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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부군에 포위돼 아사 위기에 놓였던 3000여 명의 홈스 지역 주민 중 83명이 구호트럭을 공격한 무장괴한의 총격과 박격포 세례를 뚫고 처음으로 대피했다. 유엔은 시리아 정부군에 포위된 반군 거점도시 홈스 구시가지에서 여성과 어린이, 노약자 등 83명을 이주시켰다고 7일 밝혔다. 이는 지난달 24∼3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시리아 국제평화회담에서 정부군과 반군 측이 인도주의적 구호를 위해 홈스 지역에서 사흘간 전투를 중지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홈스 시내에는 이날 유엔과 시리아 적신월사(이슬람 지역의 적십자사)가 구호트럭 9대를 동원해 250개의 식량 부대와 190개의 의약품 및 위생용품 박스를 전달하고 민간인을 대피시켰다. 그러나 둘째 날인 8일부터 갑자기 반군과 정부군 간의 전투가 재개돼 구호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탈랄 바라지 홈스 주지사는 레바논의 알마야딘TV와의 인터뷰에서 “유엔과 적신월사의 구호트럭들이 반군들의 박격포와 총탄 공격을 받았고 의료진 4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시리아 적신월사도 페이스북에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하던 중 홈스 시에서 무장괴한의 포격을 받아 운전사 한 명이 다쳤으며 트럭 2대가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밸러리 에이머스 유엔 구호조정관은 “시리아 국민 25만 명이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고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며 “시리아 난민 구호사업은 계속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리아 정부와 반군 측은 8일 전투가 재개된 데 대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비난했다. 시리아 최대 반군단체인 시리아국민연합(SNC)은 여성, 어린이, 노약자 긴급 대피가 “홈스에 갇혀 있는 나머지 주민에 대한 대학살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라며 공포감을 드러냈다. SNC는 성명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시리아의 다른 도시에서도 이와 유사한 전술로 도시를 점령한 적이 있다”며 “이는 더 많은 민간인을 죽일 시간과 명분을 쌓으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홈스에서 구호품이 전달된 8일에도 시리아의 북동부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진행됐다. 알레포에서는 시리아 정부군이 헬기를 통해 떨어뜨린 ‘드럼통 폭탄’으로 20명이 숨졌다고 영국의 시리아인권관측소가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의 가톨릭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에 대한 시복(諡福)을 승인했다고 로마 교황청이 8일(한국 시간) 밝혔다. 이로써 한국 가톨릭은 1984년 김대건 신부 등 103위에 대한 시성식 이후 30년 만에 큰 경사를 맞았다. 시복은 순교자 등을 교회가 공경하는 인물인 복자(福者)로 선포하는 것으로 이후 성인(聖人)으로 추대된다. 외사촌 정약용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된 윤지충(1759∼1791)은 교리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됐으며 한국 최초의 가톨릭 순교자로 기록돼 있다. 함께 시복되는 123위는 1791∼1888년 순교자들이다. 이번 시복 발표에 따라 교황이 방한해 직접 시복식을 집전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1984년 103위에 대한 시성식은 당시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했다. 이와 관련해 교황청 해외선교 매체인 아시아뉴스는 “교황이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가 개막하는 8월 13일 한국을 찾아 가톨릭의 성모승천대축일인 15일 시복식을 주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AP통신 등 일부 외신은 이 매체를 인용해 “교황이 방한 기간 중 남북한의 통일을 기원하는 미사를 집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천주교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9일 “시복된 순교자들 중에는 신분 제도를 넘어 남녀평등과 인간적 권리 신장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많다”며 “이 순교자들의 공동체처럼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밝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파리=전승훈 특파원}
지난해 10월 시리아 난민들이 수용된 요르단 자타리 캠프 취재현장에서 만났던 아드난 아메드 군(16)의 눈빛은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시리아 남부 다라 지역에서 탈출한 아메드 군은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리아 내 대부분의 학교가 폐쇄된 뒤 감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학교에는 반군에 가담한 어른뿐만 아니라 4∼10세의 어린이들도 갇혀 있었다. 무장한 정부군은 아이들의 손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달아놓고 밧줄이나 쇠파이프로 때렸다. 이들은 소년병 가담 혐의를 받은 어린이들의 손톱과 발톱을 뽑았다. 전기충격을 가하며 잔혹하게 학대하기도 했다. 아메드 군은 “아이들의 귀를 자른 뒤 수배 중인 부모가 볼 수 있도록 길거리에 묶어놓은 것을 목격했다”고 털어놨다. 아메드 군의 증언은 유엔이 4일 내놓은 시리아 내전 아동에 대한 첫 인권 실태 보고서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유엔은 내전이 시작된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 15일까지 정부군이 어린이들을 상대로 자행한 납치, 구금, 구타, 고문, 성폭행, 인간방패 활용, 소년병 강제 동원 등 갖가지 인권 침해 사례를 수집해 공개했다. 레일라 제루기 유엔 아동·무력분쟁 특사의 이름으로 작성된 보고서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잔학한 방법으로 어린이들을 학대한 실상이 폭로됐다. 정부군은 어린이들에게 반군과 관련된 부모나 친척의 소재를 말하도록 강요하며 굵은 철제 밧줄이나 회초리, 곤봉으로 때렸다. 여자 어린이는 물론이고 남자 어린이도 성폭행을 당했으며 전기충격기로 아이들의 성기를 고문하기도 했다. 잠을 재우지 않거나 손톱 발톱을 뽑고 담뱃불로 지지고 독방에 감금했다. 정부군은 학교를 폐쇄해 아동의 교육 기회를 박탈한 것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인도적인 도움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뒤 2년 동안에는 어린이 인권 침해가 주로 정부군에 의해 저질러졌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반군에 의한 인권 침해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방의 지원을 받는 자유시리아군(FSA)과 시리아 쿠르드족은 난민 어린이들을 총탄이 날아오는 전투지역에서 인간방패로 내모는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이나 취업 기회가 전혀 없는 어린이들에게 압력을 가해 반군에 가담시키고 있는 것. 반군이 어린이를 살해한 사실도 드러났다. 유엔은 지난해 4월 14세 소년이 알카에다와 연관된 반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고 보고했다. 시리아 정부는 반군이 적어도 어린이 130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유엔은 시리아 내전으로 10만여 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1만여 명이 어린이라고 추정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보고서에서 “시리아 내전 이후 어린이들이 견뎌온 고통은 이루 말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수준”이라며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모두가 어린이들에 대한 모든 인권 유린 행위를 중단하고 민간인 지역에서의 테러, 공습, 화학무기 사용 등 무분별한 공격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야생동물 보호에 앞장서 왔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소치 국립공원을 방문해 북극곰 토끼와 함께 소치 겨울올림픽 상징 동물 중 하나인 페르시아 표범 길들이기를 체험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지프 승용차에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을 태우고 직접 운전해 산악지대의 국립공원에 있는 시베리아 표범 번식보존센터를 방문했다. 