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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 금융위원장(사진)은 9일 총리실 산하 ‘금융감독혁신TF’의 활동 방향에 대해 “공권력적인 행정작용인 금융감독권을 그냥 아무 기관에나 주자고 할 순 없다”고 밝혔다. 이어 “행정권 배분은 헌법에 따른 것인 만큼 (감독권 재조정은) 헌법의 대원칙을 훼손한다는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의 감독권 독점을 깨뜨려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반대의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TF는 모든 방안을 원점에서 검토한다는 방침이어서 김 위원장의 발언은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의 감독체계를 만들 때 법률 논쟁만 20년을 했다”며 “TF는 금감원의 검사 행태나 직원의 문책 쪽에 비중을 둬야지 감독체계의 조직 자체를 바꾸고 이런 것까지 하면 답을 못 내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저축은행 감독의 경우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전문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많다”며 “예금보험공사의 기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하고, (현행) 예보와 금감원, 한국은행과 금감원 간의 공동검사 및 회계법인 위탁 검사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출신들의 ‘낙하산 감사’ 문제에 대해 “감사위원회를 구성해 놓고 거기에 상근 감사를 따로 두니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급진적이라고 하더라도 감사위원회를 사외이사로 모두 채우는 방안으로 가볼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감사위원회는 3명인 경우 사외이사 2명과 사내이사(상근 감사) 1명으로 구성되는데, 앞으론 상근 감사를 폐지한 뒤 감사위원회를 모두 사외이사로 채워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상근 감사에 낙하산 인사를 할 여지가 없어진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한편 금감원은 이날 저축은행 검사와 기업공시 등 저축은행 사태 관련 부서의 팀장을 대거 교체하는 등 팀장 262명 중 185명(71%)을 바꾸는 ‘큰 폭의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금감원은 비리관행을 끊기 위해 법규 위반은 물론이고 가벼운 내규 위반자까지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고 밝혔다. 저축은행 검사1·2국과 감독국의 팀장 11명 가운데 9명이 새 얼굴로 채워졌으며, 기업공시국 팀장 9명 중 8명도 신규 인력이다. 또 금감원 출범 이후 처음으로 외부 특채가 아닌 내부 승진으로 저축은행검사국에 김태임 팀장(49), 기업공시국에 이화선 팀장(47) 등 여성 팀장 2명을 임명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금융감독원은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의 비위행위를 지난해 8월 12일 검찰에 통보했다. 하지만 검찰이 대검 중수부에 저축은행 상황관리팀을 설치하고 본격 수사에 나선 것은 올해 3월 초였다. 감사원은 지난해 초 관련 감사를 실시하고도 그 감사결과를 올해 3월에야 검찰에 통보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감독기관들의 안이한 늑장 대처로 피해를 키운 셈이다. 이들 기관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여전히 손놓고 있는 금감원부산저축은행 대주주의 비위행위를 지난해 8월 검찰에 통보한 금감원은 아직까지 이에 대한 행정제재를 내리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특정 금융기관의 불법행위를 검찰에 통보하더라도 자체적으로 행정적인 제재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비위행위를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6개월이 지난 뒤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고 9개월째 접어든 현재까지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6일 “부산저축은행의 비위 행위를 파악하고 지금까지 법률적인 검토를 진행 중이었다”라며 “제재 수위를 내부적으로 심의하고 해당 금융회사의 이의제기 절차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금감원 측은 비위행위 내용과 검찰 통보 이후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추가 검사 여부 등에 대해서는 “검찰수사와 관련성이 있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 감사원, 왜 1년 뒤에야 검찰 통보?감사원이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서민금융 지원시스템에 대한 감사를 벌인 것은 지난해 1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였다. 그러나 감사원이 감사결과를 검찰에 통보한 것은 3월 14일 감사결과 의결을 마친 직후였다. 감사 시작부터 종결까지 거의 1년이나 걸린 셈이다.감사원 측은 “지난해 4월 초 현장 감사를 마친 뒤 자료를 정리하고 추가로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당사자 의견을 청취했다”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중요 사안의 경우 감사원은 감사결과 의결 이전에라도 관련 기관에 통보해왔던 점에 비춰볼 때 안이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감사원 관계자는 “지난해 2월 금감원에 ‘저축은행에 전반적인 부실이 있으니 예금보험공사와의 공동검사가 필요하다’고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에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알려줬다”며 “그 덕분에 금감원이 재조사까지 벌여 검찰에 통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이 적극 수사하지 않은 이유는?검찰은 지난해 8월 금감원 통보를 받은 직후 수사에 착수했지만 1건에 불과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 8월 금감원에서 ‘부산저축은행의 1983억 원 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과정에 배임 의혹이 있다’는 검사결과 1건을 통보받고 안산지청이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수사를 진행했다”며 “당시 넘겨받은 내용은 이번 수사로 드러난 수조 원대의 광범위한 범죄 정황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또 검찰은 감사원이 올해 3월 넘겨줬다는 감사결과에 대해서도 “감사원에서 받은 것은 부산저축은행을 압수수색하기 직전에 달라고 요청해서 받은 한 장짜리가 전부”라고 반박했다. 특히 수사에 나서기 전까지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감사원의 어떠한 수사의뢰나 고발조치도 없었다고 검찰 관계자는 밝혔다.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제일저축은행 예금 인출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예금자들의 혼란이 극에 달했던 4일 본점을 포함한 10개 지점에서 1350억 원, 인터넷뱅킹을 통해 410억 원 등 총 1760억 원이 빠져나갔지만 어린이날 휴무 뒤 다시 문을 연 6일 인출액은 630억 원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대기표를 받아간 사람도 크게 줄었다. 서울 중구 장충동지점의 경우 4일 2400여 명이 몰렸으나 6일에는 영업을 마친 오후 5시 45분까지 오후 3시까지 대기표 발급자가 500여 명으로 급감했다. 차재수 지점장은 “4일 찾아온 예금자 중 상당수가 다시 은행을 찾지 않았다”며 “다시 온 고객 대부분도 예금 보호를 받을 수 있는 5000만 원은 그대로 두고 초과 금액만 인출했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본점도 차분한 모습이었다. 