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각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압박해왔다. 물가상승률이 가팔라 올해 등록금 법정 인상 한도는 5.64%다. 등록금 인상분이 국가장학금Ⅱ 유형 지원금보다 많지만 교육부로부터 각종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하는 대학 입장에선 교육부 방침을 거스르긴 어렵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매년 교육부에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국가장학금Ⅱ와의 연계를 폐지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등록금이 동결된 동안 세상은 급변했다. 2009년의 소비자 물가 인상률을 100%로 설정했을 때 2023년은 132.8%였다. 14년간 물가가 33% 가까이 오르는 동안 등록금 고지서에 찍힌 금액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기간 공무원 보수는 140.6% 증가해 전 직급에서 국립대 교직원 보수가 사립대보다 더 높다.● 예산 부족에 “교수 채용에 한계” 실력을 갖춘 교수가 그 대학의 경쟁력인 만큼 대학은 누구나 좋은 인재를 데려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부족한 재원으로는 인재 영입에 한계가 있다. 꼭 첨단분야 등의 이공계가 아니더라도 경영학과 교수 채용 역시 쉽지 않다는 게 각 대학들의 설명이다.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경영대 초임 교수 급여가 외국의 괜찮은 대학의 6분의 1 수준”이라며 “좋은 교수 모시려고 인터뷰까지 마쳐도 급여 때문에 안 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해외 유명 석학을 방학 때만이라도 데려와 학생들에게 강의를 들을 기회를 주고 싶어도 쉽지 않다. 해외 대학에서 주는 것보다 턱도 없는 비용을 제시하는 게 부끄러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수들의 학술 연구에 꼭 필요한 일부 학회지 구독을 끊는 대학도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 총장은 “교육의 질은 떨어지는데 대학은 등록금 부족분을 메우려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만 열심인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특히 사립대는 등록금 의존율이 높아 학생에게 해외, 창업,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의 투자가 어렵다. 수도권의 한 대학 관계자는 “매년 환경미화원 등의 인건비가 오르고 전기료도 2021년 대비 80% 올랐다”며 “쓸 것(고정 지출) 쓰면 예산이 바닥이라 학생에게 예산 편성할 게 없다”고 했다. 학과별로 배분한 예산을 2학기에 회수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비수도권 소재 한 대학 관계자는 “예산 반납으로 학생들 실험실습비, 지원비가 부족해지겠지만 학교 재정이 너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시설 노후도 심각하다. 지난달 폭우 때 서울의 한 대학에는 양동이 40개로 건물 곳곳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냈다. 석면 철거 공사도 문제다. 국립대는 정부가 예산을 지원했지만 사립대는 자체적으로 해야 하는데 한 번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공사비 때문에 제대로 한 대학이 많지 않다. ● 대학들 “등록금 현실화해야” 학교의 열악한 환경을 경험한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을 무턱대고 반대하지 않는다. 등록금 동결로 인한 교육 환경 악화의 피해는 결국 학생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열린 각 대학의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 회의록을 보면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해 등록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학교 의견에 동의한다”는 분위기다. 한 대학 관계자는 “등록금 운용 적자 현황, 지출 현황, 유틸리티 비용 등을 보여주면 학생들이 대부분 등록금 인상 필요성에 수긍한다”며 “과거엔 학생회가 ‘내 임기 때는 절대 안 된다’고 완강했는데 이제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들은 교육부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등록금 인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학기 등록금 인상을 적극 검토했던 수도권의 한 대학 측은 “교육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하는 부분 때문에 인상을 계획했으나 안 됐다”고 전했다. 올 초 등심위에서 ‘2학기부터 올린다’고 결정했던 지방의 한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학기 등록금도 동결됐다. 대학이 원하는 건 등록금 현실화다. 지방의 한 대학 총장은 “등심위도 통과해야 해 무턱대고 인상할 수 없고 학생에게 그 이상 돌려준다”며 “대학 등록금 인상 이슈를 놓고 유독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대학 운영을 그만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많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올해 11월 14일 실시되는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올해 입시에선 27년 만에 의대 입학 정원이 늘어나는 데다 N수생(대학 입시에 2회 이상 도전하는 수험생) 증가, 무전공 선발(전공 자율 선택제) 확대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지면서 수험생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현장에선 상위권과 중위권을 가리지 않고 “합격선 예측이 어려워졌다. 