이 센터는 2009년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으로부터 멸종위기에 놓인 페르시아 표범을 들여와 개체 수 증식 사업을 벌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센터 소장에게서 성장한 페르시아 표범이 일주일에 274회나 교미를 한다는 말을 듣고는 동행한 기자를 향해 “본 좀 받으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푸틴은 센터 소장과 함께 새끼 표범 한 마리가 있는 우리 안으로 들어가 표범을 달래 머리를 쓰다듬고 표범을 안은 채 사진도 찍었다. 카메라 셔터에 놀란 표범이 사진기자들에게 달려들어 손을 할퀴고 다리를 물고 늘어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행히 표범이 어린 데다 기자들이 서둘러 우리에서 나와 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푸틴은 이런 소동이 벌어진 뒤에도 우리에 남아 표범을 쓰다듬어 진정시켰다.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푸틴은 “동물을 사랑한다. 표범과도 마음이 통했다”라고 말했다. 푸틴은 북극곰 시베리아호랑이 표범 등 희귀 야생동물 보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총리 시절이던 2008년 극동 우수리스크의 자연공원을 방문해 멸종위기종인 시베리아호랑이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다는 작업을 체험했고 2012년 9월엔 시베리아 북부 야말 반도를 찾아 행글라이더를 타고 역시 멸종 위기에 놓인 시베리아흰두루미 구하기 활동에 동참했다. 일부 전문가는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가 동물보호뿐 아니라 남성적이고 강한 지도자상을 심기 위한 통치술 차원의 의도적인 쇼맨십이라고 해석한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최근 북한이 잇달아 서방 언론에 ‘속살’을 내보이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당국은 3일 영국 공영방송 BBC에 남북 첫 합작 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를, AP통신에는 베일에 가려있던 인트라넷 ‘광명’을 전격 공개했다. 외국 언론을 향한 북한의 선전 공세는 장성택 처형 뒤 악화되는 국제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평양과기대, 광명 같은 정보기술(IT) 분야를 알리는 것은 첨단기술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뒤처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 행진곡 부르며 이동하는 학생들 BBC 탐사보도 프로그램 ‘파노라마’팀은 북한 당국의 이례적인 방문 허가를 얻어 2010년 남북 첫 합작 대학으로 개교한 평양과기대 캠퍼스의 운영 실상을 소개했다. BBC는 북한 당국과 18개월간의 협상 끝에 취재 허가를 받았다. BBC는 북한 내 유일한 사립대학인 평양과기대를 “북한 독재의 심장부에서 서구 자본으로 운영되는 대학”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취재팀 차량은 경비병이 지키는 보안초소를 거쳐서야 진입할 수 있었다. 학교 안에서는 깔끔한 양복과 티셔츠, 넥타이를 맨 학생들이 아침식사를 하러 가면서 ‘김정은 최고 사령관님을 목숨을 다해 지키겠다’는 행진곡을 불렀다. 식당에서 만난 한 북한 학생은 미국에 적개심이나 경계심이 없느냐는 질문에 “미국이라는 국가와 미국인은 별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우리는 세계의 모든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영어로 답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마이클 잭슨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양과기대는 연변과기대 설립을 주도했던 재미 사업가 김진경 총장(78)이 북한의 요청을 받고 세웠으며 설립기금 2000만 파운드(약 356억 원)의 대부분을 미국과 한국 기독교 자선단체가 지원했다. 학생 500명은 북한 당국이 선발한 최고위층의 자제들이며 100% 영어 강의로 이루어진다. 40명의 강사진은 대부분 미국인이다. 영국인인 콜린 매컬록 경영학 강사는 “현대 사회에서 완전한 폐쇄 경제는 불가능하다. 북한 지도부도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북한의 미래 엘리트를 키우는 평양과기대가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의 사고를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인터넷의 독재 버전 ‘광명’ AP통신이 김일성대 e라이브러리를 방문해 취재한 인트라넷 광명은 인터넷 접근이 제한된 북한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내부 인터넷 시스템이다. 북한 당국이 외국 IT 자문관의 접근까지 철저히 통제할 만큼 비밀리에 운영해온 광명을 전격 공개한 것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IT 분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통신은 광명을 “자유로운 인터넷의 독재주의 버전”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채팅과 e메일은 모두 감시를 거쳐야 하고 검색엔진 ‘내나라’로 접근할 수 있는 웹사이트는 1000∼5500개에 불과하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면 광명은 ‘정보의 빈곤’인 셈이다. 광명이 제공하는 정보는 정부 대학 기업이 일방적으로 배포하는 정보가 대부분이다. 오락 상거래 대화 등 쌍방향으로 진화하는 글로벌 인터넷 조류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 통신은 광명을 알고 싶으면 1980년대 미국에서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연상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윌 스콧 평양과기대 컴퓨터 강사는 “광명 사용자들이 e메일이나 채팅을 할 때 워낙 자기 검열을 하다 보니 정보당국이 철저히 감시할 필요조차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은 외국인과 극소수의 교수, 대학원생에게만 특정 장소에서 접근이 허용된다. 그러나 ‘인터넷은 위험하고 금지된 영역’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어 접근 자격이 있어도 대부분 접속을 꺼린다. 인터넷의 자유로운 접근을 요구하는 풀뿌리 운동도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이 광명을 통해 자유로운 정보 접근을 막고 있지만 개방된 인터넷 체제로 나아가는 ‘IT 댐’의 수문을 계속 막아 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통신은 예상했다.워싱턴=정미경 mickey@donga.com 파리=전승훈 특파원}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전자상거래가 발전하면서 다국적 기업이 수집한 개인정보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월 ‘개인정보 보호지침(Data Protection Directive)’을 확대 강화한 ‘개인정보 보호규정(regulation)’을 발표했다. EU가 다국적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해외로 옮길 때 EU 기준의 개인정보 보호원칙을 적용하도록 한 인증규칙 ‘BCR(Binding Corporate Rules)’도 포함돼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EU는 개인정보 보호규정 위반 기업에 글로벌 매출액의 2% 또는 최대 100만 유로(약 14억6210만 원)를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구글은 EU 국가들의 정보보호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스페인 당국으로부터 90만 유로, 프랑스 국가정보위원회(CNIL)로부터 15만 유로의 벌금을 각각 부과받았다. 