대부분 고객은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으로부터 예금보호제도에 대한 안내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일부 고객은 “예금 인출을 통제하는 게 돈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며 은행과 정부를 불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금 인출 사태가 빠르게 진정된 데는 징검다리 연휴 효과가 컸다. 4일에 이어 6일 영업점을 찾은 한 70대 여성은 “사람들이 난리쳐 덩달아 번호표를 받았다”며 “어제 하루 곰곰이 생각해보니 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가 아까워 예금을 뺄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7, 8일 주말과 10일 부처님오신날 등 징검다리 연휴가 이어져 불안심리도 크게 누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저축은행이 업계 3위의 우량 저축은행이라는 점도 예금 인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6일에는 10개 저축은행이 제일저축은행에 자금 지원을 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제일저축은행의 예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통해 1000억 원씩 1조 원의 실탄을 지원하기로 합의한 것. 제일저축은행의 건전성이 나빴다면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게 저축은행 업계의 설명이다. 제일저축은행 관계자는 “예금이 마구 인출되는 상황에서도 10년 이상 거래한 단골 고객으로부터 3일 56억 원, 4일 75억 원의 신규 예금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필요한 만큼 자금 지원을 하겠다”며 발 빠르게 대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4일 지점별로 최대 3000장이나 발급된 고객 대기표에도 ‘허수(虛數)’가 많았다. 적잖은 고객이 한 번에 4, 5장씩 대기표를 뽑아갔고, 가족이 총동원돼 수십 장씩 대기표를 받아간 사례도 있었다. 일부 지점에선 영업이 끝날 무렵 고객들이 버리고 간 대기표가 나뒹굴기도 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금융감독 당국이 67개 저축은행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한 대주주 294명을 대상으로 일제히 적격성 조사를 벌인다. 부적격 판정을 받은 대주주는 10% 초과지분을 매각해야 하며 사실상 경영에서 퇴출된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일부 저축은행 오너들의 불법 행위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감독 당국은 대주주는 물론이고 직계가족과 배우자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조사할 방침이어서 저축은행 업계가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7월부터 시작할 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금감원 측은 5일 “전체 105개 저축은행의 대주주 475명의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DB에는 대주주의 인적사항과 과거 법규위반 전력, 계열사 관계, 특수관계인의 명단 등이 담겼다. 작년 3월 개정된 저축은행법에 따라 올해 7월 처음 실시되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대비한 것으로 자산 규모 3000억 원 이상의 대형 저축은행과 계열 저축은행을 거느린 저축은행 그룹 등 자칫 대형 비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곳부터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올해 심사 대상은 총 67개 저축은행의 대주주 294명으로 잠정 확정됐다. 금감원은 최근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와 임직원의 불법 대출 사례가 낱낱이 드러난 만큼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고강도로 진행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해 처음으로 심사하는 만큼 엄격하게 할 것”이라며 “심사 결과에 따라 상당수 대주주가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구축한 DB를 활용해 저축은행 대주주의 금융관련법 위반 여부와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대주주가 법인일 경우 충분한 출자 능력과 건전한 재무 상태를 갖추고 있는지도 살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특정인이 처음으로 저축은행 대주주가 될 때만 적격성 심사를 해왔지만 앞으로는 정기적인 검사는 물론이고 DB 정보를 계속 갱신해 문제점이 발견된 대주주는 바로 퇴출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주주가 특수관계인의 이름을 빌려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우고 우회 대출을 해주는 행위에 대해서도 이번 적격성 심사 과정에서 함께 점검할 방침이다. 적격성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대주주는 6개월 안에 요건을 갖출 기회가 주어지고 이 기간에는 총 회사 지분의 10%가 넘는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6개월 이후에도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대주주 자격이 박탈당하고 10% 이상의 지분은 강제로 처분해야 한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금융당국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한 7개 저축은행의 대주주나 경영진이 빼돌린 재산을 회수하기로 했다. 회수 대상은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을 비롯해 7개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 등 수십 명이다.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4일 부산, 부산2, 중앙부산, 대전, 전주, 보해, 도민 등 7개 저축은행의 부실 책임자를 가려내고 이들의 은닉 재산 회수에 나섰다고 밝혔다. 예보는 이를 위해 이달 중순부터 전체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일괄금융조회권을 발동해 각 금융회사가 저축은행 부실 책임자의 재산을 추려내기로 했다. 일괄금융조회권은 예보가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와 부실책임을 조사하기 위해 전 금융기관에 이들의 금융재산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으로 ‘포괄적 계좌추적권’과 비슷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산저축은행 사례에서 보듯이 일부 대주주나 경영진이 영업정지 전 재산을 미리 빼돌렸을 개연성이 있다”며 “민사상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도 은닉 재산을 찾아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연호 회장은 영업정지에 앞서 2월 10일과 14일 부산저축은행에서 1억1500만 원, 중앙부산저축은행에서 5600만 원 등 부인 명의의 정기예금 1억7100만 원을 인출해간 사실이 드러났다. 또 부실 책임자 중 상당수가 가족과 지인 등의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 재산을 추가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자금의 흐름까지 조사해 차명계좌에 있는 재산도 찾아낼 방침이다. 예보에 ‘일괄금융조회권’을 주는 ‘예금자보호법 21조’의 효력이 3월 말로 만료됐지만, 최근 정부 발의에 따라 국회가 2014년까지 한시적으로 연장하도록 재입법했다. 예보는 재입법된 예보법 21조가 이달 중순 국무회의를 통과해 발효되면 일괄금융조회권을 즉시 발동하기로 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모습에 당혹스럽고, 또 수치스럽습니다. 이젠 우리 회사(금융감독원)가 ‘공공의 적’이 된 것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오전 금감원을 전격 방문해 금감원의 부실 감독, 임직원 비리, 금융회사와의 유착 등을 강하게 질타한 데 대해 금감원의 한 간부급 직원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간부는 “어제 부산지원에서 근무하던 직원의 자살 사건 때문에 경황이 없었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직접 찾아와서, 마치 망치로 심하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멍한 상태”라며 “어디서부터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이날 금감원은 국정 최고지도자의 전격적인 방문에 아침부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이 관행적인 업무보고나 현장시찰을 이유로 금감원을 찾은 적은 두 번 있었지만 이번처럼 예고 없이 방문해 질책을 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통렬한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일 검찰이 부산저축은행그룹 사태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금감원의 감독 부실이 문제였다”고 밝힌 데 대해 잠자코 있던 금감원 노동조합은 다음 날인 3일 노조알림을 통해 반성을 쏟아냈다. 