수능이 코앞이지만 목표 대학마저 정하지 못한 상황”이란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의 목동 종로학원에선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이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어진 특강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날 만난 임려원 양(오류고 3학년)은 “작년부터 목표하는 학과의 정시 합격 컷을 기준으로 합격선을 가늠했는데 무전공 선발 전형으로 바뀌면서 이젠 어느 정도 점수대로 합격할 수 있을지 예상조차 안 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5일 교육업계에 따르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상위권 학생들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의대 증원에 따라 N수생이 늘어난 데다 6월 치른 수능 모의평가처럼 수능이 어렵게 출제된다면 상위권일지라도 현역은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수 커진 대입, 입시설명회 참석자 1년새 3배 늘어의대 증원-무전공 확대-N수생 증가… 수능 100일 앞 수험생들 셈법 복잡“기존자료로 합격 가능성 예측 불가”학원 ‘의대 설명회’에 1만명 몰려… 2시간 40만원 컨설팅 수요도 폭증6일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10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수험생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의대 증원, 무전공 선발(자율 전공 선택제) 확대 등의 변수로 대학 입시의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6월 모의평가 출제 경향 분석을 토대로 올해 수능이 다소 어렵게 출제될 것으로 예상돼 수험생들의 혼란이 예년보다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종로학원에서 진행한 입시 설명회 현장은 약 1500명의 수험생과 학부모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지난해(500여 명)와 비교해도 세 배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입시에 대한 관심이 높을 뿐 아니라 올해 의대 증원, 무전공 선발 등 입시에 큰 변수들이 많아져 그만큼 어떻게 입시를 준비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올해부터 생겨난 ‘의대 입시설명회’ 과거와 달리 올해 입시 현장에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의대 단독 입시설명회’ 열풍이다. 지난해 종로학원은 최상위권과 의대 진학을 함께 다룬 입시설명회(참석 인원 6426명)를 한 차례 진행했다. 반면 올해는 의대 증원에 따른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의대 진학만을 겨냥한 입시설명회만 3차례 진행했다. 의대 입시 설명회엔 총 1만4132명의 수험생과 학부모가 찾았다. 임 대표는 “올해 의대 입시 관련 문의가 폭증해 의대 설명회를 따로 열었다”고 설명했다. 2025학년도 입시에서 대폭 확대된 무전공 선발 역시 수험생들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변수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소장은 “학과별 모집 정원과 합격 컷이 있었는데 여러 개 학과를 묶어버리다 보니 올해는 기존 데이터로 합격 가능성을 예측하기 더욱 힘들어졌다”고 분석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소장 역시 “올해는 의대 증원, 무전공 선발 등 상위권과 중위권 학생들 모두 각각 질문이 많아 입시설명회를 성적대별로 나눠 했다”고 말했다. 본수능 난이도 결정의 척도라 불리는 6월 모의평가 난이도가 ‘불수능’을 넘어 ‘용암 수준’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어렵게 출제됐단 점도 고3 수험생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수능이 어렵게 출제되면 상대적으로 현역보다 N수생(대학 입시에 2회 이상 도전하는 수험생)에게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수종합학원인 대성학원 관계자는 “체감상 상위권 반수생들의 문의가 늘어났다”며 “최상위 대학 이공계나 지방의대 등에서 의대 증원을 노리고 반수하는 경우로도 볼 수 있겠다”고 풀이했다.● 입시정책 혼란에 컨설팅 ‘빨라지고, 많아지고’ 혼란에 빠진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결국 학원과 입시컨설팅 업체로 몰리고 있다. 고3 학생인 김경윤 양은 올 초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2시간에 30만∼40만 원 선의 입시 컨설팅을 주기적으로 받고 있다. 