미국은 1995년 제정한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 제공 및 이용 원칙’에 따라 기업의 개인정보 수집을 철저히 고객의 동의에 따르도록 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37개 주 정부는 구글에 대해 애플 제품 사용자의 동의 없이 인터넷 브라우저인 사파리를 통한 쿠키 정보 값을 수집해 마케팅에 활용한 혐의로 1700만 달러(약 184억2800만 원) 규모의 벌금을 부과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2012년 11월 2250만 달러(약 243억 9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워싱턴=신석호 특파원}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사죄와 반성으로 주변국들의 신뢰를 회복한 독일이 해외 파병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같은 패전국인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건 대외 군사 활동 강화가 주변국의 우려를 사는 것과 달리 독일의 움직임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세계 각국의 안보 책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뮌헨 안보회의’ 기조연설에서 독일 연방군의 활동을 좀 더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독일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의 죄를 면피의 방패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군대 파견 문제가 나오면 독일은 무조건 ‘노(No)’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3기 정부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도 이날 연설에서 “세계화로 먼 곳의 유혈 분쟁이 언제든 유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무관심’은 독일 같은 국가에서 선택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도 “매일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데 우리는 다른 곳만 바라볼 수 없다”고 말했다. 2011년 3월 리비아 사태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무력 개입에 동참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고 유엔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기권함으로써 국제 외교 무대에서 빈축을 샀던 독일로서는 아주 달라진 자세를 보인 것이다. 독일 지도자들의 이런 발언에 대해서 주요 언론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과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가우크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독일이 나치와 공산주의(동독)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넘어 국제무대에서 역할을 하려는 상징적 신호”라고 주목했고 오스트리아 매체인 프레세는 “독일이 국제평화에 대한 무임승차를 끝내려 한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독일은 전투병 파병은 여전히 국내외의 부정적 시선 때문에 피하고 있다. 독일 공영 ARD 방송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1%가 독일군의 외국 파병 확대에 반대한다고 답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총살로 처형됐다고 북한 외교관이 처음으로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달 30일 방영된 영국 스카이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장 전 부위원장의 처형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현 대사는 “장성택은 2009년 460만 유로(약 67억 원)를 유용하는 등 권력을 남용해 인민의 경제적 삶을 개선시키려는 국가와 당에 중대한 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현 대사는 “당은 장성택의 행동을 과거 몇 번이고 용서했지만 이번에는 수용의 한도를 넘었다. 그는 총살당했다”고 말했다. 장성택 처형 방식을 놓고 자극적인 보도가 잇따랐지만 북한 당국자가 자세한 내용을 서방 언론에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 대사는 장성택의 가족, 친척 100여 명도 함께 처형됐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적들에 의한 정치 선전이며 조작된 보도”라며 부인했다. 그러나 “장성택 가족은 살아 있느냐”라는 진행자의 확인 질문에 “나는 그가 처벌받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이 처벌받았는지 아닌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한편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68)가 유럽에 머물고 있다고 지난달 30일 복수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김 비서는 장성택이 처형된 뒤 북한을 떠나 스위스에 머물렀고 이후 폴란드로 이동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밝혔다. 폴란드에는 2011년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이 1998년부터 북한대사로 주재 중이다. 소식통 중 한 명은 김 비서가 추방당했거나 스스로 출국했을 가능성을 거론하며 “단순한 치료 목적이면 아무래도 귀국하겠지만 그대로 해외에 장기 체류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북한이 장성택과 관련해 처형한 노동당 간부 등 16명의 명단을 1월 상순 중국 유럽 동남아 등지의 주요 재외 공관에 송부했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도쿄=배극인 특파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시리아 국제평화회의(제네바2)에서 시리아 정부와 반군 사이에 첫 성과물이 나왔다. 600일 넘게 시리아 정부군이 포위하고 있는 홈스 지역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의 탈출을 허용하기로 양측 대표단이 합의했다. 양측 협상의 중재자로 나선 라흐다르 브라히미 유엔 아랍연맹특사는 26일 협상 뒤 회견을 열어 “시리아 홈스 지역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이 이르면 내일부터 도시를 빠져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시리아 정부와 반군 사이에 열린 두 번째 협상에서 나온 ‘작지만 의미 있는’ 첫 결과물이라고 BBC가 보도했다. 반정부군의 거점 홈스는 2011년 1월부터 시리아 반정부 시위가 거세게 일어난 첫 번째 도시였다.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였으나 내전으로 주민 상당수가 떠났다. 특히 정부군이 2년 가까이 도시를 포위해 시민들의 출입과 구호 차량의 접근을 제한하는 바람에 고립된 주민들이 기아와 질병에 고통받고 있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밝혔다. 브라히미 특사는 “유엔과 적십자 측의 구호 요원들도 홈스에 접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시리아 정부 측은 “식량이 반군에게 지원되지 않는다는 조건이 보장돼야 들어갈 수 있으며 홈스에 살고 있는 남성들은 전투원이 아니라는 증명을 해야 나올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협상에서는 시리아 정부가 교도소에 감금한 수천 명의 반군 재소자들과 반군이 체포한 정부군 포로를 맞바꾸는 협상도 진행됐다. 하지만 양측 대표단은 두 번의 대면 협상에서도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고 중재인인 브라히미 특사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간접 협상을 진행해 경직된 분위기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브라히미 특사는 “홈스 지역에 대한 긴급 구호는 향후 협상의 시금석”이라며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마침내 과도정부 수립 등의 원대한 주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네바2’ 회담은 다음 주까지 7, 8일간 이어질 예정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위안부 문제 해결 모임인 ‘희망나비’는 25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에펠탑 부근 샤요 궁 광장에서 ‘세계 1억 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한국인 유학생들과 현지 교포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의 고통을 알리면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서명 참가를 요청했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정새날 씨는 “김복동 할머니의 파리 방문이 일회성 행사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서명운동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파리에서는 지난해 9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 집회가 열린 바 있다. 