금감원 노조는 “우리 금감원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은 더는 우리가 변화의 방향과 정도를 선택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어쩌다 부패와 야합의 상징이 됐는지 어떤 직원 말처럼 회사 기둥을 붙잡고 앉아 통곡할 지경”이라고 밝혔다. 이어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가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우리를 옥죄는 커다란 굴레가 됐다”며 “과거에 익숙한 것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본분을 다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생활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이훈 금감원 노조위원장은 “부산저축은행 수사결과를 보고 내부 직원들도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며 충격에 휩싸여 있다”며 “비리의 단초를 제공한 전·현직 경영진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농협이 북한의 ‘사이버 공격’으로 결론이 난 전산망 마비 사태가 서버관리협력업체인 한국IBM의 과실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대규모 민사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농협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IBM 직원의 과실 등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 한국IBM을 상대로 1000억 원가량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농협이 민사소송을 낼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건 수임을 희망하는 일부 대형 법무법인이 이미 농협과 접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농협이 민사소송 준비에 들어간 것은 금전적 손실은 물론이고 신용도 추락 등 막대한 피해를 낳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을 경우 자칫 경영진의 배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농협도 해킹 통로로 이용된 한국IBM 직원 한모 씨가 전산센터 외부로 노트북컴퓨터를 반출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등 과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한국IBM의 과실도 있는 만큼 이를 분명히 가려 받아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내겠다는 것이 농협 측 방침이다. 한국IBM도 법무법인 김앤장을 선임해 농협의 거액 민사소송 제기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IBM은 자신들이 농협에 파견한 직원 한 씨가 웹하드 사이트에서 영화를 내려받으면서 악성코드에 감염된 것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지만 전산센터 관리에 대한 1차 책임은 농협 측에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태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농협 고객의 소송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회원이 1600여 명인 ‘농협 전산장애 피해 카페’는 최근 농협을 상대로 공동소송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카페 측은 “곧 법무법인을 선정해 피해 유형 기준이나 접수 방법을 공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농협에 따르면 3일 현재 1391건의 피해보상 민원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1364건에 대해서는 모두 2195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한 상태다. 여기에다 구체적인 입증이 어려운 간접 피해사례는 민원 접수 건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전산망 장애와 관련된 민사소송은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농협에 대한 특별검사를 12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달 18일부터 시작된 특별검사에서 농협이 적절하게 내부통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당부분 확인했다”며 “연장된 검사 기간에는 책임자들을 가려낸 뒤 확인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측은 법률 검토를 거쳐 이번 사태와 관련된 농협 임직원에게 분명하게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61·사진)의 아버지인 박상구 부산저축은행 명예회장은 1981년 부산상호신용금고(현 부산저축은행)와 광주상호신용금고, 대전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하면서 신용금고 업계에 진출했다. 박 회장은 이때 경영에 함께 참여했다. 박 명예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장조카이며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는 사촌지간이다. 박 명예회장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삼양타이어(현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각해 신용금고 인수자금을 마련했다. 박 회장은 광주상호신용금고 이사를 맡다가 1985년 부산상호신용금고로 옮겼으며, 2004년 부친이 물러나면서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박 회장은 평소 저축은행 업계의 행사나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 호남 사람이 부산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주변의 시기와 견제가 심해 최대한 노출을 자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지역 저축은행 관계자는 “평소 교류가 없다 보니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불법대출 등으로 검찰에 함께 기소된 김양 부회장(58)과 김민영 부산저축은행장(65), 강성우 감사(60) 등 임직원들은 박 회장과 함께 사실상 공동경영을 해왔다. 이들 핵심 임직원은 대부분 박 명예회장을 따라 삼양타이어에서 넘어온 사람들로, 신용금고 인수 초기부터 함께한 창업공신들이다. 박 회장이 자리를 비우면 창업공신들이 대신 경영 관련 의사결정을 하기도 했다. 특히 김 부회장에 대한 박 회장의 신뢰가 두터웠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부산저축은행그룹이 2001년부터 10년간 사상 최대의 금융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이를 방치한 금융감독원의 감독 소홀에 대해 ‘직무유기’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시장 안정의 최후 보루 역할을 망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3만 명이 넘는 부산저축은행그룹 고객들에게 2882억 원의 손실을 끼치는 등 금융당국의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어물쩍 넘어가면 제2, 제3의 부산저축은행그룹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검찰도 금융범죄를 방조하거나 묵인한 금융당국에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2일 부산저축은행그룹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금융당국의 범행 연루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앞으로 살펴보겠다”고 밝혀 저축은행 수사 ‘2라운드’가 금융당국을 겨누고 있음을 시사했다. 