김 양은 “하필 내가 수능을 치르는 올해 입시에 전례 없는 변수가 생겨난 건가 싶어 화가 난 적도 있다”며 “불안감이 가중되다 보니 주변 친구들도 저처럼 입시컨설팅 업체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입시컨설팅 업체 관계자들은 올해 수험생들의 상담 건수가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상담 시기 역시 빨라졌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입시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보통 수시 직전인 8월 말부터 9월쯤 입시컨설팅 업체를 찾는 수험생이 많은데 올해는 6월 모의평가가 끝난 시점을 시작으로 상담 요청이 늘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작년 7, 8월엔 700명 정도의 생기부를 봤는데 올해는 이미 1000명을 넘겼다”며 “무전공 선발 확대로 합격선 예측을 못 해 상담을 요청하거나 의대 증원으로 생각지 않던 의대 진학을 문의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내년도부터 10% 이상 증원된 의대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의정(醫政) 갈등’이 이어지면서 수험생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의대가 의평원 인증을 받지 못하면 국가고시 응시 불가 등의 처분을 받게 된다.1일 한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평원 평가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에 입학하면 의사가 못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의평원 평가기간 동안 의대 수험생 지원학교 선정 가이드라인’ 등의 게시물에는 ‘수험생들은 해당 학교가 인증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고, 답변이 없다거나 확답할 수 없다고 하면 그 대학은 지원을 포기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일부에서는 “의평원 평가 대상인 30개 의대는 지원을 피하는 게 좋겠다”는 등의 의견까지 제시됐다.의평원은 지난달 30일 주요변화평가 계획안 설명회에서 “평가를 통해 의대의 기본 의학교육 과정과 교육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했다고 판단하는 경우 인증 기간과 유형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의 질이 수준 미달인 의대의 경우 인증받지 못하거나 인증 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고등교육법 제11조와 의료법 제5조 등에 따르면 교육부가 지정한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구, 즉 의평원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의대·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만 의사면허 국가시험을 치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의학교육 평가 인증’을 얻지 못한 의대 졸업생은 의사 국가고시를 치를 수 없다.교육부 관계자는 “만에 하나 올해 진행되는 평가에서 인증받지 못하더라도 2025년도 신입생에게는 의사 국가고시 관련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평원이 계획대로 내년 2월 (인증 관련) 평가 결과를 내놓는다면 이후 대학들의 이의 신청을 받는 기간이 있다. 이의 신청 심의까지 거치면 최종 판단은 3, 4월 나올 것”이라며 “내년도 신입생은 인증이 유지된 기간에 입학했기 때문에 국시 응시 자격이 있다”고 설명했다.정부와 의평원, 의대는 의대 주요변화평가 계획안을 두고 크게 갈등하고 있다. 의평원은 지난달 30일 10% 이상 증원되는 30개 의대를 대상으로 △향후 6년간 매년 주요변화평가 시행 △평가 항목 수 3배 이상 확대(15개→51개) 등 기존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살펴보겠다 방침이다.이에 교육부는 “의대들의 의견을 수렴해 필요하면 심의를 열고 (의평원의 주요평가계획 등에 대해) 보완지시를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의대들은 “무리한 행정적 요구”라고 맞섰다. 의평원의 설명회 다음날(지난달 31일) 의과대학총장협의회(의총협) 회장인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학생없이 평가받는 건 의미없다. 학생 복귀 이후 3개월 지나서 주요변화계획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총협은 1일 “의평원 주요 변화 평가 계획이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담은 성명문을 교육부, 복지부, 총리실, 의평원에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한국수학교육학회가 주최하고 한국수학교육평가원이 주관한 제48회 한국수학경시대회(KMC) 시상식이 3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이삼봉홀에서 열렸다. 동아일보가 후원한 이 대회의 개인 부문 대상은 최한호(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3학년) 외 9명이, 단체 부문 최우수학교상은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외 13개교가 받았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 ◇개인 부문 대상 △고등부 최한호(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3학년) 이수민(대구과학고 2학년) 정재현(대구과학고 1학년) △중등부 김현강(경기 초당중 3학년) 이하음(경기 이현중 2학년) 김태우(제주 중앙중 1학년) △초등부 지서율(대구 영신초 6학년) 이윤겸(서울 언주초 5학년) 전준오(서울 대치초 4학년) 박세연(서울 대치초 3학년) ◇단체 부문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대구과학고 △경남과학고 △서울 휘문중 △경기 이현중 △서울 대치초 △경기 내정초 △충북 청주대성초 △대전 한밭초 △전북 한들초 △광주 삼육초 △대구 경동초 △경남 삼정자초 △제주 한라초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어린이집 교사가 생활 지도를 위해 훈육이나 훈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법령에 명시됐다. 