정 씨는 “다음 달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유럽 차원의 캠페인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대협이 주최하는 ‘1억 인 서명운동’은 지난해 3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범죄의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실시하도록 세계인의 요구를 모으기 위해 시작됐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오 르부아(Au revoir·안녕), 발레리.” 여배우와의 염문설에 휩싸였던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결국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와 헤어졌다. 올랑드 대통령은 25일 AF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트리에르바일레르와 파트너로 함께 공유해온 삶을 이제 정리했음을 알린다”고 결별을 공식화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날 결별 선언은 10일 연예주간지 클로저가 올랑드 대통령이 여배우 쥘리 가예와 사귀고 있다고 폭로한 지 약 2주 만에 나왔다. 올랑드 대통령은 2007년 동거녀인 세골렌 루아얄 전 사회당 대표와 헤어진 뒤 트리에르바일레르와 7년간 함께 살아왔다. 트리에르바일레르도 이날 오후 그동안 머물러온 베르사유 인근 대통령 별장인 ‘라 랑테른’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또 트위터를 통해 엘리제궁 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엘리제궁을 떠나는 순간에 그동안 내게 보여준 헌신과 감정적 위로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염문설 보도 이후에도 트리에르바일레르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머뭇거려왔다. 그런 올랑드 대통령이 서둘러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은 트리에르바일레르가 프랑스 원조단체로부터 대통령 부인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27, 28일 이틀 동안 인도에서 열리는 자선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다. 트리에르바일레르에게 매달 2만 유로(약 2950만 원)가 넘는 예산이 지원되는 데다 대통령 부인 자격으로 해외 방문 사실까지 공식 발표하자 프랑스 전역에서는 “대통령은 빨리 결단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23일 결국 점심식사를 함께하면서 결별에 대한 최종 담판을 지었다고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이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트리에르바일레르가 ‘대통령 부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인도를 방문하며 귀국한 뒤 엘리제궁에 짐을 풀지 않는 데 합의했다. 트리에르바일레르는 2012년 대선 전에 올랑드 대통령과 함께 살았던 파리 15구의 아파트로 이주할 것으로 보인다. 올랑드 대통령은 25일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사생활보다는 프랑스의 경제개혁 이슈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사생활 논란을 정리하고 침체에 빠진 경제 활성화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날 대통령의 결별 선언에 프랑스 여야도 “이제 다른 주제를 논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했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은 빠르게 다음 퍼스트레이디로 이동하고 있다. 일간 르피가로는 “정계가 이번엔 ‘올랑드-가예’ 연재소설의 페이지를 빨리 넘겨보고 싶어 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올랑드 대통령이 최근 “미래에는 엘리제궁에 ‘퍼스트레이디’가 없었으면 한다”고 밝혀 올랑드의 새 연인인 여배우 가예가 당장 대통령 부인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언론들이 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동거녀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사진)가 대통령과 여배우 쥘리 가예의 염문설을 듣고 격분한 나머지 엘리제궁에 있던 골동품을 집어던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프랑스의 온라인 매체 에코노미마탱은 22일 트리에르바일레르가 올랑드 대통령의 집무실에 있던 루이 16세 시절의 꽃병과 시계, 그림 등 300만 유로(약 44억 원)에 이르는 집기를 던져 부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엘리제궁의 가구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프랑스 문화부 산하 기관인 모빌리에 나시오날의 대변인은 23일 “완전히 날조된 거짓말”이라며 부인했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이 소식은 20일 우익 블로거가 “모빌리에 나시오날 고위 인사에게서 들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처음 나왔고 이후 다른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널리 퍼졌다. 트리에르바일레르에 대한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10일 프랑스 주간지 ‘클로저’가 염문설을 보도한 직후 트리에르바일레르가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처음이다. 주간 누벨옵세르바퇴르는 “올랑드 대통령이 동거녀와 결별 선언을 하려고 했으나 트리에르바일레르의 입원으로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트리에르바일레르 측은 이 기사를 강하게 부인했다. 8일간 병원에 입원했던 트리에르바일레르는 18일 퇴원한 뒤 현재 베르사유에 있는 대통령 별장 ‘라 랑테른’에 거주하고 있다. 트리에르바일레르는 올랑드의 스캔들 보도 이후 처음으로 26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AFP통신은 트리에르바일레르가 프랑스 원조단체인 ‘기아대책활동(ACF)’의 초청을 받아 이틀 동안 인도에서 열리는 자선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당초 ACF는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인 트리에르바일레르를 초청했지만 올랑드 대통령의 외도설 폭로 이후에도 여전히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참석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통신은 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행진’을 멈추기 위한 ‘제네바2 회담’이 22일 스위스 몽트뢰에서 개막됐다. 그러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거취를 놓고 참석자들이 치열한 공방을 벌여 첫날 회의는 성과 없이 끝났다. 이날 시리아 정부 대표와 반군 대표를 비롯한 39개국 외교장관과 4개 국제기구는 2012년 6월 ‘제네바1 회담’에서 합의한 ‘시리아 과도정부 수립과 민주선거’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하지만 아사드 대통령 퇴진이 전제조건이라는 서방국들의 의견에 시리아와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했다. 왈리드 무알렘 시리아 외교장관은 “아사드 대통령의 사퇴는 절대 없을 것”이라며 “시리아 정부는 테러리즘과 싸우고 있는데 서방은 비밀리에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고 있다”고 서방국가들을 비난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22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사드 대통령을 ‘전략적 파트너’로 보진 않지만 현직 대통령으로서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자국민에 대한 잔혹한 행동을 주도해 합법성을 잃은 인물이 과도정부에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맞섰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교장관도 “이번 회담은 ‘과도정부 수립’ 방안을 찾는 것이지 근거 없는 테러 주장을 펴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가세했다. 