부당 예금인출과 관련해서도 금융당국 관계자가 영업정지 정보를 저축은행이나 예금주에게 알려준 사실이 확인되면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 등으로 기소할 방침이다.○ 감독당국의 ‘10년 모르쇠’가 부실 키워부산저축은행그룹이 급성장하다가 몰락한 배경에는 금감원의 ‘눈먼 검사’가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관측이 많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은 2001년부터 상호저축은행법을 어겨가며 부동산 개발사업에 직접 뛰어들었지만 금감원은 이를 밝혀내지 못했다. 금감원이 1999년 1월 출범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10여 년에 걸친 ‘부실 감독’이 이번 사태의 배경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감독당국 수장(首長)을 맡거나 부산저축은행그룹 검사라인에 있었던 당사자 가운데 누구도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특히 진동수 금융위원장과 김종창 금감원장이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저축은행 부실이 커졌다는 비판이 많다. 정부 내에서조차 “두 수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이 부실 저축은행들 때문에 재정위기를 겪는 것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금융당국 수장의 태도가 이렇다 보니 검사권이라는 ‘칼’도 무용지물이었다. 부산저축은행만 해도 금감원이 수차례 검사했으면서도 대주주의 불법을 눈치 채지 못했다. 민주당 박선숙 의원실에 따르면 금감원은 2009∼2010년 부산저축은행에 대해 사전검사, 부문검사, 감사원 요청에 따른 예금보험공사와의 공동검사 등 총 8차례의 검사를 진행했다. 2010년 한 해만 검사기간이 138일에 이른다. 그러나 2008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부산저축은행은 1조3105억 원(그룹 전체론 2조4533억 원)을 분식회계로 처리했다. 금감원의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분식회계가 이뤄졌던 셈이다. 감사원 요청으로 이뤄진 공동검사에서는 대주주 비위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사업장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도 불법 행위를 적발하지 못했다. 박 의원 측은 “감사원까지 개입해 오랜 기간 검사했는데도 대주주 비위 사실이나 분식회계, 부실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은 의문”이라며 “금융당국은 조사 부실을 고백하거나 은폐한 사실이 있다면 내놔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위의 정책 실패도 한몫금융위원회가 “당시로선 최선”이라며 임기응변식으로 내놓은 각종 저축은행 규제완화 정책들은 부산저축은행이 부실을 키우는 촉진제가 됐다. 특히 저축은행 대형화를 유도하는 규제완화책은 패착 중의 패착이었다. 2005년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저축은행 인수합병(M&A)을 허용하고, 2008년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부실 저축은행을 M&A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기로 하자 부산저축은행은 거침없이 ‘저축은행 사냥’에 나섰다. 1998년 새부산금고(현 부산2저축은행) 인수에 그치지 않고 2006년 6월 중앙부산저축은행, 2008년 11월 대전저축은행과 고려상호저축은행(현 전주저축은행)을 잇달아 인수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분식회계는 2008년 7월 시작됐는데 금융당국이 같은 해 11월 대전, 전주저축은행 인수를 승인해 줬다”며 “분식회계 사실을 정말 모르고 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금감원이 퇴직을 앞둔 임직원들을 민간 금융회사의 감사나 사외이사로 내보내는 오랜 관행도 부산저축은행그룹 사태의 단초가 됐다. 검찰에 따르면 부산2, 중앙부산, 대전, 전주 등 저축은행 4곳에서 금감원 전 국장과 부국장, 수석검사역들이 감사를 맡으면서 대주주의 불법 행위에 가담했다. 감독당국의 눈치를 보는 금융회사들이 금감원의 퇴직 예정자를 추천받아 감사로 선임하다 보니 감사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금감원 핵심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어떤 식으로든 금융회사의 감사 선임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만약 선임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 일벌백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감원의 ‘낙하산 인사’ 논란이 여러 차례 반복됐는데도 개선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런 방침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실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저축은행의 대표, 전무, 감사 등으로 자리를 옮긴 금감원(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출신 포함) 퇴직자는 89명이다. 이 중 3월 초 현재 재직 중인 금감원 출신은 35명에 이른다.차지완 기자 cha@donga.com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검찰이 2일 부산저축은행의 범죄사실을 발표하자 예금 피해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국회의원 면담과 고소장 제출을 위해 이날 서울에 올라온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300여 명은 자신들을 태운 버스가 경찰의 통제로 국회가 아닌 인근 산업은행 본점 앞에 서고, 미리 대기하던 경찰이 방패로 둘러싼 채 국회 진입을 막아서자 “힘 있는 사람만 돈 빼가게 하더니 VIP 아니면 국회도 못 들어 가냐”고 항의했다. 거리 농성을 한 지 2시간여 만에 피해자들은 국회 내 헌정기념관에서 이진복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부산지역 국회의원 12명과 만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저축은행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금융당국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들은 “부산저축은행 임원과 대주주들은 서민들이 땀 흘려 모은 돈을 자신들의 쌈짓돈인 양 제멋대로 사용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산저축은행 비대위는 이날 서초동 대검찰청에 불법 사전 인출과 감독업무 소홀 등을 이유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부산저축은행 임직원, 사전인출 대상자를 처벌해 달라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
정부가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마련한 재원 10조 원의 대부분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7곳의 부실을 메우는 데 들어가면서 국민의 혈세(血稅)가 추가로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은 전체 저축은행에 대한 고객 불신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보고 1일 저축은행 업무와 관련된 팀장 이상 간부를 소집해 특별대책회의를 여는 등 긴박한 하루를 보냈다. 금융위원회는 저축은행 검사를 강화하기 위해 금감원에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 정부와 예금보험공사가 4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이 순식간에 동날 위기에 처했다. 예보는 은행과 보험사 등이 낸 예금보험료 5000억 원을 재원으로 금융기관에서 차입해 연내 10조 원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올해 1월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 처리 등을 위해 2조 원을 미리 차입했기 때문에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은 8조 원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예보는 저축은행 7곳을 처리하기 위해 이 ‘실탄’을 다 쏟아 부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선 7곳을 강제 매각하기 위해 저축은행의 순자산 부족분 3조3688억 원을 메워줘야 한다. 또 5000만 원 초과 예금자 3만2537명의 5000만 원 예금을 대신 지급하는 데 1조6268억 원이 들어간다. 