최근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 지도 중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하는 등의 교권침해가 늘어나며 교권 보호 대책이 강화되는 가운데 어린이집 교사의 보육활동도 보호하자는 취지다.교육부는 30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된 시행령에는 어린이집 원장이나 보육교사가 학업, 보건·안전, 인성·대인관계 등과 관련해서 조언과 상담, 주의, 훈육·훈계 등으로 영유아를 지도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다.다만 도구를 이용해 신체에 고통을 주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명시했다. 영유아 생활지도의 구체적인 범위와 방법은 교육부 장관이 정해 고시하도록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 유치원 교원에 대한 교권 보호가 강화됐듯 이에 상응해 보육활동에 대한 보호도 이뤄진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유보 통합 추진 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이번 개정령안에서는 또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한 제재도 강화한다. 기존에는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업장의 이름과 상시 노동자 수, 여성 노동자 수, 보육 대상 영유아 수와 미이행 사유, 실태조사 불응 사실 등을 공표했다. 앞으로는 사업주의 성명과 그동안 해당 명단에 공표된 누적 횟수도 함께 공개된다.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은 ‘상시 여성노동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 노동자 5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에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바깥은 한여름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늘했다. 가을쯤 이곳은 이미 겨울이라 옷을 단단히 입어야 한다고. 한참을 가로등 하나 없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곳이었다.(아, 달리지는 못했지.) 차 바퀴 아래 거친 돌들이 느껴지며 차체가 울퉁불퉁 튀었다. ‘이거 맞아?’ 불안해질 쯤 산꼭대기에 다다랐다. 강원도 화천의 천문대.“기가 막히게 구름 몰려올 때 오셨네요.”어릴 적 ‘과학동아’ 같은 어린이 잡지에서 본 커다란 망원경 앞에 섰다. 내 차례가 되자 직원이 입맛을 다셨다. 여름철은 구름 속도가 빨라 별 보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라고 했다. 주춤하는 사이 “지금 얼른 보세요!”망원경 안에 우주가 있었다. 고개를 떼고 맨눈으로 볼 땐 그냥 작고 노란 점인데 렌즈 안에선 목성의 고리가 또렷하게 보였다. “렌즈 안에 행성 스티커를 붙여놓은 건 아니겠지?” 옆에서 남편이 하는 말에 유치하다고 눈을 흘겼지만 사실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할만큼 신기했다.맨눈으로 본 하늘에도 별이 가득했다. 목성, 토성, 견우 직녀, 백조, 큰곰, 작은곰… 서울에선 크고 밝은 별들만 보여 별자리를 찾기 쉬웠는데, 별이 너무 많으니 오히려 더 어려웠다. 목성이 그랬듯 저 많은 점들도 알고 보면 제각각의 생김새와 삶이 있겠지. 칠흑에 흩뿌려진 별들을 보고 있자니 아득해졌다. 공간감이 사라지고 하늘 한복판에 나만 있는 듯한 순간. 그런데 그 순간 내가 가장 작아진다. 저 별에선 지구도 점으로 보일까, 나는 먼지 한 톨도 못되겠지. 억겁을 지나온 빛들 앞에서 바래기 너무 쉬운 것들을 붙들고 사는 게 어쩐지 조금 우스워진다고 해야 하나. 세상사 아등바등 잊고 나를 내려놓는 게 휴가의 목표라면, 그에 충실한 휴가 일정이었다고 생각했다.“서울에서 별을 볼 수 있다고?”친구의 말이 믿기지 않아 거듭 되물었던 게 4년 전 이맘때다. 인천 영종도에서 별 생각 없이 찍은 밤하늘 사진을 보고 친구가 별자리를 말해준 것이 계기였다. 그저 날이 맑고 별이 많아 찍은 사진이었는데 까막눈에게 눈앞의 글자가 무슨 뜻인지 읽어준 셈이었다.그녀가 알려준 건 하나 더 있었다. 꼭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집 앞에서도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빛 공해가 심한 도시에서는 별을 보기 어렵다’ 서울은 당연히 별은 못 보는 것으로 지레짐작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유심히 본 적이 없었을 뿐. 그때부터 종종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됐다. 나같은 천체에 문외한도 현대 기술을 빌리면 어렵지 않다. 친구가 추천해준 별자리 찾기 어플을 켜고 이리저리 스마트폰을 돌리다 보면 비교적 단순한 별자리들이 끼워맞춰진다. 어어, 그 때의 나지막한 탄성. 별을 보는 게 왜 생각보다 재미있을까 하니 딱 김춘수의 <꽃>이다. 그동안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설령 본다 해도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는 익명에서 의미를 찾긴 어려웠다. 그런데 예전부터 늘 그 자리에 있었을 것들에 이름을 찾아 부르니 완전히 새로워졌다.우주에서 보면 구분되지 않는 한 공간일텐데 언제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별들도 달라진다. 누군가와 함께 쌓는 기억은 덤이다. 2년 전 신혼여행지에서는 남편과 이전에 본 적 없던 남쪽물고기자리를 찾았고, 지난해 춘천에서는 나같은 ‘초짜’ 친구와 함께 북두칠성과 목성을 봤었지 같은.다시 화천에서 돌아오는 길. 다른 때 같았으면 오늘이 어땠네 떠들면서 왔을 텐데 그 하늘에 어떤 말을 덧붙이기 어려웠다. 조용히 들었던 존 메이어의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를 덧붙여본다. 