반정부 연합체인 시리아국민연합(SNC) 아흐마드 자르바 의장도 “시리아 정부군이 오히려 이란, 헤즈볼라 등 테러리스트를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최근 국제사법재판소 검찰관이 제출한 보고서에 나온 아사드 정권의 포로수용소 대규모 학살 및 고문 의혹에 대해 국제사회가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회의에서 무알렘 장관은 7분으로 제한된 발언시간을 20분 넘게 초과해 서방국가를 비난하다가 “발언시간을 지켜 달라”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설전을 벌였다. 뉴욕타임스는 “비틀거리는 외교 문제로 인해 간신히 시작된 시리아 평화회담에서 마찰과 날선 비판이 오갔다. 시리아 외교장관이 회의 규칙을 무시하고 반 총장에게 공개적으로 도전했다”고 전했다. 이번 시리아 평화회담은 사실상 반 총장이 주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담의 성패가 그의 정치·외교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대’로 여겨지고 있다. 시리아에 대한 군사 대응을 막고 평화회담을 개최한 것은 반 총장의 공로지만 이란을 초청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한 것에는 “전 세계 대표 외교관으로서 좀 순진했다”(미국외교협회 스튜어트 패트릭 수석연구원)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반 총장이 팽팽한 미-러 대결 속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회담은 24일부터 제네바 유엔본부로 장소를 옮겨 7∼10일간 유엔과 시리아 양측 대표단의 당사자 회의로 진행된다.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 아랍연맹 특사는 양측 대표단이 국지적 정전과 포로 교환, 인도주의적 지원 통로 확보 등 단계적 평화안을 논의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은 “일단 외교적 절차를 시작하면 성과가 나올 수 있다”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글로벌 정치 및 경제계의 별들이 총출동하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이 끈질기게 초청해도 참석하지 않는 ‘안티 다보스’ 거물들이 조명을 받고 있다. 21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83)과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53)는 한 번도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적이 없다. 쿡의 전임자인 고 스티브 잡스(1955∼2011)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40)와 세르게이 브린(40), 페이스북의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30)도 2년 전부터 다보스포럼에 발길을 끊었다. 그 대신 그들은 대리인을 보내 다보스포럼의 체면을 살려주고 있다. IBM의 여성 수장인 버지니아 로메티(56)와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멀트 회장(58)도 불참을 선언했다. 이멀트 회장은 “다보스 같은 데는 안 갈 것”이라며 경멸적으로 비판한 적도 있다. 이들이 다보스포럼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기업인들의 WEF 참가 비용은 연회비 외에 티켓을 합쳐 7만 달러(약 7469만 원) 정도다. 이 때문에 ‘1% 중에서도 1%를 위한 잔치’로 불린다. 권위적인 문화를 꺼리는 정보기술(IT)업계 인사들은 이런 모임에 호의적이지 않은 편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런던시장은 “서로서로 아첨하는 자기도취의 모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2일부터 스위스에서 열리는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제네바2 회담’을 앞두고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자국민을 고문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일 시리아 정부 수용소에서 2011년 3월∼지난해 8월 숨진 수감자 시신의 사진 5만5000여 장을 분석한 보고서를 입수해 이같이 보도했다. 31쪽에 이르는 이 보고서는 카타르 정부의 후원으로 데즈먼드 드실바 전 시에라리온 특별법정 검사와 제프리 나이스 전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검사,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을 기소한 데이비드 크레인 등 전쟁범죄 검찰관들이 작성에 참여했다. 이 사진들은 시리아군 헌병대에서 일하던 카이사르라는 사진사가 직접 찍은 것으로 구금 중 숨진 사람의 시신 1만1000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 속 피해자 대부분은 20∼40대의 남성으로 상당수가 배 얼굴은 물론이고 다리까지 움푹 꺼진 상태로 말라 있었으며 각목 같은 물체로 구타당한 피멍 흔적도 보였다. 일부 시신에는 눈이 없거나 교살 또는 전기고문을 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검사팀은 설명했다. 카이사르는 “아사드 정권이 수용소에서 희생자들을 군 병원으로 옮긴 뒤 시신에 번호를 매기고 기록용 사진을 찍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심장마비나 호흡곤란 등으로 죽었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만들어 희생자의 가족에게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드실바 전 검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를 연상시킨다”며 “이 증거들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반인권적인 범죄가 자행됐음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아사드 정권이 대규모로 민간인을 학살했음을 보여주는 이번 보고서는 제네바2 회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은 “우리는 시리아 정부에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계속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 3년 동안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에서는 12만6000여 명이 숨지고 인구 2200만여 명 중 230만 명가량이 나라 밖 난민으로 전락했다. 한편 마틴 네시르키 유엔 대변인은 20일 “이란 정부를 ‘제네바2 회담’에 초청하기로 한 당초 방침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회담 시작 막판까지 이란이 시리아 과도정부 구성을 요구한 이른바 ‘제네바1 회담’ 합의문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란을 초청한 데 대해 미국 정부와 시리아 반군,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이란 초청에 강하게 반발한 것도 초청 전격 철회의 요인이 됐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19일 한석우 KOTRA 트리폴리 무역관장(39)이 납치된 리비아는 ‘아랍의 봄’으로 철권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붕괴된 뒤 1700여 개의 무장단체가 난립해 유혈 충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리비아 과도정부는 지난 2년간 리비아를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차량 탈취나 강도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유전지대인 동부 지역의 일방적 자치 선언으로 분단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으며 내전 재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리비아 정부는 2011년 카다피 축출 이후 60년 만에 자유선거를 통해 제헌의회(GNC)를 소집했다. 하지만 첫 총리였던 무스타파 아부샤꾸르가 정부 구성에 실패해 취임 25일 만에 해임됐다. 2012년 10월 인권변호사 출신인 알리 자이단 총리(63)가 임명된 이후에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리비아 과도정부는 정부군과 경찰 부족으로 카다피 축출에 앞장선 민병대에 치안을 맡겨 왔다. 현재 리비아 전역에 등록된 민병대는 22만5000명 이상. 부족과 군벌로 나눠진 이들은 이권을 놓고 서로 총을 겨눠 왔다. 특히 벵가지 등 동부 지역은 트리폴리의 과도정부와는 별도로 자체 총리를 세우고 중앙은행을 운영하는 등 분리의 길을 걷고 있다. 리비아 석유자원의 60%가 몰려 있는 동부 키레나이카 지역을 통제하는 민병대 약 2만 명도 지난해 11월 자치를 선언했다. 급기야 이번 피랍 사건 전날인 18일 리비아 남부 세바 지역에서 친카다피 잔당세력이 정부 공군기지까지 점거하자 의회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다. 