확정된 투입액만 5조 원에 이르는 셈이다. 5000만 원 이하 예금자에게 지급할 돈까지 감안하면 가용재원 8조 원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예보 관계자는 “10조 원으로 삼화저축은행과 7개 저축은행은 막을 수 있겠지만 추가로 부실 저축은행이 나올 경우가 문제”라며 “나중에 회수할 수 있는 저축은행 자산도 많지 않을 것으로 보여 결국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공적자금 투입이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추가로 영업이 정지되는 저축은행이 나오더라도 1인당 5000만 원까지의 예금은 무조건 보장할 것”이라며 “정부가 특별계정에 제한 없이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만큼 예금보장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아무도 못 믿는 상황이 됐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1일 오후 간부들을 긴급 소집해 저축은행 부실대책을 논의했다. 2월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 7곳이 밝힌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엉터리 숫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저축은행 업계 전반에 대한 고객 불신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한 때문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당초 7개 저축은행의 BIS 비율이 ―6.19∼6.00%라고 발표했지만 실사 결과 ―91.35∼―5.52%로 모두 자본잠식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감독당국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느냐’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대책회의에서 간부들은 통렬한 자기반성을 쏟아냈다. 한 간부는 “이제는 아무도 못 믿는 상황이 됐다. 국민도 ‘이제 못 믿겠다’ 하면서 다시 (BIS비율 등 저축은행 건전성을) 확인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부산저축은행만 그렇다고 하면 국민이 믿겠는가. 예금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BIS 비율이 엄청나게 나빠진 데 대해 당장 금감원의 ‘부실 검사’ 비판이 나올 것이고, 다른 저축은행의 BIS 비율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생길 것”이라는 자성이 이어졌다. 다만 금감원 관계자는 “부산저축은행은 대출의 75%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올인’한 특수한 사례”라며 “대부분의 저축은행은 이 비율이 30% 미만이어서 예금주들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 금융당국 “초특단 대책 마련” 금융위는 금감원만으로는 저축은행 감독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예보의 검사기능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예보에 (단독으로) 저축은행을 상시 감독하고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을 개정해서라도 금감원에 저축은행에 대한 강제조사권과 자료요구권을 부여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저축은행 및 소속 임직원에 대해서만 자료를 요구하고, 검사할 수 있으나 앞으로는 대주주와 관계사 등 저축은행 부실에 영향을 끼친 모든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조사에 착수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정부는 2월 영업정지 조치를 내린 부산저축은행 등 7개 저축은행을 강제 매각하기로 했다. 또 저축은행 임직원과 대주주가 ‘영업정지 예정’ 사실을 사전에 누설할 경우 처벌하고, 금융감독원 감독관의 권한을 강화해 저축은행 예금이 부당하게 인출되는 것을 막기로 했다. 7개 저축은행에서 예금자보호 한도 5000만 원을 초과하는 예금자는 3만2537명이며, 보호받지 못하는 5000만 원 초과 예금액은 2173억 원에 이른다. ▼ 보호받지 못하는 예금 2173억 ▼올해 1월 영업이 정지된 삼화저축은행의 경우 5000만 원 초과 예금액의 34%만 돌려받은 전례를 감안하면 7개 저축은행의 5000만 원 초과 예금자들도 상당액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29일 임시회의를 열어 부산 부산2 중앙부산 대전 전주 보해 도민 등 7개 저축은행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경영개선명령과 추가로 6개월간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이들 저축은행에 대해 앞으로 45일간 자체 정상화 기회를 주되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매각 절차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금감위 측은 자체 정상화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 매각 절차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각은 5월 입찰공고와 재산 실사를 거쳐 6월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매각 방식은 삼화저축은행(현 우리금융저축은행) 사례와 마찬가지로 자산부채이전(P&A)이 유력하다. 금융위는 영업정지 전 예금이 부당하게 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축은행 임직원 및 대주주에게 미공개정보 누설금지 규정을 적용하는 것을 포함한 제도개선 방안을 조만간 발표하기로 했다.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
금융감독원은 일회용 비밀번호(OTP) 생성 시스템을 개발하는 미국 RSA 회사가 최근 해킹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이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공문을 이달 8일 각 금융기관에 보냈다고 29일 밝혔다. 국내에서 OTP 발생기를 사용하는 소비자는 약 400만 명이며 이 중 20%가량이 이번에 해킹당한 개발 회사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OTP 통합센터를 운영하는 금융보안연구원도 각 은행의 실무자들을 불러 보안 점검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이와 관련한 고객 정보 유출은 알려진 바 없어 고객에게 큰 피해가 갈 우려는 없다”면서 “단, 해킹으로 유출된 OTP 발생기 알고리즘을 이용해 피싱 사이트 등에서 고객 정보를 획득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금융감독원이 저축은행 부당인출 예금을 전액 환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데는 이명박 대통령의 ‘질책’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영업정지 전 예금 인출 사태에 부실하게 대처하고, 예금 환수에 대해서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다가 이 대통령이 26일 “저축은행이 왜 이렇게 모럴 해저드가 심해진 상황까지 갔느냐. 철저히 조사하고 엄격히 대응하라”고 지시하자 ‘전액 환수’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국회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검찰도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사면초가에 몰린 것도 금감원이 강경 방침으로 돌아선 배경이다. 이번의 ‘나쁜 선례’를 방치할 경우 하반기에 실시될 저축은행 추가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전액 환수 방침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 금융감독 당국 ‘강공’ 모드로부당인출 예금을 환수하는 문제와 관련해 당초 금감원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금감원은 25일 VIP 고객의 예금 인출과 관련해 “사실로 확인된 게 없다”고 부인했다. 26일에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환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금융감독 당국은 “법률적 검토를 거쳐야 할 사안”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26일 이 대통령의 질책이 알려지자 금감원의 태도가 급변했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27일 “전액 환수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해 사실상 전액 환수 방침을 못 박았다.