이 여름밤도 수억 광년을 가로지르지는 못하겠지만, 수십년 후 꺼내볼 기억은 되줄 것 같다.A great big bang and dinosaurs 거대한 빅뱅과 공룡들Fiery raining meteors 불에 타 쏟아지는 유성들It all ends unfortunately 안타깝게도 모든 것들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죠But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그렇지만 당신은 영원히 내 안에 존재할꺼예요I guarantee just wait and see 확신해요, 끝없는 시간이 지나도 당신은 내 안에 존재할 거예요.마침 올 여름 장마도 오늘 끝난다고 한다. 구름이 걷히면 별 보기 더 좋은 계절이겠다.[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저출생 여파로 지난 10년간 어린이집과 유치원 10곳 중 3곳이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폐업한 어린이집과 유치원 대부분은 민간이 운영했던 곳으로, 국공립 어린이집과 공립 유치원은 오히려 늘었다. 28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교육·보육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총 3만7395곳으로, 10년 전인 2013년(5만2448곳)보다 28.7%(1만5053곳)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2014년(5만2568곳) 이후 9년 연속 이들 기관의 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린이집은 지난해 2만8954곳으로 10년 전인 2013년(4만3770곳)에 비해 33.8%나 줄어들었다. 유형별로는 0∼2세 영유아가 주로 다니는 가정 어린이집이 10년간 54.8% 감소해 감소폭이 가장 컸고 뒤이어 민간(39.8%), 법인·단체(36.5%), 사회복지법인(16.2%), 협동(3.9%) 어린이집 순이었다. 반면 국공립 어린이집(2332곳→6187곳)은 165.3%, 직장 어린이집(619곳→1308곳)은 111.3% 늘었다. 유치원은 지난해 8441곳으로 10년 전인 2013년(8678곳)보다 2.7% 줄었다. 사립 유치원은 지난해 3308곳으로 2013년(4101곳) 대비 19.3% 감소한 반면, 공립 유치원은 지난해 5130곳으로 2013년(4574곳) 때보다 소폭 늘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저출생의 영향으로 미취학 아동들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최근 10년새 3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28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교육·보육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총 3만7395곳으로 지난해(3만9485곳)에 비해 5.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10년 전인 2013년(5만2448곳)과 비교하면 1만5053곳이 줄어 28.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5만2568곳) 이후 9년 연속 감소한 결과다. 어린이집·유치원이 감소한 것은 이들 기관의 신설보다 폐원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저출생이 이어지며 어린이집·유치원의 원아가 줄어들면서 운영이 어려워져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특히 유치원보다 어린 아동들이 많이 다니는 어린이집의 타격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집은 지난해 2만8954곳으로 10년 전보다 33.5% 줄었다. 유치원은 지난해 8441곳으로 10년 전보다 2.7% 줄었다. 현행법상 유치원은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 아동, 어린이집은 연령 제한 없이 취학 전 아동이 다닐 수 있다.유형별로는 0∼2세 영유아가 주로 다니는 가정 어린이집이 10년간 54.8% 감소해 감소 폭이 가장 컸고, 민간(39.8%), 법인·단체(36.5%), 사회복지법인(16.2%), 협동(3.9%) 어린이집이 뒤를 이었다. 반면 국공립 어린이집(2332곳→6187곳)은 165.3% 늘었고, 직장 어린이집(619곳→1308곳) 역시 111.3% 늘었다.어린이집·유치원 수가 줄어들면 영유아 교육·보육 환경이 더욱 나빠지고, 이는 저출생 문제가 더욱 심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양육 환경의 불안 요소를 없애고자 유보통합(교육부·보건복지부로 나뉜 유아교육·보육 관리체계 통합)을 추진 중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27일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필수과제”라며 유보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초등학교 3∼6학년 때 의대 진학 기회의 창이 열립니다.’ 교육부가 이달 8∼19일 17개 시도교육청과 ‘초등생 의대 입시반’ 온라인 광고 실태를 점검한 결과 의대 입시와 관련해 선행학습을 부추기거나 거짓·과장 광고를 한 사례 130건을 적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올해 초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 이후 사교육시장에선 의대 진학을 목표로 초등학생 시절 고등학교 수학 등을 선행학습하는 이른바 ‘초등의대반’ 열풍이 불고 있다. 이번 점검에선 ‘합격률 100%’ ‘전국 최다 합격’ 등 사실과 다른 거짓·과장 광고를 내며 초등생을 대상으로 의대 입시반으로 모집한 업체들이 적발됐다. 또 ‘의·치대반 개강, 입시 성공은 초등생 때 결정됩니다’ ‘초등 고학년 대상 영재·의대반 신설’ ‘의대 진학을 위해선 경시대회 수준 문제를 통해 초격차 문제해결능력 길러야 합니다’ 등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를 낸 업체들도 적발됐다.