외국인에 대한 테러나 납치도 끊이지 않는다. 2012년 9월 이슬람 무장단체가 당시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였던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등 외교관 4명을 벵가지에서 살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지난해 10월에는 알리 자이단 총리가 무장그룹에 의해 납치됐다 풀려나기도 했다. 새해 들어서도 11일 하산 알드로위 과도정부 산업부 차관이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한 무역관장을 납치한 범인들은 범행 후 서쪽으로 달아나 알카에다와의 연관성도 주목되고 있다. 서남부의 사막 지역은 알카에다 연계 무장단체의 피란처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AP통신은 19일 지난해 말리에서 프랑스 군대 등에 의해 쫓겨난 북아프리카의 알카에다 무장세력이 리비아 남서부 사막에 피란처를 세웠다고 보도했다. 사막에 캠프를 차린 알카에다 세력은 무기를 사 모으고 병력을 충원하면서 새로운 공격을 준비 중이다. 2년여 전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면서 정부군이 힘을 잃었고 사막지역을 통제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정부군 장교 무함마드 씨는 “군대보다 화력이 더 강한 알카에다 세력의 군수품과 병력을 실은 무장 차량을 그냥 지나가게 하는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친카다피 세력과 반군에 이어 국제테러 조직까지 몰려드는 리비아에 대해 “무장단체의 천국”이라고 지적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한인 민박 ‘사하라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고채영 사장은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트리폴리는 과도정부의 치안력이 미쳐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겼는데 이번 피랍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받았다”며 “예전에는 한국에서 출장 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아랍의 봄’ 이후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유덕영 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는 각국 중산층을 대거 몰락시키고 고질적 실업문제를 불러왔다. 소득격차로 인한 사회 불안이 향후 10년간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위협이다.” 스위스 유명 휴양지 다보스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가 22∼25일 ‘세계의 재편(The Reshape of the World)’을 주제로 열린다. 최근 수년간 휘몰아친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이후 전 세계에 몰아닥친 폭풍이 정치, 사회와 기업 환경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세계 경제의 미래를 그려 보자는 것이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더욱 심해진 소득 불평등과 전 세계 7500만 명에 이르는 청년실업자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가 핵심 의제다. 포럼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부자들의 사교장’이라고 비난한 것과 비교하면 포럼의 주제로는 무척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올해 다보스 포럼 의제는 ‘리셋(재설정) 단추’를 누르자는 것”이라며 “세계는 여전히 너무 과도하게 위기관리 모드에 머물러 있다. 미래를 더 건설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으로 바라봐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WEF는 개막 직전 펴낸 ‘글로벌 리스크 2014’ 보고서에서 31개 위험요인 중에서 ‘소득불평등 문제’를 향후 10년간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경고했다. 주요 세계 여론 주도층 700명과 심층 면접해 작성된 이 보고서는 2010년대 성년에 접어든 젊은이들이 고질적 실업과 미숙련, 빈곤에 시달리는 ‘상실 세대’로서 사회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WEF의 제니퍼 블랭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청년실업층이 주도한 아랍의 봄이나 태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시위 사태는 미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불평등 문제를 더 참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던져준다”고 말했다. 국제 사무직 노조 네트워크의 필립 제닝스 사무총장은 “이 보고서는 세계 경제를 일깨우는 자명종”이라며 “WEF 참가자들이 일자리 창출과 소득격차, 생활수준 하락에 대해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EF 보고서는 이 밖에도 이상 기후와 기후변화 대응 실패, 수자원 위기, 재정적자, 해킹 등 사이버 공격 등이 10대 경제 불안 요소라고 지적했다. 40여 개국 정상과 총리 등이 이번 연차 총회에서 연설할 예정이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와 학자, 기업인 등 2500명이 참석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오전 ‘창조경제와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개막 연설을 한다. 월드스타 싸이도 21일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해 글로벌 리더들과 만난다. 마켓워치는 18일 이번 포럼에서 주목해야 할 인사 10명을 꼽았다. 소득 불균형 해소 문제와 관련해 2012년 저서 ‘불평등의 대가’를 펴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공격적 엔화 약세 정책과 과거사 문제로 주변국의 반발을 사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이다. 아베 총리는 22일 오후 ‘세계의 재편: 일본의 비전’을 주제로 연설한다.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는 시리아 내전과 이란의 핵문제도 큰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스위스 몽트뢰에서 시리아 국제평화회담(‘제네바2’ 회담)이 동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다보스 포럼에 처음 참석하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경제제재 해제, 서방과의 관계 개선 및 투자 유치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닐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핵협상 타결에 가장 강력히 반대해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반응도 주목된다. 다보스 포럼은 60개 이상의 세션이 스트리밍 형태로 생중계되고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현장 분위기가 전달되는 등 디지털 형식이 강화돼 지구촌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거울의 방’이다. 낮에는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해 질 녘에 진면모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어둠이 내린 베르사유 정원에서 바라보면 17개의 대형 거울에 비친 화려한 샹들리에와 천장화가 어우러진 빛이 눈부실 정도다. 그러나 ‘거울의 방’은 프랑스인들에겐 치욕적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1871년 독불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은 이 방에서 첫 독일 황제로 즉위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대관식을 열었다. 거기에 알자스로렌 땅까지 빼앗긴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 왔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선전포고를 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환호성이 들릴 정도였다. 젊은이들의 자원입대도 줄을 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장에서 맞닥뜨린 건 20세기의 가공할 무기였다. 1분에 600발의 탄환을 뿜어대는 기관총,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폭탄, 화학무기…. 