금감원이 환수 조치의 근거로 찾아낸 것은 민법상의 ‘채권자 취소권’이다. 채무자(저축은행)가 채권자(예금주)에게 해(害)를 끼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동에 옮겼을 때 채권자가 그 행동을 취소시켜 달라고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내려지면 5000만 원 초과 예금액은 저축은행의 다른 자산을 매각한 금액과 합쳐 이해관계자들에게 정산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사전에 부당한 방식으로 대량 인출이 일어났다면 차후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돈이 줄어 다른 고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만큼 채권자 취소권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해석이다.○ 예금 환수는 ‘산 넘어 산’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의 반응은 다소 회의적이다. 우선 VIP 예금주와 은행 임직원들이 다른 예금주들을 ‘해할’ 목적으로 예금을 빼갔는지에 대한 의견부터 엇갈린다.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예금주 가운데 지인에게만 미리 알려줘 예금계약을 해지하고 반환했을 경우 다른 예금주에 대한 사해(詐害)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재형 서울대 법대 교수는 “저축은행과 일부 고객이 공모해서 선량한 고객을 해할 의사를 갖고 빼갔다는 것을 피해를 본 선량한 고객들이 증명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밝혔다.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채무자가 특정 채권자와 공모해 부당하게 채무를 우선 변제했다면 나머지 채권자에 대한 사해 행위로 볼 수 있다. 즉, 영업정지 직전 예금을 인출한 예금자(특정 채권자)들이 사전에 저축은행(채무자)과 공모한 사실이 인정되면 불법성이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다른 예금주들이 소송을 내더라도 이 판례의 취지대로 예금을 전액 환수할 수 있을지는 사실관계 인정 여부에 따라 다르다. 최종 판결까지는 1, 2년이 걸리는 데다 승소하더라도 돌려받는 금액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여 실효성이 적다는 의견도 있다.소송을 누가 진행할지도 관건이다. 민사소송인 만큼 채권자인 예금주가 채무자인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예금보험공사가 해당 저축은행에 투입한 돈이 있다면 예보도 행사 주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부당 예금인출이 일어난 시점은 예보가 예금보험기금을 투입하기 전이어서 채권자 자격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예금 인출 시점에 채권자가 아니어서 소송을 할 수 없는 구조”라면서도 “예금보험기금을 투입할 때부터 채권자 권리를 승계하는 만큼 소송을 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금감원은 채권자 취소권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추가적인 법률 검토를 하고 있다. 소송을 하게 되면 금감원이 불법 행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들이 소송을 하는 형식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한편 금융당국이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금감원이 확실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하반기 추가로 영업이 정지될 저축은행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며 “지금처럼 저축은행으로부터 영업정지 신청서를 받는 게 아니라 금융당국이 책임을 지고 전격적으로 영업정지 조치를 내려 정보 유출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채권자 취소권 ::채무자의 불법 행위로 다른 채권자의 권익이 침해됐다면 이 행위를 취소할 수 있는 민법상의 권리. 고객이 저축은행에 맡긴 예금은 저축은행에는 부채가 되기 때문에 채무자는 저축은행, 채권자는 예금주가 된다.}
산업은행은 올해 책정한 산은의 중소기업 관련 지원 금액은 총 12조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9% 늘어났다고 27일 밝혔다. 최근 5년간 평균 지원 실적인 9조4000억 원보다는 28%가량 증가한 금액이다. 또 산은은 올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줄이고 상호협력을 장려하기 위해 ‘동반성장 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대기업에 물품이나 용역을 제공하고 채권을 받은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산은이 해당 채권을 담보로 유동화해서 자금을 지원한다. ‘R&D 매칭 펀드’도 조성해 대기업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에 직접 투자하도록 할 방침이다. 산은은 그동안 중소기업의 업종과 성장단계에 따라 차별화된 지원을 해왔다. 경영위기를 겪는 해운업계를 위한 2조 원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2009년부터 3월 말 현재까지 선박 17척을 매입하고 총 6600억 원을 대출해줬다. 시설자금이 필요한 신규 중소기업에는 대출 초기 낮은 금리를 적용해 업체당 50억 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위축된 경제의 활력을 되찾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소기업 지원이 중요하다”며 “민영화 이후에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비중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농협이 이르면 26일부터 카드 서비스를 전면 재개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12일 농협 전산망이 불능 상태에 빠진 지 15일 만에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금융서비스가 완전히 정상화되는 것이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농협은 이날 오후 카드 미청구 금액 조회 등에 대한 테스트를 거쳐 26일 카드 서비스를 재개하겠다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농협은 카드 서비스를 재개한 이후에도 12일 오후 4시 반경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경까지 약 13시간 동안 훼손된 고객의 거래명세를 복구하는 작업은 계속할 방침이다. 농협 관계자는 “가장 복구하기 어려운 부분이 카드결제대행 서비스업체(VAN)에도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콜센터나 자동응답전화(ARS) 등을 통한 결제명세”라며 “완전 복구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일각에서는 콜센터, ARS를 통한 거래명세를 영구적으로 복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농협은 유실된 거래명세를 찾지 못하더라도 관련 피해는 1억∼2억 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산망이 마비 상태에 빠진 뒤 정상 가동되기까지 수수료수입 포기, 카드대금 결제 연기 등 사후 보상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피해액은 1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농협 광주지역본부의 모 지점 출납 담당자는 2009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17개월 동안 지점 금고에서 여러 차례 현금 총 5100만 원을 몰래 꺼내 썼다. 카드 빚을 갚을 방법이 없자 고객들이 맡긴 돈에 손을 댄 것.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다. 지난해 10월 농협의 다른 지점에선 직원이 80여억 원을 횡령하는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2007년부터 약 3년 6개월간 다른 은행이 발행한 수표나 어음 등을 입금할 때 실제 받은 금액보다 부풀리는 방식으로 수십억 원의 차액을 가로챘다.22일 농협중앙회 강당에서 열린 ‘2011년 준법감시 담당자 교육’에서는 직원이 고객 돈을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등 농협 내부의 ‘도덕적 해이’와 ‘무신경’을 고발하는 금융사고 사례가 줄줄이 소개됐다. 