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공교육 정상화법(선행학습 금지법)은 학원의 선행학습 유발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교육부는 “적발 결과를 해당 교육청에 통보해 공교육 정상화법 위반 소지가 있는 광고를 삭제하도록 행정지도하고, 교습비 초과 징수나 등록 외 교습과정 운영 등 학원 운영 전반에 대해 특별 지도 점검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이달 31일까지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선행학습 광고 유발 광고 학원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다음 달 30일까지 각 시도교육청과 함께 전국 학원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현장점검에도 나서기로 하고 23일 서울시교육청과 강남구 대치동 등을 중심으로 합동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비 초과 징수 등 학원법 위반 사항에 대해선 과태료 부과 등의 행정처분을 할 예정이고 거짓·과장 광고에 대해선 공정거래위원회에, 세금탈루 의혹에 대해선 국세청에 통보해 조사를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를 거치며 고교를 떠나는 학생이 늘자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진학하는 신입생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 4년제 대학 222곳에 입학한 검정고시 출신 신입생은 9256명으로 해당 정보가 대학알리미에서 공시된 2013학년도 이후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4521명)과 비교하면 5년 만에 2배 이상이 된 것이다.● 대학에서 적응 어려움 겪기도 지난해 전국 고교에서 자퇴 등으로 학교를 떠난 학생은 2만5792명으로 전체 재학생의 2.0%에 달했다. 개중에는 팬데믹 기간 학교생활 공백 탓에 재개된 대면수업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비대면수업이 반복되는 동안 ‘굳이 학교를 다녀야 하느냐’는 생각을 갖게 된 경우가 적지 않다. 고교를 떠난 학생 상당수는 재수학원 등에 다니며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진학하는 길을 택한다.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한 경우 학점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방의 한 대학 관계자는 “내부 분석 결과 검정고시 출신 학점이 평균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다만 단체 활동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캠퍼스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검정고시 출신을 포함해 ‘코로나 세대’가 대면 의사소통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각 대학은 앞다퉈 대면 커뮤니케이션 관련 수업을 개설하거나 재학생 심리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대학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인 학생도 드물지 않다. 적응할 수 있도록 상담 프로그램 등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학교를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인식이 정착되면서 반수를 하거나 편입을 준비하는 재학생이 늘어나는 것도 대학들의 고민이다.● 대학들 “입시 유불리 고민” 다만 대학 입시에선 ‘학업 중단 이력’이 큰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고 한다. 동아일보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 10곳에 물어본 결과 관계자들은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입시에서 불이익을 주진 않는다”고 했다. 지방의 한 대학 관계자는 “지방대의 경우 학령인구가 줄어드는데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불이익을 줄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내신에서 불리하다는 이유로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자퇴하는 고교생들이 줄지 않는 원인이기도 하다. 검정고시 출신이 급증하자 일부 대학에선 검정고시 출신이 고교 졸업생보다 지나치게 유리해선 안 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해 제도에 반영하고 있다. 한 주요 대학 관계자는 “고교 중퇴자는 내신 성적이 없기 때문에 검정고시 성적을 내신 등급으로 환산하는데 의학계열의 경우 비교 내신을 적용하면 검정고시 출신이 거의 만점을 받는다”며 “결국 내부 논의 끝에 형평성 차원에서 검정고시 출신의 최대 점수를 30점 이상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학부모 김성희(가명) 씨는 21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요즘 학교를 자퇴시켜 달라는 고교 2학년생 아들 때문에 고민이 크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처음 상륙한 2020년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비대면 수업이 익숙한 이른바 ‘코로나 세대’다. 마스크를 쓴 채로 등교와 원격수업을 반복하며 중학생 시절을 보낸 아들은 대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지난해 고등학교 진학 후엔 학업마저 포기했다. 