5개 대륙에서 6000만 명 이상의 군인들이 참전해 1000만 명 이상이 죽은 1차대전은 ‘위대한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살육기계가 전쟁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꿨을 뿐 아니라 20세기 전체를 지배한 국제질서를 낳은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1차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유럽에선 많은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6월 28일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당한 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공식 기념식이 열린다. 8월 3일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정상이 알자스 지방의 참호 속에서 죽어간 전사자들을 추모할 예정이다. 그런데 연초부터 “2014년의 정세가 1914년과 닮았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역사학자인 마거릿 맥밀런 교수(옥스퍼드대)는 저서 ‘평화를 끝낸 전쟁(The War That Ended Peace)’에서 1차대전의 원인으로 강대국 독일의 부상, 내셔널리즘의 발호, 프랑스의 독일에 대한 복수심, 오랜 평화로 인한 전쟁에 대한 무감각 등을 꼽았다. 강력한 ‘통일 독일’의 등장은 유럽에서 늘 경계의 대상이 돼 왔다. 20세기 초반에 이어 독일은 다시 유럽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떠올랐다. 남유럽에서는 “독일이 유로존 위기를 틈타 세 번째로 유럽 대륙을 망치려 한다”며 민족주의 감정을 키우고 있다. 독일은 예전처럼 군사력은 아니지만 재정개혁 요구를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그리스 같은 나라는 한순간에 파산시켜 버릴 수 있는 경제 권력을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견제가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맥밀런 교수는 현재의 중국을 1차대전 당시의 신흥 강국 독일에, 당시의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구 강국은 현재의 미국과 일본에 비유했다. 중국의 급부상은 힘의 균형을 깨려 하고 있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은 중국과 한국에서 일본에 대한 복수심을 자극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 김정은 정권의 좌충우돌은 언제든 화약고에 불을 붙일 ‘세르비아의 총탄’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100년 전과 가장 큰 유사점은 누구도 ‘실제로 전쟁이 날 수 있다’는 점을 상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차대전 당시 유럽도 근 100년간의 평화를 만끽했고 금융 운송 통신의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영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마치 ‘몽유병자’들처럼 유럽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1차대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말했다. “우리는 과연 100년 전의 몽유병자들과 달리 깨어 있는가?” 새해 어지러운 주변 정세를 보며 떠오른 궁금증이다.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49)가 아직 퍼스트레이디입니까?” 14일 오후 4시 반 프랑스 대통령 집무실인 엘리제궁 기자회견장.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60)의 연두기자 회견에서 첫 질문자로 나선 일간지 르피가로의 알랭 바를뤼에 기자가 질문을 던지자 500여 명의 기자가 모두 숨을 멈췄다. 대통령 얼굴에서도 순간 핏기가 사라졌다. 이 장면은 TF1 등 대부분의 공영과 민영 채널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40분간의 기조연설에서 20%대로 떨어진 최악의 지지율을 회복하고자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감세정책’ 카드를 야심 차게 꺼내들었다. 그는 연설을 마치고 “경제 분야를 먼저 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첫 질문부터 10일 주간지 ‘클로저’가 폭로한 여배우 쥘리 가예(42)와의 염문설 관련 내용이었다. “여러분의 질문을 이해한다. 내 대답도 이해해 달라”라고 운을 뗀 올랑드 대통령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모든 사람이 시련을 겪게 되는데 우리에겐 이번이 그 경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생활 문제는 비공개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기자회견은 시간과 장소 모두 부적절하다”며 피해갔다. 하지만 동거녀로 대통령 부인 역할을 하는 트리에르바일레르 씨가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한 이후 퍼스트레이디의 거취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동거인이라 대통령과 헤어지면 엘리제궁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올랑드 대통령은 “다음 달 11일 미국 공식방문 전에 상황을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트리에르바일레르 씨는 “퍼스트레이디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올랑드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와중에 영국 데일리메일은 가예의 임신설까지 제기해 아직 상황은 오리무중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2시간가량의 기자회견 내내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느라 애를 썼다. 그가 제안한 ‘책임 협약’은 2017년까지 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부과하는 사회보장 부담금을 300억 유로(약 43조5000억 원) 줄이고 고용을 더 늘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취임 후 줄곧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며 사회주의 색깔을 뚜렷이 나타내 왔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실업률이 두 자릿수로 오르자 복지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우향우’ 선언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르피가로는 “대통령이 친기업적인 노선으로 ‘커밍아웃’했다”고 평했고, 좌파 신문인 뤼마니테는 “올랑드가 임기 후반에는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올랑드 대통령을 ‘프랑수아 블레어’라고 부르며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사회적 자유주의’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관련국 간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기보다는 상대방에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는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62)은 지난해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수천 명이 강제노역을 했던 하시마(端島·군함도) 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한 데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보코바 사무총장은 지난해 12월 16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중일 간 과거사 논쟁과 영토 분쟁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꽉 막힌 정치 외교적 문제일수록 문화적 접근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2013년 9월 30일 규슈(九州)와 야마구치(山口) 현의 근대화 산업유산 28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신청했고 유네스코는 현지 조사 등을 거쳐 2015년 최종 등록할지를 결정한다. 그런데 후보 유적지는 대부분 일제강점기 한국인 수천 명이 강제노역을 했던 조선소, 해저탄광 등이다. 