세계적으로도 금융권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기록될 농협 금융전산망 마비 사고가 있기 전부터 농협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자인한 셈이다. ○ 내부통제 총체적 부실농협의 금융사고는 올해 들어서도 잇따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2월 16일 서울지역본부에서는 1억 원짜리 자기앞수표 3장이 변조된 줄도 모르고 3억 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A시중은행의 준법감시인은 “우리는 10만 원짜리 가짜 수표를 바꿔줬다가 들통이 날 경우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는 내부 전산망에 관련 직원의 이름을 올려 ‘징계대상’으로 알리고 있다”며 “억 원 단위 수표라면 더욱 신경을 써서 가짜 여부를 가릴 텐데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이에 앞서 같은 달 1일 울산의 한 지점에서는 위조 신분증을 제시한 한 남성에게 계좌를 만들어준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수사 결과 이 남성은 다른 지점을 옮겨 다니며 위조 신분증으로 만든 계좌에서 3억100만 원의 예금을 인출했다. 해당 계좌의 실제 주인은 농협의 VIP 고객인 이모 씨(61)였다.이날 강당을 가득 채운 농협의 준법감시인과 준법감시 담당자 200여 명은 ‘금융회사로서의 기본’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해 발생한 금융사고 사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준법감시인은 기업이 관련 법규를 잘 지키는지 감시하는 회사 내부 임원으로 농협법에 따라 이사회 의결 절차를 거쳐 회장이 임명한다. 준법감시 담당자는 준법감시인이나 단위 조합의 사무소장을 보좌하며 직원의 횡령, 고객의 예금 강탈 등 내부 통제를 맡는 실무자들이다.○ 내부통제 부적격자에게도 맡겨문제는 농협이 이렇게 막중한 내부통제 책임을 ‘부적격자’에게도 맡겼다는 점이다. 이날 발표자는 “지난해 금융감독원의 종합검사 때 자격이 없는 사람을 준법감시 담당자로 지정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고 밝혔다. 농협에선 견책처분을 받은 뒤 1년 미만인 직원, 감봉 이상의 처분을 받은 뒤 2년 미만인 직원, 근무성적 불량자 등은 준법감시 업무를 맡을 수 없다. 준법감시 담당자의 자격 요건에 부합하지 않은 직원이 내부통제의 칼자루를 쥐고 있었던 셈이다.최근 금융전산망 사고와 관련해 정보기술(IT) 업무 처리가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농협 관계자는 “IT 업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미흡하고 직원들이 업무별로 전산업무를 처리하는 절차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털어놨다.금융회사라면 당연히 점검했어야 할 사항을 놓쳤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매일 확인해야 할 시재금(時在金)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지점이 여럿 있었다. 시재금은 은행이 고객 예금 인출에 대비해 지점별로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다. 이날 발표자는 “책임자가 필수로 감시하고 확인해야 할 시재금을 확인하는 데 소홀했다”며 “전반적으로 안이한 태도가 문제”라고 비판했다.다른 발표자도 “지점장과 시군지부장 등 사무소장의 업무현황을 들여다본 결과 시재금 검사는 거의 형식적으로 이뤄질 때가 많았다”며 “지난해 군포지점의 경우 20여 명이나 되는 출납 책임자가 있었는데도 시재금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내부통제 업무는 이번 금융전산망 사고로 더욱 차질을 빚는 악순환을 낳았다. 교육을 담당한 한 농협 관계자는 “준법 감시 결과를 등록하지 못한 사람은 현재 전산망 장애로 입력이 안 될 수 있으니 5월 초까지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전문성 결여가 가장 큰 문제농협의 내부통제 실패는 전문성 결여, 파벌 문화, 내부 경쟁 부재(不在) 등 3가지 요인이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완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농협 직원들은 농협대학 출신과 비(非)농협대학 출신으로 나뉘어 전문성보다는 파벌에 치중하는 인사(人事)가 많다“고 꼬집었다. 4년제 대학이 아닌 농협대학의 학제나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농업경제, 축산경제, 신용 등 농협의 3대 사업부문별로 특성에 맞춘 인재를 키우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농협의 경제사업을 총괄하는 이덕수 농업경제 대표는 경제가 아닌 금융 전문인으로 꼽힌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농협의 신용대표 이사도 조합장 선거로 선출된 ‘금융 비(非)전문가’인 농협중앙회장의 추천과 동의를 얻어 선임된 탓에 아무래도 금융전문성 면에서는 시중은행장보다 취약하다”고 말했다.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특성을 간과하고 순환 보직을 하다 보니 금융사고가 빈발하다는 분석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제사업의 영업 담당자들은 재고처리 등의 과정에서 거래처와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상황이 적지 않다”며 “이런 사람들이 신용사업에서 일을 하다 보면 융통성이 ‘나쁜 습관’으로 작용해 금융사고의 개연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차제에 농협 내부의 느슨한 분위기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농협은 최근 농협법 개정에 따라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 ‘농협금융지주’ 출범을 추진하고 있지만 내부통제 시스템의 개선 없이는 ‘무늬만 구조개편’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농협법 개정안은 향후 농협의 구체적인 형태나 운영방식, 지배구조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커진 측면도 있다”며 “농협과 정부는 이제부터 새로운 농협을 디자인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고 말했다.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준법감시인 ::기업이 관련 법규를 제대로 지키는지 내부 통제와 위험관리를 담당하는 회사 내부 직원을 말한다. 기업이 법을 위반할 경우 위규사항을 이사회와 금융감독원에 보고해야 한다. 2000년 은행, 증권, 보험 등 모든 금융기관에 준법감시인 설치가 의무화됐다. ‘준법감시 담당자’는 준법감시인을 보좌해 직원의 횡령 등 내부통제 실무를 맡는다.}
농협의 금융전산사고를 검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20일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도 농협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의장인 만큼 이번 사고와 연관성이 있는 결정을 내렸다면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 수사와 별개로 강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협의 허술한 보안관리도 속속 드러났다. 미래희망연대 김혜성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농협은 최장 6년 9개월 동안 시스템 계정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농협 지침은 3개월마다 1회 이상 비밀번호를 바꾸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밀번호도 계정명과 같거나 1이나 0000 같은 단순 숫자로 설정된 경우가 많았다. 