결국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친 후 “학교를 그만두는 친구들이 많다”며 자퇴를 결심했다. 21일 동아일보가 종로학원에 의뢰해 학교알리미에 공시된 전국 고교 2379곳의 학업 중단 비율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자퇴 등으로 학교를 떠난 학생은 2만5792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고교 재학생(127만6890명)의 2.0%에 해당한다. 일반고는 지난해 1학년 학생의 2.6%(9646명)가 학교를 그만뒀다. 40명 중 1명이 학교를 떠난 것이다. 전체 고교생 학업 중단 비율은 2019년 1.7%였다가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1.1%까지 떨어진 뒤 2021년 1.5%, 2022년 1.9%로 다시 늘었다. 지난해 고교생들은 코로나19 초기 중 1∼3학년이었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를 지낸 김경범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안 그래도 성적 위주로 학교가 운영되고 학생과 교사 간 정서적 유대감이 사라지며 학교 기능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학교 이탈에 가속도가 붙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때 중학생들, 학력저하-대면생활 부담… 고교 자퇴 늘어”학교 떠나는 코로나 세대규칙-대면생활 공백 커 큰 어려움… 학력격차 직접 확인하고 충격도“졸업은 필수” 인식도 약해져… 학부모 동의땐 학교도 잘 못말려학교 현장에선 고교를 떠나는 학생 상당수가 팬데믹 기간 학교생활 공백 탓에 성적, 교우관계, 규칙 적응 등에 어려움을 겪다가 학업 중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지역의 한 고교 교사는 “엔데믹 이후 학생 상당수가 아침에 등교하는 것부터 힘들어한다. 학교에서 교복을 입은 채 지내면서 수업 시간에 늦지 않게 들어가는 등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는 것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학교 꼭 졸업” 인식 바뀌어 지난해 일반고와 자율형사립고, 특성화고 등 모든 고교에서 학업 중단 학생이 증가했다. 학업 중단 요인에는 자퇴 외에도 학교폭력으로 인한 퇴학, 해외 출국 등이 있지만 대부분은 자퇴라는 게 교사들의 설명이다. 한 고교 교사는 “지난해 고1 학생은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중1이었다. 중학교 진학 직후부터 원격수업을 하다 보니 중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그래도 의무교육이니 중학교는 졸업했지만 고교에 진학해 자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학업 중단의 장벽을 낮춘 영향도 있다고 한다. 학교에 안 가거나 수업을 안 들어본 경험이 축적돼 있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가 과거에 비해 ‘자퇴자’ 또는 ‘중퇴자’가 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수도권 고교 교사는 “팬데믹이 ‘학교는 꼭 졸업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꾸는 것에 일조했다. 온라인 비대면 학습을 많이 하다 보니 굳이 학교에 안 가더라도 원격으로 공부해 검정고시를 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산기 정신적 문제가 악화된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학생들이 팬데믹 시기 외부 접촉이 단절된 영향인지 몰라도 대면하는 것 자체를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워한다”며 “우울증 때문에 치료를 받거나 자퇴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했다.● 강남 고교선 3년간 10% 이상 이탈 학업 중단이 늘어나는 건 전국적인 현상이다. 2020년만 해도 17개 시도에서 학업 중단 학생 비율이 2%를 넘는 곳은 한 곳도 없었지만 2021년 1곳, 2022년 6곳, 2023년 11곳으로 급증했다. 서울 내에선 지난해 일반고 1학년을 기준으로 강남구와 서초구의 학업 중단 비율이 각각 4.5%, 4.3%로 높았다. 3년 동안 누적으로 보면 학생의 10% 이상이 학교를 떠나는 것이다. 강남 3구에서 학업을 중단한 경우 상당수는 내신 등의 문제로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혹은 유학을 가기 위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역시 코로나19가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게 교사들의 설명이다. 서울 한 고교 교사는 “코로나19로 학력 격차가 커졌는데 중학교 때는 이를 실감하지 못하다가 고교에 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충격을 받는 학생들이 많다”며 “학교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낮아진 탓에 거리낌 없이 학교를 떠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학교를 떠난 학생 중 상당수는 많게는 한 달에 300만 원 넘게 내고 재수학원에 들어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한다. 