일본엔 메이지(明治) 시대의 유산일 수 있지만 한국 등 주변국에는 상처가 어린 곳이다. “우선 이것은 유네스코 산하 세계문화유산위원회가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할 사안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다만 사무총장으로서 강조하고 싶은 가이드라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기본적으로 관련국을 분열과 갈등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통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가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주변 국가 간에 분열의 불씨가 되는 사례를 종종 본 적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이웃 국가에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분쟁이 있던 나라 간에 대화와 친교를 증진시키고 공통의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한중일 간에는 과거사 논쟁과 갈등이 심각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의 아픔을 겪은 독일과 프랑스처럼 동북아 차원의 공동 역사교과서를 발간하자고 제의한 바 있다. 유네스코는 1964년부터 1999년까지 ‘통합 아프리카 역사’ 발간을 주도했는데…. “역사 분쟁이 있던 국가끼리 과거사 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평화로운 미래협력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 유네스코 방콕사무소에서는 2013년 9월부터 동남아시아의 문화협력을 촉진하는 ‘공동역사 발굴’ 사업을 시작했다. 유네스코는 또 타자의 문화와 역사를 인정하고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며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적 과제에 협력할 줄 아는 ‘글로벌 시민교육’을 강조해왔다. 한중일 3국도 각국의 유네스코 무형유산센터를 통해 역사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협력관계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유네스코가 적극 나서겠다.” 1946년 2차 대전 종전 직후 설립된 유네스코는 국민 간의 상호 이해와 문화 보급으로 항구적인 세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기구로 ‘세계 지성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불가리아 외교장관 출신인 보코바 사무총장은 2009년 유네스코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장으로 선임됐다. 유네스코는 2011년 11월부터 극심한 재정위기에 시달려왔다. 미국이 국내법상 팔레스타인을 회원국으로 승인한 국제기구에는 지원금을 낼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유네스코 1년 예산의 22%에 이르는 납부액을 3년째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코바 총장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민간협력 프로젝트 개발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2013년 11월 총회에서 두 번째 임기(4년)의 사무총장으로 재선됐다. 그는 다음 달 2∼5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다. ―유네스코의 파산위기를 극복한 비결은…. “2년간 마른 수건을 짜는 혹독한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에 나섰다. 그러나 유네스코의 주요 사업까지 포기할 순 없었다. 대안은 민간기업과의 적극적인 협력개발이었다. 지난 2년간 개발도상국의 여성교육, 과학연구, 교사연수 등의 프로젝트에 민간이 기부한 액수는 5000만 달러(약 527억 원)에 이른다. 회원국의 특별분담금으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희망브리지’ 사업을 진행해준 한국 정부와 기업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지난해 미국은 유네스코 총회에서 표결권을 잃었다. 미국이 다시 유네스코 부담금을 낼 가능성은…. “미국은 여전히 유네스코의 회원국이자 집행이사국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나에게 표결권 상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유네스코에 지속적인 참여와 지지를 약속했다. 세계의 지성인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인 유네스코에 참여하는 것은 미국의 국제적 이익에도 중요하다.” ―유네스코에 한국이란 어떤 존재인가. “약 1년 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를 찾았을 때 1950년대 초등학교 시절에 자신이 배웠던 교과서를 기증해 감동받았다. 반 총장이 가져온 교과서의 뒷면에는 ‘유네스코가 지원한 시설과 종이로 인쇄했다’는 내용이 영어로 적혀 있었다. 유네스코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교육 분야 지원으로 재건을 도왔다. 요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아프리카 교사 기술연수, 청년 직업교육 등 ‘희망브리지’ 사업을 펴고 있다. 삼성 등 기업도 유네스코와 적극 협력하고 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교육의 힘으로 나라를 재건한 경험을 개발도상국들에 나눠줄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한국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보코바 사무총장은 자신의 두 번째 임기 중 가장 중요한 과제로 2015년 인천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교육자대회’를 꼽았다. 2000년에 세운 밀레니엄 교육개발 목표를 평가하고 2015년 이후 20∼30년 동안 추구할 지속가능한 새 교육개발 어젠다를 설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2000년 세네갈 다카르 회의에서 채택됐던 밀레니엄 교육개발 목표는 글로벌 기초교육 보급운동인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이었다. ―2015년 이후의 밀레니엄 교육개발 목표에서 가장 중요한 비전은 무엇인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사회에서 불평등 격차가 더욱 커졌다. ‘포스트 2015년’의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에서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소프트 파워’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그 핵심 역할을 한다. 21세기에 문화는 더이상 ‘돈 낭비’가 아니며 차세대 글로벌 경제를 이끌 창조적 지식산업의 원천이다. 문화는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며 집단 구성원을 소통시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매개체이다. 소프트 파워야말로 사람들을 글로벌 세계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힘이다.” ―유네스코는 지난해 11월 ‘창조 경제’에 관한 리포트를 발표했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창조 경제’란 무엇인가. “‘창조 경제(creative economy)’가 성공하려면 우선 ‘창조 사회(creative society)’가 성숙돼야 한다. 인간은 기계나 로봇이 아니다. 인간은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창조성을 발휘할 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창조 경제라고 해서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산업만 생각해선 안 된다. 인문학 진흥과 문화예술교육 확대를 통해 ‘창조 사회’의 분위기를 성숙시켜야 한다. 사람들이 문화유산과 정체성에 관심을 갖다보면 정신세계가 크게 열리게 된다. 어린이들에 대한 문화예술교육이 꼭 화가나 배우만 키우려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을 받은 어린이는 더 창의적인 자연과학자, 정치인, 경영인이 될 수 있다. 지난해 파리에서 만난 박근혜 대통령도 국정과제의 중심으로 문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걸 보고 깊이 감명받았다.”1952년 불가리아 출생1976년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1989년 미국 메릴랜드대 행정대학원 수료1990년 불가리아 사회당 당원1996∼97년 불가리아 외교장관1997년 유럽정책포럼 이사1999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수료2009년 유네스코 첫 여성 사무총장 선임2013년 유네스코 사무총장 재선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