또 농협은 전산장애로 처리하지 못한 카드이용대금을 20일 인출하면서 2만3000명에게 연체료 5200만 원을 부과했다가 이날 오후 환불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본부(부장 김영대)는 이날 “전산망에 대한 외부 침입 흔적이 여럿 발견됐다”고 밝혔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농협의 금융전산망 사고가 장기화되고 피해 고객이 늘면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농협노조, 전국축협노조, 전국사무연대농협중앙회지부 등 농협 관련 3개 노조는 19일 서울 중구 충정로 농협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과 임원진은 이번 사태가 일단락된 뒤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농협은 사상 최고, 최대 규모의 금융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 됐고, 3000여만 명에 이르는 국민이 직·간접적인 손실을 봤다”며 “상황이 이런 데도 최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책임 떠넘기기와 문제 회피에만 급급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협 이사회도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이번 사태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 이날 임시이사회를 열고 경영진에 금융전산망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줄 것을 촉구했다. 농협 사외이사인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은 “오늘 임시이사회에선 원인 규명을 포함한 중장기 대책을 논의했다”며 “회장 책임론은 원인이 규명된 뒤 다음 정기이사회에서 논의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농협의 정기이사회는 27일이다.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27일 전에 나올 경우 정기이사회에 경영진 제재 안건이 올라갈 개연성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 이재관 농협 전무는 이사회에서 “정보기술(IT) 담당 총괄책임자인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한편 검찰의 추가 수사 결과가 밝혀지면서 그동안 사태 수습 과정에서 농협의 거짓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4일 최 회장의 사과문 발표 후 농협 전산담당 관계자는 “노트북을 들여오거나 가지고 나갈 때는 반출입신고서를 쓰고 포맷까지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19일 브리핑에선 이 전무가 “노트북은 반입 시 보안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게 돼 있다”며 “두세 종류의 암호를 입력해야 쓸 수 있어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특별한 잠금장치는 없어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농협에서 보안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사실을 감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을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 중인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전자금융 감독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 내부통제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 사상 초유의 농협 금융전산사고가 발생한 후 한국IBM이 농협에 파견했던 직원 2명을 철수시키고, 농협 측도 IBM 직원을 지원하던 3명을 외부와 철저히 격리하는 등 내부 단속에 나서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농협의 금융전산망은 12일 전면 불능 상태에 빠진 지 엿새째인 17일에도 완전 복구되지 못했다. 또 이번 금융전산사고를 계기로 농협이 과연 자회사끼리 고객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금융지주회사로서의 자격을 갖췄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 “명령어 노트북에서 입력 안 돼” IBM과 농협이 관련 직원들에 대해 ‘입단속’에 나선 것은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로부터 ‘내부 단독 소행 또는 내·외부 공모설’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17일 검찰 수사에서 IBM 및 농협 직원 5명 모두가 운영시스템 파일 삭제 명령어를 입력할 수 있는 ‘최고관리자 접근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이 명령어가 노트북 컴퓨터의 키보드에서 직접 입력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긴장하는 모습이다. 한 정보기술(IT) 전문가는 “통상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나 외부 인터넷을 통해 노트북에 접근한 뒤 명령어를 실행할 경우 접속기록이 한 번 더 남게 돼 검찰의 추적이 그만큼 용이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협 사건처럼 5명이나 되는 많은 인력이 최고관리자 권한을 보유할 경우에는 오히려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이와 함께 IBM 직원의 철수 시점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농협 측은 IBM 직원 2명이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3일 철수했다고 밝혔지만 IBM은 “15일까지도 복구작업에 참여했다”고 반박했다. 현재 전산망 복구작업은 IBM의 비상대응팀과 처음부터 IBM 파견직원 2명을 지원하던 3명의 농협 직원이 담당하고 있다. 검찰은 외부 해킹이나 바이러스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농협 전산망 “아직도 복구 중”농협의 전산장애로 인한 금융거래 차질은 17일에도 계속되고 있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결제를 하거나 자동화기기(ATM)를 이용하는 것은 정상화됐지만 신용카드 대금이 농협의 결제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기능은 복구되지 못했다. 또 인터넷뱅킹을 통해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등 카드와 인터넷이 연결된 서비스도 지연되고 있다. 조합원 출자금 배당시스템, 내부 경영정보 확인 등 내부망도 복구 중에 있다. 농협의 개인 조합원은 약 245만 명에 이른다.카드 거래 정상화가 지연되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고객의 거래 원장(元帳)이 훼손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농협 관계자는 “가맹점에서 카드결제대행 서비스업체(VAN)를 통해 농협의 중계서버까지 도달한 거래정보가 중계서버의 고장으로 고객의 거래원장에 쌓이지 못하고 다시 VAN으로 튕겨 나간 것이지, 거래 원장이 훼손된 게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카드 기능 정상화가 지연되는 것은 VAN으로 돌아간 거래정보를 다시 받아서 일일이 거래원장에 입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CEO 리스크’까지 등장농협은 사고 예방에 실패한 것은 물론 초동 대응과 사후 수습에 이르기까지 신뢰가 최우선 가치인 금융회사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허둥지둥했다. 사고 수습을 진두지휘할 최고경영자(CEO)까지 ‘나에겐 책임 없다’는 식의 발언을 계속하고 있어 고객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사고가 일어난 지 사흘째인 14일에야 대국민 사과를 했다. 또 이 자리에서 “기자들이 당한 것(농협으로부터 복구 완료 시간에 대한 답변을 들었으나 여러 차례 지연된 점)이나 내가 당한 것이나 똑같다”고 말해 ‘CEO로서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어 “업무를 모르고 내가 한 것도 없으니까 책임질 일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CEO로서 이번 사고를 수습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이런 일련의 과정은 내년 3월 농협금융지주의 출범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 최근 농협법 개정에 따라 농협은행과 NH투자증권, NH생명, NH화재 등을 자회사로 거느린 지주회사로의 전환 작업을 추진 중이다.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각각의 자회사가 보유한 고객정보를 서로 공유할 수 있어 영업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고객정보 공유는 보안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핵심 업무인 금융전산망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금융지주 전환 작업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