학교에서 수행평가나 다른 과목 공부에 시간을 쏟지 않아도 돼 오히려 효율적이라는 판단도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 역시 자퇴하려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2013년부터 학업중단 숙려제를 도입하고 상담 등을 통해 신중하게 자퇴를 결정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측에만 숙려 기회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보니 학생이 거부해 바로 자퇴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 고교 교사는 “학부모가 ‘자퇴에 동의했다’고 하면 교사로선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무리하게 설득하려다가 교권 침해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형식적으로만 말리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선 학업 중단과 동시에 해당 학생을 더 이상 관리하지 않는다. 서울 고교 교사는 “일단 학교를 나가고 나면 검정고시를 봤는지, 대안학교로 갔는지, 학원으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며 “코로나19로 사회성이 떨어지고 심리적으로 무너진 학생들이 많은데 학교라는 울타리조차 없이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강원 지역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박모 씨(30)는 올 3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학생 학부모로부터 “새 학기 아침 등교 지도 때 아이의 어깨와 가슴을 밀쳤다”는 항의성 민원을 받았다. 학교 측에선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지만 학부모는 박 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5월에 나온 1심 판결에서 박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학부모는 항소했다. 박 씨는 “불안과 스트레스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고 있고 위장 장애도 나타났다”고 하소연했다.● 다시 증가세 돌아선 교사 고충 상담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 침해 논란이 가열되며 교권 보호 대책이 마련됐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교권 침해로 고통받는 교사들이 줄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서울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올 1∼6월 학부모·학생의 교권 침해 등으로 인한 교사들의 고충 상담 건수는 1246건에 달했다. 지난해 상반기(1∼6월) 1222건에서 서이초 사건 발생 직후인 하반기(7∼12월) 839건으로 약 31% 감소했지만 올 상반기 다시 급증한 것이다.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교사들이 서이초 사건 이후 한동안 조심하던 학부모 등으로부터 다시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라며 “현장에선 학부모의 악질 민원 등으로 인한 고충이 여전하다”고 전했다.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를 걸핏하면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하는 행태도 여전하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 3∼6월 교원 대상 아동학대 신고는 32건으로 지난해 9월∼올 2월 신고 건수와 동일했다.● 교권보호 강화됐다지만 현장선 ‘글쎄’ 지난해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국회와 정부는 ‘교권보호 5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등 각종 대책을 내놨다.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학생 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했고, 교원이 아동학대로 신고될 경우 교육감 의견 제출이 의무화됐다. 개별 학교에서 운영하던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는 지역으로 이관했으며 교권 침해 직통번호(1395)도 개통됐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은 ‘실효성이 낮은 조치가 대부분’이라고 평가한다. 박 씨 역시 교보위가 열렸지만 “학부모나 학생과의 유의미한 만남, 통화, 언쟁 등 접촉이 한 번도 없었다”는 이유로 교권 침해가 인정되지 않았다. 장 수석부위원장은 “전문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교보위가 이관됐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데다 현장에선 ‘신문이 기계적, 법률적이어서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안 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또 “원스톱이라던 교권 침해 직통번호도 결국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려야 하는 등 발표 내용과는 다른 형태로 시행되는 대책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권이 단기간에 회복되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교권본부장은 “저출산으로 자녀 한 명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를 앞세우는 사회 분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늘어난 부적응 학생 등이 결합해 교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엔 서이초 교사 사망 1주기(18일)를 맞아 다양한 추모행사가 진행된다. 서울에선 18일 서울시교육청에서 교사단체 및 학부모, 학생이 참여하는 공동 추모식이 열린다. 좌담회, 전시회, 출판기념회 등도 예정돼 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